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교회 탐방기[각주:1]



박제우*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이신 박성준 교수(성공회대)와 고 박영숙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남편이신 고 안병무 교수(한신대) 등이 주축이 되어 민중신학을 목회철학의 기초로 삼고 1987년 10월에 설립한 나눔과 섬김의 예배공동체 한백교회(한라산의 한과 백두산의 백)에서 예배를 드렸다.


   지난 5월 오늘교회에 탐방을 갔을 때 멤버 중의 한 분인 최규창 대표가 강력하게 추천했던 교회인데, 마침 지난 주일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이신 김진호 목사님께서 새길교회에서 설교하신 덕에 미리 탐방하고 싶다고 말씀 드릴 수 있었고, 오늘 11시에 시작하는 주일예배를 함께 하게 되었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1,2번 출구 사이에 있는 골목길로 한 50 m정도 올라가면 오른쪽엔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실이 있는 빌딩이 있고, 길 왼쪽 편엔 1층에 안병무홀이라고 쓰여 있는 건물이 마주보고 있다는 걸 지난 8월 교회개혁실천운동 회원과의 티타임 때 알았는데, 아무래도 주차가 용이하진 않을 것 같아서 경의선 전철로 공덕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왔다.


   전철 시간 계산을 잘 못해서 일찍 도착하질 못하고 정확히 11시에 예배처소인 안병무홀에 도착하니 예배 때 함께 부를 노래를 미리 불러 보고 있는 중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친절하게도 남자 성도 한 분이 바로 옆 자리로 오셔서 예배 순서 중에 어떻게 노래집과 주보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지 간단하고 빠르게 안내해 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상철 목사님이셨다는...)


    한백교회의 trade mark에 해당하는 한라산의 검은 돌(좌측)과 백두산의 검은돌(오른쪽) 그리고 한반도 어느 지점에서 주워 온 아주 흔한 흰색 조약돌 두개가 그 사이에 담겨 있는 접시가 예배 인도자 뒷쪽 벽에 놓은 탁자에 올려져 있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언젠가 부터는 노란 리본도 얹혀져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예배 인도를 맡은 자매님과 하늘뜻나누기(설교)를 해 주실 정나진 목사님, 그리고, 한백교회의 담임을 맡고 계신 이상철 목사님께서 자리 배치의 앞부분에 앉으셨다. 찬양인도를 해 주신 장로님과, 삶의 고백을 해 주신 분들은 목사님 맞은 편에 앉으셨다. 한백교회의 예배는 주보의 순서대로 진행이 되었는데, 평균 출석 예배자가 50명 안팎인 정도의 규모이다 보니 새길교회 처럼 매주 주보, 광고 사항, 예배 실황 등이 정기적으로 잘 update되지는 않았다. 특히 요즈음엔 창립 30주년 기념 활동들을 준비하느라 많이 분주한 것 같다. 오늘의 주보는 아래의 사진과 같고, 홈페이지에 올려진 가장 최근 주보는 9월3일자 주보였다.




    예배 중의 노래는 대부분 "한백의 노래"라는 자체 제작한 노래집에 있는 것을 불렀는데, 한백의 노래는 그동안 7차례 개정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력은 교회 홈페이지 한백과 찬송에 게재되어 있다. 이제 청년들이 많아지고, 새롭게 증보하고 싶은 노래도 많이 있어서 조만간 몇 곡을 추가하는 증보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예배는 일전에 섬돌향린교회 예배 시에 보았던 울림주발(Singing Bowl)이 맑은 울림 소리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첫 순서인 묵상 후에 기도라는 노래를 기리는 노래로 함께 불렀다. 나는 (부끄럽지만) 처음 접한 노래라 함께 부르질 못하고 멜로디를 들어가며 가사를 읽었는데,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사랑과 신에게 간구함과 이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노래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검색을 해 보니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1집에 실린 노래이다. 가사는 김소월 시인의 싯구이고, 곡은 노찾사에서 지은 것 같다. 이런 좋은 글과 멜로디의 노래가 찬송가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민중가요를 부르던 노래패가 불렀다고 찬양이 아니고, 예배 때 부르지 못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깔뱅이 시편찬송만 불렀듯이 지금도 시편찬송만 예배 중에 부르는 교회가 있듯이, 우리의 정서에 맞게 만들어진 이런 노래를 예배 찬송으로 부르는 교회도 당연히 있을 수 있고, 각각의 교회는 각자의 신앙고백과 이웃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노래하고 예배하면 되는 것이리라.




    일반 교회에서는 교독문을 주로 읽는 순서에 한백교회에서는 마침 오늘이 추석 연휴에 있는 주일인 까닭에 (천상병 시인이 아마 1070년 가을에 지은 시인 것 같은데...) "소릉조 - 70년 추일에"라는 시를 교독하였다. 누가 이런 참 적절한 시를 찾아 내어서 선정하는 지 모르겠는데 역시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한백교회 다운 글 선택이라는 감탄이 나온다.


<소릉조(小陵調)> - 70년 추일에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 시집 <새>(1971) -  


   이어서 삶의 고백 시간에는 최근예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시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시고, 많은 생각을 하시고 계신 형제님께서 정말 진실한 문체와 내용으로 자신의 삶을 함께 나누어 주셨다.


   일반 교회에서 설교라고 하는 "하늘뜻나누기"는 이번 주 중에 3년 간의 박사 논문 작성과 학위 취득을 목표로 다시 독일로 돌아가는 정나진 목사님이 고별 설교로 본인이 박사 학위 논문으로 준비하는 Autoethnogaphy(자아문화기술지)와 관련된 내용을 ['사건'으로서의 환대와 민중메시아]라는 제목으로 하였다. 최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해서 미리 모든 예배자에게 주보와 함께 배포된 설교문을 중심으로 최근 6개월간 탈북자 정착도우미로 섬겼던 사건과 창세기 31장 1~2절의 말씀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이 야곱에게 들렸다. "야곱은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재산으로 저처럼 큰 부자가 되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라반의 태도가 이전과 같지 않았다.)을 기반으로 한 민중에 대한 기득권자들의 환대 태도, 그 과정에서 직접 체험하는 당사자들과 민중의 상호 변화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셨다. 하늘뜻나누기 시간 후반부엔 정목사님의 발표에 대해 궁금한 점과 추가적인 토론을 하고 싶은 것들을 예배 참여자들이 함께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건 정말 여느 교회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새로운 시도이다. 이런 예배 순서를 언제부터 해 왔는 지는 모르겠지만 30년 된 교회에서 이런 순서를 갖고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설교 후에는 설교 중에 언급되었던 김민기 작곡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함께 불렀다. 유일하게 나도 익히 알고 불러 보았던 노래이다.


   이어서 물질을 드림(봉헌) 시간이 있었고, 예배 인도자인 자매가 드리는 기도를 했는데, 이 자매는 한백교회에서 오늘 처음 예배 섬김이로 봉사를 하게 된 것 같다. 자매님의 기도를 통해서 자매님이 새롭게 안착한 한백교회의 교회 공동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의 일면을 알 수 있었다. 의외로 많은 청년들이 함께 예배를 하는 것 같았는데, 자매님도 이들과 함께 한백교회를 통해서 믿음과 세상 속에서의 삶 모두 하나님의 은혜 속에 나눔과 섬김의 삶을 더 활짝 펴며 살기를 기도한다.

   예배는 12시 45분이 넘어서야 한백신앙고백으로 공동체의 다짐을 하고, 마침 묵상을 한 후 마치게 되었다. 마침 묵상 후에 친교 마당 시간에 이상철 목사님께서 몇 가지 안내 말씀을 해 주시면서 나에게도 소개할 시간을 주셔서 짧게 내 소개와 교회 탐방을 하게 된 과정을 말씀 드렸고, 가능하다면 이후의 모임에도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후엔 기존 보수교회에서 40년 넘게 섬기시다가 40대 후반(그러니까 지금의 내 나이 대에...) 한백교회로 오신 후 지금은 한백교회의 장로님으로 섬기시는 오늘 예배 전에 찬양 인도를 해 주신 장로님의 도움을 받아 점심 식사(애찬)를 함께 하였다. 4개 조로 나눠진 성도들의 모임이 매주 돌아가면서 (즉, 한 달에 한 번 씩) 애찬 준비와 배식과 설거지를 섬긴다고 한다. 애찬 전에 아래 동영상과 같이 아주 재밌는 애찬 노래를 배설된 음식을 보면서 함께 불렀다. 그리고, 이번 주에 생일을 맞으신 여성도님을 축하하는 시간도 있었다.



   점심 식사 중엔 김진호 목사님께서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주셔서 한백교회의 창립 때부터 자신이 담임목사로 섬기신 때부터 양미강 목사님과 지금의 이상철 목사님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한백교회가 이사한 얘기, 계속 향린교회를 섬기신 박영숙 최고위원께서 정말 요리를 잘 하셨고 손이 크셔서 한백교회 식구들 전체에게 맛난 요리를 자주 해 주셨다는 얘기, 박성준 교수님과 안병무 교수님 모두 목사는 아니셨다는 얘기, 최근에 이상철 목사님께서 젊은이들과 소통을 잘 하시고 잘 챙겨 주셔서 한동대 출신 청년들과, 한신대 신학생들, 그리고 이런 저런 교육과 강연을 통해 한백교회를 접한 많은 청년들이 합류하면서 교회가 많이 젊어 지고 있다는 얘기 등을 해 주셨다.


   애찬을 얼추 마친 후엔 (좀 재미있게 표현해서 1부 예배, 2부 점심 식사에 이어) 3부 순서로 수다를 떨기 위해(주보 광고에는 장년부의 대화모임이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안병무 홀에서 약 200 m 정도 길 위로 올라가면 있는 "Caffe Cammello"로 시간 여유가 있는 교인들과 함께 갔다. 이 카페의 주인이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한백교회 분들을 좋게 보아 주셔서 매주 이렇게 장소를 편하게 쓸 수 있게 배려해 주신다고 한다.


   이 카페의 안쪽 방에서는 10월28일(토) 저녁 6시에 공연할 창립 30주년 기념 연극 준비팀이 대본 강독을 하고 있고, 내가 앉은 테이블에서는 2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까지의 청장년들 10여 명이 함께 앉아, 동성애, 외국인 노동자, 정나진 목사님의 설교 내용, 앞으로 펼쳐질 독일 생활, 한 자매님의 액티브한 유럽 1달 여행기, 한동대의 보수성과 개혁성 등 등 이야기 주제가 따로 정해진 것 없이 흘러가는 대로 참 다양한 얘기를 나누었다. 이상철 목사님으로부터는 주날개늘교회의 남오성 목사님을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에 서로 알고 지냈다는 반가운 얘기도 들었다. 시간은 어느새 5시가 넘어가고...


  헤어지기 전에 이상철 목사님과 찰칵!


오늘 애찬 시간부터 나를 살뜰하게 챙겨 주신 김진호 목사님과도 찰칵!



   한백교회는 10월에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몇 가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다른 모든 교회 활동과도 마찬가지로 교회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담임목사나 누구의 강력한 인도나 요청이 없는데도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여러가지 활동들을 준비하고 있고, 그 중에 가장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것은 역시 10월마지막 토요일(10/28) 저녁 6시에 안병무홀에서 공연되는 연극인 것 같다. 50명 안팎의 출석 교인들의 절반 정도가 참여한다는데, 정말 기대가 된다.


   오늘 이목사님께서 10월22일(주일)에 있을 창립30주년 기념 감사예배나 28일(토요일)에 있을 연극 공연에 또 와 보라고 초청해 주셨는데, 정말 여건이 되는대로 한백교회를 궁금해하는 지체들과 함께 다시 와 보고 싶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이날 함께 하고 싶은 분은 02-364-6355로 문의전화 해 보시면 된다. (연결이 안되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 010-7180-9492) 오후 5시가 넘에 카페에서 헤어진 나는 원래 계획대로 작년에 못다녀본 안산의 남쪽 지역(경기대학교 쪽에서 봉수대로 올라가는 길)을 산책할 목적으로 램블러 앱을 작동시킨 후 경기대 쪽에서 올라갔다가 추계예술대 쪽으로 내려오는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


    마지막으로... 인터넷에 한백교회를 검색해 보면, 기존 보수교단이나 번영신학에 물든 교회를 섬기는 분들이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한백교회의 정체성과 예배에 대해 깎아 내리는 글을 쓴 걸 많이 발견하게 된다. 참 마음이 아프다. 자신의 생각이나 신앙관과는 다르다 정로만 써도 충분할 것 같은데, 많은 악담과 저주의 말을 다분히 왜곡된 정보와 판단을 기반으로 해서 써 놓은 걸 보면 내가 그들과 같은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참 부끄럽다. 부디, 한백교회의 정체성과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도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사랑을 위해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사는 한백교회 공동체를 존중하고, 폭 넓은 신앙의 모습에 대해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갖기를 바랍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요수엘(박제우)의 블로그에 실린 글 '한백교회 탐방기'를 편집하여 옮겼습니다. http://yosuel.tistory.com/7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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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7.10.12 09: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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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서 한백교회를 검색하면 온갖 음해성 기사들로 넘쳐난다.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 퀘이커교도인 박성준이 세운 교회, 민중신학의 괴수 안병무가 실세인 교회, 온갖 운동판의 배후들이 득실거리는 교회, 한라산의 돌과 백두산의 돌을 섬기는 교회, 심지어 지난번 박근혜 탄핵 주문을 낭독한 이정미 재판관이 다니는 교회, 작년 박근혜 탄핵 정국당시 검찰 내부 게시판에 박근혜 구속을 주장했던 이00 검사가 다니는 교회, 비전향 장기수 빨갱이들을 지원하는 교회 등...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웃기기도하고 슬프기도 한 한백을 둘러싼 유령과도 같은 루머를 들을 때면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한백교회 담임목사로 3년차를 보내고 있는데 나는 아직까지 위에서 언급한 한백을 둘러싼 유령들의 실체를 접한 적이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백을 향한 정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음해성 보도들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제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교인들은 나보다 익숙하고 대범하고 내공이 세서 그런지 “목사님, 차차 적응되실 거예요”라고 하면서 내 어깨를 다독인다. 한백교회에는 거의 매주 교인이 아닌 낯선 분들이 예배에 참여해 섞여 있다. 일부러, 우연히, 지나가다, 계획하여, 소문(?)을 들어, 교수님들이 한번 탐방하라고 하여, 오늘 갈 교회가 없어서...이유도 각양각색이다. 기윤실에 계시는 박제우 선생님도 그 중 한분이셨다. 종종 한백교회가 어떤교회인지 알려달라는 주문을 받는데 그런 분들에게 이 기사를 토스해주면 되겠다 싶다. 귀한 기고 감사합니다.


호모 포비아, 그 오역과 치욕의 역사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동성애 광풍이 한국교회를 뒤덮다


    올 여름 한국개신교계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지난 6월 15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 이단대책위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에게 ‘이단사상 조사연구에 대한 자료요청의 건’이라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그리고 7월 20일 한국교회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장 연석회의는 ‘퀴어신학'을 내세우며 동성애를 감싸는 임보라 목사가 이단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8월8일 기장 ‘교회와 사회위원회’에서 반박성명을 발표하면서 퀴어신학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중세시대나 있을 법한 보수개신교단들의 임보라 목사에 대한 여론 몰이식 ‘마녀사냥’이 21세기 한국땅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지난 주간에 열렸던 대부분의 교단 총회에서 동성애 이슈는 예상한 대로 가장 센세이션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국 최대교단인 장로교를 양분하는 예장통합과 예장합동의 목소리는 동일했다. 분열되었던 장로교가 동성애 문제로 다시 하나로 뭉칠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예장통합의 결정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은 교역자는 물론 교회 중직(장로, 집사)자가 될 수 없을뿐 아니라, 신학생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진보적인 교단인 기장은 총회 마지막날(9월 22일) ‘성소수자인 목회를 위한 연구위원회 구성과 활동 헌의’의 건이 올라왔다. 이 안건은 찬성 159와 반대 90표로 기각이 결의되었으나, 총대 총수가 682명이며 과반수는 341명이다. 그러므로 찬성표 159는 341명의 과반수를 충족하지 못하고 미달인 것이다. 성소수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거나 세례를 주거나 교인으로 정식으로 인정하자는 헌의안도 아니었다. 교단차원에서 성소수자인 목회를 위해 공부를 해보자는 모임도 만들 수 없는 분위기인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이라 자부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자들 조차 동성애 문제를 피해가려는 경향이 역력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남한 땅에서 개신교의 권위와 종교성이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지는 오래된 사실이다. 특별히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고, 다름을 배제와 제거의 메커니즘으로 삼는 능력에 있어서 한국의 극우적 개신교도가 보이는 강도와 민첩성은 강하고도 빠르다. 빨갱이 혐오, 외국인 혐오, 여성 혐오, 이슬람 혐오, 그리고 동성애 혐오까지. 한국 사회를 휩쓰는 온갖 종류의 혐오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한국의 대형 극우 보수개신교회들이 있다. 사랑의 종교였던 그리스도교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한반도에서는 혐오와 적대의 종교가 되었나?


아니, 그들은 원래 그랬다


   해방 후 한국개신교는 빨갱이 혐오의 메카였다. 서북청년단을 중심으로 한 월남한 개신교도들이 자신들과 정치적 입장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에 앞장섰던 기억을 우리는 간직하고 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개신교는 나름의 체제정비와 내부 결속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외부의 적을 상정하면서 자신들의 균열과 부조리를 감추고, 희생양을 선정해 제거함으로 내부의 문제를 일단락짓는 극우적인 한국 개신교의 문법은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 남북한 사이 이데올로기 대결과 군사정부의 개발독재와 맞물리면서 개인구원과 축복일변도의 신앙으로 고착화되었다.

    지난 20세기에 자행되었던 빨갱이 혐오와 종북 몰이가 한국개신교의 정체성의 정치를 위한 토대였다면, 동성애 혐오는 가히 21세기 한국형 종교재판, 혹은 마녀사냥이라 부를만하다. 중세교회가 위기에 빠질 때 정점에 달했던 마녀사냥의 열풍이 한국교회의 위기가 선언되는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나타났던 고전적 방식의 체제유지법, 혹은 위기타개법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한국개신교는 자신들의 부도덕과 부패로 자초된 교회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동성애 혐오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그 동력으로 이탈하고 있는 신도들을 다시 결집시키고자 한다. 마치 십자군 원정의 패배와 페스트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가 전 유럽을 휩쓸 무렵, 흔들리는 교회의 권위와 위상을 회복시키고자 마녀사냥을 통해 체제의 위기를 수습하려 했던 중세교회의 발악처럼 말이다.‘마녀사냥’식 동성애혐오는 쇠락하는 한국 보수 개신교의 위기감와 초조감이 드러난 성급하고 서투른 결정이라 볼 수 있다.


성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성서는 정말 그들의 주장처럼 동성애를 혐오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아니다. 만약 성서의 일부 구절들이 동성애 혐오를 위한 각주로 쓰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성서를 모독하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이고, 성서의 하나님이 동성애를 벌하는 신이라고 설교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들의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성서는 동성애를 혐오하기 위해 쓰여진 책도 아니고, 일부 보수적 개신교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동성애자를 벌하시는 하나님도 아니다.

    크리스챤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예수가 걸어갔던 삶을 기억하면서 예수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크리스챤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은 항상 본인에게 다가오는 실존에서의 선택과 갈등, 그리고 행위의 순간마다‘예수라면 어떻게 하였을까?’를 물어야한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일부 한국의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에게 나는 이 질문을 되돌려 들려주고 싶다: “예수라면 과연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동성애를 저주하는데 동원되는 성서의 구절은 대략 손으로 꼽는다. 창세기 19장(소돔과 고모라), 레위기 18:22, 레위기 20:13, 로마서 1:27, 고린도전서 6:9~10, 디모데전서 1:10, 히브리서 13:4 등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성애 혐오를 주장하는 데 끌고 들어오는 성서구절 중 예수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한 구절도 없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하는 사실은 성서에는 게이에 대한 언급은 등장하나 레즈비언, 양성애자, 무성애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는 성서가 쓰여지고 편집되던 시대가 가부장제적인 시절이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서무오설, 즉 문자적으로 쓰여진 성서의 기록만을 맹신하는 사람이 범하는 논리적 오류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성서에는 레즈비언, 양성애자, 무성애자, 트랜스젠더는 적혀 있지 않으니 그것은 괜찮은 것 아닌가, 라고 묻는다면 문자적으로 성서를 믿는 그들은 뭐라 답을 할까.

    텍스트를 근거로 어떤 대상을 논하고 반박할 때 텍스트에 적혀있는 문자와 내용에 대한 공부는 필수적이다. 그 다음 텍스트가 구성되고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와 해석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텍스트 안에 있는 다양한 결을 살피고 성찰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텍스트를 대면하는 자세이고 원칙이다. 텍스트는 학과의 교재일 수 있고,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나 시집일 수 있고, 내가 만나고 있는 애인일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일 수 있다. 성서는 인류의 소중한 텍스트이다. 텍스트인 성서에 적혀있다는 동성애 관련 구절 몇 개를 끌어와 일방적으로 교회의 동성애 혐오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보수적 그리스도교인들의 행태는 텍스트 읽기와 해석의 원칙조차 모르는 천박하고 후진 한국교회이 민낯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고, 성서에 기록된 동성애 관련 구절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동성애를 둘러싼 성서의 정황들


   앞서도 언급했듯이 동성애를 반대할 때 인용되는 성서의 구절은 여섯 곳이다(창19:1-11; 레18:22, 20:13; 롬1;18-32; 고전6:9, 딤전1:8-11). 구약에 세 곳, 신약에 세 곳이 나온다. 1) 창세기 19장은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이고, 2) 레위기 18장은 성관계에 대한 규례가 적혀있는 장인데, 그중에서 18:22절에 “너는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안 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라고 적혀있다. 3) 레위기 20장은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들의 항목이 나열되는데 그 중 20:13에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면 ... 사형에 처한다”라고 쓰여있다.

    남성 동성애와 비슷한 급들의 죄의 항목들이 레위기에는 적혀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우상을 섬기는 것(지금으로 따지면 자본을 섬기는 것), 근친상간을 하는 것, 불륜을 저지르는 것,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것, 혼백을 불러내는 사람이나 마법을 쓰는 사람(레20:27)도 이 항목에 들어간다. 즉 남성끼리 동침하는 것에 특별한 강조가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구약성서에서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에 마음을 쏟는 것(우상을 섬기는 것), 정의가 실현되고 있지 않는 현실을 외면하는 자들에 대한 저주와 형벌이 더 자주 빈번하게 강조되면서 등장한다.

    이러한 경향은 신약성서도 마찬가지다. 예수는 동성애에 대한 발언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신약성서에서 동성애를 둘러싼 발언은 바울서신에 딱 세 번 나온다. 신약성서의 동성애 발언 역시 구약성서와 같은 맥락이다. 동성애가 그 수많은 죄악들 중에 one of them이라는 것이다. 4) 롬1;18-32 사람이 짓는 갖가지 죄들 중에 하나로 동성애가 나온다. 그 죄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한 사람,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한 사람,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 불손한 사람, 오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꾸미는 묘략꾼,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신의가 없는자, 무정한 자, 부자비한 자 ... 그리고 욕정에 불타는 자인데, 그 욕정에 불타는 자에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하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5) 고전6:9 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는 구절이다. 음행을 하는 사람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 간음을 하는 사람들, 도둑질을 하는 사람, 탐욕을 부리는 사람, 술 취하는 사람, 남을 중상하는 사람,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과 더불어 동성애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는 사람들로 등장한다. 6) 딤전1:8-11 율법을 어기는 사람을 분류하는 장면인데,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 경건하지 않는 자, 죄인과 거룩하지 않을 자, 속된 자와, 아비를 살해하는 자와 어미를 살해하는 자와 살인자와, 간음하는 자와, 유괴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같은 라인에 남색하는 자를 두고 있다.

   당신이 성서에 근거해서 동성애자를 비난한다면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 돈과 명예와 권력을 탐하는 인간들을 마찬가지로 비난해야 한다. 당신이 성서에 근거해서 동성애자를 비난한다면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탐욕을 부리고, 술 취하고, 남을 중상하고, 거짓말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맹렬하게 비난해야 한다. 당신이 성서에 근거해서 동성애자를 비난한다면 오만하고, 비겁하고, 신의 없고, 시기와 분쟁과 미움으로 가득 찬 인간들 모두를 똑같이 비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우리는 동성애만을 부각시켜 모든 악행의 끝판왕 인양 거품을 물고 짖어대는 것일까? 한국의 모든 수구적 근본주의 세력들이 자기들의 허물과 죄악을 다 털어 동성애 포비아에 덮어씌워 번제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호모포비아의 자리


    동성애자들에 대한 혐오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기독교 역사에서 정당화되어 왔다. 첫째, 동성애자는 ‘창조의 법칙’을 거스르는 ‘비정상적’인 존재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정상 Vs.비정상’이란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며, 고정불변의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절대적이라고 여겨지는 ‘정상 Vs.비정상’의 범주들은 많은 경우 한 사회에서 ‘권력’을 지닌 주류 집단들에 의하여 결정되곤 한다. 만약 불변의 ‘정상-비정상’있다면 그것은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존중이이야말로 ‘절대적 정상’이며, 반대로 그들에 대한 ‘혐오’야 말로 ‘절대적 비정상’ 아닐런지?

    둘째, 도덕적 순결에 대한 유지와 강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동성애 혐오는 요청되어 졌다. 역사적으로 ‘순결주의’ 논리는 인종학살의 도구로 심심치 않게 사용되었다. 나치의 유대인과 동성애자들에 대한 말살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내내 지속되었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도 마찬가지다. 나치가 동성애자들에 대한 말살정책을 펼 때 등장한 것이 ‘도덕적 순결성’과 ‘기독교정신’이었고, 그 구호 아래 동성애자들로 의심되는 독일남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하여 사살하거나 가스실에서 죽였다. 표면적으로는 ‘도덕적 순결성’강화가 동성애 혐오의 근거였으나, 실질적으로 동성애 혐오는 ‘인종적 번식’의 측면에서 다루어진 측면이 강하다. 독일인 게이들을 향해서는 독일의‘출산 잠재성’을 감소시키는 ‘인종적 위험’으로 간주한 반면, 레즈비언들이나 비독일인 게이들은 박해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말이다.

    기독교 근본주의 전통에서 작동하는 창조보존의 법칙과 순결주의는 어처구니 없는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어딘가 오리지널한 원본과 원형이 있으며 그것들은 훼손되지 않게 잘 보존되어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incarnation) 했다는 것 자체가 순수하고 완전하고 흠이 없는 신의 원형에 불순물을 주입하고, 흠집을 내고, 틈과 균열을 조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은 오히려 당신의 완정성과 순수성과 순결성을 세상에 내어주고 훼손함으로써 당신의 신성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증언하는 정직한 신에 대한 고백 아닐까?

    나는 성서에 나오는 정결한 것, 부정한 것이라는 말 대신 다수자, 소수자라는 말로 그것들을 대체하고 싶다. 성서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인권과 평등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꿈꾼다. 도덕적 순결성, 관습과 전통, 또는 종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다수에 의한 소수를 향한 혐오와 폭력은 그래서 성서적으로 죄이다. 성서가 지니는 해방적 전통이 작동되는 지점은 차이가 차별이 되어 왜곡과 폭력과 불평등이 정당화 되는 그곳이다. 성의 차이, 인종차이, 계급의 차이, 종교의 차이, 부의 차이, 학력의 차이, 지역의 차이...등 온갖 차이와 다름으로 인한 적대와 차별이 이루어지는 그곳을 향해 변혁적인 그리스도교는 지금까지 달려왔다. 동성애혐오에 대한 저항은 이러한 성서가 지닌 해방적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맨끝, 즉 화살촉과 같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을 둘러싼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Are You 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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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7.09.28 09: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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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한신학보 547호(2017년 9월 1일), 548호(9월 25일)에 게재된 <소통관에서 온 편지> “너희가 그들을 아느냐? : 한국보수개신교의 성소수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독설”을 웹진에 맞게 수정했음을 밝힙니다.
  2. 주안
    2017.10.05 09:3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내용들을 꼭 집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특히 <동성애를 둘러싼 성서의 정황들>은 성서를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이라면 부인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본인들의 "허물과 죄악을 다 털어 동성애 포비아에 덮어 씌워 번제를 드리고 있는" 현상은 한국 밖의 기독교 세계에서도 보여집니다.
    주위의 기독교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평소에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들도 동성애가 "창조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대를 하더군요. 창조의 법칙에 가장 근본이 된다는 '남녀간의 결혼'을 통한 '가정'이란 것이 깨진다는 두려움이지요. 이 문제에 대한 응답을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호모 후마니타스(Homo-Humanitas)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인문학 위기의 요체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유학 10년을 마치고 돌아온 고국은 놀라우리만큼 변해 있었다. 우선 표면적으로 정권이 바뀐 것이 가장 큰 낯섦이었다. 미국으로 갈 때는 노무현 정권이었는데 돌아와보니 이명박을 거쳐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이 연거푸 집권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정권들 아래에서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본고장인 미국보다 훨씬 더 철저하고 착실하게 신자유주의를 이행하는 신자유주의의 실험장 같았다. 구조조정이 상식이 되어버렸고, 계약직과 비정규직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갑/을 관계의 냉엄함과 잔혹함은 하늘을 찌른다. 연일 신문지상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선사하는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민중들의 비관 자살보도가 넘쳐나고, 20.30대들 사이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가 등장했다. 그야말로 10년 만에 돌아온 조국은 디스토피아 그 자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발견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열풍이다.

   “무한경쟁”, “누구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마누라와 자식들 빼고는 다 바꿔라”... 이상은 신자유주의가 휘몰아치던 1990년대 광고카피들이었다. 무한경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기억되지 않는 2등을 면하기 위하여,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한국인들은 열심히 일을 했다. 한국의 인문학 열풍을 체험하면서 나는 신자유주의가 지니는 파토스와 인문학 사이에 모종의 결탁이 이루어 진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신자유주의적인 논리와 질서 속으로 인문학이 녹아들어 가면서 신자유주의화 된 인문학, 신자유주의를 위해 봉사하고 협력하는 인문학이 한국 땅에서 돌연변이로 탄생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인문학이 신자유주의 이론을 축조하고 견고하게 하는데 일조했다는 말이 아니다. 인문학이 신자유주의 논리를 학습하고 내재화했다는 말이다. 실례로 현재 한국의 지식사회는 인문학이라는 말을 빼놓고는 논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인문학의 위상이 막강하다. 각종 인문학 프로젝트들과 인문학 강좌들은 홍수를 이루고 있고, 서점을 둘러보면 온통 제목에 인문학字 붙은 책들이다. 10년 동안 국외자의 입장에 있다가 내부자의 시선으로 이런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처음에는 흥미로왔다. 그간에 고양된 한국인들의 인문학을 대하는 자세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불편해지더니 요즘은 한국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열풍이 모욕적이고 심지어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과연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일까.


스펙(Spec) 우선주의


   지금까지 살펴본 바, 현재 진행 중인 인문학열풍은 한국인들에게 잠재해 있는 두 가지 욕망과 모종의 연관이 있어 보인다. 하나는 스팩(Spec) 우선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힐링(Healing) 지상주의다. 『세상을 지배하는 0.1%의 인문고전 독서법』, 『동서양 천재들의 사색공부법』,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CEO가 읽는 인문학』 같은 제목의 책들이 인문학 관련 서적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높은 순위에 등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의 인문학 풍토에서 스펙 우선주의가 차지하는 비중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부가가치가 높고 효율적인 스팩을 쌓은 사람을 신자유주의형 인간이라고 했을 때, 인문학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최적화된 인간을 양성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강철과도 같은 의지를 지닌 불패의 정신으로 무장된 주체를 이 시대로 다시 소환하자는 말은 아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와 더불어 등장한 21세기형 주체는 너무나도 무력하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의 ‘액체근대’[각주:1]를 패러디하여 21세기 신자유주의형 인간을 ‘액체화된 주체’라고 명명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 시대 우리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 공동체, 대의, 국가, 체제 등과 같은 굳건했던 숭고함들은 전 지구적으로 몰아닥친 자본의 열풍에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져 버렸다. 바우만의 ‘액체화된 근대’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 이후 변화된 세상의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하였다.

    액체화된 시대 속에서 강철과도 같은 의지과 날카로운 이성으로 무장된 근대적 주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액체화된 시대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전과 같은 공동체 의식 혹은 투철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삶의 무게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 되었고, 그것에 대한 결과 역시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다. 우주와 세상 앞에서 개인은 홀로 이 모든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그런 개인인 내가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런 개인인 내가 세상을 지배하는 0.1%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서울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잘 나가는 CEO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인문학은 더 이상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체제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묻지 않는다. 전체 안에 깃들어 있는 부조리의 문제를 한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문제로 치환시키거나, 젊은 시절 감내해야만 하는 통과의례적인 과정 혹은 개인의 자기계발의 문제로 전환시키면서, 시스템의 균열과 사회의 모순에 대해서는 눈을 감게 만든다. 대신에 아프니까 청춘이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것이다, 라는 말로 우리를 우롱하고, 아직 2%가 부족하다, 열심히 살다보면 내일의 태양의 뜰테니 ... 그러니 열심히 뺑이쳐라. 그러면 대박 날지도 모른다, 라는 말로 희망을 고문한다. 이것이 오늘의 인문학이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속삭임이고, 그러면서 인문학은 시장의 언어가 되었다.


힐링(Healing) 지상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고 말하였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균형, 신앙과 이성 사이의 긴장, 믿음과 논리 사이의 간극을 강조한 말이라 하겠다. 바르트의 말을 빌어 한국의 인문학 열풍을 풍자하자면, 현재 한국인의 손에는 한 쪽에는 Spec, 다른 한 손에는 Healing 관련 서적이 쥐여져 있다. 아침 출근길에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쟁취하고 다시 도전하고 마침내 승리한다는 내용의 책을 읽고, 저녁 퇴근길에는 상처받고 좌절당한 몸과 마음의 평안을 위해 힐링 관련 서적을 읽는다. 이것이 한국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풍속의 단상이라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앞서 언급했던 Spec 우선순위와 더불어 한국 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열풍을 담당하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은 Healing 지상주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상처극복 시리즈, 분노와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둘러싼 내면 강화시리즈, 희망과 행복을 상상하고 꿈꾸게 하는 환타지 같은 성격의 책들이 대표적인 힐링 관련 서적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한국인들은 Healing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인간은 누군가로부터 위로 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한국의 힐링 열풍은 지나친 과잉이다. 어쩌다 우리사회가 힐링을 갈망하고 욕망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물론, 한국사회 전체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 아프고, 1등이 못되어서 좌절하고,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아 아프고,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에서 실업자로 추락하는 바람에 우리는 아프다. 그래서 모든 감기 증상들을 단번에 달려버리는 종합 감기약처럼, 우리 역시 모든 슬픔을 모아 단번에 달려버리는 종합처방전이 필요하다. 그것이 힐링지상주의의 요체라 한다면 너무나 과문한 진단일까.

    연대하는 공동체, 굳건한 이데올로기가 녹아내려 액체로 화한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은 액체로 된 세상 속에서 홀로 외로이 유영하면서 자기경영에 매진해야 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허락한 문법이고 그곳의 개인은 한번 몰락하면 재기 불가능하다. 존재 전체를 걸고 전력투구를 해야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간은 항상 불안과 공황과 우울의 상황과 직면해 있다. 힐링은 대타자 신자유주의의 추하고 타락한 몰골을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시키려는 체제의 전략이고, 또한 그것은 자본의 문제를 저격하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자본이 저지른 만행을 최대한 감추고 그것을 한 개인의 몫으로 전가시키려는 신자유주의가 고안한 간교한 계략이다.

    이것은 마치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교통사고로 인해 응급외상센터로 후송된 중환자에게 외상(外傷)은 크지 않아 네 마음이 그것을 아프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야, 라고 속삭이면서 몰핀을 계속 투여한다면 환자는 어떻게 될까. 여기서 교통사고를 신자유주의로, 환자를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민으로, 몰핀을 힐링담론으로 치환하면 정확한 우리의 현실이 된다. 힐링은 쌓이고 쌓인 자본의 문제를 개인 내면의 문제로 변질시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술책이다. 힐링이 본래 지니고 있었던 숭고하고 따뜻했던 의도와는 별개로 신자유주의 시대 힐링 열풍의 이면에는 이러한 음모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인문학의 기원, 혹은 전통


   그렇다면 우리는 스팩과 힐링에 갇혀버린 인문학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에 대한 답을 르네상스시대에 부활한 인문정신을 복기하면서 찾고자 한다. 십자군 원정의 패배와 패스트의 창궐로 인해 중세유럽을 지배했던 교회의 권력은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하였고, 그러는 가운데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에 대한 요청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르네상스다. 신과 교회의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서 피어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인간성에 대한 재발견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대두되면서 유럽은 중세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 근대를 향한 발돋움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발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십자군 원정으로 인한 동서무역로가 확보되면서 지중해무역권이 형성되었고 그 통로에 위치했던 이탈리아의 도시들, 예를 들면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도시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특히 동로마제국이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게 멸망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을 이어받았던 동로마의 학자들이 대거 이탈리아로 유입되었고, 동서문화가 다시 한번 대융합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고대 그리스 고전에 대한 복기가 시작되었다.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은 로마시대의 자유학문(liberal arts)을 복원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필요를 수용하면서 새롭게 학문체계를 재구성하였다. 중세 대학은 고대 로마의 9 자유학문(문법, 수사학, 논리학,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이론, 의학, 건축학)에서 의학과 건축을 제외한 7과목을 삼학(문법, 수사학, 논리학)과 사학(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으로 구성하였다.[각주:2] 이러한 학문분류는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로 상징되는 이탈리아 휴머니스트들에 의해 studia humanitatis(인문학)라는 이름 아래 재편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논리학이 위축되었고 수사학은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그리고 역사학, 시학, 윤리학, 정치학 같은 학문들이 새롭게 부상하였으며 라틴어와 헬라어 원전에 대한 독해가 요구되어졌다.

    이 대목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 르네상스의 모토로 알려진 ‘고전으로의 복귀’가 미래를 향한 도전이라기 보다는 과거의 전통(경험)으로 돌아가다는 복고주의가 아닌가, 라는 의혹이 그것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의 생각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고대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하여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서, 신화적 이야기를 현재를 위한 창조적 상상의 원천으로 소급하기 위해서 르네상스는‘고전으로의 복귀’를 주장했던 것이다. 변화된 세계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상상력을 시대는 요청하였고,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그 변화의 동력을 고대 그리스로의 복귀를 통해 탐색하였던 셈이다.

    이는 인문학의 위기론 속에서 인문학의 갈 바를 몰라 방황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선사한다. 인문학이 스팩과 힐링, 즉 현실정복과 현실도피의 도구로 전락한 한국사회에서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이 우리들에게 주는 충고는 인문학이란 상상력과 관계한다는 점이다. 현실에 대한 매몰과 현실에 대한 적응에 목적을 두는 인문학이 아니라, 현실과의 거리두기, 현실에 대한 낯설게 하기를 통해 현실에 대한 변혁을 꿈꿨던 사람들이 르네상스 시절 휴머니스트들이었고, 그들로 인해 유럽은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인문(人文), 인간의 무늬


    이 글은 스팩과 힐링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인문학 풍속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시작되었다. 천문(天文)이 ‘하늘의 무늬’이고, 인문(人文)을 ‘인간의 무늬’라고 할 때[각주:3],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배려를 기본으로 한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스팩 강화와 자아의 상처 극복을 테마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인문학 열풍은 동시대 한국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욕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는 점에서 인문학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에 마냥 호의적일 수는 없다.

    인문을 인간들이 이루는 무늬라고 했을 때, 인문학은 그 무늬를 연구하는 학문이 된다. 무늬를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고 전체를 봐야 무늬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리므로 ‘인간의 무늬’라는 말 안에는 인간은 복잡다단하여서 두부모를 자르듯 인간에 대해 재단할 수 없다, 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인간을 쉽게 판단할 수 없듯이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인문학은 사회 속에서 쉽게 환호 받으며 유통되고 소비되다 폐기되는 개념과 풍조에 대해 어김없이 삐딱한 태도로 회의하고 그것을 응시하면서 넌 누구니, 넌 어디서 왔니, 라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볼 때 현재 한국사회에서 스팩과 힐링으로 포장되어 열렬히 환호받으며 유통되는 인문학 풍속도는 인문학적으로 마땅히 비판의 대상이 된다. 모든 사안과 문제 앞에 인문학이란 단어가 차고 넘치지만 실상은 인문학적 태도가 전무한 한국의 인문학 열풍, 그 속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인문정신은 없다. 비행기 타고 서울 시내를 내려다 볼 때 보이는 빨간 십자가의 풍년이 오히려 한국 개신교의 타락과 부패를 상징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의 인문학 열풍 또한 그런 처지로 타락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우리사회가 인문학은 인간의 무늬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그러다가 실업자로 전락하면서 울분을 품고 살다 고공농성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삶을 외면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 사회가 인문학, 즉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중시하는 열풍에 빠져있었다면 어린 학생들이 물에 빠져 죽어간 세월호에 사건에 대해 그리 무능한 대처와 무책임한 행보를 보여서는 안 되었다. 이 땅의 학부모들이 진정 인문학적이라면 인문학적 상상력 대신 점수따기식 학습과 수량화된 현재 학생 평가 시스템 안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밀어넣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무늬를 존중하는 인문학은 인간 현존 하나하나의 삶과 호흡에 관여하고 그 아우성과 몸짓에 일일이 반응하면서 최대한 성심껏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공동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인문학이다


    결론적으로 인문학이란 어떻게 하면 내가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강박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나의 아픔을 치유받을 수 있을까를 둘러싼 집착도 아니다. 오히려,“세상이 이렇게 불합리 한데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이것은 죄악이 아닐까?”를 묻는 것이 인문학이고, 타인의 불행과 나의 행복사이에 있는 함수와 변수를 계산하여 내 행복의 정체를 의심하고 타인의 불행에 대해 면목없어해 하는 마음이 인문학이다. 물론, 인문학은 나의 아레테를 발견하고 계발하여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하는 긍정의 정신이고, 고통과 슬픔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그것으로 인한 상처로 부터의 회복을 바라는 희망의 변증법을 포함하겠지만, 더 근본적인 인문학적 의제는 우리시대 고통과 슬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함께 힘을 모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비참과 탄식을 극복할 방도를 모색하는 비판의 정신이어야 맞다. 그 마음으로 신자유주의가 선사하는 불편한 진실과 타협하지 말고 우리 시대 가장 비천한 이들과의 연대에 동참하는 것, 우리사회 속에서 잊혀지고 가려지는 진실들을 외면하지 않고 들춰내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 그 하나하나의 과정이 진정한 우리의 스팩이고, 그 순간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힐링을 맛보게 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일수 옮김, 『액체근대』 (서울: 강, 2009). [본문으로]
  2. 서보명 지음, 『대학의 몰락』 (서울: 동연, 2011). 65-81 [본문으로]
  3. 『周易』 「賁卦」. “觀乎天文以察時變 觀乎人文以化成天下_ 천문을 살펴서 시간의 변화를 관찰하고, 인문을 살펴서 천하를 화성한다.”- 이승환,“동양의 학문과 인문정신”, 『인문정신과 인문학』(한국학술협의회 편, 아카넷, 2007), 29쪽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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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퀀스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2016년 가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논단이 불러온 파국의 정치는 한국사회를 급속도로 촛불정국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하였다. 2016년 10월 29일(토) 1차 촛불집회부터 2017년 4월 29일(토) 23차 마지막 촛불집회까지 1600만이 넘는 시민들이 촛불광장에 참여하였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2016년 12월 9일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인용처리 하였다. 그로부터 2개월 후 2017년 5월9일에 치루어진 대통령선거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현 정부를 촛불집회로 이룬 혁명의 정부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보면 촛불은 새로운 정치적 해석과 상상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촛불의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촛불정국이 일단락이 된 현 상황에서 촛불이 지닌 의미를 다시한번 복기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고, 그 과정에서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정치적 상상과 윤리적 결단의 지점을 역으로 추적해 보는 기회가 된다면 글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셈이다.


1. 촛불, 비정상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고발


   현대국가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비정상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형성된 국가 권력 아래서 국민 개개인이 지니는 차이는 선거를 통해 결정된 권력 앞에서 무기력하고 무시된다. 서로 다른 개인과 우리는 국민이라는 집합명사 안에서 하나가 된다. 차이가 국가권력이라는 동일성 안으로 스며드는 밀도가 현대의 민주주의는 고.중세의 봉건제 보다 오히려 세고 견고하다. 이런 이유로 대의제 민주주의를‘동일성의 정치(Politcs of Identity)’라 부른다. 일찍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그들이 공저한 『계몽의 변증법』에서“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동일성에 의해 지배받는 사회”[각주:1]라 지적하면서, 이를 가능하게 했던 근대적 (도구적)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있다:“이성은 스스로를 보편적 주체로 서게 함과 동시에...이성은 자기 보존을 위해 세계를 제어하는 계산적인 측면도 갖는다.”[각주:2] 근대성이 지닌 전체주의적인 면모를 꼬집는 날카로운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정치적 보편주의로 자리매김한 대의제 민주주의는 근대성의 대표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동일성에 기초한다. 동일성의 정치는 모든 국민에게 한 표가 있다는 평등성, 다수의 결정을 존중하는 원칙성, 그리고 소수인 우리가 내일의 다수가 되어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낙관성을 축으로 작동하는 환상의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현실의 민주주의에서 평등성은 형식상의 평등성이고, 다수가 지니는 정당성은 한국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에서 보듯이 모략과 음모의 결과물이며, 내일 태양이 뜬다는 희망과 가능성은 오늘을 살아가는 인민들에게는 절대로 실현되지 않는 불가능한 가능성이다.

   서구 시민사회의 발전은 대의제 민주제의 등장과 그로 인해 등장한 문제점을 치유해나갔던 역사였다. 서구의 경우와 다르게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밟지 않았다. 촛불이 요구했던 것은 이런 비정상적인 민주주의의 정상화였다. 물론, 촛불의 요구는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실현 불가능한 요구였다. 국가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그들의 출몰로부터 야기되는 새로운 질서의 출현을 원치 않는다. 어쩌면 국가는 기득권세력의 부와 권력의 유지를 보장하는 기능과 새로운 질서의 등장을 억제하는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이러한 민주주의가 지녔던 문제점을 지적하고 직접적인 시민 민주주의를 외쳤던 것이 촛불이다. 촛불은 대의에 묻혀왔던 개개인의 목소리와 색깔을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국가에 의해 정리되고 관리되고 배제되어 왔던 개별자들을 셈하여 줄 것을 국가에 당당히 요청했던 사건이 촛불이었다는 말이다.

    문득 지난 촛불집회 기간 중 불렀던 노래 가사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물론 이 말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권력을 강조하는 말이겠지만, 한편으로 문장의 주어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대한민국에게 잃어버린 민주와 공화를 찾아 돌려주자는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 모든 사회 구성원들끼리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 서로 조화를 이루는 대한민국을 되찾는 것, 이것이 바로 촛불의 대의였다.


2.  촛불, 비정치적인 것의 정치화


    매주 토요일마다 23차례에 걸쳐 1600만명이 넘는 시민을 광장으로 모이게 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촛불은 과거 정치적이지 않았던 일상들이 정치의 모습으로 소환된 사건이었다. 일상의 정치화가 진행되었기에 촛불은 계속 광장에서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힐 수 있었다. 중고등학생 연합이 자기네들끼리 목소리를 내면서 어른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그들의 언어로 시국에 대해 발언하고,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촛불현장에서 벌어지는 가부장제적인 현상을 비판한다. 광장으로 유모차를 대거 끌고 나오는가 하면, 시민들은 각자의 기억 속 인물들을 불러내서 광장에서 만났다.

    광장에는 수없이 많은 깃발들이 휘날렸는데 과거와 같이 웅장한 거대서사의 메시지가 깃발에 적혀있지는 않았다. 소소한 개인들의 치기와 풍자가 어린 작품들이 깃발의 형태로 전시된 케이스라고 해야 옳다. 장수하늘소 연구소, 91학번 별 보이는 모임, 끝나고 치맥한잔 등 소소한 일상들이 깃발로 등장하면서 촛불 광장은 예전의 피끓는 투쟁, 강철같은 투쟁을 연호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전선이 아니라, 일종의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 무대이자 마당이되었다. 과거 1980년대식 운동권 투쟁방식에 익숙해 있던 필자로서는 분명 촛불은 낯선 풍경이었다. 10년(2004~2014) 동안 유학을 핑계로 한국을 비웠던 지라 그동안 한국사회의 변화상을 내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자조 섞인 탄식도 내안에서는 분출하였다.

    시위의 풍경이 예전과 달랐다는 점은 지도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누가 23차례 집회를 주도하는지, 누가 1600만명을 조직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혹 누군가 과거처럼 큰 목소리로 가열차게 선동적으로 구호를 외치거나 자극적인 발언을 남발하면 광장의 촛불은 그들을 외면하였다. 연차를 거듭하면서 촛불집회가 청와대 인근까지만 행진하고 돌아가는 무력한 시위로 전락하지 않을까, 라는 위기감이 잠시 돌았다. 그래서 비폭력적인 집회방식에 대한 논쟁이 잠시 있었다. 청와대까지 진출해야하고 청와대를 넘어야 되는 것 아닌가, 라는 문제제기 말이다. 그 말은 경찰과의 대치와 폭력까지 감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익숙한 변증법적 논리학의 문법, 양적 축적에 따른 질적 승화의 단계가 무르익었고 지금이 바로 행동을 해야하는 그때이다, 라는 주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2016~17 촛불광장에서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울려 퍼지지 않았다. 촛불은 과거와 같은 방식의 정세분석과 인정투쟁을 허락하지 않았다.

    촛불광장은 이념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거대한 대의를 실천하는 슈퍼에고(Super ego)의 집결지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각각의 개인들이 그동안 상실했던 본인들의 쾌락을 찾아 몰려드는 이드(Id)의 각축장이었다. 광장으로 몰려든 개인들은 자신들과 소통하지 않는 권위적인 정부에 대해, 자기들을 집합명사 취급하면서 관리하고 제어하려 했던 정부를 향해 난장을 피웠던 것이다. 그러면서 신화화 되어있고 이데올로기화 되어있었던 제도로서의 정치는 깨어졌고,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일상이 정치의 역역으로 출현하였다. 촛불은 이렇듯 비정치적인 것의 정치화라는 새로운 환타지를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3. 촛불, 법 밖의 정의를 향하다


   비정상적인 민주주의를 고발하고, 비정치적인 것의 정치화를 실현시켰던 촛불이 최종적으로 겨냥한 목표점은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에서 정의란 법의 테두리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경제적으로는 뿌리깊은 정경유착이, 사회적으로는 세월호에 대한 은폐와 조작이, 문화적으로는 블랙리스트 작성으로 대변되는 획일주의와 검열이 한국사회를 지배하였다. 그 안에 정의는 없었다. 정의는“법 밖의 정의”[각주:3]다. 촛불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면서 법 밖에 위치했던 정의를 다시 현실의 법 테두리 안으로 정상화시키려고 했던 몸부림이었다.

    “법 밖의 정의”를 말하고 있는 이 순간에 유대 사회의 법이었던 ‘안식일 법’을 어기면서까지 파국을 향해 달려갔던 예수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는 타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환대’라는 ‘법 밖의 정의’를 끝까지 주장하며 행동했던 인물이었다. 배고픈 사람들이 밀 이삭을 좀 뜯어먹었다고 안식법 위반을 운운하고, 병자들을 안식일에 고쳤다는 이유로 도덕적 규범을 어겼다고 몰아붙이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는 분노하였다. 그들을 향해 예수는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마15:3)”라는 독설을 퍼붓는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나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도 예수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예수는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해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야기 한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만날 수 없는 타자이다. 역사적으로 양자 간에는 회복할 수 없는 깊은 골이 패여 있는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인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얻어맞아 초죽음이 된 유대사람을 섬김을 받아 마땅한 이웃으로 대접한다. 타자의 신음에 무조건적인 환대로 반응하면서‘법 밖의 정의’를 실현한 것이다.

    예수의 윤리에서 법 밖에 위치하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가장 도르라지는 대목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최후의 심판’비유이다. 최후 심판 날 인자는 양을 자기 오른쪽에 염소를 자기 왼편에 세운다. 양과 염소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상징한다. 이 심판은 지켜보는 청중이나 오른쪽에 있는 사람, 왼쪽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의 판정 기준 떄문이었다:“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마 25:35-36).

    마지막 날 판정기준이 유대교의 법을 잘 지킨 순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법 밖에 위치한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 예수가 추구했던‘법 밖의 정의’는 유대율법에 대한 해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율법 안에 숨어있는 진정한 의미, 즉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하고 자유하게 하고, 인간 사회에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는 율법 본연의 정신을 회복시켰다. 이렇듯 예수는 성서 안에 숨겨져 있는 명백한 진리를 다시 조명하면서 정도(正道)를 따라 정직하게 걸어간 인물이었다.

    촛불은 ‘법 밖의 정의’를 갈망했던 예수의 정신과 공명한다. 촛불은 자본의 법칙 안으로 함몰되어버린 법질서를 고발하고, 탐욕과 아집에 사로잡힌 정부 여당의 독선에 당당히 맞섰다. 또한 촛불은 진도 앞바다에서 싸늘하게 죽어간 세월호의 어린 생명들에 대한 애도를 불허하는 부도덕한 정권을 소환하였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세력과 집단을 검열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배제하려 했던 후안무치한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그렇게 23주간 광장을 밝힌 촛불로 인해 마른 뼈와 같이 앙상했던 대한민국에 혈기와 온기가 돌기 시작했고, 붕괴되었던 민주주의는 회복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촛불의 윤리는 상징적 체계, 즉 법을 위해 봉사하는 수동적 윤리일 수 없다. 촛불은 상징적 법칙이 지배하는 현실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법 너머의 행위까지를 겨냥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21세기 법이라 할 수 있는 자본의 법칙에서 배제된 자들을 향하는 윤리이고, 우리시대 악법이라 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혐오주의로 부터 차별받고 억압받는 타자들, 즉 난민, 여성, 동성애자,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들을 향해 달려가는 윤리이다. 이렇듯 2016-17년 대한민국을 밝힌 촛불은‘법 밖의 정의’를 여전히 믿고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 불가능했던 것들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사건이었고, 현실을 강제하는 체제와 시스템과 도그마를 향해 절단선을 그을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였다. 그리하여 촛불은 대한민국의 실추된 존엄과 명예를 회복시켰고, 이러한 촛불의 기억은 대한민국이 정의와 민주주의를 새롭게 상상해야하는 그때마다 귀환하여 우리의 귓전에서 그날의 추억을 들려주며 우리를 깨어있게 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M. Horkheimer and T.Adorno, Dislectics of Enlightment (New York: Herder and Herder,1972), 7 [본문으로]
  2. Ibid., 83-84. [본문으로]
  3. Theodore Jennings, Outlaw Justice: The Messianic Politcis of Paul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3); 올해 오랫동안 제직했던 시카고 신학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은퇴한 테드 제닝스 교수는 예수의 메시아 운동을 재해석한 바울신학의 핵심을“법 밖의 정의(Outlaw Justice)”라 정의하면서 요즘 급격하게 일고 있는 바울에 대한 현대철학의 해석과 대화를 시도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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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관하여[각주:1]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어느 신학교 노교수의 자살


    1973년부터 2012년 까지 40년 동안 시카고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프로이트와 융을 가르치면서 정신분석학과 신학 사이 학제간 연구를 주도했던 로버트 무어 교수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내게 전해졌다. 시카고 신학대학원이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퀴어신학, 흑인신학, 포스트콜로니얼니즘 등 진보적인 색깔로 유명한 학교이지만, 원래 이 학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목회상담 때문이다. 100년 전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는 최초로 임상목회실습(CPE)과정을 실시하면서 신학의 대중화 내지 현장화를 이끌어 낸 학교가 시카고 신학교였다. 미국 목회상담의 아버지라 평가받는 안톤 보이스(Anton T. Boisen)가 시카고 신학교에 근무하면서 이 운동을 이끌었고 지금도 학교 도서관의 한 방은 안톤 보이슨 Room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에 사망한 로버트 무어(Moore) 교수는 시카고 신학교의 심리신학을 담당하던 교수이고, 특별히 그는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분석심리학을 만든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전문가로 미국에서 손꼽히는 학자다. 무어 교수는 시카고에 있는 융 연구소를 이끌었고, 융의 집단 무의식과 신학자 폴 틸리히의 궁극적 실재를 연결하여 새로운 형태의 신학을 구성하려 했던 창의적 신학자였다. “네가 아직 알지 못하는. 네 안에 있는 그것을 발견해라! 그것이 궁극적 실재이고, 그것이 신과 만나는 통로이다!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 그것을 위해 행동하라!”를 외치면서 많은 신학도들과 수많은 내담자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던 학자이자 상담가였던 로버트 무어 교수는 늘 매니아들을 거느리고 다녔던 스타강사이기도 했다.

   2012년 은퇴 후에도 학교는 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연구실도 그대로 남겨두었고, 교수 명단에서도 오랫동안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그만큼 시카고 신학교에서 로버트 무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2016년 6월 22일 시카고 경찰은 로버트 무어 교수가 부인과 함께 총에 맞은 채 발견되었다는 보도와 함께 ‘아직 사고의 원인은 조사중이다’라고 브리핑하였고, 다음 날 로버트 무어 교수가 부인을 권총으로 쏴서 먼저 죽이고 본인도 바로 스스로 자살했다고 공식 발표를 하였다. 그리고 “아직까지 알콜, 약물중독, 마약에 의한 혐의는 밝혀진 바 없 다”라는 소견을 달았다.

   교수님이 왜 자살했을까? 한동안 내가 10년 동안 봐 왔던 무어 교수가 했던 말과 그의 모습 을 되살리면서 무어교수의 죽음을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려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자료들을 가지고는 온전히 그것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우리가 어떤 사건과 인물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일까, 라는 생각과 함께 ‘무어 교수가 발견한 당신 안의 그것이 과연 무엇이엇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얼마나 그것이 매혹적이고 좋았으면 선생은 이생에서의 삶을 그리 서둘러 단축했을까.

    하지만, 이런 결정은 내가 아는 무어 교수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선택이었다. 그렇게 폭력을 혐오하고, 폭력에 저항했던 선생이었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그리고 자신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며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나로서는 당혹스럽다.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까. 일단, 지금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무어교수는 나에게 신학이 얼마나 매력적인 학문인지, 아니 신학이 얼마나 불안하고 균열이 가득한 학문인지를 일러준 스승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2016년 6월 30일 일기 中에서


   자살에 대한 해석


    사건 직후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수소문을 해봤지만 사건에 대한 자세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시카고 지역 신문에서 사건에 대해 몇 차례 보도되어 약간 술렁이는 듯 하더니 그것으로 끝이다. 시카고 신학교 차원에서 유감의 표현과 추모예배를 드렸다는 소식도 들었다. 사 건이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소식은 들은바가 없다. 무어 교수 부부의 소장품들이 경매 사이트에 올라왔다는 소식, 무어 교수 집 앞에서 책이랑 생활용품을 펼쳐놓고 무슨 업체 같은 데서 나온 사람들이 garage sale 하는 것을 봤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마 도 두 노부부의 유품을 정리하고 처분해 줄 가족조차 없어 그런 일을 대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뒷처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무어 교수 집 근처에 사는 옛 동료가 귀뜸해 주었다. 와이프가 심각한 건강 이상에 시달렸다는 소식, 무어 교수가 2012년 돌연 학교에 사의를 표하 고 사라졌는데 그 무렵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는 소문까지... 그 누구도 무어 교수에 대해 아무것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무어 교수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까. 아내를 먼저 총으로 쏴서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신학교수를 말이다.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가고, 중세 때는 자살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었으며, 자살자의 교회 예식에 따른 장례식은 로마 카톨릭에서는 거부되고 있다. 왜냐하면 자살이 회개와 용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이유에서이다. 자살에 대한 그 리스도교 차원에서의 공식적 반대의견은 중세 스콜라 철학을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에 와서 정교하게 완성되었다. 아퀴나스가 자살을 반대한 이유는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인간의 자기 사랑과 자기 보전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의무이며, 둘째, 인간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 고, 셋째, 생명의 권한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교리적이고 율법적인 잣대로 자살자의 입장과 처지에 대한 이해와 배려없이 자살을 반대하는 그리스도교의 주장은 너무나 무지하고 폭력적이다.

    이것보다는 좀 나아 보이는 그리스도교의 자살에 대한 이해가 있다. 그리스도교가 자살을 거부하는 이유는 복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 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것이 된 존재, 이것이 교회에서 말하는 복음의 핵심이고 이것을 믿는 사람들을 크리스챤 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법칙과 강제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사람들이고,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온갖 속박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이 말은 크리스챤은 세상의 명령과 육신의 명령에 따라 살지 않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현실의 어려움과 절망과 환난 가운데서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러한 괴로운 질문으로부터 해방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현실의 환난에 처한 크리스챤들에게 현실을 견디는 희망으로 작동할 수도 있 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복음의 능력으로 자살의 충동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정신의학에서 일탈적 행위를 보이는 개인이 치료를 통해 사회로 복귀하는 것과 같다. 사회, 즉 대타자는 완벽하다. 완벽한 대타자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순응하지 못하는 개인이 문제다. 정신병 걸린 사람이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러니 그 사람들을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병원에서 하는 것이다. 이를 자살과 복음의 관계에 적용하면 이렇다. 복음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완벽하다. 자살은 복음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복음을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런데, 과연 복음이 완벽한 균열이 없는 매끈한 진리인가. 어처구니 없게도 20세기 내내 전 세계적으로 복음전파의 모범으로 군림했던 대한민국이 압도적으로 자살율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자살공화국


    2014년 2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엄마 박모(60) 씨와 장녀 김모(35) 씨, 차녀 김모(32) 씨가 번개탄을 이용 동반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현장에서는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와 함께 다음과 같은 메모가 발견되었다; “주인 아주머니께...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사건은 생활고에 시달 리던 선량하고 정직한 서민이 시스템이 정해 놓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힘겹게 살다가 그 법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그 법의 명령을 어길까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발생했던 2014년 그해 우리나라 자살율은 세계 최정상급이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통계청 2014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은 10만 명당 28.7명이 자살한다고 한다. 이는 하루에 40명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말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 1위다. OECD 평균이 12명인데 한국은 두 배가 넘는 수치다. 헝가리(19.4명)와 일본(18.7명), 슬로베니아(18.6명), 벨기에(17.4명) 등이 자살율이 높은 나라들이라고 하는데 한국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하지만 한국의 자살률이 처음부터 고공행진을 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만 해도 자살률은 8.8명으로 당시의 일본(17.5명)과 독일(17.1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랬던 한국의 자살률은 1997년 IMF와 2008년 미국발 금융대란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며 급증했다. 자살률은 IMF이후 서서히 증가하여 2000년 13.6명, 그리고 2003년 22.6명으로 껑충 뛰었다. 2009 년 31.0명, 2010년 31.2명, 2011년 31.7명으로 가파르게 올라갔다가 2012년 28.1명으로 줄어든 이후 2013년 28.5명으로 다시 상승했다.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자살의 원인은 고령화와 경제난이라고 한다. 인구 고령화 시대로 치닫는 사회적 추이속에서 노인들의 삶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있고, 노인들을 섬기고 대우해주었던 공동체는 파괴된 지 오래다. 전 세대 전 연령층에서 자신들에게 닥쳐온 현실적 삶의 무게 를 견디느라 모두가 아우성이고 그런 까닭에 우리 이웃을 돌아볼 물리적, 감정적 겨를이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나라 살림도 어려워 각종 복지정책은 뒤로 밀리고 있고 그에 따라 사회적인 안전망이 제거되는 상황속에서 한국은 그야말로 위험사회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한민국은 압도적 자살국의 지위로 등극하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자살율을 감소시킬 수 있을까? 시간당 시급을 만원으로 올리고, 기초생활 수급자 대상의 층과 범위를 확장하고, 임시직.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70세 이상 노인들에게 월 50만원 정도씩 보장하고, 치매와 암, 그리고 기타 불치병 희귀병의 치료와 후원에 국가가 전면적으로 개입하면 자살문제는 해결될까? 그렇다면 분명 자살율은 감소할 것이고, 그러한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우리의 권리를 부르짖으며 사회적 안전망을 다시 재건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물리적인 노력들을 실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살에 대한 공부다. 우리는 그동안 진지하게 자살을 다루어 본 적이 없다. 자살은 감추고 숨기고 피해야 하는 마치 주홍글씨 같은 낙인과 같아서 자살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었 기 때문이다. 자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자살에 대한 객관적 안내를 제공하는 자료가 지금 소개할 뒤르겜의 『자살론』이다. 100년도 훨씬 전에 뒤르겜의 자살에 대한 통계를 바탕 으로 작성한 이 책은 희미하고 불명확했던 자살의 현상학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빛나는 성과라 할 수 있다.


   뒤르겜의 '자살론'


    자살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 성과물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에밀 뒤르겜의 ‘자살론’[각주:2]은 자살을 둘러싼 현상학 혹은 종교사회학에서 이룩했던 성과 중 단연 빛나는 저작으로 지금까지 손꼽힌다. 뒤르겜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 자살의 요인들, 예를 들어 정신질환, 유전적 요소, 인종적 특징, 계절과 자살의 관계, 알콜과 자살, 빈곤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한 후에 “자살은 사회적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다”[각주:3]라고 말하였다. 뒤르겜의 발언은 자살이라는 죽음의 형식이 근대성의 일면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알렸고, 그것은 현대의 자살현상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다.

    고. 중세 시대에도 물론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당대의 봉건적인 이데올로기와 종교가 내세우는 강압 속에서 수치스럽고 욕된 삶을 산다고 생각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어 산업의 구조가 바뀌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끼리의 관계가 촘촘히 얽히기 시작하면서 자살율은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봉건사회보다 근대사 회는 사회적인 끈끈함(social cohesion)이 느슨한 이기적(egoistic) 사회이다. 뒤르겜은 이기주의를 자살의 중요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지나친 이기주의는 자살을 유발하는 원인을 촉 발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자살을 유도하는 원인이다.”[각주:4] 근대로 접어들면서 개인주의적인 삶이 고착화되면서 공동체를 바탕으로 했던 삶의 원리는 점차 사라져갔고, 개인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정글속에서 홀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뒤처지고 도태되는 개인이 다시 사회로 편입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근대적 삶의 패턴과 자살율의 증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뒤르겜은 최종적으로 사회적 통합의 정도가 자살율의 감소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하 였다: “자살은 종교 사회의 통합, 가족사회의 통합, 정치사회의 통합 정도에 반비례한다.”[각주:5] 뒤르겜에 의하면 자살율 1위를 자랑하는 한국사회는 종교의 사회 통합 기능면에서 실패하였고, 가정의 붕괴와 정치의 상실 또한 이미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실제로 한국은 전체 가구 중에서 1인 가구의 비중이 30%에 접근해가고 있고, 서울시의 1인 가구비율은 30%를 훌쩍 넘었다. 개인의 삶을 지탱한다는 최소 단위인 가정이 빠른 속도로 해체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 또한 한국 국민의 성직자, 특별히 개신교 목사에 대한 신뢰와 존경의 수준은 밑바닥이고,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도 성직자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한국사회의 현실은 뒤르겜의 자살률 증가원인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눈여겨 볼만 하다.

    뒤르겜의 『자살론』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종교별 자살율 추이다. 종교별 자살율은 개신교-카톨릭-유대교 순으로 개신교가 월등히 높다.[각주:6]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우선 개신교는 가톨릭과 유대교에 비해서 응집력이 느슨하다. 유대교와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훨씬 조직의 힘이 강하고 뚜렷하다. 예전과 교회법을 중시하는 면에서도 개신교를 월등히 압도한다. 유대교와 카톨릭에 비해 개신교는 훨씬 개인적이다. 개인의 결단이 구원의 필수요소이고, 신과의 접촉도 사제라는 매개없이 직통으로 가능하고, 경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평신도 각자가 말씀에 대한 이해를 갖고 신 앞으로 나간다. 신과 개인 사이 일대일 관계를 강조하는 개인주의적 성격이 가장 강한 종교가 개신교라는 것이다. 개인의 탄생이 근대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때, 개신교는 근대정신과 부합하는 종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성향의 개신교도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을 이해 하는데 있어 중요한 포인트이다. 한국 개신교도들의 자살률만을 따로 떼어 연구한 결과물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의 신앙패턴이 자살율과 상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나는 자살에 대한 전통적 해석과 뒤르겜의 『자살론』을 토대로 자살이라 는 현상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글의 후반부에서는 자살에 대해 유독 거부반응을 보이는 그리스도교의 자살 해석에 대한 반론이 도모될 것이다.


   신의 음성, 신의 위로


    “보아라, 예루살렘아,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을 늘 지켜보고 있다”(이사야 49:16)


    이사야서는 구약성서 예언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는 예언서이다. 이 책은 바벨론 포로기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이사야서는 66장까지 있는데, 흔히 1-39장을 제1이사야, 40-55장을 제2이사야, 56-66장을 제3이사야서라 부른다. 제 1이사야는 바벨론으로 잡혀가기 이전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사야 예언자가 하나님을 대신해 심판과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고, 제 2이사야는 바벨론으로 잡혀가 절망과 슬픔과 비탄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이다. 제 3이사야는 새로운 희망을 선포하는 메시지다. 위에 적혀 있는 이사야 49장은 위로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제 2이사야 중 한 대목 이다.

    고대시대 전쟁에 패한 국가의 백성들은 포로의 신세로 전락하였고, 포로들의 삶이 어떠했는 지는 미루어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남자들은 끌려가서 고된 일과 또 다른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었고, 패전국의 여인들은 승전국 남자들에게 의해 온갖 고초와 능욕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더러는 모진 노동에 시달리다 죽을 것이고, 더러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모진 운명에 저항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기의 존엄을 지키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람들 향해, 그렇게 주변에서 사라진 형제, 자매와 부모, 자식을 기억하고 있는 살아남은 자들을 향해 신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희들의 이름을 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이다.

    극심한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이 말이 무슨 소용이 있나, 라는 부정적 마음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이 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 하나하나의 이름을 애도한다는 신의 위로가, 삶의 공포와 절망에 지쳐 생을 포기한 이들 하나 하나의 이름을 다 기억하겠다는 신의 다짐이, 욕된 세월을 여전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이렇게 말하는 신이 자살한 사람들에게 벌을 주었으리라고 생각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은 그 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 하나하나의 이름 을 당신의 손바닥에 꾹꾹 눌러 새기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신이라면 오히려 “너를 쓸쓸히 혼자 내버려 둬서, 너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자살을 고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사를 찾아와 상담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첫째는 목사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한국교회가 보여 온 번영지상주의, 축복 일변도의 신앙패턴도 영향이 있다. 축복받은 삶만이 신앙의 결실이자 열매라는 잘못된 신앙이 어느 때부터 주입된 관계로, 실패한 사람이나 삶이 주는 무게로 인해 신음하는 사람들은 믿음 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받기에 교회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신은 정 말로 번영과 축복만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만을 칭찬하고 반기는 신인가?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을 떠나기 전에 모세가 신에게 “저에게 주님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33:18)라고 요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러한 모세의 요청 에 신은 이렇게 답하였다.“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33:23) 멀리 길을 떠나는 친구에게, 새로운 사업과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다짐을 굳게 하는 친구가 찾아와 복을 빌어달라고 요청한다면 여러분은 뭐라 말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될거야, 넌 할 수 있어,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의 뜰거야...”등의 온갖 긍정 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 그렇게 일이 술술 잘 풀리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길을 떠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축복을 빌어주십시오”라는 요청에 하나님은 가장 정직한 답변을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 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너희들이 원하고 생각하는 축복을 내게서 보이라면 난 그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무심하지만, 항상 없는 듯 너희 곁에 있다”고 말이다. 다석 유영모는 이런 하나님을 “없이 계시는 분”이라고 말하였고, 디트리 히 본회퍼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라는 아포리즘으로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표현하였다.

    나는 신이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빛으로 인도 하시지만, 우리 앞에서 그 빛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빛은 우리 앞에서 비추는 빛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등 뒤에서 길을 비춘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강렬한 빛이 내 눈 앞에 있으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의 눈이 멀고 만다. 빛은 오직 등 뒤에서 비출 때 우리가 갈 길을 밝힐 수 있다. 그리고 그 빛이 우리 등 뒤에서 비추는 까닭에 그림자가 우리 앞에 있다. 그 그림자는 물론 우리 자신의 그림자이다. 신이 인도하는 삶, 빛으 로 밣히는 길 위에도 어둠과 그림자가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인생의 그림자를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던 사람들의 마음과 행위를 좀 더 나의 문제와 현실로 받아들 일 수 있지 않을까. 자살한 사람들의 결정에 그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다”라고 한 신의 자비만을 구할뿐이다.


   신정론(Theodicy)에서 인정론(Anthropodicy)으로


    정신과 의사들에 의하면, 자살을 택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살기를 원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살에 대한 죄악성 유무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만일 자살의 원인이 온갖 숨겨진 폭력에 기인한다면, 자살의 동기가 경제적 위기, 혹은 외로움과 고독 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것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모두가 자살의 잠재적 가해자인 셈이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한 책임은 살아남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 대목에서 자살에 대한 문제는 신정론에서 인정론으로 넘어온다.

    이유와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에 대한 해석은 모든 종교들이 최종적으로 고심하는 난문제이다. 고통에 대한 정의가 어려운 이유는 고통에 대한 이해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수 만큼 이나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고, 각 종교 전통마다 고통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 다.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은 기독교 전통에서 말하는 고통과 악에 대한 신학적 답변이다. 신정론은 의인에게 닥치는 고난과 악의 명백한 현존 속에서도 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한 다는 사실, 그런 신의 전능과 계획에 의해 악과 고난은 현실적 차원이 아닌 신의 섭리가 작동 하는 영역으로 고양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이론이다. 현재의 고난은 미래에 도래할 축복의 징 표, 라는 신정론적 위안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알 수도 없고 설명도 불가능한 고난 속에서 흔들리는 믿음과 신앙을 지켜주었던 강력한 신학적 근거였다.

    레비나스는 그리스도교의 신정론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지난 20세기에 발생한 양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히로시마 원폭 등으로 대표되는 대학살의 기록은 더 이상 고난의 유의미성을 내세우는 신정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신정론이 내세우는 고난의 낙관성, 즉 신적 섭리로서의 고난, 고난의 유미성에 대한 해석이 고난 자체에 대한 객관적 이해의 길을 막는다고 하면서 신정론의 폐기를 선언하였다.[각주:7]

    자살의 문제는 원인과 이유도 모른 채 다가오는 우리시대 대표적인 고통의 현상학이다. 기존의 신정론은 자살의 유의미성과 자살 뒤에 숨겨진 신의 섭리에 대해 주목하라고, 그리고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너의 (개인)구원에 몰두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러한 답변은 고통 의 당사자 혹은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일 뿐 아니라, 자살을 유발하는 원인과 책임에 대 한 방임과 면책의 사유가 된다.

    이 대목에서 자살에 대한 신정론적 회피는 인정론적인 대응으로 전환된다. 인정론은 고통과 탄식 가운데서 발견해야 할 인간의 몫에 대한 문제이다. 신정론이 고통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신을 향한 인간의 질문에서 비롯된다면, 인정론은 고통에 직면했을 때 역으로 등장하는 인 간을 향한 신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신정론의 질문이 “왜 내게 이런 고난이 발생합니까?”라면, 인정론적 질문은 “거기 너 있었는가?”이다. 성서에 나오는 신의 인간을 향한 질문들, 예를 들어 에덴에서 범죄를 저지른 아담을 향한 신의 질문인 “네가 어디있느냐?” 복음증거를 핍박하는 사울을 향한 신의 음성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를 떠올려보면 신을 향한 우리 들의 질문 못지않게, 신 역시 우리를 향해 묻는다: “이 고난의 현장에서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결국 인정론은 고통의 시대, 죽음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질문하는 신의 물음이라 할 수 있겠다.

    자살에 대하여 내가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자살을 향한 인정론적 개입이다. 신정론적 낙관 혹은 관조로 한국사회 자살 현상학을 바라보지 말자. 그러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고, 그렇게 대응하다 우리 모두는 한국 사회 자살열풍의 부역자 내지 당사자가 될 수 있 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살에 대한 책임적인 물음과 자세를 가질 때만 이 죽음의 대열이 잠잠해 질 것이다. 우리시대 고통의 요체가 무엇인지, 자살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자살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것이 살아남은 우리들이 던져야 하는 질문이고 행동의 원 칙이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켜켜이 쌓인 고통의 결을 드러내고 그 진실의 힘으로 죽음을 생산하는 매커니즘을 해체하는 것, 그것이 인정론적인 개입 안에 담겨진 기대이고 요청일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2017년 6월 25일 한백교회 “하늘 뜻 나누기” 원고를 각색했습니다. [본문으로]
  2. 에밀 뒤르겜 지음, 황보종우 옮김, 『자살론』 (파주: 청아출판사, 2008) [본문으로]
  3. Ibid., 129. [본문으로]
  4. Ibid., 251. [본문으로]
  5. Ibid., 249. [본문으로]
  6. Ibid., 173~185. [본문으로]
  7. Emmanuel Levinas, “Useless Suffering” in Entre Nous: On Thinking-0f-the-Other. Trans. Michael B. Smith & Barbare Hsrshav.(New York: Columbia Uiversity Press, 1998), 9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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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오는 곳[각주:1]

성령을 둘러싼 세 가지 에피소드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창 1:2)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이와 같다.”(요3:8) 

“그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행 2:4) 



프롤로그 


    키에슬로브스키라는 폴란드 영화 감독이 있습니다. <십계>(1988) <살인에 관한 짦은필름>,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1988),<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 <세 가지 색: 블루(1993), 화이트(1994), 레드(1994)>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초기 작품들에서는 동구권 특유의 사회주의적인 리얼리즘에 입각한 사회적 문제를 영화화 하였고,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거대한 이야기, 선 굵은 주제의식보다는 단일한 해석으로 묶일 수 없는 사건과 의미의 유동성, 혼종성으로 주제를 옮겨갑니다. 특별히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과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 색> 시리즈에서는 이데올로기적인 허위의식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보다는, 우연과 improvisation (즉흥성)이 어쩌면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하고 영위케하는 본질 아닌가, 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우연과 즉흥성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들끼리의 관계, 사랑과 미움들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바로 <세 가지 색: 블루> <세가지 색: 화이트> <세가지 색: 레드>입니다. 블루에는 ‘뽕네프의 연인들’로 막 뜨기 시작한 즐리엣 비노쉬가 나왔고, 화이트에는 비포선 라이즈에 나왔던 쥴리델피가 나오죠. 레드에는 이렌느 야곱이 나옵니다. 블루(자유), 화이트(평등), 레드(박애) 프랑스 혁명의 3대정신인데, 영화가 이것을 제목으로 삼은 이유는 역으로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는다는 것, 그리고 사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자유스러운 구속이고, 불평등 관계이며, 미움과 증오가 작동하는 이드(Id)의 장인지를 말하고자 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 자유와 평등과 박애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순수하고 절대적 이상과 가치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인간사이 부자유한 관계 속에, 불평등한 관계 속에, 평화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그것들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자유와 평등과 사랑은 불가능한 가능성의 형태가 아닐런지요.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세 가지 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늘 뜻 초반에 한 이유는,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성령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의 도입을 이끌어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늘 뜻 제목을 <성령에 대한 세 가지 에피소드> 라 붙였습니다. 과연 성령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면 성령이 손에 잡힐까요. 그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Episode 1 : 빛과 성령


   여러분 성령받으셨나요? (보통 영화에서는 아멘 합니다) 성령이 무엇이고, 성령을 받은 사람, 혹은 성령을 받은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성령체험의 상태는 무엇인지, 뭐 이런 것이 성령론의 주된 테마입니다. 90년대부터는 영성이라는 말로 진화되어 사용되었고, <사회적 영성>에 대한 책도 나왔죠. 흔히 ‘성령을 받았다’함은 종교적으로‘깨달음을 얻었다’라는 말로도 전환이 가능할 것 습니다. 각 종교마다 ‘깨달음’을 중요시 하죠. 일시적. 찰나적 깨달음을 중시하는가, 아니면 깨달음의 수행적 측면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종교적 파벌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제가 2주전에 “(우리를)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라는 주기도문을 테마로 한 마지막 하늘 뜻을 나누면서 악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가 거라사에서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 축귀하는 사건을 통해 악의 전체성, 집단성에 대해 밝혔습니다. 이 구절 이외에도 성서에서 악이 무엇인지를 떠올릴 수 있는 구절은 곳곳에 많이 분포합니다. 그것은 창세기를 펼치자마자 등장합니다.

   창세기 1장 2-3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혼돈, 공허, 어둠, 깊음>의 단어는 악이 삶에서 출몰할 때 벌어지는 악의 현상학이 아닐까 합니다. 혼돈과 공허는 일종의 쌍입니다. 혼돈은 형태가 없는 것이라 할 수 있겠고, 공허는 비어있는 상황을 암시합니다. 둘 다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 구분이 되지 않고, 판단이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이죠. 인간은 모르면 불안해하고, 형체나 대상을 짐작할 수 없을 때 공포를 느낍니다. 유령은 바로 형상이 없는 존재입니다. 형상과 질서가 있어야 세계와 자연은 안정을 찾고, 그 안정된 터전위에서 비로소 생명은 피어나고 활동을 개시합니다. 혼동과 공허, 카오스적인 상태에서는 불안과 공포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창세기의 저자들은 혼돈과 공허를 악의 근원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다음 창세기 구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루아흐 엘로힘; a wind from God)이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어둠과 깊음> 이 가득한 곳에 하나님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성경에서 공식적으로 한 첫 번째 음성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이것입니다. “빛이 생겨라”, 그 다음 구절에 보면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적혀있고, 하느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고 어둠을 밤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사실은 영을 빛과 연관시키는 대목입니다. 이것은 서양의 정신사에서 진행되어 왔던 온갖 종류의 빛의 해석학과 현상학의 기원이 됩니다.

    빛(밝음, 이데아, 근원적 진리)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형이상학의 동심원적 구조에서, 변방과 주변은 빛의 효력이 비치는 않는 영역입니다. 그것은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 주의서부터 근대의 계몽주의까지. 계몽주의를 Enlightment라고 하죠. 가운데 빛(Light)배치되어 있습니다. 몽매한 중세의 어둠을 빛(light)의 명증성으로 밝히겠다는 의지가 계몽이성입니다. 빛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서구 역사에서 대상들은 타자로 설정되었고, 빛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상은 타자화되어 정복과 계몽과 타도와 착취와 훈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창세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은 곧이어 등장하는 ‘빛의 탄생’과 연동되어 빛과 어둠을 나누어 배제와 혐오의 메카니즘을 작동시키는 처음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라는 불순한 생각을 들게 합니다.


Episode 2 : 성령의 유령성(Haunting)


    두 번째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성경구절은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입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유대 사람의 지도자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예수는 구원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달려온 니고데모에게 “그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이와같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합니다. 이때 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바람이 불어가는 곳은 ‘어디(Where)’라는 의문사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goes). 예수에게 있어 바람이란 과거의 어디론가 부터 불어오는 바람이고, 또 그것은 어딘가를 향해 불어가는 바람입니다.

    의문사 where로 처리된 공간과 시간은 메시아의 때이고 메시아의 공간임을 암시합니다. 성서는 그 시간과 공간을 빈 시간과 공간으로 남겨둔 채, 즉 메시아의 도래를 텅빈 기표로 남겨둔 채, 바람이 들고 날 수 있도록 허락 하였습니다. 그 바람이 어딘가에서부터 불어와 우리를 감싸고 우리를 데리고 어딘가로 인도할 것입니다. 예수는 이것을 ‘바람이 분다!’라는 시적인 문장으로 진술하였습니다.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성령은 빛의 명증성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오히려 어떤 진리에 대한 강박과 히스테리에 빠져있는 니고데모를 향해, 성령충만을 갈망하고 그것을 향해 질주하는 오늘의 신앙인들을 향해 찬물을 끼어얹는 듯합니다. 현실을 지배하는 성령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에 대해 딴지를 걸면서, 현실에서 불순물과 균열과 틈으로 존재하는 성령의 유령(Haunting)성에 대해 요한복음은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이 대목에서 나는 또다시 데리다를 초대합니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데리다는 잘 아시다시피『맑스의 유령들 Specters of Marx』(1993)을 출판하였습니다. 당시는 1990년 사회주의 멸망 이후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왕성하게 진행되던 무렵이었습니다. 데리다는 유령론에 대한 모티브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에 있는 한 구절,“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에서 빌어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자본주의가 본 궤도에 진입하고 있을 무렵,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마로 공산주의를 도모했던 자들(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가상적 시나리오가 작성되었는데, 그것은 공산주의가 그 운명을 다하고 사라진 후에 유령이 되어 전 유럽을 떠돌아다닌다는 상상이었습니다. 그들의 치기어린 생각은 얄궂게 현실에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실제로 1990년도에 공산주의는 한 세기가 지나지 않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20세기 내내 실험되었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1993년에, 세계를 평정한 자본주의에 대한 송가가 흘러넘치던 그 무렵, 생뚱맞게 데리다가 『맑스의 유령들』을 들고 나오면서 다시금 공산주의라는 유령의 도래를 유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 지구적으로 승리한 자본의 제단에 재를 뿌리는 역할을 한 셈이죠.

    본래 유령에 대한 논의는 심령과학 혹은 환타지 소설에나 등장하는 것이지, 철학과 담론의 장에서는 한 번도 정중히 다루어진 적이 없는 소재입니다. 왜냐하면 철학이란 분명한 언어와 개념을 지향하는 학문인 관계로, 유령과 같은 불확실하고 초현실적인 개념은 취급불가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유령을 끌어들여 현실의 법칙이 되어버린 전지구적 자본에 흠집을 내려는 데리다의 시도에 사람들은 의아해했습니다.

    유령이 무엇입니까? 과거에 대한 기억과 애도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제거되거나 억제될 때, 현재로 도래하는 무엇이 바로 유령입니다. 데리다는 <맑스의 유령들>에서 햄릿에 등장하는 죽은 아버지의 유령을 거론합니다.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한을 햄릿에게 갚아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말입니다. 비단 햄릿에서뿐 아니라, 동서양 문학작품들에는 이런 유령이 현실로 귀환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합니다. 얼마 전 공유와 김고은이 나왔던 <도깨비>도 유령의 귀환이고. <장화.홍련>도 그렇습니다.

    데리다가 말하는 유령론의 핵심은 “time is out of joint. 시간은 탈구다”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혼종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변증법적 인과율과 시간의 흐름(과거-현재-미래)이 지배하는 현실의 질서가 뒤틀리고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이 유령론의 핵심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볼 때, 2016년 늦가을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데리다의 유령론이 실재가 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세월호의 유령이 대한민국의 정의와 진실을 밝히는데 있어 원동력이 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구천을 떠도는 세월호의 영령들이 우리를 지치지 않게 하였고, 그리하여 수백, 수 천만명의 시민들이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내내 광화문에서 촛불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봄에 대통령 박근혜는 탄핵되었고, 5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정권은 교체되었습니다. 데리다가 살아있었더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 “당신이 말했던 유령론이 한국에서 실재가 되고, 역사가 되었다”고 저는 자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대목에서 주의하여야 합니다. 유령은 중심이 꽉 찬 기표 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텅 비어 있는 기표와 같습니다. 바람이 우리의 손에 잡히지 않듯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성령을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이라고 규정을 한 후에,“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부연설명을 하는 것 아닐런지요. 결국 성령이란 역사의 어느 풀리지 않는 매듭에서 메시아적 계기를 불어넣고 정작 자기는 어떤 체계에 갇히지 않고 불고 싶은 곳으로 사라지는 새로움 이어야 함을 예수는 말하고자 했던 아닐까요.


Episode 3 : 소통의 영


    사도행전 2장은 유명한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임재한 성령강림에 대한 기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앞에 보면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2:2)이 내려온 이후에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2:3) 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서, 방언의 은사가 발생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스터리 한 것은 그 다음구절입니다.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2장 6절-7절).

    이 본문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간단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남왕국 유다가 587년에 망한 후에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60-70년 세월이 흐른 후 에스라-느헤미아때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죠. 하지만, 그때 돌아오지 못하고 바벨론에 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일제시대를 연상하면 됩니다. 해방이 된 후에 일본으로, 만주로, 연해주로, 중국으로, 중앙아시아로 끌려갔거나 흩어졌던 조선백성들이 해방 후에 한국으로 모두 돌아오지 못했던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 귀환 후부터 500년 이상 흐른 시간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오백년이면 세대로 따져도 15세대 이상이 흐른 다음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지 어언 70년이 되어갑니다. 지금 각지로 흩어져사는 한민족들이 이민 2세대, 혹은 3세대까지 생겨났습니다. 사할린에, 일본에, 만주에, 중국본토에, 러시아에,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한국어를 잘 구사할까요? 미국에 살고 있는 교포 자제들인 경우 대부분 영어만 사용할 줄 알았지 한국말 구사는 못하는 경우가 거의 다반사입니다.

    이렇듯 2세대 3세대까지 흘러도 모국어를 잃어버리는데, 바벨론 패망 이후 500년이 넘게, 15세대, 16세대, 17세대 넘게 이방 땅에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는 어떠했을까요? 마찬가지 경우가 아니었을까요. 그들 역시 흩어져서 지금 거하고 있는 그 땅의 풍토와 문화와 언어에 동화된 채 오랜 세월을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고국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살아왔습니다. 다행히 야훼 신앙을 간직했던 사람들이 있어 그들 가운데 있어, 민족의 명절인 오순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성경에는 그들이 바대인, 매대인, 엘람인,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보도와 아시아….등지에서 몰려들었다고 적혀있습니다(사도행전 2:9-11). 우리로 따지면 재일교포 15세, 재미교포 16세, 재중 교포 16세, 재러시아 교포 17세, 재멕시코 교포 15세, 재하와이 교포 16세, 재타슈겐트 교포 15세, 재사할린 교포 15세가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한 것이다.

    그 사람들 앞에서 제자들이 말을 했다고 적혀있습니다. 제자들이 그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했을까요? 복음을 전했겠죠: “내가 만났던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 분은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구원받습니다. 그 분은 우리 같은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내가 곧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그 분이 말한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성령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뭐가 그리 놀랍다는 거죠? 내가 지금 한국말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미국사람, 일본사람, 중국사람, 멕시코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한국말을 모르죠. 그런데 성령의 바람이 임하니까 내가 한국말로 설교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나라말로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에 너무 놀라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냐? what does this mean?”

    “저 사람이 지금 한국말로 설교를 하고 있는데, 난 영어밖에 모르는데, 나는 일본말 밖에 모르는데, 나는 중국말 밖에 모르는데, 나는 한국 말은 배워 본 적도 없는데, 어찌하여 한국말 설교가 내 귀에 들리는 거지? 이게 어찌 된 일이야? What does this mean?”“나는 메소보다미아 말밖에 모르는데, 나는 갑바도기아 말밖에 모르는데, 나는 아라비아 말밖에 모르는데, 나는 로마말 밖에 모르는데, 나는 이스라엘 말을 모르는데 어찌하여 이스라엘 사람이 하는 설교가 내 귀에 들리는 거지? 이게 어찌 된 일이냐? What does this mean?”“우리가 출신 성분도 다르고, 자라온 배경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고, 문화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임해서 그 모든 차이와 다름이 극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What does this mean?”

    여러분 성령을 체험했다는 것은 무슨 마술적인 신비체험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성령을 받은 공동체는 우리 사이에 있는 모든 차이와 차별을 성령의 능력으로 물리치는 공동체입니다. 진정 성령을 받은 공동체는 우리 사이에 있는 모순과 분열을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가 되게끔 하는 공동체 입니다. 진정 성령을 받은 공동체는 우리 사이에 있는 상처와 아픔을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하는 공동체 입니다.  

    사도행전이 말하는 성령강림사건을 종합하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방언의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치유의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며, 예언의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성령의 능력은 차이와 다름을 매개하는 의사소통의 성령, 대화적 성령인 셈입니다.


에필로그


    제가 오늘 하늘뜻 이야기에서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다음 주일이 <성령강림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한지 오십일이 되는 날 마가의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일반인들이 달력을 쓰듯, 교회전통에서는 교회력을 씁니다. 오늘이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이고, 다음주일부터 교회력상으로는 성령강림 첫 번째 주일이 시작됩니다. 성령강림이 교회역사에서 중요했던 이유는 예수의 부재이후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 사이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둘러싼 많은 논쟁이 있어왔고, 그것들은 당연히 잘 정리되지 못한 채 균열과 틈이 가득 찬 채 그대로 봉합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역사였다는 것이죠. 그것이 초대교회의 고백입니다. 그 성령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질문과 의혹은 여전히 현재에도 유효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성령에 대한 세 가지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성령이 제일 본인에게 맞습니까? 세 가지 성령을 우리가 다 받으면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까? 어쩌면 성령이 지금 말한 저 세 가지 범주 밖 어딘가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어쩌면 성령은 성령의 텍스트성에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작동하는 컨텍스트를 들여다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성령의 법칙성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문득 이 순간 지난 30년 동안 한백을 한백이게 했던 성령의 역사는 무엇이었을까, 라는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창립 30주년을 맞는 올해 한백의 영성에 대해 각자가 한번 쯤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고백해보는 시간들이 가끔씩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 웹진 <제3시대>



  1. 한백교회 5월28일 ‘하늘뜻 나누기’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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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15년 전 내가 노무현을 찍기까지 


    5.18 37주기를 한 주일 앞두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성가대가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이 아니라 제창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되고 나서 나흘이 지났는데 여러 부분에서 개혁적인 청사진을 펼지고 있습니다. 국정교과서문제, 비정규직 문제, 위반부 재협상 문제, 최순실, 세월호 사건 재조사, 청와대 비서진의 진용 등, 국민들로 하여금 많은 기대를 하게끔 합니다. 물론, 앞으로 수구보수 세력에 의해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딫치겠지만 잘 헤쳐나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15년 만에 대통령선거에 참여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때는 미국 시카고에 유학중이었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시카고에서 듣고 불쾌하고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손 꼽아 기다렸나 봅니다. 15년 만에 대통령 선거를 하러 투표장소로 가는데 15년전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노무현이 당선되었던 그 선거 말입니다. 저는 당시 민노당 당비를 내던 당원이었습니다. 당시 민노당 대선 후보로 권영길이 나왔습니다. 정몽준과 노무현의 연대가 선거전날인가 깨졌죠. 저 뿐만이 아니라 민노당의 많은 당원들이 흔들렸습니다. 선거 당일 투표소로 가면서도 누구를 찍을지 결정을 못했습니다. 핸드폰으로는 민노당에서 문자메세지가 막 왔죠. 흔들리지 말고 권영길에게 투표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당시 저는 노무현을 찍었습니다. 노무현을 찍으면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정치적 선택이 최선이 아닌, 최악을 피해야하는 소극적 행위구나, 라는 현실정치에 대한 한계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최악을 피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일이고, 사력을 다해 온 힘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서글프기 까지 했습니다. 그 즈음에 신학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라는 물음을 갖고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랑 한 동안 실랑이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저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미국에서 노무현 정권의 어려움, 이명박의 당선, 노무현의 죽음, 박근혜의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지 한 달만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세월호 사건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정부의 대처는 결국 박근혜 정권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정권이 침몰한 것 같으나 더 근본적으로 민심을 버린, 자식을 버린 정권에 국민들이, 아니 하늘이 심판한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숨가쁜 사건들을 지나고 저는 다시 15년 만에 대선에 참여했습니다. 15년 만에 대선에 참여하면서, 15년 전 직면했던 문제와 다시 대면했습니다. 15년 전 대선에서는 권영길을 찍을까, 노무현을 찍을까, 였는데, 15년이 지난 2017년 대선에서는 심상정을 찍을까, 문재인을 찍을까, 여러분 제가 누구를 찍었을까요?  


도입


    제가 올 들어 주기도문에 대한 연속 하늘 뜻을 나누고 있고, 오늘이 마지막 여섯 번째 ‘악(惡: Evil)’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이 말은 예수 당시 일반 민중들이 메시아에게 기대하는 바이고, 메시아를 향한 염원의 최종 완결판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주기도문의 마지막을 ‘우리를 악에서 구해 달라’는 간곡한 기도로 끝을 내지 않았을까 합니다. 좀 오바해서 이 구절을 우리현실에 대입하면, 2017년 대선에 참여했던 대한민국 유권자의 70%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이 이 마음 아니었을까 합니다. 우리나라를 악에서 구해 달라, 적폐를 청산해라, 과연, 문재인은 이것을 실행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다만 악에서 구해 달라’는 예수의 기도는 예수조차도 이루지 못했던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악의 문제는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악은 무엇이고,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오늘 하늘 뜻 나누기에서 제가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내용입니다.


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예전에 조지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이란.이라크, 그리고 북한을 향해 ‘악의 축“ (Axis of evil)이라 지목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란을 생각할때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만든 영화속에 등장하는 이란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가 만들었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사이로‘ ’체리향기‘에 나오는 순박하고 천사같은 이란 사람들이 악의 축이라니, 저는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라크를 생각할때마다,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로, 2대에 걸쳐 이어지면서 폭행을 당했던 불쌍한 이라크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북한을 생각할때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괜히 울화가 치밀고, 너희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라고 따지고 싶습니다.

    어쩌면 악은, 누군가를 악이라고 지목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것이 호명되는 순간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악은 정치적 의도와 음모의 소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악이라 지목하면서 그것을 공식화 한다는 것은, 우리, 즉 내부를 공고히 하여 하나로 뭉치게 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지니는 문제(예: 권력의 정당성, 현실정치에서의 실정, 그 밖의 여러 내부 소란들)들을 일거에 소거할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악은 대부분 정치 권력에 의해 창조되고, 권력의 관심 속에서 길러졌으며, 다 크고 나면 권력에 의해 제거 당해야 하는, 혹은 권력의 유지를 위해 계속 있어줘야 하는 불행하고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이것이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악에 대한 범박한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말하는 '악'


    그렇다면 신학에서는 말하는 ’악‘은 뭘까요? 존재론적으로 악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합니다. 존재론적으로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악의 현상은 우리는 매일 목도합니다. 그것이 세월호 사건이나, 용산참사 같은 거대한 악일 수도 있고, 개개인에게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일상적이고도 미시적인 악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종교에서 악에 대한 물음은 가장 중요한 화두이고, 마지막으로 남겨진 문제였습니다. 이런 악의 심각성을 알기에 예수는 주기도문 제일 마지막에 악의 문제를 배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악’은 너무나 큰 주제이기에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그것을 한 눈에 조망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한 학기 세미나 제목입니다. 오늘 하늘뜻에서는 주로 예수가 말했던 악에 대한 이야기 위주로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것이 악이 존재인가? 비존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했던 사람이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그는 악을 “선의 결핍”으로 규정을 합니다. 우리가 100% 충만한 존재,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을 듣는 완벽한 존재인데, 시간이 흐르고 상처를 받고 아픔을 겪으면서 100% 충만함이 깨졌다는 거예요. 이것을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을 통해 설명합니다. 플로티누스에 따르면 물질이란 일자(一者)의 유출이 끝나는 곳에 위치합니다. 물질은 악의 유통로입니다. 이 말은 악 역시 선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거스틴에게 있어 악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악은 선의 바깥에서 비존재로 위치하는 것입니다. 어둠은 빛의 결핍이고, 추위는 열의 결핍이고, 미움은 사랑의 결핍입니다. 그렇듯이 악도 선의 결핍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이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얼핏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생각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악의 현상을 너무 나이브하게 보는 것 아닌가, 혹은 일종의 어용철학자, 관변학자의 발언인 듯이 보입니다. “세상은 완벽해, 우주는 완벽해, 네가 지금 힘든 것은 현실에 치여서 네가 원래 지녔던 온전함을 상실했기 때문이야. 그 온전함을 빨리 회복하렴. 넌 할 수 있어! 네가 지금 불행한 것은 네가 수양이 부족하고 공부가 부족하고 기도가 부족한거야. 너의 수양과 공부와 기도가 100% 회복되는 날 세상은 변해있을거야. 넌 할 수 있어. 내가 기도할고 응원할께”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요즘 유행하는 힐링관련 책들의 결론입니다. 한국 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힐링 담론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악을 선의 결핍이라 주장했던 어거스틴의 그것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의 생애를 살펴보면, 어거스틴 만큼 또 악의 문제에 맞서 실존적으로 몸부림쳤던 사람은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육체적 쾌락에 탐닉했고, 이교인 마니교에 빠지기도 했으며, 전쟁의 한복판에서 공포속에 떨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열병으로 죽죠. 누구보다도 악의 실존을 철저히 체험했던 사람이 어거스틴입니다. 제가 윤리를 하는 입장에서 어거스틴을 다시 읽으면서 어거스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다르게 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윤리는 기본적으로 선택과 결단, 그리고 행위의 문제입니다.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생각이 나이브할 수 있겠지만, 어거스틴의 발언을 윤리적으로 바라볼때는 나름 유의미한 면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악의 존재론적 의미를 인정하지 않죠. 악을 존재론적으로 인정하는 순간 인간의 무책임이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뭘 해도 안돼. 할 수 없었어, 워낙 악이 강력하니까. 우리의 행위가 소용없어, 세상이 뭐 다 그렇고 그런거지. 그냥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자” 이런 식의 운명론, 혹은 냉소론이 인간이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할 때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어거스틴의 악을 ‘선의 결핍’ 이라고 보는 견해는 신정론(theodicy)이 아닌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인정론(anthropodicy)으로 윤리적 행위를 견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가 말하는 '악'


    그렇다면 예수에게서 악은 무엇이었을까요? 복음서에 보면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예수의 공생애는 크게 두 가지로 예수의 사역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이고, 다른 하나는 기적입니다. 기적은 크게 치유와 축귀로 나누어 집니다. 여러분들 기억나는 예수님의 귀신쫓는 이야기가 뭐가 있습니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 축귀 이야기”(막 5장)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에 대해 마가복음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 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예수가 제일 먼저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네 이름이 무엇이냐?”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엑소시스트들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보면, 악령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사람들 뒤에 숨어서 자신을 감춥니다. 악의 생존방식이죠. 자신을 숨기고 다른 사람을 통해 악을 저지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밝혀진다는 것, 즉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 자체가 악령의 입장에서는 패배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는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악령은 뜻밖으로 순순히 자신의 이름을 털어놓습니다.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My name is Legion; for we are many” (5:9)

    레기온은 단수한 군인들의 무리가 아니라, 대략 육천여 명의 보병과 칠백여명의 기마병으로 구성된 로마의 군단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이 대목에서 악에 대한 실마리가 나옵니다. 그것은 악령이 말했던 we are many 라는 말에서 분명해 집니다. 많다는 것이 악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수가 많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목사들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인 몇 명이야? 몇 명이다” 라고 말하면, “와 많다. 잘 되었네”, 라고 기뻐합니다. 이건 단순히 목사들의 경우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풍요로움을 갈망하잖아요. 그렇다고 볼 때, 악마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우리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답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이 말은 풍요와 성공과 다산을 갈망하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악이 있다는 말일 수 있고, ‘많음’만을 강조하고 추구하는 전체의 생각이 사탄의 논리 일 수 있고, 나라는 개인 역시 많은(many) 사람 중 하나라고 볼 때, 나 역시 언제든 사탄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악의 전체성


    서구 역사에서 악에 대한 담론이 크게 변화되었던 두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중세 말입니다. 십자군 원정과 페스트의 출몰을 겪으면서 죽음의 일상화가 전 유럽을 휩쓸던 시기였습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죄악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죄를 고백하는 의식, 즉 고해성사가 본격적으로 교회안에서 시행되기 시작하던 무렵이 바로 그때입니다.

    악에 대한 성찰이 발전했던 다른 한 시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 후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홀로코스트 이후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의 지성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나찌가 가능했나, 라는 물음이 대두되었습니다. 한나 아렌트 같은 사람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집단(many) 속 개인이 범할 수 있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주목합니다. 집단 속의 개인은, 전체 속의 개인은 자기가 하는 행위에 대한 반성적 고찰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는 것이죠. 멀쩡하던 사람들도 예비군 옷만 입혀 놓으면 돌아이가 됩니다. 미셀 푸코가 “전체는 광기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라인홀드 니버라, “도적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전체주의와 악에 대한 비극을 노래합니다. 이들 공히 악의 전체성에 주목합니다.

    악령이 말했던 we are many는 악의 전체성을 언급할 때 각주로 달리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한마디로 자기들의 힘과 목소리가 크고 세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사회를 지배했던 힘과 목소리가 무엇이었는지 한번 회고해 보십시오. 그것은 권위주의, 가부장제, 서열주의, 반공주의, 경제제일주의, 패권주의, 이성애중심주의, 성과주의, 분열주의 등입니다. 이런 목소리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할 때,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다수가 될 때 악이 작동되고, 반대파를 향한 혐오의 메카니즘이 등장하면서, 그들을 향한 공격이 정당화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해주십시오’라는 기도의 숨은 뜻은, 전체주의적인 논리 안에서 그 전체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불이익과 폭력과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가부장제라는 전체주의적인 논리에서 이 땅의 여성들이 남모르게 고통당하고 있다면 그것이 악입니다. 반공주의라는 전체주의 논리 속에서 누군가를 빨갱이로 지목하면서 아무런 이유없이 사회적으로 매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악입니다. 무한경쟁, 무한질주, 세계경영의 신자유주의의 모토속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우리가 보살피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전체주의를 인정하는 죄인들입니다. 예수는 본인이 했던 주기도문의 마지막에서 이런 악에서 우리를 구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에필로그


    이번 주간에 5.18 이 있습니다. 5.18는 이런 악의 현상학에 저항했던 우리 역사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고 숨가쁘게 전개되었던 근래의 사건들도 악에 저항했던 한국 현대사의 소중한 기억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역사의 노력과 기도의 끝에서 우리는 지난 주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아주 자그마한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찌 될지 떨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악에서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이 새삼 더 간절하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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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7.05.17 15:3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위의 글은 5월 14일 한백교회 '하늘뜻 나누기' 원고입니다
  2. 주안
    2017.06.25 09:0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전에 생각치 못했던 내용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전이 많이 되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미국 진보 신학의 버팀목, 

시카고 신학대학원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각주:1]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프롤로그 : 시카고를 아시나요?


   시카고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시카고 대화재(1871년)와 1920년대와 30년대 시카고를 장악했던 미국 갱의 전설 알카포네, 1990년대 NBA를 장악했던 농구천재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건축과 재즈의 도시, 바람과 호수의 도시, 그리고 얼마 전 퇴임한 바락 오바마 대통령 까지, 이상은 빅테이터를 돌리면 나오는 시카고 관련 내용들입니다.

    시카고는 미 중부 일리노이주에 있고, 미시건 호수 남서쪽에 자리잡은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정치적으로 시카고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와 더불어 민주당 초강세 지역으로 분류됩니다. 이런 까닭에 마약, 낙태, 총기규제, 반전, 흑인, 동성애와 이민자 정책 등에 있어 시카고는 미국내에서 진보담론의 진원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시카고의 특징들 가운데 빠진 것이 있다면, 시카고는 대학의 도시, 신학의 도시라는 점입니다. 명문 시카고대학, 노스웨스턴대학, 예수회 계통의 로욜라대학, 미국 내 최대 카톨릭 대학 중 하나인 드폴(De Paul)대학, 일리노이주립대학 등이 시카고에 위치하고 있고, 특별히 신학교육에 있어서 시카고는 바티칸 다음으로 가장 크고 내실있는 신학 네트워크가 조성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미 최대의 신학 도시, 시카고


   시카고의 가장 큰 신학적 특색을 꼽으라면 초교파적으로 구성된 12개의 신학교가 연합체(ACTS: The Association Of Chicago Theological Schools)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각주:2] ACTS에 속한 학생들은 어느 학교 수업이든 수강할 수 있습니다. 각기 다양한 신앙전통 속에 존재하는 신학, 예전, 역사들을 배우며 오늘의 신학을 재구성할 수 있는 풍부한 논의를 경험할 수 있는 있다는 말입니다. ACTS에 소속된 전임 교수는 260여명, 학생은 3천여명, 1년에 개설되는 강의는 총 700여 강좌에 육박합니다. 비슷한 형태의 샌프란시스코의 GTU나, 캐나다 토론토와 비교했을 때 비록 공동학위 시스템은 아니지만, 규모와 스케일 면에서는 가히 전미 최대 신학 도시라 할만 합니다.

    매학기 마다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무엇을 들을까 하고 ACTS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350개가 넘는 과목의 실라버스가 뗘 있습니다. 그것만 확인하는데도 일주일 넘게 걸립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기독교윤리가 전공이었는데, 학기 시작 한 달전 ACTS에 소속된 윤리학 전공 30여명의 교수가 개설하는 50여 기독교 윤리 과목에 대한 research로부터 학기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달 동안 실라버스 확인하여 강의 내용과 일정, Text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됩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내가 듣고 싶은 과목 3-4개를 선택하여 수강을 합니다.

    또한 ACTS에 속한 학생들은 수강 신청 전에 사전 협의만 하면 시카고대학, 노스웨스턴 대학, 로욜라(Loyola) 대학, 드폴(DePaul) 대학의 철학과 종교학 수업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임윤리의 계승자로 알려진 시카고 대학의 슈바이커 교수의 강의를 오전에 듣고, 점심 먹고 노스웨스턴 대학으로 건너가 철학과에서 데리다의 정치신학을 강의하는 도이처 교수의 강좌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로욜라 대학에 있는 미국 내 레비나스 번역가로 알려진 페이퍼 젝 교수가 개설하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학 수업도 수강 가능합니다.

    종합하면, 시카고가 지닌 신학교육의 특징은 Interdisciplinary Studies (학제간 연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시카고가 지닌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의 상황속에서 시카고의 신학은 이러한 시대적 질문에 대해 철저한 제 학문간 연대와 제휴를 통해 신학적으로 다양한 색깔과 무닉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ACTS가 위치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시카고 지역의 신학적 토양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 미국 진보신학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 이하 CTS)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시카고 신학교가 위치한 시카고 남부 Hyde Park[각주:3]


   시카고 신학대학원 길라잡이


   저는 2004년 시카고로 도미하여 2014년 학위를 마치고 10년만에 귀국했습니다. 멕코믹 신학교에서 석사과정(MATS)을 마치고(2007), 바로 CTS로 진학하여 7년 동안 윤리학으로 Ph.D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카고 유학시절 CTS에서 공부하면서 배우고 느낌 점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CTS는 미국연합그리스도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교단 소속의 신학교로서 1855년에 세워졌습니다. UCC 교단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교단으로 이민, 흑인, 반전, 동성애, 여성문제에 대한 선교정책에 있어 전향적인 자세와 실천을 이루어내고 있는 교단입니다. 우리 기장과는 1986년부터 파트너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서부 지역 회중교회들을 모체로 세워진 시카고신학교는 미국연합그리스도교단 출신 학생뿐만 아니라 개신교 각 교단과 천주교, 동방정교회, 나아가 유대교, 이슬람 계통의 학생까지 모여 공부하는 초교파, 범교단적 신학교입니다.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기 쉬운 시카고대학 Divinity school과 CTS는 초기에 교수진과 학생 교류, 학교 행정을 같이 하는 관계였다가 1960년 이후에는 단순한 협력관계로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수업과 도서관은 여전히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CTS는 역사적으로 교수와 학생 모두 시민운동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신학생들과 교수들은 사회적 문제와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이런 저런 형태로 현실의 문제에 개입합니다. 이라크 전쟁 반대시위,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Ocu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가담, 그 밖에 동성애와 여성, 이민자 문제 등에서 CTS 구성원들은 대외적으로 활발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일까요, CTS는 미국 인권운동의 대명사 마틴 루터 킹 명예학위를 주는 최고의 고등기관이기도 합니다. 이 상은 198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기독교의 반 인종차별 운동에 앞장섰던 투투주교에 수여되기도 했습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맨토로 유명한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UCC) 전 담임목사 제레미야 라이트 목사가 CTS 출신입니다. 그는 미국의 패권적 외교정책에 대해 “Got damn America! (빌어먹을 미국)” 이라 비난하면서 문제적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이자 1980년대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도 참여한 제시 잭슨 목사도 CTS 출신입니다. 이들은 CTS에서 행사(졸업식, 각종 기념식)가 있을 때 가끔씩 등장해 연설을 하면서 좌중을 쥐락펴락 하면서 행사장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계절 학기 강사로 강단에 서기도 합니다.

       종합하면 CTS는 대사회적 메시지와 참여에 충실한 한신 신학의 학풍과도 매우 유사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제가 Ph.D 과정 지원 할 때 SOP(학업계획서) 쓰면서 CTS 지원이유에서 ‘나는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인 한신 출신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적었더니 교수님들이 흡족해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로 CTS는 미국 신학계에서 한국 신학계에서 한신이 점하는 위치와 같은 진보적 색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신이 요즘 안팎으로 변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여전히 그 색깔을 변치 않고 시대에 맞게 진화하며 꾸준히 진보적 신학담론을 창출하는 CTS에서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시카고 신학대학원의 학풍


   CTS는 앞서 이미 언급 했듯이 미국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로 각종 사회적 이슈들에서 Radical한 신학적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CTS는 전통적으로 아웃사이더 신학이 강합니다. 전에는 해방신학, 여성신학, 정치신학의 입장이 강했고, 근래는 Queer Theology (Ken Stone), Postmodern Theology (Jennings, Schneider), Black & Womanist Theology (Butler, Terrell)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학자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CTS는 목회상담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 안톤 보이슨(Anton T. Boisen)에 의해 전미에서 최초로 신학교에서 CPE를 시행했던 학교입니다. 이러한 전통이 CTS를 임상 목회상담의 산실로 우뚝 자리잡게 하였습니다. 특별히 CTS를 오랫동안 대표했던 모어(Moore) 교수는 목회상담과 융과 틸리히를 연결하여 나름 그 분야 학제간 대화의 독보적 인물로 평가됩니다.

    특별히 저같이 데리다, 푸코, 라깡, 들뢰즈, 레비나스, 지젝등 현재 활발히 논의되는 유럽의 탈근대적, 좌파적 철학자들의 사상을 신학적으로 어뗳게 해석하여 운동(윤리)의 차원으로, 해방의 차원으로 승화시킬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CTS는 미국내 최상의 학교입니다. Theology, Ethics & Human Science 분야의 전교수가 이 문제를 갖고 연구하는 분들이시고 권위자입니다. 올해 은퇴한 테드 제닝스(Ted Jennings) 교수는 요즘 가장 핫한 바울에 대한 정치신학 비평으로 유명한 학자이고, 서구 정신사를 인문 신학적으로 꿰고 있는 국보급 진보신학자입니다. 레비나스와 지젝을 통해 서구 전통신학에 반기를 들었던 서보명 교수는 근래에는 유영모,함석헌 사상을 바탕으로 서구신학에 대한 대안을 모색합니다. 지금은 벤더빌트로 옮긴 슈나이더(Schneider) 교수도 CTS에서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본회퍼와 탈근대 사상을 연결하는 학자이자, 차세대 페미니즘을 대표할 신학자로 벌써부터 메이나 층이 형성된 신학자입니다

    CTS의 성서학은 전통적인 역사비평의 틀을 넘어서서 해석학적인 성서비평으로 유명합니다. 포스트콜로니얼의 시각에서 성서를 바라보는 양승애 교수는 리타 나카시마 브럭(Rita Nakashima Brock)과 곽퓨란(Kwok Pui Lan)등과 어깨를 견주는 대표적 아시아 여성신학자입니다. 구약학자 켄스톤 (Ken Stone)의 이름은 앞으로 반드시 숙지하셔야 할 것입니다. 미국내 Queer 관점으로 구약성서를 재해석하는 독보적 학자입니다. 이렇듯 CTS에 포진하고 있는 엣지있는 교수들과 학교자체의 진보적 색채 때문에 전미에 분포하는 개혁적 성향의 신학도들에게 CTS는 여전히 매력적인 신학교입니다.


* CTS 새 캠퍼스[각주:4]


   변화하는 시카고 신학대학원


   2010년을 넘어가면서 CTS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신학교들도 그러하듯이 미국의 신학교들 역시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미국 내 진보성향의 신학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CTS의 상황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2012년에 큰 결단을 내려 원래 Hyde Park 55가에 위치했던 덩어리가 컸던 캠퍼스를 정리하고, 한 블록 위에다 새롭게 아담한 캠퍼스를 조성하였습니다.

    옛 건물을 처분하고 캠퍼스를 줄여 옮겨 가는 과정에서 이익이 발생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장학사업과 그 밖의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신학교협의회(ATS: The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로 부터 인가를 받아 Mainline Protestant Seminary 중 최초로 online으로 M.Div. 학위를 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의 정신과 커리큘럼에 동의하고 흥미를 느끼면서도 거리상 입학할 수 없었던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신학도들이 CTS M. Div 온라인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Eco-Community(생태 공동체) 프로그램과 Interreligious Institute(종교간 센터)를 새롭게 만들어 운영하면서 좋은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 기획된 프로그램들은 CTS에 기존에 있었던 LGBTQ Center (Queer theology), Christian-Muslim Studies, Christian-Judaism Studies, Center for Study of Black theology, Center for Study of Korean Christianity 등의 기관과 유기적으로 협조를 합니다. 이러한 커리큘럼 재정비를 통해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타자를 환대하는 목회자, 타자와 더불어 함께 연대하는 목회자 양성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관계자 말에 의하면 M.Div 온라인 과정 신설과 여러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전에 비해 30% 가까이 학생수가 증가했다고 합니다.[각주:5]

    몇몇 CTS의 상징적 교수들이 은퇴를 하거나 학교를 옮겨 교수보강이 시급했는데 좋은 교수들이 임용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슈나이더 교수 후임으로 2015년 Christoph Ringer 교수가 Public Theology and Ethics 교수로 부임하였고, 불행하게 세상을 등진 모어 교수 후임으로는 작년 2016년에 Zachary Moon 교수가 새로 영입되었습니다. Stephanie Buckhanon Crowder는 womanist(흑인여성신학) 관점에서 성서와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독특한 학자인데, 새롭게 CTS의 교수진으로 수혈된 젊은 학자입니다. 특별한 소식을 하나 더 하자면, Bexley-Seabury 성공회 신학대학이 CTS 건물로 이주해 시설과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 캠퍼스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신학교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에필로그


    CTS에서 유학생 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던 것은 민중신학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입니다. 그것은 민중신학의 빛바랜 과거에 대한 찬양도 아니고, 화석화된 민중신학에 대한 주례사 비평은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미국 와서 신학을 공부한다고해서, 몇 가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학이슈들에 발빠르게 대처한다고 해서 호박이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니죠. 진보란 열려있음을 전제로 변혁을 꿈꾸는 정신성이고, 부단히 삶의 자리에서 실행되어야 하는 구체성입니다. 또한 진보란 부단히 흘러가면서 새로움을 상상하는 정신이자 그것을 감행하는 실재입니다. 이러한 진보적 유전자가 민중신학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CTS에서 공부하는 동안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CTS에서 배우고 살면서 느꼈던 것은 민중신학이 표방하는 성서 해석학, 예수에 대한 이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세계적인 신학이었고, 첨단의 신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해왔던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변했으니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더 악랄하고 집요해졌을 뿐입니다. 다시 한번 민중신학의 자리를 점검하면서 새로운 진보신학의 언어를 발굴하고 적용하며 실천하는 일에 우리의 의지와 상상을 모을 때 입니다.


* CTS 새 캠퍼스 로비에 있는 문익환 목사님 이미지[각주:6]



ⓒ 웹진 <제3시대>



  1. 『세계와 선교』(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실리게 될 ‘세계 신학교 탐방’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ACTS (http://www.actschicago.org/) 소속 12개 신학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UCC,기장과 자매교단), McComick Theological Seminary (미국 장로교, 기장과 자매교단), Meadvill·Lombard Theological Seminary (유니테리안), Luthern School of Theological at Chicago* (루터교), Bexley-Seabury Seminary Federation(성공회), Loyola Institute for Pastoral Studies (예수회), Garre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 (감리교), Nor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침례교), North-Park Theological Seminary (언약교단),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복음적 자유교회 소속), Catholic Theological Seminary (천주교), Mundelein Seminary (천주교) (*가 있는 학교는 Ph.D 학위가 있는 학교임), 이 밖에도 1800년대 중후반 시카고를 중심으로 미국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무디(Moody)을 기념하는 Moody Bible Institute도 시카고 시내에 있다. [본문으로]
  3. 오바마의 정치적, 사상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시카고 남부 Hyde-Park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적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살아있는 흑인 인권 운동의 대부인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의 멘토로 유명한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 등이 모두 시카고 신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았다. 위의 사진은 Hyde-Park에 위치하고 있는 시카고 대학과 시카고 신학교 전경이다. 우측 하단에 거대하게 버티고 있는 건물이 시카고 대학을 건립한 록펠러를 기념하여 세운 록펠러 채플이고, 바로 건너편 빨간 벽돌로 높이 솟아있는 탑이 시카고 신학교이다. 2012년 까지 이곳에서 신학수업이 이루어졌다. 사진 중앙을 가로 지르고 있는 길이 University Ave이다. 그 길 건너편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카고 대학이 펼쳐진다. 좌측 중앙에 보이는 회색 건물이 시카고 대학 메인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뢰겐스타인 도서관이다. University Ave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학자 폴 틸리히가 자주 갔다는 맥주집이 길 모퉁이에서 아직도 성업중이다. 저 멀리 시카고 다운 타운이 보이고, 사진 상단 파란부분은 남한 땅이 풍덩 빠져도 남는다는 미시건 호수이다. [본문으로]
  4. 새로 옮긴 CTS 캠퍼스. 위에 옥상의 동그란 부분이 채플실. 3층이 도서관과 학생 휴게실. 1,2층에 강의실 및 각종 부속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본문으로]
  5. CTS에는 다음과 같은 학위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석사과정에 M.Div, STM, MA, 박사과정에 D.Min, ph.D. 좀 더 자세한 입학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학교 공식 홈피(https://www.ctschicago.edu/)에 접속하셔서 바탕화면에 떠 있는 Admission를 누르고 들어가면 됩니다. [본문으로]
  6. 새 캠퍼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 실현하고자 분투했던 신앙인들의 얼굴이 우리를 맞습니다. 본회퍼, Harriet Tubman(노예였으나 탈출한 뒤에 수많은 노예를 해방시킨 '장군'이라고 불리었던 여성), 간디, Millard Fuller(해비타트 운동의 창시자), 마틴 루터 킹, Audre Lorde(흑인 여성주의자였던 시인), 로메로 신부, 마더 테레사 등....그리고 우리의 문익환 목사님도 그 벽화에는 새겨져 있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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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우리의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각주:1]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세월호 얘기, 혹시 지겨우십니까? 지겹다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왜?’라는 질문은 넘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배가 왜 침몰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9월 24일)이 벌써 162일째인데도 말이지요. 지겨워도 직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세월호 사고 당일로 돌아가봅니다…” _손석희, JTBC 뉴스 2014년 9월 24일 오프닝 멘트 중


안티고네를 소환하며


    오늘은 위의 손석희 멘트가 있었던 날로부터도 2년 반 가까이 흐른 날이고, 이제 2주후면 우리는 세월호 3주기를 맞는다. 문득 지난 3년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믿기지 않았던 세월호 침몰과 더 믿기지 않았던 구조과정들, 구원파를 끌어들여 사건 초기에 문제의 핵심을 호도했던 일, 세월호 유가족들의 애끓는 절규와 대통령의 눈물. 유민 아빠 김영호 씨의 목숨을 건 단식, 인상 깊었던 교황의 방한,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었다는 뉴스, 서울서 팽목항까지 세월호 인양을 위한 도보 행진, 팽목항에서 서울까지 유가족들의 삼보일배, 무의미했던 세월호 청문회, 대통령의 사라진 세월호 7시간, 대통령 탄핵 가결과 인용, 그리고 지난주에 있었던 세월호 인양 소식까지, 이상은 지난 3년간 세월호와 관련하여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굵직한 제목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3년이 지나도록 이 배가 왜 침몰했는지조차 모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나지지 않았을 때 어느 문인(文人)은“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한 슬픔은 합당한 이유 없이 눈물을 그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각주:2]글을 쓰겠노라고 밝혔다. 그이의 다짐을 접하고 윤리학자로서 떠올랐던 단어가 진실과 애도다. 윤리는 진실의 윤리학이어야 하고, 윤리는 또한 애도의 윤리학이어야 맞다.

   졸고는 안티고네의 애도를 향한 정신분석학적 접근, 그리고 정신분석학의 윤리에 대한 글이고, 그 윤리가 어떻게 현실의 불합리한 질서를 전복시키는 기제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상상이다. 안티고네의 폴리네이케스를 향한 애도는 진실을 향한 투쟁이었고, 그녀의 행보는 시스템의 안녕과 평화를 추구했던 전통적인 윤리학의 지형에 대혼란을 초래하였다. 나는 안티고네의 파국을 지향하는 윤리가 어쩌면 뒤틀리고 왜곡되고 변태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21세기 시민들이 지녀야할 윤리적 모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에 대한 판단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넘긴다.


애도의 원형


   맑스주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게오르그 루카치는《소설의 이론》에서 고대 그리스를‘서사시 시대-비극의 시대-철학의 시대’로 구분하였다.‘서사시 시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대표적인 작품이고, ‘비극의 시대’ 하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루카치는 고대 그리스가 ‘서사시 시대’에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하나로 섞여 있었던 시대였고, ‘비극의 시대’는 이성과 감성의 분화가 일어났던 시절, 그리고 소크라테스로 상징되는 ‘철학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감성과 욕망의 영역이 배제되면서 이성우월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밝힌다.

    애도에 대한 고전적인 판본은 고대 그리스 ‘서사시 시대’의 걸작 〈일리아스〉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헥토르에 대한 애도의 장면과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 이야기〉에 등장하는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이다. 〈일리아스〉는 기원전 12-13세기에 쓰여진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브레드피트가 나왔던 영화 〈트로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대목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헥토르의 시신을 유린하는 장면이 나온다. 헥토르의 아버지가 밤에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아들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내어주면서 눈물을 흘린다. 다음 날 헥토르의 시신이 트로이로 옮겨져서 그동안 치르지 못했던 애도의 의식을 벌이는 것을 끝으로 〈일리아스〉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일리아스〉 속 헥토르에 대한 애도보다 더 복잡하고 진화된 애도 이야기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등장한다. 사건의 대강은 이렇다. 국가(테베市)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 들판에 버려져 들짐승의 먹이가 되어버린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거두어 장례를 치르려는 안티고네와 반역자(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응징의 차원에서 애도를 허락지 않는 테베왕 크레온 사이 갈등이 이 비극의 줄거리다.

    폴리네이케스는 테베國의 입장에서 볼 때 역적이다. 국가에 반기를 든 자들에 대한 역사의 형벌은 어느 민족이건 대체로 일치했다. 공동체 성원들 앞에서 공개적이고 잔인한 사형이 집행되고, 그 주검을 마을 어귀에 대롱대롱 매달아 공포의 타산지석으로 삼게 하거나, 혹은 그냥 시체를 들판에 내동댕이쳐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함으로써 반역자와 공동체 간의 거친 수직적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듯, 공동체에 심각한 타격을 끼친 인물에 대한 응징과 처벌은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동체 성원들의 결속과 단합을 유지하고 지켜내기 위한 당연한 처사다. 이 지점에서부터 안티고네의 문제의식은 시작된다.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


   사건은 안티고네가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원칙, 상징계의 질서를 거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현행법을 어기면서까지 안티고네는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되찾아 장례를 치르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안티고네는 공동체의 운영원리인 쾌락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현실의 원칙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죽으면 누구나 장례를 치르고, 고이 안장되어야 한다는 생명의 원칙, 진실의 원칙에 무게를 두었고, 그것을 현실의 삶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내 기억에는 안티고네만큼 ‘쾌락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았던 인물이 있다.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오현우다. 1970년대 말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지하조직 활동을 한 오현우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수배자가 되어 도피생활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준 시골학교 미술교사 한윤희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한적한 시골 외딴 마을에서 3개월 남짓 둘만의 따뜻하고 오붓한 시간을 갖지만, 오현우는 다시 동지들을 규합하여 투쟁의 길로 나서기로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선다.


<오래된 정원> 중에서


    서울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 비 내리는 시골길에서 한윤희가 오현우에게 이렇게 따져 묻는다. “왜 가니? 집도 주고, 밥도 주고, 몸도 줬는데… 왜 가는 거야? 그곳에 뭐가 있길래… 이 바보야!” 오현우는 한윤희의 이 질문에 아무런 말을 못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다 안다. 그가 죽으러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왜, 오현우는 집도 주고, 밥도 주고, 몸까지 제공되는 쾌락의 공간과 시간을 거부하고, 그 쾌락에 만족하지 못하고 왜, 죽음을 향해 나가는 것일까? 왜, 안티고네는 공동체가 제공하는 쾌락의 원칙에 머무르지 못하고 죽은 오빠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지내야겠다고, 아직 나의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며 절규하는 것일까?

    이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풀어내면 이렇다. 안티고네는 공동체의 타자인 폴리네이케스를 향한 금지된 욕망을, 오현우 역시 민주주의와 정의를 향한 금지된 욕망을 현실 질서(법)의 위협과 협박과 조롱과 공포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켰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했던 ‘쾌락의 원칙’을 넘어가는 행위다.

       인간의 사회화 과정은 언어의 학습과 병행한다. 어린아이는 언어를 습득하면서 이드(Id)가 지배하던 원초적 자아(상상계적 자아)에서‘아버지의 이름’이라는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 속으로 편입된다. 사회라는 상징계 안으로 진입한 아이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법과 질서와 전통 안에서 자라면서, 사회가 설정한 기표를 따라가는 것이 생의 목표이고 기쁨이 되는 인간으로 길들여지게 된다.‘쾌락의 원칙’이란, 사회적 기표를 하나씩 따면서 생기는 삶의 기쁨과 보람과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쾌락 원칙은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적 불안과 소외를 피하려는 속성이다. 그것은 법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는 쾌락을 추구하지만, 불쾌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금지된 대상을 피하려는 성질이다. 이런 까닭에 쾌락의 원칙은 사회적 금기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보수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에서, 인간에게는 쾌락의 원칙을 넘어가는 측면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살고자하는 충동인 에로스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삶의 터전인 공동체의 원리를 거부하고, 자기를 끊어내는 죽음충동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재(the Real)란 무엇인가?


    안티고네와 오현우의 행위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가능하게 했던 인간의 욕동에 대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동을 ‘욕망desire’과 ‘주이상스jouissance’로 구분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욕망이란, 사회적 관습이나 전통, 이데올로기적 학습, 혹은 법률 안에서 형성되고 허용되는 욕망으로, 그것은 사회적 가치, 내지 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라는 상징계(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좀 더 많은 연봉을 추구하고, 육체마저 상품화하는 소비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좀 더 날씬하고 예쁜 외모를 욕망한다. 그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기표(상징)를 내가 추구하는 것이다. 연봉 1억, S라인의 몸매, 고급 외제차, 명품 가방 등이 대표적 기표라 할 수 있다. 그 기표들의 연쇄를 따라 우리는 상징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표들은 사회라는 대타자가 만들어놓은 기준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이 원하니까 내가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인정받으니까. 그러면 내가 편하고 즐거우니까. 그래서 계속 그 기표를 따려고 쫓아다닌다. 결국 상징계속 욕망이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티고네나 오현우는, 이런 식의 상징계 속 쾌락 원칙의 지배하에 있는 욕망과는 다른 욕망을 주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쥬이상스’다[각주:3]. 욕망이 상징계 속 기표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쥬이상스는 상징계로 진입하기 이전 상상계 시절 작동하였던 욕망이다. 이것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떠돌다가, 현실의 세계로 귀환하는 것이 ‘실재(the Real)’다.

    전통 형이상학에서 ‘실재’란 현실을 초월해 있는 존재, 혹은 운동의 원칙이었다. 플라톤의‘이데아’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라캉은 이런 전통적인 실재와는 다른 실재를 언급하는데, 이를‘Das Ding(=the Thing)’이라 불렀다. 지젝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the Real’이라 명하면서 ‘실재의 윤리’로 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잠시 여기서 실재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부연하면, 전기 라깡을 읽다보면 <상상계-상징계-실재계>가 뚜렷하게 경계 지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후기 라깡으로 갈수록 그들 사이 경계는 사라진다. 실재가 어느 특정한 공간과 층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실재계(界)라는 말은 적절치 못하다. 실재는 현실의 오작동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발생한 박근혜의 국정농단,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다원성이 강한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이 실재의 귀환을 설명하는 적절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시민혁명을 통해 높은 민주적 시민의식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 박근혜가 최순실 같은 작자에게 국정을 농단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다니!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의 천국 미국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배제와 적대의 메카니즘을 들고 등장한 쓰레기 같은 트럼프가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될 수가 있나! 지젝이“실재란 상징적 네트워크 자체 내부의 틈”이라고 말했는데, 너무나도 적절한 지적 아닌가 싶다. 박근혜라는 실재, 트럼프라는 실재는 대한민국이라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틈과 균열을 상징한다. 영화 〈에일리언〉에서 괴물의 숙주가 사람의 몸에서 기생하는 것처럼, 실재(the Real)는 세상의 틈과 균열로 존재하면서, 평온했던 상징계에 혼란과 불안을 선사한다.


안티고네와 실재의 윤리


    라캉은 실재를 겨냥하는 쥬이상스가 지닌 전복적인 힘에 주목했다. 쥬이상스는 상징적(세상적) 원칙과 질서로 제한하지 못하는 근원적 욕망이었다. 라깡은 안티고네 이야기를 그것의 적절한 예로 끌어들인다. 왕권을 놓고 숙부 크레온과 경쟁을 하던 폴리네이케스는 패하여 죽임을 당하였고,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참혹하게 유린한 후 성 밖으로 내친다. 그것은 반역자를 향한 합법적인 법집행이었다. 아울러 백성들에게는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거두어 장례를 치를 경우 가차 없이 처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그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오빠의 장례를 치렀고, 그 이유로 지하동굴에 갇히고 결국 자살하고 만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앞서 언급했듯이 쾌락의 원칙을 넘어가는 행위였다. 쾌락의 원칙대로라면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는 실행되어서는 안되었다. 법을 어길 경우 짊어져야 할 형벌과 공포와 불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티고네는 쾌락 너머의 원칙을 따라간다. 그것은 보편적인 하늘의 법도에 충실한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례를 치를 권리가 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은 자를 향한 애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인륜 말이다. 안티고네는 그냥 사랑하는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장례를 치르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나, 윤리적 덕목에 입각해 행동했던 것이 아니다. 아주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인륜성에 기반한 행위였다. 이런 보편적 욕망에 충실했기에 안티고네는 체제가 만들어놓은 법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현실의 법과 대립각을 형성하는 것이었기에 감옥에 갇혔고, 그곳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안티고네는 찬란하고 슬픈 비극의 주인공으로 남겨지게 된다. 이것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가 그리스 비극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등극하게 된 연유다.

   하지만 안티고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체제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안티고네의 자살은 그녀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의 자살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크레온의 아내 에우디케의 죽음을 불러온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크레온도 모든 것을 상실하는 파국을 맞게 된다. 안티고네의 법 밖의 것을 지향하는 윤리가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법의 윤리를 무너뜨린 것이다.

    본래 윤리란 사회의 법규, 전통, 규범 같은 것들을 유지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마음의 자세, 그리고 그것을 위한 행위 일반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실재의 윤리는 사회, 혹은 국가에서 말하는 윤리적인 것, 규범적인 것을 뚫고 나간다. 국가가 제공하고 체제가 허락하는 규범을 따르면 편하고 안락한데, 이 쾌락원칙을 거부하면서 안티고네는 쾌락원칙 너머에 있는 것을 소망하며 나갔다. 그랬더니 옛 질서가 무너지는 결과가 발생했다.

    지젝과 더불어 슬로베니아학파의 얼굴로 떠오른 알렌카 주판치치는 기존 윤리와 다른 실재의 윤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실재와의 조우에 의해 우리에게 강제된 물음-나는 나를 탈구된 상채로 던져놓은 그 무엇에 조응해서 행위할 것인가, 나는 이제까지 내 실존의 토대였던 것을 재정식화할 각오를 할 것인가?-속에서 윤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바디우는 이 물음-혹은 오히려, 이 태조-을 ‘사건에의 충실성’ 혹은 ‘진리(진실)의 윤리’라 부른다.[각주:4]


    실재의 윤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윤리가 대타자인 공동체가 정한 법규와 규범을 아무 생각없이 따르고 복종하는 도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의 조우를 통해 진실을 겨냥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시스템의 이면을 들춰내면서, 대타자의 목소리를 의심하고 자신의 쥬이상스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신분석석학의 윤리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윤리는 진실의 윤리다. 진리와 진실은 같지만 다르다. 뉘앙스 상으로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둘 다 어떤 사물과 사건에 깃든 함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같다. 드러나는 것은 사물의 이치이거나, 사람의 진심이거나, 사건의 진상이거나, 혹은 종교적 깨달음이이다. 문제는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의 차이인데, 진리는 우리가 그동안 볼 수 없었고 몰랐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고, 진실은 우리에게 익숙했고 늘 봐왔던 사물(건)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진실의 윤리는 실재가 귀환하는 사건이다. 실재는 예측가능한 상징계의 질서 어딘가에 균열이 생겨, 예상치 않게 그곳을 통해 무엇인가가 융기하는데, 그것이 현실의 모순을 들추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법의 모순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의 광기일 수도 있고, 맹목적인 도착된 믿음일 수도 있다. 실재의 귀환은 이런 상징계의 껍질을 깨면서,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억압하는 대타자의 목소리와 나의 진정한 욕망(쥬이상스) 사이의 괴리와 간극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다면 실재의 윤리를 세월호에 대한 애도의 문법으로 전환하면 어떻게 될까?


다시, 애도를 묻다


    안티고네 이야기와 세월호 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권력은 그들이 보기에 애매하고 재수 없이 발생한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과 애도 과정에 대해 난색을 표시하며, 빨리 그 애도의 기간이 흐지부지되기를 소망한다. 안티고네와 세월호 유가족들은 ‘당신들이 우리의 애도를 가로막는 처사는 옳지 않고, 너무 쪼잔한 것 아니냐?’며, 끝까지 체제가 강제하는 애도의 방식과 대결한(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애도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극명하게 다른 것일까?

   애도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 그렇다면, ‘애도를 성공적으로 마쳤다’함은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극복되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성공한 애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한 애도가 되는 것 아닌가? 본래 애도란 망자에 대한 기억을 유지하고, 망자의 상실로 인한 아픔을 계속 지속시키는 행위여야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애도란 애도의 사전적 의미, 즉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를 현재진행의 사건으로 계속 유지시키는 행위다. 그러므로 성공한 애도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인터뷰에서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을 꿈꾸는 것만큼이나, 이 슬픔이 완전히 극복되고 잊히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애도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안티고네의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는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현실세계의 법칙을 뚫고 나온 실재(the Real)의 귀환이었다. 이는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할 때 배제되었던 ‘그것(das Ding, the Thing)’이 현실의 질서 밑에 숨어 있다가 융기한 사건이었고, 그럼으로써 현실의 법집행에 차질을 초래한 사고였다. 세월호 사건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상징계를 뚫고 융기한 실재(the Real)라 할 수 있다. 한국형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국가정의의 이름으로, 경제성장 혹은 경제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되었던 한국 사회의‘그것(das Ding, the Thing)’이 현실의 수면 밑에서 응축되어 있다가 터진 사건이 바로 세월호 참사다.

   안티고네는 그 실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오빠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크레온이 장례를 막았던 이유는, 애도의식이 망자에 대한 기억을 공동체 내에 유포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의 공유는 필연적으로 어느 임계점에 이르러서는 빅뱅을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애도행위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권력이 세월호에 대한 애도를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이유도 이와 같다. 세월호 참사는 무능하고 탐욕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의 실재가 드러난 사건이었고, 현 정부는 그 모든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세월호에 대한 애도는 필연적으로 진실을 향한 행위를 경유할 수밖에 없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일어날 사건의 파장을 너무나 잘 알기에, 정부로서는 이 애도를 허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애도가 구천을 떠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미완으로 남겨진 채 배회하는 세월호를 향한 우리의 애도가,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다. 우리의 애도가 미완으로 남겨진 채 이어지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들의 마음에 생채기가 생겨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윤리적 답변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리에서 망자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을 기억하는 행위를 계속 이어가야 할 것이고, 거기서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 간의 대화와 관계 맺음이 계속 유지되도록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도래하는(to-come) 변혁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전망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될 때, 세월호 애도의 불가능성은 오히려 변혁을 향한 가능성의 지점이자 거점으로 우리 앞에서 살아 있게 된다.

   세월호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세월호 문제는 종결되었다!’고 선언하는 세상의 음성에 파열음을 내는 것이다. 그것이 세월호 문제를 이대로 덥고 지나가려는 세력들에게는 부담과 불편으로 작동할 것이고, 그것은 세월호라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그렇게 거짓된 현실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진실을 감추는 자들을 향해서는 쫄지말고 정당한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의 애도를 유포하다 보면, 우리 앞에 불가능했던 현실의 파국이 가능성의 형태로 우뚝 솟아올라와 있을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애도는 완성된다. 아니, 그때가 비로소 우리 애도의 출발점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4. 10일 에큐메니안에 동일한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65 [본문으로]
  2. 신형철 외, 『눈먼 자들의 국가』, (서울: 문학동네, 2014), 231 [본문으로]
  3. Jacques Lacan, “The Paradox of Jouissance” in Seminar VII, The Ethics of Psychoanalysis 1959-1960, trans. Dennis Porter(W.W. Norton & Company, Inc. 1992), pp.167-240. [본문으로]
  4. 알렌카 주판치치 지음, 이성민 옮김,『실재의 윤리』, (서울: 도서출판 b, 2004), 35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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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라!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욕망으로의 초대


   근대 주체철학의 신화가 완성되던 무렵 근대성 일반에 대한 반란을 시도한 천재들이 19세기에 등장했으니, 다름 아닌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 맑스(Karl Marx, 1818~1883)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다. 그들은 각기 서양 주류철학이 걸어왔던 관념과 의식과 이성 중심주의에 맞서, 물질과 무의식과 반이성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욕망담론은 무의식과 반이성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던 그때로부터 1세기가 흐른 현 21세기에 와서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욕망에 대한 사유는 전통 사상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분야다. 그것은 프로이트와 라깡, 그리고 근래 지젝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의 정치철학화, 내지 윤리화 과정에서 부각되고 있는 새로운 사유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욕망인가. 이 대목에서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지금부터 논의하게 될 욕망담론은 자본의 무한질주에 따른 소비에 대한 욕구와 충동을 격려하고 뒷받침하는 이론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로 재편된 21세기 현실 속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유일한 정언명법은 자본이다. 거대하고 막강한 자본이 선사하는 강제로 인해 지구촌 인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지만, 지옥과도 같은 자본의 압제를 벗어날 전망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시기에 욕망이론이 현실 저편을 지향하면서 현실을 넘어가는 에너르기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혹시 자본의 막강한 벽에 균열을 가하거나, 그 벽을 타고 넘을 힘을 제공하지 않을까라는 기대에서 사람들은 욕망이론을 펼쳐든다. 그럼 지금부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탑승하기로 하겠다.


욕망이 출몰하기까지


   정신분석학의 기본명제는‘모든 억압된 것은 귀환한다’는 것이고, 귀환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욕망은 억압의 산물이고 귀환을 일으키는 매개라 할 수 있다. 욕망이 담론사에서 정식으로 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자끄 라깡(Jacques Lacan, 1901-1981)이라는 걸출한 정신분석가로 부터가 아닐까 싶다. 팔레스틴 지역에서 일어났던 예수운동이 바울을 통해 세계화되면서 그리스도교로 발전했듯이, 이념으로서의 맑시즘을 실천철학화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견인했던 레닌처럼, 정신분석학의 발전과정에서 프로이트와 라깡의 관계도 그러하다.

   프로이트에게 오이디푸스 단계의 아버지가 생물학적 아버지라면, 라깡의 경우는‘아버지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법과 제도와 규범을 의미한다. 프로이트의 남근(pennies)은 라깡의 남근(phallus, 팔루스)과 다르다. 전자가 단순한 생물학적 성기라면, 후자는 상징계(the Symbol), 즉 사회적 인정과 권위를 나타내는 기표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세공포(Castration complex)는 생물학적 성기에 대한 제거의 공포라기보다는, 자기의 사회적 자리와 지위가 인정되지 않고 박탈되는 것에 대한 공포이고, 이것이 인간을 사회적 인간으로 남겨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이렇게 라깡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사회-문화적 해석의 틀로 확장시킬수 있었던 원인은 그의 언어관에 있었다.

    1953년 라깡은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외치면서 본인 이론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라깡은 본인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언어의 개입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특별히 그는 유아가 말을 배우는 시기인 6개월에서 18개월 정도의 기간을 ‘거울단계(mirror stage)’라 불렀다.

    라깡이 ‘거울단계’를 끌고 오는 이유는 분명하다.‘상상계(the imaginary)’를 언급하기 위함이다.‘거울단계’의 아이는 남들이 보기에는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고, 정신적, 육체적 발달이 안 된 불안한 상태이지만,‘거울단계’아이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척이나 낙관적이고 낙천적이다. 양육자(예: 엄마)와의 관계에서 100%의 쾌락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시기 아이는 자신과 양육자에 대한 구분이 없다. 이처럼 자기와 타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를 때리고도 자기가 맞은 것으로 오인하고, 다른 아이가 울면 따라서 울기까지 한다. 라깡은 이 시기를‘거울단계’라 부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유아들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거울과 나를 분리하기 시작하고, 스스로를 객관화하면서 세상의 질서로 편입하게 된다.

    ‘거울단계’를 거치면서 유아와 양육자사이 형성되었던 2항 관계는, 아버지의 개입으로 깨지고 만다. 아이는 엄마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은밀하고 내밀한 근친상간적 욕망이 아버지로 상징되는 거대한 타자의 등장으로 폭로되고 위축되는 것을 느끼며 불안해한다. 이때 아이는 자기의 성기가 색정의 원인이므로 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제거할 것이라는‘거세위협’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아이는 체념 속에서 근친 상간적 욕구를 억누르고, 자신을 현실원리에 적용시키고, 아버지로 상징되는 사회의 질서에 복종하면서 어머니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진입이라 칭한다.

   그런데 이 시기가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시기와 겹친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면서 타자를 만나고, 내안으로 침입하는 타자의 개입을 참아내면서 아이는 자라난다. 인간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자음과 모음을 배우고, 단어를 익히고,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구성하는 시스템속으로, 즉 기호의 세계, 상징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언어의 습득은 아이로 하여금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쾌락원리에서 현실원리로, 본능에서 초자아로, 자연에서 문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사회라는 제도로의 이행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이전단계(상상계)에서 가졌던 양육자와의 100% 쾌락이 붕괴되는 경험을 겪게 된다. 이때‘아버지의 이름으로’가 상징하는 것이 바로 상징계를 지배하는 대타자이다. 이것은 사회를 작동케 하는 원칙들, 예를 들어, 도덕, 관습, 법, 관례, 예전, 이념 같은 것들이다.


욕망의 심층


    이제 본격적으로 욕망의 심층으로 내려가보자. 라깡은 상상계와 상징계를 설명하기 위해 ‘the ideal ego(이상적 자아)’와 ‘the ego-ideal(자아이상)’라는 개념을 끌어온다. 각각은 상상적 동일시, 그리고 상징적 동일시와 쌍을 이루는 말이다. 지젝은 상상적 동일시를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그 무엇을 표상하는 이미지와 동일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상징적 동일시는 “우리가 관찰 당하는 장소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장소를 동일시 함으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사랑할 가치가 있고 좋아할 만하게 보이는 것”이라 정의한다.

    예를 들어, 엄마의 젖가슴 만으로도 충분히 엄마와 합일이 가능했던 아이에게, 어느 날 엄마가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해! 그래야만 나와 합일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고 치자. 엄마는 더 이상 나를 더 이상 당신의 젖가슴을 만지는 나로 만족하지 않는다. 뭔가 다른 것을 보여달라고 성화다. ‘너는 교수다!’ ‘너는 의사다!’ ‘너는 박사다!’ 이렇듯 엄마는 자신의 젖가슴만을 탐닉하면서 상상계속에만 머물러 있는 내가 아닌, 교수, 의사, 박사, 판검사 등등의 이름으로 기표화 된 나를 요구한다. 그 결과 아이는 더 이상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엄마가 제시하는 이름표(기표)를 따는, 즉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라깡은 desire와 jouissance를 구분한다. Desire은 상징계속 주체가 갖는 욕망이다. 이것은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욕망이다.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의사가 되고 CEO되는 것과 같이 어떤 기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이다. 남이 좋아라 하는 시선을 내가 따라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국의 결혼풍속도를 보면 상징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간의 사랑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들이 이 결혼을 어떻게 볼까?’ 가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신랑은 뭐하는 사람이고, 신부의 집안 배경은? 혼수도 얼마나 했는지? 예식장은 어디? 신혼여행은? 이 모든 사항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조정되고 꾸며진다.

   반면, jouissance는 상상계에 남겨진, 혹은 상징계로 진입할 때 제거당한 내 마음 속 잔여를 향한 욕망이다. 어쩌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통과의례를 경험한 주체는 슬픔과 외로움과 안타까움을 마음속 깊숙히 간직한 주체다. 왜냐하면, 상징계속 주체(사회적 주체)가 되는 과정에서 원래 아기(상상계속 주체)가 지녔던 것 중 일부가 상징계속 주체안으로 편입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한국에 살고, 시카고에서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땄고, 한백교회 담임목사이고, 한신대에서 가르치고 있는 이상철이다. 하지만, 지금 언급한 말로 나를 다 표현할 수 있나? 뭔가 헛헛하고 아쉽고 섭섭하고 안타까운 무엇이 있다. 상징계속 이상철, 현실 속 이상철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은 또 다른 이상철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남겨진 부분, 즉 잔여다.

    이런 이유로 주체가 상징계로 진입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상상계속 자아의 일부를 상징계로 진입하는 도중에 거세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spaltung(파열)이라 말한다. 마치 아기가 엄마의 자궁을 뚫고 나올 때, 엄마의 배가 찢어지는 것에 비유할 만하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낯선 타자와 직면하는 고통을 견뎌야 아기가 살 듯, 상징계의 주체 역시 마찬가지다. 상상계라는 제2의 자궁을 뚫고 나와 사회로 진입하면서, 사람은 드디어 인간(人間)이 된다.


슬라모예 지젝 曰 : "하지만, 이건 아니올시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과한 인간의 욕망은, 상상계속 나의 욕망이 아니라, 상징계속 타자들의 욕망이다. 이를 좀 더 우리의 일상과 결부시키면 이렇다. 1970-80년대 대한민국의 역사를 회고해보라. 얼마나 많은 민주투사와 열사가 등장하여 조국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가. 조국의 근대화와 자주국방을 위해, 수출강국을 위해, 경제발전을 위해, 선진국 진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계처럼 일하면서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가. 진보진영에도 강력한 대타자의 목소리가 있었고, 보수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 기표를 흠모하면서 행위했다. 대타자의 음성은, 그것이 보수의 목소리든 진보의 목소리든 간에, 현실의 우리를 지배하면서, 우리를 뒤에서 조정하던 실세였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를 현재화할 때 사용되는 해석의 준거였고, 우리의 미래까지를 담보한다고 여겨지는 묵시였다. 욕망이란 대타자의 목소리를 믿고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동되는 주술이라 보면 맞다.

   그러나 슬라보예 지젝은 대타자가 지니고 있다는 권위와 숭고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롱한다:


대타자는 주체가 마치 그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위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 대타자의 위상은 공산주의나 민족 같은 이데올로기적 대의의 위상과 같다. 그것은 자신이 대타자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개인들의 실체적 토대이며, 개인들의 존재적 기반이며, 삶의 의미 전체를 제공 하는 참조점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지만, 존재하는 것은 개 인들과 그들의 행위뿐이다. 그래서 이 실체는 개인들이 그것을 믿고 따르는 한에서만 현실적으로 작동한다.


    지젝에게 있어 대타자는 실재가 아니라 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타자가 실재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를 몇 해 전 개봉했던 영화‘국제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오후 늦은 시간에 국기 하강식을 하던 시절, 전 국민이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가 끝날 때 까지 부동자세로 태극기를 바라보던 장면이 영화에서 연출되었다. 그 영화 개봉 이후 누군가에 의해 국기하강식 전통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이후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다소 소란스러웠다.

    웬 국기하강식?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종북 좌파 빨갱이로 몰린다. 그런 낙인이 찍히면 살기 피곤해 진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비록‘반공이데올로기’가 중심이 비어있는 텅 빈 기표임에도 불구하고, 상징적 세계인 대한민국에서 실질적 힘으로 작동하는 대타자의 명령이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형태의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근본주의는, 대타자를 향한 확고한 집단적 도착적 믿음위에서 탄생하였고, 그 믿음을 먹으면서 성장하고 나서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대상을 향해서는 광기를 표출하는 삶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중간정리) 쉽게 이해하는 욕망論: “라면 먹고 갈래요?” 


    앞서 우리는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진입이 쾌락원리에서 현실원리로, 본능에서 초자아로, 자연에서 문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사회라는 제도로의 이행을 뜻한다고 배웠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상상계에서 가졌던 양육자와의 완벽했던 양자합의 관계가 깨어지는 상실과 아픔을 경험한다. 누가 그랬던가 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라깡식으로 말하자면 성숙이란 요구와 욕구사이의 괴리로부터 발생하는 슬픔과 상실을 견디는 법이겠지만, 그 작업은 언제나 실패하여 욕망이라는 찌꺼기를 남긴다.

    욕망은 요구와 욕구사이의 함수관계에서 결정된다. 욕구는 보통 생리적 욕구다. 배고프면 먹고, 배설하고 싶으면 싸는 그런 욕구 말이다. 요구는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잔여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여기 고시원에 혼자 사는 비정규직 열정 페이 청년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녀)는 배가 고파서 (텅 빈)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두 개 끓여 먹었다. 그런데 라면을 먹는데 갑자기 마음이 안 좋아진다. 엄마가 차려준 집 밥도 생각나고, 하루 종일 일하다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오는 자신의 처지도 처량하다. 라면을 두 개나 먹어 배가 불러 욕구가 해결되었는데 뭐가 문제지? 아마도 그(녀)가 원했던 것은 라면이나 밥이 아닐런지 모른다. 그 너머에 있는 그 무엇 아닐까.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 안에 담긴 사랑 이라든지,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먹던 저녁상가에서 벌어졌던 수다와 웃음이라든지...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요구의 영역이다.

    라면을 이용한 욕망계산법의 유명한 예화가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 등장한다. 연상녀 이영애는 늦은 밤 문밖에 서있는 연하남 유지태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제안을 한다. 연하남 유지태는 정말 라면만 먹고 그 집에서 가만히 무사히(?) 있다 나온다. 정말 착한 교회오빠 스타일이다. 두 남녀가 이해한 "라면"은 서로 다른 의미였다. 연하남 유지태는 라면을 배가 고플 때 먹는 육체적 욕구의 대상으로 해석을 한 것이고, 연상녀 이영애에게 있어 라면은 생리적 욕구가 아니라 심리적 요구였다. 나의 허기진 마음을, 나의 외로움과 고독을, 나의 이 쓸쓸함을 알아주고 만져주라는 싸인이 라면인데, 아직 세상을 몰랐던 유지태는 이영애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나중에 둘은 헤어지고 마는데... 잘 헤어졌다! 유지태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며 따져 묻지만, 순수가 얼마나 문제의 본질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지, 사랑이 때로는 얼마나 저열하고 구질구질하고 남루한 현상인지를 어린 유지태는 몰랐다. 그런 유지태가 여인 이영애에게는 버거웠던 것이고. 그 영화를 보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이영애의 선택이 현명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나도 속물이, 아니 성인(成人) 되어가나 보다.


영화 <봄날은 간다> 중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생리적으로는 배가 부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헛헛한 무엇이 항상 나의 무의식을 맴돈다. 그것은 욕구와 요구사이의 차이 혹은 결핍으로 설명할 수 있고,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할 때 상상계에서 누렸던 요구의 100% 충족이 상징계속 대타자의 개입으로 깨어짐을 전제한다. 바로 그 지점이 욕망이 출현하는 진앙이다. 이러한 욕망에 대한 이해를 갖고 빨강구두를 둘러싼 욕망의 변증법으로 넘어가보자. 거기에는 또 다른 욕망의 세계가 펼쳐진다.


빨강구두와 죽음충동


   Google에서 ‘Red Shoe’를 쳤더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고급에로영화의 대명사인격인 잘만 킹 감독의 시리즈 포스터들이다. 한국에서 방송되는 <사랑과 전쟁>의 미국판 19금 버전이랄까. <사랑과 전쟁>은 이혼직전 남녀가 변호사에게 찾아와 당신들의 입장을 하소연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는 한 남자의 우편함으로 배달된 여성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녀들이 겪었던‘사랑과 전쟁’을 거슬러 올라간다. 사랑과 배신, 잘못된 만남, 어긋난 사랑, 뒤늦은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등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성적 환타지를 아주 농익은 영상으로 수놓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상징하는‘빨간 구두’란 그야말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그것이 잘못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거되지 않고 조절되지도 않으면서 자꾸만 미끄러져 가는 욕망의 기표다.

잘만 킹 감독의 <Red Shoe Diaries> 포스터


    안데르센 동화 <빨강구두>에 등장하는 소녀가 신은 구두가 그렇다. 마치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운동하는 근육인 불수의근(involuntary muscle)과 같다. 심장에 있는 근육, 소화기관이나 생식기관에 있는 근육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을 뛰게 하고 소화의 촉진을 도우며, 성기를 빳빳하게하는 자동인형 같은 근육이다. 동화에서 소녀는 춤을 추지만 사실은 그것은 그녀가 추는 춤이 아니다. 빨강구두가 추는 춤이다. 그녀의 춤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구두가 끼워져 있는 발을 잘라내는 것이다. 결국, 빨강구두는 나와는 상관없이 보이나 강력하게 나를 지배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이고, 소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녀로 하여금 끝없이 춤을 추게 하여 발을 잘라내야 한다는 결정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죽음 충동’과 상관한다.

    ‘죽음 충동’이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오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겠다. 삶에 대한 충동인‘에로스’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생명을 끊으려고 삶의 에네르기와 단절하려는‘죽음 충동’은 그 제목부터가 무척이나 어색하고 심지어는 엽기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죽음충동에 대한 논의는 프로이트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이트의 전기사상이「꿈의 해석」(1889)으로 대변되는 무의식의 존재와 그것의 의미에 대한 탐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그의 후기 사상은「쾌락의 원칙을 넘어서」(1920)와「자아와 이드」(1923)에서 언급하는 이드(Id)-에고(ego)-초자아(Superego) 사이의 역학관계에 관심한다. 특별히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에서 프로이트는 욕망을 두 차원으로 분류한다. 하나는 에로스이고 다른 하나는 에로스와 반대적인 에네르기라 할 수 있는 죽음충동(타나토스)이다. 에로스가 삶에 대한 충동이라면, 죽음충동은 삶에 대한 애착과 미련에 반하는 에네르기인 셈이다.

   ‘죽음 충동’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주체와 실재(the Real)에 대한 새로운 상상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전통철학에서 말하는 실재란 상징적인 세상 밖에 있는 초월적 실재(absolute being)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실재는 다르다. 내안에 있지만 나도 모르는 그 무엇, 상징시스템 밖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실재가 아니라, 상징적인 것을 전제하고 이미 상징계 속에 들어와 있지만, 상징시스템에서 드러나지 않는 그 무엇이 바로 실재(the Real)이다. 빨강구두가 그런 것 아닌가. 내안에 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 나와 붙어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 바로 실재이고 그것이 빨강구두인 셈이다.

    주체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근대적 이성을 바탕으로 불굴의 의지를 갖고 역사의 진보를 향해 달려가는 주체는 어쩌면 근대성이 부여한 환상일런지 모른다. 우리를 완성된 주체로 만드는 요인은 빨강구두처럼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우리조차 알 수 없는 이질적인 영역 때문 아닐까. 그 이질적인 것들이 출몰할 때 주체는 비로소 온전한 주체의 모습을 바닥까지 다 드러내는 것 아닐는지.


파국의 욕망, 혹은 욕망의 파국


    앞서도 언급했듯이 상징계 속 주체는 결핍과 결여의 존재다. 상상계에서 누렸던 100% 쾌락을 거세당한 채 사회화과정을 밟으며 성장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 결핍은 드러나지 않지만, 인생의 고비고비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스멀스멀 올라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욕망은 어쩌면 그 결여와 구멍을 메우기 위한 인간의 방어기재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 욕망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대타자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욕망은 모른다. 돈을 많이 벌어도, 박사학위를 받아도 멋진 신랑 신부와 결혼을 해도, 성형수술을 해도 그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다.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알고 싶어서‘케 보이(Che Vuoi)?’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한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죽음충동은 이 순간에 발동한다. 온갖 내공을 다 부려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삶의 에네르기는 방향을 틀어 묻는다.‘죽어버릴까. 내가 죽어버리면 대타자는 만족하지 않을까. 죽으면 이 쓸쓸함과 공허와 이별하는 것 아닌가. 이제는 지친다. 죽자, 죽어버리자’어쩌면 우리의 근원적 결핍을 메우려는 욕망의 진정한 의도는, 마치 수학(數學) 극한(Limit)에서 0을 향해 무한히 수렴(收斂)해 가는 것처럼, 죽음을 향해 수렴하는 무한질주 아닐까. 그렇다면 욕망과 존재의 근원인 제로(Zero), 무(無)로 들어가는 것이야 말로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여 구원으로 이르는 계단 아닐까. 그 비상구는 에로스로 차고 넘치는 욕망의 거리에 있지 않고, 타나토스가 똬리를 틀고 앉은 욕망의 이면 어느 텅 빈 구멍 속 아닐까.

   정신분석학에서는 죽음충동을 성령으로 이해한다. 지젝은 라깡이 죽음충동을 성령으로 이해한 프로이트의 해석을 근거로 성령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우리가 성령 안에 우리의 위치를 정하면 우리의 존재는 성스럽게 변하고 생물학적 삶 너머에 이는 또 다른 삶으로 진입한다.” 성령을 죽음충동과 연관시킨 대목은 신학적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성령임재 사건들이 갖는 특징을 언급하라면, 한마디로 자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상징계 속 기표와 욕망과 기억과 경력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기득권을 어찌 다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성령은 죽음충동이다.

   하지만, 성경에 의하면 성령체험을 한 사람들로 인해 역사의 물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고, 무너질 것 같이 않았던 전체성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완고했던 시스템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성령을 체험했던 모세에 의해 파라오는 무너졌고, 성령을 체험한 바울이 로마로 들어가면서 제국의 기독교화는 시작되었다. 성령을 체험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백인과 흑인간의 불평등과 차별의 벽을 넘었고, 성령을 체험한 문익환 목사는 냉전과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들 모두에게 성령, 즉 죽음충동이 임하자 자아는 사라지고 텅 빈 충만이 자리했고, 그 힘으로 그들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욕망의 전복성


   요약하면, 욕망은 삶에 대한 욕동인 ‘에로스’와 죽음을 향한 욕동인‘타나토스’로 구분될 수 있겠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빨강구두’는 삶에 대한 애착과 환희를 향한 욕망인‘에로스’를 상징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발을 잘라내어야만‘빨강구두’가 추는 춤이 중단되어 원래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죽음 충동’을 닮았다.‘빨강 구두’로부터 시작된‘죽음 충동’은 현실 속 그 무엇도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의 욕망은 현실 저편의(혹은 아래의) 무엇을 지향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상상은 근대적 주체에 대한 불신과 전통 형이상학에서 말해왔던 완벽한 대타자와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하지만,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보편성의 중핵이 텅 비어있다는 욕망이론의 발언은 통쾌하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완고한 신자유주의의 보편성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을 놓고 골몰하던 이들에게, 정신분석학의 제안은 현실의 원칙에 집착하는 욕망이 아닌, 상징계 너머에 존재하는, 아니 상징계의 텅 빈 중핵을 겨냥하는 욕망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상상이 21세기 제국이라 할 수 있는 자본에 균열을 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틈을 통해 진입하는 혁명의 가능성을 노래하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분석학이 제안하는 욕망은 전복적이고 급진적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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