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15년 전 내가 노무현을 찍기까지 


    5.18 37주기를 한 주일 앞두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성가대가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이 아니라 제창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되고 나서 나흘이 지났는데 여러 부분에서 개혁적인 청사진을 펼지고 있습니다. 국정교과서문제, 비정규직 문제, 위반부 재협상 문제, 최순실, 세월호 사건 재조사, 청와대 비서진의 진용 등, 국민들로 하여금 많은 기대를 하게끔 합니다. 물론, 앞으로 수구보수 세력에 의해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딫치겠지만 잘 헤쳐나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15년 만에 대통령선거에 참여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될때는 미국 시카고에 유학중이었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시카고에서 듣고 불쾌하고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손 꼽아 기다렸나 봅니다. 15년 만에 대통령 선거를 하러 투표장소로 가는데 15년전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노무현이 당선되었던 그 선거 말입니다. 저는 당시 민노당 당비를 내던 당원이었습니다. 당시 민노당 대선 후보로 권영길이 나왔습니다. 정몽준과 노무현의 연대가 선거전날인가 깨졌죠. 저 뿐만이 아니라 민노당의 많은 당원들이 흔들렸습니다. 선거 당일 투표소로 가면서도 누구를 찍을지 결정을 못했습니다. 핸드폰으로는 민노당에서 문자메세지가 막 왔죠. 흔들리지 말고 권영길에게 투표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당시 저는 노무현을 찍었습니다. 노무현을 찍으면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정치적 선택이 최선이 아닌, 최악을 피해야하는 소극적 행위구나, 라는 현실정치에 대한 한계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최악을 피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일이고, 사력을 다해 온 힘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서글프기 까지 했습니다. 그 즈음에 신학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라는 물음을 갖고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랑 한 동안 실랑이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저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미국에서 노무현 정권의 어려움, 이명박의 당선, 노무현의 죽음, 박근혜의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지 한 달만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세월호 사건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정부의 대처는 결국 박근혜 정권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정권이 침몰한 것 같으나 더 근본적으로 민심을 버린, 자식을 버린 정권에 국민들이, 아니 하늘이 심판한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숨가쁜 사건들을 지나고 저는 다시 15년 만에 대선에 참여했습니다. 15년 만에 대선에 참여하면서, 15년 전 직면했던 문제와 다시 대면했습니다. 15년 전 대선에서는 권영길을 찍을까, 노무현을 찍을까, 였는데, 15년이 지난 2017년 대선에서는 심상정을 찍을까, 문재인을 찍을까, 여러분 제가 누구를 찍었을까요?  


도입


    제가 올 들어 주기도문에 대한 연속 하늘 뜻을 나누고 있고, 오늘이 마지막 여섯 번째 ‘악(惡: Evil)’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이 말은 예수 당시 일반 민중들이 메시아에게 기대하는 바이고, 메시아를 향한 염원의 최종 완결판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주기도문의 마지막을 ‘우리를 악에서 구해 달라’는 간곡한 기도로 끝을 내지 않았을까 합니다. 좀 오바해서 이 구절을 우리현실에 대입하면, 2017년 대선에 참여했던 대한민국 유권자의 70%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이 이 마음 아니었을까 합니다. 우리나라를 악에서 구해 달라, 적폐를 청산해라, 과연, 문재인은 이것을 실행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다만 악에서 구해 달라’는 예수의 기도는 예수조차도 이루지 못했던 내용이 아닐까 합니다. 악의 문제는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악은 무엇이고,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 오늘 하늘 뜻 나누기에서 제가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내용입니다.


악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예전에 조지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이란.이라크, 그리고 북한을 향해 ‘악의 축“ (Axis of evil)이라 지목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란을 생각할때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만든 영화속에 등장하는 이란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가 만들었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사이로‘ ’체리향기‘에 나오는 순박하고 천사같은 이란 사람들이 악의 축이라니, 저는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라크를 생각할때마다,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로, 2대에 걸쳐 이어지면서 폭행을 당했던 불쌍한 이라크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북한을 생각할때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괜히 울화가 치밀고, 너희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라고 따지고 싶습니다.

    어쩌면 악은, 누군가를 악이라고 지목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것이 호명되는 순간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악은 정치적 의도와 음모의 소산인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악이라 지목하면서 그것을 공식화 한다는 것은, 우리, 즉 내부를 공고히 하여 하나로 뭉치게 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지니는 문제(예: 권력의 정당성, 현실정치에서의 실정, 그 밖의 여러 내부 소란들)들을 일거에 소거할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악은 대부분 정치 권력에 의해 창조되고, 권력의 관심 속에서 길러졌으며, 다 크고 나면 권력에 의해 제거 당해야 하는, 혹은 권력의 유지를 위해 계속 있어줘야 하는 불행하고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이것이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악에 대한 범박한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말하는 '악'


    그렇다면 신학에서는 말하는 ’악‘은 뭘까요? 존재론적으로 악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합니다. 존재론적으로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악의 현상은 우리는 매일 목도합니다. 그것이 세월호 사건이나, 용산참사 같은 거대한 악일 수도 있고, 개개인에게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일상적이고도 미시적인 악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종교에서 악에 대한 물음은 가장 중요한 화두이고, 마지막으로 남겨진 문제였습니다. 이런 악의 심각성을 알기에 예수는 주기도문 제일 마지막에 악의 문제를 배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악’은 너무나 큰 주제이기에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그것을 한 눈에 조망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한 학기 세미나 제목입니다. 오늘 하늘뜻에서는 주로 예수가 말했던 악에 대한 이야기 위주로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많이 이야기 되는 것이 악이 존재인가? 비존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했던 사람이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그는 악을 “선의 결핍”으로 규정을 합니다. 우리가 100% 충만한 존재,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을 듣는 완벽한 존재인데, 시간이 흐르고 상처를 받고 아픔을 겪으면서 100% 충만함이 깨졌다는 거예요. 이것을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을 통해 설명합니다. 플로티누스에 따르면 물질이란 일자(一者)의 유출이 끝나는 곳에 위치합니다. 물질은 악의 유통로입니다. 이 말은 악 역시 선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거스틴에게 있어 악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악은 선의 바깥에서 비존재로 위치하는 것입니다. 어둠은 빛의 결핍이고, 추위는 열의 결핍이고, 미움은 사랑의 결핍입니다. 그렇듯이 악도 선의 결핍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이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얼핏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생각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악의 현상을 너무 나이브하게 보는 것 아닌가, 혹은 일종의 어용철학자, 관변학자의 발언인 듯이 보입니다. “세상은 완벽해, 우주는 완벽해, 네가 지금 힘든 것은 현실에 치여서 네가 원래 지녔던 온전함을 상실했기 때문이야. 그 온전함을 빨리 회복하렴. 넌 할 수 있어! 네가 지금 불행한 것은 네가 수양이 부족하고 공부가 부족하고 기도가 부족한거야. 너의 수양과 공부와 기도가 100% 회복되는 날 세상은 변해있을거야. 넌 할 수 있어. 내가 기도할고 응원할께”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요즘 유행하는 힐링관련 책들의 결론입니다. 한국 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힐링 담론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악을 선의 결핍이라 주장했던 어거스틴의 그것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의 생애를 살펴보면, 어거스틴 만큼 또 악의 문제에 맞서 실존적으로 몸부림쳤던 사람은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육체적 쾌락에 탐닉했고, 이교인 마니교에 빠지기도 했으며, 전쟁의 한복판에서 공포속에 떨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열병으로 죽죠. 누구보다도 악의 실존을 철저히 체험했던 사람이 어거스틴입니다. 제가 윤리를 하는 입장에서 어거스틴을 다시 읽으면서 어거스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다르게 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윤리는 기본적으로 선택과 결단, 그리고 행위의 문제입니다. 어거스틴의 악에 대한 생각이 나이브할 수 있겠지만, 어거스틴의 발언을 윤리적으로 바라볼때는 나름 유의미한 면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악의 존재론적 의미를 인정하지 않죠. 악을 존재론적으로 인정하는 순간 인간의 무책임이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뭘 해도 안돼. 할 수 없었어, 워낙 악이 강력하니까. 우리의 행위가 소용없어, 세상이 뭐 다 그렇고 그런거지. 그냥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자” 이런 식의 운명론, 혹은 냉소론이 인간이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할 때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어거스틴의 악을 ‘선의 결핍’ 이라고 보는 견해는 신정론(theodicy)이 아닌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인정론(anthropodicy)으로 윤리적 행위를 견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가 말하는 '악'


    그렇다면 예수에게서 악은 무엇이었을까요? 복음서에 보면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예수의 공생애는 크게 두 가지로 예수의 사역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이고, 다른 하나는 기적입니다. 기적은 크게 치유와 축귀로 나누어 집니다. 여러분들 기억나는 예수님의 귀신쫓는 이야기가 뭐가 있습니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 축귀 이야기”(막 5장)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에 대해 마가복음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 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예수가 제일 먼저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네 이름이 무엇이냐?”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엑소시스트들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보면, 악령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사람들 뒤에 숨어서 자신을 감춥니다. 악의 생존방식이죠. 자신을 숨기고 다른 사람을 통해 악을 저지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밝혀진다는 것, 즉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 자체가 악령의 입장에서는 패배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는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악령은 뜻밖으로 순순히 자신의 이름을 털어놓습니다.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My name is Legion; for we are many” (5:9)

    레기온은 단수한 군인들의 무리가 아니라, 대략 육천여 명의 보병과 칠백여명의 기마병으로 구성된 로마의 군단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이 대목에서 악에 대한 실마리가 나옵니다. 그것은 악령이 말했던 we are many 라는 말에서 분명해 집니다. 많다는 것이 악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수가 많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목사들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인 몇 명이야? 몇 명이다” 라고 말하면, “와 많다. 잘 되었네”, 라고 기뻐합니다. 이건 단순히 목사들의 경우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풍요로움을 갈망하잖아요. 그렇다고 볼 때, 악마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우리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답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이 말은 풍요와 성공과 다산을 갈망하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악이 있다는 말일 수 있고, ‘많음’만을 강조하고 추구하는 전체의 생각이 사탄의 논리 일 수 있고, 나라는 개인 역시 많은(many) 사람 중 하나라고 볼 때, 나 역시 언제든 사탄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악의 전체성


    서구 역사에서 악에 대한 담론이 크게 변화되었던 두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중세 말입니다. 십자군 원정과 페스트의 출몰을 겪으면서 죽음의 일상화가 전 유럽을 휩쓸던 시기였습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죄악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죄를 고백하는 의식, 즉 고해성사가 본격적으로 교회안에서 시행되기 시작하던 무렵이 바로 그때입니다.

    악에 대한 성찰이 발전했던 다른 한 시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20세기 후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홀로코스트 이후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럽의 지성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나찌가 가능했나, 라는 물음이 대두되었습니다. 한나 아렌트 같은 사람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집단(many) 속 개인이 범할 수 있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주목합니다. 집단 속의 개인은, 전체 속의 개인은 자기가 하는 행위에 대한 반성적 고찰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는 것이죠. 멀쩡하던 사람들도 예비군 옷만 입혀 놓으면 돌아이가 됩니다. 미셀 푸코가 “전체는 광기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라인홀드 니버라, “도적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전체주의와 악에 대한 비극을 노래합니다. 이들 공히 악의 전체성에 주목합니다.

    악령이 말했던 we are many는 악의 전체성을 언급할 때 각주로 달리는 중요한 근거입니다. 한마디로 자기들의 힘과 목소리가 크고 세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사회를 지배했던 힘과 목소리가 무엇이었는지 한번 회고해 보십시오. 그것은 권위주의, 가부장제, 서열주의, 반공주의, 경제제일주의, 패권주의, 이성애중심주의, 성과주의, 분열주의 등입니다. 이런 목소리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할 때,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다수가 될 때 악이 작동되고, 반대파를 향한 혐오의 메카니즘이 등장하면서, 그들을 향한 공격이 정당화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해주십시오’라는 기도의 숨은 뜻은, 전체주의적인 논리 안에서 그 전체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불이익과 폭력과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가부장제라는 전체주의적인 논리에서 이 땅의 여성들이 남모르게 고통당하고 있다면 그것이 악입니다. 반공주의라는 전체주의 논리 속에서 누군가를 빨갱이로 지목하면서 아무런 이유없이 사회적으로 매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악입니다. 무한경쟁, 무한질주, 세계경영의 신자유주의의 모토속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우리가 보살피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전체주의를 인정하는 죄인들입니다. 예수는 본인이 했던 주기도문의 마지막에서 이런 악에서 우리를 구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에필로그


    이번 주간에 5.18 이 있습니다. 5.18는 이런 악의 현상학에 저항했던 우리 역사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고 숨가쁘게 전개되었던 근래의 사건들도 악에 저항했던 한국 현대사의 소중한 기억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역사의 노력과 기도의 끝에서 우리는 지난 주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아주 자그마한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찌 될지 떨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악에서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이 새삼 더 간절하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이상철
    2017.05.17 15:3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위의 글은 5월 14일 한백교회 '하늘뜻 나누기' 원고입니다


미국 진보 신학의 버팀목, 

시카고 신학대학원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각주:1]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프롤로그 : 시카고를 아시나요?


   시카고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시카고 대화재(1871년)와 1920년대와 30년대 시카고를 장악했던 미국 갱의 전설 알카포네, 1990년대 NBA를 장악했던 농구천재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 건축과 재즈의 도시, 바람과 호수의 도시, 그리고 얼마 전 퇴임한 바락 오바마 대통령 까지, 이상은 빅테이터를 돌리면 나오는 시카고 관련 내용들입니다.

    시카고는 미 중부 일리노이주에 있고, 미시건 호수 남서쪽에 자리잡은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정치적으로 시카고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와 더불어 민주당 초강세 지역으로 분류됩니다. 이런 까닭에 마약, 낙태, 총기규제, 반전, 흑인, 동성애와 이민자 정책 등에 있어 시카고는 미국내에서 진보담론의 진원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시카고의 특징들 가운데 빠진 것이 있다면, 시카고는 대학의 도시, 신학의 도시라는 점입니다. 명문 시카고대학, 노스웨스턴대학, 예수회 계통의 로욜라대학, 미국 내 최대 카톨릭 대학 중 하나인 드폴(De Paul)대학, 일리노이주립대학 등이 시카고에 위치하고 있고, 특별히 신학교육에 있어서 시카고는 바티칸 다음으로 가장 크고 내실있는 신학 네트워크가 조성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미 최대의 신학 도시, 시카고


   시카고의 가장 큰 신학적 특색을 꼽으라면 초교파적으로 구성된 12개의 신학교가 연합체(ACTS: The Association Of Chicago Theological Schools)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각주:2] ACTS에 속한 학생들은 어느 학교 수업이든 수강할 수 있습니다. 각기 다양한 신앙전통 속에 존재하는 신학, 예전, 역사들을 배우며 오늘의 신학을 재구성할 수 있는 풍부한 논의를 경험할 수 있는 있다는 말입니다. ACTS에 소속된 전임 교수는 260여명, 학생은 3천여명, 1년에 개설되는 강의는 총 700여 강좌에 육박합니다. 비슷한 형태의 샌프란시스코의 GTU나, 캐나다 토론토와 비교했을 때 비록 공동학위 시스템은 아니지만, 규모와 스케일 면에서는 가히 전미 최대 신학 도시라 할만 합니다.

    매학기 마다 수강신청을 하기 전에 무엇을 들을까 하고 ACTS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350개가 넘는 과목의 실라버스가 뗘 있습니다. 그것만 확인하는데도 일주일 넘게 걸립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기독교윤리가 전공이었는데, 학기 시작 한 달전 ACTS에 소속된 윤리학 전공 30여명의 교수가 개설하는 50여 기독교 윤리 과목에 대한 research로부터 학기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달 동안 실라버스 확인하여 강의 내용과 일정, Text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됩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내가 듣고 싶은 과목 3-4개를 선택하여 수강을 합니다.

    또한 ACTS에 속한 학생들은 수강 신청 전에 사전 협의만 하면 시카고대학, 노스웨스턴 대학, 로욜라(Loyola) 대학, 드폴(DePaul) 대학의 철학과 종교학 수업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임윤리의 계승자로 알려진 시카고 대학의 슈바이커 교수의 강의를 오전에 듣고, 점심 먹고 노스웨스턴 대학으로 건너가 철학과에서 데리다의 정치신학을 강의하는 도이처 교수의 강좌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로욜라 대학에 있는 미국 내 레비나스 번역가로 알려진 페이퍼 젝 교수가 개설하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학 수업도 수강 가능합니다.

    종합하면, 시카고가 지닌 신학교육의 특징은 Interdisciplinary Studies (학제간 연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시카고가 지닌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의 상황속에서 시카고의 신학은 이러한 시대적 질문에 대해 철저한 제 학문간 연대와 제휴를 통해 신학적으로 다양한 색깔과 무닉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ACTS가 위치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시카고 지역의 신학적 토양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 미국 진보신학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 이하 CTS)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시카고 신학교가 위치한 시카고 남부 Hyde Park[각주:3]


   시카고 신학대학원 길라잡이


   저는 2004년 시카고로 도미하여 2014년 학위를 마치고 10년만에 귀국했습니다. 멕코믹 신학교에서 석사과정(MATS)을 마치고(2007), 바로 CTS로 진학하여 7년 동안 윤리학으로 Ph.D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지금부터 시카고 유학시절 CTS에서 공부하면서 배우고 느낌 점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CTS는 미국연합그리스도교회(United Church of Christ) 교단 소속의 신학교로서 1855년에 세워졌습니다. UCC 교단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교단으로 이민, 흑인, 반전, 동성애, 여성문제에 대한 선교정책에 있어 전향적인 자세와 실천을 이루어내고 있는 교단입니다. 우리 기장과는 1986년부터 파트너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서부 지역 회중교회들을 모체로 세워진 시카고신학교는 미국연합그리스도교단 출신 학생뿐만 아니라 개신교 각 교단과 천주교, 동방정교회, 나아가 유대교, 이슬람 계통의 학생까지 모여 공부하는 초교파, 범교단적 신학교입니다.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기 쉬운 시카고대학 Divinity school과 CTS는 초기에 교수진과 학생 교류, 학교 행정을 같이 하는 관계였다가 1960년 이후에는 단순한 협력관계로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수업과 도서관은 여전히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CTS는 역사적으로 교수와 학생 모두 시민운동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신학생들과 교수들은 사회적 문제와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이런 저런 형태로 현실의 문제에 개입합니다. 이라크 전쟁 반대시위,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Ocu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가담, 그 밖에 동성애와 여성, 이민자 문제 등에서 CTS 구성원들은 대외적으로 활발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일까요, CTS는 미국 인권운동의 대명사 마틴 루터 킹 명예학위를 주는 최고의 고등기관이기도 합니다. 이 상은 198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기독교의 반 인종차별 운동에 앞장섰던 투투주교에 수여되기도 했습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맨토로 유명한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UCC) 전 담임목사 제레미야 라이트 목사가 CTS 출신입니다. 그는 미국의 패권적 외교정책에 대해 “Got damn America! (빌어먹을 미국)” 이라 비난하면서 문제적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이자 1980년대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도 참여한 제시 잭슨 목사도 CTS 출신입니다. 이들은 CTS에서 행사(졸업식, 각종 기념식)가 있을 때 가끔씩 등장해 연설을 하면서 좌중을 쥐락펴락 하면서 행사장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계절 학기 강사로 강단에 서기도 합니다.

       종합하면 CTS는 대사회적 메시지와 참여에 충실한 한신 신학의 학풍과도 매우 유사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제가 Ph.D 과정 지원 할 때 SOP(학업계획서) 쓰면서 CTS 지원이유에서 ‘나는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인 한신 출신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적었더니 교수님들이 흡족해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로 CTS는 미국 신학계에서 한국 신학계에서 한신이 점하는 위치와 같은 진보적 색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신이 요즘 안팎으로 변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여전히 그 색깔을 변치 않고 시대에 맞게 진화하며 꾸준히 진보적 신학담론을 창출하는 CTS에서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시카고 신학대학원의 학풍


   CTS는 앞서 이미 언급 했듯이 미국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로 각종 사회적 이슈들에서 Radical한 신학적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CTS는 전통적으로 아웃사이더 신학이 강합니다. 전에는 해방신학, 여성신학, 정치신학의 입장이 강했고, 근래는 Queer Theology (Ken Stone), Postmodern Theology (Jennings, Schneider), Black & Womanist Theology (Butler, Terrell)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학자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CTS는 목회상담 1세대를 대표하는 학자 안톤 보이슨(Anton T. Boisen)에 의해 전미에서 최초로 신학교에서 CPE를 시행했던 학교입니다. 이러한 전통이 CTS를 임상 목회상담의 산실로 우뚝 자리잡게 하였습니다. 특별히 CTS를 오랫동안 대표했던 모어(Moore) 교수는 목회상담과 융과 틸리히를 연결하여 나름 그 분야 학제간 대화의 독보적 인물로 평가됩니다.

    특별히 저같이 데리다, 푸코, 라깡, 들뢰즈, 레비나스, 지젝등 현재 활발히 논의되는 유럽의 탈근대적, 좌파적 철학자들의 사상을 신학적으로 어뗳게 해석하여 운동(윤리)의 차원으로, 해방의 차원으로 승화시킬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CTS는 미국내 최상의 학교입니다. Theology, Ethics & Human Science 분야의 전교수가 이 문제를 갖고 연구하는 분들이시고 권위자입니다. 올해 은퇴한 테드 제닝스(Ted Jennings) 교수는 요즘 가장 핫한 바울에 대한 정치신학 비평으로 유명한 학자이고, 서구 정신사를 인문 신학적으로 꿰고 있는 국보급 진보신학자입니다. 레비나스와 지젝을 통해 서구 전통신학에 반기를 들었던 서보명 교수는 근래에는 유영모,함석헌 사상을 바탕으로 서구신학에 대한 대안을 모색합니다. 지금은 벤더빌트로 옮긴 슈나이더(Schneider) 교수도 CTS에서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본회퍼와 탈근대 사상을 연결하는 학자이자, 차세대 페미니즘을 대표할 신학자로 벌써부터 메이나 층이 형성된 신학자입니다

    CTS의 성서학은 전통적인 역사비평의 틀을 넘어서서 해석학적인 성서비평으로 유명합니다. 포스트콜로니얼의 시각에서 성서를 바라보는 양승애 교수는 리타 나카시마 브럭(Rita Nakashima Brock)과 곽퓨란(Kwok Pui Lan)등과 어깨를 견주는 대표적 아시아 여성신학자입니다. 구약학자 켄스톤 (Ken Stone)의 이름은 앞으로 반드시 숙지하셔야 할 것입니다. 미국내 Queer 관점으로 구약성서를 재해석하는 독보적 학자입니다. 이렇듯 CTS에 포진하고 있는 엣지있는 교수들과 학교자체의 진보적 색채 때문에 전미에 분포하는 개혁적 성향의 신학도들에게 CTS는 여전히 매력적인 신학교입니다.


* CTS 새 캠퍼스[각주:4]


   변화하는 시카고 신학대학원


   2010년을 넘어가면서 CTS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신학교들도 그러하듯이 미국의 신학교들 역시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미국 내 진보성향의 신학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CTS의 상황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2012년에 큰 결단을 내려 원래 Hyde Park 55가에 위치했던 덩어리가 컸던 캠퍼스를 정리하고, 한 블록 위에다 새롭게 아담한 캠퍼스를 조성하였습니다.

    옛 건물을 처분하고 캠퍼스를 줄여 옮겨 가는 과정에서 이익이 발생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장학사업과 그 밖의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신학교협의회(ATS: The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로 부터 인가를 받아 Mainline Protestant Seminary 중 최초로 online으로 M.Div. 학위를 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의 정신과 커리큘럼에 동의하고 흥미를 느끼면서도 거리상 입학할 수 없었던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신학도들이 CTS M. Div 온라인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Eco-Community(생태 공동체) 프로그램과 Interreligious Institute(종교간 센터)를 새롭게 만들어 운영하면서 좋은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 기획된 프로그램들은 CTS에 기존에 있었던 LGBTQ Center (Queer theology), Christian-Muslim Studies, Christian-Judaism Studies, Center for Study of Black theology, Center for Study of Korean Christianity 등의 기관과 유기적으로 협조를 합니다. 이러한 커리큘럼 재정비를 통해 다인종,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타자를 환대하는 목회자, 타자와 더불어 함께 연대하는 목회자 양성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관계자 말에 의하면 M.Div 온라인 과정 신설과 여러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전에 비해 30% 가까이 학생수가 증가했다고 합니다.[각주:5]

    몇몇 CTS의 상징적 교수들이 은퇴를 하거나 학교를 옮겨 교수보강이 시급했는데 좋은 교수들이 임용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슈나이더 교수 후임으로 2015년 Christoph Ringer 교수가 Public Theology and Ethics 교수로 부임하였고, 불행하게 세상을 등진 모어 교수 후임으로는 작년 2016년에 Zachary Moon 교수가 새로 영입되었습니다. Stephanie Buckhanon Crowder는 womanist(흑인여성신학) 관점에서 성서와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독특한 학자인데, 새롭게 CTS의 교수진으로 수혈된 젊은 학자입니다. 특별한 소식을 하나 더 하자면, Bexley-Seabury 성공회 신학대학이 CTS 건물로 이주해 시설과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한 캠퍼스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신학교가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에필로그


    CTS에서 유학생 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던 것은 민중신학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입니다. 그것은 민중신학의 빛바랜 과거에 대한 찬양도 아니고, 화석화된 민중신학에 대한 주례사 비평은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미국 와서 신학을 공부한다고해서, 몇 가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학이슈들에 발빠르게 대처한다고 해서 호박이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니죠. 진보란 열려있음을 전제로 변혁을 꿈꾸는 정신성이고, 부단히 삶의 자리에서 실행되어야 하는 구체성입니다. 또한 진보란 부단히 흘러가면서 새로움을 상상하는 정신이자 그것을 감행하는 실재입니다. 이러한 진보적 유전자가 민중신학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CTS에서 공부하는 동안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CTS에서 배우고 살면서 느꼈던 것은 민중신학이 표방하는 성서 해석학, 예수에 대한 이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세계적인 신학이었고, 첨단의 신학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해왔던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변했으니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더 악랄하고 집요해졌을 뿐입니다. 다시 한번 민중신학의 자리를 점검하면서 새로운 진보신학의 언어를 발굴하고 적용하며 실천하는 일에 우리의 의지와 상상을 모을 때 입니다.


* CTS 새 캠퍼스 로비에 있는 문익환 목사님 이미지[각주:6]



ⓒ 웹진 <제3시대>



  1. 『세계와 선교』(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실리게 될 ‘세계 신학교 탐방’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ACTS (http://www.actschicago.org/) 소속 12개 신학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UCC,기장과 자매교단), McComick Theological Seminary (미국 장로교, 기장과 자매교단), Meadvill·Lombard Theological Seminary (유니테리안), Luthern School of Theological at Chicago* (루터교), Bexley-Seabury Seminary Federation(성공회), Loyola Institute for Pastoral Studies (예수회), Garreett-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 (감리교), Nor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침례교), North-Park Theological Seminary (언약교단),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복음적 자유교회 소속), Catholic Theological Seminary (천주교), Mundelein Seminary (천주교) (*가 있는 학교는 Ph.D 학위가 있는 학교임), 이 밖에도 1800년대 중후반 시카고를 중심으로 미국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무디(Moody)을 기념하는 Moody Bible Institute도 시카고 시내에 있다. [본문으로]
  3. 오바마의 정치적, 사상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시카고 남부 Hyde-Park은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적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살아있는 흑인 인권 운동의 대부인 제시 잭슨 목사, 오바마의 멘토로 유명한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 등이 모두 시카고 신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받았다. 위의 사진은 Hyde-Park에 위치하고 있는 시카고 대학과 시카고 신학교 전경이다. 우측 하단에 거대하게 버티고 있는 건물이 시카고 대학을 건립한 록펠러를 기념하여 세운 록펠러 채플이고, 바로 건너편 빨간 벽돌로 높이 솟아있는 탑이 시카고 신학교이다. 2012년 까지 이곳에서 신학수업이 이루어졌다. 사진 중앙을 가로 지르고 있는 길이 University Ave이다. 그 길 건너편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카고 대학이 펼쳐진다. 좌측 중앙에 보이는 회색 건물이 시카고 대학 메인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뢰겐스타인 도서관이다. University Ave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신학자 폴 틸리히가 자주 갔다는 맥주집이 길 모퉁이에서 아직도 성업중이다. 저 멀리 시카고 다운 타운이 보이고, 사진 상단 파란부분은 남한 땅이 풍덩 빠져도 남는다는 미시건 호수이다. [본문으로]
  4. 새로 옮긴 CTS 캠퍼스. 위에 옥상의 동그란 부분이 채플실. 3층이 도서관과 학생 휴게실. 1,2층에 강의실 및 각종 부속시설이 배치되어 있다. [본문으로]
  5. CTS에는 다음과 같은 학위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석사과정에 M.Div, STM, MA, 박사과정에 D.Min, ph.D. 좀 더 자세한 입학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학교 공식 홈피(https://www.ctschicago.edu/)에 접속하셔서 바탕화면에 떠 있는 Admission를 누르고 들어가면 됩니다. [본문으로]
  6. 새 캠퍼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위에 실현하고자 분투했던 신앙인들의 얼굴이 우리를 맞습니다. 본회퍼, Harriet Tubman(노예였으나 탈출한 뒤에 수많은 노예를 해방시킨 '장군'이라고 불리었던 여성), 간디, Millard Fuller(해비타트 운동의 창시자), 마틴 루터 킹, Audre Lorde(흑인 여성주의자였던 시인), 로메로 신부, 마더 테레사 등....그리고 우리의 문익환 목사님도 그 벽화에는 새겨져 있답니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세월호, 우리의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각주:1]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세월호 얘기, 혹시 지겨우십니까? 지겹다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왜?’라는 질문은 넘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배가 왜 침몰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9월 24일)이 벌써 162일째인데도 말이지요. 지겨워도 직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세월호 사고 당일로 돌아가봅니다…” _손석희, JTBC 뉴스 2014년 9월 24일 오프닝 멘트 중


안티고네를 소환하며


    오늘은 위의 손석희 멘트가 있었던 날로부터도 2년 반 가까이 흐른 날이고, 이제 2주후면 우리는 세월호 3주기를 맞는다. 문득 지난 3년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믿기지 않았던 세월호 침몰과 더 믿기지 않았던 구조과정들, 구원파를 끌어들여 사건 초기에 문제의 핵심을 호도했던 일, 세월호 유가족들의 애끓는 절규와 대통령의 눈물. 유민 아빠 김영호 씨의 목숨을 건 단식, 인상 깊었던 교황의 방한,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었다는 뉴스, 서울서 팽목항까지 세월호 인양을 위한 도보 행진, 팽목항에서 서울까지 유가족들의 삼보일배, 무의미했던 세월호 청문회, 대통령의 사라진 세월호 7시간, 대통령 탄핵 가결과 인용, 그리고 지난주에 있었던 세월호 인양 소식까지, 이상은 지난 3년간 세월호와 관련하여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굵직한 제목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3년이 지나도록 이 배가 왜 침몰했는지조차 모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나지지 않았을 때 어느 문인(文人)은“어떤 경우에도 진실은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며 정당한 슬픔은 합당한 이유 없이 눈물을 그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각주:2]글을 쓰겠노라고 밝혔다. 그이의 다짐을 접하고 윤리학자로서 떠올랐던 단어가 진실과 애도다. 윤리는 진실의 윤리학이어야 하고, 윤리는 또한 애도의 윤리학이어야 맞다.

   졸고는 안티고네의 애도를 향한 정신분석학적 접근, 그리고 정신분석학의 윤리에 대한 글이고, 그 윤리가 어떻게 현실의 불합리한 질서를 전복시키는 기제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상상이다. 안티고네의 폴리네이케스를 향한 애도는 진실을 향한 투쟁이었고, 그녀의 행보는 시스템의 안녕과 평화를 추구했던 전통적인 윤리학의 지형에 대혼란을 초래하였다. 나는 안티고네의 파국을 지향하는 윤리가 어쩌면 뒤틀리고 왜곡되고 변태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21세기 시민들이 지녀야할 윤리적 모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에 대한 판단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넘긴다.


애도의 원형


   맑스주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게오르그 루카치는《소설의 이론》에서 고대 그리스를‘서사시 시대-비극의 시대-철학의 시대’로 구분하였다.‘서사시 시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대표적인 작품이고, ‘비극의 시대’ 하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루카치는 고대 그리스가 ‘서사시 시대’에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하나로 섞여 있었던 시대였고, ‘비극의 시대’는 이성과 감성의 분화가 일어났던 시절, 그리고 소크라테스로 상징되는 ‘철학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감성과 욕망의 영역이 배제되면서 이성우월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밝힌다.

    애도에 대한 고전적인 판본은 고대 그리스 ‘서사시 시대’의 걸작 〈일리아스〉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헥토르에 대한 애도의 장면과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 이야기〉에 등장하는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이다. 〈일리아스〉는 기원전 12-13세기에 쓰여진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브레드피트가 나왔던 영화 〈트로이〉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대목에서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이고 헥토르의 시신을 유린하는 장면이 나온다. 헥토르의 아버지가 밤에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아들의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내어주면서 눈물을 흘린다. 다음 날 헥토르의 시신이 트로이로 옮겨져서 그동안 치르지 못했던 애도의 의식을 벌이는 것을 끝으로 〈일리아스〉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일리아스〉 속 헥토르에 대한 애도보다 더 복잡하고 진화된 애도 이야기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 등장한다. 사건의 대강은 이렇다. 국가(테베市)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 들판에 버려져 들짐승의 먹이가 되어버린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거두어 장례를 치르려는 안티고네와 반역자(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응징의 차원에서 애도를 허락지 않는 테베왕 크레온 사이 갈등이 이 비극의 줄거리다.

    폴리네이케스는 테베國의 입장에서 볼 때 역적이다. 국가에 반기를 든 자들에 대한 역사의 형벌은 어느 민족이건 대체로 일치했다. 공동체 성원들 앞에서 공개적이고 잔인한 사형이 집행되고, 그 주검을 마을 어귀에 대롱대롱 매달아 공포의 타산지석으로 삼게 하거나, 혹은 그냥 시체를 들판에 내동댕이쳐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함으로써 반역자와 공동체 간의 거친 수직적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듯, 공동체에 심각한 타격을 끼친 인물에 대한 응징과 처벌은 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동체 성원들의 결속과 단합을 유지하고 지켜내기 위한 당연한 처사다. 이 지점에서부터 안티고네의 문제의식은 시작된다.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


   사건은 안티고네가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원칙, 상징계의 질서를 거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현행법을 어기면서까지 안티고네는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되찾아 장례를 치르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안티고네는 공동체의 운영원리인 쾌락주의적이고 공리주의적인 현실의 원칙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죽으면 누구나 장례를 치르고, 고이 안장되어야 한다는 생명의 원칙, 진실의 원칙에 무게를 두었고, 그것을 현실의 삶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내 기억에는 안티고네만큼 ‘쾌락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았던 인물이 있다.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오현우다. 1970년대 말 군부독재에 반대하는 지하조직 활동을 한 오현우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수배자가 되어 도피생활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준 시골학교 미술교사 한윤희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한적한 시골 외딴 마을에서 3개월 남짓 둘만의 따뜻하고 오붓한 시간을 갖지만, 오현우는 다시 동지들을 규합하여 투쟁의 길로 나서기로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선다.


<오래된 정원> 중에서


    서울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 비 내리는 시골길에서 한윤희가 오현우에게 이렇게 따져 묻는다. “왜 가니? 집도 주고, 밥도 주고, 몸도 줬는데… 왜 가는 거야? 그곳에 뭐가 있길래… 이 바보야!” 오현우는 한윤희의 이 질문에 아무런 말을 못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다 안다. 그가 죽으러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왜, 오현우는 집도 주고, 밥도 주고, 몸까지 제공되는 쾌락의 공간과 시간을 거부하고, 그 쾌락에 만족하지 못하고 왜, 죽음을 향해 나가는 것일까? 왜, 안티고네는 공동체가 제공하는 쾌락의 원칙에 머무르지 못하고 죽은 오빠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지내야겠다고, 아직 나의 애도는 끝나지 않았다며 절규하는 것일까?

    이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풀어내면 이렇다. 안티고네는 공동체의 타자인 폴리네이케스를 향한 금지된 욕망을, 오현우 역시 민주주의와 정의를 향한 금지된 욕망을 현실 질서(법)의 위협과 협박과 조롱과 공포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켰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했던 ‘쾌락의 원칙’을 넘어가는 행위다.

       인간의 사회화 과정은 언어의 학습과 병행한다. 어린아이는 언어를 습득하면서 이드(Id)가 지배하던 원초적 자아(상상계적 자아)에서‘아버지의 이름’이라는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 속으로 편입된다. 사회라는 상징계 안으로 진입한 아이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법과 질서와 전통 안에서 자라면서, 사회가 설정한 기표를 따라가는 것이 생의 목표이고 기쁨이 되는 인간으로 길들여지게 된다.‘쾌락의 원칙’이란, 사회적 기표를 하나씩 따면서 생기는 삶의 기쁨과 보람과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쾌락 원칙은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적 불안과 소외를 피하려는 속성이다. 그것은 법이 허용한 범위 내에서는 쾌락을 추구하지만, 불쾌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금지된 대상을 피하려는 성질이다. 이런 까닭에 쾌락의 원칙은 사회적 금기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보수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에서, 인간에게는 쾌락의 원칙을 넘어가는 측면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살고자하는 충동인 에로스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삶의 터전인 공동체의 원리를 거부하고, 자기를 끊어내는 죽음충동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재(the Real)란 무엇인가?


    안티고네와 오현우의 행위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가능하게 했던 인간의 욕동에 대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동을 ‘욕망desire’과 ‘주이상스jouissance’로 구분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욕망이란, 사회적 관습이나 전통, 이데올로기적 학습, 혹은 법률 안에서 형성되고 허용되는 욕망으로, 그것은 사회적 가치, 내지 타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라는 상징계(현실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좀 더 많은 연봉을 추구하고, 육체마저 상품화하는 소비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좀 더 날씬하고 예쁜 외모를 욕망한다. 그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기표(상징)를 내가 추구하는 것이다. 연봉 1억, S라인의 몸매, 고급 외제차, 명품 가방 등이 대표적 기표라 할 수 있다. 그 기표들의 연쇄를 따라 우리는 상징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표들은 사회라는 대타자가 만들어놓은 기준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남들이 원하니까 내가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인정받으니까. 그러면 내가 편하고 즐거우니까. 그래서 계속 그 기표를 따려고 쫓아다닌다. 결국 상징계속 욕망이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티고네나 오현우는, 이런 식의 상징계 속 쾌락 원칙의 지배하에 있는 욕망과는 다른 욕망을 주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쥬이상스’다[각주:3]. 욕망이 상징계 속 기표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쥬이상스는 상징계로 진입하기 이전 상상계 시절 작동하였던 욕망이다. 이것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떠돌다가, 현실의 세계로 귀환하는 것이 ‘실재(the Real)’다.

    전통 형이상학에서 ‘실재’란 현실을 초월해 있는 존재, 혹은 운동의 원칙이었다. 플라톤의‘이데아’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라캉은 이런 전통적인 실재와는 다른 실재를 언급하는데, 이를‘Das Ding(=the Thing)’이라 불렀다. 지젝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the Real’이라 명하면서 ‘실재의 윤리’로 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잠시 여기서 실재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부연하면, 전기 라깡을 읽다보면 <상상계-상징계-실재계>가 뚜렷하게 경계 지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후기 라깡으로 갈수록 그들 사이 경계는 사라진다. 실재가 어느 특정한 공간과 층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실재계(界)라는 말은 적절치 못하다. 실재는 현실의 오작동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발생한 박근혜의 국정농단,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다원성이 강한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이 실재의 귀환을 설명하는 적절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시민혁명을 통해 높은 민주적 시민의식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 박근혜가 최순실 같은 작자에게 국정을 농단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다니!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의 천국 미국에서, 이민자들에 대한 배제와 적대의 메카니즘을 들고 등장한 쓰레기 같은 트럼프가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될 수가 있나! 지젝이“실재란 상징적 네트워크 자체 내부의 틈”이라고 말했는데, 너무나도 적절한 지적 아닌가 싶다. 박근혜라는 실재, 트럼프라는 실재는 대한민국이라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틈과 균열을 상징한다. 영화 〈에일리언〉에서 괴물의 숙주가 사람의 몸에서 기생하는 것처럼, 실재(the Real)는 세상의 틈과 균열로 존재하면서, 평온했던 상징계에 혼란과 불안을 선사한다.


안티고네와 실재의 윤리


    라캉은 실재를 겨냥하는 쥬이상스가 지닌 전복적인 힘에 주목했다. 쥬이상스는 상징적(세상적) 원칙과 질서로 제한하지 못하는 근원적 욕망이었다. 라깡은 안티고네 이야기를 그것의 적절한 예로 끌어들인다. 왕권을 놓고 숙부 크레온과 경쟁을 하던 폴리네이케스는 패하여 죽임을 당하였고,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참혹하게 유린한 후 성 밖으로 내친다. 그것은 반역자를 향한 합법적인 법집행이었다. 아울러 백성들에게는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거두어 장례를 치를 경우 가차 없이 처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그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오빠의 장례를 치렀고, 그 이유로 지하동굴에 갇히고 결국 자살하고 만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앞서 언급했듯이 쾌락의 원칙을 넘어가는 행위였다. 쾌락의 원칙대로라면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는 실행되어서는 안되었다. 법을 어길 경우 짊어져야 할 형벌과 공포와 불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티고네는 쾌락 너머의 원칙을 따라간다. 그것은 보편적인 하늘의 법도에 충실한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례를 치를 권리가 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은 자를 향한 애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인륜 말이다. 안티고네는 그냥 사랑하는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장례를 치르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나, 윤리적 덕목에 입각해 행동했던 것이 아니다. 아주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인륜성에 기반한 행위였다. 이런 보편적 욕망에 충실했기에 안티고네는 체제가 만들어놓은 법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리는 현실의 법과 대립각을 형성하는 것이었기에 감옥에 갇혔고, 그곳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던 안티고네는 찬란하고 슬픈 비극의 주인공으로 남겨지게 된다. 이것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가 그리스 비극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등극하게 된 연유다.

   하지만 안티고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안티고네의 행위는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체제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안티고네의 자살은 그녀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의 자살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크레온의 아내 에우디케의 죽음을 불러온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크레온도 모든 것을 상실하는 파국을 맞게 된다. 안티고네의 법 밖의 것을 지향하는 윤리가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법의 윤리를 무너뜨린 것이다.

    본래 윤리란 사회의 법규, 전통, 규범 같은 것들을 유지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마음의 자세, 그리고 그것을 위한 행위 일반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실재의 윤리는 사회, 혹은 국가에서 말하는 윤리적인 것, 규범적인 것을 뚫고 나간다. 국가가 제공하고 체제가 허락하는 규범을 따르면 편하고 안락한데, 이 쾌락원칙을 거부하면서 안티고네는 쾌락원칙 너머에 있는 것을 소망하며 나갔다. 그랬더니 옛 질서가 무너지는 결과가 발생했다.

    지젝과 더불어 슬로베니아학파의 얼굴로 떠오른 알렌카 주판치치는 기존 윤리와 다른 실재의 윤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실재와의 조우에 의해 우리에게 강제된 물음-나는 나를 탈구된 상채로 던져놓은 그 무엇에 조응해서 행위할 것인가, 나는 이제까지 내 실존의 토대였던 것을 재정식화할 각오를 할 것인가?-속에서 윤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바디우는 이 물음-혹은 오히려, 이 태조-을 ‘사건에의 충실성’ 혹은 ‘진리(진실)의 윤리’라 부른다.[각주:4]


    실재의 윤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윤리가 대타자인 공동체가 정한 법규와 규범을 아무 생각없이 따르고 복종하는 도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의 조우를 통해 진실을 겨냥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시스템의 이면을 들춰내면서, 대타자의 목소리를 의심하고 자신의 쥬이상스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신분석석학의 윤리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의 윤리는 진실의 윤리다. 진리와 진실은 같지만 다르다. 뉘앙스 상으로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둘 다 어떤 사물과 사건에 깃든 함의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같다. 드러나는 것은 사물의 이치이거나, 사람의 진심이거나, 사건의 진상이거나, 혹은 종교적 깨달음이이다. 문제는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의 차이인데, 진리는 우리가 그동안 볼 수 없었고 몰랐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고, 진실은 우리에게 익숙했고 늘 봐왔던 사물(건)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진실의 윤리는 실재가 귀환하는 사건이다. 실재는 예측가능한 상징계의 질서 어딘가에 균열이 생겨, 예상치 않게 그곳을 통해 무엇인가가 융기하는데, 그것이 현실의 모순을 들추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법의 모순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의 광기일 수도 있고, 맹목적인 도착된 믿음일 수도 있다. 실재의 귀환은 이런 상징계의 껍질을 깨면서,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억압하는 대타자의 목소리와 나의 진정한 욕망(쥬이상스) 사이의 괴리와 간극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그렇다면 실재의 윤리를 세월호에 대한 애도의 문법으로 전환하면 어떻게 될까?


다시, 애도를 묻다


    안티고네 이야기와 세월호 사건의 예에서 보듯이, 권력은 그들이 보기에 애매하고 재수 없이 발생한 죽음을 둘러싼 진상규명과 애도 과정에 대해 난색을 표시하며, 빨리 그 애도의 기간이 흐지부지되기를 소망한다. 안티고네와 세월호 유가족들은 ‘당신들이 우리의 애도를 가로막는 처사는 옳지 않고, 너무 쪼잔한 것 아니냐?’며, 끝까지 체제가 강제하는 애도의 방식과 대결한(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애도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극명하게 다른 것일까?

   애도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 그렇다면, ‘애도를 성공적으로 마쳤다’함은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극복되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성공한 애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한 애도가 되는 것 아닌가? 본래 애도란 망자에 대한 기억을 유지하고, 망자의 상실로 인한 아픔을 계속 지속시키는 행위여야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애도란 애도의 사전적 의미, 즉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행위를 현재진행의 사건으로 계속 유지시키는 행위다. 그러므로 성공한 애도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인터뷰에서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는 것을 꿈꾸는 것만큼이나, 이 슬픔이 완전히 극복되고 잊히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애도가 무엇인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안티고네의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는 크레온으로 상징되는 현실세계의 법칙을 뚫고 나온 실재(the Real)의 귀환이었다. 이는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할 때 배제되었던 ‘그것(das Ding, the Thing)’이 현실의 질서 밑에 숨어 있다가 융기한 사건이었고, 그럼으로써 현실의 법집행에 차질을 초래한 사고였다. 세월호 사건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상징계를 뚫고 융기한 실재(the Real)라 할 수 있다. 한국형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국가정의의 이름으로, 경제성장 혹은 경제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되었던 한국 사회의‘그것(das Ding, the Thing)’이 현실의 수면 밑에서 응축되어 있다가 터진 사건이 바로 세월호 참사다.

   안티고네는 그 실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오빠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애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크레온이 장례를 막았던 이유는, 애도의식이 망자에 대한 기억을 공동체 내에 유포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의 공유는 필연적으로 어느 임계점에 이르러서는 빅뱅을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애도행위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권력이 세월호에 대한 애도를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이유도 이와 같다. 세월호 참사는 무능하고 탐욕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의 실재가 드러난 사건이었고, 현 정부는 그 모든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세월호에 대한 애도는 필연적으로 진실을 향한 행위를 경유할 수밖에 없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일어날 사건의 파장을 너무나 잘 알기에, 정부로서는 이 애도를 허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애도가 구천을 떠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미완으로 남겨진 채 배회하는 세월호를 향한 우리의 애도가,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다. 우리의 애도가 미완으로 남겨진 채 이어지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들의 마음에 생채기가 생겨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윤리적 답변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리에서 망자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을 기억하는 행위를 계속 이어가야 할 것이고, 거기서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 간의 대화와 관계 맺음이 계속 유지되도록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도래하는(to-come) 변혁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전망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될 때, 세월호 애도의 불가능성은 오히려 변혁을 향한 가능성의 지점이자 거점으로 우리 앞에서 살아 있게 된다.

   세월호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세월호 문제는 종결되었다!’고 선언하는 세상의 음성에 파열음을 내는 것이다. 그것이 세월호 문제를 이대로 덥고 지나가려는 세력들에게는 부담과 불편으로 작동할 것이고, 그것은 세월호라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로 작동할 것이다. 그렇게 거짓된 현실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진실을 감추는 자들을 향해서는 쫄지말고 정당한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의 애도를 유포하다 보면, 우리 앞에 불가능했던 현실의 파국이 가능성의 형태로 우뚝 솟아올라와 있을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애도는 완성된다. 아니, 그때가 비로소 우리 애도의 출발점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4. 10일 에큐메니안에 동일한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65 [본문으로]
  2. 신형철 외, 『눈먼 자들의 국가』, (서울: 문학동네, 2014), 231 [본문으로]
  3. Jacques Lacan, “The Paradox of Jouissance” in Seminar VII, The Ethics of Psychoanalysis 1959-1960, trans. Dennis Porter(W.W. Norton & Company, Inc. 1992), pp.167-240. [본문으로]
  4. 알렌카 주판치치 지음, 이성민 옮김,『실재의 윤리』, (서울: 도서출판 b, 2004), 359.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욕망하라!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욕망으로의 초대


   근대 주체철학의 신화가 완성되던 무렵 근대성 일반에 대한 반란을 시도한 천재들이 19세기에 등장했으니, 다름 아닌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 맑스(Karl Marx, 1818~1883)와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다. 그들은 각기 서양 주류철학이 걸어왔던 관념과 의식과 이성 중심주의에 맞서, 물질과 무의식과 반이성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욕망담론은 무의식과 반이성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던 그때로부터 1세기가 흐른 현 21세기에 와서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욕망에 대한 사유는 전통 사상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분야다. 그것은 프로이트와 라깡, 그리고 근래 지젝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의 정치철학화, 내지 윤리화 과정에서 부각되고 있는 새로운 사유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욕망인가. 이 대목에서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지금부터 논의하게 될 욕망담론은 자본의 무한질주에 따른 소비에 대한 욕구와 충동을 격려하고 뒷받침하는 이론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로 재편된 21세기 현실 속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유일한 정언명법은 자본이다. 거대하고 막강한 자본이 선사하는 강제로 인해 지구촌 인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지만, 지옥과도 같은 자본의 압제를 벗어날 전망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시기에 욕망이론이 현실 저편을 지향하면서 현실을 넘어가는 에너르기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혹시 자본의 막강한 벽에 균열을 가하거나, 그 벽을 타고 넘을 힘을 제공하지 않을까라는 기대에서 사람들은 욕망이론을 펼쳐든다. 그럼 지금부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탑승하기로 하겠다.


욕망이 출몰하기까지


   정신분석학의 기본명제는‘모든 억압된 것은 귀환한다’는 것이고, 귀환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욕망은 억압의 산물이고 귀환을 일으키는 매개라 할 수 있다. 욕망이 담론사에서 정식으로 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자끄 라깡(Jacques Lacan, 1901-1981)이라는 걸출한 정신분석가로 부터가 아닐까 싶다. 팔레스틴 지역에서 일어났던 예수운동이 바울을 통해 세계화되면서 그리스도교로 발전했듯이, 이념으로서의 맑시즘을 실천철학화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견인했던 레닌처럼, 정신분석학의 발전과정에서 프로이트와 라깡의 관계도 그러하다.

   프로이트에게 오이디푸스 단계의 아버지가 생물학적 아버지라면, 라깡의 경우는‘아버지의 이름’으로 상징되는 법과 제도와 규범을 의미한다. 프로이트의 남근(pennies)은 라깡의 남근(phallus, 팔루스)과 다르다. 전자가 단순한 생물학적 성기라면, 후자는 상징계(the Symbol), 즉 사회적 인정과 권위를 나타내는 기표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세공포(Castration complex)는 생물학적 성기에 대한 제거의 공포라기보다는, 자기의 사회적 자리와 지위가 인정되지 않고 박탈되는 것에 대한 공포이고, 이것이 인간을 사회적 인간으로 남겨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이렇게 라깡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사회-문화적 해석의 틀로 확장시킬수 있었던 원인은 그의 언어관에 있었다.

    1953년 라깡은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외치면서 본인 이론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상징계, 상상계, 실재계」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라깡은 본인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언어의 개입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특별히 그는 유아가 말을 배우는 시기인 6개월에서 18개월 정도의 기간을 ‘거울단계(mirror stage)’라 불렀다.

    라깡이 ‘거울단계’를 끌고 오는 이유는 분명하다.‘상상계(the imaginary)’를 언급하기 위함이다.‘거울단계’의 아이는 남들이 보기에는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고, 정신적, 육체적 발달이 안 된 불안한 상태이지만,‘거울단계’아이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척이나 낙관적이고 낙천적이다. 양육자(예: 엄마)와의 관계에서 100%의 쾌락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시기 아이는 자신과 양육자에 대한 구분이 없다. 이처럼 자기와 타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는, 다른 아이를 때리고도 자기가 맞은 것으로 오인하고, 다른 아이가 울면 따라서 울기까지 한다. 라깡은 이 시기를‘거울단계’라 부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유아들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거울과 나를 분리하기 시작하고, 스스로를 객관화하면서 세상의 질서로 편입하게 된다.

    ‘거울단계’를 거치면서 유아와 양육자사이 형성되었던 2항 관계는, 아버지의 개입으로 깨지고 만다. 아이는 엄마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은밀하고 내밀한 근친상간적 욕망이 아버지로 상징되는 거대한 타자의 등장으로 폭로되고 위축되는 것을 느끼며 불안해한다. 이때 아이는 자기의 성기가 색정의 원인이므로 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제거할 것이라는‘거세위협’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아이는 체념 속에서 근친 상간적 욕구를 억누르고, 자신을 현실원리에 적용시키고, 아버지로 상징되는 사회의 질서에 복종하면서 어머니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진입이라 칭한다.

   그런데 이 시기가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시기와 겹친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면서 타자를 만나고, 내안으로 침입하는 타자의 개입을 참아내면서 아이는 자라난다. 인간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자음과 모음을 배우고, 단어를 익히고,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구성하는 시스템속으로, 즉 기호의 세계, 상징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언어의 습득은 아이로 하여금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쾌락원리에서 현실원리로, 본능에서 초자아로, 자연에서 문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사회라는 제도로의 이행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이전단계(상상계)에서 가졌던 양육자와의 100% 쾌락이 붕괴되는 경험을 겪게 된다. 이때‘아버지의 이름으로’가 상징하는 것이 바로 상징계를 지배하는 대타자이다. 이것은 사회를 작동케 하는 원칙들, 예를 들어, 도덕, 관습, 법, 관례, 예전, 이념 같은 것들이다.


욕망의 심층


    이제 본격적으로 욕망의 심층으로 내려가보자. 라깡은 상상계와 상징계를 설명하기 위해 ‘the ideal ego(이상적 자아)’와 ‘the ego-ideal(자아이상)’라는 개념을 끌어온다. 각각은 상상적 동일시, 그리고 상징적 동일시와 쌍을 이루는 말이다. 지젝은 상상적 동일시를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그 무엇을 표상하는 이미지와 동일시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상징적 동일시는 “우리가 관찰 당하는 장소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장소를 동일시 함으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사랑할 가치가 있고 좋아할 만하게 보이는 것”이라 정의한다.

    예를 들어, 엄마의 젖가슴 만으로도 충분히 엄마와 합일이 가능했던 아이에게, 어느 날 엄마가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해! 그래야만 나와 합일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고 치자. 엄마는 더 이상 나를 더 이상 당신의 젖가슴을 만지는 나로 만족하지 않는다. 뭔가 다른 것을 보여달라고 성화다. ‘너는 교수다!’ ‘너는 의사다!’ ‘너는 박사다!’ 이렇듯 엄마는 자신의 젖가슴만을 탐닉하면서 상상계속에만 머물러 있는 내가 아닌, 교수, 의사, 박사, 판검사 등등의 이름으로 기표화 된 나를 요구한다. 그 결과 아이는 더 이상 엄마의 젖가슴을 만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엄마가 제시하는 이름표(기표)를 따는, 즉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라깡은 desire와 jouissance를 구분한다. Desire은 상징계속 주체가 갖는 욕망이다. 이것은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욕망이다.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의사가 되고 CEO되는 것과 같이 어떤 기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이다. 남이 좋아라 하는 시선을 내가 따라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국의 결혼풍속도를 보면 상징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간의 사랑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남들이 이 결혼을 어떻게 볼까?’ 가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신랑은 뭐하는 사람이고, 신부의 집안 배경은? 혼수도 얼마나 했는지? 예식장은 어디? 신혼여행은? 이 모든 사항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조정되고 꾸며진다.

   반면, jouissance는 상상계에 남겨진, 혹은 상징계로 진입할 때 제거당한 내 마음 속 잔여를 향한 욕망이다. 어쩌면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통과의례를 경험한 주체는 슬픔과 외로움과 안타까움을 마음속 깊숙히 간직한 주체다. 왜냐하면, 상징계속 주체(사회적 주체)가 되는 과정에서 원래 아기(상상계속 주체)가 지녔던 것 중 일부가 상징계속 주체안으로 편입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한국에 살고, 시카고에서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땄고, 한백교회 담임목사이고, 한신대에서 가르치고 있는 이상철이다. 하지만, 지금 언급한 말로 나를 다 표현할 수 있나? 뭔가 헛헛하고 아쉽고 섭섭하고 안타까운 무엇이 있다. 상징계속 이상철, 현실 속 이상철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은 또 다른 이상철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남겨진 부분, 즉 잔여다.

    이런 이유로 주체가 상징계로 진입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상상계속 자아의 일부를 상징계로 진입하는 도중에 거세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spaltung(파열)이라 말한다. 마치 아기가 엄마의 자궁을 뚫고 나올 때, 엄마의 배가 찢어지는 것에 비유할 만하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낯선 타자와 직면하는 고통을 견뎌야 아기가 살 듯, 상징계의 주체 역시 마찬가지다. 상상계라는 제2의 자궁을 뚫고 나와 사회로 진입하면서, 사람은 드디어 인간(人間)이 된다.


슬라모예 지젝 曰 : "하지만, 이건 아니올시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과한 인간의 욕망은, 상상계속 나의 욕망이 아니라, 상징계속 타자들의 욕망이다. 이를 좀 더 우리의 일상과 결부시키면 이렇다. 1970-80년대 대한민국의 역사를 회고해보라. 얼마나 많은 민주투사와 열사가 등장하여 조국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가. 조국의 근대화와 자주국방을 위해, 수출강국을 위해, 경제발전을 위해, 선진국 진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계처럼 일하면서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가. 진보진영에도 강력한 대타자의 목소리가 있었고, 보수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 기표를 흠모하면서 행위했다. 대타자의 음성은, 그것이 보수의 목소리든 진보의 목소리든 간에, 현실의 우리를 지배하면서, 우리를 뒤에서 조정하던 실세였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를 현재화할 때 사용되는 해석의 준거였고, 우리의 미래까지를 담보한다고 여겨지는 묵시였다. 욕망이란 대타자의 목소리를 믿고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동되는 주술이라 보면 맞다.

   그러나 슬라보예 지젝은 대타자가 지니고 있다는 권위와 숭고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롱한다:


대타자는 주체가 마치 그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행위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 대타자의 위상은 공산주의나 민족 같은 이데올로기적 대의의 위상과 같다. 그것은 자신이 대타자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개인들의 실체적 토대이며, 개인들의 존재적 기반이며, 삶의 의미 전체를 제공 하는 참조점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지만, 존재하는 것은 개 인들과 그들의 행위뿐이다. 그래서 이 실체는 개인들이 그것을 믿고 따르는 한에서만 현실적으로 작동한다.


    지젝에게 있어 대타자는 실재가 아니라 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타자가 실재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를 몇 해 전 개봉했던 영화‘국제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오후 늦은 시간에 국기 하강식을 하던 시절, 전 국민이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가 끝날 때 까지 부동자세로 태극기를 바라보던 장면이 영화에서 연출되었다. 그 영화 개봉 이후 누군가에 의해 국기하강식 전통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이후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다소 소란스러웠다.

    웬 국기하강식?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종북 좌파 빨갱이로 몰린다. 그런 낙인이 찍히면 살기 피곤해 진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비록‘반공이데올로기’가 중심이 비어있는 텅 빈 기표임에도 불구하고, 상징적 세계인 대한민국에서 실질적 힘으로 작동하는 대타자의 명령이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형태의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근본주의는, 대타자를 향한 확고한 집단적 도착적 믿음위에서 탄생하였고, 그 믿음을 먹으면서 성장하고 나서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대상을 향해서는 광기를 표출하는 삶의 자세라 할 수 있다.


(중간정리) 쉽게 이해하는 욕망論: “라면 먹고 갈래요?” 


    앞서 우리는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진입이 쾌락원리에서 현실원리로, 본능에서 초자아로, 자연에서 문화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사회라는 제도로의 이행을 뜻한다고 배웠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상상계에서 가졌던 양육자와의 완벽했던 양자합의 관계가 깨어지는 상실과 아픔을 경험한다. 누가 그랬던가 아픔만큼 성숙해진다고. 라깡식으로 말하자면 성숙이란 요구와 욕구사이의 괴리로부터 발생하는 슬픔과 상실을 견디는 법이겠지만, 그 작업은 언제나 실패하여 욕망이라는 찌꺼기를 남긴다.

    욕망은 요구와 욕구사이의 함수관계에서 결정된다. 욕구는 보통 생리적 욕구다. 배고프면 먹고, 배설하고 싶으면 싸는 그런 욕구 말이다. 요구는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잔여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여기 고시원에 혼자 사는 비정규직 열정 페이 청년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녀)는 배가 고파서 (텅 빈)집으로 돌아와 라면을 두 개 끓여 먹었다. 그런데 라면을 먹는데 갑자기 마음이 안 좋아진다. 엄마가 차려준 집 밥도 생각나고, 하루 종일 일하다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오는 자신의 처지도 처량하다. 라면을 두 개나 먹어 배가 불러 욕구가 해결되었는데 뭐가 문제지? 아마도 그(녀)가 원했던 것은 라면이나 밥이 아닐런지 모른다. 그 너머에 있는 그 무엇 아닐까.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 안에 담긴 사랑 이라든지,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먹던 저녁상가에서 벌어졌던 수다와 웃음이라든지...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요구의 영역이다.

    라면을 이용한 욕망계산법의 유명한 예화가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 등장한다. 연상녀 이영애는 늦은 밤 문밖에 서있는 연하남 유지태에서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제안을 한다. 연하남 유지태는 정말 라면만 먹고 그 집에서 가만히 무사히(?) 있다 나온다. 정말 착한 교회오빠 스타일이다. 두 남녀가 이해한 "라면"은 서로 다른 의미였다. 연하남 유지태는 라면을 배가 고플 때 먹는 육체적 욕구의 대상으로 해석을 한 것이고, 연상녀 이영애에게 있어 라면은 생리적 욕구가 아니라 심리적 요구였다. 나의 허기진 마음을, 나의 외로움과 고독을, 나의 이 쓸쓸함을 알아주고 만져주라는 싸인이 라면인데, 아직 세상을 몰랐던 유지태는 이영애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나중에 둘은 헤어지고 마는데... 잘 헤어졌다! 유지태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며 따져 묻지만, 순수가 얼마나 문제의 본질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지, 사랑이 때로는 얼마나 저열하고 구질구질하고 남루한 현상인지를 어린 유지태는 몰랐다. 그런 유지태가 여인 이영애에게는 버거웠던 것이고. 그 영화를 보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이영애의 선택이 현명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나도 속물이, 아니 성인(成人) 되어가나 보다.


영화 <봄날은 간다> 중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생리적으로는 배가 부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헛헛한 무엇이 항상 나의 무의식을 맴돈다. 그것은 욕구와 요구사이의 차이 혹은 결핍으로 설명할 수 있고,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진입할 때 상상계에서 누렸던 요구의 100% 충족이 상징계속 대타자의 개입으로 깨어짐을 전제한다. 바로 그 지점이 욕망이 출현하는 진앙이다. 이러한 욕망에 대한 이해를 갖고 빨강구두를 둘러싼 욕망의 변증법으로 넘어가보자. 거기에는 또 다른 욕망의 세계가 펼쳐진다.


빨강구두와 죽음충동


   Google에서 ‘Red Shoe’를 쳤더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고급에로영화의 대명사인격인 잘만 킹 감독의 시리즈 포스터들이다. 한국에서 방송되는 <사랑과 전쟁>의 미국판 19금 버전이랄까. <사랑과 전쟁>은 이혼직전 남녀가 변호사에게 찾아와 당신들의 입장을 하소연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는 한 남자의 우편함으로 배달된 여성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녀들이 겪었던‘사랑과 전쟁’을 거슬러 올라간다. 사랑과 배신, 잘못된 만남, 어긋난 사랑, 뒤늦은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등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성적 환타지를 아주 농익은 영상으로 수놓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상징하는‘빨간 구두’란 그야말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그것이 잘못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거되지 않고 조절되지도 않으면서 자꾸만 미끄러져 가는 욕망의 기표다.

잘만 킹 감독의 <Red Shoe Diaries> 포스터


    안데르센 동화 <빨강구두>에 등장하는 소녀가 신은 구두가 그렇다. 마치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운동하는 근육인 불수의근(involuntary muscle)과 같다. 심장에 있는 근육, 소화기관이나 생식기관에 있는 근육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을 뛰게 하고 소화의 촉진을 도우며, 성기를 빳빳하게하는 자동인형 같은 근육이다. 동화에서 소녀는 춤을 추지만 사실은 그것은 그녀가 추는 춤이 아니다. 빨강구두가 추는 춤이다. 그녀의 춤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구두가 끼워져 있는 발을 잘라내는 것이다. 결국, 빨강구두는 나와는 상관없이 보이나 강력하게 나를 지배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이고, 소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녀로 하여금 끝없이 춤을 추게 하여 발을 잘라내야 한다는 결정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죽음 충동’과 상관한다.

    ‘죽음 충동’이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오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겠다. 삶에 대한 충동인‘에로스’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생명을 끊으려고 삶의 에네르기와 단절하려는‘죽음 충동’은 그 제목부터가 무척이나 어색하고 심지어는 엽기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죽음충동에 대한 논의는 프로이트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이트의 전기사상이「꿈의 해석」(1889)으로 대변되는 무의식의 존재와 그것의 의미에 대한 탐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그의 후기 사상은「쾌락의 원칙을 넘어서」(1920)와「자아와 이드」(1923)에서 언급하는 이드(Id)-에고(ego)-초자아(Superego) 사이의 역학관계에 관심한다. 특별히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에서 프로이트는 욕망을 두 차원으로 분류한다. 하나는 에로스이고 다른 하나는 에로스와 반대적인 에네르기라 할 수 있는 죽음충동(타나토스)이다. 에로스가 삶에 대한 충동이라면, 죽음충동은 삶에 대한 애착과 미련에 반하는 에네르기인 셈이다.

   ‘죽음 충동’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주체와 실재(the Real)에 대한 새로운 상상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전통철학에서 말하는 실재란 상징적인 세상 밖에 있는 초월적 실재(absolute being)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실재는 다르다. 내안에 있지만 나도 모르는 그 무엇, 상징시스템 밖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실재가 아니라, 상징적인 것을 전제하고 이미 상징계 속에 들어와 있지만, 상징시스템에서 드러나지 않는 그 무엇이 바로 실재(the Real)이다. 빨강구두가 그런 것 아닌가. 내안에 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 나와 붙어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 바로 실재이고 그것이 빨강구두인 셈이다.

    주체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근대적 이성을 바탕으로 불굴의 의지를 갖고 역사의 진보를 향해 달려가는 주체는 어쩌면 근대성이 부여한 환상일런지 모른다. 우리를 완성된 주체로 만드는 요인은 빨강구두처럼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우리조차 알 수 없는 이질적인 영역 때문 아닐까. 그 이질적인 것들이 출몰할 때 주체는 비로소 온전한 주체의 모습을 바닥까지 다 드러내는 것 아닐는지.


파국의 욕망, 혹은 욕망의 파국


    앞서도 언급했듯이 상징계 속 주체는 결핍과 결여의 존재다. 상상계에서 누렸던 100% 쾌락을 거세당한 채 사회화과정을 밟으며 성장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 결핍은 드러나지 않지만, 인생의 고비고비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스멀스멀 올라와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욕망은 어쩌면 그 결여와 구멍을 메우기 위한 인간의 방어기재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 욕망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대타자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욕망은 모른다. 돈을 많이 벌어도, 박사학위를 받아도 멋진 신랑 신부와 결혼을 해도, 성형수술을 해도 그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다. 주체는 타자의 욕망을 알고 싶어서‘케 보이(Che Vuoi)?’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한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죽음충동은 이 순간에 발동한다. 온갖 내공을 다 부려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삶의 에네르기는 방향을 틀어 묻는다.‘죽어버릴까. 내가 죽어버리면 대타자는 만족하지 않을까. 죽으면 이 쓸쓸함과 공허와 이별하는 것 아닌가. 이제는 지친다. 죽자, 죽어버리자’어쩌면 우리의 근원적 결핍을 메우려는 욕망의 진정한 의도는, 마치 수학(數學) 극한(Limit)에서 0을 향해 무한히 수렴(收斂)해 가는 것처럼, 죽음을 향해 수렴하는 무한질주 아닐까. 그렇다면 욕망과 존재의 근원인 제로(Zero), 무(無)로 들어가는 것이야 말로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여 구원으로 이르는 계단 아닐까. 그 비상구는 에로스로 차고 넘치는 욕망의 거리에 있지 않고, 타나토스가 똬리를 틀고 앉은 욕망의 이면 어느 텅 빈 구멍 속 아닐까.

   정신분석학에서는 죽음충동을 성령으로 이해한다. 지젝은 라깡이 죽음충동을 성령으로 이해한 프로이트의 해석을 근거로 성령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우리가 성령 안에 우리의 위치를 정하면 우리의 존재는 성스럽게 변하고 생물학적 삶 너머에 이는 또 다른 삶으로 진입한다.” 성령을 죽음충동과 연관시킨 대목은 신학적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성령임재 사건들이 갖는 특징을 언급하라면, 한마디로 자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상징계 속 기표와 욕망과 기억과 경력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기득권을 어찌 다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성령은 죽음충동이다.

   하지만, 성경에 의하면 성령체험을 한 사람들로 인해 역사의 물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고, 무너질 것 같이 않았던 전체성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완고했던 시스템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성령을 체험했던 모세에 의해 파라오는 무너졌고, 성령을 체험한 바울이 로마로 들어가면서 제국의 기독교화는 시작되었다. 성령을 체험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백인과 흑인간의 불평등과 차별의 벽을 넘었고, 성령을 체험한 문익환 목사는 냉전과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들 모두에게 성령, 즉 죽음충동이 임하자 자아는 사라지고 텅 빈 충만이 자리했고, 그 힘으로 그들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욕망의 전복성


   요약하면, 욕망은 삶에 대한 욕동인 ‘에로스’와 죽음을 향한 욕동인‘타나토스’로 구분될 수 있겠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빨강구두’는 삶에 대한 애착과 환희를 향한 욕망인‘에로스’를 상징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발을 잘라내어야만‘빨강구두’가 추는 춤이 중단되어 원래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죽음 충동’을 닮았다.‘빨강 구두’로부터 시작된‘죽음 충동’은 현실 속 그 무엇도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의 욕망은 현실 저편의(혹은 아래의) 무엇을 지향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상상은 근대적 주체에 대한 불신과 전통 형이상학에서 말해왔던 완벽한 대타자와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하지만,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보편성의 중핵이 텅 비어있다는 욕망이론의 발언은 통쾌하다. 현재 전 지구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완고한 신자유주의의 보편성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을 놓고 골몰하던 이들에게, 정신분석학의 제안은 현실의 원칙에 집착하는 욕망이 아닌, 상징계 너머에 존재하는, 아니 상징계의 텅 빈 중핵을 겨냥하는 욕망을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상상이 21세기 제국이라 할 수 있는 자본에 균열을 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틈을 통해 진입하는 혁명의 가능성을 노래하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분석학이 제안하는 욕망은 전복적이고 급진적이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해체하라!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 주간)

 

영화 <우리 선희> 속 세 가지 시선


   홍상수 감독의 2013년 작품 <우리 선희>는 주인공 선희(정유미)와 세 명의 남자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그 세 명의 남자는 선희의 대학 시절 교수(김상중), 선배(정재영), 구 남친(이선균)이다. 영화로 미국 유학을 떠나기 위해 추천서를 부탁하러 학교로 간 선희는 추천서를 써 주기로 한 교수 동현(김상중)을 만나고, 옛 남친이자 갓 영화감독으로 입봉한 문수(이선균)와 역시 대학선배이자 영화감독인 재학(정재영)을 만난다. 선희는 세 명의 남자로부터 차례로 자신에 관한 각각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선희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것이 <우리 선희>일텐데, 영화는 세 남자의 선희에 대한 각자의 내러티브를 종합하고 정리한 총량으로서의 <우리 선희>가 진정 ‘선희’라는 사건과 대상의 본질인지를 관객들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든다.

    추천서 때문에 오랜만에 자기를 방문한 제자 앞에서 교수는 이런저런 삶을 살아가는 지혜와 충고를 선희에게 늘어놓는다. 그렇게 추천서를 부탁하고 나오는 길에 선희는 자신과의 연애담을 기초로 영화를 만들어 감독으로 데뷔한 구 남친 문수를 만나 낯술을 하면서 그의 뒤늦은 사랑고백을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다음날 선희는 교수를 찾아가 “숨겨진 재능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입증할 수는 없고...”라는 문구가 새겨진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추천서를 받는다. 선희는 다시 써 달라는 부탁을 할 겸 자리를 옮겨 교수와 술 한잔을 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두 사람 사이에는 사제관계를 넘어서는 뭔가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가슴이 후끈 달아오른 교수는 절친한 후배 재학을 만나 선희를 향한 마음을 털어놓는다(재학은 그 상대가 선희인지 모름).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재학은 선희를 우연히 만나 역시 술잔을 기울이는데... 두 사람 사이에도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이렇듯 교수와 문수, 재학 사이에서 선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있다. 서로의 감정과 애정사가 교차하고 빗나가는 지점에 선희는 존재한다. 이 세 명이 함께 모이면 선희에 대해 뭐라 말할까. 그들의 말들을 다 긁어모은 선희는 이렇다: “내성적이긴 하지만, 머리가 좋고, 안목이 있고, 또라이 같은 면도 있지만 똑똑하고 솔직한 여자.” 그가 바로 <우리 선희>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내 세 남자의 선희에 관한 증언들, 그리고 회고담들이 과연 진짜 선희인가라는 의심와 회의가 점점 세게 밀려왔던 것은 왜일까. 셋이 모두 선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그 어느 것도 선희에 적중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 선희>는 선희에 대한 진실이 아니라, 선희에 대한 오만과 편견 아니었나 싶다.

   영화는 텅 빈 기표로서의 <우리 선희>를 잘 드러내며 끝이 난다. 어느 가을날 창경궁에서 선희와 교수가 만나고, 동기는 선배를, 선배는 교수를 찾아 창경궁으로 온다. 그 순간 우리 선희가 사라졌다. 그러자 세 남자는 창경궁에서 길을 잃었다. 우리 선희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우리가 봐왔던 선희가 진짜 선희였을까.


<우리 선희> Vs. <라쇼몽>


   영화 <우리 선희>를 보면서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 <라쇼몽>(1950)이 계속 생각났다. 일본 헤이안 시대 산속에서 칼에 찔려 죽은 사무라이 시체가 발견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살인 사건과 연루된 사람은 모두 네 명이다. 최초 신고자 나무꾼, 절에 도망쳐 있다가 잡혀온 사무라이 아내 마사고, 체포된 도적 타조마루. 그는 사무라이 아내 마사고를 겁탈하였고 그 후에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무당이 등장하는데 그 무당의 입을 통해 죽은 사무라이 타케히로가 말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네 사람의 서사는 모두 다를 뿐 아니라, 서로 모순되기까지 한다. 과연 누가 범인이고 이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 슬라보예 지젝은 영화 <라쇼몽>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객관적인 진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주관적으로 왜곡되고 편향된 서사들의 환원불가능한 다층성만이 존재한다.”[각주:1] 지젝이 언급한 ‘환원 불가능한 진리의 다층성’을 추구하는 것이 ‘해체’라면, ‘객관적인 진실에 대한 믿음’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해석’이다. 그렇다고 볼 때 <우리 선희>와 <라쇼몽>은 해체가 무엇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많은 영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두 영화는 진실에 대한 해체적 접근을 시도한다고는 하나, 객관적 진실에 대한 믿음을 100% 포기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라쇼몽>에 등장하는 스님과 <우리 선희>에서 극 초반에 등장하는 또 다른 선배의 발언을 보면 말이다. 두 사람은 극에 등장하는 사람들이긴 하나, 비중도 미비한 영화 밖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텍스트 밖에서 혹 있을 수 있는 내부의 진실을 발설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 <우리 선희> 초반에 교수에게 추천서를 부탁하러 학교에 온 선희가 우연히 만난 선배(이민우)에게 교수의 소재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이민우를 대하는 선희의 행동을 보면 주인공 세 남자들의 해석의 조각을 모두 합친 우리 선희, 즉 “내성적이긴 하지만, 머리가 좋고, 안목이 있고, 똘아이 같은 면도 있지만 똑똑하고 솔직한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 선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선배는 선희에게 금방 들킬 거짓말(교수가 외국 출장갔다는)을 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진심으로 화를 내는 선희에게 ‘재미있으라고 한 말이었다’고 변명한 후에, ‘너 참 순수하구나’라며 선희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앞의 세 남자의 평에서는 어디에도 순수한 선희는 없었다. 어쩌면 선희는 순수한 여자 아니었을까.

   <라쇼몽>에 등장하는 스님도 비슷한 케이스다. 그는 살인사건에 대한 증인들의 다른 진술이 참을 수가 없었다. ‘진실이 없다면 지옥’이라고 말할 정도니 말이다. 나중에 나무꾼이 버려진 아기를 자기가 키우겠다고 하자 그 스님은 감사의 뜻을 표하며, “당신 덕에 인간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훈훈한 말을 남긴다. 곧이어 아기를 안고 가는 나무꾼 위로 쏟아지는 밝은 햇살은 너무나 익숙하고 관습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는데, 변함없는 진실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해석학적인 냄새가 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단순비교 하자면, <라쇼몽>의 결말은 <우리 선희>보다 확실히 진리에 대한 미련이 더 강하다. 그런 면에서 홍상수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보다는 훨씬 세련되게 해석과 해체 사이의 간극을 잘 연출한 것 같다.


해석과 해체


    영화 <라쇼몽>중 어린아이를 안고 가는 나무꾼에게 쏟아지는 빛에 대한 이야기를 앞에서 했는데, 빛은 해석학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서양철학에서 추구했던 최고의 원리는 신플라톤주의를 창시했던 플로티누스 이래로 완전히 초월적인 절대 밝음에 대한 추구였다. 논리학에서 명증성(lucidity, lucid는 ‘빛나는, 밝은’)이 강조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반면, 최저의 수준은 절대 어둠의 영역인데 그곳에는 적나라한 물질이 있다.

    플로티누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유출설을 통해 설명하면서, 초자연적인 존재와 물질사이의 연관을 계층화, 등급화하여 하나로 연결시키고자 하였다.[각주:2] 그리하여 그는 서구철학의 오래된 전통인 빛의 존재론, 빛의 윤리학, 빛의 미학을 정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 한다”라는 공리는 그런 의미에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계몽주의의 영어표현이 Enlightment인데, 그 가운데 빛을 의미하는 단어 ‘lihgt'가 배치되어 있는 것도 중세를 암흑(타자)이라 상정하고 그것을 비추고 밝힌다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근대적 이성이란 계몽적 이성이고, 계몽(enlinghtmnet)이란 빛(light)의 사유다. 해석학은 이런 빛에 대한 믿음, 즉 빛에 의해 조명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에 이른다는 믿음에 의해 그 권위가 유지된다.

       루카치는 빛의 사유와 그것에 대한 믿음으로 유지되었던 시절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적고 있다:“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면서 갈 수 있고 또 가야 할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각주:3] 하늘에 떠 있는 저 별은 온갖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우주전쟁의 배경이 되는 별이 아니다. 저 별은 고. 중세인들에게는 삶의 지도, 인생의 나침반, 선택의 기준이 되었던 좌표였다. 인간은 그저 하늘에 떠 있는 별로 대변되는 천상의 이치(로고스)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별을 보고 걷다 걷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목적지에 이르게 될 것이고, 우리가 꿈꾸는 구원에도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천상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는 빛을 매개로 하나로 이어져 삶의 완결성과 총체성을 완성하였다.

   해석학적 전통 안에서는 경험의 잡다한 다발들과 그로 인한 상대적 관점들이 각자도생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하나의 목표점을 향한 초월의 행렬을 이루고, 최종적으로 그 행진은 끝에서 객관적 진리와 만날 것이다. 해석은 이러한 믿음 위에 서있다. 그렇다면 해체란? 해체는 해석이 지니는 믿음에 딴지를 걸고 조롱하고 야유하면서, 해석이 만들어 놓은 절대적 믿음의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행위라 할 것이다. 해체는 절대 초월적 진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There is nothing outside of the text)”[각주:4]

    해석학적 믿음은 텍스트 밖에 로고스(혹은 코기토)로 상징되는 해석의 빛이 있어서 텍스트 안으로 그 빛을 비추어 텍스트 속에 숨어 있는 천상의 진리를 발견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자궁에 있는 태아가 탯줄에 의지해 산모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천상의 진리 이데아는, 이성의 원리인 로고스 혹은 코기토에 의해 인도되어 텍스트와 교신한다. 데리다의 발언은 서양철학 전반에 뿌리 깊게 베어있는 해석학적인 믿음에 대한 반기라 할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해체주의 사상의 상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자크 데리다의 삶과 사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자크 데리다'에게 있어 해체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1930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알제리에서 광폭하게 시행된 프랑스의 반셈주의와 페탕정책(학교에서 유대인 학생의 비율을 7% 제한하는 유대인 차별정책)의 피해를 받으며 고등학교를 마쳤다. 데리다가 그의 글이나 발언에서 강조하는 차이와 다름, 그리고 타자에 대한 환대개념은 유소년 시절 식민지 국가 알제리에서 유대인으로 살았던 차별과 배제의 경험이 사후적으로 재구성되어 귀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각주:5] 알제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데리다는 프랑스로 건너와 몇 차례의 낙방 끝에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1952) 수학하였다. 27살(1957년)의 나이에 교수자격시험을 통과한 데리다는 1964년부터 1984년까지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데리다 연구자들은 1990년대 현실 사회주의가 패망한 이후의 데리다와 그 이전 데리다를 구분한다. 데리다는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에 절필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나서 1992년에 후쿠야마가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승리를 선언한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썼고, 그로부터 1년 후에 데리다의 가장 문제적인 저작이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유령들』[각주:6]이 출판된다. 이 책을 기점으로 해서 전기 데리다와 후기 데리다를 나눈다. 전기 데리다는 주로 서구 형이상학에 대한 해체에 주력하면서 그에 대한 전략으로 언어, 기호, 텍스트에 대한 천착을 그 특징으로 한다면,[각주:7] 후기 데리다는 정치, 윤리, 법, 신학,정의론 등 정치철학과 신학적인 부분으로까지 자신의 관심사를 확대하여 해체론을 적용하기에 이른다.[각주:8]

   데리다가 활동할 무렵 프랑스에는 가히 천재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상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샤르뜨르, 폴 리꾀르, 미셸 푸코, 들뢰즈, 알튀세, 바디우, 자끄 라깡, 레비스트로스, 소쉬르, 야콥슨, 레비나스 등 서로 다른 무닉와 색깔을 지닌 일군의 학자들이 등장하면서 그야 말로 백가쟁명의 시대를 연출했는데, 그 중에서도 데리다는 당대 철학의 상징으로 우뚝 자리한다. 이런 데리다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해체와 차연이다.

    통상 해체주의는 파괴, 전복,폭력 등의 용어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어렵고 무거운 느낌을 던져준다. 이런 까닭으로 데리다를 변호하는 학자들마다 제일 먼저 시도하는 것은 해체주의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작업이다. 데리다에게 있어 해체란 즉물적인 의미에서 무엇인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해체란 기존 텍스트 안에 묻혀 있었던, 저자 조차도 의도하지 못했던 진실을 발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텍스트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는 과정 혹은 절차 일반을 의미한다.

    이것은 데리다가 지니고 있었던 문헌학자로서의 특이한 이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후설, 하이데거, 소쉬르 등의 책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기존의 관점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의 텍스트를 읽어냈다. 데리다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Timaeus』를 읽으며 플라톤조차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코라(Khora)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코라’는 조물주인 데미우르고스가 우주를 창조 할 때 물질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세상은 이데아의 모방(imitation)이고, 세상속에서 이데아가 구현되는 터, 질료, 대지가 바로 “코라”다. 이데아가 질서(Order)라면 코라는 혼돈(Chaos)을 상징한다. 흔히 서양 철학의 오래된 질문이라 할 수 있는 형상과 질료, 주관과 객관의 조화란 범박하게 말하면 이데아를 코라에 이식함으로 코라의 혼동을 극복하고 현실가운데 안정과 질서, 그리고 통일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플라톤 스스로도 의도하지 못했던 코라의 의미를 찾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발견한 것이 ‘코라 없이는 이데아도 없다’는 것이다. 코라는 지금까지 논외의 영역이었고, 단지 이데아가 발현되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것으로 치부되었었는데, 데리다의 꼼꼼한 텍스트 분석에 의해 코라는 이데아 못지않은 위상을 부여받게 된다. 코라에 이데아가 심겨져야 비로소 그것이 발현되는 것으로 말이다. 이렇듯 그동안 묻혀있었던 텍스트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 혹은 그 과정 일반을 데리다는 ‘deconstruction’이라 불렀다.


'차연'에 관하여


    해체주의(deconstruction)의 대명사격인 데리다의 ‘차연’개념은 데리다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임과 동시에 이후 다루어지는 데리다의 사회철학으로 접근하는 데 있어 통과의례적 성격을 지닌다.‘차연’으로 번역된 differance는 어원적으로는 Differ(다르다) 와 defer(연기하다), 이 둘이 합쳐진 조합어이다. 영어로 번역된 데리다의 저작을 보면 불어인 differance를 그냥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사실, 영어로 differance를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데, differ와 defer의 의미 다 들어간 단어를 만들어 내기가 만만치 않은 까닭에 굳이 그것을 만드는 것 보다는 불어인 differance를 그대로 쓰는 것일 게다.

    미국 Northwestern Univ 철학과에서 현상학을 가르치면서 데리다 해석의 권위자로 각광받는 페넬로페 도이쳐(Penelope Deutscher)교수는 데리다의 차연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차연은 현존(present)도 부재(absent)도 아니다. 그것은 현존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일종의 부재이다. 그것은 동일성(identity)도 아니고 차이(difference)도 아니다. 대신 그것은 일종의 미분화(differentiaition)이다. 그것은 그러한 동일성들 사이에서 동일성과 차이의 효과를 산출한다.”[각주:9]

    differentiation는 수학용어로는 미분을 뜻하는 말이다. 미분이 무엇인가? 계속 잘게 쪼개는 것이다. 이렇듯 Differntiation은 사전적으로는 ‘미분화하기’이지만, 의미론적으로는‘차이화하기’로 치환된다.[각주:10] 미분했다는 말은 쪼개어져서 이 전 형태와 다른 차이가 발생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볼 때,‘차이화 하기’라는 말은 차이를 계속 생성한다는 의미에서 ‘차이’ 와 ‘연기’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말이고, ‘차이를 계속 생성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틈과 여백이 계속 생겨난다는 뜻이며, 해석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해석에 대한 독점없이 해석의 준거점들이 계속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 글에서 ‘차연’은 틈과 여백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틈과 여백이란 의미가 재현할 수 없는 공간을 뜻한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가 카푸카의 소설 <굴>이다.[각주:11] 소설은 굴을 파는 짐승의 시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누구도 침입하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굴을 파는 짐승이 있다. 어느 정도 안락한 거처를 마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디서부터 소리가 들린다. 짐승은 그 소리가 분명 바깥에서 들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짐승은 그 소리의 출처를 찾아 끊임없이 탐색한다. 소설은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카푸카의 <굴>을 읽다보면 그 소리가 바깥이 아니라, 이 짐승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짐승은 그 소리가 밖에서 나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 확신이 바로 자기동일성이고, 환상이고, 환타지다. 어쩌면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자기동일성’이란 타자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그래서 그 틈을 메워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히스테리였고, 변증법이란 그 틈과 여백을 메우기 위해 고완된 정신의 방어기재인지도 모르겠다. 헤겔은 “역사는 절대정신의 자기실현과정이다”라고 말했다지만, 데리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절대정신의 자기실현 과정은 서구인들의 허풍이고 위선이다.

    현대철학은 헤겔류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반동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자기동일성을 ‘Totality’(전체성)이라 비난한 후, ‘전쟁의 존재론’[각주:12]이라는 저주를 퍼부었고, 푸코는 서구의 근대가 그려나갔던 자기동일성의 역사를 ‘광기의 역사’였다고 회고한다. 데리다가 말하는 ‘차연’ 역시 이러한 서구가 지녔던 자기동일성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체적으로 산다는 것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 사이의 간격을 유지한 채 나이스하게 서로의 다름을 넉넉히 바라볼 줄 아는 미덕, 이것이 글로벌하고도 포스트모던한 사회를 살아가는 명법이라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화법은 신자유주의로 요약되는 현대사회의 정치-경제적 현실을 왜곡하고 희석시킨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식자들에 의해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데리다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상징하는 대표적 학자로 지목되었고, 그리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로부터 집중 포화의 대상이 되었다. <맑스의 유령들> 출판이후에 이런 오해들이 다소나마 풀리기는 했지만, 데리다를 향한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데리다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에는 다소 곡해가 있다. 데리다가 말하는 ‘차연’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차이’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명사화된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차이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과 차이가 발생하면서 일으키는 사건과 사태에 관심한다. 이것이 데리다의 차연이 지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간과가 데리다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셈이다. 데리다의 ‘차연’은 차이를 계속 발생시키면서 도래하는 사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다. 그렇다면 데리다의 차연을 현실의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차이가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는 여성혐오, 동성애혐오, 장애인혐오,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백인제외), 특정 종교(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난무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 차이가 적대의 매카니즘으로 작동되는 것일까. 혹 절대적 진리에 대한 초월의 사유, 초월에 대한 믿음, 그리고 초월적 진리에 대한 해석의 전통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연후에 그것 이외의 것들을 적(敵), 혹은 균(菌)으로 분류하여 증오하고 혐오하면서 순혈주의를 강화하다보니, 우리와 다른 차이는 우리 사회에서 악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해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남성중심주의, 이성애중심주의, 백인중심주의, 기독교중심주의로 상징되는 절대적 믿음의 시스템속에서 차이를 계속 발생시키는 행위이고, 뿌리깊은 해석의 권위에 틈을 내고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혐에 대해 저항하고,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며, 한국교회가 지닌 아집과 독선에 대해 회개운동을 펼쳐나가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료되고, 자본의 법칙만이 유일한 정언명법이 되어버린 세계 속에서 해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본이라는 초월적 보편성에 딴지를 걸고, 자본의 원칙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하는 것이다. 무엇이 있을까. 4대강, 강정, 밀양, 핵발전소, 사드배치 등, 거대자본의 논리와 특정집단의 이익에 따라 국토를 유린하는, 국가의 행정집행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게는 편리와 유행이라는 시대의 유혹 때문에 잃어버렸던 내 삶의 습관과 방식을 점검해보는 것, 그리고 나서 좀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유행과 욕망에 둔감해지는 방법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고민한 후에 실행해보면 어떨까.

   결국, 해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거창하지도 무시무시한 것도 아니다. 내가 내 삶속에서 차이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내 스스로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의심해보고 재해석 하면서, 나만의 삶의 방식을 상상하고 실험하는 것, 이것이 자본으로부터의 일탈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해체적 인간이 출현하는 지점이다.


ⓒ 웹진 <제3시대>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서영 옮김, 『시차적 관점』, (서울: 마티, 2009), 349. [본문으로]
  2. 에버렛 퍼거슨 지음, 박경범 옮김, 『초대교회 배경사』 (은성, 1993), 384-386 [본문으로]
  3. 게오르그 루카치, 반성완 옮김, 『소설의 이론』(심설당, 1998) [본문으로]
  4. Derrida, Jacques., Of Grammatology, Corrected edition. Trans. Gayatri Chakravoty Spivak (Bultimore and London: Johns Hopkins Press, 1997), 158. [본문으로]
  5. 제이슨 포웰, 박현정 옮김, “1장, 알제리”,『데리다 평전』,(인간사랑, 2010), 37-53. [본문으로]
  6. Jacques Derrida, Specters of Marx. Translated from the French by Peggy Kamuf (N.Y:Routledge, 1994). [본문으로]
  7. 데리다는 1967년에 세 개의 주요 저서, 『목소리와 현상 Speech and Phenomena』(김상록 역, 인간사랑, 2006),『그라마톨로지 Of grammatology』(김성도 역, 민음사, 2010 개정판),『글쓰기와 차이 Writing and Difference』(남수인 역,동문선, 2001)를 발표하면서 일약 스타철학자로 급부상하였고, 1972년에 두 번째 세 개의 주요저서인 『산종 Dissemination 』,『철학의 가장자리 Margins of Philosophy 철학의 가장자리』,『입장들 Positions』,(솔출판사, 1992)을 발표하면서 그의 전기 사상을 완성지었다. [본문으로]
  8. 『법의 힘 Force of Law』(진태원 역, 문학과 지성사, 2004),『환대에 관하여 Of Hospitality』,(남수인 역,동문선, 2004),『불량배들: 이성에 관한 두 편의 에세이 Rogues』,(이경신 역,휴머니스트, 2003),『우정의 정치학 Politics of Friendship』(1994)등이 있다. 특별히 『The Gift of Death』(1986)과『Religion』(1998)은 해체론과 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본문으로]
  9. Penelope Deutscher, How to Read Derrida (New York: WW Norton & Company, 2005), 29. [본문으로]
  10. “그것은 미분화(differentiation)된 상황을 지시하는데, 그것은 거리두기(간격두기)를 말하는 것이고, 어떤 기호도 자기폐쇄적인 동일성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Ibid., 31. [본문으로]
  1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굴”,『변신.시골의사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민음사, 1998) [본문으로]
  12. Levinas, Emmanuel.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trans. Alphonso Lingis, Pittsburgh, (PA: Duquesne University Press, 1969), 22.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무신론자의 믿음

: Post Human, Post Religion 시대의 믿음에 관하여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Science and Religion


   필자는 2014년 여름, 10년간의 시카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미국유학을 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인상은 각 분야에서 Interdisciplinary Study(한국말로는 학제간 연구, 융복합 등으로 번역되는)가 상식처럼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 학계는 시대적 요청, 자본의 논리, 학문의 발전 등 갖가지 이유를 들이대면서 온갖 경계를 넘나들며 학제간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고, 그 결과 놀라운 성과물들이 학교로, 도서관으로, 그리고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비교적 보수적인 신학분야도 이러한 시대적 요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종교와 과학간의 대화가 아닐까 싶다.   

    미국내에서‘Religion & Science' 분야의 최고 연구기관 중 하나이자 정기적으로 기관지를 발행하는 ‘Zygon Center for Religion and Science’ Zygon 웹싸이트_ http://zygoncenter.org/ (줄여서 그냥 Zygon이라 부름)이 시카고 루터란 신학교(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내에 있다. Zygon의 운영자이자 미국 '종교와 과학' 분야의 대부격 되는 인물 중 한분이 지금은 은퇴한 Philip Hefner이다. 훼프너 교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에 있는 테드 피터스(Ted Peters)와 러셀(Robert John Russell), 영국에서 활동하는 아서 피콕(Arthur Peacocke)과 폴킹혼(John Polkinghorne), 그리고 얼마 전에 타계한 이언바버(Ian G. Barbour) 등과 더불어 신학계 내에서 ‘종교와 과학’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인물이었고, 특별히 인간을 하나님과 함께 Co-Creator 지위로 까지 부상시켜 생태신학의 기반을 제공했던 중요한 학자이기도 하다. 훼프너 교수 강의를 들을 때 한국에서 번역된 그의 책을 가지고 가서 겉표지에 싸인을 요청한 적이 있다. 너무 신기해하면서 기쁘게 웃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테드 피터스가 편집을 맡아서 출간된 Science and Theology: The New Consonance (Westview Press, 1998)가 한국에서『과학과 종교: 새로운 공명』(동연, 2002)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 책에 필립 훼프너 교수의 논문인“생명문화적 진화와 창조된 공동 창조자”가 실려있다.      

   나는 시카고에서 석사과정 수학하면서 훼프너 교수가 개설하는 'Epic of Creation’(2005년)과 ‘Science & Ethics’'(2006년) 두 과목을 수강했었다. ‘Epic of Creation’(번역하면 ‘창조의 새 기원’쯤으로 해석되는)시간은 시카고에 있는 유수한 대학의 천문학자, 물리학자, 분자생물학자, 진화 생물학자들을 초빙하여 우주의 창조 혹은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신학적 의제의 폭을 넓히는 시간이었다. 빅뱅에 대한 이론을 과학자들이 설명하고, 그 다음에는 구약학자들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음 시간에는 신약학자들이 신약성서에 나오는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다음 시간에는 물리학자들의 엔트로피에 대한 해설을 듣는다. 이런 식으로 한 학기 내내 창조부터 종말까지 과학과 신학에서 다룰 수 있는 폭넓은 이슈들에 대한 논의들이 현란하게 펼쳐지는 수업이 바로‘Epic of Creation’이었다.


'뇌 과학'으로 바라본 Post Human의 쟁점들


   ‘Epic of Creation’을 마치고 다음 학기에 (2006년 봄 학기) 나는 회프너 교수가 진행하는 ‘Science and Ethic’을 계속 수강 신청해서 세미나에 참여하였다. 특별히 그해는 회프너 교수가 은퇴를 하던 해였던지라 대가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 그 수업은 과학의 발전에 따른 윤리적 이슈들을 다루는 수업이었는데, 인간복제, 핵, 가상공간, 기술문명, 환경, 뇌 과학 등의 주제들에 대한 윤리적 담론 형성을 목표로 디자인 되었다.  

    ‘뇌 과학과 윤리’를 다루는 내용은 학기 후반부에 배치되었다. 시카고 대학 의대에서 뇌신경을 가르치는 교수가 와서 수업의 반을 책임졌고, 응용윤리학을 강의하는 교수가 나머지를 담당했다.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마음과 감정의 매커니즘을 알아버린 지금, 이러한 지식이 인간의 윤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를 탐구하는 것이 강의의 주된 목적이었다. 교수는 수강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9.11 같은 끔찍한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녀들의 기억력과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약을 먹고 뇌의 특정 부위에 대한 시술을 받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뇌과학에 의하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시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도덕적 의지와 직관은 무엇으로 보장받는가?” 그 강의는 이처럼 뇌과학의 발전에 따라 등장하는 다양하고 묵직한 윤리적 함의들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하여 전통적 규범윤리학에 함몰되어 있던 나에게 윤리적 혼란을 불러일으켰던 시간이었다.

    뇌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인지능력이 일어나는 회로를 파악하게 하였고, 그 지식을 토대로 인지능력의 개발과 보충을 가능케 하였다. 근육을 늘리고 강화하기 위해 무슨 약물들을 복용하는 것처럼, 기억력, 창의력, 감수성을 자극하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문제는 어디까지 뇌 과학의 발전을 허용할 것인가? 인데, 이 물음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문제와 최종적으로 조우한다. 왜냐하면 뇌 과학의 적용이 인간 조건에 대한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고, 호르몬 분배를 장악하여 인간의 감정과 기분을 통제, 조절하게 되면 인간이 어떻게 될까? 과연 인간 마음 깊숙이에는 변하지 않는 정신의 숭고한 무엇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지배받는 것이 확실한가?

    그 밖에도 뇌 과학과 윤리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산적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뇌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발전이 그동안 전통적으로 간주되었던 인간의 이성, 감성, 자유의지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 발생할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딜레마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문제가 그것인데, 미국 내에서 뇌 과학과 윤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를 크게 두 분야로 나누는 것 같다.

   뇌 과학과 윤리를 다루는 개론적인 미국 책들을 읽을 때 두 가지 용어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ethics of neuroscience이고 다른 하나는 neuroscience of ethics이다. 전자는 ‘뇌과학의 윤리학’이고, 후자는 ‘윤리학의 뇌과학’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데 굳이 분류하자면, ‘뇌과학의 윤리학’은 뇌과학적 지식을 인간에게 적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절차의 문제들에 관심한다. 따라서 뇌 과학 자체의 윤리적 수행의 문제, 뇌 과학 연구자들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반면, ‘윤리학의 뇌과학’은 전통윤리학에서 다루어 왔던 윤리적 이슈, 예를 들어 자유의지, 선의지, 도덕성 등이 뇌과학의 등장으로 어떻게 다시 규정되는지? 에 대한 연구다. 즉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새로운 뇌 과학적 정의 혹은 버전이랄까. 윤리학 교과서를 뜯어서 다시 써야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뇌 과학자들을 윤리학자들에게 넌지시 농을 건다.

    미국 학계에서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뇌 과학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학제간 접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뇌 과학이 지니는 이런 저런 염려 때문에 뇌 과학에 대한 통제를 해야 한다는 기독교 우파진영의 목소리도 있는 것 같고, 뇌 과학의 발전으로 예상되는 우리 삶의 변화된 모습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가십성 기사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양식있는 학자들은 차분히 여러 각도에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성찰하면서 천천히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Post Human : 다시, 인간을 묻다


    결국, 뇌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근심과 걱정, 전망과 희망의 최종 종착점은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물음으로 귀환한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인간을 정의해야 할까? 뇌 과학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엄격히 말하면‘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로 바꿔써야 맞다. 뇌 과학 이론에 따르면 마음은 뇌에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뇌 활동의 산물이라고만 국한 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제기에 맞서 뇌 과학자들은 ‘육화된 마음이론(emboded mind theory)’과 ‘확장된 마음이론 (extended mind theory)’을 주장하기도 한다. 전자는 인간의 마음이 온몸을 통해 형성된다는 이론이고, 후자는 더 나아가 인간의 마음이 뇌와 몸뿐만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이론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마음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우주 전체가 우리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윤리적 문제는 또 다른 양상에서 전개된다. 외부와 맺는 관계의 양상, 관계의 법칙으로 확대된다는 말이다. 즉 나와 다른 타자와의 접속과 교감의 능력이 마음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또 한 가지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기억의 문제이다. 뇌 과학에서는 기억을 지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언젠가는 공상과학 영화 <블레이드러너>에서처럼 기억을 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부모에게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기억을 지우고, ‘딸은 성장하여 멋있는 남자를 만나 미국으로 유학갔고 지금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 라는 기억을 새로 심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사위에 대한 설명, 미국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료, 딸의 연애과정, 결혼식 풍경, 공항에서의 이별 등 지금 살아 미국에 있는 그 딸에 대한 수많은 기억이 함께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억이란 단편적인 것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은유와 환유의 고리와 연쇄를 따라 통합적으로 구성되는 사건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총합이 마음을 직조하고 그러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과학에서 말하는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 가능하여 실제로 누군가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쓰라리고 고통스런 과거, 혹은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사건들의 기억을 지워버리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만약 이런 기술이 완성된다면 사람들은 괴로움을 잊고 평생 평안한 기분으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아픔과 괴로움을 모르는 세상, 그런 세상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없는 세상일 것이고 아픔에 대한 연민도 소용없는 세상일텐데,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게 되는 그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그들은 이제 공적인 가치를 상상하지 않으면서 정신과 양심의 가위눌림에도 반응하지 않는 쿨한 인간들이다. 그 어떤 충격과 놀라움이 밀려와도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간혹 쨉을 날리면서 자기만을 보호할뿐이다. 그들은 이제는 반성과 실천의 자 글이 다소 비관적인 관점으로 흐른 것 같은데,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뇌 과학이 지니는 부정적 요소가 아니라, 뇌 과학의 발달은 전통적 도그마에 갇혀있었던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그리하여 다시‘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정직하게 대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의 인간은 어떻게 자리매김 될까? 솔직히 별로 유쾌하지 않은 상상이지만, 우리는 이 불쾌와 낯설움을 뱀과 같이 지혜롭게 긴 호흡으로 건너가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뇌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등장하는 Post Human 시대의 문제들에 대해 잠시 살펴보았다. 인간種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도모되는 Post Human 시대에 인간 마음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종교 또한 Post Religion 의 단계로 진입하였다고 한다면 너무 불손한 발언일까?

    문득 지금 이 순간 그동안 스쳐지나갔던 숱한‘Post-’담론들이 떠오른다. Post Modernism, Post Structualism, Post Marxism, Post colonialism, Post Feminism, Post Human, Post Religion 까지... 왜, 이리도 많은 Post 담론이 그동안 존재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일까. 대부분의 Post 담론에 깔려 있는 정서는 불만과 불안, 그리고 위기의식이 아닐까 싶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에 대한 위기의식이고, 포스트 맑시즘은 정통 맑스즘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나왔다. 탈구조주의 역시 구조주의가 담지 못하는 의미의 결핍 혹은 균열에 주목한다. Post Human 담론도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인해 새롭게 창조되는 인간種에 대한 불안과 위기감으로부터 나왔고, 지금부터 다룰 Post Religion 역시 인간 삶의 조건이 바뀌는 격동속에서 인간의 믿음을 다시 응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종교의 위기라 부를 수 있겠다.


Post Religion이란?


    하지만 돌이켜보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모든 종교는 현실에서 위기의 종교였고, 그래서 어느 시대건 종교는 항상 위기의 한복판에 자리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만 봐도 그렇다. 예수의 자리가 공백으로 남겨진 이후 역사적 그리스도교는 항상 위기의 연속이었고, 교회는 항상 위기의 공동체였다. 초대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중세 교회 역시 표면적으로는 강한 도그마가 세상을 짓누르고 있었겠지만서도 그 수면 아래에서는 변혁에 대한 꿈과 상상을 욕망하면서 위기를 잉태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500년 전에 발생했던 종교개혁은 여러 가지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있겠지만 어쨌든 중세천년의 교회전통에 대한 반동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카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엄청난 위기의 현상학이었다. 고중세가 지녔던 온갖 신화와 미신과 주술에서부터 탈출한 근대는 또한 종교적으로 볼 때 얼마나 위기의 시대였나? 막스 베버는 이런 근대를‘주술과 신화로부터 벗어난 시대’라 평했을 정도다.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종교는 이신론에 입각한 자연종교의 경향으로 흘렀고, 유럽의 사회가 사회계약설에 입각해 급격하게 시민사회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종교는 시민종교로 탈바꿈하게 된다. 종교적 권위와 신적인 주술로부터 탈피한 근대는 어쩌면 역사상에서 종교적 파국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자본주의의 등장은 새로운 유사종교의 등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자본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사물의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시키는 시스템이다. 즉 사물이 지녔던 그 자체로서의 가치가 시장성으로만 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인간 역시 그렇게 효용성의 원칙과 교환성의 원칙에 따라 서열화 되었다. 자본주의의 도래 전까지 인간을 지배했던 양식들, 예를 들어 우리의 전통, 관습, 역사, 윤리, 명예, 사랑, 대의, 양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까지도 자본주의는 화폐의 양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시키는 자본 특유의 마력 앞에서 각각이 지녔던 개별적 가치들은 화폐의 양에 따라 서열화 된 것이다. 모든 질적인 차이를 냉소하고 화폐의 양으로 등가시켜 버리는 자본주의 정신은 기존의 세상 법칙과 질서를 새롭게 바라보는 종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렇듯 매 시대마다 Post Religion을 둘러싼 논의는 존재했었고, 이는 당대의 종교 위기상황, 혹은 위기의 종교에 대한 대항 혹은 대응 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Post Religion 논의가 지금 막 등장한 Hot하고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이 종교생활을 시작하던 무렵부터 현재까지, 종교의 위기가 운운되는 당대의 삶과 질서 가운데 늘 가시처럼 존재했던 것이 Post Religion 논의였고, 당대가 지녔던 종교적 위기를 전제하면서 그 위기에 대한 답변과 대안을 상상하고 제안하고자 했던 것이 Post Religion 담론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 자본에 대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료된 상황속에서, 21세기 Post Human 논쟁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세계속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한 온갖 기괴한 내공들이 인간정신의 흐름과 마음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그것들에 대한 조작과 변형이 가능해진 세상속에서 인류는 현재 인간種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믿음이란 무엇일까?


믿음에 대한 커밍아웃(Coming Out)


    얼핏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21세기 믿음에 대한 물음은 이미 전 시대에 한 차례 홍역을 치룬바 있다. 니체가‘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던 충격적인 대목에서 우리는 이미 종교적 파국을 경험하였다. 21세기 믿음에 대한 문제로 본격적으로 접근하기 전에 잠시‘신의 죽음’이 선언되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보자. 흔히 정신분석학이나 문화인류학에서 대타자 아버지는 기존의 질서와 법과 가치에 대한 상징으로 묘사되곤 한다. 엄마로 부터 전적인 사랑을 받아왔던 아이는 생의 어느 한 지점이 지나면서부터 밀려오는 불쾌와 공포에 눈뜨게 되고 그것의 원인에 대해 알아가다가 마침내 엄마의 정부인 아버지와 대면한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상징세계(the Symbolic)와 맞닥뜨리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아이에게 있어 엄마가 당근이라면 아버지는 채찍이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아버지의 훈육을 먹고 자라면서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데......이것이 정신분석학으로 풀어쓴 범박한 인류학이다.

    신은 서구인들의 집단무의식에서 아버지로 상징되는 법과 질서와 도덕의 원형과도 같은 존재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의 죽음에 대한 니체의 발언이 충격적인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진정 의도했던 것은‘신의 죽음’에 대한 선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는 모두가 성인(成人)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더 이상 신율(神律)이 작동되지 않는 허무의 상황속에서 인간 삶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묻고 싶었다. 신이 사라진 이곳에서 어떻게 우리는 다시 사회를 조직하고 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을까. 그럴 경우 법은 무엇이고 그 법의 권위는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가. 대타자가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고 대타자의 균열을 감지한 자식이,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자녀들이 어떻게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이라도 한 것일까. 이것이 바로 근대의 비극성이 확인되던 무렵 니체에 의해 제기된 ‘신 없는 세상 속에서의 믿음’을 둘러싼 문제제기다.

    대타자 신의 죽음이 선포되고, 틈이 없어 보이던 실재에 균열이 생기고 빗금이 그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니체 이후 사람 인간들은 비록 커밍아웃은 안했지만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것 아닐까. 대타자로서의 역할을 하던 기독교의 神 대신에 서양에서는 힌두교, 불교, 도교에서 영향을 받은 명상, 힐링, 마음수련, 요가 같은 수행프로그램들이 확산되고 있고, 종교적 대상에 대한 숭배대신 스포츠, 연예인, 정치인에 대한 팬덤이 더 강력한 신도들을 거느린다.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드러났듯이 줄기세포 주사, 태반주사 등 온갖 첨단 의료기술을 이용한 성형과 생명연장의 욕망은 이제 우리시대 믿음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상들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은 어쩌면 우리시대 믿음의 문제는 무신론자들의 믿음, 무신론자들의 신앙으로 수렴되었다는 점이다. 오직 자본의 명령만이 유일한 정언명령이 되어버린 21세기 세상속에서 그 명법에 철저히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무신론자 아닌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Post Human을 꿈꾸는 우리는 유물론자라고 해야 맞지 않나. 이 보다 더 어떻게 무신론자일 수 있겠고, 이보다 더 어떻게 유물론자일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슬라보예 지젝의 지적은 날카롭다.

   지젝은“오늘날에는 오직 무신론자들만이 기도를 할 것” 이라고 말하면서 무신론자의 믿음을 논한다. 그리고 이들의 신앙패턴을 “믿음 없는 신앙(Faith Wihtout Belief)”이라 정의한다. 지젝의 이러한 발언은 어떤 의미에서는 타당하다.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들을 보라. 수백 수천억원대의 교회당을 지으며 신앙을 물적인 양으로 환산하여 드러내 보이는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유물론자들 아닐까. 오히려 신의 존재를 믿지않은 유물론자들이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신학적 논의들을 신학자들보다 더 밀도있게 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유물론자들이 세상에는 물질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무신론자들의 믿음은 무엇일까?


발터 벤야민, '유물론자의 신학'을 낳다.


    현대 좌파 철학자들 가운데 신학적 상상력으로부터 혁명의 기운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다. 자크 데리다, 알랑 바디우, 조르조 아감벤, 야곱 타베스, 슬라보예 지젝 등이 그런 인물들이라 할 수 있을텐데, 이들보다 앞서서 20세기 초반에 벌써 유물론적인 신학, 혹은 유물론자들의 신학을 언급한 섹시한 사상가가 있었다. 그가 바로 발터벤야민이다.

    벤야민이 활동하던 20세기 초반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그들의 광기로 자행된 세계대전이 창궐하던 때였다. 이러한 시기에 벤야민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공히 취급되는 메시아담론을 유물론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혁명을 위한 정치술로 제안하였다. 벤야민은 자신의 유명한 소논문 <역사철학테제>에서 신학과‘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의 결합을 동화와 같은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난쟁이 곱추로 그려진 숨어 있는 신은 메시아 혹은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으로 상징된다. 우리의 상상속에서 빛나는 메시아의 모습, 혹은 지난 역사에서 유토피아 건설을 가열차게 주장했던 혁명전사들의 늠늠한 모습에 비하면, 난쟁이 곱추로 묘사된 숨어 있는 신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렇듯 벤야민이 말하는 메시아론은 기존 메시아론과는 다른 느낌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거기에는 벤야민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있다.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인류는 유토피아를 주장했던 많은 이들과 만나왔다. 그들은 본인들의 종교적 확신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에 빠져 자신을 불살랐던 강철과도 같은 이들었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몇몇 실험들이 디스토피아로 변했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우파 유토피아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나치일 것이고, 좌파 유토피아의 실패는 스탈린으로 상징되는 교조주의적인 공산주의가 아닐까 싶다. 기독교의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이 불러일으켰던 만행에 대해 이 자리에서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십자군전쟁, 종교개혁에 이은 각종 종교전쟁들, 서구 열강의 식민지 개척과정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만행들은 모두 유토피아를 내걸고 진행된 디스토피아 역사였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통해 다시한번 깨닫는 것은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없는 세상’혹은 ‘도래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유토피아에는 ‘부재하나 있어야 한다’는 공리가 또한 공존한다.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과 기대, 그리고 욕망이 없었다면 어떻게 인류가 진보를 거듭해왔겠는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서로 짝패인 셈이다.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부재하면서 존재해야만 하는 운명속에서 우리는 메시아를 어떻게 이해해야하고, 유토피아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 것 일까? 벤야민은 <역사철학테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유물론자의 신학을 태동하게 만들었다.


유물론과 신학의 공명


    지난 시절에 만들어진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 혹은, 메시아의 도래를 둘러싼 믿음은 목적론적인 역사관에 영향을 받은바 적지 않다. 목적론적 역사관이 무엇인가. 제1원인과 제1목적이 있고 만물의 변화와 운동은 그들로부터 기획된 순서를 따라간다는 것 아닌가. 그 종착점이 유토피아이고, 유토피아로 견인하는 작자가 메시아이다. 최종 목표인 유토피아는 이미 정해져있고 메시아는 그런 믿음이 깨지지 않도록 현실 속 우리를 강제적으로 그 길로 견인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신성모독일까.

    벤야민은 일단 기존의 유토피아 이론과 메시아에 대한 믿음에 의심의 해석학을 들이댄다. 벤야민에게 있어 구원의 때는 미래의 어느 한 지점으로부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사후적으로 구성되어“지난 세대와 현 세대 사이에 비밀스런 협약이 있다. Our coming(구원을 상징?)이 지구상에서 기대되어 진다. 우리 앞을 살았던 모든 세대처럼, 우리에게도 희미한(약한) 메시아적 힘이 부여되었다. 과거는 그 힘을 요구할 수 있다.” 현재 시간을 충만케하는 시간[Jetztzeit]이다.“역사는 특정한 구조물의 대상인데, 그 구조물의 자리는 단일하고(동일하고) 비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Jetztzeit(the presence of the now)에 의해 충만한 시간이다. 그래서 로베스피에르에게 있어 고대 로마는 지금의 시간에 의해 충전된 과거였다... 프랑스 혁명은 스스로를 다시 태어난 로마로 간주하였다.” 벤야민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이유는 이런 시간관 때문이다. 벤야민의 시간의식은 변증법적 시간관과 다르다. 본래 그것은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중단없이 이어지는 시간관이다.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역사관이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지평속에서 미래를 향해 가슴을 열고 뛰쳐나가는 것이 변증법적 시간관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벤야민이 “희미한 메시아적 힘”과 “현재시간[Jetztzeit]”을 이야기하면서 기존의 변증법적 시간관에 대해서, 더 나아가 미래에서 기인하는 메시아의 도래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란 지나간 과거의 역사적 순간, 혹은 그것을 통해 현실의 비젼을 보게끔 하는 통로이겠지만, 그것은 기존의 메시아관 처럼 뚜렷한 목적론적 역사의식에 젖어있지는 않다. 그것을 벤야민은 “역사의 자유로운 하늘에로의 도약” Ibid., 261. 이라 표현하였다. 유물론자는 그런 비상을 꿈꾸는 자들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벤야민은 다시한번 논리를 비튼다. 지금까지 의심의 대상이 되어왔던 유토피아는 결코 폐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체스게임 판 앞에 터키풍의 의상을 입고 파이프를 물고 있는 인형이 앉아있다. 이 인형은 게임을 매번 승리로 이끈다. 좀 더 그림을 살펴보면 인형의 배후에는 게임의 명수인 난쟁이 곱추가 있고, 그 둘은 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벤야민은 인형을 사적 유물론으로, 체스의 명수인 곱추를 신학으로 비유한 후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 신학과 사적 유물론이 제휴하면 “그 누구와도 한 판 싸움을 벌일 수 있다” 고 말이다.

    벤야민의 발언은 Post-Marxism이 걸어가야 할 바에 대한 아포리즘 같은 역할을 하였다. 혁명이 더 이상 번지지 않고 단절된 상황속에서 황망해하고 있는 맑시스트들에게 혁명이란 인간의 하부구조뿐 아니라 그동안 혁명의 요소에서 도외시 되어왔던 인간의 상부구조, 즉 정신, 신화, 무의식, 그리고 종교적 믿음으로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의 이런 상상은 이후에 등장하는 유물론자들의 신학을 견인하는데 중요한 모멘템이 되었다. 우리는 결코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도 없고, 그러므로 굳이 메시아의 도래를 손꼽아 기다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부재하면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유물론자들의 갖는 믿음에 대한 고백이라면. 어쩌면 우리는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점근선에 위치하는 존재일는지 모르겠다. 수학에서 목표를 향해 무수히 무한히 접근하지만 닿지 않는 상태의 운동을 점근선이라고 한다지. 유물론자들은 계속 해서 그 점근선을 그리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21세기 무신론 시대의 믿음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자본의 무한질주가 유일한 삶의 원칙이 되어버린 사회속에서 우리의 신은 맘몬이다. 조물주인 맘몬이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동원하여 인간에 대한 리빌딩에 들어갔고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인류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는다는 기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나리오다. 미래를 소재로 한 공상과학영화(혹은 서적)들에서 단골로 등장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SF영화 속 장면들이 실현되고 있는 현실의 상황은 영화에서 봤던 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예민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종교적 감수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데리다의 해체론을 신학적으로 풀어 설명하고 있는 존 카푸토(John D. Caputo)는 『종교에 대하여 On Religion』에서 지금 시대의 종교상황을 “Religion without Religion 종교없는 종교” 이라 표현하였다.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화된 종교와 독단적 진리를 해체하는 가운데 새로운 실천적 차원의 진리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것이 카푸토의 과제다. “...the name of God in may post-modern Itinerarium is the name of infinity questionability...나의 포스트모던 순례에서 신의 이름은 무한한 질문가능성이라는 이름이다 ... God is a how, not a what 신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이다.”-Ibid.,134- 135. Post Human 시대를 맞아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요청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당연히 변화된 인간상에 걸맞는 종교에 대한 새로운 상상, 즉 Post Religion에 대한 담론을 마련해야 한다. 카푸토‘Religion without religion’은 나름의 답변이라 할 수 있을텐데, 구체적으로 그것을 어떻게(How) 현실의 삶에서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런지는 또 다른 문제다.

   카푸토는 어떻게(how)와 관련하여 데리다의 ‘차연’개념을 적용하여 ‘사건으로서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차연(differance)은 차이(differ)와 지연(defer)의 합성어다. 차연으로서의 신은 세상과 차이가 나는 신이지만, 신의 임재와 도래는 무한히 지연된다. 신은 인간의 믿음, 행위, 고백, 이성적 판단 안으로 수렴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알고있는 이러한 가능성들과 대립하는 불가능한 형식으로 도래한다. 신으로부터 기인하는 사건이란 신의 현재화를 드러내는 표식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현재화 될 수 없는 잉여를 남기며 미끄러져 가는 무엇이다. 사건의 결과 신은 현재화 할 수 없는 절대 미래, 절대 타자의 자리로 내몰린다. 그것이 카푸토로 하여금 “Religion without Religion”을 발설하게 하였고, 그 사건의 이름을‘사랑’이라고 카푸토는 말하고 싶었던 같다. “신의 의미는 사랑의 다양한 움직임안에서 규정된다....사랑은 정의되어야 하는 의미가 아니라 행하고 만들어야할 무엇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각각의 삶의 공간과 조건과 현실속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사건 속으로 개입할 것을 요청받는다. 

    그런가하면 라깡의 욕망이론으로 바라본 사랑은 파괴적이다:“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불가해하게도, 나는 당신 안에 있는 당신 이상의 어떤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파괴합니다.” 이 경우 사랑은 주체의 대상을 향한 전유, 혹은 집착의 형태가 된다. 이 사랑은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옆에 있는 이웃을 살피거나 뒤쳐져 있는 타자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만족을 모르고 전방만 주시하는 리비도의 돌진 앞에서 인간은 온전한 향유의 대상에서도, 관심과 배려의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사물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카푸토가 말하는 사랑에 대한 서사는 다르다. 사랑과 욕망의 변증법 안에서는 ‘당신 안에 있는 당신 이상의 어떤 것’이 운동의 동력이 되지만, 사랑과 타자의 법칙성 안에서는 오히려 ‘당신 안에 있는 상처와 결핍’이 사랑의 원칙이 된다. 전자가 자기를 채워나가는 증산의 사랑이라면, 후자는 자신을 비워가는 감산의 사랑이라 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욕망이론 속 사랑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그대가 그립다’라고 선포한다면, 카푸토식 사랑은 ‘내 안에 너 있다’라고 속삭이며 그(녀)를 품는다.

    이는 마치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모자이크와 같다. 수많은 파편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듯, 수많은 이들의 꿈과 기억, 그리고 사건의 조각들이 우리의 구원으로 들어올 것이다. 구원이란 언젠가 도래하리라 믿어지는 환상 속 메시아의 단 한번의 붓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뿌리박지 않은 미래로부터 도래하는 환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 투쟁하던(는)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속에 보존되어 있던 사건들이 어떤 시점과 계기에 재생되어 사후적으로 되살아나는 그것이다. 그 날은 분명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들을 갖고 이 땅에서 투쟁하던 각각의 인민들이 지니는 서사가 특별한 계기에 우발적으로 맞아 떨어진 그 날일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의 거리거리들에서는 사랑의 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노라고 누군가는 기록하겠지.


에필로그


    Post Human, Post Religion 시대의 믿음이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서 이 글은 시작되었다. 근대이후 전개되었던 ‘신의 죽음’, 2차 세계 대전 유대인 대학살의 현장에서 확인된 ‘신의 침묵’은 ‘신의 무능’서사로까지 번지면서 무신론은 공공연한 진리가 되어버렸고, ‘무신론자의 믿음’이라는 그럴듯한 테마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존의 신관념에 대한 변화를 요청하였다. 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종교적 믿음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상상하게 한다.

    최종적으로 카푸토의 조언에 용기를 내어 최종적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무신론자의 믿음이란 대타자인 신의 음성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수동적 믿음일 수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우리를 지탱케했던 상징계의 법칙과 교리의 강제와 도그마의 환상을 버리게 한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복수적 타자들이 일으키는 변혁의 사건들을 지지하는 사랑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자리란 모든 개별적 존재가 지니는 차이와 다양성을 자본이라는 등가의 원칙으로 서열화한 세상이고, 그 자리란 생명에 대한 존엄이 무너진 디스토피아 세상이다. 더 구체적으로 그곳은 성의 차이로 인한 혐오가, 계급의 차이로 인한 소외가, 종교의 차이로 인한 적대가 넘치는 그곳이고, 거기는 또한 새로운 인간種의 탄생으로 인한 파국 예상되는 이곳 지구다. 그 파국의 한가운데서 다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의 이름은 무신론자의 믿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냉소하라!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역사의 종말


    1990년대라는 그로테스크한 시절이 있었다. 레닌의 동상이 붉은 광장에서 철거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자본의 전 지구적 승리가 선언되었던 그 시기말이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문구로 그 시절을 요약였다. 그것은 자본의, 자본에 의한 세계 재배를 찬양하는 축가였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에 대해, 맑시즘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게임이 끝났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이를 기쁜소식이라 말하면서“자유민주주의는 이상이 더 개선될 수 없다”라고 선언하였다.   

   이는 마치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인간의 이성이 마지막 기착점인 절대정신에 이르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절대정신에 이르러 인간의 역사가 완성되듯이 후쿠야마는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 목적지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마지막 목적지란 말할 것도 없는 자본이 시장에서 아무런 제재와 비판과 규제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이곳 지구다. 그렇게 20세기 내내 지속되었던 혁명을 향한, 유토피아를 향한 상상은 1990년을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철거되었다. 


광장에서 시장으로, 이념에서 자본으로


   이 무렵 한국의 상황은 어떠했던가? 87년 체제를 거치면서 혁명의 뜨거움과 혁명의 헛헛함을 경험했던 한국은 1997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건너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우리는 세계 금융시스템이 제시하는 프로그램을 따라야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정의와 대의, 자본의 원리에 반하는 인간의 가치, 자본의 원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양심과 이성의 소리들을 하나씩 포기해야만 했다.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세계화의 덫에 대한민국이 빨려 들어간 것이다.

   데이비드 헬드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세계화를 묘사하면서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개별국가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보다 높은 층위, 즉 금융시장의 역학 속에서 국가의 앞날은 좌우된다고 밝혔다. 1997년 한국에 닥친 IMF 외환위기는 꼭 이와 같았다. 한국정부는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고, IMF관리체제 아래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기업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명목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였다. 대량해고로 인한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가 대두된 것이 이 시기였고, 공기업의 민영화로 인한 공공요금 인상이 서민경제에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던 시기도 이 무렵이었다. 노엄 촘스키는 이러한 신자유주의를 “민주주의적 형식 안에 있는 전체주의”라고 비난하였다. 이는 무소불위한 지위로까지 격상된 자본의 위력을 경고한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처럼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급속도로 전파되었던 나라가 또 있을까? 시카고에서 10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2014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내가 제일 처음 던졌던 물음이었다.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이다. 이것은 비단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뼈속 깊숙이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신자유주의의 DNA가 자리잡았다. 노인부터 어린이집 아이들까지 하나의 거대한 염기서열을 이루어 그 원리에 충실한 신자유주의 완전체! 이것이 내가 귀국하여 3년 남짓 살면서 느끼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그럼, 언제부터 이런 현상이 시작된 것일까? 세상사를 칼로 두부모 자르듯 야멸차게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한국사회를 언급할 때 IMF이전과 이후를 분리하여 진술한다. 김영삼 정권에 이어서 등장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가치와 이념의 시대에서 신자유주의의 프로그램에 입각한 생존과 야만의 시대로 서서히 변모해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한국현대사의 발전과정에서 등장했던 유일한 민주정부였다. 두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민들이 가졌던 원죄의식, 그것은 과거 개발독재시절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유린,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도외시 되었던 정의에 대한 부채의식을 말하는데, 그 빚을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탕감 받았다. 민주정부 10년이 면죄부 역할을 한 셈이다. 노무현 어록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대사는 이 시대의 풍경을 드러내는 증상이라 할 것이다. 그때 대한민국은 “광장에서 시장으로, 이념에서 자본으로!” 깔끔하게 말을 갈아탔다.

    이 무렵 등장한 각종 위기 담론은 그러한 시대정신과 일정한 연관을 지닌다. IMF위기, 경제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대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 그리고 교회의 위기까지... 본래 위기란 최종적으로는 파국을 꿈꾸고 지향한다. 어쩌면 지금부터 다루게 될 냉소는 파국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마음, 혹은 파국의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과의 거리두기 일런지 모르겠다. 현실과의 거리두기가 냉소라 한다면, 그것은 현실에 대한 꿈과 변혁을 비관하는 불행한 정신이다.


파국의 현상학 그리고 냉소의 도래


   현재의 한국사회가 냉소주의가 만연한 불임의 사회라고 한다면 그것의 시발점은 이명박 정부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국민들은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뽑을 때 만큼은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었다. 국가지도자는 대의를 존중하면서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자기희생이 있어야 한다.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겠다며 선거때마다 낙선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부산으로 달려가 떨어진 노무현, 민주주의를 위해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김대중, 하물며 김영삼조차 박정희때 민주주의를 위해 단식도 하고, 의원직도 재명당했던 전력이 있었다. 이처럼 대의와 명분, 지조와 신념을 가지고 자기희생을 치뤘던 인물들에게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표를 던졌다.

    그렇다고 볼 때, 이명박은 앞선 지도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캐릭터다. 이명박의 대의와 명분은 오로지 자본이다. 앞선 대통령들이 지녔던 숭고한 아우라와는 다른 컨셉으로 이명박은 승부를 걸었고, 그런데 그것이 불행히도 먹혔다.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인권과 자유와 정의에 대한 원죄의식을 털어버린 한국 유권자들은 자본을 케츠프레이즈로 내건 이명박에게 몰표를 던졌다. 군사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가졌던 원죄의식을 김대중-노무현 시기를 거치면서 씻어버렸기에 그 누구도 이제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과거에는 그래도 우리에게 최소한의 체면이 있어서 공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혹 돈을 주제로 대화를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격멸하거나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대화의 대부분은 재테그와 부동산, 아이들 영어유치원, 혹은 명품과 성형으로 상징되는 자본의 페티쉬에 대한 내용들 뿐이다. 더 이상 대의와 명분, 의리와 도덕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자본이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그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건이었다. 그 후 우리는 다같이 우리의 체면과 양심, 대의와 수치심과 윤리를 바닥에 내려놨다. 나는 그것이 바로 한국사회 파국의 지형학이고, 냉소의 감정이 시작되는 포인트라 생각한다.

    문득 10년간의 미국유학을 마치고 2014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지인들이 내게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그들은 비록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며 분신을 하거나 투신을 하던 열사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젊었던 어느 한 시절에서 조국과 자신의 현실에 대한 울분과 분노를 토로하면서 긴긴 밤을 나와 함께 지새웠던 절친들이다. 40대 중후반이 된 나의 친구들이 10년 만에 귀국한 내게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해주었던 조언은 결국 이것이었다. “네 마음 다 알아, 하지만 해도 안 돼. 오직 돈이야”

       냉소주의는 이러한 세상의 법칙을 알아버린 성인(成人)의 마음이다. 지젝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을 하고 있다. 냉소적인 이성은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 그것은 계몽된 허위의식의 역설이다. 우리는 그것이 거짓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적인 보편성 뒤에 숨겨져 있는 어떤 특정 이익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포기하진 않는다.[각주:1]


    성인이 된 인간은 유소년시절에 가졌던 유토피아적인 환상을 더 이상 갖지 않는다. 혹 주변에서 여전히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냉소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 알아, 네 마음 다 알아...하지만, 꿈 깨라! 현실은 냉혹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라고 말이다.

    그들은 이제 공적인 가치를 상상하지 않으면서 정신과 양심의 가위눌림에도 반응하지 않는 쿨한 인간들이다. 그 어떤 충격과 놀라움이 밀려와도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간혹 쨉을 날리면서 자기만을 보호할뿐이다. 그들은 이제는 반성과 실천의 자리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세상사 별것 없다” 혹은 “인생 다 부질없어”라는 삶의 경륜과 지혜가 묻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말을 간혹 선문답처럼 날릴 뿐이다.


냉소의 고고학


    냉소주의를 철학사전에서 찾으면 cynicism으로 본래는 지금처럼 부정적이기만 한 정신은 아니었다. 냉소주의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견유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다.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필요한 것이 뭐냐?” 고 물었을 때 “그대여! 나는 햇살이 필요하니 해를 가리지 말고 제발 내 앞에서 비켜 서 달라!”고 했던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는 인물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본래 냉소주의는 문명에 대한 비판이고, 체제에 대한 조롱의 정신이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자본주의의 등장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의 발흥과 더불어 전개되는 냉소주의란 “돈이 되는 것이면 다 한다!”는 문구에서 선명하게 그 특징이 드러난다. 고.중세 사회 인민들의 삶과 의식을 지배했던 것들, 예를 들어 전통, 관습, 역사, 윤리, 명예, 사랑, 대의, 양심 등등을 거론할 수 있을 터인데, 근대 자본주의는 이것들을 화폐의 양으로 전환시켰다.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시키는 자본주의 특유의 마력 앞에서 각각이 지녔던 개별적 가치들은 화폐의 양에 따라 서열화 된 것이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가을동화(2000년 作)’에서 남자 주인공 원빈이 여자 주인공 송혜교에게 한 명대사가 있다: “사랑 웃기지마!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사면 될 것 아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이 말은 지금도 회자되면서 패러디되는 유명한 드라마속 어록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개되는 냉소의 증상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봉건시대 귀족들이 내세우는 가치들을 냉소하고 화폐의 양으로 등가시키는 자본주의의 냉소주의가 앙시앙 레짐을 무너뜨렸던 것처럼, 기존 체제와 질서를 냉소하는(“웃기지 마!”) 정신이 현재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자본의 법칙에 타격을 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들뢰즈와 가타리는 그들의 공저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자본주의가 지닌 파토스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변혁을 위한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음을 상상하기도 하였다.

    지젝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탈이데올로기 시대를 맞아 거대서사가 사라진 상황속에서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로서의 냉소주의”를 논한다. 지젝은 독일의 사상가 피커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가 쓴 『냉소적 이성 비판(Critique of Cynical Reason)』에 기대어 부정적이고 무력한 냉소주의(cynicism)에 맞서는 또 다른 냉소주의인 키니시즘(Kynicism)에 주목한다. 그는 시니시즘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부도덕한 입장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자체로 부도덕성에 봉사하는 도덕성에 가깝다”라고 비난하나, 키니시즘에 대해서는 “공식문화를 아이러니와 풍자를 통해 통속적이고 대중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두둔한다. 지젝이 말하는 냉소주의가 시니시즘에 머무르지 않고 키니시즘으로 나갔던 경우가 존재했었다. 바로 중세가 종말로 치닫고 근대가 도래하기 전 시기다. ‘죽음의 무도’가 울려 퍼지고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멘트가 울려 퍼졌던 그곳으로 지금부터 타임슬립을 해보겠다.


타임슬립 : 아포칼립스(apocalypse) 중세


    ‘아포칼립스’는 신약성서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그리스어 제목이다. 신약성서는 고대 그리스 헬라어로 쓰여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포칼립스의 뜻은 신의 비밀, 신의 계시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신의 계시란 말할 것도 없이 종말이다. 종말에 대한 서사와 종말을 둘러싼 현상학에 관한 책이 요한계시록,‘아포칼립스’이다. 사실 돌이켜보면‘아포칼립스’는 요한계시록 뿐 아니라 성서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였다. 제국의 식민으로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독교도로 온갖 고초를 당해야만 했던 초대 기독교도들에게 아포칼립스, 즉 파국의 도래는 두려움인 동시에 희망이었고, 임박할 파국에 대한 기대는 현실의 절망을 견디게 하는 에네르기였다.

    이러한 아포칼립스적인 환상과 예언은 서구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당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할 중요한 해법으로 요청되곤 했다. 그것이 유독 강하게 대두되었던 시기가 중세 말이 아니었나 싶다.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중세교회의 권위는 십자군 원정의 실패와 유럽인구의 1/3을 죽음에 이르게 한 흑사병의 창궐로 위기에 빠진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나갔던 십자군은 이교도들에게 패배의 수모를 당하였고, 흑사병으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는 그 누구도 비껴가지 않았다.

    언젠가 김연아 선수가 세계 피켜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생상의 <죽음의 무도>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연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곡은 중세 말 유행했던‘죽음의 무도 dance macabre’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당시 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백성, 귀족, 사제, 심지어 교황까지 해골과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마치 전 세계가 죽음과 한판 대동의 춤을 추는 형국인셈이다. 죽음이 선사하는 공포와 슬픔, 허무를 초극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춤이라는 모멘트로 승화되면서 ‘죽음의 무도’라는 찬란한 슬픔을 만들어 냈다.‘메멘토 모리 memento mory’, 죽음을 기억하라! 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시대를 향한 냉소적(키니시즘) 발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중세 말을 지배했던 주술적이고 신비적이었던 죽음의 광시곡과‘죽음을 기억하라’는 주문은 대척점에 놓여있던 이성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죽음의 무도’를 추면서 존재에 대한 허무, 실존에의 불안, 미래를 향한 공포를 지나갈 수 있었고, 그것은 죽음에 포로가 되어 염세적으로 흘렀던 중세 말을 벗어나 좀 더 합리적인 틀에서 보다 이성적인 잣대를 가지고 사건과 대상을 대면하자는 움직임과 맞물려 근대를 재촉하고 있었다. 실존적으로 다가왔던 삶에 대한 공포와 그 공포를 초극하려는 죽음에의 행위를 인식론적으로 회의하게 되면서 서서히 근대가 다가왔던 것이다.‘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그 상황속에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향한 냉소의 메시지 였던 셈이다.


변화된 냉소의 지형학


    다시 21세기 대한민국 현실로 돌아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냉소해야 하는 걸까. 세상이 변하기 전에는, 서두에서 밝혔던 1990년대라는 크로테스크한 시절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냉소의 대상은 분명했다. 반독재, 반통일, 반외세, 반자본. 너무나 많고 다양한 냉소의 메뉴가 있었고 우리는 아무런 고민 없이 그것을 골랐다.

    하지만 1990년대가 지나면서 선명했던 전선은 흐트러졌고 망가진 국경너머로 초국가적이고 전 세계적인 자본이 넘나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무엇인 진리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전 시대의 패러다임으로는 판단이 안서는 계절이 도래했다. 그러나 잠시 소란스러웠고 불투명했던 상황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자본으로!

    이제 적은 외부에 있지 않다. 내 안에 있다. 나의 탐욕이 문제의 원인이 되었고, 나의 욕망이 유력한 사건의 용의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자본이 뒤에서 원격조정하고 있다. 시절이 바뀌면서 냉소의 성격도 변화하였다.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냉소에서 자본의 음성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나의 욕망과 탐욕이 냉소의 대상이 되었다. 냉소의 칼끝은 이제 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해 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새로운 냉소의 지형학이다.

    자본의 위력에 기대어 모든 전통적 가치를 부정하는 감정이 냉소였다면, 21세기 자본주의가 선사하는 탐욕의 마음을 다시 한번 부정하는 냉소가 지금 우리에게 요구된다. 그렇다고 볼 때, 우리가 맞닥뜨리는 냉소의 현상학은 다분히 변증법적이고 이중적이다. 모든 가치를 무화시키는 자본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정신과 21세기 자본이 선사하는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한 유혹과 욕망사이에서 우리는 지금 홀로 외롭게 서있다.


에필로그 :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도 쓰여져있고, 마르크스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인용한 이솝 우화에 나오는 대사 하나를 적는다: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us! 히크 로두스 히크 살투스!)”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다. 어떤 허풍쟁이가 자랑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로도스 섬에 있을 때는 높이 뛰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여기가 로도스 섬이라면 잘 뛸 수 있었을텐데”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사람이 듣다가 그에게 한말이 바로“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이다.

   맑스는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고,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녁에 날개를 편다고 말했다.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는 혁명의 날이 밝았다는 신호이고, 비상(飛上)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며, 양적 축적에 따른 질적 승화라는 변증법적 논리학의 기초문법에서 승화의 순간을 가리키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은 그 혁명의 때를“지금 시간(Jetztzeit)으로 충만된 시간”이라 불렀다.

    우리는 자기가 머물고 있는‘지금-여기’서의 사소한 실천과 투쟁에 인색해지기 쉽다.‘아직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고, 아직 상황이 이르고, 좀 더 냉철해져야 하고, 소영웅주의에 휩쓸리지 말고 조금만 진정하라’며 스스로를 다독거린다.‘실행에 옮기는 것은 나중에 좀 더 지켜본 후에 하면 된다’는 말이 ‘로도스에서는 잘 뛰었는데’라는 허세와 동일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일이다. 자, 이제 그대는 무엇을 냉소할 것인가? “여기가 로도스다. 뛰어라!”


ⓒ 웹진 <제3시대>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인간사랑,2002), 60.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배종걸
    2017.02.18 10:0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혼란스러운 요즘을 보내는 데 안성맞춤의 내용을 써줘서 감사드립니다.


촛불은 체리향기가 되어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사람아, 너는 생기에게 대언하여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렇게 일러라. ‘나 주 하나님이 너에게 말한다. 너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불어와서 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에스겔 37:9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들...  


    내가 좋아하는 이란의 영화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겠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진 그의 영화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였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내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같은 반 친구가 한번 만 더 숙제를 안 해오면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것을 알아버린 어린 주인공의 번뇌를 눈물나게 재미있고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비극은 처음에 이렇게 시작된다. 친구의 숙제노트를 실수로 자기 가방에 넣어서 갖고 온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 그것을 안 주인공은 엄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그 친구의 집을 찾아나서는 나름 로드무비다.   

   <올리브 나무사이로> 의 마지막 장면은 내가 그동안 봤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 아니었나 싶다. 남자주인공(호세인)이 여자주인공(테헤레)을 좋아하는데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여자 주인공 부모가 반대를 한다. 이런 저런 사건들을 지나 마지막에 테헤레가 올리브 나무사이로 난 길을 먼저 걸어가고 호세인이 뒤에서 뭐라고 하면서 소리치며 따라 간다. 굽이굽이 녹색으로 덮인 초원길과 밭길을 여자는 앞에서 남자는 뒤에 서서 걸어가는데 둘 다 하얀색 윗도리를 입었다. 스크린 상에서 두 사람이 하얀 점이 되어 안보일 때 까지 감독은 롱테이크로 둘을 끈기있게 관찰한다. 그 시간이 약 3-4분쯤 되었던 것 같은데 관객들은 둘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 그때 상상할 수 있다. 짠하고 애틋하고 답답하고 조마조마하고 슬프고 행복하고...뭐라 말할 수 없는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면서 피곤해질 무렵, 음악이 조용히 경쾌하게 바뀌면서 저 끝에서 하얀점 하나가 다시 관객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그것도 마구 아주 신이 나서 달려오는 것 아닌가! 영화는 호세인의 상기되고 환호하는 얼굴을 살짝 보여주면서 끝이 났다. 테헤레와 호세인은 결혼을 했을까?  


그리고 체리향기


   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내 마음이 티없이 맑고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샤워를 막하고 나온 느낌이랄까. 그런 감동과 기대를 가지고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를 보러갔었다. 그런데 시종일관 그 영화는 전작들이 지녔던 경쾌함과 유쾌함과는 다른 무거운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영화였다. <체리향기>는 주인공이 자신의 자살을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주인공은 한 노인으로 부터 약속을 받아낸다. 자살한 자기를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겠다는 약속말이다. 그런 다음 그 노인이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기도 예전에 목을 매려고 줄을 갖고 나무 위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며... 막 죽으려고 하는데 나무에 걸린 체리가 눈에 들어왔다고. 무심결에 그냥 손을 내밀어 하나를 떼어서 먹었더니 무척 그 체리가 달더란다. 그래서 계속 먹었다. 그랬더니 문득 세상이 좀 달리 보이고, 붉은 태양처럼 삶에 대한 열정도 되살아나는 것 같고,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도 정겹게 다가오고, 그래서 나무 밑을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체리를 따서 던져주다가 나무에서 내려왔다고...   

    영화는 결말을 열어두어 그 주인공이 자살을 했는지 안했는지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체 영화톤은 노인의 말로 인해 사내가 용기를 얻고 다시 세상으로 나갔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비록 <체리향기>는 전작인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톤이 무거웠지만 관객의 가슴을 활짝 열리게 하고 짜릿하게 하는 강도는 전작들보다 더 강렬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가 궁금해졌다. 첫 번째가 체리맛에 관한 것이다. 과연 그 체리 맛이 어떤 맛이었을까? 죽으려고 마음먹고 나무 위로 올라갔던 사내의 모진 마음을 녹여버린 그 맛이 무엇이었을까? 두 번째로 들었던 궁금증은 영화 제목을 왜 <체리 맛>이라고 안하고 <체리 향기>라고 붙였을까? 라는 점이었다. 문득,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흙으로 형상을 빚으시고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기록된 창세기의 구절이 생각났다. 하나님이 아담의 코에 불어 넣었다는 그 생기가 혹 <체리 향기>는 아니었을까? 


마른 뼈. 다시 살아나...


    글을 시작하면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에스겔서 중 일부를 적어 놓았다. 거기에도‘생기’라는 말이 나온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강가로 포로로 잡혀갔던 시기에 활동했던 예언자이다. 그 절패의 공간에서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특별히 위에서 언급한 에스겔 37장에는“마른 뼈가 다시 살아날 것!”(5절)을 선포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는데, 오늘은 그 구절을 택하지 않고 그 밑에 있는 ‘생기’와 관련된 구절을 택하였다.   

    이 부분은 창세기 인간창조 설화와 상동성이 있다. 창세기에서는 흙이라는 질료가 있었고, 다니엘서에서는 그 질료가 뼈이다. 질료인 흙과 뼈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기재를 창세기와 다니엘서에서는 공히‘생기’로 표현하고 있다. 그 생기가 뭘까? 키아로스타미는 그것을‘체리향기’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체리향기’는 물론 단순한 냄새는 아니다. 자살하려고 나무에 올랐던 그 중년의 사람을 살아서 다시 나무 아래로 내려가게 했던 기운이‘체리향기’이다. 키아로스타미는 아직도 여전히 생명의 기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 기운이 주는 힘에게 신뢰와 희망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을 아주 매혹적이고 섹시하게 ‘체리향기’라 명명하였던 것이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들을 묘사하는 장면이 에스겔 37장 초반에 나온다. 골짜기마다 아주 말라 버린 마른 뼈들이 널려있었다고 적혀 있다.‘마른 뼈’라는 표현도 부족해서 아주 말라버린 마른 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 나는 갑자기 마른 뼈가 우리나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말라 버린 마른 뼈! 그 어떤 희망과 가능성과 가치도 금방 증발하고 바짝 말라버리는 이 사회가 대한민국 사회라고 한다면, 에스겔의 ‘마른 뼈’ 묘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대한 정확한 상징이자 은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자살을 하려고 나무위로 올라가는가? 우리나라는 노인, 중년, 청소년 할 것 없이 전 연령대에서 OECD 가맹국 중에서 자살율 1위를 달리는 나라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는 마른 뼈를 되살아 나게 하는 생기가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에게는‘체리향기’가 필요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도래하리라고는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 것이 어쩌면 더 비극적인지도 모르겠다.


촛불이 체리향기가 되어


    비참한 일상을 살아가던 이 땅의 백성들이 촛불을 하나씩 들기 시작했다. 그 불씨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올 여름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이 학교 측의 방만한 운영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시작된 소요는 급기야 총장이 사퇴하는 단계로까지 번졌고, 곧이어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입학부정이 알려졌다. 조직적으로 학교측이 정유라의 입시부정에 개입을 한 정황이 포착되었고 학생들은 다시 분노하였다. 거기서부터 봉합되었던 체리향기는 풀어져서 스멀스멀 번져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후 최순실의 행각은 단순한 입시부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났다. JTBC를 통해 일파만파로 전해지기 시작한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들불처럼 박근혜에 대한 의혹과 분노와 울분으로 번져나가면서 바른 뼈 같았던 시민들은 하나 둘 광장에서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촛불은 계속 불타오르고 있었다. 304명의 죽음이 농락되고 왜곡되었던 4.16 세월호 광장에서, 평화를 전쟁으로 바꾸려는 강정과 성주에서, 자본의 물신이 발악하던 용산과 밀양에서, 사람의 인권이 짐승의 야만 앞에 짓밟힌 소녀상 앞에서, 그리고 백남기 농민이 시신이 안치되었던 장례식장 앞에서도 촛불은 계속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한과 설움, 울분과 분노, 그리고 염원과 기도가 2016년 11월에 나비효과가 되어 빅뱅을 일으킨 것이다.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면서 우리가 얻어낸 수확은 박근혜에 대한 탄핵안 통과도,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상상도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 하나가 ‘채리향기’였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체제와 권력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하고 두려워하던 그 비밀을 말이다. 혁명이 미래로부터 도래하는 어느 한 슈퍼스타가 지니는 광할한 빛의 에너지에 의해 성취되리라는 환상에 젖어있던 백성들에게 촛불은 거짓과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는 건 그런 거대한 빛이 아니라 인고와 어둠의 세월을 살아온 여기 광장에 모인 작은 촛불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또한, 촛불은 언제나 세상을 세상답게, 사람을 사람답게 돌이키는 것은 어떤 특정집단의 영도력과 일부 계층의 기획과 조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촛불을 들고 어둔 밤을 밝히는 무수한 개개의 단자들임을 알려주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밝혔더니, 그 수백만 촉의 빛을 받아 체리향기가 어디서부터인가 본격적으로 발향하기 시작했고, 그 생기에 취한 사람들이 마른뼈가 되살아나듯 살아서 꿈틀거리더니 말하고 춤추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그 향기에 취해 중독중이고 그 중독은 누구처럼 밀실에 갇힌 향락의 중독이 아닌 드넓은 광장에서 맛보는 혁명에 취한 중독이다. 서울 광화문 광장은 에스겔이 말하는 묵시론적인 환상이 실현되는 공간이 되었고, 우리는 지금 그곳에서 묵시가 실재가 되는 메시아적인 시간에 참여하고 있다. 천천히 그리고 똑똑히 이 시간을 두 눈 부릅뜬 채로 즐기라. 메리 크리스마스!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편집장
    2016.12.21 19:5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올해 마지막 웹진(99호)이 발행되었습니다. 2016년 한 해 동안 월 2회 2주 간격으로 총 24회 웹진이 발행된 셈입니다. 필진들을 헤어려보니 40명이 훌쩍 넘어가네요. 무엇보다 편집장의 원고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늦지 않게 옥고를 보내준 국내외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재미있게 읽고 따듯한 느낌 나누어준 독자분들께도 감솨. 내년에도 큰 목표나 다짐없이 그냥 해오던 대로 공기처럼 일상처럼 거기 한 켠에 우뚝 서 있도록 하겠습니다. 내년에도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상철
(본지 편집인 / 한백교회 담임목사)

 


   제가 최초로 전태일이라는 이름 석자를 들었던 날은 아주 까마득합니다. 그날이 언제였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그 이름을 제게 일러준 사람은 저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목사로 안수받기 전에 꽤나 많은 직업을 전전했습니다. 신문사편집국장, 고등학교 영어선생님, YMCA 총무, 고등학교 윤리선생님, 대학강사, 번역가...등. 사회가 분화되기 이전 전근대 상황에 놓여있었던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일이 가능했겠지만 지금처럼 사회가 분화된 상황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발행되는 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전태일이 불에 타 죽던 1970년 11월, 아버지는 기획조사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전태일 사건이 터졌고, 그 사건에 대한 기획기사를 편집회의를 거쳐 그 호의 헤드라인으로 잡고 분명 인쇄소로 넘겼는데, 다음 날 나온 신문에는 그 기사가 빠져있었다 합니다. 그래서 당장 편집국장에게 올라가서 따지면서 항의하고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그 날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사표를 장렬하게 던지고 나오는데 편집국장이 아버지 뒤통수에다 대고 했던 말을 아버지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하십니다. “야, 네가 그런 식으로 얼마나 대한민국에서 버틸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며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던 것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오는데 등골이 오싹하게 무서웠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고 하십니다. 이 일은 제가 생후 16개월 때 발생했던 일입니다. 아버지의 당시 나이는 지금의 제 나이보다도 열일곱살이나 적은 서른 한 살 때 였습니다.   

   전태일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47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에는 지난 47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변화에 대한 필모그라피를 일일이 여기서 나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불변하는 진실이 있네요. 여전히 한국은 47년 전 전근대적이었던 시절이나, 2016년 최첨단을 달리는 현재나 같은 패밀리의 지배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1970년 전태일의 죽음의 배후에는 박정희가 있었고, 2016년 백남기의 죽음 뒤, 그 전에 있었던 세월호의 죽음 배후에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우뚝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면 이 지긋지긋한 주술이 풀릴까요? 

    예전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청년이라는 말보다, 전태일이라는 말보다 ‘아름답다’ 라는 말에 눈길이 꼿혔습니다. 이성적인 청년 전태일, 의지적인 청년 전태일, 용감한 청년 전태일이 아니라, 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랄요? ‘진,선,미’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서양전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은 제일 하위개념입니다. 그것은 감성, 욕망과 쌍을 이루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감성과 욕망은 이성과 의지에 의해서 억압되어야 합니다. 고양된 이성과 투철한 의지를 지닌 인간! 그들이 이룩한 진보의 역사, 발전의 역사가 다다른 종착역이 바로 이곳, 21세기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제목에서 저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종말론적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전통적인 미학이론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은 어떤 대상을 향한, 혹은 그 대상으로부터 전달되는 숭고함에서 비롯됩니다. 숭고란 이성과 의지, 논리와 윤리로 잡히지 않는 영역입니다. 그 잡히지 않는 영역을 향한 비월과 낙하를 칸트는 자유라고 말했다지요. 그렇다고 볼 때, 어떤 시스템을 넘어가는 자유로운 행위를 감행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도 아니고, 논리도 아니고, 의지도 아니고, 용기도 아닙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영민한 감수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세상의 법칙과 세상의 질서와 다른 진공의 영역이 있다면 그곳은 분명 미적인 감수성이 지배하는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그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마음이 현실의 질서에 틈을 내고 균열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혁명 아닐런지요. 이런 이유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말은 적어도 제게는 유효한 언사이고, 이런 이유로 저는 혁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주간에 아버지가 제주도에서 올라와서 하루 묵고 내려가셨습니다. 병원 검진 때문에 올라오신 것입니다. 늘 그렇듯이 아버지는 공항에 도착하면 종로 3가 극장가를 먼저 찾습니다. 피카데리, 단성사, 서울극장이 몰려있는 그곳말입니다. 그곳에서 영화 한편을 꼭 봅니다. 주기적으로 종로3가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병원예약을 하는 건지, 아니면 병원 올라온 김에 시내구경을 하는 건지 약간 헷갈릴때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저녁 무렵에 저와 종로통에서 만나 순대국을 먹고 종로길을 걷다가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몇 권사고, 광화문 세월호 광장으로 올라와 참배도 하고 각 부스를 돌아보면서 거기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십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광화문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는 너무나 뻔하고 익숙한 광화문인지라 한쪽에 앉아 카톡질을 하고 있었답니다. 아버지의 광화문 기행을 마치고 우리는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무리들 틈을 천천히 거슬러 걷다가 지하철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로서는 오래간만에 맛보는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서울의 싸늘한 밤공기였을텐데...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해졌지만 묻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아름다운 밤’이었을 것입니다. 전태일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었듯 말입니다.  

    _ 한백교회 전태일기념주일 중 <삶의고백> 에서...

 

ⓒ 웹진 <제3시대>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메시아는 가라![각주:1]

: 발터 벤야민과 자크 데리다의 메시아론 소고(小考)




이상철
(본지 편집인 / 한백교회 담임목사)

 


Intro: 메시아의 귀환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메시아주의는 미래의 어느 막연한 시점에서 현실의 절망적 공간안으로 귀환하는 한 슈퍼스타를 기다리는 열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메시아적 대망은 현실의 고통과 환난을 견디게 하는 종교적 위안이자 미래를 대망하는 종교적 비젼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녀)의 재림으로 인해 체제의 압제로부터 비롯되는 이 땅에서의 고통과 억울함, 분노와 절망은 일거에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이 땅의 민중들이여, 조금만 더 참고 견디라! 이제 곧 그 분이 오신다!” 이것이 메시아주의를 바라보는 범박한 정의이자 주술이라고 한다면 불손한 발언일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역사에서 전개되었던 메시아주의의 현실은 배제와 차별, 적대와 응징의 매카니즘을 양산하면서 비극적 메시아 현상학으로 나타났다. 현실의 역사가운데 전개되었던 메시아적인 열망과 환상은 그것 이외의 것들을 끊임없이 타자화시키는 배제의 매카니즘을 낳았고 폭력을 정당화시켰다. 멀게는 중세 십자군 원정과 근세에 벌어졌던 서구 열강들의 제3세계 침탈 과정에서부터 얼마 전에 있었던 미국의 이라크 전쟁으로 대변되는 ‘테러와의 전쟁’까지, 시대와 이유를 떠나서 그 이면에는 서구열강의 음모를 메시아적 환상으로 등치시키고 그것들 이외의 것은 모두 악으로 규정하는 배제의 매카니즘이 깔려있다. 이러한 메시아주의 안에 깃든 광신성을 감지했던 데리다는 ‘the meesianic without messianism’이라는 다소 과한 표현을 동원하면서 전통적 메시아주의를 향한 적대를 선언한 바 있다.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민중메시아는 위에서 잠시 언급한 서구 메시아론의 지형에서 보면 그 위상이 꽤나 독특하다. 역사적 예수가 성취했던 유일회적 그리스도 사건을 예수라는 어느 한 슈퍼스타의 일인 무용담으로 가두지 않고, 예수와 더불어 함께 한 민중(오클로스)까지를 포함한 사건으로 취급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당대의 화석화된 메시아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까지 민중의 함성과 저항을 통해 이어지는 살아있는 메시아 사건으로 해석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이유로 민중신학의 메시아론은 주체의 역동과 시대적 사명이 강조되었던 시기에 진보기독교 진영은 물론, 인문-사회과학에 몸담고 있었던 많은 양심적 지식인들에게 당대를 해석하는 중요한 해석학적 창구 역할을 담당했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 광풍이 몰아친 이후 주체의 죽음이 선언되고, 시대의 요구와 당대의 원칙이 대의와 명분에서 실리와 자본으로 바뀌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민중신학을 포함한 대부분의 진보이론들은 변두리로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이 실패한 이후 지금까지 자본의 무한 질주는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2001년 9.11 테러를 통해서, 2008년 미국을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거치면서 문제점들을 하나씩 노출하기 시작한다. 신자유주의가 갖는 모순들, 즉 체제는 숨기려 하지만 감출 수 없는 틈과 균열이 더 이상 은폐가 안 되고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움츠려 있었던 진보진영으로 하여금 변혁에 대한 꿈을 다시한번 상상하게 하고 감행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이 있다. 맑스의 세례를 받은 진보적 좌파지식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리스도교 논쟁이 근래에 핫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로 따지면 빨갱이들이 그리스도교로부터 변혁을 위한 상상을 끌어오고 있는 셈인데... 특이한 것은 그들의 논의 주제가 메시아라는 점이다. 왜, 무엇 때문에 다시 메시아는 소환되는가? 이 글은 전 시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현대철학자들의 메시아 논의를 따라가면서 그것이 어떻게 신학적 상상력과 조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수고(手鼓)이다.  


서로 다른 메시아: 유대교 메시아 Vs. 개신교 메시아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유대교 메시아론과 개신교의 메시아론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이는 이후 전개되는 유대계 사상가인 발터 벤야민과 자크 데리다의 메시아론을 이해하는데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개신교 메시아주의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메시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한 작업이다.  

    개신교의 메시아주의에는 역사적 종말과 인간의 믿음사이에 일정한 함수 관계가 있지만, 유대교 메시아주의에는 개신교의 그것과는 다르게 세상의 법칙과 하늘의 법칙, 세속적 질서와 신적 질서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구원이란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증법적 원리도 아니고, 인간 주체의 변혁을 향한 의지와 노력과도 하등의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이렇듯 초월적 질서의 도래가 현실의 세계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대 메시아주의는 개신교 메시아 주의와 근본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한다. 개신교가 구원을 믿음에 대한 신의 응답으로 이해한다면, 유대교 사상에는 구원을 위한 인간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대교에서 구원은 전적 초월의 사건이 되는 셈이다. 결론적으로 유대 메시아론에서 메시아는 그(녀)의 도래를 염원하는 인간의 바람, 노력, 분투와 상관없이 스스로 오는 자이다. 이러한 전 이해를 갖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유대교 사상가인 발터벤야민과 자크데리다의 메시아론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들의 조상, 발터 벤야민


    현대 좌파 철학자들 가운데 신학적 상상력으로부터 혁명의 기운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자크 데리다, 알랑 바디우, 조르조 아감벤, 야곱 타베스, 슬라보예 지젝 등이 그런 인물들이라 할 수 있을텐데, 이들보다 앞서서 20세기 초반에 벌써 유물론적인 신학, 혹은 유물론자들의 신학을 언급한 섹시한 사상가가 있었다. 그가 바로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이 활동하던 20세기 초반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그들의 광기로 자행된 세계대전이 창궐하던 때였다. 이러한 시기에 벤야민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공히 취급되는 메시아담론을 유물론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혁명을 위한 정치술로 제안하였다. 벤야민은 개신교 메시아주의에서 말하는 강한 메시아가 아니라 약한 메시아를 주장했는데, 이는 그의 기념비적 논문 <역사철학테제>에 등장하는 ‘희미한 메시아적인 힘’과 연관이 있다.   

    본래 변증법적 시간관은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중단없이 이어지는 시간관이다. 기본적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역사관이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이지리라는 기대와 지평 속에서 미래를 향해 가슴을 열고 뛰쳐나가는 것이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벤야민은 “희미한 메시아적 힘”을 이야기하면서 기존의 변증법적 시간관에 대해서, 더 나아가 미래에서 기인하는 메시아의 도래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가 말하는 ‘희미한 메시아적인 힘’이란 지나간 과거의 역사적 순간, 혹은 그것을 통해 현실의 비젼을 보게 끔하는 통로로 작용하지만 기존의 메시아론처럼 뚜렷한 목적론적 역사의식에 젖어있지 않다.


<역사철학테제>가 전하는 새로운 메시아

 

    벤야민은 자신의 유명한 소논문 <역사철학테제>에서 신학과‘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의 결합을 동화와 같은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체스게임 판 앞에 터키풍의 의상을 입고 파이프를 물고 있는 인형이 앉아있다. 이 인형은 게임을 매번 승리로 이끈다. 좀 더 그림을 살펴보면 인형의 배후에는 게임의 명수인 난쟁이 곱추가 있고, 그 둘은 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벤야민은 인형을 사적 유물론으로, 체스의 명수인 곱추를 신학으로 비유한 후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 신학과 사적 유물론이 제휴하면 “그 누구와도 한 판 싸움을 벌일 수 있다”[각주:2]고 말이다.   

    난쟁이 곱추로 그려진 숨어 있는 신은 메시아 혹은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으로 상징된다. 우리의 상상속에서 빛나는 메시아의 모습, 혹은 지난 역사에서 유토피아 건설을 가열차게 주장했던 혁명전사들의 늠늠한 모습에 비하면, 난쟁이 곱추로 묘사된 숨어 있는 신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렇듯 벤야민이 말하는 메시아론은 기존 메시아론과는 다른 느낌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우리가 흔히 메시아론이라고 할 때 그것은 현실 세계와의 혁명적 결렬 내지 극적 파국의 과정을 겪은 후에 도래하는(to-come) 상태, 내지 상황을 전제로 한다. 전통적 유대사상에서는 현실의 압제를 풀어줄 슈퍼스타의 등장을 대망해왔는데 그(녀)에 대한 기표가 바로 메시아이다. 메시아는 누구이고, 그는 언제 등장하며, 메시아가 등장한 후에 벌어지는 사건들,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동안 전개되어왔던 주된 메시아론의 토픽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벤야민이 말하는 메시아론의 핵심은 기존의 메시아론의 시간관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벤야민에게 있어 구원의 때는 전통적인 메시아관과는 다르게 미래의 어느 한 지점으로부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사후적으로 구성되어[각주:3] 현재 시간을 충만케하는 시간[Jetztzeit]이다.[각주:4] 벤야민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이유는 이런 시간관 때문이다.앞서도 언급했듯이 벤야민의 시간의식은 전통적인 변증법과 다르다. 본래 변증법적 시간관은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중단없이 이어지는 시간관이다.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역사관이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지평속에서 미래를 향해 가슴을 열고 뛰쳐나가는 것이 변증법적 시간관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벤야민이 “희미한 메시아적 힘”과 “현재시간[Jetztzeit]”을 이야기하면서 기존의 변증법적 시간관에 대해서, 더 나아가 미래에서 기인하는 메시아의 도래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란 지나간 과거의 역사적 순간, 혹은 그것을 통해 현실의 비젼을 보게끔 하는 통로이겠지만, 그것은 기존의 메시아관 처럼 뚜렷한 목적론적 역사의식에 젖어있지는 않다. 그것을 벤야민은 “역사의 자유로운 하늘에로의 도약”[각주:5]이라 표현하였다.  

    어쩌면 메시아적 현실은 현실에 뿌리박지 않은 미래로부터 도래하는 환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 투쟁하던(는)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속에서 재생되어 사후적으로 도래하는 것 아닐까? 벤야민은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런지? 이는 마치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모자이크와 같다. 수많은 조각들이 이루어져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듯, 수많은 이들의 꿈과 기억의 퍼즐로 이루어진 것이 메시아적 사건이다. 어느 천재적 화가의 단 한번의 붓질로 미래의 언젠가에 완성되는 그림이 메시아적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파편들이 모이고 자리를 잡고 쌓여서 희미했던 메시아적 힘은 마침내 사건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런 뉘앙스가 벤야민의 메시아론에 깃들어 있는 함의다.  


자크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것'


    자크 데리다는 벤야민의 메시아를 둘러싼 문제의식으로부터 본인 사상의 후기를 대표하는 명제인 “the messianic without messianism”[각주:6] 을 끌어온다. 우리가 흔히 메시아론이라고 할 때 그것은“현실 세계와의 혁명적 결렬 내지 극적 파국의 과정을 겪은 후에 도래하는(to-come) 상태 내지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데리다가 말하는 ‘메시아적인 것 the messianic’은 기존의 ‘메시아론을 배제한다(without messianism)’는 점에서 이채롭다.  

    우선,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것’은 벤야민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관부터가 종전 메시아론과 다르다. 데리다는 햄릿에 나오는 대사을 인용하면서, 메시아적 사건으로 인해 현재의 질서와‘시간이 탈구될 것(time is out of the joint)’이라고 예언하였다.[각주:7] 데리다의 이 말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변증법적 시간관과 더 나아가 변증법적 논리에 입각한 역사발전의 원리를 부정하는 입장을 데리다가 취했기 때문이다.  

    본래 변증법적 시간관은 과거(예: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예: 새하늘 새땅)를 향해 중단없이 이어지는 시간관이다. 기본적으로 진보적이고 긍정적인 역사관이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기대 속에서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는 낙관적 세계관이다. 그런데 데리다가 “시간은 탈구될 것”을 이야기하면서 기존의 변증법적 시간관에 대해서, 더 나아가 미래에서 기인하는 메시아의 도래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데리다는 ‘메시아적인 것’을 언급하면서 햄릿의 대사를 인용했던 것일까?  

    데리다가 ‘메시아적인 것’을 언급하면서 ‘시간이 탈구’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분명하다.‘메시아적인 것’이란 메시아주의로 대표되는 신학적 도그마와 교리적 환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피안의 세계에 대한 맹목적 황홀경도 아니다.‘메시아적인 것’이란 나를 한곳에 정주하지 않게 하고 나를 체제에 순응하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메시아적인 것’이고, 기존의 체제와 시스템, 교리와 도그마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메시아적이다.  

    그러므로 ‘메시아적인 것’은 역사의 계기에서 스스로를 산종하다가 메시아적 계기를 불어넣고 다시 체계에 갇히지 않고 사라지는 역사의 새로움을 겨냥한다. 전통적인 강한 메시아론이 기실 헤겔적인 변증법의 포로에 불과하다면, 데리다에게서 ‘메시아적인 것’이란 변증법을 넘어서는 진공의 상태 혹은 그 가장자리에서 변증법을 조롱하다 뒤돌아서 예측 불가능성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기표가 차연을 통해서 영원히 지연되는 의미의 껍데기만을 지속적으로 산출해내는 것처럼, 데리다에게 있어 메시아란 하나의 기표일뿐이고, 이 지점에서 일어난 ‘메시아적인 것’역시 단순히 껍데기로서 이후의 전혀 새로운 산종에 자신을 양도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 꽉 찬 중심을 지향하는 강한 메시아주의(messianism)와는 다른 개념이다. 메시아주의(messianism)로 상징되는 존재론적 확신이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넣었던가? 이런 이유로 데리다는‘the messianic’을 그 누구도 정착할 수 없는 탈영토화된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메시아적인 것’을 텅 빈 공간으로 남겨둔 이유는 보다 더 정치적 속셈이 있다. 텅 빈 기표로서 ‘메시아적인 것’이 현재의 지배적인 시스템속에서 틈과 균열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고, 그 틈과 균열을 통해 도래하는 사건과 희망을 예감하고 전망하자는 취지다. 이 대목에서 ‘메시아적인 것’은 위험한 정치적, 윤리적 상상으로 전환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메시아적인 것'의 정치학, 혹은 윤리학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고, 나와 입장과 생각이 다른 타자의 권리를 옹호하며, 신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억압된 욕망을 건강하게 승화시키는 일은 우리시대 중요한 과제다. 특별히 차이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상대방과 나와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간격을 유지한 채 나이스하게 서로의 다름을 넉넉히 바라볼 줄 아는 미덕, 이것이야 말로 바로 이 광명한 글로벌하고도 포스트모던한 사회를 살아가는 명법이라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화법은 신자유주의로 요약되는 현대사회의 정치-경제적 현실을 왜곡하고 희석시킨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식자들에 의해 의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별히 맑스주의 계열의 학자들로부터 이런 비판은 드세었는데, 그 중에서도 지젝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말하는 수평적 다양성이 혁명에 이르는 수직적 적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지적하였다. 한마디로 사이비 저항을 멈추라는 것이다.  

    데리다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상징하는 대표적 학자로 지목되었고, 그리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로부터 집중 포화의 대상이 되었다. <맑스의 유령들> 출판이후에 이런 오해들이 다소나마 풀리기는 했지만, 데리다를 향한 편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데리다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에는 다소 곡해가 있다. 데리다의 차연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차이 자체에는 방점이 없다. 차연은 엄격히 말해 ‘차이가 생성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차이가 생성된다는 말은 불확정성, 비대칭성, 비등가성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데리다는 후에 ‘차연’을 ‘the messianic without messianism’라는 용어로 정치-신학화 하였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메시아주의에 대한 대항담론의 성격을 지닌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자본에 의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성되고, 그 자본의 법칙만이 유일한 정언명법이 되어버린 이 세계속에서 ‘메시아주의’가 아닌 ‘메시아적인 것’을 유포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일까? 신자유주의로 상징되는 이 견고한 텍스트에 차이를 발생시켜 균열을 내고, 주름을 만들고, 틈을 내고, 그래서 이 시스템이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불안정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메시아적인 것’ 안에 담긴 정치적 음모가 아닐까? 그리하여 체제로 하여금 불순세력에 의한 공작이 이 사회속 어딘가에서 획책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고, 뭔가 상스럽지 못한 기운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환상이 보이고, 거리에선‘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는 주문이 환청이 되어 들리면서, 이 사회가 결코 안정적이지 않음을 유포시키는 것! 그것이 데리다의 ‘the messianic without messianism’ 안에 깃들어있는 정치적 음모이고 윤리적 강령이라 한다면?  

   그러므로,‘메시아적인 것’은 신에 대한 경외를 암시하는 것도 아니고, 신의 전지전능함에 대한 고백과 성찰에서 기인한 말도 아니다. 오히려 신은 텅 빈 기표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초월적 메시아가 스스로를 비워 이 땅으로 하강하는 힘이다. 그런 면에서 신은 충만과 충족의 신이라기보다는 결핍과 잉여로서의 신이다. 텅 비어 있는 신 자체를 세계에 집어넣음으로써, 구멍 자체인 신을 기입함으로 세계는, 그리고 상징적 질서인 세계에 익숙해 있는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그것이 데리다의 ‘메시아적인 것’이 노리는 계략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혁명은 다시 사유되고 시작된다.  


ⓒ 웹진 <제3시대>



  1. 본고는 에큐메니안에 기고한 기사 '메시아는 가라!'의 원고입니다.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3787 [본문으로]
  2. Walter Benjamin, “Theses on the Philosophy of History” in Illuminations, with an introduction by Hannah Arendt (New York: Schocken Books, 1968), 253. [본문으로]
  3. 벤야민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지난 세대와 현 세대 사이에 비밀스런 협약이 있다. Our coming(구원을 상징?)이 지구상에서 기대되어 진다. 우리 앞을 살았던 모든 세대처럼, 우리에게도 희미한(약한) 메시아적 힘이 부여되었다. 과거는 그 힘을 요구할 수 있다.”-Ibid., 254. [본문으로]
  4. “역사는 특정한 구조물의 대상인데, 그 구조물의 자리는 단일하고(동일하고) 비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Jetztzeit(the presence of the now)에 의해 충만한 시간이다. 그래서 로베스피에르에게 있어 고대 로마는 지금의 시간에 의해 충전된 과거였다... 프랑스 혁명은 스스로를 다시 태어난 로마로 간주하였다.”-Ibid., 261. [본문으로]
  5. Ibid., 261. [본문으로]
  6. “the messianic without messianism”-Jacques Derrida, Acts of Religion. Edited by Anidjar (N.Y:Routledge, 2002), 56. [본문으로]
  7.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17.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제3시대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시를 쓰는 수도사
    2016.08.24 20:4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의미있고 재미있는 설명과 해석입니다. 발터 벤야빈과 자크 데리다의 차이는 시대적 배경이라고 봅니다. 그리스도교가 사회적 체제로서 자리잡은 유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따라서 신, 하나님은 진작부터 공기같은 존재로 여겨졌지요. 때문에 저는 메시아론을 검토함에 있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개신교의 차이라고만 규정하기에 뭔가 부족하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그런 차이는 구태여 구분하자면 묵시론과 종말론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뭐 어쨌거나 벤야민이나 데리다나 인격적인 또는 외부에서 진입하는 메시아론에는 반대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요, 오늘날 금융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세운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개신교와 같이 걷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는지요? 이른바 메시아닉 유태인들 messianic jews 을 비롯한 많은 유대인들이 적어도 미국에서 이를테면 성서고고학 등의 분야에서 개신교와 공조해왔다는 현실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지 않으십니까? 벤야민이나 데리다가 이런 현실을 직시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말하는 메시아적 틈새가 과연 어떤 동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개신교의 메시아론이 특별하다고 보십니까? 님의 설명에 따르면, 유대인의 메시아는 정치적 함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집단적 기대치라고 말할 수 있고요, 개신교의 메시아론은 도리어 정치적 개념을 탈각시킨 그럼으로써 현실에 대한 아무런 비판도 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대치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집단과 개인 양자를 모두 포괄합니다. 예수가 스스로 "다윗의 자손"이라는 유대인들의 정치적 메시아를 거부한 것에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메시아는 현존하는 모든 인간의 질서 즉 지배를 추구하는 체제에 반하는 하나님의 질서를 이 지구에 항존적으로 설치한 것입니다. 그게 완성되는 시점이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파국이지요. 그때까지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되고, 인간의 행위도 계속되겠지요. 하나님의 창조는 혼돈에서 질서로 가는 것이고, 인간의 행위는 엔트로피 법칙을 따르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다는 것의 의미가 복잡해지겠지요.

    메시아에 대한 전제가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는 이미 왔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최종국에 오는 하나님의 나라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인류 전체에게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는 메시아의 나라가 아닙니다. 마지막에 오는 그 나라는 심판의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겔의 변증법이 틀린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이론이 틀린 것입니다.


BLOG main image
by 제3시대

공지사항

카테고리

웹진 <제3시대> (779)
특집 (8)
시평 (91)
목회 마당 (57)
신학 정보 (126)
사진에세이 (36)
비평의 눈 (62)
페미&퀴어 (19)
시선의 힘 (126)
소식 (150)
영화 읽기 (28)
신앙과 과학 (13)
팟캐스트 제삼시대 (12)
연구소의 책 (13)
새책 소개 (38)
Total : 315,302
Today : 34 Yesterday :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