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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퀴어] 여름에 민소매 입기(유하림)

페미&퀴어

by 제3시대 2017. 8. 2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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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민소매 입기



유하림*

 


    올 여름은 정말 더웠다. 에어컨을 발명해 낸 사람에게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수준이었다. 바깥에서 10분만 서 있어도 땀이 주륵주륵 흘렀고, 습도는 높아 숨이 막혔다. 이런 몇 주간의 무더위 속에서도 내가 차마 도전하지 못한 것이 민소매다. 민소매를 입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깨를 가리는 한 뼘만한 천때기의 있고 없음이 생각보다 쾌적함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작년 여름에 여행으로 베트남에 갔다. 첫 해외여행이었으므로 큰 맘 먹고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다. 겨드랑이 사이로 바람을 맞이 한 것은 초등시절 이후로는 처음이었는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매가 없다 뿐이었지만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오는 날 다시 반팔 티를 입었고, 허무함을 느꼈다. 나에게 민소매란 남의 눈을 피해서만 입을 수 있는 것이니까.

   페미니즘 열기가 한창 뜨거운 이 때에 노브라도, 겨털 기르기도 아니고 민소매 입기 따위가 무슨 글감이냐고 스스로에게도 질문했지만 내게 민소매란 그런 것이다. 삐져나오는 겨드랑이 살과 통통한 팔뚝에 대한 좌절과 증오를 뚫고 용기를 내야만 하는 것.

   아직 십대가 되기도 이전, 0-9세 사이로 분류되던 때에 한의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엄마는 태양인 태음인 등의 체질 분류에 꽂혀있었고, 나의 체질 또한 가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생년월일 등을 묻고, 내 손목에 맥을 짚어보기도 했다. 그리곤 드러난 내 팔뚝을 보더니 “너 치킨 좋아하지 ?” 하는 것이다. 그렇게 덧붙였던 이야기. “살을 빼려면 치킨을 먹지 말아야해. 치킨 먹으니까 팔뚝에 살 찌는거야.”

   그 뒤로 몇 해간 꾸준히 할머니와 엄마는 치킨을 먹을 때 마다 내가 가진 팔뚝 살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면 치킨이 아니라 팔뚝 살을 집어먹고 있는 것 같았고,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팔뚝 살은 안 좋은 것. 팔뚝 살을 만드는 것은 치킨. 치킨을 먹으면 안돼. 그런데 나는 치킨이 먹고 싶어. 그럼 치킨을 먹어야지. 그치만 치킨을 먹으면 팔뚝 살이 찌는데. 팔뚝 살은 안좋은 것. 이라는 생각의 회로가 나를 괴롭혔다. 팔뚝과 치킨, 치킨과 팔뚝. 이 사이에 실제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렸을 적 한의원에서부터 거슬러온 내 팔뚝 살에 대한 증오는 꽤나 긴 것이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났다. 한 여름이지만 반팔에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자신은 몸이 너무 왜소하고 말라서 그것을 가리기 위해 여름에도 긴 옷을 입는다고 했다.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통통한 팔뚝 살과 삐져나온 겨드랑이 살에 대한 눈초리를 이길 수 없어 몸을 가리는데, 나와는 달리 마른 체형의 그녀 또한 몸에 대한 눈초리를 이길 수 없어 몸을 가린단다. 우리는 다른 몸을 가졌지만, 같은 이유로 민소매를 입지 못한다..

   이러나 저러나 눈초리가 신경 쓰인다면 그냥 한번 입어볼까 싶어 칠 천원을 주고 민소매를 하나 샀다. 집에 돌아와 입어보니 삐져나온 겨드랑이 살과 통통하고 하얀 팔뚝이 밉지만은 않았다. 밖에도 입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고 기온이 33도를 찍던 날, 민소매를 꺼내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가기 직전, 현관 앞 거울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춰보다 결국 다른 옷을 입고 나갔다. 괜찮아보이다가도 막상 마주하면 무너지는 게 나의 몸이다.

   이제는 타인의 몸 (특히나 살이 찐 사람)에 대한 왈가왈부가 경솔한 일이라는 게 상식이다. 내가 민소매를 입고 나간다고 해서 대놓고 수군댈 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오랜 기간 이어져 온 팔뚝 살에 대한 증오가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란거다.

   팔뚝 살에 대한 미움은 주위 사람들의 온갖 협조를 통해 만들어졌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야만 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게 어디 팔뚝 살 뿐이랴. 통통한 허벅지도, 뱃살도, 다리 털도, 겨드랑이 털도, 얼굴에 난 여드름도, 까무잡잡한 피부도.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용기를 내야만 하는 종류의 것이다. 그러니 민소매를 입는 것 하나도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외모에 대한 기준이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잣대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많은 다이어트 제품이, 피부 미백제가, 제모 용품이, 여드름 패치가 여성을 타겟팅 해 광고를 만든다. 티비를 켜면 비교적 다양한 체형의 남성이 나오지만 (사실 티비 예능에선 여성을 찾는 것이 어렵다.) 여성은 말랐거나, 뚱뚱해서 놀림 받을 뿐이다. 그렇게 티비에 나오는 여성들의 피부와 다리는 어찌나 매끄러운지, 손가락을 올려보면 미끄러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민소매를 입었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간 건 용기를 내지 못한 내 탓이 아니다. 민소매를 입는데에 무려 ‘용기’까지 필요하게 되는 것, 그러나 차마 그 용기도 낼 수 없었다 것. 이 세계의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는 증명이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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