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영화의 윤리: <레이디 버드>(2018)



조은채*

 

※ 영화 <레이디 버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이디 버드>는 “내가 새크라멘토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해?”라는 주인공 크리스틴의 보이스오버(V.O.)와 함께 시작된다. 가톨릭 교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보수적이고 조용한 새크라멘토에서 나고 자란, 하지만 도저히 자신을 그 마을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열일곱 살의 소녀. <레이디 버드>의 감독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은 원래 이름인 크리스틴 대신에 ‘레이디 버드’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이 소녀를 설명하기 위해 내레이션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소녀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나열한 일기장이나 편지를 읽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성장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론이 바로 내레이션이겠지만, <레이디 버드>는 처음 이후 단 한 순간도 라디오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잘 안다고 넘겨짚는 십 대 시절이 쉽게 언어로 가지런히 정리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내레이션은 주인공인 레이디 버드가 어떤 소녀인지, 그리고 영화가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를 단번에 예감하게 한다.


   <레이디 버드>가 ‘윤리적인’ 성장영화로 보이는 것은 이 영화가 이 소녀를 알고 있다고 함부로 단정짓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겪었던 일 혹은 지나온 시기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과신한다. 그 순간을 겪고 있는 당사자, 흔히 나이가 어린 이가 말하지 않는 속마음이나 사정도 뻔히 다 안다고 착각한다. 다른 성장영화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주 헛발질을 하곤 한다. 인물에게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세심한 설계가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어떤 성장영화들은 굳이 고심하지 않아도 그 시절을 너무 잘 기억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종종 일을 그르친다. 그 영화의 주인공들 역시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다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실체 없이 부풀려진 채 설명적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그 누군가는 대체로 감독이고, 그가 자신이 아직도 얼마나 소년 같은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과시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굳이 덧붙이도 않아도 될 것 같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과시욕에서 비롯된 연출이 청소년기의 인물을 대상화해서 흥밋거리로 착취하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 감독 그레타 거윅은 이 보편적이지만 다소 비윤리적인 성장영화들과 달리 <레이디 버드>에 넘겨짚은 추측이나 주제넘은 단정이 자리할 빈틈을 남겨두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항상 도덕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만 다룰 수는 없고, 연출력을 뽐내며 인물의 감정을 과하게 극대화해서 담아내는 장면도 필요할 수 있다. 카메라는 근본적으로 대상의 불안 또는 기쁨에 이입하지 않고 그저 관찰하고 수록하는 중립적인 매체이다. 하지만 대상을 ‘어떻게’ 담아내는지는 필연적으로 감독의 가치판단을 수반한다. 이때 감독의 시선과 태도는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고통을 다루는 영화라고 해서 타인의 고통을 그저 전시하고 때로는 미학화라는 명목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데다가 때로는 게으르기까지 하다. 반면, <레이디 버드>는 이미 성장한 자가 그 시기를 겪는 자를 관찰하는 데서 오는 불가피한 비윤리성을 인식하고 그 경계선을 넘지 않기 위해 매진한다.


  ‘철길 건너 구린 동네(the wrong side of the tracks)’에 사는 레이디 버드에게 새크라멘토는 녹록하지만은 않다. 엄마는 매번 야근을 반복하지만 아빠의 실직은 쉽게 메꿔지지 않고, 부자 친구들과 비교되는 집안 사정에 자주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레이디 버드에게 새크라멘토는 얼마간 관대한 보금자리이다. 레이디 버드는 학교 선생님의 채점표를 몰래 버려버리지만, 선생님은 범인을 색출하는 대신에 양심에 맡게 본인이 받은 점수를 적어내라고 한다. 다시 떠올리기도 창피한 거짓말을 친구에게 들켰지만, 레이디 버드는 동네방네 거짓말쟁이로 소문이 나서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수적인 미션 스쿨의 성교육 시간에 임신 중단을 무조건 부도덕한 일이라고 서슴지 않는 강사의 말에 반론을 제기했다가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정학을 당하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는 생각을 혼자 품고 사는(혹은 그렇다고 스스로 믿는) 소녀에게는 새크라멘토는 마냥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절하게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엄마는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의 학비까지는 지원해줄 수 없다고 못 박은 상태라서 떠날 가능성도 희박하게만 보인다. 레이디 버드에게는 엄마인 매리언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사건건 트집 잡고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지 않아서 자주 부딪친다. 누구보다도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때로는 그냥 조금 멀리 떨어져 있고 싶기도 하다.


  <레이디 버드>는 흔히 가장 자의식이 과잉된 시기라고 여겨지는 십 대의 소녀를 다루고 있지만, 그 연출은 과잉된 감정이나 자의식을 극대화하는 대신 도리어 절제하면서 효과적으로 배가한다. 배우의 얼굴과 표정을 클로즈업해서 민망함이나 비참함, 슬픔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스크린 가득 전시하는 법도 없다. 그런 욕망이 들 법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도, 가상의 인물인 데다가 나이도 어린 이 주인공과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윤리적인 연출을 선택한다. 알고 보니 게이였던, 그래서 결국은 레이디 버드를 속인 것이 된 첫 번째 남자친구 대니와의 신(scene) 역시 그렇다. 레이디 버드는 대니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분노하지만, 자신의 비밀이 들킬까 봐 무서웠다는 그를 이해하고 결국 함께 울어준다. 영화는 자신의 속마음을 가감없이 표출하며 우는 두 소년∙소녀의 얼굴을 과시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들이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둘 사이에 새롭게 싹튼 신뢰와 우정을 암시한다. 레이디 버드는 카일과 엉망인 첫 섹스를 마친 후, 자신을 데리러 온 엄마의 얼굴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는 비참함, 죄책감, 후회, 민망함, 서운함 같은 것들이 북받쳐 올라왔을 레이디 버드의 얼굴을 포착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아마 미세하게 떨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레이디 버드의 다리를 내보이지도 않고, 서러움 울음소리를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으로 삼지도 않는다. 대신 일요일에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레이디 버드를 달래는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사지도 않을 집을 함께 보러 다니는 모녀의 즐거운 일요일로 화면이 금방 전환된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특별하지만 평범한 레이디 버드, 혹은 모든 이의 소녀 시절을 조금이라도 더 윤리적으로 그리고자 한 고민의 연장 선상이다.


  알고 보면 레이디 버드와 엄마 매리언은 서로 무척 닮았다. 둘이 서로 닮았다는 사실은 대사로 직접 주어지기도 하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를 잇는 연출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사과하러 왔던 대니는 당황했기 때문인지 되려 레이디 버드에게 그녀의 엄마가 무섭다고 험담한다. 레이디 버드는 발끈해서 엄마는 따뜻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항변한다. 대니는 그녀의 엄마가 무서우면서도 따뜻한 사람이라고 결론지어버리고, 레이디 버드는 무서운 동시에 따뜻할 수는 없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레이디 버드는 대니를 몰아세우다가도 이내 그를 용서하고 위로해주기까지 한다. 곧바로 레이디 버드의 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신부님이 간호사인 레이디 버드의 엄마에게 자신이 우울증을 털어놓는 장면이 이어진다. 엄마는 신부님에게 비밀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그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연민한다. 영화는 ‘무섭지만 따뜻하다’는 얼핏 상반되어 보이는 말이 진실일 수도 있음을 레이디 버드와 엄마의 모습을 통해 증명한다. 레이디 버드와 그녀의 엄마는 때로는 신경질적이지만 강하고 따뜻한 사람, 즉 닮은 사람이다.


  졸업을 앞둔 레이디 버드는 학교 수녀님에게 그녀의 대학 지원 에세이에 새크라멘토에 관한 애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말을 듣는다. 레이디 버드는 그럴 리 없다고, 그저 관심을 가진 것뿐이라고 부정하지만, 수녀님은 관심과 사랑이 같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한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레이디버드는 프롬 드레스를 함께 고르던 엄마의 지적에 크게 상처받는다. 엄마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한다는 레이디 버드에게 엄마는 당연히 사랑한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레이디 버드는 자신을 좋아하냐고 되묻는다. 엄마는 쉽게 답변하지 못하고 네가 언제 어디서든 최고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어쩔 거냐는 레이디 버드의 말에, 수녀님 앞에서의 레이디 버드처럼 엄마의 말문도 막힌다. 닮은 두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대면하자 똑같이 침묵에 잠긴다. 레이디 버드는 고향이 지긋지긋하기만 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깊이 사랑했고, 엄마는 레이디 버드를 몹시 사랑하지만 소녀의 지금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둘은 일견 반대되는 깨달음은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둘이 누구보다도 닮고 서로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에는 맞물리는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심과 애정, 사랑함과 좋아함 사이의 미묘한 차이 속에서 그들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관계는 앙금을 남긴 채로 멈춰버린다.


  엄마 몰래 지원했던 뉴욕의 대학에 결국 합격하면서 모녀 사이의 관계는 더 틀어진다. 자신이 반대하던 일을 슬쩍 저질러버린 레이디 버드에게 엄마가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레이디 버드와 대화를 내내 거부하고, 그녀가 뉴욕으로 떠나는 공항에 데려다줄 때도 게이트까지 배웅해주지도 않는다. 엄마가 뒤늦게 후회하고 울며 달려왔다는 사실을 레이디 버드가 알 길은 없다. 엄마가 자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언제나 가장 많이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까지도 좋아하는지를 확신할 수 없는 채로 레이디 버드는 뉴욕에 도착한다. 이때 레이디 버드가 수녀님에게 자기도 몰랐던 새크라멘토에 대한 애정을 들키게 한 대학 에세이처럼, 아빠가 엄마 모르게 가방에 넣어둔 엄마의 부치지 않은 편지가 등장한다. 엄마의 내레이션으로 이 편지가 읽히고 레이디 버드가 펑펑 눈물을 흘리는 식의 효과적이겠지만 진부한 장면 대신, 그저 엄마가 편지에 쓴 문장 몇 개가 화면을 언뜻언뜻 스쳐 지나간다. 마지 못해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주기는 했지만 늘 못마땅해하고 심지어 비웃기까지 하던 엄마가 쓴 “레이디 버드라는 네 예명 참 예뻐.”라는 문장은 그 절제된 연출 속에서도 스크린 밖까지 잔상을 남긴다.


  뉴욕에 도착하고 엄마의 편지를 읽은 후에야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이름인 ‘크리스틴’이 꽤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주어진 것은 고향이든 심지어 이름이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열일곱 살 소녀에게도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거리’가 드디어 주어진 것이다. 떨어져야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는 법이듯이, 이제 레이디 버드에게는 고향과 엄마 모두를 사랑하는 동시에 좋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레이디 버드는 고향 집의 자동응답기를 통해 엄마에게 크리스틴이 참 좋은 이름인 것 같고, 사랑하고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아직 영화상에서는 엄마에게 도착하지 못한 이 메시지는 둘 사이의 관계 역시 성장하리라고 암시한다. 미숙해서 혹은 너무 사랑해서 서로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으며, 서로를 좋아하는 일이 가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하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좋아하고 싶어서 매번 삐걱대다가 멈춰버린 둘 사이의 관계도 비록 영화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내 움직이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새크라멘토에서도 “보기에 추한 것이 꼭 부도덕한 것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소녀는 뉴욕에서는 아마 더 자주 세상과 부딪칠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앞으로 성장할 엄마와의 관계가, 그리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무엇이든 성장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소녀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 <레이디 버드>의 결말은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으로부터의 졸업, 또는 ‘크리스틴’과 ‘레이디 버드’ 사이의 화해와 같은 쉬운 말로는 봉합되지 않는다. 성장이 결코 완료된 후 닫히는 개념이 아니라고 믿는 감독 그레타 거윅은 엄마에게 소녀의 메시지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시점에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누군가의 소녀 시절을 전지적인 위치에서 하나의 분명한 결말로 종결하는 대신,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끝마치는 것이 더 옳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까지 <레이디 버드>가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성장영화의 윤리이다.



* 필자소개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조형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현상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같은 전공으로 석사에 진학하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관심 분야는 페미니즘,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이다. 블로그(http://eunchaecho.tistory.com)를 드문드문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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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ness: 허구의 실체를 드러내다!

 



김혜란
(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영어를 주로 쓰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한국 디아스포라 학자의 어려움 중 하나는 번역이다. 특수한 사회적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와 이슈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많은 용어들이 있고, 그 용어는 특정 사람들의 경험을 표현하고 반영하는 그릇으로, 학문적 담론으로, 비판적 대중의 분석 도구로 쓰인다. 그런데, 그 용어를 다른 상황에서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이 번역이 요구된다. 많은 경우 번역이 쉽지 않다. 어떤 용어의 경우 번역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불가능하지 않아도 불충분한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번역되지 않은 원용어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한국의 토착신학인 민중신학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용어, “민중” 그리고 “한” 이 용어들은 영어권에서, 영어로 번역이 안되고 그냥 “Minjung” “Han”으로 쓰는 것이 그 예이다. 오늘 필자는 역으로 영어권에서, 특히 북미 영어권에서 만들어진 한 용어, whiteness에 대해 소견을 나누고싶다. 이 소견의 배경을 설명하려면 종교교육학회 이사회 퇴수회의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해야한다. 그리고 초대 전, 종교교육학회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필요할 듯 싶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학회는 종교교육학회 (Religious Education Association, 이하 REA)이다. 1903년 실용주의 철학자이자 교육이론가였던 존 듀이를 포함한 시카고대학 학자들 중심으로 공적 신학교육을 표방하면서 기독교적 정신을 담은 민주주의적 평등교육을 지향하면서 이 학회는 만들어졌다. 미국에서 시작한 REA는 곧 이어 카나다학자들을 포괄했고, 지난 50년간 유럽 나라에 속학 학자들도 REA 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래서 존듀이와 창립멤버들의 의도와 달리 종교교육학회는 국제적 학회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미국 중심이고, 북미중심이고, 백인중심이고, 기독교중심이지만, 2016년 벨기에 출신 학자를 회장으로, 2017년엔 처음으로 이슬람 종교교육 학자이 여성이 REA 회장으로 당선되었고, 2019년 회장은 이스라엘의 한 대학 학장으로 있는 유대교 종교교육학자이자 랍비를 선출한 상태이다.

매년 11월에 있는 종교교육 학회는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 따라 다양한 학술논문들이 발표되고, 특별한 강연을 포함해서 현장견학과 교육의 기회가 학회기간에 이루어진다. 2018년 올해 학회 주제는 “Beyond White Normativity” 이다. 매년 3월 이사회가 퇴수회로 모인다. 이 퇴수회에서 이사회가 하는 일 중 한가지는 바로 선출된 회장을 도와 그 다음해 있을 학회 주제를 심도있게 토론하고 그 주제에 맞는 교육적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지난 해 3월 이사회는 선출된 회장이 Whiteness 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제안했다. 필자를 포함해서 유색인종 이사회원들과 이미 이 주제 관련으로 수업을 하고 글을 쓴 백인 이사회원들은 그 주제를 대환영했다. 그 때 유럽출신 전회장이 고개를 저으면서 질문을 던졌다. 이 회장은 벨기에 출신이고, 자신의 모국어와, 네덜란드언어와 독일어, 그리고 영어까지 4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소위 언어가 탁월한 학자이다. whiteness가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벨기에어, 화란어, 독일어 그 어느 언어로도 북미에서 말하는 그 뜻을 담는 번역이 안된다고, 그래서, 유럽권 학자들에게 흥미있는 주제가 못되니 whiteness 용어를 삭제하고, 다른 용어를 쓰자고 제안했다.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열띠고 긴장되는 토론이 벌어졌다. 결국, whiteness 라는 용어는 제외되고, 이 내용을 풀어서 white normativity 라는 용어로 주제가 정리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난 whiteness를 한국말로 하면 어떻게 번역이 될까 궁금해졌다. 인터넷 구글로 ‘whiteness 한국어로’ 치니, ‘흼’이라고 나온다. 으악…전혀 그 의미가 아니다. 제대로 번역이 안 되어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그 의미까지도 한국사회에서는 소통될 수 없을까?

번역이 안되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이 문제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whiteness 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은 아니다. 이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번역이 완전하게 안되는 불가능성을 인지하고, 즉, 번역의 한계, 어떤 용어도 그 지식이 담고 있는 의미도, 그 용어가 탄생된 그 상황을 벗어날 때 갖게 되는 부분성(partiality)을 충분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충분한 한계를 상정하고, whiteness 그 의미를 한국말로 쉽게 설명하면, whiteness는 하나의 이념이고 권력과 특권을 말한다.[각주:1] 단지 개인적 힘이 아니라, 이념화된 제도적, 역사적, 식민주의적 그리고 구조적 권력을 말한다. 다시말해 whitnesss는 백인 개인을 가리키고 그들을 지칭하고 탓하는 용어로 국한되어선 안된다. 백인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자들이 지니는 특권 (white privilege)을 포괄하지만, whitenss는 백인 특권을 넘어서서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들 안에서도 발견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racialized whiteness). 즉, whiteness의 영향은 피부색깔의 농도로 인해 차별과 계급화 (hierarchy)로 그 폭력의 실체를 드러낸다. 우선 한국 안에서 벌어지는 예를 보면 이렇다.

한국에 수백만명이 넘는 이주 노동자들, 이주 결혼자들, 한국인이 아닌, 백인도 아닌 유색인종들이 많이 살고있다. 시골에 가면 한국사람들만큼 비한국인 (종족) 이주자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비한국인 비백인 이주자들이 겪는 삶의 고통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의 삶이 쉽지 않은 이유들을 따지자면 복잡하다. 언어, 문화의 차이, 종교적, 경제적 차이, 등 한가지로 정리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고통, 어려움의 원인 중 하나는 바로 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일 것이다. 즉, 유색인종 이주자들은 그들이 백인이 아니어서 차별을 받는다. 더 나아가 피부색이 덜 진할수록 한국인들에게 차별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왜 한국인들은 어두운 피부색을 싫어하고, 피부색이 연한 걸 선호하는 것일까? 왜 미국 흑인 출신을 폄하하는 용어가 한국말로 검둥이, 피부색깔로 표현되었을까? 왜 이런 인종차별적 언어가 피부색깔을 지칭할까?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자성적으로 바라보기를 바람으로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사람으로서 난 한국사람만큼 피부를 태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등산을 가고, 여행을 가고, 자연으로 나가는 것은 좋지만, 피부색이 햇볕에 그을리는 것이 싫어서 만들어진 상품들을 보면 한국사람들의 기발한 발명정신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완벽하게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창을 두른 모자, 목피부를 감싸주는 수건, 팔 전체를 두르는 이상한 밴드, 가능하다면 햇볕에 닿을만한 모든 피부를 완벽하게 덮도록 동원된 이 발명품들은 각양각색이고 보편화, 대중화되어 있다. 이 발명품들은 한국이 아닌 카나다 록키산을 가도 보이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가도 보인다. 국제도시 어디를 가도 한국여행객들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국사람들이 입고 차고 두르는 오색찬란한 햇볕가리기 의상때문이다. 피부암이 두려워서일까?

햇볕가리기 상품을 넘어서 화장품이야기를 해보자. 매년 개발되는 화장품을 보면, “백미” (피부가 하얗게 되어 아름다워지는)를 가능하게 한다고 선전하고 그 원료 (백미원료가 있는가?)가 가미되어 있다고 선전하는 화장품들이 있다. 아니 번역도 안하고, 바로 화이트닝(whitening)라는 이름이 붙여진 기능성화장품도 비일비재하다. 이 화장품을 볼 때마다 정말 피부를 연하게 해준다고 믿고 이 상품들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상품을 팔고자 하는 기업의 욕구를 읽지 못하고, 그 광고에 유혹을 당해 이런 제품을 사는 한국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많은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니, 한국화장품이 국제적으로 좋다고 알려져 수출이 되는 이 상황에서 백인 이 아닌 피부색이 진한 비한국인들에게도 이 화이트닝 화장품 선전이 구매욕구로 이어질 지도 모르겠다. 난 바로 이런 예가 유색인종들 안에도 존재하는 whiteness이고, 그 힘이 발휘되는 예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넘어서 whiteness 와 racialized whitenss 에 대한 국제적 예를 한가지만 들어보자. 르완다 종족말살 사건이 그 예이다. 르완다 학살을 모르는 분들은 최소한 영화 ‘호텔 르완다’를 볼 것을 추천한다. 그 영화에서 그렸던 것처럼 1994년 약 100일 동안 거의 백만명에 달하는 투치종족이 살해된다. 수년에 걸쳐 육백만명의 유대인과 다른 소수자 (유색인종, 장애인, 성소수자 포함)들이 나치에 의해 살해된 것을 생각해보면,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살인이 일어난 최악의 폭력으로 르완다 종족학살을 꼽는다. 이 학살의 요인은 비한국이주자들의 고통, 차별, 억압의 엉켜있는 고리처럼 복잡하다. 탈식민주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한가지로 딱 부러지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사회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국내적, 국제적 관계들이 연관되어 쉽게 말할 수 없다. 르완다 문제도 그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 이는 바로 르완다를 정복했던 독일과 벨기에 식민주의 정책이다. 식민주의 지배 논리는 바로 피부색이 연한 투치족을 후투족보다 선호한 정책이었다. 이것이 바로 또다른 racialized whiteness이다. 공공연하게 피부색이 연한 것을 인종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표방했다. 백인이 가장 우월하고, 백인처럼 피부색이 연한 종족이 우월하므로 그들이 정치를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논리가 그 정책을 정당화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투치족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렇게 유럽식민주의자들은 투치족을 식민지배의 꼭둑각시로 이용했고 후투족을 무시하고 차별했다. 이들의 이른바 분열정복 정책(divide and conquer)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1962년 독립까지거의 100년간 지속되었다. 탈식민주의 국가가 된 르완다는 1960년 이후 종족간 갈등이 내전으로 이어졌고, 식민주의하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았던 후투족의 세력이 커지면서, 94년 종족말살의 대학살로 이어진 것이다.

단지 멜라닌 색소의 농도차이로 나타난 피부색의 다름이 이렇게 끔찍한 폭력을 양산한다고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황당할 뿐이다. 피부색의 차이가 차별과 억압, 계급화를 정당화시킨다는 사실만큼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부정의한 논리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되는 비상식적인 논리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 즉 생물학적 사실 (fact)도 진리 (truth) 도 아닌 이 허구의 실체 (이데올로기)가 사실은 근대 유럽 식민주의를 가능하게 했고 수백년간 그렇게 성공적 지배와 착취를 가능하게 한 가장 무시무시한 도구였다. 아니 2018년 오늘 우리 사는 지금도 이어지는 지배의 구조적 이데올로기고 허구의 실체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벌어진 대서양 노예 무역정책 (Atlantic Slavery), 즉, 아프리카대륙에 있던 흑인들을 유럽으로 북미, 남미, 중미, 그리고 카리비안 지역으로 강제이주시키고, 노동력을 착취한 정책은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말하면, 피부색깔 농도에 의한 차별정책이었다. 백인이 가장 우월하고, 그 다음은 황인종, 적인종 (원주민),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출신 흑인종을 가장 열등한 존재, 아니, 인간이하의 존재 (동물에 가까운)로 그려낸 그 이론은, 사실도 진리도 아닌 허구지만 물질적 문화적 실체가 되었다. 허구적 이데올로기가 지식으로 양산이 되었고, 물질화되었고 자본화되어, 극도의 이윤을 창출했고, 인권은 침탈되었고, 그렇게 유럽식민주의는 부를 축적했다. 20세기 두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최고의 제국주의으로 등장한 미국역시 흑인들을 노예화하지 않고, 철저한 노동착취와 차별을 자행하지 않았다면 현 21세기 최대 강대국으로 그 세력을 계속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차별은 단지 경제적 자본주의적 착취만이 아니라 문화적 심리적 억압을 포함한다.[각주:2] 물론 무기를 팔고, 세계를 군사화시킨 그 효과도 크다.

이 말도 안되고 어이없는 비인간적 피부색 차별정책, whiteness의 실체는 철저하게 연구되었고, 과학자 (다윈), 인류학자, 고고학자, 철학자 (볼테르, 칸트, 쇼펜하우어, 헤겔, 슐라이에르마허들까지 동원되어 객관적(?) 이론으로 정립되었다.[각주:3] 특히 철학자들의 whiteness 이론이 신학과 성서해석에 영향을 미친 것을 보면 기독교를 유럽식민주의 미국제국주의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가 잘 아는 아니 심지어 존경하고 학교에서 배웠던 과학자, 철학자, 신학자들이 이런 글을 쓰고 설교를 하고 교육을 한 것을 아는 것이 충격이다. 배신을 당한 것처럼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황당하고 화가 난다. 그 황당함, 그 분노, 그 짜릿한 감정적 반응을 잊지 말자. Whiteness는 이데올로기이지만 그래서 보이지 않는 괴물처럼 좀비처럼 잡히지 않을 수 있기에, 감각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 허구지만, 아프면 바로 반응하는 피부와 직결되어 있다는 걸 기억하자. 피부가 햇볕에 심하게 그을리면 빨개지고 열이 나고 아프다. 그 아픔처럼 whiteness의 폭력을 그 허구적 실체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인종의 문제, 식민주의의 문제, 이주의 문제를 이론화하는 노력으로 사라 아메드는 피부, 우리 몸의 제일 외부에 존재하는 피부가 home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home은 단순하게 집이 아니라, 고국이기도 하고, 정체성이기도 하고, 동시에 기억이자 상실 (이주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다. Home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복잡하다. 번역이 충분히 안되는 또 하나의 용어이다. 낯선 환경 (고통, 소외, 차별의 경험)을 만났을 때 우리 몸 중에 가장 외부에 존재하는 피부, 우리 몸을 보호하는, 동시에 우리 정체성을, 우리의 다름을 각인시키는, 그 피부, 그래서 때로는 지워버리고 싶은 피부, 그러나 우리의 한 부분인 피부가 바로 home이다. 그 피부가 느끼는 그 경험에 관심을 두는 일이, 인종, 식민주의, 이주의 문제를 이론화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각주:4]

유색인종인 우리 안에 잠재한 racialized whiteness 허구의 실체, 폭력의 잔인함을 자성하고 인식하고 거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얼굴을 씻고 거울을 볼 때마다 (고백과 회개의 의식) 이 실체를 드러내는 일을 하면 어떨까? 그리하여 이제 햇볕이 따스해지는 4월, 뜨거운 여름을 앞두고, 햇볕가리기를 사용하게 될 때, 백미, 화이트닝화장품을 구매 (또는 거부?)하고 사용할 때마다 각자의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의 장에서 허구의 실체인 whiteness를 드러내길 바란다.


ⓒ 웹진 <제3시대>



  1. Daniel Coleman, White Civility: The Literary Project of English Canada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2006), 7-8. [본문으로]
  2. Cornel West, Prophesy Deliverance! An Afro-American Revolutionary Christianit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2), 50-59. [본문으로]
  3. Shawn Kelly, Racializing Jesus: Race, Ideology, and the Formation of Modern Biblical Scholarship (New York: Routledge, 2002). [본문으로]
  4. Sara Ahmed, Strange Encounters: Embodied Others in Post-Coloniality (London/New York: Routledge, 2000), 9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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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과 에머슨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함석헌을 철학의 이름으로 생각하게 된 동기를 내게 처음 제공한 것은 미국의 에머슨(1803-1882)이었다. 19세기 미국의 제일 중요한 사상가라 할 수 있는 에머슨은 그와 오랜 친분을 유지했던 후학 소로우와 더불어 미국적인 학문의 터를 닦았다. 한때 함석헌과 에머슨의 글을 동시에 읽기도 하면서 내린 결론은 두 사상가 사이에 유사함이 많다는 것이고, 그 유사함의 일부는 철학적이란 것이었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살았던 시대도 달랐던 두 사상가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결론만을 도출해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부담을 감수하면서 두 사람을 연결해보는 이유는 함석헌이 서구사상과 맺은 인연이 주로 에머슨과 같은 낭만주의의 사상가들과의 교감 속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함석헌이 자주 언급하는 서양의 인물들의 이름을 나열해보면 알 수 있고, 이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겠다). 여기서 에머슨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미국의 사상에 끼친 영향,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이 유럽의 정신적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상적 독립의 발판을 마련했던 그의 역할이 바로 함석헌이 한국 사상의 독립을 위해 자처했던 역할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미국 내에서 에머슨의 그런 역할이 미국학문의 전통을 가능케 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함석헌이 남긴 정신적 유산에 대한 평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함석헌은 에머슨에 대해 많은 말을 남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주로 동시대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이나 에머슨과 콩코드라는 마을에 함께 살았던 소로우와 함께 언급된다. 함석헌이 소로우의 유명한 <시민불복종>이란 글을 한국어로 번역까지 한 것에 비하면 에머슨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함석헌은 이 세 사람을 미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들로 이해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함석헌의 글에는 미국의 정체성을 이들과 연관 지어 언급한 내용이 있다. 에머슨, 소로우, 휘트먼이 아니었다면 ‘미국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미국의 어떤 면이 가능했고, 미국을 가능케 만든 사상적인 조건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또 에머슨은 빠졌지만 <월든>을 쓴 소로우와 <풀잎>의 저자 휘트먼이 없었으면 ’미국은 더 썩었을 것’이란 주장도 했다. 큰 맥락에서 에머슨의 이름을 포함하여 이해해도 무리는 없어 보이는 주장이다. (함석헌이 미국을 어떤 나라로 생각했기에 그들의 사상이 아니었다면 미국이 더 썩었을 것이라 했는지는 다른 각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함석헌은 이들을 ‘야인’이라 불렀다. 이들이 야인이라면 함석헌과 추구했던 인간성에 부합하는, 즉 함석헌적인 인물들이 된다.


    실제 에머슨과 소로우가 없는 미국의 사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함석헌이 19세기 중반에 완성된 이들의 사상이 미국의 본질적인 모습을 담아낸, 미국을 대표하는 학문으로 이해했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함석헌이 살았던 20세기에 미국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평가받던 인물은 존 듀이(1859-1952)였다. 듀이를 에머슨과 소로우나 휘트먼 같은 인물의 반열에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잠시나마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을 완성시켰고, 진보적인 사회개혁에도 큰 관심이 있었고, 실험적인 학교까지 세워 교육이론을 펼쳤던 듀이는 함석헌의 사상적이고 실천적인 행적과도 괘를 같이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듀이는 함석헌이 미국을 처음 방문하기 10년 전에 이미 사망했지만, 그의 명성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세계적인 것이었다. 듀이는 동아시아에서도 유명했다. 그는 1919년 봄 두 달간 일본을 방문해 동경제국대학에서 강연을 했고, 그 내용은 <철학의 재건>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그의 중요한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듀이는 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대신 그의 콜롬비아 대학 제자였던 호적의 초청을 받아들여 중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2년이란 긴 시간으로 보내면서 많은 강연을 했고, 특히 5.4운동으로 고조된 중국의 사회개혁과 교육개혁을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 가운데 그의 존재는 큰 화제가 되었다. 1919년 북경에 머물던 듀이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로부터 한국방문을 요청받고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도 했었다. 미국을 여러 번 방문했고, 미국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관심이 컸던 함석헌이 듀이를 몰랐다고 보긴 힘들다. 함석헌은 1962년 첫 미국 방문 때 하버드 대학의 은퇴 교수였던 철학자 Ernest William Hocking을 만났다. 그는 윌리엄 제임스의 제자였고 훗날 듀이와 철학적인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고, 한때 듀이 다음으로 영향력이 있는 철학자란 평가도 받았던 사람이다. 큰 틀에서 듀이와 마찬가지로 실용주의의 시각으로 유럽의 철학과 대화를 이어갔던 미국의 철학자였다. 함석헌은 Hocking 교수와의 만남과 소감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만약 듀이가 그때 살아 있었다면 미국 국무성에서 함석헌과 듀이가 만나 미국의 정신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도록 주선하지 않았을까 상상도 할 수 있다. 듀이에 대한 함석헌의 침묵이 의도적인 것이었다면 미국의 정신을 대변하는 사상가로 듀이가 아니라 에머슨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실은 미국의 실용주의에 대한 함석헌의 판단일 수도 있다. 특히 실용주의가 기술주의로 흐르는 경향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가능성이 생긴다. 20세기 중반 미국이 썩었다는 함석헌의 판단도 에머슨과 소로우가 꿈꿨던 이상적인 미국은 사라지고 자본주의와 결탁한 기술과 폭력의 문화가 팽배한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


    에머슨과 듀이를 좀 더 연결시켜 보자. 미국 내에서도 최근까지 에머슨의 학문적 유산을 철학적인 것이라 보는 시각은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낭만주의 학풍의 에세이 형식의 글을 썼고, 자립적인 인간이해를 통해 미국의 독립정신을 표현해냈고, 시를 쓰기도 했고, 미국 실용주의의 동기를 제공했고, 당시 많은 문인들과 교류했다는 등의 이력이 그를 이해하는 주된 관점이었다. 문학적인 사상가로도 미국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부각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에머슨을 니체와 하이데거와도 연결시키며 독창적인 철학적인 작가로 부각시킨 사람은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이라는 미국의 철학자다. (지식사의 사적인 연결점들에 대해 비교적 관심이 많은 나에게도 니체가 에머슨의 책을 항상 들고 다녔고, 반복해 읽으며 밑줄을 긋고 여백에는 극찬의 감탄사까지 남겼을 뿐 아니라 글의 스타일까지 모방하려 했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을 넘어 충격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 에머슨을 철학적인 사상가로 부각시킨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존 듀이였다. 1903년 시카고 시절 그는 “Emerson: the Philosopher of Democracy”(에머슨: 민주주의의 철학자)란 글을 썼다. 듀이는 에머슨의 글을 어떤 철학으로 이해했을까? 에머슨에 대한 듀이의 평가는 함석헌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듀이의 글을 들여다보자(이 글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듀이는 에머슨의 글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를 잘 알고 있었다. 듀이는 에머슨에 대해 철학적이라고 하기엔 논리가 약하다는 평가를 논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비판했다. 듀이에게 논리는 논증의 도구만이 아니라 직관의 반응을 구하는 논리가 있을 수 있었고, 침묵마저도 논리의 양식이 될 수 있었다. 에머슨은 ‘말’이 의미를 축소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침묵이 말을 부끄럽게 만드는 순간들에서 사유의 동기를 찾았다. 에머슨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방법론을 묻거나 그가 발전시킨 논리의 형식을 묻기 전에 그의 글에 담겨 있는 그만의 논리와 방법을 깨달아야 했다. 또 에머슨을 철학자라 부르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에머슨이 철학 이상의 학문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에머슨은 형이상학자가 아니라 시인으로 철학을 했고, 반성적인 사유가 아니라 창조적인 사유를 했다. 이성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사유를 했던 에머슨에게 철학은 ‘아직도 거칠고도 기초적인’ 상태에 있었다. 에머슨은 미래의 철학을 시인들이 가르칠 것이라 예고했다. 그에게 철학자는 믿을 이유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지만 시인은 믿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철학자와 시인 사이의 분쟁은 고대 희랍의 철학과 함께 시작했다. 형이상학과 예술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내는 글을 써온 에머슨은 그 분쟁을 19세기에 재현해냈다. 에머슨에게 철학과 문학의 방법론적인 구분은 인위적이고 유치한 것이었다. 에머슨이 문제 삼은 것은 정신이었다. 그 정신의 본질은 새로움에 있었다. 이전 시대의 지치고 낡은 원칙의 한계를 파헤칠 지식인을 찾았고 타성에 젖지 않은 새로운 사유를 찾았다. 에머슨이 추구했던 철학은 시스템이나 방법론에 얽매이지 않고, 삶에 정직하고 일상의 경험에 충실한 철학이었다. 그는 모든 위대한 사상이 결국 보통 사람들에게 익숙한 경험을 설명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요구했고, 모든 사상의 대한 판단의 기준이 일상의 삶 속에 있음을 설파했다. 그에게 모든 진리는 일상에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논리의 싸움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철학이나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 시키려는 철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에머슨은 교리나 제도, 관습이나 체계적인 것을 싫어했고, 철학과 종교, 예술과 도덕의 이름으로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것들을 되돌려놓고자 했다. 신학과 형이상학의 기술과 속임수로 인해 감춰진 진리의 단순함을 찾고자 했다.


    플라톤이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이해할지 고민했다. 그를 실패한 개혁자, 지혜의 철학자, 또는 덕의 삶을 가르친 선생으로 보는 등 다양한 시각이 있었다. 오늘날 플라톤의 글에서 체계와 논리의 철학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해석의 역사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듀이는 에머슨 철학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석의 역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듀이는 20세기가 에머슨에게 그런 역사를 제공할 것이고, 역사는 결국 에머슨을 민주주의의 철학자로 기억할 것이라 예언했다. 20세기에 민주주의가 사상적인 자기표현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에머슨에게서 찾을 것이란 예언이었다. 듀이가 말한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맛서는 이념적인 제도가 이니라, 일반 대중의 경험이 사유와 판단의 기준이 되는 정신적인 평등이라는 에머슨적인 이상을 말한다.


    19세기 미국에서 제일 중요한 사상가였던 에머슨과 20세기에 그 역할을 맡았던 듀이의 관계는 미국의 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듀이의 사상에 에머슨이 얼마나 어떻게 반영됐는지, 에머슨의 사상에서 듀이의 실용주의 철학의 뿌리를 얼마나 찾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듀이가 에머슨의 사상을 철학으로 이해하고 옹호하려 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듀이는 에머슨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던 해석의 역사를 직접 참여했다. 듀이에게 미국의 철학은 미국이 추구해온 가치나 이념과 분리될 수 없었고, 에머슨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미국의 철학이 논리의 놀이터가 아니라 역사와 사회와 함께 발전한 정신사의 산물임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머슨에 대한 듀이의 평가를 함석헌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듀이의 글 곳곳엔 에머슨 대신 함석헌의 이름을 넣어도 이해가 될만한 문장들이 있다. 듀이가 제시한 논리와 방법의 한계, 시와 철학의 경계에 대한 성찰, 일상의 경험이 기준 되는 철학은 분명히 함석헌의 철학을 위한 논변으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듀이는 에머슨의 철학을 말했지만, 그 내용을 철학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그 작업은 앞서 언급한 스탠리 카벨이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해왔고, 카벨의 이름은 앞으로 더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함석헌과 에머슨 사이에 비교가 가능한 부분을 몇 가지 언급해보자.


    약 100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지구 반대편에서 각각 태어난 두 사람의 사상은 기독교 신앙에서 출발했다. 에머슨은 교회의 낡은 교리를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는 양심의 이유로 3년간의 목회를 그만두었다. 특히 교리나 관습에 따라 성만찬을 집전할 수 없다는 게 사임의 직접적인 이유였다. 함석헌은 예수의 대속이란 교리를 자유로운 인격이 받아드릴 수 없다는 이유로 이단의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 그 후 두 사람이 각자의 언어로 발전시킨 사상은 ‘스스로’, ‘자기 신뢰’, ‘자유로운 인격’과 같은 인간이해를 기초로 한 것이었다. 인간은 그들에게 제도와 관습이 묶어놓을 수 없는 생각하는 영적인 존재였다. 에머슨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자아를 찾았고, 함석헌은 문명에 가려진 야성의 영성을 찾았다. 에머슨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생각의 사람’(Man Thinking)이었고, 함석헌은 좀 더 집단적인 ’생각하는 백성‘이었다. 철학의 사유를 “창백한 생각”(Pale cast of thought - 에머슨이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햄릿 대사)에서 벗어나 생각의 조건인 일상에 대한 반성으로 되돌리려는 노력도 하나의 공통점이다. 자연과 일상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회의주의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함석헌은 한국의 정신을 가로막는 숙명적인 세계관이 있음을 경고했고 이를 극복할 삶의 자세를 믿음이라 했다. 에머슨이 미국을 약속과 미래와 새로움의 언어로 이해한 이유는 미국이 유럽의 낡은 제도와 교회의 교리가 낳는 억압적인 자아의식을 극복할 사명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모두 퀘이커의 영향을 받았고, 한때 힌두교에 심취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퀘이커주의의 영향 때문인지, 두 사람 모두 공중기도를 싫어했다). 함석헌과 에머슨을 함께 생각할 근거를 말하면서도 기억해야 할 차이점이 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에머슨과 개인과 전체가 긴장관계 속에서도 분리될 수 없음을 주장했던 함석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또 에머슨이 당시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사회운동에 직접 참여했다고는 할 수 없는 반면에 저항과 참여정신을 배제한 함석헌의 사상은 생각할 수 없다. (함석헌과 에머슨을 함께 읽는 글은 1회 더 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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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해선 안 되는 불편한 진실



심범섭*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이런 말을 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7장 6절). 개와 돼지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마음에 느끼는 심한 불편(당황)을 달리 해소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곧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거나 자신이 감당(소화)할 수 없는 것을 마주쳤을 때에 느끼는 불편을 성숙한 방식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어 이를 폭력적으로 표현하고 마는 것이다.

영국 작가 프레드릭 포사이드(Frederick Forsyth)가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Opera)>에 바탕하여 쓴 일종의 속편 소설 <맨해튼의 유령 (The Phantom of Manhattan)>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에릭(Erik)은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의 일부가 심히 일그러진 사람이라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젊은 시절 어느 날 밤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불량배 몇 명과 만나 시비에 휘말리는데, 어느 순간 그의 가면이 벗겨지고 불량배들은 그의 추한 얼굴을 보게 된다. 이때 이들은 반사적으로 에릭을 두들겨 패기 시작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 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들이 에릭을 얼굴을 보고 폭행을 시작한 동기에 대해 소설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추한 것은 악한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이 깡패들은 에릭의 비정상적인 얼굴이 주는 불편함을 감당할 수 없었고, 이러한 불편함을 일으키는 대상은 악한 것이라고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판단했고, 이 판단이 일으키는 거친 감정(아마 공포도 포함하는)을 해결할 방법으로 폭력행사 이외의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예수의 말에서 개와 돼지가 야만적인 불편반응을 보이는 대상과 포사이드의 소설에서 불량배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대상은 일반적인 인식에서 그 평가가 상반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진주는 좋아하고 심히 훼손된 얼굴은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상이 일반적으로 좋거나 나쁘게 평가 받음을 떠나 무엇이든 그것을 마주친 사람에게 불편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이러한 난폭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예수의 말에서 개와 돼지는 먼저 좋은 선물 자체를 "발로 밟"아 무시하고 그것으로는 분이 안 풀려 그 다음에는 이 선물을 준 사람을 난폭하게 공격하기까지 한다. 이 두 단계는 모든 미성숙한 불편 반응에 적용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신약성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에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 강도 만난 사람이 길에 쓰러져 있었는데 제사장이 그를 보고 길 반대편으로 그냥 지나쳤고 그 다음에 레위인도 그를 보고 똑같이 행동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10:30-31).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불편한 상황을 만나자 이 상황을 그냥 무시하기로 마음 먹은 것인데, 이는 성숙하지 못한 불편반응의 1단계를 예시한다고 할 수 있다.

못된 불편반응의 2단계까지 나아가는 예로서 이런 것은 어떠한가? 서울의 모 신학대학원에 다니던 사람으로부터 수 년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한 교수가 자기가 번역 출판하고자 하는 영어원서를 대학원생 몇 명과 함께 번역해 보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모임에서 교수가 어떤 대목을 번역하는데 이 학생이 보기에 잘못 옮기고 있어서 교수에게 이리이리 번역하는 것이 맞다고 일러주었다. 그러자 그 교수는 화를 내면서 자기 의견이 맞다고 우겼다. (이 학생은 이 순간 다시는 교수의 오역을 바로 잡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다른 학생도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오역이 지적 받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가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학생의 의견을 받아들였겠지만 그러지는 못 했는데, 그래도 불편반응의 1단계까지만 가서 그냥 학생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문제는 의견 일치가 안 되니 더 생각해 봅시다"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그는 이 정도도 못 할 정도로 마음이 비좁은 위인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 자신은 과연 이 두 단계 반응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어떤 것을 마주쳤을 때 그것을 제대로 알려고 하기보다 단지 불편한 것이 싫어 그것을 은근슬쩍 무시하고 외면하는 일이 없는가? 더하여, 불편반응 2단계까지 나아가, 비록 예수가 말하는 개와 돼지처럼, 그리고 바로 앞에서 예로 든 신학교 교수처럼 난폭하게 반응하지는 않더라도, 불편하게 하는 대상 또는 제3자에게 경미하나마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는가? 인간은 사실 편안함에 깊이 중독된 존재라 이러한 철없는 반응에서 완전히 자유롭기가 어렵다.

그런데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대상 가운데 어떤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표현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진실이라는 중요한 것일 때가 있으며, 이 불편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큰 어리석음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진실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정신 차리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권침해의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미투 (ME, TOO) 운동"이 전개되면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들의 고통을 말하고 있고 이에 온 사회가 충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이 드러내는 진실이 초래하는 불편에 대해 이런저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안희정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폭로 이후 "김지은과 함께 하는 사람들 성명서"를 발표한 사람들의 반응은 성숙한 반응으로 보인다. 그들은 사안의 중대함을 인식하고, 자신들이 과거에 성폭력을 묵과한 점을 반성하고, 김지은씨를 비롯해 모든 피해자와 함께 하겠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그들은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이 문제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펜스 룰(Pence Rule)"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펜스 룰은 현 미국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가 2002년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 (The Hill)>에 밝힌 것으로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고 아내가 옆에 없으면 술자리에도 가지 않겠다"는 규칙이다.[각주:1] 성적인 차원에서 오해를 받거나 유혹을 받을 상황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원칙인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회식이나 출장에서 여성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식으로 번지고 있다"[각주:2]고 한다. 이런 반응은 이 글에서 언급하는 미성숙한 불편반응 2단계에서 1단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반응, 곧 드러난 진실을 간과하고 무시하는 반응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간 것으로 판단되는, 미련하고 난폭한 불편반응도 만나게 된다. 얼마 전 민주당 소속 부산시 시의원 출마자가 미투 운동에서 나온 성폭행 폭로에 대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SNS에서 저열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고 당에서도 제명 당했다.) 홍준표가 3월 7일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에게 안희정 사건에 대해 "임종석이 기획했다는 얘기가 있던데"라고 말한 것, '세계여성의날'인 3월 8일 자유한국당 성폭력근절대책특위 위원장인 박순자가 "우리에게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들은 거의 터치나 술자리 합석에서 있었던 일들이지, 성폭력으로 가는 일은 없었다"고 말한 것은 어떠한가? 이들의 말은 정치적인 계산이 포함되어 있어 민주당 시의원 출마자의 말보다 그 의미구조가 더 복잡하다. 하지만 자기중심적이고 분별력 없으며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그 본질이 같다고 여겨진다.

(사실 이렇게 미성숙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애당초 인권침해의 고통에 대해 불편한 느낌이 있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들에게 불편한 것은 인간의 억울한 고통이 아니라 이것이 사회문제가 되어 초래되는 현실적인 제약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어리석음이 엄존하는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해져서 인권침해라는 진실의 불편함에 더 현명하게 반응하고 더불어 인권침해를 더 예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다양한 주제로 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나는 여기에서 다소 원론적으로 들릴 수 있는 두 가지 노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이 가운데 한 가지는 3월 10일 경향신문에 실린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본부장의 인터뷰에 나오는 말에서 예시된다. "실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미투 폭로 이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심각하다"라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이렇게 응답한다.


미투는 드라마 소재가 아니다. 개인끼리의 농담마저 막을 수는 없지만 농담에도 정도가 있다. 남성들이 피해여성의 입장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적어도 내 딸이나 내 아내가 피해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라도 생각해봐야 한다. 미투는 남성·여성을 떠나 자신의 문제로 봐야 한다. 그러면 함부로 2차 피해를 입히지는 못할 것이다.[각주:3]


여기에서 이지문 본부장은 남성들에게 "내 딸이나 내 아내가 피해자"라고 가정하면 피해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말한다. 내 식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의 고통의 구체성에 되도록 가까이 가려는 "상상적 이해"를 시도해 보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적 이해의 시도 및 훈련은 이미 일어난 고통을 이해하는데, 그리고 앞으로 같은 고통이 발생하는 것을 더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밤(Martha Nussbaum, 1947~ )은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Not for Profit: Why Democracy Needs the Humanities)"라는 강연에서 성숙한 민주시민을 기르기 위해 세 가지 차원, 곧 철학과 역사와 예술 차원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가운데 예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는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상상하는 능력이 키워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각주:4] 우리 사회에서도 예술을 통한 상상 교육, 공감 훈련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권침해의 고통에 더 지혜롭게 대처하고 더불어 이를 더 잘 예방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경주해야 할 또 다른 노력은 인권침해라는 폭력이 왜 나쁜 것인지를 깊게 고찰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철학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은 <서양철학사>에서 중세에 가톨릭 교회가 막강한 힘을 누렸던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진단도 제시한다.


교회가 싸워야 했던 전통으로 로마와 게르만 전통이 있었다. 로마 전통은 이탈리아에서, 특히 법률가 사이에서 가장 강했고, 게르만 전통은 야만인들을 정복함으로써 태어난 봉건 귀족에게서 가장 강했다. 그러나 여러 세기 동안 이 두 전통 가운데 어느 것도 교회에 성공적으로 맞설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 못 했다. 그 주된 이유는 이 전통들이 적절한 철학(adequate philosophy)으로 구현되지 못 했다는 사실에 있다.[각주:5]


러셀은 이런 견해를 밝힌 다음 왜 적절한 철학을 마련하는 것에 힘이 있는가를 전혀 설명하지 않고 다른 화제를 도입한다. 하지만 러셀이 철학을 이렇게 중시하는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한 깊고 견실한 철학(사상, 이론)은 그 문제에 관련된 경험들을 언어로 명확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며, 인간이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데 필수적인 '이유'와 '명분'을 제공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 사회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통해 심오하고 견고한 철학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과 예방하기 위한 교육에 모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각주:6]

불편한 진실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그 가운데 어떤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권침해의 고통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며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가 지금 이를 그냥 짓밟고 묻어버린다면 지금의 어린 세대가 나중에 우리에게 '당신들은 비겁한 어른들이었다!'고 욕할 것이다. 그리고 신과 역사가 우리를 이렇게 저주할 지도 모른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 .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25:26, 30).


    * 필자소개  

영어강사. Rice Univ 언어학 박사(Ph.D) 후에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 웹진 <제3시대>



  1. http://tip.daum.net/question/102379210 [본문으로]
  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082056015&code=990100#csidx60c9a8d011fb757999cfe9a4577136d [본문으로]
  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101114001&code=940100#csidx234c576532f7409871bd72bb54df41e [본문으로]
  4. https://www.youtube.com/watch?v=mxgYsx1AJ68 [본문으로]
  5. Bertrand Russell,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Simon and Schuster, New York, 1945, p.302. [본문으로]
  6. 한 정치인은 올해 2월 23일 '스리체어스'라는 출판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의 성폭력 해결에 대해 다음과 같은 훌륭한 견해를 제시했다. 여성이 성희롱과 차별의 문화를 겪은 이유는 여성의 세력화된 정치적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여성을 건드려도)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빨리 뽀뽀하라는 얘기야'는 류의 왜곡된 성 인식이 생긴 것 . . . 현재의 성희롱과 성폭력의 문화에선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며 "일차적으로 여성의 목소리와 여성의 거부권을 확실히 정치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 . 섹슈얼리티(sexuality)라는 것에 대해 최근 몇 년 동안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 . 여성의 지위가 높아져야 직장 내 성희롱이든, 이런 문화들도 자연스럽게 견제된다. 여성 공무원들이 관리 및 간부직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촉진하고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서글픈 것은 이 정말 말이 되는 말씀을 한 사람이 안희정이라는 사실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101133011&code=940100#csidx361c784084f1251b84e4df286a8e49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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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9]


지젝 (2) : 헤겔 같은 라캉, 라캉 같은 헤겔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라클라우가 지젝의 저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의 서문에서 지적하듯이, 지젝은 라캉을 데카르트, 칸트, 헤겔로 내려오는 관념론적 전통속에서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앞선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참고: 지젝(1) : 까다로운 주체), 지젝은 헤겔을 동일성 원리의 형이상학적 관념론을 고착시킨 철학자로 비판하는 탈근대주의 철학자들의 입장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헤겔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석은 헤겔의 부정성에 대한 개념이 항상 개념의 자기 동일성으로 회귀함으로서 타자를 대상화하고, 차이를 말소한다는 점에서 지배논리를 정당화하는 형이상학 체계로 받아들여왔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 안에서 다름과 차이의 정치를 위해 헤겔은 항상 넘어서야 할 고지였다. 그러나, 지젝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교과서적인 해석처럼 헤겔의 절대지식은 초월적인 주체가 이성과 일치되는 상태가 아니라, 절대지식의 불가능성에 대한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젝은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는 헤겔의 변증법을 '부정의 부정은 절대적인 부정'이라는 해석으로 뒤집어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다시 말해, '정'과 '반'의 모순, 주체와 객체의 모순은 '합'에서 일치되는 것이 아니라, 합이라는 단계에서 은폐되었던 모순의 실체가 확실하게 입증되고 드러나게 된다. 정신이 자기와의 관계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현실화되지 않은 가능태로 남아 있지만, 타자라는 대립과의 만남을 통해 정신은 비로소 현실화된다. 타자와의 모순적인 공존이야말로 헤겔이 말하는 정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지젝은 헤겔이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기'라는 말을 사용한 의도는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정신 안에 내재하는 모순은 궁극적으로 통일을 지향하지만, 그 통일은 모순이 지양되고 해소된 상태의 통일이 아니라 모순 없는 화해의 순간은 불가능하며, 분열은 지속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통일이다. 다시 말해, 모순이 제거된 절대지식은 환상일 뿐이며 그 환상을 인정하고 포기하는 것에서 진정한 주체가 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지젝이 해석한 헤겔의 절대지식이란 '모순'의 지속되는 상태를 말하고, 나아가 부정적인 것, 모순, 분열이 없는 절대지식은 '존재하지 않음', 또는 '불가능성'을 가리킬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젝은 헤겔주의는 칸트의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근본화의 작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칸트가 주체를 초월적 통각과 물자체의 두 영역 사이에 있는 존재로 본 것 처럼, 헤겔이 말하는 주체는 현실의 감각세계 너머에 있는 물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성에 대한 경험에서 나온다. 헤겔은 칸트적 주체의 비판자가 아니라, 오히려 칸트가 애매한 것으로 남겨놓은 물자체를 근원적으로 폐기함으로서 칸트가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인식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해결한 것이라고본다. 그러나 헤겔에 대한 이러한 과감하고 도전적인 해석이 지젝 자신의 창안물은 아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헤겔에 대한 지젝의 급진적인 해석은 주목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전통적 헤겔 해석을 뒤집고 헤겔의 숨겨진 본연의 모습을 복구하려 한다.


이데올로기와 판타지


라캉에 의해서 상징계는 기표들로 채워져 있으며 이 기표들에 의해 의미의 그물망을 형성한다. 이 상징적인 질서가 우리가 말하는 현실세계이다. 그러나 현실의 상징질서 안에서 항상 실재계로부터 미끄러지고 부유하며 떠다니는 기표들은 하나의 주인기표 (혹은 대타자)를 만남으로 비로소 의미의 관계를 구성한다. 여기서 실재계는 기표의 관계망이 형성한 의미화의 영역에 포섭되지 않고 저항하는 상징질서의 잔여물이다. 실재계는 상징으로서 언어와 기표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고, 상징적 현실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위협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재계가 없다면 상징계의 존재 또한 불가능하다. 상징계는 실재계에 대한 불가능성이 상징계 자신의 존재 가능의 조건이 되는 모순을 내포한다. 상징계 안에는 실재계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지만, 그 자체가 실재와 동일시 되지 못한다. 여기서 주체는 소외를 경험한다. 상징계 안에서 편입될 때에 주체는 존재의 안정을 보상으로 얻을 수 있지만, 대신에 자기의 본래적 존재를 상실해야 하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 결국 의미의 사슬망에서 벗어나 기표와 동일시되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소외와 결핍을 느낀다. 상징질서 안에서 경험한 결핍과 소외로부터 주체를 지탱해주는 장치가 바로 판타지이다. 판타지는 실재계에 이르지 못하는 주체가 느끼는 결핍을 상상으로 대리할 수 있는 대상을 욕망하는 데서 발생한다.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다고 믿는 오인된 욕망의 대상(Object a)과의 관계가 판타지이다.


지젝이 라캉의 눈으로 헤겔을 뒤집어 보려는 정치적 의도는 분명하다. 탈이데올로기시대를 선언하며 이데올로기를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으로 다루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류에 도전하려는 것에 있다. 지젝은 탈이데올로기의 시대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비가시적인 메커니즘에 대해 파헤쳐야할 당위성에 대해 주장한다. 이데올로기 개념 자체를 부정하거나 폐기하는 것은 순진하거나 섣부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담론은 오히려 부활되어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주체를 호명하는 방식으로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현실을 전면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실 사회주의를 이데올로기적 억압으로 간주하고,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자유방임적 시장활동)로 가는 변화를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주장 자체가 이데올로기의 효과라고 보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여기까지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과 일치한다. 그러나, 지젝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의 논의가 오늘날의 이데올로기의 현상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보았다. 지젝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의 분석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보았는데, 자발적인 주체는 대타자의 호명에 의해 구성된다는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신분석학의 분석을 통과함으로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물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분석 역시 '호명'과 같은 개념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프로이드와 라캉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지젝이 보기에 알튀세르는 대타자의 호명이라는 국가의 억압적 장치의 메커니즘에 의해 주체가 구성된다는 주장에 멈춰서고 말았다. 지젝은 알튀세르의 주장대로, 대타자의 호명을 통해 주체는 형성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대타자의 호명으로 인해 호명된 존재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호명은 표면적으로는 대타자의 목소리로 들리지만, 사실 이 호명은 타자의 욕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이 내는 주체의 목소리이다. 그러므로 호명된 주체란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주체의 환영, 착각으로 형성된 것에 불과하다. 주체의 호명이라는 과정은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오인'된 호출에서 이뤄진다. 대타자의 호명으로 형성된 주체는 자신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이었음을 발견하고 욕망하는 타자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결핍된 존재임을 알게 된다. 마침내, 주체는 대타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출현하지 않으며, 대타자의 결핍은 주체를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시킨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분석이 놓치고 있는 점은 이것이다. 여기서 이데올로기의 억압적인 작동방식은 균열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주체의 출현은 이데올로기라는 대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실재가 아니라, 실재를 대신하는 대타자이다. 대타자는 언제나 상징화되어 있다. 그러나 상징으로 실재를 대체할 수 없다. 상징과 기표는 언제나 실재와의 메울 수 없는 차이로 인해, 실재로부터 분리된다. 성공할 수 없는 상징계의 완전성을 성공으로 위장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는 환상으로서 출몰하며 상징계와 실재계의 간격을 채우기를 시도한다. 여기서, 지젝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은 상징과 기표의 체계로 질서화된 사회를 이상적 유토피아로 위장하는 시도들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으로 한 발 다가선다. 이데올로기는 제거된 것 처럼 보이지만, 판타지와 유령과 같이 현실 사회의 상징질서를 완전한 시스템인 것 처럼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재로부터 추방된 이데올로기는 상징계가 의심받을 때마다 상징질서의 균열을 막아주는 구원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실재의 세계에 속한 본질이 아니므로 상징화의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라캉과 헤겔의 접점은 이 지점에서 발견된다. 지젝이 해석한 헤겔은, 절대지식의 부재이다. 절대지식의 자리는 공백으로 남아 있을 뿐이며, 불가능성을 암시할 뿐이다.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대타자는 없다'이다. 대타자를 존재하는 것처럼 판타지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헤겔이 진정한 주체는 모순과 부정성을 끝까지 긍정하는 것에 있다고 보았듯이, 지젝의 라캉적 주체는 이데올로기는 실재가 아닌 유령과 같이 비어있는 가상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자면, 판타지와 유령이라는 말이 실체없는 허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판타지와 유령은 실체없는 대상이 아니라, 현실사회의 상징질서를 지탱하는 힘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부정과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진지하게 대면해야하고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실체이다.


환상을 가로지르기


지젝은 이데올로기가 현실에서 배제된 것 처럼 보이지만, 상징질서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언제든지 소환되어 유령과 같이 출몰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현실을 분석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고 가로질러 통과해야 하는 문제로 받아들인다. 환상을 가로질러 틈새의 균열을 발견하는 가운데 주체는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 환상을 가로지르는 행위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 물음에서 지젝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은 윤리적, 정치적 차원으로 넘어간다. 라캉에게서 환상을 가로지르고, 틈새에 균열을 가하는 행위는 욕망에서 충동으로 넘어가는 과정이고, 상징계에서 실재의 차원을 추구하는 행위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젝은 환상을 가로지르는 행위는 상징적 질서의 메워질 수 없는 간극에 맞서 대타자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정치적이고 윤리적 사건이다. 결코 주체는 실재의 불가능한 영역과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없지만, 상징질서에 대한 저항의 행위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실재에 다가선다. 그 실재란, 자신의 비존재의 공백을 수용하는 것이다. 주체의 결핍을 경험함으로서 주체는 자신의 상징적 정체성을 지탱해 왔던 환상의 구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환상을 가로지르는 행위를 통해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주체의 결핍을 경험하고 상징적 질서를 폐기시킬 때 이데올로기로서의 대타자는 극복될 수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욕망에서 충동으로 넘어가는 윤리적 행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젝은 환상을 가로지르는 행위의 모델을 라캉이 '정신 분석의 윤리'에서 분석한 안티고네와 소포클레스의 주인공들에게서 발견한다(안티고네의 분석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므로 상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가 사회적 선이라면 라캉의 정신분석적 윤리는 충동에 있다. 이 충동은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죽음을 욕망하는 것이다. 라캉은 명령을 거스르고 자신의 오빠인 폴리니케스의 시신을 매장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여 마침내 죽음을 선택한 안티고네의 행동을 윤리적 행위로 묘사한다. 크레온은 상징계의 법적 질서망을 의미하고 안티고네는 이 법망을 넘어서는 욕망의 캐릭터로 설정되었다. 안티고네는 죽음의 행위를 통해 비극의 윤리를 실행한다. 이 죽음의 충동을 실현하는 것은 곧 상징계의 의미화의 사슬망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주체는 죽음에 대한 충동이 실현되는 시점에서 상징질서로부터의 해방을 얻게 된다. 죽음의 충동에 의한 비극적 자유야말로 바로 환상을 가로지르는 윤리적 행위이다. 주체는 바로 이처럼 상징질서가 제거된 비워진 공백 그 자체이며 이 공백을 지향하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전복적이며 저항적인 주체의 실현이다. 따라서, 주체는 주체를 공백으로 비우는 부정적인 행위이며, 죽음을 감수하면서 까지 주체의 결핍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주체는 이데올로기안에서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실하고 이데올로기 구조의 틈새를 파고들어 상징적 죽음을 감수하면서 까지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지젝은 실재에 대한 주체의 결핍이라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통해 주체의 새 모델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죽음충동에 의한 주체화의 과정은 헤겔의 '부정성에 머물기'의 개념에서 보여주는 주체의 이해와 거의 일치한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의 생명은 죽음을 감내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한 죽음의 활동에 있다고 말한다. 현실의 안정된 세계안에 머물고 이를 고수하려고 할 때에 정신은 정신의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러나 정신이 생명을 드러내고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안정되고 친숙한 세계와 결별하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헤겔이 '부정적인 것에 머물기'를 말할 때에 이는 죽음을 감수하고 부정적인 상태를 수용하고 외면하지 않으며 끝까지 대면하는 것을 말한다. 라캉과 마찬가지로 헤겔에게도 죽음은 고립된 정신이 현실안에서 진정한 자아와 마주하게 되는 주체화의 과정인 셈이다.


이처럼 지젝은 독일의 관념론적 전통을 폐기하지 않고, 주체의 담론이 형성되는 이론적 토대로 사용한다. 특별히 헤겔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이 라캉의 정신분석과 공명을 이룸으로서 오늘의 이데올로기의 현실안에서 저항의 주체에 말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기대를 자극한다. 다음에는 지젝의 라캉식 정신분석학적 주체이해가 맑스주의와 어떻게 만나는지, 그 안에서 발견되는 주체의 변혁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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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을 직시하며 고통을 통한 연대의 정당성을 묻다.




엄기호

('인권연구소 창' / 연구활동가, 사회학)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공동정범은 지금까지의 '사회'파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던 문법을 깨뜨렸다. 보통 이런 '사회'파 영화들이 가진 기본적인 서사가 있다. 선량하게 살던 사람들의 삶이 국가와 자본에 의해 파괴되고 피해자들은 그 고통에 절규한다. 화면 가득한 절규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내 자리가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피해자의 '편', 혹은 피해자의 '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아니라 이들이 피해자라는 단수여야 한다는 점이다. 설혹 그 피해자들 안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봉합 가능한, 즉 큰 틀에서 국가나 자본에 의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라는 단수로 봉합가능한 차이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차이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는 차이 같지 않은 차이로 무시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결코 복수일수가 없다. 단수로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 문법을 완전히 깨트렸다. 그 가정 자체를 부정하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이 피해자'들' 사이의 차이는 '봉합' 가능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고통은 국가로 인해 시작되었지만 삶에서 이들이 겪고 느끼고 분출하는 분노와 고통은 국가보다는 오히려 그 국가의 폭력을 '함께' 겪었던 사람들과의 반목 때문에 생긴다. 이전에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동지'라는 관계/언어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관계'가 박살났다. 이것이 국가가 가한 가장 큰 폭력이라는 것이 이 영화가 다른 사회파 영화와 달리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국가가 행사한 폭력은 관계를 박살난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의 관계만 박살낸 것이 아니다. 당사자들은 그 이후 '우리처럼'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간'을 박살내어 그가 더 이상 사람일 수 없게 하는 것, 그것이 존재 자체에 가하는 국가 폭력의 핵심이다.

인간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말한다. 이 사이를 두고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어떤 얼굴로 만나는가?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맨 얼굴로 만나지 않는다. 항상 우리는 다른 사람을 '가면'을 쓰고 만난다. 그리고 이 '가면'에는 언제나 사회로부터 오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들이 처음 만났을 때는 '동지'라는 이름으로 그 가면을 쓰고 만났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시민' 혹은 '민중'이라는 가면을 쓰고 이들을 만난다.

사람이 가면을 쓰지 않고 그저 '나'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그 만나는 사람도 그저 '그'로서 만날 수 있는 경우는 대단히 한정적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신이나 동물, 식물 그리고 아주 희박하게 사랑하는 사람정도다. 교회에서 통성기도, 무속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 바로 그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언어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언어 이전의 언어로만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그 언어는 침묵이거나 혹은 의성어나 절규와 같은 '소리'다.

첫 번째로 이 영화에서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이들 사이에 더 이상 가면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상을 넘어서는 국가의 폭력은, 그 국가의 폭력 앞에서 이들을 묶어 놓았던 가면인 '동지'를 박살냈다. 동지가 서로 같은 뜻을 나누고, 서로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함께 하는 것이라면, 이전에 쓴 글에서 말했듯 국가의 폭력은 이들의 '동지'라는 가면이 그저 '가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로했다. 가면이 아니라 얼굴로서의 그런 동지는 애시 당초 있지도 않았다.

그 가면이 깨어진 순간 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누군가는 바로 거기가 출발점이 아니겠냐고 말하겠지만 그런 '민낯'에서 출발하여 새로 서로에게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면'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영화가 탐색하여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이 가면이 박살난 이후 관계에 대한 가능성이다. 이들은 어떤 가면을 쓴 얼굴을 서로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서로 그 가면을 쓴 얼굴을 대면하면서 그 가면 뒤의 민낯을 떠올리며 역겨워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바로 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참사의 당사자들도, 끝 무렵에 등장하는 인권활동가들도 애를 쓴다.)

어찌 보면 자기 자신도 한 번도 제대로 대면해보지 못했던 추한 자신의 얼굴, 그 민낯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당사자들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들 사이의 관계를 박살낸 국가권력이 향하는 종착지가 있다. 바로 더 이상 이들이 가면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 혹은 가면을 쓰고 있으면서 언제나 자산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하는 것. 그래서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구역질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존재에 가하는 최종적인 폭력이다. 그 결과 이들은 가면을 쓰지 못하거나 가면을 써도 스스로에게 역겨운 존재가 되어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낯익은, 아우슈비츠에 던졌던,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이 던졌던 동일한 질문을 만난다. 이것이 사람인가? 가면이 벗겨진 존재, 더 이상 쓸 가면이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는 존재, 그래서 발가벗겨진 이 존재들은 과연 사람인가? 사람이 모든 이름을 박탈당하고 발가벗겨 졌을 때, 그래서 그저 사람에 불과하게 되었을 때 인간이 아니라 비인간으로 전도되어 버렸던 아우슈비츠처럼 가면이 박살나고 더 이상 가면을 쓸 수 없게 된 이' 사람들은 사람인가?

가면이 깨어진 자는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폭력을 가한다. 그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참혹한 폭력은 서로에게 '진심'을 묻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잔인하이 있다.사람에게 진심은 믿어주거나 서로에게 있다고 가정하기에 물어보지 않을 때 존재한다. 진심에 대해 그것이 진심이냐고 묻는 순간부터 아주 희박한 경우를 제외하고 진심은 존재할 수 없다. 진심은 답할수록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사과했을 때 문을 박차고 나가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진심을 묻지 않고 믿어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의 맨 얼굴이 아니라 그가 쓴 가면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가면을 쓴 우리 모두는 '위선자'이다. 스스로도 자기의 맨얼굴을 다른 가면으로 가린다는 점에서도 위선자이고 다른 사람의 진심을 진정으로 확인하지 않고 믿는 척 한다는 점에서도 위선자다. 그러나 이 '위선'은 단어가 풍기는 느낌과는 달리 나쁜 위선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라는 '나약한' 존재는 가면을 쓰고 위선자가 됨으로써 자기를 보호할 수 있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게 된다. 사회는 이런 위선자들이 펼치는 일종의 가면무도회이다.

그러나 가면이 깨어진 자는 더 이상 위선자가 될 수 없다. 그는 가면이 깨어졌기에 더 이상 사람을 못 만나거나, 사람 아닌 존재만 만나거나, 혹은 서로에게 네 얼굴은 가면이라고 폭로하거나. 마지막으로 자신이 쓴 것이 가면이라는 것을 알면서, 요구되는 그 가면에 충실해버리거나 할 수 있을 뿐이다. 앞의 두 경우가 도피라고 한다면 뒤의 두 경우를 우리는 '위악'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이 영화에 나오는 한 '문제적' 인물처럼 위선을 부리는 것조차 그것이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위악'이 된다는 점이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유일'하게 충실한 사람이다. 피해자로서, 당사자로서 그는 자로 잰 것처럼 움직인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참사의 다른 당사자뿐만 아니라 관객들조차 바로 눈치 챌 수 있다.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충실하되 영혼이 없는 것처럼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까지 충실하게 드러낸다. 위선인 것처럼 보이는 그것조차 그가 자신에게 가하는 위악이다.

이것이 국가가 가한 가장 잔인한 폭력이다. 삶의 터전을 부수고, 관계를 박살냈다. 이 이후로도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능하지 않게 만들어 더 이상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참사의 당사자들을 스스로 내가 과연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영원한 고통으로 밀어넣었다. 또한 그 고통이 영원하기에 좀처럼 그 고통에서 벗어나 가면을 쓰고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함으로서 인'간'이 되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존재가 말살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살아가야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에 있는가?

영화는 같은 질문을 관객에게도 던진다. 이들의 고통을 목격하고 있는 우리는 이들과 어떻게 만나야할 것인가? 이 영화를 보며 관객은 깨닫게 된다. 이전에 이런 사회파 영화를 보며 그들을 만나던 가면으로는 이 영화에서 더 이상 이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시민이라는 '익숙한' 가면을 쓰고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 역시 역시 피해자라는 단수의 '익숙한' 가면을 써야한다. 그런데 그들이 겪는 '피해'의 핵심이 바로 이 '가면'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이 영화다. 따라서 관객들 역시 영화를 볼 때 다른 가면을 써야한다. 무슨 가면? 그러니 관객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연대'라고 부르는 것이 언제 결정적으로 취약해지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가 저항한다고 하는 '국가'에 의해 그 가면이 깨어져버렸을 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가 저항을 분쇄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이 더 이상 '동지'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저항하던 국가에 의해 '동지'가 파괴된 사람들과 우리는 어떻게 '동지'가 될 것인가? 그것은 가능한가? 이 영화가 출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여기이며, 사람들이 멈추고 싶은 것이 바로 여기다.

여기서 사람들은 싸늘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건 너네 문제다. 그러니 당신들이 알아서 해결하라. 우리 앞에서는 싸우지도 말 것이고, 내보이지도 말아 달라. 당신들이 해결하고 난 다음에, 혹은 당신들이 해결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연대하겠다. 당신들이 불화한다면 우리는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의 역할을 위해 당신들의 역할에 충실해 달라. 우리의 역할을 위해 당신들의 가면을 써 달라. 그러니 관객들은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고.

그런데 이런 요구가 연대일 수 있는가? 가면이 박살나서 고통 받는 사람에게, 그리고 그들의 가장 결정적인 고통의 원인 중의 하나인 그 '익숙한' 가면을 다시 쓰기를 원하는 것이 운동이고 연대인가? 피해자의 가장 큰 비극은 피해자로서만 살아야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참사를 알리기 위해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언제나 피해자이기만 해야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말하는 것처럼 피해자는 피해자로서만 주체화된다.

연대의 잔인함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연대를 한다는 우리가 그들에게 가하는 잔인한 폭력은 그들이 피해자로만 박제된 삶을 살아야하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아니라 연대한다는 우리를 '환대'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들이 피해자로서 피해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그 피해에 연대하는 우리를 환대하는 것이 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를 환대하기 위해 그들은 피해자로만 살아야 한다. 한 친구가 말한 것처럼 참사의 당사자들이 늘 언제나 똑같은 얼굴로 다른 사람들이 올 때마다 '피해자'가 되어 '환대'한다. 우리가 그들을 '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환대'해야 한다. 이것이 연대인가?

그럼 이 영화는 연대의 불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깨어진 가면 이후, 그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인가? 전혀 아니다. 이 영화를 주로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 영화에 대한, 그리고 이 영화가 나오기까지의 사회운동의 고민에 대한 완전한 모독이다. 만일 우리가 이 영화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며 '민낯의 중요성' 운운한다면 우리는 완전히 반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운동'이 지나간 자리를 허무와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위악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국가 폭력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일일 것이다.

가면이 깨어진 이들의 민낯을 포르노처럼 드러내는 것은 영화의 의도도 아니고,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이 감독들의 운동이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 영화는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다. 참사가 한 존재에 가하는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놓치지 않는다. 존재가 말살당한 채 죽어있는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참사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자칫 참사의 당사자들에게 매몰되어 놓치지 쉬운 이 질문을 이 영화는 끝가지 붙들고 있다. 드러내야하는 민낯은 이들이 아니라 바로 국가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내가 이것까지 알아야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바로 그 '이것'의 뒤에 있는 국가의 민낯을 폭로한다.

또한 관객에게도 질문한다. 참사의 당사자들을 '피해자'로서만 만나고 그들이 '피해자'로서 우리를 환대하며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는 너희는 정당하냐고 말이다. 이런 '우리'들의 연대는 겉으로는 우리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이 연대하려는 우리를 환대하기를 바라는 그 익숙하고 편안한 연대인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편안하고 감동적으로 고통과 연대하는 것, 그것이 연대인가? 그 연대는 정당한가? 스스로의 정당성을 허물지 않고 당사자의 정당성을 묻는 연대는 정당한가? 연대는 스스로의 정당성을 허물고 질문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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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히포크라테스가 나타나길 바라며...




이주혁

(성형외과 전문의, 키스유 성형외과 의원장)

 


많은 사람들이 히포크라테스를 의성 (醫聖) 이라고 알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리고 의료 윤리가 무너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이 의사들에게 아쉽다. 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을 자꾸 듣곤 합니다.

그런데 과연 많은 사람들이,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를 잘 알고 저렇게 그를 인용하고 있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는 기원전 400년경의 사람이고 저술 분량은 굉장히 방대해요. 단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한 꼭지만 따서 의료 윤리 차원에서 한번씩만 인용하고 지나가기엔 그는 너무나 중요한 인물이거든요.

오늘 일단 저는, 익히 알려져 있는 '선서', the Oath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많이 들어 왔던,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아래와 같아요.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게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써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하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는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이 선서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매스미디어 등에서는 '돈만 찾고 생명을 경시하는 의사들' 이라는 의미로 요즘의 의료 세태를 비판하곤 합니다. 의사가 되고 나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흔히 무시된다는 거죠.

그런데 막상 저 선서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쓴 게 아니에요.

1948년에 세계 의사협회가 제네바에서 만든 제네바 선언문이죠. 나치의 범죄에 의사들이 참여했던 비극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선서'를 제정하기로 결의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저 '선언'에는 인종과 계급 등을 초월해서 진료하겠다는 약속이 들어간 것이구요. 인도주의적이고 사해동포주의적인 의사 윤리를 의사들끼리 모여서 결의했다기보다는, 길고 끔찍했던 전쟁이 마무리된 후 그 후유증을 되새기며 같은 일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만든 거라 할 수 있어요.

정작 히포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적국이던 페르시아 왕이 자신의 군대를 엄습한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그를 초청하려고 높은 관직과 많은 금은보화를 제시했을 때 이렇게 잘라 말하고 거절합니다.

"저는 의식주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충분합니다. 제가 페르시아의 풍요를 즐기거나 그들을 전염병으로부터 구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인의 적들이기 때문입니다." (개정판 히포크라테스 선서, 반덕진 역, 서울, 계축문화사, 2006.)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종, 종교, 국적 등을 초월해서 오직 의사로서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내용이랑 정작 본인의 행동은 너무 다르군요.

제네바 선언문이 아닌, 진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원문은 아래와 같아요. (물론 이것조차도 고문서 해독 및 연구가들 사이에서 히포크라테스 본인의 저작이 맞다 아니다를 놓고 수십년을 논쟁하고 있지만요)


The Oath

나는 의술을 주관하는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휘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를 포함하여 모든 신 앞에서,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이 선서와 그에 따른 조항을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나에게 의술을 가르쳐 주신 분을 나의 부모와 다를 바 없이 소중하게 섬기고, 내가 소유한 모든 물질을 그분과 공유하면서 그분이 궁핍할 때는 그분을 도와주고, 그분의 자손을 나의 형제와 같이 여기고, 그들이 의술을 배우고 싶어 하면 보수나 조건 없이 그들에게 의술을 가르치고, 내 아들과 내 스승의 아들과 의술의 원칙을 따르겠다고 선서한 제자들에게만 교훈과 강의를 포함하여 모든 방식의 교수법으로 의술에 관한 지식을 전달할 따름이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전달하지 않겠다.

내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이롭게 하기 위해 섭생법을 쓰는 반면 환자가 해를 입거나 올바르지 못한 일을 겪게 하려 그것을 쓰는 것은 금할 것이다.

나는 어떤 요청을 받더라도 치명적인 의약품을 아무에게도 투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권고하지도 않겠다. 또한 마찬가지로 나는 어떤 여성에게도 낙태시킬 수 있는 페서리를 주지 않겠다.

나는 내 일생 동안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펼쳐 나가겠다.

나는 절개를 하지 않을 것이고 결석환자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내가 어떤 집을 방문하든지 오로지 환자를 돕는 일에만 힘쓸 따름이고, 고의로 어떤 형태의 비행을 일삼거나 피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로 저지르지 않겠으며, 특히 노예든 자유민이든 신분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자이든 여자이든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환자와의 성적 관계를 금할 것이다.

나의 직무 수행과 관련된 일이든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든 관계없이, 내가 보거나 듣는 바로서 그 사실이 절대로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경우에, 나는 일체의 비밀을 결코 누설하지 않겠다.

내가 이 선서를 절대로 어기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 나간다면, 나는 내 일생 동안 나의 의술을 베풀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항상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내가 이 선서를 어기고 약속을 저버린다면, 이와 반대되는 일이 있길 기원한다.


읽은 바와 같이 '선서'는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의사로서의 책무를 행하겠다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고,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하는 의사의 행동 요강, 윤리적 다짐을 계약하는 문서였어요.

자그마치 기원전 400년~500년경에 써진 걸로 생각되고 있는 고문서에요. 그리고 히포크라테스라는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토록 오래 전에 써진 문서가 지금까지 보호받고 전승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 문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란 걸 의미하기도 해요. 그래서 그 내용을 살펴 보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어요.

의사로서 히포크라테스, 아니 의술 집단인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수많은 저술들을 남겼는데, 어렵지만 이들의 의학 내용을 최대한 단순하게 요약한다면 주술적 초자연적 치료를 비판하는 합리주의 의학, 연역적 일변도의 사고를 비판하는 경험주의 의학의 시초였습니다. 또한 치료법에 있어 섭생 (먹는 것, 마시는 것, 운동, 휴식, 수면 등)을 강조하며 인체의 체액간의 균형이 건강이라고 하는 자연주의 의학을 표방했습니다.

이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어요. 기원전 400년경이면 중국은 전국시대였고 한반도는 고조선… 진짜 까마득한 옛날이에요. 대부분의 나라에서 종교라고 해봤자 무슨 애니미즘 샤머니즘 그런 거나 있을 때일 텐데, 벌써 초자연적인 개입이 아닌 과학적이고 경험론적인 의학을 웅변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에요. 시대를 한참 앞서 나갔던 겁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집 중 '신성한 질병에 대하여' 일부를 인용합니다.


최초로 이 질병 (간질로 생각됨)을 신성화한 사람들은 오늘날의 주술가들이나 정화사들이나, 떠돌이 사제들이나 돌팔이들과 같은 이들이며, 자신들이 꽤나 경건하고 뭔가를 아주 많이 알고 있는 체한다. …… 그들은 정화와 주문을 이용하고, 목욕이나 병든 사람들이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많은 음식을 금하도록 지시한다. 그들이 금하는 것들로는, 멜란우로스, 숭어, 뱀장어를 들고 육류 가운데는 염소, 사슴, 새끼돼지 및 개고기를 들고…. 하지만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리비아인들 가운데 건강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염소 가죽 위에 눕고, 염소 고기를 먹으며… 그들에게는 염소와 소 이외에 다른 가축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Hippocarate Tome II ; La Maladie Sacree, texte etabli et traduit par J. Jouanna, Paris; Les belles Lettres, 2003.)


간질이란 전세계의 곳곳에서, 신의 저주로 생각됐던 병이에요. 자그마치 중세시대를 넘어 근대 의학의 번성 직전까지도. 근데 히포크라테스는 '간질'이 신적인 기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자연적 본성 (Physis)과 계기적 원인(Prophasis)을 가진다는 반대 주장을 제시합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집. 여인석.이기백 역. 경기도 파주시; 나남 출판사, 2011)

즉 의학을 형이상학과 초자연적인 개입 속에만 놔두지 않고, 합리적인 학문으로 끌고 나간 것이 히포크라테스가 존경을 받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겁니다.

하지만 자그마치 2500년 전이었어요. 저 때에는 종교를 의학에서 배제한다는 것은 사실은 불가능했을 꺼에요. 그래서 선서 앞머리에는 의술의 신들 이름이 잔뜩 나오지요. 아무리 합리주의를 표방한다 해도, 절대로 신을 무시하고 종교적 영향을 없앤다는 그런 건 아니었죠.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온은 의술의 신인데 그에게는 딸들이 있었어요. 휘기에이아는 건강을 의미하고, 파나케이아는 만병통치의 약초를 의미합니다. 즉 한 명은 예방의학을 상징하고, 한 명은 치료 의학을 상징하지요.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평소에 건강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할 것. 그러나 건강을 잃게 되면 개입해 치료할 것.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데 선서의 앞머리에 이들 여신의 이름이 전부 빠지지 않고 나열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렇게 균형 잡힌 의료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겠습니다.

두 번째 항목인 스승과 의학 공동체에 대한 의무 사항 언급에 대해선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듯해요. 근데 당시의 사회상을 상기해 보면 이해가 갈 수 있습니다. 당시 돌팔이 의사들이나 사이비 의사들이 그리스에 매우 많았던 거에요. 이들이 의료 현장에서 많은 문제들을 일으켰고 지금처럼 어떤 면허증, 자격증 제도가 공공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시대다 보니 의술, 의학 전수에 있어 그 자격을 나름대로 인증하는 절차가 필요해 진 거에요. 그 절차가 바로 이 선서였구요.

그 밑에 안락사와 낙태 금지에 대한 조항들이 나오는데 이것이 좀 논란이 많아요. 고대 그리스 사회는 안락사와 낙태가 윤리적으로 허용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the oath에 저렇게 돼 있어서 나중에 중세 그리스도교 사회에 이 문헌이 전해지면서 각색된 건 아니냐, 혹은 히포크라테스 학파가 아닌 다른 학파에서 이 선서문을 쓴 건 아니냐. 별의별 설이 다 나왔죠.

외과적 수술의 금지 부분은 더더욱 많은 논란에 휘둘리는 부분입니다. 왜 외과 수술을 하지 말라는 서약을 시켰을까? 히포크라테스의 다른 저작에는 골절 정복과 더불어 외과적 수술에 대한 문헌도 전승되고 있거든요. 학자들도 아무리 해도 설명이 시원하게 안 되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현실 윤리적으로 안락사와 낙태는 전면적으로가 아닌, 부분적으로 허용되어야 해요. 수없이 많은 논쟁이 있었던 부분이지만, "나는 윤리를 지켰다. 그러나 저 미혼모의 삶은 아이가 탄생한 이후 정말로 심하게 망가졌다" 이런 건 곤란하죠. 우리 사회가 미성년자인 미혼모를 받아들일 자세가 전연 안 되어 있으니까요. 의사 혼자 손에 피를 안 묻히고 떳떳해진다고 해서 그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윤리는 아닐 겁니다. 윤리의 방향성은 항상 시대에 맞게 손질돼야 하는 것이구요.

당시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철학에서 분리된 한 학문적 분과와 같은 의미에서의 의학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히포크라테스 바로 직후의 인물인 플라톤이 그의 저작에서 이상 사회는 철인 정치를 통해 구현되는 것으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비슷한 맥락에서 히포크라테스도 그 저술의 많은 부분이 가장 이상적인 인체의 균형, 섭생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하는 이른바 '섭생법'이 선서의 가장 윗 단락에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적극적 치료와 개입에 대한 조바심이 보이지 않고 대단히 내과적, 학문적인 느낌이란 거죠. 따라서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내부 강령'을 정해, 칼을 대는 수술은 그걸 하기 좋아하는 다른 외부 그룹에 넘겼다고 볼 수 있어요. 히포크라테스는 이처럼 주요 강령들을 선서로 만들어서 의학을 배우러 온 학생들에게 맹세하도록 한 것입니다. 윤리적 내용들이 나오지만, 윤리적인 문서라고 전체적으로 평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좀 더 합의적이고, 그것은, 이것은 이러 이렇게 합시다. 라고 정해 놓는 '선 긋기'의 느낌이 강합니다.


그럼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결국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란 뭘까요?

그 핵심은 제가 생각하기에, 의료적 윤리적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찰과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것, 그리고 불완전한 제도를 보완할 것, 그리고 환자를 위하여 이 모든 것을 해 나가겠다는 소신을 가질 것. 이런 것들입니다.

고대에서 이제 현대로 넘어와서, 우리의 의료 환경에 대해 얘기할 차례군요.

현대의 의료는 집단화, 자본화를 그 특징으로 합니다. 철저히 자본을 중심으로 의료 노동력과 기술, 연구가 모두 집중되고 있어요. 병원의 거대화, 장비화, 그리고 의료 영역의 세분화, 분업화가 계속되고 있지요. 그리고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자본주의적 시장 경쟁의료로 인해 의료 기술의 상품화와 정보화가 급격히 팽대해졌죠.

극도로 대형화, 자본화된 병원에서 의사는 단지 그 분업화된 체인의 한 연결고리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더욱 그렇게 되어 가요. 신생아 중환자실을 예로 들까요?

미숙아의 건강과 소생을 위해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려면 양심적인 의사 한 명이 거기 들어가서 열심히 한다고 되는 건 단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단 좋은 Incubator set가 필요합니다. 거기에는 온도와 습도가 자동적으로 맞춰져야 하고, 알람이 울릴 수 있는 모니터 장비가 갖춰져 있어야 하고 모니터는 오작동이 최소화되도록 quality control이 잘 돼 있는 우수한 성능의 제품이어야 합니다. 그게 가장 기본 중의 기본 장비인데, 딱 거기까지만 몇 천만원이 들어요. 인큐베이터 단 한 대에. 근데 당연히 그게 다가 아니죠.

신생아의 정맥주사 세트, 채혈 세트, 그리고 그 아기들에게 들어가는 각종 특수한 약물들, 검사 장비, 진단 장비 등이 전부 거대 자본이 아닌 이상 도저히 갖출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한 명 키우는 데 5년은 족히 걸릴 숙련된 간호사들이 24시간 조를 이뤄 릴레이 근무를 하고 있어야 하고요, 여차하면 수술실로 옮길 수 있도록 우수한 소아 외과 전문의가 대기하고 지원하고 있어야 해요.

소아과 전문의라는 한 명의 의사는, 단 한 명의 미숙아를 살리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이런 방대한 조직 속의 한 고리일 뿐입니다. 그 소아과 전문의가, 어떤 의료적 소신을 갖고 어떤 철학적 신념을 갖고, 그게 과연 이 거대한 시스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까요. 절대적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는 훨씬 낫겠지요. 하지만, 이런 것이 세분화 분업화된 의료의 현장이라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명의의 개념은 히포크라테스나 편작의 시절과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신생아가 죽었을 때, 한 명의 의사의 윤리적 문제 혹은 무책임, 부주의로 화살을 돌리고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은 어디로 갔느냐고 한탄하는 건 그림은 좋고 말하기도 참 편하지만 단지 그때뿐입니다. 그 이면에는 굉장히 구조적인 본질의 문제가 내재돼 있는데 다들 관심이 없죠. 골치 아픈 문제이고, 누구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보다는 한 명을 끌어내다가 목에 올가미를 씌우고 마구 욕을 하는 게 훨씬 편해요.

그래서 다들 그렇게 하고 있는 거고요.

누군가 히포크라테스적인 정신을 구현하려 한다면, 오로지 환자를 위해 자신의 의술을 발휘하고자 한다면, 의료 제도를 고쳐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시장 자유 경제적 자본주의 의료는 필연적으로 과잉 처방, 과잉 진료, 의료비 상승, 대형 병원에의 쏠림 및 쓸데 없는 신기술 광고 홍보 및 저수익 분야에의 투자 실종 및 소멸로 가게 돼 있습니다. 또 민간에 거의가 의존하는 의료 상황에서 민간 병의원을 전혀 지원하지 않고 진료비 삭감만 하는 관행은 의료비를 떨어뜨리긴 커녕 병의원의 폐업 및 적자에 대한 위기감만 자극하여 더 많은 수익형 의료 모델을 시장에 쏟아낼 뿐입니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중앙 정부 및 지방 정부가 훨씬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그 시설을 짓고 관리해야 하고요, 가벼운 1차 의료 질환에 대해서는 수가 상향, 중증 질병이나 상해에 대해서는 수가의 현실화 및 건보 지원의 확충 등도 시급합니다. 수만 가지가 넘는 의료 항목에 대한 복잡한 의료 수가 평가 시스템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오류 없이 처리할 최신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고요, 지역사회 주치의 등록제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이렇게 다양한 제도들을 손대지 않고는 명의는 커녕 아주 기본적인 의사 환자간의 신뢰도 회복될 수 없고 결국은 신생아 중환자실이나 중증 외상센터의 부실화가 그 결과가 된 것입니다. 근데 아직 시작일 뿐, 앞으로 그렇게 부실화될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무수히 많아요. 분만실이 대표적입니다.

써놓고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돈 문제이긴 해요. 그런데, 참 듣기 거북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의료가 그렇습니다. 신생아들이 어이가 없이 죽은 사건은 사우나 화재 사건에서 30명 가까이 죽은 일이나 근본을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경제와 제도, 구조적 문제들입니다. 소방관의 비윤리와 무능의 문제도 아니었고, 담당 의사의 비윤리 및 무능의 문제 역시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히포크라테스가 꼭 나타나길 고대합니다. 그러나, 그건 한 개인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촛불 혁명이 세상을 바꾸듯 수많은 깨어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필요한 일입니다. 이곳에 그가 현생한다면, 그 모습은 아마도 분석학적인 수사와 변증을 하는 학자가 아니라 횃불을 든 혁명가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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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1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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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을 하나님으로

(태초에 창조성이 있었다/고든 카우프만/한국기독교연구소/2013)



박만희

(함께. 걷는. 교회)

 


  기독교를 배경으로 자란 내게 <창조·타락·구속>이라는 틀은 내 인생과 세계를 해명하는데 단단한 토대가 되어주었다. 그것은 완벽한 구조물처럼 보였고, 인간이 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듯했다. 하나님은 세상을 보기 좋게 ‘창조’하셨지만 인간은 ‘타락’했고 세상은 뒤틀어졌다. 타락하고 뒤틀린 세계를 ‘구속’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 이와 같은 ‘기독교 세계관’은 여전히 적잖은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 구조물을 떠받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결사대 중 하나가 ‘창조과학’이다. 창조과학은 스스로를 창조의 호위병으로 자처한다. 그들은 성서문자주의와 혼연일체를 이루어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의 창조’를 수호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우주의 나이를 수 십 억년으로 보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소 닭 보듯 한 채, 성서 연대기를 따라 지구 6천 년 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이라는 상징을 창조성으로 대체하자’는 고든 카우프만의 주장은 어떻게 들릴까. 고든 카우프만의 『태초에 창조성이 있었다』는 충분히 사탄 마귀가 쓴 책 취급을 받을 법한 내용을 담고 있다.


  『태초에 창조성이 있었다』는 창조에 관한 책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창조에 관한 내용을 다루지만 그것을 증명하거나 부정하는 데 저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창조에 관한 독특한 견해 하나를 더하려는 것도 아니다. 저자의 기획은 보다 더 근원적이며 원대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창조주의 자리에 ‘창조성’을 놓고자 한다. 창조성(Creativity)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창조성이 있었다』는 창조론이 아니라 신론에 관한 책이다.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내용을 다룬다. 성서에서부터 시작하여 역사적 혹은 철학적으로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풍요롭고 다채로운 의미를 담아 왔는지를 서술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성서 속 은유(왕, 창조주, 아버지 등)들을 비롯하여, 각 시대마다 철학적(혹은 신학적)으로 발전하고 논의되어 온 하나님 개념을, 카우프만은 능수능란하게 정리한다. 마치 ‘하나님 이름’에 관한 짧은 사상사를 한 권 읽는 듯하다. 이러한 사전작업을 통해 저자가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뚜렷하다.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낸다고 여겨지는 무수한 은유는 해당 시대의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신학 작업은 언제나 구성적인 혹은 재구성적인 작업으로서, 곧 인간이 새로운 우연들과 논점들 및 새로운 문제들을 만날 때 상상력에 의해 응답하는 일이었다.”(54) 고쳐 말하면,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시대와 무관하게 객관적이거나 규정적인 내용을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관한 신학은 처음부터 ‘구성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카우프만이 하나님이라는 상징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상징은 이미(혹은 여전히) 우리 삶에 강력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쉽게 포기될 수 없다. 그 상징은 재구성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주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던 하나님 은유들은 진화와 빅뱅이론 이후 세계의 의미 물음에 적절하게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1장에서 저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온 하나님 은유에 문제를 제기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표되는 하나님과 세계 이해가 인간 중심적 사고, 즉 사랑이나 불안과 같은 인간 실존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별로 거론되지 않은 중요한 가정 하나는 신앙과 신학이 기본적으로 우리가 인생의 실존적 문제들이라고 부르는 것, 즉 절망, 불안, 죄책감, 죽음, 생의 무의미, 죄 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강조와 이미지들로 인해 기독교의 하나님과 기독교 신앙은 주로 인간적 문제들에 관심을 보이면서 인간중심적인 용어들로 이해되어왔다.”(65)


  카우프만은 신인동형론적 하나님 이해를 비판한다. 신인동형론적 하나님 이해는 결국 인간중심적 신학-신앙으로 이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성서가 말하는 신인동형론적 창조주 역시 진화와 빅뱅이론이 설명하는 인간 이전의 세계와 긴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부분으로 세계 전체를(우주를 포함한) 이해하려는 오류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까지 신-인간의 관계로만 점철되어왔던 하나님 은유는 세계의 요청에 온전히 답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이다.


  카우프만은 대안으로 먼저 ‘생역사적(biohistorical) 존재로서의 인간 이해’를 제안한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옳게 보는 것”(73)을 전제로 하는데, 쉽게 말해 인간을 생태-역사적 그물망 안에 있는 ‘부분’으로 여기는 것이다. 진화이론이 ‘생태’적 관계에서 발생한 우연적 인간을 말한다면, 저자는 여기에 ‘생역사적 인간’을 덧붙인다. 인간은 생태 발생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언어, 상상력, 창조적 행동들을 통해 문화를 발전시켜온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카우프만의 견해는 “인간의 활동과 계획과 목적을 상대화하고 때로는 전복시”켜(75) 인간이 그물망 속의 부분적 존재에 불과함을 인식하게 하면서도, 그물망 안에서 자신과 세계의 역사를 발전시켜 온 창조적 존재임을 주목하게 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서 드러난 ‘창조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장이 문제제기와 그에 관한 대안적 개념 몇 가지 설명하고 있다면, 2장은 1장에서 다룬 개념 중 ‘예기치 않은 창조성’이라는 주제를 심화하여 다룬다. ‘창조성’은 『태초에 창조성이 있었다』 전체를 가로지르는 핵심어로, 카우프만은 인격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창조성이라는 은유로 대체하기를 제안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한, 인격적 행위자들은 아주 특별한 종류의 수십 억 년 동안의 생명의 진화가 있은 다음에야 존재하게 되었”(87)기에 인격적 창조주가 근대 이후의 신 이해에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창조성이야 말로 다윈 이전의 하나님을 대체할 합리적인(?) 신비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성은 그냥 발생한다(happens). 창조성은 이처럼 신비한 사상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좋은 은유가 된다. 제대로 사용되기만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절대적 신비라는 사상, 곧 우리가 결코 완전히 꿰뚫어보거나 해체해버릴 수 없었던 신비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알거나 해체해 버릴 수 없는 신비라는 사상을 보존할 수 있다.”(90)


  싱겁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카우프만이 하려는 일은 밝힐 수 없는 신비를 해체하거나 우주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윈 이후의 하나님 은유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그는 『태초에 창조성이 있었다』를 통해서 “오늘날의 거대한 우주와,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된 성경이 말하는 우주 사이의 엄청난 간격”을(105) 보다 적합한 하나님 은유로 채우고자 한다. 저자는 그 간격을 ‘창조주’대신 창조성으로 메운다. 인간 이전의 압도적인 세계를 없지 않고 있도록 만든 예기치 않게 찾아온 창조성이야 말로 보다 근원적인 신비이며, 보다 적합한 하나님 은유라고 카우프만은 주장한다.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은 신비가 아니라, 신-인간을 중심으로 한 인격적인 하나님 신앙이다. 상대적이며 부분적인 것을 전체로 섬기는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3장에서는 창조성을 세 가지 양태들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창조성1’은 우주를 생겨나게 한 가장 근원적인 창조성으로 빅뱅이론을 배경으로 한다. ‘창조성2’는 “이미 존재하는 다른 실재들의 맥락 속에서 생긴 창조성으로서, ... 수십억 년의 시간 속에서 인간 및 다른 많은 피조물들을 만든 것으로 간주되는 복잡한 과정들”(118)을 뜻한다. ‘창조성3’은 인간의 상상력으로,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복잡한 세계상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상적 능력을 말한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한다면, 성서가 말하는 신-인간 관계 중심의 하나님 은유는 창조성3의 범주에만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창조성이 더 큰 범주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창조성의 세 가지 양태를 빅뱅이론, 복잡계 이론, 뇌의 공진화 등의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끈기 있게 설명한다.


  카우프만은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연구들을 부정하지도 않고 또한 신학도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오늘날에 적합한 하나님 은유 찾기를 시도한다. 창조성(Creativity)은,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관한 현재까지의 연구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인간의 삶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하나님 은유를 어떻게 하면 유의미하게 재구성 할 수 있을지를 깊게 고민한 결과물로 보인다. 창조주를 창조성으로 대체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분명히 낯설고 새롭다. 근대 이후 성서문자주의를 탈피하고 새롭고 자유로운 성서해석의 장을 열어 제친 해방·흑인·여성·민중신학 등이 여전히 인간실존의 문제에 집중하는 반면, 창조성은 범위 면에서 그들의 세계인식을 넘어서려는 시도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저자는 인간 실존에 관한 물음과 대답만으로는 현세계가 처한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포함하고 넘어서는 범위의 신학을 자신의 과제로 여기는 듯하다.


  하나님 은유에 관한 모든 신학은 구성적이라는 카우프만의 전제와 오늘까지 이른 신인동형론적 신-인간 이해에 관한 그의 지적은 타당한 듯 보인다. 진화와 빅뱅이론 이후, 하나님 은유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도 역시, 정직하게 묻고 답하려는 성실한 학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과 설명에서 묘하고 비릿한 냄새가 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가뿐하게 인간 실존을 뛰어넘어 다음 담론으로 향한다. 여성·민중·흑인신학 등이 제기하는 이슈들에 관해, ‘창조성’을 하나님으로 섬기면 더 나은 세상이 올 거라고 낙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가볍게 ‘그다음’을 말한다. 자신의 이론이 지시하는 방향을 따라 거대한 담론으로 향하는 카우프만의 모습은 영락없는 서구 남성 지식인처럼 보인다. 변두리에 남아있는 자들은 그의 이론에서 쉽게 제외된다. 인간 실존과 관계된 인격신을 넘어서 ‘창조성’을 하나님으로 섬기자는 그의 견해는 이론적으로 타당할지는 모르지만, 현실의 불안을 여전히 끌어안고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가 말하는 ‘창조성’은 세계 중심에 서서 한 개인보다는 거대한 세계를 염려하는 지식인에게서 볼 수 있는 여유에서 흘러나온 결과물처럼 보인다고 하면 그것은 좀 지나칠까.


  나와 같은 이유로든, 아니면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성 모독적 견해 때문이든 그의 책을 찢거나 불태울 필요는 없다. 『태초에 창조성이 있었다』는 하나의 견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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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공동과 각각의 언어인 공감, 고백 그리고 증언[각주:1]




엄기호

('인권연구소 창' / 연구활동가, 사회학)

 


이 영화에는 '공동'이 세 번 등장한다. 그리고 그 세번의 공동을 만들어내는 각각에 대응하는 언어가 있다. 이 글은 공동과 그 각각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보고 영화/글을 쓰고 읽는 우리는 각각의 처지에서 어떤 언어로 무엇의 장치가 되어 어떤 정치를 수행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용산 철거민들과 여기에 연대하러 온 다른 지역 철거민들 사이의 '공동'이 있다. 두 번째는 참사가 일어난 후 정부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 처벌하기 위해 붙인 죄목이자 이 영화의 제목인 '공동정범'의 그 '공동'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김석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는 영화의 주인공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그림자처럼 보이는 '공동'이다.

첫 번째의 '공동'을 보자. 이들은 '같은' 철거민으로서, '전철연'이라는 같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를 '동지'라고 부른다. 동지란 같은 운명을 공유한 사람이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공동의 운명을 나눈 사람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각자의 재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공동'의 행동을 취한다.

망루는 그 '공동'의 상징이다. 이 망루 자체가 공동의 '짓기'를 통해 만들어졌다. 전기를 아는 사람이, 용산 당사자가 아니지만 같은 철거민이고 같은 투쟁을 하는 동지로서 전기를 따오고, 또 누구는 다른 그 망루에 자기의 힘을 보탰다. 싸움은 용산에서 일어난 용산의 일이었지만, 그 용산의 일에 마음과 힘을 보태는 것은 철거민 모두의 '공동'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공동'은 정말 공동이었을까? 아니었다는 것이 중간 중간 철거민들의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말한다. 일이 그렇게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농성을 하는 계획도 몰랐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공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자신들에게도 투명하게 '공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참사 이후에 알게 된다.

여기서 이 '공동'의 허상이 드러난다. 운명을 공유하는 것으로서의 공동에는 핵심과 주변이 있을 수 없다. 공동의 생명은 위/아래도, 핵심/주변도 아닌 둥글게 마주 앉는 평등이다. 둥글게 마주 앉아 모든 것을 '같이' 결정했을 때 그 공동은 책임을 같이 지는 '공동'이 된다. 그 책임은 일을 같이 논의하고 결정했다는 의미에서 '공동' 책임이 되는 것이며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비로소 '공동'이 된다.

그럼 이번에는 이 공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자. 좋게 말하면 입장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해관계다. 철거민이라는 공동의 입장이 공동의 이해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용산과 다른 지역이라는 공간을 가로지르며 '공동'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이 '공동'은 간단하게 자동적으로 만들어진다. 이해관계가 같거나 혹은 입장이 같으면 이 영화에서도 반복적으로 서로를 부르는 말인 '동지'가 되고 이 동지들은 차이를 넘어 '연대'하게 된다.

입장과 연대 그리고 공감에 대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 중의 하나가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이 하신 '입장이 같다는 것은 비를 같이 맞는 것'이라는 말이다. 비를 같이 맞는 것은 말하지 않지만 같은 곳에 서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며 이게 연대라는 것이다. 이 말은 쉬운 말로 연대를 말하는 것을 경계하며 연대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상기시키는 말로 곧잘 인용되곤 한다.

이렇게 같은 입장이 되어 비로소 서로를 '동지'라고 부르고 '연대'할 수 있게 하는 언어는 무엇일까? '공감'이다. 이미 철거민들은 같은 망루에 서지 않더라도 같은 처지이다. 같이 비를 맞지 않더라도 이미 다른 곳에서 같은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서로의 처지를 너무 잘 알고 있고 그 처지에서 비를 같이 맞고 피하기 위해 망루를 짓고 함께 또 비를 맞는다. 그렇기에 같은 처지라는 입장의 동일함에서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이기려고 것으로서의 '공감'이 '공동'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이 '공감'을 확 쳐낸다. 같은 고통을 공유하고, 같은 처지에서 같은 비를 맞은 사람들이 모여 더 큰 비를 같이 맞으며 '같은' 고통을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동'이 만들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용산 참사 현장에 있던 이들을 통해 보여준다. 같은 아픔을 겪고 비를 같이 맞았다고 공감은커녕 반목과 불신만 생긴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기는커녕 그것을 더 공유할 수 없다는 것만 확인한다. 

그 결과 처지의 같음에서 연대하던 '공동'의 사람들은 낱개로 파편이 되어 밀려난다. 자신들의 공동이 허상이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자신들이 얼마나 고독으로 밀려났는지를 말이다. 사람을 믿을 수 없고,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고,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없다. 차라리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다. 신에게 귀의하는 것이 편하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용서를 받는 것이 영혼에 파스를 바른 것처럼 시원하게 한다. 말도 못하지만 자기가 손을 주는 만큼 정직하게 잘 자라는 식물과 달팽이만이 위로가 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공감에 대한 반대편의 진실에 도달한다. 아픔에 대한 동참을 통해 연대를 만들어내는 공감은 같은 처지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할 때, 함께 아픔을 겪는 이들 사이에 공감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아픔을 같이 겪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나 '공감'은 가능하다. 같은 일을 겪으며 아파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절대 나눌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을 말이다.

고통의 나눔, 공감은 신과 달팽이, 그리고 식물하고 가능한 것이지 인간 사이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외로움 따위의 말이 아니다. 반대로 고통을 통한 공감, 고통을 통한 연대라는 것이 그 수사의 따뜻함과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 그 불가능을 직시하지 못할 때 얼마나 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누구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에 함께함을 통해 연대하고자 한다면 신처럼 되거나, 달팽이처럼 되거나 혹은 식물이 되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상찬하고 있는 이 영화의 '성취'가 여기에 있다. 고통과 연대, 공감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라. 그러 공감은 당신이 신/달팽이/식물이 되지 않는 이상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사람과 세상을 더 추하게 만들 뿐이다. 같은 운명의 사람들이, 같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니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픔을 통한 연대는 공감이 아니라 불신과 반복의 지옥도를 만들어낸다.

두 번째의 공동은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공동'이다. 용산 참사의 총책임을 맡아야하는 정부는 참사의 피해자인 이들에게 '공동정범'이라는 죄를 뒤집어 씌운다. 왜 하필 이들에게 부과한 죄목이 '공동정범'이었을까? 정부가 이들에게 '공동'의 혐의를 씌운 것은 영화에서 말하듯이 앞으로의 투쟁을 봉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앞으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투쟁에 나선 사람 모두에게 책임의 위계를 묻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 말이다. 이렇게 두 번째의 공동은 행위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공동이 아니라 행위자를 위협하기 위해서 정부로부터 만들어지는 강제된 범죄자로서의 '공동'이다.

또한 바로 이 '공동'으로부터 이미 연루되어 처벌을 받게 되는 사람들은 분열시키고 반목하게 하는 힘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첫 번째의 공동이 깨지면서 동시에 두 번째의 공동이 부과되면 연루되어진 사람들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왜 저 자와 똑같이 처벌받아야 하는가? 저 사람의 책임은 어디에 갔는가? 그가 먼저 자신의 책임을 고백한다면 그 이후에 나는 그와 함께 하겠다.  

이 영화가 묻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첫 번째의 공동이 깨어지고 두 번째의 공동이 강제될 때 공동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한마디로 공동은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 영화에는 그런 공동을 가능하게 하는 '영웅'도 등장하지 않으며 다른 이를 공동으로 엮어내는 '거룩한 희생자'도 없다. 다만 서로 반복하고 불신하며, 공동이라고 믿던 것이 공동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이야기들만 나온다.  

이 영화는 말한다. 공동이라는 것은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를 말이다. 그리 쉬웠던 공동이, 참사 이후에는 오히려 한 번 만나는 것조차 힘든 것이 된다. 한 쪽에서는 만나는 것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분노한다. 다른 쪽에서는 그렇게 만나는 것이 무슨 '공동'이냐고 묻는다. 한 쪽은 만나서 소주도 한 잔하고 서로 마음을 터놓아야 다시 공동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다른 쪽은 그런 공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만나는 그런 공동만이 진짜 공동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정권이 이 '공동'을 만들어내는 언어가 '고백'이다. 재판의 와중에 범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고백이다. 고백을 통해 먼저 자기의 죄를 털어놓아야 한다. 그런데 범죄인들이 자기의 죄, 즉 개별의 낱낱의 죄를 토해놓지 않는다. 그럴 때 그 낱낱을 묶어 한꺼번에 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공동정범'이라는 죄목이다. 앞의 공동이 허상이었다면 이 공동은 권력의 올가미다. 

그러나 영화에서 우리는 이 '고백'이 정권뿐만 아니라 참사의 당사자들에게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산에 연대하러 갔던 철거민들은 '진실'을 알고 싶다는 말로 고백을 요구한다. 그들은 누가 망루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는지, 누가 맨 먼저 뛰어내렸는지 등이다. 이를 통해 누군가가 이것이 내 책임이라고 말하고 시인한다면 그 고백에 기초해서 다시 공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그 모든 일에 그저 휩쓸린 사람이기 때문에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질 사람이 입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실이 고백되었을 때 비로소 '함께' 할 수 있고 '공동'은 복원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절대 그것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용산 참사 현장에서 벌어진 '사실'에 대한 이야기일수는 있지만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피해자로서 모든 혐의를 부인한 것도 바로 그 이유라고 말한다. 자기가 책임이 있다고, 아니 더 큰 책임, 혹은 원초적인 책임이 있고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을 하는 순간 진짜 책임을 져야하는 권력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의 사람들이 말하는 진실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이며, 그 사실에 집착하는 한 진실은 빠져나가버린다며 완강히 거부한다. 그에게 고백은 진실로 나가는 문이 아니라 진실을 덮는 것일 뿐이다. 

진실과 사실, 혹은 한 쪽의 진실과 다른 쪽의 진실이 대립하고 그 간격이 커질 때 오리무중이 되는 것은 진실 그 자체다. 사실의 퍼즐들을 맞춘다고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고 진실이 사실 모두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사실과 진실이 대립하고 만남의 장이 사라지면서 사실을 조작하여 진실을 허구로 만들어낸 쪽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정권이다. 사실도 필요 없고 진실도 필요 없는 쪽이 이긴다. 그래서 이들은 오로지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정범으로서의 '공동'만 남는다.

진실을 통해 공동을 만들어내는 언어로서의 고백. 여기서 우리는 세 번째 고백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감독과 관객이다. 아마 한국의 다큐멘터리 대부분이 취하는 방법이 이것일 것이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고백'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카메라는 인터뷰를 할 때 항상 얼굴을 찍는다. 그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카메라는,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관객은 그 얼굴을 통해 가늠하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아마 많은 관객들은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의 눈동자와 표정을 살피며 그 고백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는 고백의 도구다. 우리 모두는 그들을 '취조'하는 형사, 즉 국가기관이다. 국가기관이 허접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국가를 대행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고백은 국가가, 동료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관심 있는 우리 모두가 요구하며 모두를 국가로 만든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큰 상찬은 바로 이 고백을 강요하는 취조의 도구로서의 카메라이기를 그만둔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는 집요하게 인터뷰이를 몰아붙인다. 그래서 그들의 진실을 살핀다. 그러나 (정성일 평론가가 지적한 것처럼) 딱 한번을 제외하고는 그 진실을 고백하는 순간 - 즉 눈물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일부로 카메라를 돌리지는 않는다. 카메라는 고백의 장치가 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고백은 '죄인'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다. 흔히 토로라고도 말하는 고백은 인터뷰이를 '피해자'로 완성한다. 인터뷰이들이 최종적으로 카메라 앞에서 보이는 것은 자신이 겪은 아픔이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눈물'로 상징된다. 고통은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홀로 겪어야 하는 고통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을 통해 피해자는 피해자로 완성된다. 숭고한 피해자로 말이다.

대부분의 인터뷰-참여관찰을 통한 서사가 달려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를 고통은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고백을 하는 숭고한 피해자로서 재현/완성하는 것으로 서사는 숭고하게 끝난다. 피해자가 숭고해져야 서사도 숭고해진다. 서사가 숭고해져야 서사를 읽거나 보는 이도 숭고해진다. 이 숭고에 동참하는 것으로 '공감'이 발동하고 '공동'이 만들어진다.  

고백을 통해 용서할 수 없는 타락한 죄인과 누군가와 결코 나눌 수 없는 고통을 토로하는 숭고한 피해자가 만난다. 타락한 죄인과 숭고한 피해자는 한 쌍을 이룬다. 그 쌍을 만들어내는 언어가 바로 '고백'이다. 이 고백을 통해 이윤을 챙기는 것은 그들에게 진실을 강요하는 국가이며 그들의 얼굴을 통해 진실을 재판하는 관객이다. 고백은 국가와 관객을 하나로 묶는다.

그렇다면 공동은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관객은 이 영화의 끝에서 다시 새로운 공동의 그림자를 본다. 진상을 밝히기 위해 이들이 다시 둥글게 모여 앉는다. 첫 번째 모임은 고성과 반복으로 더 큰 상처만 남긴다. 그리고 두 번째 모임에서 이들은 비로소 둥글게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첫 번째에서는 서로에게 진실을 추궁하던 이들이 두 번째 모임에서는 사실을 가지고 조각을 맞추기 시작한다. 이때 이들은 머리를 맞댄다.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의 기억, 즉 각자의 사실이 전체에 대한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그 날의 전체, 즉 진실에 대해 목마른 사람들이 그들이기에 서로의 조각에 기대 각자의 조각을 내놓고 빠진 부분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공동'정범'을 부인하기 위해 말하지 않던 것과, '공동'정범임을 부인하기 위해 상대에게 추궁하던 것을 내려놓는다. 위와 아래, 안과 바깥이 아닌 둥근 공동의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김석기에 맞서기 위한 공동의 행동을 편다. 

여기서 우리는 허상으로서의 공감과 국가 장치로서의 고백을 넘어 서로를 만나게 하고 '공동'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언어를 만나게 된다. 나는 이것을 '증언'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흔히 증언을 자기가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자기의 증인이 되는 것, 그러나 나는 이미 자기가 자기를 증언할 때 이것을 국가처럼 보고 그 진실을 판단하려는 카메라와 관객이 개입하는 순간 증언이 증언이 아니라 국가 장치인 고백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앞에서 말했다. 

증언은 내가 나에 대해, 내가 겪은 것을 타자 앞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증언은 내가 아니라 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말미에 인권활동가 박래군과 함께 비로소 만난 참사의 당사자들이 하는 것은 서로의 기억을 맞추는 것을 통해 서로를 '폭로'하는 것도 서로에게 '고백'을 강요하는 것도, 자기를 '토로'하는 것도 아니라 서로에 대해 '증언'하며 서로의 기억을 북돋아주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증언이 당사자들에 대한 폭로나 당사자의 고백과 다른 지점이 여기에 있다.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게 하는 것, 그것을 나는 증언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 증언은 위태롭다. 고통을 공유한 사람들끼리도 타인에 대한 증언이 타인에 대한 폭로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또한 아무리 용기를 북돋는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마주 대하는 두려움은 증언을 거부하게 한다. 증언의 이름으로 거짓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서로에게 진실을 향한 용기를 북돋는 증언은 매우 힘들고, 아주 희박하다. 증언은 폭로로, 고백으로 타락하기 딱 좋다. 당사자들에 의해서도 그렇지만, 진실을 기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물어야하는 것이 바로 기록하는 자, 영화라면 감독일 것이고 책이라고 하면 저자, 둘을 묶어낼 수 있는 전통적 언어로는 지식인/활동가일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돌고 돌아 민중 혹은 피해자 혹은 서발턴을 기록하는 자로서의 지식인/활동가의 언어, 지식인의 윤리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사르트르와 사이드, 그리고 스피박 등이 궁극적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던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 영화/글쓰기의 윤리, 아니 그 글쓰기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고백을 강요하는 국가 장치의 일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공감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는 '사회'의 이데올로그가 될 것인가. 저 국가 정치를 거부하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무엇을 '증언'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고백과 공감의 정치를 거부하고 증언의 '장치'로서의 '정치'를 하고 있는가? 감독들은 관객에서 무엇을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관객으로서의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 또 무엇을 증언할 것인가? 과연 증언의 '공동'은 만들어지고 있고, 만들어질 것인가?  

첫 번째의 허상으로서의 공동, 두 번째의 올가미로서의 공동에 이은 이 세 번째 희미하게 등장하는 이 공동은 증언의 공동일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할 것이다.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사람들의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김석기라는 '악'에 맞서기 위한 잠정적인 휴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을 서로 나누자고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을 소주의 힘을 빌려 빙빙 말할 수밖에 없는 이들과, 그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싸움이 반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공동'이 아닌 '고립'이 더 심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리가 공동에 대해 그리 쉽게 첫 번째로 돌아갈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 영화 이후에 우리는 다시는 첫 번째의 공동을 공동으로 여길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쉽게 저들의 농간에 말려 두 번째의 공동을 받아들일 수도 없게 되었다. 첫 번째의 공동이 '동지'와 '연대'라는 이름의 공동이었다면 두 번째의 공동은 '우리 안의 박근혜'류 따위의 공동이다. 첫 번째의 공동은 언제나 위와 아래, 핵심과 주변으로 나눠진 공동이었으며 두 번째의 공동은 고상하고 성찰하는 척 하는 공동이었지만 그 공동은 언제나 저들에 의해 '정범'으로 묶이는 공동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의 공동은 무엇인가? 이 영화는 그림자처럼, 마지막에 지나가듯이 희미하게 보여주지만 그 공동은 뚜렷하다. 그 누구도 진실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그 소유하지 않은 진실은 누구에 의해 독점되며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가진 사실/진실의 파편들로 머리를 맞대고 퍼즐을 맞추며 나가야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가운데를 비우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진실을 향해 조각을 맞춰가는 것,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그것을 사회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주인공도 아니고 중심인물도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인물/운동이 있다. 그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정성일이 말한 것처럼 길이도 맞지 않고 서사도 일관되지 않은 여러 에피소드들의 조각들로 산만하게 흩어질 것이다.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겠지만 영화의 말미에 반짝 등장하여 고백과 공감을 넘어 서로에 대해, 진실에 대해 용기를 내게 하는 인권활동(가 박래군)이다. 그가 이 과정에 대한 증언자로 되고, 희미하게나마 사람들을 증언자로 묶어내고 있었다. 여기가 인권활동의 자리가 아닐까.

나는 인권활동의 위태로움을 늘 경험하는 인권활동가 동료들이 우리의 언어가 무엇이고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하는지를 되묻기 위해 꼭 보았으면 한다. 우리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 웹진 <제3시대>



  1. http://khrrc.org/3536478#0 이 글은 '인권연구소 창' 홈페이지에도 동일한 제목으로 게재되었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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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의 철학’과 ‘철학의 형상화’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1962년 미국을 방문 중이던 함석헌은 필라델피아 근교 펜들힐이라는 퀘이커 수련원에 머물면서 “누에의 철학”이라는 짧은 글을 썼다. (그곳은 이후 “펜들힐의 명상”이라는 글의 배경이 될 정도로 함석헌에겐 의미 있는 곳이었다). 함석헌이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인 이름의 철학을 사용해 표현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는 한국과 미국의 거리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멀게 느껴지던 시절, 귀양살이를 하는 심정으로 미국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 글은 그가 미국 퀘이커들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펜들힐에 묵으면서, 한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철학적 고민과 또 자신의 상황에 대한 성찰을 기록한 것이다. 빈곤한 시대에 글을 쓸 수 없는 심정을 토로하면서 시작하지만, 곧 자신의 사상을 누에와 비교하고 누에의 철학을 말했다. 함석헌은 <누에의 철학>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형상화 하고 한국의 철학을 모색한 것이라 읽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누에를 통한 철학의 자기반성까지 요구한 것으로도 볼 여지가 있다.




    <누에의 철학>은 함석헌의 글에서 가끔 보게 되는 글쓰기에 대한 망설임을 토로하면서 시작한다. 글보다는 말을 선호했고, 말의 근원을 (생명의) 소리로 이해했던 함석헌은 쓰자마자 과거형이 돼 버리는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언제나 반성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연설문이 아니어도 말로 들리는 경우가 많았고, 소리의 울림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자주 엿볼 수 있다. 망설임이나 주저함을 함석헌 글의 성향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의 글에서 철학적 이상과 정치적 현실 사이의 고민을 읽을 수 있고, 그 때문에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글에선 철학적 함의가 큰 ‘말씀의 집’과 같은 개념을 더 발전시키지 않은 것을 그 한 예라 하겠다. 함석헌이 <누에의 철학>에서 글쓰기에 대한 관찰을 하게 된 동기먼저 살펴보자.


    함석헌에게 당시 한국의 상황은 말이 말라버려 글이 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생각이 막힌 빈곤한 시대에 살림의 글이 나올 수 없었다. 그에게 생각은 살림 혹은 생활에서 나왔고, 말은 생각이 영근 상태였고, 글이란 말이 닦이어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 글이 있을 수 없는 나라의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건 거짓말을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 자체로 심판과 형벌이었다. 심판과 형벌은 생각이 막히고 말이 말라버린 시대가 지은 죄의 대가였다. 따라서 말이 말라버린 시대에 글을 쓰는 것은 저주받은 행위였고, 저주받은 글쓰기는 죄의 대가를 치르는 행위였다. 하지만 죄는 한 개인이 따로 짓는 게 아니었고, 그 대가의 짐도 전체가 지어야 했다. 20세기 중반 미국 정신사의 한 뿌리를 이어가는 곳에서 외로운 고민을 하면서 쓴 그의 글을 한국의 상황만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개인과 전체가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던 함석헌의 글에서 자기반성과 시대의 반성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누에의 철학>은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거나, 한국이란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반성을 넘어 철학 그 자체에 대한 반성으로 볼 수 있다. 살림을 추구하지 못하고 말과 영혼이 빈곤해진 시대의 사유에 대한 그의 성찰로 볼 수 있다.


    생각이 막히고 말이 말라버린 시대와 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함석헌에게 누에는 죽은 듯이 느리고 약한 비웃음의 존재였다. 누에는 비단의 영광을 위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권력과 도덕과 종교에 의해 희생된 씨알들의 상징이었다. 긴 잠을 자듯 ‘내일과 모래’를 먹으며 꿈지럭대는 누에는 결국 ‘죄의 몸’이란 허물을 벗고 끝내 나비로 솟아오른다. 함석헌은 자신의 모습을 변신을 위해 침묵하는 연약한 누에에 비유했고, 자신의 철학을 이런 누에에서 찾았다. 누에가 자신의 살을 뱉어내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죽고 또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함석헌은 말이 살아나는 모습으로 비유한다. 누에가 지은 집은 ‘말씀의 집’이었고, 그 집을 깨치는 것은 또다시 ‘내 입의 말씀’이었다. 죽어서 나비가 된 누에는 새 시대를 여는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다. 존재가 언어로 구성되었다는 뜻의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다. 함석헌의 누에가 지은 말씀의 집은 존재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곳이 아니라, 존재를 변화시키기 위한, 죽음에까지 이르는 언어적 성찰의 공간이었고 새로운 존재와 새로운 언어를 탄생시키는 집이었다.


    함석헌의 누에 철학은 죽음을 준비하는 철학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루는 철학이었다. 나의 죽음이 아니라 약자의 죽음, 억압의 구조를 정당화하는 철학이 아니라, 신음하는 생명을 위한 고난과 생명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함석헌의 누에는 스스로 죽어야 살 수 있다. 누에가 몸을 뱉어내 집을 짓는 과정을 말을 뱉어내 말씀의 집을 짓는 것이라 했다. 말이 말라버린 시대에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죽음을 거치지 않으면 새로움을 맞을 수 없었다. 함석헌은 누에가 죽음을 통해 나비로 변신한 것을 새로운 말씀을 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말과 새로운 언어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저주받은 시대의 글쓰기가 아닐까. 여기서 마음에 칼질을 해 시를 썼다는 그의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의 형상화란 관점에서 ‘누에’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누에의 철학’이라는 말은 우선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누에라는 동물이 드러내는 철학적 습성이 있다는 의미와 철학 그 자체를 누에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누에를 통한 철학의 형상화는 후자를 말한다. 철학을 형상을 통해 이해하려는 노력은 철학의 역사에서 꾸준히 볼 수 있다. 빛과 비전이나 지혜를 터득한 현인 또는 숫자나 기하학의 형상을 통해 철학의 본질을 드러내려 했던 철학의 역사는 길다. 비교적 최근에 프랑스의 뒬러즈는 ‘친구’와 ‘노인’으로 철학의 단면을 형상화시키기도 했다. 동물을 철학의 형상으로 제안한 예로는 헤겔의 글을 통해 널리 알려진 희랍신화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부엉이가 있다. 함석헌의 누에를 철학의 형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함석헌은 누에를 한국의 지형과 닮았다는 말을 했다. 누에는 한국 철학의 형상일 수 있을까?


    함석헌의 누에를 헤겔의 부엉이와 비교해보자. 헤겔의 부엉이는 황혼이 찾아와야 비로소 날개를 펼치고 날지만, 누에는 새벽에 고치를 뚫고 날아오른다. 부엉이가 밤에 활동하는 이유는 하루의 역사가 끝났지만 그에 적응하지 못한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다. 헤겔이 부엉이라는 철학의 형상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역사가 종결된 상태가 되어서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철학은 과거에 대한 사유가 된다. 그 사유는 밤에 나는 부엉이처럼 공격적이고 심판적인 것이었다. (함석헌과 헤겔의 비교가 가능하다면, 니체는 어떨까? 니체는 다가올 미래의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생명의 순환성과 역동성을 담아내는 미래의 철학을 ‘망치’로 형상화시켰다). 반면에 새벽에 날아오르는 누에는 미래지향적이고 예언적인 철학의 형상이었다. 나비는 누에라는 자아의 죽음을 뒤로 하고 날아오른다. 누에의 죽음은 부정이라는 변증법의 상징도 아니고, 동일한 것의 반복도 아닌, 죽음으로 생명을 이루는 순환적인 가치관을 반영한다. ‘내일’을 먹고 긴 잠을 자는 누에에게 시간이 빨리 끝나야 한다는 조바심은 없다. 누에의 철학은 사후의 사건이 아니라, 내일이 현재에 진행 중인 삶 그 자체였다. 한국을 누에와 같이 생겼다고 한 함석헌은 자신의 모습, 자신의 가능성을 누에를 통해 발견했다. 그리고 누에의 철학, 나비의 철학을 자신이 품었노라 선언했다. 함석헌에게 누에는 자신의 형상이었고, 한국의 형상이었고, 철학의 형상이었다 말할 수 있다.


    그 형상의 의미는 미래적인 것이었지만, 그 미래는 현재의 고난을 전제로 한다. 함석헌에게 누에는 민중의 고난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누에는 인간이 원하는 비단을 생산하기 위해 키워지는 생물이다. 누에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만든 ‘말씀의 집’은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고 파괴되고 만다. 그런 누에의 죽음은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 생산을 위한 희생이다. 바로 여기서 함석헌의 철학이 시작하지는 않을까. 바로 고난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말씀을 잉태하는 미래의 철학이다. 누에가 민중의 상징이라면 그의 철학은 고난 받는 민중의 미래와 가능성을 묻는 철학이었다. 함석헌에게 철학은 미래를 위해 필요했다. 그리고 철학의 미래는 이런 미래를 생각하고 질문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함석헌은 철학과 미래는 분리될 수 없다고 믿었기에 한국에 미래가 있으려면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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