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내재화, 그 순박한 열정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40년쯤 전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의 침공으로 유다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각주:1]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궁중모반까지 일어났다.[각주:2] 영토는 예루살렘과 그 남쪽 일부만 남았고, 국론은 분열될 대로 분열된 상황이었다. 그때 아하스 왕은 소름끼치도록 냉정한 결정을 내린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로 한 것이다. 도성 남서쪽의 힌놈의 아들 골짜기 도벳의 성소에서 아들을 불태우는 제사를 지낸 것이다.

"Ahaz the King of Judah" by Otto Elliger (18c 초) 아하스 왕은 재물로 불타고 있는 아들을 보며 절규하고 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아시리아 제국의 디글랏빌레셀 3세가 쳐들어와 다마스커스를 멸망시키고 이스라엘국도 재기불능의 상황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유다국 백성에게 아하스의 피눈물 흘리는 제사를 야훼께서 들어준 사건으로 기억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제 유다국은 전례 없는 초고속 번영을 이룩하게 되었다. 아시리아의 침공을 당한 나라들로부터 대거 유민들이 남하한 결과, 산지인데다 척박하여 인구가 적었던 유다국 영토에 새로운 마을들이 속속 건설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새로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백 개의 주거지가 발굴되었고, 도성인 예루살렘의 크기도 15배 이상 늘어났으며, 도성의 인구도 그만큼 증가했다. 하여 이들이 바친 공납물로 왕실 창고가 가득 차게 되었고, 유다국은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또한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무력화된 블레셋 영토였던 서부 평야지대로 영토가 확장되어 식량생산이 비약적으로 불어났고, 소읍이던 라기스 성은 예루살렘에 필적하는 도시로 발돋음했다. 또 산악지대에서 생산된 올리브를 압착시켜 추출한 기름을 이집트와 아시리아로 수출하는 등 국제무역도 크게 증대하였다. 이제 유다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팔레스티나의 신흥 강대국 반열에 진입하게 되었다.
백성들은 아하스를 칭송했다. 아하스는 유다국의 진정한 군주로 떠받들어졌고, 아하스적 신앙은 많은 이들의 모방의 대상이 되었다.[각주:3]
한데 아하스 시대의 국가의 번영은 동시에 사회의 위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시골에서 대규모 땅을 소유한 부자들이 등장했고, 땅을 상실한 몰락농민들 또한 속출했다. 조정에는 이들 부자들의 대표들이 관료로 들어와 대지주들의 농민들에 대한 무분별한 착취를 두둔하는 정치를 폈고, 농민들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국가의 성공 정책을 추구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백성들은 아하스를 칭송했던 것이다. 대지주들 또한 왕을 열렬히 환호했다. 대도시의 시민들과 시골 농민 대다수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지역의 성소들이 대지주들에게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성소들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대지주들이 낸 기부금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이들 지주들이 낸 제물 덕에 제사도 드릴 수 있었다. 지역의 성소들은 얼마나 화려하고 풍성한 제물로 제사를 드릴 수 있느냐에 따라 위상이 결정되었고 인근의 작은 마을들의 성소를 복속시키는 유력 성소가 될 수 있었기에 대지주들의 기부능력에 점점 의존적이게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성소의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의 위계질서도 만들어졌다.
또한 성소에서 드린 풍성한 제물은 그 지역에 대한 신의 돌봄의 정도를 결정짓는다고 믿어졌기에 백성들은 자신들의 행운이 대지주들의 기부 덕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여기에는 그런 식으로 신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예언자들과 사제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채 10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 사이 유다사회는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고, 사회 전 영역에서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대지주들로 구성된 기득권 집단의 보수주의적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것은 강자 독식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러니한 것은 그 체제가 백성의 열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였다는 점이다.
히스기야 왕이 아하스를 승계했다. 그런데 새 왕은 왕실을 위협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한 기득권세력을 견제하면서 왕실 중심적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그것은 기득권세력과 연동하여 지배체제를 구축했던 선왕의 정책과는 대비되는 것이었다. 한데 공교롭게도 이 개혁의 기반은 선왕이 구축한 풍요한 왕실재정이었다.[각주:4]
히스기야의 개혁은 농민들의 몰락을 막는 조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야 왕실을 좌지우지하는 대지주들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여 왕실의 개혁이 친 서민정책과 맞물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을 백성은 제대로 알 길이 없었다. 중앙의 메시지가 백성에게 전달되는 주된 통로는 지역 성소들인데, 이곳의 사제들과 예언자들은 그것이 야훼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나라를 망치게 할 것이라고 호도했다.[각주:5]
하여 히스기야의 개혁이 성공하려면 백성을 왕실의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암하아레츠’, 즉 민중적 농민정치세력이 개혁세력에 가담했다.[각주:6] 그리고 조정에도 귀족출신임에도 개혁을 지지하는 신주류 인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골의 대다수 농민들은 여전히 아하스와 그 시절 형성된 구 지배엘리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것이다. 해서 왕실의 개혁은 지역 성소들을 철거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이것이 히스기야-요시아 개혁이 지역 성소들을 철거하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던 주된 이유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29년간의 재위기간 중 후반기는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개혁의 기반이 송두리째 붕괴된 시기였다. 서부 평야지대는 인구가 70%나 줄었고 마을 수는 85%나 사라지고 말았다. 하여 왕실재정은 고갈됐고 그 와중에도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왕이 죽자 무려 55년간이나 재위에 있었던[각주:7] 왕 므낫세가 즉위한다. 그리고 이 왕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히스기야의 개혁 흔적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였다. 이때 므낫세의 정치는 아하스의 방식을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다시 대지주 중심의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자식들은 땔감을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고, 어머니들은 ‘하늘 여신’에게 줄 빵을 만들려고 가루로 반죽을 하고 있다. 또 그들은 나의 노를 격동시키려고, 다른 신들에게 술을 부어 바친다. ―「이사야서」 7,18 (작은 따음표는 인용자가 붙인 것임)

이 구절은 므낫세 시대의 강도 높은 반개혁 현상에 관한 하나의 유의미한 특징을 시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 평민 가족이 벌이는 가족 제사 장면이 스케치되어 있다. 본문에서 ‘하늘 여신’이란 아스다롯(Ashtaroth)을 말한다. 금성의 신으로 이 시기에 아세라(Asherah)를 대신해서 야훼 신의 부인으로 신앙되던 여신이다. 원래 이 여신은 아시리아의 폭풍우의 신 아닷(Adad)의 부인이다. 즉 아시리아가 지배하던 므낫세 치하의 유다국에서 아닷 신과 야훼가 동일시되면서 아스다롯 여신이 야훼 신의 부인으로 숭배되고 있는 것이다. 한데 이 아닷의 별칭이 멜렉이다. 이하스가 아들을 바친 바로 그 신의 이름말이다.[각주:8] 즉 아하스를 칭송한 백성의 신앙이 므낫세의 반개혁의 기틀이었다는 얘기다.

므낫세는 부왕 히스기야의 개혁 세력을 말살하고자 했다.


묘하게도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독일의 저 유명한 <슈피겔>지(Der Spiegel)는 이번 대선을 “독재자의 딸이 인권운동가를 이기다”(Diktatoren-Tochter schlägt Menschenrechtler)라는 카피로 소개하였다. 이런 결과의 이면에는 지배연합을 지지한 무수한 대중이 있었다. 더구나 그 독재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서 압도적인 지지가 나왔다. 또한 지난 MB 정부를 거치면서 기득권세력에게 바닥까지 털려버린 서민층에게서도 대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렇다면 대중은 독재를 갈망하는 것일까? 확신컨대 그렇다고 대답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독재자의 딸도 독재자가 아닐지 모른다. 또한 나의 소견으로는 그녀가 독재자가 되려는 의지가 있다고 해도 지금의 사회적 여건으로는 독재정부가 등장하기란 쉽지 않다. 가장 강력한 기득권 세력인 거대자본들조차 독재정부가 자신들의 이해에 유리하지 않다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또 군사쿠데타를 일으킬 정치화된 강력한 군부세력도 없다.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메이저 보수언론들이나 법률권력, 그리고 보수지식인들도 통제받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면 <슈피겔>의 카피는 단지 과거사를 들먹이는 야유에 불과한 것일까?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독재정부는 불가능할지라도 이번 선거는 대중의 독재정치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을 가득 품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거 직후 도처에서 보복이 횡행한다. 한진중공업의 자살한 해고노동자도 그런 보복의 희생자였다. 또 다시 징계를 당한 복직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MBC 노조원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도 그렇다. 무수한 영역에서 힘을 남용하는 법률적 혹은 탈법적 폭력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인치하의 독재자는 없지만 무수한 독재자들이 법률적 혹은 탈법적 힘을 남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문제로 보았던 민주주의적이고 인권적인 감수성이 퇴조된 현상이 시민사회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하스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반개혁적 폭력의 체제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발전국가 한국을 이룩한 독재자에 대한 대중의 갈망도 민주화 이후 겨우겨우 세워가던 인권의 질서를 곳곳에서 산산이 부수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대중은 독재의 영성에 취해 버렸다. 독재자가 보여주었던 힘에 대한 그 순박한 열정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기원전 735~734년 경 시리아-팔레스티나의 패권국은 다마스커스를 거점으로 하여 르신 대왕이 다스리던 아람국이었다. 르신(Rezin)은 이스라엘의 베가(Pekah) 왕과 더불어 아시리아 제국의 침공을 막는 시리아-팔레스티나 군사동맹을 주도했다. 한데 이 동맹에 동참하지 않는 소국들 중 아하스(Ahaz) 치하의 유다국이 있었다. 이에 르신-베가 왕이 이끄는 연합군이 유다국을 침공하였다. 이 연합군은 유다국을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으나 아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3세(Tiglath-pileser III)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철군하였다(기원전 734~732). 본문에서 “40년 전”이라는 표현의 시점은 히스기야 왕이 죽고 므낫세 왕이 반개혁 정책을 펴는 어느 시기를 가리킨다. 즉 이 시점은 반개혁의 시간을 상징한다. 그 시점에서 40년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으로]
  2. 「이사야서」 7,6에 따르면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궁중모반 사건이 시사되고 있다. [본문으로]
  3. 히스기야-요시아 정부가 자식을 재물로 바치는 제사를 우상숭배로 몰아치는 담론을 적극적으로 유포시킨 것은 아하스 왕의 지지세력을 견제하려는 취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여기서 박정희를 연상하고 있다. 아하스와 박정희, 이 두 인물은 무에서 유를 창출한 인물로 국력을 크게 신장시킨 장본인이다. 동시에 이 둘은 그 성공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했던, 아니 적극적으로 그 희생을 활용했던 통치자였다. 그럼에도 백성/국민은 그이들을 칭송해 마지 않았다. [본문으로]
  4. 현대의 많은 국가들의 민주화를 연구한, 폴란드 출신 미국의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의 가설에 따르면, 사회의 경제적 성장은 그 사회를 민주화로 이행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그 경우 전(前) 민주주의적 체제가 축적해 놓은 경제적 기반은 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비용으로 활용된다. 한데 흥미롭게도 고대국가인 히스기야의 민중주의적 개혁도 아하스의 귀족주의적 국가가 이룩한 재원을 기반으로 해서 실행될 수 있었다. [본문으로]
  5. 마치 우리사회에서 주류 언론들이 복지가 국가를 망치게 할 것이라고 호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본문으로]
  6. 고대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사용된 ‘암하아레츠’에 대한 용례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농민 일반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농경사회가 지역의 대지주에게 예속되어 있으니 이들을 지방토호세력으로 해석했던 종례의 관점도 어느 정도 타당하다. 하지만 「열왕기」에 몇 차례 등장하는 이 용어는 위의 농민 일반을 지칭한다는 용례 해석과는 다르다. 이들은 유다국의 정변 상황에서 등장하며 특히 요시아 개혁의 중심세력의 하나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열왕기」의 암하아레츠는 정치화된 농민개혁세력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7. 유다국은 물론이고 이스라엘국, 그리고 오랜 식민지를 거친 뒤 수백 년 만에 건국한 하스모니아 왕국이나 헤롯 왕국에도 이렇게 긴 시간을 왕으로 재임한 이는 없었다. [본문으로]
  8. “그는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the Valley of Ben Hinnom)에 있는 도벳(Tophet)을 부정한 곳으로 만들어, 어떤 사람도 거기에서 자녀들을 몰렉에게 불태워 바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또 그는, 유다의 왕들이 주님의 성전 어귀, 곧 나단멜렉 내시의 집 옆에 있는, 태양신을 섬기려고 하여 만든 말의 동상을 헐어 버리고, 태양수레도 불태워 버렸다.”(「열왕기하」 23,10~11) 이 구절에서 요시아 왕은 아하스의 제사를 바벨로니아 지역에서 유래였고 암몬의 주신(主神)이기도 한 불의 신 ‘몰렉’ 제사로 해석하면서 우상숭배로 규정한다. 한데 그 다음 구절에서 이것을 ‘나단멜렉’(Nathan-melech)이라는 인물과 연계시키고 있다. ‘멜렉’은 「열왕기하」 17,31에 나오는, 불에 태운 인신재물을 받는 스발와임(Sepharvaim, 아시리아의 지명)의 신 아드람멜렉(Adram-melech)과 관련된 구절로 보인다. 즉 나단멜렉은 아시리아의 아드람멜렉 신과 관련이 있는 아시리아의 내시인 것이다. 여기서 아드람은 아닷 신(Adat)을 가리킨다. 즉 멜렉은 이 시기에 아닷을 가리키는 호칭인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요시아 왕실은 이 구절을 통해 말렉을 몰렉(Molech)과 동일시하면서 말렉에 대한 모독을 꾀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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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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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몸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그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갔고, 자기의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다. 이것은,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의 역겨운 풍속을 본받은 행위였다.
―「열왕기하」 16장 3절

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왕자를 바치라고 명합니다. 신속하게 의식이 준비됩니다. 지체할 틈이 없습니다. 온 국토를 불구덩이로 만들며 사방에서 시시각각 조여 오는 적군을 몰아내려면 더 지체할 수 없습니다. 도성 남쪽의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에, 그 성소에 불이 지펴집니다. 순식간에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제단 한복판에 사지가 묶인 채 거의 혼절해 있는 왕자는 몸둥아리를 향해 질주해오는 그 기름 불꽃의 열기에 비명을 지를 힘도 없습니다. 순식간에 몸에 불이 타오릅니다. 온몸에 발라진 기름을 게걸스럽게 핥아가던 불꽃은 곧 아이를, 그 열기와 고통에 꿈틀 거릴 틈도 주지 않은 채 휘감아버립니다.

기름 타는 연기와 살갗 타는 냄새가 잔인한 돌풍을 일으키며 제단 주위를 꽉 채운 군중의 숨결을 자극합니다. 군중은 사제의 푸른 도포자락이 휘날리며 격렬하게 허공을 가르는 춤사위를 봅니다. 아니 차라리 그건 칼날이 된 옷자락이었습니다. 비명인 듯 고함인 듯, 찢어질 것 같은 소리에 사제의 목청이 사정없이 갈라집니다. 아이의 불타는 몸, 그러나 신음으로조차 백성에게 드러내지 못한 고통을 사제의 갈라진 목청이 대신합니다.

아이를 휩싸버린 불의 열기처럼 군중의 가슴에 불이 타오릅니다. 고함을 지릅니다. 발을 구릅니다. 그리고 옷을 찢습니다. 아이의 죽음이 슬프고 분해서입니다. 잿더미가 된 강도와, 주검이 된 어린 자식들이 늙은 아비 어미들이, 저 주검들이 하소연으로 격정에 불타서입니다.

이제 왕이 앞으로 나옵니다. 눈물에 콧물에 범벅이 된 얼굴로 울먹이며 소리칩니다. 적을 무찌르자고 말입니다.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쓸어버리자고 말입니다. 신께서 아이의 주검을 아셨으니, 이 나라를 이 백성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아하스 왕이 아들을 번제물로 바쳤다는 오늘의 본문을 가상 이야기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르신 왕의 다마스커스 제국이 시리아-팔레스티나의 패권국가로 부상한 때입니다. 강력한 경쟁국이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베가 왕도, 페니키아의 두로 왕 히람도 르신에게 굴복하였습니다. 르신은 아시리아의 서진을 막을 계획으로 시리아-팔레스티나의 소국들에게 연합군을 만들라고 압박을 가합니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혹은 마지못해 연합군에 참여하기로 합니다.

한데 남부 몇 나라들이 반아시리아 동맹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아하스의 유다 왕국이 그중의 하나입니다. 르신은 동맹을 맺은 모든 나라들에게 명합니다. 유다를, 마온 족속을, 여왕 삼시가 이끄는 아라비아를 인정사정 보지 말고 한껏 짓밟으라고 말입니다.

왕국의 거의 전역이 잿더미가 됩니다. 동쪽의 블레셋이, 서쪽의 모압과 암몬이 북쪽의 이스라엘이, 그리고 르신의 다마스커스 제국이 닥치는 대로 불지르고 살육하며 도성을 향해 공격해 들어옵니다.

피난민들이 줄을 잇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도성 안 백성들이 먹을 식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식량을 공출해올 시골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이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괜히 화를 내고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이 빈번해집니다. 민심이 흉흉해집니다. 누군가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때 궁중에서 쿠데타가 혹은 그러한 음모가 있었습니다. 아하스를 축출하고 ‘다브엘의 아들’이라는 이를 왕으로 삼으려는 것이었습니다(「이사」 7,6~7). 다브엘의 아들이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연구자들은 두로 왕 히람의 선조인 ‘두바일’이 ‘다브엘’과 동일인이라고 합니다. 하여 ‘다브엘의 아들’이라는 이는 두로 국의 공주가 낳은 유다 왕의 아들이라는 얘깁니다. 아하스의 아들이거나 그의 부왕인 요담의 아들로, 두로 국의 공주가 낳은 이라는 얘기지요. 어쨌거나 아하스는 이 반역 사태를 진압했고, 더 이상 민심의 동요를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약처방을 내놓았던 것 같습니다.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이지요.

번제물은 대개 가축 가운데서 선별됩니다. 하지만 좀더 심각한 상황이 오면 인신제물이 쓰이기도 하는데, 주로 이방인, 노예, 천민의 자식 등이 제물로 선별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왕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쿠데타 음모가 있었고,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왕을 향해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곧 왕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왕자를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한 때는 바로 이런 시기였습니다.


희생제물은 그것을 바치는 이들 자신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말했듯이, 희생제물은 위기가 고조될수록 제의를 드리는 이들과 점점 근접한 존재로 선정됩니다. 그리고 가장 근접한 존재가 바로 자식, 특히 아들이었습니다. 곧 아들을 바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가장 직접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이 의례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열왕기」와 「예레미야서」 등에서 이 인신제사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효력이 있다는 대중의 믿음이 널리 퍼져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구절들이 전쟁와 같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은 이것이 위기시의 극약처방임을 시사합니다. 해서 나는 아하스가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의례가 대중을 선동하는 강렬한 효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갈라진 국론은 통일되었고, 그 덕에 르신 동맹군의 침공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아하스는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면서 봉신국의 예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긴급한 구호의 신호를 타전했습니다. 3년을 끌던 전쟁(주전 734~732년)은, 아시리아가 다마스커스를 침공함으로써 끝났습니다. 다마스커스 국은 완전히 멸망했고, 이스라엘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으며 항복하고 맙니다.

결국 아하스의 두 가지 방책은 다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인신제사로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고, 국제 외교전을 통해 침공했던 적성국을 완전히 혹은 더 회복할 수 없게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하스는 의도하지 않은 횡재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거의 전 영토가 황폐해지는 상황에서, 수많은 유민들이 남하하여 남왕국 유다로 몰려왔던 것입니다. 아주 빠른 기간 만에 흩어진 인구가 회복되었고, 아니 몇배가 늘었습니다.(아하스의 아들인 히스기야 왕 때에 유다의 인구는 12만 명에 이르렇다고 합니다.) 폐허가 된 땅이 다시 경작되었고, 새로운 경지가 개간되었습니다. 하여 생산성이 높아졌고, 따라서 왕국의 부도 몇 배가 늘어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시기 고고학적 발굴물을 보면 유다 왕국은 번영기에 접어든 것임이 분명합니다.

아하스는 아들을 제물 삼아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아들의 불타는 몸은 자기의 고통을 말할 수 없었으나, 사제의 대언을 통해 아하스의 고통을 발설했습니다. 즉 아들의 고통은 침묵으로 가려지고 아비의 고통으로 번안됨으로써, 아비인 아하스는 자기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나라를 번영하게 하는 밑거름으로 삼은 것입니다.

기원전 8세기의 한 후진국의 군주는 벌써 타인의 죽음을 이용해서 자기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통치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그 이전이나 이후의 수많은 권력들도 이런 방식을 활용하곤 했습니다. 위기가 심할수록 더욱 큰 자극으로 고통을 양산하고 그 고통의 소리를 봉쇄하며 대신 자신의 소리를 더빙하는 방식 말입니다. 그것은 권력에게 성공을 선사하기도 했고, 실패로 귀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은 이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믿음을 대대로 간직해왔음이 분명합니다. 하여 그런 관행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용산의 ‘불붙은 몸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누구는 세입자의 육체를, 또 누구는 진압경찰의 육체를 화두 삼아 정쟁에 여념이 없습니다. 특히 현 정권은 세입자의 불붙은 몸을 혐오스런 것으로 해석하며 관련자들을 모조리 체포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시신을 느닷없이 부검한다고 훼손하기까지 합니다. 시신 훼손은 대표적인 모욕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경찰의 죽은 몸에 자기들의 소리를 더빙하여 커다란 확성기를 연결해 버렸습니다.

필경 현 정부는 지금의 위기를 대단히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재정권이나 할 만한 행태를 도처에서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희생제물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오염된 존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인터넷 논객에서 학교 교사까지, 그리고 세입자들의 불타는 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연쇄살인범까지 말입니다. 세상의 분노를 투사시킬 존재를 만들어내려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들의 목소리로 더빙해서 말입니다.

현재로선 이러한 계략은 성공을 거둘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공하든 않든, 불붙은 몸의 소리를 침묵에 빠뜨리고, 권력의 소리로 변조시키는 방식은 결코 야훼의 제사일 수 없음을 성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야훼께서 ‘상상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죄’(「예레」 19,4~6)일 뿐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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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08 05: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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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스의 "역겨운 행위" (자식 희생제물) 와 현 정부의 "얄팍한 계략"을 (용산 철거민의 희생) 비교한 좋은 글이네요. 아하스의 역사적 상황과 이명박 정부의 역사적 상황이 다르지만,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아하스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한가지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는듯 합니다. 열왕기하 16장 7절을 보면, 아하스는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나는 왕의 종이며, 아들입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반 앗시리아 동맹의 (다마스크스과 북이스라엘) 위기에서 도움을 요청한 것은 지금 이명박 정부가 반 미국 (북한) 위기에서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비록 시대적 상황이 다르지만, 정치적 힘의 논리라는 맥락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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