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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16 [시선의 힘] 절룩거리네 루저들의 주제가 (유경종)



절룩거리네 루저들의 주제가

 



유경종

(본 연구소 회원)



    한동안 '루저'란 말이 유행했었다. 비슷한 뜻을 품은 단어의 선배격인 '잉여'니 '낙오자'니 따위들에 비해 한결 가벼우면서도, 시니컬하고 자조적인 뉘앙스를 모자라지 않게 담은 단어.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고픈 이들은 물론, 스스로를 향한 자학이 필요한 젊은 친구들에게도 자주 이용되었던 것 같다. 루저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 문득 돌아보니 루저는 바로 나였다. 이런 덴장... 짧은 가방끈, 보잘것 없는 경제력, 미혼 등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긴 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나름 명랑하고 뻔뻔하게 세상을 살자고 다짐했었다. 읽고 싶은 책 읽고, 걷고 싶으면 훌쩍 나서고, 듣고 싶은 강의(예를 들면 탈향강좌 같은 명강의!)도 부지런히 들으러 다니면서 재밌게 지내면 그만이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급격히 명랑함과 뻔뻔함이 위축되는 걸 느낀다. 급기야 최근에는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나는 루저야, 나는 루저야 하는 자각과 묵상을 시도 때도 없이 하게 되는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이거야말로 덴장...

    그런 거지같은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즘엔 이런 저런 항우울제를 스스로에게 억지로라도 처방한다. 한밤중에 달리기도 하고, 주말에 밤을 새워 명랑 드라마를 몰아보기도 하고, 몇 몇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통찰과 깊이를 담지하고 있는 설교문이나 신학칼럼을 천천히 읽기도 한다. 비록 억지 처방일지라도 건강함과 밝음과 진지함의 세계들은 마음의 무거운 그늘을 잠시나마 밀어내준다.

    하지만 노래를 들을때는 좀 다르다. 우울함을 극한까지 몰아붙인 노래, 슬픔과 무기력을 나지막히 읊조리는 노래, 그리고 루저의 찌질함을 정면으로 그린 노래들을 일부러 찾아듣게 된다. 신기하게도 이것도 적잖은 치유가 된다. 노래만큼은 그냥 자기의 정서 상태와 가장 결이 비슷한 걸 듣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참 고맙고 다채롭다. 별걸 다 노래로 만드는 이상한 인간들이 어느 구석엔가는 있어주니 말이다.


달빛요정이 찾아온 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수년전 편의점 카운터를 지키던 시절이었다. 적적하고 지루한 밤들을 FM 라디오를 벗 삼아 지새우곤 했는데, 어느 날엔가 심야방송의 디제이가 갑작스런 사망 소식으로 화제가 된 한 무명 가수의 짧았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죽 들려주었다. 그가 남긴 찌질하면서도 중독성있는 노래들과 함께. 그 이름도 명랑한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본명 이진원)이라나? 심야시간이 원래 노래의 맛깔이 풍성해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날은 유독 노래 속으로 빠져들었다. 토해내듯 부르는 달빛요정의 음성과 가사가 내 귀청을 통과해서 마치 독한 술처럼 세포와 혈관에 녹아드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스끼다시 내 인생, 고기반찬, 도토리, 나의 노래, 슬픔은 나의 힘.... 오랫동안 나름 개성 넘치는 창의력으로 줄기차게 루저의 정서를 노래한 명곡들을 만들고 불러제꼈지만, 요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외모 탓인지 대중적 인기는 한번도 그의 몫이 아니었던 가객.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를 놓지 못하고 노랫가사와 자신의 일상이 정확히 싱크되는 일상을 살다가 반지하방에서 홀로 망연히 숨을 거둔 불행한 인간 달빛요정. 그가 나를 찾아와 준 그 밤 이후로 달빛요정의 노래는 내 정서의 밑바닥에 좀처럼 뽑히지 않는 녹슨 못처럼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 날이 아마 밤공기 쌀쌀한 늦가을쯤이었던 것 같아서 달빛요정의 프로필을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2010년 11월 6일 사망이다. 벌써 5년 전이구나. 죽은 양반에겐 5년이든 500년이든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의미는 어차피 살아있는 인간들이 멋대로 갖다 붙이는 것. 나도 나름대로 명분을 만들어서 며칠 전에 나홀로 ‘달빛요정 서거 5주기 추도 세리머니’를 가졌다. 심야방송을 듣던 ‘그 날’과 지금의 나 사이의 5년이라는 시간을 복기해본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달아서 말이다. 세리머니라야 달빛요정의 노래들 중 듣고 싶은 곡목들을 초이스해서 스피커 볼륨을 높여 잠들때까지 반복해서 들은 것에 불과했지만...

    달빛요정의 노래 중 딱 한곡을 고르라면 아무래도 <절룩거리네>다. 이 노래야말로 세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루저들의 찌질한 정체성을 가장 잘 담아낸 노래다. <절룩거리네>의 가사 몇 군데를 들여다보려 한다. ‘달빛요정 서거 5주기 추도 세리머니’의 연계 프로그램이라 여겨주시라. 우선 가사 전문을 보자.


<절룩거리네>      

작사.작곡.노래 :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보석처럼 빛나던 아름다웠던 그대 

이제 난 그때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사람이 되었다네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 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깨달은 지 오래야 이게 내 팔자라는 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허구헌 날 사랑타령 나이 값도 못하는 게 골방 속에 쳐 박혀 뚱땅땅빠바빠빠 

나도 내가 그 누구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놈이란 걸 잘 알아 절룩거리네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 걸 아주 가끔씩 절룩거리네 

지루한 옛사랑도 구역질 나는 세상도 나의 노래도 나의 영혼도 나의 모든게 다 절룩거리네 


내 발모가지 분지르고 월드컵코리아 

내 손모가지 잘라내고 박찬호 이십승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미친 게 아니라면 

절룩거리네 절룩거리네 절룩거리네...


   첫째 줄은 상투적인 도입이니 넘어가자. 둘째 줄에 눈이 간다. 자기 자신이 예전보다 더 무능한 사람이 되었다는 달빛요정의 고백은 한번 루저는 영원한 루저, 나아가 세월이 흐를수록 더 심각한 루저가 되어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젊었을 때는 알바나 비정규직을 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루저의 인생관에 걸맞는 최소한의 일자리를 얻는 게 점점 버거워진다. 딱히 젊었을 때 보다 더 많은 욕심을 부려서가 아니다.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싸구려 일자리들로의 진입이 나이가 걸림돌이 되어 점점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노랫가사처럼 루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무능해진다.


비열함의 두 측면


   무능함은 그렇다 치고, 비열하다는건 또 뭔가? 비열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비열함. 루저들은 흔히 타인으로부터 ‘비열한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일을 많이 저지른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루저들의 인간성이 위너들에 비해 태생부터 더 비열하거나 치사할리는 없다. 다만 그들은 비열하지 않고는 생존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더 많이 노출될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성공한 이들은 문제가 생기면 우아하게, 또는 폼나게 해결할 수 있다. 굳이 비열해 질 까닭이 없다는 말이다. 어느 사회에서건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계급은 항상 주류로부터 ‘비열한 인간들’이라는 비난을 받곤 한다. 그러나 비열함의 원죄가 루저의 인간성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 인간이 지닌 비열함의 밑바닥을 기어이 들춰내는 인정머리없는 세상에 있는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는 스스에게 보여주는 비열함이다. 사실 이 두 번째가 루저 정서의 핵심이다. 객관적으로 자기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런 저런 핑계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내적인 비열함 말이다. 타인에게 보여줘야 하는 비열함이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조건적인 것이라면, 스스로를 향한 비열함은 매우 상시적이며 왜곡의 구조가 한 층 복잡하고 견고하다. 달빛요정의 노래에서 말하는 비열함도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를 향한 루저의 비열함은 마음의 안전장치일수도 있다. 자괴감과 자기분열이라는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나잇값과 뚱땅땅빠바빠빠


   특정한 나이에는 그 나이에 걸맞는 삶의 위치를 획득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나잇값’이다. 루저는 당연히 나잇값을 못한다. 그럼 대신 뭘 하냐구? 뭐긴 뭐겠는가, 뚱땅땅빠바빠빠 놀이를 하는 것이지. 뚱땅땅빠바빠빠야말로 루저들의 존재 이유다. 달빛요정은 자신이 몰입하고 있는 세계를 노래를 상징하는 의성어로 집약했지만, 꼭 노래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루저들에겐 나름대로의 뚱땅땅빠바빠빠가 있으리라. 그게 문학이니 음악이니 하는 폼나는 장르가 아니라도, 자기를 위로하고 세상의 가치를 대체하는 뭔가를 한가지씩은 품고 있다는 얘기다. 남들이 보면 아무 가치도 없지만 본인 스스로는 그 안에 있을 때 가장 재미나고 즐겁고 기분좋은 세계. 누군가에겐 그게 방랑일수도 있고, 현실성과는 거리가 먼 공부일수도 있고, 가장 흔하게는 음주나 도박일수도 있다. 그걸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그러므로 이 가사는 현실속에서 나잇값도 못 하는 게 맨날 술이나 쳐먹고, 나잇값도 못 하는 게 주둥이는 살아서, 나잇값도 못 하는 게 싸돌아다니기는... 따위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루저는 흔들림없이 뚱땅거리거나, 책장을 넘기거나, 트레킹을 하거나, 또는 밤마다 술잔을 기울이며 누군가에게 지루한 이야기를 해 댄다. 누가 뭐라든 그 순간이 가장 즐거우니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비열함과 뚱땅땅은 루저의 내면을 지키는 두 개의 안전장치다. 위너들이 볼 때 도대체 루저들은 양심도 없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사는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스스로에게 비열해지고 남들이 가진 걸 부러워하지 않을 나만의 세계, 뚱땅땅이 있어서 루저도 나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안전장치가 가끔 균열을 일으킬 때다. 꼭꼭 숨어있고만 싶었던 비열함의 거적데기가 확 까발겨지는 순간, 영원한 친구가 되어줄 것 같았던 뚱땅땅의 쓸모없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언젠가는 엄습할 수밖에 없다. 이 노래의 매력은 바로 그 비열함과 뚱땅땅의 세계가 균열을 일으키는 지점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절룩거린다네. 아주 가끔씩...


    비열함이 틈새를 보일 때 그 틈새를 비집고 자괴감이라는 괴물이 엄습한다. 뚱땅땅이 하찮아질 때 바닥이 없는 듯한 허망함에 사로잡힌다. 그걸 달빛요정은 절룩거린다고 표현했다. 나도 가끔씩은 절룩거린다고, 똑바로 걷지 못하고 스탭이 엉킨다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은... 하지만 그 가끔씩이 점점 잦아지다보면 균열의 통해 들어온 쓰라린 자각의 통증이 존재 전체를 삼켜버린다. 그래서 루저계의 천하무적 달빛요정도 어쩔 수 없이 실토한다. 나의 노래도, 나의 영혼도, 나의 모든 것이 절룩거린다고... 마침내 노래는 절창으로 치닫는다.


    내 발모가지 분지르고 월드컵코리아 

    내 손모가지 잘라내고 박찬호 이십승


    언제 들어도 이 노래의 가장 절절한 부분이다. 루저들의 도피처 중 하나가 바로 스포츠다. 자신을 대변해 누군가가 영웅 노릇을 해 주니 이보다 통쾌하랴. 몰입할 수 있고, 당당히 누군가를 욕할 수 있고, 죽여버려! 발라버려! 응원을 빙자해서 억눌렀던 분노를 표출할 수도 있다. 월드컵 코리아를 외치는 순간에는, 박찬호 이십승에 환호할 때만큼은 루저나 위너의 구분 따윈 없는 듯 했다. 하지만 그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목도해야한다. 누군가는 월드컵을 치르고 황금발이 되어 유럽으로 업혀가고, 누구는 20승을 달성하고 황금팔이 되어 팀을 옮기는 장면을. 저런 고부가가치의 육신과 비교하면 내 발모가지와 손모가지는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분질러버려도 상관없을 것처럼 하찮아 보이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 가사는 사건의 순서상 앞뒤가 뒤바뀐 문장이다. 발모가지를 분질러야 월드컵 코리아가 이뤄진다는게 아니라, 월드컵 코리아를 외치다 보니 발모가지를 분질러버리고 싶을 만큼 자괴감이 들더라는 말이다. 박찬호 20승에 열광하다가 자신을 돌아보니 손모가지를 잘라버리고 싶을 만큼 기분이 더럽더라는 얘기다.


영원한 루저들의 주제가


    거기까지다. 그렇게 지지리 궁상을 떨고서 그저 절룩거리네... 절룩거리네... 하면서, 흔한 반성이나 각오 따위도 없이 노래는 끝난다. 대책없음의 끝장이다. 그런데도 마음을 두드린다. 모르긴 몰라도 이 노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어딘가에서 불리워지며 수많은 루저들의 쪼그라든 마음을 다독여 줄 것이다. 너 자신이 졸라 한심하고 외롭니? 너만 그런 거 아니니까 엄살 떨지 마. 너보다 더 질척거리며 찌질하게 살다가 갈 때도 완전 거지같이 간 인간도 있잖아. 너 정도면 살만한거야... 유치하지만 이런 게 진짜로 위로가 된다니까. 아, 인간이 참 간사하다. 당신은 루저인가? <절룩거리네>를 들으라. 우리들의 주제가가 여기에 있다. 당신은 루저가 아닌가? 그래도 한 번 들어보라. 저렴한 가격에 남의 인생 밑바닥의 진면목을 쫄깃하게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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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족 1 - 루저 정서를 담아서 대중적으로 가장 큰 인기를 받았던 노래로는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가 있다. 제목에서부터 싸구려가 들어가는 이 노래 역시 루저들의 적나라한 일상을 재치 넘치는 가사와 유니크한 곡 전개로 표현해 수많은 이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 노래가 맘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장기하의 모든 게 너무 전략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촌스러운 용어인 ‘진정성’이라는 말을 굳이 끄집어내어 시비를 걸고 싶을 만큼 장기하의 루저 코스프레는 좀 재수 없었다. 최근에도 그때의 내 생각이 옳았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요즘 아이유를 사귄다잖나. 뭘 해도 밉상이다.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호오의 표현이니 장기하를 애호하시는 분들은 분노와 시비를 거두어주시라.)

    * 사족 2 - 루저에 대해 길게 수다를 떨었지만, 사실 요즘엔 루저라는 말을 쓰는 친구들이 별로 없다. 이 사회의 루저들이 그만큼 줄어서일까? 그럴 리 있겠는가. 현실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누구를 특정하여 루저라 부르기가 민망할만큼 모든 젊은이들의 루저화가 명백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너 나 할것 없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긴장에 쩔어 있으니 루저란 용어가 발붙일 자리가 사라질 수밖에. 그래서 개인적 차원의 패배를 의미하는 루저를 용도폐기하고, 이 땅의 젊은이들 모두의 절망을 뭉뚱그려 담아낸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어로 등재시킨 게 아닐까? 그렇다면 아마도 어디에선가는 집단적 침몰의 절망을 토해내는 헬조선 세대의 주제가가 만들어지고 있으려나? 생각하니 또 우울해지네...


* 필자소개

    몇 달 전부터 고양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신도제일교회에서 청년들과 생각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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