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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소통(疏通)이냐 불통(不通)이냐 (양미강)

시평

by 제3시대 2009. 4. 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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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疏通)이냐 불통(不通)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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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강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 연구소 운영위원)

얼마전 모 시사주간지 팀장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내용인즉슨, 특별호를 기획하면서 합리적 보수로 대표되는 사람들을 추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평소 그의 면모를 알고 있었던 터라, 가능하면 그의 기획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학술 담당 기자로서 뉴라이트 진영을 취재하면서, 저는 보수 담론의 일부에서 '역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합리적 진보-합리적 보수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식의 '대연정'의 정치공학이 아니라, 혼돈의 시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을 창출하기 위해서라도 보수담론이 내장하고 있는 '매력 포인트'를 관찰하고 익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가 하고 있는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기에 나는 기꺼이 합리적 보수를 찾는 길을 함께 하기로 하면서 그가 보내온 문항을 꼼꼼히 살펴봤다. 각 분야에 걸친 합리적 보수를 찾는 문항에서 내가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내 주변을 뒤져봐야 정말 합리적 보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참 난감했다. 그 난감함은 내가 맺어온 인간관계의 폭을 알려주는 것이기에 더욱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살았는가? 지금 생각하면 나와 동색인 사람들과 기꺼이 어울려 살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같은 색깔의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이 나의 존재방식이었고, 그 존재방식만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니 당연히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 같은 색깔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온 결과, 내 주변에는 합리적 보수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색깔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너무 당연한 이치였다. 난 누가 합리적 보수인지, 합리적 진보인지를 구별하거나 편가르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 지를 고민할 뿐이다.

최근 한백교회는 두 주 동안 두가지 문제인식이 충돌하고 있다. 한백교회의 장점은 어떤 이야기라도 함께 나눌 수 있기에 하늘뜻을 나누는 설교자들이 부담없이 자신의 소신대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늘뜻나누기에서 나온 의제들을 가지고 토론하면서 현 상황을 바라보는 교인들이 갖는 인식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현재 MB정권에 대한 인식이 과거 독재정권과도 같은 것인지, 아니면 과거와는 다른 것인지, 소위 진보진영이라고 말하는 우리 내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 역시 소위 보수진영의 공세에 의해 조작되고 있는 것인지 등등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토론 중에 있다.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결론이 꼭 나야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토론의 과정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진보와 보수라고 구분짓고 담을 쌓기 보다는, 말과 상식이 통하는 대화의 파트너들을 찾아내고 관계 맺는 일일 것이다. 최근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된 독선과 배타성이다. 우리 내부의 문제를 성찰하지 못하고 타인을 향해 투사될 때 나타나는 독소의 위험성을 몸소 느끼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 혹은 보수라는 이름으로 자기 의로움에 빠져 자기만이 옳다는 신념을 내세울 때 가장 치명적이다. “내가 이렇게 헌신해왔는데, 내가 이렇게 남들 알아주지 않을 때 몸바쳐 일해왔는데, 내가 이 기나긴 시간들을 투신해왔는데” 등등.... 여기에 도덕성과 청렴성까지 결합되면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자기 의로움의 극치를 달리게 된다. 자신만이 옳다는 절대신념은 어느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놓지 않는다. 스스로 굴레 속에 갇혀버린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의로움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자기의 의로움보다는 타인의 의로움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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