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데모'의 어제와 오늘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거리의 관제데모 중 단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왔던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참가자에게 일당을 주는 ‘알바데모’를 벌여왔다는 게 밝혀졌다. 많은 이들이 추측해왔던 것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그들에게 용역을 준 곳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재향경우회, 심지어 국가정보원, 청와대 등이었다는 의혹도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단체는 평균 한 해의 절반가량을 거리데모로 채웠으니, ‘동종업계’ 최고의 ‘수주 능력’을 자랑하는 단체였던 듯하다. 실제로 다양한 이슈들을 소화해내는 능력도 놀라웠고, 비교적 저렴한 일당임에도 알바 동원력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 왔다. 심지어 좌파 단체들의 시위공간을 선점해서 벌이는 이른바 ‘알박기 데모’라는, 데모의 신상품을 활용해내는 창의력과 정보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데 여기서 나의 관심이 꽂힌 것은 이 단체가 아니라 이 단체에 고용된 ‘알바 참가자’다. 알려진 바로는 그들 중 상당수는 탈북자들이다. 비교적 저렴한 일당으로 고용할 수 있고 반공적 편향이 매우 강한 이들이니 대한민국어버이연합에 고용되기에 안성맞춤의 대상이겠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일년에 거의 절반을 이 단체가 주도한 데모에 참가해서 일당을 받아왔다면 그들의 직업을 ‘거리의 데모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1946년 말에 결성되고 그 이듬해에 가공할 족적을 남긴 서북청년단은 해방정국에서 활동한 가장 강력한 극우적 관제데모 단체였다. 이 단체가 주도한 데모의 참가자들 거의 대부분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남한으로 월남한 서북(평안도와 황해도) 출신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매우 강했고,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었다. 또한 그들 대다수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의 근본주의 신앙의 본거지였던 평안도와 황해도의 장로교도였다. 근본주의적 신앙은 편집증적인 신념으로 무장한 행동주의자를 만들어내기에 더없이 적합한 종교적 성향이다. 하여 그들은 제주 등지에서 거의 살인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로 둔갑했다. 그들이 처음부터 잔혹한 살인마는 아니었다. 물론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월남을 선택한 자들이지만, 그렇다고 그 증오심이 그들의 잔혹한 살인마적 행동을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남한에서 처음 직면한 감정은 증오라기보다는 ‘막막함’이었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 어느 하나도 갖지 못한 채 무인도로 떠밀려온 난파선 선원처럼 낯선 곳에 내던져진 유민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이 하나둘씩 ‘월남자교회’로 찾아가고 서북청년단 같은 월남자 청년단체에 가담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임시거처가 생겼고 일당받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극우 관제데모였다. 이들을 고용한 자들은 미 군정에 소속된 경찰책임자인 조병옥과 장택상, 반공적 우익 지도자인 이승만, 그리고 친일경력의 기업가들 등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제데모에 참가한 직업으로서의 데모자들은 얼마 안 가 증오의 사도로 주체화되어 갔고, 멸공주의 신념으로 무장한 잔혹한 극우 행동주의자가 되어갔다. 

    오늘의 탈북자들도 북한을 떠난 뒤 ‘막막한 유민’의 현실에 직면했다. 그런데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근본주의 성향의 개신교계 선교단체에 찾아가게 되면서 막막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특정 경로로 초대된다. 그 경로에는 반북한, 반공주의적인 격한 언행을 드러냄으로써 일당을 받는 이른바 이념형 알바의 피고용자가 된 것도 포함된다. 또 그중에는 증오와 공격성이 가미되면 더 좋을 만한 일거리, 가령 반공적 거리데모 같은 것도 포함된다. 그런데 그런 증오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강성 이념적 연기는 무수히 반복되면서 신념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많다. 하여 일용직 알바의 피고용자들이 벌이는 관제데모는 조금씩 그들을 오늘의 서북청년단으로 변신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행한 체제의 이탈자들을 초대한 남한 사회는 1940년대나 오늘이나 이렇게 그들을 사회 속에 잘 정착한 행복한 존재가 되게 하기보다 사회의 위험분자로 살게 하고 또 사회를 위험하게 하는 자로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 시민사회에는 탈북자들에 대해 편견과 배척의 담론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낼 ‘괴물들’을 우리가 미워하고 배척하는 담론이다. 1940, 5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우리는 그 괴물의 인큐베이터가 바로 우리 사회 자체임을 성찰하지 않는 담론이 번져나가는 것이다. 그런 괴물들은 탈북자들 사이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무성찰을 자양분 삼아 사회 도처에서 다양한 얼굴로 잉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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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신화론자들, 성서 텍스트, 그리고 롤랑바르트 Ⅰ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헬름스는 “1세기 지중해 동쪽 끝에서 유일신에 대한 숭배를 가르치고 종교는 짐승들의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와 경건을 실천하고 증오와 적개심을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선언한 한 명의 두드러진 종교적 지도자가 나타났다. 그는 선한 기적들을 행하고, 데몬들을 쫓아내고, 아픈 자를 치유하며, 죽은 자를 일으키는 일들을 행했다고들 한다. 비록 그 자신은 인자라고 칭했지만, 그의 모범된 삶으로 인해 그의 몇몇 추종자들은 그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로마에 대한 선동죄로 기소되어 체포되었다. 그가 죽은 후, 제자들은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고, 자신들에겐 살아서 나타났으며, 그런 다음엔 하늘로 승천했다고 주장했다. 교사이자 기적을 행하는 자였던 이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의 이름은 바로 티야냐의 아폴리니우스였다.”[각주:1]는 말로 자신의 저서 Gospel Fictions 를 시작한다. 무척 흥미롭다. 왜냐하면 우선, 글의 말미에 나타난 질문과 관련해 보통의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대부분 아폴리니우스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라고 답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폴리니우스다. 이로써 보통의 그리스도교 신자가 가질법한 기대가 여지없이 박살나 버린 셈이다. 물론 충격이 아닐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사는 동안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비슷한 류의 이야기들을 접하고선 신기해하거나 의심에 빠져본 적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도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넘기는 신자들도 개중에는 있을 법 하다. 그럼에도 아직은 먼 훗날의 일로만 보인다. 그 예로 김진호의 말을 들어보자.[각주:2] 


     2000년 12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신문사 기자라고 밝힌 그는 다짜고짜 최근 일고 있는 역사의 예수 논쟁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물었다. 움찔했다. ……당황해하는 내게 그는 그 무렵 TV에 방영된 도올 선생 강의 얘기를 간단히 들려주었다. 그제서야 사태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교회나 열혈신자들의 항의가 방송국에 전해졌을 것이고, 이것이 기자들에게 사건거리로 읽혀졌던 것이다. 그 전화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꽤나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즉각 항의공문을 방송국에 보냈고, 많은 기독교인 시청자들의 문제제기가 방송국 홈페이지에 접수되었다. 


     비단 이런 일은 2000년 그 해에만 일어나지 않았다. 2008년 SBS에서 방영된 <신의 길 인간의 길>에서도 이런 일은 그대로 반복되었다. 2000년 12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예수는 사생아라는 도올의 폭탄 발언보다 한술 더 뜬, 즉 예수는 신화적 인물이라고 주장한 로버트 프라이스와 피터 겐디의 말을 공중파에서 여과없이 내보낸 것이다. 단순히 이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아무튼 보수 개신교 진영에선 난리가 났고, 결국 이 방송에 대한 보수 개신교계의 반론이 짧게나마 방영되기도 했다. 따라서 예수가 순전히 인간적인 인물이라는 주장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신화적 인물이라는 주장은 더더욱 신성모독 죄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게 보수 개신교계의 일반적인 입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유지되어야 하는 일종의 신앙의 시금석인 것이다. 어쩌면 역사적 예수연구라는 학문분과가 한국의 신학교들에서 강의되고 또한 지역 교회들로 유포되어 교인들이 접촉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인 이유도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그런 일만은 아니다. 역사적 예수연구가 거의 200년 동안 이루어진 1세계에서도 도그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연구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검열이든 타인에 의한 검열이든 간에 검열은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수의 부활과 관련해 자신은 이것을 역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고백했기에 괴팅엔 대학의 신약학자 게르트 뤼드만은 대학의 신학과로부터 해임을 당했다.[각주:3] 그리고 학문적 자유냐 신학적 권위냐의 문제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는데, 이와 관련해 여러 학자들이 토론하기도 했다.[각주:4] 이와는 좀 다르지만 자신의 책 The Illegitimacy of Jesus 에서 예수의 탄생설화를 세밀하게 주석하면서 예수가 당대의 유대교에서 결코 명예롭다고 할 수 없는 일종의 불법적인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논지를 펼쳤다는 이유로 슈아베르그는 우편물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각주:5] 또한 Crucifixion in Antiquity라는 책에서 사무엘손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복음서에 적힌 대로 해석되기엔 난점이 많다는 주장을 펼쳤을 때, 전 세계의 신자들이 그에게 수많은 메일과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각주:6] 물론 이것은 그에게 자신의 학문적 진가를 알리는 계기가 되도록 해주었지만 말이다. 하기야 역사적 예수에 관해 학자들이 투표를 통해 그 말의 진정성을 결정짓고자 했을 때 들이닥친 각종의 비난과 조롱을 참작하면, 1세계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철저히 계몽된 그러한 세계가 애초에 아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속화 이론이 내다봤던 것과 달리 종교적 도그마/검열이 은밀히 작동하는 그런 세계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방금 소개한 세 사람처럼 역사를 통해 적어도 1세계에선 지난 200년 동안 성서와 신앙에 대해 균열을 내고자했던 사람들이 꾸준히 존재해 왔다. 그 중에서도 신화론자들은 가장 급진적이었고, 현재는 무신론과 결탁해 근본주의 신학진영에 대해 열성적인 전투를 감행하고 있다. 때론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종교학적 관점에서 기독교 경전을 해석하고 있는 바트 얼만과 같은 이들에 대해서도 이들은 비난과 조롱을 퍼붓기도 한다. 따라서 도킨스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이들의 논의가 허접한 수준의 아마추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전문적인 신학연구의 성과물들을 철저히 읽고 독해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그러니까 그저 몇 권의 책을 읽고 논평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극적인 사람은 로버트 프라이스인데, 그는 고든콘웰이라는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출발해 드류대학교에서 신약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나중에는 신화론자로 전향했다. 신약학뿐만 아니라 조직신학에서도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아마추어는 아닌 셈이다. 때문에 그의 책은 번역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새물결 플러스에서 출간된 『역사적 예수논쟁』은 그를 접해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각주:7] 하지만 그의 비평이 전해주는 짜릿함을 맛보기엔 이것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쯤에서 누군가는 왜 우리가 신화론자들의 논의를 굳이 알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법하다. 다시 말해, 이들은 어차피 예수를 신화적 인물로 간주하기에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 간주하는 정통의 관점에서 보면 적대자이거나 변증의 대상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흥미롭게도, 말년에 예수의 역사성을 부인한 브루노 바우어 같은 이에 대해 슈바이처는『예수의 생애 연구사』에서 다음과 같은 멋진 논평을 해놓았다.[각주:8] 다소 길지만 읽어보도록 하자.  


      우리에게 바우어와 비교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라이마루스일 것이다. 이 둘은 자기들의 시대에 무시무시하고 손상시키는 영향을 주었다. 누구도 이들처럼 예수의 생애 문제의 이렇게 심한 복잡성을 느끼지 못했다. …… 복음서 역사에 대한 바우어의 비평은 한 타스의 좋은 예수의 생애보다 중요하다. 그 비평은 우리가 지금 비로소, 반세기 후인 지금 비로소 인식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 있던 것들 중에서 예수의 생애의 난점들의 가장 천재적이며 가장 완전한 목록이기 때문이다. 그의 해결들의 비범성은 문제들을 문제들로서 이해했던 지향성에 근거를 두었다는 것과 그가 너무 예리하게 관찰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해서 너무 어두웠다는 것을 그들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동시대인들에게는 단지 환상가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환상에는 역시 하나의 깊은 인식이 숨겨져 있었다. 이 훌륭한 것은 아직 누구의 머리에도 떠오른 일이 없었다. 원그리스도교도 초기 그리스도교도 예수의 설교의 단순한 결과로서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기원 전후 첫 세대들에서의 세계 정신의 체험을 반영한 것이다. 바우어는 그것을 역사에 옮겨놓고 죽음의 움직임에 놓여 있는 로마 제국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들었다. 


     반면에 슈바이처는 스미스와 로버트슨 그리고 드류스와 같이 바우어 이후에 나타난 신화론자들에 대해서는 꽤 비판적이다. “브루노 바우어가 전한 것과 같은 본문들의 비판적 연구는 그의 근대적 제자들 중 한 사람도 시도한 일이 없다. 또 그들은 복음서 설화들 중에 전제되어 있는 세계에 관한 설명을 위해 후기 유대교 사상들을 시도적으로 인용하고 그렇게 함으로 학문성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들 중의 한 가지를 만족시키려는 데 전혀 무관심했다. 신의 나라에 관한 예수의 선포에 관해 로버트슨은 아무 것도 말할 줄 몰랐다.”[각주:9]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슈바이처가 스미스와 로버트슨 그리고 드류스와 같은 신화론자들만 비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근대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그리고 항상 예수의 역사성의 있을 법한 포기의 가능성을 계산해야 한다.”[각주:10]라고 말하면서 “근대의 신학이 예수의 역사성을 위해 싸우지 않고 오히려 단지 어떤 특정한 예수의 역사성만을 위해 싸울 뿐”[각주:11]이라고 통렬히 지적한다. 즉, 근대의 맥락에 맞는 예수상을 구성하기 위해 신학이 목숨을 걸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신학이 예수의 죽음과 삶에 관한 자체의 역사적 주장을 수호해야 하는 바, 여기에 그 종교의 사활이 달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억지같이 작용한다.”[각주:12]라는 비판을 가했다. 

     한데, 좀 더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도 신화론과 근대의 역사적 예수 연구가 부지불식간에 공모를 하고 있다는 슈바이처의 주장이다.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3] 


      종교철학적 물음은 예수가 근대적 종교성을 위해서라면 실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실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아니면 그가 너무나도 역사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근대 신학은 역사적인 것을 충분히 비역사적인 것에 의해 완화함으로 종교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수를 얻으려고 꾀한다. 가장 단순한 길은 여기에 있다. 즉 근대신학이 예수의 사상들의 종말론적 성격에 통찰이 진입된 때 자체로부터 끌어내는데, 그 성격이 그와 함께 자명적으로 비종말론적으로 생각했으며 이미 현존하는 정신적 신의 나라를 설교하고 이에 상응하는 윤리를 가르쳤다는 데 있다. …… 시초에 그렇게 맹렬히 공격하던 브레데도 너무나도 역사적인 예수의 포기를 신학에 허락했다. ……이 얻어진 가벼움은 그러나 신학이 생동적인 메시야 대신 단지 흔들리는 개략적인 것만을 제시하는 유대인 교사만을 남은 것으로 얻은 희생을 치른다. 이 교사는 사실 근대종교를 위해 전혀 아무 것도 의미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일종의 역사적 영예의 위치를 부가한다. 왜냐하면 그의 처음 추종자들, 즉 그리스도교를 형성시킨 그들은 그를 유대인의 메시야라는 이름으로 꾸미고 그에게 근동적 그리스적 구속신의 성격을 첨가했다. 역사적 예수는 그러므로 단지 피상적으로만 구출된 것이다. 종교가 실제로 일하는 것은 처음 공동체 및 상징적 신화적 그리스도, 다시 말해서 드류스도 자신을 관련시킬 거대한 것과의 공동과제이다. 


     이처럼 그리스도 신화론자들과 근대의 신학은 부지불식간에 공모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슈바이처의 눈에는 말이다. 따라서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철저종말론을 외치며 예수를 1세기의 묵시적인 종말론자로 설정한다. 이것은 그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교회가 아니라 예수의 역사성 그 자체를 위해 투쟁한 결과로 나타난 산물인데, 문제는 교회의 도그마와는 애초에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괴하는 것으로까지 치달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에겐 “의지로부터 의지를 이해하는 일”[각주:14]이었고 그렇기에 “그의 본질을 위해 표현할 수 있는 어떠한 칭호”[각주:15]도 있을 수 없는 그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화론자들의 주장이 형편없는 아마추어 수준의 연구결과로 나타난 망상된 주장이라는 흔한 착각은 교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슈바이처가 신화론자들을 비판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 논의의 전개가 형편없는 수준이어서가 아니라 근대의 신학적 연구들과 궤를 같이하면서 그 자신의 방법론이 지향하고 있는 묵시적인 종말론적 예수상을 이들이 도외시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론자들에게 일종의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예수를 구출해낼 수 있는 유일한 치료책은 그 자신의 철저종말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후기 유대적 형이상학에서 실존한 하나의 도덕주의자이자 합리주의자”[각주:16]라는 그의 주장을 교회가 혹은 신학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교회로선 그리스도 신화론자들이 주장한 그리스도 신화론을 껴안는 것이 속편한 일일 것이다. 슈바이처가 『예수의 생애 연구사』 6판에서도 불트만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기이하기까지 하지만, "그리스도 신화를 본질적 내용으로 담은 그리스도에 관한 헬레니즘적 케리그마 - 바울에게서도 볼 수 있다(특히 빌 2:6, 롬3:24) - 를 예수의 역사에 관한 전승에 조화시키는 일이었다. 이 목적을 위해 아포프테그마와 이적 사화를 수집하고 편집해 놓"[각주:17]는 것이 마가의 의도였다는 불트만의 지적을 참작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맥 역시 불트만의 논의를 따라 "마가의 천재성은 그가 일종의 지혜 신화를 이용하여 예수전승과 그리스도 신화 모두에 연결시킴으로써 그 둘 사이를 중개시켰다는 점"[각주:18]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더구나 마가는 "그리스도 신화에서 필요한 것만 취하였는데, 그것은 그의 묵시록적인 예수의 신화를, 그의 예수 그룹을 거부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극적이고 시각적이기도 한 역사적 기사 속에 교묘하게 집어넣기 위함이었다."[각주:19]는 맥의 주장은 슈바이처의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슈바이처가 신화론자들로부터 구출해냈다고 본 그 묵시적인 종말론적 예수상도 1세기의 종교적 언표들에서 추출해 낸 신화적 예수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쯤에서 서두에서 제시했던 헬름스의 글을 다시 떠올려 보도록 하자. 그 글은 어떤 한 인간의 생애에 대한 묘사가 1세기 당시의 지중해 세계에서 떠돌던 특정한 이야기 틀에 의해 주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면에선 예수와 아폴리니우스의 생애가 서로 유사하다면 그것은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지역의 종교문화적 에토스에 의해 영향을 입은 일종의 텍스트적 현상으로 간주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바로 그렇기에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후자인지에 관한 논의는 무의하다고도 할 수 있다. 차라리 이해해야 할 것은 한 인간의 생애가 이처럼 종교문화적 에토스를 거쳐 텍스트화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이러한 현상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우리에게 꽤 유익한 도움을 주고 있다.[각주:20] 읽어보도록 하자.  


      아주 드물긴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신화로 변형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루마니아의 민속학자인 콘스탄틴 브라일로이우는 마라무레쉬라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민요 하나를 채집할 수 있었다. 비극적인 사랑이 그 내용이었다. ……노랫말은 신화적인 암시들로 가득한,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제례용 가사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래의 변이형들을 채집하면서 동시에 브라일로이우는 그런 비극이 일어난 때가 언제였는지도 조사하였다. 사람들은 오래 전에 일어난 오랜 옛날의 이야기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조사를 계속해나가면서 그는 사건이 겨우 40년 전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여주인공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 핵심증인이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진실성을 완전히 박탈해버리고 사건을 전설적인 이야기로 변형시키는 데에는 불과 몇 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 자체는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혼 전날에 죽은 한 남자의 비극적인 죽음은 단순한 사고사 이상의 어떤 것이었다. 그 죽음에는 신화적인 범주 안으로 통합되었을 때에만 드러나는 어떤 비의가 담겨 있었다. …… 진실을 말하는 것은 신화였고, 실제 역사는 이미 거짓에 불과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는 "민중의 기억은 한 영웅의 생애에서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요소들은 보존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고차적인 신비경험들 속에서도 인격신은 궁극적으로 초인격적인 신으로 고양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많은 전통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영혼은 기억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소위 그들의 역사적 개별성은 상실된다."[각주:21]고 지적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프라이스 역시 “웰스나 알바 엘레가드 같은 신비주의자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에 대해서 그가 가까운 과거에 살았던 인물이라기보다는, 평범한 그리스 사람들이 헤레클레스와 아킬레우스가 과거 어느 시점에 실제로 살았다고 믿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예수를 역사적인 인물로 여겼다고 주장했다……인자로서의 예수의 죽음은 리그베다의 원인 푸루샤의 원시적 죽음과 유사하다. 리그베다를 보면 하늘에서 푸루샤의 자기희생이 창조를 일으켰다.”[각주:22]고 한다면서 전통적인 그리스도 신화론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점은 슈바이처가 비판한 드류스나 스미스에게서도 또한 발견된다. 그렇다면 엘리아데와 전통적인 그리스도 신화론은 분명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신화론도 엘리아데의 주장처럼 예수와 아폴리니우스가 역사적 개별성을 상실하고 특정한 지역의 종교문화적 에토스에 흡수된 종교적 영웅들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그리스도 신화론도 엘리아데 못지않게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어떤 인물에 대한 종교의 텍스트화 현상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 텍스트화 현상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예수를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고 쉽게 단정해 버린 그들의 치명적 실수는 정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유별난 혹은 독특했던 어떤 한 개인이 새겨놓은 사건의 흔적과 그 흔적을 통한 종교의 형성 및 발달이 아니라 종교적 관념들의 유사성에 따른 텍스트의 형성과 그로 인한 종교들 상호간의 치열한 정체성 투쟁을 우리로 하여금 돌아보게끔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적 텍스트가 하나의 주체를 보여주고 있다면 그 주체는 이미 집단적으로 투사된 혹은 치환된 범례적 주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Helms Randel, Gospel Fictions, Prometheus Books, New York, 1988, p.9 [본문으로]
  2. 김진호,『예수의 독설』, 삼인, 2008, p.23 [본문으로]
  3. 뤼드만의 예수의 부활에 관한 연구에 대해서는 The Resurrection of Christ : A Historical Inquiry, Prometheus Books, New York, 200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4. 이에 대해서는 Jacob Neusner, Faith, Truth, and Freedom: The Expulsion of Professor Gerd Lüdemann from the Theology Faculty at Göttingen University, Global Academic Publishing at SUNY Binghamton University, New York, 2002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 Schaberg Jane, The Illegitimacy of Jesus: A Feminist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Infancy Narratives, Sheffield Phoenix Press, Sheffield, 2006 [본문으로]
  6. Samuelsson Gunnar, Crucifixion in Antiquity: An Inquiry into the Background and Significance of the New Testament Terminology of Crucifixion, Mohr Siebeck, Tubingen, 2011 [본문으로]
  7. 이에 대해서는 『역사적 예수논쟁』, 손혜숙 옮김, 새물결플러스, 서울, 201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8. A.쉬바이처, 『예수의 생애 연구사』, 허 혁 옮김, 대한기독교출판사, 1986, p.169 [본문으로]
  9. A.쉬바이처, 같은 책, p.521 [본문으로]
  10. A.쉬바이처, 같은 책, p.481 [본문으로]
  11. A.쉬바이처, 같은 책, p.483 [본문으로]
  12. A.쉬바이처, 같은 책, p.480 [본문으로]
  13. A.쉬바이처, 같은 책, p.485 [본문으로]
  14. A.쉬바이처, 같은 책, p.590 [본문으로]
  15. A.쉬바이처, 같은 책, p.593 [본문으로]
  16. A.쉬바이처, 같은 책, p.592 [본문으로]
  17. 루돌프 불트만,『共觀福音書傳承史』,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02, p.432 [본문으로]
  18. 버튼 맥,『잃어버린 복음서』, 김덕순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1999, p.284 [본문으로]
  19. 버튼 맥, 같은 책, p.285 [본문으로]
  20. 미르치아 엘리아데,『영원회귀의 신화』, 심재중옮김, 이학사, 2003, pp.57~58 [본문으로]
  21. 미르치아 엘리아데, 같은 책, p.59 [본문으로]
  22. 로버트 프라이스, 『역사적 예수논쟁』, pp.93~9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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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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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3 09: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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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기독교 신자로서 한 종교의 창시자이자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교학적 관점과 성서학적 관점 (역사적 예수 학파를 포함), 그리고 조직신학적 관점은 모두 예수를 다르게 바라보는 것 같은데요. 위 세 가지 중에서 자유롭게 토론하며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기독론(Christology)이 대중화되는 그 날을 기대해봅니다!


지진, 하나님의 뜻 그리고 종말



 

민기욱
(GTU 조직신학 박사과정)


 


       아내와 차를 타고 가다가 잠깐 신학논쟁(?)이 벌어졌다.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디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있던가? 결혼을 결심할 때, 왜 나를 선택했느냐가 주제였다. 아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는 것이다. 서운했다. 내가 매력적이었다거나, 장래가 있어 보였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착해 보여서 나를 선택했다고 말하길 기대했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었단다. 가끔 교우들 중에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꼭 목사에게 “하나님의 뜻”일까 여부를 묻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말해 겉으론 진지하지만 속으론 웃을 때가 많다. “진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겁니까?” 

       하나님과 창조세계의 관계에 있어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두 가지의 양 극단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인형극장” 모델이다. 이 세상을 인형극장으로 생각해 창조주 하나님이 일일이 줄을 당겨서 오직 그 분이 하라는 대로 모든 창조계가 춤을 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운명을 점친다랄지, 팔자를 탓하는 것이 크게 보면 이런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이는 결정론적 사고 모델이다. 또 다른 하나는 “관객” 모델이다. 우주라는 무대가 잘 돌아가도록 준비해 놓고, 이제는 무심하게 내버려두는 관객이 되어버리는 그런 하나님이다. 지난 세기의 “이신론” 즉 “눈먼 시계공” 모델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가지 양 극단을 피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최초의 창조를 시작하고서 팔짱을 끼고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창조하고 계신다. 적어도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140억 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창조주이셨고 오늘의 창조주이시다.  

      또한 그 분의 연속적인 창조는 “피조물들의 자유”를 허락하신다. 덕분에 역사가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연”이 생겨났다. 그러나 스스로를 자각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줄 아는 존재들이 우주 역사의 과정에서 순전히 우연으로 생겨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목적이 있다. 물론 역사의 우발성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를 진행하다보면 궁극적으로 만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악과 고통”의 문제다. 어느 누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먼저 “도덕적 악”의 문제에 직면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범죄를 듣고 본다.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악을 허용하셨는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잠시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라. 만약 우리에게 선 대신 악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 세상을 살 수 있었을까? 우리는 역사와 오늘의 현실을 통해 수없이 많은 전쟁과 인간의 잔악함을 본다. 우리의 선택을 통해 커다란 고통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기계로 대체할 수는 없다. 이렇게 악이 발생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인간의 자유라는 더 큰 선을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이며, 이를 “자유 의지 방어”라 부른다.  

       또 다른 하나는 “자연적 악”이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지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리스본 대지진을 아는가? 1755년 All Saints Day에 발생한 이 지진으로 교회가 무너져 5만 명이 죽었다. 과연 지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옥스퍼드의 신학자 오스틴 파러는 이렇게 답변했다. “신의 뜻은 지각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그 본성에 맞게 작용해야 한다”고. 이를 오늘날의 신학자들은 “자유 과정 방어”라 부른다. 하나님은 살인자의 행위와 병의 발생을 직접 의도하지는 않으신다. 다만 허용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약함”이거나 “간과함” 혹은 “냉담함” 때문이 아니다. 다만 불가피한 대가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고통의 미스테리나 “참담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버클리 지역도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잊을만하면 잠자고 있는 순간에,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에서, 예배를 마치고 주차장을 나서는 순간에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지진이 잘 나는 곳이었지!” 하고 자각하게 하며 땅은 흔들어대며 나를 깨운다. 매번 무섭다. 어느 날은 책장에서 “종말론”에 관한 자연과학자와 신학자들의 대화를 수록한 책을 다시 꺼내 보았다. 대충 훑어 파악될 내용은 아니었지만 십 수 년 전 이 책을 처음 대했을 때의 기억은 우리의 “종말”에 관해 과학자들은 한결같이 절망을 말하고, 신학자들은 “희망”을 말하더라는 것이다. 왜 그들은 절망을 말하고, 희망을 말하는 것일까? 또한 극과 극을 달리면서도 왜 그들은 서로 한 자리에 앉아 대화하려는 것일까? 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데도 말이다.  

       먼저 “절망”에 귀 기울여 보자. 너무 낙담하거나 인생을 포기하지는 마시라. 과학적인 사실일 뿐이다. 그들의 주장 속에 섞여 있는 환원주의적, 유물론적, 결정론적 “신념들”을 잘 파악하시고 새겨들으시기를 바란다. 1994년 7월을 기억하시는지. 나는 잊지 못한다. 7월 8일 토요일 북한의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을 듣던 나는 판문점 근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부대에서 군복무 중이었다. 정말 아찔했다. 일명 GP, GOP에서 군복무하는 자들의 심정을 아시는지. 한달 동안 음산한 장송곡을 듣는 심정을. 우울증 정도가 아니라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 후 7월 16일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 유명한 “슈메이커 레비 9”이라는 혜성의 파편 중 21개가 거의 일주일 동안 목성과 충돌했었다. 이 충돌로 목성에 상흔이 생겨나 까맣게 반점이 목격됐는데 그 크기가 지구의 크기보다 더 컸다. 겨우 직경 1.5-2km 정도의 작은 파편으로 지구보다 큰 상흔을 남겼다. 그렇다. 만약 그 파편들 중 하나라도 지구와 충돌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이미 과학적 정설로 자리 잡고 있는 6천 5백만 년 전의 대규모 충돌로 인한 공룡의 멸종은 혜성과 유성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유성과 혜성에 의한 충격 분화구가 지구상에 몇 개나 남아있을까? 현재 140-150여개가 발견됐으며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지구상의 흔적과 혜성을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자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우리는 또 얼마나 낙담하고 있는지.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언제든 “종말”에 이를 수 있다. 우리가 든든히 서 있는 이 땅도 지구 전체의 차원에서 볼 때는 마치 생계란의 얇은 껍질처럼 한없이 약한 지각껍질일 뿐이다. 지진이나 화산폭발에 의해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절망”이다. 그러나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과학이 말하는 섬뜩한 종말은 너무나 순식간에 찾아오기에 기다릴 여유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24시간이라는 하루도 우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정말 절망적이다. 그러나 희망을 위한 이유들을 한 번 찾아보자. 우선 독일 본 대학의 신학교수인 게르하르트 자우터(Gerhard Sauter)가 던지는 우스개 소리로 절망적인 현재를 잠시 잊어 보심이 어떨지.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신선한 우유 항아리에 두 마리의 개구리가 빠졌다. 한 개구리는 비관적, 다른 한 개구리는 낙관적이었다. 비관적인 개구리는 “이 항아리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 조만간 죽게 되겠지. 그렇다면 지금 바로 체념하고 모든 희망을 포기하자.” 그래서 곧 익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낙관적인 개구리는 희망을 결코 잃지 않았다.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몸부림을 칠뿐이었다. 밤이 새도록 발버둥 쳤다. 그러다 그 발버둥은 우유를 버터로 변형시켰고, 드디어 항아리 바깥세상으로 탈출했다. 정말 근사한 이야기다. 자 여러분은 어떤 개구리에 속하는가, 이렇게 질문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우터 교수는 비껴간다. 두 개구리가 어떤 기독교 교단에 속하는지 설명한다. 비관적 개구리는 개구리의 연약함을 걱정하며, 단지 하나님께 항아리 안으로 사다리를 넣어달라는 짧은 기도를 할 것이나 사다리는 보이지 않고 결국 불행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독일 루터교에 해당한다. 다른 개구리는 자신이 힘차게 투쟁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이는 미국 장로교 개구리였다고. 그러나 이 이야기는 너무 단순할 뿐이며, 교회에서 듣기에는 너무 경박한 일방적 성공담일 뿐이다. 어찌 낙관주의, 낙천주의, 심지어 긍정적 사고가 기독교가 말하는 “희망”과 혼동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밝은 생각, 적극적 사고가 우리 삶에 풍요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혹시 멋진 차, 근사한 집이 생길지도. 그러나 종말이라는 거대한 폭풍에 대처하려거든 단단히 준비하시라. 비닐우산 따위는 그만 접어두는 지혜가 필요할 터. 좀 더 진지하게 “희망”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희망의 이유, 희망의 뿌리를 찾아 나설 때가 되었단 말이다. 

       아이가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울지도 않고 엄마, 아빠가 있는 거실, 혹은 주방으로 걸어올 때가 간혹 있다. 다 컸구나! 그러나 내 경우는 달랐다. 심지어 십대 초반에도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 물론 울지는 않는다 – 부모님을 찾다가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방 저 방 두리번거리다가 집 안에 아무도 없을 때 그 놀람이란. 휴거라고 들어보셨는지. 어린 시절 “휴거”에 관련된 영화가 어찌 그리 각인이 되었던지 지금도 텅 빈 집 안을 보다가 놀랄 때가 있다. 멋쩍다.

       그러나 내가 믿던 기독교는 종말에 대해서 그렇게 가르쳐왔던 게 사실이다. 어느 날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 예수의 재림이 도래하고 그렇게 종말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종말의 끝은 온 우주의 끝과 “새 하늘 새 땅”의 도래가 될 것이다. 그 새 하늘 새 땅은 영원한 낙원이 된다. 어떤가. 그렇게 가르침을 받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종말론은 어디까지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 또한 우주의 역사는 6천년 내지 고작 1만 년이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다시 코페르니쿠스 이전으로 돌아가야 조화될 수 있는 종말론이다. 즉 온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어야 하고, 온갖 별들은 지구를 덮고 있는 저 천장에 촘촘히 매달려 있어야 한다. 또한 예수와 십자가 사건 또한 지구 중심적 구원의 관점에서만 이해되어 왔다. 허나 자연과학은 기독교 신앙인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혹은 그렇게 믿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오늘의 신학은 아니 “신학”은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학문의 활동과 대화를 통해 늘 새롭게 구성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게 상식이다. 즉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등 현대과학의 연구 결과에 대해 비판적으로, 신학적으로 수용하여 기존의 전통 교리를 새롭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종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가 현대 천문학의 견해에 따르면 몇 십억 년 후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에 의해 기존의 “종말론”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까마득한 미래보다 훨씬 빨리 예수의 재림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즉 지구의 시간에만 하나님의 심판이 묶여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 인류 구원의 최종적 사건으로 이해되던 기존의 종말 역시 우주적 관점에서 새롭게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은 글을 통해 종말론 전체를 기대하지는 마시라.)

       내 어머니에게서 들은 종말론은 그야말로 현실적이며 무시무시했다. “아마겟돈” 전쟁으로 인해 핵무기가 사용되고, 구원받지 못한 수많은 인류와 생명체들은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 받아야 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휴거를 받아 아마겟돈 전쟁으로부터 안전하게 구출되어야 한다. 물론 더 자세하게, 그리고 매끄럽게 기술되어야 하나 이를 우리는 “세대적 종말론”이라 부른다. 그들이 말하는 종말은 그러나 지구상의 생명체의 멸절로 끝나는 단순한 “종말”일 뿐. 더 이상 현대 신앙인들에게 호소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입지가 너무나 좁다.

       오히려, 현대 과학이 말하는 150억 년 더 생존할 우주적 차원에서, 혹은 50억 년 남은 지구의 생존 확률 속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편 현재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 – 생태계 파괴, 인구 증가, 자원의 고갈 등 – 을 볼 때 스스로 자멸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또한 성서가 말하는 경고 – 인간의 어리석음 – 에 대해 조금 더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초래하는 종말에 대해 더 고민할 때 “희망”이 싹트지 않을까. 희망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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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2]

푸코는 주체를 부정하는가?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미셀 푸코가 1984년에 사망하기 직전 남긴 가장 마지막 글은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단편 에세이였다. 이 에세이는 같은 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UC 버클리에서 개최된 ‘근대와 계몽’이라는 세미나에 보내졌는데, 이 세미나에는 하버마스, 찰스 테일러, 리차디 로티, 허버트 드레이푸스 그리고 폴 라비노우와 같은 세계적 석학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세미나는 푸코의 죽음으로 돌연 취소가 되었고 푸코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푸코의 이 마지막 에세이는 푸코가 계몽과 근대의 시대를 향해 남긴 일종의 유언장이 되고 말았다.[각주:1] 물론 이 에세이는 그가 죽음을 맞이한 병상에서 쓴 것이 아니라, 6년전에 발표한 강의의 글을 다시 구성한 것이기에 그의 최후의 유고작이라는 지나친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럼에도, 계몽에 대한 물음과 그의 답변은 푸코 자신의 철학의 근본적인 물음, 철학의 방법, 철학적 구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저작임에는 틀림없다.  

          1784년에 칸트가 받았던 질문을 스스로 자신에게 다시 던져놓고, 계몽과 근대를 향해 푸코가 하고 싶었던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는, 근대를 낳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로부터 2세기가 지난 즈음, 또한 포스트모던 혹은 탈근대라는 용어가 이미 시대를 풍미하는 시점에서 굳이 지난 유행어를 꺼내 든 것일까? 다소 의아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자문자답 안에는 어떤 의도가 배어 있는 것일까? 그는 칸트가 말한 계몽, 즉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 그러나 사적이지 않고 공적인 사용이라는 한계에서만 가능해지는 계몽의 의미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성의 비판적인 사용이라는 점에서만큼은 푸코가 의미부여하려 했던 계몽의 해석을 위한 출발점으로는 충분한 것으로 보았다. 푸코에게, 계몽은 시간의 차이로 구분되는 고전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사이의 단순한 시차적 경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오늘의 역사안에 서있는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서, ‘계몽이란 현재에 대한 비판적 태도 혹은 혹은 철학적 에토스(Philosophical ethos)’라는 것이다. 푸코는 이렇게 계몽이라는 개념을 역사적 시대의 특정한 구획점으로 사용하지 않고, 인간이 구체적인 역사적 실재와 관계하는 역사 존재론적 그리고 역사 실천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를 탈근대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면, 포스모더니즘은 계몽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계몽을 푸코식대로 시대의 변화 안에서 영속하는 에피스테메를 발견하는 비판적 태도라고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반계몽적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계몽의 시대의 또다른 패러다임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푸코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는 전통적 권위를 타파하고 이성의 주체를 세울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확신이 이성을 합리주의적 세계로 향하는 목적을 완성시키려는 전체주의적인 도구로 절대화시켜버린 오류로 좌절되었던 경험으로부터 경계를 긋고 이로부터 벗어나 또다른 새로운 가치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와는 거리가 멀다. 계몽의 시대 이후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 사고방식, 문화, 세계관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오늘의 실재의 체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또다시 등장하게 된다면 이것은 가장 위험한 전통의 회귀만을 낳았던 과거의 경험을 반복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푸코가 계몽주의에서 발견해 내려고 했던 것은, 전근대와 근대, 근대와 탈근대를 특정짓는 사실적인 기준 같은 것이 아니며, 또한 그러한 시도는 전혀 무의미한 노력이다. 다만, 구체적인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통해 주체를 구성하는 방식, 또는 우리가 역사적 실재와의 관계를 맺는 방식의 변화를 발견하고 이 변화안에 내재하는 철학적 에토스를 주체를 창조하는 원리로서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느냐가 철학이 관심가져야 할 물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몽에 대한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푸코는 결국 자신의 철학적 연구가 세가지 영역과 두개의 방법론을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려는 듯 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푸코는 세가지 영역으로서, 지식, 권력, 그리고 윤리를 구분하는데, 지식은 사물에 대한 지배관계들을 파악하기 위한 영역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지식의 주체들로서 구성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답하기 위한 범주이다. 권력은 우리가 어떻게 권력 관계들을 행사하고 또 그것에 복종하는 주체들로서 구성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서, 타인들에 대한 행위의 관계를 다루는 영역을 말한다. 끝으로 윤리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들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즉, 우리는 어떻게 우리 행위의 도덕적 주체로서 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답하기 위한 연구의 최종단계이다. 이들 세 영역의 철학적 연구의 범주들은 두가지의 방법론을 통해 검토된다. 하나는 고고학이며 다른 하나는 계보학이다. 모든 지식, 혹은 모든 가능한 도덕적 행동의 보편적 구조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행위를 설명해 주는 역사적 사건들이 드러내는 담론의 사례를 다룬다는 점에서 고고학적이어야 하며, 현재의 우리의 존재형식이 과거로부터 변형되어온 것 처럼, 앞으로의 변화를 현재로부터 구분해 내어야 한다는 점에서 계보학적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들 세 영역과 두 방법이 서로 완전히 독립되어 있거나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푸코의 구분에 따라 그의 철학적 방법론은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이라는 세 가지의 영역으로 최종 구분된다.

         이와 같은 푸코의 철학적 물음과 방법, 구조에 관한 포괄적인 진술은 그의 철학적 단절점들에 대한 그의 해명임과 동시에, 그의 철학적 노정을 일관된 틀안에 재정렬하려는 포괄적인 의도라고 보여진다. 다시 말해, 계몽 혹은 근대성이 이성을 통해 인간의 자유를 확장시켜온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주체성이 상실되어온 역사라는 그의 초기의 입장이 함축하는 인간의 자율성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태도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어떤 희망의 여지를 남겨보려는 변화된 의도가 감지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성의 역사 2권 ‘쾌락의 사용’과 , 3권 ‘자기의 배려’가 그의 마지막 해인 1984년에 출간되었을 때에, 그는 1권 ‘지식의 의지’에서 보여준 주체에 대한 회의적 태도로부터 물러나, 윤리적 주체로서의 삶의 가능한 방식을 개진하였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성의 역사 1권에서 성을 억압해온 역사라고 믿어왔던 억압적 권력의 실체가 허구임을 보여주며, 성에 관한 지식과 담론의 확대가 효과적으로 인간을 통제하는 권력의 방식이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던 푸코에게서 인간의 주체적 삶의 방식에 회의적인 태도는 역력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성의 역사 1권인 앎의 의지를 1976년에 출판한 후 8년 뒤 펴낸, 2, 3권 사이의 긴 공백은 푸코에게 전환의 시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푸코는 1권이 주체를 담론이나 권력의 효과로 간주함으로서 주체를 객체화 했다면, 2, 3권은 개인이 스스로를 성의 주체로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한마디로 말해 1권과 2,3권 사이에는 푸코 철학 내부의 일대 단절이라 일컬어지는 사색의 전환 즉, ‘앎, 권력, 담론’의 주제로부터 ‘자기와 윤리’의 주제로의 급전환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제 1권 ‘앎의 의지’와 2권 ‘쾌락의 활용’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1권에서 푸코는 성의 문제를 억압적인 패러다임으로 이해하는 ‘억압가설’에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 우선, 푸코는 성의 역사를 억압 증대의 역사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가설에 정면 도전한다. 대신, 성에 대한 담론은 권력 자체가 행사되는 장에서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17세기 부르주아 사회는 성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고 검열, 통제하였던 시대였음은 분명하지만, 담론과 담론의 질서라는 차원에서는 성에 관한 담론, 형식과 대상에 따라 서로 다른 특수한 담론들이 끊임없이 확산되었음을 밝혀낸다. 푸코는 이러한 성의 담론의 확산의 진원지를 기독교 정신 및 고백의 교리 안에서 찾으려 했다. 기독교의 고해성사는 육체적 성행위에 대해 절제된 언어로 숨김없이 말하도록 강제함으로서 성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성의 담론이 중세에는 육신과 고해성사의 실천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단일한 담론의 형식을 띠었다면, 최근의 여러 세기 동안에는 정신분석학을 비롯한 인구통계학, 생물학, 의학, 심리학, 윤리학, 교육학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성에 관한 담론이 생산되고, 담론의 형태가 다양화되며, 담론 연결망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의 역사 1권은 성생활에 관해 말함으로써 유발된 권력효과는 무엇이고, 이러한 담론, 권력효과들에 의해 둘러싸인 쾌락 사이의 관계, 거기로부터 발생된 지식이 무엇인지를 묻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푸코의 연구는 성에 관한 전반적 담론현상과 담론화를 고찰하는 것, 담론을 따라 발생하는 권력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의 다형적 기술, 그리고 담론의 생산에서 매체와 동시에 수단의 구실을 하는 지식의 의지를 도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 금세기까지 서구인의 섹슈얼리티는 개인의 쾌락이나 자기 발견과는 무관한 권력기제로 작용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연구에서 푸코가 전제한 것은 주체가 자기에 관한 진실을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권력-지식의 치밀한 관계망을 통해 구축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근대의 주체는 개인의 신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통치체제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푸코의 관점은 인간의 주체는 지식과 담론, 권력에 의해 예속된 무기력한 존재라는 비관적인 결론으로 이끌고 가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푸코의 이러한 관점은 2권으로 이어지는 그의 책에서 윤리적 주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인간 주체에 대한 회의로부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성의 역사 2권에서 푸코는 1권과는 다른 논조로 성에 관해 접근한다. 그는 2권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변화된 관점을 진술한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서구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스스로를 ‘성’의 주체로 인식하게 되는 이러한 경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관점은 연구의 과제를 설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1권에서 권력-지식-쾌락체제의 작동과 존재이유를 결정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라면, 2권은 성과 관계된 지식의 형성, 그것의 실천을 규제하는 권력체계, 그리고 개인이 그 안에서 스스로를 이 성의 주체로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해야만 하는 형태들 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변화된 것이다. 처음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이미 1권과 동일한 연장선에 있지만, ‘개인이 성의 주체로 인식’하게 된 방식을 계보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새롭게 추가된 것은 푸코의 변화된 관점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는 욕망과 욕망하는 주체에 관한 역사적, 비평적 작업을 통해 개인들이 욕망의 주체로 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해왔는지를 분석하려 했고, 이 같은 실천을 통해 개인들은 자신들 사이에 어떤 관계를 작동시킴으로써 그들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을 해독하고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욕망의 주체라 고백하게 되었음을 밝히려 했다. 즉, 개인은 자기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주체로 세우고 주체로 인식하게 되는데, 이같은 자기와의 관계가 어떤 형태와 양태들을 취하는지 탐구해야 했던 것이다.

         푸코는 이 같은 그의 문제설정이 우리 사회에서 분명 대단한 중요성을 지녔던 실천들의 총체, 존재의 기술이라 불릴 수 있을 그런 실천들의 총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 존재의 기술, 자아의 기법이 기독교의 사목적 권력행사에 통합되면서, 그리고 나중에는 교육적, 의학적, 혹은 심리학적 유형의 실천들에 통합되면서 그 중요성과 자율성을 어느 정도 상실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의 사목권력을 성에대한 담론의 확산 주체로 보았던 1권과는 다른 입장이다. 1권의 입장에서 개인은 기독교, 정신분석학, 의학, 교육학 과 같은 많은 담론형성의 주체에 의해 예속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았던 반면, 2권은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온 개인의 존재의 미학과 자아의 기법의 자율성과 중요성이 역사 속에서 어떤 변화를 거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둠으로써 개인이 ‘존재의 미학’의 기준을 작동시키면서, 자기의 실천을 통해 어떻게 주체화되어 왔는지에 역점을 두고 있다.이제 푸코에게 성은 담론. 권력의 통제를 받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개인이 쾌락을 도덕적으로 활용하는 매개체이자, 스스로의 도덕규범을 만들고 지키는 능동적 주체라고 그의 입장을 전환한다. 푸코에 따르면, 주체의 형성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푸코는 그것을 '자기의 테크놀로지' 혹은'자기의 배려'라고 부른다.

         이렇게 푸코가 제 1권과 제 2.3권 사이에 전개시킨 논리의 변화를 모순 혹은 단절로 보아야 할것인가? 푸코 그 자신이 자본주의적인 억압적 질서안에서 무저항적 태도를 부추기는 투항주의라는 비난을 의식했던 하지 않았던 간에, 그 안에서 벌어진 틈새를 메워야 할 필요가 있었음은 추측 가능하다. 결국, 계몽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합리주의적 전통에 남아있거나, 계몽을 비판하고 합리성의 원리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양자택일적인 부정적 입장을 모두 배격하고 실천적인 비판으로 돌아서려는 긍정적인 이해를 통해 ‘자기의 배려’라는 인간의 자율적인 주체의 가능성으로 그의 결론은 다다르게 된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그를 향한 의심어린 시선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푸코의 윤리적 주체란 자기에로의 테크놀로지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만큼 사회적 권력과 담론으로부터 서있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개인의 높은 수준의 능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언론과 정치적 눈속임에 쉽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다수에게 푸코의 주장은 엘리트주의적인 것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자기의 배려, 자기의 테크놀로지는 주체의 가능성을 결국 개인의 내부적 문제로 축소환원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그가 받아야할 비판중 하나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비판은 전통적인 저항의 형태를 전제할 때만 타당하다. 푸코는 전통적인 주체로서의 고정적인 실체를 거부하고 새로운 형태의 저항의 주체를 생산해야 할 시점이라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와 권력’에서 다음과 같은 푸코의 진술은 이러한 그의 입장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 “오늘날 아마도 주요한 목표는 우리들이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현재의 존재방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개별화함과 동시에 전체화하는 근대적 권력구조의 이런 종류의 ‘이중적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우리들이 누구일 수 있을까를 상상하고 구축할 필요가 있다. 결론으로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정치적, 윤리적, 사회적, 철학적 과제는 국가나 제도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에 결부되어 있는 개별화 방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푸코에게, 저항의 대상은 억압적인 시스템을 콘트롤하는 외부적 실체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저항의 대상은 부재하며, 설령 존재하는 저항의 대상이 제거되는 것으로 인간의 억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저항의 거점이다. 저항의 거점으로서 자아는 자신에게 관련된 권력관계를 능동적으로 맺어나가 는 주체의 존재 방식 혹은 자아의 형성기술을 통해 마침내 윤리적 주체로서 저항의 실천적 삶으로 진입하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에 대한 타인의 지배 테크놀로지에서 자신이 자신 스스로에게 행사하는 지배 테크놀로지로 우리의 시선이 옮겨질 때에,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목표에 다가설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주체에 대한 푸코의 진술이 여전히 자율적인 주체가 실재와 관계하는 방식의 변화를 선언적으로 요구하는데서 멈춰버린 듯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 웹진 <제3시대>

  1. 이 에세이는 1978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한 강연회에서 있었던 푸코의 ‘비판이란 무엇인가? :비판과 계몽”이라는 강연에서 먼저 발표된 것이었고, 그 후 1983년에 ‘계몽에 관한 칸트의 에세이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칸트의 태도에 관한 비평’이라는프랑스 칼리지에서의 오프닝 강의로 다시 발표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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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모두 끌려갈 것이다.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부채사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게으름’의 표식인마냥 부끄러운 일이었던 것이 불과 수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얼마의 빚이 없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결혼을 하기 위해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다들 빚을 진다. 필자 주변의 10~20년 차이가 나는 어른들 또한 특출난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심심치 않게 빚을 지고 있다. 처음에는 대단히 어색하게 느껴졌던 대출 회사 광고도 이제는 너무나 범람하다보니 어색한 느낌도 없이 무감각해져버렸다. 길거리에는 대출과 관련된 명함들이 가을철 낙엽처럼 온통 거리를 뒤덮고 있고 TV와 미디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빚을 진다는 일이 삶에 ‘큰 일’이 되지 않는 세상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거대한 채무관계의 거미줄에 촘촘하게 얽히고 설켜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 사회에 대해 어떤 수식어를 붙이는 게 유행이라 한다면, 지금 사회는 ‘부채사회’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지 않을까? 이 정도면 과거 전통적으로 인간을 연결시켰던 혈통, 우정, 사랑 등은 사치스럽거나 거추장스러운 관계이고, 오로지 채무 관계가 가장 우선적인 인간 관계라고까지 말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이런 진술들은 단순히 필자의 직관이나 느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몇 가지 경제 관련 데이터들은 채무 관계가 곧 우리 삶의 최우선적인 과제이며, 우리 사회의 얼마나 절대적인 지배구조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숫자로 나타난 지표들은 이러한 진단들이 결코 추측이 아님을 이야기 해준다. 한국 사회가 점점 1% 소수 부자들만의 세상으로 구축되어 가고 있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자’라 불리는 금융자산 10억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0.33%인데, 이들의 월 가계수지(2379만원)는 일반가구(158만원)에 비해 15배나 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각주:1] 그럼에도 돈은 돌지 않고, 점점 서민들의 삶은 대출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4.13 총선거를 통해 노동당 구교현 비례대표 후보가 밝혔던 말을 빌린다면,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166조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워낙 큰 단위의 돈이다보니 이 금액이 얼마나 큰 돈인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이를 한 사람당 빚으로 환산하면 6200만원이라는 수치가 산출된다고 한다. 지금도 세상의 빛을 처음 보고 울음을 터뜨리며 태어나는 바로 그 아기의 인생 또한 ‘마이너스(-)’ 6200만원이라는 통장 잔고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언제 갚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현 정권 들어 매일 2천억원의 빚이 늘었고 작년 한 해만 따지면 하루에 3천억원씩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이다.  



       부채가 왜 심각한 문제인가? 사실 부채라는 것은 본래 그 개념상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채란 미래의 소득을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당겨 쓰는 것이기에 그렇다. 사실 부채가 증가하는 만큼 소득이 따라잡을 수만 있다면, 빚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전제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부채를 소득이 따라잡지 못한다. 부채는 갚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부채는 또다른 부채를 부추겨 그 고통을 눈덩이 굴리듯 불어나게 하고, 그 빠르기 또한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돈’만이 곧 권력이고, 이름이고, ‘존재’라는 명제는 우리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뿌리깊은 사고의 ‘틀거리’로 똬리 틀고 있다.

       이런 재앙은 거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는 탈출구 없는 링 위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게임(Death Match) 때문이지만, 특히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발 경제 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지금의 대출 ‘헬게이트’를 연 하나의 특이점이었다. 2008년 이래 미국과 세계경제의 불황은 백약이 무효하여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미국 대선이라는 정치적 빅 이벤트와 맞물려 최저금리 기조는 좀처럼 올라갈 것 같지 않다. 하여 한국의 경제정책 또한 미국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 또한 최저금리를 기조로 한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빚의 제국으로 진입하는 행렬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각주:2] 물론, 이 제국은 들어올 때는 쉬웠지만, 나갈 문은 찾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성채와 같이 우리 앞에 서 있다. 



       이렇게 서민들이 대출의 악순환고리에 얽혀 삶의 낭떠러지로 내몰릴 때, 미디어는 돈 빌리기를 더욱 부추기는 악마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케이블 TV에서는 고금리 대부업체 광고가 하루에 1364건이 방영된다고 한다.[각주:3] 하루가 1440분이니 거의 1분에 한 번 꼴로 ‘대출하라’는 말을 우리는 듣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본 방송 프로그램들의 상영시간을 제외하고 사이 시간을 이용해 광고가 나가는 걸 생각하면, 실제로 대단한 양이다. 이 글을 위해 필자가 TV속 대부 광고를 본 결과 과거에 비해 광고의 양도 현격하게 늘어났을 뿐 아니라, 광고의 형태 또한 매우 다양해지고, 광고의 질도 세련되고 더욱 부드러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즉, 과거에 공격적이고 노골적으로 ‘돈을 빌리라’는 말을 했다면, 지금은 대출과 관련된 ‘스토리’를 만들어 ‘대출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는 감성전략을 사용한다거나, 고정 수입이 없어 1금융권에서 대출이 어려운 전업주부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 전용 대출 등 특정계층을 공략하는 전략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서슴치 않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끝없이 빚을 권하는 사회는 흉측한 괴물이 되었지만, 그 괴물은 우리 앞에 선량한 가면을 쓰고 나타나 달콤한 말들로 사람들은 대출의 늪으로 계속해서 이끌어가고 있다. 누구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새로운 바빌론의 등장


       그러던 요즘, 며칠 전 운전을 하고 가다가 필자의 눈에 대형 건물 광고 간판이 들어왔다. ‘000저축은행 바빌론, 바로 빌려주는 론(Loan, 대출)!’이라는 문구였다. 이 저축은행은 대출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조건인 ‘신속성’ 즉, 금융 관련 이력과 조건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체 없이 바로 빌려주는 론! 임을 자처하고 그 앞 글자를 따 자신들을 ‘바빌론’이라 칭한 것이다.


  

       이제는 너무 많아서 무뎌질대로 무뎌진 대부업체 광고 중 하나이긴 했지만, 필자는 신호에 걸린 채로 무언가에 홀린 듯 이 간판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바라보았다. 바빌론이라는 글자는 기독교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이스라엘 주변에 자리하여 이스라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바로 고대 근동 지방의 대제국 바빌로니아(또는 성경 번역에 따라 바벨론이라고도 불린다.) 말이다. 성서의 관점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끝없이 침략하고 결국에는 예루살렘을 겁탈한 ‘제국’이며, 타락한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망치’(예레미야서 50:23)이기도 하다.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은 약소한 예루살렘과 그 거주민들을 사정 없이 침략, 강탈하였고, 예루살렘의 심장이자 야훼와의 언약을 상징하는 성전을 무참히 짓밟았다. 제 1성서(구약)의 수많은 야훼의 예언자들은 예루살렘을 침략하는 소위 갈대아인, 바빌로니아인들은 유다국의 왕을 능멸했다. 왕을 심문하고, 그 자식들을 처형하고, 눈을 빼어 쇠사슬로 묶어 그들의 땅으로 끌고 갔다. (열왕기하 25:6~7)  

       또한 성전, 왕궁, 성벽 등 건물이라는 건물은 다 부숴버리고 거주민들을 모두 포로로 잡아가 버렸다. 무엇보다 예루살렘에서 절대 보호받을 것만 같던 야훼 신앙의 상징인 성전 내에 있는 집기류들과 거룩한 물품들이 모두 갈대아인의 손에 빼앗겼다. 성서 내에서는 열왕기하 25장에서 일련의 사태를 기록해 놓고 있고, 당시 유다국 전반적인 상황을 김진호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바빌로니아에 의해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된 것이다. 두 번의 침공(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 때; 주전 586년 시드기야 왕 때)으로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이 불타 사라졌고, 수많은 농촌마을 또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에 무려 85%의 거주지가 역사에서 사라졌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급부상한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은 한때 인구가 일만오천 명에 이르는, 요시아 왕 당시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커다란 도시가 되었으나, 전란 후 오랫동안 그 십분의 일인 일천오백 명을 넘지 않는 소읍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농촌의 경작지들은 거의 쑥대밭이 되었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유민이 되어 타지역으로 이주하여 마을은 거의 비어버렸다. 유대 지역은 이후 오랫동안 회복되지 못한 채 버려진 땅이 된 것이다. [각주:4] 


       모든 것이 끝났다. 바빌로니아는 이방 세력의 침략과 위협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예루살렘의 성전, 궁전 등을 모조리 박살 내었다. 과거 히스기야왕 당시 이방인들의 침략에도 야훼에 대한 신앙을 굳건히 하여 위기를 넘겼던 나라였다. 훨씬 부강했던 북쪽의 이스라엘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훨씬 약소국이었던 유다가 100여년 가까이 무너지지 않고 연명하는 걸 보고 ‘과연 하나님이시로구나!’를 연신 내뱉았겠지만, 바빌로니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유다는 패닉에 빠졌다. 

       그런데, 바빌로니아가 이렇게 유다를 처참하게 짓밟기 전, 바빌로니아에 의한 유다의 멸망을 선포하다가 맞고 구금되고 모진 고문을 겪은 한 무리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예레미야와 그 일단의 무리들이다. 예레미야가 예언을 시작한 것은 요시야왕 즉위 후 13년이었다. 요시야 왕에 의해 야훼 신앙의 회복과 이스라엘의 중흥을 위한 시도가 재차 모색되었지만, 강대국의 침략으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이 상황에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다. 분명 그는 자신의 예언으로 자기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이’(렘 20:7, 9) 예언을 해갔다. 왕실과 기존 권력의 입장에서는 숨기고 싶은 사실을 떠벌리는 예레미야가 눈엣가시일 뿐이었다. 안 그래도 상황이 좋지 않은데, 핍절한 민중의 삶을 ‘힐링’ 해 줘야 할 예언자가 꼭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듯 쉬지 않고 파멸을 외치니 미움을 살 수밖에. 불온한 예레미야에게 파멸을 선언한 댓가로 모진 형벌이 내려졌지만, 그 고문이 끝나고 나서도 그는 입을 쉬지 않은 모양이다.(렘 20:3~6) 예레미야 입장에서도 피로감이 몰려왔다. 파멸을 선언할수록 유다국이 파멸하기는커녕 자신의 삶만 고달파졌다. 천천히 말려 죽인다고나할까, 도래하지 않는 파국에 대한 허탈함이 커져 갔다. 그치만, 그 신탁의 운명을 한편으로는 체념하고, 또다른 편으로는 뜨거운 불에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뛰어들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런 ‘모두’가 고통받는 상황을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 수많은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겁에 질려 있다. 너희는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합니다. 나와 친하던 사람들도 모두 내가 넘어지기만을 기다립니다. '혹시 그가 실수를 하기라도 하면, 우리가 그를 덮치고 그에게 보복을 하자' 합니다.(예레미야 20장)


       예레미야가 겪는 이 참담함은 우리에게 놓여진 현실과도 많이 닮아 있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바빌로니아에 의해 파멸당할 것이라 외치는 예레미야나 단박에 빌려준다는 ‘바빌론(바빌Loan)’, 즉 금융자본제국에 의해 우리가 곧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고발하는 지금의 예언적 무리나 수치를 당하기는 매한가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는 이들이 받는 대접은 예레미야가 당하는 것만큼 수치스럽다. 금융자본의 제국이 멸망할 것이라는 선언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기 십상이다.

       단지, 그 수치의 모양새가 권력에 의한 폭력이 아닌 일반 서민들에 의해 ‘냉소’되는 것으로 수치를 당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차피 파국을 선언해봤자 달라질 게 무엔가’라는 메시지는 주류 언론에서 ‘달관 세대’라는 이름으로까지 불리기도 한다.[각주:5] 파국에 대한 선언이 이토록 조롱을 당하는 이유는 그만큼 제국이 안겨줄 비참함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걸 모르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지연된 고통을 ‘지금 당장은’, ‘지금만이라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일 게다. 조금이라도 더 미루고 싶은 심정이야말로 매우 힘겨운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태어남 자체를 저주했던 예레미야의 말(렘 20:14)처럼 우리는 창자를 부여잡고 대출과 금융자본제국의 파국에 대해 더욱 선언하고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달콤하고 짜릿하게 한 방에 이 고통을 끝내줄 것처럼 말하는 ‘바빌론’에 대해 진지하게 파산을 선언해야 한다. 적어도 법 규제를 통해 미디어를 통한 빚을 권하는 재생산이 줄어들어야 하고, 현재 일부 지자체나 시민단체를 통해 벌어지고 있는 악성 부채 등 빚 탕감에 관한 사회적, 국가적인 논의가 더욱 많아져야 하겠다. 논의를 넓혀 조세도피처와도 같은 상류층에 의해 저질러지는 악질 경제범죄에 대해 시민들 스스로 감시와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각주:6] 특히, 이러한 거대한 자본의 횡포와 맞서 ‘난장이들이 쏘아 올리는 공’에 대한 냉소 또한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달관’ 같은 냉소의 말이야말로 사회의 병폐를 고착시키고 이 체제를 우리 속으로 더욱 내면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바(로) 빌(려주는) 론(Loan, 대출)’의 포로가 되어 모두 끌려가게 될 것이다. 아니, 지금도 이미 그 포로의 행렬은 시작되었고, 계속되고 있다. 단지 내가 지금 빚지지 않고 있다 하여, 포로의 상태가 아닌 게 아니다. 붕괴가 진행중인 금융 자본주의 제국에 우리는 ‘이미’ 살고 있다. 그 파국을 인정하고 선언하는 것이 빠를수록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 그릴 수 있는 시간이 그나마 확보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수치는 2012년의 수치이며, 지금은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김철호, 임태영, 김옥연, 「10등급 국민」 (대장간, 2015), 184쪽. [본문으로]
  2. 경제학자 장하준은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세계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 일부에서 불황이 끝났다고 성급히 선언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지만 지속적으로 경기가 회복될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태이다. (…) 설사 경기가 지속적으로 회복된다 하더라도 이번 금융 위기의 여파는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기업과 가계 부문은 원상 복구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릴 것이고, 이번 위기로 말미암아 생긴 엄청난 재정 적자를 만회하느라 정부는 공공 투자와 복지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어서 길게는 몇 십 년 동안 경제 성장, 빈곤 문제, 사회 안정성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11~12쪽. [본문으로]
  3. MBC PD수첩 1041회, 「가계빚 1100조,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15. 6. 9 방영) [본문으로]
  4.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3, 웹진 제3시대 제 1호, ‘[시평] 그달리야의 꿈에서 위기를 보다(김진호)’ [본문으로]
  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24/2015022400161.html 조선일보는 ‘달관세대가 사는 법’ 이라는 시리즈물을 연재한 바 있다. [본문으로]
  6. http://newstapa.org/tax-haven-2016 , 인터넷 언론인 뉴스타파는 정치인, 경제인들의 조세도피 문제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도한 바 있고, 세계적으로도 이 문제는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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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반복하는 삶 속에서 길찾기, 

홍상수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이희승*



  온 나라가 예상치 못했던 총선 결과로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들썩이고 사람들의 목소리와 얼굴에 전에 없던 총기가 반짝이는 지금 이 순간이 맞다라고 외치고픈 마음으로 홍상수 감독의 열일곱번째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2015)를 되돌려 보았습니다. 저처럼 대략 ‘중년’이라는 타이틀이 울컥 억울하지만 그래도 부정하기 어려운 독자분들이라면, 폭염에 숨이 막히던 여름날 종로 어딘가에 있는 텅빈 예술영화관 구석에 앉아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함께 어리둥절한 오후를 보낸 경험이 한번씩은 있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저 또한, 엉뚱한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로 시작해서, 절대로 소개팅한 그와 함께 보지 말았어야 했던 <강원도의 힘> (1998), <오! 수정> (2000) 그리고 <생활의 발견> (2002)을 지나 연애의 발견, 결혼의 발견, 육아의 발견 등등을 거치면서 어느새 홍감독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혼자 보나 여럿이 함께 보나 매한가지로 손발이 오글거리는 취중진담에 중독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홍상수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 전무후무한, 참으로 독특한 존재입니다. 문민 정부 시절, 컨텐츠 산업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았던 김영삼 대통령의 소나기 투자로 영화산업이 몸집 불리기에 정신줄을 놓고 있던 그 때에 혜성처럼 나타난 홍상수 감독은, 영화만들기에 있어서 자본이 반드시 필요충분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며 배신, 타협, 투항, 혹은 변절없이 이십년을 한결같이 외부 투자에 큰 의존없이 영화 제작과 배급의 길을 가고 있는 흔치 않은 영화작가입니다. 물론 홍상수의 영화는 반자본주의적 제작구조 말고도 영화의 형식과 주제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를 배반하는 듯하나 결국에는 보완하고 완성짓는 영화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귀한 텍스트이지요. <투캅스>와 <결혼이야기>로는 성에 차지 않고 <라이언 킹>이나 <보디가드>는 어쩐지 인공감미료 향이 강하다고 느끼지만 아직 <원초적 본능>에 충실하기에는 조금 어렸던 90년대부터 홍상수 감독의 ‘기름기 쪽 빠진’ 영화들을 보면서, 정치적 안정과 경제 성장이라는 술에 취해 체면을 잊고 화장기를 벗어 던진 동시대의 자화상이 커다란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그 민망한 ‘지금’을 견뎌야만, 관습적인 거짓과 모순에서 아주 조금 더 자유로운 내일이 올 수 있다는 진리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 저만의 경험은 아닐 듯 하네요. 숙취로 무거워진 머리를 들어 이미 중천에 떠있는 해를 원망스레 올려다 보고는 주섬주섬 낯선 여관방을 나서는 그 한심한 순간에도, 인생은 바로 지금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진실을 받아 들이려고 애쓰는 홍상수의 인물들이 낯설지 않은 그 데자뷰의 경험 말입니다.  



  영화는 정확히 두 개의 이야기로 나누어 집니다. 하지만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이 두 개의 이야기는 둘 사이의 닮음과 반복을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헐렁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기승전결의 구조로는 도무지 연결할 수 없는 두 개의 이야기는 영화의 제목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댓구 – 즉, 지금과 그때, 그리고 맞다와 틀리다 – 를 살짝 헝클어서 늘어 놓은 듯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화 감독인 주인공이 특강 날짜를 착각하고 수원에 하루 일찍 내려와서는 낯선 도시에서 목적없이 하루를 메꿔 가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수원 여기저기를 돌던 함춘수는 화가 윤희정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살짝 허세가 있는 듯도 하고, 그 허세가 외로움 때문인 것도 같은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름이 알려진 영화감독이 보이는 관심이 싫지 않은 윤희정은 다소 앙큼하게 속내를 숨기며 함춘수의 할 일 없는 하루 보내기에 동참 하기로 합니다. 윤희정의 작업실 방문, 그리고 이어진 둘만의 술자리, 마지막으로 윤희정의 지인들과의 파티로 자리를 바꿔 가며 희정을 쫓던 함춘수는 끝내 순진하지만 또 응큼하기도 한 연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희정과 헤어지죠. 실망과 불만족으로 마음이 답답해진 함춘수는 다음날 특강에서도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서울로 돌아 가게 됩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뒷맛이 개운치 못한 마무리로 끝을 맺고, 영화는 곧장 두번째 이야기로 향합니다. 같은 인물과 설정으로 시작한 두번째 이야기는 ‘어, 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라며 의아해 하는 관객들에게 시치미를 뚝 떼고 같은 장면들을 꼼꼼히 복기해 나갑니다. 겨울 햇살이 와닿는 복내당 툇마루에서 살포시 잠을 청하던 함춘수는 1부와 똑같이 비닐 봉지에서 부스럭거리며 바나나 우유를 꺼내 마시는 윤희정을 발견하고 호감을 느낍니다. 함께 커피 한잔 하자며 예민해서 커피를 못 마시는 윤희정을 데리고 카페로 들어온 함춘수는 어쩐지 첫번째 이야기의 함춘수보다는 살짝 더 편안해지고 솔직한 태도로 윤희정에 대한 호감과 궁금증을 표현합니다. 결코 1부에서 겪은 함춘수의 실패가 이야기의 틀 밖으로 튀어나와 2부의 주인공인 그에게 교훈이 되지 못하는 단절된 반복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관객은 왠지 모를 이 바람직한 변화에 마음이 흡족해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2부의 윤희정 또한, 1부에서는 허세로 무장했던 외로움과 혼란을 솔직히 털어 놓습니다. 1부에서는 몹시 수동적이고 관습적이던 윤희정의 태도는 변하고, 두번째 이야기에서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더 사랑스러워진 듯합니다. 윤희정이 입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과 함춘수에 대한 관심에 충실하면서, 영화는 둘의 관계가 1부의 함춘수가 그토록 소망하던 결실을 맺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기대를 감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조금 더 성숙해진 듯한 두 주인공들은 순간의 감정에 솔직함으로 현실의 벽을 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유부남인 함춘수는 자신을 향해 흔쾌히 무장해제한 윤희정을 지금 이순간 열렬히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그녀를 향한 애정을 환각제 삼아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것에 더이상 연연하지도 않습니다. 애틋한 밤을 아쉬움으로 넘기고, 둘은 다음날 함춘수의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에서 다시 마주합니다. 예측하지 못한 작은 변화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함춘수와 윤희정은 마치 오랜 친구 혹은 오랜 연인처럼 각자의 공허함, 외로움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향한 흥분을 이해하고 보듬어 줍니다. 이렇게 두번째 이야기는 홍상수 감독이 시나리오에 써 넣지도 않았던 흰 눈을 소복하게 맞으며 흐뭇한 결말을 맺습니다.  


  하루를 살고 보면 그 하루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에 허탈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런 순간에는 내일이 그렇게 반갑게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지리멸렬한 어제를 안타깝게 돌아보며 반드시, 그리고 완벽하게 달라져 있어야 할 내일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우리는 지지부진한 ‘지금’을 긍정하기 어렵습니다. 현재를 살지 못하는 우리의 갈급함을 채우려는 듯, 수많은 영화들이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고 미래를 화사하게 색칠하며 ‘앞으로, 앞으로!’를 외칩니다. 그러던 어느날, 당혹함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민망한 ‘지금’을 견뎌낸 이십년 전의 ‘나’와는 좀 달라져 버린 듯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눈빛이 형형한 젊은 유학파 감독 홍상수가 잘못 흘러가는 영화판을 향해 호통을 치고 세상을 다 바꿀 듯한 기세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세상에 내놓았던 ‘그때’를 거쳐, 시네마 파라디조를 홀로 지키는 고독한 장수같던 ‘한때’를 지나고, 이제는 백발이 성성하고 목소리도 한결 나긋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희망, 혼란, 실망 그리고 체념이 뒤섞인 스무해를 보낸 탓인가 봅니다. 쨍쨍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컷’을 외치던 그때나, 자신의 이름 앞에 열일곱개의 영화 타이틀을 무심히 쌓아 놓은 지금이나, 또 앞으로 올 그 어느때나, 한결같이 안경을 앞이마에 척 걸쳐 놓고 뚫어져라 보는 모니터와 듬성듬성 자리가 찬 영화관에서, 자신과 관객이 마음을 다해 ‘지금’을 살기 원하는 홍상수 감독이 넌지시 읊조리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엉성하지만 기품이 있고 다소곳하지만 힘이 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세상이 바뀐다면, 그리고 그 바뀐 세상이 이전의 세상보다 극적으로 나아진 세상일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이런 영화가 무슨 소용일까요? 분명히 달라질 줄 알았지만 똑같고, 혹시 나아지나 싶었지만 역시 그대로인 ‘그때’를 만날지라도 당장의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아 낸다면, 이 영화가 두 개의 반복적인 이야기 사이로 내비치는 은근한 변화들로 인해 우리는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 필자소개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강사 및 정신분석가. 동 대학의 미디어 영화학과에서 각색영화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고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 아시안학과에서 한국 영화와 텔레비젼 드라마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호주 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 라캉 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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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Box


• 제작년도: 2014 

• 재 료: OSB 박스, 작업실에서 사용중이던 생활도구들, 애완닭과 애완물고기, 모니터 2개 

• 사이즈: 252x244x244cm 박스안에 가변설치 


 2014 경기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에서 전시했던(‘Air Box’전) 프로젝트 성격의 작업이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에 입주하면 스튜디오를 공개적으로 개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마다 작가들은 작업들을 옮기고 작업실 공간을 치우고 정리하게 된다. 나에게는 이런 연례행사같은 행위들이 마치 예전 유학시기의 잦은 거주지 이동과 관련한 정체성의 문제를 연상시킨다. 


이전 작업에서 실제 공간을 종이박스처럼 보여지도록 하거나 혹은 박스를 연상시키는 작업들을 많이 해왔다. 종이박스는 이동과 관련해서 우리의 생활속에서 항상 등장한다. 이 종이박스에서 내가 흥미를 가지며 주목하는 부분은 안과 밖이 존재하고, ‘접었다 펼쳤다’가 가능하여 부피를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으며 한번 사용하면 버려지는 일회성의 성격이 있지만 다시 재활용 가능한 가볍고 실용적인 이동의 도구란 점이다. 


Life Box(2014)는 종이박스와 정체성에 관련한 이전 작업들의 연장선상에서 제작하게 되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1~2년 정도 거주하고 또 다시 새로운 작업실을 찾아 떠나는 나같은 작가에게 작업실내 모든 물건들은 이삿짐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이다. 일년정도 동안 생활했던 경기창작센터의 작업실 안에서 사용하던 모든 가구와 생활도구들, 작업들, 애완동물을 커다란 *OSB박스안에 마치 이사할 때의 종이박스안에 물건들을 집어넣듯이 차곡차곡 정리하여 넣고, 이동에 관련한 영상 모니터 2대를 (자화상2010_1채널,루핑/ 자화상2014_1채널, 루핑) 함께 설치했다. 


 *OSB(Oriented Strand Board)는 건축 재료이며 캔버스나 미술작품을 이동, 보관하는 박스 제작에서도 자주 쓰여진다.














 


 

  

정승원 作 (설치작가)


- 작가소개

프랑스 부르주 국립 고등 미술학교 졸업, 경기창작센타 입주작가 

개인전 | 2014 해석의 재해석, 경기창작센터 

           2011 PLI, Eapace PRIVAT, 디종, 프랑스 

그룹전 | 2015 알 수 없는 그 무엇? 하하하, 전라남도 도립 옥과미술관 

           2014 루와얄 섬 레지던시 보고전2 금천예술공장 

프로젝트 | 2015 프롬나드(황금산프로젝트), 아르코,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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