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신학가이드5]

포스트 모던의 바울신학

- 톰 라이트 (N. T. Wright) 를 논하다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1. 들어가며[각주:1]

    이천년대의 바울신학의 전체영역에서 가장 ‘핫’한 학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톰 라이트 (N. T. Wright) 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진보진영에 속한다고 하지만, 바울에 관한 수업을 들으면 꼭 라이트의 책을 한 권씩은 필수도서로 읽어야 했고,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상당히 환영받는 학자중에 들어있고, 보수진영에서도 비판이건 공격이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주 읽힌다는 것이니 라이트만큼 골고루 읽히는 바울신학자를 찾는 것도 힘들 것이다. 게다가 라이트의 책은 대부분 한국에 번역되어 있고 그 독자들이 대부분 한국 기존교회 교인들과 신학생들이라는 것은 라이트의 영향력이 얼마만큼 큰지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것이다. 라이트는 성공회(영국 국교회)의 감독, 또는 주교로써 성공회의 캔터배리 대주교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졌으나 2010년에 은퇴하였다. 성공회에서는 인정하는 동성결혼과 동성애 자체에 반대하는 보수적 기질과 일목요연하게 예수의 역사적 부활과 재림에 대해 주장하지만, 칭의론 등의 관점에서는 보수교회나 복음주의 진영에 공격을 받기도 하는 현대 신학의 논쟁점에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 필자가 바울 신학자라고 소개하긴 하였지만, 엄밀히 보면 신약신학자로서 복음서와 신약성서 전체에 걸쳐 저술 작업을 하고 있으며, 보통의 독자들도 읽을 수 있는 저작들을 활발히 출판하고, 구약과 유대문헌에도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론이나 해석학 등 신학전반의 작업에도 출판을 하는 그야말로 간학문적 (inter-disciplinary) 신학자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톰 라이트에 대해 논함에 있어서 그 영역을 바울신학으로 좁힌다고 하더라도 필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전문적인 바울신학 저작들은 그 내용이 바울서신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에 치우쳐서 그의 사상의 큰 그림을 보는 것이 어렵고, 그의 사상의 전반을 볼 수 있는 3권까지 출간된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 시리즈나 그 일천칠백 페이지에 달하는 4권인 ‘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 (2013년 11월에 출간됨)을 살펴보는 것은 독해에 대한 부담은 차지하고서라도 나름 대가의 압박에 깔려 숨조차 쉬지 못할까 걱정되기도 한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목차를 살펴본 바, 톰 라이트는 기본적으로 이제까지 출간된 바울에 대한 저작에서 말한 중요 내용들을 세심한 문헌적 연구를 통해서 강화할 것은 강화하고 첨가할 것은 첨가하는 내용이 아닌가 감히 예상해 본다. 필자는 본 글에서는 그의 저작 중 그리 길지 않은 두개의 단행본에 집중할 것인데, ‘톰 라이트,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 (What St. Paul really said?)와 아직 번역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Paul: In Fresh Perspective’를 중심으로 톰 라이트의 바울 해석에 대해 논하려 한다. 대부분의 라이트의 저작이 그러하듯 짧은 단행본에 라이트는 자신의 생각을 간명하고도 최대한 쉽게 서술하는데, 이에 대한 질문과 여러 논쟁에 대해서 그는 긴 장편의 책들을 통해 학문적으로 검증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러한 첨예한 서술보다는 그의 바울에 대한 생각을 최대한 간명하게 접근하고 그를 통해 그의 생각의 궤적을 따라갈 것이다. 아울러 그의 신학의 한계에 대해서도 논할 것이다. 라이트에 대해서는 생존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는 학자인 바 필자의 시도에 독자들의 아량을 기대한다.

 

2. 바울신학의 전제 

    라이트의 사상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에 대해서는 본 글의 마지막 장에서 논할 것이지만, 그의 글을 충분히 음미할 가치가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제임스 던 (James Dunn)과 같이 바울신학의 효용성의 대해 물은 학자라는 것에 있다. 지난 글의 제목이 ‘바울 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는데, 라이트는 제임스 던보더 더 넓고 확실하게 자신이 바울을 읽는 이유를 말한다. 물론 이는 그가 신약성서 전체를 읽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른바 근대의 성서학에서 관심은 텍스트를 통하여 저자의 의식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텍스트가 말하는 진정한 뜻에 접근함으로써, 자연히 기독교의 정체성과 진정한 종교성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학자에게 왜 성서를 읽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은 전시대에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20세기에 들어와 과학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으로, 철학에서는 니체의 신죽음의 철학으로, 신학에서는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으로, 비평학에서는 신비평(New Criticism)으로 근대적 해석학과 신학에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자연히 성서학자들은 조금씩 자신들의 연구의 정당성을 자신의 학문안에서 찾아야 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톰 라이트의 신학의 성은 그가 성공회의 주교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그의 저서에서 밝히듯이,[각주:2] 영국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어찌 보면 기본적인 종교성이 강한 것이요, 달리 보면 교회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옛부터 이신론적 하나님 (Deist God)에 익숙한 영국 신자들에 대한 라이트의 관심은 그의 신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라이트의 신학담론의 궤적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면 너무한 억측일까? 이러한 라이트의 콘텍스트를 염두에 두고 그의 바울신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라이트에게 바울은 네 가지의 각기 상이한 환경 속에 살던 인물이었다. 첫째로 바울은 유대인이자, 헬라적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로마제국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살면서 메시아  공동체 (the family of Messiah)의 일원이라고 스스로 믿은 자였다.[각주:3] 유대주의, 헬레니즘, 로마제국, 그리고 메시아 공동체라는 네 가지 요소들을 함께 다룸으로 인해 라이트는 바울신학을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라이트가 바울신학의 전제로 삼는 몇 개의 요소는 전통적으로 바울신학자들이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 염두에 두어온 것들이지만, 보통 복음주의나 보수주의 진영의 학자들은 로마제국 등의 정치적인 요소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라이트는 바울이 의미한 메시아 공동체 (에클레시아)를 로마제국에 대한 바울의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바울신학에 대한 균형적인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밑그림 위에 메시아 공동체라는 독특한 비전을 만들 수 있었다.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1) 유대교 – 단일신론, 언약, 그리고 종말론[각주:4]
    바울이 유대인이었고 그가 유대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영향을 받았냐는 것이다. 라이트의 기본적인 입장은 샌더스가 개진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바울은 유대사상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가진 적이 없다. 마치 예수와 같이 유대사상의 근본 의미를 찾고 다시금 갱신하려 했지,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고도 많은 유대의 여러 사상의 광맥안에서 라이트는 크게 세 가지 요소, 단일신론, 언약, 그리고 종말론이 바울을 이해하는 밑거름 또는 바울이 받아들인 중요 유대사상이라고 본다.

    단일신론
    단일신론은 이방세계의 압제에서 살아가는 유대인들에게는 파이팅 독트린 (Fighting doctrine)의 역할을 했다.[각주:5] 고대세계의 국가간의 전쟁과 외교는 한 마디로 신들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월한 신을 가진 국가가 승리하고 패배하고 사라져 가는 국가들의 신들 또한 그 국가들과 운명을 같이 한다. 히브리 백성들은 특이한 신관을 가지게 되는데, 바로 신은 오로지 하나라는 생각이다. 구약성서를 살펴보면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듯한 이야기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이미 십계명에서 ‘다른 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점점 하나님만이 오로지 신이며 신은 오로지 하나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국가를 잃어버리고 난 이후에도 유대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거꾸로 이야기하면 유대의 단일신론은 그들의 정치적인 환경속에서 만들어진 교리였다. 이러한 단일신론의 영향으로 라이트는 유대사상에는 이원론을 허락할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세계는 어떤 다른 악의 신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는다. 신이 하나이고 그가 선하다면 세계도 선한 것이어야 한다.

    언약
    이후 바울신학에서 칭의론으로 거듭나는 언약사상에 대해 라이트는 샌더스의 입장을 대부분 받아들인다.[각주:6] 언약사상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시다는 것이고 그 약속의 내용은 세계에서 악을 몰아내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각주:7] 단일신론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유대백성에게 세계는 천국과 지옥, 또는 선한 세계와 악한 세계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너진 나라와 끝없는 제국의 오고감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의 정의를 이 세계 위해 세울 것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질문으로 유대백성들은 세로운 사상을 싹틔우게 되는데 이를 묵시사상 또는 종말론이라 한다.

    종말론 
    바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해 묵시전통 또는 유대 종말론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20세기 후반기에는 조금 잊혀져 가던 주제였다. 종말론을 바울 신학의 중요한 주제로 삼은 것은 슈바이쳐 (Albert Schweitzer)였고 이를 새롭게 재조명한 것은 불트만의 제자인 케제만이었다. 히틀러와 나찌독일이 콘텍스트였던 케제만에게 종말론과 메시아니즘은 중요한 주제였다.[각주:8] 하지만 근대주의가 가져온 이상주의의 결말이 전체주의 국가임을 목도한 독일 신학에게 더 큰 문제는 인간의 교만을 꺽으시는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였으며 이는 바울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발견된,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으며 오직 은혜로만 받는 것이 의롭다하심이라는 바울의 이신칭의가 독일 성서신학에서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세계의 물음에 답하기 위한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케제만은 바울의 신학은 모든 인간의 법치주의와 종교적 오만을 부수는 것이며 이를 “Justification of ungodly”라는 말로 표현하였다.[각주:9] 그 이후로 바울신학의 중심이 그의 이신칭의로 넘어가기는 하였지만 종말론이 바울신학의 중요 주제라는 통찰은 여전히 남아있다. 라이트는 이를 창조론과 연결시켜 바울신학의 한 축으로 삼는다. 창조는 단일신론과 함께 이방신들에게 둘러싸인 이스라엘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면 다른 신과 다를 것이 없는 지역적인 신이 되기 때문이다.”[각주:10] 선하신 창조의 하나님은 결국 그의 선하심을 새롭게 세우실 것인데 종말론은 메시아니즘과 연결되어 바울신학의 중요한 줄기가 되었다.

    2) 헬레니즘
    바울의 사상의 기본구조를 당시의 헬레니즘 사상에서 찾는 것은 한때 트렌드를 이루었던 흐름이고 여전히 중요하다고 하나, 라이트에게 있어서 헬레니즘 사상은 오히려 바울에게 딛고 일어서야 하는 장애물이다. 바울 메시지가 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방주의 (paganism)와의 맞대면 (confrontation)이었고 결국 바울이 의도하는 바는 이방의 세계관을 딛고 서서 그것을 예수를 통해 갱신된 유대적인 것으로 치환하는 것이었다.[각주:11] 라이트는 바울서신을 통하여 당시의 어떤 헬라사상들이 영향을 이용하여 유대주의를 넘어섰는지에 대해서 관심도 없거니와 오히려 그 반대로 기본적인 바울의 사상의 구조는 유대의 그것이었다는 샌더스의 관점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라사상이 중요한 이유는 특히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여러 헬라의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이는 것과 같이 헬라 세계의 신에 대한 관점에 근본적인 비판 위에 바울 사상이 서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라이트의 생각은 그의 바울신학 해석과 현대인에게 보내는 메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논할 것이다.

    3) 로마제국
    개인적으로 라이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그가 로마제국을 바울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기반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1997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에서는 크게 강조되지 않은 반면에 2006년에 출간된 ‘St. Paul: in fresh perspectives’에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로마제국과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라이트는 1세기의 상황이 정치와 철학, 그리고 종교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당시의 여러 종교적 글쓰기들은 위정자들에 대한 암호화된 비판임을 강조한다.[각주:12]
    로마가 제국황제정을 그 기본정치체계로 받아들이기 전에 로마는 공화국으로서 원로원과 군대, 그리고 시민을 대표하는 호민관 등으로 권력이 분리되어 있었다. 법치주의를 표방하면서 정치의 기본 가치를 정의와 자유에 두었는데, 이는 로마의 태생이 여러 도시국가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졌음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법과 정의, 그리고 자유라는 가치는 로마가 그 세력을 팽창하여 여러 다른 도시들을 흡수하는 데 중요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부여하였는데, 단순히 군사력의 힘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적인 삶을 약속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의 팽창과 그에 따른 많은 이민족들과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로마의 군사조직의 힘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고, 모든 면에서 천재라는 말을 듣기에 아깝지 않은 카이사르 (시이저)로 인해 군사독제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결국 로마는 일인 황제 통치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원로원의 기능은 남아있었고, 황제도 법과 원로원의 결정을 존중하였으므로 제국이 된 로마는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써 법과 정의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라이트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바울사상에 중요한 부분임을 인정하였는데,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바울의 메세지가 이방세계, 결국 로마제국으로 재편된 세계로 보내진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국의 통치를 공고히하기 위해 행하여진 각종 황제숭배 (Imperial cult)가 발달되었던 시기에 태어난 바울에게 예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이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구약의 예언서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시온의 재건은 온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시대의 시작이었다면 인간의 제국을 무너뜨리고 건설된 하나님의 제국을 바울은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될 수 없는 바울의 소망은 라이트의 바울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

 

3. 바울신학 - 유대사상의 재고 (Rethinking), 메시아, 그리고 성

    라이트는 그의 바울신학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 신학의 이해는 그의 유대사상에 대한 재정의(redefinition) 와 재고 (rethinking) 위에서 메시아와 성령에 대한 그의 사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각주:13] 필자는 이에 상응하기 위해, 이 챕터를 유대주의에 대한 재고와 라이트가 말하는 바울의 메시아와 성령 이해를 중심으로 말하고자 한다.
   
1) 유대사상의 재고 

    칭의론
    최근 라이트가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그의 칭의론에 대한 논쟁이다. 그러나 본 글에서 그의 칭의론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라이트에게 칭의론은 그의 바울 신학에 핵심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바울의 칭의론은 그의 전체 신학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칭의론이 바울신학의 핵심은 아니라는 시각은 스텐달로부터 시작하여, 샌더스 등을 통해 지적되어온 것이다. 라이트는 특별히 칭의론에 대해서 한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는데 본 글에서는 ‘What Saint Paul really said’ 중심으로 살펴보자.
    칭의에 대해 논할 때 샌더스는 먼저 이 개념이 법정적 (forensic) 개념임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재판관이고 인간은 심판을 언도받는 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의’ 즉, 재판관이 선하다라는 뜻은 그의 인격의 선함에 달려있다.[각주:14]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심을 약속하신 언약과 세계의 창조와 심판 속에서 보여주신다. 그러나 법정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인간은 그 스스로의 의와는 상관이 없이 그저 죄인으로 선고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고소했다면 그 고소에 대해 유죄냐 무죄냐를 선고받는 것은 피고인의 질적인 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이트는 칭의는 어떤 의로운 속성을 하나님으로부터 얻거나 하나님의 의의 속성에 참여한다는 뜻이 아님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의는 오로지 하나님의 것인 것이다.[각주:15] 그러므로 칭의론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제임스 던의 입장과 그리 다르지 않다. 라이트는 말하기를, “칭의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사건 이전의 시대에 누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느냐의 문제이다.”[각주:16] 율법을 통해 구원받기를 포기하고 예수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믿음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라는 바울의 선언은 율법이 규정하는 공동체적 삶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라는 유대주의를 배격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 수정한 것이다.

    종말론
    보통 다니엘서를 그 시작으로 보는 구약의 묵시문학은 신구약 중간 시대 (약 주전 4세기 부터 주후 1세기이전까지)에 그 꽃을 피우게 된다. 이때에 묵시문학에서 발견되는 공통되는 주제 중의 하나는 바로 인간의 제국의 시대가 끝이나는 급격한 변화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고, 그 시대는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 시대이고,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대이다. 라이트는 유대 바리새인 중 젋은 지도자에 속하던 바울은 다니엘서에 약속되었던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믿고 기다리던 유대인이라고 생각한다.[각주:17] 묵시전통에서는 이스라엘의 바로섬이 곧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뜻하므로 바울은 자신의 소명이 유대인들이 올바른 토라의 전통 아래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었을 것이다.[각주:18] 그것은 이방신들과 전통을 배격하고 이스라엘 하나님을 위해 순결을 지키는 삶을 뜻했을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입장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바울에 대한 콘텍스트 이해는 라이트를 종교적 해석에 치우쳤던 샌더스와는 달리 정치 사회적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에 이르게 한다.
    라이트는 유대의 언약사상의 핵심은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라 보았고,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의를 증명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종말론은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기이고 인간 역사의 위대한 전환점이라 본다. 그러므로 라이트에게 종말론이 의미하는 바는 역사의 끝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이고 하나님의 의의 확증이다.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이스라엘이 고통의 시기를 넘어서 (이사야서의 예언과 같이) 마지막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시대를 기대하였으나 그가 목격한 것은 부활을 통해 예수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었다.[각주:19] 라이트는 예수가 바로 다니엘서 9장에 나타난 ‘인자와 비슷한 이’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백성을 의롭다하실 분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각주:20] 이러한 바울의 깨달음은 결정적으로 바울이 복음을 이스라엘을 넘어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로마제국에 의해 죽임당한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확증하는 것이고 예수를 통해 세계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일어난 것이다.

    메시아
    묵시문학에서 등장하는 메시아의 의미가 그러하듯이 메시아의 오심이 복음이라고 한다면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다. 유대사상에서 복음이라고 한다면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고, 헬라세계에서는 제왕의 귀환과 승리를 뜻한다.[각주:21] 결국 복음이라는 단어안에 유대세계와 헬라세계가 공통적으로 왕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스라엘이 얻은 것은 자신들의 회복이 아니었고, 헬라세계의 사람들은 부활한 유태계 신의 아들을 얻게 되었지만, 양쪽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은 아니었다.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바울은 그의 복음의 메세지를 완성하게 되는데,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부활함으로,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세계의 주(Lord)가 되었다. 라이트는 바울이 예수의 부활이 전세계에 알리는 하나님의 승리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유대사상의 단일신론으로부터 시작하여 종말로 연결되는 세계관에 바울이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성령 (Spirit)
    라이트의 바울신학에서 성령의 역할은 중요하다. 라이트는 바울이 구약에서 아버지이자 주님이신 하나님도식이 바울에게서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라는 공식으로 대체된다고 본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지혜, 영, 말씀, 또는 쉐키나 (Shekinah-신의 현현) 등으로 나타나듯이 바울이 예수와 영, 또는 성령을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읽는 것은 크게 유대사상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성령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의 부활과 재림사이의 틈을 메워줄 유일한 신의 현현이라는 것에 있다. “신자는 이미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그들은 더이상 이방세계의 삶의 방식을 따를 수 없다… 성령이 이미 일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종말론적 승리를 보장할 것이다.”[각주:22]

 

4. 삼류 신학생이 톰라이트를 논하다.

    대략 간략하게 라이트의 바울해석에 관해 살펴보았지만 이번장에서는 감히 라이트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이제까지의 웹진에서는 신학자들의 전체적인 신학담론에 대한 인상이나 간단한 장단점 등을 논했었지만, 라이트에 대해서는 심층적인 논의를 개진하고자 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필자가 보기에 라이트의 목적은 바울신학은 바울에 대한 어떤 새로운 해석을 하려했다기보다는 바울을 이용하여 현대의 독자들과 대화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라이트가 신학도들을 위해 저술활동도 하지만 일반독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기 위해 정열적으로 책을 쓰는 학자중의 한명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톰 라이트의 이름을 모르는 기독 지식인들이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그의 활동 때문이며, 드물게 미국에서도 일반 대학생들을 위해 활발히 강연활동을 하는 신학자이가 바로 라이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른바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에게 라이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그는 어떤 대안을 가지고 교회를 변화시키려 할까?
    먼저 현대 사회 문제에 대해서 라이트는 포스트모던의 모던 비판 (탈근대주의의 근대주의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인다. 근대주의를 지배했던 과학기술의 오만함과 경제로 세계를 제편한 제국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맑스주의, 니체, 프로이드의 혹독한 비판이 옮음을 인정한다.[각주:23] 돈, 섹스, 권력으로 얼룩진 근대의 끝이 인류 스스로의 멸망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이 이야기하는 다양성이나 해체주의 등이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 라이트는 믿지 않는다. 오히려 성서가 말하는 인간의 타락의 교리와 이에 대한 대안이 새롭게 현대에 맞추어 해석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라이트가 생각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안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주체를 다시 재건해야 한다. 즉,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를 다시금 명확히 해야 한다. 구조주의 이후의 분열된 자아상을 극복해야 한다. 새로운 주체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사랑’을 통해서 다시 탄생되어야 한다.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올바른 인간 이해가 될 것이다. 둘째, 앎에 대한 재구축이 필요하다. 앎을 위한, 또는 권력을 위한 정보와 앎의 시대의 막을 내리고 사랑을 아는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새째, 진보와 발전의 역사는 결국 서구 제국주의로 막을 내릴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약함’을 자랑하는 역사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각주:24] 바울이 말했던 사랑의 공동체가 이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이러한 라이트의 대안은 바울이 살던 시대의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종교에 메몰된 인류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 없을 것이라는 통찰에서 나오는 것이다. 라이트가 정치적 바울 해석과 로마제국에 대한 역사를 바울 이해를 위한 중요 요소로 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라이트의 이러한 시도는 일견 칭의론에 메몰된 바울해석이 일침을 가하고 현대 교회에서 세계에 대한 희망을 찾으려는 신선한 시각을 제공하기에 이른다. 칭의론에 대해서 라이트는 칭의론을 믿는 것이 구원받는 길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한다.[각주:25] 칭의 자체는 신자와 하나님의 관계를 일컫는 용어가 아니다. 의롭다 인정받는 것은 하나님을 통해 선해지거나 성화되는 신자의 질적 변화를 말하는 용어가 아니다. 칭의는 종말론적인 언어로써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인들을 그들의 질적 변화와 상관없이 의롭다 인정해 주시는 것을 뜻한다. 바울신학의 핵심은 그러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들이 어떻게 세계속에서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가느냐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바울은 새로운 변화의 시대가 곧 올 것이라 믿었으며 그 직전의 시대에 살고 있는 공동체들이 이방신과 종교, 그리고 제국의 돈, 섹스, 권력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어떻게, 또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던 목회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과 통찰이 라이트를 교회내의 신자들만이 아니라 교회밖의 이른바 가나안 (안나가 교인) 성도들과도 대화할 수 있는 신학적인 틀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라이트의 입장을 지젝이 자주 쓰는 말로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it is not radical enough.”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롭다. 신선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필자가 감히 판단한다면 라이트는 그의 세계 진단도 옳고, 성서 해석의 전환점도 설득력 있고, 바울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그의 해답은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청룡언월도를 꺼내려는 듯하다 단검이 던져주는 느낌이다. 이제 필자는 왜 그러한 충분치 못한 해답에 머무르게 되었는지 말해보고자 한다.
    바울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말할때, 라이트가 강조한 것은 유대사상의 면면히 흐르는 단일신론, 언약, 종말론이었다. 그리고 그 기저에 다시 흐르는 예언사상과 묵시사상을 말했다. 이 모든 요소들을 관통하는 라이트의 관점이 있는데, 바로 야웨 대 이방신들의 대결구도이다. 라이트가 단일신론, 언약, 종말론을 설명할 때 관심을 두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에 대한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가의 멸망과 제국의 압제 하에 신앙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 것들이 이러한 교리들이었고, 그것들이 옳음을 증명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안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는 경쟁구도는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과 이방신을 섬기는 제국 또는 타국가들이다. 이러한 명확한 신론적 이분법은 라이트를 교회내의 변화와 개혁의 촉구에 머무르게 한다. 현대 시대의 교회가 과연 바울이 말했던 교회와 같은 것이냐의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형식으로든 명확하게 구분되는 종교기구가 바로 인류의 희망이 된다. 라이트가 인류의 갱신을 예배의 회복에서 찾는 것은 그런면에서 우연이 아니다.[각주:26] 라이트가 예배(Worship)을 말할 때 이는 넓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이스라엘의 성막전통에서부터 시작된 제사전통을 기독교의 핵심으로 보고 이후 이방신들과의 투쟁을 역사로 보는 관점과 그리 다르지 않다. 문제는 제사와 예배전통, 즉 신정국가와 예배전통에 거슬러 새로운 종교전통을 생산했던 이스라엘의 예언전통은 그와는 다른 방식으 이스라엘 종교의 독특성을 만들어왔다. 필자는 그것을 사회 정의와 평화의 확립이고 생각한다. 분명 반복되는 제사와 예배는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나 너무도 쉽게 권력과 금권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온 것이 바로 종교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이사야 1장 11-15절 (새번역)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라이트의 부족한 급진성은 현대교회의 변화를 말하는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한계를 보여준다. 바로 교회의 변화가 세계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또는 교회내의 변화가 세계 또는 사회에 대한 명확한 변화에 대한 방법론 없이 일루어낼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대 사회는 더이상 종교, 사회, 경제, 또는 정치가 독립적으로 변화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 또한 라이트가 말하듯이 그의 에클레시아 (assembly)[각주:27] 또한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이천년전의 로마제국의 황제숭배가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얽혀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황제숭배가 사라진다고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제국의 종교는 제국의 이데올로기의 한 부분일 뿐이며, 현대의 개량주의나 금권주의를 하나의 종교로 상정한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정치를 성서해석에서 말함에 넘어서야 하는 문제점은 성서가 현실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있느냐를 묻지 않고 교회내의 갱신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라이트는 바울의 종말론의 요체가 예수의 부활이며 재림 예수의 심판자로서의 의미를 만들어준다고 말하고, 그것은 시저와는 다른 하나님의 정의를 세계로 가지고 온다고 하면서, 바로 그러한 것이 교회의 종말론적 윤리,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고 한다. 그러나 톰 라이트에게 없는 것은 시저의 제국이 단순히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이방신숭배에 대한 유대교의 대항의 맥락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면서 그것의 중심은 우상숭배라고 맺는 것인데, 이에는 제국에 대한 어떤 명확한 형식의 비판을 성서에서 찾는 것을 등한시하는 것에 있다. 그러다 보니 대안으로 들어서면 바울의 서신은 현실에 대한 큰 울림을 내기보다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즉흥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헤메다니는 공동체 정도로 이해된다. 율법을 기반으로한 유대사상에 대한 비판과 법치와 정의를 기본으로한 제국의 정치에 대한 대안이 현실에서 울려나오지 않는 것이 바로 이때문이다.
    그러나 라이트의 시도는 성서신학이라는 학문에 매몰되어 교회내에서 이해될 수 있는 담론만을 생산하거나 몇가지 단어의 뜻에 대한 논쟁에 집중하는 현대의 성서신학에 신선한 관점을 제공하려 했다는 데에 큰 의미를 가진다. 이전 글에서 필자가 강조한 바울신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냐의 질문에 자신의 콘텍스트안에서 솔직하게 접근하는 라이트의 학문에 나름 박수를 보내고 싶다. 

Wright, N. T. Paul: In Fresh Perspective. Minneapolis, MN; London: Fortress Press ; SPCK, 2009.
———. What Saint Paul Really Said: Was Paul of Tarsus the Real Founder of Christianity? Grand Rapids, Mich.; Cincinnati, Ohio: W.B. Eerdmans Pub. ; Forward Movement Publications, 1997.

ⓒ 웹진 <제3시대>

 

  1. 본 글에서 사용된 라이트의 두개의 저서는 모두 영어판을 사용하였다. 이 중 하나는 이미 한국에 번역서가 나와있으나 필자가 사는 곳이 미국이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바란다. [본문으로]
  2. N. T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Was Paul of Tarsus the Real Founder of Christianity? (Grand Rapids, Mich.; Cincinnati, Ohio: W.B. Eerdmans Pub. ; Forward Movement Publications, 1997), 161. [본문으로]
  3. N. T Wright, Paul: In Fresh Perspective (Minneapolis, MN; London: Fortress Press ; SPCK, 2009), 14–17. [본문으로]
  4. 때로 라이트는 이를 단일신론, 선택, 그리고 종말론 (Monotheism, election, and eschatology)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본문으로]
  5.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64. [본문으로]
  6. 언약사상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샌더스에 대한 웹진 원고를 참고하길 바란다. [본문으로]
  7.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95–96. [본문으로]
  8. Ibid., 13–14. [본문으로]
  9. Ibid., 17. [본문으로]
  10. Ibid., 70. [본문으로]
  11. Ibid., 79. [본문으로]
  12. Wright, Paul, 71. [본문으로]
  13. Ibid., 164. [본문으로]
  14.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98–99. [본문으로]
  15. Ibid., 101. [본문으로]
  16. Ibid., 119. [본문으로]
  17. Ibid., 30. 톰 라이트는 바울이 샴마이 학파에 속하는 정치적으로 강경파에 속하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그의 저서에서는 명시적으로 바울을 샴마이 학파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데, 그의 주장을 수정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본문으로]
  18. Ibid., 31. [본문으로]
  19. Ibid., 37. [본문으로]
  20. Ibid., 77. [본문으로]
  21. Ibid., 40–43. [본문으로]
  22. Wright, Paul, 162. [본문으로]
  23. Ibid., 183. [본문으로]
  24. Ibid., 183–185. [본문으로]
  25. Wright, What Saint Paul Really Said, 159. [본문으로]
  26. Ibid., 136–138. [본문으로]
  27. 번역하면 그저 모임이다. 교회라는 표현은 바울서신어디에도 없으며 에클레시아는 당시의 사교모임을 가르치는 단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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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興國寺) 가는 길  

 
어머니..
제게 가득 안겨 준 모든 것들은 모랫길처럼 사라졌습니다.
 
낭만과 파티와 향연의 주연은
어젯밤의 꿈인 듯 합니다.
 
저는  이름 모를 언덕에 누웠습니다.
 
비워진 제 몸은
이슬을 채우고
 때론 비를 채우고
억센 잡초를 채우고
지나가는 바람을 채웁니다.
 
어머니!
이 모든 것들은 지금도 -
꿈인 듯 현실입니다...

 

 

 

 

 

 

 

 

 

 

인간은 모두 빈 냉장고 처럼 덜렁 태어납니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이런 것들로 채워 살아갑니다.
건강, 두뇌, 기질, 미모, 재산, 부모, 젊음...
 
저마다 가진 만큼의 것들을
다 소비한 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이끌여져 있는 자신을 봅니다.
 
제 몸을 채운 이슬, 비, 잡초. 바람은 회환과 허무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럴때, 우린 '어머니 하나님'을 찿습니다.
"어머니!  이렇게 되었어요!"
또한 어머니 하나님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사월초파일 흥극사 가는 길,
어는 언덕에 본  누군가가 버린 냉장고를 보며
사진을 들이 댄 것은,
인적없는 곳에  버려진 시신 앞에 드린 제사와 같습니다.
아니 회완과 허무 앞에 선 모든 인간을 애도하는 제사 일 것입니다.
 
그것은
'흥국사(興國寺)'의 절 뜻처럼,
그들이 진정 원하는 영원한 낭만과 파티와 향연이 그곳에서도 이루어지길 비는 기도일 것입니다. 

 


 

 

이수만 作 (한백교회 교인)

 

 

 

* [사진에세이]는 한백교회 사진동아리 '눈숨' 회원들의 작품을 연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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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신대는 ‘해석학과 윤리’를 개설했을까? (상)
: 이 냉소의 시대에 신학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I. 프롤로그: Come back home

한국으로 돌아간다. 거의 10년 만이다. 그 사이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세월 따라 변해갔고, 당연히 시대에 대한 해석도, 시대가 요구하는 윤리도 신학도 그에 걸맞는 옷으로 새롭게 갈아입었다. 그간 정권이 두 번 바뀌었고, 두 번의 정권이 바뀌는 사이에 민주 개혁(?) 세력을 대변하던 전직 대통령 두 명이 유명을 달리했으며, 김수환, 강원용, 법정 같은 종교지도자들도 많은 이들의 아쉬움 속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그 사이 광장은 파헤쳐졌고, 그 기간 동안 국토는 온통 공사판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 옛날 어느 시절처럼 사람들이 몸에 불을 지르고 옥상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엽기적 괴담, 그 옛적의 어느 시절처럼 사람들은 다시 봉기를 상상한다는 흉흉한 소문,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고 이미 게임 끝났다!’는 냉소까지…이상은 나의 귀국 소식을 전해들은 그곳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이 조언이라며 아주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결론적으로 그 조언들을 종합하면, 10년 만에 돌아가는 조국은 10년 후의 그곳이 아니라, 30년 가까운 과거로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이 시간을 거슬러 내려간 그곳이다. 그것은 흡사 이런 느낌이다. 아주 예전에 태백 예수원에 갔던 적이 있었다. 태백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어느 한 구간에서 열차가 거꾸로 갔었다. ‘스위치 백’이라 불리는 구간이었다. 고지에 도달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뒤로 간다는 안내방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뒤로 가는 그 시간 동안 약간 어리둥절하고 불안했던 기억이 있다. 현재 내가 느끼는 감정이 꼭 그와 같다. 열차는 다행히 그 스위치 백 구간을 지나자 다시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예정시간보다 다소 늦었지만 태백역에 무사히 당도했다. 우리의 역사도 그럴 수 있을까? 이 ‘스위치 백’ 구간을 지나면 다시 우리는 앞을 향해 나가 고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II. 등위접속사 ‘And’의 용법

2014년 봄 학기부터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해석학과 윤리’라는 과목을 강의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다. 한신대, 해석학, 윤리…얼핏 답이 뻔할 것 같은데, 들여다 볼수록 그것들이 잘 조합되지 않고, 그나마 합체된 모양새는 심하게 일그러져 보인다. 그런 혼돈이 내 안에서 일고 있는데, 강의목표와 내용을 제출하라 연락이 와 일단 이렇게 적어 보냈다.

본 강좌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하는 해석학과 선과 책임, 행위를 목표로 하는 윤리학을 하나의 제목으로 묶음으로써, 윤리학은 해석학의 도움으로 행위의 근거를 보다 확실한 토대위에 근거 지을 수 있고, 해석학은 윤리에 기대어 인간 실존의 문제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이를 위해 강좌는 크게 세 단계의 과정을 거치며 진행될 것이다. 강의 초반에 현대 윤리학 이론에 대한 지형을 개괄한 후, 고전적인 해석학이론들(슐라이에르마허-틸타이-하이데거-가다머-리꾀르)을 강의 중반부에 다루고, 강의 후반부에는 현대 해석학 이론들(푸코-데리다-바디우-라깡-지젝-레비나스)과 만난다. 초반에 익힌 윤리학 이론들이 어떻게 시대별로 등장하는 다양한 해석학이론들과 만나 대화할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신학적 상상력은 무엇인지? 본 강좌가 수강생들에게 요구하는 최종 질문이자 목표이다. 

이렇게 호기에 찬 목소리로 말은 했지만, 나는 여전히 어떻게 해석학과 윤리를 한 공간에서 만나게 할지 감이 안 잡힌다. 한동안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이렇게 헤매는 이유가 다소 엉뚱하게 들릴런지도 모르겠지만 등위접속사 ‘and’ 때문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의 영문 제목도 기입하라고 적혀있어서, ‘해석학과 윤리’의 영문인 ‘Hermeneutics and Ethic’ 이라고 표기하는데, Hermeneutics과 Ethic사이에 있는 ‘and’가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처럼 나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사실, 영문법 상으로 그렇다. 등위접속사 문제는 토플이나 GRE 같은 영어시험을 치를 때 빈번하게 나오는 주요 문법문제 중 하나인데(내가 너무 그 시험들에 시달렸었나?), and, but, or 같은 등위 접속사는 속성상 그것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되는 단어의 구조, 품사, 성, 수, 격이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그 차이를 묻고 그것의 정확한 일치를 감시하는 것이 등위접속사의 역할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영어문장에서 등위접속사들을 만날 때마다 법정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눈을 가린 ‘법의 여신’ 손에 들리운 수평저울을 연상한다 (그 여신의 다른 한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지 아마도). 그 수평저울 양쪽에 놓여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이었나? 그것은 다분히 감각적인 질감을 지닌 덩어리, 즉 양적 차원의 그 무엇이어야 한다. 등위접속사 ‘and’는 그 수평저울의 중앙과 같은 역할을 한다. 대상들이 지니는 질적인 차원을 제거하고 계량 가능한 상태로 만든 후에, 그것들을 동일한 평면상에 위치시킨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볼 때, 이해의 지평을 중시하는 해석학의 정적인 측면과 구체적 행위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윤리학의 역동적 측면은 등위접속사 ‘and’ 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계량화 되지 않고, 균질화 되지 않은 불완전한 성, 수, 격의 조합이다.
 
III. 아, 한신!

강의에 대한 구상을 하면서 부딪치는 또 다른 문제는 이런 불완전한 조합을 주최한 공간이 한신대라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신학계에서 한신대라는 기표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무엇인가? 마치 짜장과 짬뽕을 놓고 다투는 것처럼, 그래서 이제는 짬짜면이 등장해 양자의 논의를 희석시켰던 것처럼, 한신대의 정체성을 둘러싼 다양한 긍정적, 부정적 논의들, 그리고 문제를 희석시키는 시도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한신대를 둘러싸고 있는 마치 유령과도 같은 무엇인가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상수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한신대는 그 초심을 계속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이제 한신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람들,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에는 공히 한신대라는 기표가 상징하는 거부할 수 없는 기의, 즉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의 그 기원, 그리고 변화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 변화의 대상이 있음을 부지불식간에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고 볼 때 양자는 모두 그 한신대적인 것을 음으로 양으로 공유하고 있는 단일한(아니, 잡다한) 해석의 집합체일런지 모른다.

이렇듯, 마치 비행기가 버뮤다 삼각지대에 들어가면 계기판이 난동을 부려 방향을 상실한 채 허공을 헤매다 실종되는 것처럼, 해석과 윤리, 그리고 한신대라는 함의가 내뿜는 자기장 안에서 나는 지금 길을 잃고 갈 바를 몰라한다. 이 순간 문득 니나가 잡혀있는 마왕의 소굴로 달려가는, 대마왕의 손에서 니나를 구해내겠다고 큰 소리 치던, 날쌔고 용감한 어릴 적 보았던 만화 영화 속 주인공 폴이 지금의 길을 잃은 내 모습과 대비되면서 보고 싶어지는 이유는 왜일까?    

IV. 해석학적인 것 

돌이켜보면 미국 유학 10년 동안 나는 ‘탈이념, 즉 모두 다 성인(成人)이 되어버린 이 냉소의 시대에 신학은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를 놓고 무던히도 씨름하였다. 이제 논문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그 답을 찾아나? 스스로에게 묻다가 “개뿔~ 답은 무슨!”이라는 외마디 비명이 나지막이 새어 나와 화들짝 놀랐다. 주위를 황급히 둘러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들은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황혼이 되면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날아오른다고 헤겔이 그랬다는데, 학위가 마무리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황혼에 이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꿈꾸던 성숙의 경지도 여전히 요원하다. 이런 자괴감이 논문을 마무리 해야 하는 지난 몇 달간 내내 나를 가위눌리게 했다. 그러는 가운데 다음 학기부터 ‘해석학과 윤리’라는 과목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한신으로부터 전해 들었고,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신학은 이제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것, 해석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 답이었다.

신학이 해석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오래된 공리다. 근대 해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슐라이에르마허로부터 훨씬 거슬러 올라가서는 어거스틴까지, 해석학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사상과 문화의 차이를 객관적 언어로 서술하려던 노력이었고, 푸코는 특별히 각 시대마다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해석의 감각적 현현을 에피스테메라 불렀다. 그것은 이성으로, 낭만으로, 이념으로, 감각으로, 체험으로, 구조로, 신화로 시시각각 다르게 불리어왔지만 그것들이 각자의 시대마다 소실점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소실점

근대 회화에서 소실점의 발견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었나? 태초에 혼동가운데 ‘빛이 있으라!’고 외쳤던 신의 음성처럼 소실점은 카오스 안에 코스모스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소실점의 기본공식은 그것을 중심으로 원거리의 사물들은 작게 보이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들은 크게 배치하는 원근 법칙이다. 특별히 회화에서는 그것을 사실주의라 부르는데, 근대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고전적 소실점의 발견은 인식주체가 인식대상을 향한 인지의 강도, 혹은 주체가 정복해야 하는 타자의 우선순위, 혹은 주체가 두려움을 느끼는 타자의 등급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고전적 소실점의 발견과 대비되는 반대 개념의 소실점도 등장했다. 19세기 낭만주의가 그것이라 할 수 있을텐데, 사실주의적인 소실점의 원리와는 다르게 낭만주의의 그것은 오히려 멀리 있는 것에 대해 아우라를 부여하고, 가까이에 있는 것에는 의혹으로 맞선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억이 아닐까 싶다. 멀리 있는 기억은 사실은 그리 아름답지도 근사하지도 않았던 구질구질했던 현실의 그것이었을 텐데, 세월이 흘러 먼 훗날 그것을 회상했을 때 그것은 과거 현실의 그것보다는 꽤 근사하게 포장되어 우리들에게 전해져 온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커다란 두 개의 축이라 할 수 있는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그 매트릭스에 걸려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두 세력에 대한 모독일까?

뭐니 뭐니 해도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초강력 소실점은 이념이다. 이데올로기의 원급법! 그래도 다른 소실점들은 약간씩 겹치고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기억도 그렇고, 거리도 그렇고, 감정의 완급도 그렇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깨닫지 않았나? 세상사에서 두부모 자르듯 선명하게 구획되는 그것이 얼마나 되었나?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작동되는 이데올로기라는 소실점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우리를 가른다. 라깡이 말하는 ‘상상적 양자합’이 이를 잘 설명해주는 원리가 아닐까 싶다. 유아기 아가에게 엄마와 나는 일심동체다. 그 이외의 것은 모두 타자다. 설사 그것이 아버지여도 말이다. 아직 아이는 아버지의 이름을 모른다. 그 아버지를 인정하면서 아기는 비로소 인간으로 거듭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정신분석학에서 바라보는 기본적 인간이해다. 이데올로기적 소실점은 아버지의 이름을 모르는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라깡이 지금의 남한사회를 바라본다면 이런 발언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한쪽에는 좌빨, 빨갱이, 종북좌파, 다른 한편에는 수구골통! 남한 사회는 그 외 다른 이름이 필요치 않아 보인다. 최첨단 테크놀러지를 자랑하는 기술국 대한민국 사회의 집단무의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너무나 원초적인 (라깡적) 상상계속 유아다.”

10년간 조국을 떠나있었던 외부인의 관점에서 라깡이 했음직한 이 말을 좀더 부연하자면, 현재 한국사회는 오른쪽에 있는 아이들이 왼쪽에 있는 아이들보다 대중적 말싸움, 즉 대중선전전에서 승리한 듯 하다. 오른쪽에 서 있는 아이들은 세 가지 패를 갖고 왼쪽에 있는 아이들을 골탕 먹이는 데 반해, 왼쪽에 있는 아이들은 고작 ‘수구골통’ 외에는 상대편 애들을 열 받게 할 적절한 어휘를 고안해내지 못한 것을 보면 말이다. 원래는 왼쪽 동네 아이들이 말싸움에 훨씬 능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난 10년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음 웹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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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윤리적 화두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미국의 작은 사립 대학에서 기독교 사회 윤리학과 여성 윤리학을 가르치면서, 종종 학생들과 힘들게 씨름하는 주제가 ‘전쟁’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폭력과 전쟁으로 시작되어서, 지금까지도 그 폭력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에서 신학적 머리로 접근하기 힘든 화두가 ‘전쟁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인가, 아니면 죄에 빠진 인간들의 권력 투쟁인가, 만약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전쟁이 있다면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입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왕국들의 흥망 성쇠가 이어졌던 유럽에서는 교회가 거룩한 전쟁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비열한 권력욕의 실체로 판단될 수 있는 십자군 전쟁, 백년전쟁, 제3세계의 식민지 전쟁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까지 유럽의 모든 전쟁들은 교회의 적극적인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전세계의 수많은 기독교 윤리학자들이 전쟁 윤리에 매달리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전쟁이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가장 파괴적인 수단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폭력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공포의 실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쟁을 겪을 때마다 인간은 상상을 초월한 잔혹성을 경험하게 되고, 그러한 경험들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떠한 존재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느님은 이 전쟁의 불길 속에서 어디에 계셨던 것인가’ 등등의 실존적 질문들을 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전쟁이야말로 인간 정체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역사적, 물리적 힘이 아닐까요?
           미국의 기독교 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와스 (Stanley Hauerwas)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미국인이라는 시민 정체성이 전쟁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지구상에 생겨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전쟁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전쟁에서 희생당한 참전 용사들을 기억하며 애국심을 다지고, 이들의 피로 지켜낸 미국을 영원히 지키자는 다짐을 해왔습니다. 기독교인들 또한 군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데 적극적이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전쟁 영웅들의 희생과 초대 기독교 순교자들의 피를 동일시하면서, 끊임없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미군들과 전장에서 죽은 거룩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의 ‘선’을 수호하는 하느님의 거룩한 군사들로 자신들을 이해해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우어와스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전쟁은 인류 사회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뿌리 깊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성서적 바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의로운 전쟁’이론이 기독교 전쟁 윤리의 지배적인 담론이 되는 이유는,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인간 사회의 실체라는 생각을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의로운 전쟁 이론은 전쟁을 거부하는 담론이 아니라, 전쟁을 실체화하는 담론인 것입니다. 전쟁이 인간 사회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생각이 팽배한 세계는 비폭력 평화주의자들을 희생을 거부하는 이기주의자들로 낙인찍어 버립니다. (Stanley Hauerwas, War and American Difference [Baker Academy, 2011])
            하우어와스의 주장은 신선하게 들립니다. 지금까지 주류 기독교 윤리 담론이 소위 말하는 ‘정치 현실론 (Real Politik)’ 또는 ‘기독교 현실주의 (Christian Realism)’에 기초하여, 전쟁의 필연성을 가정한 데서 출발하였다면, 하우어와스는 전쟁의 필연성 자체, 즉 ‘전쟁은 계속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란 생각이 ‘과연 증명이 필요없는 합리적인 가정인가’라고 질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전쟁이 기독교 정체성에 부합하는 것인가’ 하고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존 요더 (John Yoder)의 비폭력 평화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은 하우어와스에게 있어서, 전쟁은 기독교 정체성에 반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전쟁이 굳이 피할 수 없는 인류 사회의 현실이 될 합리적 이유도 없습니다.
            여성신학자 로즈마리 류터 또한 하우어와스와 비슷한 주장을 합니다. 비록 힘의 대결로 일어난 전쟁과 폭력이 인간 역사를 지배해 오기는 했지만, 인류는 사랑과 정의, 화합에 바탕을 둔 신뢰와 공존의 관계를 유지해 오기도 했습니다. 예수가 그러했고,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원 운동, 간디의 비폭력 평화 운동,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흑인 인권운동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이들이 보여 준 사랑과 정의, 화합에 기반한 공존의 관계는 역사적 현실이 아닌 걸까요? 류터는 폭력의 역사 만큼이나 사랑의 역사 또한 현실이라고 주장합니다. (Rosemary Ruether, Christianity and Social Systems [Rowman and Littlefield, 2008])  
           하우어와스와 류터의 신학적 질문들은 한국 사회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한국 전쟁을 통해 만들어져 왔습니다. 한국인이 된다는 것은 일제 식민지와 한국 전쟁을 기억하고, 분단의 현실에 마음 아파하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흘린 이들을 기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뼈아픈 전쟁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국의 교회들도 공산주의와 싸우면서, 대한 민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물질적 영적 힘을 보태었습니다. 이제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은 전쟁과 분단, 반공주의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생각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예수의 평화를 묵상해 봅시다.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만이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는 길일까요? 한국의 교회는 전쟁에 대해 어떤 신학적 생각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저는 성공회 신부입니다. 매주 미사에 성찬식을 시작하며 신자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우리가 이야기하는 “주님의 평화”는 무엇일까요? 이 평화는 현실에선 얻을 수 없는 희망일까요? ‘한국 기독교인들은 끝나지 않은 전쟁의 현실과, 얻을 수 없는 주님의 평화 사이에서 끊임없이 길 잃은 어린 양들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라는 화두를 던지며 이 글을 마칩니다. 길을 찾기 위해선 앞으로 전쟁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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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04 10:2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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