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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냉소하라! (이상철)

시평

by 제3시대 2017. 2. 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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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하라!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역사의 종말


    1990년대라는 그로테스크한 시절이 있었다. 레닌의 동상이 붉은 광장에서 철거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자본의 전 지구적 승리가 선언되었던 그 시기말이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문구로 그 시절을 요약였다. 그것은 자본의, 자본에 의한 세계 재배를 찬양하는 축가였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에 대해, 맑시즘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게임이 끝났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이를 기쁜소식이라 말하면서“자유민주주의는 이상이 더 개선될 수 없다”라고 선언하였다.   

   이는 마치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인간의 이성이 마지막 기착점인 절대정신에 이르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절대정신에 이르러 인간의 역사가 완성되듯이 후쿠야마는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목적지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마지막 목적지란 말할 것도 없는 자본이 시장에서 아무런 제재와 비판과 규제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이곳 지구다. 그렇게 20세기 내내 지속되었던 혁명을 향한, 유토피아를 향한 상상은 1990년을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철거되었다. 


광장에서 시장으로, 이념에서 자본으로


   이 무렵 한국의 상황은 어떠했던가? 87년 체제를 거치면서 혁명의 뜨거움과 혁명의 헛헛함을 경험했던 한국은 1997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건너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우리는 세계 금융시스템이 제시하는 프로그램을 따라야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정의와 대의, 자본의 원리에 반하는 인간의 가치, 자본의 원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양심과 이성의 소리들을 하나씩 포기해야만 했다.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세계화의 덫에 대한민국이 빨려 들어간 것이다.

   데이비드 헬드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세계화를 묘사하면서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개별국가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보다 높은 층위, 즉 금융시장의 역학 속에서 국가의 앞날은 좌우된다고 밝혔다. 1997년 한국에 닥친 IMF 외환위기는 꼭 이와 같았다. 한국정부는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고, IMF관리체제 아래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기업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명목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대량해고로 인한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가 대두된 것이 이 시기였고, 공기업의 민영화로 인한 공공요금 인상이 서민경제에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던 시기도 이 무렵이었다. 노엄 촘스키는 이러한 신자유주의를 “민주주의적 형식 안에 있는 전체주의”라고 비난하였다. 이는 무소불위한 지위로까지 격상된 자본의 위력을 경고한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처럼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급속도로 전파되었던 나라가 또 있을까? 시카고에서 10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2014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내가 제일 처음 던졌던 물음이었다.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이다. 이것은 비단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뼈속 깊숙이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신자유주의의 DNA가 자리잡았다. 노인부터 어린이집 아이들까지 하나의 거대한 염기서열을 이루어 그 원리에 충실한 신자유주의 완전체! 이것이 내가 귀국하여 3년 남짓 살면서 느끼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그럼, 언제부터 이런 현상이 시작된 것일까? 세상사를 칼로 두부모 자르듯 야멸차게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한국사회를 언급할 때 IMF이전과 이후를 분리하여 진술한다. 김영삼 정권에 이어서 등장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가치와 이념의 시대에서 신자유주의의 프로그램에 입각한 생존과 야만의 시대로 서서히 변모해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한국현대사의 발전과정에서 등장했던 유일한 민주정부였다. 두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민들이 가졌던 원죄의식, 그것은 과거 개발독재시절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유린,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도외시 되었던 정의에 대한 부채의식을 말하는데, 그 빚을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탕감 받았다. 민주정부 10년이 면죄부 역할을 한 셈이다. 노무현 어록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대사는 이 시대의 풍경을 드러내는 증상이라 할 것이다. 그때 대한민국은 “광장에서 시장으로, 이념에서 자본으로!” 깔끔하게 말을 갈아탔다.

    이 무렵 등장한 각종 위기 담론은 그러한 시대정신과 일정한 연관을 지닌다. IMF위기, 경제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대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 그리고 교회의 위기까지... 본래 위기란 최종적으로는 파국을 꿈꾸고 지향한다. 어쩌면 지금부터 다루게 될 냉소는 파국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마음, 혹은 파국의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과의 거리두기 일런지 모르겠다. 현실과의 거리두기가 냉소라 한다면, 그것은 현실에 대한 꿈과 변혁을 비관하는 불행한 정신이다.


파국의 현상학 그리고 냉소의 도래


   현재의 한국사회가 냉소주의가 만연한 불임의 사회라고 한다면 그것의 시발점은 이명박 정부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뽑을 때 만큼은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었다. 국가지도자는 대의를 존중하면서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자기희생이 있어야 한다.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겠다며 선거때마다 낙선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부산으로 달려가 떨어진 노무현, 민주주의를 위해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김대중, 하물며 김영삼조차 박정희때 민주주의를 위해 단식도 하고, 의원직도 재명당했던 전력이 있었다. 이처럼 대의와 명분, 지조와 신념을 가지고 자기희생을 치뤘던 인물들에게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표를 던졌다.

    그렇다고 볼 때, 이명박은 앞선 지도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캐릭터다. 이명박의 대의와 명분은 오로지 자본이다. 앞선 대통령들이 지녔던 숭고한 아우라와는 다른 컨셉으로 이명박은 승부를 걸었고, 그런데 그것이 불행히도 먹혔다.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인권과 자유와 정의에 대한 원죄의식을 털어버린 한국 유권자들은 자본을 케츠프레이즈로 내건 이명박에게 몰표를 던졌다. 군사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가졌던 원죄의식을 김대중-노무현 시기를 거치면서 씻어버렸기에 그 누구도 이제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과거에는 그래도 우리에게 최소한의 체면이 있어서 공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혹 돈을 주제로 대화를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격멸하거나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대화의 대부분은 재테그와 부동산, 아이들 영어유치원, 혹은 명품과 성형으로 상징되는 자본의 페티쉬에 대한 내용들 뿐이다. 더 이상 대의와 명분, 의리와 도덕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자본이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그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건이었다. 그 후 우리는 다같이 우리의 체면과 양심, 대의와 수치심과 윤리를 바닥에 내려놨다. 나는 그것이 바로 한국사회 파국의 지형학이고, 냉소의 감정이 시작되는 포인트라 생각한다.

    문득 10년간의 미국유학을 마치고 2014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지인들이 내게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그들은 비록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며 분신을 하거나 투신을 하던 열사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젊었던 어느 한 시절에서 조국과 자신의 현실에 대한 울분과 분노를 토로하면서 긴긴 밤을 나와 함께 지새웠던 절친들이다. 40대 중후반이 된 나의 친구들이 10년 만에 귀국한 내게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해주었던 조언은 결국 이것이었다. “네 마음 다 알아, 하지만 해도 안 돼. 오직 돈이야”

       냉소주의는 이러한 세상의 법칙을 알아버린 성인(成人)의 마음이다. 지젝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을 하고 있다. 냉소적인 이성은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 그것은 계몽된 허위의식의 역설이다. 우리는 그것이 거짓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인 보편성 뒤에 숨겨져 있는 어떤 특정 이익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하진 않는다.[각주:1]


    성인이 된 인간은 유소년시절에 가졌던 유토피아적인 환상을 더 이상 갖지 않는다. 혹 주변에서 여전히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냉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 알아, 네 마음 다 알아...하지만, 꿈 깨라! 현실은 냉혹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라고 말이다.

    그들은 이제 공적인 가치를 상상하지 않으면서 정신과 양심의 가위눌림에도 반응하지 않는 쿨한 인간들이다. 그 어떤 충격과 놀라움이 밀려와도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간혹 쨉을 날리면서 자기만을 보호할뿐이다. 그들은 이제는 반성과 실천의 자리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세상사 별것 없다” 혹은 “인생 다 부질없어”라는 삶의 경륜과 지혜가 묻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말을 간혹 선문답처럼 날릴 뿐이다.


냉소의 고고학


    냉소주의를 철학사전에서 찾으면 cynicism으로 본래는 지금처럼 부정적이기만 한 정신은 아니었다. 냉소주의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견유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다.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필요한 것이 뭐냐?” 고 물었을 때 “그대여! 나는 햇살이 필요하니 해를 가리지 말고 제발 내 앞에서 비켜 서 달라!”고 했던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는 인물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본래 냉소주의는 문명에 대한 비판이고, 체제에 대한 조롱의 정신이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자본주의의 등장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의 발흥과 더불어 전개되는 냉소주의란 “돈이 되는 것이면 다 한다!”는 문구에서 선명하게 그 특징이 드러난다. 고.중세 사회 인민들의 삶과 의식을 지배했던 것들, 예를 들어 전통, 관습, 역사, 윤리, 명예, 사랑, 대의, 양심 등등을 거론할 수 있을 터인데, 근대 자본주의는 이것들을 화폐의 양으로 전환시켰다.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시키는 자본주의 특유의 마력 앞에서 각각이 지녔던 개별적 가치들은 화폐의 양에 따라 서열화 된 것이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가을동화(2000년 作)’에서 남자 주인공 원빈이 여자 주인공 송혜교에게 한 명대사가 있다: “사랑 웃기지마!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사면 될 것 아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이 말은 지금도 회자되면서 패러디되는 유명한 드라마속 어록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개되는 냉소의 증상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봉건시대 귀족들이 내세우는 가치들을 냉소하고 화폐의 양으로 등가시키는 자본주의의 냉소주의가 앙시앙 레짐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기존 체제와 질서를 냉소하는(“웃기지 마!”) 정신이 현재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자본의 법칙에 타격을 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들뢰즈와 가타리는 그들의 공저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자본주의가 지닌 파토스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변혁을 위한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음을 상상하기도 하였다.

    지젝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탈이데올로기 시대를 맞아 거대서사가 사라진 상황속에서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로서의 냉소주의”를 논한다. 지젝은 독일의 사상가 피커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가 쓴 『냉소적 이성 비판(Critique of Cynical Reason)』에 기대어 부정적이고 무력한 냉소주의(cynicism)에 맞서는 또 다른 냉소주의인 키니시즘(Kynicism)에 주목한다. 그는 시니시즘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부도덕한 입장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자체로 부도덕성에 봉사하는 도덕성에 가깝다”라고 비난하나, 키니시즘에 대해서는 “공식문화를 아이러니와 풍자를 통해 통속적이고 대중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두둔한다. 지젝이 말하는 냉소주의가 시니시즘에 머무르지 않고 키니시즘으로 나갔던 경우가 존재했었다. 바로 중세가 종말로 치닫고 근대가 도래하기 전 시기다. ‘죽음의 무도’가 울려 퍼지고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멘트가 울려 퍼졌던 그곳으로 지금부터 타임슬립을 해보겠다.


타임슬립 : 아포칼립스(apocalypse) 중세


    ‘아포칼립스’는 신약성서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그리스어 제목이다. 신약성서는 고대 그리스 헬라어로 쓰여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포칼립스의 뜻은 신의 비밀, 신의 계시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신의 계시란 말할 것도 없이 종말이다. 종말에 대한 서사와 종말을 둘러싼 현상학에 관한 책이 요한계시록,‘아포칼립스’이다. 사실 돌이켜보면‘아포칼립스’는 요한계시록 뿐 아니라 성서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였다. 제국의 식민으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독교도로 온갖 고초를 당해야만 했던 초대 기독교도들에게 아포칼립스, 즉 파국의 도래는 두려움인 동시에 희망이었고, 임박할 파국에 대한 기대는 현실의 절망을 견디게 하는 에네르기였다.

    이러한 아포칼립스적인 환상과 예언은 서구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당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할 중요한 해법으로 요청되곤 했다. 그것이 유독 강하게 대두되었던 시기가 중세 말이 아니었나 싶다.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중세교회의 권위는 십자군 원정의 실패와 유럽인구의 1/3을 죽음에 이르게 한 흑사병의 창궐로 위기에 빠진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나갔던 십자군은 이교도들에게 패배의 수모를 당하였고, 흑사병으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는 그 누구도 비껴가지 않았다.

    언젠가 김연아 선수가 세계 피켜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생상의 <죽음의 무도>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연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곡은 중세 말 유행했던‘죽음의 무도 dance macabre’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 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백성, 귀족, 사제, 심지어 교황까지 해골과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마치 전 세계가 죽음과 한판 대동의 춤을 추는 형국인셈이다. 죽음이 선사하는 공포와 슬픔, 허무를 초극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춤이라는 모멘트로 승화되면서 ‘죽음의 무도’라는 찬란한 슬픔을 만들어 냈다.‘메멘토 모리 memento mory’, 죽음을 기억하라! 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시대를 향한 냉소적(키니시즘) 발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중세 말을 지배했던 주술적이고 신비적이었던 죽음의 광시곡과‘죽음을 기억하라’는 주문은 대척점에 놓여있던 이성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죽음의 무도’를 추면서 존재에 대한 허무, 실존에의 불안, 미래를 향한 공포를 지나갈 수 있었고, 그것은 죽음에 포로가 되어 염세적으로 흘렀던 중세 말을 벗어나 좀 더 합리적인 틀에서 보다 이성적인 잣대를 가지고 사건과 대상을 대면하자는 움직임과 맞물려 근대를 재촉하고 있었다. 실존적으로 다가왔던 삶에 대한 공포와 그 공포를 초극하려는 죽음에의 행위를 인식론적으로 회의하게 되면서 서서히 근대가 다가왔던 것이다.‘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그 상황속에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향한 냉소의 메시지 였던 셈이다.


변화된 냉소의 지형학


    다시 21세기 대한민국 현실로 돌아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냉소해야 하는 걸까. 세상이 변하기 전에는, 서두에서 밝혔던 1990년대라는 크로테스크한 시절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냉소의 대상은 분명했다. 반독재, 반통일, 반외세, 반자본. 너무나 많고 다양한 냉소의 메뉴가 있었고 우리는 아무런 고민 없이 그것을 골랐다.

    하지만 1990년대가 지나면서 선명했던 전선은 흐트러졌고 망가진 국경너머로 초국가적이고 전 세계적인 자본이 넘나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무엇인 진리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전 시대의 패러다임으로는 판단이 안서는 계절이 도래했다. 그러나 잠시 소란스러웠고 불투명했던 상황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자본으로!

    이제 적은 외부에 있지 않다. 내 안에 있다. 나의 탐욕이 문제의 원인이 되었고, 나의 욕망이 유력한 사건의 용의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자본이 뒤에서 원격조정하고 있다. 시절이 바뀌면서 냉소의 성격도 변화하였다.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냉소에서 자본의 음성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나의 욕망과 탐욕이 냉소의 대상이 되었다. 냉소의 칼끝은 이제 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해 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새로운 냉소의 지형학이다.

    자본의 위력에 기대어 모든 전통적 가치를 부정하는 감정이 냉소였다면, 21세기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탐욕의 마음을 다시 한번 부정하는 냉소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된다. 그렇다고 볼 때, 우리가 맞닥뜨리는 냉소의 현상학은 다분히 변증법적이고 이중적이다. 모든 가치를 무화시키는 자본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정신과 21세기 자본이 선사하는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한 유혹과 욕망사이에서 우리는 지금 홀로 외롭게 서있다.


에필로그 :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도 쓰여져있고, 마르크스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인용한 이솝 우화에 나오는 대사 하나를 적는다: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us! 히크 로두스 히크 살투스!)”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다. 어떤 허풍쟁이가 자랑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로도스 섬에 있을 때는 높이 뛰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여기가 로도스 섬이라면 잘 뛸 수 있었을텐데”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듣다가 그에게 한말이 바로“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이다.

   맑스는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고,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녁에 날개를 편다고 말했다.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는 혁명의 날이 밝았다는 신호이고, 비상(飛上)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며, 양적 축적에 따른 질적 승화라는 변증법적 논리학의 기초문법에서 승화의 순간을 가리키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은 그 혁명의 때를“지금 시간(Jetztzeit)으로 충만된 시간”이라 불렀다.

    우리는 자기가 머물고 있는‘지금-여기’서의 사소한 실천과 투쟁에 인색해지기 쉽다.‘아직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고, 아직 상황이 이르고, 좀 더 냉철해져야 하고, 소영웅주의에 휩쓸리지 말고 조금만 진정하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린다.‘실행에 옮기는 것은 나중에 좀 더 지켜본 후에 하면 된다’는 말이 ‘로도스에서는 잘 뛰었는데’라는 허세와 동일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일이다. 자, 이제 그대는 무엇을 냉소할 것인가?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


ⓒ 웹진 <제3시대>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인간사랑,2002), 6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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