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4)

 

 





 

한강로... 

중구 봉래동 2가(서울역)에서 삼각지를 거쳐 동작구 본동(한강대교 남단)에 이르는 폭 40m, 길이 5,150m의 10차선 도로. 일제 강점기 명칭은 ‘한강통’ 조선시대 한양에서 삼남 지방으로 향하는 간선도로. 


그리고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빌딩 2009년 1월 19일. 그 후 용산이라는 명칭은 ‘참사’라는 말과 한 쌍이 되다. 무엇이 목숨을 앗아갈 다급함이었을까 7년을 주차장으로 돌리다가 이제야 가림막을 치고 건물이 올라간다. 그리하여 망각은 가속화 될 것인가.

 


 

 

 


 


  

오종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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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타래

 

  2009년 나는 호기롭게 작업 중단을 선언했다. 문학가로 치면 절필 선언이다. 나름 호방한 태도를 뽑내고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치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해가 거듭할수록 자존감이 사라지고 불안감이 커졌다. 결국 거창한 명분도 없이 작업을 시작했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명 백지 공포증이다. 그때 실마리로 삼은 것이 선긋기다. 볼펜으로 종이 위에 무작정 선을 그었다. 대단한 작업은 아닐지언정 무언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몇주 동안 안이하게 선을 긋는 와중에 문득 “선”이 눈에 들어왔다. 특유의 구불거림과 점성을 가진 선은 관습과 선입견으로부터 이탈한 선 그 자체였다. 

 이런 과정 속에 탄생한 결과가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2012)라는 드로잉 작품이다. 목적 없이 쌓인 선이 예술활동의 새로운 활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백정기,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 4절 3장, 종이 위에 볼펜, 2012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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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

 

 




 

서부이촌동 고가를 지나다 보면 폐허가 된 철도 조차장의 모습이 보인다. 물웅덩이며 시간과 비바람에 의한 공장식 건축물의 속도 빠른 해체가 선명하다. 어쩌자고 도시 한 복판의 저 너른 땅은 67년 전의 전쟁 자료 사진과 닮은 꼴 모습을 여전히 하고 있는 걸까.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철도 조차장은 용산역과 더불어 일제의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철도기지로서의 신용산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번화한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용산역 뒤 쪽, 이촌동과 청파로에 이르는 26만 평방미터의 거대한 덩치다.

 

 

전쟁이란게 원래 그런 건가 아님 이 땅의 전쟁이 더 그러한가. 1950년 6월 28일 새벽 800여명의 희생자를 낸 한강 인도교 폭파가 적군이 아닌 아군에 의한 것이듯 용산 조차장을 포함한 용산지역의 대대적 폭격역시 북한군이 아닌 미군에 의한 폭격이었다. UN군은 북한군의 군수물자 보급루트를 하는 용산역 구내와 철도 조차장을 폭격하여 북한군의 전쟁 수행능력을 떨어뜨리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군의 지폐인쇄를 막기 위해 용산구 용문동에 있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공장을 파괴하고자 했다. 1950년 7월 16일, 양 날개의 길이가 70미터에 달하는 B29편대 50기 이상이 서울, 특히나 용산지역을 융단 폭격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폭격에 의해 사망한 서울 시민은 4,250명, 부상자는 2,413명. 용산구만의 집계로는 사망자 1,589명, 부상자 842명으로 서울 전체의 1/3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들 사망자와 부상자 대부분은 바로 7월 16일 오후에 있던 폭격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지금은 가림막이 둘러쳐져 사람도 자동차도 불허한 채 오히려 도시 열기를 내리는 빈 공간으로 있지만 이내 자본의 융단 폭격을 맞을 터, 저 이질적인 공간에서 오늘도 눈을 떼지 못한다.
 

 


 

 

 


 


  

오종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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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갇힌 도시

 

  목적지 없이 걷기 위해서 도시를 걸어보았다. 백범로에서 이태원로까지 -- 공덕동에서 삼각지를 지나 한남동에 이르는 길을 걸어보니 벽이 많아서 시야도 답답하고 다니기도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공덕역 주변에서 만난 벽은 고층 빌딩이다. 건물은 유리로 뒤덮여 있고 간판(문패)이 줄줄이 걸려 있다. 간판을 보고 용무가 없으면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 고층 건물은 거리를 차가운 복도로 만든다. 2) 서울은 항상 공사 중이다. 효창공원앞역 주변도 공사장을 둘러친 회색 철제 장벽이 몇 년째 서있다. 출입은 말할 것도 없고 시야를 가리는 엄격함은 거리를 삭막하게 만든다. 하필이면 모양도 팔레스타인 장벽을 축소 해놓은 생김새다. 3) 삼각지 역에서 녹사평역까지는 양쪽으로 미군 부대 담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고개를 들어도 땅을 걷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종류만 다른 보도블록이 지루하게 이어질 뿐이다. 그나마 담장 너머로 남산이 보이는 것이 다행이다. 4) 한남동에 접어들면 도로와 주택 사이에 방음벽이 나타난다. 방음벽 밑은 언제나 그늘지고 축축하다. 걷는 사람도 덩달아 음산하고 눅눅한 기분이다. 방음벽은 가까이 하지 말아야할 찻길과 주택을 가까스로 갈라놓는 방파제다. 5) 마지막으로, 인도 위에 올라와 있는 자동차는 제일 치명적이다. 마치 수륙양용 자동차처럼 차도에서도 달리고 인도에도 당당하게 올라온다. 인도 위에 주인은 사람인데 사람이 주차된 자동차를 피해 차도로 뛰어 들어야 하는 형편이다.

1) 빌딩


2) 공사장

3) 미군부대


4) 방음벽


5) 인도 위 자동차


이상 열거한 빌딩, 공사장, 미군부대, 방음벽, 자동차 등은 서울에서 흔한 장애물이다. 그것들이 일부 불가피하거나, 당장 극복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서울은 벽에 갇힌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최근 “서울로7017”이 개통되어서 걷는 도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걷기의 관점으로 도시가 꾸준히 관리되어 나가길 바란다.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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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2)

 

 



 

용산 어디에서나 거대한 가림 막은 하나의 풍경이다. 3년 전 서부이촌동에 이사 왔을 때 동네와 평행하게 둘러친 용산 국제 업무지구 개발지 가림 막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인상이었다. 도시의 흔한 가림막이 이 곳 만큼은 생경한 풍경이 된다. 2013년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는 부도났고 그로 인해 서부이촌동의 가림 막은 요란한 홍보문구가 새겨지지 않은 채 흰색 그대로 거대한 스크린처럼 버티고 서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국제 업무지구를 계획할 당시 지질을 조사해보니 땅 밑에 엄청난 양질의 모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이 한강이 만드는 모래가 퇴적하는 곳이 바로 이촌동이다. 치수가 어려웠던 시절 이촌동 사람들은 해 마다 물난리를 겪었고 동네를 잠시 떠나거나 일제에 의해 폐동되기도 했었다.(1925 을축년 홍수) 그러한 연유로 二村洞은 사실 옛 이름이 移村洞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살기 부적합한 곳, 계절에 따라 들고 나는 물길만이 수 만년을 주인으로 존재했을 곳에 도시 인구가 폭발하고 1960년대 용산 미군기지에서 이 곳에 쓰레기를 매립하자 넝마주의들이 모여들었고 또한 청계천에서 쫓겨난 무허가촌 사람들까지 밀려와 터를 잡게 되었다. 지금에야 한강 가까이 아파트를 지어 풍광을 독차지하는 비싼 모래땅이 되었지만 무허가 판자촌을 지어야 했던 그 때의 사람들은 집 짓고 살기 부적합 곳인 주인 없는 한강변에 살며 홍수 철에는 매 번 물길에 집을 내어 주어야 했었으리라. 몸 뉘일 곳 허락 받지 못하는, 존재가 무허가인 그들은 그 뒤로도 이촌동에서 상계동으로 상계동에서 성남으로 땅 한 평 점유하지 못 한 채 쫓겨 다녀야 했다. 공간 박탈의 역사가 移村洞이란 말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던 모래땅위에 곧 다가올 대박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새 하얀 얼굴을 한 가림막이 둘러쳐져 속히 자본의 이름이 덧칠해 지길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하얀 얼굴은 오히려 연극적이다.
 

 


 

 

 


 


  

오종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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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앞역

 

  중학교 때 가족을 떠나 서울에서 유학(?)을 했다. 당시 그리움으로 가족들과 살던 집을 일기장에 그렸다. 당시 가족들이 사는 집은 그림과 달리 3층 양옥집이었다. 놀랍게도, 그림 속 집은 새 집을 짓기 위해서 헐어버린 옛 단층집이었다. 어린 마음에 ‘우리 집’은 새로 지은 집이 아니라 추억이 많이 쌓인 옛 집이었던 것이다.


  2013년 까지만 해도 효창공원앞역 2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2~3층짜리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인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3번 출구는 보도블록과 인공 석으로 새 공원을 조성 중이다. 오래된 도시는 기억이 쌓여있는 곳인데, 때가 타지 않은 인공 석과 보도블록에 누구의 기억도 남아 있을 리 없다. 기억의 장소는 없어지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사람은 사신이 잘 아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 건물에는 기억이 없다. 멸균 처리된 장소다. 기억이 없는 장소에서 산다는 것은 뿌리를 내리고 산다기보다 부유하는 삶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전면적인 개발은 폭력이다. 때문에, 설령 현실적인 이유에서 개발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기억으로써의 도시를 배려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http://youtu.be/GrJan-49_Xk
백정기_효창공원앞역_비디오_3분58초, 2013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 작가소개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 를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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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2



인천댁네는 흔하디흔한 염전 어귀에 겨우 흙집 한 칸을 얻어 옹색한 세간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쉴 새도 없이 소금 거두는 일을 시작한다. 아무리 남편을 돕는다 해도 염전 일은 말 그대로 뼈가 빠지는 노동이다. 매일 대파 질을 하면서 엉겨 붙은 소금 알갱이를 부숴 모으고 젖은 소금을 창고까지 실어 날라도 목돈을 손에 쥐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30년 전 그때만 해도 도급제여서 여러 사람이 한 팀을 이루어 소금을 생산했다. 그러니 적은 수입을 또 나누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돌아오는 품삯이 하도 낮아 밭농사를 하고 포도 농사도 하며 틈틈이 식당 일도 한다.


어영부영 터를 잡고 살게 되니 우선 오갈 데 없이 되어버린 시부모님을 불러들이고 시동생, 시누이들도 건사하게 된다. 줄줄이 아들 넷을 키우고 그 중 하나는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도 한참을 지난 어느 날, 황망함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섬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난 날, 그녀는 알게 된다. 자신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고 눈은 삼각형으로 찌그러져 있으며 검은 장화엔 소금물이 희끗하게 얼룩져 있다는 것을.


그래도 인천 댁은 여전하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시베리안 허스키 개와 일본산 개가 돌아가며 털갈이로 마당을 어지럽혀도, 실개천에 활짝 핀 개복숭아꽃이 그녀가 눌러 쓴 햇빛가리개 모자의 꽃문양을 닮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이면 염전이 보이는 벌판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시집와서 엄청 고생했네요. 시동생들 학교 보내고 장가보내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우리 자식들이 자라고 장가를 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또 뭔가 계속 해줘야 하구요. 지들, 집 산다고 하면 또 조금 보태줘야 하고…… 보세요, 지금도 김치 담고 있잖아요. 며느리 손에 들려 보내주려고.”


“예전엔 여기 비행기 소리가 굉장했어요. 그 소리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집에 들어가 있다가 지나가면 다시 나오곤 했는데 지금은 무서운 게 없어요. 오히려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하지요. 사람들은 섬이기 때문에 엄청 드센데 나도 그렇게 된 거지요. 그렇게 안 하면 못 살겠더라구요. 인천에서는 고무신에 치마만 입고 살았었는데 여기서는 고무신 내다 버리고 운동화 사서 신었어요.”


“비가 오면 쉬거든요. 염전은 비 오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 부부는 집안일 하거나 밭일을 합니다. 비를 맞으면서.”





 



 


자우녕 作 (미술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마르세이유 조형예술대학에서 Fine Arts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Master's Fine Arts과정을 이수, Diplome를 받았다. 2016년 한국복지예술인재단에서 파견되어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였으며 경기만에코뮤지엄의 <선감이야기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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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그림책 시리즈 II  「소금밭」1


 

  1990년대 후반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시화호 방조제는 대부도를 육지와 연결하면서 어촌민에게 교통의 편리함을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지락의 보고였던 갯벌이 말할 수 없이 훼손되었고 식생들도 변하였습니다. 섬 아이들은 사라졌고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이제 80이 넘은 노인들의 여생도 그리 많이 남아있진 않지요. 바야흐로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의 환경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섬의 기억을 간직한 연장자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섬 노인의 인생사는 오롯이 대부도의 역사이며 한국 근대사의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기반으로 기획된 「환경그림책 시리즈」는 시간에 대한 사유와 상상력을 함께 전달하고자 합니다.

 

기획 자우녕

2013년 경기창작센터 기획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활동하면서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대부도 오래된 집 프로젝트와 아시아 글로벌 커뮤니티_캄보디아, 황금산 프로젝트, 선감이야기길_선감역사박물관, 내가 이웃이 될 때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글: 자우녕 

사진: 최영주, 자우녕 

디자인: Damien Manuel 

인쇄 : 2016년 9월, 인간의 기쁨

 




* 이 글은 경기도 안산시 대부동동에 있는 염전에서 일하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를 기초로 지어졌습니다. 염전이라는 하나의 공간은 두 염부의 기억으로 중첩되며 재구성됩니다. 나는 이를 두고 기억의 지리학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여우살이


섬이 다가온다.

세 살배기 큰아이와 쌍둥이 아기들을 품에 안은 채, 곱디고운 인천 댁이 해무에 가린 섬을 바라다본다. 가는 비가 흩뿌리듯 밀려오는 안개는 남편의 처진 어깨를 넘어 아기엄마 얼굴에 와 닿았다. 다가오는 듯 멀어지는 듯 여전히 흐릿한 섬의 풍경이지만 저곳에서는 먹고살 수 있으리라. 막연한 희망을 물안개 속에 풀어놓고는 출렁거리며 열리는 하얀 바닷길에 몸을 맡긴다. 한 가족을 실은 작은 배가 인천항을 떠나 대부도 방아머리에 도착하는 섬의 풍경은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다. 이때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간절함’이 어떤 서사를 만들어도 그것은 섬이라는 자체 안에서 소멸된다는 어느 문학비평가의 말을 떠올린다. 


 섬은 상징이 되고 상징은 섬이 된다.



 



 


자우녕 作 (미술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마르세이유 조형예술대학에서 Fine Arts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Master's Fine Arts과정을 이수, Diplome를 받았다. 2016년 한국복지예술인재단에서 파견되어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였으며 경기만에코뮤지엄의 <선감이야기길>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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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그 곳이 공사 중임을, 그 곳에 분명한 소유주가 존재함을 알리는 가림막은 추상화된 도시 공간을 걷는 거리산책자를 더더욱 둔감하게 만든다.

   2017년 질곡진 한국 현대사의 축도인 용산은 자본의 논리가 숨고르는 공간마다 중성의 흰 가림막을 세운다.


 

    벤야민에게 도시 공간은 여러 시대의 시간 층이 얽혀 있는 곳이듯이 용산에 거주하는 내게도 그 곳은 개인의 감각과 집단의 역사가 중성화를 거부하고 흰 '막' 위에 쓰여지는 곳이다. 

   

    그리하여 무언가가 완공되면 이내 사라질 막 위에, 그 임의의 면적에 기억과 시간을 소환한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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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말의 지혜

조윤선의 구속에 관하여


 

  요즘 국민들에게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는 뉴스프로다. 무소불위였던 권력이 몰락해가면서 연일 다양한 뉴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선정성이나 빠른 전개, 카타르시스는 웬만한 드라마 이상이다. 다만 뉴스를 볼수록 국민들이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진다는 점에서 비극에 가깝다.
  오늘도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과 문체부 장관이 구속됐다. 특검 한 달 만에 벌써 10번째 구속이다. 두 사람 죄의 경중은 언론을 통해서 차고 넘치게 드러났기 때문에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그동안 해왔던 거짓말, 특히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진 조윤선의 호소력(?) 있는 거짓말은 남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의원님, 천번 만번을 여쭤보셔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결단코 사실이 아닙니다.”
  조윤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요약하자면, 85년 서울 대학에 들어가서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인 시대에서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책만 보다가 고시에 합격하고, 정치판에서 불러주니까 국회의원, 장관, 청와대 비서관, 문체부 장관까지 시키는 대로 하다가 나중에는 범죄까지 시키는 대로 저지르고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 이다.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지만 중론으로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짧게 말해, 공부 잘하고 성실하지만 자기비판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공부 잘하고 성실하지만 자기비판이 없는 공직자에 대한 우려는 이회창 전 대선 후보를 목격했을 때 가장 강렬했다. 이회창 역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으로 판사와 고위 공직을 거치면서 나름 원칙적인 처신으로 대쪽 이미지를 쌓아왔지만 서민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한 귀족처럼 보였다. “요즘 고려대 나와도 기자하는가?”라는 발언이 상징적으로 유명하다. 다행히 이회창은 낙선하여 정치계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김기춘 조윤선을 보면, 제 2, 제 3의 이회창들이 아직도 대한민국 공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아래 작품은 당시 이회창 대선후보처럼 자기 세계에 갇혀있는 성실한 엘리트들의 자기비판을 희망하는 마음에서 제작한 작품이다.-<늙은 말의 지혜>(2007)- 책상은 엘리트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세상과 담을 쌓고 자기 지식에만 천착하는 성실하고 무비판적인 엘리트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라고 본다. 그래서 백그라이트로 책상을 봉쇄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백그라이트는 청계천 공방에서 노동자들이 사용하고 남은 부산물 중의 하나이다. 때로는 책에서 얻은 고급 지식이 현장에서 체험한 하찮은 지식만 못할 때가 있다. 따라서 엘리트, 특히 공직자는 자신의 지식을 관습적으로 쫒아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타인의 지혜를 빌어 수시로 자기를 반성해야 한다.

 

 

백정기_늙은 말의 지혜_백크라이트, 책상, 의자_90*60*144cm, 2007

 

 

2007년 청계천 공방 풍경

 

 


 


백정기 作 (미디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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