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와 공포의 경계에서 차별을 말하다[각주:1]


 

권오윤[각주:2]



       공포물은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프로이트적 개념을 충실히 구현한 장르입니다. 일상에서 비정상으로 취급받는 것들이 고약한 형태로 나타나 주인공을 위협하지요.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문명 세계에서 추방됐던 유령이나 괴물이 출현하고, 인간에 대한 공격성과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체화한 살인마가 등장합니다. 영화에서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 무엇인지 검토해 보면, 우리가 그동안 사회적으로 배제하고 억눌러 온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 <겟 아웃>은 이러한 공포 영화 특유의 설정을 공유합니다. 흑인 사진작가 크리스 워싱턴(다니엘 칼루야)은 매력적인 백인 여자친구 로즈(앨리슨 윌리엄스)와 사귀고 있습니다. 주말을 맞아 로즈의 가족을 방문하기로 한 크리스에게,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경찰인 로드(릴 렐 하워리)는 백인인 그들이 널 반길 리가 있겠냐면서 농담조로 조심하라고 합니다.

       다행히 로즈의 부모는 괜찮은 사람들이었고 적어도 겉으로는 크리스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크리스는 좀처럼 불안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가사 일을 돕고는 있지만 괴이하게 행동하는 흑인 하인들과, 예의 바른 태도 속에 차별 의식을 은연중에 내비치는 로즈의 가족들 때문이지요. 더 껄끄러운 것은 바로 그 주말이 일 년에 한 번씩 있는 가족 행사 때문에 백인 손님들을 초대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상식과 합리, 정치적 올바름의 가면 아래에 있는 백인들의 뿌리 깊은 인종 차별 의식입니다. 이것은 극이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끝에, 후반부에서 뒤틀리고 일그러진 방식으로 형상화됩니다.

       처음에는 풍자적인 블랙 코미디인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쿨한 척하는 백인이라도 별수 없구나 싶어 쓴웃음을 머금게 되지요. 그러나 뭔가에 홀린 것처럼 행동하는 흑인 하인들과, 로즈네 가족 행사에 참여한 유일한 흑인 손님 앤드류의 모습을 보면 이게 그냥 비웃고 넘길 상황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유발된 궁금증과 왠지 모를 껄끄러움은 로즈 가족의 정체가 드러나는 후반부까지 극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줍니다.

       로즈 가족의 계획과 그들이 여는 행사의 정체는 '흑인들의 육체적 능력만큼은 인정하지만 그들의 지적 능력은 별 볼 일 없다'라는 뿌리 깊은 편견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밝혀지는 순간, 이제까지 나왔던 모든 장면은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배려와 친절이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사실은 모두 끔찍한 계획과 연결돼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니까요.

       영국 출신의 주연 배우 다니엘 칼루야는 크리스가 겪는 다양한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함으로써 코미디와 공포의 경계에 서 있는 이 영화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합니다. 모국에서는 주로 TV에서 활동했으나 최근 들어 할리우드 영화에도 진출했습니다. 내년 개봉 예정인 마블의 <블랙 팬서>에도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합니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조던 필은 이 작품이 감독 데뷔작이지만, 오랫동안 TV에서 활약해 온 코미디언입니다. SNL과 자주 비교되는 MadTV 출신으로, 동료 키건 마이클 키와 공동 기획하고 함께 출연한 스케치 코미디 프로그램 <키 앤 필>(Key & Peele)로 2016년에 에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보여 준 인종 차별에 대한 풍자적인 묘사를, 공포물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이 이 영화 <겟 아웃>의 매력을 더했습니다.

       미국 흑인의 시점에서 백인의 인종 차별 의식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이 영화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온전히 즐기기에는 어려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미국 대중문화에서 인종 차별을 풍자할 때 사용되는 코드에 익숙하지 않으면, 폭소를 터뜨리기는커녕 약간 냉소적인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지나가기 쉽지요. 그러나 이것을 우리에게도 익숙한 성차별 문제로 바꿔 보면,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꼬집으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차별 관련 이슈가 부각되면 많은 남자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니 싸잡아 이야기하지 좀 말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그러나 성별이나 인종, 혹은 사회 경제적 위치에 있어서 차별당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소수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려는 노력을 따로 하지 않으면 무엇이 차별이고 차별이 아닌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게 별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지요.

       차별은 일부 극단주의자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될 때, 혹시 그것이 자기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에게만 상식인 것은 아닌지 반드시 돌이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런 실질적인 노력 없이 자신의 양심과 결백함을 증명하려 하거나,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여 개념적으로만 평등을 주장하면 차별 문제는 결코 해소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겟 아웃>이란 영화가 풍자적인 코미디와 공포물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전하려고 한 메시지입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5월 22일자 기사 <웃다가 공포에 떨게 되는 영화, 어떤 메시지 담았나>(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27300)로 게재된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발레교습소> <삼거리극장> <화차>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 중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물 [권오윤의 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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