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자본이 만든 사회전복적(?) 블록버스터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제작비 450억 원이 들었다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는 볼품없는 영화였다.
지구 빙하기에 유일한 인류 생존 집단을 실은 자족적 열차와 그 열차의 머리 칸부터 꼬리 칸까지의 계층화된 군상, 그리고 꼬리 칸 사람들의 봉기를 그린 이야기는 자본체제에 눌려 사는 현실의 꼬리 칸 사람들에게 동일화의 감정을 불러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상영 시간 내내 허점투성이 요소들과 어색한 흐름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영화였다.
살기 위해 하염없이 설원을 달리는 열차가 우리들 사회를 축조했다는 강한 상징성을 인정한다 치고, 모든 억지스런 장면을 눈 질끈 감고 참아 준다면 남는 건 그야 말로 '메시지'라는 영상 외적 요소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불평등과 착취가 구조화된 곳이라 폐쇄된 구조 안에서의 혁명이란 기껏해야 머리 칸 우두머리만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을 터, 이 악순환을 깨뜨리는 유일한 방법은 갈등의 좌표 자체를 옮기는 것 뿐이라는 게, 내가 느끼기에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인 듯하다.
바로 이 메시지가 주는 해석의 여지들이 약간의 진보적 성향의 개인들에게 이런 저런 첨삭의 매력을 부여해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갈등의 좌표를 옮긴다는 것을 부서진 열차 안에서 두 아이만 살아남아 살인적인 설원 속으로 걸어가는 장면으로 연출했다. 이때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유일한 희망의 소품은 저 멀리 북극곰도 살아 있다는 정도이다.
나름 전복적이라면 전복적이고 신화적이라면 신화적인 결말이기도 하지만, 난 왠지 영화 내용과 함께 스크린 외적인 것을 둘러싼 모든 것이 더 큰 시스템에 의해 기획된 무엇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거대 자본을 투자하고 공룡 배급사가 배급한 사회 전복적 내용의 영화라니!
바로 이 자본과 영화 내러티브의 언발란스가 대중의 지갑을 자발적으로 춤추게 하는 힘인 것이다.
불평등과 권력의 구조를 대중에게 말하는 영화가 되기 위해 아이러니 하게도 그 영화는 블록버스터가 되어야 하는 시스템.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그 권력 구조가 살찌우고 공고해 지는 시스템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에서 권력구조를 고발하는 내용은 권력 자신이 보여 주는 자신감에 다름이 아니며, 기차 밖 설원 속으로 내몰리는 라스트 신은 기차가 달리는 한 기차 안의 혁명은 없다는 권력의 엄포인지도 모르겠다.

자발적 관객이 되어 동굴 같은 극장 안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며 각자가 상상하는 데로 영화 속의 상징물들을 현실에서 대비하여 보지만, 그리고 그 유추의 놀이에 잠시 잠깐 현실을 제단 하는 전능자가 된 것 같은 재미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로 선 동굴 속 그림자만 보고 사는 수인의 비유처럼 결국은 사회 시스템이 제공 하는 기호와 이미지 세계에 갇혀 있다는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여기 시스템을 비판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나는 그 것이 제공하는 기호와 이미지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 걸까? 아니 벗어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걸까?
팔천 원을 지불하는 대가로 영화를 보고 비판적 제스처를 하고 있는 것 자체로 이미 시스템이 잘 굴러가고 있으며 나 역시 거기에 일조 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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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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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식객
    2014.02.11 01: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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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잘 읽었습니다.
  2. 오종숙
    2015.03.02 17:5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떠들썩한 영화였지만 보지 않아서 ㅠ ㅠ 영화평중 기차가 달리는 한 기차 안의 혁명은 없다는 말이 머리에 남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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