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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맡겨진 책무 < 스포트라이트 (토마스 맥카시, 2015)>(이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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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3시대 2018. 3. 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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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맡겨진 책무 

 < 스포트라이트 (토마스 맥카시, 2015)>




이희승*



언론이 존경받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언론의 자유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견과 편견이 구분없이 혼재하는 기사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기사 노출도를 끌어 올려 더많은 광고주를 유혹하려는 천박한 화장칠을 하는 기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수단으로 들먹이는 언론의 자유란 누구를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인지에 대한 의구심말입니다. 철권 독재나 보도지침이라는 실재적 억압이 사라지자, 곧바로 시장의 논리라는 무형무취의 권력 아래 놓이게 된 오늘날 언론의 처지가 딱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정치적 중립이라는 얄팍한 명분이라도 유지하던 90년대와는 달리, 소유주나 특정계급의 관점에서 사회상을 재단하고 나아가 사실 자체를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더이상 부끄럽지 않게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암담함은 마치 만성질환처럼 익숙한 고통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미투운동, 남북한 화해, 그리고 개헌 등 과거로부터의 유산과 적폐를 구분하고, 현재의 혼란에서 중심을 잡아, 다음세대가 속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역사적 거시적 과제들이 산재해 있는 지금, 대한민국 언론은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맡겨진 책무에 관한 올바른 태도를 새삼 어디에서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인지… 직업병 탓인지 그 해답을 영화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2015년 개봉과 함께, 제 88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는 교단의 비호아래 수십년간 체계적으로 묵인되어 온 보스턴교구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문제를 파헤치는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 취재팀 스포트라이트의 집요한 노력을 조명합니다. 실제로 스포트라이트 팀의 네명의 기자들과 '보스턴 글로브'는 2002년 1월부터 12월까지, 몇십년동안 조직적으로 은폐되어온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600건에 가까운 기사를 생산했으며, 그 공로로 2003년 퓰리쳐상을 수상했습니다. 영화는 어마어마한 특종을 터트리고 세간의 주목을 받기 전, 스포트라이트 팀과 '보스턴 글로브'의 편집부가 1년이 넘는 취재기간동안 전방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카톨릭 교회에 대항해, 신의 이름으로 침묵을 강요받은 피해자들의 시각에서 진실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한 흔적들에 집중합니다. 군더더기를 최대한 걸러낸 신문 기사처럼, 간결하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스포트라이트>는 타락한 권력를 이기는 언론의 승리라는 과장된 결론에 치중하지 않습니다. 지루한 취재과정을 건조하게 따라가는 방식을 앞세워, 진정한 언론의 자유란 객관성과 치밀함을 바탕으로 한 언론의 작동 방식에 충실하고, 강자의 권위를 경계하고 사회 정의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작은 영웅들과 협력하며 약자의 입장에 공감하려는 사명을 놓지 않을 때 언론 스스로가 지켜내는 권리임을 확인시켜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자 사건에 접근하는 영화의 시각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보스턴이라는 도시의 분위기입니다. <스포트라이트>는 18세기 보스턴 차 사건으로 유명한 미국 독립전쟁의 진앙지이자, 종교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도시 보스턴의 묵직한 존재감을 늘 옅은 잿빛 기운이 감도는 도시 전경을 통해 드러냅니다. 수십년간 계속해서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지만 그들의 상처와 고통을 개인차원의 불행으로 치부하고 진짜 가해자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이 사건의 속성 또한 영화가 설정한 뿌연 도시 공간과 일치합니다. 벽돌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성당들이 거리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대부분 카톨릭 가정에서 태어나고 카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 출신인 토박이들이 도시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보스턴. 마치 이 유서깊은 보스턴에 불어 닥칠 변화의 바람을 예고하듯, 영화의 초반에 이 도시를 대표하는 정통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를 지위할 편집장이 새롭게 부임합니다. 일년내내 햇빛 찬란한 휴양지 마이애미에서 일간지 편집장을 지낸 유태인 마티 배런 (리브 슈라이버)이 경영 위기에 놓인 '보스턴 글로브'의 보도국을 지휘할 구원투수로 등장하죠. 층 전체가 한공간으로 탁 트인 보도국과는 대조적으로, 미로처럼 얽힌 복도와 계단을 한참이나 내려와야 하는 반지하층에 자리잡은 스포트라이트 팀은 계속해서 안타를 치는 다른 뉴스팀들과는 달리, 오래 준비한 홈런 한방을 치기 위해 몇달씩 탐사취재를 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새 편집장의 부임과 동시에 사내를 감돌고 있는 인원감축설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스포트라이트 팀의 팀장 로비(마이클 키튼)는 새 편집장이 슬쩍 찔러 주는 취재거리에 '노우'를 하기 어려운 입장이죠.


대도시라기보다는 작은 소도시에 버금가는 촘촘한 사적 인맥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는 보스턴 주류사회의 속성을 모르는 이방인인 편집장 배런은 부임하자마자 스포트라이트 팀에게 카톨릭 사제의 성추행 사건을 집중 취재할 것을 권합니다. 배후의 거대권력이 바로 카톨릭 교회라는 사실과 이미 단편적으로 여러차례 뉴스에 올랐던 먹잇감이라는 사실 때문에 별로 탐탁치는 않지만, 팀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나눠 맡으며 서서히 탐사 취재에 발동을 걸기 시작합니다. 팀장인 로비와 팀원들은 광범위한 자료 수집, 관련인물들을 향한 끈기있는 설득, 집요한 근원 추적을 통해 몇십년간 침묵을 강요받았다는 아동성추행의 피해자들과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일삼은 사제들을 조직적으로 은폐 관리해온 로우 주교, 그리고 명백한 혐의로 기소된 사제들의 사면을 위한 법정 대리인 노릇을 해온 유력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취재범위를 차츰 넓혀 갑니다. 감춰진 권력의 타락과 음모를 밝히는 언론의 힘을 그린 이 영화의 각본을 쓴 조쉬 싱어가 차기작으로 스필버그 감독의 <더 포스트 (2017)> 을 집필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죠. 허나, 국가권력에 맞서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신념을 앞세운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그래햄 (메릴 스트립)과 벤 브리들리 (톰 행크스)의 뚝심과 카리스마에 집중한 <더 포스트>와는 다르게, <스포트라이트>는 언론의 고유한 작동 방식은 정교한 팀플레이임을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유독 회의를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죠.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각자 취재를 통해 접한 사실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스포트라이트 팀은, 각자의 장점과 약점에 섬세하게 반응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보완하려는 팀플레이의 정수를 보여 줍니다. 거기에 덧붙여, 묵묵히 팀의 장기 취재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 취재 방향을 넌지시 던져 주는 편집장 마티와, 팀의 일원일 뿐이라며 솔선수범하는 팀장 로비의 리더쉽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불순한 세력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결계처럼 혈기 왕성한 젊은 기자들을 보호하죠.


아동성추행에 가담한 50명이 넘는 사제들의 명단과 이들의 범죄사실을 알고도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로우 주교의 편지를 손에 쥐고 당장이라도 특종을 터트릴 수 있는 순간에, 팀장 로비는 모두의 동작을 멈추고 숨고르기를 합니다. 이대로 특종을 터트리게 되면, 사제들의 개인적 일탈과 주교의 일회적 판단 착오로 사건을 마무리짓게 될 거라는 경계심이 작동한 것이죠. 센세이셔널리즘의 기준으로 볼 때, 뉴스의 가치란 바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을만한 사건의 일탈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언론이 묘사하는 사건의 전말이 사회문화적으로 용인된 일상의 범위에서 멀리 벗어나 있어서 대중이 깊이있는 사고를 하지 않고도 손쉬운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면, 기나긴 취재와 복잡한 사실관계에 대한 지리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도 특종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독자의 53퍼센트가 카톨릭 교도인 '보스턴 글로브'가 미국의 건국 이념을 상징하는 이 전통의 도시에서 수십년간 지속되어 온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그리고 주교의 묵인이라는 뉴스를 터트린다면 그야말로 특종 중에 특종일 것입니다. 하지만 책임있는 언론은 결코 그 공격 대상을 정상기준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반짝 이목을 끌만한 사건으로 보지 않죠. 팀장 로비는 바로 그 점을 젊은 기자들에게 강조합니다. "신부 말고 교회를, 개인 말고 시스템을, 행동말고 체계를" 고발하는 것이 뉴스의 본질임을 분명히 하려는 이 영화의 의도를 드러내는 극적 장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가치에 대한 도전이야말로 진정한 언론의 역할임을 관객들에게 상기시키고자 하죠.


영화에서 자주 반복되는 두 개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는 기자들의 분주한 모습입니다. 카메라는 그들의 총총거리는 걸음을 뒤따르다가 어느새 예상치 못한 현실의 그림자, 가려진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숨겨진 진실에 이르는 길을 상징하는 두번째 이미지는 스포트라이트 팀의 기자들이 끊임없이 찾아 읽고 참고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옛 기사와 자료들입니다. 인류가 객관화된 기록을 후대에 남기는 유일한 종(種)이라고 할 때, 이 영화는 엄중한 팩트 앞에서 자신의 의견과 감상을 자제하고 최대한 자세를 낮추는 언론이야말로 촘촘한 역사기록의 주체임을 적시합니다. 사실을 파고들어 진실에 가까이 가려는 언론은 '노이즈'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목표로 하게 마련이죠. 느리지만 철저한 스포트라이트 팀의 접근방법에 촛점을 맞춘 <스포트라이트>는 피해자의 심정을 함부로 상상하고, 가해자의 범죄여부를 성급히 판단하여 극적인 한순간을 포착한 싸구려 특종을 수없이 생산하는 이 시대의 언론을 향한 경고장이자 언론의 자유라는 본질적 가치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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