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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 모병제가 사고를 막아준다고? (백승덕)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16. 9. 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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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가 사고를 막아준다고?



 

백승덕*


 

   “2025년이면 인구절벽이 온다!” 남경필 경기도 지사가 모병제를 추진하자고 나서면서 내놓은 이유다. 군 병력을 30만 명으로 줄이면 사병월급을 200만원씩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권도전 선언을 했던 것이 영향을 줬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뭇 합리적인 계산이기는 하다. 인구는 줄고 병영사고는 끊이지 않는데, 언제까지 지금처럼 관성적으로 징병제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모병제가 훨씬 합리적이라는 셈법은 이제 웬만큼은 상식이 된 모양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모병제 이행 공약을 내놓았다가 아슬아슬하게 낙선했다. 정의당은 아예 ‘한국형 모병제’를 대표적인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이쪽 모병제론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던 김종대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형 모병제’는 2025년까지 병력수를 40만 명으로 줄이고 6개월 의무복무를 유지하되 병력의 대다수는 직업군인으로 채우는 식의 구상이다. 참여정부에서 내놓았던 국방개혁안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남경필이든 김종대든, 한국 정치권에서 모병제를 주장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인구수가 갈수록 주는데 현재 병력수를 고수한다면 현역복무에 부적합한 병사들이 군대에 더 많이 유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총기사고나 자살 등 끔찍한 병영사고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병력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서 ‘가고 싶은 사람들만 가는 군대’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실제로 징병검사 결과 현역대상자로 판정받는 비율은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징병검사 대상자의 50% 가량만이 현역 판정을 받았다. 1990년대에는 이 비율이 80%대로 증가했다가 현재는 징병검사 대상자 중 90%가 넘는 인원이 현역 판정을 받고 있다. 모병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현역 판정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서 심리나 인성에 문제가 있는 자들이 군대에 유입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모병제를 운영하는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이들의 주장을 마냥 좇을 수는 없다. 모병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미군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군의 경우 현역 군인들 중 10만 명 당 17~1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미국인 평균 자살률이 10만 명 당 13명인 것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연합뉴스, 2015년 4월 2일) 게다가 미군주둔지에서 미군에 의해 민간인 성폭행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 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에서는 올해 들어서 성폭행 및 살해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주민들이 기지철수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고 싶은 사람들만 가는 군대’가 과연 답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동부전선 GOP총기사고 사건,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사망 등 심각한 병영사고가 연달아 터지면서 ‘정신이상자’를 관리하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지만 이 또한 비현실적인 주문이다. 지금 한국의 병영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이 ‘정신이상자’들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는 믿음은 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정신이상자’를 걸러내자!”


   1968년 5월 18일 밤 10시, 안동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던 문화극장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주말을 앞두고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많아서 극장은 만원이었다. 영화관 문을 나오던 사람들은 대체로 연인들이었고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갑자기 군인 한 사람이 그 앞을 가로막고 서더니 군중 사이로 수류탄을 집어 던졌다. 당시 상황을 취재한 신문기사는 현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날 문화극장의 마지막 프로, 영화 「복수」가 끝난 것은 밤 10시 19분쯤이었다. 4백여 명의 관객이 앞을 다투어 막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8미터 맞은편 사창가 임재순씨(36) 집에서 뛰어 나온 신하사가 앞서나오던 관객 약70명을 향해 수류탄 1개를 내던졌다.

귀가 찢어질 듯한 폭음과 초연 속에 『사람살리라』고 관객들이 아우성치는 사이에 또 수류탄 1발이 터졌다. 연거푸 떨어지는 폭음에 놀란 관객들은 짓밟고 밟히며 도로 극장 안으로 몰려 들어가고 더러는 문을 빠져나가 어둠속으로 도망쳐가기도 했다. (중략)

극장 안 시멘트벽에는 군데군데 파편자국이 할퀴고 극장 문 앞 에는 피범벅이 된 남녀 어린이 고무신 대여섯 켤레가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는 주인 잃은 시계 하나가 10시20분을 가리킨 채 멈춰있었다. 19일 낮까지도 핏자국이 낭자한 극장주변 길에는 헌병들이 새끼줄을 치고 통행을 막고 있었다.” (중앙일보 1968년 5월 20일) 


   5명이 사고 현장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심각하게 다친 사람들도 40여 명이나 됐다. ‘안동 수류탄 사건’은 당시 가장 심각한 뉴스로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1968년에는 1월부터 청와대기습 미수사건을 비롯해서 무장공비사건이 이어지면서 박정희 정권이 국가안보를 강조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250만 명을 동원하는 향토예비군 창설을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였다. 당시 야당은 지역마다 향토예비군을 위한 무기를 가져다 놓으면 사고가 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대꾸할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현역 군인이 휴가 중에 민간인들에게 수류탄을 집어던진 것이다. 그것도 두 개를 연달아서. 

   당연히 난리가 났다. 사건의 전말이 공개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신 하사는 휴가 중에 자기 부대로 찾아가서 후임병에게 수류탄을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보고체계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가 국민들에게는 북한이 쳐들어오고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정신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던 때에 정작 현역 군인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이도록 방치할 수 있었던 것인가. 야당과 여론은 당연히 정권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군에서 진행된 수사는 해당 하사의 가해 동기에 초점을 맞춰졌다. 수사를 통해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신 하사는 애인이 변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복수심에 불타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증언했다. 처음에는 애인을 살해하기 위해서 부대를 떠나왔지만 영화관에서 나오던 일반인들이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고 사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이 사건을 심리이상자의 일탈로 발표했다. 당시 여론 역시 당국의 발표에 따라서 정신질환자 관리를 요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 과정에서 신 하사의 개인사가 공개됐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가출을 해서 성매매집결지에서 일을 하고 구두닦이를 하는 등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사건의 원인은 이제 분명해졌다. ‘안동 수류탄 사건’은 현역 사병 및 간부들의 ‘심리’가 문제로 대두되게 만든 계기였다.


장병인권개선에서 정신의학적 처방으로


   사실 병영사고는 그 이전에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폭력사고로 인한 사망사건이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국방 당국은 곤혹스러워했다. 그때마다 군대 내에서 상급자에 의한 불합리한 명령이나 사적 제재가 원인으로 지적됐다. 병영에서 일상적으로 이어지던 ‘기합’ 문화를 일제 잔재로 지목하여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도 크게 힘을 받고 있었다. 예를 들면 1959년 12월에 1군단에서는 군대 내 폭력사고가 잇따르자 ‘장병인권옹호운동’을 전개했다. 일선부대에서 부하를 때려 숨지게 하거나 품팔이를 시킨 상관들이 처벌됨에 따라서 군단 차원에서 기합을 폐지하고 군 재판을 개혁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인 것이다.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에도 이러한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1963년 4월 김종오 육군참모총장이 전방 훈시 중 ‘말단사병일지라도 인권을 존중하라’고 말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권유린과 사적제재가 군의 단결력을 파괴하고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 인권개선 등 뚜렷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군 당국에서도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고 보는 것이 적확할 것이다. 1965년 8월에도 부산 모 경비중대에서 야간 보초 중이던 일병이 내무반에 들어가서 직속상관인 상병과 병장을 불러내어 칼빈 소총을 약 30발을 난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군 당국은 이 사건 역시 기합 사적제재 때문에 발생한 하극상이라고 판단했다. 해당 병장이 3명의 상병을 내무반에 데려다놓고 군기문란을 지적하면서 야전용 곡괭이 자루로 무수히 구타하자, 이번엔 기합을 받은 상병 중 한 명이 후임들을 모아놓고 모진 기합을 준 데 원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일선 부대에서 후임병이 폭행을 당해 사망하거나 반대로 선임병이 폭행에 대한 보복으로 총격을 받는 일이 빈번하게 이어졌다.

   군 당국은 이러한 사건들에 대처하기 위해서 1966년 9월 육군에 인간관계개선연구위원회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발생하던 병영사고의 이유로 지적된 사적 제재 등 불합리한 병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대처였다. 그러나 당시 언론은 군 당국의 홍보에 비해서 뚜렷한 개선 성과를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와중에 ‘안동 수류탄 사건’이 터진 것이다.

   군 당국은 더 이상 인권개선처럼 복잡하고 추상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국방부는 ‘안동 수류탄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 인간관계개선연구위원회를 대신해서 선병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장병인권옹호나 인간관계개선연구가 아니라 문제사병만 골라서 걸러내는 선병(選兵)을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에 따라 병무행정에서도 정신의학적 처방이 적극적으로 도입됐다. 선병위원회에서는 MMPI와 같은 인성검사를 변형해서 자체 검사지를 만들거나 Rorschach 검사 등을 도입했다. 그러나 학술적 타당성과 검사의 신뢰성이 희박하다는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현재까지도 심리‧인성검사를 개발하는 연구가 군 당국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신의학적 필터링 제도를 일찍부터 도입한 미국의 심리학계에서는 인성검사로 문제사병을 골라내는 데에 한계가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뒤늦게 유럽 전선에 참전하게 되면서 프랑스나 영국군에서 발생한 정신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의학적 필터링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 국방당국은 정신의학적 필터링을 의심하게 됐다. 전후 육군성 기술 기관지 "War Department Technical Bulletin"에 보고된 한 논문은 인성검사로 인해 신경정신질환자로 판명되는 수가 실제 부적응자에 비해 과하기 때문에 이상 징후가 매우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는 한 제대처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E Jones et al., 2003)

   전후 미국 심리학계에서 나온 연구들은 검사를 통해 경계선에 서있는 병사들에 대한 이상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성검사를 통해 신경정신질환을 일으킬 것으로 예측했던 병사들 중 상당수가 군 생활을 문제없이 해낸 사례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들 연구의 결론은 현역복무부적합 판정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보자면 인성검사를 통해서 군 복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심리적 원인을 예측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오히려 정신질환으로 제대하는 경우, 개인적 성향보다는 전투의 강도나 병영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이들의 결론이다. 현재까지도 심리 및 인성검사는 현재 현저하게 증상이 드러나고 있는 지능문제나 정신질환 등의 사례에서만 타당성을 제한적으로 인정받고 있을 뿐이다.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는 환경 하에서 반응이나 리더십, 윤리성 등과 관련한 심리적 취약함을 예측하는 검사는 아직까지 없다.(Siow-Ann Chong et al., 2007)


우리에겐 다른 길이 필요하다.


   미국의 사례는 정신의학적 처방의 한계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국이 모병제로 전환하여 ‘가고 싶은 사람들만 가는 군대’를 운영한 지 이미 40년가량 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에서 최근 일고 있는 모병제 주장을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들어 사병들의 자살뿐만 아니라 전역군인들이 겪고 있는 외상후스트레스(PTSD)로 인해 끔찍한 사고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현역 사병들이 민간인 마을에서 총기를 들고 시위하듯 다닌다거나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사건들이 있었는가 하면 7세 밖에 되지 않은 딸이 알파벳을 모른다고 아내에게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2025년이면 분명히 인구절벽이 온다.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관성적으로 징병제를 유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그 대안이 ‘정신이상자’들을 걸러내자는 것이라면 한국군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관성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이 설사 모병제라 할지라도 말이다. 일찍부터 정신의학적 처방을 개발하고 모병제로까지 전환한 미군이 겪고 있는 저 사태가 우리의 희망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에겐 다른 길이 필요하다. 


* 필자소개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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