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5)

 

 






 

용산역 뒤편과 전자상가를 사이에 두고 국제업무지구 예정지를 둘러싼 가림막이다. 

용산역은 1899년 3.5평의 목조건물 완공으로 경인선 보통역으로서 역사를 개시한다. 

그 후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제는 한국을 거쳐 만주 전선까지 이르는 군용철도의 건설을 계획하는데 경의선 공사는 그 출발점이었다.  


1904년 육군임시철도도감을 조직하여 용산 일대의 거대한 땅을 수탈한다. 일제가 이른바 군용지라고 수탈한 철도역 주변의 땅은 300여 만 평. 사실 필요한 면적은 그 16분의 1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1906년 경의선 철도가 완성된 후 일제는 본격적으로 군사 관련 시설을 건설하는데 오늘 날 남대문 경찰서가 있는 자리에서부터 남산기슭 일대와 이태원, 그리고 욱천(지금의 만초천)부터 한강까지의 광활한 지역을 군용지로 헐값에 사들였다. 


용산 일대는 일본군과 일본인의 거리가 되어 ‘조선 내 일본’으로 불려졌고 일제 강압통치의 심장부로 변했다. 오늘날 용산의 동부이촌동에 일본인 타운이 형성된 것이 우연이 아닌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3.5평으로 시작한 용산역은 지금은 연면적 8만 2천 평 지하 3층 지상 9층의 거인이 되었고 용산역 앞, 한강로는 더 큰 거인이 들어섰고 용산역 뒤 전자랜드 편에도 무지막지한 덩치가 들어섰고 또 계속해서 들어서는 중이다. 단지 가림막 너머 흙 밭인 조차장 터만이 낮은 자세를 고르고 있다. 어느 시대엔 한강과 만초천이 범람을 거듭하던 모래 땅으로, 어느 시대엔 난데 없는 군용지로, 그리고 지금은 거대 빌딩을 뫼실 예정지로서 가림막 안 쪽엔 해가 다르게 나무들이 무성해 진다.

 


 

 

 


 


  

오종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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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4)

 

 





 

한강로... 

중구 봉래동 2가(서울역)에서 삼각지를 거쳐 동작구 본동(한강대교 남단)에 이르는 폭 40m, 길이 5,150m의 10차선 도로. 일제 강점기 명칭은 ‘한강통’ 조선시대 한양에서 삼남 지방으로 향하는 간선도로. 


그리고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빌딩 2009년 1월 19일. 그 후 용산이라는 명칭은 ‘참사’라는 말과 한 쌍이 되다. 무엇이 목숨을 앗아갈 다급함이었을까 7년을 주차장으로 돌리다가 이제야 가림막을 치고 건물이 올라간다. 그리하여 망각은 가속화 될 것인가.

 


 

 

 


 


  

오종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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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

 

 




 

서부이촌동 고가를 지나다 보면 폐허가 된 철도 조차장의 모습이 보인다. 물웅덩이며 시간과 비바람에 의한 공장식 건축물의 속도 빠른 해체가 선명하다. 어쩌자고 도시 한 복판의 저 너른 땅은 67년 전의 전쟁 자료 사진과 닮은 꼴 모습을 여전히 하고 있는 걸까.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철도 조차장은 용산역과 더불어 일제의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철도기지로서의 신용산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번화한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용산역 뒤 쪽, 이촌동과 청파로에 이르는 26만 평방미터의 거대한 덩치다.

 

 

전쟁이란게 원래 그런 건가 아님 이 땅의 전쟁이 더 그러한가. 1950년 6월 28일 새벽 800여명의 희생자를 낸 한강 인도교 폭파가 적군이 아닌 아군에 의한 것이듯 용산 조차장을 포함한 용산지역의 대대적 폭격역시 북한군이 아닌 미군에 의한 폭격이었다. UN군은 북한군의 군수물자 보급루트를 하는 용산역 구내와 철도 조차장을 폭격하여 북한군의 전쟁 수행능력을 떨어뜨리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군의 지폐인쇄를 막기 위해 용산구 용문동에 있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공장을 파괴하고자 했다. 1950년 7월 16일, 양 날개의 길이가 70미터에 달하는 B29편대 50기 이상이 서울, 특히나 용산지역을 융단 폭격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폭격에 의해 사망한 서울 시민은 4,250명, 부상자는 2,413명. 용산구만의 집계로는 사망자 1,589명, 부상자 842명으로 서울 전체의 1/3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들 사망자와 부상자 대부분은 바로 7월 16일 오후에 있던 폭격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지금은 가림막이 둘러쳐져 사람도 자동차도 불허한 채 오히려 도시 열기를 내리는 빈 공간으로 있지만 이내 자본의 융단 폭격을 맞을 터, 저 이질적인 공간에서 오늘도 눈을 떼지 못한다.
 

 


 

 

 


 


  

오종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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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2)

 

 



 

용산 어디에서나 거대한 가림 막은 하나의 풍경이다. 3년 전 서부이촌동에 이사 왔을 때 동네와 평행하게 둘러친 용산 국제 업무지구 개발지 가림 막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인상이었다. 도시의 흔한 가림막이 이 곳 만큼은 생경한 풍경이 된다. 2013년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는 부도났고 그로 인해 서부이촌동의 가림 막은 요란한 홍보문구가 새겨지지 않은 채 흰색 그대로 거대한 스크린처럼 버티고 서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국제 업무지구를 계획할 당시 지질을 조사해보니 땅 밑에 엄청난 양질의 모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이 한강이 만드는 모래가 퇴적하는 곳이 바로 이촌동이다. 치수가 어려웠던 시절 이촌동 사람들은 해 마다 물난리를 겪었고 동네를 잠시 떠나거나 일제에 의해 폐동되기도 했었다.(1925 을축년 홍수) 그러한 연유로 二村洞은 사실 옛 이름이 移村洞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살기 부적합한 곳, 계절에 따라 들고 나는 물길만이 수 만년을 주인으로 존재했을 곳에 도시 인구가 폭발하고 1960년대 용산 미군기지에서 이 곳에 쓰레기를 매립하자 넝마주의들이 모여들었고 또한 청계천에서 쫓겨난 무허가촌 사람들까지 밀려와 터를 잡게 되었다. 지금에야 한강 가까이 아파트를 지어 풍광을 독차지하는 비싼 모래땅이 되었지만 무허가 판자촌을 지어야 했던 그 때의 사람들은 집 짓고 살기 부적합 곳인 주인 없는 한강변에 살며 홍수 철에는 매 번 물길에 집을 내어 주어야 했었으리라. 몸 뉘일 곳 허락 받지 못하는, 존재가 무허가인 그들은 그 뒤로도 이촌동에서 상계동으로 상계동에서 성남으로 땅 한 평 점유하지 못 한 채 쫓겨 다녀야 했다. 공간 박탈의 역사가 移村洞이란 말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던 모래땅위에 곧 다가올 대박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새 하얀 얼굴을 한 가림막이 둘러쳐져 속히 자본의 이름이 덧칠해 지길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하얀 얼굴은 오히려 연극적이다.
 

 


 

 

 


 


  

오종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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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그 곳이 공사 중임을, 그 곳에 분명한 소유주가 존재함을 알리는 가림막은 추상화된 도시 공간을 걷는 거리산책자를 더더욱 둔감하게 만든다.

   2017년 질곡진 한국 현대사의 축도인 용산은 자본의 논리가 숨고르는 공간마다 중성의 흰 가림막을 세운다.


 

    벤야민에게 도시 공간은 여러 시대의 시간 층이 얽혀 있는 곳이듯이 용산에 거주하는 내게도 그 곳은 개인의 감각과 집단의 역사가 중성화를 거부하고 흰 '막' 위에 쓰여지는 곳이다. 

   

    그리하여 무언가가 완공되면 이내 사라질 막 위에, 그 임의의 면적에 기억과 시간을 소환한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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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어반복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부모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자연도감 속의 짐승들을 확인하러 가는 동물원은 원본과 복제의 전복을 상영함과 함께 사실 그런 동물과의 만남이 불가능함을 숨기는 거대한 무대이다.  

    세상 가운데 실재하는 유토피아로서의 동물원은 그 불가능함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생명의 가능성을 카피하고 가능성의 환경을 카피한다. 

    세계의 디즈니화는 경계의 무너짐을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일상 감각이다. 위계 판단은 철지난 것이다. 

    제는 먼지 한 톨 묻지 않는 매끄러운 이미지의 세계에 먼지 묻고 짐승 똥 내나는 동물원은 차라리 초기 복제 기술의 구수한 노스텔지어 풍 고색창연한 장소가 아닐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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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1. 솔직


    고딩 시절 내 지갑을 포함 한 학급 여러 명의 돈이 도난당했다. 굳은 표정의 담임 샘은 아이들 모두에게 눈감으라 한다. 그리고 돈을 훔쳐간 사람은 조용히 손들라 한다. 성과가 없자 모두를 책상위로 올라가게 한 다음 무릎 꿇고 눈감으라 한다. 그리고 훔쳐간 사람은 손들라 한다. 그래도 성과가 없자 솔직하게 손만 들면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한다. 역시 성과가 없자 우리는 매일 진짜 도둑 대신 책상위로 올라가 무릎 꿇고 솔직하지 못한 자들이 들어야 하는 훈계를 받아야 했다.  

얼마 전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엠넷의 <쇼미더머니>에서 프로듀서들이 이미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참가 래퍼에게 왜 굳이 이 경연에 나오게 됐냐고 묻자 ‘돈 많이 벌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리곤 프로듀서들의 칭찬 같은 반응이 나온다. ‘솔직하네!’ 


2. 쇼미더머니


    ‘지 지 지 지’, ‘쏘리 쏘리 쏘리 쏘리’... 고장난 녹음기 같은 아이돌들의 후크송에 비해서 래퍼들의 가사는 사람 냄새가 난다. 써 준대로 만들어 준대로 입혀 준대로 시키는 대로 인형놀이 같은 아이돌 시스템과는 다른 조금은 이질적인 토템이 작용한다고 해야 할까. 래퍼들이 직접 가사를 쓰고 라임을 짜고 개성이 담긴 플로우를 담아낸다.  

    속사포 같은 랩 테크닉만이 중요 한 게 아니라 ‘자기 서사’라는 문학적인 콘텐츠도 중요 자본이 된다. 그리고 ‘욕’과 ‘디스’는 힙합 문화만의 특이 구성물이 된다. 

사실 이 자기서사, 욕과 디스는 힙합이 대기업 인기 TV 음악 채널을 타고 안방으로 전해질 때 사람들에게 생경하게 느껴지는 대표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특정 계층의 하위문화로 시작된 대중음악들이 그렇듯이 아프로-아메리칸의 실존적 상황을 담아내고 에너지를 분출하기에 그것들은 최적화된 표현 방법일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한국이라는 환경으로 옮겨 왔을 때 남의 옷을 걸친 듯 어색 하냐 아님 어색 하지 않냐 이다. 당연히 갱스터야만, 흑인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 백인 래퍼 에미넴의 자전적 영화 <8 mile>에서 주인공 버니래빗 역을 맡은 에미넴은 극 중 흑인 래퍼 파파독과 랩 배틀을 한다. 버니래빗이 펼친 선공에 관중들은 열광하고 파파독은 그만 기가 눌려서 랩 배틀을 포기하고 만다. 버니래빗이 한 디스 내용인 즉 파파독이 유명 사립학교에 다녔고 그의 부모님은 잉꼬부부라는 것, 그리고 버니래빗 자신은 트레일러에서 살며 산전수전 다 겪은 백인 쓰레기라는 거다. 흑인이 백인 같고 백인이 흑인 같은 상황이다. 이 영화 장면만 보더라도 힙합 씬에서 그들만의 합의되고 상징화된 토템이 백인 래퍼에게 진정성이라는 힘을 부여 한 게 확실하다. 

 그러나 쇼미더머니에서는 무엇이 디스이고 무엇이 힙합의 에토스인지 알 길이 없다. 느닷없는 자기서사에 맥락 없이 디스한다. 가장 손쉽게 끌어 쓰는 서사는 성공해서 부와 명예를 누리겠다거나 부모님 이야기로 공감을 유도하거나 래퍼로서의 고독감 정도이다. 디스 또한 디스를 위한 디스 일 뿐 상징화된 공연으로서의 수준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그냥 서로 얼굴 붉히는, 그저 프로그램 흥행을 위한 선정적인 밑밥이 되고 만다.  

그래서 힙합 음악이 추구하는 힙합성의 부재 그리고 힙합만의 고유한 콘텐츠가 무엇인지에 대한 상징화 과정의 부재와 어색함을 메우려 손안대고 코 풀 수 있는 키워드로 내 놓은 것이 ‘솔직함’이란 암묵적 부유물이다. 

내 안에서 끓고 있는 욕구와 질투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로 뭔가 용기 있고 자유를 향유하는 거라고, 그것이 힙합의 진정성인양 몰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솔직함은 진정성이 아니다. 그것은 손만 들면 도둑질을 없던 것으로 해 주겠다던 고딩 시절 기억만큼이나 벌어진 상황과는 매치되지 않는다. 

 개인의 의미, 공통의 가치체계에 대한 성찰이 동시에 전제 되어야 진정성이다. 말 그대로 솔직함 자체는 무색무취하다. 성찰이 따르지 않는 솔직함이 어떻게 진정성이 될 수 있으며 무슨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식의 솔직함 위에 자신의 찌질함에 대한 막무가내 식 긍정, 혹은 타인에 대한 무시와 혐오가 담겨지면 영락없는 일베 식 폭력이 되는 거다. 쇼미더머니 출신 래퍼 블랙넛의 랩은 자신의 열등감의 도를 넘은 표현이 타인을 향한 흉기가 되는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욕구를 숨기지 않고 까발려서 자유와 권력을 얻는 것? 개콘 식 유행어를 빌리자면 그건 순 ‘기분 탓’이다. 기분 상 자유롭고 기분 상 파워맨이 된다. 하지만 실상은 시스템의 노예일 뿐이다. 

    철학자 한병철에 의하면 ‘기분은 합리성을 대신하여 자유로운 주체성의 표현으로 환영 받는다. 신자유주의적 권력의 기술은 바로 이러한 자유로운 주체성을 착취한다. 사물은 무한히 소비할 수 없지만 기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기분 탓에 자유로워진 존재는 감성 경영의 지휘아래 놓여지는 감성 소비자가 될 뿐이다. ‘신자유적 심리정치는 이러한 반성 이전의 층위에서 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기분을 장악한다. 심리정치는 기분을 통해 인격 깊숙한 부분에 까지 개입한다.’ 

    자유로운 기분, 권력을 얻은 기분의 통로는 필연적으로 탈정치로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힙합이 갖는 이질적 반항성, 직접성과 즉흥성, 배틀과 디스라는 용광로급 에너지를 블링블링한 금도금 목걸이나 만들고 인신공격 정도의 찌질 험담으로 디스를 채우는 것 이상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철저하게 장내에서 치고받고 경쟁한다. 힙합문화의 특징인 크루 간의 음악적 조화를 지향하는 대신 실력이 떨어지는 래퍼, 실수를 연발하거나 멘탈이 약한 동료 래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 뜬금없는 사적 디스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선택이라는 약육강식 포맷으로 래퍼들의 자존감을 소진 시킨다. 

    아마도 쇼미더머니는 힙합의 사회적 에너지를 탈진 시키려 고안된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철저하게 모래알 래퍼로 만들기 ... 

    하지만 어쨌거나 집단 왕자, 공주병 환자 같은 보이 그룹, 걸 그룹보단 래퍼들의 스웨그에 희망을 걸고 싶다. 부와 명예와 섹스를 숭배하는 랩이 넘쳐나도 흑인 게토에서 태어난 힙합이라는 질긴 모태성은 언제고 발현될 수 있으니까.  

    락이 저항성을, 포크가 민중성의 콘텐츠로 사람들 맘속에 각인 되어 있듯이 말이다.  

    Show me the swag! 


* 좌파 티를 입은 좌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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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불당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며칠 전에 딸내미가 말 한대로 정말 아파트 현관 근처 화단에 

 불당이 차려져 있었다. 



    화단이라 하기엔 관심간 흔적, 손간 흔적 없는, 

그나마 평소엔 주차한 차량에 가려 눈에 띄지도 않는 

초라한 장소에 ‘떠어억!’  


    우리 식구 셋이 집에 들어가는 길에 짧은 토론이 시작됐다. 

“누가 갔다 놨을까?” “버린 거야? 차린 거야?” “노인이겠지?” 



    그러자 남편이 시니컬하게 정리한다. 

“집에 두자니 궁상맞고 버리자니 찜찜하고 그래서 택한 곳이 화단이지!”  


    자세히 보니 손바닥만 한 크기에 재질도 저렴이 수준이고 

 여기저기 깨져 있는 것이 바로 옆 역시 버려진 작은 화분과 정확히 닮은꼴이다. 

추측하자면 버리는 죄책감에 대한 면피용이 저 불상의 실존이다. 

버린 것도 아니고 안 버린 것도 아닌 어디쯤에 

 중생의 평온이 걸쳐있도록 하는 위치. 


    단지 옆에 있는 화분보다 불상이 화두가 되는 이유는 

종교적 아이콘이라는 형상이 

버리는 자에게도 지나가다 보는 자에게도 재질 너머의 무엇으로 보이게 하고 

자꾸만 의미를 생산하고 평온을 생산하고 불안을 생산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것이 어디 종교적 아이콘만의 것이랴! 

사람이 허구로 만드는 모든 것이, 아니 사람이 만드는 모든 것이 

이름 없던 욕망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아닐까! 

종교가 덧붙일 게 많은 것일 뿐. 



    어찌됐든 아파트 화단 미니 불상의 미소는 ... 

석굴암 본존불보다 쎄다! 

입고리가 셔어언 하게 올라갔다! 

미소 질듯 말듯이 아니라 확실한 미소다! 

그게 바로 고급 엘리트 예술과 다른 키치의 전형이라 해도 

확대해서 보니 아우라 있네! 

게다가 부처님 어깨너머 솟아오른 봉오리여! 

여름 한나절 만에 키 크는 힘이라니 

이거 우담바라보다 신비한 거 아니야!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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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시뮬라크르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동물


    동물권 (animal rights)을 지지하고 녹색당을 지지하며 동물원의 폐지를 주장하고 반려견의 엄마이자 육식을 서슴없이 일삼는 내가 카메라를 챙겨 동물원으로 향했던 그 날 하늘은 말하기도 힘들 만큼 파랬다.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기 있다.”라는 보드리야르의 문장이 내 동물원 행의 최종결론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표현하기조차 힘든 파란 하늘이 버스타고 가는 내내 불길했었다.  

    사회에 존재하는 일종의 이형 공간을 찍고 싶어 일주일 먼저 다녀온 과천 동물원에 비해 어린이 대공원은 규모가 작은 만큼 팬시 제품을 모아 놓은 상점처럼 예쁘장하기만 해서 원하는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동물은... 동물원 동물을 어찌 쉽게 찍을 수 있을까. 육식하는 동물 애호가가 동물원에 사진 찍으러 갔으니 죄책감과 연민과 분노가 뒤섞여 허우적대기에 바빴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녀가 어렸을 적하는 관례인 ‘행복한 가족 나들이’의 짐을 벗고 혼자 하는 동물원 관람이기에 ‘가족’이라는 행복해야 만하는 코드도 떼고 ‘행복’이라는 가족의 이상도 뗀, 그 순간 불행해도 그만이고 이상을 상실해도 그만인 내 맘대로의 동물원 관람이었으니 말이다.  

    평일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유모차 부대들이 많았다. 꽃피는 계절 사람 없는 동물원을 기대한 내가 바보지, 예의 행복한 유모차 부대들 틈에서 나는 마치 시커먼 저승사자가 된 느낌이었다.  

    데려갈 날짜를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지전능하고 시크한 검은 저승사자처럼 아주 최소의 움직임과 시선으로 인간계와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저 덩치가 동물도감에서 보았던 그 코끼리라고, 저 큰 고양이가 TV에서 보았던 표범이라고 소리 지른다.  

    우리 벽 쪽 끝에서 하염없이 잠만 자는 오리지날 동물들은 ‘동물도감’처럼 실감나지 않는다. 우리 안에서 움직이더라도 일정 거리를 병리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동물들은 ‘TV 동물의 세계’에서처럼 용맹스럽지 않다.  

    당황한 부모들은 ‘보이니?’ ‘기억나니?’ ‘그게 저기 있네!’ 하면서 자꾸만, 집에서 손가락 꼭꼭 집어 가르쳐 주던 미디어 속의 동물 이미지를 상기 시키려 애를 쓴다.  

    동물원 학습은 아이들이 ‘안 보여!’ 하면 실패고 ‘어, 보여!’하면 성공이고 ‘야! 표범이다!’ 하면 대 성공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미디어’이다.   


벚꽃


    과천 대공원에서와는 달리 일주일 차이로 어린이 대공원엔 벚꽃이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뮬라크르 세상인 동물원에 새하얀 벚꽃과 연녹색 나뭇잎들이 더해지니 그냥 완벽한 무대 장치였다.  

    너무 예뻐서, 너무 고와서 쳐다보기 민망했다.   

    그리고 일찍부터 나를 불길하게 했던 그 파란 하늘이 동물원 풍경을 아예 그림으로 만들어 놓았다.  

    색종이처럼 파란 하늘에 팝콘처럼 하얀 벚꽃, 이런 비유가 저렴하다면 그냥 파란 하늘에 하얀 벚꽃이 너무나 예쁜데 왜 민망해야 했을까. 왜 즐기질 못했을까.  

    파란 하늘에 벚꽃이 겹쳐지는 혼이 빠지도록 예쁜 모습에 왜 나는 다시 저승사자가 되어 인간계와 더불어 천상계와도 거리를 두고 말았던 걸까.  

    나 역시 그 기준은 ‘미디어’다.  

    카메라로 찍어 사진이란 결과물로 보면 누구나 예뻐하는 모습은 진부한 이미지로 남는다. 그러니 한 번 더 꼬인 개념을 첨가 하던지 최소한 진부함을 상쇄할 무언가로 대중적 안목 이상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파란 하늘에 하얀 벚꽃은 내공 없는 찍사에겐 민망한 것이 된다. 



무대



    맨 눈으로 보면 황홀한 것이 카메라를 통하면 진부한 것이 되는 반전에 겁을 내어 일 년에 단 며칠 보여주는 벚꽃의 요기로움을 외면했나보다.  

    며칠 사이 꽃이 졌다. 미세먼지로 하늘도 뿌옇다. 

    하지만 내겐 민망함을 무릅쓰고 겨우 찍었던 벚꽃 사진이 두 장 남아있다. 

    다행인건가.   


    그런데 그렇게나 크고 아름다운 동물원 동물들은 어디에 있던 애들일까. 

    아이들이 본 대로 동물도감에 있던 애들일까. 

    그럼 동물도감이 오리지날인가.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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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원리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쌍문동


  1988년 겨울 쌍문동 아파트에 입주하여 그 곳 주민이 되고 결혼 후 또 쌍문동서 애 키우고 살던 나로서는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가 시작되고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한 인기를 얻으면서 드라마 속에서 또 각종 매체에서 ‘쌍문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불려 질 때 마다 마치 내 이름이 공식적으로 불려지고 회자 되는 듯한 어색함을 느끼곤 했다. 

  응팔 여주인공 덕선이가 다니던 쌍문 여고의 모티브 격인 정의여고는 딸아이가 다니던 곳이고 드라마 중간 중간 방학동이니 광산슈퍼 사거리 같은 지명과 감포 면옥, 20-2번 버스 등 골동품 같은 쌍문동 아이템들이 TV속에서 나오니 왜 아니 신기 할까. 쌍문동서 배출한 가장 걸출한 인물이 ‘아기 공룡 둘리’일 뿐인, 언제 주목 한번 받아 보지 못한 서울 북쪽 끝 변두리 일 뿐이었던 곳이었으니 세간의 주목이 어색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응팔의 여주인공 덕선이가 성인이 된 후 결혼한 불알친구 택이와 나누는 대화에서 언제 우리 한번 쌍문동 찾아가 보자는 택이의 제안에 이제 그 동네는 더는 옛날 모습이 아니라며 주상 복합 건물이 들어서고 완전 다른 동네가 됐다는 덕선이의 대답은 정말 어색함을 넘어 무안하기 까지 했다. 이유인 즉 드라마가 재현했던 쌍문동 골목은 그야말로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금 쌍문동에 있는 아파트나 주상 복합 건물은 덕선이가 살던 그 때도 이미 있었고 다른 말로 하면 그 만큼 오래된 것들이고 다른 뭔가가 더 이상 들어서지도 않았고 그래서 쌍문동은 목동도 분당도 판교도 아닌 그냥 조용한 쌍문동일 뿐이다.  

   드라마 마지막 회에 덕선이네가 쌍문동 지하 셋방을 떠나면서 같은 동네 아파트로 이사 가지 않고 판교로 이사 갔으니 이제 덕선이네는 여보란 듯이 살고 있을 게다. 쌍문동 주민들이 하는 우스갯소리로 쌍문동은 한 번 들어오면 못나가는 곳이라 말하곤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잘나가는 동네 집값이 천정 높은 줄 모르고 고공행진 하는 동안 쌍문동 집값은 제 자리 걸음만 했으니 서울 주소 딱지 붙이고 시골 땅값 내역으로 사는 곳이기에 쌍문동 집값으론 서울 번듯한 곳 어디에도 이사 갈 곳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고 교육에 관심을 갖던 가정에선 으레 아이가 성장하기 시작하면 좀 더 힘 보태서 이사 가는 곳이 큰 학원가가 형성된 중계동이었고 교육에 올인 하겠다고 작정한 가정은 집 팔고 돈 더 보태서 대치동 전세로 가는 것이 90년대 중 후반부터 내가 겪던 쌍문동의 풍경이었다. 지금은 그 마저도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아이를 키우며 그야말로 쌍문동에 남겨진 사람들은 일종의 패배감을 느꼈고 엄마들끼리의 모임에서도 ‘쌍문동 블랙홀’ 같은 자조 섞인 농담들이 오가 곤 했었다. 남겨진 나 같은 몇몇 극성 엄마들은 자녀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무섭게 차로 삼사십 분 걸리는 중계동 학원으로 아이를 내 돌렸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비교적 조용했다. 그렇게 사는 내내 쌍문동은 대한민국 뜨거운 화두인 ‘강남’의 그림자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덕에 늘 고요함 그 자체였다. 

    물론 나의 쌍문동 이야기는 어디 까지나 내가 겪었던 좁은 상황 안에서의 이야기 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쌍문동이 좋았다. 내노라 하는 대형마트는 하나 없어도 아기자기한 상권이 없는 거 없이 다 갖춰 있고 도봉산에 우이동에 연산군 묘에 청심천에 솔밭에 집에서 슬리퍼 끌고 나와도 산책할 수 있는 곳이 넘쳐나는 곳이다. 나는 그 곳에 그만 정이 들 때로 들어서 며칠 여행을 갔다가 집에 올 때면 멀 찌기 도봉산이 보이기만 해도 가슴 언저리가 따뜻해 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반면 늘 그 곳을 떠나고도 싶었다. 누가 대놓고 뭐라 한 적은 없었지만 쌍문동에 산다고 말했을 때 거기가 어디냐고 물을 때면 수유리 지나서 의정부 가기 전에 있다고, 서울이란 지역 내에서의 쌍문동 좌표를 적나라하게 말해야 할 때 상대적으로 중심가에서 얼마나 먼가를 고백해야 할 때 나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들어오곤 했다.  

    드라마 속에서 덕선이 언니 서울대생 보라가 학교 도서실서 깜빡 시간을 잊고 늦게 까지 공부하다가 고딩 남친 기다리는 쌍문동 골목으로 헐레벌떡 뛰어가는 모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쌍문동서 서울대는 끝에서 끝 그것도 대각선으로 끝에서 끝이다. 족히 두 시간은 걸린다!

     강북 아주 많이 위 쪽 주민들에겐 자기 동네 이름에 스스로 변두리라는 이미지를 얹고 어느 정도의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1988년 쌍문동 아파트에 입주하던 시절을 떠 올릴 때면 꼭 생각나는 두 가지 그림이 있다. 하나는 우리 집 뒤 베란다서 보면 주변이 온통 아파트 공사판이었던 현장 한가운데 오두막 같은 허름한 집 한 채가 섬처럼 덩그러니 솟아있던 모습과 다른 하나는, 상가 건축현장 포크레인으로 깎아내린 작은 동산에 반쯤은 벼랑 밖으로 드러나고 반쯤은 땅속에 박혀있던 관짝이었다. 공사 중에 예상치 못하게 관을 건드리면서 꽤 오랫동안 작업은 중단되었고 그냥 그대로 시커먼 관짝이 대로변 언덕에 반만 박힌 모습은 정말 그로테스크했다. 

     섬처럼 남아 있던 허름한 집 한 채와 벼랑에 박혀있던 시커먼 관짝은 차라리 그냥 한 모습 같았다. 마치 아주 어렸을 적 아이들이 흙더미를 쌓아 단단하게 두드린 후 꼭대기에 긴 나뭇가지 하나 꽂아 놓고 한 사람 씩 번갈아가며 흙을 최대한 많이 씩 퍼 가다가 나뭇가지를 쓰러트리는 사람이 지는 흙 파기 놀이를 닮았다.

     조금만 더 흙을 퍼내면 쓰러 질 수밖에 없는, 안 쓰러지면 계속 파야 되는 가느다란 나뭇가지의 모습이 연상되었고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집을 짓고 이익을 맛보려는 공급자와 소비자에게 홀로 남은 집 한 채와 관짝은 그저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는 약삭 빠른 땡깡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1988년 쌍문동 봉황당 골목의 따스한 환타지는 적어도 쌍문동 아파트 현장에는 전무했다.


서부이촌동


    어찌어찌해서 지금은 용산구에 산다. 정확히 말하면 이촌2동 즉 서부이촌동에 산다. 한강대교 동쪽에 있는 이촌1동 그러니까 동부이촌동과 한강대교 서쪽 서부이촌동은 행정 명칭 상 같은 동네이지 사실상 같은 동네라 할 수도 없다. 무자비한 도로에 가로 막힌 것도 그렇고 부촌인 동부 이촌동의 편리함에 서부 이촌동을 비교 할 수 없다. 새남터 성지가 말해 주듯 조선시대 사형 터 여서 풍수 지리적으로 뭔가 일이 꼬이는 걸까 재개발도 안 풀리고 이곳은 묘한 분위기가 물씬하다. 변변한 가게나 병원도 없고 생활하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정말 별천지같은 곳이다. 동네 골목 구석구석 도저히 서울이 아니고 2000년대가 아니다. 불발된 재개발을 증명하는 거인 같은 가림 막들이 몇 킬로미터 씩 둘러 쳐져있고 굉음을 내는 한강철교 밑과 다듬지 않은 한강 변 들판이 내게는 영감을 주는 터전 처럼 느껴진다. 사진기 하나 들고 나서면 서부이촌동을 즐거워하기에 흡족하다. 부디 재개발의 광풍이 더디기를 부디 한강변에 잔디를 깔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서부이촌동의 주민들도 서울의 중앙에 있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게 있나보다. 서울하고도 한 참이나 북쪽 쌍문동 부근의 주민들처럼 이곳의 주민들도 동네 이름에 스스로 무엇을 얹고야 마는 걸까 어느 택시 기사의 이야기인즉 주말 늦은 시간이나 연말 늦은 시간처럼 택시 잡기 어려울 때에 차창 밖에서 동네 이름을 외치는 손님들 중에 동부 이촌동 사람은 “동부 이촌동!”이라 외치고 서부 이촌동 사람은 “이촌동!”이라 외친다고 한다. 어떻게든 구별하고 싶은 쪽과 어떻게든 묻어가고 싶은 심리를 그 택시 기사는 간파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물어봐도 동부에는 없고 서부에는 누릴 수 있는 게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불꽃 축제다. 강 건너편에 63빌딩이 있는 덕에 불꽃놀이 명당은 서부다. 그런데 지난 가을 기대했던 뻑지근한 불꽃쇼가 벌어지고 어떻게들 명당인줄 알고 모여 드는지 아파트 앞 강변 명당자리에 자리 잡고 텐트 쳤던 벌떼같은 구경꾼들이 빠져나가자 처녀지 같던 들판이 그만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억새 하나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폭격 맞은 벌판 꼴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쓰러진 억새와 비교할 수 없는 비극이 더 있었으니 축제를 위한 시설물들을 강위에 설치하던 조명 설치 업체 직원이 조명 장비를 옮기다가 그만 강에 빠져 익사한 사건이다. 더욱이 그의 시신은 불꽃축제가 끝난 다음 날 63 빌딩 인근 강변에서 발견되었다. 


* 누구의 꽃상여인가

 

    더 먼 곳으로 흘러가지도 않고 그가 빠진 그 곳 근처 그대로 시신은 맴돌았을 것이고 그 곳 위에서 고스란히 행사는 당연한 듯 진행되고 우리는 그의 주검을 물속에 두고서 화려한 불꽃 쑈에 환호하고 즐거워했던 것이다. 

    뉴스를 접하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식은땀이 흘렀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불꽃 보며 지르던 비명과 웃음은 다 무엇인가. 축제를 준비하다 죽은 주검을 찾기도 전에 그 위에서 열리는 것이 축제라고 할 수 있는가. 유가족에게 그것은 분명히 가슴을 찢고 고막을 찢는 악마의 진혼곡이었을 터 내가 지른 비명이 자꾸만 내 귀에 다시 되 돌아왔다. 


상대성원리


    무엇이 축제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가. 혹은 무엇이 흙 파기 게임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가. 기어이 주검 위에서 불꽃을 터뜨리고 보금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땡깡쟁이로 모는 이 시스템은 무엇인가.

    세상은 온통 상대적 박탈감이란 신 빈곤의 늪에서 허덕인다. 그것은 무시하기도 버거운 무게로 현실적 고통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신 빈곤의 피해자들은 축제나 게임을 멈출 생각이 없다. 분노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내가 나보다 잘난 상대 때문에 초라하듯 어느 순간 나보다 못난 상대 때문에 내가 빛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한 상대적 자리가 바뀌길 바랄 뿐이지 시스템에 불만 없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못 먹어도 고라는 말처럼 순응하지 않고 일단 들이 받는 기질이 있다고, 그런 아웃사이더의 무모함과 패기가 가까운 일본과는 다른 면이라는 말을 제법 했었다. 그런 말들 속에는 고래 힘줄 같은 한국의 에너지를 긍정하는 뜻이 담겨 있었는데 요즘 만들어지는 자기 혐오적 유행어에는 극단적인 무력감만 느껴질 뿐이다. 상대적 하층에 속한 내 위치만 불행할 뿐인 거다. 그런 상대적 피해자 코스프레는 죽음이라는 ‘절대’를 보지 못하게 한다. 

    누가 죽어 나가도 누가 터전을 유린당해도 번쩍이는 불꽃 축제와 흙 파기 게임이 이 세상 전부이자 자연으로 알고 거침없이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수긍한다. 

    그리고는 응팔의 마지막 회를 넘기며 허망하게 한 마디 남기는 것이다. 


    “덕선이네가 판교로 이사 가듯 나도 그 때 그랬어야 했었는데! 아이고 내 팔자야!”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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