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신화론자들, 성서 텍스트, 그리고 롤랑바르트 Ⅰ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헬름스는 “1세기 지중해 동쪽 끝에서 유일신에 대한 숭배를 가르치고 종교는 짐승들의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와 경건을 실천하고 증오와 적개심을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선언한 한 명의 두드러진 종교적 지도자가 나타났다. 그는 선한 기적들을 행하고, 데몬들을 쫓아내고, 아픈 자를 치유하며, 죽은 자를 일으키는 일들을 행했다고들 한다. 비록 그 자신은 인자라고 칭했지만, 그의 모범된 삶으로 인해 그의 몇몇 추종자들은 그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로마에 대한 선동죄로 기소되어 체포되었다. 그가 죽은 후, 제자들은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고, 자신들에겐 살아서 나타났으며, 그런 다음엔 하늘로 승천했다고 주장했다. 교사이자 기적을 행하는 자였던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의 이름은 바로 티야냐의 아폴리니우스였다.”[각주:1]는 말로 자신의 저서 Gospel Fictions 를 시작한다. 무척 흥미롭다. 왜냐하면 우선, 글의 말미에 나타난 질문과 관련해 보통의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대부분 아폴리니우스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라고 답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폴리니우스다. 이로써 보통의 그리스도교 신자가 가질법한 기대가 여지없이 박살나 버린 셈이다. 물론 충격이 아닐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사는 동안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비슷한 류의 이야기들을 접하고선 신기해하거나 의심에 빠져본 적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도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넘기는 신자들도 개중에는 있을 법 하다. 그럼에도 아직은 먼 훗날의 일로만 보인다. 그 예로 김진호의 말을 들어보자.[각주:2] 


     2000년 12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신문사 기자라고 밝힌 그는 다짜고짜 최근 일고 있는 역사의 예수 논쟁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물었다. 움찔했다. ……당황해하는 내게 그는 그 무렵 TV에 방영된 도올 선생 강의 얘기를 간단히 들려주었다. 그제서야 사태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교회나 열혈신자들의 항의가 방송국에 전해졌을 것이고, 이것이 기자들에게 사건거리로 읽혀졌던 것이다. 그 전화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꽤나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즉각 항의공문을 방송국에 보냈고, 많은 기독교인 시청자들의 문제제기가 방송국 홈페이지에 접수되었다. 


     비단 이런 일은 2000년 그 해에만 일어나지 않았다. 2008년 SBS에서 방영된 <신의 길 인간의 길>에서도 이런 일은 그대로 반복되었다. 2000년 12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예수는 사생아라는 도올의 폭탄 발언보다 한술 더 뜬, 즉 예수는 신화적 인물이라고 주장한 로버트 프라이스와 피터 겐디의 말을 공중파에서 여과없이 내보낸 것이다. 단순히 이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보수 개신교 진영에선 난리가 났고, 결국 이 방송에 대한 보수 개신교계의 반론이 짧게나마 방영되기도 했다. 따라서 예수가 순전히 인간적인 인물이라는 주장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신화적 인물이라는 주장은 더더욱 신성모독 죄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게 보수 개신교계의 일반적인 입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유지되어야 하는 일종의 신앙의 시금석인 것이다. 어쩌면 역사적 예수연구라는 학문분과가 한국의 신학교들에서 강의되고 또한 지역 교회들로 유포되어 교인들이 접촉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인 이유도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그런 일만은 아니다. 역사적 예수연구가 거의 200년 동안 이루어진 1세계에서도 도그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연구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검열이든 타인에 의한 검열이든 간에 검열은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수의 부활과 관련해 자신은 이것을 역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고백했기에 괴팅엔 대학의 신약학자 게르트 뤼드만은 대학의 신학과로부터 해임을 당했다.[각주:3] 그리고 학문적 자유냐 신학적 권위냐의 문제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해 여러 학자들이 토론하기도 했다.[각주:4] 이와는 좀 다르지만 자신의 책 The Illegitimacy of Jesus 에서 예수의 탄생설화를 세밀하게 주석하면서 예수가 당대의 유대교에서 결코 명예롭다고 할 수 없는 일종의 불법적인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논지를 펼쳤다는 이유로 슈아베르그는 우편물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각주:5] 또한 Crucifixion in Antiquity라는 책에서 사무엘손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복음서에 적힌 대로 해석되기엔 난점이 많다는 주장을 펼쳤을 때, 전 세계의 신자들이 그에게 수많은 메일과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각주:6] 물론 이것은 그에게 자신의 학문적 진가를 알리는 계기가 되도록 해주었지만 말이다. 하기야 역사적 예수에 관해 학자들이 투표를 통해 그 말의 진정성을 결정짓고자 했을 때 들이닥친 각종의 비난과 조롱을 참작하면, 1세계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철저히 계몽된 그러한 세계가 애초에 아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속화 이론이 내다봤던 것과 달리 종교적 도그마/검열이 은밀히 작동하는 그런 세계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방금 소개한 세 사람처럼 역사를 통해 적어도 1세계에선 지난 200년 동안 성서와 신앙에 대해 균열을 내고자했던 사람들이 꾸준히 존재해 왔다. 그 중에서도 신화론자들은 가장 급진적이었고, 현재는 무신론과 결탁해 근본주의 신학진영에 대해 열성적인 전투를 감행하고 있다. 때론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종교학적 관점에서 기독교 경전을 해석하고 있는 바트 얼만과 같은 이들에 대해서도 이들은 비난과 조롱을 퍼붓기도 한다. 따라서 도킨스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들의 논의가 허접한 수준의 아마추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전문적인 신학연구의 성과물들을 철저히 읽고 독해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러니까 그저 몇 권의 책을 읽고 논평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극적인 사람은 로버트 프라이스인데, 그는 고든콘웰이라는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출발해 드류대학교에서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나중에는 신화론자로 전향했다. 신약학뿐만 아니라 조직신학에서도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아마추어는 아닌 셈이다. 때문에 그의 책은 번역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새물결 플러스에서 출간된 『역사적 예수논쟁』은 그를 접해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각주:7] 하지만 그의 비평이 전해주는 짜릿함을 맛보기엔 이것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쯤에서 누군가는 왜 우리가 신화론자들의 논의를 굳이 알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법하다. 다시 말해, 이들은 어차피 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간주하기에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간주하는 정통의 관점에서 보면 적대자이거나 변증의 대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말년에 예수의 역사성을 부인한 브루노 바우어 같은 이에 대해 슈바이처는『예수의 생애 연구사』에서 다음과 같은 멋진 논평을 해놓았다.[각주:8] 다소 길지만 읽어보도록 하자.  


      우리에게 바우어와 비교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라이마루스일 것이다. 이 둘은 자기들의 시대에 무시무시하고 손상시키는 영향을 주었다. 누구도 이들처럼 예수의 생애 문제의 이렇게 심한 복잡성을 느끼지 못했다. …… 복음서 역사에 대한 바우어의 비평은 한 타스의 좋은 예수의 생애보다 중요하다. 그 비평은 우리가 지금 비로소, 반세기 후인 지금 비로소 인식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 있던 것들 중에서 예수의 생애의 난점들의 가장 천재적이며 가장 완전한 목록이기 때문이다. 그의 해결들의 비범성은 문제들을 문제들로서 이해했던 지향성에 근거를 두었다는 것과 그가 너무 예리하게 관찰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해서 너무 어두웠다는 것을 그들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동시대인들에게는 단지 환상가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환상에는 역시 하나의 깊은 인식이 숨겨져 있었다. 이 훌륭한 것은 아직 누구의 머리에도 떠오른 일이 없었다. 원그리스도교도 초기 그리스도교도 예수의 설교의 단순한 결과로서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기원 전후 첫 세대들에서의 세계 정신의 체험을 반영한 것이다. 바우어는 그것을 역사에 옮겨놓고 죽음의 움직임에 놓여 있는 로마 제국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들었다. 


     반면에 슈바이처는 스미스와 로버트슨 그리고 드류스와 같이 바우어 이후에 나타난 신화론자들에 대해서는 꽤 비판적이다. “브루노 바우어가 전한 것과 같은 본문들의 비판적 연구는 그의 근대적 제자들 중 한 사람도 시도한 일이 없다. 또 그들은 복음서 설화들 중에 전제되어 있는 세계에 관한 설명을 위해 후기 유대교 사상들을 시도적으로 인용하고 그렇게 함으로 학문성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들 중의 한 가지를 만족시키려는 데 전혀 무관심했다. 신의 나라에 관한 예수의 선포에 관해 로버트슨은 아무 것도 말할 줄 몰랐다.”[각주:9]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슈바이처가 스미스와 로버트슨 그리고 드류스와 같은 신화론자들만 비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근대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그리고 항상 예수의 역사성의 있을 법한 포기의 가능성을 계산해야 한다.”[각주:10]라고 말하면서 “근대의 신학이 예수의 역사성을 위해 싸우지 않고 오히려 단지 어떤 특정한 예수의 역사성만을 위해 싸울 뿐”[각주:11]이라고 통렬히 지적한다. 즉, 근대의 맥락에 맞는 예수상을 구성하기 위해 신학이 목숨을 걸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신학이 예수의 죽음과 삶에 관한 자체의 역사적 주장을 수호해야 하는 바, 여기에 그 종교의 사활이 달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억지같이 작용한다.”[각주:12]라는 비판을 가했다. 

     한데, 좀 더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도 신화론과 근대의 역사적 예수 연구가 부지불식간에 공모를 하고 있다는 슈바이처의 주장이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3] 


      종교철학적 물음은 예수가 근대적 종교성을 위해서라면 실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실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아니면 그가 너무나도 역사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근대 신학은 역사적인 것을 충분히 비역사적인 것에 의해 완화함으로 종교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수를 얻으려고 꾀한다. 가장 단순한 길은 여기에 있다. 즉 근대신학이 예수의 사상들의 종말론적 성격에 통찰이 진입된 때 자체로부터 끌어내는데, 그 성격이 그와 함께 자명적으로 비종말론적으로 생각했으며 이미 현존하는 정신적 신의 나라를 설교하고 이에 상응하는 윤리를 가르쳤다는 데 있다. …… 시초에 그렇게 맹렬히 공격하던 브레데도 너무나도 역사적인 예수의 포기를 신학에 허락했다. ……이 얻어진 가벼움은 그러나 신학이 생동적인 메시야 대신 단지 흔들리는 개략적인 것만을 제시하는 유대인 교사만을 남은 것으로 얻은 희생을 치른다. 이 교사는 사실 근대종교를 위해 전혀 아무 것도 의미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일종의 역사적 영예의 위치를 부가한다. 왜냐하면 그의 처음 추종자들, 즉 그리스도교를 형성시킨 그들은 그를 유대인의 메시야라는 이름으로 꾸미고 그에게 근동적 그리스적 구속신의 성격을 첨가했다. 역사적 예수는 그러므로 단지 피상적으로만 구출된 것이다. 종교가 실제로 일하는 것은 처음 공동체 및 상징적 신화적 그리스도, 다시 말해서 드류스도 자신을 관련시킬 거대한 것과의 공동과제이다. 


     이처럼 그리스도 신화론자들과 근대의 신학은 부지불식간에 공모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슈바이처의 눈에는 말이다. 따라서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철저종말론을 외치며 예수를 1세기의 묵시적인 종말론자로 설정한다. 이것은 그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교회가 아니라 예수의 역사성 그 자체를 위해 투쟁한 결과로 나타난 산물인데, 문제는 교회의 도그마와는 애초에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괴하는 것으로까지 치달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에겐 “의지로부터 의지를 이해하는 일”[각주:14]이었고 그렇기에 “그의 본질을 위해 표현할 수 있는 어떠한 칭호”[각주:15]도 있을 수 없는 그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화론자들의 주장이 형편없는 아마추어 수준의 연구결과로 나타난 망상된 주장이라는 흔한 착각은 교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슈바이처가 신화론자들을 비판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 논의의 전개가 형편없는 수준이어서가 아니라 근대의 신학적 연구들과 궤를 같이하면서 그 자신의 방법론이 지향하고 있는 묵시적인 종말론적 예수상을 이들이 도외시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론자들에게 일종의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예수를 구출해낼 수 있는 유일한 치료책은 그 자신의 철저종말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후기 유대적 형이상학에서 실존한 하나의 도덕주의자이자 합리주의자”[각주:16]라는 그의 주장을 교회가 혹은 신학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교회로선 그리스도 신화론자들이 주장한 그리스도 신화론을 껴안는 것이 속편한 일일 것이다. 슈바이처가 『예수의 생애 연구사』 6판에서도 불트만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기이하기까지 하지만, "그리스도 신화를 본질적 내용으로 담은 그리스도에 관한 헬레니즘적 케리그마 - 바울에게서도 볼 수 있다(특히 빌 2:6, 롬3:24) - 를 예수의 역사에 관한 전승에 조화시키는 일이었다. 이 목적을 위해 아포프테그마와 이적 사화를 수집하고 편집해 놓"[각주:17]는 것이 마가의 의도였다는 불트만의 지적을 참작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맥 역시 불트만의 논의를 따라 "마가의 천재성은 그가 일종의 지혜 신화를 이용하여 예수전승과 그리스도 신화 모두에 연결시킴으로써 그 둘 사이를 중개시켰다는 점"[각주:18]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더구나 마가는 "그리스도 신화에서 필요한 것만 취하였는데, 그것은 그의 묵시록적인 예수의 신화를, 그의 예수 그룹을 거부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극적이고 시각적이기도 한 역사적 기사 속에 교묘하게 집어넣기 위함이었다."[각주:19]는 맥의 주장은 슈바이처의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슈바이처가 신화론자들로부터 구출해냈다고 본 그 묵시적인 종말론적 예수상도 1세기의 종교적 언표들에서 추출해 낸 신화적 예수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쯤에서 서두에서 제시했던 헬름스의 글을 다시 떠올려 보도록 하자. 그 글은 어떤 한 인간의 생애에 대한 묘사가 1세기 당시의 지중해 세계에서 떠돌던 특정한 이야기 틀에 의해 주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면에선 예수와 아폴리니우스의 생애가 서로 유사하다면 그것은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지역의 종교문화적 에토스에 의해 영향을 입은 일종의 텍스트적 현상으로 간주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바로 그렇기에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후자인지에 관한 논의는 무의하다고도 할 수 있다. 차라리 이해해야 할 것은 한 인간의 생애가 이처럼 종교문화적 에토스를 거쳐 텍스트화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이러한 현상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우리에게 꽤 유익한 도움을 주고 있다.[각주:20] 읽어보도록 하자.  


      아주 드물긴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신화로 변형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루마니아의 민속학자인 콘스탄틴 브라일로이우는 마라무레쉬라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민요 하나를 채집할 수 있었다. 비극적인 사랑이 그 내용이었다. ……노랫말은 신화적인 암시들로 가득한,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제례용 가사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래의 변이형들을 채집하면서 동시에 브라일로이우는 그런 비극이 일어난 때가 언제였는지도 조사하였다. 사람들은 오래 전에 일어난 오랜 옛날의 이야기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조사를 계속해나가면서 그는 사건이 겨우 4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여주인공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 핵심증인이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진실성을 완전히 박탈해버리고 사건을 전설적인 이야기로 변형시키는 데에는 불과 몇 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 자체는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혼 전날에 죽은 한 남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단순한 사고사 이상의 어떤 것이었다. 그 죽음에는 신화적인 범주 안으로 통합되었을 때에만 드러나는 어떤 비의가 담겨 있었다. …… 진실을 말하는 것은 신화였고, 실제 역사는 이미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민중의 기억은 한 영웅의 생애에서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요소들은 보존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고차적인 신비경험들 속에서도 인격신은 궁극적으로 초인격적인 신으로 고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전통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영혼은 기억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소위 그들의 역사적 개별성은 상실된다."[각주:21]고 지적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프라이스 역시 “웰스나 알바 엘레가드 같은 신비주의자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 대해서 그가 가까운 과거에 살았던 인물이라기보다는, 평범한 그리스 사람들이 헤레클레스와 아킬레우스가 과거 어느 시점에 실제로 살았다고 믿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예수를 역사적인 인물로 여겼다고 주장했다……인자로서의 예수의 죽음은 리그베다의 원인 푸루샤의 원시적 죽음과 유사하다. 리그베다를 보면 하늘에서 푸루샤의 자기희생이 창조를 일으켰다.”[각주:22]고 한다면서 전통적인 그리스도 신화론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점은 슈바이처가 비판한 드류스나 스미스에게서도 또한 발견된다. 그렇다면 엘리아데와 전통적인 그리스도 신화론은 분명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신화론도 엘리아데의 주장처럼 예수와 아폴리니우스가 역사적 개별성을 상실하고 특정한 지역의 종교문화적 에토스에 흡수된 종교적 영웅들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그리스도 신화론도 엘리아데 못지않게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어떤 인물에 대한 종교의 텍스트화 현상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 텍스트화 현상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예수를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고 쉽게 단정해 버린 그들의 치명적 실수는 정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유별난 혹은 독특했던 어떤 한 개인이 새겨놓은 사건의 흔적과 그 흔적을 통한 종교의 형성 및 발달이 아니라 종교적 관념들의 유사성에 따른 텍스트의 형성과 그로 인한 종교들 상호간의 치열한 정체성 투쟁을 우리로 하여금 돌아보게끔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적 텍스트가 하나의 주체를 보여주고 있다면 그 주체는 이미 집단적으로 투사된 혹은 치환된 범례적 주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Helms Randel, Gospel Fictions, Prometheus Books, New York, 1988, p.9 [본문으로]
  2. 김진호,『예수의 독설』, 삼인, 2008, p.23 [본문으로]
  3. 뤼드만의 예수의 부활에 관한 연구에 대해서는 The Resurrection of Christ : A Historical Inquiry, Prometheus Books, New York, 200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4. 이에 대해서는 Jacob Neusner, Faith, Truth, and Freedom: The Expulsion of Professor Gerd Lüdemann from the Theology Faculty at Göttingen University, Global Academic Publishing at SUNY Binghamton University, New York, 2002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 Schaberg Jane, The Illegitimacy of Jesus: A Feminist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Infancy Narratives, Sheffield Phoenix Press, Sheffield, 2006 [본문으로]
  6. Samuelsson Gunnar, Crucifixion in Antiquity: An Inquiry into the Background and Significance of the New Testament Terminology of Crucifixion, Mohr Siebeck, Tubingen, 2011 [본문으로]
  7.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 예수논쟁』, 손혜숙 옮김, 새물결플러스, 서울, 201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8. A.쉬바이처, 『예수의 생애 연구사』, 허 혁 옮김, 대한기독교출판사, 1986, p.169 [본문으로]
  9. A.쉬바이처, 같은 책, p.521 [본문으로]
  10. A.쉬바이처, 같은 책, p.481 [본문으로]
  11. A.쉬바이처, 같은 책, p.483 [본문으로]
  12. A.쉬바이처, 같은 책, p.480 [본문으로]
  13. A.쉬바이처, 같은 책, p.485 [본문으로]
  14. A.쉬바이처, 같은 책, p.590 [본문으로]
  15. A.쉬바이처, 같은 책, p.593 [본문으로]
  16. A.쉬바이처, 같은 책, p.592 [본문으로]
  17. 루돌프 불트만,『共觀福音書傳承史』,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2, p.432 [본문으로]
  18. 버튼 맥,『잃어버린 복음서』, 김덕순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p.284 [본문으로]
  19. 버튼 맥, 같은 책, p.285 [본문으로]
  20. 미르치아 엘리아데,『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옮김, 이학사, 2003, pp.57~58 [본문으로]
  21. 미르치아 엘리아데, 같은 책, p.59 [본문으로]
  22. 로버트 프라이스, 『역사적 예수논쟁』, pp.93~9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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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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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3 09: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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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기독교 신자로서 한 종교의 창시자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교학적 관점과 성서학적 관점 (역사적 예수 학파를 포함), 그리고 조직신학적 관점은 모두 예수를 다르게 바라보는 것 같은데요. 위 세 가지 중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며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기독론(Christology)이 대중화되는 그 날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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