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거는 여자들
유하림*
열일곱 살에 나는 암묵적으로 혼후관계를 지향하고 있었다. 암묵적었던 이유는 학교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 술, 담배, 섹스 같은 종류의 것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쿨해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낙태는 살인이다’ 라는 슬로건에 동의하는 바였고, 페미니스트였던 학교 선생님께서 낙태와 관련한 여성인권에 대해 말씀 하실 때에 페미니즘은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기괴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시기에 가끔씩 만나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모르는 남성과 섹스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새로운 애인과 섹스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삼일을 넘기지 않았다. 지금이야 아무런 감정없이 그녀의 행동에 대해 서술할 수 있으나, 당시엔 쿨하다고 여김과 동시에 문란하고 저급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자가 스스로 지켜야 할 몇가지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몸 이기도, 정조 이기도, 순결이기도 했으니 그랬다.
나는 그녀와 그리 친하진 않았고 다만 그녀가 하는 이야기에 쿨하다는 감정만 내비치며 대화에 임했다. 어느 날인가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전화는 잘 하지 않던 사이였기에 내키지 않는 맘으로 전화를 받았다. “하림아 나 생리를 안해”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엔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내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지난번 애인과 섹스를 한 후로 몇 달째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나는 무조건 그녀의 뱃속에 있는 생명인지 세포 덩어리인지간에 그것을 없애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들기 전엔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그녀의 삶을 떠올렸다. 생리를 오래도록 하지 않았던 걸 알아채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내게 전화를 하던 그녀의 마음, 배부른 모습으로 지하철에 탄 그녀를 바라볼 사람들, 그녀가 안게될 아이가 아닌 부담감, 그리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육아에 대해 상상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 많은 생각들을 모조리 말 할 수는 없었고 임신테스트기를 해보자고만 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으로 테스트기의 가격을 알아보았다. 기계라고 하면 왠지 2만원은 훌쩍 넘을 것 같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오천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그녀에게 전달해주고 연락을 기다렸다. 연락을 기다리면서 낙태를 할 수 있는 병원에 대해 알아봤던 것 같다. 평소 즐겨 이용하던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도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한줄이래.”
“한줄이 뭔데?”
“임신 아닌거.”
그녀가 한줄이라고 말해주는 순간까지도 나는 마음이 쿵쾅거렸다. 그리곤 질문을 했던 거 같다.
“앞으로 계속 섹스할거야?” …
“아마”
그리곤 전화를 끊었고 몇번 쯤 친구들에 섞여 그녀를 만나다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나는 비슷한 전화를 무수히 받았다. 모두가 잠든 어둔 밤에,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이른 새벽에, 햇살이 직선으로 꽂히는 정오에, 여자들은 내게 전화를 했다. 내가 가장 무서웠던 건 생명인지 모를 것을 없애는 일보다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계획되지 않은 아이를 낳는 일이었으며 그것이 책임회피라고 하더라도 나는 지지할 수 밖에 없다.
내게 전화를 걸어온 여자들은 왜 그들의 상대에게 전화하지 못했을까. 하긴 했던걸까. 그러고도 여자들은 다시 그 상대를 만났을까. 헤어졌을까. 못 만났을까. 여자들에게 죄가 있다면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점일까. 그렇다면 여자들은 무엇을 지켰어야만 했을까. 순결을? 피임을? 침묵을? 그렇다면 왜 여자들만 지키지 못한걸까. 여자들이 아닌 존재는 아무것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걸까.
죄가 없다면 모두에게 없어야 한다. 죄가 있다고 해도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 죄의 유무는 본인만이 판단해야 한다. 그 누구도 타인의 신체와 선택에 대하여 단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이 불법이라면 국가는 출산과 육아를 최선으로 도와야만 한다. 상대 남성에게도 똑같이 처벌해야만 한다. 무엇도 보장되지 않은 채로 임신중절이 불법이라면 나는 가장 최전선에서 그것을 반대하겠다.
많은 여자들을 봤다. 그 여자들 속엔 나도 존재한다. 나는 더이상 나와 비슷한 여자들을 보고싶지가 않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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