『리부팅 바울 - 권리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

지은이 : 김진호

펴낸날 : 2013년 8월 16일
페이지 : 240쪽
정  가 : 14,000원
펴낸곳 :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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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낯선 바울’ 읽기, 바울을 리부팅하다

가톨릭의 아우구스티누스, 프로테스탄트의 마르틴 루터,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 칼 바르트, 그리스도교 신학의 제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세 사람의 신학은 바울 해석을 토대로 하고 있다. 성서 자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제2성서(신약성서) 27개 텍스트 가운데 13개가 바울의 이름으로 된 문서다. 이는 1세기 말경에 이미 그리스도의 공동체들 사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서는 다름 아닌 바울의 문서였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고대에서 현대까지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바울의 시선에 의해 규율된 역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역사적 그리스도교에 비판적 문제를 제기했던 많은 이들은 대개 바울을 비판했다. 니체는 바울이 예수를 교회의 도그마로 왜곡, 전락시킨 장본인으로 보았고, 자유주의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낙은 바울이 기독교 신앙을 왜곡한 정통주의의 원흉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신학자 루이제 쇼트로프는 바울을 남성 쇼비니스트라고 비판했으며, 민중신학자 안병무도 김창락의 바울 연구를 접하기 전, 바울에 대해 강한 비판을 가했다.
하지만 역사적 그리스도교에 대해 비판적임에도 바울을 다시 주목하려는 시도들도 있다. 그런 시선들은 역사적 그리스도교에 의해 바울이 왜곡되었음을 문제제기하고 바울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비판적 성서학 연구자의 하나인 도미니크 크로산도 그중 하나고, 대표적 급진주의 성서학자들인 리처드 호슬리나 닐 엘리엇, 그리고 퀴어신학의 개척자이자 이론신학의 대가인 테드 제닝스 등도 그런 예에 속한다. 그밖에도 무수한 비판적 신학자들이 교회에 의해 왜곡된 바울과는 ‘다른 바울’을 얘기한다. 그들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좌파 사상가들인 알랭 바디우, 조르지오 아감벤, 슬라보예 지젝 등도 바울을 재해석하였다.
한편 민중신학도 바울에 대한 재해석의 대열에 가담했는데, 그 대표적 학자는 김창락이다. 바울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안병무도 제자인 김창락의 연구에 영향을 받아 바울을 재평가하였다. 하지만 김창락의 연구는 신학계와 교회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함으로써 그 가치가 간과되었다.
지은이 김진호는 김창락의 바울 재해석을 계승하고 있는데, 그는 김창락의 바울 재해석이 기존의 주류 그리스도교의 바울 이해나, 그리스도교 비판가들의 바울 비판, 그리고 바울을 재해석하고자 했던 여러 논의들을 ‘리부팅’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김창락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바울의 현장신학적 관점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바울에 대한 대개의 재해석들은 바울을 로마제국 전체와의 대결구도 속에서 보고자 했다. 그것은 고전적인 바울 연구들이 바울을 유대교와의 대립구도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른 관점이다. 한데 이런 논쟁은 모두 바울의 서신들이 담고 있는 투쟁 현장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 반면 김창락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부의 기득권자들인 유대인들에 대해 비기득권자들인 이방인을 옹호하려는 것이 바울의 투쟁 현장임을 밝혀낸 것이다.
김진호는 김창락을 계승하면서도 그가 입증하는 데 실패한 현장의 사회사적 맥락을 밝힌다. 그리고 그런 논의의 연장에서 김창락의 관점을 수정한다. 바울의 현장은 지중해 지역의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부가 아니라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 사회이며, 그 안에서 비기득권자인 이방인은 주로 개종해 들어온 해방노예들임을 주장한다. 이들은 고대적 세계화가 한창 진행되던 1세기 지중해 지역의 독특한 사회사적 상황에서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아 이리저리 떠도는 유민이 된 자들이다. 한데 도시의 지배층과 시민층, 그리고 서민들은 이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 심지어는 증오를 쏟아냈다.
이스라엘 교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곳에서 순혈주의적이고 배제주의적인 근본주의적 이스라엘 종파인 유대주의가 거세게 물결쳤다. 한데 바울은 그런 현장 한 가운데서 이들을 옹호하고, 이들에 대한 배제의 논리를 공박하였다. 김진호가 재해석한 바울의 현장과 그의 담론투쟁은 이랬다.
이렇게 김진호는 고전적인 바울 해석과 최근의 바울 재해석을 리부팅하는 김창락의 견해를 계승 보완하면서, 1세기 지중해 지역 대도시들 한 가운데서 활동했던 바울이라는 인물을 읽는다. 이는 지금까지의 연구사에서 다뤄지지 않은 ‘낯선 바울’의 이야기이다.

고대사회의 인권선언, 바울의 의인론 / 고대의 급진적 인권운동가, 바울

김진호는 이 책에서 바울과 기독교를 동일시하도록 전개되었던 기독교의 바울 수용사를 접고, ‘기독교 이전’의 바울, 곧 기독교가 아직 세상에 존재하기 전에 실존했던 인물 바울의 활동을 현장신학적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바울의 현장 이해에 핵심적인 논점은 ‘유대주의’ 문제다. 바울은 거의 모든 곳에서 유대주의자들과 심각한 갈등을 벌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든 연구는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의 신앙을 ‘유대교’라고 명명했다. 김진호는 이를 현대 시오니즘의 유대 중심적 관점에 의해 과거의 역사가 만들어진 결과라고 보았고, 이를 바로잡아 ‘이스라엘 종교’라고 썼다. 그리고 다양한 이스라엘 종교 현상과 운동들이 공존하는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 사회에서, 안식일과 절기의 준수, 할례 등을 주장함으로써 순혈주의적이고 남성 중심주의적인 방식으로 이스라엘 종교를 재해석하려는 집단을 ‘유대주의자’라고 불렀다.
이들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에 의하면) 회당 사회 주변부 대중, 곧 대개가 개종자들인, 특히 버림받은 노예들인 민중에 대해 배타적이다. 이러한 유대주의자의 담론의 효과를 잘 이해하지 못한 많은 이들, 심지어 베드로나 야고보같이 예루살렘계 그리스도파의 유력한 지도자들조차 이러한 운동에 동조하곤 했다. 바울의 전향은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의 개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스라엘 신앙에 속한 사람으로 유대주의자의 일원이었다가 그 반대편의 지형으로 생각과 실천의 축을 옮겨간 정치적인 전선의 이동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담론에 대항하면서 성적, 인종적, 계급적 민중담론을 폈다. 바울의 의인론은 바로 이런 투쟁의 무기로 제기된 신학적 언술이다. 다음은 투쟁교설로서의 의인론의 사회사적 해석이다.
바울이 활동하던 기원후 1세기 중반은 해안지역 노동자의 30퍼센트에 달하던 노예경제가 붕괴되고 무수한 노예들이 속속 방출되던 시기였다. 신분은 노예인데 소유주가 없는 이러한 방출 노예들은 마치 유기견과 같은 존재가 되어 생존의 정글 속에 내던져진 ‘말하는 짐승’에 다름 아니었다. 이들 방출 노예들은 도시의 하층 노동시장을 크게 교란시켰고, 이는 방출 노예들에 대한 사회적 증오와 적대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혈통으로도 피부색으로도 언어로도 어느 하나 동질감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로 들끓는 도시, 이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사적 연줄을 만들었고, 해방노예나 난민 등 하층민들은 그 연줄망의 변두리에라도 속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이런 맥락에서 로마제국 내에서 사법권, 제의 준수권, 조세 징수권 등 특권을 누리는 격조 있는 결사체, 즉 도시 사회 속의 또 하나의 사회로 기능하는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 결사체에 속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치 결사체에 편입된 비이스라엘계 사람들에는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테오세비오스, 즉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부류는 개종자다. 비록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자치결사체를 위해 많은 기부금을 내고 지역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 교포사회를 보호하였던 이들인 테오세비오스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교포 사회에서 별 반감이 없었다. 그러나 기부금을 낼 처지도 못 되고 품격도 갖추지 못한 개종자는 순혈주의적이고 배타성이 강한 유대주의자들에 의해 ‘이방인’ 또는 ‘헬라인’으로 불리며 하위주체로 대상화되었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계 디아스포라 회당에서 의인론을 편다. 사람이 의로워지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은혜에 의해서라고 하며, 그 은혜의 대상에 대해서 “이스라엘인뿐 아니라 헬라인(이방인)도,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자유인뿐 아니라 노예도 ‘차별이 없이’ 의롭다고 인정해준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것은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주권이 박탈된 하위주체 모두를 은혜의 공간으로 호출하는 선언이다. 그리하여 권력 없고 소외받던 이들을 재주체화하는 신학담론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울의 의인론은 권리 없는 자들을 위한 신학, 즉 ‘인권으로서의 신학’이다.

2013년 서울, 바울을 호출하다

지구화 시대 세계는 무수한 유민과 난민들로 들끓고 있다.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최소한의 특권도 갖지 못한 쓰레기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다. 사회는 그들을 더러운 자, 처분해 버려야 할 자들로 간주한다. 하여 그들은 배제와 차별, 증오가 혐오의 대상이 된 자들이다.
1세기 지중해 연안의 바울의 세계들도 그랬다. 기원전 3세기 이후 국제무역이 전례 없이 활발해졌고, 지중해 전역을 차지하려는 제국들의 전쟁이 잇따랐다. 그 과정에서 종족국가 단위를 훌쩍 넘어 지중해 전역을 단위로 하는 문화적, 종교적, 인구적 혼합 현상이 극심해졌다. 무엇보다도 유민과 난민의 행렬은 지중해 지역 대도시들을 혼융성(하이브리디티)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한데 지중해의 기원후 1세기는 고대적 지구화의 양상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아우구스투스의 팍스로마나 선언 이후 해안 지역 노동인구의 30퍼센트를 차지하던 노예경제가 빠른 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는 무수한 노예들이 방출되었음을 의미한다. 유기견과 같은 존재인 이들이 결국 몰려든 곳은 해안도시들이었다. 이곳에서 이들 부유하는 방출노예들은 가장 심각한 차별과 배제의 대상,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하여 김진호는 1세기 활동가인 바울을 21세기 서울로 불러내 읽는다. 바울이 활동한 도시들, 특히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 등과 21세기 도시 서울은 많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중 혐오적 양상에 있어서도 양자는 닮은꼴이다. 도시국가 서울이 ‘21세기적’으로 지구화하고 있는 세계의 ‘주변부 메트로폴리탄’이라면 바울의 도시들은 ‘1세기적’으로 지구화하던 세계의 ‘주변부 메트로폴리탄’이었다. 돌진적 근대화로 치닫던 1970~1980년대 한국의 도시와 농촌의 개념과는 달리, 농촌의 독자성이 거의 괴멸되어가는, 서울에 귀속된 부속도시들과 촌락들로 이루어진 도시국가 서울, 여기가 지은이가 바울을 묻는 시공간이 된다.
교회 안에서 교회를 개혁하고, 교회 밖에서 배척된 이들을 이웃으로 삼는 일에 몸 사리지 않는 ‘서울의 바울’을 찾아내고 그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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