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봄 회원강좌>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 강의 취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7). 사람들이 희망하는 대로 모든 일이 그렇게 처음에는 보잘 것 없었지만 훗날 번성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때린 놈은 편히 잘 수 없어도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고 위로를 받아 왔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현실은 정반대다. 욥기는 그 부조리한 현실을 문제 삼으며 세계의 현실을 다시 보도록 촉구한다.
성서 가운데 가장 읽기 어려운 책으로 알려진 욥기의 본문을 따라가며 현실을 부조리를 다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 이 강의의 취지다.

• 강사_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외래교수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과 <신학사상> 편집장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뒤집어보는 성서인물><한국기독교와 권력의 길><반전의 희망, 욥> 등이 있다.

• 교재_『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최형묵 지음; 동연, 2009)

일시 / 수강료
- 4월 6일~5월 11일(매주 화) 오후 7:30~9:30  ※ 4월 27일은 휴강
- 수강료: 7만원(1회 수강시 1만5천원)
   이 강좌는 회원강좌이므로 CMS 후원 신규 신청자와 기존 후원자는 무료입니다.
   
교재는 별도/ 연구소에서 2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회원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운영됩니다.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 장소_한백교회당
        (5호선 서대문역 1또는 2번 출구, 신한은행-우체국 사이골목 30미터. 좌측 안병무홀<1층>)

• 신청방법_
   02-363-9190으로 전화하시거나 yminjung@chol.com으로 신청 메일을 보내주세요.

• 강의구성_

날짜

주제

읽어올 부분

4.6

부조리한 현실과 고통의 기원에 관한 물음의 보편성

•욥기 1~2장,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4.13

두 세계의 대결 I: 경건한 지혜와 불경한 지혜

•욥기 3~15장,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4.20

두 세계의 대결 II: 흔들리지 않는 신학과 흔들리는 신학

•욥기 16~31장,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5.4

소멸의 잿더미를 딛고 일어서는 인간

•욥기 32~42:6,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5.11

꼭 보상을 받아야 하나?

•욥기 40:7~17, 교재 가운데 그 해당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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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0.03.08 11: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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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형묵 목사님은 제가 중학교 1,2학년때 성경공부 선생님이었습니다. 사실 성경공부 한 기억은 별로 없고 김민기 노래를 가르쳐 주면서 "너희가 이 노래의 가사를 전부 이해하는 순간 득도하게 될 거야"라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었죠. 그래서 저는 중학교 1학년때 김민기의 대부분의 노래들을 익혔습니다. 벌써 그때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 득도까지는 아니지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어렴풋이 알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그 첫걸음이 알수 없는 김민기의 노래들을 서투른 기타반주에 맞춰 부르던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최형묵 목사님이 성경공부를 하시는군요. 멀리 미국에 있지만 참여하고 배우고 싶습니다.

욥을 읽으며 떠올려본 몇 가지 기억들
 
 
유경종
(본 연구소 회원)

* 장면 1. 1985년 겨울
교회 청년 중에 대학 연극반에서 활동하던 누나가 한 분 있었다. 교육 환경이 열악하기 그지없던 경기도 변두리 교회 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패기있고 세련된 대학생의 기풍을 보여주며 동생들의 동경을 받던 선배였는데, 그 누님께서 어느날인가 방학을 맞아 심심해하는 내 또래의 중등부 친구들을 모으더니 연극을 한 편 만들자고 꼬드기는게 아닌가. 당시만 해도 교회를 들락거리며 뭔가를 꾸미는 일이 제일 재밌었던 시절인지라 우리들은 두 말 없이 누나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누나가 들고 온 작품은 <욥>이었다. 제목은 심플했지만 내용은 심각해서 욥의 고통과 좌절, 그리고 친구들과의 치열한 논쟁을 진지하게 그려낸 연극이었다. 누나가 대체 무슨 의도로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인생의 쓴 맛 단 맛 다 본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작품을 들이댔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잘 이해가 안가지만, 어쨌든 우리들은 내용도 잘 이해가 안 되는 연극을 완성하기 위해 한달여동안 꽤나 열심히 매달렸다. 하지만 곧 문제가 터졌다. 교회 어르신 몇 분이 우연히 연습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매우 언짢아 하셨고, 공연 자체를 막지는 않으셨지만 교회로부터 아무런 관심이나 협조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공연일이 되었지만 객석은 텅 비어있었다. 뭔가 막연히 폼나는 성취감을 꿈꿨던 우리들의 기대는 고스란히 상처가 되었다. 뜻하지 않게 연기인생의 데뷔 무대를(^^*) 언더그라운드로 시작하게 된 나는 그 일을 통해 어렴풋한 교훈 한 자락을 얻을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교회라는 동네에서 탈 없이 지내려면 욥이라는 양반이랑은 웬만하면 친하지 말아야겠구나, 라는 다짐 말이다.

* 장면 2. 몇 해 전 봄.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다짐의 흔적은 무뎌지고, 몇 년 전 또다시 나는 욥 아저씨 주변을 어정거리다가 두 번째 상처를 자초하고 만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선교회 모임에서 성경공부를 지도하게 되었는데, 세상과 교회의 돌아가는 꼴에 지긋지긋한 염증을 앓던 나는 뜬금없이 욥기를 다뤄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 즈음 나는 정병선 목사님이 쓰신 욥기 묵상집 <신앙의 마스터클래스>(대장간)를 꼼꼼히 읽으며 욥이 보여주는 새로운 차원의 신앙에 새롭게 눈 떠 가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하필 욥?’ 이라는 뜨악한 반응을 보였지만 맘에 안 들면 댁이 리더를 하시던지, 하는 심뽀로 무작정 밀어붙였다. 결과는 뻔했다. 구성원들의 열화와 같은 외면 속에 욥기 공부는 몇 주 만에 흐지부지 중단되었고 나는 교회 내에서 그나마도 근근하던 공신력에 적잖은 데미지를 보태야 했다. 역시나, 어릴 적 깨달은 교훈을 망각하는 인간 치고 잘 되는 인간 없다더니... 물론, 스터디 실패의 가장 큰 책임은 성급히 구성원들을 계도하고자 했던 나의 어쭙잖은 조급함에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하여튼 욥 이 분은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 교회의 주류 정서에서 여전히 왕따 신세를 못 면하는구나 생각하니 적잖이 씁쓸했다. 차라리 경륜있는 엘리바스나 근엄한 빌닷이나 열정적인 소발의 주옥같은 말씀(?)들을 적절히 발췌해서 신앙 강화 교재를 만든다면 한국 교회 성도들의 입맛에 딱 맞는 프로그램이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자조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소위 잘 나가는 목사님들께서 성서속의 별별 요상한 인간상을 그럴듯한 학습 모델로 잘도 포장해내면서 이건 왜 안하는지 모를 일이다.

* 장면 3. 몇 해 전 가을.
송 권사님은 우리 교회의 할머니 권사님들 중에서도 가장 몸집이 작은 분이다. 그 작은 몸으로 한평생을 종종종, 교회와 집과 일터를 오가며 살아오신 분. 몸집만큼이나 성품도 온화하여 기도도 조용조용, 봉사도 사근사근, 한번도 누구랑 말싸움이라도 댓거리를 하는 걸 보질 못했다.
어느 저녁, 차량 운행을 하는데 마침 차에 타신 권사님들의 화제가 하나님에게 복받은 이야기로 이어졌다. 다들 은혜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름대로의 주신 복을 카운트하고들 계신데, 아무 말씀 없이 듣기만 하시던 송권사님이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더니 혼잣말처럼 이렇게 내뱉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말 하나님이 나에겐 뭔 복을 주셨는지 모르겠어... 정말 나에게도 뭘 주시긴 주셨나...?"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어느 분이 아따, 송권사는 무슨 말을 그리 복없이 한댜? 라고 눙을 치자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뭐, 하며 허허 웃으셨다.
그저 흘러가듯이 하신 말씀이지만 그 고백이 내 마음에 한참동안이나 무겁게 남았다. 아마도 그건 권사님께서 평생을 두고 곱씹어 온 물음이었을 것이다. 전처의 자식이 있는 집에 시집을 와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시며, 그나마 바깥양반을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시며, 혼자 몸으로 남겨진 삼남매를 키워내시며, 진득이 집에 붙어있지도 못하고 이리 저리 떠도는 막내 아들 때문에 속을 태우시며, 얼마 전에야 병석의 시어머니 수발을 놓으시며, 고단에 겨워 눈거풀이 무겁고 마음이 시려 무릎이 꺾일 때마다 아마도 권사님은 같은 물음을 묻고 또 묻지나 않았을까.
하나님이 나에겐 뭔 복을 주셨을까나...? 교회서는 늘 믿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배웠는데, 그럼 내 평생의 믿음은 대체 뭘까...? 

* 다시 욥을 읽으며...
작년 말부터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는 터라 짬짬이 책을 읽기에 좋은 시간이 주어졌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주로 슬렁슬렁 읽히는 잡지며 소설류를 읽곤 하는데, 요즘에는 가장 여유로운 시간을 챙겨 최형묵 목사님께서 쓰신 <반전의 희망, 욥>을 하루에 몇 페이지씩 천천히 알뜰하게 읽고 있다. 고즈넉한 새벽녘에 최 목사님의 웅숭깊은 글을 읽는 맛이야 새삼 말해 무엇하랴. 
어릴적 선배 누나를 통해, 몇 년전 정병선 목사님의 책을 통해, 그리고 또 다시 최형묵 목사님의 목소리를 빌어 욥은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논쟁할 때 알아봤지만 참 끈질긴 양반이다. 이쯤되면 나도 욥이 걸어오는 말에 진지하게 대답을 준비할 때가 된 듯도 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대답을 나는 송권사님 같은 분과 나누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오랜 고민을 거쳐 건져 올린 대답이 송권사님 같은 분과 소통할 수 있을만큼 낮아진 목소리였으면 좋겠다는 바램 때문이다.
누군가는 역사의 격랑을 끌어안고, 어떤 이는 시대의 아픔을 짊어진다. 각자의 십자가를 감내하며 나가는 이들에게 욥은 역설적 희망의 지표가 되어준다. 그런가하면 송권사님처럼 그저 소박하게 가족과, 이웃과, 교회와 성도와 목회자를 섬기는 일을 자신의 십자가려니 여기고 살아가는 분들도 많다. 그게 그 분들이 알고 있는, 또한 살아낼 수 있는 신앙적 삶의 유일한, 그리고 최선의 방식이었기 때문일게다. 욥이 던져주는 반전의 희망은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을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장삼이사의 필부들에게도, 심지어는 나처럼 한 인생 대충 방기하며 살아가는 무책임한 게으름뱅이에게도 평등하게 유효하리라. 대체 어떤 언어로 그 희망을 함께 나눌지는, 책을 마저 읽고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 웹진 <제3시대>




연구소가 기획하고 도서출판 동연이 펴내는 <성서_현대를 읽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출간됐습니다. 성서와 더불어서 현대를 살고 있는 나를 살피고, 오늘의 인간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이 시리즈는 욥기를 새롭게 읽는 첫 번째 책에 이어 앞으로 다음과 같은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권 『무덤에서 모태로 - 생명을 살리는 성서의 지혜』(저자 : 구미정)
            3권 『다니엘과 함께』(저자 : 김응교)
            4권 『구약에서 영성 읽기』(저자 : 김은규)
            5권 『'나는 누구인가' - 성서에서 이웃에 관한 질문들』(저자 : 정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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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개 : 성서_현대를 읽다 1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지은이_ 최형묵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9월 6일
쪽수_ 272쪽
크기_ 148×210mm
장르_ 종교 / 기독교신학 / 구약학
값_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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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0 23:5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안녕하세요. 유경종님. 다비아 인문학적 성서읽기모임에서 뵈었었는데 이렇게 글로도 뵙는군요. 좋은 글을 제 블로그에 발췌하겠습니다. 물론 코멘트도 달아서요.

우리 시대에서 욥은 누구인가?
 - 최형묵 목사의 『반전의 희망 욥: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을 보고 

정혁현

구약성서의 지혜문학이라 하면 대개 잠언과 전도서 또는 시편을 떠올린다. 물론 『욥기』도 지혜문학에 포함되지만 대중적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전도서나 잠언은 솔로몬, 즉 성서의 인물 중 가장 지혜로울 뿐 아니라 가장 큰 영화를 누린 인물이 쓴 문서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전도서의 저자, 즉 ‘전도자’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전도서와 잠언은 이른바 ‘성공한 사람’의 인생관과 처세술이다. 적어도 솔로몬의 영화를 욕망하는 성공시대의 독자들은 이 지혜서들을 그렇게 읽는다. 그러므로 지혜서들은 요즘 서점에 가면 소위 ‘실용서’라는 이름으로 쏟아져 나오는 책들, 대개 성공에 따른 부와 권력을 누리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실패자들에게 너그럽게 충고 한 마디 하는 책들의 반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성공’이라고 알려진 삶을 간절히 욕망하는 독자들은 그런 책들을 읽으며 자신이 실패한 이유를 찾아내고 다시금 성공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곤 한다.

대체로 그런 책들은 성공한 자가 자신의 삶을 성공 이후의 시점에서 ‘사후적으로’ 돌아보며 정당화하는 형식을 가진다. 이런 식으로 보면 과거의 선택은 대부분 성공을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현존하는 질서는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조건이었을 뿐 결코 변화시켜야 할 걸림돌로 여겨지지 않는다. 사회적 양극화가 점점 더 극심해지는 요즈음의 상황에서 이런 종류의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현상을 보면 씁쓸하다. 성공의 문은 좁아지며 남루한 삶은 늘어만 가는 현실에서 이런 실용서들이 실패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패한 이들은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성공한 소수의 영광을 더욱 더 빛내는 주제넘은 봉사활동만 하고 마는 격이 되는 것이다.

파이를 나눌 생각을 하지 말고 키울 생각을 하라는 신자유주의의 지혜는 가진 자, 성공한 사람에게 실패하고 가난한 사람의 몫까지 몰아주라는 말에 다름 아님이 밝혀졌다. 더욱이 글로벌 금융위기는 커진 것처럼 보이던 파이가 실상은 불면 꺼지는 투기 거품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이라면 허황된 성공신화에서 깨어나 비록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맡은 바 직무를 기쁘고 성실하게 수행하며 소박한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대다수 찌질이들의 삶을 재평가하고, 이들의 생활을 지속가능하며 발전 가능한 궤도에 올려놓는 일이 전사회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여전히 성공신화가 정치권력까지 틀어쥐고 양극화를 극단까지 몰아붙이는 굿판으로 난리법석이다. 성공한 자, 가진 자들이야 이런 현실이 그 자체로 잔치 마당일 터이지만, 대체 실패한 이들은 왜 남의 잔치에서 춤을 추는 것인가? 문제는 맘몬에 현혹된 정신이다.

『반전의 희망 욥: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참 지혜의 모범을 『욥기』에서 찾고자 한다. 그런데 『욥기』는 결코 쉽게 읽히는 문서가 아니다. 『욥기』는 구약성서 지혜전승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혜전승 중의 다른 문서들, 예를 들어 전도서나 잠언 등은 딱히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읽어보면 대체로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들이다. 그런대 『욥기』는 그렇지가 않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라고 고개를 끄덕거릴만한 내용은 대개 욥을 비난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뿐이다. 더욱이 친구들이 욥의 회개를 촉구하며 던진 이런 발언들은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어리석다”(42:8)는 핀잔을 듣는다. 반면 주인공 욥의 발언들은 감히 입에 올리기도 불경스러운 경우가 많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고 화살을 쏘시니, 내 영혼이 그 독을 빤다.”(6:4) “나는 이제 사는 것이 지겹습니다.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제발,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십시오.”(7:16) 심지어 하느님을 비난하기까지 한다. “주께서 손수 만드신 이 몸은 학대하고 멸시하시면서도, 악인이 세운 계획은 잘만 되게 하시니 그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라도 됩니까?”(10:3) 도저히 의로운 사람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들이다. 사정이 이러니 상식적인 수준에서 『욥기』를 읽기 시작한 독자들은 이내 혼란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다. 대체 『욥기』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저자 최형묵 목사에게 『욥기』는 성공한 자들의 지혜가 아니라 실패한 자들의 지혜이다. 욥이야말로 한 순간에 가진 모든 것을 잃고,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배척되었으며, 심지어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자신의 육체로부터도 괴롭힘을 당하는 찌질이 중에서도 상 찌질이로 전락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대 저자에게 욥은 성공한 사람들을 선망하면서, 그들의 충고에 다소곳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욥의 정체는 “도발과 항변”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발과 항변이야 말로 “절망의 언어가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과의 대면, 그리고 새로운 세계의 실현으로 인도하는 희망의 언어”이다.  

『욥기』는 지혜문학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 때문에 구약신학은 물론이요, 신학 전반을 넘어 철학과 문학 분야에서 방대한 연구와 해석이 축적되어 있는 문서이다. 이 모든 자료들의 성격을 함부로 싸잡아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욥기』에 대한 관심은 대개 ‘신정론(神正論)’이라는 신학적 주제에 집중되었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다스리신다면 왜 이 세계에 악과 불의가 존재하는가?” 이러한 신정론의 질문은 자비로운 하느님의 통치를 믿는 기독교 신앙을 궁지에 빠뜨린다. 왜냐하면 악과 불의가 현존하는 것은 하나님은 악을 막을 수 있는 데도 막지 않거나, 아니면 막으려 하지만 막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며. 결국 만일 후자가 옳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지 않고, 전자가 옳다면 그는 자비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고 말기 때문이다. 『욥기』에 관한 신학적 연구는 대개 이러한 궁지를 돌파하여 ‘전능한’ 동시에 ‘자비로운’ 하나님이라는 신 개념을 수호하는 데 집중되었다. 이러한 신학적 노력은 너무나 분명해 보이는 논리를 돌파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평신도나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고도의 추상적이며 논리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최형묵 목사의 책 역시 신정론의 문제의식 안에 있지만, 그 접근 방식은 전혀 새롭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욥기』가 지혜문학 중에서도 독특한 문서인 것은 사실이지만, 욥이 처하게 된 상황, 즉 의로운 사람이 고통에 빠지는 삶의 상황은 오래전부터 보편적인 것임에 착안한다. 그 이유는 신정론이 제기되는 바와 같이 인간의 삶의 현실은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최형묵 목사는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의 문제에 애써 눈감으며 조용히 살아가는 인물이 아니라 온몸으로 저항하고 항변하는 욥 같은 인물에게서 기독교 신앙인의 한 모범을 본다. 따라서 『반전의 희망 욥: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은 ‘전능한’ 동시에 ‘자비로운’ 하느님 개념을 수호하는 일에 조금도 애쓰지 않는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욥기』 안에서도 이러한 신학적 개념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모두 욥을 비난하는 그의 친구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욥기』 안에서도 하느님의 핀잔을 듣는다.

반면 저자의 관심은 어떻게 이처럼 부조리로 꽉 막힌 현실에서도 결코 저항과 항변을 포기하지 않는 욥의 태도가 어떻게 기대할 수 없었던 희망의 문을 활짝 열어내는가에 집중된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보신 욥의 신앙은 주어진 현실 자체를 하나님의 섭리로 보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순종하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주어진 현실에 하나님의 섭리가 보이지 않음을 통탄하고 이를 저항과 항변을 통해서 구현하고자하는 불굴의 정신이다. 아마도 이러한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창조세계의 청지기 정신,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의 동역자로 부르신 이유일 것이다.

그러므로 『반전의 희망 욥: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은 그 연구 대상인 『욥기』와 동일한 관심사와 방법을 가진 연구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함부로 『욥기』를 요약 정리하여 그 핵심을 추출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욥기』의 서술을 따라가면서 이 구약성서의 독특한 지혜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리 시대의 상황이라는 증폭기를 통해 말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욥기』를 우리 시대라는 맥락에서 다시 쓴 2009년 판 『욥기』, 혹은 신자유주의 양극화 시대의 『욥기』라 할 수 있다. 연구가 연구 대상과 동일한 시야를 확보했기 때문에 분출되는 생산성은 다양하지만, 이 책의 경우 두드러지는 것은 여느 『욥기』 연구서보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동시대적 울림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반전의 희망”은 결코 주어진 현실에서 찌질이가 결국 ‘운 좋게’ 대박을 터뜨리게 되었다는 성공신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전은 욥의 저항과 항변이 초래한 현실 그 자체의 뒤집힘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기독교 신앙의 ‘회개’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회개는 단순히 신앙인이 주어진 현실 내부에서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뒤집히는 사건, 지혜로운 것들이 어리석어 보이고, 높고 거룩했던 것들이 천하고 하찮아 보이는 세계 그 자체의 뒤집힘이 아닌가?

기독교인의 성서 읽기는 대체로 자기 확신의 재확인에 그치는 수가 많다. 이 때 성서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는 거울처럼 사용하는 성서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며 이를 하나님으로 착각한다. 이를 나르시스의 성서읽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때 우리의 “아멘”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이런 성서 읽기는 폭 넓은 성서이해에 접근하지 못하고 이해하기 쉬운 말씀, 듣기 좋은 말씀만 반복적으로 읽는 문제에 빠지게 된다. 성서를 이런 식으로 읽는 신앙인들에게 『욥기』는 불편한 책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기독교인들의 대표적인 식당개업식 문구가 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처럼, 『욥기』 안에서 결국 하나님의 핀잔을 듣는 발언을 마치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웃지 못 할 오해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성서를 읽으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침묵시키고 나의 욕망이 원하는 발언을 하나님에게서 강탈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조심하려 하지만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는 훈련이 충분하지 않아 성서 읽기를 매우 어려워하는 신앙인들 또한 적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최형묵 목사의 책은 하나의 모범을 제시한다. 이 책은 현직 목회자로 천안살림교회를 담임하는 저자가 교인들과 함께 『욥기』를 가지고 성경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초보적인 신앙인의 수준에서 『욥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욥기』를 통해 신앙인이 들어야 할 말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아마도 그의 탄탄한 민중신학적 입장과 목회적 경험을 버무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고도 명확하게 표현해내는 깔끔한 문체 덕분일 것이다.

오늘 기독교인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총체적인 위기의 시대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세계에 살면서도 창조질서를 거슬러 맘몬의 질서를 강요하는 배반을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창조질서는 인내의 임계점에 서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위기를 깊이 자각하는 신앙인들조차 어디에서부터 출구를 찾아야하는지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희망의 출구를 찾지 못하는 절망의 장벽 앞에 선 인간이 세계와 함께 파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자 최형묵 목사는 『욥기』를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신실한 신앙인의 씨름으로 보고 있다. 우리의 세계에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신앙적인 삶의 구체적인 의미를 묻는 사람들의 일독을 권한다.

* <기독교사상> 2009년 12월호 서평
자료 출처
 : 천안살림교회 홈페이지




연구소가 기획하고 도서출판 동연이 펴내는 <성서_현대를 읽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출간됐습니다. 성서와 더불어서 현대를 살고 있는 나를 살피고, 오늘의 인간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이 시리즈는 욥기를 새롭게 읽는 첫 번째 책에 이어 앞으로 다음과 같은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권 『무덤에서 모태로 - 생명을 살리는 성서의 지혜』(저자 : 구미정)
            3권 『다니엘과 함께』(저자 : 김응교)
            4권 『구약에서 영성 읽기』(저자 : 김은규)
            5권 『'나는 누구인가' - 성서에서 이웃에 관한 질문들』(저자 : 정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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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개 : 성서_현대를 읽다 1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지은이_ 최형묵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9월 6일
쪽수_ 272쪽
크기_ 148×210mm
장르_ 종교 / 기독교신학 / 구약학
값_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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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초대석] '반전의 희망, 욥' 최형묵
"성경 속 욥은 순종의 인물이 아닌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항변의 상징"

유상호기자 shy@hk.co.kr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성경 '욥기' 8:7)

고린도전서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는 말씀만큼 유명한 성경 구절이다.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는 긍정적 메시지로 널리 쓰이는 이 말이, 본래는 "독선적 교리에 뿌리를 내린 언어폭력이었다"고 최형묵(48·사진) 천안살림교회 목사는 말했다. 그가 낸 <반전의 희망, 욥>(동연 발행)은 인내와 순종의 인물로 인식되던 욥을 도발과 항변의 상징으로 해석함으로써, 구약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세상의 부조리한 본질을 묻는 책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궁지에 몰리고 절규해도 세상은 굴러갑니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문제가 우리 시대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주죠. 욥기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인간의 오랜 물음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욥은 인과응보의 논리로 부조리를 덮으려는 사람들에게, 그 논리와 상반되는 현실을 들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익숙한 성서 해석에 따르면, 욥은 고난을 묵묵히 참고 견뎌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거한 인물이다. 그러나 최 목사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공평함을 말할 수 있는 현실은 부조리하며, 그 불공평한 현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주장은 불온하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묻고 있다....(후략)

기사 출처 : 한국일보 홈페이지
전문 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09/h2009090503514384210.htm



연구소가 기획하고 도서출판 동연이 펴내는 <성서_현대를 읽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 출간됐습니다. 성서와 더불어서 현대를 살고 있는 나를 살피고, 오늘의 인간 문제를 들여다보려는 이 시리즈는 욥기를 새롭게 읽는 첫 번째 책에 이어 앞으로 다음과 같은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깊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2권 『무덤에서 모태로 - 생명을 살리는 성서의 지혜』(저자 : 구미정)
            3권 『다니엘과 함께』(저자 : 김응교)
            4권 『구약에서 영성 읽기』(저자 : 김은규)
            5권 『'나는 누구인가' - 성서에서 이웃에 관한 질문들』(저자 : 정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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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개 : 성서_현대를 읽다 1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지은이_ 최형묵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9월 6일
쪽수_ 272쪽
크기_ 148×210mm
장르_ 종교 / 기독교신학 /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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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지은이_ 최형묵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9월 6일
쪽수_ 272쪽
크기_ 148×21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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