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이냐 불통(不通)이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양미강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 연구소 운영위원)

얼마전 모 시사주간지 팀장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내용인즉슨, 특별호를 기획하면서 합리적 보수로 대표되는 사람들을 추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평소 그의 면모를 알고 있었던 터라, 가능하면 그의 기획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학술 담당 기자로서 뉴라이트 진영을 취재하면서, 저는 보수 담론의 일부에서 '역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합리적 진보-합리적 보수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식의 '대연정'의 정치공학이 아니라, 혼돈의 시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을 창출하기 위해서라도 보수담론이 내장하고 있는 '매력 포인트'를 관찰하고 익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가 하고 있는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기에 나는 기꺼이 합리적 보수를 찾는 길을 함께 하기로 하면서 그가 보내온 문항을 꼼꼼히 살펴봤다. 각 분야에 걸친 합리적 보수를 찾는 문항에서 내가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내 주변을 뒤져봐야 정말 합리적 보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참 난감했다. 그 난감함은 내가 맺어온 인간관계의 폭을 알려주는 것이기에 더욱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살았는가? 지금 생각하면 나와 동색인 사람들과 기꺼이 어울려 살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같은 색깔의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이 나의 존재방식이었고, 그 존재방식만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니 당연히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 같은 색깔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온 결과, 내 주변에는 합리적 보수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색깔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너무 당연한 이치였다. 난 누가 합리적 보수인지, 합리적 진보인지를 구별하거나 편가르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갈 지를 고민할 뿐이다.

최근 한백교회는 두 주 동안 두가지 문제인식이 충돌하고 있다. 한백교회의 장점은 어떤 이야기라도 함께 나눌 수 있기에 하늘뜻을 나누는 설교자들이 부담없이 자신의 소신대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늘뜻나누기에서 나온 의제들을 가지고 토론하면서 현 상황을 바라보는 교인들이 갖는 인식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현재 MB정권에 대한 인식이 과거 독재정권과도 같은 것인지, 아니면 과거와는 다른 것인지, 소위 진보진영이라고 말하는 우리 내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 역시 소위 보수진영의 공세에 의해 조작되고 있는 것인지 등등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토론 중에 있다.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결론이 꼭 나야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토론의 과정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진보와 보수라고 구분짓고 담을 쌓기 보다는, 말과 상식이 통하는 대화의 파트너들을 찾아내고 관계 맺는 일일 것이다. 최근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된 독선과 배타성이다. 우리 내부의 문제를 성찰하지 못하고 타인을 향해 투사될 때 나타나는 독소의 위험성을 몸소 느끼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 혹은 보수라는 이름으로 자기 의로움에 빠져 자기만이 옳다는 신념을 내세울 때 가장 치명적이다. “내가 이렇게 헌신해왔는데, 내가 이렇게 남들 알아주지 않을 때 몸바쳐 일해왔는데, 내가 이 기나긴 시간들을 투신해왔는데” 등등.... 여기에 도덕성과 청렴성까지 결합되면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자기 의로움의 극치를 달리게 된다. 자신만이 옳다는 절대신념은 어느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놓지 않는다. 스스로 굴레 속에 갇혀버린다. 우리 주변에는 자기 의로움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자기의 의로움보다는 타인의 의로움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 웹진 <제3시대>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2009년 4월 5(일) 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본문: 마가복음 11:1~11


혁명에서 일상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해청
(신약학 |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석사과정 수료,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마가복음 11장 1~11절은 전통적으로 교회가 종려주일, 즉 사순절의 여섯째 주일이자 고난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본문으로 채택하는 본문이다. 한 마디로 교회는 예수가 예루살렘을 입성하는 시점을 종려주일의 시작으로 잡은 셈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마가복음11장 1~11절의 각본과 유사한 일련의 일들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예수가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왕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에 사람들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를 외친다. 이 사람들의 환호는 금방 무엇인가 일어날만한 사건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 같다. 그러나 마가복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복음서, 예를 들면 마태와 누가에는 예수가 성전으로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는다. 하지만 마가복음에는 때가 이미 저물어 성전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일종의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다. 마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나리오, 즉 종려주일 날 성전에 들어가 장사꾼들의 판을 뒤엎는 일을 묘사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예수가 예루살렘에 너무 늦게 도착해 아무 일도 벌일 수 없었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전한다.

왜 마가는 종려주일 날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이러한 식으로 설정했을까?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들은 이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어느 날이건 상관없이 성전에 들어가 판을 뒤엎은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마가에 따르면 성전체제와의 충돌이 교회가 설정한 종려주일 바로 그 날에 일어났느냐 일어나지 않았느냐가 중요하다. 확실히 마가에 따르면 그 날에 일어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 이것은 나의 판단에 따르면 마가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태나 누가에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말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점은 마가는 자신의 다른 본문에서 예수와 다윗을 엮으려는 시도들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종려주일 이후에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마가를 처음으로 읽는 독자는 이러한 비판을 알지 못한다. 마가복음 12장 35~37절은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에 관한 논쟁을 소개하는 장면인데 여기서 예수는 다윗과 자신을 엮으려는 것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마가의 이야기를 처음 읽는 독자라도 종려주일 이전에 일어난 베드로의 고백에서 이 점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신은 그리스도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흔쾌히 받아들이지만 수난을 당한다는 자신의 고백에 대한 베드로의 꾸짖음에 대해서는 불편해 한다. 이러한 비판들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사람들의 환호에 대해 마가가 일종의 불편함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마가는 그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설정했는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한 또 하나의 팁은 마가가 유대전쟁 이후에 자신의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가는 자신의 글을 씀에 있어 로마라는 제국의 눈을 의식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대전쟁 이후 바리새인들은 로마와 적극적인 화친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랍비 유대교를 건설했고 이전의 젤롯당 운동들과의 관계도 거리를 두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유대회당에서 쫓겨날 운명에 처해 있었고 동시에 로마에 대한 반란죄로 죽은 예언자를 믿는 공동체로 바리새인들에 의해 로마에 고발당할 처지에 놓여 있는 마가공동체도 랍비 유대교의 방식으로 자신의 이전의 전투적인 메시야적 전통들과의 단절이 필요했다. 우리는 이 점을 마가복음 13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13장에서 마가는 적그리스도들이 끊임없이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한다는 본문을 제시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앞서 말한 베드로의 고백과 종려주일 예루살렘 입성 때에 사람들의 환호 그리고 그리스도와 다윗의 논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준다. 확실히 앞서 보았듯이 마가는 다른 복음서들처럼 종려주일에 예수가 성전으로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는 사건을 전개하지 않는다. 종려주일 그 날 성전에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는 것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유대전쟁 이전에 예루살렘 군중들이 가졌던 혁명적 메시야에 관한 꿈에 동조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서술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계속 지적했듯이 유대전쟁을 확실히 제압한 로마로 인해 마가는 랍비 유대교처럼 혁명적 메시야 상을 추종하는 자들과 거리를 두어야 했고 그래야만 그의 공동체가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잠시 마가의 이러한 전략 때문에 종려주일 날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문제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입장을 개진하고 싶다. 역사적으로 종려주일 날 그 날에 예수가 성전으로 바로 들어가 성전을 뒤엎었는지 혹은 그렇지 않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각각 자기들 나름대로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서술하기 때문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관련해 이 입성이 마가의 말처럼 딱 한번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이와 다른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한 이외에도 당나귀를 타고 입성한다는 시나리오는 구약의 예언서에서 빌려온 모티프이지 실제로 예수가 당나귀를 타고 입성했는지에 관해 우리는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몇몇 학자들은 당나귀를 준비해두었으니 그것을 가져오라는 예수의 말은 기적과 예언에 속한 서술이지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마가복음 1장 1~4절에 제시된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으로 예수가 사원에 입성한다는 신학적 모티프와 관계된 것이지 역사적 사실과 관계된 문제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다시 말해, 유대전쟁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 이후 성전과 관련해 자신의 공동체적 정체성을 새로 설정해야 하는 마가에 의해 설정된 이야기라는 점이다. 마가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는 사원의 주인은 다윗이 건설한 유대인이라는 혈통적 유전적 성격을 나타내는 성전과는 더 이상 관련이 없는 이방인을 포함하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과 관련된 주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마가의 예수는 종려주일 날 이후에 성전에 들어가 뒤엎는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 일이 이방인의 뜰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나는 마가가 말한 대로 예수가 이방인의 뜰에서 이러한 성전정화 작업을 벌였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는다.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 문제와 달리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종려주일과 함께 시작되는 마가의 이야기는 대체로 역사적 사실의 문제가 아닌 마가의 신학적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마가의 이야기에 예수는 유대 문화에 동화된 인물이 아닌 다른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유대 전쟁 당시 예루살렘에 입성한 젤롯당과는 다른 입성, 즉 유대교의 정결법과 관련한 최후의 전투를 벌인 입성으로 설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어쨌든 마가가 이러한 방식으로 예수를 설정했던 이유는 다수의 학자들이 말하듯 마가가 점차적으로 형성되어가는 랍비 유대교와 투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전쟁 이후 마가의 이러한 복잡한 상황은 마가로 하여금 로마나 랍비 유대교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하도록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그로 하여금 중심부에 속한 인물들이 아닌 주변부에 속한 인물들을 끌어들이는 쪽으로 나아가게 했다. 실제로 그가 설정한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사회의 문화적 지위에 기대에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꾸려나갈 수 있는 중심부적 인물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마가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공동체는 플라톤에게서 나타나는 이상적 인물이 공화국을 통치해야 한다는 명제를 지향하는 공동체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가가 그리는 공동체의 성격은 플라톤과는 다른 차원, 즉 한 사회의 주된 문화적 권력을 향유하는 계층에서 벗어난 인물들에 의해 구성되는 공동체에 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분명 마가의 이야기는 유대전쟁 때 나타난 젤롯당의 뜨거운 혁명에 관한 이야기도 또한 이 전쟁에 살아남은 랍비 유대교에 속하는 중심부 인물들에 관한 것도 마지막으로 이 전쟁을 지배했던 로마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전쟁 이후 일상에서 삶의 아픔을 겪고 있는 주변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마가의 이야기는 유대 전쟁 이후 공동체의 재건을 위해 정결법으로 사람들을 묶어 갔던 랍비 유대교와 제국의 힘을 과시해 자신의 세계를 건설한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와는 다른 방식, 즉 정결법에서 제외되었거나 제국의 조세를 떠안고 하층민으로 멸시받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재건을 논했던 이야기로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종려주일 첫 날에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군중의 환호에 대해 부정적 판단을 내린 마가의 이야기는 전쟁 이후 국가라는 거대담론을 중심으로 국가를 재건한 중심부 인물들에 관한 영웅적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 이후 국가를 구성하는 일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관점을 지녔다는 이유로 밀려났던 주변부 인물들 혹은 일상을 견디며 살아냈던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분명 이 인물들은 국가체제의 전복이나 혁명을 논하는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의 이해의 틀에 따르면 이들은 자본주의에 포섭되었지만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혁명적 힘을 소유한 노동계급이 아니라 노동에서 밀려난 인간들 그래서 혁명을 제기하기는커녕 노동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해 끊임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랑자로 지탄을 받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마가가 표현하고 있는 예수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마가에 따르면 예수는 혁명적 전사가 아니라 부랑자들과 함께 하고 부랑자들을 비판하는 세상의 권좌들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서 행하실 거라는 묵시적 사상을 충실히 따른 인내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떠돌이로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 믿고 인내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마가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이러한 인간군상은 뜨거운 혁명을 논했던 전쟁이었지만 패배한 로마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것도 랍비 유대교에 속한 중심부 인물들이 아닌 주변부 인물들이 펼치는 일종의 비겁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앞서 본 것처럼 랍비 유대교와 로마 제국사이에서 살아야 했던 마가의 생존의 신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문화적 부랑자들에 대한 혹은 노동하지 못하는 부랑자들에 대한 관점의 이동으로 인해 마가는 뜨거운 혁명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 즉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의 문제를 논한다. 그의 이야기는 국가라는 거대담론이 펼치는 정치권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이 정치권력이 하부적인 차원에서 펼치는 생활권력 혹은 국가 내부의 하위문화들을 국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지배적인 문화의 틀에 따라 일일이 감시하고 획일화시키고자 하는 규격화 권력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야기다. 실제로 마가의 이야기에는 감시병처럼 끊임없이 엿보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들, 즉 바리새인, 율법학자, 그리고 헤롯당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마치 파놉티콘처럼 예수의 일상적인 삶의 영역으로 파고들어와 일일이 감시하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들의 감시로 인해 마침내 예수가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가 마가복음 2장~3장 초반부에 나온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 보면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간 하나의 원인은 정결법을 중심으로 욱죄어 오는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이러한 마가의 설정이 역사적 예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이해하는 예수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마가가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에 관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그 자신의 공동체가 무엇을 의제로 놓아야 할지를 분명히 밝혀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종려주일 첫 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이후 예수가 겪게 되는 고난과 투쟁은 정치권력이 아닌 생활권력 혹은 규격화 권력에 관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예수의 수난에 관한 마가의 이야기에서도 확인된다. 마가는 로마에 반기를 든 자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잔혹한 인물이었던 빌라도를 아주 온화하게 그리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설명한 반면에 예루살렘의 고위층 지도자들은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예수를 처형한 장본인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마가복음 14장 이후에 나타나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예수를 죽이라고 말했던 예루살렘의 지도층 인사들은 마가복음 2장과 3장 초반부에 나타난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 그리고 헤롯당원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항상 마가에 따른 예수의 고난과 투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명심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예수의 죽음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예수가 유대교의 정결법을 어긴 인물이자 성전파괴를 예언한 인물로 고발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예수의 죽음은 결코 로마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정치적 차원이나 대의와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차원에서 삶을 파고드는 권력에 관한 문제였다는 점이다. 분명 마가의 이해에 따르면 예수는 랍비 유대교의 삶의 규율화 혹은 규격화에 대해 저항을 벌인 인물이지 로마와의 투쟁이라는 거대 담론의 차원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와 다소 다른 맥락이지만 학자들이 복음서에서 반유대주의적 시선을 잡아내는 것도 예수에 대한 마가의 이러한 서술 때문이다. 확실히 마가는 이방인을 포함한 어떤 의제 설정을 해야 했기 때문에 예수를 철저하게 랍비 유대교의 삶의 권력의 문제에 대해 도전한 인물로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에 학자들이 판단하는 것처럼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에게 반유대주의적 시선을 강화시켜주는 길을 터주었다. ⓒ 웹진 <제3시대>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첫 번째 이야기 - 풋내기 목사의 꿈

“하느님께 무엇인가 바치겠다고 너무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급하게 입을 열지도 말라.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름지기 말이 적어야 한다.” (공동번역성서, 전도서 5장 1절)

저는 목사안수를 받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풋내기 목사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목회에 관한 이러저러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에 덜컥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을 해 놓고는, ‘또 실수 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글 쓰는 것을 취소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무슨 말이든 쓰기로 했습니다.

저는 목회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해서 목회란 것을 하겠지만 그렇게 몇 십 년 목회를 한다고 해도 ‘목회란 이런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목사가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공간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대한, 특히 개신교에 대한 비종교인과 사회의 엄청난 불신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목사가 되어버린 한 인간의 나약한 삶을 그저 쓰고 싶습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저는 목사가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교인들조차도 목사 앞에서는 웃으며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도 속으로는 “으이구, 저런 게 목사라니~” 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의 삶에 있어서 교회와 목사는 이렇게까지 욕만 먹어야 할 곳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여섯 살 때부터 자그만 시골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는 저를 품어준 보금자리였고, 그 교회 목사님은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작은 시골교회에서 동네 사람들과 동고동락하셨고, 제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나이 지긋하신 인자한 할아버지셨지요. 그 목사님은 원래 음악교사셨는데, 아버님이 한국전쟁 중에 순교를 당하자 맏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 목사가 되셨고, 평생을 그 작은 시골교회에서 어렵고 힘든 삶을 감당하신 분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신나게 놀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얘기하고 웃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의 유년과 청소년, 청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그 교회에 가면 엄마의 품에서 쌔근쌔근 잠든 갓난아이처럼 포근하고 아늑함을 느낍니다. 제가 어쩌다가 목사가 되었는지 저도 사실은 잘 모르지만 20년 동안 저의 삶의 한 부분이었던 그 작은 교회의 아름다운 경험이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는 지금도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어느 누구도 제가 신학을 하고 목사까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실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땅에 뿌려진 씨가 저절로 자라듯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되었습니다(마가복음 4:26-29). 세상엔 온갖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 많지만 저는 한명의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신비를 믿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 인간은 땅에 있기에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문제 가득한 이 세상도 눈 크게 뜨고 보면, 잠잠히 입 닫고 고요히 있다 보면, 여기저기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하나님의 신비로 가슴 한켠에서 잔잔히 밀려오는 감동에 눈물 적시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생존의 욕구와 더불어 자아실현의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저도 욕망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지요. ‘돈’이 ‘하느님’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돈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내밉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욕망이 있다면 제가 그 어린 시절 작은 교회에서 느꼈던 그 행복하고 뿌듯하고 신났던 그 경험을 누군가의 삶 속에 일어나도록 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가 이런 저의 욕망에 대해 꾸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웃긴 놈아! 그러니까 목사 쓰레기라고 불리는 거야. 알았어!” 그래요.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사람은 원래 사람들하고 함께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사는 맛도 느끼는 것이니까, 교회라는 곳이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그 곳이 그런 곳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풋내기 목사로서 하느님께 뭔가 바치겠다는 성급한 생각을 할까봐 전도서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사실 제 주변에 가까운 분들은 제가 목회를 하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그렇고 제 아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라는 거창고등학교에 써 있다는 직업선택의 십계명의 뜻을 생각하면서 아마도 전 계속 목사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목사가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 개인에게는 단 한번 지내는 일생이겠지요. 목사로서의 제 삶을 반추하고 성찰하기 위해 몇 분들의 생각을 소개하고 첫 번째 글을 마칠까 합니다.

첫 글은 권정생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우리들의 하느님

한 20여년 전, 친구한테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내용은 내가 만약 교회를 세운다면, 뾰족탑에 십자가도 없애고 우리 정서에 맞는 오두막 같은 집을 짓겠다. 물론 집안 넓이는 사람이 쉰명에서 백명쯤 앉을 수 있는 크기는 되어야겠지. 정면에 보이는 강단 같은 거추장스런 것도 없이 그냥 맨마루바닥이면 되고, 여럿이 둘러앉아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는 예배면 된다. 00교회라는 간판도 안 붙이고 꼭 무슨 이름이 필요하다면 '까치네 집'이라든가 '심청이네 집'이라든가 '망이네 집' 같은 걸로 하면 되겠지. 함께 모여 세상살이 얘기도 하고, 성경책 얘기도 하고, 가끔씩은 가까운 절간의 스님을 모셔다가 부처님 말씀도 듣고, 점쟁이 할머니도 모셔와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마을 서당 훈장님 같은 분께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듣고, 단오날이나 풋굿 같은 날엔 돼지도 잡고 막걸리도 담그고 해서 함께 춤추고 놀기도 하고, 그래서 어려운 일, 궂은 일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그런 교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어때요? 좋지요. 저도 이런 교회를 갖고 싶답니다. 프랑스 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베 피에르 신부가 하는 공동체가 있는데 거기에 누군가 찾아 오면 세 가지를 물어본다고 합니다. 

“주무시겠습니까? 드시겠습니까? 씻으시겠습니까?”

이 공동체에서는 이렇게 누구나 환영하고 함께 사는 이들은 자신이 먹을 것보다 조금 더 많이 일을 한다고 합니다. 남을 살리기 위해 더 일하는 교회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에 사셨던 신앙의 아버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이시여!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한국의 그리스도교 제도 내에서 목사를 하면서 정말 신을 사랑할 때 꼭 해야 할 것들을 할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을 사랑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무슨 행동을 할까요? 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어떤 목회를 해야 할까요?”

두 손 모아 잠깐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성공회 주교였던 존 엘브리스 하인스가 설교를 시작할 때마다 했던 기도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느님, 우리가 당신께 아무런 뜻도 없는 일들을 습관처럼 행할 때, 우리를 용서하소서.”

ⓒ 웹진 <제3시대>

* 향린교회 http://www.hyanglin.org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고통-소통의 단절, 그리고 극복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구선애
(부모교육/MBTI 강사)


카프카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41세에 죽은 카프카가 죽기 5년 전, 36세에 45장에 걸친 장문의 편지를 아버지에게 쓴다.
철옹벽 같은 아버지에게 드리는 항의며 호소며 절규였으나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다.
아버지로 부터 겪은 것은 소소한 일상에서의 좌절이지만 상처 받은 카프카에게는 존재의 문제가 된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끊임없이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노력이 불후의 명작들을 낳았지만 그 주제는 불통 속의 절망적인 실존이다.
자신을 한낱 벌레로 표현한 '변신'을 읽으면 카프카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느낌을 짐작할 수 있고 평생을 통해 자신을 지배하는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반란이 결혼이었으나 3번의 약혼과 파혼만 되풀이 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없었으니 가족-특히,부모와의 관계에서 겪는 불통은 단지 고통을 넘어 파괴적이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어느 날 갑작스레 맞은 아내의 죽음. 남편은 당황한다.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 아내의 자취는 옷과 사진첩.
"부토(원폭이후 일본에서 발생한 현대무용, 칠흑같은 어둠의 춤이란 뜻)"를 추며 찍은 사진 속의 아내는 너무나 생소하다.
아내 생전, 자신이 보기엔 낭비처럼 보여, 아내의 취미인 부토를 막아 버렸던 남편은  재산을 정리하여 아내가 가고 싶어했던 일본으로 떠난다.
아내를 위하여.
이런 아버지를 자식들은 이해하지 못하며 일상의 리듬이 깨지는 것이 싫어서 부담스러워 하기까지 한다.

작가와 감독은 가족간 단절의 숨통을 일본의 가족애에서 찾으려 한다.
벚꽃이 만발한 일본의 공원에는 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가득하고 남편은 공원에서 부토를 공연하고 있는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분홍 전화기를 들고 부토를 추며 그림자인 자신과 만나고 저승의 엄마와도 만나 행복한 얼굴이다.
이 소녀만이 주인공 남편과 소통한다.
남편과 소녀는 후지산으로 떠나, 자신의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후지산을 기다린다.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몇 날이 지나고, 드디어 안개가 걷혀 환한 밤, 후지산은 선연히 자태를 드러내고, 남편은 달 빛 아래서 부인의 옷을 입고 부토를 춘다.
후지산 앞에서, 부토의 춤 속에서, 드디어 아내를 만나고 남편은 쓰러진다.
엔딩 자막이 다 올라가고도 한참동안, 어느 한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사랑은 소통이다
그러나 어렵다.
때때로 칠흙같은 어둠 속에 빠진 느낌이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당연히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랑의 상대가  눈 앞에서 사라졌을 때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을 알았을 때 느끼는 당혹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또 얼마나 사랑의 상대를 좌절시켰나를 깨닫고 좌절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내 가족, 연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아파하고 있는지!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 특히 부모로 부터 상처를 받는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어서.
그리하여 내가 받은 좌절과 상처에만 급급하여 내가 사랑해야 할 상대에게 상채기를 내며 보복을 하기도 하며 많은 이들이 한생을 적개심과 분노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상처에 메여 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도 한다.
 
불통-다름과 차이
 
사람들은 누구나 내 잣대로 판단한다.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 오해하고 상대가 잘못 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태어 날 때 기본적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태어난다.
이미 갈등의 소지를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얘기다.
흔히 성격 차라고 말하며 극복하기에 벅차들 하는 부분이다.
이 다름과 차이는 타고 난 것이기에 바꿀 수 없으며 그냥 그대로 받아 들여야만 하며 이 근본적인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갈등은 해소되고 소통이 가능해진다.

소통은 받아들임이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질 때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되며 사랑하는 이로부터 받는 인정과 수용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양식이 되고 특히 유아기와 아동기에 받는 부모로부터의 인정과 사랑은 한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남편은 아내의 옷을 입고 후지산 앞에서 부토를 추며 아내를 만난다.
우리도 사랑하는 이의 옷을 입고 춤을 추며 사랑하는 이와  만나자.
물론 살아있는 오늘, 지금!

ⓒ 웹진 <제3시대>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그림 : 백승임
(일러스트레이터)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14.10.19 18:4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백승임 작가님 메일 주소를 좀 알 수 있을까요??
  2. 2014.10.20 15:2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gamunbi@nate.com입니다. 감사합니다

시카고 신학교에서 유학 중인 이상철 회원께서 미국에 출간된 민중신학 서적에 대한 정보를 보내주셨습니다.

저자인 김희헌 박사는 현재 한국민중신학회 총무시기도 합니다.



클레어몬트에서 민중신학과 과정신학을 주제로 Ph.D 학위를 받는 김희헌박사의 책이 영어로 출판되었습니다.

영문제목은 <Minjung and Process>이고, 과정신학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John Cobb 교수가 머리말을 썼습니다.

유일하게 세계신학계에서 통용되는 한국신학인 민중신학에 대한 미국내 소개가 여전히 민중신학 1세대라 할 수 있는 안병무, 서남동 교수님 선에서 맴돌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교수들이나 친구들이 민중신학의 현재성에 대해 물어올때면 궁색한 답변으로 맴기곤 했었는데,

이번에 출판된 김희헌 박사의 책이 이러한 빈곤을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아래에 출판사 홈페이지에 게시된 <Minjung and Process>에 대한 책소개를 링크시켜놓겠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직접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peterlang.net/Index.cfm?vID=11735&vHR=1&vUR=2&vUUR=1&vLang=E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긴급토론회]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
 
- 개혁을 위한 종교인 네트워크 열린 포럼

2009년 2월 5일(목) 오후 3:00~6:00에 안병무홀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의 동영상입니다. 이 토론회는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가 주최하였습니다.(이 영상은 공동주최자인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촬영했으며, 다음카페 '우리신학 배움터 울림' http://cafe.daum.net/wooriwoolim에서 퍼온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
-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적대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

발제1_홀로코스트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_임지현 | 한양대. 서양사
발제2_홀로코스트 신학과 홀로코스트 너머의 신학_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토론1_장석만 | 충간문화연구소 소장
토론2_박준영 | 아시아가톨릭뉴스 한국지국장
토론3_종명 스님 | 화계사 사회국장








*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는 (1) 사회 개혁 의제에 대해 종교계의 의견을 모아 밝히고 참여하며, (2) 각 교단 안 개혁 문제에 대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3) 종교 자유와 종교 간의 관용성 확대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취지로 200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참여불교재가연대(불교), 우리신학연구소(천주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개신교)가 세 종단의 간사단체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신고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831)
특집 (8)
시평 (94)
목회 마당 (60)
신학 정보 (136)
사진에세이 (39)
비평의 눈 (72)
페미&퀴어 (25)
시선의 힘 (135)
소식 (153)
영화 읽기 (32)
신앙과 과학 (14)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3)
새책 소개 (38)
Total : 353,571
Today : 12 Yesterday :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