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신학(社會神學) 탐구 2]



사회적 고통 이론의 지형(1)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총체성 : 신에서 사회로


    지난 글의 서두에서 ‘총체성’(totality)의 개념을 매개로 하여 신과 사회를 개념적으로 동일시하는 뒤르케임의 논의를 소개한 바 있다. 특히 사회가 “우리의 주관적 의지나 인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차원의 발현적 속성”, 즉 ‘외재성’을 갖고 있으며, 또한 “우리의 개별 행위를 제약하는 규범적 차원”, 즉 ‘강제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뒤르케임은 사회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과거 신이 누렸던 총체성의 지위가 이제 사회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신성한 실재는 사회라 불리는 바로 그것이라고 하는 뒤르케임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사회는 사회학의 탐구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신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사회신학’의 기본 전제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총체성에 관한 사유는 구체적 사건이나 사물들을 존재하게 만드는 궁극적 원인에 대한 관심, 또는 ‘부분의 합 이상’으로서 개별자를 포괄하는 동시에 우선하는 전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왔다. 다만, 근대 이전에는 그러한 총체성에 관한 사유가 신을 중심에 놓고 이루어졌다면, 근대 이후에는 사회나 사회적 체계를 그 중심에 놓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변화이다. 물론 앞선 글에서도 밝혔듯이, ‘사회신학’의 기획은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등장한 새로운 총체성으로서의 ‘사회’를 존재론이나 인식론의 차원에서 곧바로 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관통하는 핵심적 주제인 ‘고통’의 문제와 연관시켜 그 신학적 함의를 탐구하는 방식을 지향한다.

    신학적 사유체계 안에서 신정론은 신론이나 구원론에 선행하는 보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문제의식, 즉 “왜 죄 없는 이들이 이토록 지독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러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전능한 존재인 신이 정말로 선하고 정의로운 존재라면, 어째서 그는 이런 참혹한 고통의 발생을 허용한 것인가?” 그리고 “왜 그는 그러한 고통 속에서 구원을 부르짖는 인간의 외침에 응답하지 않는가?”라는 신의 능력과 그 성격, 더 나아가 신의 존재와 그 정당성에 관한 물음으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고통의 원인과 이유, 그 의미 등을 본격적으로 구명하는 과정에서 신정론적 문제의식은 결국 신학의 울타리를 넘어가 버리게 되는데, ‘사회정론’(sociodicy)이라 불리는 해석틀이 그러한 신정론의 세속적 판본으로 새롭게 출현했다. 사회정론이란 말 그대로 사회학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신정론이다. 브라이언 터너와 같은 사회학자는 아예 사회적 신정론을 사회문제에 관한 사회학적 탐구의 중심에 위치시킨다.


   사회적 삶에서의 고통과 죽음, 사고와 불운, 불평등과 부정의에 직면하는 모든 사회학은 필연적으로 신정론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 인간 가운데 불평등의 기원과 원인에 관해 질문을 제기하고자 시도하는 모든 사회학 안에 사회적 신정론의 문제가 현존한다.[각주:1]


   사회정론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현대의 사회적 고통 이론은 개인들이 경험하는 고통의 사례들이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매개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우발적인 개인의 성향이나 인격적 결함, 또는 불운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히려 사회적 고통 이론에서는 인간의 고통이 발생하는 원인을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들 및 사회적 구조에서부터 찾는다. 사회적 고통 이론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고통은 사회적 삶의 주변부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잘 작동하던 사회적 체계가 어쩌다 가끔 잘못 기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적 피해나 역기능의 효과도 아니다. 차라리 수많은 사회적 고통의 사례들은 사회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제시킬 수밖에 없는 사회의 외부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자기동일성 구축에 필수적인 존재조건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고통은 사회에 대하여 일종의 ‘구성적 외부’(constitutive outside)의 위상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고통의 경험을 삶의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총체적 과정 전반과 연관시켜 다루는 것이 사회적 고통 이론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따라서 사회적 고통 이론이 다루는 구체적인 쟁점들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이론적으로 사회의 구성 원리와 고통의 발생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사회 개념 그 자체를 중심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는 아도르노의 사회학은 사회를 부정적 총체성의 관점에서 다룸으로써 사회의 구성원들이 교환관계의 폭력 속에서 겪는 고통의 문제를 ‘사회의 객관적 운동 법칙’과 연관시켜 탐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에 사회신학에서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총체적으로 사회화된 사회


    뒤르케임을 좇아 사회를 총체성의 관점에서 접근한 대표적인 현대의 사회학자가 바로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이다. 아도르노는 일반적으로 철학자, 미학자, 음악이론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또는 ‘비판이론’) 1세대를 대표하는 사회학자, 정확히는 비판적 사회 이론의 주창자이기도 했다.[각주:2] 우리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학 비판자’ 아도르노에게 모든 현상은 전체적 연관을 위한 자신의 기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회는 총체성으로서 분석될 수 있는 하나의 체계로 파악되었다는 사실이다.[각주:3] 그에 따르면, 사회에 대한 비판이론의 구상은 “총체성으로서의 사회에 관한 개념과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각주:4] 아도르노는 자신의 사회 개념을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반복해서 사회의 총체적 성격을 역설한다.


    “인간의 지력, 인간의 사고에 의해, 또한 이와 동시에 사회에 의해 매개되어 있지 않은 것은 태양 아래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인간의 지력이 항상 개별적인 인간 존재에 함께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지력, 인간의 사회에 인간이라는 종(種)의 전체적인 역사가 들어 있고 더 나아가 말해도 된다면 사회 전체가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각주:5]


    “하늘과 땅 사이에, 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서 사회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사회와 겉으로 보기에 극단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것인 자연과 자연 개념도 자연지배의 필요성과 이와 결합된 사회적 필요성과 본질적으로 매개되어 있습니다. 사회에 의한 이러한 매개는, 사회학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회학적 관점들에서 다루게 하는 것을 포괄하게 됩니다.”[각주:6]


    요컨대, 사회는 그것이 없이는 사회학이 아무 것도 탐구할 수 없다는 그런 의미에서 사회학의 중심 개념이다. 사회 개념은 단순히 분류상의 개념이 아니며, 모든 하위의 사회적 형식들이 그 아래에 정렬될 수 있는 사회학의 최상위 등급도 아니다. 아도르노가 “하늘과 땅 사이에, 사회적으로 매개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주장할 때, 이는 총체성으로서의 사회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사회적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도르노는 어떤 이유에서 사회가 하나의 총체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에게 총체성으로서의 사회, 또는 사회적 총체성은 각각의 고유한 욕구를 갖는 개별자들이 형성하는 기능적 연관관계를 통해서 파악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아도르노는 사회를 개별 인간의 총합, 또는 사회의 각 부분들의 합을 기술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를 과정으로서 파악하며 기능의 연관관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도르노가 말하는 사회란 그 사회 안에서 각각의 기능을 떠맡은 모든 사람이 서로 의존되어 있는 동시에 그 각각의 기능들에 의해 모든 구성원들이 총체적으로 매개되어 이루어진 전체(das Ganze)에 다름 아니며[각주:7], 바로 이와 같이 사회를 기능적 연관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사회를 총체성으로 파악하는 출발점이 된다.


    “사회는 지난날 자유주의가 생각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총체적 기능연관으로 되었다. 말하자면 존재하는 것은 타자(Anderes)에 대해 상대적인 것이며, 즉자로서는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는 주체가 실체성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의식 때문에, 사람들은 그 실체성과 아무 구분 없이 동일시되는 ‘존재’가 틀림없이 기능연관보다 더 오래 남으리라는 단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각주:8]

  

   “사회 개념에 의해 의도된 대상 그 자체는 합리적으로 지속적이진 않다. 사회 개념에 의해 의도된 대상은 또한 보편 대 특수로서 사회 대 그 구성요소도 아니다. 그것은 역동적인 범주일 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범주이다. 그리고 여전히 꽤 추상적인 근사치인 이 처음 것에, 모든 개별자들이 그들을 형성한 그 총체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좀 더 나아간 조건을 붙여보자. 그러한 총체성에서 또한 모든 이들이 다른 모든 이들을 의존한다. 전체는 그 구성원들에 의해 충족된 기능들의 통일성을 통해서만 유지된다. 각 개인이 그 실존을 지속하기 위해선 모두 예외 없이 어떤 기능을 하나씩 떠맡아야만 하며, 실제로 그 기능을 지속하는 동안 이에 대해 감사를 표하도록 교육받는다.”[각주:9]  


    아도르노가 이렇게 사회 개념을 기능적 연관관계의 관점에서 제시하자 즉각적으로 그의 사회 개념이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평범한 주장의 반복일 뿐이라는 비난이 제기되었다.[각주:10] 이에 아도르노는 자신이 견지하는 사회적 총체성의 형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사회를 기능의 연관관계로 보는 결정적 근거로 아도르노는 ‘교환원리’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를 기능적 연관관계로 만드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이 바로 자본주의적 교환원리(Tauschprinzip) 또는 교환관계(Tauschverhältnis)이다. 쉽게 말해서, 교환원리/교환관계는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즉 서로 동일하지 않은 모든 것을 교환이 가능한 대체물로 만들면서 결국엔 동일한 것으로 관리해나가는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아도르노의 사회 개념은 단순히 사회 일반이 아니라 현대의 ‘자본주의적 교환사회’를 지시한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명확히 드러난다. 


    “사회, 조직화된 사회는 사회적으로 조직된 인간 사이의 기능적 연관관계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의 존재로서, 교환에 의해 규정되는 연관관계입니다. 사회를 원래부터 사회적으로 만드는 것은 교환관계입니다. 교환관계를 통해서 사회는 사회에 특별한 의미에서 개념적으로 기초가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실재적으로도 기초가 만들어집니다. 교환관계는 사회의 개념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잠재적으로 결합시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조금은 조심스럽게 표현한다면, 교환관계는 확실한 의미에서 자본주의적 사회들에 뒤이어 나타날 사회들의 전제조건까지도 표현합니다. 더 이상 교환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논의는 자본주의적 사회들에 뒤이어 나타날 사회들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임이 확실합니다.”[각주:11] 


    “사회적 분화의 모든 특수한 형태들 이상으로, 시장 체계에 함축된 교환원리의 추상화는 특수한 것에 대한 일반적인 것의 지배, 그것에 포획된 구성원들에 대한 사회의 지배를 재현한다. 환원의 실행계획, 노동 시간의 획일성의 실행 계획으로 제시될 수 있는 교환관계는 사회적으로 중립적인 현상이 결코 아니다. 인간을 교환가치의 대리자, 담지자로 환원시키는 그 배후에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숨겨져 있다. 때때로 수많은 정치경제학 비판의 범주들이 직면했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여전히 기본적인 사실로 남아 있다. 총체적 연관관계의 형식은, 만일 그들이 파괴되고 싶지 않다면, ‘이윤추구’가 그들의 주관적인 동기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교환법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각주:12]  


    사회적 총체성에 관한 사유는 “그 어떤 주어진 대상의 영역들 내부에 들어 있는 사회적인 모멘트들에 관한 성찰”, 즉 교환사회가 개별적 현상들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관한 성찰을 기반으로 한다. 교환원리의 철학적 전제는 동일성 원칙이다. 바꿔 말하면, 모든 교환관계는 곧 동일성 원칙을 구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교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선 교환에 참여하고 있는 서로 다른 사물들이 어떻게든 동질적이거나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적 교환관계에 동일성 원칙이 적용됨으로써, 동일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동일한 것으로, 즉 교환이 가능한 ‘상품’으로 변화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러한 동일시는 다양한 실재의 대상을 가리키는 ‘사용가치’를 억압하고, 모든 종류의 다양한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를 하나의 동일한 개념에 포섭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동일성의 교환원리를 통해서 모든 사회적 관계가 교환관계로 구성되어 있는 자본주의적 상품교환 사회는 비동일한 대상인 사용가치를 동일한 관념, 즉 가치로서의 상품의 동일성이라는 교환가치 아래로 포섭하고 있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아도르노의 말대로, “인간의 노동을 평균 노동시간이란 추상적 보편개념으로 환원시키는 교환원칙은 동일시의 원칙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다. 동일시의 원칙은 교환이라는 사회적 모델을 가지고 있으며, 또 동일시의 원칙 없이는 교환도 있을 수 없다. 교환을 통해서 비동일적 개별 존재나 업적들이 통분될 수 있고 동일해진다. 이러한 원칙이 확장되면 전 세계가 동일자로, 총체성으로 된다.”[각주:13]  

    따라서 개별 인간도 교환관계에 의해 총체적으로 관리되면서 전체로서 작동하는 사회에서 하나의 기능을―개별 인간 자신이 자신과 동일하지 않은 것과 교환되면서―떠맡게 된다는 것이 교환원리에 의해 작동되는 기능적 연관관계의 기본 형식이자 사회적 총체성의 본질적인 형식이라 할 수 있다.[각주:14] 단적으로 말해서, 자본주의적 교환원리/교환관계가 사회적 총체성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매개함으로써, 다시 말해 모든 개인을 타인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교환원리를 통해 어떤 개인이나 대상도 교환관계의 외부에 거할 수 없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총체적으로 통합된 사회로 작동한다. 


부정적 총체성에서 사회적 고통으로


    이렇게 하여 아도르노가 말하는 총체성으로서의 사회란 모든 사회적 관계가 교환법칙에 따라 매개되고 작동하는 사회를 지시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아도르노에게 후기 자본주의사회는 교환원리가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사회, 즉 교환관계가 “총체적으로 사회화된 사회”[각주:15]에 다름 아닌 것이다. 요컨대, 총체성에 위치하지 않는 사회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던 아도르노에게 총체성이란 당연히 신이 아니라 기능과 생성의 과정으로서 파악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현존하는 사회적 총체성의 본질은 교환원리를 전면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객관적 운동 법칙’에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아도르노에게 총체성이란 곧 사회의 총체성이다. 그런데 이때 다시 총체성으로서의 사회는 사회적 관계에 동일성 원칙을 폭력적으로 강제하는 교환원리/교환관계에 바탕을 둔 기능적 연관관계로 설명된다. 

   나아가 이렇게 교환원리에 의해 동일성의 폭력이 관철될 때 나타나는 결과를 아도르노는 ‘물화’(物化, Verdinglichung)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마르크스의 소외 및 물신숭배 개념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아도르노의 물화 개념에 관해선 다음 글에서 보다 상세히 살펴볼 것인데, 일단 그 개념을 통해 아도르노에게 있어 총체성이란 철저하게 부정적이고 비판적 의미에서의 사회적 총체성임이 드러나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도르노에게 물화는 역사에 의해 정립된, 하나의 사회적 산물로서, 반드시 사회적 총체성의 기초 위에서 설명되어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아도르노는 사회의 총체성이 더 이상 연대적으로 유지되지 않고 인간의 대립주의적 이해관계들에 의해서, 인간의 철저한 대립에 의해서 유지된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한다. 사회는 총체성이되 계급에 의한 적대적 사회관계가 그 중심을 관통하고 있는 모순적인 총체성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총체성 개념의 재규정은 사회 개념의 재규정을 수반한다. 그리하여 이제 사회 역시 “모순들로 충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 가능한 것이며, 합리적인 동시에 비합리적인 것, 체계인 동시에 파편화된 것, 맹목적인 자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에 의해 매개된 것”[각주:16]으로 다시 설명된다. 아도르노는 사회를 단순히 어떤 구조 내지는 제도로 실체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는 그 내부로부터 인식될 수 있는 것이자, 인식될 수 없는 것 둘 다라고 주장한다.[각주:17] 사회의 모순적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사회’를 중의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 사회가 담론의 유효한 대상으로 실체화될 수 없다면, 사회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가능할까? 실체화될 수 없는 대상인 사회를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비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관한, 아도르노의 답변은 바로 무력한 개인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통합적 사회 또는 총체화된 사회에 관한 비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18]  

    아도르노에 따르면, 고통은 어떤 집단적 규범이 이해관계들 및 개인들의 요구와 충돌한다는 사회적 사실을 표현한다. 그러한 경험들은 육체적이고 개별적이지만, 신체적인 것(the somatic)의 계기를 통해 사회에 관한 인식을 추동할 수 있다.[각주:19] 말하자면, 아도르노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행위자들로서 존재하는 인간들과 그 본질이 객관적 운동 법칙으로서만 파악되는 총체성으로서의 사회, 그 둘을 고통이라 불리는 특수한 사회적인 사실을 통해 매개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고통(Leiden)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모든 진리의 조건이다. 왜냐하면 고통이란 주체를 짓누르는 객관성이기 때문이다. 주체의 가장 주관적인 경험, 즉 주체의 표현이 객관적으로 전달된다.”[각주:20]라고 아도르노가 썼을 때, 그는 이론이 우리의 사회적 경험을 만족시키는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이론이 또한 고통에 관한 적절한 지식을 구축하도록 시도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다음에는 사회를 부정적이고 모순적인 총체성으로 파악하는 아도르노의 사회학에서 신체적 고통의 주제가 갖는 중요성을 살펴보고, 그의 고통에 관한 사유가 어떻게 현실의 모든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고통들을 ‘사회적 고통’ 또는 ‘고통의 총체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도록 사회신학의 이론적 실마리를 제공하는지 검토할 것이다. 나아가 호네트(Axel Honneth), 번스타인(J. M. Bernstein), 르노(Emmanuel Renault)와 같이 사회철학 및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고통에 관한 아도르노의 논의를 주목해온 학자들의 작업을 살펴보면서 동시대 사회적 고통 이론의 주요 쟁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 웹진 <제3시대>

  1. Bryan S. Turner, For Weber: Essays on the Sociology of Fate. London: Sage, 1996, pp.170~71. [본문으로]
  2. 본펠트는 독일 학계의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독해’(Neue Marx-Lektüre)의 맥락에서 아도르노의 사회학 비판 내지는 비판적 사회 이론의 기획을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비판이론적 계승으로 해석한다. Werner Bonefeld, Critical Theory and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On Subversion and Negative Reason, London: Bloomsbury, 2014; 한편, 아도르노의 사회학 저술 전반에 관한 체계적인 분석으로는, Matthias Benzer, The Sociology of Theodor Adorno,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을 참조할 수 있다. [본문으로]
  3. 하르트무트 로사 외, 『사회학 이론』, 최영돈 외 공역, 한울, 2016, 149쪽. [본문으로]
  4.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사회학 강의』, 세창출판사, 2014, 74쪽. 삶의 모든 영역이 자본주의적 교환원리에 의해 조건지어진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부정적 총체성으로 파악하는 관점은 마르크스주의 전통 가운데서도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에 관해서는, Martin Jay, Marxism and Totalit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5. 아도르노, 『사회학 강의』, 36~7쪽. [본문으로]
  6. 같은 책, 143~44쪽. [본문으로]
  7. 문병호, 「옮긴이 후기」, 아도르노, 『사회학 강의』, 363쪽. [본문으로]
  8.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홍승용 옮김, 한길사, 2003, 128쪽. [본문으로]
  9. Theodor W. Adorno, “Society,” trans. F. Jameson, Salmagundi, no.10-11(Fall 1969-70), pp.144~45. [본문으로]
  10. 아도르노, 『사회학 강의』, 71쪽. [본문으로]
  11. 같은 책, 71쪽. [본문으로]
  12. Adorno, “Society,” pp.148~49. [본문으로]
  13.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222쪽. [본문으로]
  14. 문병호, 「옮긴이 후기」, 363쪽. [본문으로]
  15.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413쪽. [본문으로]
  16. Adorno, “On the Logic of the Social Sciences,” in The Positivist Dispute in German Sociology, ed. T. W. Adorno et al. London: Heinemann, 1976, p.106. [본문으로]
  17. Adorno, “Society,” p.146. [본문으로]
  18. Ibid., p.153. [본문으로]
  19. “육체적 계기는 인식을 향해 고통이 없어져야 하고 상황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픔은 ‘사라지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특유의 유물론적 요인은 비판적 요소 내지는 사회적인 변혁적 실천으로 수렴된다. 불행을 제거하거나 완화하는 일은, 이론적으로 선취될 수도 없고 어떤 한계를 명할 수도 없는 일정한 정도까지, 그 불행을 느끼는 개인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이 주관적으로는 인류와 분리되고 객관적으로는 무기력한 객체의 절대적 고독 속으로 밀려나게 되는 경우에도 인류의 몫일뿐이다.”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286~87쪽. [본문으로]
  20. 같은 책, 73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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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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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신학(社會神學) 탐구 1]



사회에 관한 신학적 탐구를 시작하며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사회라는 이름의 새로운 신의 출현


    일찍이 고전 사회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에밀 뒤르케임(Émile Durkheim, 1858~1917)은 사회(社會, society)가 곧 신(神, God)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사회는 종교를 통해 개인들에게 존경심을 부여하고 그들에게 경배의 대상으로 군림하는 힘이다. 따라서 그동안 종교가 말해온 신은 단지 사회의 현실적 표현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각주:1] 요컨대, 종교는 사회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상징체계로서, 궁극적으로는 사회야말로 종교 속에서 경배의 대상이 되는 종교의 본질적 실체, 즉 신 그 자체라는 것이다. 사회를 신으로 재규정하고 있는 이런 주장에 대해 신학은 과연 어떤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전에, 뒤르케임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을까? 뒤르케임이 사회를 총체성의 실재로 진술하고 있는 대목을 직접 읽어보면 보다 명확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개념의 총체적 체계에 의해 표현되는 세계는 사회가 스스로에게 그것을 재현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오직 사회만이 우리에게 가장 일반적인 관념들을 제공해줄 수 있으며, 그 관념들에 따라서 세계는 이해되어야만 한다. 모든 개별적 주체들을 그 안에 포괄하는 오직 하나의 주체만이 그러한 대상을 포용할 수 있다. 우주는 사유된 한에서만 존재하고, 또한 우주는 사회에 의해서만 그것의 총체성(totality)이 사유될 수 있기 때문에, 우주는 사회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즉, 우주는 사회의 내적 삶의 한 요소가 된다. 따라서 사회는 다른 어떤 것도 그것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없는 총체적 유(genus) 그 자체이다. 총체성이라는 개념도 사회라는 개념의 추상적 형식일 뿐이다. 사회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전체이며, 다른 모든 부류들을 그 안에 담고 있는 최상의 부류인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인간과 동일하게 위치를 부여받고 분류되어지는 기초적인 분류법들이 근거하고 있는 궁극적인 원칙이다.[각주:2] 


    마치 체계이론가인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이 훗날 사회를 가리켜 “다른 사회적 체계들 모두를 자기 안에 포함하는 포괄적인 사회적 체계”[각주:3]라고 규정했던 것을 예고하고 있는 듯한 위의 인용 단락에서 우리는 ‘사회’라는 단어를 ‘신’으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모든 개인 주체들을 포괄하는 주체로서, 그 바깥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유(類)가 무엇이냐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묻는다면 당연히 그런 존재는 ‘하느님’이라고 답하지 않겠는가? 위치와 분류에 있어서 최상의 범주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신 외에는 그 어떠한 외부적 발생 요인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완벽한 자기 충족적 체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믿어왔던 하느님 그분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뒤르케임은 근대 이전의 세계에서 그리스도교적 신의 관념이 누려왔던 지위, 즉 모든 것을 포함하는 전체이자 다른 모든 부류들을 그 아래 포섭하고 있는 최상의 부류로서의 존재론적·인식론적 지위는 근대 이후의 세계에서 이제 사회에게로 마땅히 돌려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총체성의 성격과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존재는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사회라는 것이다. 신을 변형된 사회로서 기술하는 것은 신성의 전통적 특질, 즉 신적인 총체성을 사회에게 귀속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각주:4] 그렇기에 뒤르케임적인 의미의 사회가 담지하고 있는 ‘신성한 것’(the sacred)은 하나의 사회적 사실(social fact)이나 ‘사회적인 것’(the social)에 관한 하나의 현시(顯示, manifestation)를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사회의 신성함은 사회적 사실 및 사회적인 것의 현상을 넘어 사회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상징적·도덕적 질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기술된다.[각주:5] 인용한 단락의 말미에 덧붙인 주석에서 뒤르케임은 이렇게까지 말한다. “결국 총체성(totality), 사회(society), 그리고 신성(divinity)의 개념은 사실상 동일한 관념의 단지 다른 측면들일 뿐이다.”[각주:6] 여기서 우리는 뒤르케임이 독일 관념론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거대서사를 이해하는 궁극적 범주로 표현되어온 총체성의 개념을 매개로 하여 신과 사회를 인식론적으로나 존재적으로 완벽하게 동일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각주:7]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뒤르케임은 사회라 불리는 대상이 “우리의 주관적 의지나 인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차원의 발현적 속성”, 즉 ‘외재성’을 갖고 있으며, 또한 “우리의 개별 행위를 제약하는 규범적 차원”, 즉 ‘강제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각주:8] 물론 그는 사회가 인간의 행위와 전적으로 무관하게 존재할 수는 없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개인들의 차원에서 볼 때 사회는 그들의 외부에서, 규범적 제약을 가할 정도의 강제성과 도덕적 권위의 정당성을 지니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고유한’(sui generis) 실재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뒤르케임은 사회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뒤르케임의 사회학이 “사회적인 것의 상상계의 중요한 요소들이 ʻ신학적ʼ 기원을 갖는다는 사실을 가장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것은 “근대적 사회신학의 정점”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뒤르케임의 저작들에서 ‘사회적인 것’은 곧 ‘신적인 것’으로서 “개인의식을 초월하여 창발하는 집합 의식, 집합 열광, 연대, 도덕 등의 ʻ사회적인 것ʼ은 그 자체로 섭리에 의해 조절되는 사회학의 보이지 않는 신”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9]


   이렇듯 과거 신이 누렸던 총체성의 지위가 이제 사회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신성한 실재는 사회라 불리는 바로 그것이라고 하는 뒤르케임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사회는 사회학의 탐구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신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사회가 곧 오늘날 가장 생생하게 현존하는 신성의 구현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학이 하느님의 존재를 연구하던 그 방식 그대로 사회를 연구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당연히 사회학이 사회를 말하는 방식을 신학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을 수도 없다. 가능하다면 사회학과 전통적인 신학 모두를 넘어, 전혀 새로운 신학의 방법과 논리를 통해 신으로서의 사회, 또는 사회로서의 신이라는 이 문제적 대상을 탐구해야 할 것인데, ‘사회신학’(socio-theology or theology of society)[각주:10]이란 비교적 생소한 타이틀을 내건 이 연재는 바로 그러한 사유의 모험을 시작해보려는 기획이다.


    하지만 사회가 도대체 무엇이고,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신성이나 신적 본질은 또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방향으로 섣불리 나아갈 생각은 없다. 사회와 신을 개념적으로 세세하게 비교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너무나 방대한 과제일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고전적인 신존재 논증과 유사한 형이상학적 사변의 길로 빠져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신학과 사회학의 대화를 모색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굳이 형이상학적 사변의 길로 가지 않더라도, 신학이 사회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우리 앞에 이미 펼쳐져 있다. 다시 말해, 신학이 뒤르케임의 길을 좇아서, 곧바로 신의 자리에 사회를 대신 갖다 놓지 않더라도, 사회라는 것이 신학적 탐구의 대상임을 확인시켜주는 다른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어떤 길인가? 바로 ‘고통’이라는 이름의 길이다. ‘고통’의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거기에서 신의 존재를 사유하고자 할 때, 신학은 사회라는 대상과 필연적으로 재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적 고통 : 고통의 사회적 (재)생산 이론


    고통의 문제는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정초하고 끊임없이 활성화해온 핵심적인 모티프였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으로 육화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시작된 종교이다. 죄와 사망의 굴레 속에서 고통당하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그 모든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그리스도교 신학 안에서 인간의 고통과 신적인 진리 사이의 연관성을 강화했고, 나아가 인간 육체의 생리학적이고 종교적인 잠재력에 대한 관심을 증진시켜왔다. 고통에 관한 성서의 대표적 텍스트인 『욥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이미 2세기부터 그리스도교는 고통 속에 있는 육체로서 인간의 자아를 이해하는 관점을 발전시켜 왔는데, 가령 어떻게 신자들이 로마제국으로부터의 대대적인 박해 속에서도 고통을 견뎌내고, 그 고통을 신앙 공동체 안에서 치유할 뿐만 아니라, 고통을 통해 궁극적으로 종말론적 차원의 구원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를 변증하고자 했던 것이다.[각주:11] 그런 의미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실존적인 물음”은 철학자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가 최초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제시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유대-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원초적 수준의 ‘신정론적 질문’으로 이해될 수 있다.[각주:12]


    문제는 고통과 진리의 강한 결속을 통해 획득되던 고통에 관한 실존적 의미를 그리스도교적 경험과 실천이 더 이상 안정적으로 지켜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고통과 진리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릴 만큼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신앙적 의미의 세계 안으로 손쉽게 통합시킬 수조차 없는 그런 재난, 비참, 불행, 폭력 등을 일상적·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하느님의 존재의 정당성은 물론이고 그에 관한 진술 자체의 유효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각주:13] 인간사에서 개별적으로 반복되어온 불행과 비참이 구조적·집단적 수준으로 가해지는 재난과 고통으로 발전했을 때 전통적인 신정론의 논리, 즉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이 계획하신 구원사의 거대한 목적 속에서 이루어진 그의 섭리의 결과물이라는 주장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을 계속 지키고자 한다면, 고통에 대한 책임을 결국 하느님에게 귀속시켜야만 하는데, 이럴 경우 주권자로서의 하느님 신앙은 유지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하느님을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으로 찬양하기는 어려워진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사회적 재난이나 집단적 불행을 당사자들이 저지른(물론 그것이 무엇인지는 하느님만이 알 수 있는) 어떤 숨겨진 범죄에 대한 신적인 심판 내지는 모종의 도덕적 교훈을 주기 위한 훈련의 일환이라는 주장이 끈질기게 제기되고 있지만, 그런 주장들은 반박의 가치조차 없는 비도덕적이고 비합리적인 종교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대다수의 결정적인 고통들은 사회적인 폭력, 즉 국가와 시장으로 대표되는 정치적·경제적·제도적 권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강한 구속과 압력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러한 권력들이 대응하는 방식에서 또 다른 2차적 고통이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인간의 고통은 특별히 불운한 개인들에게 벌어진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빚어지는 ‘사회적’ 고통 및 구조적 폭력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통이 체험되고 표현되는 방식을 구축하고 조절하는 모든 맥락에 구조적 조건과 문화적 관행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 따라서 고통이 명백히 사회적 (재)생산의 산물로 이해되는 현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고통’(social suffering) 이론이다. 그동안 고통당하는 인간의 현실을 통해 삶의 실존적 의미와 신적 진리의 문제를 사유해온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와 같은 고통의 사회적 (재)생산의 문제와 마주함으로써 ‘사회’라는 대상에 관한 사회신학적 탐구를 더 이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신학이 그러한 상황에서도 아무 설득력 없는 전통적인 신정론의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을 때, 사회학과 사회철학, 인류학과 심리학 등의 분과에서는 고통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동시에 비가시화되며, 그러한 고통이 행위자들의 자기 정체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아가 사회적 고통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설명하고 사회의 변혁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갖는 실천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심도있게 논의해 왔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고통에 관한 사회과학적 접근이 신정론적 문제의식을 재발굴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회과학자들이 전통적인 의미의 신학적 신정론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은 아닌데,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전통적인 신정론과 구별하여 ‘세속적 신정론’(secular theodicy) 또는 ‘사회정론’(sociodicy)이라 명명하며, 이를 사회비판을 위한 윤리적·정치적 모티프로 활용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전통적 신정론이 전능하고 자비로운 신에 대한 신앙과 현실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악의 문제를 최대한 논리적으로 조화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면, 세속적·사회학적 신정론은 사회적 삶에 관한 규범적 기대와 현실 사회에서의 구조적 부정의나 소외, 착취, 불평등, 빈곤, 배제, 차별, 무시 등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고통을 종합하려는 목표를 드러내왔다. 그러나 사회적 고통의 원인과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에 따라서 사회정론의 문제의식을 활용하는 양상도 차이를 보이기 마련인데, 이는 전통적인 신정론의 붕괴 이후 현대신학에서 신정론이 여러 다양한 형태로 수정 제시되는 것과도 흥미로운 평행을 이룬다.[각주:14] 


    하여 다음 호의 연재에서는 사회신학의 본격적인 출발점으로서 사회적 고통의 문제와 사회정론의 문제의식을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서구 학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적 고통 이론의 전반적인 지형과 사회정론적 문제의식의 다양한 활용들을 2000년대 이후 민중신학의 사회적 고통 연구와 비교하면서 서로 간의 이론적 접점 및 쟁점이 무엇인지를 짚어보게 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Émil Durkheim, Suicide: A Study in Sociology, translated by John A. Spaulding and George Simpson,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2002, p.277. [본문으로]
  2. Émil Durkheim, The Elementary Forms of the Religious Life, translated by Karen E. Fields, New York: The Free Press, 1995, pp.442~443. [본문으로]
  3. 니클라스 루만, 『사회의 사회』, 장춘익 옮김, 새물결, 2014, 101~102쪽. [본문으로]
  4. David Frisby And Derek Sayer, Society(Key ideas), New York: Tavistock Publications, 1986, p.35. [본문으로]
  5. Chris Shilling and Philip A. Mellor, The Sociological Ambition: Elementary Forms of Social and Moral Life, London: SAGE Publications, 2001, p.41. [본문으로]
  6. Durkheim, op.cit., p.443. n.18. [본문으로]
  7. 이 세 가지의 개념적 범주가 뒤르케임의 철학에서 서로 어떻게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Donald A. Nielsen, Three Faces of God: Society, Religion, and the Categories of Totality in the Philosophy of Émile Durkheim, New York: SUNY Press, 1998을 참조. [본문으로]
  8. 김명희, 「마르크스와 뒤르케임의 사회과학방법론 연구」, 성공회대 박사학위 논문, 2014, 241~242쪽 참조. [본문으로]
  9. 김홍중, 「사회로 변신한 신과 행위자의 가면을 쓴 메시아의 전투」, 『한국사회학』 제47집 제5호(2013년), 21쪽. 물론 필자는 뒤르케임의 ‘사회신학’과 아렌트의 메시아주의적인 ‘행위신학’을 사회 대 인간, 또는 구조 대 행위의 이분법적 틀 안에서 대립시키는 저자의 논제에 동의하진 않는다. 뒤르케임의 사회신학에서 ‘사회’ 개념이 인간 및 인간의 행위 없이도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초월적 ‘신’으로 그려지고 있다고 보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뒤르케임의 사회는 인간 행위주체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결과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회-신’론은 관계론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르케임에게 사회가 인간 행위주체를 제약하고 조건짓는 신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는 지적에는 확실히 동의한다. 마르크스주의 및 비판적 실재론 전통에서 확립된 관계론적 사회 이해에 관해서는 추후에 사회 구조의 문제를 다룰 때 본격적으로 소개될 것이다. [본문으로]
  10. 사회 및 사회성에 관한 신학적 탐구의 사례로는 다음의 연구들을 참조할 수 있다. Andrew Wernick, “From Comte to Baudrillard Socio-Theology After the End of the Social,” Theory, Culture & Society, Vol.17(6), 2000, pp.55~75;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Oxford: Blackwell, 2006; Rebekka A. Klein, Sociality as the Human Condition: Anthropology in Economic, Philosoph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 translated by Martina Sitling, Boston: Brill, 2011. [본문으로]
  11. 고통의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수용의 역사적 맥락과 현대적 함의에 관해서는 Chris Shilling and Philip A. Mellor, “Saved from pain or saved through pain? Modernity, instrumentalization and the religious use of pain as a body technique,” European Journal of Social Theory, Vol.13(4), 2000, pp.527~530 참조. [본문으로]
  12. 조순, 「신정론에 관한 소고」, 『신학연구』 제47집(2005), 211쪽. [본문으로]
  13. Slavoj Žižek and Boris Gunjevic, God in Pain: Inversions of Apocalypse, New York: Seven Stories Press, 2012, pp.155~156 참조. [본문으로]
  14. 오늘날 가장 급진화된 형태의 신정론과 사회정론을 비교하는 작업은 이후에 신학에서의 ‘신의 죽음’ 논의와 사회학에서의 ‘사회의 종언’ 논의를 함께 살펴볼 때 보다 자세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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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포럼 취지

14인의 비평가와 신학자들이 지은 『사회적 영성』은 우리 사회 감성의 흐름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 책입니다. 이제 좀 더 많은 독자들과 책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 실천적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하여 대화마당을 마련하였습니다. 지난 12월의 1차 대화마당에서는 주로 신학적 · 종교적 차원에서 ‘영성’의 ‘사회적’ 전환에 관해 토론했다면, 이번 제2차 대화마당에서는 반대로 사회적인 것 안으로 영적인 것이 도입될 필요성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타자의 고통을 기억하고 신체와 언어에서 배제되어 있는 진리들에 응답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주체를 불러내기 위한 새로운 정치적 기획으로서 ‘사회적 영성’이라는 문제설정이 얼마나 타당성이 있을지를 함께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자본의 욕망을 넘어서 영성의 사회학, 영성의 정치학을 고민하는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날짜: 1월 26일(월), 저녁 7시30분

장소: 한백교회 안병무홀 (서대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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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럼취지

    본 연구소는 최근 몇 년 동안 '사회적 영성'(social spirituality)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방식의 연구활동을 진행해왔습니다. 지난 해에는 이 주제를 가지고 인문-신학 아카데미에서 강좌("무통ㆍ무감ㆍ무지의 세계를 넘어: 사회적 영성으로 보는 우리 시대")를 열었던 바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 단행본 비평집을 출간하고자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적 영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만족할만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진 않습니다. 그냥 '영성'이라고 해도 다양한 함의가 존재하는데, 거기에 '사회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니 더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 이번 제179차 월례포럼에서는 '사회적 영성'이 왜 그토록 정의내리가 어려운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물론 사회적 영성을 자기-완결적인 하나의 이론이나 개념으로서 매끄럽게 정의 내리는 시도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발표자는 '사회적 영성'이 영성적인 것, 윤리적인 것, 사회적인 것이라고 하는 상이한 개념틀을 새로운 구도 안에서 접합시킴으로써 각각의 것들에 대한 지배적인 가정, 생각, 관점, 또는 상황을 전면적으로 재배치하고, 쟁점이나 문제를 재규정하려는 비판적 문제설정에 가깝다는 것을 말해보려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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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게 하는 것과 보지 못하게 하는 것[각주:1]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35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사람(나면서부터 눈 멀었다가 예수로부터 고침을 받은 사람)을 내쫓았다는 말을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만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그는 대답하였다. “주여, 그분이 어느 분입니까? 내가 그분을 믿겠습니다.” 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38 그는 “주님,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하고서, 예수께 엎드려서 경배하였다. 39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볼 수 있게 하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눈이 멀게(blind)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와 함께 있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우리도 눈이 먼 사람이란 말이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4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눈이 먼 사람들이라면, 도리어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지금 본다고 말하니, 너희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 - 요한복음 9장 35-41절

[7:53 그리고 그들은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8:1 예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많은 백성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예수께서 앉아서 그들을 가르치실 때에, 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워 놓고, 4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레 20:10; 신 22:22-24)에, 이런 여자들을 돌로 쳐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이었다. 7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8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는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9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이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떠나가고, 마침내 예수만 남았다. 그 여자는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11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 요한복음 7장 53-8장 11절



1. 보지 못하던 사람은 볼 수 있게, 보고 있던 사람은 보지 못하게

요한복음 9장은 예수님 당대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다”는 22절의 상당히 독특한 진술로 인해, 요한복음 연구학계에서는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어온 본문입니다. 예컨대 22절에 등장하는 ‘회당으로부터 축출하다’ 즉 ‘출교하다’로 번역되는 단어인 ‘아포쉬나고고스’(aposynagogos) 때문에 그런 것인데요. 이 단어가 예수님 당대의 상황 보다는 1세기 후반의 요한공동체가 처해 있었던 유대교 회당과의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마틴(J. L. Martyn)의 획기적인 주장 이후 요한공동체의 역사와 신학에 관한 수많은 가설들이 제기되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예수님 사후부터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가 로마에 완전히 종속되는 70년 전쟁 이전까지의 역사적 상황이 반영된 사도행전이나 바울서신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회당에서 공식적으로 쫓겨났다는 진술은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85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유대교 회당의 공공 기도문인 쉐모네 에스레(Shemone Esre)의 비르카트 하-미님(Birkath ha-Minim)에 나타난 ‘나사렛파와 이단들’에 대한 저주가 발견이 되었는데, 마틴은 요한복음 9장 22절(그리고 12:42, 16:2)의 아포쉬나고고스가 이 기도를 통해 일어난 회당으로부터의 그리스도인 축출 사건을 가리키는 전문용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이 전하고 있듯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예수님 당대에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보도는 요한공동체가 자신들의 현재적 경험을 예수님 당시의 과거로 투영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겁니다. 마틴은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이 요한공동체와 역사적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결합된 두 차원의 드라마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러한 저간의 사정으로 인해, 학자들의 관심은 정확히 9장 34절(“그리고 그들은 그를 (회당) 바깥으로 내쫓았다”)까지 일어나고 있는 상황 즉, 소경이었다가 눈을 뜬 사람과 그 부모들을 향한 바리새인들의 심문 및 추방 사건의 역사적 진실 규명에만 쏠려 있었습니다. 정작 눈 뜨게 된 남자가 바리새인들로부터 회당에서 쫓겨난 후에, 예수님과 만나서 나누는 대화나 그 대화 중에 바리새인들이 끼어들어 예수와 나누는 대화가 갖는 신학적 의미를 성찰하는 데는 소홀하게 된 것이지요. 오늘 살펴볼 본문에 첫 번째에 해당하는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고 계신 말씀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당신은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는데, 그 심판은 다름 아닌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보지 못하게―원문에 따르면, ‘눈이 멀어 버리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발끈한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이 눈이 먼 사람이라는 것이냐고 따지자, 예수는 당신네들이 스스로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면 그나마 다행히 죄인이 아니지만, 발끈하는 태도로 보아 스스로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당신네들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대체 이 이야기가 무슨 뜻일까요? 예수가 말하는 보게 하는 것과 못 보게 한다는 것이 심판의 행위의 일종이라면, 그것은 단순히 눈이 먼 사람을 치료해서 볼 수 있게 한다거나 반대로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을 해코지하여 실명하게 하는 그런 차원의 얘기는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좀 유치해지잖아요?). 오히려 이 이야기는 매우 신학적인 차원의 심오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리는 심판으로서 보게 하는 것과 보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여러분들과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저는 예전부터 예수님의 이 발언에 담긴 신학적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찾는 데 고심해왔습니다. 어쩌면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앞에 소경의 치유 이야기가 먼저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봤습니다. 앞의 치유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가 하신 이 말씀의 진의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저도 그렇지만, 요한복음을 주석한 학자들 역시 이런 예수의 심오한 주장이 어떤 방식으로든 요한복음 본문 안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9장 1-41절과 그 뒤에 바로 이어지고 있는 10장 1절 이하의 이야기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9장 35-41절에서 중요하게 드러나고 있는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에 관한 예수의 발언과 10장 1절 이하의 ‘양의 우리의 비유’나 ‘선한 목자의 비유’는 문맥상 전혀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불트만을 비롯한 많은 주석가들은 본래의 요한복음에서는 9장 41절 뒤에 오는 본문이 현재의 10장 1절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고, 복음서의 순서를 각기 나름대로 재구성해왔습니다. 불트만의 경우는 8장 12절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이 9장 41절 뒤에 오고, 8장 12절 뒤에 다시 12장 44-50절 12:44 예수께서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요,  45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7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서, 그것을 지키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는 것이다.  48  나를 배척하고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심판하시는 분은 따로 계신다. 내가 말한 바로 이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49  나는 내 마음대로 말한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무엇을 말해야 하고 또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친히 나에게 명령해 주셨다. 50 나는 그 명령이 영생을 준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이든지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해 주신 대로 말할 뿐이다.”

이 와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8장 13-20절은 원래는 8장 12절 뒤에 와야 할 것이 아니라, 5장의 뒤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그런 식으로 해서 9장 35-41절에서 언급되는 보게 하는 것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요한복음 자체 내에서 찾아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것은 보게 하는 것과 보지 못하게 한다는 진술을 또 다른 신학적 담론으로 되풀이한 것이지, 해석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실례(實例)는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2. 시선은 권력이다. 진리는 시선의 권력의 산물이다.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참조하여, 요한복음 9장의 상황을 잠시 정리해보겠습니다. 9장은 세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예수와 제자들이 소경인 사람을 화두로 대화하다가, 예수가 그를 고쳐주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1-7절). 두 번째 장면(7-34, 특히 13-34절)은 바리새인들과 고침 받은 사람의 대화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은 그가 눈을 뜨게 된 것을 삐딱한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사람을 윽박지르며 말합니다. “너를 눈뜨게 한 이는 메시아(그리스도=구원자)가 아니라 죄인이다”(24절). 이런 문맥에 이어지는 세 번째 장면(35~41절)에서는 예수와 그 고침 받은 사람이 대화를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는 ‘봄’(보게 함)과 ‘보지 못함’(보지 못하게 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소경인 자는 누군가에 의해 항상 관찰되어 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볼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는 항상 타인의 시선 안에 들어 있었지만, 그는 한 번도 타인을 바라볼 수 없었던 존재인 것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보는 자들입니다.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때론 엿보고, 때론 훔쳐보면서 남들이 율법을 준수했는지 안 했는지를 판정해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그러한 시선의 특권을 가졌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시선은 권력이다”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대목이지요. 시선이 곧 권력이라는 명제는 달리 말하자면, 그 시선의 권력을 가져가는 이가 ‘보는 자'가 되고, 반대로 그 시선의 권력 하에 놓인 자가 ‘보임을 당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도 그렇겠지만, 예수 당시의 맥락에서는 더욱 그러하건대, 보는 자는 곧 권력을 가진 자들이고, 보임을 당하는 자들은 권력의 지배 아래 놓인 사람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보는 자’는 소경과 같이 보이는 자를, 그의 존재의 됨됨이 곧 죄인이냐 의인이냐를 규정지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 보는 자는 그를 제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보이는 사람이 그것을 알아차린다면, 말할 것도 없이 그는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제압당해 버립니다. 즉 보임을 당하는 자는 보는 자의 ‘시선’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이런 주종관계는 보는 자의 마음대로 규정되는 ‘사실의 세계’를 현실 가운데서 만들어냅니다. 언제나 그렇듯 지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특정한 세계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현실 그 자체가 되는 것이지요. 볼 수 있는 자의 시선에 진리가 만들어지고, 보임을 당하는 자는 그렇게 보고 있는 자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 그 진리를, 그 기만적인 세계관을 객관적인 현실로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리는 시선의 권력을 장악한 자의 상상의 산물이며, 그런 그의 전유물로 형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지배하던 1세기 초반 유대 촌락 사회의 일상적인 죄인 생산 메커니즘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소경과 바리새인의 관계는, 바리새인들의 시선에 제압당해 자신의 존재가 규정되고 있는 당시 사회의 권력 질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소경이 단지 한 불행한 개인만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의 시선에 의해 제압당하고 존재가 규정된 사람들 일반, 즉 바리새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속의 대중을 집합적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공동체의 경험에선 70년 전쟁 이후 더욱 보수화된 기조로 무장된 재건 유대교 회당체제의 이념적 지배틀인 랍비적 바리새주의 아래 포획된 전쟁 이후의 대중 일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눈을 뜨게 된 사람이 바리새인들에게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는 더 이상 바리사이(바리새파)가 본 것을 자신의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을 그들에게 당당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이제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규정당하고, 그 시선의 권력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바라보던 이가 아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도움으로 그는 자신이 경험해온 시선의 권력의 지배관계를 완전히 전복해버린 것입니다.

소경과 바리사이로 대표되는, 보는 자와 보이던 자의 권력 관계를 전복하여 이제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던 자들을 볼 수 있게 해주고, 반대로 권력의 눈으로 세상과 타인을 보고 있던 혹은 감시하고 있던 자들을 눈멀게 해버리는 사건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9장 39절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이러한 권력 관계를 전복시키는 활동이야말로 자신이 행하는 ‘심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불트만이 주장하는 것을 따를 경우 그 뒤에 오는 구절이 되는 12장 47절에서는 이렇게 보지 못하던 자를 보게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행하는 구원 활동의 요체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서, 그것을 지키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는 것이다.”


3. 예수는 그녀를 죄인으로 보지 않았다.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상의 많은 요한복음 사본 필사자들이 끈질기게 요한복음 본문에 편입시키고자 했던 어떤 이야기가 바로 이처럼 ‘보던 자’과 ‘보지 못하던 자’의 관계를 전복하는 것 즉 ‘볼 수 있게 하는 것’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예수님의 심판/구원 사역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설해주는 예라고 보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저명한 요한복음 주석가들이 ‘버렸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이 말하는 심판과 구원 사역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7장 53절부터 8장 11절까지의 본문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 본문은 흔히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사본학적으로 이 본문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본문입니다. 대다수의 권위 있는 오래된 요한복음의 사본들에 이 본문이 없을뿐더러, 그 문체도 요한복음의 다른 본문과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헬라어 원문성경에도 이 본문은 7:53-8:11의 자리에 들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꽤나 오래전의 사본들에서 발견되는 점을 고려하여 이중 꺽쇠갈호로 묶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원문성경을 그대로 번역한 한글 성경들에서도 이 본문은 항상 이중꺽쇠 괄호로 표시되어 있고, 그 밑에 난외주에는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7:53-8:11이 없음. 사본에 따라서는 7:36 다음에 이어지기도 하고, 21:25 다음에 이어지기도 함”이라고 표기해놓고 있는 것입니다.

권위를 인정받는 요한복음 주석서들 중에는 아예 이 본문에 대한 주석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자들은 이 본문이 요한복음의 원문에는 없던 것이 분명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본문이 왜 그렇게도 끈질기게 여러 사본들에서 계속 발견되고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차피 요한복음 역시 다른 복음서들과 같이 예수에 관한 구술전승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책이라면, 오래된 요한복음 사본에 이 본문이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이 본문이 문서텍스트로 정리된 것이 늦어졌을 뿐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본문의 위치는 상당히 불안정합니다. 8장 9절과 11절에서 보듯이, 여인을 간음죄로 잡아서 예수 앞에 끌고 왔던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고 말했는데, 12절에서는 갑자기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라고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 본문이 여기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매우 어색합니다. 저는 9장 1-41절 다음에는 8장 12절이 오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12장 44-50절이 오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 대다수의 신약학자들이 버린 7장 53-8장 11절의 본문을 놓게 되면, 9장 1절부터 34절까지 묘사된 소경을 눈 뜨게 하는 이야기와 함께,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의 본질 즉, 당대의 지배적인 권력자들에 대한 심판의 사역이자 지배받는 민중들에 대한 구원의 사역으로서 보게 하는 것과 보지 못하게 하는 행위의 의미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기존의 신학자들은 거의 모두 이 간음죄로 고발당한 여인을 자명하게 ‘간음죄를 지은 죄 많은 여인’으로 간주합니다. 어떤 학자는 예수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함으로써 간음죄를 지은 죄 많은 여인도 용서해 주었으나 결코 그 여인의 죄를 가볍게 용서해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예수도 사람은 용서하되 죄는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또 어떤 이는 예수 본인도 그 여인의 죄만큼은 사실로 인정했기 때문에 마지막의 11b절에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라고 엄중히 경고했으며, 단지 그 여인에 대한 심판을 연기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정말 그런 것일까요? 학자들이 이런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은 그들조차도 이 여인을 죄인으로 ‘보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조차도 그런 바리새인들과 동일한 죄의 시선으로 이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해석에 반대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이 여인을 결코 죄인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사본학적으로 볼 때, 이 본문이 들어간 사본들 가운데는 8장 11b절이 발견되지 않는 사본들이 더 많이 있고, 이런 사본들이 오히려 이 11b절이 첨가된 사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오래된 사본들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굳이 그런 사본학적 문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미 앞서 살펴본 9장 35-41절의 말씀에 근거하건대, 예수님은 이 여인을 죄인으로 보고 있는 자들이야말로 죄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바리새인들에 의해 죄인으로 보임을 당한 그 여인이 스스로를 다시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당할 줄로 압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본문 어디에서도 ‘간음죄로 고발당한 여인’의 이름이나 나이, 가족 관계와 성장 배경, 그녀의 구체적인 행적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여인이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고 말하는 것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그녀를 잡아온 바리새파 사람들의 말일 뿐입니다. 그들의 고발만 가지고는 그녀가 정말로 간음을 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예수 당시의 유대 사회에서 이해되던 간음이 어떤 것인지에 관한 상세한 역사적/성서적 고찰이 선행되어야만 하는데도, 그러한 연구에는 무관심한 채 이 여성을 바리새인들의 주장에 따라 그대로 간음한 여성으로 간주하는, 이른바 시선의 공유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자들은 자유를 가진 인격체가 아니라, 남종과 여종, 소와 나귀처럼 그 소유주인 남자의 ‘소유물’로 존재했습니다. 남자들은 일부다처제를 채용하여 합법적으로 아내 이외에도 여러 여자를 첩으로 거느렸고, 여자를 사서 성적 소유물로 삼을 수도 있었습니다(신21:11-17). 남자가 처녀를 억지로 강간한 경우에도 그 강간한 처녀의 소유주인 아비에게 은 오십 세겔을 준 후 아내로 삼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신22:28-29). 돈과 권력의 힘으로 다른 남자의 약혼녀나 아내 역시 자신들의 성적 파트너로 삼는 일이 빈번했습니다(신22:30). 유대 율법은 단지 다른 남편의 소유물에 속하는 남의 ‘약혼녀’와 ‘아내’를 강제로 범함으로써 다른 남자의 소유물을 훼손하고 훔친 경우만을 ‘간음’으로 규정하고 ‘타인의 아내를 간음하지 말라’(레18:20)고 말하는 형벌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대 사회에서 ‘간음 금지’ 조항은 도덕이나 윤리적 측면 보다는, 남성들의 소유권 보장과 공정한 성거래(?)를 위해 제정된 남성 위주의 상도덕적 규범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신명기법은 여자가 결혼 후, 처녀였음을 나타내는 징표가 보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돌로 쳐죽이라(신22:21)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결혼 후, 남편이 아내의 처녀성을 의심할 경우, 그 여인은 ‘의심의 법’에 의해 남편으로부터 쓴 물을 먹혀서 넓적다리가 붓게 되는 고문을 받았다고 합니다(민5:11-31). 

놀랍게도 남의 약혼녀나 유부녀를 범한 ‘간음’에 대한 형벌 규정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신명기법에 따르면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약혼녀를 강간했을 때, 그것이 ‘들’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성읍 안’에서 일어난 경우에는 ‘강간범’만이 아니라 ‘피해여성’도 “함께 돌로 쳐죽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신22:23-24). 여자가 성 안에 있으면서 소리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남자가 남의 아내를 강간했을 경우, 이유 불문하고 남자뿐 아니라 피해를 당한 여성도 무조건 함께 교살하라(신22:22)고 말합니다. 이미 더럽혀진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 과연 이런 유대 사회에서 보통의 부녀자 혹은 처녀가 자발적으로 다른 남자와 ‘간음’을 한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했을까요? 당시 유대 남성들은 여성이 폭력적으로 강제로 타인의 의지에 의해 간음, 더 정확히는 성적인 폭행을 당한다는 그런 개념조차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피해를 당한 여성에게 가해자 남성보다 더하면 더한 책임을 물으면 물었지, 그녀들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보호해주는 그런 예는 전무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남성들은 자신들의 간음 행위를 여성의 유혹 탓으로 돌렸고 간음을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아가는 음탕하고 방종한 행위로 낙인찍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기 아내를 버리면서도, 버림받은 자기 아내가 이제 생존을 위해 다른 남자를 만나려고 할 경우 그 아내를 비난하고 ‘간음한 여자’로 몰아갔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등장하는 여성은 어땠을까요? 이 여성이 정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부도덕한 여성이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이 여성은 그저 남자의 소유물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던 한 남자의 약혼녀나 아내로서, 다른 남자에 의해 강간당하거나 성적 폭행을 당하고 있었던 그런 여성이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자신을 그렇게 죄인으로 만든 당사자인 그 강간범은 현장에 함께 잡혀오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지금 그 여성을 잡아온 바리새인들 가운데 그 놈이 섞여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고, 여성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채, 바리새인들과 공모하여 그 여인을 미끼로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바로 그런 자리에서 예수님은 이 여성을 구원하는 동시에, 그 모든 남성들을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성을 죄인으로 보고 있는 너희들이야말로, 예수님 자신과 이 여성의 눈에는 죄인으로 보인다고 폭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T1z3-aVxf74&feature=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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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민중이 아닌 이들, 오늘 본문에서 본다면 바리사이와 같은 이들이, 예수님 앞에 끌려온 여인이나 영상에 나온 여인과 같은 민중의 말, 그것이 중얼거림이건 비명소리이건 몸짓이건 간에, 그들의 그런 고통이 담겨 있는 말과 얼굴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귀머거리이자 소경임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이 에피소드는 민중신학이 민중에 대해 갖고 있는 문제의식, 더 정확히는 민중의 비언어적인 언표, 혹은 언표화되지 않는 목소리가 이 사회에서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사실 어떠한 민중신학자도 “민중이 자신의 말을 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민중신학은 민중이 자신들의 고통에 대하여 말을 할 수 있다고 늘 주장해왔습니다. 이른바 그것이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민중의 자기초월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병무와 서남동 이래로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이 자신들의 고통을 끊임없이 토로하고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해온 것입니다. 동시에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의 그러한 말이 민중이 아닌 이들에게, 즉 이 사회의 다수자들, 소위 시민이라고 하는 그들에게 전혀 ‘들리고’(hear) 있지 않다는 점에서, 민중의 고통이 민중의 한(恨)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특히 서남동 목사에 따르면, 민중의 한(恨)은 “하늘에 호소하는 억울함의 소리, 무명(無名)의, 무고(無告)의 소리”를 의미합니다. 물론 민중의 한은 민중이 벙어리라서 말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민중이 아닌 이들이 민중의 말, 그것이 중얼거림이건 비명소리이건 몸짓이건 간에, 그들의 그런 언어행위를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귀머거리이자 소경임을 시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신학자들이 민중의 언어가 갖는 독특성, 그 비언어적인 표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던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드라마의 에피소드에 나오는 저 변호사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민중신학자가 ‘한(恨)의 사제’ 역할을 한다는 것, 혹은 ‘민중사건의 증언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비(非)언어적인이고 비합리적인 민중의 언어, 혹은 정치적으로 의식화된 운동이나 실천이 아니라, 사실상 이해 불가능한 퇴행에 가까운 집합행동 또는 일탈적인 자기학대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그런 실천 아닌 실천들 속에서 민중의 목소리, 민중의 고통을 읽어내고 그것을 증언할 수 있는 감수성을 발휘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민중신학자라면 왜 우리는 듣지 못하는가, 우리는 보지 못하는가, 무엇이 우리의 귀와 눈을 가리고 있는가를 폭로하는 비평가의 역할도 겸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증언과 폭로는 동일한 실천의 양면인 것입니다. 결국 “민중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사실상 “민중은 들릴 수 있는가”라고 하는 우리 사회의 청음(聽音)능력 및 청음구조를 향한 비판적 질문의 반어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입니다. 

최근에 민중신학에서는 그러한 민중의 고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 언어화되지 못하고 있는 고통의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또한 그들의 얼굴을 정직하게 볼 수 있는 우리의 신앙적 감수성을 가리켜 ‘사회적 영성’(social spirituality)이라 개념화하고 있습니다. 좀 더 민중신학적인 어법으로 말하자면, 사회적 영성이란 민중을 죄인으로 보고 있는 혹은 그렇게 보는 현실을 만들고 있는 이들의 그 눈을 멀게 하고, 즉 그들의 권력을 해체하고, 반대로 자신들을 죄인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보지 못하는 자들이 스스로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하는 것, 즉 하나님 나라의 주인으로 바로 설 수 있게 노력하는 신앙의 태도와 감수성을 말합니다. 

이 설교의 본문과 연관시켜 본다면, 사회적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펼쳐나간 예수운동의 본질이자, 요한공동체가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계승해나간 ‘예수따름’의 본령을 잘 담아내고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영성을 체화함으로써 지금 이 땅에서 예수운동을 계승하기를 예수님은 혹은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전히 바라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가 우리 주변의 고통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그들에게 책임 있게 응답할 수 있는, 사회적 영성을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천안살림교회 2014년 7월 20일 예배 설교문을 보완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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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저항하기, 고통에 복종하기[각주:1]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마태복음 25장 31-46절

31    "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33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37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38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39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40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41    그 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졸개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43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어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 

44    그 때에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45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46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것이다."


1. 본문에 관하여

1) 행위구원론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성서 본문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비유로 분류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학자들 사이에선 논란이 있긴 하지만―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행위구원론을 보여주는 본문으로 일찍부터 해방지향적인 신학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던 마태복음 7장 15-27절의 본문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라고 말하는 로마서 2장 1-16절의 본문이나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고,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야고보서 2장 14-26절의 본문처럼 이 본문 역시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본문은 다른 본문들처럼 일반적인 차원의 도덕적 선행이 아니라, 구체화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대적 차원의 행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그만큼 이 비유가 전달하는 신학적 메시지 안에는 사회윤리적인 함의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비유는 인자가 돌아왔을 때, 그는 모든 사람을 심판할 것인데, 그 심판의 기준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각 개인들이 자비와 사랑의 태도를 보여주었는가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종말에 메시아 앞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소외된 이들에게 보여준 행동에 기초하여 의인으로 인정받거나 악인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구원을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믿었던 신학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신조나 의례, 예수나 기독교에 대한 지적인 이해나 고백보다,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위한 관심과 선행으로 드러난 사회적 연대의 실천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 및 영생의 최종적인 기준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2) 영생의 기준

오늘 본문은 양과 염소를 가르는 인자의 최후 심판의 날이 온다는 사실을 단순히 경고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최후의 심판이 내려지는가를 알리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심판의 기준은 청중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나 왼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나 구별할 것 없이 모두 자신들에게 내려진 판결을 두고 충격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데서 잘 드러납니다. 

헬라어 원문으로는 “언제 우리가 당신을 보았습니까?”(37b, 38b, 39절), 그리고 “언제 우리가 당신을 보지 않았습니까?”(44b)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가 그들을 구별하는 것은 누구에게 그들의 선한 행위가 보여졌냐는 것입니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왼쪽에 서게 된, 즉 양으로 분류되어 복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이유, 반대로 두 번째 그룹이 오른쪽에 서게 된, 즉 염소로 분류되어 저주받은 사람으로 판정받게 된 이유는 메시아가 행한 두 개의 답변에서 잘 드러납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40절) 그리고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45절). 

가장 놀라운 대목은 예수의 현존이 “굶주린 사람들, 목마른 사람들, 나그네 된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 병든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예수의 형제자매였던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이었다는 것, 즉 예수는 그들과 자신을 철저하게 동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식적인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여 행동했기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도 몰랐던 사이에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돌보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가 당신을 보았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보았던 바로 그때였다고 말합니다. 

3) 값싼 행위구원론

자,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이렇게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인식하고 그들을 최대한 잘 돌봐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이 비유가 복음서에 기록될 당시의 맥락에서, 이 본문이 증언하는 그 이웃 사랑의 행위가 갖는 당시의 역사적-사회적 무게를 헤아리지 않고, 우리 시대로 곧바로 가져와서 문자적으로 적용할 경우, 이 본문은 값싼 행위구원론의 전거로 소비되기에 안성맞춤이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부지불식간에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푼 것이 예수에게 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현대의 기독교인들 입장에서 이것보다 더 쉽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랑의 리퀘스트’에 전화 한 통만 해도 ARS로 소년소년가장이나 결식아동, 장애인, 재해민들과 같은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고(“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교회로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이나 결혼이주여성, 탈북자와 같은 우리 시대의 나그네들을 예배 시간에 환영할 수 있으며(“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아름다운 가게’와 같은 시민단체에서 주최한 바자회에 헌옷을 내놓음으로써 가난한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할 수도 있고(“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하다못해 동네마다 있는 헌옷 수집함에 옷을 집어넣어도 결과적으로는 누군가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이 됩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 정도는 봉사활동 차원에서 병원이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여 몇 시간 동안 환자들을 돌봐줄 수도 있고, 교우들이 가족들의 병문안을 갈 수도 있고(“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그리 흔한 경험은 아니겠지만 교도소나 구치소에 있는 지인을 면회 갈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렇게 일상생할 중에 큰 부담 없이 한 선행이나 봉사만으로도 최후의 심판 앞에서 그리스도를 섬긴 공을 인정받아 최종적인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쉬운 구원이 어디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어릴 적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본문이 그런 방식으로 교회에서 쉽게 소비되는 경우를 무수히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이 본문이 말하는 실천이 이토록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일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본문은 현재의 시점에선 전혀 다르게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값싼 행위구원론의 전거로 이 본문이 소비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할까요? 


2. 마태공동체의 삶의 자리

1) 예수의 ‘형제자매들’

이 비유가 지시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비유가 누구의 입장에서 전달되고 기록되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 요청됩니다. 이를 위해선 40절의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은 바로 그 ‘형제자매들’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성서에서 ‘형제자매’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의 단어는 ‘아델폰’(αδελφων)으로서 ‘형제’를 의미하는 남성 단수 명사 ‘아델포스’(αδελφος)의 복수형태입니다. 신약성서에서 ‘형제’라는 단어가 문맥상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의 혈연적 관계를 지시하지 않을 때, 그것은 전적으로 동일한 신앙공동체에 속한 동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오늘날 교회에서 교우들끼리 서로를 ‘형제자매’로 지칭하는 것). 유대교로 개종하지 않거나,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방인들을 ‘형제’라고 지칭하는 그런 예는 성서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가 복수형태로 쓰일 때는 명백히 남성과 여성을 포괄적으로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비유에서 인자가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는 그 형제자매들은 기본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오직 마태복음에만 기록된 비유입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여기서 나타난 ‘형제자매들’을 마태복음과 연관된 ‘마태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혹시 마태공동체라는 단어가 생소하신가요? 현대 복음서 연구는 각각의 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의 배후에는 그 복음서의 전승을 연행하며 전달하고, 또한 문서화하여 기록하고 다시 전수했던 각각의 공동체들이 존재한다는 학문적 가설 위에서 발전해왔습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가설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성서 내적인 증거와 교회사적인 증거들을 갖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통해 우리는 이 책 배후에 마태공동체라고 하는 미지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마태공동체를 이해하는 것, 즉 이 비유를 자신들의 복음서 안에 담아냄으로써 자신들의 독자적인 신학을 드러내고 있는 마태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이 비유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원래의 역사적-사회적 문맥 속에서 올바르게 파악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2) 사회적으로 배제당한 집단

마태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였을까요? 마태공동체의 자의식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위치를 여전히 유대교 안에 두고 있는지, 아니면 유대교 바깥에 두고 있는지에 대해선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엇갈린 해석들이 맞서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유대교와의 관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어떻게 규정했든지 간에, 복음서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그들의 사회적 현실만큼은 그들이 유대교 내에서 철저히 주변부로 밀려나있는 집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마태복음 도처에서 확인되듯이, 마태공동체가 유대교의 다른 집단들로부터 비방, 회당에서의 채찍질, 산헤드린이나 지방 법정에 고발당함, 박해와 추방, 죽임 당함 등의 처절한 폭력을 경험한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통해 충분히 입증됩니다. 마태공동체가 유대교 사회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몇 개의 본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5장 11-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예언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의 예수는 산상수훈을 통해 제자들에게 축복을 선언하는데 이는 그들이 ‘모욕’을 당하고 ‘모든 악한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 ‘욕하다’라는 용어 'ονεδισωσιν’은 개인들 간의 직접적인 ‘비방’을 의미하고,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을 하다’라는 어구는 공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방식의 사회적 비난을 의미합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런 부정적인 경험은 마태공동체가 다수의 유대교 집단들로부터 일방적으로 배제당하는 과정에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방과 비난이 ‘박해’(διωξωσιν)라는 단어와 동시에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던 마태공동체의 신앙적 일탈이 그러한 모욕과 비방의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태공동체가 당한 박해와 비방, 모욕이 공식적인 유대교 회당 지도부에 의해서만 자행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다수의 광범위한 유대교 집단들로부터 마태공동체가 일종의 ‘왕따’, 즉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를 당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겠습니다. 사회적 배제라는 현대 사회과학의 개념이 뜻하는 바가 “다차원적인 불이익으로서 어떤 사회의 주류적 환경으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포함하며, 이것이 상당기간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를 마태공동체에 적용하는 것이 그리 무리한 해석은 아닐 것입니다.  

한편 마태복음 10장 17-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회당이나 법정에 끌려 나가 채찍질당할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10장 22절에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고, 23절에서는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고 말하며, 급기야는 23장 34절에서 예수 자신이 보낸 예언자들 중 일부가 유대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회당에서 채찍질당하고 가는 동네마다 박해를 당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물론 이 모든 언급들은 마태공동체가 이스라엘 땅에서 자신들의 동족들로부터 당한 박해의 경험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랐던 이들이 겪은 사회적 배제와 집단적 폭력에 대한 기억은 로마 지배 체제에 대한 유대 민중들의 반란과 그에 대한 로마의 대대적인 진압으로 일어난 유대-로마 전쟁(서기 66-70년)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마태복음은 그 전쟁으로 인한 폭력의 경험과 이후의 여파를 처절한 언어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전쟁 당시의 경험을 마치 종말에 닥쳐 올 환난을 방불케 할 정도로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 마태공동체와 같이 예수를 추종하던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환난에 넘겨지고 죽임을 당하며, 그들이 따랐던 예수의 이름으로 인해 모든 민족, 즉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고, 결국엔 공동체 내부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여 서로를 적대자들에게 팔아넘기고 서로 미워하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태공동체는 단순히 물질적 궁핍으로 인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던 약자 계층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으로 인해 그들이 속해 있던 사회로부터 폭력적으로 배제당하면서 빈곤과 위험에 처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러한 종교적․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속한 어떤 누군가(‘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를 도와준다는 것이 과연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 것일지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공동체라고 하는 집단이, 우리가 별 부담 없이 도와줄 수 있는 평범한 사회적 약자계층이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의도적으로건 비의도적으로건 하나로 뜻을 모아 함께 배제하고 박해했던 그런 저주받은 이들에게 감히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특별한 행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러한 소수자 집단을 향해 연대를 실천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전체적으로 그들에게 부과했던 어떤 권위적이고 일반적인 판단을 정면으로 거슬렀을 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불우이웃돕기나 약자들에 대한 자선활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서, 매우 민감한 사회적 논란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그런 비상한 사회적 연대의 행동을 의미할 것입니다. 유대교 일반과는 다른 신앙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온갖 종류의 사회적 배제와 폭력, 그리고 억압과 박해를 자초한 그런 집단을 향하여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요즘 말로 하자면, ‘외부세력’이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자신들을 향해 연대의 행동을 보여준 그 특별한 이들에게 마태공동체는 종말에 도래할 메시아 예수의 권위에 의지하여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메시아의 최후 심판에서 주어지게 될 최종적인 구원이란, 바로 그렇게 마태공동체 자신들과 같은 이들을 향해 위험을 무릅쓴 연대를 실천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음을 마태공동체는 세상에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3. 어떤 ‘권위’에 복종할 것인가?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라고 하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는 1960-1963년에 걸쳐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을 수행한 후, 그 실험에 대한 보고서를 책의 형태로 1974년에 발표하게 됩니다. 그 책의 제목은 『권위에 대한 복종』(Obedience to Authority)인데요. 제목 그대로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얼마나 권위와 명령에 잘 복종하는지에 대해 실험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지난 20세기에 이루어진 수많은 심리학 실험들 가운데 이 실험만큼 유명하고 또한 논란이 된 실험도 없을 것입니다. 

일단 실험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밀그램은 ‘기억과 학습’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합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2인 1조가 되어 매회 실험에 참여하게 됩니다. 실험을 주관한 과학자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선생’으로, 다른 사람을 ‘학생’으로 명명하고, 그들에게 이 실험은 선생이 학생에게 내리는 처벌이 학생의 학습 능력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학생들이 단어를 기억하는 데 있어 처벌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과학자는 이제 학생 역할을 맡은 피험자를 방 안의 의자에 앉히고, 과도한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 양 팔을 의자에 묶은 다음, 전극봉을 그의 손목에 부착합니다. 그는 단어의 목록을 공부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틀릴 때마다 ‘선생’ 역할을 맡은 실험 참가자가 전기충격의 강도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얼핏 보면 실험실 안의 ‘학생’이 실험 대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선생’이 실험 대상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학생은 밀그램이 고용한 연기자였고, 선생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이 실험의 진짜 피험자, 즉 실험 대상자였던 것입니다. 피험자의 역할을 맡은 것처럼 보이는 학생에게는 실제로는 아무런 전기 충격도 가해지지 않았고, 그는 단지 충격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연기를 할 뿐이었습니다. 물론 선생의 역할을 맡은 실험 참가자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은 고통을 호소하고 실험의 중단을 요구하는 희생자들에게 점점 더 심한 충격을 가하라는 권위적인 명령이 내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디까지 그 명령을 따르는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험이 진행되자, 놀랍게도 이 실험에 ‘선생’으로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생’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데도, 상당히 높은 수치에 이르기까지 전압을 높여 그들에게 충격을 가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심지어 일부의 ‘선생’들은 최고 수치로 전압을 올리라는 과학자의 명령에 전혀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들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이 실험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갈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실험실의 합법적인 권위자인 과학자가 그들의 옆에 서서, 그들로 하여금 애초에 맺었던 실험 완수의 의무를 다하도록 무언의 압박을 가했습니다. 아울러 학생들이 고통을 표현할 때마다, “실험을 계속 해야 하냐?”고 묻는 참가자들에게 “전기충격이 극도로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몸의 세포 조직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 실험을 계속하도록 종용했습니다. 

따라서 이 실험의 진짜 피험자였던 선생들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과학자의 명령에 계속 복종하여 학생에게 점점 더 강한 충격을 가하거나, 희생자들의 요구를 쫓아 실험을 중단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요구, 즉 권위적인 명령을 내리는 과학자의 목소리와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 학생의 목소리 사이에서, 전자의 목소리에 복종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권위적인 명령의 목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질 때, 자신들 앞에 다가온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그런 비도덕적인 성향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요컨대, 도덕적 책임감이 사회적 권위 앞에서 무너질 수 있음을 이 실험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실험이 모두 끝나고,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을 ‘선생’의 역할을 맡았던 실험 참가자들에게 알려주었을 때, 그들의 상당수는 학생들이 계속해서 답을 틀렸기 때문에 본인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즉 본인들이 희생자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낼 수 있는 여러 불가피한 상황적 요인들을 각자 나름의 변명거리들로 늘어놓았습니다. 아울러 희생자와의 거리감, 즉 희생자가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익명성이 강화될수록, 이와 같은 비도덕적 행위에 더욱 쉽사리 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권위 있는 존재에 대한 믿음,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그 죄책감을 면해줄 수 있는 기발한 변명의 논리들, 그리고 희생자와의 거리감 내지는 가해자의 익명성에 근거하여, 그들은 비윤리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에 순순히 복종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밀그램의 이 실험이 왜 ‘아이히만 실험’으로 불렸는지 이제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에 실무자로 참여했으면서도, 자신은 그저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그래서 어떠한 잘못도 없다고 말했던 ‘아이히만’(Adolf Otto Eichmann)이라는 인물처럼, 누구라도 일정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그 상황에서 비도덕적인 행위를 쉽게 저지를 수 있음을 이 실험은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실험에 참여했다가 학생이 지르는 비명의 소리를 듣고 실험에 계속 하기를 거부했던 소수의 피험자들도 있었습니다. 밀그램은 자신의 책에서 그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대학에서 구약성서를 가르치는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사람입니다. 물론 그 신학자 역시 처음에는 학생이 답을 틀릴 때 마다 별 다른 고민 없이 전기 충격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학생이 고통을 호소하며 실험에 저항하자 이 실험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자기 옆에 있던 과학자에게 실험을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는 학생의 저항을 무시하고 실험을 계속 하라는 과학자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고, 자신의 의지로 실험을 중단했으며, “왜 이 실험이 이 사람의 생명보다 우선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며 과학자와 논쟁을 벌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무리 전기 충격이 세포 조직에 영구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고 과학자가 말할지라도, 학생이 겪을 정서적인 충격과 신체적 고통이 크다는 사실을 과학자에게 일깨워주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실험을 중단한 것을 실험실에서의 과학자의 권위에 대한 불복종이 아니라, 희생자의 요구에 복종한 것이라고 정당화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과학자의 명령과 학생의 명령이 서로 대등한 것이었고, 자신이 복종하는 대상은 과학자가 아니라 학생, 즉 희생자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신학자의 태도에 강한 충격을 받았던, 밀그램은 그에 대해 평가하기를, “그는 모든 종류의 권위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악한 권위를 선한 권위, 즉 신성한 권위로 대체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마태공동체를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과정에 일상적으로 동참했던, 혹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무관심 속에 외면했던 당시의 마태공동체 주변에, 수많은 유대인들과 이방인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런 행동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유대교의 권위, 더 나아가 유대 사회의 지배적인 질서에 순순히 복종했습니다. 아울러 마태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사회적 박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마태공동체 자신들에게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고 하는, 책임 전가의 논리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태공동체는 유대교 주류가 배척했던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었던 유대교의 이단자들이었고, 이방인들에게까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나라의 축복을 개방했던 동족의 배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런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는, 즉 당시 사회가 일반적으로 합의하고 있었던 지배적인 가치관이나 세계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므로,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충분히 정당한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마태공동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외쳤던 고통의 비명소리보다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결정과 이스라엘 사회의 전체적인 합의가 더 권위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유대교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와 마태공동체의 고통의 목소리 사이에서 대부분의 유대인들, 그리고 유대인들 주변의 많은 이방인들은 전자의 목소리에 복종하고자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대교 사회의 권위적인 목소리보다 마태공동체의 고통의 목소리에 더 복종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단 한 사람도 없었을 수도 있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마태공동체의 고통에 응답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를 거슬러서, 고통의 목소리에 그 자체에 응답했던, 즉 사회적 권위가 아니라 고통의 권위에 복종했던 그 소수의 사람들에게 메시아는 최후의 심판의 순간에 영생을 허락한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과 마태공동체가 증언하는 구원은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배제당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고통을 겪고 있는 바로 그런 이들의 모습으로 그리스도가 현존한다고 했을 때, 그의 부름에 응답한다는 것은 사회적 권위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모종의 결단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주어져 있는 최후의 심판이란 그렇게 두 개의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가 과연 어떤 목소리에 응답했는가, 어떤 목소리의 권위에 복종했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좌우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영생이란 그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적 가치관과 규칙 등에 정면으로 맞서서, 사회적으로 배제당하고 있는 어떤 이들에게 용기 있게 다가갈 때, 고통당하는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고, 그들의 고통의 음성에 제대로 귀 기울이고, 그들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며 그들이 벌이고 있는 운동과 실제적으로 연대했을 때 비로소 주어질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이 정도 말씀드린 것만으로도 마태복음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구원이란 것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무겁고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4. “연대, 그 참을 수 없는 어려움”에 관하여

지난 금요일(2월 7일) 오전에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이 2009년에 정리해고당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153명에 대해 작년의 1심 판결을 뒤집고 2심 재판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정리해고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쌍용차의 경영현황에 관한 회계장부가 애초부터 조작된 것이라고 하는 노동자들의 주장이 6년 만에 비로소 진실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 진실이 진실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대가가 따랐는지를 떠올려본다면, 고등법원의 이번 판결은 당연하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약 76일간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사측의 구조조정 단행에 반발해 쌍용자동차의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루액은 기본이고, 테러나 폭동 진압 때나 쓰는 다목적발사기를 및 테이저건 등을 사용하여 노조원들을 무자비한 방식으로 진압했습니다. 그전에 이미 사측은 농성을 와해시키기 위해 노조원들이 점거하고 있던 공장에 단전 및 단수 조치를 시행했고, 식료품 및 의료진·약품의 반입조차 금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농성으로 인해 64명의 노조원들이 구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속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사측이 영업손실 100억 원, 파업 진압 당시 헬기 손상과 경찰 장비 손상, 경찰 치료비 등의 명목으로 경찰이 14억7000만원, 공장에서 발생한 원인 모를 화재의 책임을 노조에게 전가하면서 메리츠화재가 청구한 구상권 110억 원을 합계하면, 해고 노동자들에게 청구된 전체 손해배상 및 구상금액은 총 224억7000만 원에 이릅니다. 너무 커서 실감도 안 나는 금액이지요.

그러나 그것으로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쌍용차 사태의 진짜 비극은 그 다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14년 2월 현재까지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 가운데 자살과 스트레스성 사망자가 총 24명에 달합니다. 《시사IN》이 2011년 3월 쌍용차 해고 노동자 4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50.4%가 자살 충동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실제 자살 시도도 많았습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인 김정우씨는 감옥에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왜 쌍용차에서 24명이 죽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 사업장에서 이런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사회적·경제적인 분석이 이뤄져야 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보십니까? 이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 투쟁을 벌일 당시에 76일 동안 식수와 전기가 끊어진 농성장에서 용역과 경찰로부터 수시로 끔찍한 폭력에 시달렸으며, 마지막 날 헬기에서 최루탄이 난무하고 전자총으로 폭행을 당하는 등 전쟁에 버금가는 야만적인 진압을 경험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자살이나 스트레스성 사망을 단순히 농성 현장에서 겪었던 폭력의 후유증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파업이 모두 끝난 후에도 천문학적인 손해 배상 청구소송에 시달렸고, 쌍용차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다른 회사로의 취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 전체로부터 자신들의 선택과 저항과 고통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인정’과 도움을 받지 못했던 것이 그 죽음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들의 자살과 스트레스성 사망은 경제적 어려움 탓도 크지만 파업 이후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버림 받았다는 고립감, 본인들이 무가치하다는 자존감 상실,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냉담함과 갈등 등 여러 사회심리적 요인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국가와 회사, 언론, 정치권, 고용시장, 지역사회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시민사회 등으로부터 이들은 공공연한 비방과 모욕, 박해, 처벌, 무관심과 냉소, 따돌림 등을 지속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결국엔 그 ‘한’맺힌 분노와 슬픔이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떠돌면서 연쇄적으로 또 다른 죽음을 불러온 것이 아닐까요?

결국 24명의 사람들이 죽음으로 자신들의 정당함과 그 고통의 억울함을 호소하기까지,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고통과 저항의 목소리에 귀기울기 보다는 국가와 자본의 권위적인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국가와 자본의 목소리를 거스르고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다시 말해 사회의 권위적인 목소리가 아닌 고통 받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우리는 잘 압니다. 

6년 만에 법원이 정리 해고 무효 판결을 내리기 전에, 이미 공개된 다양한 증거 자료들을 통해 드러난 사실들만이라도 제대로 믿었더라면, 아니 그전에 노동자들의 주장에 관해서라도 제대로 귀를 기울였더라면, 2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계의 상황에 내몰려 죽임당하는 그런 비극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끝내 그들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저항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정당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들의 고통에 있는 그대로 다가가 그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얼굴을 마주해야 할 우리 주변의 고통 받는 이웃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그리 착하거나 유순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도처에서 폭력적인 결말을 담은 비유가 많이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오래 시간 동안 겪은 폭력과 배제의 경험으로 인해 마태공동체의 내면은 피폐해졌고, 분노와 복수의 감정이 시시때때로 공동체 내부의 구성원들을 향해, 또는 공동체 바깥의 타자들을 향해 돌출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여러 상처 입은 저항자 집단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저와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 스스로가 사회적 편견이나 자기 검열의 심리기제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무조건 다가간다고 해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찾아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어떻게 말을 건네고 어떻게 그들을 도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역시 우리에게 남겨진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신앙에 대한 최후의 평가가 바로 그렇게 어렵고도 힘겨운 연대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과연 누구의 목소리에 복종할 것이냐고. 사회의 명령과 권위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의 비명소리에 복종할 것인가. 누구의 얼굴을 볼 것이냐고. 국가의 얼굴, 자본의 얼굴을 볼 것인가, 아니면 고통당하는 이웃들의 얼굴을 볼 것인가. 그 목소리를 듣고, 그 얼굴을 보고도 그들을 외면할 것이냐고. 지금 그 목소리와 얼굴 속에서 예수를 보고도 그렇게 외면할 것이냐고 말입니다. 우리의 선택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미래도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를 어느 한쪽으로 분명히 이끌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그 어느 한쪽의 사람들의 얼굴에서 바로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그래서 마침내 그분의 손을 기꺼이 붙잡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2014년 2월 9일 천안살림교회 예배 설교문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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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이번 11월 26일에는 본 연구소가 주관하는 <한국사회 보수주의 형성과 그리스도교 포럼>의 여덟번째 마당을 개최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포럼 취지_

제도적ㆍ정책적 수준에서 한국의 복지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진 김대중 정부를 기점으로, 아울러 이명박 정부 하에서 정당을 중심으로 한 복지정치 논의가 한층 진전되면서, 현재 한국은 비복지국가에서 복지국가로의 이행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평가가 복지국가 연구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이다. 물론 그러한 이행의 양상과 더불어,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발전주의적 복지체제의 유산과 흔적이 아직도 강하게 잔존하면서, 한국 복지체제의 변동에 강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을 부여하고 있다는 평가 역시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이행의 과도기적 현실을 고려할 때, 지난 시대 발전주의적 복지체제 형성의 근간을 제공한 박정희 정권기의 복지체제에 관한 연구는 김대중 정부 이후 현재까지의 한국 복지체제의 구조와 문제점, 그리고 향후의 과제를 규명하는 데 있어서도 여전히 중요한 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몇 몇의 연구자들을 통해 그 시기 복지체제의 특성에 관한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문제적’인 복지체제가 취약한 물적토대와 빈약한 정책 위에서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유지될 수 있게 만든 당시 사회의 통합 기제나, 그와 같은 억압적인 국가주도의 복지체제에 대한 대중들의 다층적인 반응 내지는 포섭과 저항의 복합적인 양상에 대해선 충분한 설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는 그 시대에 한국경제와 더불어 급성장한 한국교회가 도시에서 수행한 복지적 역할, 즉 제3섹터로서 교회가 수행한 비공식적인 복지활동의 사회적 효과를 살펴봄으로써, 관련 쟁점들에 대한 신학적 차원의 개입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나아가 복지라고 하는 공간을 매개로 하여 한국사회의 보수주의 형성과 교회의 역할 간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발전시켜 보고자 한다.

발표자_ 정용택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연구원)
일시_ 2012년 11월 26일(월) 저녁 7:30
장소_ 안병무홀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1번과 2번 출구. 두 출구 사이 골목 50미터, 좌측 건물의 1층)
문의_ 02-363-9190, 010-3043-5058(유승태 연구원), 010-4944-2019(정용택 연구원),

         3era@daum.net
참가비_ 3천원(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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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전병욱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가?
- 성공 이데올로기, 욕망의 경제학, 소비주의적 신앙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1. 전병욱 사태의 제2막, ‘홍대새교회’

지난 7월 12일 서울 명동 청어람 소강당에서 《뉴스앤조이》 주최로 “전병욱 사건을 통해 보는 한국교회”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는 토론회가 끝나고 나서 자사의 홈페이지에 현장에서 이루어진 발표와 토론을 소개하는 기사를 총 네 편으로 나누어 신속하게 게시하였다. 모든 기사가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도 메인 기사로 올라와 토론회 전반을 요약하고 있는 정재원 기자의 기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토론회의 한계로 지적된 부분을 소개하고 있는 그 기사의 마지막 문장만 인용해본다.

한편 이번 토론회에서 여성의 관점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발제가 없고, 사건의 실체가 상당 부분 드러나고 전 목사가 공개 회개하는 과정을 밟지 않았는데도 많은 교인들이 그를 추종하는 현상에 관한 분석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는 의견도 나왔다.1)

위의 문제제기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는 각각 “여성의 관점에서”와 “많은 교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추종하는 현상”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글은 바로 그 두 가지의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으려는 시도이다. 그런데 첫 번째 문제제기와 관련해선 이미 지난 7월 31일에 열린 “전병욱 사태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란 제목의 토론회에서 심층적으로 다루어진 바 있다.2) 먼저 있었던 《뉴스앤조이》 주최의 토론회에서 나온 문제제기를 보완하기 위한 취지에서 이와 같은 후속 토론회가 마련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제제기, 즉 이른바 ‘홍대새교회’로 대변되듯이 “많은 교인들이 그를 추종하는 현상”에 대해선 필자와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는 동료에 의해 본격적인 분석이 한 차례 시도된 바 있다.3) 이 글은 그 글과 유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직 충분히 말해지지 않은 전병욱 목사 지지자들의 심리세계에 관한 또 다른 방식의 접근을 모색한다. 먼저 발표된 글이 ‘잘못된 권위 의식’, ‘무조건적 복종’, 그리고 ‘값싼 회개’를 키워드로 하여 홍대새교회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주체 외부의 구조적 조건을 탐색하고 있다면, 이 글은 홍대새교회 현상을 만들어낸 전 목사 지지자들 내면의 욕망구조를 분석해보려는 시도이다.


2. ‘이미’ 용서받은 전병욱 목사

나는 지난 7월 29일에 홍대새교회의 주일 오후 예배에 참석했다. 마침 내가 참석한 3부 예배에선 전병욱 목사의 설교를 들어볼 수 있었다. 어림짐작으로 봐도 100명은 족히 넘는 인원이 예배에 참석한 것 같았다. 이날 전 목사는 출애굽기 28-31장을 본문으로 하여 “죽도록 준비하고 대충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수행했다. 《뉴스앤조이》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한종호 대표가 전 목사의 홍대새교회 설교에서 드러나는 후안무치에 가까운 자기합리화 및 자기정당화를 꼼꼼하게 짚어낸 바 있는데, 내가 그날 들은 설교에서도 역시 그런 지점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예컨대 설교의 말미에서 전 목사는 이런 얘기를 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요. 제 스스로 볼 때 허물 많고 죄 많고 문제투성이 목사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데 혼자 생각할 때 이래요. 내가 이런 모습을 갖고 말씀을 증거할 때 변화될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그저 하나님의 말씀 붙들고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신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십자가 의지하고, 주님의 능력 의지해서 증거하면 연약하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이 나오고 변화되는 사람이 나오더라구요. 바로 그게 뭐에요? 하나님 의지하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자유로움이에요. 자유로움. […] 하나님께 맡기고 부족함 가운데서 뛰게 될 때, 그 안에서 자유로움이 생기게 되고, 그 안에서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사장에게 주시는 메시지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귀한 것들이 많아요. 완벽하지 않아요. 그러나 주님 의지하여 믿고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세상을 다 품을 수 있는, 세상이 나의 익스텐션(extension)이 되는 그런 은총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나는 마치 “더 지체하지 말고 피해자들에게, 삼일교회 교인들에게, 그리고 한국교회 앞에 깊이 사죄하며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전 목사를 성토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그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당신들이 요구하는 사죄, 반성, 성찰, 사과, 책임, 면직, 출교, 처벌, 개척중단, 사임, 성중독 치유 등등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나를 율법으로 가두지 마시오. 나는 이제 자유롭게 내 길을 갈 것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 같았다. 40분 가까이 되는 설교에서 전 목사는 ‘자유’라는 단어를 셀 수 없을 만큼 반복적으로 자주 언급했다. 자유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free의 다채로운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전 목사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어떠한 대가도 더 이상 치르고 싶어 하지 않으며, 교회와 사회의 제약을 받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도덕적 책임과 법률적 처벌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말 그대로 어떠한 외부의 간섭이나 비판에 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자신의 길을 올곧게 가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지지자들 앞에서 천명한 것이다. 과연 이런 전 목사에게 우리가 회개나 사죄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사실 이 설교 한편만 들어 봐도 전 목사가 이해하는 복음, 믿음, 은혜 등이 얼마나 기괴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기독교신앙의 고귀한 언어들이 철저하게 전 목사 자신의 자유, 성공, 목회활동, 교회사역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데, 역시나 가장 끔찍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전 목사는 이 설교에서 인간이 완벽주의에서 벗어나서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 시점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라고 주장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도 바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나님에게 맡겨야만, 비로소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시편 37편 5절을 근거로 제시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그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께 맡길 때 인간은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고, 그 자유로움 가운데서, 혹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서, 결국 모든 일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매개로 하지 않는 어떠한 인간의 자율성이나 책임성도 말하지 않는다. 얼핏 보면 매우 신앙적이고 경건한 태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논리 속엔 ‘나’와 하나님만이 존재할 뿐, ‘나’의 타자들, 즉 ‘너’와 ‘그/녀’에 대한 ‘나’의 관계나, 하나님과 ‘나’의 타자들 간의 관계는 전혀 ‘나’의 고민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로지 하나님께 의지함, 하나님께 맡김, 또는 하나님을 믿음이라는 논리로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뿐인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사실상 ‘나’밖에 없으며, 만일 ‘나’의 판단으로 믿음이 잘 실천되었다면, 곧바로 ‘나’는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결국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문제가 먼저 해결되었다면, 그것으로 이미 남은 모든 문제도 해결된 것이며, 굳이 ‘너’나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나’의 타자들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전병욱 목사가 체질적으로 일체의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부정하고 오직 자신의 이해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에고이스트(이기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전 목사 자신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항변하겠지만, 그가 믿는 그런 하나님을 나로선 도저히 신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하나님은 그저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되는 알리바이일 뿐이고, 실제론 ‘나’라는 소우주에 갇혀 살면서 자신이 만들어낸 하나님이라는 환상을 타자와 관계 맺고 있는 현실보다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자신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진술이 계속해서 공개되고, 언론매체를 통해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전말이 대부분 공개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침묵으로 버티고 있으며, 심지어는 당당하게 홍대새교회를 개척하여 삼일교회 시절에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목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라는 자기 환상 속의 허구적 대상의 힘을 빌려 자신이 처한 현실을 (타인의 자유에 대해선) 너무나도 무책임하면서도 (자신의 자유에 대해선) 너무나도 책임 있는 모습으로 돌파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런 책임적 자세로 말이다. 그래서 전병욱 목사의 존재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 나온 이래로 한국의 개신교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신학적 질문을 환기시킨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보다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럴 권한은 주님에게도 없어요.” 전병욱 목사에게 끔찍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아직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전 목사는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노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밀양》에서 나온 저 질문은 개신교의 ‘값싼’ 대속론, 요컨대 자신이 죄를 지은 사람에게 용서를 비는 과정, 어쩌면 용서받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감내해야할 그 처절한 속죄의 과정을 생략하고, 대신에 보다 ‘근원적인’ 죄를 저질렀다고 하는 신 앞에서 용서를 구하고 신의 아들의 대리적 속죄를 통해 인간이 아닌 신으로부터 아주 간단하게 사면 받는 과정을 제도화한 개신교의 그 독특한 죄와 고통의 망각 구조에 대한 성찰을 자극하면서 등장했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속죄가 정말 속죄일 수 있냐고,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일말의 진지한 접근조차 생략하고 있는 속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이런 식으로 속죄와 구원을 제도화한 신을 우리가 과연 신뢰할 수 있겠냐고 말이다. 《밀양》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주인공 신애가 자신보다 먼저 신에 의해 이루어진 살인범 박도섭의 속죄와 구원 앞에 절망하며 신에게 항거하게 된 것도, 결국엔 개신교의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대속 구원의 논리가 지니고 있는 현실의 모순과 대면하면서부터였다. 그런데 전병욱 목사는 바로 그러한 모순적인 대속 구원의 논리를 철저하게 내면화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았음을 당당하게 선언하며 이제 다른 이들에게까지 ‘자유로움’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전 목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삶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타자의 고통에 대한 망각이나 피해자에 대한 책임 회피가 불가피한 것처럼 현실을 왜곡되게 인식하고 있다. 그는 ‘나’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절대화함으로써,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한 책임 회피마저도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비윤리적 구원론의 적자처럼 보인다. 피해자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교도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 평안을 되찾은 《밀양》의 살인범 박도섭 같기도 하고, 성찰 없는 믿음 내지는 정의 없는 복음을 손쉽게 소비하며 한국교회 고속 성장의 시대를 견인한 무수한 보통의 개신교인들의 표본 같기도 하다. 즉, 고속 성장의 교회부흥 시대에 형성된 ‘나’만의 신앙세계를 체화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갖게 된 무수한 보통의 개신교인들의 전형성을 이른바 ‘복음적’으로 이념화하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러한 전형성을 오늘날 시대정신이 된 지배이데올로기를 통해 ‘신앙적’으로 현실화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 바로 전병욱 목사인 것이다. 이처럼 전 목사는 설교를 통해 자신의 실존을 뻔뻔하게 정당화하고 있다.


3. 그들은 왜 전병욱 목사를 다시 불러내야만 했을까?

문제는 이러한 방식의 정당화/합리화가 다른 이들에게까지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예컨대 전 목사는 설교의 후반부에서 본문에 대한 주해를 마친 뒤, 곧바로 21세기의 성공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를 언급하면서 메시지에 대한 현실적 적용을 시작한다. 정확히 얘기하면, 경제전문지 《포춘》의 선임기자인 애덤 라신스키가 쓴 『인사이드 애플Inside Apple』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것인데, 이 책은 한 마디로 MBA가 가르치는 모든 현대 경영학 이론을 전면적으로 거스르고도 세계 최고 기업으로 우뚝 선 애플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다각도로 분석해 애플 파워의 원천을 분석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전병욱 목사는 라신스키가 밝혀낸 애플의 강점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런데 애플이 왜 강한가? 그 안에 자기 자신으로서의 자유로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스티브 잡스가 했던 일이 무엇이냐? I play my own game. 나의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게임을… 다른 사람에게 맞춰 가지고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나, 그 사람이 얼마나 기뻐하나 싫어하나… 그래서 남에게 맞추는 게임이 아니라 I play my own game. 내 자신의 게임을 한다는 거에요. (이 책의) 마지막 권면이 뭔지 아십니까? Play your own game. 우리에게도 너 자신의 게임을 하라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가 있지 않습니까?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 안에서 자유로움 가지고 자기 노래 부르고, 자기 게임을 하면 누구나 다 강해집니다.”

위의 진술을 통해 전 목사가 과거 삼일교회 시절부터 지금의 홍대새교회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청년층을 중심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지지를 받으며 명성을 구가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의 한국사회에서 누구보다도 성공에 목말라 있지만 그것이 세속적인 욕망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그것을 표출하지 못했던 보수적 신앙을 가진 개신교인들에게 전 목사는 영적으로 건강한 삶이 세속적 성공을 보증한다는 신념을 정당화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를 제공했다. 그리하여 그의 설교는 세속적 성공에 대한 욕망이 그 지지자들로 하여금 영적 삶의 태도를 자극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마침내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철저하게 나누면서도 동시에 세속적 성공과 신앙적 승리를 일관된 지평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진술처럼 전 목사에겐 애플의 성공 신화와 자신이 제시하는 신앙적 승리의 원리는 결코 상반되지 않는 것이다. 둘은 동일한 논리구조 속에서 진행된다. “Play your own game!” 물론 하나님은 아무런 변수가 되지 않는다.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병욱 목사가 그동안 제시해온 성공하는 신자의 라이프스타일은 세속적 성공에 대한 욕망을 신앙적 승리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를 갈망해온 한국 교회 일부의 집단적 감정구조를 안전하게 자극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날도 전 목사는 모든 책임을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라는 존재에게 떠넘기고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셨다는 근거로 성서의 다양한 본문들을 (맥락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인용했다. 그런데 홍대새교회에 모여든 그의 지지자들은 그런 전병욱 목사의 주장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기꺼이 그 자유로움을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로 문제 삼아야 할 지점은 이러한 전병욱 목사의 기괴한 설교 및 그 설교에 담겨 있는 신학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전병욱 목사가 홍대새교회와 함께 이토록 화려하게 컴백할 수 없었다면, 그의 설교나 신학 역시 자연스럽게 사장되었을 것이다. 그의 책은 이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며, 그의 설교 역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전 목사가 저런 설교를 할 수 있도록, 아니 과거 삼일교회에서 했던 것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성공지상주의 신앙을 설파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는, 다시 말해 그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게 만들어주고 있는, 홍대새교회의 전병욱 목사 지지자들이야말로 진짜 문제인 것이다. 만일 전병욱 목사에게 평소 배운 대로 믿고 행동하여 전 목사를 다시 살려낸 지지자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홍대새교회도 그리고 후안무치한 전 목사의 컴백도 없었을 것이다.

그날 3부 예배가 끝나자 나는 얼른 나와서 다음 예배 시간이 될 때까지 생각을 좀 정리하려고 홍대새교회가 들어서 있는 건물 1층의 커피숍에 들어갔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마침 내 옆으로 방금 나와 마찬가지로 예배에 참석하고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화를 들어보니 두 사람은 부녀지간이었는데,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전병욱 목사의 설교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마도 딸이 아버지를 예배에 이끌고 온 것 같았다. 딸은 왜 자신이 그토록 아버지를 여기에 데려 오고 싶었는지, 자신이 왜 전병욱 목사의 설교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 전병욱 목사의 설교가 어떤 점에서 아버지한테도 필요한지를 한참 동안 설명하고 있었다. 그 얘기를 다 듣고 아버지도 자신이 설교를 듣고 느낀 바를 얘기해주며, 두 사람은 전병욱 목사에 대한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딸이 무슨 일이 있는지 밖으로 나갔고 커피숍 안에는 아버지만 남게 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 교회의 교인은 아닌데, 전병욱 목사와 교회에 관심이 생겨서 방문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 혹시 대화 좀 나눌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 아버지 되는 중년 남성은 자신도 이 교회의 정식 교인은 아니며, 그저 딸이 예배에 같이 가자고 권유해서 온 것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의외로 대화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그와 나눈 대화를 재구성해보았다.

나: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스캔들에 관해 아십니까?
그: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집이 숙대 근처입니다. 우리 딸도 삼일교회를 다녔습니다.
나: 지금 이 홍대새교회의 개척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교회와 사회 각계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아시겠군요.
그: 네. 그것 역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 그런데도 어떻게 딸을 이런 곳에 보내고, 또 같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으세요? 전병욱 목사가 혐오스럽지 않습니까?

그의 대답은 놀랍게도 방금 전에 전병욱 목사가 설교에서 자신을 변호했던 논리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 전병욱 목사가 흠이 많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그를 들어서 쓰시는데, 과연 인간이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나: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나님이 전병욱 목사를 계속 사용하신다고 보는 것이죠? 하나님이 저렇게 물의를 일으킨 인물을, 아직 충분한 사과나 반성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사용하실 리가 있을까요?
그: 글쎄요. 전병욱 목사가 반성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거겠죠. 그러나 어쨌든 그의 설교를 통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그를 쓰고 계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아닐까요? 비록 내가 생각하기에 전병욱 목사가 한국교회의 다른 중견 목사들에 비해 영성이나 카리스마가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시대 청년들에게 갈급한 부분을 잘 채워주고 있으며, 실제로 내 딸 역시 전병욱 목사의 설교를 통해 신앙생활을 잘 해내가고 있어요. 인간적·세속적 잣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죠.
나: 혹시 홍대새교회 교인들도 아버님과 같은 생각일까요?
그: 잘은 모르지만, 내 딸을 통해 듣기론 이 교회 사람들도 전병욱 목사의 삼일교회 시절 과오에 대해선 (그 정확한 수위나 정도에 대해선 외부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일단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간주하고 있어요. 우리 딸도 자세히는 말 안 하지만 전 목사가 실수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홍대새교회 교인들도 전병욱 목사의 실패에 대해선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나: 선생님 말씀대로면, 홍대새교회의 교인들은 기존의 다른 이단사이비 종파에서처럼 이성적 판단을 상실한 채 맹목적으로 교주를 추종하고 있는 이들이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그: 네. 그렇죠. 오히려 전병욱 목사 개인의 문제와 전병욱 목사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구분하면서, 이 분들은 전병욱 목사가 아니라 전병욱 목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봐요.
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전병욱 목사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먼저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또 자신의 범죄에 상응하는 대가를 철저하게 치루고, 또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그런 반성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부분은 좀 아쉬워요. 하지만 전병욱 목사 말마따나 인간이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고, 홍대새교회는 설교자로서 전병욱 목사의 강점에 최대한 집중하며 전병욱 목사와 함께 자신들의 길을 열어가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결국 좁게는 설교의 은혜, 넓게는 전병욱 목사의 사역 전반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열어 가시는 삶의 길이 더 소중하기에, 전 목사의 지난 과오쯤은 충분히 용납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대화를 통해 내가 깨달은 것은 전 목사로 하여금 교회 개척의 용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자극한, 또는 그것이 바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게 만들어준 홍대새교회 교인들은 적어도 그의 카리스마에 일방적으로 휘둘리고 있는 추종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판단 가운데서 전 목사를 밖으로 끌어냈고, 그의 후견인을 자처하며 전 목사를 이 교회의 설교자이자 목회자로 세운 것이다. 전 목사가 그들을 불러내기 전에 그들이 전 목사를 먼저 불러냈고, 전 목사는 그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 과거보다 더 강화된 성공지상주의를 설파하며 자신을 향한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홍대새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세상의 온갖 비난마저 뚫어내고 전 목사를 설교자/목회자로 세울 수 있게 만든 그 원동력은 대체 무엇일까? 전 목사 스스로도 인정하고 홍대새교회 교우들도 이미 인정하는 것처럼, 전 목사는 죄질이 극히 불량한 성범죄자로서 이렇게 쉽게 목회를 재개해선 안 되는 인물인데도, 그들은 왜 오직 전병욱 목사여야만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전 목사의 그 무엇이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함께 교회를 계속 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을까? 그들은 어떤 ‘감정구조’를 갖고 있기에 전 목사에게 이토록 지독하게 매료되어 있는 것일까? 


4. ‘성공적인 삶’에만 몰두한 그들의 ‘욕망의 경제학’

홍대새교회의 개척 과정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하고 나서 그런 확신이 들었다. 전병욱 목사가 직접 나서서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만들었다기보다는 그의 메시지와 사역이 주는 매력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혹은 그 메시지와 사역이 제공하는 자극이 다시금 절박했던 이들이 전 목사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대외적으로 변호하면서 마침내 그를 강단 위에 세우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어쩌면 전 목사의 메시지나 사역과 함께 하면서, 그를 따라 신앙의 영역과 세속의 영역 양측에서 모두 성공하는 인생의 게임을 즐겨온 이들에게 전 목사의 갑작스러운 공백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전 목사가 성폭력 스캔들을 일으킨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사역을 중단함으로 인해 더 이상 자신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지금껏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정당화해온 이데올로기적 보충물의 역할을 더 이상 전 목사가 해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야말로 진짜 심각한 위기로 다가왔을 것이다. 전 목사의 메시지와 사역으로 총칭되는 그 어떤 ‘성공한 삶’의 상상계가 자신들의 삶을 더 이상 지탱해줄 수 없다고 상상했을 때 맞닥뜨려야만 했던 그들의 불안과 공포는 우리로선 짐작조차하기 어려운 것이다. 길게는 20년, 짧게는 몇 년 동안 전병욱 목사의 메시지에 심취하여 그가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이나 성공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해 온 이들이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 가운데 적극적인 일부가 자기 삶의 안정과 지속을 위하여 ‘전병욱 구하기’를 자발적으로 시도했으리라는 가정은 충분히 타당하다. 여기서 자신이 범한 죄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잠적 중이던 전 목사를 밖으로 끌어내어 홍대새교회를 만든 이들이 갖고 있었던 그들만의 ‘합리적 신앙’을 프로이트의 ‘리비도 경제학’의 관점에서 풀어보자.

쉽게 말해 리비도 경제학(libido economics)이란 한 대상에의 ‘몰두’가 항상 다른 대상에 대한 ‘무관심’과 병행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한 이론이다. 리비도는 라틴어에서 갈망, 욕망을 의미하던 단어인데, 프로이트는 이것을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심리적 에너지로 재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 주체에게 있어 리비도의 양은 제한되어 있으며 자아의 욕망생산(쾌락)은 이 제한된 양을 효과적으로 투자하여 항상 안정된 상태로 유지하려는 경향적 법칙을 갖는다(‘쾌락원칙’).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만족을 얻는 것이 리비도 경제학의 원리인 것이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리비도 경제학은 소자본가의 경제학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치 자본가가 투자 대상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인간 주체도 자신의 욕망을 투여할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비도 경제학을 구성하는 핵심에 바로 ‘몰두’의 원리가 존재한다. ‘몰두’란 리비도가 한 대상에만 집중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와 같은 리비도의 집중 현상이 ‘카덱시스’(cathexis)이다. 한 대상에 대해서만 배타적으로 리비도가 집중되는 카덱시스는 리비도의 절대량을 그 대상으로만 향하게 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주변의 다른 대상들에도 투여되어야 할 리비도의 양을 감소시킨다. 이를테면 선택과 집중의 원리 또는 배제와 차별의 경제학적 원리가 욕망의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리비도 경제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병욱 목사를 불러내어 홍대새교회를 함께 만든 이들 역시 자신들이 몰두해야 할 대상을 전 목사의 메시지와 사역을 통해 생산되는 ‘라이프스타일’, 혹은 ‘성공적 삶’의 이데올로기로 한정지었고, 다른 여타의 문제들에 대해선 어떠한 심리적 에너지도 투여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 목사의 성범죄 여부나 그의 인격적 미숙함, 사임 당시 삼일교회와의 약속, 고액의 전별금 문제, 개척에 대한 외부의 비판, 그리고 전병욱 목사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들, 그에게 실망한 많은 신자들, 개신교의 대(對)사회적 이미지 등등. 한정된 리비도(자본)를 가지고 최대한의 만족(이윤)을 얻기 위해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따라 자본을 투자하는 리비도 경제학, 즉 오로지 전 목사가 가져다줄 쾌락에게만 ‘몰두’하고 있었던 홍대새교회 멤버들은 자신들의 신앙적 욕망의 경제학에서 여타의 다른 변수들을 의도적으로 또는 전략적으로 배제해버렸다. 전 목사과 함께함으로써 유지되는 성공주의 이데올로기가 그들에겐 모든 신앙적 리비도가 집중되는 카덱시스였던 것이다.

따라서 전병욱 목사와 함께 하는 ‘성공적인 삶’이라는 단 하나의 욕망생산, 혹은 그 쾌락추구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이 먼저 전 목사를 다시 목회현장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전 목사는 자신을 향한 그들의 부름을, 모든 죄를 이미 용서하고 자신을 계속 쓰고자 하는 신의 부름으로 간주했던 것이고, 이제 억울하게 고난당하는 ‘주(主)의 종’의 이미지까지 덧입혀져 과거보다 한층 진화된 ‘성공주의 이데올로기’를 홍대새교회 강단에서 설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전 목사가 평소 자신들에게 가르쳐준 논리에 입각하여 위기에 빠진 자신들과 전 목사를 모두 구원했고, 전 목사는 이제 자신을 구원해준 이들을 위하여 더욱 열정적인 목회사역에 돌입한다. 그런 점에서 홍대새교회의 전 목사 지지자들은 그의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2차적 고통을 재생산하고 있는 공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적 가해가 성폭력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이나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로 인해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고 했을 때, 전 목사와 함께 하려는 욕망에만 충실한 그들의 리비도 경제학이 결국엔 전 목사의 성범죄 피해자들에겐 끔찍한 2차적 가해를 낳고 있는 셈이다.   


5.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앞서 전병욱 목사의 존재가 영화 《밀양》에서 제기된 신학적 질문을 환기시킨다고 말했었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보다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그럴 권한은 주님에게도 없어요.” 교도소에서 기독교 신앙에 귀의한 살인범이 이미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고 확신했던 것처럼, 전 목사 역시 이러한 신앙 속에서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다고 강단 위에서 당당하게 말한다. 《밀양》에서 신애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전 목사에게 끔찍한 폭력을 당한 여성들이 분노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전 목사가 누리는 주님 안에서의 자유로움, 그것은 대체 어떤 상태일까? 피해 여성들은 동일하게 주님을 영접하고도 전 목사에게 당한 폭력의 기억 때문에 치가 떨려 한 순간도 평안할 수 없는데, 그녀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범죄자는 이미 마음의 자유로움을 얻고 불과 1년 만에 목회현장으로 복귀하여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들먹거리고 있다니? 

이 대목에서 전 목사를 데려와 홍대새교회를 만든 이들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어진다. 어쩌면 당신들의 소중한 교우였을지도 모르는 그 피해 여성들의 절규를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공유한 적이 있는가? 아마 그랬다면 이렇게 홍대새교회를 만들고 전 목사를 다시 강단에 세우는 짓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겐 피해 여성들의 신음이나 비명은 애초부터 들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은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의 경제학에 탐닉하고 있던 그들은 전 목사의 성공주의 신학과 자신들의 성공 욕망을 동일시하는 데만 몰두했을 뿐, 전 목사의 그런 ‘성공적인’ 목회 이면에서 욕구 해소의 도구로 희생된 여성들의 시선으로 하나님께 다가가려는 노력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 목사에게서 《밀양》의 살인범과 같은 섬뜩함을 느끼지도 못했던 그들이니, 전 목사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마음 깊이 위로하고, 그녀들의 고통을 자신들의 생생한 ‘현실’로 앓음으로써, 그녀들의 자리로 나아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적 실천을 기대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비록 용서와 화해, 고통과 치유, 속죄와 구원이 반드시 기독교 신학만의 주제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밀양》의 중심서사가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이 다름 아닌 지역의 평범한 개신교회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창동 감독은 《밀양》에서 바로 개신교를 향해 속죄와 구원을 둘러싼 신학적 토론을 제기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을 제출했다. 감독 본인은 《밀양》이 인간과 종교의 문제, 인간과 구원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밀양(密陽)으로 상징되는 일상적 공간과 그 속에서 상처받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그 상처의 치유 방식으로서의 사랑에 대해 그린 멜로영화일 뿐이라고 강조했지만, 결국 그도 자신의 영화로 인해 만들어진 신학적 토론의 장에 참여하고 말았다. 바로 2010년 영화 《시》에서 전작인 《밀양》을 통해 제기된 신학적 질문에 대한 감독 자신의 답변을 담은 것이다.

《시》에서 우리는 양미자라고 하는 인물이 자신에게 뜻하지 않게 다가온 비극적인 타인의 희생을 어떤 방식으로 애도하고 속죄하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집단 성폭행을 당한 어느 소녀의 자살 사건에 자신의 손자가 가해자로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가 취한 행동은 손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죽은 소녀의 엄마와 돈으로 합의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양미자는 손자를 경찰에 고발하고, 소녀에게 바치는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를 묵묵히 완성해 나간다. 아네스는 죽은 소녀 박희진의 세례명이자, 가톨릭의 전통에서 성녀로 추앙된 순교자의 이름이다. 양미자가 완성한 「아네스의 노래」, 그것은 자살한 소녀 아네스의 목소리로 양미자가 대신 부르는 비탄에 찬 애가이자, 검은 강물로 뛰어 내리기 직전 다리 위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회상했을 아네스를 양미자가 손자를 대신하여 애도하며 속죄를 구하는 시편이다. 

「아네스의 노래」가 읊어지던 엔딩 장면에서 그것을 읊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이 처음에는 양미자였다가 나중에는 죽은 소녀로 바뀌는 설정이나, 떠난 이는 양미자인데 결국 버스에서 내린 후 카메라가 비추는 사람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나왔던 그 소녀라는 것과 더불어 카메라가 양미자의 주변 풍경을 비추다가 어느새 소녀가 평소 거닐었던 공간의 풍경으로 옮겨가는 설정, 그리고 마침내 검은 강물을 내려다보던 아네스가 고개를 돌려 관객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띠는 장면에서 우리는 감독이 두 인물이 하나로 겹쳐지는 상징적 결말을 의도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인터뷰에서 감독은 양미자가 단지 소녀의 목소리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소녀와 운명을 일치시키는 걸 받아들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미자가 아네스이고 아네스가 바로 양미자라는 것. 그래서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이미 죽은 아네스의 플래시백일 수도 있고, 소녀의 시선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고 그녀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양미자의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선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양미자는 결국 아네스가 되어 아네스의 길을 뒤따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양미자는 자신의 죽음으로 손자의 죄를 대속하고 소녀의 한(恨)을 신원한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우리에게 이것이 바로 가해자 또는 그 가해자의 죄책을 공유하는 이들이 죄를 씻으며 희생자를 애도하는 참회의 한 방식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참석했던 홍대새교회의 예배에서도, 전 목사의 설교 그 어느 곳에서도, 그리고 그 교회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수백 개에 달하는 게시물 어디에서도 전 목사에게 유린당한 아네스들에게 속죄를 구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물론 전 목사에게 참회를 촉구하는 이들도 없었다. 전 목사의 복귀를 환영하며, 그의 사역과 홍대새교회의 앞날을 축복하는 목소리만이 홈페이지에 가득할 뿐이었다.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와 달리 아네스들의 편에 서 계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속죄를 구하지 않는 전 목사의 편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성공과 강함에 대한 병리적 집착에 가까운 욕망이 낳은 이 기괴한 형태의 신앙관이 과연 한국교회 일반의 신앙관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전 목사와 홍대새교회가 향유하고 있는 그 성공지상주의 복음으로부터 우리는 전혀 자유롭다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의 관심이 전 목사의 설교를 향해 있는가, 아니면 피해 여성들의 절규를 향해 있는가에 따라 그 대답은 달라지리라. 홍대새교회는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이 될 것인가, 그리스도를 소비하는 신앙인이 될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다시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1) 정재원, “전병욱 사건은 한국교회 현주소”

2) 정재원, “우리 안의 ‘전병욱’을 직면하자”

3) 유승태, “왜 홍대새교회로 청년들이 몰리나?”




* 이 글은 "그들은 왜 전병욱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제목으로 <뉴스앤조이>에 실렸던 글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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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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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p
    2014.04.14 16: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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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y my own game"이란 주제가 이시점에서 전ㅂ 욱 씨의 설교주제라면 나로서 그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됨을 금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반복적인 즉 연쇄 범행자들이 갖는 생각구조이기 (thought pattern) 때문이다. 성범죄란 단 한번 행함으로서 발각나는 것이 아니므로 그동안 과거에 그런 범행이 주욱 있었음을 암시한다. 습관적인 연쇠 범행자들의 특징이 남보기에 평범하지만 남몰래 저지르는 범행에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뒷골에서는 자신만이 아는 게임이있다. 즉 mind game이다. 그들은 범죄행위 보다 그 게임의 자체에 더 쾌감을 느낀다.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져가는 그 자체…
    그래서 그의 목회에 대한 열성과 동기는 다름이 아닌 mind game 또는 play my own game일 가능성이 있기때문,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쾌감이다. 즉 피해자들이나 그를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던지는 자신의 승리! 그들 앞에서 그는 당당하게 미소를 지으며 "봐라, 어쩔래???" 등의 쾌감! 바로 이것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는 자신의 범행성 생각구조를 은폐하기위해서 많은 계산 즉 선한사업, 선교등등을 펼쳐나갈 것이고, 이런 행위와 소식은 그에게 있어서 승전이나 다름이 없고, 피해자나 반대자들 귀에는 많은 괴로움이 될 것을 생각하면서 또 한가지의 쾌감을 느끼게 되리라. 그러면서 범행성 행위는 중지되지않을거라고…이제 다음에 당하는 피해자들은 더 약해지는데, 이유는 "많은 고발이 있었지만 이렇게 건재하지않냐?" 이것이 다음 피해자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될지도 모름다. Mind game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주인공들이 갖는 특징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그의 범행성 생각구조 즉play my own game 을 설교를 통해 노출했는 데도 그의 이것을 알아 차리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그는 무슨생각을 하고있을까? 조롱???
    (다음에 계속….)
  2. jp
    2014.04.14 16: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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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justice)란 범죄를 고발하고 그 댓가를 치르게 하고, 피해자를 돌아보는 것이다. 교인이 정의에 대해 무관심해 버린다면 그들은 그 교회 교인은 될지 몰라도, 또는 십자가를 목에 걸고다니는 기독교인(Christian)은 될지 몰라도 하나님의 사람은 되지 못할 것이다. 성경과 하나님은 (절대적으로)정의를 원하신다. 정의를 위해서는 때로 고통도 따르는 것이다. 그 교회 교인들은 정의가 동반하는 고통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나?
  3. 2014.04.15 03: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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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범행은 반복적인 범행이다. 발각나고나면 더욱 조심할뿐 사라지는 버릇이 아니다.
  4. 2015.01.3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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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샌델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붙여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정의와 도덕이 시장과 만날 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안기순 역, 와이즈베리)을 읽는 내내 샌델이 인용하는 수많은 사례들 앞에서 먼저 그의 성실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그 많은 사례들을 수집하고 검토하고 분석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사실 이 책이 제기하는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샌델의 저작들, 가령 공전의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나 『왜 도덕인가?』를 읽은 사람, 혹은 샌델의 하버드 강의 동영상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 제목만 봐도 샌델이 이 책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샌델의 2012년 최신작『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부제는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시종일관 유지되는 중심적인 쟁점은 “시장화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시장화(혹은 상품화)로 인해 인간과 사회에 나타난 폐해는 무엇인가?”로 정리할 수 있다. 그 폐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논의된다. 첫째는 불공정성(또는 불평등성)이고, 둘째는 (가치 또는 도덕적 선의) ‘부패’ 또는 ‘타락’. 샌델이 시장화(상품화)의 폐해를 불공정성과 부패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그의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와 『왜 도덕인가?』에서 제기된 두 가지 테마, 즉 ‘정의’와 ‘도덕’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이르러 마침내 “시장”, 더 정확히는 “자본”의 문제와 만남으로써 더욱 중요한 정치철학적 논의의 장(場)을 열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라 말하지 않는다면…
 
샌델은 이 책에서 ‘시장지상주의’,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낸 삶의 방식, 그리고 그러한 삶의 방식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도덕적 (판단의) 위기를 전세계에서 수집한 사례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그러나 매번 조금씩 다르게 제시한다. 물론 우리에겐 시장지상주의와 같이 그 의미 전달 방식에 있어 상당히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차라리 훨씬 ‘추상적인’ 어떤(?) 단어가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더 친숙할지 모른다. 시장지상주의라는 협소한(?) 혹은 소박한(?) 표현으론 도저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과 그것이 만들어낸 우리네 삶의 현실을 다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을 모두들 본능적으로 체감하고 있을 터. 그 단어가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명칭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고, 그래서 그것이 표상하는 현실의 구체적인 삶이 무엇인지, 그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수한 폭력과 야만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언급하기를 꺼려하는 그 이름. 바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다.
 
그러고 보면 샌델은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이상하리만치 잘 안 쓰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신자유주의라 말하지 않고, ‘시장화’니 ‘시장지상주의’니 또는 ‘경제화’니 하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선 너무나도 소상하게 밝혀내며, 그 여파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사회적 토론을 제기하지만, 정작 샌델은 그런 시장(지상주의)화가 언제부터 어떻게 누구에 의해 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제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선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다. 시장화나 경제화 같은 용어들이 아무리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 편리한 용어라 할지라도, 거기엔 자본주의 경제를 작동시키는 법률, 사회적 관습 등을 포함하는 각종 제도나 국가의 정책,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이데올로기적 신념 등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통치성’(governmentality)이라 명명된 분석틀을 가지고 (신)자유주의 분석에 몰두했던 말년의 미셸 푸코와, 그런 그의 작업을 계승해온 일단의 연구자들에 따르자면, 신자유주의는 일련의 경제학적 논리들과 정치-사회적 실천들을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개개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적 주체성을 형성하도록 만드는 특정한 주체화의 테크놀로지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사회적 주체성 형성의 관점에서, 즉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출현한 특권적인 권력작동방식이자 주체생산양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목도하는 오늘날의 주체성의 다종다기한 형상들이 결국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정치적 합리성(political rationalities) 또는 통치이성(governmental rationality)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각주:1]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샌델의 책에는 사태의 ‘결과 보고’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넘쳐나지만, 사태의 ‘원인 분석’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샌델이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들, 다시 말해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을 때 도덕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들(이를테면 우정이나 인간의 장기(臟器), 어린 아이들, 명예, 대학 입학허가 등)에 대해 소개하면서, 시장화에 반대하는 논리의 주된 근거를 공정성과 부패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을 살펴보자.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살펴보려면 이 두 가지 논쟁을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정성에 관한 반박에서는 사람들이 불평등한 조건이나 경제적 필요성의 긴박한 정도에 따라 물건을 사고팔 때 생겨날 수 있는 불평등을 지적한다. 이러한 반박에 따르면, 시장 교환은 시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항상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농부가 굶주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자신의 신장이나 각막을 팔겠다고 동의할지 모르나 정말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불공정하게 강요받았을 수도 있다. […] 공정성과 관련한 논거에서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은 동의, 좀 더 정확하게는 공정한 조건하에 이루어지는 동의이다. 시장을 이용한 재화 분배에 찬성하는 주요 논거 중 하나는 시장이 선택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다양한 재화를 주어진 가격에 팔지 말지를 사람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 (157~158쪽)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표현이다. 대체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왜 만들어진 것인가? 물론 샌델은 그런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이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단락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부패에 관한 반박은 다르다. 이는 시장의 가치평가와 교환이 특정 재화와 관행을 변질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반박에 따르면 특정 도덕적 ‧ 시민적 재화는 사고파는 경우에 가치가 감소하거나 변질된다. 부패에 관한 논쟁은 공정한 거래계약 조건이 성립됐다고 해서 충족되지는 않는다. 평등한 조건과 불평등한 조건 아래서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 여기서는 동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가치 평가와 교환 때문에 변질되었다고 여겨지는 재화의 도덕적 중요성에 호소한다. […] 부패 논쟁은 재화 자체의 특성과 재화를 지배하는 규점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공정한 거래 조건을 형성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힘과 부에 불공정한 차이가 없는 사회에서도 여전히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157~159쪽)

샌델은 공정한 또는 평등한 거래계약 조건이라는 것을 가정하고서, 다시금 그 조건 하에서도 여전히 시장화로 인한 도덕적 위기는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샌델의 질문은 시장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까지 나가야 한다. 하지만, 샌델은 공정한 계약조건을 가정하면서, 시장 안에 근본적으로 내속하는 부정의나 불평등성,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착취’와 ‘계급적대’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 공정한 계약조건 속에서 재화의 본래적 사용가치가 왜곡되고 부패하는 문제로 건너뛴다. 자본주의 사회가 출현하는 순간부터, 아니 더 정확히는 화폐가 등장하면서부터 모든 물건은 그것의 쓸모(사용가치)가 아닌 시장에서의 교환가능성(교환가치, 즉 상품가치)로 평가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이제 모든 물건의 교환가치는 화폐 속에만, 그리고 그 물건의 사용가치는 상품 속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것은 샌델이 말하는 식으로 시장지상주의사회가 도래하기 전부터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공정한 계약조건’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공정한 계약조건’이라고 하는 샌델의 전제 자체를 의심하고 싶다. 시장에서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데 자발적으로 계약한 주체들의 실천이 정말로 실천 그 자체로선 아무 문제가 없는 평등한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일까? 어쩌면 그들은 체제 안에서 자신의 생존 기회를 발견하려는 고투 가운데서, 그런 계약을 자발적으로 그러나 사실은 체제가 규정한 틀 안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즉 생존을 우선시한 전략적 타협의 일환으로 선택을 요구당한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그들의 계약이 체제가 설정한 행동의 범주 밖에서 이루어진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것은 자율성과 타율성이 복잡하게 뒤섞인 체제와의 치열한 협상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치 않을까? 우리가 어떤 선택을 주체의 순수한 자발성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그 선택이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체제 내지는 사회가 구조화하고 있는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경계 자체를 뛰어넘은 차원의 것, 다시 말해 체제의 질서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다소 극단적인 논리임을 인정하지만, 우리가 ‘자발성’이라는 말에 담긴 ‘자유’의 의미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주체가 그런 자유의 행위(act)를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윤리학 본연의 의미에 입각한 윤리적 주체, 또는 주체의 윤리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체제가 설정한 행동의 경계 자체를 뛰어넘는 윤리적 선택, 그런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로 얻게 되는 체제의 질서 바깥이란 곧 상징적/사회적 ‘죽음’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바꿔 말하면, 윤리적 주체의 탄생은 ‘죽음’ 이후에야 도래한다는 것을. 이를테면 오늘날 널리 회자되는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라고 하는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개개의 노동자들은 자기계발과 자기향상을 위해 노동 이외의 여가시간까지 모두 희생하여 자신에게 끊임없이 투자하고, 스스로의 비용과 편익을 철저하게 결산하며 삶을 관리해나가는 ‘자기 자신의 기업가’로 살아간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노동자들의 이러한 자기계발은 철저하게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인적자본으로서 노동시장 안에서 높은 상품가치를 획득할 수 없다는 체제의 질서를 내면적으로 규범화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이러한 자기계발이 과연 자유로운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체제에 의해 주체의 외부에 설정되어 있던 선택지의 조건을 개개인들이 벗어나는 순간, 그들이 맞이하게 되는 것은 오직 ‘죽음’ 뿐이다. 역설적으로 말해 ‘죽음’이 아니고선 현재로서 이 체제의 질서 바깥으로 완벽하게 탈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체제가 우리의 외부에 배치하고 규정해놓은 질서나 구조를 우리는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부자유한 조건 속에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따라서 탈주=죽음이라고 하는 위험이 뻔히 예측 가능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체제 안에서 개인들의 자발적인 계약이란 순전히 공정한 것도, 완벽하게 평등한 것도 아닌, 차라리 반(半)강제적인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 우리가 정말로 시장에 대한 도덕적 논쟁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러한 우리의 삶의 조건, 즉 과거에만 해도 비(非)시장적 규범에 지배받던 삶의 영역들에까지 시장원리가 파고든 오늘의 현실이 과연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부터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질문은 앞서 말한 이러한 삶의 조건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적 · 제도적 차원의 메커니즘, 즉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자본의 새로운 지배양식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비판과 궤를 같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덕적 분노를 넘어 신자유주의 분석으로
 
샌델은 차마 말하기를 꺼려하고 있는 그 신자유주의를 푸코의 통치성 이론의 관점에서 정리한다면, 그것은 곧 시장의 논리를 사회 전체에 공고히 하기 위해 국가가 법적 개입을 통해 제도적 구조를 형성한다는 국가 개입의 원리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는 그 체제 내의 개인들의 활동을 조정하고 사회를 조직화하는 수단으로서, ‘경쟁’이라고 하는 시장의 제일원리를, 사회에 성공적으로 ‘접합’시킴으로써 탄생한 새로운 방식의 통치양식인 것이다. 요컨대 시장경쟁의 원리를 사회 전면에 강제적으로 도입하면서, 전에 없던 삶의 모든 것들에 대한 상품화가 시작된 것인데, 그러한 사회의 시장화란 결국 자본이 국가를 통해 새롭게 구축한 통치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굳이 푸코의 논의를 빌리지 않더라도, 샌델의 저작이 갖고 있는 이론적 결핍을 지적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예컨대 독일의 비판이론가 하버마스는 샌델보다 수십 년 앞서 후기자본주의의 구조적 병리성의 본질을 ‘생활세계의 식민화’라는 테제로 요약한 바 있다[물론 푸코도 자신의 신자유주의 통치성 분석을 통해 '경제적인 것'에 의한 '사회적인 것'의 포괄, 즉 정부(통치)에 의한 시장원리의 전면적 증식에 대해 말했지만]. 난해한 푸코의 통치성 분석까지 끌어올 필요도 없이, 하버마스의 저 간명한 테제만 갖고도 샌델이 변죽만 울리고 있는 “시장이 비시장적 영역으로 확대되는 현상”의 원인 분석을 훨씬 구체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가령 하버마스에 따르면,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체들 사이의 합리적 의사소통 행위를 통해 유지되어온 또는 그렇게 유지되어야 할 생활세계는 이제 화폐와 권력을 매개로 하는 체계 논리에 의해 침식되고 있다. 그 결과 문화, 사회, 인격이라고 하는 생활세계의 구성요소들이 파괴되며, 결국 문화적 의미상실, 사회적 규범들의 정당성 훼손, 개인의 인격성 파괴, 사회적 관계들의 물화(物化), 시민에 의한 비시민의 사회적 배제, 배제된 자들의 자기 소외 내지는 타자화 현상들이 나타난다.[각주:2] 물론 이런 현상들은 어느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전후 복지국가에서부터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어져온 후기자본주의적 통치성의 필연적인 귀결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하버마스의 생활세계의 식민화 테제가 샌델의 시장지상주의 테제보다 훨씬 분석적으로 가치 있는 이유는 적어도 하버마스는 생활세계를 식민화시켜버린 체계를 말함에 있어, 그 체계의 하위범주에 시장만을 한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생활세계를 식민화시킨 체계는 경제체계와 행정체계,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근대국가의 관료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이중적 체계의 등장과 더불어 사회의 물질적 재생산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인데, 문제는 자본주의적 근대화 과정 속에서 화폐와 권력을 매개로 한 이중적 체계가 생활세계로 침입하여 그것을 식민화하고, 마침내 그 고유한 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시장의 단독적인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 국가의 시장정책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란 점이다.
 
샌델의 책이 주는 많은 교훈과 장점들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만 읽고선 우리 시대의 위기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가늠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건 시장지상주의를 신자유주의로 바꿔 읽기 시작할 때 비로소 가능하리라 본다. 다만, 신자유주의가 언제부터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 신자유주의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계약조건의 불공정함이나 도덕적 가치 판단의 부패를 넘어) 우리 삶의 위기의 핵심적 요체가 무엇이고,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등을 탐구하려는 자극과 동기를 제공해준 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그 이상의 가치를 이 책에서 찾는 것은 글쎄…

ⓒ 웹진 <제3시대>

 


  1. Michel Foucault, The Birth of Biopolitics: Lectures at the Collège de France 1978-1979 (London: Palgrave Macmillan, 2010); 사카이 다카시/오하나 역, 『통치성과 자유: 신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서울: 그린비, 2011). [본문으로]
  2. 위르겐 하버마스/장춘익 역,『의사소통행위이론 2: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을 위하여』(서울: 나남, 20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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