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택받은 사람인가? (I)



김윤동
(본 연구소 행정연구원)

 



택하신 족속?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베드로전서 2:9 상반절)


교회에서 매우 좋아하는 성서의 구절 중에 하나기도 하고, 유명한 성경구절이다. 우리는 하늘과 땅을 만들고, 전쟁에도 능하시며, 모든 세계의 만물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신, 하나님에게 선택되었고, 그렇기에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 곧 하나님과 세상을 잇는 자리에 올라설 수 있으며, ‘거룩한 나라’, 곧 하나님이 친히 소유하고 계신 백성이라는 말이다. 이 얼마나 멋지고 가슴 뛰는 일인가!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왜 가슴 뛰는가? 왜 우리를 설레게 하는가?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윤리적으로도 정당한 이야기일까? 우리만 특별하다는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지으시고,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성경의 또다른 진술과 모순되는 것은 아닌가? 한 번 차근차근 이 질문들을 풀어나가도록 하자.


종교의 시작


종교의 시작은 인류의 시작과 궤를 같이 한다. 지금이야 종교가 갈등과 분란의 씨앗인 상황이 되었지만, 종교는 본래 인간을 대(大)집단화하고, 그런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다. 초기 인류의 시대에는 인간의 개체수가 적어서 어떤 집단과 집단 간에 만날 일도 별로 없고 자원으로 인해 갈등이 벌어질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점점 인간의 개체수가 많아지고 유목 생활이 아닌 농업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한 집단은 다른 집단과 만나야 하고, 협상해야 하고, 때로는 싸워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들 간에는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생기고 누군가는 그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승리하고 다른 누군가는 배제된다.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전쟁을 하려면 더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또한 전쟁에서 무조건 상대방을 죽임으로써 합의를 보자니 끝이 없었다. 내가 누군가의 의사를 배제하고 올라섰다는 건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즉, 죽이지 않고도 의사결정에서 승리할 수 있어야 했다. 결국에는 누가 더 정당하냐, 누가 더 먼저냐를 평화롭고 순조롭게 합의하기 위해서, 또한 승리한 개인/또는 집단이 계속해서 그 승리를 보증할 수 있도록 이름표를 붙여주기 위해서는 서열이 필요했는데, 곧 시간적, 공간적 기원들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물체나 사건이라기보다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의 집합이다. 곧, 기원을 상정하고 대집단을 이루는 것이 종교의 시작이자 목표다. 다시 말해, 종교와 기원을 만들어낸 이유는 ‘서열’과 ‘순서’를 창출해내기 위해서다.


인간이 대집단을 만들기 전, 그러니까 모두가 조그마하게 유목을 하던 시절에도 아주 단순한 애니미즘 계열의 종교는 있었다. 모든 생물체들이 자기들만의 영(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인간은 세계의 수많은 생명체, 영을 가진 존재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류가 대집단화 되면서 신들 또한 성장했다 -- 성장시켰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광범위한 영토를 다스리고, 심지어는 자연마저도 통제하며, 세상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는 '위대한 신’의 등장이 필요했다. 고로 인간 집단의 전쟁이 벌어지면 이는 곧 신들 간의 전쟁으로 비화되곤 했다. 전쟁을 하면서 신들에게 제의를 올림으로 전쟁의 승리를 염원했고, 전쟁이 끝나고 나면 신들의 서열이 재배치되고, 점점 그 과정이 반복되어 거대한 집단이 제국의 형태로 성장하면 그 제국의 신을 제외한 다른 신들은 신이 아닌 지경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이 ‘위대한 신’에서 훗날 ‘유일한 신’으로 바뀌게 되는 궤적이다.


애니미즘 이후 ‘위대한 신’들의 등장과 동시에 ‘인간’이라는 종(種)의 위치 또한 격상되어야 했다. 많은 뭇생명들 중 하나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신계와 세속을 이어주는 신의 형상을 모방한 자(창 1:27)나 신을 대신하여 세속을 통치하고 경영하는 존재(창 1:28, 2:15)의 역할을 부여 받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는 수많은 생명들 중 하나의 존재였던 인간이 ‘신의 형상’의 자리를 부여받게 되고, 다른 생명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는 과정이다. 성서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 그 중에서도 1, 2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 또한 그렇게 시작한다. 인간이란 존재에 부여된 우월성을. 이제 그 우월함과 열등함의 서열 정리는 단지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 만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인간 안에서도 격렬하고 첨예한 서열다툼이 시작된다. 창세기 1장에서도 인간은 남자라고 표명되는 ‘아담’이 먼저 창조되고, 그 갈빗대를 취하여 종속적이고, 모방적인 존재로서 ‘여성’이 등장한다. 이미 기원부터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기에 충분하도록 만든 설정이겠다.


이처럼 종교가 시작되면서 나와 내가 아닌 것, 우리와 우리 아닌 것 사이의 격렬한 투쟁의 상태, 그 끝도 없고 답도 없는 상태로 우리는 휘말려 들어가게 되었다. 에덴 동산부터 그렇게 지어졌다는데, 그 이전의 존재들 간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상태라는 상상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꼴이 되었다.


야훼가 선택한 민족, 이스라엘


종교는 기원을 설정하고, 그 기원을 통해 서열을 정리하는 것이 그 속성이라고 앞에서 정리하였다. 그렇기에 구약을 포함해 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꼽으라면 바로 ‘내력(תוֹלְדוֹת, 톨레도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세기 2장의 창조 이야기에서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창 2:4)으로 시작하고, 그것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비롯한 무수한 사람과 가문의 ‘내력/족보’으로 이어졌으며, 신약의 시작인 마태복음 1장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의 세계(Genesis, 게네시스, 내력)’로 이어진다. 성경에 수많은 족보가 나오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지구라는 푸른 별 위에서 시작부터 이어져온 인류 및 각종 생명체가 서로 동떨어져 생겨나지 않았으며, 고로 우리가 태어난 맥락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기원에 대한 정당성, 나아가서 그것들 간의 서열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은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하며 인류 모든 보편적인 기원과 그 족보에 관한 이야기 같이 보이지만, 실로 구약 성경은 인류의 기원과 내력에 관한 이야기이기 이전에 이스라엘의 이야기와 내력을 다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직하다. 일단 성경은 히브리어라는 말로 쓰였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관점에서 보고 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각주:1]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구약 성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에 의해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고, 다른 집단에 비해 달라도 뭔가 다른 사람들이라는 그 기원에 관한 책인 것을 알 수 있다. 선택되었다 함은 구별되었다는 말과 통한다. 왜 구별해냈겠는가? 당연히 특별한/우월한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앞에서 읽은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후반절만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 ‘택하신 족속’이 된 이유는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다. 한 마디로 선민(選民)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이유는 애초부터 훌륭한 사람임을 보증해 주기 위해서다. 종교에서 어떤 이들을 가리켜 ‘선택되었’다 말할 때, ‘흙수저'로 선택되었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선택에는 우월감을 부여하려는 목적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 선민이 되었다는 의식은 사전적인 의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떤 대집단 내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자기네들을 별도로 칭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성서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기원은 뭔가 수상한 곳이 있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이라는 집단은 유전자가 우월하거나 전쟁을 잘한다거나 부자거나 특별히 잘 난 구석이 있어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히브리(Hebrew)의 기원


이스라엘은 히브리인들이다.[각주:2] 이스라엘은 히브리(Hebrew)라는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다. 히브리라는 단어는 어디서 왔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히브리는 ‘천민’ 또는 ‘노예’를 가리키는 단어다. 이집트 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시리아, 페니키아 등 당시 성서가 기록되었던 근동 지역의 문헌에서 천민의 대명사로 나오는 ‘아피(비)루’, 또는 ‘하피(비)루’라고도 표기할 수 있는 말이 구약성서의 ‘히브리'[각주:3]이다. 고대 문헌에서 ‘하비루'가 사용되는 용례를 살펴 보면, 고향에서 뿌리 뽑혀 떠돌이 생활을 하며 남의 전쟁에 목숨을 거는 ‘용병’(메소포타미아 북쪽 도시 마리), 계약을 맺은 노예(티그리스 강가 도시 누지), 일꾼 또는 도둑떼/약탈자(주전 15C 이집트) 등으로 사용된다. 기본적으로 고향에서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하며, 각종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사회의 밑바닥 인생들이 바로 하비루들이었다. 이러한 배경들을 토대로 문익환은 히브리라는 특징적 집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히브리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히브리는 종족, 혈족으로 단위를 이루는 배타적인 칭호가 아니라, 당연히 자주적인 주격으로 해방되어야 할 밑바닥 계층,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약자들을 포괄하는 총칭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1. 전쟁포로들이 하비루가 되어 노예로 혹사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노예로 전락하고 용병으로 변신할 수밖에 없이 된 사람들, 농촌에서 밀려난 이농민들이 하비루가 되었습니다. 

3. 야곱의 이야기나 모세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어떤 이유건 고향에 남아 있을 수 없는 사람들, 남에게 붙어사는 떠돌이, 더부살이, 천더기들이 하비루로 전락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각주:4]


바로 이런 부족이 없는 자들, 소속이 없는 자들, 집단 아닌 집단, 어떤 혈통에서 온지도 모르는 근본 없는 떠돌이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부유물 같은 삶을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겠다고 하셨다. 이들이 히브리들이고, 그 히브리들을 향해 불같이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이기지 못한 야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출애굽기 3:7) 


그러면 그들이 너의 말을 들을 것이다. 또 너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이집트의 임금에게 가서 '히브리 사람의 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니, 이제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을 걸어가서, 주 우리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고 요구하여라. (출애굽기 3:18)


왕과 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하지만, 이런 기원에도 불구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간 히브리들은 자신들이 힘겹게 떠돌이 생활을 했던 것과 그 눈물을 불쌍히 여겨 압제에서 건져 내준 야훼의 사랑을 이내 잊어버리고 만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들은 새로운 ‘내력’을 필요로 했다. 자기네들이 ‘천민’ 출신이 아니라 원래부터 선택받은 사람이어야 했다. 본래 어떤 개인도 그렇고 집단도 그렇고 전쟁에서 승승장구를 하다보면 문득 생각이 든다. ‘내가 진짜 잘 나서 선택 되었고, 어딘가 모르게 잘난 구석이 있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지점이다. 그것을 성서에서 ‘하나님을 잊은 백성’이라 표현한다.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 준 야훼 하나님과 그와 맺은 영구적인 계약을 잊어 버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의 위기 시에만 기름 부음 받은 사사(판관)를 세워 위기를 극복하곤 했던 사람들은 급기야는 ‘왕’을 요청하게 된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다른 나라처럼 더 많은 영토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다.[각주:5]


매번 주변 강대국의 침략을 당하다보니 불안했다. 물론, 이제까지의 전쟁을 그 때 그 때 야훼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막아내었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가장 훌륭한 방어전략은 ‘공격’이라는 말이 있듯이 영토의 확장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종교적인 사제가 다스리는 원시 부족 국가의 형태보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왕을 가지고, 그걸 통해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해낼 수 있는 멋진 정치 제도를 가지고 싶었다. 분명히 사무엘(을 통해 말한 야훼 하나님)은 이러한 요구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고 경고했다. 하지만, 백성들의 요구는 끈질겼고, 이제부터 더욱 가열찬 영토 확장 전쟁을 하기 위해 ‘야훼(신)에게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선민사상은 왕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그 권력을 유지해야만 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계속해서 확장해 나간다. 그래서 집단 없고 소속 없는 사람들의 집단 히브리들은 자신들의 뿌리에 관한 역사를 조사하기 시작하고, 또한 그것을 강력한 기제로 만들기 위해 불문율이었던 여러 관습이나 전통들,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자신들만의 규율을 문자로 적어 표현하고 문서의 형식을 갖춘 성문법으로 만들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을 기틀로 하는 법전이다.


국가로서의 체제가 정비되고 영토가 확장되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국가의 신화는 정비되고 민족이 형성된 기원의 이야기가 정리되기 마련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법을 수령한 이야기와 출애굽의 이야기는 본래 다른 이야기였는데, 국가의 태동기에 두 이야기가 합류되었다고 주장한다.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떠돌던 규모가 작은 유랑 공동체에게 기록되고 명시된 법문이라는 것은 거추장스러울 뿐더러 의사결정에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각주:6] 광야를 떠돌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해야 하고, 그런 상황 변화에 고정된 ‘법문’으로 대처하기보다 역동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체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법 수령 설화와 출애굽 설화) 두 이야기의 합류’라는 말이 두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야훼 하나님의 애끓는 심정으로 하비루들은 애굽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는 사실, 하비루들과 야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 있었다는 두 가지 사실은 진실이며, 그것이 ‘열 가지 계명’이라는 전통으로 전해져 내려와 국가가 형성될 때 정비되고 다듬어져 국가 법령의 정신이자 기틀이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각주:7] 아무튼 이제 정착을 하고, 안정된 국가 체제를 가지기 시작한 이스라엘 공동체는 점점 더 이질적인 부분이나, 각 부족들의 이해관계를 넘어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공동체성을 강고하게 가져가기 위해 십계명을 기초로 하는 법문을 세워 ‘법치국가’임을 천명하는 등 여러 가지 방책을 펼치기로 작정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내부적인 결속을 위해 법을 만든다는 의미는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어떤 선명한 바리케이트를 치게 되는 작업이고, 다시 이스라엘이 애굽 시대에 겪었던 것처럼 경계 바깥 사람들, 집단 없는 집단, 소속 없는 사람들을 새로이 ‘생산’해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겠다는 ‘의도하지 않은 의도’가 되는 것이다. 타자(곧 적, The enemy)의 생산 없이 어떤 집단이 생성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연관되어 또 하나 법을 세워 통치하겠다는 의미는 중요한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야훼 하나님을 ‘타자’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야훼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본래 유랑민이었을 때의 친밀하고 긴밀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 관계이다. 상황을 만날 때마다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을 물었고, 서로 의사가 교류되는 관계였다. 공동체 안에 맺어진 대원칙은 있었겠지만, 결코 어떠한 텍스트나 문자 속에 갇히지 않고 맥동치는 바로 그 살아있는 ‘긴밀한 관계’가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원천이었다. 사사 시대의 그것은 다른 국가들의 강력한 법치보다 느슨해 보였겠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유연하고도 긴밀한 관계’가 국가의 더욱 소중한 요소임을 시간이 갈수록 잊었다. 그럼에도 야훼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순진했던 것일까? 자신이 법문 안에 갇힐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상 8장의 경고를 남기고 자신의 자리를 왕과 법에게 내어주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찬란한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나라는 쪼개져 버린 것이다.


<다음 호에서 계속>


ⓒ 웹진 <제3시대>



  1.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하이데거라는 철학자가 있다. 어떤 한 존재가 그 언어를 벗어나서 형성될 수 없다는 뜻이다. 언어란 단순히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의사소통을 말하는 것 뿐 아니라 그 음성과 문자가 담고 있는 사회의 모든 관습과 생각의 집합체, 즉 이데올로기라고 보는 것이 더 적확하다. 성경 또한 이스라엘의 언어로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이라는 집단 구성원의 이데올로기 즉, 그들의 ‘창’으로 본 것이고, 그 창으로 보여진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아무리 인류 보편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가장 먼저 이스라엘이라는 존재, 이스라엘이라는 언어의 ‘창’으로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본문으로]
  2. 현재 서부 아시아의 남쪽, 이집트의 동쪽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땅의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대인의 국가’로 정의내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고학적이고, 역사적인 기원을 따지자면 이야기할 것이 너무 많아지므로, 마지막 별도의 내용으로 기술하도록 한다. [본문으로]
  3. 문익환, ⌈히브리 민중사⌋, 정한책방, 27쪽. [본문으로]
  4. 위의 책, 32쪽. [본문으로]
  5. 다음과 같이 사무엘상 8장에서는 사무엘과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 사이의 대화를 기록해 놓았다. 4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모여서,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갔다. 5 그들이 사무엘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10 사무엘은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11 "당신들을 다스릴 왕의 권한은 이러합니다. 그는 당신들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입니다. 12 그는 당신들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하고,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입니다. 13 그는 당신들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입니다. 14 그는 당신들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왕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당신들이 둔 곡식과 포도에서도 열에 하나를 거두어 왕의 관리들과 신하들에게 줄 것입니다. 16 그는 당신들의 남종들과 여종들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입니다. 17 그는 또 당신들의 양 떼 가운데서 열에 하나를 거두어 갈 것이며, 마침내 당신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 18 그 때에야 당신들이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을 터이지만, 그 때에 주님께서는 당신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19 이렇게 일러주어도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왕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20 우리도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그 왕이 우리를 이끌고 나가서, 전쟁에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본문으로]
  6. ’법의 백성’이라는 호명은 국가 시대의 산물이다. 성서의 문맥을 보면 출애굽과 십계 이야기는 광야를 유랑하던 시대에 이스라엘이 법의 백성으로 부름받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텍스트의 역사적 자리는 ‘국가'라는 세속적 실체다. 유랑민들은 법이 필요 없다. 그만큼 규모가 작고 단순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법이 필요한 것은 여러 종족이 한 정치체로 묶이고 전이해와 현실이해를 달리하는 여러 기억과 경험들이 교차하는 상황에서다. 그리하여 법은 유랑 시대가 아니라 국가 시대에 등장한다. 그것도 원시국가 형태가 아니라 '잘 발달된' 국가 시대의 산물이다. (김진호 외 9인, ⌈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도 가장 숙고되지 못한 십계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글항아리, 8~9쪽) [본문으로]
  7. 출애굽기 20장에 나타난 내용과 신명기 5장에 나타난 내용은 서로 상반된다. 출애굽기 20장에서는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1~2절)이라고 서문을 맺고 바로 계명이 나오는 반면, 신명기 5장의 경우 1~5절이라는 긴 서문을 진술한 후에, 서문이 등장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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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의 인종청소





김진양

(Ph.D. 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the Old Testament))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피바다가 흐르는 끔찍한 땅으로 변질되었다. 사실 이것이 성서가 말하고 있는 약속의 땅의 적나라한 모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당황스럽고 씁쓸하다. 구약 성서학은 거룩한 전쟁이라는 신학적 담론 아래 가나안 원주민의 희생을 철저히 외면하였다. 약속의 땅과 거룩한 전쟁 같은 이데올리기는 고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정당화했을 뿐 아니라, 근대에 세워진 국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종청소”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부끄러운 일이다. 


  공교롭게도 성서에서 처음으로 “인종청소”를 언급된 곳이 다름 아닌 히브리 노예의 해방을 기록한 출애굽기다:


나의 천사가 너희 앞에서 너희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전멸시키겠다(출 23:23, 새번역).


  성서의 “인종청소” 언급은 신명기에서 더욱 심각하다. 신명기는 가나안 땅의 사는 모든 남성, 여성, 심지어 어린이까지 죽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 우리 하나님이 그를 우리 손에 넘겨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와 그의 아들들들과 그의 온 군대를 쳐부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모든 성읍에서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습니다(신 2:33-34, 새번역).


    더욱 놀라운 점은 신명기에서 “인종청소”의 주도적 역할은 다름 아닌 야훼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는 것이다(참조, 신 7:1-11; 9:1-; 11:8-9; 23:31-23). 여호수아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특별히 첫 번째 부분은 야훼의 거룩한 전쟁이라는 이념 아래 “인종청소”를 합법적으로 설명한다(여호수아 2-12). 그야말로 야훼가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가나안 원주민의 피로 얼룩진 땅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구약성서의 “인종청소” 개념이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사실이지만, 야훼가 이를 직접 요구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충격적이다.


 성서의 거룩한 전쟁은 “인종청소”라는 면에서 도덕적/윤리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가나안 “인종청소”가 근대 이스라엘의 성립 과정 중 행해진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에 성서적이고 신학적인 근거를 제공하였다는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각주:1] 더구나 고대에 기록된 성서가 근대의 역사에서 “인종청소”의 도구로 오용되도록 성서를 해석한 성서학자들의 학문은 재고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여호수아서 1장에서 12장에서 언급하는 가나안 정복설은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초기 이스라엘은 다른 인종과 점진적이고 평화적 융합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초기 왕정시대인 철기시대의 팔레스타인 산악지대의 거주지는 오히려 “가나안”과 “이스라엘”사이의 인종적 구별이 없음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기원은 외부에서의 침략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오랜 세월동안 내부의 혼합 과정을 거친 평화로운 민족 형성의 과정이다.


 지난 2000년 9월 10일자 뉴욕타임즈에 150명의 유대인 학자와 랍비는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시오니즘 운동의 정당성을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인은 유대인의 이스라엘 땅에 대한 존중을 표해야 한다. 홀로코스트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은 다름 아닌 약속의 땅에 재건된 이스라엘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성서에 기초한 종교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사실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기독교인은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보다는 다른 많은 이유로 근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에 유대인들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유럽의 유대인은 나치정권 유대인 말살정책인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인종청소”의 희생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근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오히려 팔레스타인을 말살하는 “인종청소”의 주역이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서를 언급하면서 미국의 기독교인들을 향해 구애를 펼쳤다. UN과 미국의 지지 아래 1948년 근대 이스라엘이 탄생하게 된 이래, 이스라엘은 줄곧 미국의 어마어마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왔다. 아래 도표에서 보듯이, 1948년 이후, 이스라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군사적이고 경제적 도움을 받은 최대의 수혜국이다.


 수많은 성서학자들이 땅에 대한 신학적/신앙적 논의를 하였지만, 정녕 “인종청소”의 부당함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미국 듀크대학 명예교수인 데이비스(W. D. Davies)는 자신의 책 The Gospel and the Land에서 자신이 의도하지 않게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를 지지하게 되었다고 소고했다. 구약성서학의 대가인 발트 브루거만(Walter Brueggeman)도 1977년에 출판된 자신의 책 The Land도 같은 맥락이다. 브루거만 역시 성서신학에서 땅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가나안 원주민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달리 키스 와이트램(Keith Whitelam)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는 1948년에 세워진 근대 이스라엘을 정당화하는 날조된 학문이라고 주장하면서 근대 이스라엘의 합법성에 문제제기를 한 유일한 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책,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ian History (1997)에서 “다윗왕조와 근대 이스라엘 사이의 유사성을 비교하면서 시오니즘을 옹호하는 성서해석”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각주:2] 아래의 삽화는 1948년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근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의 의미를 한눈으로 잘 보여준다. 성서학자들은 “인종청소”라는 폭력적인 정책의 성서적인 근거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바바라 로씽(Barbara Rossing)의 책 The Rapture Exposed: The Message of Hope in the Book of Revelation은 시오니즘을 옹호하는 세대주의 종말론((Dispensationalism)의 위험성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종말론 소설인 남겨진 자(Left Behind)와 같은 부류의 소설은 성서에 근거를 두지 않을 뿐 아니라, 폭력과 전쟁, 특히 “인종청소”를 정당화화는 위험한 책이라는 것이다.[각주:3] (필자의 블로그 참조: 미국의 중동정책과 묵시종말론).


 구약성서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학문인 구약 성서학이 오늘날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를 옹호하는 학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구약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로운 공존과 화해를 위해 성서를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하신 야훼의 말씀을 오늘날 올바르게 재해석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필자소개

    현재 미 연합감리교회 북 일리노이 연회에서 목회,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구약학 전공(Ph.D.),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 외래교수,  Wartburg College에서 강의


ⓒ 웹진 <제3시대>

  1. Michael Prior, "Confronting the Bible's Ethnic Cleansing in Palestine," in Burning Issues: Understanding and Misunderstanding The Middle East: A 40-Year Chronicle (eds. John Mahoney, Jane Adas, and Robert Norberg (New York: Americans for Middle East Understanding, 2007), pp. 267-90. [본문으로]
  2. Keith W. Whitelam,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ian History (London: Routledge; Revised ed. edition, 1997), p. 137. [본문으로]
  3. 바바라 로씽, 『미국의 중동정책과 묵시 종말론: 요한묵시록의 희망 이야기』 (번역: 김명수, 김진양;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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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전쟁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강도떼가 숨어서 사람을 기다리듯, 제사장 무리가 세겜으로 가는 길목에 숨었다가 사람들을 살해하니, 차마 못할 죄를 지었다. ― 「호세아서」 6장 9절

이스라엘 국이 멸망하기 직전의 혼란 상황을 묘사하는 텍스트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수수께끼 같습니다. 세겜 길목에서 제사장들이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일까요? 

‘세겜’은, 과거 블레셋 군과 사울 군이 싸울 때 양군의 진영이 있었던 저 유명한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의 기슭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유다국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국의 수도인 사마리아로 가고자 할 때 도로가 세겜을 지나가게 되어 있지요. 더 나아가 이집트에서 시리아로 이르는 내륙 대상로가 이 지역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여 ‘세겜 기슭’이란 남에서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으로 혹은 사마리아 성에서 유다 국으로 가는 길목인 셈이지요.

호세아 예언자는 이곳을 통과하는 이들을 제사장들이 살해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을 통과하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남에서 북으로 가는 이들일까요 아니면 북에서 남으로 가는 이들일까요?

이것을 알아내는 일은 간단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국은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전 국토가 유린당하고 있었습니다. 분노한 제국의 군대는 끈질기게 저항했던 성읍을 불태웠고 지도자들의 몸둥이를 기둥에 꿰어 성벽에 내걸어 놓았으며, 그곳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해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근 농지를 불살랐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또 노예로 끌고 갔습니다.

한때 시리아-팔레스티나의 패권국으로 광대한 영토를 병합했던 제국 이스라엘은 거의 모든 영토를 빼앗겼고 단지 사마리아 성과 그 인근지역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호세아서」는 내용상 1~3장과 4장 이후로 나뉘는데, 1~3장이 이스라엘 국이 아직 번성하고 있던 때를 반영하고 있다면, 4장 이후는 아시리아 군의 침공으로 전쟁의 참화 속에서 멸망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을 다루고 있지요. 앞이 이스라엘의 영토가 방대했던 때였다면, 뒷부분은 사마리아 지방으로 쪼그라든 때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3장에서는 ‘에브라임’이라는 용어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데, 4장 이후에서는 무려 36번이나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大) 이스라엘’이던 시절이 지나고, 왕국 말기에 사마리아 인근의 에브라임 지역만을 통제하고 있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세겜의 길목이란 남쪽으로 향하는 백성들이 국경을 통과하는 길목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쪽에서 아시리아 군이 밀고 내려오니 사람들은 세겜을 통해 남으로 피란을 떠나는 것이지요. 살기 위해서, 군대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파괴의 잔혹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제사장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왕의 군대가 아니라 제사장들이 말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왕궁의 녹을 먹던 사제들이었겠지요. 국가가 번영하던 때 연일 정복지에서 온 전리품이 이곳을 통과해서 왕실로 갔고, 봉신국이던 유다국 등의 공납물도 여기를 거쳐 지나갔습니다. 또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에서 시작해서 시리아로 가는 대상도 이곳을 지나갔지요. 그때마다 막대한 기부금이 왕실의 이름으로 제사장들에게 하사되었습니다. 하여 그들은 이곳의 강력한 종교귀족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실이 몰락할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왕실과 운명을 같이할 것입니다. 그러면 야훼께서 축복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다시 번성케 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했고 또 그렇게 믿었습니다.

한데 백성들이 도성을 피해 남으로 피란을 떠나려 합니다. 사제들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하여 세겜 길목을 지키며 그곳을 지나는 백성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해댑니다. 왕실과 성전의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 불신실한 이들을 신의 이름으로, 거룩한 이스라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살육을 합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바로 그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그런데 ...... 길르앗은 폭력배들의 성읍이다. 발자국마다 핏자국이 뚜렷하다.”(6~8절)

제사가 신실함의 표상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국란 상황에서 제사에 몰두하며 그것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무참히 죽였던 것입니다. 신정국가 사회에서 제사는 국가의 이데올로기이자 미래의 청사진이었습니다. 그 이데올로기와 청사진이 추구하는 것은 ‘풍요’였습니다. 신은 풍요를 주는 분이었고, 제의는 그러한 풍요를 표상하는 방식으로 화려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의를 주관하는 제사장들을 우월한 계급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바로 이러한 제사종교의 폐단을 비판합니다. 그가 얘기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헤세드)‘과 ’하느님을 아는 지식‘(다아트 엘로힘)입니다. 그것은 풍요나 계급의 신, 그것을 보증하는 격식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의) 구원과 (위계질서로부터의) 해방을 선사한 ’출애굽의 신‘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전쟁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회피하려는 이들의 행동을 저주하고 그 몸을 죽음의 계곡으로 내동댕이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피비린내 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살고자 하는 노력을 가상히 여기고 그들에게 구원과 해방을 선사하는 신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텍스트는 오늘 한국의 대형교회 지도자들이 벌이는 행동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한국에서 교회는 지난 1990년 이전까지는 온갖 번영과 풍요를 누렸습니다. 그때 교회는 궁핍에서 풍요를 선사한 하느님을 선포했고 그 선포가 실현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또한 교회는 그 풍요와 영적 구원을 동일시하는 한국적 교리를 제도화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견고한 풍요의 성전 외부로 떨려난 이들을 저주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 이단들, 타종교인들, 성적 소수자들 등이 그들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축복과 저주의 담론을 예배 속에 제도화했고, 그것을 통제하는 관리자, 곧 성직자를 통해 그러한 배타적 성전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풍요의 시대가 가고 환란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자본의 광풍이 사람들을 헤어 나올 수 없는 저주의 늪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국가와 국민은 위기에 처했고, 지구자본체제라는 제국의 질서 속에서 공공 영역이 점점 와해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1990년 이후 저성장 상황에 놓여 있다가 1995년에서 2005년 사이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시민사회는 교회에 대한 신뢰를 폐기했고 심지어 혐오스러워 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발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인 번영신학의 철저한 순응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일상에까지 관철시키는 생활태도와 신앙태도로 무장하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실패자에게 무관심하거나 냉혹한 신앙제도로 교회를 재정립하도록 이끕니다.

둘째는 배제주의 이데올로기를 일상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념의 타자, 종교의 타자, 인종의 타자, 계급의 타자, 성적 타자에 대해 무자비한 종교제도를 추구하는 신앙을 낳습니다. 최근 한국교회는 이러한 대열에서 이탈하려는 자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일부 대학교수들을 강단에서 쫓아냈고, 이념의 타자들을 사냥하기 위해 온갖 색깔론을 발명해냈으며, 타종족․기층대중․성소수자 등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풍요의 신학을 재천명하고, 물량적인 축도의 종교로 사람들을 다시 끌어들이려 합니다. 하여 자본주의와 반공주의, 귀족주의, 성직자 중심주의를 추구하는 신앙제도 속에서 사람들을 묶어두려 합니다.

해서 우리는 호세아 예언자처럼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구원과 해방, 하느님에 관한, 성서에 관한 지식을 왜곡하는 이들과 양보 없는 일전을 벌여야 합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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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토론회]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
 
- 개혁을 위한 종교인 네트워크 열린 포럼

2009년 2월 5일(목) 오후 3:00~6:00에 안병무홀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의 동영상입니다. 이 토론회는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가 주최하였습니다.(이 영상은 공동주최자인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촬영했으며, 다음카페 '우리신학 배움터 울림' http://cafe.daum.net/wooriwoolim에서 퍼온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
-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적대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

발제1_홀로코스트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_임지현 | 한양대. 서양사
발제2_홀로코스트 신학과 홀로코스트 너머의 신학_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토론1_장석만 | 충간문화연구소 소장
토론2_박준영 | 아시아가톨릭뉴스 한국지국장
토론3_종명 스님 | 화계사 사회국장








*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는 (1) 사회 개혁 의제에 대해 종교계의 의견을 모아 밝히고 참여하며, (2) 각 교단 안 개혁 문제에 대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3) 종교 자유와 종교 간의 관용성 확대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취지로 200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참여불교재가연대(불교), 우리신학연구소(천주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개신교)가 세 종단의 간사단체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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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하여

채수일
(한신대학교 신학과 | 교수)

1. 이스라엘은 작년 12월 27일 가자 지구에 대한 이른바 ‘캐스트 레드’ 작전을 개시, 지금까지 1천여 차례 이상의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공습으로 주요 시설 대부분이 파괴된 것은 물론, 침공 20일 째를 맞은 1월 15일, 1,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희생당했다. 이스라엘은 수백 톤의 폭탄을 퍼부은 것은 물론 각종 신무기들을 실험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3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희생되었다. 부상자도 5,000명 이상에 이르고 있다. 파괴된 가옥 4천 채 등 피해액은 최소 14억 달러에 이른다.[각주:1] 탱크를 앞세운 지상군의 투입과 시가전은 앞으로 더 많은 사상자를 낼 것이 분명하다. 여성과 어린이들의 희생은 물론, 부상자를 치료할 병원과 의약품의 절대 부족, 물과 전기 부족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명도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미국을 통해 무산시켰고, 유엔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 본부에도 포탄을 쏘고, 유엔 구호차량에도 공격을 가했다고 한다.[각주:2] 유럽 연합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관련 당사국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 것은 총선을 앞둔 국내 집권여당의 정치적 상황과 비교적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를 그의 취임 전, 시험하기위한 의도가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마찬가지겠지만, 대선에서 유대인의 지지를 받은 오바마가 ‘이스라엘 로비’[각주:3]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 내는 물론 이스라엘 안에서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집단과 개인들이 있겠지만 이스라엘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낼만큼 충분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2. 오늘의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분할과 지배의 역사를 회상할 필요가 있다. 2009년은 국제연합이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 안을 채택한지 62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국제사회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 있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1947년 11월 29일 뉴욕, 국제연합총회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유대국가(영토의 56%)와 아랍국가(44%)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을 국제관리체제 하에 두기로 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스라엘은 사생아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 영토를 이집트(가자), 요르단(웨스트뱅크)과 함께 나눠먹고 국토면적을 3분의 1가량 늘렸다. 그리고 8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무력에 의해 집과 땅을 등져야 했다.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20년이 지난 후, 1967년 6월, 이른바 제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를 차지했다. 점령은 곧 식민지화로 이어졌고, 우파가 정권을 잡은 이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1977년에 5천명에 불과했던 이 지역의 유대인 정착민 수는 이츠하크 라빈 노동당 당수가 선거에서 승리한 1992년에 12만 명에 이르렀고, 그 후 10년 동안 다시 두 배나 증가하여 25만 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가자지구 땅의 약 25%를 차지했다. 이스라엘의 점령 통치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저항이 이어졌고, 1987년 이스라엘에 맞선 민중봉기(인티파다)가 일어났다. 그런데 요르단이 웨스트뱅크의 소유권 주장을 거둬들이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는 1988년 말 건국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을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양국의 평화협상은 1993년의 오슬로 조약으로 결실을 거뒀다. 팔레스타인은 가자와 서안에 자치정부를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95년 11월 4일 라빈 총리가 암살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큰 타격을 입었다. 후임 총리인 벤야민 네탄야후(1996-1999 재임)와 에후드 바라크(1999-2000 재임)가 점령지 반환을 거부한 것이다. 2001년 총리로 선출된 아리엘 샤론은 자살테러가 증가한다는 핑계로 웨스트뱅크를 재점령하고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2004년 7월 9일 국제사법재판소는 장벽을 불법 시설로 간주하고 철거를 명령했으며, 같은 달 20일에는 국제연합 총회가 찬성 150표, 반대 6표, 기권 10표로 동일한 결정을 내렸지만, 이스라엘은 장벽건설을 계속했다. 이스라엘은 평화협상을 중단하기 위해 2005년 9월 점령 38년 만에 의도적으로 가자지구에서 철수했다. 기막히게 연출된 유대인 정착민들의 가자지구 철수는 2005년 4월 총리로 선출된 에후드 올메르트의 작품이었다. 평화협상의 결렬은 팔레스타인 건국을 불가능하게 하고, 난민과 국경, 예루살렘에 대한 논의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의 정착촌 4개를 제외한 나머지 영토를 모두 합병할 수 있었다.

그 후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하마스가 2007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주요세력인 파타와의 내전 끝에 가자를 점령하자 이스라엘은 하마스 정권을 고사시키기 위해 봉쇄를 시작했다. 하마스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서구사회도 식량배급을 끊었다. 봉쇄정책으로 경제기반을 모두 빼앗긴 가자 주민 150만 명 대부분은 8개의 난민캠프에서 유엔의 지원에 의존하여 생계를 이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7일 이스라엘이 갑자기 침공을 시작했던 것이다. 4월 총선을 의식한 이스라엘 집권당의 의도인지, 오바마 미국 대통령 길들이기인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의 침공은 국제사회의 결의도 무시하는 오만함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대한 만행을 다시한번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힘의 논리가 어떻게, 얼마나 냉혹하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미국의 대외정책에 끼치는 이스라엘 로비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이다. 1947년 팔레스타인 영토의 44%를 약속받은 아랍 민족이 도대체 어떻게 2007년에는 동예루살렘에 수도도 없이, 난민 문제의 해결책도 없이 영국령 영토였던 시절의 10%에도 못 미치는 땅에 4개의 자치구밖에 차지하고 있지 못한단 말인가?[각주:4]

3. 세계의 양심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래된 정치적, 군사적 갈등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길 기원하고 있다. 유럽 연합도 이스라엘과의 동반관계 격상 계획을 잠정 중지했고, 볼리비아, 베네주엘라 등은 국교를 단절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시민단체들이 전쟁의 종식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15일에는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한국기독교회협의회 정의/평화 위원회, 한국교회 인권센터,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 감신대 기독교 통합학문연구소,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등 기독교 단체는 물론, 한국불자교수연합회, 한국이슬람중앙회,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등 관련 인사들이 서울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종교시민단체의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한편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대한 무차별 살상공격과 폭력의 즉각적인 중단, 이스라엘 지상군의 즉각 철수, 이스라엘의 학살행위에 대한 미국의 두둔 철회, 휴전협정의 즉각 수용 등을 종교인으로서의 인도적 정신과 세계 인권선언 정신 위에서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민간희생자들을 위한 의약품과 구호품 지원을 한국정부에 호소하고,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한국교회도 이스라엘의 야만적 침략을 규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다. 한국교회가 이스라엘에 대해서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각주:5]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데에는 한국교회의 친미주의, 일제식민지배하의 한민족의 운명과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야기를 동일시했던 전통,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학살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들에 대한 기억 등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홀로코스트’가 지금의 이스라엘의 만행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전거가 될 수 없다. 과거의 희생자가 현재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누구도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구원은 기억’임을 스스로 잊어서는 안된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심판받았다’. 뮌헨 근교 다카오에 있는 옛 집단수용소에 걸려있는 철학자 산타야나의 말이다. 희생에 대한 기억이 타인을 위한 배려와 돌봄으로 실현되어야지, 타인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과 지배로 보복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더구나 팔레스타인인은 유대인에 대한 가해자가 아니다.

4. 한국교회는 이스라엘을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서구 그리스도교가 저질러온 이른바 ‘안티 세미티즘’(반유대주의)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한국교회는 자유롭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역사적 고난의 기억을 지금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결부시켜야 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스라엘의 만행을 억제하고, 중동에서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나는 한국교회가 다음과 같은 일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교회는 먼저 고난 받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것을 제안한다. 관광은 이스라엘 3대 산업의 하나로 일 년 관광수입이 30억 달러가 넘는다. 2007년 이스라엘을 방문한 관광객은 전년대비 25%나 늘어난 총 229만 3,700여명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유대인의 친척 방문이 많은 미국이 전체의 24%로 가장 많았고 이어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의 순이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 수요는 전체의 5%에도 못 미치는 11만 2,900명이지만, 이 중 한국은 3만 3,900명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아시아에서 1위를 기록했다. 2006년보다 21%나 성장한 수치로, 주로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한 방문이었다.[각주:6] 성지순례는 소중한 종교체험임이 분명하고, 학문적 연구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중동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한국교회가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잠정적 중지를 선언 할 것을 제안한다. 그 대신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안적 성지순례’를 하면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과의 사귐과 연대를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은 이스라엘과 1962년에 수교를 했고, 이스라엘에 진출한 기업으로서는 현대종합상사, 대우, 기아, LG, 삼성물산, 효성물산 등이 있다. 1999년 현재 교역량을 보면 수출이 4억 8천 6백만 달러이고, 수입은 5억 6천 2백만 달러로, 한국이 7,600만 달러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의 교역에 압력을 가하고, 이스라엘과 관계된 상품들(이스라엘에 투자하는 회사들의 상품은 물론,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친이스라엘적 영화 등)에 대한 보이코트도 고려해야 한다.

끝으로 한국교회는 이슬람, 유대교와의 신학적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길 제안한다. 근본주의적 그리스도교는 이슬람을 오랫동안 적대시해왔고, 최근 한국을 이슬람이 선교지로 선택하여 공격적으로 선교정책을 추진한다는 소문을 근거로 자칫 현실을 왜곡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현재 약 117만 명의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이슬람을 배경으로 한 나라에서 온 이주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슬람 적대적인 근본주의적 선교태도는 우리 사회 안에서 또 다른 종교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만드는 종교가 오히려 평화를 해치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이슬람 사이의 갈등은 신학적, 종교적 원인에 의해서만 유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원인에 의한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불교나 힌두교 등 전적으로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보다 이들 세 종교들 사이의 갈등과 적대감이 더 심한 것은 이들이 어쩌면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들 종교들 사이의 갈등구조를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선교적 전망을 얻기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갈등과 억압과 저항의 역사에 의해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는 것, 그리고 다른 종교를 그 자체로서 정확하게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대화와 증언의 전제인 것이다. 그래야 우월감이나 피해의식 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를 타종교인의 개종으로 이해하거나, 상대가 듣던 안 듣던 일방적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한, 같은 뿌리를 가진 세 종교 사이의 대화와 화해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오늘의 이슬람국가들과 서방 세계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문명충돌론’이나 선과 악이 대결하는 ‘성전’으로 왜곡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정치적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신학적 대화는 훨씬 지난하고 긴 과정을 필요로 한다. 한국교회와 신학계는 지금까지 심각하게 숙고하지 못했던 유대교와 이슬람 문제와 대결하게 되었다. 그것이 유감스럽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더 갑자기 강화되었지만, 같은 뿌리에서 나온 세 종교들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기회를 한국교회는 선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데 한국교회가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 웹진 <제3시대>
  1. 한겨레신문, 2009년 1월 16일, 16면. [본문으로]
  2. 한겨레신문, 2009년 1월 16일, 2면. [본문으로]
  3. John J. Mearsheimer and Stephen M. Walt, 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 NY, 2007 참조. [본문으로]
  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르몽드 세계사, 권지현 역, 휴머니스터, 2008, 154. [본문으로]
  5. 지난 1월 15일 한국-이스라엘 친선협회(회장 튜태영 장로, 전 건국대 부총장)가 주최한 2009년도 신년하례 및 이스라엘의 밤에서 회장인 류태영 장로는 ‘하마스는 그동안 비밀리에 무장해 이스라엘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해왔다. 이번 전쟁은 그것을 막기 위한 공격으로 정당방위다... 이스라엘이 그 암세포가 더 커지기 전에 미리 수술을 들어간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군사 지도자들이 우리의 혈맹인 미국과 은밀히 의논하는 가운데 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우리 민족을 보호해주실 것이다. 우리도 이스라엘 처럼 결단을 내려서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시키는 일에 상당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사상, 2009,2, 70 참조. [본문으로]
  6. 인터넷 여행신문, 2008년 8월 27일. [본문으로]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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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09.03.09 07:0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는 이번 학기에 Northwestern 내에 있는 Garrett Seminary에서 개설되고 있는 ‘War and Peace: Jews, Christians, and Muslims'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Kenneth L. Vaux라는 윤리학 교수님인데 올해 70세인 노학자입니다. 특별히 K. Vaux 교수는 아버지 부시의 91년 이라크 침공이후 종교간 갈등으로 야기된 ‘Ethics and War (or Terrorism)’ 이슈에 있어 많은 저작을 발표하는 그 분야에 있어 손꼽히는 권위자입니다.

    혹, Jews, Christians, and Muslims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수업시간에 다루는 text에 대한 소개를 잠시 합니다.

    Kenneth L. Vaux, Ethics and the Gulf War: Religion, Rhetoric, and Righteousness (Boulder, Colo.: Westview Press, 1992)

    __________________, Ethics and the War on Terrorism (Eugene, OR: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2)

    ____________________, Jew, Chritian, Muslim: faithful unification or fateful trifurcation? (Eugene, Or.: Wipf & Stock Publishers, 2003)

    ____________________, Ameirca in God's World (2009 가을 출판예정)


    Christopher Catherwood, MAKING WAR IN THE NAME OF GOD (New York: Citadel. 2007).

    Karen Armstrong, A History of God: the 4,000 Year Quest of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New York: Knopf, 1993)

    ________________, The battle for God (New Your: Alfred A. Knopf, 2000)



    K. Vaux 교수님의 책들은 다소 중복되는 내용이 없지않으나, 한 노학자가 특정분야에 있어 오랫동안 자신의 입장을 일관성을 가지고 전개하고 있다는 측면과 특정시기에 나타났던 역사적 맥락(ex. 91년 이라크 전쟁, 보스니아 내전, 9.11 테러)에 대한 친절한 해설과 다시 그 개별적 사건을 큰 틀안(Jew, Christian, and Muslim 관계)으로 합류시키고 있다는 면에서 돋보이는 성과라 생각됩니다.

    Christopher Catherwood와 Karen Armstrong의 책들은 미국 인문학계에서 Jew, Christian, and Muslim 문제가 등장할때마다 다루어지는 교과서적인 책들입니다. 역시 세 종교간의 계보학적 이해를 기본 바탕으로 냉전이후 구유고연방의 종교전쟁, 팔레스틴 문제, 9.11 테러까지 커다란 틀안에서 엮어냅니다.

    미국신학계에서도 Jew, Christian, and Muslim 문제는 가장 시급한 화두입니다. 각 신학교마다 이슬람과 유대교를 연구하는 과정을 두고 그 분야 학자를 초빙하고 학생들도 이슬람권에서 선발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가 재학하고 있는 Chicago Theological Seminary만 보아도 다음 학기 부터 유대교분야 석좌교수로 레비나스를 전공한 랍비를 초빙하여 유대교와의 대화를 강화하고 있으며, 옆에있는 LSTC(루터란 신학교)는 몇 년전부터 이슬람권(터키) 학생들을 박사과정에 받아 종교간 이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과 유대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전무한 한국사회 속에서 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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