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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 아주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더욱 아카데믹한 단상 5] 고흐의 방에 울아빠를 뉘였으면 좋겠다 (김정원)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6. 8. 17.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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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카데믹하지 않아서 더욱 아카데믹한 단상

다섯. <고흐의 방에 아빠를 뉘였으면 좋겠다>




 김정원*


    아빠는 6인실을 선호했다. 싼 이유가 반이고, 사람들과 보다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음이 그 반이다. 말씀이라고는 없는 양반인데도, 북적거리는 그 곳을 좋아했다. 환자와 그 보호자들, 수시로 드나드는 간호사와 의사들은 물론 방문자들이 한꺼번에 몰리기라도 하면 도떼기 시장이 따로 없었다. 폐쇄적인 울 아버지 성정에는 맞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의 몸에 주렁지게 달린 주사병과 소변줄 너머 시선을 둘 곳이 필요했기에, 그는 차라리 6인실에 있고자 했다.


    새로 들어 온 옆 침대의 아저씨는 서른 번째 항암 치료를 받는 중이라며 말을 건넨다. ‘신입’들은 다른 환자들에게 통성명, 아니 통병명(通病名)을 하기 마련이다. 아저씨의 ‘말 걸어옴’이 시작되자, 아빠는 내게 침대의 머리맡을 올려 달라한다. 그는 별 대꾸는 하지 않지만, 아저씨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이 침대 저 침대의 환자들의 ‘들음’이 시작되고, 각자의 ‘history’가 붙여지며 대화는 금새 익어간다. 누구는 간암, 누구는 위암, 누구는 임파선암…… 개중에는 병세가 완연한 사람도,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들어온 고등학생 남자아이는 너무도 말짱하여 침대를 팔짝팔짝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각자가 겪고 있는 ‘암 이야기’가 한창이지만, 그 남학생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뿐 별 대답이 없다. 대신에 그 남학생의 유일한 보호자인 그의 누나가 대화에 낀다. 괴롭기도 지루하기도 한 보호자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 병실에는 훈기가 돈다. 생경한 훈기가 아닐 수 없다. 이이도 저이도 겪고 있는, 말하자면 이 병실에 있는 모든 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암이라는 상황이 만들어 낸 훈기이다. 담아 온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함께 화장실을 가주기도 한다. ‘오늘 내일’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훈기는 그야말로 아프도록 따뜻하다.


    그런데 이것도 낮의 풍경이다. 해 지고 달 뜨면, 낮 동안 숨어있던 죽음의 유령이 암 병동을 배회한다. 어떤 이는 진통제를 달라고 애원하고, 어떤 이는 몸부림하며 고통을 참아낸다. 그리고 어떤 이는 죽는다. 이 때, 환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 죽음이 제발 ‘우리 방’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함께 말과 밥을 나누던 이의 죽음이 안타까운 탓도 있겠지만, 바로 앞에서 죽음을 목격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더 큰 이유이다. 죽음을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한 공포. 그렇게 그들은 매일 밤 죽음을 본다.


    그 밤에 죽게 된 환자의 보호자들은 작게 작게 운다. 이미 예상했던 죽음이라서가 아니라, 남은 다섯 명의 환자들과 그 병동에 뉘여 있는 다른 환자들을 위함이다. 오열을 하다가도, 터지는 울음을 이내 타이른다. 죽음의 직전에 살고 있는 다른 환자들을 위한 그네들의 ‘마음 씀’이다. 혹여 애통의 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러, 병동 전체를 죽음으로 흔들어 깨우고 싶지 않은 ‘마음 씀’인 것이다. 그 방에 남겨진 환자들은 더는 그 밤을 그 곳에서 보내지 못한다. 바로 옆, 앞 침대에서 죽음이 시작되면, 나머지 환자의 보호자들은 환자를 뉘인 침대를 채로 끌고 방을 떠난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 본 죽음이 내일 이 침대로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서로 나누지 않는다. 동틀 무렵 방으로 다시 모인 살아남은 환자들은 울지도 않고, 별 말을 나누지도 않고, 죽음이 비워 낸 그 침대에 더는 시선을 두지도 않은(못한) 채, 늦은 잠을 청한다.


    해가 뜨면, 새로운 환자가 그 침대에 짐을 푼다. 신입의 클리셰 같은 통병명이 또 지나가고,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이야기를 역시나 경청한다. 밥도 나누고 말도 나누지만, 누구도 어젯밤의 이야기를 털지 않는다. 누구도 어제 보았던 그 침대에서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밤이 찾아 왔을 때, 내가 그리고 저이가 죽음에 덩핑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새로 온 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렇게 몇 날이 가고, 다시 밤이다. 팔짝팔짝하던 그 아이가 낮부터 심상치 않더니, 밤이 되자 앓아대기 시작했다. 죽음이 덮치기 바로 전, 보통의 환자들은 밤 사이 장을 다 비워낸다. 뼈만 남아 있는 그네들의 몸뚱이에서 그 많은 것들이 배설된다는 것이 기이할 정도로 비워내는데, 그 밤에 그 아이가 꼭 그랬다. 그의 누나는 열 두 번도 넘게 기저귀를 가느라 혼이 나갔다.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찾아 오기까지 한 것을 보니 영 기운이 좋지 않다. 자정이 넘도록 비워내던 아이는 소리 소리를 지르며 누나와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한 두 시간이 흘렀나. 사경에 다다랐는지 아이는 입을 다물고 몸부림을 그쳤다. 이제 막 열 여덟이 된 그 아이는 그렇게 가버렸다. 그 날은 병동 환자들 모두가 들썩였고, 죽음에 냉정하던 의사들 마저도 입을 닫았다. 그 어느 밤보다 힘든 밤을 울 아빠도, 옆 자리 아저씨도 보내고 있었다. 


    암만 죽음이 ‘능가할 수 없는 가능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라지만, 암 병동의 그것은 이처럼 지나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그 가능성을 드러낸다. 죽음이 ‘존재 상실’이라고 정의한 어느 철학자의 말이 살아오는 공간, 바로 암 환자들의 방이다. 그곳은 환자들과 함께 먹고 자며 고통스러워 하는 보호자들의 방이기도 하다. 이제 더는 자신의 세계 안에 머무는 존재가 아닌, 즉 자신과 절대 관계할 수 없는 아내를, 아빠를, 동생을 예감하며(곧잘 그 예감을 회피하며) 머무는 보호자들의 방이다. 그런 의미로 암 병동은 “임박해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죽음” 그 자체의 공간이 된다. 즉, 존재 상실을 기다리는 공간, 존재 완료를 인수하게 되는 공간, 인간 본연의 필연을 마주하는 공간으로서 절실하게, 아주 절실하게 존재한다.


    그 절실한 공간에서의 삼 개월, 울 아빠와 나는 섬처럼 남아있었다. 그는 ‘존재 완료’ 너머의 삶을 꿈꾸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입 밖에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암 병동의 여느 신자들처럼 일요일이면 침대에 누운 채로 예배를 보러 갔고, 양희은의 찬송가 테이프를 듣곤 하였다. 가끔은 자신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나보고 대신 먹고 오라 일렀고, 그 음식을 먹고 돌아오면 꼭 그 맛을 물어 보곤 했다. 맛이 좋아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말하면 반색하며 좋아하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싶어 과장된 표현을 더러 하기도 했다. 복수가 가득 찬 배를 해가지고도, 의연하기도 초연하기도 한 그의 태도를 보며, 죽음의 완전한 존재론적 본질을 파악한 사람인가 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능가할 수 없는 가능성’, 곧 죽음이 찾아오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도 내 세계 속에서 그와 더는 관계 맺을 수 없는 ‘그 때’가 곧 올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아빠는 참 아빠 제 성정대로,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조용하게도 갔다. 다만 내가 그와 달랐다. 판옵티콘과도 같았던 그의 관심 아래 자랐던 스물 넷의 여자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다는 죽음’을 이해하는 것을 순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그 사건을 막아내지도 못하면서 야윈 팔에 끝끝내 주사하고 피를 뽑아가던 의사들을 저주했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치료비를 지우는 병원에 분노했고, 복도에 쳐 앉아 고래고래 우는 날 곁눈질하는 간호사들을 쏘아 보았다. 많은 보호자들이 잦게 잦게 흐느끼던 모습들이 머리에 스쳤지만, 나는 그대로 큰소리로 울어댔다. 암만, 암만 이미 주어져 있는, 그래서 결국 필연적인 사건이라지만, 죽음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지는 나의 몫이니, 나는 울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편히 눈을 감았다고 소곤대는 이들의 귀 속에 내 울음 소리가 박히길 바라며 울었고, 하늘나라로 갔을 것이니 편히 그를 보내주라 말하는 이들의 얼굴에 침을 뱉는 심정으로 울었다. 누구도 죽음을 대신할 수 없듯, 누구도 그의 죽음을 대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며 종말과 인간의 전체성을 분석하는 이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내 세계 – 안의 – 존재’로서 있지 않는 그.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도 나는 충분히 아팠다.


    몇 주가 흐른 뒤 삼십 차 항암치료를 받던 그 아저씨도 떠나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팔짝팔짝하던 아이의 누나는 병원 빚을 갚기 위해 투잡을 뛴다 하고, 다른 병실로 옮겨 갔던 간암 아저씨는 더는 손 쓸 방도가 없다 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한다. 나 역시 학교로 돌아갔고, 매 주 설교를 했으며, 친구들과 웃으며 밥을 먹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며 어느새 열 해가 지났다. 십 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하고 좋았던 기억도 흐릿해지기 마련이건만, 암 병동에서의 삼 개월은 어제 본 듯 훤하다. 환자들의 신음 소리, 죽음의 낯빛, 의사들의 무성의함, 복도의 형광등 불빛, 알알한 알코올 냄새까지 내 오감에 온전하게 머물러 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6인실 한 켠에 누워있던 아빠의 모습. 창가 옆의 침대, 그곳이 아빠의 ‘마지막 방’이었다.


    그 방에 종일을 붙어있던 아빠를 구원해내어 아름다운 남프랑스의 프로방스로 보내드릴 수만 있다면 참말로 좋겠다. 고흐도 반한 그곳에, 밤을 이기는 강렬한 햇빛이 있는 바로 거기에 아빠를 데리고 가, 고흐의 ‘처음 방’인 아를의 방에 뉘여 드렸으면 좋겠다. 고흐의 고백처럼 절대적 휴식이 있는 그곳에 말이다. 끝도 없이 고독했던 고흐 같은 이가 편히 쉴 수있었다면, 암 환자도 잠들 수 있는 곳이 분명할 테니.


    고흐는 동생에게 적었다.


    "문이 닫힌 이 방에서는 다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아. 

가구를 그린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 받지 않는 절대적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야."


    이제, 암 병동에 대한 기억의 재생을 그만 멈추고 기억의 공간을 고흐의 방으로 이전해 본다. 


    “나는 고흐의 방에 조심스레 울 아버지를 눕히고- 그가 잠들길 가만 기다렸다. 그가 새근새근 잠이 들자– 그가 깰 까 하여 까치발을 들고 문까지 걸어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는 방문 앞 복도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제발 그에게 절대적 휴식이 깃들길 기도하며 기쁘게 밤을 기다렸다.”


    다시, 기쁘게 밤을 기다린다.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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