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 정국, 무지에 대한 거부를 통해 헤쳐가기

 



김혜란
(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지난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진 후 약 2주 동안 한국에 대한 뉴스가 카나다 뉴스에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전해지고 있다. 물론 남한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미사일에 관한 뉴스까지 포함한다. 이는 아주 드문 일이다. 지난 주일엔 교회 예배 중보 기도 때, 한 백인 교인이 소리를 내어 북한에 대한 기도를 드렸다. 남북한 정세에 관한 어려운 상황이 카나다에까지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역시 아주 드문 일이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나에게 남한에 대해 북한에 대해 물어본다. “어떻게 될 거 같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어?” 내 모국이 걱정이 되어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표현으로 닥쳐오는 이 많은 질문들을 받으며, 난… “글쎄… 모르겠어.”라고 답을 할 수 밖에 없음에 답답하다. 모르기에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무지하기에 위험하다. 이를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오늘은 이에 대해 다루어 보자.

    미디어에 드러나는 북한의 모습은 너무 제한적이고 왜곡되어 있어서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상황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런 내 생각엔 근거가 있다. 올 4월에 남한과 북한의 공식 외교국인 카나다에서 카나다 연합교회 주최로 남북한 기독교 여성 평화 모임이 개최될 예정이었다. 한국 기독교 협의회 여성 위원회가 요청을 했고, 파트너 교회인 카나다연합교회는 이를 긍정적으로 응답함으로써 1년 전부터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추진 중인 일이었다. 지정학적으로 복잡하게 엉켜있는 분단의 실타래를 종교의 관점에서,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낼 수 있다는 확신에 대한 실천적 모습이었다. 또한 정전을 포함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수십년동안 노력을 해 온 한국 기독교와 전세계 에큐메니칼 진영의 지난한 여정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겠다는 결단의 모습이었다. 이 모임에 전세계 다양한 교단과 단체에서도 참가하려고 대표단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재정적인 부담을 안고 이 모임을 치루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연합교회가 “합시다!”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에서 거의 40년, 은퇴할 때 까지 평생을 사셨던 매리온 커런트 (구애련) 선교사님 덕분이다. 당신이 소천하기 전 유산의 일부를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증하셨다. 그런 보이지 않는 분들의 힘으로 준비된 일이었다. 그런데, 북한기독교 연맹의 동의를 얻고 여성들을 보낸다는 약속을 받고 시작한 일인데, 올 2월 말 북한에서 갑자기 불참 통보를 보내왔다. 그렇게 해서 안타깝게도 모임은 취소되었다.  

    박근혜 탄핵 대법원 만장일치 가결을 축하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동시에 박근혜 지지자들의 탄핵 결정을 부인하고 반대하는 집회도 있었다. 5월 9일 대선을 앞두고 남한의 정세가 어떻게 변화될 지 가늠하기 어렵다. 매년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반대와 저항을 표현하기 위해 3월이 되면 북한이 늘 해 온 일이지만, 올 해3월 북한 미사일 발사는 심상치 않다. 북한의 정세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부임한지 고작 2달이 지났는데, 반이민 행정명령과 오바마 도청설, 오바마 케어 무산등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정책에 대한 혼란과 저항으로 미국의 정세 역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한 안개 속 정국을 거닐며 기독교인들은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사순절의 의미는 다양하다. 교단마다 전통마다 또 문화와 신학적 성향에 따라 그 의미는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사순절이 기독교 절기 중 가장 진지한 절기, 즉,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삶에 대해,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통적이다. 그 어느 절기보다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머리속으로 하는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으로 매일의 행위로 훈련하게 하고 결단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순절이 지닌 힘은 대단하다. 소셜 미디어 중독자로 살던 많은 기독교들이 40일 노페이스북을 선언하고, 커피와 초콜렛을 안먹으면 두통으로 하루도 못 버티는 많은 기독교인들 역시 이 음식에 대한 사순절 금식을 선언하고 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이 고기냄새만 맡아도 사죽을 못쓰는 고등학교 남학생 기독교청소년들이 사순절 기간동안 육류 안먹기를 선언했다. 이렇게 내 주위에 내가 아는 가족, 친구들이 이런 육적이고 영적인 거부의 실천을 하고 있다. 이런 선택은 단지 유행을 좇는 즉흥적 반응이 아니다. 이들의 결단에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윤리적 이유가 함께 동반된다. 소비주의에 찌들은 자본주의적 삶, 특권층 인간의 소비로 희생당하는 소외된 사람들과 동물, 그리고 생태계의 위기, 미디어에 대한 촉각적 반응에 대해 진득한 고려를 하겠다는 일종의 체화된 기도이자 거부이다.

    어떤 면에서 사순절 의미의 핵심은 거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권력에 항복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지만) 그 권력이 저지른 폭력 자체를 거부하신 것이다. 사순절은 그 예수님의 행위를 예수님의 삶 아니 죽음, 죽임당함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머리로 하는 기억이 아니라 몸으로 우리의 매일 매일 삶의 실천으로 동참하는 기억이자 그 기억을 체화하는 거부다.

    내가 좋아하는 탈식민주의 문화이론가이자 퀴어 페미니스트 학자가 있다. 사라 아미드이다. 영국계 엄마와 파키스탄 출신 아빠를 두고 영국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호주로 이민을 갔고, 현재 영국에 살고 있다. 거의 20년동안 8권의 책을 저술하면서, 아미드는 탈식민주의, 이주, 인종, 성, 성정체성, 혼종성, 타자, 문화, 그리고 다름, 이런 굵직한 주제를 탁월한 글솜씨로 다루었다. 가장 최근 출간된 책은 Living a Feminist Life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각주:1]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 그의 이론은 마치 내 살에 닻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삶과 현실에 동떨어진 메마른 이론이 아니라 마치 내 살갗을 뚫고 파고드는 것처럼 날카롭고 신랄하고 살아있다. 그렇게 아미드는 우리 사회, 삶이 지니고 있는 억압, 차별, 불평등, 지배의 문제에 정곡을 찌른다. 나의 삶이 백인 우월사회에서 소수인종으로 살아가서, 이민자이고, 여성이어서 내게 그렇게 가까이 다가올 수도 있다. 아미드 역시, 소수인종으로 호주/영국에서 살아가고, 성소수자이고, 이민자이고, 여성이어서, 그 경험을 기반으로 자신의 이론을 펼치기에 그의 언어의 선택과 표현이 그렇게 적나라하고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칼보다 펜이 강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펜의 힘을 땀에 절여진 개념 (sweaty concepts)이라고 표현한다.[각주:2]

    페미니즘이 책의 핵심화두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 앞서 열거한 이 모든 굵직한 주제가 마치 한 사람의 몸 곳곳에 필요한 피가 동맥과 정맥을 통해 골고루 전해지듯이 녹아들어 있다. 마치 오장육부가 연결되어 있듯이 아미드는 이 주제들이 어떻게 연결 (intersectionality)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의 결론이 특별히 인상적인데, 이 결론을 보면서 난 “거부”의 힘을 보았다.

    아미드는 페미니스트들이 ‘killjoy’ 로 낙인을 찍히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 즉, 잔치상에 찬물을 끼얹는 자, 따끈한 있는 분위기를 싸늘케 만든 썰렁한 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미드는 기죽지 말고 그 일, 그 일이 기쁨을 죽이는 일일지라도 계속하자고 독려한다. 아미드가 제안하는 구체적인 거부 몇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자로서 글을 쓸 때, 이미 기득권자 그룹에 속한 저자들을 인용하는 것을 거부하자고 제안한다. 대신, 소수자, 억압받는 자, 주변부에 속한 학자들 (소수인종 여성, 성소수자, 이민자)을 인용하자고 주장한다. 아미드는 실제로 이 책을 통해 서구 백인 이성애자 남성 학자들을 인용하지 않아도 훌륭한 학자들, 이론가들, 실천가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주변부 소수학자들을 인용하면서 얼마든지 아니 더 멋지고 이론적이고 비판적이고 생생한 글을 써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자인 내게 가장 도전을 주는 거부제안이다. 실제로 강의를 준비할 때, 책과 저널 아티클을 선정할 때, 교수로서 꼭 해야하는 일이다. 백인 남성,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학자들의 글만을 소개하지 않고, 소수 인종, 여성, 성소수자들, 유럽, 미국을 벗어나 3세계 학자들의 글을 소개하는 형평성을 유지하는 일은 선생으로서 기본 원칙이다.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학자로서 저명한 저널에 원고를 기고하고, 저명한 출판사와 계약을 해서 책을 쓸 때, 아미드처럼 기득권 학자들을 거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심지어 치루어야 댓가가 있기에 고통스럽다. 그래서 이 사순절 아미드가 제안하는 거부는 학자에게 교수들에게 글을 쓰는 지식인들에게 특별히 더 의미심장하다.

    두번째,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불편하게 할 것을 알면서도 그 상대방을 대상으로하는 농담 (대부분 여성비하, 성소수자,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을 때 다수에 휩쓸려 웃는 일을 거부하라고 제안한다. 따뜻한 분위기에 찬물을 뿌리는 자가 되라고 한다. 세번째, 이미 지난 일이라고 세상이 말하지만, 역사가 실제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그 역사가 종결되었다는 주장에 거부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정신대 여성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했으니 그 역사는 끝났다고 일본정권이 아무리 말해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거부하는 정신대 할머니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 거부의 메아리를 함께 울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득권 세력이 정해놓은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을 거부하자고 한다. 한 예로 “여자가 독신으로 살면 힘들어. 나이가 들었으니 대충 남자 만나 결혼해 그게 행복이야”라는 세상의 규범 (이성가부장결혼제), 순리라는 논리로 치장된 억압적 규제를 차별적 행복이라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소화되지 않는 음식을, 그 음식이 몸에 좋다는 허황된 이유 (기득권 논리)로 먹는 것과 같다. 거꾸로 “남자가 되어가지고 울기는… 참아야지” 하는 남성억압적 논리 역시 참지 않고 우는 행위로, 마치 그 음식을 토해내는 것처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여성, 남성에게 종용되는 논리이외에도 억압적 차별적 규제들은 정말 많다.

    아미드가 제안하는 거부의 핵심은 바로 세상이 오리무중이고 안개속 정국이지만, 세상을 탓하면서 무지하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곧 운동이다. 지난번 원고에서 무지가 주는 폭력에 대해 말했다. 사실이 거짓으로 진리가 기만으로 둔갑하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 비판적 의식의 부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세월호, 미국 선거,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 세상은 오리무중이고 안개속이다. 한국 대선이 어떻게 될 지, 북한 미사일 문제가 어떻게 될 지, 트럼프의 반이민정책, 오바마케어 정책이 어디로 갈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한가지는 있다. “무지가 권력과 야합하면 정의가 대적해야하는 최악의 적으로 둔갑한다”는 걸 말이다.[각주:3]

    남은 사순절 무지가 권력에 야합하지 않도록 무지를 거부하자. 억압과 차별을 행복의 이름으로 세상의 순리라고 치장하고 종용하는 부정의를 거부하자. 사순절을 마치면 그만두는 일시적 행위가 아니라 꾸준히 우리를 무지하게 만드는 논리, 기득권의 힘을 향해 거부 실천을 하자. 거부가 습관이 되어 우리 몸에 배일때까지. 마치 이빨을 매일 닦듯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는 하는 실천이 될 때까지. 일상의 거부로부터 (예. 쓰레기만드는 물건 안사기) 큰 역사를 바꾸는 거부의 물결을 일으키자.


ⓒ 웹진 <제3시대>



  1. Sara Ahmed, Living a Feminist Life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17). [본문으로]
  2. Ibid., 12. [본문으로]
  3. James Baldwin, No Name in the Street (New York: The Dial Press, 1972). “Ignorance, allied with power, is the most ferocious enemy justice can hav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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