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 역사, 그리고 텍스트 II : 역사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1. 사실 및 진실 추구로서의 역사


     역사란 무엇인가? 대체로 사람들은 특정한 시기에 일어난 사실에 관한 기록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역사를 허구와는 다른 성격을 띠는 소위 진실에 관한 기록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역사란 종종 거짓내지는 환상으로 취급되고 있는 신화와 대척관계에 있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에 관한 기록으로서의 역사라면 적어도 신화적 성격들은 서술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셈이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비록 역사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플라톤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해 볼만하다.[각주:1] 


호메로스나 그 밖에 다른 시인들은 우리가 이 구절들과 그런 따위들을 지워 없애도 화를 내지 않도록 부탁할 것인데, 그것은 그런 구절들이 시답지가 않고, 또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들어주지 않는 데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시다울수록 자유로워야하고, 죽음보다는 노예됨을 더욱 두려워해야 하는 애들이나 어른들이, 그만큼 덜 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일세. …… 그렇다면 우리는 또 그런 문제들에 속하는 두렵고 무서운 낱말은 모두 제거해야 하네. 즉 코키토스라든가, 스티크스라든가, 악귀라든가, 송장이라든가, 그리고 그밖에, 같은 나이의 누구든 듣는 사람을 소름끼치게 하는 그런 따위의 낱말 말이세. 


      결국, 플라톤은 “호메로스를 비롯해서 모든 작가들은 사람으로서의 덕성이라든가 또 그밖에 그들의 작품의 주제가 되는 것들의 허깨비를 모방하는 자들로서 참다운 것 그 자체에는 결코 접하지 않고 있다고 우린 주장하도록 할까?”[각주:2]라고 묻는다. 심지어, “이렇게 해서 이제 우리는 작가를 붙들고, 그를 화가와 동격자라고 규정짓는 것이 정당할 걸세. 왜냐하면 진리와 견주어 보아 하잘것없는 것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도 화가와 비슷하고, 또 영혼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아니라 역시 하잘것없는 부분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는 화가와 비슷하기 때문일세. 그래서 한 나라가 잘 다스려져야 한다면, 결국 그 나라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정당할 걸세. 왜 그런고 하니, 그는 영혼의 이 하잘것없는 부분을 일깨워서 키우고 이것을 강하게 해서 이지적 부분을 파멸시키기 때문일세.”[각주:3]라고까지 말한다. 요약하면, 진실의 담론을 추구하는 일과 관련해 작가란 영혼을 파괴하는 모방자이기 때문에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자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별한 담론법으로서의 역사는 진실 추구의 측면에서 문학 장르와의 계속적인 단절을 통해, 그리고 더딘 출현을 통해 태어났다.”[각주:4]는 프랑수아 도스의 말을 참작하면, 플라톤의 이러한 지적들이 철학뿐만 아니라 역사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의 논의를 따르는 자에게 역사란 신화와 달리 사실과 관계해야하고 더 좋게는 영혼의 이지적인 부분을 증대시켜야 하는 과제를 맡은 하나의 진실에 관한 담론으로 등장한다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역사학의 아버지인 헤로도토스를 신화론자로 규정하면서, 투키디데스는 역사가라면 진실을 탐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플라톤과 유사하게, “여기 제시된 증거에 따라 내가 기술한 대로 과거사를 판단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분명한 주제가 무엇이든 찬양하려 드는 시인의 시구나, 사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청중의 주목을 끄는데 관심이 많은 산문 작가의 기록에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다루는 주제는 증명의 영역 밖에 있으며, 세월이 흘러 대체로 사료로서의 신뢰성을 상실하여 신화의 영역에 속한다.”[각주:5]라고 말함으로써 그는 역사와 신화/문학 간의 분리를 시도한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가는 “진리를 규명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전해오는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받아들”[각주:6]이는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야 하는 것이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증거, 혹은 가능한 한 완벽하고 주의 깊은 비평적 고증을 거친 후에야 정보들을” [각주:7]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역사를 묻는 일은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이데아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신화/문학과 같은 허탄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탐구를 통한 진실을 추적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실의 원천으로 보는 것, 즉 눈이 매우 중시되었다. 


      역사를 신화/문학으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했던 이러한 경향은 1681년 장 마비용의『고문서학』이라는 저서와 함께 더욱 강화되었는데, 프랑수아 도스는 “마비용은 지식 학문들의 시리즈 속에 역사를 등록시키고, 기록보관학 총체의 접근 속에서 엄격한 유사성의 규칙들을 고려하여 역사장르가 도래한 문학과의 분리를 강조한다.”[각주:8]고 말한다. 그리고 “자체의 규칙·관례가 있는 방식을 갖추고, 확립과 재인의 특별한 양식들 가진 방법론을 갖추면서 실제로 전문화된”[각주:9] 19세기와 더불어 역사는 비로소 신화/"문학과의 근본적인 단절을 표명한다."[각주:10]고 지적했다. 여기서 좀 더 도스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1]


역사학 입문의 작가인 샤를 빅토르 랑글루아와 샤를 세이뇨보가 수사학과 가장, 혹은 학술적인 역사 이야기를 더럽히는 문학의 미세한 입자들이라고 부른 것을 훌륭한 역사가는 모두 거부한다. 기술방식은 교육적 가치를 지닌 거의 익명의 문체론을 위해 문학의 미학적인 흔적들을 지울 것을 절실히 요구한다. 


     따라서 “그 시대의 가치는 그 시대가 낳은 결과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 그 시대가 자체적으로 갖는 고유한 것 속에 있다.”[각주:12]고 말함으로써 랑케 역시 당연하다는 듯 “인식주체인 역사가는 자기 자신을 해소함으로써 사실이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각주:13]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 실제 일어난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며 그것의 가치는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서 불변적으로 존재한다.”[각주:14]고 믿었기에 사실에 입각한 역사의 재구성을 역사가의 최대의 과제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 본 역사에 대한 이런 시도들에 대해 니체라면 아마도 조롱을 퍼부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이런 시도들은 기껏해야 생기 없는 죽은 문자를 대하는 일과 같은 그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준으로 복음서를 연구하고 마침내 신화적 이야기로 간주했던 슈트라우스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판은 이에 대한 적절한 예일 것이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5]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근대적 이념에 맞는 성서를 위해 칸트의 이성비판으로부터 무엇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는 어디서나 극히 조야한 사실주의의 마음에 들게만 말하고 있다는 것,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이야말로 이 새 복음서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이며, 여하튼 이 복음서는 끊임없는 역사연구 및 자연연구의 노고의 성과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이며 또 그럼으로써 철학적 요소를 부인한다. 그는 관념론의 기본적인 이율배반에 관하여, 또 일체의 학문 및 이성의 극도로 상대적인 의미에 관하여 아무것도 예감하지 못한다.…… 개념은 인간을 결코 윤리적으로 더욱 선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 도덕을 설명하기는 쉽지만 도덕의 기초를 다지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 슈트라우스는 이런 것조차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시대 특유의 학문에 종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으로써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설령 문화를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최선의 능력과 가장 성실한 의지가 도처에 현존한다고 가정할지라도 그러한 방법으로 학문에 종사함으로써 문화에 대하여 도대체 무엇이 나올 것인가 하는 물음을 거의 한 사람도 제출하는 자가 없는 것이다. ……그는 근대의 세계고찰이 근거를 두고 있는 증명을 진술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증명을 학문에서 인용함으로써 여기서도 또 신앙인으로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지식인으로서 행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새 종교는 새 신앙이 아니라 근대적 학문과 일치하며 그에 따라서 그런 것으로서는 전혀 종교가 아니다. 


2. 지배 및 배제로서의 역사


     니체의 이 같은 비판을 염두에 둔다면, 역사를 신화/문학과 달리 사실탐구를 통한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으로 정의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신화/문학과 완전히 분리된 순수 사실만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일은 자주 주장되어왔던 것처럼 가능한 일인가? 더구나 니체의 말대로 과연 의미가 있기나 한 일일까? 나아가 19세기와 더불어 역사연구에서 하나의 강박관념처럼 따라다녔던 문제, 즉 과학적 탐구처럼 어디에서나 무시간적으로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를 역사는 산출해 낼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랑케는 이와 관련해 주목해 볼만한 인물들 중 한 사람에 속한다. 왜냐하면 그는 독일 역사주의의 창시자이고 “발견을 왜곡하는 상상적 영감을 배제한 채 정밀한 조사와 입증 같은 과학적 개념을 고수하며 문헌을 신중하게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지만 말할 수 있기를”[각주:16] 바랬던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E·H 카 역시 이를 확인해주듯 “1830년대에 랑케가 역사의 도덕화에 대해 정당한 항의를 제기하면서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을 뿐이다 라고 말했을 때 별로 심오하다 할 것 없는 이 경구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3세대 동안 독일과 영국의 역사가들, 심지어 프랑스의 역사가들까지 Wie es eigentlich gewesen이라는 마술적인 문구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다녔다”[각주:17]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역사란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을 뿐이라던 랑케의 태도에 대해 카라면 “역사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것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역사의 사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항상 굴절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역사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책에 실린 사실들보다 그 책을 쓴 역사가에 대해 일차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각주:18]고 답할 것이다. 또한, 과학적 개념을 고수하고자 했던 랑케의 태도에 대해서도 “19세기의 과학자 및 액턴과 같은 역사가들은 잘 검증된 사실들의 수집을 통해 모든 논쟁점을 한꺼번에 해결하게 될 포괄적인 지식체계가 수립될 수 있을 날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오늘날 과학자들과 역사가들이 품고 있는 희망은 보다 겸손한 것이다.”[각주:19]라고 지적할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지난번 강연에서 말한 바 있는 여러 이유 때문에 역사의 법칙을 말하지 않는다. 원인이라는 말조차도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말았다.”[각주:20]고 응수할 것이다. 


      그렇다면, 신화/문학과 완전히 분리된 순수 사실만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그에 따라 진실을 추구하는 작업으로서 역사를 정의하는 일은 사실상 회의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귀스도르프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말을 들려준다.[각주:21]


역사가의 역사 자체도 온갖 전설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역사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엄격하고 고결한 스파르타의 신화나, 그 굳건함이라 용기가 현실 속에서 별다른 토대를 지니지 못한 이상을 모방하려는 학생 세대나 성인 세대를 빚어낸 공화정 시대의 로마신화만큼 보편적으로 존중받는 신화들을 경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더 일반적으로 말해, 프랑스 혁명 당시의 루이 14세나 제 3공화국을 다루던 직업역사가는 가치판단을 내리려는 어떠한 의도나 전설적인 전제로부터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역사가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해주고 있는 전설들을 축소하려 한다면 자기가 가장 좋은 색깔이나 가장 확실한 의미를 상실해버리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사인식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철학과 관련해서도 의미 있는 비판을 가한다. “신화를 관조적인 사고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 플라톤에서 플로티노스에 이르기까지, 데카르트에서 스피노자, 말브랑슈 또는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이성에 따른 황홀감에는 신화적 요소가 배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 아니다. 합리적인 관념들이나 요소들은 신화적인 참여가 배제될 수 없는 사고 역동성의 위탁물과 잔고로 나타난다.”[각주:22] 때문에, 앞서 보았듯이 신화와 같은 허탄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는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설파한 플라톤의 주장은 그 자신이 배척하고자 했던 신화만큼이나 설득력이 없는 그런 것이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바로 그렇기에 니체 역시 우리보다 앞서 “근대인은 단지 그 저명한 역사에 관한 객관성 때문에 스스로 강하다고, 즉 공정하다고 부를 권리, 더구나 다른 시대의 인간보다도 고도로 공정하다고 부를 수 있는 권리를 과연 가지고 있는가 라고 하는, 물론 고통스러운 물음을 수반하고 있다. 어쩌면 객관성은 근대인의 덕에 관한 편견으로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라고 물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는 이렇게 처방을 내렸다.[각주:23] 플라톤이라면 놀랄법하지만 귀스도르프라면 흔쾌히 동의할만한 그런 말로 말이다. 


자 놀라지 말라. 그것은 독약인 것이다. 역사적인 것에 대한 해독제의 이름은 비역사적인 것과 초역사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 이름과 더불어 우리의 고찰의 발단과 그 평안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비역사적인 것이란 말로써 가리키는 것은 망각할 수 있고, 자기를 제한된 시계 속에다 가두어 놓는 기술과 힘이며, 내가 초역사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성으로부터 눈을 돌려 현존재에다 영원하고 불변의 의미를 지닌 성격을 부여하는 것, 즉 예술과 종교 쪽으로 향하도록 하는 힘들이다. 


     계몽적 사유를 신화적 사유와 대비하면서 “사유를 수학적 장치로 환원하는 것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승인”[각주:24]이라고 한 아도르노의 지적 또한 니체의 이러한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실 그대로의 세계를 탐구하고 이를 통해 진실을 찾고자 했던 역사적 이성은 “사실성만이 정의로 인정되며 인식은 사실성의 단순한 반복으로 제한되고 사유는 단순한 동어반복”[각주:25]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인 사건을 구해내려는, 역사적인 사건에 그 자체로서, 그 자체를 위하여 의미를 부여하려는 온갖 노력이 경주되었다.”[각주:26]는 엘리아데의 지적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역사는 그에게 해방이 아니라 공포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로써, 달리 말하면 그런 식으로 일어났다는 사실로써 역사적 사건을 정당화하는 것은 그 역사적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어려울 것이다.”[각주:27] 그렇기에 역사가 아니라 이제는 신화가 선생으로 나서서 가르치려 든다.[각주:28]


호머의 서사시는 이미 올바른 이론을 포함하고 있다. 문화적인 재화는 명령받는 노동에 정확히 대응되는 상관물이다, 양자는 모두 자연에 대한 사회의 지배라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강압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배 위에서 사이렌과 대면하면서 행해진 조치들은 계몽의 변증법에 대한 함축성 있는 알레고리다. 지배라는 척도가 대표성을 지니고, 제반 업무 관계 속에서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 자가 가장 힘이 센 자이듯이 대표성은 진보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퇴보에 있어서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역사 역시 마찬가지로 해방이 아니라 지배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플라톤 이래로 자신과 반대되는 신화/문학을 철저히 배제한, 바로 그렇기에 반쪽자리 사유양식의 지배로 점철되어온 시간들이었다고 말이다. 때문에 역사란 분류하고, 정돈하고, 분배함으로써 지배를 실천하고자 했던 일종의 담론적 욕구였다고 해도 별 탈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푸코도 “어떤 사회에서든 담론이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그의 힘들과 위험들을 추방하고, 그의 우연한 사건을 지배하고, 그의 무거운, 위험한 물질성을 피해가는 역할을 하는 과정들-이 존재한다. 유럽과 같은 사회에서, 우리는 배제의 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지 않던가. “하나의 진술이 만들어지고 분배되고 통용되고 작용하도록 만드는 질서화된 절차의 체계”[각주:29]로서의 진실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는 일어났던 사실을 근거로 해서 인간과 그의 삶에 대한 탐구를 하기 때문에 과학이고, 영화는 사실에 근거할 필요 없는 꾸민 이야기이기 때문에 기껏해야 예술에 불과하다고 서로의 영역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타협이다.”[각주:30]는 김기봉의 지적은 꽤 타당해 보인다. 고로, 이제 역사는 자신이 그토록 멀리하고자 했던 타자인 신화/문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푸코는 이에 대한 훌륭한 예다. 이영남의 말을 들어보자.[각주:31]  


푸코는 역사의 문학성이라는 문제의식도 껴안았다. 역사를 문학에서 분리해 과학에 편입시킨 랑케도 투키디데스처럼 문학적 우아함을 겸비하여 과거를 진실하게 재구성하는 역사를 서술하려고 했다. 푸코가 문학을 했다는 것은 그가 문학적 표현을 즐겨 썼다거나 문학 평론에 밝았다는 점 때문이 아니다. 형용 모순이기는 하지만 푸코는 형이상학적 실증주의 또는 실증적 형이상학을 추구했기 때문에 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문학박사답게 전문적이고 실증적이면서도 상상력과 가치판단을 배제하지 않고 여러 담론을 포괄하면서도 아름다운 필치로 수놓은 문학을 했다.  


     이로써 사실보다는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다.  


ⓒ 웹진 <제3시대>


  1. 플라톤, 『국가』, 조우현 옮김, 올재, 2012, p.115 [본문으로]
  2. 플라톤, 같은 책, p.460 [본문으로]
  3. 플라톤, 같은 책, p.469 [본문으로]
  4. 프랑수아 도스, 『역사-성찰된 시간』, 김미겸 옮김, 동문선, 2001, p.11 [본문으로]
  5.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천병희 옮김, 숲, 2011, p.44 [본문으로]
  6. 투퀴디데스, 같은 책, p.44 [본문으로]
  7. 프랑수아 도스, 앞의 책, p.15 [본문으로]
  8.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9.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10.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0 [본문으로]
  11. 프랑수아 도스, 같은 책, p.21 [본문으로]
  12.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0, p.99 [본문으로]
  13. 김기봉, 같은 책, p.98 [본문으로]
  14. 김기봉, 같은 책, p.99 [본문으로]
  15.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임수길 옮김, 청하, 1999, pp.59~77 [본문으로]
  16. 존 H. 아널드, 『역사』, 이재만 옮김, 교유서가, 2015, p.91 [본문으로]
  17.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곽복희 옮김, 청년사, 1993, p.19 [본문으로]
  18. E·H 카, 같은 책, p.37 [본문으로]
  19. E·H 카, 앞의 책, p.96 [본문으로]
  20. E·H 카, 같은 책, p.135 [본문으로]
  21. 조르주 귀스도르프, 『신화와 형이상학』, 김점석 옮김, 문학동네, 2003, pp.330~331 [본문으로]
  22. 조르주 귀스도르프, 같은 책, p.321 [본문으로]
  23. 프리드리히 니체, 앞의 책, p.185 [본문으로]
  24.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김유동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1, p.57 [본문으로]
  25.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앞의 책, p.57 [본문으로]
  26. 미르치아 엘리아데, 『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 옮김, 이학사, 2003, p.149 [본문으로]
  27. 미르치아 엘리아데, 같은 책, p.152 [본문으로]
  28.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같은 책, p.68 [본문으로]
  29. 콜린 고든, 『권력과 자식-미셸푸코와의 대담』, 홍성민 옮김, 나남출판, 1991, p.167 [본문으로]
  30. 김기봉, 앞의 책, p.277 [본문으로]
  31. 이영남,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푸른역사, 2007, p.24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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