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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우리는 개가 아니다" 당연한 '인간 존엄'을 되찾기 위한 그의 여정 (권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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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3시대 2017. 1. 24.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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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가 아니다" 당연한 '인간 존엄'을 되찾기 위한 그의 여정[각주:1]


 

권오윤[각주:2]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대부분 영국 하층 노동 계급에 속한 주인공의 삶을 다룹니다. 주인공의 애정 생활이나, 가족 혹은 유사 가족들과의 교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영국 사회의 모순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죠. 그 중에서도 불합리한 영국 복지 제도에 대한 비판은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구직 활동을 해야 실업 수당을 받을 수 있는 노동 복지의 현실은 <외모와 미소>(Looks and Smiles)(1981) 같은 초기작뿐 아니라, 90년대의 <레이닝 스톤>(1993), <내 이름은 조>(1998) 등의 영화에서도 생생하게 드러난 바 있습니다. 또한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1994) 같은 영화에서는, 지키기 힘든 조건들을 내세우는 관료적인 사회 복지 제도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싱글맘을 보호하고 돌보기는 커녕, 점점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통찰을 보여 주기도 했지요.

 

이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그런 계열입니다. 40여년간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 온 60대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심장 발작을 일으키는 바람에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는 법적으로 보장된 질병 수당을 신청하지만, 담당 직원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인 끝에 지급을 거부당합니다. 항소를 준비하면서 실업 급여라도 받기 위해 애를 쓰지만, 절차를 지킬 것을 요구하는 관료적인 영국 복지 제도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직접 찾아간 고용 센터에서는, 불과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고용 센터 상담을 거부당한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를 도우러 나섰다가 쫓겨나기까지 하지요. 영화는 이 때부터 다니엘과 케이티 두 사람의 삶을 따라갑니다.

 

켄 로치 영화의 주인공들은 하층 계급의 리얼리티에 맞게 인간적인 단점도 많이 지니고 있고, 결국 큰 사고를 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반적인 중산층의 도덕 기준으로 볼 때 많이 부족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이들에게도 충분히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역설하기 위한 설정이지요. 각기 아버지가 다른 4명의 아이를 키우면서도 또 다시 쉽게 사랑에 빠지곤 하는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의 싱글맘 매기, 마약 거래로 모은 돈으로 어머니와 살 멋진 집을 구입할 꿈을 꾸는 꾸는 <스위트 식스틴>(2002)의 리암, 친구들과 함께 값비싼 싱글 몰트 위스키를 훔칠 생각을 하는 <엔젤스 셰어>(2012)의 비행 청소년 로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주인공들은 다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잘’ 해 보려고 합니다. 규정과 절차에 질린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것을 존중하는 가운데,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나쁜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안간힘을 쓴 대가로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모멸감뿐입니다. 다니엘은 고용 센터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하나 둘씩 어렵게 맞춰 나가지만, 그럴 수록 시스템은 그에게 더 완전한 복종을 원합니다. 그는 아내의 추억이 깃든 집안의 가구를 몽땅 팔아치우지 않고서는 연명할 수 없는 처지에까지 몰립니다.

 

 

아무 기술도 없고 배움도 부족한 싱글맘 케이티는 더 기가 막힌 일들을 당합니다. 그녀는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늘 아이들이 우선이지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마트에서 먹거리와 아이들 물건은 사면서도 개인 위생용품인 생리대와 데오드란트, 면도기 등을 살 돈이 없어 훔치다 창피를 당하기도 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푸드 뱅크에서 장을 보다가 배고픔을 못 이기고 그 자리에서 통조림을 따서 입에 마구 욱여 넣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 참혹한 빈곤의 굴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정직하고 성실한 노력만으로는 절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을 손에 쥐어야만 탈출이 가능합니다. 다니엘의 운명과 케이티의 삶이 달라지는 분기점이 케이티가 성매매에 나서기 시작하면서라는 것은 의미심장한 설정입니다. 자본의 논리와 그것에 기초한 사회 체제는 돈이 없다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걸 서슴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 나온 영국 복지 제도의 뻣뻣하고 관료적인 모습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정 기준을 갖춘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는 보편 복지가 아닌, 차등적으로 적용되는 선별 복지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는 일입니다. 대상자가 얼마나 지원을 필요로 하느냐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지원 대상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 위한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주업무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우리나라의 초중고 무상급식 논쟁부터 시작하여, 양육 수당의 차별적 적용,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 문제, 기초노령연금 차등 지급 등과 관련한 논란들 역시 재정 여력이 없다는 핑계로 선별 복지 개념을 추구하면서 벌어진 것들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의 복지 제도는 국민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어야지, 불쌍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시혜 행위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자선과 기부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받는 사람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드러내게 만듦으로써 더 큰 모멸감을 줄 뿐입니다. 먹고 살려면 자존감이라도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푸드 뱅크의 자상한 사람들, 위생용품을 훔친 사실을 눈 감아 주는 점장, 성매매를 알선해 주는 포주 등은 케이티에게 모두 같은 요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니엘 역시 질병 수당이나 실업 급여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절차와 규정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노예처럼 행동하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영화 말미에 다니엘이 겪는 불행은 부당한 처사에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고, 당당한 인간으로 버텨낸 끝에 받게 된 징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 힘 있고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다니엘 블레이크의 꿋꿋함과 주저하지 않는 연대 의식에 감명 받는 것에 그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의 안타까운 실패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와 사회 제도를 만드는 일에 소중한 씨앗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12월 18일자 기사 <"우리는 개가 아니다" 당연한 '인간 존엄'을 되찾기 위한 그의 여정>(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271106)으로 게재된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발레교습소> <삼거리극장> <화차>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 중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물 [권오윤의 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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