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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보호와 구금은 다르다(조영관)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18. 1. 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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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와 구금은 다르다[각주:1]


조영관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새해도 벌써 한 주가 지났다. 야심차게 계획한 새해 계획이 한번쯤 흔들리는 순간이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더라도 필연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불쑥 생기기 마련이고, 미리 계획한 일이 하루쯤 틀어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은 결심이 굳지 못한 사람을 훈계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통계적으로 사흘에 한 번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것이 평범한 우리네 삶이므로 계획한 일을 사흘에 한번쯤 빼먹었다고 해서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누군가의 한 주, 한 달, 한 해가 전혀 새로운 일 없이 미리 계획한 대로만 반복되고 있다면 이쪽이 더 걱정되는 일상이라 생각한다.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삶의 건강한 자유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자유 중에 가장 본질적인 것이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이동할 자유이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자유를 함께 빼앗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러한 조치를 형벌(刑罰)로 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을 받지 아니하며(제12조 제1항), 체포·구속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도록 하고(제3항),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그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제6항)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는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보호소’라는 이름을 가진 시설이 있다. 외국인 범죄자는 내국인과 동일한 절차에 따라 구치소 또는 교도소에 구금되므로, 범죄자를 가두는 구금시설과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시설이다. 법무부의 공식적인 설명에 따르면 외국인보호소는 체류기간 만료 등 출입국관리법에 정해진 사유로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외국인 중에서 여권이 없거나 또는 교통편이 확보되지 못하여 즉시 출국할 수 없는 경우, 여권이나 교통편을 마련하는 기간 동안 머물게 하여 외국인을 ‘보호’해주는 행정기관이다. 설명만으로 보면 공항 한쪽에 마련된 라운지와 같은 편의시설을 생각하게 되지만 현실은 철창에 갇혀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구치소와 큰 차이가 없다. 외국인보호소에 입소한 외국인은 노란 철창으로 구획된 좁은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한 공간에서 10명 이상이 공동생활을 한다. 화장실을 포함한 모든 생활공간은 CCTV로 감시되고, 외부인과 만날 때는 구치소와 같이 두꺼운 아크릴 판을 사이에 두고 전화기로 대화를 해야 한다. 자유롭게 운동을 할 수도 없고,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도 없다.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용공간에 설치된 전화기 한 대가 유일하다. 출입은 제한하지만 보호시설 내에서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사생활이 보호되며 인터넷 등 외부와 소통도 자유로운 외국의 보호시설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이다.

    열악한 시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호’라는 이름의 구금기간에 상한이 없어 장기간 보호소에 구금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외국인의 신체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임에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지위에 있는 기관이 인신구속의 타당성을 심사할 수 있는 절차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작년 3월에 발표된 법무부의 정보공개 결과를 보더라도 외국인보호소에서 1년 이상 장기 구금생활을 하고 있는 외국인이 20명이나 되었다.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난민이거나, 갑작스러운 단속으로 국내의 법률관계가 마무리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기간을 떠나 구금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환자나 구금을 최후의 수단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아동들이 보호소에 갇혀 있기도 했다. 열악한 시설에 장기간 가두어 두면서 이를 외국인의 편의를 위한 ‘보호’라고 설명하는 것은 궁색하다. 보호와 구금은 전혀 다르다.


ⓒ 웹진 <제3시대>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072052035&code=990100 이 글은 경향신문 칼럼 2018. 1. 7에 동일한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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