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3]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최규창[각주:1]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집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승민(엄태웅)이 유학을 가기 전, 달동네 집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연민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짜증을 내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 아파트 같은 깨끗한 집으로 이사 좀 가! 이런 구질구질한 집이 지겹지도 않아?” 그러자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검은 비닐에 싸인 반찬통을 꺼내면서 무심히 대답한다. “얘는... 집이 지겨운게 어딨니. 집은 그냥 집이지...” 마지막 남은 가족인 아들마저 외국으로 떠나는 상황에 처한 어머니에게 가족이 생활하고 자랐던 집이라는 ‘장소성'은 마치 몸의 일부처럼 작동하고, 말을 걸어오고,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공기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현대적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가인 아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가난의 표상 같은 달동네 집의 의미가 아련한 추억 이상의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는 그 집이 곧 자기자신의 삶 자체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성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을 그 마을과 시장 사람들은 모두 그 집을 중심으로 네크워킹 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해진 공간으로부터의 탈주는 꽤 큰 용기와 분명한 목적의식을 필요로 한다.  

       13년간 마포구 서교동의 작은 골목에서 빌라를 짓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온 우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 주택이라는 공간 자체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간과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인데, 먼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공간이 협소해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가 협소함 외에도 공간 자체에 제약되어 자신의 내면의 개혁과 미래에 대한 상상, 계획, 그리고 그 실행이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는데는 많은 민감성이 필요했다. 사실 주거공간은 하나의 생존 조건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사유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거 공간을 거주보다는 자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비싸고 넓은 집을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스스로를 공간에 맞춰가는 삶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넓은 집을 소유해도 정작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심한 부조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없으면 시간도 의미가 없어진다. 시공간의 여유가 생겨도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마치 마비증상이 있는 것처럼 생산성 없이 그것을 소모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삶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자신이 처한 공간을 비판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찾아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는 하루 중 어떤 자투리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나름의 생존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결국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가 자신의 공간 좌표를 정확히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공간의 한계


      근대의 공간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그리 많은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근대적 삶은 지난 수 백 년간 과학이라는 신을 영접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공간을 측정 가능한 단위로 분절시키고 운동과 에너지의 공식을 만들어 냈다. 최근 백 여 년간은 효율성이라는 목표 하에 철저하게 ‘구획화’된 시공간 속에 인간을 투입했고, 우리의 삶을 그 속에 안착시켰다. 갈릴레오는 자연에 존재하는 중력, 가속도 등의 개념을 인지하고 말로 서술하였지만, 뉴튼은 구체적인 시간(t)의 단위를 상정하여 이를 공식화했다. 그의 공로는 모든 운동을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시간’이 우주 공간의 중심에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데, 이 확신 속에 이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은 리듬이 제거된 채 동질화되어 버렸다. (이 동질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작업이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 분석>이다) 이와 같이 과학은 측정단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출발조차 할 수 없다. 과학은 결국 '자연의 수학화’가 아니던가. 이런 점에서 신학자 월터 윙크의 표현대로 뉴튼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발명한’ 것이다. 누군가가 시간과 공간에 기준을 세우고 나머지를 재배열하는 식으로 과학을 시작했고, 그것으로 우리의 시공간을 분절시켜 삶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 공간을 대수적인 수로 환원시킨 기하학이 오래 전부터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밀접하게 대입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와서다. 앙리 베르그손의 말대로, 우리가 지각하는 시간의 관념은 (이미 어떤 측정 단위로 양화(量化)되어 버렸기 때문에) 사실 시간이 아니라, (시계바늘의 거리처럼) 공간적 속성으로 치환된 시간에 불과하다(여기서 베르그손은 자신의 고유한 사유인 ‘지속’ 개념을 주장한다). 우리는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가 지나야 퇴근할 수 있다. 동일한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와 식사를 하고, 다시 시계에 의해 통제되는 오후 근무시간으로 투입된다. 집에서 아무리 달래도 밥을 먹지 않는 아이도 학교에 가면 얌전히 급식대에서 밥을 받아 시간 내에 식사를 잘 마친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이 애초에 왜 정해졌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은채 말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공간 어딘가에 좌표로 존재하는 대상일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근대적 주체를 발명한 데카르트가 바로 수학적 좌표를 생각해낸 사람이 아니던가) 그리고 시공간은 기계화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의 한 명인 르 코르뷔제는 ‘집이란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기계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20세기 초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근대란 인간의 삶을 효율성이 지배하는 거대한 기계로 환원시키는 작업이었고, 건축물이란 그 연장선상에서 공간을 구획시키는 기계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와 가타리 역시 근대의 모든 산물은 ‘기계와 기계의 이항접속’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한다. 예컨데 밥을 먹는 일은 수저-기계와 입-기계의 접속이고, 자동차 역시 사람들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기계인 셈이다. 인간은 가정, 회사, 거리, 술집, 교회을 전전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탈영토화’하고 ‘재영토화’ 한다. 이러한 배치가 안정화되면 그 사회는 다시 커다란 기계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공간적 신체’(르페브르)이며, 공간의 생산물이 된다. 선생/학생, 의사/환자, 목사/성도는 학교, 병원, 교회라는 거대한 기계적 공간에 부합하는 신체로 가공되고 변형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계는 그 본질상 불가사리처럼 계속 커지고 비슷한 기능을 가진 주변의 사물들을 통합해 가게 되는 것이다. 한국 대형교회의 탄생은 결국 효율성과 시스템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어두움에 거하라"


       사실 시간과 공간의 구획화가 불완전했던 전근대 시대에는 자기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국가와 민족의 개념도 선명하지 않았다. 근대는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가서 쉬던’ 시대에서, ‘분, 초 단위까지 관리되며 노동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르 코르뷔제의 말대로 집이 거대한 기계라면, 인간의 의식 역시 기계화, 시스템화 되어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의 개념은 이와 달라야 한다. 집은 인간이 안식하는 곳이고, 기계의 전원을 꺼야 하는 곳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독교는 ‘빛에 거하라’는 말을, 어둠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 억압을 정당화하는 목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리고 근대는 그 ‘빛'을 기계, 과학, 효율성으로 재해석했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끈 어둠 속에서서만 쉴 수 있다. 효율성과 이유를 떠나, 우리는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존재를 필요로 하고(그래서 신이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다), 불을 끄고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 내면에 학문적인(위상학) 공간성을 최초로 부여한 프로이트가 전기충격요법이나 최면을 거부하고, ‘자유연상법’(조명을 줄이고 편하게 누워 이야기하게 하는 것)을 정신분석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도입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가정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효율성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원형에 사로잡혀 자신의 의식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계산 가능성’을 신봉하는 근대의 기획은 인간의 상상력이나 직관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형이상학이나 종교는 그것들과 함께 외부로 내몰려 버렸다. 그러나 인간은 이와 같은 기계의 시대를 얼마나 견딜 수 있었는가. 극단적 방식(자살)의 탈주가 급증하고 있고, 기계의 부속으로 자녀를 대하던 부모에 대한 반발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센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근대적 공간이 형성한 근대적 ‘의식’은 이제 그 이면의 무의식의 반발과 그로 인한 부조화로 자신의 좌표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근대적 주체가 실재가 아니라, 담론의 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구조주의자들의 분석 이면에는, 그 주체를 존재하게 하는 의식의 불완전성과 편파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의식은 다분히 공간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직선이 아닌 공간(삐뚤어진 액자, 굽어진 방)을 견디지 못하는 근대 인간의 의식은 분명 기하학적 산물 그 이상으로 평가받기는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가정, 그리고 그 집합인 주거 공동체 공간의 의미는 이와 같은 반(反)기계적 성향을 지닐 수 밖에 없다. 미셸 세르토는 공간의 감시로부터 탈주하여 도시를 가로질러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공간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동선을 만들고 우리의 일상을 그 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훈육한다. 공간은 우리의 움직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고, 매 단계마다 이항접속을 실행한다. 이 동선으로부터의 탈주는 용기를 필요로 하며, 전혀 예측되지 않은 방향으로의 전개가 요구된다. 공간의 질서와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화하는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르며(그래서 천재들은 어쨌거나 우리의 언어 체계 안에 존재한다), 공간에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고, 가로지르고, 사각지대를 찾고, 허를 찌르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전혀 새로운 경로, 허를 찌르는 상상력, 어떤 무조건적이 것, 효율적이지 않은 것, 외부로부터의 은혜, 어두움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시간의 구획화를 무시한 채 출퇴근 시간, 휴가 일정을 자유롭게 하고, 오후 일과 중 몇 시간을 사무실 불을 소등하고 자유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외국의 일부 기업들의 생산성이 우리보다 훨씬 높고, 아이디어 개발과 특허 출원이 급증하는 것은 무의식으로부터 이런 직관의 힘을 꺼내는 방식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이런 ‘어두움’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우리의 구원은 이 영역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구현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가정, 그리고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와 공동체를 허용하신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두움 속의 안식’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성품을 담는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 생산의 시급성


       이런 의미에서, 두 번째 건축을 시도하면서 우리 공동체가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바로 설계였다. 13년 전에는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었다. 우리가 경험했던 공간은 아파트 형태(넓은 거실, 방3, 화장실2, 베란다)의 구조뿐이었고, 그 이상을 상상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59%가 살고 있는(비슷한 구조의 빌라를 포함하면 80%) 아파트는 사실 가장 전체주의적이며 가부장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에서는 개인의 삶은 보장받기 어려우며, 불을 끌 수 있는 어둠의 자유 역시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안식할 수 없는 공간에서 우리의 무의식은 더 깊이 억압되고, 그로 인해 외부의 기계적 삶에 억압된 의식은 가정에서조차 안식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아파트는 동일한 형태의 가옥 구조 속에서 늘 집 값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공동체가 아닌가. 그 허위적 소속감과 만족감, 자괴감이 안식을 줄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서로를 위로하는 대화, 자기를 성찰하는 기도,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내면을 정돈하는 독서가 가정 내의 어떤 공간에서 가능한가. 가정이 어렵다면 공동체 내의 어떤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는가. 우리의 ‘정신승리’로는 가능하지 않은 더 큰 원인이 존재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겠는가. 해가 거듭될 수록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래서 2015년 봄에 우리는 다시 서울을 벗어난 외곽에서 땅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소가 정해지자 6개월에 가까운 기간동안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필요를 쏟아 놓고 설계에 집중하였다.   

       르페브르는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라는 칸트, 뉴튼의 생각을 거부하고, 공간이 바로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생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 생산의 방향을 몇 가지로 설정하였다. 우선 구성원 각자의 사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가족이라해도 서로 방해할 수 없는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우선 가정 내에서 전시용으로 불필요하게 확장된 큰 거실을 포기할 필요가 있었다. 큰 거실은 대형 TV를 멀리서 보는 즐거움과, 외부 손님들이 가정의 경제력과 화목함을 느끼게 할 미장센을 연출하는 용도 외에는 실제적인 목적이 없는 장소로, 주로 가부장적 존재가 TV리모콘을 들고 혼자 소파에 누워있기 일수인, 그리고 가족들이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죽은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 외에는 전체 집의 면적 대비 이렇게 거실이 큰 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번째는 이와 반대로 공유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가정 바깥에 존재해야 하는데, 이것은 첫 번째 방향(사적 공간의 확보)과 상충되지 않기 위해서다. 공유공간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이며, 외부에 개방하고 타인을 환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적공간에서 일어나기 힘든 환대가 공적 공간에서는 가능해진다. 이것은 공적 영역이 사라져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투쟁의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물의 지하에 넓게 땅을 파고 다용도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것이 근린생활시설로 신고가 되어 준공허가를 받는데 많은 고생을 하기는 했고, 생각보다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지만, 이 공간이 공동체와 마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얻는 것이 훨씬 많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탈주 과정


       각 가정의 설계에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가정마다 모든 공간의 타일, 벽지, 가구, 부엌, 전기등, 블라인드, 바닥재, 소품을 직접 선택했고, 외부에서 조달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리는 그들의 의사를 가능하면 존중해 주기로 했다. 특히 사적 공간의 확보와 가정 간의 선호 공간점유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를 수 차례 변경하면서 결국 우리는 2층~5층까지 한 가정이 사용하는 ‘땅콩집’ 형태의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복층의 답답함을 없애기 위해 반(半)층씩 공간을 조성하는 스킵플로어(skip floor)방식을 도입해서 독특한 공간을 만들었다. 오르내리기 힘든 점도 있지만, 모두가 방해받지 않는 각자의 안정된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이 더욱 중요했다. 이웃과의 층간 소음 갈등을 걱정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특히 설계하는 과정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공간의 필요성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공간설계 아이디어들이 쏟아졌고, 우리 집에서는 전혀 필요없다고 느꼈지만 다른 집에서는 반드시 만들기를 원하는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건물을 같이 세우는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점과 성향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는 소득도 있었다. 이것은 앞의 글에서 강조한 공동체의 ‘임의적 특이성’ 또는 ‘다중성’을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정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는 획일화, 전체주의화 되어서는 안된다. 구성원들의 개성과 요구가 살아 있고, 그것을 서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정이란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핵심을 리더십, 규약, 목표의식, 비전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를 수용하는 성숙함이다. 우정은 자선이나 환대를 넘어서는 가장 성숙한 사랑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차이에 대한 인식은 향후 공동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공동체는 '원래 그래야만 하는’ 형식이나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구성원들의 개별적 차이가 융합되어 형성된다. 그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공동체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다중의 공동체였다.

       이제 다음 글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공동체 공간에서의 삶과,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숙제인 교회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묶어주고 지평융합을 이루는 힘은 바로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에 있다. 이것은, 역사성에 매몰되어 어떤 지속적이고 일관된 의미도 생성해 내기 어려웠던 철학적 해석학에 반(反)하여 움베르토 에코가 주장했던 ‘의미론적 동위체(isotophy)’와도 같은 것이다. 시대마다 용어와 해석이 달라지더라도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항상 의미를 찾고자 하며, 시대적 언어를 초월해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공동체의 좌표는 동시대적 관계와 역사적 연계 속에 생성된다. 따라서 ‘공유된 가치’는 반드시 공동체 스스로의 노력으로 시대마다 다른 언어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것은 해석의 과제임과 동시에 실천적 책임이기도 하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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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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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2]


공동체의 해석적 순환



 

최규창[각주:1]


공간, 장소, 거처


       많은 사람들은 보편적 ‘공간'에 의미가 부여되면 ‘장소’, 즉 ‘관계공간’이나 ‘역사공간’으로 변화된다는 점을 인식했다. 괴테는 '들판과 숲과 바위와 정원은 언제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가 그곳들을 장소로 만든다.’고 노래했다. 물건이나 사물에 의미와 목적이 부여되면 ‘도구’가 되듯이, 인간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성의 좌표 속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실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존재론을 공간적으로 모두 설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유에 실천이 첨가되지 않으면 어떤 한계를 넘어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속도’의 관점으로 근대성을 사유한 폴 빌릴리오도 오늘날과 같은 초고속 이동수단들과 광속 인터넷, 그리고 개인의 사생활까지 가속화시키는 스마트폰의 시대는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도 자체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정교하고 흥미로운 분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무지막지한 속도의 중독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예언하지 못했다. 원리조차도 새로운 맥락을 만나면 시효가 소멸되는데, 그 결과 그것은 원리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정리에 불과한 것이 된다. 공간이 장소로, 물건이 도구로, 존재가 실존으로 전환되는데는 사유나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여기에는 경험으로 대변되는 일종의 시간성이 필요한데, 그로 인해 공간과 장소는 어떤 변증법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결국 우리에게는 인생의 의미를 담지하는 ‘중요한' 장소, 즉 ‘거처'가 필요한 것이다.  

       수 년 전, 도시의 삶에 적응하기 힘든 경제적 여건에 처한 몇 젊은 부부들이 거주할 장소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중, 울산 도심에서 떨어진 한 외진 지역에 지어진 조그마한 미분양 아파트 단지를 발견했다. 분양이 되지 않고 방치된 곳이어서 시행사에서도 그들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에 장기 임대를 해 주었고, 심지어 몇 백 만원의 보증금과 휴대폰 사용요금과 비슷한 수준의 월세만 내면 십 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계약도 체결해 주었다. 일단 거주가 해결되자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미 가지고 있던 목공기술, 도배기술, 커피 만들기, 운전면허 등을 활용해서 닥치는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생업도 안정되어 갔다. 비록 도심까지 진입하는데 다소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거처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이 모든 불편함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장점이었다. 현재 이 공동체에는 열 가정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단단한 가정 교회가 형성되었고, 경제적 부담없이 부모를 모시는 집이 생겨났고, 외부 손님을 수용할 게스트하우스도 마련되어 있다. 이 공동체의 특징은 소득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버는 돈을 한 군데로 모으고 개인당 일정 금액의 용돈을 매 달 받는다. 공동으로 모인 소득으로 모두에게 의료비, 교육비, 주거비 등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있다. 점점 이 공동체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고, 사람들의 일거리와 가용한 생업 아이템들도 증가하고 있어서, 요즘은 일을 줄이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딘가에 취업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자금을 고려하더라도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더 버는 것 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공동체를 더 단단하게 이루는 쪽으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단 거처가 안정되자, 젊은 부부들은 아기를 낳기 시작했고, 아이를 입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소유가 더 늘어난 것도 아니고,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도 아닌데, 불편한 위치에 있는 저렴한 주택에 함께 모여 삶을 공유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심 속의 가정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삶의 요소들인 가정꾸리기, 교회 유지하기, 생업에서 살아남기 등이 자연스럽게 한꺼번에 해결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포기한 것은 단지 번듯한 직장에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삶 뿐이었다.   


환원근대 속에 상실된 공간


      앤소니 퀸이 주연한 <산체스의 아이들>이라는 영화의 OST 메인 타이틀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희망과 긍지에 대한 꿈이 없다면 사람은 죽을 것이다. 그의 몸은 움직일지라도 그의 마음은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땅이 없다면 사람은 꿈꿀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존엄성을 가지고 살 장소가 필요하다.”  


       안식할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다. 거처가 없는 인간은 노마드 상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의미를 가지는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인생의 터를 세우는 ‘거처'를 의미한다. 아마도 1960년대 이후 압축근대 시대에, 대대로 살아오던 거처를 떠나 도시로 밀려들어와 도시 빈민이 된 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유사 거처’(pseudo-dwelling place)의 역할을 제공했던 곳은 바로 ‘교회’였을 것이다. 새벽마다 하늘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울부짖지 않으면 하루도 견디기 힘든 시절이었다. 자연스럽게 교회당은 ‘성전’이 되었고, 집보다 더 깨끗하고 거룩하게 관리해야 할 ‘거처'가 되었다. ‘70~'80년대에 종종 들리던 뉴스처럼, 자신의 장기를 팔아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일부 교회와 신도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믿음이라고까지 해석했다. 1960년대 이후 50여년간 한국 사회는 ‘2년 단위 전세’와 ‘아파트 중심의 주택공급’,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선분양제’, ‘아파트 가격 폭등’ 등에 힘입은 빈번한 주거지 이동전략을 통한 서민 재산 증식으로 나라를 유지해 왔다. 2년 단위의 잦은 이사는 우리의 의식에서 거처를 소거시켰고, 동일한 구조로 설계된 아파트의 평수를 늘려가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거처가 되어야 할 집은 중산층 진입과 국가의 복지 의무, 자녀 학자금, 교회 헌금을 모두 떠받치는 재원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전 국민의 59%가 아파트에 살고 있고, 85%가 동일하게 설계된 모양의 주택에서 살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는 결국 주거공간의 획일화를 통한 전체주의를 이루어냈고, 잦은 이주를 통한 상실의 정치를 구현했다. 한국의 교회 성장 역시 이 지점에서 동일한 혜택을 입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안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반인 거처를 (늘 옮겨 다니는) 집에서 찾지 못하고 교회나 다른 동질집단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가 ‘상대적 공간’ 개념을 통해 제시하듯이, 공간 속에서 생성되는 의미는 관찰자의 관점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김덕영은 <환원근대>에서,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모든 가치와 전통을 ‘돈이 되는’ 것과 맞바꿈으로써 철저하게 자본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대상/영역의 측면에서는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주체/담지자의 측면에서는 국가와 재벌로 환원되는 이중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근대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지표인 분화와 개인화는 억압되고 저지되었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세계는 결국 '공간의 획일화'와 '거처의 상실'을 수반하게 된다. 개인이 존엄성을 가지고 꿈을 꾸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존엄성과 꿈은 가치의 다양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은 다시 말해, 거처의 해체를 통한 전체주의를 도모하는 힘과 그에 저항하는 힘 간의 ‘공간충돌' 또는 ‘공간투쟁'을 상정한다. 우리는 외양으로는 끊임없이 돈을 추구하지만, 내면으로는 계속 거처를 찾는 분열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거처 탐색의 실패는 ‘헬조선’과 ‘세계 최고의 자살율’로 나타나고 있다. 절대적 빈곤 시대에도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 모두가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는 현대에 와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고통 : 가치관의 충돌


       이제 여기에 덧붙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거처를 이루는 것은 공간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사람들이기도 하다. 특정한 공간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관계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처가 된다. 그것은 실재적으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개인이 온전한 참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참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은 ‘의식’(意識)과 ‘이성’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내면의 ‘무의식'과 영적인 에너지의 발현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반드시 어떤 형태의 고통과 불편함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반드시 앞 세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삶의 지혜와 충돌을 야기한다. 인간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든 불편함과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한 시대가 낳은 지혜란 그 경로를 압축적으로 구성한 일정한 구조와 패턴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우리가 건축을 통한 주거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결심했을 때, 구성원들 전부가 양가 부모님들에게서 받았던 압박과 우려는 모두 여기서 기인했다. 한국전쟁을 겪고, 모든 것이 부족했던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그 분들에게 있어 돈을 함께 투자해서 벌이는 ‘경제적 융합 행위’는 실패가 자명한 매우 위험한 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돈을 거래하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게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돈이 속이지 사람이 속이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속이는 사람은 계속 속인다.’, ‘실패한 사람은 계속 실패한다.’, ‘돈의 유혹을 이길 장사는 없다.’는 것을 삶의 지혜로 터득한 이들에게, 전재산을 걸고 공동체를 건설하기로 한 자식들의 결심은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행위로 비춰졌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심지어 토지 구매잔금을 주기 전날 우리 집에 오셔서, ‘토지 계약금을 포기하고 공사를 하지 마라’고 강하게 충고하셨다. 당신 스스로도 평생 교인들 빚보증을 서주고, 수 많은 사기를 당해 오면서도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셨지만, 자식 마저 그런 상처와 배신 속에 인생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답답했다고 하셨다. 나는 ‘저와 우리 친구들을 믿어달라'고 부탁드렸지만, 교회 내에서도 이런 사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평생 보지 못했던 아버지는 설득을 포기한 채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셨다. 과연 ‘한 번 실패한 사람은 계속 실패한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그냥 부모의 삶의 지혜가 농축된 격언들을 따라 살면 인생에 큰 문제가 없이 편안해질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의식’과 ‘이성’이 지배하는 격언들이 우리에게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우리의 선택은 자명했다.   

       그러나 이후의 과정은 우리에게 기성세대의 격언들이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해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였다. 먼저 건축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격언은 단순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가는 수 많은 이해관계와 구조적인 악으로 가득하다. 애초의 계획과 설계대로 진행되는 것은 거의 없었고, 건축이라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낭패를 거의 모두 경험해야 했다. 목적에 맞는 땅을 찾는데도 반 년이 걸렸지만, 세 필지를 사서 병합하고자 했던 계획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땅을 중개한 부동산컨설팅사는 애초에 필지병합을 간단한 과정으로 설명했지만, 현실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었다. 결국 구매한 토지의 일부를 포기하고 땅을 설계해야 했고, 그 때문에 막대한 재정적, 시간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토지경계가 잘못 측정되어서 공사가 몇 달 중단되기도 했고, 결국 설계사, 시공사, 감리사도 교체되었다. 제대로 시공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교대로 휴가를 내고 현장에 상주해야 했고, 구청 공무원, 시공사 소장과의 말다툼은 일상이 되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각자의 재정압박이 심해져서 서로 돈을 융통하면서 버텨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건축이 완료되었지만, 주택 세 채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다시 큰 재정손해와 2년이 넘는 지루한 법정싸움이 이어졌다. 건축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에 나가 앉을 뻔한 위기가 몇 번 있었고, 우리는 퇴근 후 밤마다 모여 기도회와 대책회의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때의 적막함이란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참담했다. 이런 과정들이 반드시 수반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부모님들은 우리를 막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런 류의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자기 시대의 아포리즘으로 형성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이 터널을 지나왔고,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한 번도 포기하거나 서로를 원망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 이것이 부모님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점이고, 우리 세대에 새롭게 형성된 삶의 해석방식이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14년 반을 함께 거처를 이루었다. 물론 경험이 쌓이고 나서의 공정은 이와 같이 않을 것이다. 실재로 현재 진행중인 2차 공사는 마무리를 한 달 앞두고 있는 현재시점까지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경험이 전무했던 우리들은 모든 과정마다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부모님 세대의 아포리즘이 현실적이라는 깨달음을 준 두 번째 계기는 우리의 공동체 생활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갈등과 어려움이었다. 공동체는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에 동의한 사람들이 형성하는 일종의 배타적 멤버쉽 개념을 포함하지만,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한편으로는 서로의 개성과 ‘임의적 특이성’이 살아 있는 충돌과 투쟁의 장(場)이기도 하다. 결혼이 개인의 결합이나, 양가 집안의 결합을 넘어, 수 십년간 따로 형성된 두 공간의 결합이듯이, 공동체 역시 교집합과 합집합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형성되어가는 하나의 지평융합의 완성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갈등에 의해 해체되든지, 아니며 공존할 수 있는 나름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주거 공동체는 달리 다른 곳으로 도망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후자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비교의식이다. 다섯 가정이 서로에 대해 깊이 알게 될수록 각 방면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들(best practice)에 집중하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가정과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배우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졌고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자녀들을 비교하면서 생기게 되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웃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기 자녀에 대한 주관적 낙관주의로 육아와 교육의 스트레스를 이겨 왔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 아이들의 특징과 개성, 차이는 숨길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시까지도 다양성의 가치를 삶으로 배우지 못했던 우리들은 여전히 세속적 기준으로 아이들과 우리의 삶을 재단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우리들은 이런 어려움들이 일종의 지평융합을 통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하비가 ‘상대적 공간’ 개념을 통해 제시하듯이, 공간 속에서 생성되는 의미는 관찰자의 관점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김덕영은 <환원근대>에서,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모든 가치와 전통을 ‘돈이 되는’ 것과 맞바꿈으로써 철저하게 자본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대상/영역의 측면에서는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주체/담지자의 측면에서는 국가와 재벌로 환원되는 이중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근대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지표인 분화와 개인화는 억압되고 저지되었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세계는 결국 '공간의 획일화'와 '거처의 상실'을 수반하게 된다. 개인이 존엄성을 가지고 꿈을 꾸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존엄성과 꿈은 가치의 다양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은 다시 말해, 거처의 해체를 통한 전체주의를 도모하는 힘과 그에 저항하는 힘 간의 ‘공간충돌' 또는 ‘공간투쟁'을 상정한다. 우리는 외양으로는 끊임없이 돈을 추구하지만, 내면으로는 계속 거처를 찾는 분열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거처 탐색의 실패는 ‘헬조선’과 ‘세계 최고의 자살율’로 나타나고 있다. 절대적 빈곤 시대에도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 모두가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는 현대에 와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순환과 융합 : 과정으로서의 공동체


       함께 하는 시간과 나눔을 통해 우리는 솔직해 지는 법을 배웠다. 그러자 서로에게 잘 보이거나, 가면을 써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자신의 인격과 자기 가정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모임 중에 부부싸움이 빈번히 일어나고, 부부간에 둘이서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전체 모임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자기를 발견하는 경험이었다. 성장은 이성과 의식만이 아닌, 무질서와 무의식에 의해서 촉발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면이 질서정연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혼돈과 무질서가 함께 공유되어야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주인공 타일러 더든은 ‘남자는 싸워봐야 진정한 친구가 된다’고 주장한다. 싸움은 무질서의 본능이 올라오는 경험이자, 광기의 행위다. 예수가 우리에게 평화가 아닌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신 것처럼(마태복음10:34) 가정 내의 다툼, 공동체 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오지만, 결국은 서로를 더욱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힘이 된다. 주거 공동체는 달리 도피할 곳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갈등과 고통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융합과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이성적인 대화로 갈등을 설명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차원이 아니라, 여전히 갈등과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은 채 섭섭함과 분노가 남아 있지만, 서로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고, 더 깊은 정과 신뢰로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체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근대적 주체로 형성된 근대적, 시스템적 공동체에서 경험하기 힘든 새로운 공동체 이해일 수 있다. 우리는 그냥 그런 과정 안에 머물기로 했다. (공동체 내의 무의식의 융합에 대해서는 3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공동체는 이제 우리에게 맞는 형태로 어떤 룰과 구조를 가지게 된다. 미로슬라브 볼프가 <배제와 포용>에서 말하듯, 서로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도 힘들고, 멀어져도 어려워지는 것이 공동체의 속성이다. 흔히 '매우 가까운 관계'에 대한 환상을 갖고 공동체에 접근하지만 그것은 상처를 불러올 수도 있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면 자신과 상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사이에 타자를 수용할 공간을 갖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 타자가 바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외부의 타자일 수도 있고, 공동체 자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공동체에서는 항상 부분과 전체의 해석적 순환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공동체에서 생겨나는 구조와 룰은 공동체나 구조 자체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항상 구성원들이 참된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가변적이고 과정중심적이다.  

       하이데거나 가다머가 주장하듯이 인간은 자기 시대의 역사성을 벗어날 수 없고, 무전제적인 해석을 할 수 없다. 우리들 자체가 세계를 객체화할 수 없고, 세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경적 공동체’라는 것은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우리가 스스로 포함된 공동체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완벽한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다만 자기 시대를 참인간으로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대적 공동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역사적 예수'를 우리의 기준이자 '의미론적 동위체'(움베르토 에코)로 삼는 한계적 순환 속에서 탄생한 어떤 구조나 패턴, 룰이 공동체 안에 존재할 뿐이다. 이것 또한 구성원들에 따라 계속 변화될 것이므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강요하는 순간 우리는 해석을 멈추게 되고, 시대적 아포리즘에 사로잡혀 버리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울산 외곽의 공동체 역시 자기들에게 맞는 임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 방식들은 일반화되거나 다른 공동체에 강요될 수 없다. 공동체 내의 갈등이 해결되고 무의식적 차원의 공유가 일어나는 것으로 멈춘다면 우리는 계속 진화하는 공동체의 영속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떤 룰과 구조를 만들지만, 그 구조들이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계속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해 가는 것이 공동체의 속성이다. 사람은 공동체를 만들지만, 공동체 역시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돈을 벌거나, 외부에 내세울만한 자랑거리를 만들거나, 성공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예수의 삶을 쫓아가는 참된 인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홀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이 세상을 객체로 만드는 주객논리로는 모순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공동체에 속해야 하고, 그러한 해석적 순환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4년의 첫번째 스테이지는 우리와 공동체가 그런 방식으로 함께 영향을 주고 받는 남다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박하고 필수불가결한 변화의 요청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새로운 주거 공간을 설계하고 건축하면서 이제 공동체의 목적과 동력을 새롭게 점검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공동체 14년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다음 단계의 공동체를 어떻게 구상하고 세웠는지에 대한 새로운 사례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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