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2)

 

 



 

용산 어디에서나 거대한 가림 막은 하나의 풍경이다. 3년 전 서부이촌동에 이사 왔을 때 동네와 평행하게 둘러친 용산 국제 업무지구 개발지 가림 막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인상이었다. 도시의 흔한 가림막이 이 곳 만큼은 생경한 풍경이 된다. 2013년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는 부도났고 그로 인해 서부이촌동의 가림 막은 요란한 홍보문구가 새겨지지 않은 채 흰색 그대로 거대한 스크린처럼 버티고 서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국제 업무지구를 계획할 당시 지질을 조사해보니 땅 밑에 엄청난 양질의 모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삼스러울 것도 없는 것이 한강이 만드는 모래가 퇴적하는 곳이 바로 이촌동이다. 치수가 어려웠던 시절 이촌동 사람들은 해 마다 물난리를 겪었고 동네를 잠시 떠나거나 일제에 의해 폐동되기도 했었다.(1925 을축년 홍수) 그러한 연유로 二村洞은 사실 옛 이름이 移村洞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살기 부적합한 곳, 계절에 따라 들고 나는 물길만이 수 만년을 주인으로 존재했을 곳에 도시 인구가 폭발하고 1960년대 용산 미군기지에서 이 곳에 쓰레기를 매립하자 넝마주의들이 모여들었고 또한 청계천에서 쫓겨난 무허가촌 사람들까지 밀려와 터를 잡게 되었다. 지금에야 한강 가까이 아파트를 지어 풍광을 독차지하는 비싼 모래땅이 되었지만 무허가 판자촌을 지어야 했던 그 때의 사람들은 집 짓고 살기 부적합 곳인 주인 없는 한강변에 살며 홍수 철에는 매 번 물길에 집을 내어 주어야 했었으리라. 몸 뉘일 곳 허락 받지 못하는, 존재가 무허가인 그들은 그 뒤로도 이촌동에서 상계동으로 상계동에서 성남으로 땅 한 평 점유하지 못 한 채 쫓겨 다녀야 했다. 공간 박탈의 역사가 移村洞이란 말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던 모래땅위에 곧 다가올 대박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새 하얀 얼굴을 한 가림막이 둘러쳐져 속히 자본의 이름이 덧칠해 지길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하얀 얼굴은 오히려 연극적이다.
 

 


 

 

 


 


  

오종희 作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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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그 곳이 공사 중임을, 그 곳에 분명한 소유주가 존재함을 알리는 가림막은 추상화된 도시 공간을 걷는 거리산책자를 더더욱 둔감하게 만든다.

   2017년 질곡진 한국 현대사의 축도인 용산은 자본의 논리가 숨고르는 공간마다 중성의 흰 가림막을 세운다.


 

    벤야민에게 도시 공간은 여러 시대의 시간 층이 얽혀 있는 곳이듯이 용산에 거주하는 내게도 그 곳은 개인의 감각과 집단의 역사가 중성화를 거부하고 흰 '막' 위에 쓰여지는 곳이다. 

   

    그리하여 무언가가 완공되면 이내 사라질 막 위에, 그 임의의 면적에 기억과 시간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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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어반복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부모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자연도감 속의 짐승들을 확인하러 가는 동물원은 원본과 복제의 전복을 상영함과 함께 사실 그런 동물과의 만남이 불가능함을 숨기는 거대한 무대이다.  

    세상 가운데 실재하는 유토피아로서의 동물원은 그 불가능함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생명의 가능성을 카피하고 가능성의 환경을 카피한다. 

    세계의 디즈니화는 경계의 무너짐을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일상 감각이다. 위계 판단은 철지난 것이다. 

    제는 먼지 한 톨 묻지 않는 매끄러운 이미지의 세계에 먼지 묻고 짐승 똥 내나는 동물원은 차라리 초기 복제 기술의 구수한 노스텔지어 풍 고색창연한 장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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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 me the swag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1. 솔직


    고딩 시절 내 지갑을 포함 한 학급 여러 명의 돈이 도난당했다. 굳은 표정의 담임 샘은 아이들 모두에게 눈감으라 한다. 그리고 돈을 훔쳐간 사람은 조용히 손들라 한다. 성과가 없자 모두를 책상위로 올라가게 한 다음 무릎 꿇고 눈감으라 한다. 그리고 훔쳐간 사람은 손들라 한다. 그래도 성과가 없자 솔직하게 손만 들면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한다. 역시 성과가 없자 우리는 매일 진짜 도둑 대신 책상위로 올라가 무릎 꿇고 솔직하지 못한 자들이 들어야 하는 훈계를 받아야 했다.  

얼마 전 힙합 경연 프로그램인 엠넷의 <쇼미더머니>에서 프로듀서들이 이미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참가 래퍼에게 왜 굳이 이 경연에 나오게 됐냐고 묻자 ‘돈 많이 벌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리곤 프로듀서들의 칭찬 같은 반응이 나온다. ‘솔직하네!’ 


2. 쇼미더머니


    ‘지 지 지 지’, ‘쏘리 쏘리 쏘리 쏘리’... 고장난 녹음기 같은 아이돌들의 후크송에 비해서 래퍼들의 가사는 사람 냄새가 난다. 써 준대로 만들어 준대로 입혀 준대로 시키는 대로 인형놀이 같은 아이돌 시스템과는 다른 조금은 이질적인 토템이 작용한다고 해야 할까. 래퍼들이 직접 가사를 쓰고 라임을 짜고 개성이 담긴 플로우를 담아낸다.  

    속사포 같은 랩 테크닉만이 중요 한 게 아니라 ‘자기 서사’라는 문학적인 콘텐츠도 중요 자본이 된다. 그리고 ‘욕’과 ‘디스’는 힙합 문화만의 특이 구성물이 된다. 

사실 이 자기서사, 욕과 디스는 힙합이 대기업 인기 TV 음악 채널을 타고 안방으로 전해질 때 사람들에게 생경하게 느껴지는 대표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특정 계층의 하위문화로 시작된 대중음악들이 그렇듯이 아프로-아메리칸의 실존적 상황을 담아내고 에너지를 분출하기에 그것들은 최적화된 표현 방법일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한국이라는 환경으로 옮겨 왔을 때 남의 옷을 걸친 듯 어색 하냐 아님 어색 하지 않냐 이다. 당연히 갱스터야만, 흑인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 백인 래퍼 에미넴의 자전적 영화 <8 mile>에서 주인공 버니래빗 역을 맡은 에미넴은 극 중 흑인 래퍼 파파독과 랩 배틀을 한다. 버니래빗이 펼친 선공에 관중들은 열광하고 파파독은 그만 기가 눌려서 랩 배틀을 포기하고 만다. 버니래빗이 한 디스 내용인 즉 파파독이 유명 사립학교에 다녔고 그의 부모님은 잉꼬부부라는 것, 그리고 버니래빗 자신은 트레일러에서 살며 산전수전 다 겪은 백인 쓰레기라는 거다. 흑인이 백인 같고 백인이 흑인 같은 상황이다. 이 영화 장면만 보더라도 힙합 씬에서 그들만의 합의되고 상징화된 토템이 백인 래퍼에게 진정성이라는 힘을 부여 한 게 확실하다. 

 그러나 쇼미더머니에서는 무엇이 디스이고 무엇이 힙합의 에토스인지 알 길이 없다. 느닷없는 자기서사에 맥락 없이 디스한다. 가장 손쉽게 끌어 쓰는 서사는 성공해서 부와 명예를 누리겠다거나 부모님 이야기로 공감을 유도하거나 래퍼로서의 고독감 정도이다. 디스 또한 디스를 위한 디스 일 뿐 상징화된 공연으로서의 수준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그냥 서로 얼굴 붉히는, 그저 프로그램 흥행을 위한 선정적인 밑밥이 되고 만다.  

그래서 힙합 음악이 추구하는 힙합성의 부재 그리고 힙합만의 고유한 콘텐츠가 무엇인지에 대한 상징화 과정의 부재와 어색함을 메우려 손안대고 코 풀 수 있는 키워드로 내 놓은 것이 ‘솔직함’이란 암묵적 부유물이다. 

내 안에서 끓고 있는 욕구와 질투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로 뭔가 용기 있고 자유를 향유하는 거라고, 그것이 힙합의 진정성인양 몰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솔직함은 진정성이 아니다. 그것은 손만 들면 도둑질을 없던 것으로 해 주겠다던 고딩 시절 기억만큼이나 벌어진 상황과는 매치되지 않는다. 

 개인의 의미, 공통의 가치체계에 대한 성찰이 동시에 전제 되어야 진정성이다. 말 그대로 솔직함 자체는 무색무취하다. 성찰이 따르지 않는 솔직함이 어떻게 진정성이 될 수 있으며 무슨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식의 솔직함 위에 자신의 찌질함에 대한 막무가내 식 긍정, 혹은 타인에 대한 무시와 혐오가 담겨지면 영락없는 일베 식 폭력이 되는 거다. 쇼미더머니 출신 래퍼 블랙넛의 랩은 자신의 열등감의 도를 넘은 표현이 타인을 향한 흉기가 되는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욕구를 숨기지 않고 까발려서 자유와 권력을 얻는 것? 개콘 식 유행어를 빌리자면 그건 순 ‘기분 탓’이다. 기분 상 자유롭고 기분 상 파워맨이 된다. 하지만 실상은 시스템의 노예일 뿐이다. 

    철학자 한병철에 의하면 ‘기분은 합리성을 대신하여 자유로운 주체성의 표현으로 환영 받는다. 신자유주의적 권력의 기술은 바로 이러한 자유로운 주체성을 착취한다. 사물은 무한히 소비할 수 없지만 기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기분 탓에 자유로워진 존재는 감성 경영의 지휘아래 놓여지는 감성 소비자가 될 뿐이다. ‘신자유적 심리정치는 이러한 반성 이전의 층위에서 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기분을 장악한다. 심리정치는 기분을 통해 인격 깊숙한 부분에 까지 개입한다.’ 

    자유로운 기분, 권력을 얻은 기분의 통로는 필연적으로 탈정치로 이어져 있다. 

    그리하여 힙합이 갖는 이질적 반항성, 직접성과 즉흥성, 배틀과 디스라는 용광로급 에너지를 블링블링한 금도금 목걸이나 만들고 인신공격 정도의 찌질 험담으로 디스를 채우는 것 이상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철저하게 장내에서 치고받고 경쟁한다. 힙합문화의 특징인 크루 간의 음악적 조화를 지향하는 대신 실력이 떨어지는 래퍼, 실수를 연발하거나 멘탈이 약한 동료 래퍼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 뜬금없는 사적 디스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선택이라는 약육강식 포맷으로 래퍼들의 자존감을 소진 시킨다. 

    아마도 쇼미더머니는 힙합의 사회적 에너지를 탈진 시키려 고안된 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철저하게 모래알 래퍼로 만들기 ... 

    하지만 어쨌거나 집단 왕자, 공주병 환자 같은 보이 그룹, 걸 그룹보단 래퍼들의 스웨그에 희망을 걸고 싶다. 부와 명예와 섹스를 숭배하는 랩이 넘쳐나도 흑인 게토에서 태어난 힙합이라는 질긴 모태성은 언제고 발현될 수 있으니까.  

    락이 저항성을, 포크가 민중성의 콘텐츠로 사람들 맘속에 각인 되어 있듯이 말이다.  

    Show me the swag! 


* 좌파 티를 입은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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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불당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며칠 전에 딸내미가 말 한대로 정말 아파트 현관 근처 화단에 

 불당이 차려져 있었다. 



    화단이라 하기엔 관심간 흔적, 손간 흔적 없는, 

그나마 평소엔 주차한 차량에 가려 눈에 띄지도 않는 

초라한 장소에 ‘떠어억!’  


    우리 식구 셋이 집에 들어가는 길에 짧은 토론이 시작됐다. 

“누가 갔다 놨을까?” “버린 거야? 차린 거야?” “노인이겠지?” 



    그러자 남편이 시니컬하게 정리한다. 

“집에 두자니 궁상맞고 버리자니 찜찜하고 그래서 택한 곳이 화단이지!”  


    자세히 보니 손바닥만 한 크기에 재질도 저렴이 수준이고 

 여기저기 깨져 있는 것이 바로 옆 역시 버려진 작은 화분과 정확히 닮은꼴이다. 

추측하자면 버리는 죄책감에 대한 면피용이 저 불상의 실존이다. 

버린 것도 아니고 안 버린 것도 아닌 어디쯤에 

 중생의 평온이 걸쳐있도록 하는 위치. 


    단지 옆에 있는 화분보다 불상이 화두가 되는 이유는 

종교적 아이콘이라는 형상이 

버리는 자에게도 지나가다 보는 자에게도 재질 너머의 무엇으로 보이게 하고 

자꾸만 의미를 생산하고 평온을 생산하고 불안을 생산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것이 어디 종교적 아이콘만의 것이랴! 

사람이 허구로 만드는 모든 것이, 아니 사람이 만드는 모든 것이 

이름 없던 욕망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아닐까! 

종교가 덧붙일 게 많은 것일 뿐. 



    어찌됐든 아파트 화단 미니 불상의 미소는 ... 

석굴암 본존불보다 쎄다! 

입고리가 셔어언 하게 올라갔다! 

미소 질듯 말듯이 아니라 확실한 미소다! 

그게 바로 고급 엘리트 예술과 다른 키치의 전형이라 해도 

확대해서 보니 아우라 있네! 

게다가 부처님 어깨너머 솟아오른 봉오리여! 

여름 한나절 만에 키 크는 힘이라니 

이거 우담바라보다 신비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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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시뮬라크르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동물


    동물권 (animal rights)을 지지하고 녹색당을 지지하며 동물원의 폐지를 주장하고 반려견의 엄마이자 육식을 서슴없이 일삼는 내가 카메라를 챙겨 동물원으로 향했던 그 날 하늘은 말하기도 힘들 만큼 파랬다. 

    이제는 클리셰가 되어버린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기 있다.”라는 보드리야르의 문장이 내 동물원 행의 최종결론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표현하기조차 힘든 파란 하늘이 버스타고 가는 내내 불길했었다.  

    사회에 존재하는 일종의 이형 공간을 찍고 싶어 일주일 먼저 다녀온 과천 동물원에 비해 어린이 대공원은 규모가 작은 만큼 팬시 제품을 모아 놓은 상점처럼 예쁘장하기만 해서 원하는 이미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동물은... 동물원 동물을 어찌 쉽게 찍을 수 있을까. 육식하는 동물 애호가가 동물원에 사진 찍으러 갔으니 죄책감과 연민과 분노가 뒤섞여 허우적대기에 바빴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녀가 어렸을 적하는 관례인 ‘행복한 가족 나들이’의 짐을 벗고 혼자 하는 동물원 관람이기에 ‘가족’이라는 행복해야 만하는 코드도 떼고 ‘행복’이라는 가족의 이상도 뗀, 그 순간 불행해도 그만이고 이상을 상실해도 그만인 내 맘대로의 동물원 관람이었으니 말이다.  

    평일 이른 시간인데도 제법 유모차 부대들이 많았다. 꽃피는 계절 사람 없는 동물원을 기대한 내가 바보지, 예의 행복한 유모차 부대들 틈에서 나는 마치 시커먼 저승사자가 된 느낌이었다.  

    데려갈 날짜를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지전능하고 시크한 검은 저승사자처럼 아주 최소의 움직임과 시선으로 인간계와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저 덩치가 동물도감에서 보았던 그 코끼리라고, 저 큰 고양이가 TV에서 보았던 표범이라고 소리 지른다.  

    우리 벽 쪽 끝에서 하염없이 잠만 자는 오리지날 동물들은 ‘동물도감’처럼 실감나지 않는다. 우리 안에서 움직이더라도 일정 거리를 병리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동물들은 ‘TV 동물의 세계’에서처럼 용맹스럽지 않다.  

    당황한 부모들은 ‘보이니?’ ‘기억나니?’ ‘그게 저기 있네!’ 하면서 자꾸만, 집에서 손가락 꼭꼭 집어 가르쳐 주던 미디어 속의 동물 이미지를 상기 시키려 애를 쓴다.  

    동물원 학습은 아이들이 ‘안 보여!’ 하면 실패고 ‘어, 보여!’하면 성공이고 ‘야! 표범이다!’ 하면 대 성공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미디어’이다.   


벚꽃


    과천 대공원에서와는 달리 일주일 차이로 어린이 대공원엔 벚꽃이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뮬라크르 세상인 동물원에 새하얀 벚꽃과 연녹색 나뭇잎들이 더해지니 그냥 완벽한 무대 장치였다.  

    너무 예뻐서, 너무 고와서 쳐다보기 민망했다.   

    그리고 일찍부터 나를 불길하게 했던 그 파란 하늘이 동물원 풍경을 아예 그림으로 만들어 놓았다.  

    색종이처럼 파란 하늘에 팝콘처럼 하얀 벚꽃, 이런 비유가 저렴하다면 그냥 파란 하늘에 하얀 벚꽃이 너무나 예쁜데 왜 민망해야 했을까. 왜 즐기질 못했을까.  

    파란 하늘에 벚꽃이 겹쳐지는 혼이 빠지도록 예쁜 모습에 왜 나는 다시 저승사자가 되어 인간계와 더불어 천상계와도 거리를 두고 말았던 걸까.  

    나 역시 그 기준은 ‘미디어’다.  

    카메라로 찍어 사진이란 결과물로 보면 누구나 예뻐하는 모습은 진부한 이미지로 남는다. 그러니 한 번 더 꼬인 개념을 첨가 하던지 최소한 진부함을 상쇄할 무언가로 대중적 안목 이상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파란 하늘에 하얀 벚꽃은 내공 없는 찍사에겐 민망한 것이 된다. 



무대



    맨 눈으로 보면 황홀한 것이 카메라를 통하면 진부한 것이 되는 반전에 겁을 내어 일 년에 단 며칠 보여주는 벚꽃의 요기로움을 외면했나보다.  

    며칠 사이 꽃이 졌다. 미세먼지로 하늘도 뿌옇다. 

    하지만 내겐 민망함을 무릅쓰고 겨우 찍었던 벚꽃 사진이 두 장 남아있다. 

    다행인건가.   


    그런데 그렇게나 크고 아름다운 동물원 동물들은 어디에 있던 애들일까. 

    아이들이 본 대로 동물도감에 있던 애들일까. 

    그럼 동물도감이 오리지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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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원리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쌍문동


  1988년 겨울 쌍문동 아파트에 입주하여 그 곳 주민이 되고 결혼 후 또 쌍문동서 애 키우고 살던 나로서는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가 시작되고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한 인기를 얻으면서 드라마 속에서 또 각종 매체에서 ‘쌍문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불려 질 때 마다 마치 내 이름이 공식적으로 불려지고 회자 되는 듯한 어색함을 느끼곤 했다. 

  응팔 여주인공 덕선이가 다니던 쌍문 여고의 모티브 격인 정의여고는 딸아이가 다니던 곳이고 드라마 중간 중간 방학동이니 광산슈퍼 사거리 같은 지명과 감포 면옥, 20-2번 버스 등 골동품 같은 쌍문동 아이템들이 TV속에서 나오니 왜 아니 신기 할까. 쌍문동서 배출한 가장 걸출한 인물이 ‘아기 공룡 둘리’일 뿐인, 언제 주목 한번 받아 보지 못한 서울 북쪽 끝 변두리 일 뿐이었던 곳이었으니 세간의 주목이 어색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응팔의 여주인공 덕선이가 성인이 된 후 결혼한 불알친구 택이와 나누는 대화에서 언제 우리 한번 쌍문동 찾아가 보자는 택이의 제안에 이제 그 동네는 더는 옛날 모습이 아니라며 주상 복합 건물이 들어서고 완전 다른 동네가 됐다는 덕선이의 대답은 정말 어색함을 넘어 무안하기 까지 했다. 이유인 즉 드라마가 재현했던 쌍문동 골목은 그야말로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금 쌍문동에 있는 아파트나 주상 복합 건물은 덕선이가 살던 그 때도 이미 있었고 다른 말로 하면 그 만큼 오래된 것들이고 다른 뭔가가 더 이상 들어서지도 않았고 그래서 쌍문동은 목동도 분당도 판교도 아닌 그냥 조용한 쌍문동일 뿐이다.  

   드라마 마지막 회에 덕선이네가 쌍문동 지하 셋방을 떠나면서 같은 동네 아파트로 이사 가지 않고 판교로 이사 갔으니 이제 덕선이네는 여보란 듯이 살고 있을 게다. 쌍문동 주민들이 하는 우스갯소리로 쌍문동은 한 번 들어오면 못나가는 곳이라 말하곤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잘나가는 동네 집값이 천정 높은 줄 모르고 고공행진 하는 동안 쌍문동 집값은 제 자리 걸음만 했으니 서울 주소 딱지 붙이고 시골 땅값 내역으로 사는 곳이기에 쌍문동 집값으론 서울 번듯한 곳 어디에도 이사 갈 곳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고 교육에 관심을 갖던 가정에선 으레 아이가 성장하기 시작하면 좀 더 힘 보태서 이사 가는 곳이 큰 학원가가 형성된 중계동이었고 교육에 올인 하겠다고 작정한 가정은 집 팔고 돈 더 보태서 대치동 전세로 가는 것이 90년대 중 후반부터 내가 겪던 쌍문동의 풍경이었다. 지금은 그 마저도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아이를 키우며 그야말로 쌍문동에 남겨진 사람들은 일종의 패배감을 느꼈고 엄마들끼리의 모임에서도 ‘쌍문동 블랙홀’ 같은 자조 섞인 농담들이 오가 곤 했었다. 남겨진 나 같은 몇몇 극성 엄마들은 자녀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무섭게 차로 삼사십 분 걸리는 중계동 학원으로 아이를 내 돌렸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비교적 조용했다. 그렇게 사는 내내 쌍문동은 대한민국 뜨거운 화두인 ‘강남’의 그림자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덕에 늘 고요함 그 자체였다. 

    물론 나의 쌍문동 이야기는 어디 까지나 내가 겪었던 좁은 상황 안에서의 이야기 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쌍문동이 좋았다. 내노라 하는 대형마트는 하나 없어도 아기자기한 상권이 없는 거 없이 다 갖춰 있고 도봉산에 우이동에 연산군 묘에 청심천에 솔밭에 집에서 슬리퍼 끌고 나와도 산책할 수 있는 곳이 넘쳐나는 곳이다. 나는 그 곳에 그만 정이 들 때로 들어서 며칠 여행을 갔다가 집에 올 때면 멀 찌기 도봉산이 보이기만 해도 가슴 언저리가 따뜻해 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반면 늘 그 곳을 떠나고도 싶었다. 누가 대놓고 뭐라 한 적은 없었지만 쌍문동에 산다고 말했을 때 거기가 어디냐고 물을 때면 수유리 지나서 의정부 가기 전에 있다고, 서울이란 지역 내에서의 쌍문동 좌표를 적나라하게 말해야 할 때 상대적으로 중심가에서 얼마나 먼가를 고백해야 할 때 나도 모르게 짜증이 밀려들어오곤 했다.  

    드라마 속에서 덕선이 언니 서울대생 보라가 학교 도서실서 깜빡 시간을 잊고 늦게 까지 공부하다가 고딩 남친 기다리는 쌍문동 골목으로 헐레벌떡 뛰어가는 모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쌍문동서 서울대는 끝에서 끝 그것도 대각선으로 끝에서 끝이다. 족히 두 시간은 걸린다!

     강북 아주 많이 위 쪽 주민들에겐 자기 동네 이름에 스스로 변두리라는 이미지를 얹고 어느 정도의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1988년 쌍문동 아파트에 입주하던 시절을 떠 올릴 때면 꼭 생각나는 두 가지 그림이 있다. 하나는 우리 집 뒤 베란다서 보면 주변이 온통 아파트 공사판이었던 현장 한가운데 오두막 같은 허름한 집 한 채가 섬처럼 덩그러니 솟아있던 모습과 다른 하나는, 상가 건축현장 포크레인으로 깎아내린 작은 동산에 반쯤은 벼랑 밖으로 드러나고 반쯤은 땅속에 박혀있던 관짝이었다. 공사 중에 예상치 못하게 관을 건드리면서 꽤 오랫동안 작업은 중단되었고 그냥 그대로 시커먼 관짝이 대로변 언덕에 반만 박힌 모습은 정말 그로테스크했다. 

     섬처럼 남아 있던 허름한 집 한 채와 벼랑에 박혀있던 시커먼 관짝은 차라리 그냥 한 모습 같았다. 마치 아주 어렸을 적 아이들이 흙더미를 쌓아 단단하게 두드린 후 꼭대기에 긴 나뭇가지 하나 꽂아 놓고 한 사람 씩 번갈아가며 흙을 최대한 많이 씩 퍼 가다가 나뭇가지를 쓰러트리는 사람이 지는 흙 파기 놀이를 닮았다.

     조금만 더 흙을 퍼내면 쓰러 질 수밖에 없는, 안 쓰러지면 계속 파야 되는 가느다란 나뭇가지의 모습이 연상되었고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집을 짓고 이익을 맛보려는 공급자와 소비자에게 홀로 남은 집 한 채와 관짝은 그저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는 약삭 빠른 땡깡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1988년 쌍문동 봉황당 골목의 따스한 환타지는 적어도 쌍문동 아파트 현장에는 전무했다.


서부이촌동


    어찌어찌해서 지금은 용산구에 산다. 정확히 말하면 이촌2동 즉 서부이촌동에 산다. 한강대교 동쪽에 있는 이촌1동 그러니까 동부이촌동과 한강대교 서쪽 서부이촌동은 행정 명칭 상 같은 동네이지 사실상 같은 동네라 할 수도 없다. 무자비한 도로에 가로 막힌 것도 그렇고 부촌인 동부 이촌동의 편리함에 서부 이촌동을 비교 할 수 없다. 새남터 성지가 말해 주듯 조선시대 사형 터 여서 풍수 지리적으로 뭔가 일이 꼬이는 걸까 재개발도 안 풀리고 이곳은 묘한 분위기가 물씬하다. 변변한 가게나 병원도 없고 생활하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정말 별천지같은 곳이다. 동네 골목 구석구석 도저히 서울이 아니고 2000년대가 아니다. 불발된 재개발을 증명하는 거인 같은 가림 막들이 몇 킬로미터 씩 둘러 쳐져있고 굉음을 내는 한강철교 밑과 다듬지 않은 한강 변 들판이 내게는 영감을 주는 터전 처럼 느껴진다. 사진기 하나 들고 나서면 서부이촌동을 즐거워하기에 흡족하다. 부디 재개발의 광풍이 더디기를 부디 한강변에 잔디를 깔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서부이촌동의 주민들도 서울의 중앙에 있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게 있나보다. 서울하고도 한 참이나 북쪽 쌍문동 부근의 주민들처럼 이곳의 주민들도 동네 이름에 스스로 무엇을 얹고야 마는 걸까 어느 택시 기사의 이야기인즉 주말 늦은 시간이나 연말 늦은 시간처럼 택시 잡기 어려울 때에 차창 밖에서 동네 이름을 외치는 손님들 중에 동부 이촌동 사람은 “동부 이촌동!”이라 외치고 서부 이촌동 사람은 “이촌동!”이라 외친다고 한다. 어떻게든 구별하고 싶은 쪽과 어떻게든 묻어가고 싶은 심리를 그 택시 기사는 간파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물어봐도 동부에는 없고 서부에는 누릴 수 있는 게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불꽃 축제다. 강 건너편에 63빌딩이 있는 덕에 불꽃놀이 명당은 서부다. 그런데 지난 가을 기대했던 뻑지근한 불꽃쇼가 벌어지고 어떻게들 명당인줄 알고 모여 드는지 아파트 앞 강변 명당자리에 자리 잡고 텐트 쳤던 벌떼같은 구경꾼들이 빠져나가자 처녀지 같던 들판이 그만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억새 하나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폭격 맞은 벌판 꼴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쓰러진 억새와 비교할 수 없는 비극이 더 있었으니 축제를 위한 시설물들을 강위에 설치하던 조명 설치 업체 직원이 조명 장비를 옮기다가 그만 강에 빠져 익사한 사건이다. 더욱이 그의 시신은 불꽃축제가 끝난 다음 날 63 빌딩 인근 강변에서 발견되었다. 


* 누구의 꽃상여인가

 

    더 먼 곳으로 흘러가지도 않고 그가 빠진 그 곳 근처 그대로 시신은 맴돌았을 것이고 그 곳 위에서 고스란히 행사는 당연한 듯 진행되고 우리는 그의 주검을 물속에 두고서 화려한 불꽃 쑈에 환호하고 즐거워했던 것이다. 

    뉴스를 접하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식은땀이 흘렀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불꽃 보며 지르던 비명과 웃음은 다 무엇인가. 축제를 준비하다 죽은 주검을 찾기도 전에 그 위에서 열리는 것이 축제라고 할 수 있는가. 유가족에게 그것은 분명히 가슴을 찢고 고막을 찢는 악마의 진혼곡이었을 터 내가 지른 비명이 자꾸만 내 귀에 다시 되 돌아왔다. 


상대성원리


    무엇이 축제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가. 혹은 무엇이 흙 파기 게임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가. 기어이 주검 위에서 불꽃을 터뜨리고 보금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땡깡쟁이로 모는 이 시스템은 무엇인가.

    세상은 온통 상대적 박탈감이란 신 빈곤의 늪에서 허덕인다. 그것은 무시하기도 버거운 무게로 현실적 고통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신 빈곤의 피해자들은 축제나 게임을 멈출 생각이 없다. 분노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내가 나보다 잘난 상대 때문에 초라하듯 어느 순간 나보다 못난 상대 때문에 내가 빛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한 상대적 자리가 바뀌길 바랄 뿐이지 시스템에 불만 없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못 먹어도 고라는 말처럼 순응하지 않고 일단 들이 받는 기질이 있다고, 그런 아웃사이더의 무모함과 패기가 가까운 일본과는 다른 면이라는 말을 제법 했었다. 그런 말들 속에는 고래 힘줄 같은 한국의 에너지를 긍정하는 뜻이 담겨 있었는데 요즘 만들어지는 자기 혐오적 유행어에는 극단적인 무력감만 느껴질 뿐이다. 상대적 하층에 속한 내 위치만 불행할 뿐인 거다. 그런 상대적 피해자 코스프레는 죽음이라는 ‘절대’를 보지 못하게 한다. 

    누가 죽어 나가도 누가 터전을 유린당해도 번쩍이는 불꽃 축제와 흙 파기 게임이 이 세상 전부이자 자연으로 알고 거침없이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수긍한다. 

    그리고는 응팔의 마지막 회를 넘기며 허망하게 한 마디 남기는 것이다. 


    “덕선이네가 판교로 이사 가듯 나도 그 때 그랬어야 했었는데! 아이고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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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이의 저주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좌우의 날선 검


  “그래도 우리는 분단국가잖아” 

  나와 찰떡궁합인 내 친구는 다른 것은 다 개방적이고 감각적이면서 어느 틈엔가 그 놈의 반공 프레임에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아이고 친구야 그건 썩은 위정자들의 더러운 통치술이야” 

  내가 파르르 떨기도 하고 눈높이에 맞춰 얼러보기도 하면 조금씩 뭔가 통 할 뻔하다가도 결국 친구가 내리는 시사평론은 

   “종북세력 땜에 안 돼!” 


    아마도,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고 북한이라는 주적이 상존하는 한 온전한 자유를 얼만큼은 저당 잡히는 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판단이 내 지인 만의 생각은 아닐 게다. 해방이후 70여 년간 반공은 이 나라의 종교, 이 나라의 국교 아닌 국교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세포 깊숙이 반공이 각인 되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내가 기억하는 내 어린 시절 동네 골목의 빛바랜 기억 속 영상에는 항상 구멍가게 원통모양 아스케키 통과 푸세식 변소 오물을 밖에서 수거하기 좋게끔 뚫어 놓은 구멍, 그런 구멍이 즐비한 똥내 나는 골목길 등 늘상 먹고 싸는 아비규한의 모습과 함께 어린 나에게 언제나 어려운 기호로 여겨지는 것이 있었으니 전봇대마다 붙어 있던 ‘반공 방첩’과 좀 더 으슥한 골목의 전봇대에 종이 삐라처럼 붙여있던 ‘조루증’이란 단어였다. 조루증의 뜻을 알게 되기까지는 스무 살을 넘기도록 세월을 보내야 했지만 반공 방첩의 뜻은 초등학교 학년이 올라가고 든든한 유신의 어린이로 훈육되어지면서 이내 알게 되었다. 푸세식 변소와 아스케키 통처럼 ‘반공’은 글자 통째로 그 시절의 내 영상 백그라운드인거다. 

    황해도 출신 월남자인 아버지는 박정희를 싫어하셨다. ‘빨갱이가 싫어서 전쟁터서 죽어라 싸우고 고향 떠나 왔건만 남한 땅에서 박정희가 빨갱이 짓 한다고 우리식 민주주의라니 이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냐’고 날이면 날마다 욕을 해대셨고 나는 그 욕에 진이 빠졌고 넌덜머리가 났고 ‘우리식 민주주의가 뭐가 어떠냐’고 아버지한테 쏘아붙였고... 그리곤 아버지가 내게 뭐라고 쥐어 박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암튼 그건 내가 중2병 걸렸을 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아버지는 빨갱이를 혐오하면서 박정희도 혐오하는, 그리 나쁘지 않은 우파였던 것 같다.  

    하긴 대통령이 군복 입은 자였을 때, 대통령에게 총칼의 폭력성이 배어 있었을 때, 대학교 정문에 탱크가 세워져 있었을 때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진짜 적을 구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박정희 시절 전두환 시절을 보내고 ‘군부’라는 단단한 표지석이 사라진 이후 사람들은, 옷 갈아입고 이름 바꾸고 등장한 그때 그 적을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문제는 적만 놓친 게 아니라 그만 자기 자신, 주체도 놓쳐 버렸다. 그래서 옷 갈아입고 이름 바꾸고 얼굴에 점 하나 찍은 진격의 괴물들이 자기들 앞에서 똥 싸고 썩은 내 풍기고 난리굿을 치러도 유순하게, 아주 유순하게 잘 안 보인 댄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기 자신은, 종북으로 이름 바꾼 ‘반공 프레임’안에서 발견하고야 만다. 거기서 드디어 자기보다 더한 ‘약자’라는 ‘적’도 발견한다. 그러고는 안정감을 느낀다. 적을 놓친 공포감과 자기 자신을 잃은 불안감을 종북에서 해결하고야 만다. 적이 있어야 비로소 나를 가늠하게 했던, 공산주의가 있어야 비로소 자유대한이 굳건했던 군부 독재의 불구적인 정체성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거다. 

     인지언어 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에서 “프레임은 슬로건이 아니라 생각이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했다.

     지구상에 공산주의가 전멸한 판에 반공이란 슬로건은 한물 지난 거고 그래서 부일 협력 세력과 그 후손들은 그들이 해방초기부터 만들어 재미를 보았던 ‘좌우 프레임’을 지금 시대에 이르기 까지 뻔뻔하게 소환하였고 신자유주의와 함께 이 땅을 기만하는 양대 산맥으로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조지 레이코프의 말대로 좌우 프레임은 대한민국 국민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자 이 나라의 정신적 구조물이다. 좌우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비 실체를 형상으로 도식화하여 세월호도 잡아 쓸어 넣고 교과서도 잡아 쓸어 넣고 노동법도 잡아 쓸어 넣고 좌우의 날선 검 하나로 무엇이든 좌우 동강 내어서 가르강튀아 블랙홀에 털어 놓고 있다.


사토리의 공포


    오늘도 종편 TV, 아니 종편 포르노가 하루 종일 나불댄다. 그리고 오늘도 동네 상점엔 하루 종일 종편 포르노가 ON AIR다. 사람들은 권력에 대해 얼마나 유순한지 ‘저 정도면 잘하는 거’라고 ‘각자의 위치를 지키면 되는 거’라고 한다. 

    포르노가 사람들을 득도 시키나 보다. 이건 실질적인 공포다. 이 사토리 세대들을 누가 흔들어 분노하게 할 수 있을까. 언론은 권력의 마름이 되었고 지식인도 포섭된지 오래고 젊은이들은 깜깜한 제 앞길 더듬거리기 바쁜데, 빨갱이 싫다고 파시즘을 살뜰히 키우고 선거 때 마다 계급 배반 투표를 거행하는 이 사토리 세대들을 어찌해야 할까. TV속 큰 무당과 작은 무당들이 벌이는 난리굿과 개콘을 시청 중인 사토리 세대들은 다음 총선에도 죽음의 카니발을 벌리려나.  


중식이의 저주


    얼마 전 인터넷서 회자된 C일보의 <간장 두 종지>란 제목의 칼럼이 큰 웃음을 준 적이 있다. 내 생전 신문 칼럼보고 그렇게 웃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칼럼의 내용인 즉 

    C일보 근처 중식당서 칼럼 작성자와 동료 합해서 네 명이 탕수육을 시켰는데 간장이 두 종지만 나와서 사람 수 대로 달라했더니 식당 측에선 두 명 당 한 종지가 나가는 거라며 요구한 간장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그 C일보 기자는 분노했고 자괴감이 들었고 이왕 분노한 김에, 내 돈 주고 내가 밥 사먹으면서 음식 나왔다고 종업원에게 ‘고맙습니다’ 인사치레해야 하는 이 부조리한 사회에 환멸 또한 느꼈고 이렇게 하여 ‘을’이 ‘갑’을 만드는 이 사회의 메카니즘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맘 속 깊숙한 울분의 에너지를 끌어 모아 간장 종지 대가리 숫자대로 주지 않은 그 식당이 망하기를, 간장 종지 두 개만 준 그 망할 식당의 이름은 A나 B나 C는 아니라고 목 놓아 목 놓아 외치는 내용이었다. 

    백만 부 이상이나 발행한다는 메이저 신문 칼럼으로 말이다. 그 중식당이 뭔 저주를 퍼 부 었 길래 을이 갑을 만들고 서빙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상식적인 인사말에도 부조리를 느끼고야 말았을까.


    ‘파시즘이 출현한 역사 속에서는 희극이 비극보다 선행하며 궁극의 공포는 처음에는 오페레타 같은 희극으로 나타난다’ (허버트 마르쿠제) 더니 정말로 공포스럽게 위에서 아래에서 큰 놈에서 작은 놈에서 코메디가 횡행하고 있다. 


    중식당 칼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진짜 중식이 저주 좀 불러 볼까. 슈퍼스타 케이에서 나왔던 촌스락 중식이 밴드의 노래인 즉 

    피 고용자 중식이는 자기를 업신여기는 고용자에게 저주를 내린다. 

    “죽어버려라, 죽어버려라, 죽어버려라” 

    월세 때문에 밥값 때문에 모멸감을 참으며 일하러 나가야 하는 중식이에게 입 안에서 우물거리는 그 저주는 오히려 자신의 심성이 폭력으로 물들지 않게 하는 타협점이다. 

     나도 중식이처럼 저주하지 않으면 당장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중식이 처럼 그렇게 하고 싶은 말...  




     내 양심의 가슴에 빨간 비즈 붙이고 녹슨 더듬이로 저주하노니 

     포르노 희극 판을 벌이는 자들아 

     죽어 버려라, 죽어 버려라, 죽어 버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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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광화문 대극장


     거대 도시인 서울하고도 그 중심인 광화문 일대를 산책자가 되어 걷다 보면 이곳이 일종의 무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아한 상점이나 최신의 유행 같은 소비 자본주의 얼리어댑터들의 성지는 강 건너 남쪽으로 천도한지 이미 오래된 이야기 이지만 강 건너의 그런 화려함과 스타일리쉬함 만으로는 격동의 연극적 무대를 채우기 밋밋하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세습 군주가 살던 왕궁과 민주제 대통령이 사는 청기와 집과 야단법석 아고라가 공존하는 광화문이 대한민국의 파토스를 상연하는 무대라 하기에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한 쪽에서는 중국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관광버스가 차도에 늘어서 키 높은 성벽을 만들고 한쪽에서는 궁궐 수문장 교대식이 그 곳이 과연 무대임을 확인 시켜주고 한 쪽에서는 어지러운 글귀와 남루한 천막, 노란리본이 바람에 파르르 떠는 가슴시린 광경이 시간차도 없이 단지 몇 백 미터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곳, 아니 동시에 상영되는 곳이 광화문 무대인 것이다. 

    그런데 무대상의 올려 진 광경이 난장판이라면 난장판이고 부조리하다면 부조리하고 퓨전적이라면 퓨전적인데 비해 막상 그 무대라는 모양새가 갖는 건축적인 구조는 권위적 이라는 얄궂은 구멍이 존재한다. 

    광화문 성벽을 중심으로 무대는 T자 모양으로 정리되고 그리곤 누구나 알다시피 장군님 뒤에 대왕님, 대왕님 뒤에 광화문 그 뒤에 경복궁 그 뒤에 청와대가 위치한다. 거꾸로 거스르면 청와대에서 아래로 아래로 굽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무대의 효과는 매우 드라마틱해서 광화문 광장에서 바라보면 청와대와 인왕산 후면으로는 마치 세상의 끝일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연극 무대 위 파사드 장치처럼 더 이상의 배후는 없고 그 곳부터 앞으로 앞으로의 발현만이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광화문 거리는 일종의 대극장인 셈이다.  

    입체 무대나 마당극 류의 열린 무대가 아니라 영화관의 스크린처럼 관객은 한 방향을 바라보며 더 이상의 배후는 없다. 관객은 입 다물고 조명이 꺼지면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필름이 돌려지는 방향을 거스를 수 없다. 얌전히 착석하여 감상하는 무대 그것이 광화문 무대이다. 장군님부터 대통령까지의 국가 급 영웅만이 활거 할 수 있는 곳, 일관된 서사로서의 희곡만이 올리도록 디자인 된 곳이 광화문 무대이다. 막간의 쉬는 시간에 분수 터에서 옷 적시며 즐거워할지언정 뭔가를 외치거나 뭔가를 주장하기에 혹은 개미 관객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에는 위압감으로 인해 쫄게 만드는 곳, 아니면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 자체가 부적합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군사 독재시절 5.16 광장으로 불리기도 했던 여의도 광장은 열 맞춘 탱크를 앞세운 군대의 퍼레이드나 ‘국풍 81’ 같은 관변 축제가 어울릴만한 대규모 아스팔트 광장이었다면 광화문 광장은 셀카 봉을 들고 나와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여름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간헐적으로 바닥에서 솟아나는 분수를 즐기기에 적합한 곳 그도 아니면 천만의 인구가 바글거리는 도시의 중심에 와 있다는 근거 없는 만족감을 주기에 적합한 소규모 시멘트 광장이다. 

    여의도 광장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얼핏 시대도 변하고 그 광장의 사용 주체도 정부에서 시민으로 옮겨지고 광장을 채우곤 했던 덩어리진 프로파간다는 없어진 듯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프로파간다는 없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동원하지 않아도 기꺼이 광장을 제 발로 채우는 시민이, 관광객이 그 역할을 맡는다. 그들이 자발적인 모습으로 광장을 즐기는 한, 사진을 찍고 밝은 웃음을 흘리는 한, 교양시민의 줄쳐진 질서를 지키는 한 모두는 광화문 광장의 화려한 내용물이 된다. 당연히 동원된 어색함이나 칙칙함에 비 할 수 없다. 그들은 밤하늘 별들처럼 개별적으로 빛나고 반짝거린다. 그리하여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들은 잘나가는 국가의 일관된 서사를 위한 프로파간디스트들이 된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 한 켠 일관된 서사를 방해하는 저항의 노란 리본이 누구에게는 그 어느 곳보다도 부조리해서 더 가슴 아픈 광경으로 보이게 하고 누구에게는 이제는 그만 봐야 할 지리멸렬한 광경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런 부적합은 광화문에 국한된 일은 당연히 아니다. 대한민국 대도시 어디에도 자본 사회가 제공 하는 서사를 방해하는 존재나 퍼포먼스를 환영하거나 어울릴만한 곳은 없다. 도시란 곳이 그런 곳이 아닐까. 자본과 권력이 눈덩이처럼 뭉쳐져서 덩치 큰 빌딩으로 존재하는 곳, 빌딩과 빌딩 사이 가장 높은 펜트하우스 어디쯤에 자본과 권력이 모셔진 지성소가 차려져있을 것만 같은 곳. 그래서 군부 독재시절의 폭력이나 확성기를 동원한 촌스러운 계몽 없이도 도시가 보여주는 건축적 이미지만으로도 교양시민은 저절로 훈육되어진다. 그래서 십인십색 백인백색 개성 강한 외모의 행인들이 거리를 채운다 해도 그들의 발랄한 에너지는 기존 법규의 그물망에 거하는, 권력에 의해 어떤 형태로든 변환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깔끔한 배터리의 형태가 아닐까. 백만 스물 하나! 백만 스물 둘!





판테온


     광화문 동십자각 옆 한 유명한 사진관 앞을 지나다 보면 쇼윈도우에 걸어 놓은 아주 재미난 사진이 눈에 띈다. 수십 명의 유명인들 머리가 검은 바탕위에 성스럽게 박혀있어 마치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경배라도 올려야 될 것만 같은 사진이다. 요즘 말로 웃픈 사진이다. (자세히 보면 얼굴들 간의 서열도 분명하다.) 

    그들이 사진에 그렇게 걸려있는 이유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그 들은 그 사진관에서 사진을 박은 유명인들 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 사실이 이 사진관의 영광이었기 때문일 테고 확대해서 표현하자면 그들은(연예인을 제외하고) 단순 유명인이 아닌 어떤 식으로든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했던 혹은 하고 있는 갑중의 슈퍼 갑으로서 유리 만신전에 모셔야 할 권력의 현현들이기 때문이다.

    보는 이의 성향에 따라 혹은 이해하기에 따라 수 십 명을 한 신전에 몰아넣은 것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거부감 정도는, 뭉텅이로 그들의 얼굴을 몰아놓곤 뭘 느끼라는 건지 명령하듯, 군림하듯 하는 사진 이미지의 가차 없음이 주는 미식 꺼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로써 광화문 대극장에서 상연되는 또 하나의 국가 급 서사를 목도하는 순간이다.





    때마침 십대 소녀 몇 명이 걸어오다 만신들을 발견한다. 아마도 신들의 용안을 알아보는가 보다. 자기들 끼리 부산하게 움직이며 기웃거린다.





    그러고는 만신전을 배경으로 번갈아 사진을 찍는다.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던 내 카메라를 발견하자 해맑게 웃어주기 까지 한다. 한 번만 더 찍겠다고 내 쪽에서 집게손가락을 펴 보이자 이내 V자 까지 만들어 준다. 그 모습을 보자 미식 거렸던 내 속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괜한 트집이었을까. 괜한 분노였을까. 

    그렇다. 아이들에게는 저 권력의 현현들이 단지 나들이 추억을 배가 시켜줄 사진 배경 이상도 이하도 아닐 런지 모른다. 전직 대통령 얼굴을 알아 본 거고, 연예인을 알아본 거고 , 나머지 얼굴은 누군지 잘 모르는 거고 더욱이 단 한 번도 그들을 신이라 생각해본 적 없는 거고 단지 즐거운 외출을 위한 환경일 뿐인 거고 그러면 되는 거지 보기 좋게 만신들을 이용한 거지...

     하지만 꺄르륵 거리며 어디론가 걸어간 아이들 뒤로 다시 웃픈 사진을 보자 권력이 의도하는 건 정확히 이정도의 반응, 이정도의 소극적 경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 넘어 외에 더 이상 관심 갖지 말고 더 이상 가까이 가려하지 말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선 밖의 자리를 지킬 것, 기꺼이 알아보고 즐거이 사진 찍을 정도의 소극적 경배를 하되 불온하게 상층부 지향성을 갖지 말 것, 그리하여 영원한 브라만의 팍스 코리아나를 공고히 할 것!


용도변경


     저 해맑은 아이들이, 광화문에서 아니 도심 어디에서건 은밀히 작동하는 통제기술 앞에서 불온을 생각하는 새로운 산책자가 되길 꿈꾸어 본다. 통제자가 기획하는 예상되어진 동일한 반응을 백만 스물 한번 반복하는 에너자이저가 아닌, 생각이 멈춘 도심 공간 곳곳에 맞서 충분히 놀 수 있는 주체로, 이름 정해지지 않은 놀이를 하는 주체로, 생각하는 주체로 걷게 할 수는 없을까. 내가 했던 백만 스물 한번 왕복 운동에 대를 이은 아이들이 백만 스물 두 번째 왕복 운동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매끈한 서사가 이어지는 이 공포의 무대에 회심의 태클 걸기란 어떤 것일까. 혹시 무대라는 공간을 용도 변경하는 것이 태클 걸기의 작은 모습이 아닐까. 광화문 광장 노란 리본과 천막이 매끈한 영웅 무대의 일관성에 이의를 제기 하듯이 도시 공간이 의도하는 용도에 불온을 담아내는 것, 통제 기술이 의도한 결과 이외의 것을 그 공간에 발생시키는 것, 그래서 일시적이나마 전혀 생경한, 도시의 헤테로 토피아를 출현하게 만드는 것, 만신전 앞에서 실컷 웃어주거나 가볍게 개 무시 해 주는 것, 도시 공간 자체를 수만 개의 촛불로 채워 질 가능태로 보는 것, 그래서 맘속에 항상 촛불 하나 오롯이 켜두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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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몸짓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보는 내내 그 흔한 인생 이야기를 조용히, 영화적으로 풀어내는 감각에 부러움을 금치 못했던 영화. 관객이 이 영화 주인공의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느냐 안 닮았느냐 와는 

상관없이 또는 주인공이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 동의 하느냐 마느냐 와는 상관없이 

영화 속 인물이 어느새 인생의 한 꼭지를 넘겨가는 모습에서 

수 만개의 또 다른 삶의 문턱에도 투영시켜 볼 수 있는 영화.

그래서 특별나게 화려한 인생일지도 모르는 한 유명 여배우의 삶을

내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도 무리 없이 유비 시켜 볼 수 있고 시간의 잔혹함 까지도 생각해보게 하는 꽤 괜찮은 영화이다.



주인공 '마리아 앤더스' ( 줄리엣 비노쉬 )는 '빌렘' 감독 대신 상을 받으러 스위스 실스마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빌렘 감독의 부고를 듣는다.

그녀는 20년전 빌렘 감독의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란 작품 속 '시그리드'라는 젊고 아름다운 악녀 역할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이다.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실력 있는 젊은 다른 감독에 의해 시도 되는 

'말로야 스네이크'의 리메이크 작품에서

이번에는 젊은 '시그리드'의 동성애적 상대역으로, 시그리드에 의해 이용당하고 

버림받아 결국 자살하고 마는 나이 많은 직장 상사 '헬레나'역을 제의 받게 되고

작고한 빌렘 감독 부인의 배려로 감독의 스위스 자택에서 그녀의 비서 '발렌틴' ( 크리스틴 스튜어트 )과 대본 연습을 하게 된다. 

마지못해 제의 받은 ‘헬레나’ 역 앞에서 주인공 마리아가 보여주는 혼란과 갈등이 

이 영화의 창문 역할을 한다.

여태껏 그녀가 그녀 자신과 동일시하던 젊고 패기 발랄한 ‘시그리드’를 버리고 그녀와 상관  없다고 느꼈던, 항상 건너편 타자일 것만 같았던 나이 많고 버림받은 ‘헬레나’ 역을,

늘 시그리드로 살았고 늘 시그리드 여야만하는, 시그리드란 기표아래 살고자한 마리아는

헬레나란 압박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헬레나 적인 삶은 그녀에게 어떤 것인가.

아니, 좀 더 루즈하게 범위를 넓히자면 헬레나란 캐릭터에 한정할 것 없이 

삶의 진행에서 너는 언제나 시그리드이길 원하는가?

그것을 고집한다는 건 무엇인가? 또는 인생의 흐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지는가? 기꺼이? 천천히? 불현듯? 마지못해?...

영화가 던지는 그런 단답 불가능한 질문들을 풀어가는 단초는 대사 몇 마디가 아닌, 역시나 

영화다운 방법으로 풀어간다.



마리아의 비서 발렌틴은 마리아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시그리드의 나이 또래이다.

마라아와 발렌틴이 '말로야 스네이크' 속 시그리드와 헬레나 역을 연습하는 장면은

사실상 가상과 실재가 불분명한, 그래서 현실의 두 여인의 관계와 갈등을 수면위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마리아에 비해 확실히 발렌틴은 대본을 해석하는 발랄함이 있고

헬레나란 역을 대하는 선입감도 없이 자유롭다. 그래서 매번 둘은 부딪히고 

역할 자체에 거부감을 안고 있는 마리아는 어느새 고리타분한 느낌을 풍긴다.

더욱이 발렌틴의 연애 생활과 젊음을 시기하는 듯한 그녀의 행동은 

동성애적 긴장감 속에 둘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즉 '말로야 스네이크' 속 두 여인의 관계와 어느새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연기 연습인지 현실 속 대화인지 모호한 얼마간의 시간 동안 

마리아의 연기는 연기라기보다 그녀 자신이다. 그녀가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대척점과 같았던 어느 인생의 위치에 그녀 자신이 이미 스며들어있다.

둘의 관계는 확실히 마리아가 열세다. 그 이유는 발렌틴이 젊고 마리아가 젊음을 흠모 한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건 ‘시그리드’라는 이미 상징 기표화한 모습을 고집하고 동일시 세계에 갇혀 있는 마리아의 멈춰버린 운동력 때문일 거다.

이 불균형 관계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은 비서 발렌틴과 마리아가 산행을 하는 도중

발렌틴이 아무 말 없이 그냥 아웃되듯 사라지는 장면에서이다.

발렌틴과 발렌틴을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던 간에, 발렌틴을 떠나보낼 준비가 

됐던 안됐던 간에 그냥 사라져 버린다. 순식간에. 

이때 마리아는 수동성의 극치다.

하지만 마리아 자신은 그것을 알고 있을까.



또 한 번 영화가 보여주는 단초는 새로운 시그리드역을 맡은 조앤(클로이 모레츠)과의 관계에 의해서다. 그녀 역시 20년전 마리아가 그 역을 맡을 당시의 당찬 젊음을

소유하고 있다. 실제로 헐리우드 트러블 메이커인 린지 로한을 연상시키는 조앤은

유부남과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애정 행각에서 뿐만 아니라 연기에서도 신세대다운

거침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고 우여 곡절 끝에 연극이 상영되기 직전 무대 뒤에서 

마리아는 조앤에게 극중 시그리드가 헬레나를 버리고 떠나는 장면에서 

마지막인 헬레나를 위해 잠시 침묵의 시간을 준 후에 무대 밖으로 퇴장할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조앤은 차갑게 거절한다. 이미 끝난 헬레나에게 그럴 필요가 있냐고...

바로 그 거절의 장면, 이 영화 <크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 존재하는 클라이맥스 같지 않은 클라이맥스가 아닐까. 마리아는 헬레나 역을 위한 시간적 말미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조앤의 거절에 예상 밖으로 순순히 수긍한다. 그리곤 준비된 무대 세트에 

걸어 들어가며 뭔가 좀 더 여유로운 모습으로 무대가 열리길 준비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정말로 순식간에 일어나는 이 꺾임의 클라이맥스는 사실 이 순간이 있기 전 내내 세련되게 유도한, 마리아와 비서 발렌틴과의 얽힌 에피소드와 새로운 시그리드역의 조앤과의 만남에서 깔아 놓았던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한 순간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번 역시 마리아는 조앤과의 관계에서 열세였고 시그리드 역을 내어준 패배의 지점,

혹은 부탁을 거절당한 수동성이다.

그러나 비서 발렌틴과의 마지막 이별에서 보여주던, 사라진 발렌틴의 이름을 부르며 

헤매는 뒷모습을 보이던 준비 안 된 마리아의 모습은 아니다.

무대 위 자신이 있어야할 곳에서 자신이 연기해야 할 순간을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은 

안정되고 응축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런 걸 성숙이라고 말해야 하나? 아님 학습 효과라 해야 하나?

하지만 에누리 없이 말한다면 늙은 마리아는 두 번이나 젊음에게 보기 좋게 까인 거다.

얼레벌레한 상태서 까였건 학습된 상태서 재빠르게 수긍했건 

까인 건 까인 거다. 두 에피소드 중 무엇 하나 늙은 마리아가 우세인 적은 없었던 거다.

그러나 이 영화를 늙어가는 여배우의 성장담으로만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시간은 흐르고야 마는 것 그러니 이제 그만 시그리드를 놓아 주렴” 이런 타이름이 영화에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것 뿐이라면 영화도 인생도 너무 메마른 스토리에 한정된 게 아닐까.



그래서 영화 상영 중간 중간 보여 주었던 스위스의 자연과 

결정적으로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구름이 마지막 단초가 되어 메마름을 적신다.

‘말로야 스네이크’는 스위스의 실스마리아 지역 말로야란 계곡서 보여 지는 구름 현상을 말한다. 구름이 계곡을 아우르며 감싸듯 흐르는 모습이 뱀과 닮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시 영화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 하자면 그 구름이 발생하는 곳은 ‘빌렘’이란 감독이 죽음을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사실은 심장마비가 아니라 오랜 지병 끝에 

자살을 택한 장소이다. 빌렘은 말로야 스네이크를 보며 자살한 것일까?

또한 그 곳은 비서 발렌틴이 소리 없이 마리아와 이별을 감행한 곳이 기도하다.

사라진 발렌틴을 허둥지둥 찾는 마리아의 모습 다음 씬으로 스멀스멀 뱀 같은 구름이

그제야 몰려온다. 그 순간 마리아는 뱀을 본 것인가? 

영화상으로는 빌렘 감독도 마리아도 말로야 스네이크를 봤는지 못 봤는지 알 수가 없다.


바로 그것,  언제 산 너머서 밀려올지 알 수 없는 뱀의 움직임과도 같은 아름다운 구름, 어느 순간 감싸지고 밀려오고, 구름 생성의 기승전결을 확언할 수 없는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이 오히려 운명 순응의 잔혹함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뱀 같이 은밀한 구름의 움직임은 우리 삶의 엄폐물 속에 무엇이 숨겨져 불현듯 발현하며

우리를 열뜨게 할지, 아님 아무도 표현 못 할 삶의 끝에 이르게 할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신비 공간을 제시한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이 구름을 봤는지 확언할 수 없는 것처럼

말로야 스네이크는 인생의 확언과 주인공 마리아가 겪었던 시간 앞에 어쩔 수 없던 잔인한 수동성을 지우는 은밀한 단초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시그리드’에서 ‘헬레나’로 주인공의 페르조나를 바꾸는 확연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말로야 스네이크’의 은밀한 아름다움은 영화 속에 함께 섞여져 확실한 것이 불확실한 것을, 불확실한 것이 확실한 것을 더 깊이 있게 만드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무대 위 마리아의 모습은 완숙하게 아름답다. ‘헬레나’를 받아 들였기 때문일까?

아님 ‘시그리드’ 뿐만 아니라 이제는 ‘헬레나’까지도 그녀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시기가 되어서 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까?

무엇으로 시간을 표현하든 그 것은 비가역적이고 잔인하다.

어떤 위로도 어떤 깨달음도 이 잔혹함을 누르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는 내내 마리아의 마지막 당당함 보다는 

영화 속에서 잠시 보여준 산악 영화 <말로야의 구름 현상>이라는 

옛 흑백 영상이 내 머리서 맴 돌았다.

아마도 내 머리가 시간의 잔혹함에 대응한 자가 치료를 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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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02 13: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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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고 패기 발랄함이 시간과 함께..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아도 가버리고, 그냥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다 마주한 거울에 흠칮놀람..늙고 추레한 중년아줌마! ~ㅎㅎ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2. 2015.02.02 13:1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젊고 패기 발랄함이 시간과 함께..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아도 가버리고, 그냥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다 마주한 거울에 흠칮놀람..늙고 추레한 중년아줌마! ~ㅎㅎ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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