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묵시록 11 : 젝 케루악과 길 위의 묵시록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내가 긍정하고 싶은 미국은 언제나 헨리 소로우의 글에서 드러나는 상상과 이상의 미국이었다. 그의 사상을 묵시록이란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청교도 묵시록에 저항한 반묵시록이라 할 수도 있겠다. 콩코드라는 작은 마을에까지 드리워지는 산업문명의 그늘이 싫어 마을 어귀의 호숫가 숲속에 오두막집을 짓고 홀로 살았다. 그 숲은 악한 영들이 가득한 저주의 땅도 아니었고 개발하고 길들여 생산을 유발시킬 땅도 아니었다. 그에게 숲은 군더더기 없는 삶 그 자체를 살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런 삶은 문명에 대한 저항이었고, 저주받은 삶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사는 길이었다. 소로우는 그런 삶을 위해 한 시간만 걸으면 됐지만, 케루악은 그런 삶이 길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케루악은 20세기 중반의 소로우였다. 잭 케루악은 소로우가 살았던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로웰 출신이었다. 소로우의 추억이 담긴 매리맥 강은 로웰을 가로질러 흐른다. 소로우의 문학적 그늘 속에서 성장한 케루악은 20세기 변화된 미국의 소루우가 되고자 했다. 시대가 만들어준 조건이나 제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유를 추구하는 정신이 미국적인 삶의 자세라는 인식을 이 두 사람에게서 찾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거의 같은 시기에 소로우와 <월든>과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읽은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사상에서 낭만과 저항은 자유로운 자아라는 입장에서 동일한 의미를 가졌다. 자유롭기 위해 그들은 떠나야 했다. 소로우는 자신을 안주할 곳 없는 떠돌이(Sojourner)라 생각했고, 케루악은 그와 비슷한 보헤미안적인 주변인의 삶을 찾아 길을 나섰다. 


    케루악의 책은 출간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부수가 팔리는 베스트셀러다. 그 책은 미국의 의미, 자유의 의미, 젊음의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정직한 안내서 역할을 해왔다. 케루악이 다녔던 길을 체험하기 위해 순례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나에게 그런 여유는 없었지만 내 주변에 있는 케루악의 흔적을 모른 척 한 건 아니었다. 책 속의 주인공이 살던 뉴저지의 패터슨이란 곳은 내가 살던 곳에서 멀지 않았기에 그곳을 지나칠 때 케루악의 책을 떠올렸던 기억이 있고, 책에 나오는 시카고의 거리(South Halsted, North Clark)들을 지나다니며 심지어 졸리엣이라는 도시의 감옥 앞을 차로 지나면서 케루악의 여행을 생각한 적이 있다.


    젊은 세대의 저항과 자유를 추구한다는 케루악의 <길 위에서>란 책에서 묵시록을 읽는 것은 정당한 것일까? 핵폭탄이 만들어낸 묵시록의 시대에 대한 인식이 40년대 후반부터 기존 문학과 예술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세계관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발전했고, 미국문학에서 그 변화를 이끌어낸 사람이 케루악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케루악이 길을 나선 1947년에서 그의 책이 세상에 나온 1957년 사이 핵무기의 묵시록은 미국 사회에 허무와 저항의 세대를 탄생시켰다. 여기서 나는 <길 위에서>를 묵시록 시대의 저항문학으로 읽고자 한다.


    <지옥의 묵시록>이 개봉된 1979년,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은 <길 위에서>의 영화판권을 샀다. 두 작품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만, 좀 더 큰 상상력으로 연결되는 부분을 찾을 수는 없을까? 혹시 코폴라는 <길 위에서>를 읽고 묵시록 이후의 삶과 조건을 찾은 건 아닐까? 핵폭탄의 시대에 더 이상 안주할 곳이 없는 삶의 조건, 몸과 마음을 둘 곳 없이 떠돌아야만 하는 삶을 묵시록의 단면이고, 모든 로드 부비라는 것이 결국 그런 존재의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보진 않았을까? 50년대 미국영화에서 그런 상태를 저항이란 코드로 완성시킨 인물들이 말론 브랜도와 제임스 딘이었다. 하지만 브랜도나 딘의 상징적인 인물도 없고, 묵시록의 절박함도 담지 못하고, 비트의 리듬도 살리지 못한 채 2010년이 되어서야 개봉된 영화 <길 위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문학에서 ‘스크롤’(The Scroll)은 케루악의 <길 위에서>뿐이다. 케루악은 타자기에 용지를 갈아 끼울 필요가 없도록 텔레타이프 종이를 자르고 붙여 긴 두루마리 스크롤을 만들어 썼다. 글 쓰는 행위는 끊임없는 즉흥성이 담보되어야 했기 때문에 생각을 멈추고 종이를 갈아끼우고 여백을 맞추는 것은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흘러야 하는 글의 리듬을 깨는 행동이었다. 마치 자신에게 들려진 음성을 기록하듯이, 색소폰을 부는 손가락의 움직임처럼 언더우드 타자기를 처내려갔다. 케루악은 글을 쓴 게 아니라 타자를 친 것이라는 Truman Capote의 말은, 색소폰고수들이 그들의 음악을 단순히 손가락을 움직여 만들어냈다는 표현을 참고한다면 틀린 것은 아니다. ‘비트’의 의미에 관해선 언제나 몇 가지 해석이 있었지만 내 생각엔 모두 맞는 말이다. 몸이 피곤해 녹초가 된 상태, 강렬한 리듬으로 표현된 시간의 순간, 그리고 케루악 자신이 선호했던 하늘의 복이란 뜻까지 모두 비트세대의 문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의미들이다. 하지만 케루악을 묵시록이란 관점에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건 시간의 리듬으로서의 비트다.


    그가 원고로 남긴 것은 페이지의 구분이나 단락 사이의 여백도 없는 동그랗게 말린 35미터 길이의 스크롤이다. 그 책이 완성되기 까지 여러 해가 걸렸음에도, 케루악은 자신이 수정도 없이 3주 만에 완성한 것이란 인상을 남겼다. 한국에선 잔혹한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1년 4월이었다. 그 결과물은 고대 경전과 예언을 연상케 하는 두루마리 문서였다. 그 문서에는 20세기 핵폭탄 묵시록의 시대를 살던 미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계시된 삶의 지침서가 있었다.


    <케루악은 왜 길을 떠났을까? 책의 주인공은 길을 떠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모든 게 죽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말했다. 모든 게 죽어버린 것 같은 세상을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케루악의 책엔 ‘미쳤다(Mad)’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선호하는 사람을 “미친 듯이 살고 미친 듯이 말하고, 미친 듯이 구원받으려” 하는 사람이라 말했다. 여기서 케루악은 낭만적인 여행가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 중산층의 이념에 저항해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 청년.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자아를 찾아 길을 떠난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그보다 더 급박하고 절박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 절박함을 실존적이기 보다는 종말론적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책에서 자신의 역인 주인공의 이름에서부터 드러난다. 샐 파라다이스(Salvatore Paradise)는 ‘구원자’와 ‘천국’이란 뜻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 비트세대의 주역들의 삶은 전위적이고 보헤미안적이었지만 케루악의 기본적인 성향은 술과 마약으로도 감출 수 없었던 보수적인 가톨릭 신앙이었다. 떠오르는 스타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뉴욕에서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지 않았다. 비트세대의 다른 동료들처럼 반전, 히피운동의 정신적 리더가 되지도 않았고 좌파정치에도 관심이 없었다. 케루악에게 미국의 세상은 몰락하고 있었고, 그가 길을 나서야 했던 이유는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케루악에게 몰락의 언어를 제공해준 건 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18년 <서구의 몰락>이란 책으로 서양의 역사해석에 큰 도전을 준 오스발드 스팽글러였다. 한 문명이 기술적으로 완성될 때 창의성과 생명력을 잃고 정신적 위기를 맞게 되고 몰락으로 끝난다는 스팽글러의 역사관은 케루악과 그의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역사관은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끝나는 종말의 묵시록이 아니었다. 문명은 몰락과 문화의 탄생을 반복하는 게 역사였다. 스팽글러의 서구문명 몰락의 진단은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살상 가운데 등장한 서구문화의 의기의식을 대변한 것이었다. 객관적인 근거보다는 니체와 같은 철학자들로부터 받은 감동을 역사로 풀어냈고 서구의 몰락을 논증해내기 위해 다른 역사들은 조역으로 동원한 저술이었지만, 당시 많은 이들이 공유했던 위기의식을 역사의 철학과 생명의 리듬으로 설명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케루악은 ‘비트’라는 단어도 그 책에서 착안했고, 몰락하는 미국문명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의지도 스팽글러에게서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케루악이 길을 나서야 했던 핵무기의 냉전시대는 그에 대한 공포심으로 유지되던 시기였다. 핵전쟁의 상황에 대한 미국정부의 지침은 가만히 숨는 것이었다.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사항이었다. 냉전체제는 핵무기의 공포 앞에서 숨는 연습을 강요하면서 유지됐다. 20세기를 ‘미국의 세기’(The American Century)라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그 세기의 본질적인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 1950년대는 미국역사에서 가장 종교적인 시기였고, 그 어느 때보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았다. ‘복음주의’라는 미국의 보수 기독교가 탄생한 시기였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등장했고, 19세기말 천년주의 묵시록이 위세를 떨친 지 반 세기만에 소련과 냉전이라는 적그리스도와 최후의 전쟁의 징후들이 발견했다. 냉전의 공포와 종교의 위안은 묵시록을 향한 비전으로 이어였다. 1950년대는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전시경제 효과로 경제적으로는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다. 핵폭탄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포의 세상을 사는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소비문화와 인간을 소비자로 이해하는 소비자주의(Consumerism)도 이 시기에 미국의 이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미국의 청교도들에게 마지막 시대를 사는 덕목은 절제와 절약이었지만, 냉전이란 세속의 묵시록은 공포를 사는 대가로 과시와 과욕의 소비를 보상으로 제공했다. 케루악과 비트세대는 핵폭탄이 선언한 묵시록의 질서를 거부하고 길을 나선 것이다.


    케루악에게 ‘길’은 공간보다 시간적인 개념이었고, 특히 묵시록의 시간에 대한 저항이자 도피의 도구였다. 그가 길을 통해 찾은 시간은 주어지고 정해진 시간의 리듬과 질서를 깨는 즉흥적인 시간이었다. 서구문화의 시간은 종말이라는 끝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었다. 그 종말의 시간은 묵시록이란 드라마로 전해져 왔고, 케루악의 시대에 그 드라마는 핵폭탄이라는 한 순간에 역사와 시간을 끝낼 수 있는 심판의 무기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종말의 시계는 끝을 향해 움직이기 있었지만, 케루악은 그 시간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명역사의 몰락 이후에 또 다른 생명의 리듬을 소유한 정신적 가치가 등장한다고 믿었다. 그가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의 길을 나선 이유는 다른 시간을 살기 위해서였다. 몰락의 시간이 아니라 즉흥적 순간의 시간, 비트의 시간을 살기 위함이었다. 그 시간은 그에게 ‘나의 시간’이었고 언제나 지금의 시간이었다. 역사의 시간에 갇힌 삶이 아니라 원시적 생명의 리듬을 잃지 않는 삶이었다. 케루악에게 길의 끝이었던 멕시코에 도착했을 때, 샐의 친구 딘은 원주민 소녀에게 손목시계를 건네주고 수정구슬 하나를 받아 챙기는 장면이 나온다. 계산된 시간을 포기하고 자연의 시간을 찾는 모습이었다. 케루악에게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시간은 에덴동산의 시간이었다. 청교도들이 그랬듯이 에덴을 회복하기 위해선 광야의 길로 나서야 했다.


    책에서 길의 끝은 멕시코에 있었다. 멕시코에서 남미어로 ‘내일’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샐은 천국을 연상했다. 천국은 내일에 있었다. 천국으로의 구원자 샐 파라다이스는 길 위에서 천국을 찾았다. 마침내 여행길의 끝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샐은 그곳을 ‘성경적’인 곳이라 했다. 성경적인 곳의 원형은 에덴이었고 파라다이스였다. 왜 멕시코시티를 그렇게 이해했을까? 그곳에서 문명의 역사, ‘서구역사의 사막’에 대한 대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케루악은 멕시코에서 몰락의 역사를 구할 원시의 역사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요즘 같았으면 오리엔탈리즘이라 욕을 먹었겠지만 그의 의도는 미국의 묵시록에 대해 저항이었다. 서구역사의 끝인 묵시록의 시간이 아닌 영원한 시간, 그 내일의 천국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길을 떠났고, 멕시코시티에 남아 있는 고대 남미의 흔적에서 길의 끝, 즉 묵시록의 종말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끝이 없는’ 곳을 찾은 것이다. 미국의 묵시록의 시간과 멕시코의 영원의 시간의 대조시키고, 멕시코의 문화에서 영원한 내일의 시간의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서양인의 환상일지 모르지만 케루악에겐 묵시록의 대안으로 필요한 환상이었다.


    케루악의 글쓰기는 묵시록의 시간을 역행하는 행위였다. 그가 추구했던 즉흥적인 리듬의 산문은 묵상이나 성찰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반묵시록의 퍼포먼스였다. 재즈의 즉흥연주(Improvisation)는 음악의 시간을 멈추고 기다리게 하는 행위였다. 종말로 흐르는 시간에서 생명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선 그 시간을 멈춰야 했다. 시간을 멈추게 하는 길은 시간의 순간을 즉흥적으로 사는 것이었다. 시간의 즉흥성을 자연의 리듬에서 찾았던 케루악은 멕시코에서 그 리듬의 비트를 찾았다. 그리고 케루악이 불교에 심취하게 된 이유 역시도 묵시록의 시간을 깨는 또 다른 가능성을 불교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미래와 종말을 지향하는 시간에 대한 환상을 깰 수 있는 열반과 깨달음의 순환적 시간을 불교에서 발견했다. 이런 시간의 이해를 실천하는 삶은 주류의 규범에 저항하는 삶이었다. 케루악은 멕시코의 원주민들에게서 ‘펠라인’(Fellaheen)의 삶을 보았다 (펠라인이란 단어는 원래 스팽글러의 용어인데, 케루악이 문명에서 소외된 주변인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했다). 몰락하는 문명의 역사적인 시간과는 관계없는 무목적이고 토속적인 삶이 그것이었다. 역사의 중압감이나 미래의 약속에 구속됨이 없는 생명의 리듬과 이 순간의 비트에 충실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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