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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정보] 사울 알린스키(Saul D. Alinsky)와 실용주의적 급진주의(I) (서명삼)

신학비평

by 제3시대 2015. 9. 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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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알린스키(Saul D. Alinsky)와 실용주의적 급진주의(I)

 



서명삼

(University of Chicago, 종교사회/인류학 박사과정수료)




    1. 오늘날 하나의 유령이 미국을 배회하고 있다 – 사울 알린스키라는 유령이. 사실 이 유령은 이미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공동체조직운동(Community Organizing)이란 이름으로 (진보적) 교회와 노동조합 그리고 빈민가와 이주민 단체 등을 숙주로 삼아 이곳저곳에서 지속적으로 출몰해왔다. 다만 이 유령은 이제껏 그 출입이 워낙 신출귀몰하고 그 형태를 변화무쌍하게 바꿔온지라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 눈에 보이는 그 파생 단체나 조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천년대 들어 바락 오바마라는 알린스키의 사도가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이 유령은 하루 아침에 미국의 정치판 자체를 뒤흔드는 핵심 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보수측에서는 과거 오바마가 시카고 남부의 흑인 빈민가에서 공동체조직운동가로 활동했던 전력을 상기시키며 이 운동의 창시자인 알린스키가 실은 골수 ‘빨갱이’이었으므로 그 영향을 받은 오바마도 알고보면 불온한 ‘사회주의자’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색깔론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 진보측에서는 오바마의 등장을 계기삼아 다시금 미국의 풀뿌리 민주주의 전통을 되새겨보며 알린스키식 공동체조직운동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게다가 오바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민주당의 핵심 지도자 중 한사람이자 다가오는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유력 후보 1순위로 꼽히는 힐러리 클린턴 역시 대학시절 알린스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앞으로도 당분간은 미국 정치판에서 알린스키에 관한 관심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 미국에서의 이런 흐름에 호응이라도 하듯 최근 한국에서도 알린스키의 이름이 부쩍 자주 거론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사실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알린스키의 공동체조직운동은 이미 60년대 말에 해외 선교사들과 기독운동가들을 통해 국내에 도입되어 당시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도시지역의 (기독교계) 빈민운동과 노동운동에 중요한 실천적-담론적 기틀을 제공해준 바가 있다. 그래서 알린스키는 적어도 70년대 민주화 운동에 잠시라도 발을 담갔던 이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러나 한정된 지역이나 제한된 직군 내에서 해당 공동체의 구체적인 이익증진이나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알린스키식 운동방식은 1980년대라는 혁명적 열기 속에서 등장한 각종 ‘과학적’ 사회변혁담론과 체제변혁적 대정부투쟁방식에 눌려 한동안 진보세력 내부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알린스키의 주 저서『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이 2008년에 완역되고 또 한국에서 공동체조직운동의 확산에 큰 기여를 한 박형규와 오재식의 회고록들이 각각 2010년과 2012년에 연달아 출간되면서 지난 10여년 사이에 다시금 알린스키와 그의 운동론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다시 말해 6-70년대의 진보세력 내에서 주된 운동 담론이자 실천 양태였던 알린스키식 공동체조직운동이 8-90년대에 한동안 주춤했다가 2천년대에 들어서 다시금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3. 그런데 최근 한국사회에서 알린스키의 유령이 재소환되고 있는 맥락을 살펴보면 그 의도가 단순히 한동안 잊혀졌던 과거의 진보운동전통을 새롭게 재조명해보고 재평가해보는데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그보다 오늘날 알린스키의 운동론은 종종 범진보진영 내부의 ‘온건파 비주류’ 세력이 (주로 586세대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강경파 주류’ 세력을 비판할 때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준거틀로 인용되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2014년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강준만의 ‘싸가지 없는 진보론’은 일단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좌우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온건한 중도파가 권력의 향배를 결정짓는 중요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면서 그는 1960년대 말 알린스키가 미국의 신좌파 운동에 가했던 비판을 오늘의 한국 ‘주류’ 진보세력 (특히 구 민주당 계열)에게 그대로 적용시켜 이들이 과거 운동권 시절의 거칠고 날선 언어 및 행동양태와 결별하지 않고서는 결코 중도적 투표유동층의 지지를 얻어내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한편 얼마전 정의당의 당대표 선거에 나와 ‘2세대 진보정치론’를 내세우며 큰 주목을 받았던 조성주 역시 586세대가 주축인 진보정당 1세대를 비판하기 위해 알린스키의 운동론을 끌어들인다. 조성주에 따르면, 이들 진보정당 1세대는 민주주의적 정치 광장과 노동조합을 건설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당사자들이지만 과거 80년대 운동의 성과에 안주하다 보니 그 이후 급속히 변해온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그동안 탈정치화된 광장 밖의 소시민과 탈계급화된 노조밖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왔는데 오늘날 진보정당이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80년대식 운동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이런 현실 인식 하에서 조성주는 알린스키의 운동론을 언급하며 앞으로 차세대 진보세력은 보수 기득권층과의 추상적인 이념 대결이나 권력다툼에 소일하지 않고, 대신 그들과 때로 과감히 절충도 하고 타협도 하면서 광장 밖의 소시민과 노동 밖의 노동자의 삶을 소박하나마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는 데 온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강준만과 조성주는 각기 서로 조금씩 다른 정치적 의제와 입장을 내세우면서도 (간단히 말해 강준만은 중도보수층에게 호소력이 있는 안철수를 대선 후보로 지지한 바가 있고 조성주는 정의당에 몸을 담은 채 주로 청년 비정규직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한다), 알린스키와 그의 운동론이 오늘날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기존 진보정치와 운동세력에게 유의미한 대안과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4. 여기서 강준만의 ‘싸가지 없는 진보론’이나 조성주의 ‘진보정치 세대교체론’을 둘러싼 논쟁에 직접 (게다가 뒤늦게) 뛰어들 생각은 별로 없다. 일단 큰 틀에서 오늘날 한국의 진보세력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중 하나가 아직 ‘조직되지 않은 자들을 조직화하는 (organizing the unorganized)’ 방법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그 세력기반을 확장시키고 강화시키는 작업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전혀 이견이 없다. 다만 그들의 현실분석이나 각자 제시한 해결책이 과연 어느정도 타당성과 실효성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 여러가지로 아쉬운 점과 궁금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강준만이나 조성주가 각각 주된 포섭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사회계급 혹은 계층 — 그게 온건한 ‘중도층’이건 ‘광장 밖의 시민’이나 ‘노조 밖의 노동자’건 간에 — 의 정치, 사회, 문화적 성향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나 분석을 아직 접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의 주장에 대해 왈가왈부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강준만처럼 주변사람들과 인터넷을 통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접한 후 그게 마치 ‘빅데이타’라도 되는 것마냥 용감하게 자기 주장을 전개할만한 배짱도 없다)

 

    5. 다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이들이 알린스키를 마치 바른생활을 선도하는 도덕교사이거나 소통과 타협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평화의 사도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이다.


    6. 논지가 좀 흐려질 위험은 있지만, 우선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자. 사실 저런 식으로 알린스키를 이해하는 게 완전히 틀린 얘기만은 아니다. 알린스키는 분명 1960년대 미국 신좌파 학생운동의 과격한 언어사용이나 그 일부 (특히 Weathermen 소속 단체)의 폭력성에 대해서 아주 단호하게 비판하면서 합리적인 소통과 타협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또한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알린스키가 (백인) 중산층을 조직화하는데 한층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앞으로 공동체조직운동은 이들의 온건한 도덕적-문화적 성향에 최대한 맞춰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 또한 맞는 얘기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성과 포용성을 마치 알린스키 운동론의 핵심 주제인 것마냥 묘사하는 데 대해서는 일정정도 의문을 제기하지 하지 않을 수 없다. 알린스키가 상투적이기 그지없는, 그래서 도리어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인, 욕설을 남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 건 사실이나, 동시에 그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풍자하고 심지어 상황에 따라 엄포를 놓고 협박까지 할 필요성도 있음을 역설하기도 했다. 폭력의 사용여부에 있어서도 알린스키가 무슨 평화주의의 이념에 입각해 무조건적으로 반대한 게 아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그에 걸맞는 운동의 목표와 효과적인 저항의 방법을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이에 비추어볼 때 그는 60년대 말과 70년대초의 미국이라는 상황에서 무장폭력운동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일말의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거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는 판단 때문에 반대한 것 뿐이다. 또한 알린스키가 종종 ‘비겁함’과 동일시되는 ‘타협’이라는 개념을 가치전도시켜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려고 한 것 역시 맞으나, 이를 좀더 정확히 풀어서 말하자면 그는 인간사회라는 게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충돌로 점철되어 있으므로 어차피 대결과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일 테지만 간혹 가다 그동안의 투쟁에 쏟은 노력을 조금이라도 보상받고 또 잠시나마 숨을 고르기 위해서라도 때때로 ‘타협’하는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8. 알린스키가 70년대 초부터 (72년에 급작스럽게 사망하느라 제대로 실행하지는 못했지만) 중산층을 조직화하는데로 관심을 돌리게 된 데에는 좀더 자세한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사실 알린스키는 1930년대 말부터30여년 동안 주로 가난한 (가톨릭계 백인 이주민) 노동자들이나 빈민가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공동체조직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흑인 단체들의 경우 마틴 루터 킹 같은 민권운동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흑인권력 (Black Power)’를 구축해 나가기 시작하면서, 인종도 다를 뿐더러 가뜩이나 몇몇 소수의 카리스마적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운동에 비판적이었던 알린스키는 당시의 흑인민권운동과 어느정도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알린스키에게 남은 선택지는 (백인계) 노동자 단체, 기독교 단체, 그리고 진보적 학생단체와 연대해서 활동하는 것 뿐이었는데 이마저도 사정이 그리 여의치 않았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미국 대부분의 기독교 단체나 AFL-CIO같은 미국의 노조단체에서는 애국주의에 입각한 반공주의 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당시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6-70년대의 신좌파 학생운동과 일정부분 긴장관계에 놓여있었다. 그러다가 신좌파 학생운동이 미국 국기를 불태우거나 폭탄테러를 감행하는 점점 과격한 운동방식을 취하게 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점점 악화일로에 빠지게 된다. 평생을 소비에트식의 교조주의적 공산주의에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맥카시즘으로 상징되는 국가주의적 반공주의에도 적극 반대했던 알린스키였건만 당시 상황은 그로 하여금 교회와 노동단체 아니면 신좌파 학생운동 두 세력 중 하나만 선택해서 연대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60년대 후반 무렵 알린스키는 카메라 제조회사 코닥 (Eastman Kodak)을 상대로 흑인고용확대투쟁을 벌이다가 우연한 기회에 소위 ‘소액주주운동’이라는 (한국에선 90년대에 참여연대가 도입해 대 히트시킨 바 있던) 새로운 운동방식을 개발해 처음으로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이 운동을 통해 알린스키는 어느정도 주식을 보유한 중산층을 조직화 할 수 있다면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훨씬 더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바로 이 경험을 계기로 70년대부터 운동의 초점을 중산층에게로 옮겨가기로 작정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여러가지 상황이 맞물려 알린스키가 피치 못하게 자신의 운동 노선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된 것이다.


    9. 이런 시각에서 보면 알린스키의 운동론은 강준만이나 조성주가 소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들처럼 알린스키에게서 도덕교사나 평화의 사도 같은 모습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때에 따라 입에서 거친 욕설과 음담패설을 내뱉는 독설가이자 온갖 더러운 것들(각종 쓰레기부터 심지어 인간의 배설물까지)을 동원해 상대방을 골탕먹이길 즐기는 일종의 협잡꾼 (trickster)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이것저것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는 전쟁의 상황 속에선 폭력을 비롯한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 현실주의자였으며 동시에 물리적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적을 상대할 시에는 그 해당 적의 가장 약한 부분만을 찾아 그곳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거나 아니면 다른 여러 세력들과 연대하여 아군의 역량을 증진시키는데 주력하라고 충고하는 일종의 책략가이자 전략가이기도 했다.


    10. 그래서 굳이 그의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짚어보라면, 나는 그가 신좌파의 ‘싸가지’ 없음과 공격성을 비판하는 대목보다는 오히려 (마치 부르디외의 행위이론을 그대로 옮겨 적어 놓은 듯한)[각주:1] 다음과 같은 대목을 꼽을 것이다: “특정한 상황에 모두 들어맞는 (일반적인) 처방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듯이 똑같은 상황의 반복이라는 것도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 (각종) 압력, 그리고 권력의 패턴 등 이 모든 것들은 변화하는 요소들이고, 이들은 오직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형태의 조합으로서만 존재한다. 아니 심지어 그 순간에서 조차도 이 변수들은 항상 변화하는 상태에 놓여있다. 전술과 전략은 반드시 [알린스키가] 설명한 규칙과 원칙을 특수한 상황에 맞게 적용시켜야만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조직운동가가 전장에 갖고 나가야 할 것은 바로 이 원칙들일 뿐이다. 운동가는 이 원칙들을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나아가 전략적으로 그 원칙들을 특정한 상황에 맞게끔 바꾸어 나가야 한다.”


    11. 눈치빠른 독자라면 이미 제목에서부터 알아차렸을 테지만, 이 글의 요점은 알린스키를 급진주의적 실용주의자로 보아야 비로서 그의 운동론을 좀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단지『급진주의자들을 위한 규칙』의 부제에 알린스키가 “현실적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실용주의적 입문서 (A Pragmatic Primer for Realistic Radicals)”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그의 책 곳곳에 적시해 놓은 철학적 명제와 사회학적 전제가 그가 얼마나 미국의 실용주의 전통,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다녔던 시카고대학의 실용주의 학파 및 도시사회학파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는지 잘 웅변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알린스키가


• 영구불변의 진리란 없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고 변하기 마련이다. 

•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라; 자신의 희망사항을 덧씌우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 유연해져라.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에 적응하라. 그리고 작용과 반작용의 과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라.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가?’라고 묻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그보다는 언제나 ‘이 특정한 목적이 이 특정한 목적을 정당화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 목적과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아주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그 둘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 모든 종류의 신조 내지는 도그마는 민주적 사회질서의 방해물이다. 

• 모든 가치판단은 특정 행위가 발생하는 특정한 시간적 콘텍스트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의사소통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경험치를 고려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 대중은 종종 그들이 뭘 원하는지조차 잘 모른다. 그래서 때로 그들이 민주적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된 자격을 갖고 있는지 의심하는 엘리트주의자들도 있다. 조직운동가는 이런 의심을 떨치고 대중에게 다가가 소크라테스식의 산파술 (계속 질문을 던져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소통방식)과 교육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절실한 문제들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에 적절한 해결방식을 모색하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다시말해 조직운동가는 대중들에게 급진적 민주주의 (radical democracy), 즉 다원주의에 기초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창조적 사회교육가라고 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할 때, 그는 찰스 피어스, 윌리엄 제임스, 그리고 특히 존 듀이로 대표되는 실용주의의 중요한 명제들을 자기 식으로 소화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앞으로 이 연재물에서는 알린스키와 그의 공동체조직운동을 일종의 창문으로 삼아 먼저 미국의 급진적 실용주의 전통과 그로부터 파생된 시카고 도시사회학파 이론을 들여다 보고 그 다음 60년대 말 이 운동이 한국으로 건너와 전파되고 이식되는 과정까지 몇 차례에 나누어 살펴보기로 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참고문헌> 

강준만. 2014. 『싸가지 없는 진보』. 인물과 사상사. 

박형규. 2010.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박형규 회고록』. 창비. 

오재식. 2012.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 대한기독교서회. 

조성주. 2015. “진보의 대안은 용기있는 타협.” 프레시안. . . 2015. “용기있는 타협과 작은 성공으로 단단해져라.” 한겨레.

조승혁 편.1983. 『알린스키의 생애와 사상』. 현대사상사. 

허병섭. 1987. 『스스로 말하게 하라: 한국 민중 교육론에 관한 성찰』. 한길사. 

Alinsky, Saul David. 1971. Rules for radicals; a practical primer for realistic radicals. New York: Random House. Breidenstein, Gerhard. 1971. Christians and social justice: a study handbook on modern theology, socio-political problems in Korea, and community organization. 

Horowitz, David. 2009. Barack Obama's rules for revolution: the Alinsky model. Sherman Oaks, Calif: David Horowitz Freedom Center. 

Horwitt, Sanford D. 1989. Let them call me rebel: Saul Alinsky, his life and legacy. New York: Knopf. 

Lamaison, Pierre & Pierre Bourdieu. 1986. “From Rules to Strategies: An Interview with Pierre Bourdieu.” Cultural Anthropology, Vol. 1, no.1, February, pp. 110-2. 

Stout, Jeffrey. 2010. Blessed are the organized: grassroots democracy in America.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White, Margaret B., & Herbert D. White. 1973. The Power of people: community action in Korea. [Tokyo?]: Urban Industrial Mission, East Asia Christian Conference.

  1. 이런 의미에서 어쩌면 알린스키가 자신의 책 제목을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전략』으로 수정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겠다는 생각도 든다. 규칙(rule)과 전략(strategy)의 구분에 대해서는 Pierre Lamaison and Pierre Bourdieu, “From Rules to Strategies: An Interview with Pierre Bourdieu,” Cultural Anthropology 1, no.1 (Feb., 1986):110-20를 보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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