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대화를 원한다, 교회가 말을 닫은 시대에도
- ‘쌍용차 사태 이후’, 교회에게 묻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쌍용차의 노동쟁의가 끝났다. 국내 완성차 회사 중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사업장인데다 오랫동안 쟁의가 없던 탓에 역전의 용사들이 포진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완성차 회사의 쟁의는 그 파장이 엄청났다. 쟁의 기간도 길었고,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액도 천문학적이다. 상당히 과장된 계산이겠지만, 경총의 추산대로라면 직접적 손실 외에도, 인명피해, 기업 브랜드 가치, 국가 이미지 등 전체 손실액은 1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조선일보> 2009.7.22).

또한 쌍용차가 부도처리 될 경우 수많은 하청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줄줄이 이어질 것이고 이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수십만 개에 달할 것이다. 우리사회의 열악한 사회안전망이 실직한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는 더 말할 여지없다. 실직은 곧 빈곤층으로의 추락으로 이어지는 수순의 첫 번째 단계다.[각주:1] 특히 하청기업으로 내려갈수록 그러한 경로는 매우 높은 비율로 실현된다. 하여 이 파업농성은 전 사회적으로 초미의 관심거리였다.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노사 간 대타협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쟁의 노동자들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 사측 법정대리인은 은행으로부터 기업회생을 위한 자금을 얻어오기 위한 조건으로 고용조정의 칼날을 빼들었고, 결과적으로 이 안은 거의 그대로 실현되었다. 정리해고자를 최대한 줄이고 일자리 나누기와 무급휴직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한 노조의 타협안은 적어도 인건비 계산에 관한 한 정리해고와 큰 차이가 없는 현실성 있는 대안이었다.[각주:2]
 
그러나 IMF 경제위기 이후 대립적인 노사관계의 반복 속에서 서로를 퇴행적으로 학습시킨 결과, 상대방에 대한 ‘신뢰부재의 덫’[각주:3]에 빠져버린 노사 양측은 스스로 대타협의 가능성을 잠식했고, 거의 자학이라고 할 만큼 극한 갈등 끝에 서로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힌 채 쟁의를 마무리했다.

아마도 노조를 믿을 수 없었던 사측의 법정대리인은 애초부터 타협이란 불가능하다는 ‘선험적 자의식’에 지배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법정대리인들이 협상 불가의 고용조정안을 처음부터 제시한 이유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노조의 협상안이 금액상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법정대리인들은 계산상으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다만 완전히 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투자자를 압박할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만큼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법정대리인과 투자자 사이에 있을 법한 심리적 부담감에 관한 공감대 이면에는 노조에 대한 불신이 전제되어 있다. 쌍용차가 쟁의 경험이 일천한 노조였다는 점은, 일단 쟁의가 벌어지면 역전의 명수들이 즐비한 금속노조와 협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물론 현 정부가 이런 상황에서 강경한 비타협적 입장을 취할 것임도 예측 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리하여 노 대 사・정의 강경대치가 벌어지면, 사태는 사소한 추가비용 정도를 제시한 노측의 협상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손실을 초래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화되었다.
 
정부 관료, 사측 대리인, 그리고 보수 언론 등이 모두 이견 없는 합의를 보인 사실의 하나는 이 사태로 인한 손실이 단지 재산상의 문제를 넘어서 기업과 국가의 신뢰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했다는 점이다. 한데 이러한 치명적 결과가 예측 못할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도대체 왜 사측 법정대리인들은 불과 ‘72억 원짜리’ 협상안을 거부하였는가?

강경 충돌로 인한 커다란 손실을 막을 수 있고, 기업과 국가의 신뢰 추락을 예방할 수 있으며, 또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노사 대타협의 선례로서 기업 이미지 상승효과도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투자자를 설득하는 것은 왜 고려의 대상일 수 없는가. 

이 사실을 이해하게 하는 유일한 단서는 사측 대리인들은 노조 자체를 근원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그들이 보기에 투자자 또한 자신들의 설득보다는 노조에 대한 불신이 더 크다는 점, 그리고 현 정부는 그러한 상황에서 결코 중재자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이러한 불신의 이유였겠다.

완벽한 불신이다. 쌍용차가 오랫동안 별다른 쟁의 없이 노사 협력의 전통을 쌓아왔다 하더라도 그것은 고려의 대상일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의 배후에는 강경한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사측 법정대리인들은, 투자자나 한국 정부는 ‘노조 없는 사회’를 위해 일관되게 모든 상황을 해석하고 행동한다는 확고한 판단에 따라 쌍용차 회생안을 세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동대리인 중 한 사람의 이력을 단순화시켜 상상하면 그러한 확신이 설명될 수 있을까. 자신이 근무했던 현대차 노조로, 경험 많고 강성인 노조로 오버랩시키면서 사태에 임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의 기억은 부재하고, 극한 대립 속에 노조 측에 적지 아니 끌려 다녀야 했던 현대자동차에서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단호하게 고용조정만이 대안이라는 생각에 지배당하게 했는지도 .........

물론 무모한 상상이다. 그렇게 상상하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무모한 상상이 담고 있는 의미의 개연성은, 사측과 투자자, 그리고 정부는 현재의 상황을, 충분한 자료를 검토하고 다양한 가능성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냉정하게 분석한 결과에 따라 대안을 세운다기보다는 자기들의 선험적 판단에 다분히 감정적으로 좌우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을 열어 놓는다는 데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선입견이 혹은 범주적 판단이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할 심각한 위험을 가져다준다는 데 있다. 말했듯이,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빈곤으로 추락하는 경로의 가장 결정적인 출발선이 실직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빈곤 상황은 탈출이 거의 불가능한 현실로 사람들을 몰아간다. 이러한 탈출 불가의 절망적 현실은 빈곤으로 추락한 적지 않은 이들이 단지 경제적으로만 추락하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추락하여 비정상적인 의존성이 심화되고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는 무능력의 상황으로 전락하게 한다. 하여 오늘의 빈곤 현실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빈곤의 문화’를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것은 사회가 심각한 병리적 문제를 안게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오늘의 기업 구조조정은 그것을 통한 직접적인 사회적 손실도 막대하지만, 나아가 빈곤의 문화가 낳은 무수한 사회적 병리성의 주된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 통합의 위기를 야기하고, 수많은 범죄를 유발하게 한다.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더욱 천문학적으로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이 막대한 비용들이 갖는 치유 효과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것은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고통이 가중된 사회 속에 살게 된다는 데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정리해고를 최소화하면서 창조적인 기업회생 대책을 마련할 경험도 경륜도 없는 한국의 경영자들은 대개 이렇게 기업 구조조정에 임한다. 민주화 이후 본격화된 노동쟁의들은 아직까지 사회적 대타협의 선례를 거의 남기지 못했다.

지난 1998년 현대자동차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어난 대규모 쟁의는, 아마도 정부가 비교적 적극적이고 중립적인 중개자 역할을 담당한 거의 첫 번째 사례가 아닐까 한다. 그 이전까지 권위주의 정부는 기업이나 노동자 측의 행위 자율성을 극도로 억제했기에, 한국의 민주화는 비로소 자율성을 획득한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화와 타협을 위한 게임을 가능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최초의 민주정부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 정부’가 노사대타협을 위한 첫 번째 중개자가 될 수 있었다. 1998년 현대자동차 쟁의가 그 시금석이 되는 사건이었다.

1만여 명을 고용조정하고, 그중 8천여 명을 정리해고 하겠다는 사측의 애초의 계획은 타협에 타협을 거듭한 끝에 277명만을 정리해고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대신 8천여 명이 희망퇴직자 신청을 했고, 1천2백여 명이 무급휴직을 하게 됨으로써 사측이 계획한 1만여 명의 구조조정은 마무리될 수 있었다. 문제의 소지는 없지 않았지만, 정부가 자화자찬한대로 그런대로 노사간 대타협의 선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는 그것이 선례일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밥 아줌마’들, 중년의 여성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함으로써 타협안이 마련된 이 ‘선례’는 노사 양측에 대단히 ‘부정적인 타협의 선례’로 작용한 것이다. 즉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정규직과의 차별을 심화하는 방식의 타협이 민주화 이후 일상화된 것이다. 기업 경영자들과 노조 간의 쟁의는 완력에 의존하는 게임으로 점철되었고,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공공적 가치는 타협의 조건으로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 가운데 힘이 약한 이들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에 이러한 일부의 비정규직화는 노사간 협의의 결과였다.

결국 한국에서 민주화의 실험은,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성과도 많지만, 적어도 노동과 자본의 사회적 공공성을 현저히 후퇴하게 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자본이 천박성을 띤 것처럼 노동도 그러했다. 시민사회 전반이 시장의 가치에 과도하게 동화되었을 뿐 아니라, 타인을 동료로서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이해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현저히 확대되었다. 곧 한국의 시민사회 형성 과정은 ‘타인의 몰락’이라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급속한 확대와 그로 인한 노동시장의 분절화는 기업과 정부의 공공적 성격을 상실한 이윤추구 행위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동시에 공공적 성격이 후퇴한 시민사회의 ‘타인의 몰락 현상’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편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적 열망이 식어 버린 시점에서 등장한 MB정부는 지난 민주정부들이 나름 노력했던 노사간 타협의 중재자로서의 역할,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지만 나름 기업에 대해 일정한 견제의 역할을 했던 중립적 중개자로서의 이상마저도 포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정부는 기업만큼이나 완고하게 노조를 위험시하는 시각을 대변하는 듯이 보인다. <한겨레신문>과 인터뷰한 정부의 한 고위관료는 “무급휴직자는 노조원 신분을 유지하게 되는데, 강경파들이 계속 결정권을 가지면 새 주인을 찾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한겨레신문> 2009.7.30). 한상균 쌍용차 노조지부장은 “본관에 상주하는 정부 관계자들이 사쪽의 협상을 조종”했다며 “정부가 결국 칼날을 쥐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레프트21> 2009.8.19). 이것이 얼마나 사실을 반영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정부는 이 사태의 중계자 역할보다는 노조의 저항을 더욱 강경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아무튼 MB정부에게 노사간의 사회적 협상이란 경쟁능력의 효율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으로만 구성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쌍용차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노사간 극한 대립은 사회적 손실액을 천문학적으로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니 인적 고용조정이 효율성을 높인다는 기계적인 효율성 신화는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가 보인 완고한 반노동적 태도는 ‘고용 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권리 행사에 방해가 되는 일체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사회적 효율을 높인다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사회 안전망은 대단히 빈약하다. 통계청이 지난 8월 12일에 발표한 7월 고용동향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일자리가 무려 7만6천 개가 줄었다고 한다. 또한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대단히 불안정한 노동 상황이 심화되어, 이른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 점점 폭넓게 형성되는 추세다. 하여 분절화된 노동시장에서 하위로 추락한 제2차 노동시장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비정규노동자 가운데, 더 불안정하고 더 열악한 이른바 빈곤노동시장이 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빈곤노동시장으로 떨어진 노동자들은 급속도로 노동의욕을 상실하고 있고, 나아가 정신까지도 무능력화되는 경향이 엿보인다. 중간층은 점점 엷어지고, 빈곤층, 특히 무능력화된 빈곤층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현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MB정부의 사회적 효율에 대한 신념은 급속도로 악화되는 빈곤 현상을 더욱 왜곡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효율성 담론은 빈곤층의 무능력화를 확대시킬 뿐 아니라, 사회적 무능력자들의 존재의 자리를 잠식할 우려가 있다. 무능력자들은 일터를 빼앗기고 삶터를 빼앗기며, 법적 행위자격과 능력을 빼앗긴다. 이른바 MB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효율성 주의는 무능력자들의 ‘사회적 죽음’을 야기하고 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한국교회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사회적 죽음이 난무하고 있는 사회에서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절망에 휩싸인 온 피조물에게 구원을 선사하기 위해 예수가 왔다고 고백하는 바울의 후계자들인 교회는 이 죽임의 현장에서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
 
한국의 과대성장한 교회들에 의해 추동되는 신앙이 계층 편향적 성공주의를 점점 강화시켜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은 권위주의 정부에서 민주정부로, 그리고 최근 MB 정부로 이어지는 한국의 국가주의가 자본적 효율성과 친화적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실패한 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지나치게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과 병행된다. 즉 한국의 신앙 담론과 한국의 국가주의는 서로 등가적이며, 나아가 서로 상보적인 경향이 있다. 특히 최근 신자유주의적 효율성주의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무능력자에 대한 야만적 배타성이 교회와 사회에서 더욱 일상화된 가치로 실현되고 있다.

한국의 교회는 성장 과정에서 세속적 성공과 신앙적 성공 간을 일체화하는 신학을 발전시켜 왔다. 그것이 이른바 교회성장신학이다. 특히 최근 교회들의 이러한 성장신학 속에는 실패자를 위한 신앙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과거에는 기도원 같은, (세속적이든 신앙적이든) 실패한 자들이 후퇴할 공간이 신앙제도 속에 내재해 있었다. 그리하여 실패자의 자기 치유의 공간이 존재했다. 한데 최근의 교회에는 신앙적, 세속적 주체로의 재활성화 자리가 없다. 오히려 기도원 담론은 실패자의 회생 공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용소처럼 존재한다. 요컨대 무능력자들, 일터를 빼앗기고 삶터를 빼앗기고 법적 능력을 빼앗긴 자들은 교회에서 영혼까지 유린된다. 교회는 오늘, 고통의 치유자로서 대상을 선별하며, 그 선별된 대상은 치유의 비용을 지불할 사회적 능력을 갖춘 이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신앙은 점점 더 고비용의 재화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런 교회에 그리스도는 존재하는가. 고통의 계층적 편차가 점점 더 심화되는 상황에서, 상향적 계층 편향성을 띠는 교회의 신앙은 그리스도적인가. 나는 우리시대에 그리스도인이란,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기업과 노조는 물론이고 정부까지도 잃어버린 그 협상의 영을 간직한 존재로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울에 의하면,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일 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중개자인 예수의 영을 자신의 몸에 부은 존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예수가 승천한 이후 영을 받은 이들은 타인의 말로, 곧 타인의 삶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말로 방언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신은 독백하는 이가 아니라, 대화하는 존재이다. 하여 대화를 일으키는 중개자, 자기주장을 하기에 앞서 타인의 생각을 듣고 헤아리는 존재, 바로 이것이 중계자로서의 신앙적 자의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실패한 노사간 대타협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하는 것, 그것 또한 진정한 교회의 과제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장세훈, 「빈곤층의 내부 구성과 빈곤화 과정」, 『경제와 사회』 71(2006 가을) 참조. [본문으로]
  2.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추가금액은 연간 72억 원 정도이며, 사측 대리인이나 정부측 관계자는 수차례 이 추가금액 자체가 문제가 아님을 표명한 바 있다. [본문으로]
  3. 정건화, 「IMF경제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시스템 변화」, 『동향과 전망』 69(2007 봄), 248쪽. [본문으로]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나의 한국방문 답사기
: 거리의 몰락, 기억의 종말, 그리고 MB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지난 7월 한달 간 한국을 방문했다. 2년 만에 찾은 조국은 정권이 바뀌어 있었다. 용산에서는 사람들이 불타 죽어갔으며, 전 정권의 대통령은 현 정권의 표적수사에 심한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져 자살했다고 누군가 내게 귀띔해 주었다. 내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던 기간에도 방송법이 국회에서 한 바탕의 볼거리를 제공하며 통과되었고, 쌍용자동차 사태는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자살한 전직 대통령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도 가보고,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그 서글픈 건물에도 가봤는데 사람들은 모여있지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 이 정도의 메머드급 사건들이 줄줄이 터졌더라면 뭔 일이 일어나도 벌써 일어났을텐데. 너무나도 고요하고 아무일 없다. 그래, 우리는 이제 그렇게 아무일 벌이지 않아도 꾸역꾸역 살 수 있게 되었다. 잘된 일이다. 하지만 한번 물어나 보자, 그 동안 무엇이 달라진걸까? 내가 서울에 와서 던졌던 첫 번째 질문이었다.

로보트 태권 V, 광화문 사거리에서 길을 잃다

과연, 서울은 달라져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현 대통령의 서울시장시절 업적이라는 청계천을 잠시 둘러보고 찾은 인사동은 현대와 고전이 조화된 어울림으로 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니, 고전과 현대 그 어느 것 하나 살아남지 않은 동떨어짐으로 사람들을 토해내고 있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세계화된 거리 인사동, 그곳 스타벅스 매장 간판은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쓰여져 있었다. [스 타 벅 스 커 피] 라고 말이다. 전통을 고수하려는 그 피맺힌 절규와 숭고함에 하마터면 눈물이 날뻔했다.

인사동을 끼고 있었던 피막골은 도심정비 사업때문인지 정리중이었고, 창경궁부터 시작해서 인사동 윗길을 지나 광화문으로 이르는 고즈넉한 그 길도 공사중이었다. 광화문 사거리는 무슨 광장을 조성한다는 팻말이 크게 붙어있었는데 머지 않아 완공된다고 한다. 지금쯤이면 완성이 되었으려나. 광화문광장 조성공사를 보며 광장 콤플렉스에 걸려있는 현 정권의 마스터베이션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는 것은 왜일까? 이렇듯 내가 살짝 돌아본 서울은 온통 파헤쳐져 있었다. 도시전체는 뉴타운 열풍으로, 대학은 경쟁력 있는 대학을 모토로, 거리 거리는 세계화된 도시에 걸맞게 요소요소에 스타벅스와 멀티플렉스 극장을 배치시키며 발빠르게 공사중이거나 그 변신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서울을 돌아보고 난 제주도로 내려갔다. 부모님이 그 섬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제주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3학년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왔다. 30년 만에 찾은 제주도 역시 변해 있었다.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해안을 따라 도로를 조성하며, 한라산 산간에 골프장을 건설하여 관광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야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도심은 30년 전과 비교 할 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지 2학년이었는지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김청기 감독의 ‘로버트 태권 V’를 보러 갔던 극장이 여전히 남루한 채 보존되어 있었다. 그날 ‘로보트 태권 V’를 보고 하늘을 날아서 집으로 왔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표준전과와 동아전과를 사러 갔던 동네 어귀 ‘남문서점’도 그대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는 자식들에게 표준전과나 동아전과 한 권 사주는 것으로 부모님들의 1년 사교육비 지출이 끝이 났던 말도 안 되는 세상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저녁 먹고 나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었는데, 술래가 손등에 이마를 대고 주문을 외우던 건물 대문 위엔 ‘제주소방공사’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그 곳은 아직도 영업중이었다. 아버지에게 ‘제주소방공사’ 끝에 붙어있는 ‘공사’가 ‘한국방송공사’ 끝에 붙어 있는 ‘공사’와 같은 것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뭐라고 설명해 주셨는데…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아버지가 나를 가끔 데리고 갔었던 다방이 도심 한가운데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친구분과 계란이 떠 있는 쌍화차나 다방커피를 드셨고, 내게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시켜주셨다. 난 그곳에 있었던 커다란 어항 속 금붕어 보는 것을 좋아했었다. 여행 기간 중 밤길 제주를 걷다가 발견한 불이 켜져 있는 30년 전 그 다방의 간판이 왜 그리도 나의 마음을 환하게 하던지. 다음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거리의 몰락, 기억의 종말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조국의 무엇이 달라진걸까?  2년 만에, 아니 미국으로 유학간 지 5년 만에 찾은 서울의 무엇이 달라진걸까?  거리가 달라졌다. 동네가 변해 있었다. 정권이 바뀐 것 보다 내가 놀던 동네와 내가 활보했던 거리가 달라졌다는 것이 내게는 더 어색했다. 무작정 ‘그때 그 거리를 기억하십니까? 그때가 좋았죠’라고 말할 수는 없다. 더 큰 거리로 나가야 하고, 더 큰 세상으로 진출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씁쓸한걸까?

거리와 동네가 사라지고 달라진다는 것은 이름이 없어지고 기억이 상실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제 예전 거리의 이름과 옛날 동네어귀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회상하는 것에 대해 낯설어하고 불편해한다. 그곳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바탕 싸움을 치르고 미끄러져 들어가 앉은 피막골에서 가뿐 숨을 몰아 그날의 전과를 과장하며 마시던 막걸리와 석쇠 위에서 구워지던 고갈비를 이제는 그 거리에서 먹을 수 없다.

인사동의 혹은 신촌의 어느 선술집에서 김광석이나 해바라기가 불렀던 노래들을 낮게 읊조리는데, 한 친구가 ‘지금이 그런 사랑타령이나 하는 노래를 부를때냐? 너 같은 뿌띠 부르조아는 아무런 필요가 없다’며 나를 몰아친다. 나도 열 받아 ‘변혁에 참여하는 사람은 사랑을 하면 안 돼냐구. 혁명이 식어버린 심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면 난 기꺼이 빠지겠다’며 고래고래 티격태격 각자의 진정성을 알아달라고 우겨대던 철없고 유치했던 그 시절! 그때의 거리와 그 당시 동네가 사라져 버렸다. 그곳에서 함께 놀던 사람들까지도. 그래서 불안하다.

혹시, MB가 민중들이 지니는 기억의 매커니즘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마다 4월과 5월 그리고 6월이 되면, 거리와 광장에서 출렁이며 메아리 쳐졌던 민중들의 율동과 함성 안에 감추어져 있는 봉기의 기억과 그 기억의 반복이라는 매커니즘을 말이다. 그것이 지니는 파괴력을 성실히 학습한 후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를 MB가 이미 터득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그가 우선적으로 민중들이 지닌 기억의 연쇄고리를 하나씩 절단하기로 작정을 했고, 그 잘려나간 지면을 잘 다지고 정리하여 새로운 기억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면? 새롭게 조성된 광장과 거리에서 제한적으로 뛰어 놀게 하고, 폼 나게 단장된 동네에서 세계시민이 되어 촌티내지 말고 세련되게 그 문화를 향유하라고 다독이고 있다면 말이다.

다시 보자, MB!

점점 발전하는 터미네이터나 에어리언처럼 MB정권은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와 학습을 거쳐 이제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트랜스포머와 같이 진화한 정권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스멀스멀 올라와 기분이 엿 같았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MB 정권을 향해 실소와 비웃음, 격멸에 찬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는데, 한 달 가까이 그가 다스리는 땅을 밟으면서 그의 진정성을 느끼며 그가 결코 호락 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깨닫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을 강조했는데, MB는 노무현보다 훨씬 더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철저하다. 노무현이 걸어갔던 정치·문화적 행보와 경제적 측면간의 행보가 갈지자였다면, MB는 정치, 경제, 문화적 정책 어느 것 하나 흔들림 없이 수미일관 하다. 그 누가 뭐라고 하든 전혀 동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MB는 노무현 보다 훨씬 더 자신의 원칙과 소신에 철저하다. 무엇보다 이 정권이 악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숨겨진 욕망을 깨우고 부추긴다는 점이다. 마치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뱀과 같다. 우리의 ‘이드’와 우리 ‘에고’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MB에게, 당신의 리비도에 충실해도 괜찮다고 국가가 그것을 보장하겠다고, 그러니 당신의 욕구를 구태여 ‘슈퍼 에고’를 작동하여 다스리려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해주는 MB의 속삭임 앞에 우리가 모두 못 이기는 척하면서 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는 우리를 멈춰 서게 했고 모이게 했던 ‘민주’와 ‘통일’, 우리를 춤추게 하고 고함지르게 했던 ‘평등’과 ‘인권’, 우리를 울게 하고 웃게 했던 ‘정의’와 ‘자유’라는 강력한 ‘슈퍼 에고’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 하나하나의 기억이 서려있는 우리의 거리와 광장과 동네를 MB가 집요하게 파헤치고 뒤엎어 고쳐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사들은 지금도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욕망의 눈덩이를 끊임없이 증폭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MB정권을 유령처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뉴타운이라는 환상을 심어주어 사람들의 ‘이드’을 한껏 부풀리고, ‘영어공교육’이다 ‘특목고’다 하면서 자식들을 볼모로 부모로서의 ‘에고’에 어떻게 하면 충실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차라리 표준전과와 동아전과 하나로 자녀교육이 모두 해결되던 우리 부모 세대가 더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세계화된 경제시스템 아래에서 전통적인 고용정책과 경제운영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다. 기업마다 구조조정하고 비정규직을 늘리면서 노동시장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경제가 살아난다. 그러니 언제 잘릴지 모른다. 미리미리 자기 앞길, 자기 밥벌이 잘 챙기고 미래를 위해 긴 안목으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잠시 한눈 팔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그러니 열심히 뺑이쳐라. 그래야 살아남는다. 명심하란다. 그것이 이 시대의 정언명법임을.

에필로그

다시 시카고로 돌아왔다. 악몽에서 깨어난 느낌이다. 이명박이 다스리는 땅에 내가 없다는 안도감과 이명박이 다스리는 땅을 내가 떠나있다는 면목없음이 널을 뛰는 요즘이다. 몇 년후 내가 돌아갈 때쯤이면 서울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로보트 태권 V’는 지구를 잘 지키고 있을까? 제주에 있는 ‘남문서점’과 ‘제주소방공사’는 무사할까? 우리가 정말 대단한 놈을 만난 것일까? 별것 아닌데 내가 너무 오바하나? 어쨌든…

두 눈 똑바로 뜨자.  ⓒ 웹진 <제3시대>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김진양
    2009.09.08 14:4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거리의 목락" "기억의 상실" 대단히 묵직한 화두입니다. 이번 한국 방문이 아마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 정신이나 이념보다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 내 달리는 한국의 현실을 꿰뚫는 화두인 것 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31)
특집 (8)
시평 (94)
목회 마당 (60)
신학 정보 (136)
사진에세이 (39)
비평의 눈 (72)
페미&퀴어 (25)
시선의 힘 (135)
소식 (153)
영화 읽기 (32)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3)
새책 소개 (38)
Total : 353,463
Today : 70 Yesterday :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