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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이스라엘 와인 이야기 (박여라)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6. 3. 2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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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와인 이야기

 



박여라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같은 배에서 나온 이웃종교이지만, 유대교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음을 전제하고 이 글을 시작한다. 그나마 아는 것도 띄엄띄엄 단편적이고 겉핥기 수준이다. 이웃이나 동료들이 지키는 절기를 통해 알게 된 특별한 관습이나, 전해들은 이야기, 영화, 역사로 알고 있는 탈무드, 홀로코스트 정도다. 유대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와인이 그들의 종교예전과 일상생활 속에서 늘 있어왔다는 점에서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서이다.


    이슬람교까지 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 세 자매(또는 세 형제, 혹은 삼남매?) 종교는, 같은 지역에서 뿌리를 함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인에 대해서는 각자 아주 다르게 발전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을 세운 예언자 마호메트(570-632) 당시나 중세에 무슬림이 세차게 영역을 넓혀나가던 때까지도 이슬람교에서 지금처럼 철저히 음주를 금했던 것은 아니다. 꾸란(코란)에 와인이 네 번 언급되는데, 긍정적인 것부터 부정적인 것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중세에 이슬람 점령지에서도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마신 기록과 흔적이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후 칼리프 시대를 거치며 철저한 금주로 돌아섰다. (이 분야도 한 번 연구해봐야겠다.) 고대로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든 역사적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동 아랍에서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와인소비는 커녕 와인제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가서 신기했던 것 하나는 어지간한 크기의 슈퍼마켓에 가면 유대인을 위한 코너가 꼭 있다는 거다. 미국내 유대인 인구가 대략 6백만명, 전체 3억 인구의 2.2%라고 한다. 뉴욕 주처럼 전체 인구의9% 에 이르는 곳도 있지만, 캘리포니아 유대인 인구는 겨우 3%다. 100명 중 이 3명을 위하여 마치 당연한 것처럼 코셔(Kosher)라 써있는 코너가 따로 있다. 그리고 주류 관련법에 따라 주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와인가게에 가지 않고도 코셔 코너에서 케뎀(Kedem)이나 매니셰비츠(Manischewitz) 브랜드 와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국 북동부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콩코드 포도종으로 만든 와인이라 맛은 대단할 것 없는 그냥 그런 와인이다. 그래도 코셔와인이다. 


    코셔규정은 대략 주후 2세기 정도부터는 지켜왔다고 한다. 히브리 성경에 있는 대로 먹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에 관한 규정, 이후 탈무드와 랍비 전통에 따라 더 자세한 규정, 논란이 있는 규정 등이 있다. 와인의 경우 ‘이방인'이 만드는 와인은 우상숭배에 쓸 목적으로 만들었거나 그렇게 쓰일 가능성을 지닌다고 여겨, 유대인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든 와인은 철저히 금했다. 그러나 향신료를 넣고 끓였다거나 저온살균과정을 거친 와인은 우상숭배에도 쓰일 일이 없음이 분명하니 (우상님께도 신선한 와인을!), 그런 경우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상관없이 코셔규정에 합당하다. 코셔와인은 처음 포도가 으깨지는 과정부터 발효, 청징(淸澄, 탁한 성분을 걷어내어 와인을 맑게 만드는 과정), 병입과 유통까지 코셔규정에 합당한 재료를 사용하며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이 지휘감독하여야 한다. 


    무슬림이 이른바 ‘성지'를 점령한 7세기 이후에는 와인을 만들지 않다가 1880년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이스라엘과 요르단 서안지역에서도 와인을 만든다. 최근까지도 이 지역 와인들은 맛으로 알려진 와인은 결코 아니다. 포도재배도 그렇고 와인만드는 기술도 그렇고 모두 다시 일구어야 했으니 맛을 기대하기는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350개 와이너리가 와인을 연간 6천5백만병생산하고 있다. 2014년 세계 와인생산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3배 가까이되는 규모이고 매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작년 11월말 ‘뉴욕타임즈’는 이스라엘 토착품종 ‘마라위'로 만든 와인을 상업와인으로 개발 발매한 와이너리를 소개했다. 이 지역 토착품종으로 와인을 상품화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마라위 와인은 이야기거리가 된 이유는, 현지 대학과 협업으로 DNA 검사를 통해 다윗왕과 예수가 마셨을 고대 와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내고 복원하려는 프로젝트의 생산품이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있는 내용으로 마라위라는 와인품종을 주후 220년까지 추적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 기사 제목은 ‘이스라엘, 예수와 다윗왕이 마신 와인 재창조를 목표 삼다’였는데, 이 기사를 국내 모일간지에서 ‘예수가 마셨던 포도주 복원 성공… 유전공학의 개가'라는 제목을 달고 그다음날 인용보도하여 좀 거시기했다.) 


    이스라엘에서 만든 와인이라고 자동으로 코셔와인이 되거나 모두가 코셔규정에 따라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세계 굵직한 와이너리에서 마케팅 차원에서라도 코셔 규정에 따라 코셔와인을 만들고 있고, 요즘은 미국 와인가게에서 코셔와인을 찾으면 대개 한두 가지 갖춰 놓고 있다. 맛도 꽤 괜찮다. 


    곁가지 이야기인데, 이스라엘에서는 안식년 규정 때문에 오늘날에도 7년째 되는 해마다 포도나무를 다 뽑아버리고 땅을 쉬게 하는 지 궁금했다. 실제로는 포도밭을 남에게 팔아버린다고 한다. 왜냐하면 포도나무는 3년 되는 해부터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를 거두기 시작하여 대략 수령 20년까지가 제일 좋은 때인데, 7년째에 나무를 뽑아버리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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