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차 월례포럼 - 히브리 미학의 모험

1991년부터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에 개최해온 월례포럼이 지난 2일, 117차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주제, 강사의 경력, 관점, 논의방식 등에 틀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신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왔기에 월례포럼은 제도권 학문의 경계를 넘어 더 깊이 있고 날카로운 통찰을 얻는 기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월례포럼에서는, 히브리 미학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도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어떻게 건축의 양식으로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1월에 있었던 용산참사에 대한 신학적 비평을 담아내었습니다.

1. 일시 : 2009년 3월 2일 월요일 저녁 7시
2. 장소 : 한백교회 (5호선 서대문역 1번 출구 옆 골목 30미터, 안병무홀 1층)
3. 주제 : 히브리 미학의 모험
4. 강사 : 이정희 (본 연구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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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몸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그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갔고, 자기의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다. 이것은,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의 역겨운 풍속을 본받은 행위였다.
―「열왕기하」 16장 3절

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왕자를 바치라고 명합니다. 신속하게 의식이 준비됩니다. 지체할 틈이 없습니다. 온 국토를 불구덩이로 만들며 사방에서 시시각각 조여 오는 적군을 몰아내려면 더 지체할 수 없습니다. 도성 남쪽의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에, 그 성소에 불이 지펴집니다. 순식간에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제단 한복판에 사지가 묶인 채 거의 혼절해 있는 왕자는 몸둥아리를 향해 질주해오는 그 기름 불꽃의 열기에 비명을 지를 힘도 없습니다. 순식간에 몸에 불이 타오릅니다. 온몸에 발라진 기름을 게걸스럽게 핥아가던 불꽃은 곧 아이를, 그 열기와 고통에 꿈틀 거릴 틈도 주지 않은 채 휘감아버립니다.

기름 타는 연기와 살갗 타는 냄새가 잔인한 돌풍을 일으키며 제단 주위를 꽉 채운 군중의 숨결을 자극합니다. 군중은 사제의 푸른 도포자락이 휘날리며 격렬하게 허공을 가르는 춤사위를 봅니다. 아니 차라리 그건 칼날이 된 옷자락이었습니다. 비명인 듯 고함인 듯, 찢어질 것 같은 소리에 사제의 목청이 사정없이 갈라집니다. 아이의 불타는 몸, 그러나 신음으로조차 백성에게 드러내지 못한 고통을 사제의 갈라진 목청이 대신합니다.

아이를 휩싸버린 불의 열기처럼 군중의 가슴에 불이 타오릅니다. 고함을 지릅니다. 발을 구릅니다. 그리고 옷을 찢습니다. 아이의 죽음이 슬프고 분해서입니다. 잿더미가 된 강도와, 주검이 된 어린 자식들이 늙은 아비 어미들이, 저 주검들이 하소연으로 격정에 불타서입니다.

이제 왕이 앞으로 나옵니다. 눈물에 콧물에 범벅이 된 얼굴로 울먹이며 소리칩니다. 적을 무찌르자고 말입니다.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쓸어버리자고 말입니다. 신께서 아이의 주검을 아셨으니, 이 나라를 이 백성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아하스 왕이 아들을 번제물로 바쳤다는 오늘의 본문을 가상 이야기로 만들어 본 것입니다. 르신 왕의 다마스커스 제국이 시리아-팔레스티나의 패권국가로 부상한 때입니다. 강력한 경쟁국이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베가 왕도, 페니키아의 두로 왕 히람도 르신에게 굴복하였습니다. 르신은 아시리아의 서진을 막을 계획으로 시리아-팔레스티나의 소국들에게 연합군을 만들라고 압박을 가합니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혹은 마지못해 연합군에 참여하기로 합니다.

한데 남부 몇 나라들이 반아시리아 동맹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아하스의 유다 왕국이 그중의 하나입니다. 르신은 동맹을 맺은 모든 나라들에게 명합니다. 유다를, 마온 족속을, 여왕 삼시가 이끄는 아라비아를 인정사정 보지 말고 한껏 짓밟으라고 말입니다.

왕국의 거의 전역이 잿더미가 됩니다. 동쪽의 블레셋이, 서쪽의 모압과 암몬이 북쪽의 이스라엘이, 그리고 르신의 다마스커스 제국이 닥치는 대로 불지르고 살육하며 도성을 향해 공격해 들어옵니다.

피난민들이 줄을 잇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도성 안 백성들이 먹을 식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식량을 공출해올 시골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이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괜히 화를 내고 사소한 일로 다투는 일이 빈번해집니다. 민심이 흉흉해집니다. 누군가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때 궁중에서 쿠데타가 혹은 그러한 음모가 있었습니다. 아하스를 축출하고 ‘다브엘의 아들’이라는 이를 왕으로 삼으려는 것이었습니다(「이사」 7,6~7). 다브엘의 아들이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연구자들은 두로 왕 히람의 선조인 ‘두바일’이 ‘다브엘’과 동일인이라고 합니다. 하여 ‘다브엘의 아들’이라는 이는 두로 국의 공주가 낳은 유다 왕의 아들이라는 얘깁니다. 아하스의 아들이거나 그의 부왕인 요담의 아들로, 두로 국의 공주가 낳은 이라는 얘기지요. 어쨌거나 아하스는 이 반역 사태를 진압했고, 더 이상 민심의 동요를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약처방을 내놓았던 것 같습니다.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한 것이지요.

번제물은 대개 가축 가운데서 선별됩니다. 하지만 좀더 심각한 상황이 오면 인신제물이 쓰이기도 하는데, 주로 이방인, 노예, 천민의 자식 등이 제물로 선별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왕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쿠데타 음모가 있었고,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왕을 향해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곧 왕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왕자를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한 때는 바로 이런 시기였습니다.


희생제물은 그것을 바치는 이들 자신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말했듯이, 희생제물은 위기가 고조될수록 제의를 드리는 이들과 점점 근접한 존재로 선정됩니다. 그리고 가장 근접한 존재가 바로 자식, 특히 아들이었습니다. 곧 아들을 바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바친다는 가장 직접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이 의례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열왕기」와 「예레미야서」 등에서 이 인신제사가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효력이 있다는 대중의 믿음이 널리 퍼져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특히 대부분의 구절들이 전쟁와 같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은 이것이 위기시의 극약처방임을 시사합니다. 해서 나는 아하스가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의례가 대중을 선동하는 강렬한 효력을 가졌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갈라진 국론은 통일되었고, 그 덕에 르신 동맹군의 침공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아하스는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면서 봉신국의 예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긴급한 구호의 신호를 타전했습니다. 3년을 끌던 전쟁(주전 734~732년)은, 아시리아가 다마스커스를 침공함으로써 끝났습니다. 다마스커스 국은 완전히 멸망했고, 이스라엘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으며 항복하고 맙니다.

결국 아하스의 두 가지 방책은 다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인신제사로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고, 국제 외교전을 통해 침공했던 적성국을 완전히 혹은 더 회복할 수 없게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하스는 의도하지 않은 횡재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북왕국 이스라엘의 거의 전 영토가 황폐해지는 상황에서, 수많은 유민들이 남하하여 남왕국 유다로 몰려왔던 것입니다. 아주 빠른 기간 만에 흩어진 인구가 회복되었고, 아니 몇배가 늘었습니다.(아하스의 아들인 히스기야 왕 때에 유다의 인구는 12만 명에 이르렇다고 합니다.) 폐허가 된 땅이 다시 경작되었고, 새로운 경지가 개간되었습니다. 하여 생산성이 높아졌고, 따라서 왕국의 부도 몇 배가 늘어난 것입니다. 실제로 이 시기 고고학적 발굴물을 보면 유다 왕국은 번영기에 접어든 것임이 분명합니다.

아하스는 아들을 제물 삼아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아들의 불타는 몸은 자기의 고통을 말할 수 없었으나, 사제의 대언을 통해 아하스의 고통을 발설했습니다. 즉 아들의 고통은 침묵으로 가려지고 아비의 고통으로 번안됨으로써, 아비인 아하스는 자기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나라를 번영하게 하는 밑거름으로 삼은 것입니다.

기원전 8세기의 한 후진국의 군주는 벌써 타인의 죽음을 이용해서 자기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는 통치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그 이전이나 이후의 수많은 권력들도 이런 방식을 활용하곤 했습니다. 위기가 심할수록 더욱 큰 자극으로 고통을 양산하고 그 고통의 소리를 봉쇄하며 대신 자신의 소리를 더빙하는 방식 말입니다. 그것은 권력에게 성공을 선사하기도 했고, 실패로 귀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권력은 이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믿음을 대대로 간직해왔음이 분명합니다. 하여 그런 관행은 계속되어 왔습니다.

용산의 ‘불붙은 몸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누구는 세입자의 육체를, 또 누구는 진압경찰의 육체를 화두 삼아 정쟁에 여념이 없습니다. 특히 현 정권은 세입자의 불붙은 몸을 혐오스런 것으로 해석하며 관련자들을 모조리 체포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시신을 느닷없이 부검한다고 훼손하기까지 합니다. 시신 훼손은 대표적인 모욕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경찰의 죽은 몸에 자기들의 소리를 더빙하여 커다란 확성기를 연결해 버렸습니다.

필경 현 정부는 지금의 위기를 대단히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재정권이나 할 만한 행태를 도처에서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희생제물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오염된 존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인터넷 논객에서 학교 교사까지, 그리고 세입자들의 불타는 몸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연쇄살인범까지 말입니다. 세상의 분노를 투사시킬 존재를 만들어내려는 것입니다. 물론 자기들의 목소리로 더빙해서 말입니다.

현재로선 이러한 계략은 성공을 거둘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공하든 않든, 불붙은 몸의 소리를 침묵에 빠뜨리고, 권력의 소리로 변조시키는 방식은 결코 야훼의 제사일 수 없음을 성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야훼께서 ‘상상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죄’(「예레」 19,4~6)일 뿐입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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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08 05: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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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스의 "역겨운 행위" (자식 희생제물) 와 현 정부의 "얄팍한 계략"을 (용산 철거민의 희생) 비교한 좋은 글이네요. 아하스의 역사적 상황과 이명박 정부의 역사적 상황이 다르지만,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은 유사한 것 같습니다. 아하스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한가지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는듯 합니다. 열왕기하 16장 7절을 보면, 아하스는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나는 왕의 종이며, 아들입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반 앗시리아 동맹의 (다마스크스과 북이스라엘) 위기에서 도움을 요청한 것은 지금 이명박 정부가 반 미국 (북한) 위기에서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비록 시대적 상황이 다르지만, 정치적 힘의 논리라는 맥락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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