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빠 이야기’ 연구 동향 (1)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모두들 잘 알다시피, 예수가 사형을 선고받는 결정적인 현장에서 예수와 그 운명의 심판대에 잠시나마 함께 서 있었던 인물이 바로 바라빠이다. 오랫동안 교회의 설교 강단에서는 바라빠를 예수의 대속적 죽음의 첫 번째 수혜자이자, 모든 구원받은 죄인들의 실존을 상징하는 존재로 선언해왔다. 바라빠에 관한 최초의 주석이라 할 수 있을 베드로의 성전에서의 설교는 바라빠와 예수 그리스도 간의 아이러니한 운명의 역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분은 일찍이 그를 넘겨주었고, 빌라도가 그를 놓아 주기로 작정했을 때에도, 여러분은 빌라도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운 그를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증언하는 증인입니다”(행 3:13-15). 악테마이어에 따르면, 이렇게 불의가 버젓이 행해짐으로써 “예수에 대한 최상의 진리가 드러났다. 즉, 비록 죄가 없지만 죄인들이 살 수 있도록 예수는 바라빠와 같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은 것이다.”[각주:1]

그런데 정작 신약학자들, 특히 복음서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연구자들에게 바라빠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케리그마적 해석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매우 흥미를 끄는 주제였다. 그렇기에 바라빠에 관한 가장 이른 역사적 기록으로 간주되는 마가복음 15장 6-15절 본문은 총괄적인 “빌라도의 재판 이야기”(막 15:1-20) 안에서 구분되어 소위 “바라빠의 석방 이야기”로 불리면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이다. 이 글은 국내에 거의 소개된 바 없는 바라빠 이야기에 관한 서구 학자들의 연구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기 위한 목적에서 쓴 것이다. 부족한 글이나마 복음서의 바라빠 이야기가 갖고 있는 신학적 의미와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래본다. 이번 호의 글에서는 비평적 코멘트는 최대한 배제하고 일단은 정보를 소개하는 데 충실할 것이다. 서구 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결론적인 평가 및 필자의 “바라빠 이야기”론(論)은 다음 호 웹진에 실릴 글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될 것이다.

1. 바라빠, 범죄자인가 혁명가인가?

“바라빠라고 불리는 자”(막 15:7). 그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 이외에는 어떠한 자료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각주:2] 바라빠 이야기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는 주로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 왔다. 첫째는 그가 저지른 범죄의 성격과 관련하여 그의 정체를 규명하고. 나아가 이러한 정체에 기초하여 이 이야기의 역사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면서 그의 정체를 연구하고, 나아가 이 이야기의 역사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먼저 그가 저지른 범죄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살펴보자. 7절의 “동료 반도들과 함께(meta. tw/n stasiastw/n), 그리고 “반란 중에”(evn th/| sta,sei)라는 표현은 바라빠의 정체를 분명하게 시사한다. 먼저 등장하는 남성복수명사 ”쉬스타시아스테스“(sustasiasthv")는 긍정적으로는 혁명가, 부정적으로는 반역자 혹은 폭도의 일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바라빠가 그들 중의 일원으로서, 그 역시 혁명가 내지는 폭도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어 성서에서 ”민란“(개역한글, 개역개정), ”폭동“(표준새번역, 새번역), ”반란“(공동번역) 등으로 제 각기 뉘앙스가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고 있는 ”스타시스“(sta,sij)는 기본적으로는 ‘기립’(stand 혹은 standing)을 의미하고, 영어의 ‘stand’가 그러하듯이 유추적으로는 ‘위치’(‘존재’,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보다 함축적인 의미에서는 정치적인 입장, 특히 대중의 반란적 ‘봉기’, 즉 ‘민란’, ‘폭동’, ‘소요’(행 19:40) 등을 의미한다. 물론 다소 예외적이지만, 의견의 팽팽한 대립, 격렬한 논쟁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행 15:2).

한편, 마가는 바라빠의 명성에 관해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데 비해, 마태는 그를 당시에 잘 알려진 자로 묘사한다. 마태복음 27장 16절의 형용사 에피세모스(evpi,shmoj)는 긍정적으로는 ”유명한“ 혹은 ”괄목할만한“ 존재를 수식하는 표현이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의미에서 ”악명 높은“(notorious)의 뜻을 모두 갖고 있다. 마태는 마가가 소개하는 바라빠가 당시에 유명한 인물이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이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성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라빠가 민란 중에 구체적으로 누구를 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참여한 민란이 로마지배체제에 저항하는 정치적 성격의 집단행동이었으며, 살인이 동반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음은 분명하다.[각주:3]

많은 학자들이 이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성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와 같이 로마 지배체제에 무력으로 도전한 위험한 정치범을―아무리 명절과 관련한 특별한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군중들이 원한다고 해서 로마 총독이 쉽게 풀어 주었으리라고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상황은 또한 유대 문헌으로부터 추측되는 빌라도의 초상과도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오스(Roger David Aus)는 강력한 어조로 반대의 논거를 제시한다. ”빌라도는 군중의 변덕에 자신이 놀아나는 것을 허용할만한 인물이 아니었으며, 무엇보다도 거의 폭동에 달할 수 있는 제어 불가능한 반체제 인사를 쉽게 풀어줄 만큼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각주:4]

물론 바라빠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신뢰할만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예컨대, 마이어스는 비록 빌라도 시대보다 조금 후대이긴 하지만, 알비누스 총독 시절에 정치범이 사면된 예가 엄연히 있고, 어떤 위험한 인물의 처형에 대한 대중적 저항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그보다는 덜 위험하면서 동시에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다른 반체제 인사를 사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과열된 분위기의 맥락에서 상당히 있을 법한 일이라고 주장한다.[각주:5] 그러나 (대제사장들에게라면 몰라도) 빌라도에게 있어 예수가 바라빠 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었다는 주장은 복음서의 진술과 전혀 맞지 않다. 만일 마이어스의 주장대로라면, 바라빠가 그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듯이, 바라빠보다 더 위험한 예수와 그의 지지자들 역시 로마군대에 의해 함께 체포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빌라도는 자신을 찾아와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체포는커녕 그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줄 만큼 정치적 위험인물로서 예수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그에게는 예수를 반드시 죽일 이유도 그렇다고 반드시 살려줄 이유도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그러나 바라빠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만일 바라빠 이야기만 따로 떼서 놓고 본다면, 빌라도에게로 올라와서 그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은 바라빠의 동료 혹은 지지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빌라도가 그들을 전혀 문제 삼지 않고 협상했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믿기 어렵다.

2. 바라빠, 랍비의 아들인가, 압바의 아들인가?

한편, 바라빠라고 하는 인물의 이름에 주목한 연구들 역시 이 이야기의 역사성에 회의적인 쪽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그것은 바라빠라는 이름에서 발견되는 문학적 · 신학적 의미의 특이함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에 따르면, 바라빠라는 인물의 이름상의 독특성, 그리고 바라빠와 예수를 대조시키는 복음서의 문학적 기법 등으로 보건대, 이 이야기만큼은 원래의 역사적 전승(?)에 덧붙여진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각주:6] 왜 그런지 이유를 살펴보자.

지금까지 거의 정설화된 가설대로, 바라빠는 ‘성’이나 ‘개인이름’이 아닌 ‘부계적 이름’(patronymic), 즉 일종의 별칭으로서,[각주:7] 명백히 아람어인 Bar-Rabba(n) 혹은 Bar-abba에서 파생된 음역으로 인정된다.[각주:8] 먼저 ‘Barabbas'가 ’Bar-Rabba(n)'에서 파생된 음역이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랍비, 즉 선생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며, 결국 ‘저명한 선생의 아들’로서 단순히 ‘선생님’을 존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사람의 아들’이 ‘사람’을 의미하듯이, ‘선생의 아들’ 역시 ‘선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대 문헌들을 보면, 히브리어 ‘ben'과 같이, 아람어 ‘bar'는 ’선생‘으로 쉽게 동일시될 수 있었던 표현인 ’선생의 아들‘과 합성되어 다소 느슨하게 종종 사용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이틀린(Solomon Zeitlin)이 주장하는 것처럼, ’랍비의 아들‘이라는 용어가 70년 성전의 파괴 이후에야 즉, 랍비(적) 유대교(Rabbinic Judaism)[각주:9]가 성립되기 시작한 후에나 비로소 유행했다는 것, 따라서 제2성전 시대 유대교에 속하는 예수 당대에 그런 직함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각주:10] 코헨(Shaye. J. D. Cohen)에 따르면, 랍비라는 말은 “나의 선생님”이란 뜻이며, 본래(프랑스어의 monsieur처럼) 경의를 표하는 호격의 형태였다. 기원후 1세기 전반에만 해도 이 칭호는 대개 학생이 자신의 선생을 개인적으로 부를 때 사용했다(요 1:38). 그러나 70년 전쟁 이후, 즉 제2성전 시대 유대교 체제의 붕괴 이후에는 이 단어의 의미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차 “선생님” 혹은 권위 있는 자리에 있는 지도자(master)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서서히 2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러 이스라엘과 바빌로니아에서 방대하고 독특한 문헌, 특히 미쉬나를 창조해낸 유대계 사회의 일원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로 정착했다. 바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저명한) 랍비의 아들”이라는 개인 이름 외에도 별도로 쓰이는 호칭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바라빠‘라는 별칭이 예수 시대에는 사용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진다. 설령 사용되었더라고 하더라도, 그 이름은 ’랍비의 아들‘이라는 의미 대신에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각주:11]

이와 관련해, 마태복음에서 그 배후의 마태공동체가 자신들의 시대에 아람어 ‘abba'의 번역어로서 ’랍비‘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어 사용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본문이 있어 주목된다. 바로 마태복음 23장 8-10절이 그것인데, 이 본문에서 예수는 이미 시대를 앞서(?) ‘랍비’라는 전문화된 칭호가 사용되는 상황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데이비스에 따르면, 이 본문에서 차례로 언급되고 있는 단어들, 즉 8절의 ‘랍비’(r`abbi,,,), '선생‘(dida,skaloj), 9절의 ‘아버지’(pathr), 10절의 ‘지도자’(kaqhghth"), 이 모든 단어가 사실은 아람어 ‘abba'와 그것의 번역어인 ’rabbi'의 대용어로서 예수는 결국 이 중의적인 단어를 통해 그 어떤 누구도 ‘아버지’나 ‘선생, ’지도자’라는 칭호를 얻지 못하도록 했다.

이 전승이 정말로 예수에게서 기원하는 말씀인지 아니면, 마태가 창작해낸 것인지는 규명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마태공동체는 ‘abba' 혹은 ’rabbi'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어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것을 반대했고, ‘abba'라는 호칭의 특권적 사용을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돌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데이비스는 이 본문이 랍비적 유대교와 갈등하고 있는 마태공동체의 역사적 상황뿐만 아니라, 랍비적 유대교 성립 이전에 이미 예수가 자신의 시대에 ’bar abba'로 불렸음을 반향하고 있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예수는 하나님을 자신의 시대에 ‘abba'로 개념화했던 매우 독특한 인물이었고, 그래서 그에게는 어쩌면 ’바르 압바‘라고 하는 별명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대의 그리스도교에 의해 ’바르 압바‘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Son of God, Jesus)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데이비스는 주장한다.[각주:12] 다소 지나친 상상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바라빠”를 예수와 보다 긴밀히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데이비스의 논의는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잠시 여기서 ‘바라빠’의 정체를 탐구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참조점이 되는 마태복음 27장 16-17절을 살펴보자. 흥미롭게도 마태복음의 일부 초기 그리스어 사본과 초기의 번역문들에서 16절 바라빠 앞에 ‘예수’라는 단어가 추가되어 있다. 그는 마가복음에서처럼 단순히 ‘바라빠’가 아니라 ‘예수 바라빠’(VIhsou//n Barabba//n)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인 27:17에서도 역시 '예수 바라빠‘(VIhsou/n to.n Barabba/n)로 지칭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초기 교회의 변증가 오리겐(Origen)은 이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많은 사본들은 바라빠가 예수라고 불렸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어쩌면 이러한 생략은 옳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를 그는 성서 어디에서도 죄인을 가리켜 예수라는 고귀한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라는 이름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흔한 이름이었는지를 전혀 몰랐던 것 같다. 그러나 고대의 사본을 필사했던 이들이 남겨 놓은 방주에 보면 “내가 마주친 다수의 고대 사본에서 바라빠는 ‘예수’라고도 불린다”는 표현이 발견된다. 이러한 표현들은 후대에 사본의 필사과정에서 점차 삭제되었을 것이 확실하다.[각주:13]

더욱이 사본학적 비평의 원리에 따른다면, ‘바라빠 예수’라고 적혀 있는 사본이 더 오래되었고 원본에 가까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사본학자들은 원문 복원을 위해서 여러 판단 기준들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방법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제1원칙은 “lectio difficilior potior”, 즉 더 어려운 독법(reading)이 우월하다는 판단 기준이다. 이 판단 기준은 사본 필사자들이 어려운 표현들을 쉽게 바꾸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것이다.[각주:14] 그러므로 마가복음의 본문 역시 어쩌면 초기에는 ‘바라빠라 하는 예수가 있었다’로 되어 있었을 것이나, 원시 그리스도인 필사자가 민란을 일으킨 살인자를 감히 예수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예수’라는 단어를 생략해 버렸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의 견해는 충분히 설득력 있다.[각주:15] 어쩌면 마가복음의 15:7의 원래 형태 역시 현재와 같은 “o` lego,menoj Barabba/j””(바라빠라고 불리는 자)가 아니라 “VIhsou/n lego,menoj Barabba/j”(바라빠라고 하는 예수)였을 것이다.

바라빠에 관해 선구적인 연구를 남긴 리그(H. A. Rigg)는 마태복음의 바라빠 예수와 그리스도 예수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있어 ‘lego,menoj’(legomenos)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리스어 원문에는 마태복음 27장 17절 하반절이 “ÎVIhsou/n to.nÐ Barabba/n h' VIhsou/n to.n lego,menon cristo,nÈ”“(바라빠 예수냐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냐?)로 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의 초기 사본 일부 가운데는 “바라빠라고 불리는 예수냐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냐?”(VIhsou/n to.n lego,menon Barabba/n h' VIhsou/n to.n lego,menon cristo,nÈ)로 되어 있는 사본이 있음을 발견했으며, 이를 통해 ”바라빠라고 불리는 예수“와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 간에 완벽한 대립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말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lego의 수동태 현재분사로서 “레고메노스”(불려지다, 말해지다)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마 1:16 - VIhsou/j o` lego,menoj cristo,j)에서처럼 직함이나 별명 앞에 붙어 그것을 수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레고메노스가 주로 수식하는 것이 개인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수식하는 것은 이름 대신에 친숙한 비공식적 호칭 내지는 직함(title)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바라빠는 이 죄수의 본명이 아니라, 일종의 별명 혹은 직함 같은 것이었으며, 마태복음의 일부 사본들이 보여주듯이, 어쩌면 그의 본명은 정말 ‘예수’였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나, ‘압바의 아들 예수’라는 이름은 마가복음이 묘사하는 나자렛 예수의 이미지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만일 우리가 마가복음 15장 6-15절의 본문을 알지 못했다면, ‘압바의 아들 예수’를 영락없이 나자렛 예수에 대한 칭호로 이해할 법도 하다. 랍비적 유대교 시대의 문헌에서 종종 발견되는 ‘랍비의 아들’로서 ‘바르 압바’라면 몰라도, 제2성전 시대 유대교 사회에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갖는 ‘바르 압바’라는 별칭을 찾아볼 수도 없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마가복음에, 그것도 그 별칭을 가진 자의 본명이 ‘예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바라빠의 정체에 관한 논란은 더욱 가중된다.

주지하다시피, ‘abba’(압바), 즉 헬라어로 ‘Αββα’라고 신약성서에 등장하고 있는 단어는 예수와 바울이 하느님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했던 말로써, 아람어 ‘אבא’의 음역이다. 마가복음에서 이미 예수는 그의 하느님을 “압바 아버지”로 부른 바 있다(막 14:36).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예수 당시에 이 단어를 주로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한 사실에 주목했다. 예컨대,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풀어 번역한 팔레스타인 탈굼(Palestinian Targums)의 창세기에 어린 이삭이 아브라함을 “압바”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22:6, 10). 예레미아스는 “압바”라는 아람어 단어가 유아들의 언어라고 주장하였다.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압바, 나한테 뭘 줄거야?” 하는 식으로 친밀한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와 같은 용어를 굳이 개인 이름으로 사용하고, 또 그런 이름을 가진 아버지를 따른 “Bar-abba”라는 부계적 이름 혹은 별칭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바르 압바 예수”는 대체 어디서 나온 인물인가?

3. 바라빠 예수 vs 그리스도 예수

리그(H. A. Rigg), 맥코비(H. Z. Maccoby), 윈터(Paul Winter), 데이비스(Stevan L. Davies), 메리트(Robert L. Merritt), 오스(Roger David Aus)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바라빠‘ 연구들은 마태복음의 일부 사본에서 발견되는 “예수”라는 그의 이름을 중요한 실마리로 삼아, 사복음서 수난사화에 모두 등장하는 바라빠 (예수)라는 인물이 예수의 무죄함과 결백함을 두드러지게 하는 문학적 장치, 즉 대조인물(foil)로 설정되었다는 주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왔다. 이 학자들은 비록 그들 각자의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유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즉, 기본적으로는 유월절 사면 관례 같은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바라빠 이야기는 고도의 신학적 의도를 갖고 생성된 문학적 장치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를 논증하기 위해 마태복음의 평행본문을 주목했다. 그 결과 권위를 인정받는 마태복음의 오래된 사본들과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의 원문 역시 단순히 바라빠를 바라빠로만 표기하지 않았고, “압바의 아들 예수”로 이해될 수 있는 “예수 바르 압바”로 표기되어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나아가, 역사적으로 확신하건대, 빌라도의 재판은 실제로 있었지만, 그 재판 중에 그가 두 죄수 중 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무리에게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예수의 재판 당시에 바라빠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별도의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혹 어떤 반란자들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재판과 예수의 재판은 무관하며, 오히려 신약성서에서 ‘압바’라는 하나님에 대한 독특한 칭호의 용례를 보건대, 나자렛 예수가 그의 동시대 사람들에게 “예수 바르 압바”로 알려져 있었을 것이며, 결국 바라빠는 나자렛 예수의 정체성의 또 다른 일부로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와 바라빠로 불리는 예수는 동일인물이며, 초기 그리스도교는 일종의 예수의 ‘도플갱어’(Doppelganger)를 만들어내어 그럴듯한 역사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이 축적될수록 바라빠 이야기가 창작된 역사적 맥락에 관한 가설들도 훨씬 정교해져가고 있다.

바라빠 이야기를 문학적 창작이라고 보는 학자들에 따르면, 마가가 이러한 이야기를 만든 배경에는 로마제국과 유대교 사이에서 정치적 딜레마를 겪고 있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삶의 자리가 존재한다. 그들은 로마제국이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것을 변호해주기 위해, 결국 유대인들을 희생양 삼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맥코비(H. Z. Maccoby)는 유월절 사면의 이야기가 상상력에 의한 허구에 불과하며 실제로 그런 일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던 리그와 윈터에 동의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예수와 원시그리스도교를 반(反)유대적인 동시에 친(親)로마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변증적 관심에 의해 채색되었다고 보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윈터가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이 변증적 이야기가 창작된 역사적 배경을 더욱 세련되게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맥코비는 우선 마가복음의 저자가 군중들을 향해 갖고 있는 모순적인 태도를 주목한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진작부터 예수를 없애 버리고자 했으나, 군중들이 두려워서 그것을 감히 실행하지 못했다. 군중들이 예수를 지지하고 보호했기 때문이다(막 11:18; 11:32; 12:12; 14:2). 그런데 15장 6-15절의 본문에서는 갑작스럽게 군중들의 태도가 돌변하여 예수를 처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맥코비는 이해하기 힘든 이러한 전환의 배후에는 유대인 전체를 정죄하고 저주해온 후대의 그리스도교적 사고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예수 사후의 시대에 그리스도교회는 예수 죽음의 책임을 유대인 지도자들에게만 돌렸을 뿐, 여전히 평범한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유대인들의 저항과 핍박이 거세지면서 점차 십자가 처형의 책임을 유대인 전체에게로 확대해나갔다는 것이다.

맥코비가 그리고 있는 빌라도 법정과 관련된 역사적 진실은 이런 것이다: 예수 당시의 빌라도 법정 바깥에서는 여전히 다수의 유대 군중들이 예수를 지지하고, 그의 사면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법정 안에서는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준 대제사장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를 지지했던 유대의 평범한 대중들이 예수 사후에는 예수를 잊고 다시 유대교 안으로 돌아가 버렸고,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리스도교회는 동시대의 유대인 전체를 정죄하는 한편, 과거 예수가 빌라도 법정에 섰을 당시 그의 사면을 요청했던 군중들의 역사적 행적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는 묘안을 짜냈는데, 그것이 바로 또 다른 예수, 즉 바라빠 예수라고 하는 가공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 가공의 인물인 바라빠 예수는 마치 그리스도 예수와 구별되는 별도의 인물 같아 보이지만, ‘바라빠’라는 직함(title)의 의미를 잘 풀어보면 결국 (그리스도라는 가장 중요한 직함을 가졌던) 예수와 동일인물인 ‘압바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그 예수라는 것이다. 결국 맥코비의 논의는 나자렛 예수로부터 분리된 가공의 인물인 바라빠 예수를 통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과거 예수에 대한 유대 군중들의 지지를 역사적으로 왜곡하고, 반(反)유대교적 성향을 더욱 가속화하던 역사적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맥코비의 견해는 메리트와 오스에게서도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관된 해석의 흐름에서 이탈하여 획기적인 견해를 제출한 이가 바로 맥클린(Jennifer Maclean)이다. 이전의 바라빠 이야기를 연구한 학자들이 주로 그 이야기의 삶의 자리를 초기 그리스도교의 변증적 상황에서 파악했던 반면에, 맥클린은 이를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기존의 성전 제의를 대체하는 속죄양/희생양 제의가 창안되던 맥락에서 해석하는 일대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맥클린의 연구에 관한 보다 상세한 소개와 평가는 다음 호의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 웹진 <제3시대>


  1. Paul J. Achtemeier, <EM>Invitation to Mark: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Mark with Complete Text from the Jerusalem Bible</EM> (Garden City, New York: Image, 1978), 215. [본문으로]
  2. 막 15:7, 11, 15; 마 27:16, 17, 20, 21, 26; 눅 23:18, 19; 요 18:40. (cf. 행 3:14) [본문으로]
  3. Ben Witherington Ⅲ, <EM>The Gospel of Mark: A Socio-Rhetorical Commentary</EM> (Grand Rapids-Cambridge, UK: Eerdmans, 2001), 391. [본문으로]
  4. Roger David Aus, “The Release of Barabbas Revisited (Mark 15:6–15; Matt 27:15–26; Luke 23:18–25; John 18:39–40),” in <EM>Caught in the Act, Walking on the Sea and the Release of Barabbas Revisited</EM> (Atlanta: Scholars Press, 1998) 139. [본문으로]
  5. Ched Myers, <EM>Binding the Strong Man: A Political Reading of Mark’s Story of Jesus</EM> (Maryknoll, N.Y.: Orbis, 1988), 373-374, 380-382. [본문으로]
  6. 이러한 학자들의 상세한 명단에 관해서는 Brown, <EM>Death of the Messiah </EM>(Vol.1), 819; W. D. Davies and Dale C. Allison, Jr., <EM>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EM> (Vol.1) (London: T&amp;T Clark, 1997), 583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7. 동일한 방식의 이름 용례로는, 바돌로메(Batholomew, 막 3:18), 바디메오(Bartimeo, 막 10:46), 바요나(Bar-jonah, 마 16:17), 바나바(Barnabas, 행 4:36), 바예수(Bar-jesus, 행 13:6) 등이 신약성서에서 발견되며, 요세푸스의 저작에서 발견되는 시몬 바 기오라(Simon bar Giora) 역시 같은 용법의 이름이다. [본문으로]
  8. Adela Yarbro Collins, <EM>Mark: a commentary</EM> (Hermeneia: 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718. [본문으로]
  9. 랍비적 유대교란 명칭은 코헨(Shaye J. D. Cohen)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코헨은 유대교의 역사에서 “랍비 시대”를 70년 전쟁 이후 6세기까지의 유대교를 랍비적 유대교라 명명한다. 이 시대를 대변하는 ‘랍비’는 미쉬나 및 다른 많은 책들, 특히 팔레스틴 탈무드와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만들어낸 특별한 사회의 구성원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이다.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의 책을 참조할 것: 샤이 J. D. 코헨/황승일 옮김,『고대 유대교 역사』 (서울: 은성, 1994), 20-21, 315-316. [본문으로]
  10. Solomon Zeitlin, <EM>Studies in the early history of Judaism</EM> (New York: KTAV, 1974), 251. [본문으로]
  11. 브라운 역시 1세기에 ‘선생의 아들’로 해석될 수 있는 ‘바라빠’와 같은 부계의 이름이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아직까진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만일 Barabbas가 Bar-Rabba(n)에서 온 말로서, “랍비의 아들”이라는 뜻이 되려면, Bar와 Rabbas 사이에 ‘r'이 하나 더 있어야 개인 이름이 포함된 부계적 이름(patronymic)이 될 수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인다. Brown, <EM>The Death of the Messiah</EM> (Vol.1), 799. [본문으로]
  12. Stevan L. Davies, “Who is Called Bar Abbas?,” <EM>NTS</EM> 27 (1981), 261–262. [본문으로]
  13. 브루스 M. 매츠거(Bruce M. Metzger)/장동수 옮김, 『신약 그리스어 본문 주석 (제2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성경원문연구소, 2005), 54. [본문으로]
  14. 신현우,『사본학 이야기』(서울: 웨스트민스터출판부, 2003), 105. [본문으로]
  15. Cranfield, <EM>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rk</EM>, 450; Taylor, <EM>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rk</EM>, 450; Nineham, <EM>Gospel of Saint Mark</EM>, 416. [에반스, 『마가복음 8:27-16:20: WBC 성경주석』, 737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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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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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경실
    2010.06.21 16: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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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2009년 3월 15(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설교
본문: 고린도후서 3:4~6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꽤 오래 전부터 떠도는 이야기이지만, 천국과 지옥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흉악해지다보니 지옥이 만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옥으로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급기야는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담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천국측에서는 당연히 보수를 요구하였으나 지옥측은 태연히 버팅기고 있었습니다. 천국측은 도리없이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측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 몰라라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뱃심으로 그렇게 버티는지 천국측이 다그쳐 묻자 지옥측은 세상의 유능한 변호사가 다 자기네 소속이니 걱정할 것 없다고 응수했답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특정한 법조인들을 폄훼할 할 의도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 곧 법적 논리가 지니는 근본적 한계를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이 우스갯소리는 법적 정의와 실체적 진실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꼬집고 있습니다.

심오한 법철학 이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법적 논리가 지니는 결함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쉽게 생각해 법적 논리는 그 나름의 일관된 논리와 그 논리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덧붙여짐으로써 완결됩니다. 그 논리는 그것을 주장하는 편에 유리한 조건에 따라 구성되며, 어떤 사건에 관련된 내용들을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명문화된 법조문에 의거해 그 시비가 비교적 분명히 가려질 수 있는 단서들을 중심으로 재구성됩니다. 여기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많은 단서들이 명문화된 법조문으로 시비를 가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부차화되거나 아예 사상되는 경우들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법적 소송은 진정한 의미의 실체적 진실보다는 완벽한 논리의 재구성 성패 여하에 그 판결이 좌우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더욱이 법적 판결이 이루어질 때 사회적 강자에게는 충분히 배려되는 것도 사회적 약자에게는 배려되지 않는 경우들도 허다합니다. 사회적 유력인사나 재벌 등이 범죄나 비리를 범했을 때 직접적으로 범죄 사건을 구성하는 요인 말고도 사회적 기여도 등이 폭넓게 감안되어 당사자가 형을 선고 받고도 그 집행을 유예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사회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범죄를 범했을 경우 그 동기나 정황 등이 충분히 헤아려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도 아무런 제약 없이 활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한 좀도둑질만으로 완전히 인생의 행로가 뒤바뀌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법의 집행이 재력이나 권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현실을 말합니다.

법적인 논리 자체가 지니는 근본적인 한계에 덧붙여 그 집행이 재력이나 권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면 법이 곧 정의라는 통념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정의를 보증해주는 것도 아니요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주는 것도 아니라면 그 법은 제도적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즘 법을 만들고 그것을 집행하는 일에 관한 논란이 뜨거운 관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수시로 법질서의 준수를 강조하고 있고, 대법관은 ‘촛불재판’에 지침을 내려 개별 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국민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보장하기보다는 권력의 안위만을 보장하려는 의도와 직결되어 있는 사태들입니다.

국회에서는 ‘입법전쟁’이라는 이상한 말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어쩌다 법을 만들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을까요? 재벌의 언론사 소유를 가능케 하는 언론관계 법안들은 이미 통과되어 버렸고, 이 밖에 국민의 정당한 권리 주장 및 사생활 보호와 직결되어 있는 집회와 통신 관련법안, 재벌에게 더욱 큰 힘을 실어주는 금산분리 법안, 출자총액 제한 완화 법안, 민생과 직결된 교육세와 농어촌특별세폐지 법안, 수돗물 민영화 법안, 비정규직 법안 등등이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힘있는 이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고 힘없는 서민들을 더욱 옥죌 소지를 안고 있는 법안들입니다. 

법의 집행도, 법을 만드는 일도 온통 힘있는 사람들의 편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법이 곧 정의라는 통념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해 주는 사태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질서의 준수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겠습니까? 그것은 끽 소리 말고 하라는 대로 살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의 한 대목을 함께 읽었습니다. 한편으로 율법의 속박을 강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그와 대비되는 믿음의 자유를 역설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고린도후서 3:6).

오늘 본문 말씀은 일차적인 맥락이 있습니다. 사도로서 고린도교회 교우들과의 관계를 밝히는 대목에서 이 말씀이 등장합니다. 오늘날에도 추천장 제도가 있지만, 그리스-로마 세계 안에서도 추천장이 널리 통용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와 고린도교회 교우들 사이에 문자로 된 그 어떤 추천장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추천장을 내보여야 하는 관계도, 또는 추천장을 받아 그 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만큼 서로 신뢰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아주 아름다운 언어로 고린도교회 교우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표합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작성하는 데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입니다.”(고린도후서 3:3).

여기서 사도 바울은 문자로 기록된 그 어떤 추천장이나 편지가 필요하지 않은 까닭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문자로 기록된 문서를 말하면서 한 걸음 나아가 율법의 조문을 유념하고 있습니다.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쓴 것’이라는 말은 율법과 믿음을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 바울의 일관된 논지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따라서 오늘 이 말씀에서 말하는 문자는 율법 조문, 곧 법률 조문을 뜻합니다.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오늘의 현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는 제도적 폭력 내지는 제도적 테러의 결과입니다. 법 조문에 의거한 폭력이요 테러입니다.
  
사도 바울은 때로 법의 운용과 집행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예컨대 사도 바울이 율법의 완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율법의 긍정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남용을 문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보다 근본적으로 율법의 폐기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법의 형식 그 자체, 법의 한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제한적인 의미에서 법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법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하느님의 영을 말하고 있습니다. 법 질서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구원의 희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삶이 우리의 구체적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현실적으로 수많은 법의 제약 가운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느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어떤 모양을 띠는지는 끊임없이 물어야 할 과제입니다.

하지만 우선 지금 당장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삶을 결단하고자 할 때 우리의 선택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문자로서 법 조문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제약하고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법 질서를 준수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삶은 제도나 법조문 또는 문자의 격식에 매여 사람을 소홀히 하거나 죽이는 과오를 범하지 않는 삶입니다. 그 격식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삶이 아니라 그 모든 격식에 앞서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에 이어지는 내용의 말미를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고린도후서 3:17~18).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의 후손이 모세의 율법을 대할 때 여전히 그들의 마음에서 너울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그 너울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비로소 제거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영으로서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함을 얻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역설합니다.

지금 읽은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놀라운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런 힘에나 내맡겨져 굴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놀라운 영광에 이르게 되리라는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 영광에 이르는 삶을 소망하며 진정한 삶의 용기를 얻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웹진 <제3시대>

* 천안살림교회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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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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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준호
    2009.03.29 22:4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목사님 글 잘봤습니다. 은혜가 깔끔하네요^^

    - 부산에서 이준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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