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묵시록 10 : 1950년대 핵폭탄 시대의 묵시록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20세기의 가장 큰 묵시록 사건은 히로시마의 핵폭탄이었다. 서양에선 오랜 시간 신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꿈꾸어 왔지만, 그 능력이 세상을 끝낼 수 있는 힘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히로시마의 핵폭탄 이후 전개된 역사는 세상이 곧 파괴된다는 묵시록의 드라마였다. 냉전이라고도 불렸던 이 드라마는 세상의 종말을 전제로 한,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 끝을 공포 속에서 기다려야만 하는 오랜 전쟁이었다. 지금은 희미해진 기억일 수 있으나, 80년대 후반 냉전체제가 와해될 때까지의 역사는 핵폭탄의 묵시록과 씨름하는 시간이었다. 일상의 삶에서 학문과 예술까지 그 묵시록의 그림자는 길고도 뚜렷했다. 미국은 당연히 그 드라마의 주역이었다. 서구역사에서 세상의 끝은 한때 공포의 전쟁과 지옥의 불꽃으로 형상화 되었지만, 핵폭탄은 그 드라마의 끝이 인간이 만든 과학에 있음을 예고했다. 1945년 이후 1950년대 후반까지 미국에서 핵폭탄의 묵시록 시대의 본질을 또 그 시대를 견디고 살아나가는 방식을 예술로 표현한 세 사람이 있다. 비밥(Bebop)재즈의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추상표현주의의 잭슨 폴락(Jackson Pollack), 그리고 비트세대 문학의 잭 케루악(Jack Kerouac)이었다. 


    그들의 작품세계에서 묵시록을 읽는 건 이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파커와 폴락과 케루악이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가장 창의적인 예술작업을 했고 그들의 장르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뤄냈다는 사실에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이들이 공유했던 공통적인 가치는 아마도 지금(Now)이라는 순간과 즉흥성이라는 자세의 중요함일 것이다. 시간이 미래에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쌓여있는 게 아니고 다만 지금으로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직관적 판단을 그들의 작품에서 읽을 수 있다. 비트세대의 ‘비트’(Beat)는 여기서 그 순간의 시간이었고, 폴락의 드립페인팅의 드립(Drip)은 붓이 움직이는 시간의 흐름을 부정했다. 폴락과 케루악은 그런 시간과 종말의 동기의식을 재즈에서 찾았다. 특히 케루악과 비트세대의 작가들에게 비밥은 그들을 위한 음악이었다. <길 위에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선 그 책에서 재즈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1947년 뉴욕에서 버스로 길을 떠나 도착한 곳은 당시 재즈의 블루스로 유명했던 시카고였다. 케루악은 서부로 출발하기 전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들은 비밥 재즈의 ‘빛의 소리’는 그의 여정을 위한 축도와도 같았다. 케루악은 찰리 파커에 대한 시를 썼을 정도로 그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자신의 글쓰기 이론을 재즈와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의 글쓰기는 비밥의 즉흥적 창의성을 모방한 것이다. 비밥의 독주가들이 누린 시간과 호흡의 자유를 글에서 표현하고자 했고, 색소폰을 불듯이 이미지를 글로 묘사하기 원했다. 케루악은 또 자신의 글이 수정하지 않고, 쉬지도 않고 써내려간 즉흥적인 것이라는 인상을 남기려 했다. 따라서 케루악 책의 이런 부분을 망각하면 남는 건 피상적이고 밋밋한 글읽기뿐이다. 코폴라 감독이 20년 넘게 그 책을 영화로 제작하려 했지만 실패했던 이유는 케루악의 글의 리듬감을 영상으로 담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사실은 실제 영화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폴락 역시도 밤낮으로 재즈를 들을 만큼 심취해 있었다. 그 시대의 재즈음악을 자신의 미술처럼 예외적이고 창의적인 예술이라 생각했다. 잭슨 폴락이 물감을 캔버스에 떨어트려 남긴 점들과 불규칙적인 선은 즉흥적인 재즈의 선율이었다. 그 선율의 시간은 이어지지 않는 시간, 지금밖에 기약할 수 없는 시간 이었다. 폴락은 자신의 작품을 핵폭탄 시대의 미술로 이해했었고, 그 이해는 음악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말까지 남겼다. 


잭슨 폴락 (1912~1956)


    폴락은 케루악이 길을 나섰던 1947년 드립페인팅의 실험을 시작했고, 케루악의 책은 폴락이 사망한 다음 해였던 1957년에 출간됐다. 1947년이라는 해가 우연일 수도 있지만, 냉전이라는 묵시록의 드라마가 시작하던 시기였고, 그들의 새로운 실험은 그 묵시록에 적응하고 또 저항하려는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에서 우연이 아닌 필연의 가능성을 읽게 만든다. 1947년은 또 시카고의 과학자들이 Doomsday Clock(지구종말시계)라는 걸 만들어 핵폭탄의 위기로 세상이 종말에 얼마나 가까이 와있는지를 측정하기 시작한 해였다. 2016년 12월 말, 그 시계는 종말 3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종말시계는 냉전시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묵시록의 시간을 살고 있음을 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왔다. 폴락은 1950년 한 인터뷰에서 그 시대의 화가가 과거의 방식으로 핵폭탄의 시대를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기법을 필요로 한다는 말로 자신의 드립페인팅(Drip Painting)의 방식을 옹호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은 핵폭탄의 시대를 어떻게 드러냈는지 파악하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볼 근거가 없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핵폭탄 투하로 잿더미가 된 히로시마의 도심을 공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폴락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은 착시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렇게 보인다. 그의 드립페인팅에서 무엇을 보았다고 말해야 할까. 그의 작품에서 갈기갈기 찢겨져 어떤 분별력도 허락하지 않는 황폐한 공간을 읽을 수 있지만, 거기서 서예의 선율을 읽는 사람도 있다. 폴락이 1947년에 완성한 드립페인팅의 초기 작품의 제목은 “Full Fathom Five(다섯 길 바닷속)”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등장하는 대사의 일부다. 풍랑으로 좌초한 배에서 익사한 아버지가 다섯 길 다닷속에 누워있고, 그 뼈는 산호로 변하고, 눈은 진주가 되어버린 처참한 광경을 묘사하는 대사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유토피아와 종말론에 대한 상상력이 뚜렷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신대륙 발견이 제공한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과 17세기 유럽의 종교와 정치가 영국에서 거대한 묵시록의 서사로 발전했던 역사가 그 배경에 있었다. 서양에 근대라는 시대를 열게 해준 이념은 유토피아와 묵시록이라는 뿌리가 같은 상상력이었다. 폴락이 그의 작품에 그런 제목을 붙인 이유가 건 <템페스트>의 묵시록 때문인지 아니면 작품 속에 바닷속 심연의 묵시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해석의 여지만 남길 뿐 명확하지는 않다.



(Full Fathom Five, 1947)


    폴락은 기존 회화의 캔버스보다 훨씬 큰 캔버스를 작업실 바닥에 펼쳐놓고 그 위에서 물감을 떨어트렸다. 눈높이의 이젤에 걸쳐진 캔버스에 붓을 든 손을 움직여 그린 그림과는 대상과의 관계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눈높이에서 손을 내밀어 맺는 관계가 개인적인 친밀감을 나타낸다면,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면서 맺는 관계는 전체적이고 지배적인 관계를 암시한다. 넓은 캔버스에 물감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폴락 자신도 그림의 일부가 되어 물감이 묻은 발자국을 남기는 일도 있었다. 그의 드립페인팅에서 어떤 묵시록을 읽는다면 무리일까. 물감을 공중에서 떨어트리는 과정이 폭탄을 공중에서 투하하는 장면을 연상시키고, 완성된 작품이 폭탄처럼 투하된 물감의 방울들이 퍼지고 번져서 만들어진, 어떤 의미도 용납하지 않는 무엇이라는 사실에서 묵시록의 형상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는 상상이다. 화가가 그림 안에 있어야 했다는 사실은 캔버스가 컸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이 헤어 나올 수 없고 객관적인 시각이나 관계가 불가능한 혼돈의 상태 그리고 파괴되고 분열된 전체의 상태를 의미한다면 그런 형태를 뜻하는 용어는 사구사상에서 묵시록밖에 없다. 폴락에게 드립페인팅의 의미는 핵무기 시대 미술의 도구가 될 수 없었던 이젤과 붓의 죽음 위에 서서 그가 제공한 묵시록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폴락의 드립페인팅에서 묵시록을 읽은 사람이 있다. 당시 유명한 미술비평가 헤롤드 로즌버그(Harold Rosenberg)였다. 폴락과 같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을 ‘묵시록적인 벽지’(Apocalyptic Wallpaper)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그 후 이 표현에 주목한 사람들은 ‘묵시록’보단 ‘벽지’쪽에 더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실제 두 단어의 의미를 함께 살린다면 폴락에 대한 상당히 재미있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Number 1 - Lavender Mist, 1950)


    <벽지란 무엇인가? 19세기 벽지가 상업적으로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이후 벽지는 자체적인 존재감이 없는 소모품에 불과했다. 어떤 평론가가 누군가의 작품을 벽지에 비교한다면 그 내적인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앤디 워홀이 한때 벽지를 순수한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했지만, 팝아트의 입장에서 그런 작업을 했다는 것 자체가 벽지의 낮은 위상을 반증해 주는 것이었다. 폴락의 드립페인팅을 벽지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설명할 수 있는 의미를 찾기도 힘들고, 어디가 중심이고 무엇이 주제인지 파악하기 힘든 추상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다는 한 평론가의 비판을 폴락은 오히려 자신의 의도를 간파한 찬사라 여겼다. 중심이 없고 시작과 끝이 모호한 작품을 다른 어떤 것을 위해 준비된 배경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 로즌버그의 평가도 전문적이었지만 비슷했다. 폴락과 같은 추상표현주의 작품엔 긴장감이 없고 작가들이 만들어낸 캔버스의 세계에 만족하면서 결국은 그들의 예술성을 소멸시키는 자기부정으로 빠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로즌버그는 왜 그런 벽지가 묵시록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폴락의 작품이 분열과 파괴된 상태를 연출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하지 않았다. 실제 폴락의 묵시록은 그 작품의 벽지성과 연결되어 있다. 벽지의 그림은 한 장으로 끝나지 않고, 그 중심이 한 가운데 위치해 있지도 않다. 벽지는 한 장씩 연결되어 공간의 전체, 그 세상을 다 채워야 제 역할을 하게 된다. 폴락의 벽지엔 시작도 끝도 구분할 수 없는, 분열되고 파괴된 세상이 존재한다. 한때 폴락은 한쪽 벽에 자신의 작품을 두고 대형 거울로 반사시켜 그림으로 공간 전체를 채우는 실험을 했었다. 자신이 의도했던 핵폭탄 시대의 미술이 그의 드립페인팅이었고, 그 기법을 통해 빠져나올 수 없고 회피할 수 없는 세상의 전체적인 파괴와 몰락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아닐까. 그렇다면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한 게 아니라 묵시록의 벽지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라는 요청이었다. 그의 드립페인팅이 삼차원적인 깊이를 추구하지 않았던 이유는 묵시록의 붕괴된 공간은 세상과 사물의 삼차원적인 특징을 상실한 곳이기 때문이다. 로즌버그는 그의 명성에 어울리는 직감적 통찰력으로 그런 그림을 묵시록의 벽지라 부른 것이다.


    핵폭탄의 묵시록이 지배하던 냉전시대 초기에 치열했던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시각적 경쟁을 포함했다. 핵폭탄 실험 직후 하늘까지 치솟아 오르는 죽음의 버섯구름을 찍은 사진은 즉각 공개되어 환상과 공포의 분위기를 경쟁하듯 키워나갔다. 폭탄은 히로시마에서 이미 터졌고, 묵시록은 더 이상 미래형 종말론이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핵폭탄 실험을 기록한 사진들은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묵시록의 드라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고 있었다. 이런 묵시록의 이미지가 냉전의 도구이자 무기였다면, 폴락의 미술작품도 그런 시각에서 볼 수는 없을까?

    냉전시대 미국정부가 미국의 우월성을 알리기 위해 문화예술계를 전략적으로 지원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미키마우스에서 뮤지컬까지 미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가 갈망하고 향유하는 자본의 보편적인 문화가 되기까지 CIA와 같은 기관의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비밀은 아니었지만, 그 구체적인 정황은 냉전시대의 기밀문서들이 공개되면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잭슨 폴락의 추상표현주의까지도 그런 전략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폴락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의 작품을 국제적으로 알리고 부각시키는데 미국정부의 비밀스런 작업이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 사실은 추상표현주의가 미국적인 미술로 홍보되고 부각되는 과정과 냉전체제의 치열했던 경쟁의 단면을 이해하는데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상식과 실용을 중요시 했던 미국사회에서 20세기 초반 유럽의 추상적인 예술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다. 폴락의 드립페인팅은 미국 회화의 전통이 아닌 유럽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었다. 그의 작품에 미국적이라 할 만한 특별한 내용은 없었고, 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부각되는 과정도 불분명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이념전쟁이라는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해지는 면이 있다. 추상표현주의는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맛서는 자유진영의 대안이었던 것이다. 소련의 리얼리즘이 통속적이고, 소재의 제한이 많았고, 사회주의 이념의 통제를 받는데 반해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미국의 예술은 표현의 자유와 작가의 자율성이 자본주의의 속성 안에서 절대적으로 보장받는 예술이라는 논리였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자유’였다. 미국에는 자유가 있고 소련에는 통제가 있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CIA에선 당시 극단적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였던 추상표현주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폴락의 그림이 미국의 실용적 진취성과는 거리가 먼 유럽의 데카당스와 허무주의를 대변한다는 비판이 있었어도 ‘자유’라는 깃발 아래 미국적인 것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이런 전략 아래 폴락은 미국적인 작가가 되어야 했다. 언제부턴가는 폴락에 대한 설명으로 ‘와이오밍 주 출신의 카우보이’란 수식어가 붙어 다니며 그를 시골 출신의 토속적인 미국작가로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의 작품의 크기를 미국서부의 거대하고 광활한 공간을 재현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여기서 새로운 질문을 해보자. 폴락의 작품을 CIA에서 주목한 이유를 리얼리즘과 추상주의의 이념적 대립이 아니라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냉전의 묵시록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냉전이 묵시록의 이미지 전쟁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CIA에서 본 것은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자유로운 작가정신이 아니라 버섯구름의 사진보다 더 큰 묵시록의 암시가 아닐까? 사진의 리얼리즘보다 추상화의 암시가 묵시록의 드라마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강박증을 증폭시킬 수 있고, 냉전의 승리는 그 초조함에 달려있다고 보지는 않았을까? 답은 어디서도 찾을 없다. 폴락의 작품을 보고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위에서 참고한 로즌버그의 글은 그의 유명한 에세이 “The American Action Painters"(1952)이다. 냉전시대 CIA와 미국 예술계의 관계에 대해선 Frances Saunders의 연구가 독보적이다 - Who Paid the Piper?: CIA and the Cultural Cold War. CIA가 비밀리에 지원한 것은 잭슨 폴락만이 아니라 Willem de Kooning과 Mark Rothko와 같은 동시대 미국작가들이 대상이었다. 폴락의 인터뷰 Jackson Pollack: Interviews, Articles, and Reviews란 책에 실려있다)

    핵폭탄의 묵시록이 지배하던 냉전시대 초기에 치열했던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시각적 경쟁을 포함했다. 핵폭탄 실험 직후 하늘까지 치솟아 오르는 죽음의 버섯구름을 찍은 사진은 즉각 공개되어 환상과 공포의 분위기를 경쟁하듯 키워나갔다. 폭탄은 히로시마에서 이미 터졌고, 묵시록은 더 이상 미래형 종말론이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핵폭탄 실험을 기록한 사진들은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묵시록의 드라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고 있었다. 이런 묵시록의 이미지가 냉전의 도구이자 무기였다면, 폴락의 미술작품도 그런 시각에서 볼 수는 없을까?

    핵폭탄의 묵시록이 지배하던 냉전시대 초기에 치열했던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시각적 경쟁을 포함했다. 핵폭탄 실험 직후 하늘까지 치솟아 오르는 죽음의 버섯구름을 찍은 사진은 즉각 공개되어 환상과 공포의 분위기를 경쟁하듯 키워나갔다. 폭탄은 히로시마에서 이미 터졌고, 묵시록은 더 이상 미래형 종말론이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핵폭탄 실험을 기록한 사진들은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묵시록의 드라마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고 있었다. 이런 묵시록의 이미지가 냉전의 도구이자 무기였다면, 폴락의 미술작품도 그런 시각에서 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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