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하여

채수일
(한신대학교 신학과 | 교수)

1. 이스라엘은 작년 12월 27일 가자 지구에 대한 이른바 ‘캐스트 레드’ 작전을 개시, 지금까지 1천여 차례 이상의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공습으로 주요 시설 대부분이 파괴된 것은 물론, 침공 20일 째를 맞은 1월 15일, 1,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희생당했다. 이스라엘은 수백 톤의 폭탄을 퍼부은 것은 물론 각종 신무기들을 실험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3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희생되었다. 부상자도 5,000명 이상에 이르고 있다. 파괴된 가옥 4천 채 등 피해액은 최소 14억 달러에 이른다.[각주:1] 탱크를 앞세운 지상군의 투입과 시가전은 앞으로 더 많은 사상자를 낼 것이 분명하다. 여성과 어린이들의 희생은 물론, 부상자를 치료할 병원과 의약품의 절대 부족, 물과 전기 부족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명도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미국을 통해 무산시켰고, 유엔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 본부에도 포탄을 쏘고, 유엔 구호차량에도 공격을 가했다고 한다.[각주:2] 유럽 연합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관련 당사국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것은 총선을 앞둔 국내 집권여당의 정치적 상황과 비교적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를 그의 취임 전, 시험하기위한 의도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마찬가지겠지만, 대선에서 유대인의 지지를 받은 오바마가 ‘이스라엘 로비’[각주:3]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내는 물론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집단과 개인들이 있겠지만 이스라엘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낼만큼 충분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2. 오늘의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분할과 지배의 역사를 회상할 필요가 있다. 2009년은 국제연합이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 안을 채택한지 62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국제사회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 있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1947년 11월 29일 뉴욕, 국제연합총회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유대국가(영토의 56%)와 아랍국가(44%)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을 국제관리체제 하에 두기로 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스라엘은 사생아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이집트(가자), 요르단(웨스트뱅크)과 함께 나눠먹고 국토면적을 3분의 1가량 늘렸다. 그리고 8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무력에 의해 집과 땅을 등져야 했다.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20년이 지난 후, 1967년 6월, 이른바 제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를 차지했다. 점령은 곧 식민지화로 이어졌고, 우파가 정권을 잡은 이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1977년에 5천명에 불과했던 이 지역의 유대인 정착민 수는 이츠하크 라빈 노동당 당수가 선거에서 승리한 1992년에 12만 명에 이르렀고, 그 후 10년 동안 다시 두 배나 증가하여 25만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가자지구 땅의 약 25%를 차지했다. 이스라엘의 점령 통치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저항이 이어졌고, 1987년 이스라엘에 맞선 민중봉기(인티파다)가 일어났다. 그런데 요르단이 웨스트뱅크의 소유권 주장을 거둬들이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1988년 말 건국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을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양국의 평화협상은 1993년의 오슬로 조약으로 결실을 거뒀다. 팔레스타인은 가자와 서안에 자치정부를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95년 11월 4일 라빈 총리가 암살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큰 타격을 입었다. 후임 총리인 벤야민 네탄야후(1996-1999 재임)와 에후드 바라크(1999-2000 재임)가 점령지 반환을 거부한 것이다. 2001년 총리로 선출된 아리엘 샤론은 자살테러가 증가한다는 핑계로 웨스트뱅크를 재점령하고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2004년 7월 9일 국제사법재판소는 장벽을 불법 시설로 간주하고 철거를 명령했으며, 같은 달 20일에는 국제연합 총회가 찬성 150표, 반대 6표, 기권 10표로 동일한 결정을 내렸지만, 이스라엘은 장벽건설을 계속했다. 이스라엘은 평화협상을 중단하기 위해 2005년 9월 점령 38년 만에 의도적으로 가자지구에서 철수했다. 기막히게 연출된 유대인 정착민들의 가자지구 철수는 2005년 4월 총리로 선출된 에후드 올메르트의 작품이었다. 평화협상의 결렬은 팔레스타인 건국을 불가능하게 하고, 난민과 국경, 예루살렘에 대한 논의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의 정착촌 4개를 제외한 나머지 영토를 모두 합병할 수 있었다.

그 후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하마스가 2007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주요세력인 파타와의 내전 끝에 가자를 점령하자 이스라엘은 하마스 정권을 고사시키기 위해 봉쇄를 시작했다. 하마스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서구사회도 식량배급을 끊었다. 봉쇄정책으로 경제기반을 모두 빼앗긴 가자 주민 150만 명 대부분은 8개의 난민캠프에서 유엔의 지원에 의존하여 생계를 이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7일 이스라엘이 갑자기 침공을 시작했던 것이다. 4월 총선을 의식한 이스라엘 집권당의 의도인지, 오바마 미국 대통령 길들이기인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의 침공은 국제사회의 결의도 무시하는 오만함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대한 만행을 다시한번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힘의 논리가 어떻게, 얼마나 냉혹하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에 끼치는 이스라엘 로비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이다. 1947년 팔레스타인 영토의 44%를 약속받은 아랍 민족이 도대체 어떻게 2007년에는 동예루살렘에 수도도 없이, 난민 문제의 해결책도 없이 영국령 영토였던 시절의 10%에도 못 미치는 땅에 4개의 자치구밖에 차지하고 있지 못한단 말인가?[각주:4]

3. 세계의 양심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래된 정치적, 군사적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길 기원하고 있다. 유럽 연합도 이스라엘과의 동반관계 격상 계획을 잠정 중지했고, 볼리비아, 베네주엘라 등은 국교를 단절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시민단체들이 전쟁의 종식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15일에는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정의/평화 위원회, 한국교회 인권센터,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 감신대 기독교 통합학문연구소,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등 기독교 단체는 물론, 한국불자교수연합회, 한국이슬람중앙회,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등 관련 인사들이 서울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종교시민단체의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한편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대한 무차별 살상공격과 폭력의 즉각적인 중단, 이스라엘 지상군의 즉각 철수, 이스라엘의 학살행위에 대한 미국의 두둔 철회, 휴전협정의 즉각 수용 등을 종교인으로서의 인도적 정신과 세계 인권선언 정신 위에서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민간희생자들을 위한 의약품과 구호품 지원을 한국정부에 호소하고,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한국교회도 이스라엘의 야만적 침략을 규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다. 한국교회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각주:5]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데에는 한국교회의 친미주의, 일제식민지배하의 한민족의 운명과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야기를 동일시했던 전통,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학살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들에 대한 기억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홀로코스트’가 지금의 이스라엘의 만행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전거가 될 수 없다. 과거의 희생자가 현재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누구도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구원은 기억’임을 스스로 잊어서는 안된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심판받았다’. 뮌헨 근교 다카오에 있는 옛 집단수용소에 걸려있는 철학자 산타야나의 말이다. 희생에 대한 기억이 타인을 위한 배려와 돌봄으로 실현되어야지, 타인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과 지배로 보복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더구나 팔레스타인인은 유대인에 대한 가해자가 아니다.

4. 한국교회는 이스라엘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서구 그리스도교가 저질러온 이른바 ‘안티 세미티즘’(반유대주의)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한국교회는 자유롭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역사적 고난의 기억을 지금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결부시켜야 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스라엘의 만행을 억제하고, 중동에서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나는 한국교회가 다음과 같은 일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교회는 먼저 고난 받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것을 제안한다. 관광은 이스라엘 3대 산업의 하나로 일 년 관광수입이 30억 달러가 넘는다. 2007년 이스라엘을 방문한 관광객은 전년대비 25%나 늘어난 총 229만 3,700여명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유대인의 친척 방문이 많은 미국이 전체의 24%로 가장 많았고 이어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의 순이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 수요는 전체의 5%에도 못 미치는 11만 2,900명이지만, 이 중 한국은 3만 3,900명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아시아에서 1위를 기록했다. 2006년보다 21%나 성장한 수치로, 주로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한 방문이었다.[각주:6] 성지순례는 소중한 종교체험임이 분명하고, 학문적 연구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중동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한국교회가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잠정적 중지를 선언 할 것을 제안한다. 그 대신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안적 성지순례’를 하면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과의 사귐과 연대를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1962년에 수교를 했고, 이스라엘에 진출한 기업으로서는 현대종합상사, 대우, 기아, LG, 삼성물산, 효성물산 등이 있다. 1999년 현재 교역량을 보면 수출이 4억 8천 6백만 달러이고, 수입은 5억 6천 2백만 달러로, 한국이 7,600만 달러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의 교역에 압력을 가하고, 이스라엘과 관계된 상품들(이스라엘에 투자하는 회사들의 상품은 물론,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친이스라엘적 영화 등)에 대한 보이코트도 고려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교회는 이슬람, 유대교와의 신학적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길 제안한다. 근본주의적 그리스도교는 이슬람을 오랫동안 적대시해왔고, 최근 한국을 이슬람이 선교지로 선택하여 공격적으로 선교정책을 추진한다는 소문을 근거로 자칫 현실을 왜곡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현재 약 117만 명의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이슬람을 배경으로 한 나라에서 온 이주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슬람 적대적인 근본주의적 선교태도는 우리 사회 안에서 또 다른 종교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만드는 종교가 오히려 평화를 해치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이슬람 사이의 갈등은 신학적, 종교적 원인에 의해서만 유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원인에 의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불교나 힌두교 등 전적으로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보다 이들 세 종교들 사이의 갈등과 적대감이 더 심한 것은 이들이 어쩌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들 종교들 사이의 갈등구조를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선교적 전망을 얻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갈등과 억압과 저항의 역사에 의해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는 것, 그리고 다른 종교를 그 자체로서 정확하게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대화와 증언의 전제인 것이다. 그래야 우월감이나 피해의식 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를 타종교인의 개종으로 이해하거나, 상대가 듣던 안 듣던 일방적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한, 같은 뿌리를 가진 세 종교 사이의 대화와 화해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오늘의 이슬람국가들과 서방 세계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문명충돌론’이나 선과 악이 대결하는 ‘성전’으로 왜곡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신학적 대화는 훨씬 지난하고 긴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한국교회와 신학계는 지금까지 심각하게 숙고하지 못했던 유대교와 이슬람 문제와 대결하게 되었다. 그것이 유감스럽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더 갑자기 강화되었지만, 같은 뿌리에서 나온 세 종교들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기회를 한국교회는 선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데 한국교회가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 웹진 <제3시대>
  1. 한겨레신문, 2009년 1월 16일, 16면. [본문으로]
  2. 한겨레신문, 2009년 1월 16일, 2면. [본문으로]
  3. John J. Mearsheimer and Stephen M. Walt, 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 NY, 2007 참조. [본문으로]
  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르몽드 세계사, 권지현 역, 휴머니스터, 2008, 154. [본문으로]
  5. 지난 1월 15일 한국-이스라엘 친선협회(회장 튜태영 장로, 전 건국대 부총장)가 주최한 2009년도 신년하례 및 이스라엘의 밤에서 회장인 류태영 장로는 ‘하마스는 그동안 비밀리에 무장해 이스라엘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해왔다. 이번 전쟁은 그것을 막기 위한 공격으로 정당방위다... 이스라엘이 그 암세포가 더 커지기 전에 미리 수술을 들어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군사 지도자들이 우리의 혈맹인 미국과 은밀히 의논하는 가운데 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우리 민족을 보호해주실 것이다. 우리도 이스라엘 처럼 결단을 내려서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시키는 일에 상당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사상, 2009,2, 70 참조. [본문으로]
  6. 인터넷 여행신문, 2008년 8월 27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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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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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09.03.09 07:0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는 이번 학기에 Northwestern 내에 있는 Garrett Seminary에서 개설되고 있는 ‘War and Peace: Jews, Christians, and Muslims'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Kenneth L. Vaux라는 윤리학 교수님인데 올해 70세인 노학자입니다. 특별히 K. Vaux 교수는 아버지 부시의 91년 이라크 침공이후 종교간 갈등으로 야기된 ‘Ethics and War (or Terrorism)’ 이슈에 있어 많은 저작을 발표하는 그 분야에 있어 손꼽히는 권위자입니다.

    혹, Jews, Christians, and Muslims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수업시간에 다루는 text에 대한 소개를 잠시 합니다.

    Kenneth L. Vaux, Ethics and the Gulf War: Religion, Rhetoric, and Righteousness (Boulder, Colo.: Westview Press, 1992)

    __________________, Ethics and the War on Terrorism (Eugene, OR: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2)

    ____________________, Jew, Chritian, Muslim: faithful unification or fateful trifurcation? (Eugene, Or.: Wipf & Stock Publishers, 2003)

    ____________________, Ameirca in God's World (2009 가을 출판예정)


    Christopher Catherwood, MAKING WAR IN THE NAME OF GOD (New York: Citadel. 2007).

    Karen Armstrong, A History of God: the 4,000 Year Quest of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New York: Knopf, 1993)

    ________________, The battle for God (New Your: Alfred A. Knopf, 2000)



    K. Vaux 교수님의 책들은 다소 중복되는 내용이 없지않으나, 한 노학자가 특정분야에 있어 오랫동안 자신의 입장을 일관성을 가지고 전개하고 있다는 측면과 특정시기에 나타났던 역사적 맥락(ex. 91년 이라크 전쟁, 보스니아 내전, 9.11 테러)에 대한 친절한 해설과 다시 그 개별적 사건을 큰 틀안(Jew, Christian, and Muslim 관계)으로 합류시키고 있다는 면에서 돋보이는 성과라 생각됩니다.

    Christopher Catherwood와 Karen Armstrong의 책들은 미국 인문학계에서 Jew, Christian, and Muslim 문제가 등장할때마다 다루어지는 교과서적인 책들입니다. 역시 세 종교간의 계보학적 이해를 기본 바탕으로 냉전이후 구유고연방의 종교전쟁, 팔레스틴 문제, 9.11 테러까지 커다란 틀안에서 엮어냅니다.

    미국신학계에서도 Jew, Christian, and Muslim 문제는 가장 시급한 화두입니다. 각 신학교마다 이슬람과 유대교를 연구하는 과정을 두고 그 분야 학자를 초빙하고 학생들도 이슬람권에서 선발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재학하고 있는 Chicago Theological Seminary만 보아도 다음 학기 부터 유대교분야 석좌교수로 레비나스를 전공한 랍비를 초빙하여 유대교와의 대화를 강화하고 있으며, 옆에있는 LSTC(루터란 신학교)는 몇 년전부터 이슬람권(터키) 학생들을 박사과정에 받아 종교간 이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과 유대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전무한 한국사회 속에서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 이 글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동연, 2009)의 출판기념회를 위해 작성된 원고입니다.



사상-사건-사회상(社會相)/사회상(社會像)/사회사(社會史)-사회사적/사회학적(=사회과학적) 성서 해석/연구
이 아들은 여전히 ‘거지 왕자’의 신세인가?

김창락
(본 연구소 소장 | 신약학)

1. 어느 청개구리 집안 이야기 한 마당


청개구리 엄마가 죽으면서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들랑 냇가에 묻어다오.”

청개구리 자식들은 평소에 엄마가 시키는 일이면 꼭 반대로 해서 엄마의 속을 썩이었다. 못된 자식들이지만 엄마의 마지막 유언만은 그대로 시행해서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이라도 엄마에게 효도를 하기로 결의하고 엄마의 시신을 냇가에 묻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생겼다. 비가 내릴 때마다 엄마의 무덤이 냇물에 씻겨 내려 갈 위험 때문이다. 그래서 청개구리 자식들은 여름철에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려고 할 때면 엄마의 무덤이 걱정되어 “꽥꽥” 하며 울어대야 하는 것이란다.

물음 1: “청개구리 자식들은 마지막으로 효도를 한 것인가?”
답    : “엄마의 뜻이 유언에 똑 바로 표현되었다면 그렇다.”

물음 2: “청개구리 엄마는 실제로 냇가에 묻히기를 원했는가?”
답    : “속 썩이는 딸이 엄마로부터 ‘이년아, 차라리 죽어버려!’라는 극한적 꾸중을 듣고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그것은 엄마의 말의 액면상의 내용에는 부합될지라도 그 말의 진정한 의미/뜻과는 정반대이다. 이 딸은 엄마의 마지막 말 한 마디에서 엄마의 진정한 뜻을 찾을 것이 아니라 엄마와 자기 사이의 평소의 삶의 총체적 관계에서 찾아야 했을 것이다. 청개구리 집안 이야기에 대해서는 우리는 전지적(全知的) 시각을 가지고 있다. 즉 청개구리 엄마는 양지바른 산비탈에 묻히기를 원했다는 것, 자식들이 평생 동안 자기 말을 꼭 반대로 했기 때문에 자기가 유언을 이렇게 하면 자식들은 저렇게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산비탈에 묻히기를 원하면서도 정반대로 냇가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시각은 신에게만 속한 것이지 이야기 속의 어느 누구에게도 부여되지 않았다. 청개구리 자식들이 진정으로 마지막 효도를 하려고 했다면 엄마의 살아생전의 삶에 비추어서 엄마의 뜻을 조명해야 했을 것이다.”

물음 1과 2는 글 또는 저자의 뜻을 규명하는 해석학의 문제이다.

물음 3: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는가?”
답    : “이 이야기에 담긴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작업이다. 전통적 성서해석은 바로 이러한 작업이었다. 즉 성서 본문 속에 담긴 신학적 사상, 도덕적 교훈, 윤리적 지 시 사항 등을 끌어내는 것이 성서해석의 해석의 과제였다.”

물음 4: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났는가?”
답  : “이것은 역사적-비평적 방법(historical-critical method) 또는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에 관련된 물음이다. 성서에 대한 이 접근방법은 성서 본문의 이야기에서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가?’(What happened really?) 또는 ‘그 사건은 정말로 일어났는가?’(Did the event really happen?)를 탐구한다. 이 방법은 더욱 간단하게 역사적 방법(historical method 또는 historical approach)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또한 성서의 각 문서를 역사적 산물로 전제하고 저자와 독자와 누구이며 저작 장소와 연대, 저작의 계기와 목적, 저작에 사용된 자료, 다른 문서와의 문학적 관계 등등을 탐구한다. 역사 연구의 주된 관찰 대상은 과거의 사건이다. 사건은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관계의 연쇄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시간이라는 일직선을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사건의 진행 과정을 관찰하는 것을 통시적(通時的, diachronic) 방법이라 한다. 이 관찰 방법은 시간이라는 선로(線路) 위에서 사건이 진행하거나 일이 전개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며칠 전에 이라크에서 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대통령 부시의 기자 회견장에서 일어난 사건 말이다. 한 아랍 기자가 그의 신발을 벗어 부시에게 내던졌다고 한다. 이것은 사건이다. 사건은 시간 선을 따라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일 그 현장에 자동 무비 카메라가 비치되었더라면 그 사건의 진행 과정이 연속으로 촬영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을 신발 투척 사건이라 하자. 여기서 우선 기자석으로부터 구두 한 짝이 날아와 부시 앞에 떨어진 일만을 떼어서 살펴보기로 하자. 이 일의 맨 처음 장면은 한 기자가 그의 신발을 벗는 동작, 그 다음 장면은 한 손으로 신발을 들어 올리는 동작, 그 다음 장면은 신발이 날아가는 운동, 맨 마지막 장면은 그 신발이 부시 앞에 떨어지는 모습이다. 신발을 벗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부시 앞에 떨어지는 장면까지 진행된 일을 죽 열거하는 것을 사건의 서술(description)이라 한다. 사건은 단순히 서술하는 것으로 그 내용이 다 전달되지 않는다. 우선 그 사건이 일어난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원인(原因, cause)이라는 것은 물리적 운동을 촉발시킨 작동력을 가리킨다. 신발이 날아간 사건을 순전히 물리학적인 측면에서 관찰하는 경우에는 한 기자가 신발을 던지는 행위가 이 사건을 일으킨 원인이다. 화재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에 눈앞에 진행된 화재의 과정과 결과만을 진술하지 않고 화재의 원인이 무엇인지, 즉 방화인지, 실화(失火)인지, 전기 누전과 같은 사고로 일어난 것인지를 밝혀주어야만 화재의 내용을 좀 더 실제에 가깝게 제시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이 사건을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관계의 틀에 넣어서 관찰하거나 이 사건을 둘러싼 전후의 더 큰 맥락에 넣어서 관찰하는 것을 사건의 설명/해설(explanation)이라 한다. 그런데 구두 투척과 같은 사건은 사람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 일어났는데 우리는 이제 무엇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러한 행위를 하게 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행위를 촉발시킨 것이 무엇인지를 지칭하는 경우에는 원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아니하고 동기(動機, motive), 의도(意圖, intention) 또는 목적(目的, purpose) 등등의 용어가 사용된다. 이것을 규명하는 데는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우선 심리학적 방법으로 접근하면, 그 사람의 소영웅 심리, 열등감, 원한, 복수심, 피해의식, 당일 부부 싸움으로 인한 의기소침 등등 갖가지 개인의 심리 상태를 그 행위의 동인(動因, drive)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 운동에서 원인과 결과는 순전히 기계적으로 잇달아 일어난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개입하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는, 동인에서 기계적으로 행위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동인과 행위 사이에는 그 행위자의 판단, 의지, 결단과 같은 의식작용이 반드시 개입한다. 이러한 의식작용은 행위를 추동할 뿐만 아니라 그 행위가 일정한 목표점에 이르도록 진행 방향을 미리 정한다. 인간의 의식적인 행위에는 행위가 작동하기 전에 예기하는 미래의 결과가 이미 장치되어 있다. 이러한 것을 행위의 의도 또는 목적이라 한다.

“행위의 동인, 동기, 의도, 목적 등등은 행위자의 내면, 즉 그의 심리나 정신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 행위의 원인—이 표현은 정확하지 않지만 다른 적절한 표현이 없으므로 편의상 그렇게 사용하기기로 하자—을 그 행위자의 외부에서 찾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첫째로 역사적 접근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이 행위에 선행한 역사적 사건과 연관관계에서 해명하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라는 큰 사건이 앞서 일어났다. 그 행위자의 판단으로 이 전쟁은 이라크 민중을 불행에 빠뜨린 침략전쟁이며 부시가 바로 이 전쟁을 일으킨 원흉이다. 이러한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하거나 이러한 전쟁의 원흉을 응징하는 뜻으로 이러한 행위를 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이라크 전쟁은 이 행위가 일어난 상황이며 폭로나 응징은 이 행위의 목적 또는 의도이다. 둘째로 종교적 접근 방법이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이슬람 종교와 문화를 말살하려고 한다. 이러한 종교전쟁의 원흉인 부시에게 모욕을 가하는 것은 알라에 대한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행동을 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다른 접근 방법이 있다. 또 이 행위의 의미를 평가하는 데도 이라크 민중의 분노를 대변한 애국적 행위에서부터 국빈에게 외교적 결례를 행한 파렴치 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물음 5: “청개구리 가족의 삶의 환경은 어떠했는가? 그들의 살림살이 형편은 어떠했는가? 가족 사이의 관계는? 이웃 개구리들과의 교우 관계는?”
답    : “자녀의 배필을 결정하는 경우에 ‘착한 사위/며느리 노릇을 하겠습니다’라는 후보 자의 말 한 마디에만 근거하여 결정을 내리는 부모는 없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의 됨됨이는 어떤 말 한 마디에 죄다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총체적인 삶에 비추어 볼 때에 실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청개구리 가족은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살다가 없어졌다고 가정하자. 그들이 남겨 놓은 것은 부모 세대로부터 손자 세대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 기간에 그들이 쓴 몇 편의 글들을 남겨 놓고 떠나갔다고 하자. 우리가 이 청개구리 가족이 어떤 존재들이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자료는 그들의 글들이다. 우리는 이 글들을 통해서 그들에 관해서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알게 되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눈감고 지나쳐버린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 글들을 통해서 그들의 생각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너무나 많이 알지마는 그들의 먹이가 어느 정도로 결핍했는지 또는 이웃 마을의 황소개구리의 횡포 때문에 날마다 얼마나 불안한 삶을 살아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모른다. 이러한 사정은 1세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남겨 놓은 신약성서의 문서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신약성서의 문서들 중에서도 특히 복음서들과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들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의 내용이 무엇이며 이단 사상으로 배격한 것이 무엇인지를 성서에서 신학적 내용과 교훈적 사상을 끌어내는 작업을 신학적 해석이라 부르기도 하고 관념론적 해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청개구리 가족이 어떤 존재들이었는지를 총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그들이 일상의 삶을 영위한 구체적인 삶의 정황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그 자리에 본토박이로 살고 있었는지 아니면 이주자로서 나그네 신세로 살았는지, 그들이 사는 지역은 도시 빈민촌인지 농촌 지역인지, 지역 터줏대감과 황소개구리에게 얼마나 많은 양의 공세를 바쳐야 했는지, 종교적인 문제로 이웃집과 갈등 관계에 놓여 있었는지, 청개구리 엄마는 과부인지, 미혼모인지, 무직자인지, 피고용자인지, 자영업자인지, 청개구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떠했는지, 청개구리 자녀들 중에서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는 정도의 교육을 받은 자가 있는지, 전체적으로 그 청개구리 가족은 개구리 사회 전체에서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 그들은 빚 없이 또는 과중한 빚을 떠안고 살아가야 했는지 등등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청개구리 가족의 삶과 관련된 이러한 모든 측면을 총체적으로 일컬어서 사회적 정황이라 한다. 개개인은 고립된 존재로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여러 가지 제도, 기구, 윤리, 가치관 등등의 관계망 속에 얽혀서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사회의 이러한 관계망은 역사적 사건과는 달리 그 성격이 정태적(靜態的, static)이다. ‘정태적’이라 함은 불변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틀거지인 제도, 기관, 계급, 생산양식, 가치관 등등은 장구하게 동일한 양식으로 동일한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사회적 존재라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 얽혀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망이나 이 관계망 속에 얽혀 살아가는 존재의 사회적 정황을 관찰하는 방법은 사건을 관찰하는 방법과 다를 수밖에 없다. 사건은 시간의 선 위에서 진행해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매 순간순간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의 전체 과정을 포착하는 데는 무비 카메라가 사용된다. 이러한 관찰 방법을 통시적 방법이라 했다. 그러나 사회의 제도나 기구 따위는 정태적인 것이고 사회 구성원이 이러한 제도를 매개로 해서 맺은 사회적 관계는 정적(靜的)인 상태이다. 정적인 상태라 함은 운동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동일한 상태가 지속된다는 뜻이다. 정적인 상태를 포착하는 데는 무비 카메라가 필요 없고 정지 사진을 찍는 카메라로 충분하다. 이러한 관찰 방법을 공시적(共時的, synchronic) 방법이라 한다. 공시적 방법은 정지된 동일한 시점에서 구성원들 사이에 얽혀 있는 모든 관계의 실태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사회의 현상이나 인간 삶의 사회적 여러 차원을 서술하는 데 적절하다.”


2. 대상과 방법론 문제


오늘 우리가 논의하는 연구 대상은 1세기의 원시그리스도교의 사회이다. 연구의 어려움은 그리스도교 사회라는 것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으로만 구성된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이방 세계에 이전의 이방인들로 구성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70년 유대 독립전쟁 이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70년 이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 사회적 성격이 확실하게 다르다. 그리스도교 사회를 탐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사회의 사회적 차원의 삶의 현실을 구명하는 것이다. 사회적 삶의 현실이라는 것은 공시적 관찰 방법으로 특정한 시점에서 파악된 것이다. 그리스도교 사회를 지역별로 분류하여 취급한다 하더라도 이 현실이 그 사회의 100년에 걸친 전 기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연구의 목표를 세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는 사회 서술(social description)이다. 이것은 사회적 현실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사회상(社會相)이다. 그런데 사회학이 사회 현상을 서술하는 경우에는 전형적인 것, 일반적인 것, 동일성이 있는 것을 채택하지 특수한 현상은 배제한다. 빈약한 자료를 이용해서 이렇게 구성한 사회상이 어느 곳, 어느 시점의 특수한 사회 현상인지 전형적인 현상인지 판별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는 그 사회에 대하여 총체적인 성격 규정을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갱신운동 단체, 사회통합 세력이니 대안사회니 하는 식으로 판정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사회상(社會像)을 구축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한다.

셋째는 사회사(社會史)를 기술하는 것이다. 사회사(Sozialgeschichte, social history)는 학문분과로서는 역사학적 사회과학(Historische Sozialwissenschaft)이다. 그것은 일반적 역사과학의 한 특수한 관찰 방법이다. 여기서 ‘사회’(Sozial)라는 구성어는 관찰 방법을 가리킨다기보다는 관찰 대상을 가리킨다. 즉 여러 집단과 계층과 계급에 따른 사회 구조의 발전을 서술하고 이러한 각 집단의 크기, 처지, 의미를 다루며 나아가서 각 구성 요소들 사이에 상호작용과 사회적 과정의 역사를 구명한다. 그러니까 ‘역사’(-geschichte)라는 구성어는 관찰 방법을 가리키는 동시에 관찰 대상을 한정한다. 즉 그것은 과거의 사회가 연구 대상임을 뜻하는 동시에 장기간에 걸친 변화 과정을 추적하는 데 역사학적 관찰 방법이 사용된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가 연구 대상이기 때문에 사회과학적 개념이나 분석 방법을 당연히 사용한다. 사회사라는 말은 이 학문의 연구 결과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상의 세 가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론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사회적’(social)이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방법이다. 이것은 ‘사회적 서술’(social description)이라는 표현 속에 나타나 있다. 사회적 서술은 사회의 여러 문제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이용하여 그 사회의 모습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립한 결과물은 사회상(社會相)이다. 여기에는 엄격한 사회과학적인 판단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구성된 사회상이 특수한 현상인지 전형적인 현상인지 판별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둘째는 ‘사회학적’(sociological) 또는 ‘사회과학적’(social-scientific) 방법이다. 여기서 ‘사회학적’이라는 표현은 사회학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과학을 대표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사회과학은 사회학을 위시해서 경제학, 정치학, 인류학, 인구학 등등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모든 사회과학적 학문분야를 함께 뭉뚱그려 지칭하는 정확한 표현은 ‘사회과학적’이라는 표현이다. 이 두 가지 표현은 동의어로 사용된다.

사회학적 또는 사회과학적 방법은 사회의 모습을 구명하는 데 무엇보다도 사회학의 이론과 분류 체계를 이용한다. 사회학에는 여러 유형의 사회학이 있다. 기능주의 사회학이 있는가 하면 갈등론적 사회학이 있다. 기능주의 사회학 이론을 채택하느냐 갈등론적 사회학 이론을 채택하느냐에 따라서 연구 결과는 정반대로 갈라진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구축되는 전체적인 사회의 모습은 사회상(社會像)이다.

셋째는 ‘사회사적’ 방법이다. 이 방법의 특이성은 역사학적 관찰 방법을 포용한다는 데 있다. 그러면서도 이 방법은 사회적 사실을 서술하는 점에서는 첫째 방법론을 수용하며 사회학적 분류 도식을 응용한다는 점에서는 둘째 방법론을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서 형성한 결과물은 일정 기간에 걸친 그리스도교 사회의 역사 즉 사회사이다.


3. ‘거지 왕자’의 신세


그리스도인들은 성서를 하나님의 계시가 담겨 있는 거룩한 책으로 받아들인다. 사회학을 위시한 사회과학들은 순전히 세속적인 인간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거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성서 연구에 사회과학적 방법을 도입하는 것은 “우리는 우리의 원수와 결혼한다”는 어느 아프리카 추장의 말이 뜻하듯이 위험할 뿐만 아니라 전혀 불필요한 일로 여긴다. 하나님의 계시는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세속적 학문을 이용하여 계시를 밝히려는 노력은 배격되어야 한다는 사상이 전체 그리스도교계를 지배하고 있다. 특히 개신교는 개인의 신앙과 개인 영혼 구원에 역점을 두기 때문에 사회 문제는 전적으로 외면되거나 소홀히 취급되었다. 1930년대에 미국에서 사회복음 운동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사회적 책임을 반짝 강조하다가 곧 신정통주의 신학과 보수주의 신학의 위세에 짓눌려 사라져버렸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 남미의 해방신학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지만 해방신학은 성서의 사회학적 연구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성서의 사회학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서부터이다. 이 이후로 특히 미국 신학계에서 성서의 사회학적 연구물이 다양하게 산출되었다.

여기서는 이러한 새로운 연구의 물결을 처음으로 일으킨 한 사람만을 언급하겠다. 그는 독일 신학자 타이센(G. Theissen)이다. 그는 1974년에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학』이라는 저서를 내놓았다. 이 저서가 연구사적으로 볼 때에 성서의 사회학적 연구를 촉발시킨 공적은 아무리 높이 평가하더라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저서는 공로 못지않게 많은 악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한 가지 단점만 지적한다면 기능주의 사회학 이론이 여기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이론 때문에 연구 결과 전체가 정반대로 왜곡되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많은 신학자들이 이 연구에 종사하면서 많은 귀중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지마는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연구는 여전히 서자의 신세에 머물러 있다고 할 것이다.


4. 성서 연구냐 성서 해석이냐?


성서 연구와 성서 해석은 같은 뜻으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구별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성서 해석은 성서의 말씀, 즉 성서에 담긴 메시지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성서 연구는 성서와 관련된 사항들, 예를 들어 성서의 생성, 성서의 세계, 성서 시대의 역사, 선교의 역사, 사도들의 활동 등등의 주제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 연구는 성서가 전하고자 하는 계시의 내용 자체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 해석을 위한 예비 작업이나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학적 방법이나 사회사적 방법으로 올바로 재구성한 성서에 나타나 있는 여러 형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사회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에 그 공동체의 삶과 관련해서 전해진 성서 본문의 의미가 더욱 생동감 있는 말씀으로 들려올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서 연구 자체가 성서 본래의 궁극적 목표, 즉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관한 기쁜 소식을 듣는 것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이 본래적 목표는 올바른 성서 해석을 통해서 이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학적 성서 해석이나 사회사적 성서 해석이란 무엇인가? 사회학적 방법이나 사회사적 방법이라는 것은 성서의 본래적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동원된 유용한 보조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비유를 사용해서 말하자면, 성서를 읽을 때에 전통적으로 촛불을 사용해서 읽던 것을 훨씬 더 밝은 전등이라는 조명등을 사용하여 읽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성서 읽기의 방법을 비교한다면 다른 점은 조명등이 교체되었다는 점이다. 조명도가 높아지면 읽기가 더 편리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성서 본문에서 찾아내려고 하는 대상을 바꾸지 않는 한, 아무리 조명이 밝아졌다 하더라도 독자가 찾으려고 목표하는 것 이외의 것이 그의 눈에 띌 수 없다. 전통적인 성서(聖書觀)은 성서 속에 하나님의 계시가 담겨 있는데 이 계시의 내용은 신학적 담론, 즉 신학 사상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성서를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작업은 이 신학 사상을 알기 쉬운 말로 풀이하는 작업이다. 이 경우에 성서 해석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신학 사상을 알기 쉬운 말로 바꾸어 놓는 작업이 되는 셈인데 성서 해석의 과제는 한 신학 사상을 다른 하나의 신학 사상으로 풀이해 내는 작업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러한 성서 해석을 신학적 성서 해석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신학적 성서 해석은 오로지 사상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관념적 성서 해석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해석의 최종 목표인 계시의 내용이 신학 사상이라고 하는 전통적 신학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아무리 밝은 조명등으로 바꾸더라도 해석의 결과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이분하고 인간의 삶을 영적인 삶의 영역과 물질적인 삶의 영역으로 이분하거나 현세와 내세로 이분하여 어느 한 쪽을 무가치한 것으로 폐기 처분하거나 전적으로 무시하는 사고방식은 그리스의 이원론 철학 사상에서 유입된 그릇된 사상이다. 성서가 인간의 구원, 해방, 자유를 말하는 경우에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떠나서 살아 있는 인간으로부터 반쪽 떼어낸 영혼이나 마음이라는 가상 존재가 누리는 어떤 것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이 계시 사건이다. 그러므로 계시 사건은 육신과 관련해서 해석해야지 육신과 분리해서 해석한다는 것은 계시 사건의 근본 원리에 위배된다. 계시의 내용을 순전히 신학적 사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육신이 된 말씀을 도루 말씀으로 뒤바꾸어 놓는 반역 행위가 아니겠는가?

1970년 대 말에 당시의 서독과 동독, 프랑스, 네덜란드 출신의 몇몇 성서학자들이 사회사적 성서 해석에 종사하다가 전통적 성서 해석을 배격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성서 해석을 제창하려는 취지로 “비관념적 성서 해석” 또는 “물질적 성서 해석”(materialistische Bibelauslegung)이라는 이름을 붙여 해석 모임을 결성했다. 우리나라에는 “실사적(實事的) 성서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바 있다. 이 성서해석 방법은 아직까지는 ‘거지 왕자’의 신세이지마는 성서해석의 본래적 왕자, 참된 적자(嫡子)로 판명될 날이 곧 도래하기를 고대한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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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달리야의 꿈에서 위기를 보다
- 재앙을 넘어서는 길에 관한 신학적 역사적 상상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1. 재앙

재앙에 관한 설(說)들이 난무했다.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이 5%를 넘지 못하는 우리 현실에서 국제곡물가격의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낳는다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Agriculture+Inflation) 재앙설은 더 이상 남의 얘기일 수 없다. 환경에 관한 각종 재앙 시나리오들에 낯설어하는 이는 이젠 없을 정도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2008년 여름)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상승하는 유가 소식을 접하면서 에너지 재앙설 또한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국제기축화폐라고 할 수 있는 달러화의 붕괴 가설에 관한 책 몇 권이 번역 출간되면서 그런 것도 치명적 재앙의 가능성으로 우리에게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에 난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가능성들과는 다소 다른 시나리오로 구성된 재앙이 우리는 사납게 덮쳐버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에서 시작한 미국발 금융위기가 낳은 경제재앙. 이미 그 파괴력이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 삶의 현장들에서 현실화되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일 뿐이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우리의 존재 조건들을 무참히 짓밟아 버릴지, 불길한 예측들이 난무한다.

많이 개선되긴 했어도 미국경제에 대한 의존성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 미국발 재앙은 우리에게 남다른 위기로서 다가온다. 특히 가계부채가 무려 660조가 넘는 부채과다현상은 매우 치명적이다. 경기침체로 인한 채무불이행사태가 속출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가계수지가 적자인 가정이 거의 30%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의 상하향 분해 추세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특히 빈곤층의 크게 늘었으며, 상류층의 부가 크게 증가하는 현상이 현저한데, 최근의 경기침체는 이러한 사정을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요컨대 소득 양극화 문제는 최근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의 요소다.

한국의 MB 정부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 종합부동산세의 사실상의 폐지 등, 그리고 수도권 규제완화,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 금융ㆍ산업 분리의 폐지 등이 추진 중이다. 또한 공기업 민영화, 지상파방송의 민영화, 한ㆍ미 FTA 같은 고강도 세계화 정책 등에 대해서도 강력한 시행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박정희식 성장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시장근본주의를 결합한 위기대처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득양극화를 크게 심화시켰던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보다 훨씬 더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령,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가운데 조세부담율이 가장 낮은 한국사회에서 감세정책을 펴고, 역시 가장 낮은 사회안전망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직면한 위기를 타개할 국가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다면, 이 위기요법이 초래할 계층분화의 방향이 어떨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설사 이러한 정책이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경기부양 효과가 있어 낮은 성장률의 문제가 해소된다고 해도 성장 혜택의 분배를 공정하게 할 의지가 정부에게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있다 하더라도 이미 불공정 게임룰이 제도화된 터에, 배분할 ‘파이’가 커지든 안든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어느 경우든 양가적인 면이 있듯이 재앙 또한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평소라면 좀처럼 시행할 수 없는 근원적인 개혁을 드라이브할 수 있는 순간이 도래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감한 정책이 때로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우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 경우 당면한 재앙은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징조가 되어버릴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MB 정부의 위기관리 전략은 심히 우려스럽다. 우리는 바로 이런 우울한 교훈을, 하여 우리를 비판적으로 점검할 안성마춤의 사례를 성서의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2. 선택
   
그 때에 주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록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나와 빈다고 해도, 내가 이 백성에게 마음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이 백성을 내 앞에서 쫓아내라! 그들이 너에게 ‘어디로 가야 하느냐’ 하고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어디를 가든지, 염병에 걸려 죽을 자는 염병에 걸려 죽고, 칼에 맞아 죽을 자는 칼에 맞아 죽고, 굶어 죽을 자는 굶어 죽고, 포로로 끌려갈 자는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네 가지로 그들을 벌할 것이다. 그들을 칼에 맞아 죽게 하며, 개가 그들을 뜯어먹게 하며, 공중의 새가 그들의 시체를 쪼아먹게 하며, 들짐승이 그들을 먹어 치우게 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서」 15장 1~3절

예레미야 예언자가 예고한 재앙 시나리오는 그대로 실현되었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된 것이다. 두 번의 침공(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 때; 주전 586년 시드기야 왕 때)으로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이 불타 사라졌고, 수많은 농촌마을 또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에 무려 85%의 거주지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급부상한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은 한때 인구가 일만오천 명에 이르는, 요시아 왕 당시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커다란 도시가 되었으나, 전란 후 오랫동안 그 십분의 일인 일천오백 명을 넘지 않는 소읍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농촌의 경작지들은 거의 쑥대밭이 되었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유민이 되어 타지역으로 이주하여 마을은 거의 비어버렸다. 유대 지역은 이후 오랫동안 회복되지 못한 채 버려진 땅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심각한 재앙이 기회이기도 했다. 예루살렘이 정복되고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눈알이 뽑힌 채 바빌로니아 중원으로 압송되어 구금됨으로써(「열하」 25,7) 유다 왕국은 완전히 몰락하였다. 물론 바빌로니아는 이 지역을 직할통치지역으로 삼지 않았다. 그보다는 대중의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는 토착인사를 통치자로 위임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보다 안정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은 정복지역에 대한 이런 방식의 체제재편을 선호하였다.

유대 지역의 통치자로 위임된 이는 ‘그달리야’라는 사람이다. 그는 사반의 손자이며 아히감의 아들이라고 한다(「열하」 25,22). 사반은 요시아 개혁 당시 사관 등 요직을 역임한 인물이고(「열하」 22,8),1) 그의 아들 그마리야와 손자 미가야는 반개혁의 시대인 여호야김 왕 때에 반왕당파인 개혁파의 주요 인사로, 종종 왕에 반하는 필화사건을 일으킨 급진적 인사인 예레미야를 음으로 양으로 비호하곤 했다(「예레」 36,11~20). 그리고 사반의 또 다른 아들이자 그달리야의 부친인 아히감 또한 개혁당파의 핵심인물이었다(「예레」 26,24). 요컨대 이 가문은 요시아 개혁을 지지하는 유력한 세력을 대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시아 개혁은 왕당파와 민중세력(‘암하아레츠’)이 연대하여 귀족세력을 위축시키는, 이른바 ‘위로부터의 개혁’이다. 그 이전까지 유다 왕국은 고대 팔레스티나에서 약소국으로 국가발전이 매우 더뎠던 나라다. 인구도 적었고 토양도 척박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왕권제로의 제도화도 뒤쳐진 후진국이었다. 오므리-아합 왕 치하의 이스라엘 왕국의 봉신국이 된 기원전 9세기 초 이후 왕권은 조금 더 발달하게 되지만 여전히 주변정세와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이후 왕당파와 귀족간의 본격적인 정쟁이 계속되었고, 약소국이 대개 그렇듯이 이 정쟁은 주변의 나라들이나 제국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힘의 균형이 깨지곤 했다. 이 과정에서 유다 왕국의 여러 왕들이 궁중 암투로 살해되거나 감금되어 명목상의 왕위만을 유지하는 등,2) 왕권은 여전히 잘 확립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열왕기」에는 이러한 정쟁 과정에 ‘암하아레츠’라는 존재가 등장하고 있다.

동시대 문헌들의 용례에 따르면 이 용어는 비하적으로 표현되건 아니건 ‘농민 일반’을 개략적으로 지칭하고 있다.3) 한데 제1성서(=구약성서)에서 사용된 17회 중 식민지 시대를 다루는 2회4)를 제외한 15회가 유다 왕국의 정쟁과 관련된 텍스트에서 사용되고 있다.5) 다시 말하면 유다 왕국 역사와 관련하여 성서에 등장하는 암하아레츠는, 무정형적인 농민 일반이 아니라, 정치세력화한 농민세력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요아스, 아마샤, 아사랴, 요시아 왕을 즉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만큼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존재하는 농민세력을 가리킨다.  

요시아 왕은 이들을 지지세력으로 삼아 과감한 개혁정책을 편다. 농민의 몰락을 억제하고, 이미 몰락한 이들을 보호하는 조치들이 과감하게 시행된 것이다. 땅의 소유권을 옮기는 것에 대한 금령(「신명」19,14), 고리대금과 악랄한 부채 회수에 대한 금령(24,6‧10~13‧17), 정의로운 재판 강조(16,18~20), 뇌물수수 금령(16,18~20), 정량화된 도량형(25,13~16) 등이 이 개혁의 주요 내용들인 것이다. 이는 정치세력화한 농민세력을 가정할 때, 이들이 요시아 정부에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는 가정을 할 때 가장 타당하게 설명되는 조치들이다.

다시 그달리야로 돌아가자. 그는 이러한 민중적 개혁의 관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인물이다. 통치자로 위임되자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빈민화된 주민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식량을 배급해준다(「예레」 39,10; 40,10). 또한 그가 도읍으로 삼은 미스바는, 전란 중 파괴되지 않은 성읍으로, 바로 이러한 민중주의적 정책에 안성마춤인 도시다. 과거 지파동맹 시대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성읍으로(「사사」 20,1), 그의 민중주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해줄 만한 전통이 살아있는 고도(古都)이다. 그리고 유다 왕국에서 그러한 민중적 전통을 대변하는 또 다른 읍락인 아나돗 출신의 명망가 예레미야(「예레」 1,1) 또한 그달리야를 지지하고 나섰다(「예레」 40,6). 뿐만 아니라 세겜, 실로, 사마리아 같은 오래된 지파동맹의 전통을 간직한 또 다른 지역 출신 인사들도 그의 체제 속으로 속속 귀의하고 있었다(「예레」 41,5).

재앙을 맞아 모든 생산기반이 붕괴된 상황에 놓인 사회에서, 지도자 그달리야는 이렇게 대중의 자생력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와 정책을 펴고자 했다. 엘리트집단을 강화함으로써 붕괴된 체제를 재건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중사회의 활력을 통해서 체제를 굳건히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의 꿈은, 그의 비전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구왕족 출신의 군부인사였던 이스마엘이라는 사람이 그를 암살한 것이다(「열하」 25,25). 이스마엘이 보기에 그달리야의 꿈은 그토록 불온해보였던 모양이다.6)

지도자를 잃어버린 체제는 동시에 그 꿈도 잃어버렸다. 그달리야에게로 귀하한 구왕국의 귀족들은 그가 죽자 어찌할지 몰라 허둥댄다. 그들은 예언자들에게 자문을 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도 그렇게 한 듯하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소.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우리가 이집트로 가서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을 리가 없소. 이것은 틀림없이,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우리를 바빌로니아 사람의 손에 넘겨주어서 그들이 우리를 죽이거나 바빌로니아로 잡아가도록 하려고, 당신을 꾄 것이오.
―「예레미야서」 43장 2절 하반부~3절

 이 텍스트는, 그달리야의 정책을 계승하라는 예레미야의 충고에 대한 귀족들의 반응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갈등하고 있다. 하나는 ‘이집트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미스바로의 길’이다. 미스바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그달리야의 비전이고 대중의 꿈이다. 대중과의 공존을 강조하는 것이고, 함께 식탁을 나누는(「예레」 41,3) 평등주의 사회의 지향을 담고 있다. 반면, ‘이집트로의 길’은, 오래된 모세 설화가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출애굽한 대중이 미래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꿈으로 회귀하고픈 퇴행적 갈망을 상징한다. 바로 ‘풍요에 대한 노예의 꿈’이다. 주인들의 풍요로운 식탁을 꿈꾸며 자기들도 그 자리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갈망이 바로 ‘이집트로의 길’인 것이다. 또한 전자가 대중의 삶에서 시작하는 정치를 시사한다면, 후자는 누가 누리든 어떻게 나누어지든 풍요 그 자체에 주목하는 정치를 암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스바와 이집트를 지향하는 두 길, 혹은 그달리야와 이스마엘로 나뉘는 두 길은 역사인 동시에 정치에 대한 상징이다. 어떤 정치가 진정 야훼의 길이며, 어떤 정치가 진정 야훼의 백성이 꿈꾸어야 할 길인가. 바로 이 선택 앞에 우리는 지금 서 있다.

결국 그달리야가 죽은 이후, 예레미야 같은 이의 간곡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 남은 지도자들은 예레미야 등을 볼모로 하여 이집트로 간다.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이 길이 바빌로니아의 보복을 벗어나는 길이라고 그들은 믿었던 것이다. 바빌로니아가 재앙을 상징한다면, 바로 재앙을 벗어나는 길은 과거 회귀적인 퇴행적 꿈, 풍요주의/발전주의를 향하는 것이라고 보았다는 얘기다. 그 길로 예레미야를, 대중을 강제로 끌고 간 것이다.

3. 위기를 보는 시선


재앙에 대한 MB 정부의 대응책은 어느 길을 택하고 있는가. 어느 길로 시민을 인도하려 하는가. 지난 20년간의 민주주의적 기조를 뒤흔들면서까지 강권을 휘두르며 대중을 이끌려는 그 길은 어디인가. 그토록 절박하게 그들을 부르는 그들 식의 유토피아는 어디인가. ‘이집트’인가 ‘미스바’인가.

내가 만난 한 경제학자와 또 한 명의 목사는 내게, 나의 이야기 라인을 따라 선택의 문제를 고려한다 해도 ‘미스바로의 길’은 단지 ‘도덕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충고를 하였다. ‘미스바로의 길’이란 결코 현실 속에서 재앙 타개책으로 검증되지 않은 방식에 불과하다고. 반면 IMF 식의 구조조정이 추구했던 신자유주의나 박정희 식의 성장주의는 위기를 해소한 방식임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MB식 성장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표준은 재앙을 대처하는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한데 과연 그런가. 1990년의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의 정치학, 그 시장근본주의적인 정치경제학은 국제무역을 자유화하고, 이를 제약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며, 금융의 국제적 이동의 자유를 절대화하고, 공공적인 것을 민영화하는 등의 기조에 따라 세계은행(WB)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는 국가들의 개발정책을 강제하였다. 그런데 이런 개발정책은 과연 재앙에 대처하는 국제표준이라고 해도 무관한가.

1990년대 말 지구를 휩쓴, 특히 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지역을 휩쓴 외환위기는 이러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국제적 실험의 장이었다. 그리고 세계은행은 1999년 새로운 발전모델을 제시한다.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할 만한 이 모델의 기조는 시장근본주의적 개발정책은 세계의 빈곤화를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또 다른 지구적 위기를, 재앙 위의 재앙을 초래하였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하여 시민사회의 빈곤화를 억제하고 빈곤화된 대중의 회생 프로그램을 통해 저들을 다시 시장으로 진입하게 하는 방식의 새로운 개발모델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세계은행그룹 내부에서 제시된 것이다. 2006년 노벨상을 수상한 그라민 은행이 거둔 마이크로크래디트 운동의 성과는 전체 운용기금의 97%를 제공한 국제 금융기구 등의 개발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세계 각 곳의 시장주의자들과 거대자본들이 운용하는 연구기관들은 막대한 기금을 투자하여 빈곤화된 대중의 시장진입을 위한 프로그램의 가능성에 대해 조사 연구를 시행하였다. 요컨대 IMF식의 신자유주의적 표준은 더 이상 국제표준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작은자들의 회생프로그램이 오늘의 시장이 선호하는 표준적 지위를 획득해 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미스바와 이집트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의 정부를 돌아보고, 그것에 대한 우리 자신의 입장을 묻는 자리로 돌아가자. 나의 관심은 시장이 선호하는 선택의 적실성이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문제의식을 낭만적 도덕성으로 폄하하는 신자유주의적 독선에 대해 반론을 펴고 싶었을 뿐이다. 나의 관심은 오늘의 재앙을 보면서, 재앙 위의 재앙을 막는 선택에 관한 신학적 판단 혹은 해석에 있다. 나는 그 해석의 준거를 말하기 위해 요시아 개혁을 경유해서 미완으로 끝난 그달이야의 비전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펼쳤다. 미스바의 길은 요시아 개혁과 예레미야 예언자의 신탁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달리야를 통해 정책적 실험에 돌입한 방식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빈민의 회생에서 몰락한 국가의 회생을 꿈꾸는 한 지도자의 비전을 통해 역사화된 것이다.

이스마엘의 암살로 이 실험은 미완으로 끝났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예레미야와 대중을 강제로 이끌고 이집트로 갔다. 그것이 결국 재앙 위의 재앙이 되었는지, 역사학은 그것을 판단하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학은 그것에 판단을 내린다. 그것은 야훼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를 통한 그달리야 에피소드에서 ‘야훼의 길’은 명백하게 미스바를 향하라고 권고한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빈민의 희망은 곧 야훼의 희망인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주]

1) 최근 이 시기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충실한 학자들은 유다 왕국에서 처음으로 왕실의 역사가 기록되던 시기를 히스기야 왕 시절이거나 요시아 왕 시절로 본다. 바로 그 시기에 사관, 즉 왕실 이데올로기를 펴는 역사서술 책임자의 위상은 대단히 중차대하였을 것이다.

2) 아하시야 왕(「열하」 9,27)은 이스라엘 왕국에서 벌어진 예후 쿠데타 때에 살해되었고, 그의 부인이자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었던 오므리의 딸인 아달랴가 남편 아하시야 사후 권력을 장악했으나 궁중에서 일어난 정변으로 살해된다(11,16). 이 쿠데타로 즉위한 요아스도 피살되었으며(12,20), 그의 아들 아마샤도 정변으로 희생되었다(14,19). 이렇게 유다 왕국이 이스라엘 왕국의 봉신국이 되면서 발달된 왕권제에 관한 관념이 도입되고, 시리아-팔레스티나의 국제관계 망 속에 흡수되면서 연속된 네 명의 통치자가 정변으로 죽임을 당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또 그를 승계한 아사랴(웃시야)는 「역대기하」 26장 19절에 의하면, 사제들과의 갈등 이후 문둥병자가 되어 평생을 밀실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궁중암투의 상황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까지 네 명의 통치자는 명껏 왕으로 재임하였지만, 그 이후인 아몬부터 마지막 시드기야까지 6명의 왕중, 여호야김을 제외한 모든 왕이 정변으로 죽거나 전사하거나 제국통치자에 의해 볼모로 끌려가야 했다. 요컨대 선진적 왕권제가 도입된 아하시야부터 마지막 시드기야까지 15명의 왕 중, 네 명을 제외한 모든 통치자가 불의(不意)의 최후를 맞았다. 

3) 무지랑이 농촌 대중을 가리키거나, 지주 혹은 씨족장 등을 중심으로 하는 농민을 가리킨다.

4) 「느헤」 7,6; 「에스겔」 12,19.

5) 「열하」 11,14・18・19・20; 21,20・24; 23,30; 24,14; 「역하」 23,13・20・21; 33,25; 36,1; 「예레」 11,9; 52,25.

6) 여기서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 하여 부연하면, 그달리야는 바벨로니아에 의해 위임된 통치자이지만 그렇다고 그는 식민주의자이고, 이스마엘은 자주파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유다 왕국이 선진화되면서, 왕실은 끊임없이 국제관계 속에서 체제를 해석하면서 발전하였다. 왕국 말기만 하더라도, 정부 내에는 친 아시리아-친 이집트 노선의 세력과 친 바벨로니아 노선의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정쟁을 벌였다. 말했듯이 그달리야는 친 바빌로니아 세력이었는데, 아마도 이스마엘은 친 에집트 세력인 듯하다. 한편 고대의 제국들은 점령지역에 봉신국 지도자를 위임했지만, 이들 봉신국 지도자들은 제국에 무조건 충성하는 이들은 아니었다. 그마큼 제국의 영향력은 촘촘하지 못했다. 사실상 봉신국 왕들은 제국에 반기를 들지 않는 한 영토에 대한 거의 자율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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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달훈
    2013.09.04 17:0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신학과 역사의 끝없는 궤리…

공간의 상품화가 빚는 비극

유승태 (본 연구소 상임 연구원)


참혹한 사고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용산참사를 보고 ‘기시감’을 말한다. 그리고 ‘그때’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서울의 ‘새로움’을 재현하는 대표적인 공간에서 시간의 역행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니, 역설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뉴(new)-’ 또는 ‘재-’라는 접두사는 ‘부자 되는 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는데, 이번 사고를 통해 서울의 도시공간을 재구성하는 ‘뉴타운’, ‘재개발’ 등의 달콤한 단어들이 사실은 공간의 상품화를 더욱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이 재확인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품화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는 부자 되는 꿈을 꿀 자격을 갖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예 그 공간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도 다시 확인하게 됐다. 용산참사는, 상품화 기획에 거치적거리는 모든 대상을 곱게 갈아 새로운 존재로 만드는(또는 존재의 자리에서 내쫓아버리는) ‘악마의 맷돌’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튼튼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용산4구역은 도시환경정비사업지역으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이하, 도촉법)의 적용을 받는 곳이다. 이 법은 2006년 7월부터 시행되기 시작해, ‘뉴타운 열풍’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주목해 봐야 할 점은 이 법의 시행이 ‘재개발’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더 강력한 공간의 상품화 패러다임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재개발’ 하면 오래된 주택들 헐어 새 아파트 짓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도촉법은, 기존의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소규모 블록을 개발 단위로 보았던 데 비해, 광역 단위 또는 복합 자족도시 단위를 개발의 범주로 설정하고 있다. 도촉법은 개발 권역 내의 주거, 상업, 업무 등 생활권을 하나의 세트로 묶어 개발 계획을 먼저 세우고 개발을 진행하게 된다. 도촉법의 적용을 받는 지역은 중소형 아파트 건설의무가 완화되며, 건폐율과 용적률 제한도 대폭 완화된다. 건폐율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건폐율이 높을수록 건물을 넓게 지을 수 있다. 따라서 건폐율 완화는 땅값을 올리는 유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 비율을 말하는데, 용적률이 높을수록 고층건물을 지을 수 있고, 그만큼 건물주의 이득이 커진다. 정리하면, 도촉법 적용 지역, 그중에서도 용산4구역과 같이 도시환경정비사업지역으로 선정된 곳은 이윤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초고층 그리고 중대형 평형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한국에서 건폐율 및 용적률의 변화와 사회 공간의 차별화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초고층 아파트 단지 건설에 따른 지역의 조밀화는 도시 형태에 변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조밀화로 전체 가구 수는 소폭 증가하나 가구당 가족 수가 감소해 단지의 전체 인구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아파트 평수가 커지고 전세가가 급등하면서 기존 거주자 중 극히 일부만 단지에 남고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 이전 거주자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우며 상층 중산층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용산4구역에는 40층 이상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도촉법을 통해 건폐율, 용적률, 중소형 아파트 건설의무 ‘규제’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용산4구역은 줄레조가 말한 것과 같은 도시 형태 변화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 인터넷 언론에 따르면, 삼성물산-국민연금 컨소시엄이 개발사업자로 국제업무지구(용산4구역은 그 배후단지 중 하나다.)를 개발하는데, 총 사업비가 28조 원이며, 이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사업비 15조 원의 배에 달한다. 이러한 막대한 사업 추진의 결과, 이전에 비해 이 지역 땅값이 10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오마이뉴스 2009.01.23) 이쯤 되면, 이미 평범한 개인, 중산층 의식을 갖고 있으나 그 경제력은 중산층 기준에 미달하는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용산4구역은 들어가기를 상상하는 것조차 과분한 ‘부자들의 꿈’을 재현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이 초호화 주상복합건물의 현관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 자족성을 갖는 광역 단위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도촉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용산참사는 공간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기획 속에서 ‘부자 되는 꿈’이 좌절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주는 비극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공간의 상품화가 한 단계 마무리되고 난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강남을 비롯한 서울의 여러 아파트 단지들과 서울 주변 신도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가난한 거주자를 폭력으로 몰아내고 거기에 번듯한 건물들을 세우는 역사는 이미 수차례 반복돼 왔다. 어쩌면 진짜 비극의 원인은 이렇게 수도 없이 반복돼 온 폭력의 구조를, 그 구조가 생산한 상품을 아무 느낌 없이, 아니 오히려 즐겁게 소비하는 우리의 심성에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악마의 맷돌’은, 상품화의 구조는 우리의 무감각 덕에 그렇게 튼튼하게 작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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