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적 읽기로서의 '종교'



이해청
(성공회대 박사과정 / 탈식민성서해석학)

 


Ⅰ. 세속과 분리된 것으로서의 ‘종교’


     익숙한 어떤 것들과 관련해 사람들에게 당신이 당연시하는 그것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기원했고 또한 사용되어 왔는지를 아느냐고 물으면 곤혹스러워 한다. 말이 꼬이기 시작하고 급기야 왜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그래서 당연함 혹은 상식은 습속인 동시에 한 문화의 지배전략으로서의 권력이라는 주장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간혹 어떤 이들은 과감히 깨고 새로운 사고를 개척한다. 대홍수의 이야기를 번역하고 있던 자신에게 줄루족의 응기디가 역사적으로 정말 일어난 것으로 믿느냐고 물었을 때, 자신이 겪었던 일을 소개한 콜렌소의 이야기는 한 예일 것이다. 문화적 습속에 얽매여 자신들의 종교적 이야기를 당연시하고 강요하기까지 하는 종교인들과 달리 그는 "만일 한 명의 천진난만한 줄루인에 의해서 성서의 역사적 정확성이 의문시될 수 있다면, 어찌하여 기독교 선교가 이를 문제시하지 않은 채 다만 절대적인 진리로 성서를 선전하는 데에만 급급할 수 있단 말인가?"[각주:1]라고 되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콜렌소처럼 익숙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에 관해 되물을 용기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종교'라는 용어가 오늘날엔 비서구 세계와 관련한 서구문화의 지배와 실천을 보여주는 하나의 용어로서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한번쯤 되짚어 보는 일은 꽤 유용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구글에서 종교라는 용어를 검색하면, 신이나 조차연적인 절대자 또는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라고 나온다. 만일 이 설명을 접한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아브라함 종교들 중 하나를 믿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곳에선 종교란 규정된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와 그들이 가진 신앙체계나 문화적 체계를 말한다라고 나온다. 이것은 신을 전제한 앞의 설명보단 낫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세계의 모든 종교가 신앙체계로 설명될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종교학자 러셀 맥커천은 『종교연구 길잡이』라는 자신의 책 맨 앞에 "현실을 그 일상성 그대로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도 없다. …사회학자들은 언제나 다음과 같은 문제에 마주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일상성을 비일상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일상성이라는 게 얼마나 비일상적인 것인지를 알게 될 그런 방식으로 일상성을 환기시킬 수 있을까?"[각주:2]라는 부르디외의 말을 인용한다. 그러면서 책의 마지막 「연구자들」이라는 부분에서 학자들이 종교를 어떻게 정의해 왔는지와 관련해 13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실어 놓았다. 맥커천의 이런 편집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거와 달리 오늘날 종교에 대한 정의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실린 학자들 가운데 조너선 스미스와 토모코 마스자와의 논의는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스미스의 논의를 들어보도록 하자.[각주:3]


종교를 위한 자료 같은 것은 없다. 종교란 다만 연구자의 연구가 창조해 낸 것일 뿐이다. 종교는 비교하고 일반화하는 연구자의 상상적 활동에 의해, 연구자의 분석적 목적을 위해 창조된다. 종교는 학문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좀 더 특정하게는 종교사학자는 끊임없이 자의식적이어야 한다. 자료는 오직 그것이 종교를 상상하는 것에 관련된 어떤 근본적인 문제의 사례 역할을 하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다.


     경건한 신자들에게 스미스의 이런 논의가 안겨줄 충격은 상상할 만하다. 물론, 우려와 달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학자들이란 다 그렇지. 종교를 가슴이 아닌 머리로 배운 탓에 그런 것이지 라고 할 수도 있고, 게다가 오늘날 종교라는 개념에 대해 기독교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들이 부정적인 레토릭을 써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미스의 이런 논의를 단순히 지적인 허영심으로 치부하거나 각 종교들은 원래 종교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해서 해결될 문제일까? 장석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각주:4]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종교 연구자의 주장이 맞았는지 아니진 해당 종교의 신자들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제이 지(조나단 스미스)는 그런 생각이 도대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보겠다는 것인가? 그 누가 대표성을 가진다고 여긴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이가 스스로 자신을 그 종교의 대표자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런 식의 질문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그럴 듯해 보이는 이 관점이 얼마나 허황된지 금방 드러나게 된다.


     나아가, 인간 개념에 대해 의문을 표했던 푸코와 마찬가지로 "인간,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구인이 종교를 상상해 온 것은 지난 몇 세기에 지나지 않는다"[각주:5]는 스미스의 주장을, 그리고 이에 대한 반론으로 등장한 "그래서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종교의 역사를 다루는 모든 개론서에서 종교가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등장하여 심지어 구석기 시대에도 종교가 존재하였음을 말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호모 렐리기오수스라고 널리 알려진 말은 이미 인간의 선천적이고 보편적인 종교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각주:6]하는 질문을 소개한다. 그런 후 스미스의 논의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각주:7]


언어학에서 말하는 언어, 그리고 인류학에서 말하는 문화와 마찬가지로 종교라는 것이 경험적인 범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종교라는 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총칭하는 이차적인 추상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점은 존 모리얼과 타마라 손에 의해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이들에 따르면 "삶 속에서 종교적인 것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그 범주에 속하지 않은 여타의 것들과 구별될 수 있다."[각주:8]고 보는 관점은 1500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역사학자들에게 "종교라는 개념은 1500년대에 유럽에서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의 영역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의 일환으로 처음 도입"[각주:9]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라는 말에 해당하는 라틴어 렐리지오는 이전에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삶 속에 종교적인 것이라는 범주가 따로 구별되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500년대에 이르러서는 정치와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기 시작했다. "종교는 사람들이 주교나 교황에게 바치는 충성과 봉사의 일부를 차지하고 싶어 했던 국왕이나 황제의 정치와 대조를 이루었다. 그들은 현실세계 곧 세속 세계에 관한 일들을 완전히 지배하고자 했다. 따라서 교회 공직자들의 활동을 내세, 즉 영원한 세계를 다루는 일로 제한하고자 했다. 또한 교회공직자들이 권력정치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랐다."[각주:10] 그리고 이로 인해, "정치와 다른 것으로서의 종교에 관한 새로운 개념"[각주:11]이 정착되었다.

     불행히도, 이런 서구적 개념은 비서구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일종의 식민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구는 자기와 다른 종교들에 직면하여 새로운 개념을 발견해내야 했다. 이와 관련해 모리얼과 타마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2]


유럽 기독교도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종교를 적용하여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같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생물 분류상 사자panthra leo와 호랑이 panthera tigiris를 표범속genus panthera에 속하는 종으로 분류하듯, 그들은 그 지역의 전통들을 수많은 다른 전통들과 함께 종교라는 속genus에 속하는 종들로 분류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도 별 탈은 없을 듯하다. 즉, "영국인들이 인도를 식민지화하기 전에는 인도인들에게 종교와 힌두교라는 개념이 없었다. 인도에는 원래 힌두교도라는 말이 없었고, 1800년대까지는 힌두교라고 말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각주:13]고 말이다. 한데, 인도만 이러했을까? 그렇지 않다. 다시 이들의 말을 참조해 보자.[각주:14]


불교 역시 무수한 사람들이 2500년 넘게 활동하며 생각한 것들을 종합하여 종교로 분류한 유럽식 개념이다. 불교라는 다양한 수행의 공식 창시자는 고타마인데 그는 부처, 곧 깨달은 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 신들, 영혼, 천국, 지옥, 구원, 종교에 관한 서양식 개념들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오늘날 대학교 철학과에서는 불교를 가르치기도 하는데 부처의 방법들 중 일부는 자기계발 심리학으로 분류된다. ……유교는 종종 사회관계와 통치제제에 관한 일종의 철학으로 분류된다. 부처와 마찬가지로 공자는 신들이나 영혼, 사후세계 같은 내세의 일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 기독교 선교사들과 학자들은 종교라는 속屬에 속하는 일종의 종種으로서 유교라는 범주를 만들었다. 그들은 중국의 여러 잡다한 사상과 풍습을 도교라는 범주로 함께 묶어버렸고, 그것을 종교라는 속에 속하는 또 다른 종으로 다루었다.


     따라서 "하나의 새로운 종교를 발견하기 위해, 프런티어 이론가들은 하나와 여럿,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그리고 낯선 것과 친숙한 것 사이에서 비교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세계의 모든 종교들이 효과적으로 새롭게 창출되었다."는 치데스터의 말은 정당한 것처럼 보인다.


2. 분리에 따른 인종차별담론으로서의 종교


     그래서일까. 장석만 역시 “종교 개념이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나타났으며, 일정한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제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고 썼다. 사실, 종교학의 기원이 공간적으로는 서구이고 시간적으로는 19세기라면, 이런 문제제기가 괴상한 것만은 아니다. 다시 말해, 종교학은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현존재가 가진 선입관을 깊이 간직한 채 시작한 학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과학을 표방하면서 그 연구를 시작했지만 종교학의 역사는 이 연구가 진화론에 물들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 예로, 샤프도 『종교학: 그 연구의 역사』라는 책에서 진화론은 종교학에서도 하나의 만능열쇠였다고 말한 바 있다. "진화론자들의 가설은 1880년 즈음 이미 사실상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스펜서는 인간문화의 전반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고 이제는 하나하나의 세목에서 그의 통찰을 확인하는 일만 남은듯 했다. 진화론자들의 눈에는 종교가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쳤다. 종교를 일단의 계시된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발전하는 유기체로 보게 된 것이다."[각주:15]

     하지만 종교를 발전하는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자 했던 이러한 진화론적 연구방식이 처했던 맥락은 단순하지가 않았다. 푸코의 다음과 같은 논의는 폐부를 찌른다. 다소 길지만 들어보도록 하자.[각주:16]


19세기의 기본적인 현상 중의 하나는 소위 생명에 대한 권력의 관심인 것 같다. ……그것은 열등한 인종이 좀더 사라지고 비정상의 개인들이 좀 더 제거된다면 종의 퇴화를 좀더 잘 막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나는 좀더 강하고 좀더 활기차게 살아남아 많은 후손을 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식의 관계다. 그러니까 군사적이거나 전투적 혹은 정치적인 관계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관계이다. ……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수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우선 19세기의 생물학 이론과 정치 담론 사이에 재빨리 맺어진 관계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넒은 의미의 진화론-다윈의 이론 자체보다는 그의 개념들을 한데 합친 전체로서의 진화론-은 아주 자연스럽게 19세기의 몇 년 동안 단순히 정치적 담론을 생물학적 용어로 옮겨 놓거나 과학의 외피 밑에 정치적 담론을 숨겨 놓은 방식이 아니라 식민정책의 관계와 전쟁의 필요성, 범죄와 광기·정신병의 현상, 다양한 계급으로 구성된 사회의 역사 등을 사유하는 진지한 방식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생물권력의 양식으로 기능하는 근대사회에서 왜 인종주의가 발전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러셀 맥커천의 책 마지막 부분인 「연구자들」에 실린 마스자와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꽤 타당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각주:17]


사회과학에서든 인문학에서든 똑같이 종교라는 범주는 대체로 비역사회 되고, 본질화 되어 왔으며, 비판적 분석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태생적으로 이를 거부한다고 은연중에 전제되어 왔다. 학문의 입장에서 이런 실패, 분석적 관심의 이런 결여, 그리고 종교라는 주제와 관련된 고집스러운 맹목, 이런 것들의 원인은 의심할 바 없이 많고 복잡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런 담론의 형성 전체에 관해 다른 종류의 면밀한 검토를 꾸준하고 다소 구불구불한 역사적 분석을 한다면, 그 복잡성은 비판적 압력에 굴복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튼, 이제 종교라는 개념은 지극히 서구적인 것이었고, 게다가 인종적인 범주에 속하는 문제였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확실히, 치데스터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종교연구에 있어 푸코가 지적한 생물권력이 어떻게 활성화되었고, 또한 인종담론으로 수렴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각주:18] 물론,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앞서 언급했던 모리얼과 타마라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바였겠지만 말이다. 들어보도록 하자.


학문적 고찰 속에서, 그리고 그러한 고찰이 드러내는 유사성과 차이의 유희 안에서 남부 아프리카에서 행해진 프런티어 비교종교는 제종교간의 비교를 위한 범세계적인 전략들도 동시에 개발하였다. 여기서 세 가지의 기본적 유형의 범세계적인 비교전략-분류법, 계보론, 유형론-을 다시 검토해 볼 수 있겠다. 박물학의 분야에서 스웨덴의 과학자 린네는 동식물과 인간을 속 및 종의 차이로 체계화하기 위한 기초적인 비교원리로서 분류학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이와 흡사한 방식으로 18세기 유럽인 비교론자들은 종교를 또한 종의 차이들에 의하여 나누어질 수 있는 하나의 유개념, 즉 특별히 유대교, 이슬람교, 이교라는 종들로 나뉘어질 수 있는 유개념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남부 아프리카 프런티어에서는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이와는 또 다른 분류법이 출현하였다. 다수의 프런티어 비교론자들은 하나의 시원적 고대종교로부터의 역사적 퇴화론을 선호하였다. 아프리카 종교들이 특정 시원적 계시종교로부터 퇴화하였다는 이론은 남부아프리카에 기독교 문명을 진척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강구하기 위한 전력적인 논쟁들과 관련되어 있었다. ……블리크의 진화론적 작업은 아프리카인의 종교적 계보를 추적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보다 일반적으로 인류전체의 종교적 계보를,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문명화된 유럽인의 종교적 계보를 구축하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었다. 그저 우리네 인종의 초기발전을 조사하는데 있어서 아프리카에 널리 퍼져 있는 인종들의 분파들을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긴요한지를 입증하고자 하였다.


     결국, 치데스터는 종교연구에서 서구의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 간의 "유사성이 붕괴되었을 때 그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은 종교가 아니라 인종이었다."[각주:19]고 직격탄을 날린다.

     한데, 이쯤에서 몹시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과연 신학은 대체 이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었을까 하는 점 말이다. 흥미롭게도, 스미스는 생물학적 분류가 종교학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를 언급하면서 "서구종교를 상상하는 커다란 틀 안에서 볼 때 유대교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위치"[각주:20]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장석만은 다음과 같이 썼다.[각주:21]


유대교는 가깝지만 멀고, 비슷하지만 괴상하며, 서구적이지만 동방적이고, 또한 평범하지만 이국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낯익음과 낯섦 사이의 이런 긴장은 유대교를 상상하는 데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며, 인식을 환기하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비교할 필요성을 불러일으키며, 비교를 요청한다. 유대교는 비교와 해석이 필요할 만큼 이국적이다. 반면에 유대교는 비교와 해석이 가능할만큼 가깝기도 하다. 가까운 것과 먼 것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교의 긴장 덕분에 유대교는 정의와 비교와 같은 핵심적인 방법론적 문제를 다루는 데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게다가 유대교는 종교학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상상력, 자기의식, 그리고 선택과 같은 보다 포괄적인 영역을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사례를 제공해 준다.


     유대인의 이러한 유용함은 신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인종을 분류하는 담론으로서의 생물권력이 종교연구에 적용되기도 했다는 치데스터의 말을 참조한다면, 신학에선 홀로코스트 이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반유대주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알다시피 이미 사이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에른스트 르낭은 이에 해당되는 최적의 인물이다. 사이드에 따르면, 종교문헌의 비교를 수행함에 있어 르낭은 셈어를 인도 유럽어에 비해 윤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보았다.[각주:22] 그의 유명한 『예수의 삶』역시 이와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는데, 여기서 예수는 결단코 유대인으로 이해되지 않고 있다. 또한, 결코 예수가 유대인일 수가 없었기에 유대인과 그 종교에 대한 그의 독설은 짙었다. "당시의 예루살렘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현학적인 태도, 신랄함, 증오, 그리고 영혼의 왜소함 등으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그곳에서는 광신이 극에 달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결국 궤변가의 문제로 귀착되어 버리는 율법연구가 유일한 공부였다. 유대 박사와 율법학자들의 지식은 완전히 미개한 것이었으며, 도덕성이 완전히 결여된 보상없는 부조리였다."[각주:23] 사실, 르낭의 이런 인식은 우연히 태어난 게 아니었다. 19세기 분류체계의 정식화를 따랐고, 사이드의 말에 따르면 애초에 "비교하면서라는 말에 의해 셈어와 인도-유럽어 간에 통용되는 복잡한 패러다임적인 관계의 네트워크를 의도"[각주:24]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생물분류학과 비교, 그리고 그에 따른 인종이라는 19세기의 배경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그는 “그리스 문명 이외의 다른 모든 문명을 하나같이 조악하고 야만적으로 간주”[각주:25]할 수 있었고, 유럽인을 다른 어떤 인종보다 고상한 종족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의 예수는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대변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르낭만 유별난 하나의 예외적인 그런 인물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근대 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슐라이어마허에게서도 이 점은 어렵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의 유명한 책, 즉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을 위한 강연』에서 슐라이어마허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각주:26]


유대주의는 이미 오래 전에 사멸된 종교이기 때문에 나는 이제 종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유대주의는 어린아이 같은 아름다운 특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나쁜 것과 함께 모두 버려졌으며 여기서 전체는 예전에 그를 믿던 대중들로부터 완전히 사라지고 부패된 희귀한 예가 되어버렸다.


     이에 비해, 기독교는 “그 고유한 근본 직관을 통해 종교와 종교사 가운데서 우주를 가장 많이 가장 아름답게 본 종교”[각주:27]로 이해되고 있다. 한 마디로, 기독교는 "종교 자체를 종교를 위한 소재로 변형하고 조작하며 이로써 종교의 최고능력"[각주:28]인 것이다. 유한자 가운데서 무한자를 직관하는 것이 종교라는 그의 정의를 참조한다면, 기독교는 무한자를 가장 잘 직관하는 종교인 반면 유대교는 퇴화하고 부패한 사멸된 종교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이 점은 그의 책, 『기독교 신앙』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에서 유대교나 이슬람교로 이행하는 것을 오로지 퇴행과 병적인 예외로 간주할 수 있다.”[각주:29] 따라서 그는 “유대교 예언자의 예언은 오로지 기독교를 위해서만 증거력을 가질 수 있는”[각주:30]것이라고 쓸 수 있었다.

     이쯤이면, 유럽의 다른 지성인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레너드는 자신의 책, 『소크라테스와 유대인』에서 칸트 이후 유럽의 여러 지성인들이 어떻게 유대인과 그 종교를 이해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슐라이어마허 못지않게 헤겔 역시 그러했음을 알 수 있다. 레너드의 말을 들어보자.[각주:31]


헤겔은 유대인들에게 미가 없으며, 심미적 영역과 관련된 이런 결핍은 자유의 결핍을 수반한다고 여겼다. 헤겔은 그 안에서 진리, 미, 자유, 그리고 정신성이 각각 상호 구성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강력한 등식을 구축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영속적인 악순환에 빠지고 말았다. 모세의 법이라는 도덕적 명령이 유대인들을 노예상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오직 새로운 종교의 출현만이 그들을 거기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보았다.


     때문에, 르낭도 그러했지만 헤겔 역시 예수를 유대교와 대립되는 것으로 놓을 수 있었다. 레너드는 “헤겔은 그리스도교의 출현을 유대교의 실증성을 외면하는 것으로 특징지었다. 예수는 순전히 객관적인 명령들과 그것들과 완전히 이질적인 것, 즉 일반적으로 주관적인 것과 대립시킨다. <그리스도교의 정신과 그 운명>은 예수와 유대인들의 연관성을 전혀 추적하지도 않은 채 예수를 유대인 신앙의 대척점에 놓았다.”[각주:32]고 적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일은 유럽 이외의 식민지에서도 일어났다. 물론, 지금까지 본 것처럼 유럽의 맥락에서 발생한 반유대주의와는 다른 성격의 반유대주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1914년 <남아프리카 원주민이 지니는 유대인 혹은 셈족의 전설과 관습>이라는 시드니 멘델손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치데스터가 "멘덴솔은 유대인과 남부 아프리카의 모든 토착민 사이에서 발견된다는 형태적 유사성과 공통의 혈통에 대해서 그것도 상당히 세부적으로 주장할 수 있었다"[각주:33]고 말했다는 것을 유념하도록 하자. 게다가, 아프리카인들을 보면서 멘델손이 "이들 검은 얼굴들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나는 저 착각을 불허하는 유대인적 용모를 보았고, 그러한 연유로 그들을 이 기묘한 땅의 이방인들로 거의 환영하고 싶은 충동이 일 뻔하였다."[각주:34]고 썼다는 점도 말이다. 확실히, 유럽인이 타자인 비유럽인을 정의할 때 유대인과 그 종교를 동원했듯, 비유럽인 역시 다른 누군가와 관련해 자신을 정의할 필요가 있었을 경우엔 유대인과 그 종교를 동원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반유대주의를 논하면서 유대인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나라에서 유대인이 출몰한다는 노만 콘의 말은 참조할 만하다.[각주:35]


절멸적인 반유대주의가 맹렬히 불타오르는 현상은 대중이 유대인이라는 존재가 그들 이외의 인류를 섬멸하고 지배하고자 획책하는 집단적인 악의 화신이라고 상상하는 경우로만 한정된다. 이런 종류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현실 생활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실제로 이러한 반유대주의는 한 번도 유대인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 수백 년도 전에 유대인이 사라진 나라들에서도 출현한다.


     알다시피, 일유동조론은 이에 해당하는 적절한 한 예다. 타츠루는 “언제 유대인이 일본에 출현하게 됐는지, 우리는 그 날짜까지 알 수 있다. 그럼 소개하겠다. 일본에 유대인을 존재하게 만든 사람은 스코틀랜드인 선교사 노먼 매클러드라는 인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행한 현지 조사의 결과 일본인은 유대인의 잃어버린 10부족의 후예라는 기상천외한 설을 1875년에 발표했다. 이것이 그 후 현재까지 전해지는 일유동조론의 기원이 되었다.”[각주:36]고 소개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유대인이 하나의 대립항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역설한다.[각주:37]


낮과 밤, 남과 여, 평화와 전쟁, 이러한 대립은 그 밖에도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립은 현실적인 세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대립은 현실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를 조직화하고, 인간에게 현실이 존재하게 하고, 그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그러한 대립입니다. … 유대인과 비유대인이라는 대립은 현실적인 세계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대립이 아니다. 반대로 이 대립은 현실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를 조직화하고, 인간에게 현실이 존재하게 만드는 대립이다.


     그리고 이런 대립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이렇게 적었다. “반유대주의란 꼭 유대인을 배척하라는 명시적인 박해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이 일종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매개로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사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유대인에 대해 친화적인 태도나 경의를 표한다고 해도, 반유대주의자와 기본적인 세계인식의 도식을 공유한다는 말이다.”[각주:38]라고 말이다.

     한데, 타츠루의 책을 번역한 박인순의 말은 이보다 더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각주:39]


북왕국이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멸망당하면서 10부족은 아시리아로 끌려가 나머지 2부족에 의해 잃어버린 10부족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기록이 남지 않아 이들의 행방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게 되었다. 10부족의 일부가 아프가니스탄, 인도, 미얀마, 중국, 일본, 한국, 영국, 미국, 스키타이, 아프리카 등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10부족의 일부가 이동했다는 지역으로 언급되고 있는 지역 가운데 우리나라가 들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부족 중 하나인 단지파가 바로 한국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들어보도록 하자.[각주:40]


삼성기 하편에 의하면 환국의 12국 중 하나인 수밀이국은 단군 족, 곧 백두산족의 일파이다. 기독교의 12지파 중에 단지파가 있다. 체형, 언어, 생활습관이 수메르인과 이스라엘인과 한국인이 유사하다이스라엘이 말하는 선민(選民)은 그 뜻을 선택받은 민족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원어는 chosen people로써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조선 사람」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단군 민족이라는 의미다. 세계를 방황하던 이스라엘이 유엔에 청원할 때 만주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고향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은 수메르 인으로써 함께 천신제(天神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한민족과 이스라엘의 동질적 역사와 문화(文化)를 보면 너무나 유사점이 많이 있다.


     사실, 이런 말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허무맹랑하여 정신병자가 지껄이는 말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인이 이 가상의 유대인을 반복하여 호출하는 까닭은 자신들의 사정 때문이었다. 일유동조론부터 시오텐의 반유대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에 공통된 점은 국민국가의 정치적 위기와 국민적 정체성의 동요라는 두 가지 정치적 요인이다.”[각주:41]라는 타츠루의 말을 참조하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은 아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유대인의 지혜를 배우자는 소리가 한국 개신교 내에서 호응을 얻는 이유는 최근 침체한 한국의 경제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를 살해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유대인이라고 말해야만 하는 개신교인들의 신앙적 고백과 모순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이러한 모순을 뚫고 한민족이 단지파라는 망상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이런 망상 뒤에는 현실적으로 막강한 전세계적인 힘을 누리고 있는 현재의 유대인의 기원이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한민족이라고 말함으로써 지금의 위기상황을 타계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데, “반유대주의란 꼭 유대인을 배척하라는 명시적인 박해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이 일종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매개로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사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유대인에 대해 친화적인 태도나 경의를 표한다고 해도, 반유대주의자와 기본적인 세계인식의 도식을 공유한다는” [각주:42]타츠루의 말을 대입하면,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해진다. 반유대주의가 유럽 및 비유럽을 가리지 않고 출몰한다는 콘의 지적은 여기서도 핵심을 찌르고 있다고 말이다.


ⓒ 웹진 <제3시대>



  1. 데이비드 치데스터, 『새비지 시스템: 식민주의와 비교종교』, 심선영 옮김, 경세원, 2008, p.247 [본문으로]
  2. 러셀 맥커천, 『종교연구길잡이』, 김윤성 옮김, 한신대학교 출판부, 2015 [본문으로]
  3. 러셀 맥커천, 같은 책, p.299 [본문으로]
  4. 조너선 스미스, 『종교상상하기』, 장석만 옮김, 청년사, 2013, pp.14~15 [본문으로]
  5. 조너선 스미스, 같은 책, p.15 [본문으로]
  6. 조너선 스미스, 같은 책, p.15 [본문으로]
  7. 조너선 스미스, 같은 책, p.16 [본문으로]
  8. 존 모리얼·타마라 손, 『신자들도 모르는 종교에 관한 50가지 오해』, 이종훈 옮김, 휴, 2015, p.22 [본문으로]
  9. 존 모리얼·타마라 손, 같은 책, p.22 [본문으로]
  10. 존 모리얼·타마라 손, 앞의 책, p.23 [본문으로]
  11. 존 모리얼·타마라 손, 같은 책, p.24 [본문으로]
  12. 존 모리얼·타마라 손, 같은 책, p.24 [본문으로]
  13. 존 모리얼·타마라 손, 같은 책, p.25 [본문으로]
  14. 존 모리얼·타마라 손, 같은 책, pp.26~27 [본문으로]
  15. 에릭 샤프, 『종교학: 그 연구의 역사』, 윤이흠·윤원철 옮김, 한울아카데미, 1998, pp.71~72 [본문으로]
  16.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박정자 옮김, 동문선, 1998, pp.277~295 [본문으로]
  17. 러셀 맥커천, 앞의 책, p.259 [본문으로]
  18. 데이비드 치데스터, 앞의 책, pp.405~410 [본문으로]
  19. 데이비드 치데스터, 앞의 책, p.450 [본문으로]
  20. 조너선 스미스, 앞의 책, p.24 [본문으로]
  21. 조너선 스미스, 같은 책, p.24 [본문으로]
  22.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박홍규 옮김, 교보문고, p.257 [본문으로]
  23. 에른스트 르낭, 『예수의 삶』, 박무호 옮김, UUP, 1999. p.189 [본문으로]
  24.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책, P.255 [본문으로]
  25. 미리엄 레너드, 『소크라테스와 유대인』, 이정아 옮김, 생각과 사람들, 2014, p.300 [본문으로]
  26. 슐라이어마허,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을 위한 강연』, 최신한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2, p.235 [본문으로]
  27. 슐라이어마허, 같은 책, p.239 [본문으로]
  28. 슐라이어마허, 같은 책, p.239 [본문으로]
  29. 슐라이어마허, 『기독교 신앙』, 최신한 옮김, 한길사, 2006, p.92 [본문으로]
  30. 슐라이어마허, 같은 책, p.131 [본문으로]
  31. 미리엄 레너드, 앞의 책, p.148 [본문으로]
  32. 미리엄 레너드, 같은 책, p.148 [본문으로]
  33. 데이비드 치데스터, 앞의 책, p.450 [본문으로]
  34. 데이비드 치데스터, 같은 책, p.451 [본문으로]
  35. Norman Cohn, Warrant for Genocide, London: Eyre & Spottiswoode, 1967, p.252 [본문으로]
  36. 우치다 타츠루, 『유대문화론』, 박인순 옮김, 아모르문디, 2011, p.65 [본문으로]
  37.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39 [본문으로]
  38.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75 [본문으로]
  39. 우치다 타츠루, 앞의 책, p.65 [본문으로]
  40. http://www.dailywrn.com/sub_read.html?uid=5775 [본문으로]
  41.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96 [본문으로]
  42. 우치다 타츠루, 같은 책, p.7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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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의 믿음

: Post Human, Post Religion 시대의 믿음에 관하여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Science and Religion


   필자는 2014년 여름, 10년간의 시카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미국유학을 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인상은 각 분야에서 Interdisciplinary Study(한국말로는 학제간 연구, 융복합 등으로 번역되는)가 상식처럼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 학계는 시대적 요청, 자본의 논리, 학문의 발전 등 갖가지 이유를 들이대면서 온갖 경계를 넘나들며 학제간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고, 그 결과 놀라운 성과물들이 학교로, 도서관으로, 그리고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비교적 보수적인 신학분야도 이러한 시대적 요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종교와 과학간의 대화가 아닐까 싶다.   

    미국내에서‘Religion & Science' 분야의 최고 연구기관 중 하나이자 정기적으로 기관지를 발행하는 ‘Zygon Center for Religion and Science’ Zygon 웹싸이트_ http://zygoncenter.org/ (줄여서 그냥 Zygon이라 부름)이 시카고 루터란 신학교(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내에 있다. Zygon의 운영자이자 미국 '종교와 과학' 분야의 대부격 되는 인물 중 한분이 지금은 은퇴한 Philip Hefner이다. 훼프너 교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에 있는 테드 피터스(Ted Peters)와 러셀(Robert John Russell), 영국에서 활동하는 아서 피콕(Arthur Peacocke)과 폴킹혼(John Polkinghorne), 그리고 얼마 전에 타계한 이언바버(Ian G. Barbour) 등과 더불어 신학계 내에서 ‘종교와 과학’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인물이었고, 특별히 인간을 하나님과 함께 Co-Creator 지위로 까지 부상시켜 생태신학의 기반을 제공했던 중요한 학자이기도 하다. 훼프너 교수 강의를 들을 때 한국에서 번역된 그의 책을 가지고 가서 겉표지에 싸인을 요청한 적이 있다. 너무 신기해하면서 기쁘게 웃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테드 피터스가 편집을 맡아서 출간된 Science and Theology: The New Consonance (Westview Press, 1998)가 한국에서『과학과 종교: 새로운 공명』(동연, 2002)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 책에 필립 훼프너 교수의 논문인“생명문화적 진화와 창조된 공동 창조자”가 실려있다.      

   나는 시카고에서 석사과정 수학하면서 훼프너 교수가 개설하는 'Epic of Creation’(2005년)과 ‘Science & Ethics’'(2006년) 두 과목을 수강했었다. ‘Epic of Creation’(번역하면 ‘창조의 새 기원’쯤으로 해석되는)시간은 시카고에 있는 유수한 대학의 천문학자, 물리학자, 분자생물학자, 진화 생물학자들을 초빙하여 우주의 창조 혹은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신학적 의제의 폭을 넓히는 시간이었다. 빅뱅에 대한 이론을 과학자들이 설명하고, 그 다음에는 구약학자들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음 시간에는 신약학자들이 신약성서에 나오는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다음 시간에는 물리학자들의 엔트로피에 대한 해설을 듣는다. 이런 식으로 한 학기 내내 창조부터 종말까지 과학과 신학에서 다룰 수 있는 폭넓은 이슈들에 대한 논의들이 현란하게 펼쳐지는 수업이 바로‘Epic of Creation’이었다.


'뇌 과학'으로 바라본 Post Human의 쟁점들


   ‘Epic of Creation’을 마치고 다음 학기에 (2006년 봄 학기) 나는 회프너 교수가 진행하는 ‘Science and Ethic’을 계속 수강 신청해서 세미나에 참여하였다. 특별히 그해는 회프너 교수가 은퇴를 하던 해였던지라 대가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 그 수업은 과학의 발전에 따른 윤리적 이슈들을 다루는 수업이었는데, 인간복제, 핵, 가상공간, 기술문명, 환경, 뇌 과학 등의 주제들에 대한 윤리적 담론 형성을 목표로 디자인 되었다.  

    ‘뇌 과학과 윤리’를 다루는 내용은 학기 후반부에 배치되었다. 시카고 대학 의대에서 뇌신경을 가르치는 교수가 와서 수업의 반을 책임졌고, 응용윤리학을 강의하는 교수가 나머지를 담당했다.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마음과 감정의 매커니즘을 알아버린 지금, 이러한 지식이 인간의 윤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를 탐구하는 것이 강의의 주된 목적이었다. 교수는 수강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9.11 같은 끔찍한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자녀들의 기억력과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약을 먹고 뇌의 특정 부위에 대한 시술을 받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뇌과학에 의하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시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도덕적 의지와 직관은 무엇으로 보장받는가?” 그 강의는 이처럼 뇌과학의 발전에 따라 등장하는 다양하고 묵직한 윤리적 함의들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하여 전통적 규범윤리학에 함몰되어 있던 나에게 윤리적 혼란을 불러일으켰던 시간이었다.

    뇌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인지능력이 일어나는 회로를 파악하게 하였고, 그 지식을 토대로 인지능력의 개발과 보충을 가능케 하였다. 근육을 늘리고 강화하기 위해 무슨 약물들을 복용하는 것처럼, 기억력, 창의력, 감수성을 자극하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문제는 어디까지 뇌 과학의 발전을 허용할 것인가? 인데, 이 물음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인 문제와 최종적으로 조우한다. 왜냐하면 뇌 과학의 적용이 인간 조건에 대한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고, 호르몬 분배를 장악하여 인간의 감정과 기분을 통제, 조절하게 되면 인간이 어떻게 될까? 과연 인간 마음 깊숙이에는 변하지 않는 정신의 숭고한 무엇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지배받는 것이 확실한가?

    그 밖에도 뇌 과학과 윤리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산적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뇌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발전이 그동안 전통적으로 간주되었던 인간의 이성, 감성, 자유의지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 발생할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딜레마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문제가 그것인데, 미국 내에서 뇌 과학과 윤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를 크게 두 분야로 나누는 것 같다.

   뇌 과학과 윤리를 다루는 개론적인 미국 책들을 읽을 때 두 가지 용어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ethics of neuroscience이고 다른 하나는 neuroscience of ethics이다. 전자는 ‘뇌과학의 윤리학’이고, 후자는 ‘윤리학의 뇌과학’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데 굳이 분류하자면, ‘뇌과학의 윤리학’은 뇌과학적 지식을 인간에게 적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절차의 문제들에 관심한다. 따라서 뇌 과학 자체의 윤리적 수행의 문제, 뇌 과학 연구자들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반면, ‘윤리학의 뇌과학’은 전통윤리학에서 다루어 왔던 윤리적 이슈, 예를 들어 자유의지, 선의지, 도덕성 등이 뇌과학의 등장으로 어떻게 다시 규정되는지? 에 대한 연구다. 즉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새로운 뇌 과학적 정의 혹은 버전이랄까. 윤리학 교과서를 뜯어서 다시 써야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뇌 과학자들을 윤리학자들에게 넌지시 농을 건다.

    미국 학계에서는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뇌 과학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학제간 접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뇌 과학이 지니는 이런 저런 염려 때문에 뇌 과학에 대한 통제를 해야 한다는 기독교 우파진영의 목소리도 있는 것 같고, 뇌 과학의 발전으로 예상되는 우리 삶의 변화된 모습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가십성 기사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양식있는 학자들은 차분히 여러 각도에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성찰하면서 천천히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Post Human : 다시, 인간을 묻다


    결국, 뇌 과학의 발전으로 인한 근심과 걱정, 전망과 희망의 최종 종착점은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물음으로 귀환한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인간을 정의해야 할까? 뇌 과학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엄격히 말하면‘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로 바꿔써야 맞다. 뇌 과학 이론에 따르면 마음은 뇌에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뇌 활동의 산물이라고만 국한 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제기에 맞서 뇌 과학자들은 ‘육화된 마음이론(emboded mind theory)’과 ‘확장된 마음이론 (extended mind theory)’을 주장하기도 한다. 전자는 인간의 마음이 온몸을 통해 형성된다는 이론이고, 후자는 더 나아가 인간의 마음이 뇌와 몸뿐만이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이론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마음은 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우주 전체가 우리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윤리적 문제는 또 다른 양상에서 전개된다. 외부와 맺는 관계의 양상, 관계의 법칙으로 확대된다는 말이다. 즉 나와 다른 타자와의 접속과 교감의 능력이 마음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또 한 가지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기억의 문제이다. 뇌 과학에서는 기억을 지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언젠가는 공상과학 영화 <블레이드러너>에서처럼 기억을 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부모에게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기억을 지우고, ‘딸은 성장하여 멋있는 남자를 만나 미국으로 유학갔고 지금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 라는 기억을 새로 심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사위에 대한 설명, 미국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료, 딸의 연애과정, 결혼식 풍경, 공항에서의 이별 등 지금 살아 미국에 있는 그 딸에 대한 수많은 기억이 함께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억이란 단편적인 것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은유와 환유의 고리와 연쇄를 따라 통합적으로 구성되는 사건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총합이 마음을 직조하고 그러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과학에서 말하는 기억을 삭제하는 것이 가능하여 실제로 누군가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쓰라리고 고통스런 과거, 혹은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사건들의 기억을 지워버리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만약 이런 기술이 완성된다면 사람들은 괴로움을 잊고 평생 평안한 기분으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아픔과 괴로움을 모르는 세상, 그런 세상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없는 세상일 것이고 아픔에 대한 연민도 소용없는 세상일텐데,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게 되는 그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그들은 이제 공적인 가치를 상상하지 않으면서 정신과 양심의 가위눌림에도 반응하지 않는 쿨한 인간들이다. 그 어떤 충격과 놀라움이 밀려와도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간혹 쨉을 날리면서 자기만을 보호할뿐이다. 그들은 이제는 반성과 실천의 자 글이 다소 비관적인 관점으로 흐른 것 같은데,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뇌 과학이 지니는 부정적 요소가 아니라, 뇌 과학의 발달은 전통적 도그마에 갇혀있었던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그리하여 다시‘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정직하게 대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의 인간은 어떻게 자리매김 될까? 솔직히 별로 유쾌하지 않은 상상이지만, 우리는 이 불쾌와 낯설움을 뱀과 같이 지혜롭게 긴 호흡으로 건너가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뇌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등장하는 Post Human 시대의 문제들에 대해 잠시 살펴보았다. 인간種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도모되는 Post Human 시대에 인간 마음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종교 또한 Post Religion 의 단계로 진입하였다고 한다면 너무 불손한 발언일까?

    문득 지금 이 순간 그동안 스쳐지나갔던 숱한‘Post-’담론들이 떠오른다. Post Modernism, Post Structualism, Post Marxism, Post colonialism, Post Feminism, Post Human, Post Religion 까지... 왜, 이리도 많은 Post 담론이 그동안 존재했고 지금도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일까. 대부분의 Post 담론에 깔려 있는 정서는 불만과 불안, 그리고 위기의식이 아닐까 싶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에 대한 위기의식이고, 포스트 맑시즘은 정통 맑스즘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나왔다. 탈구조주의 역시 구조주의가 담지 못하는 의미의 결핍 혹은 균열에 주목한다. Post Human 담론도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인해 새롭게 창조되는 인간種에 대한 불안과 위기감으로부터 나왔고, 지금부터 다룰 Post Religion 역시 인간 삶의 조건이 바뀌는 격동속에서 인간의 믿음을 다시 응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종교의 위기라 부를 수 있겠다.


Post Religion이란?


    하지만 돌이켜보면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모든 종교는 현실에서 위기의 종교였고, 그래서 어느 시대건 종교는 항상 위기의 한복판에 자리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만 봐도 그렇다. 예수의 자리가 공백으로 남겨진 이후 역사적 그리스도교는 항상 위기의 연속이었고, 교회는 항상 위기의 공동체였다. 초대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중세 교회 역시 표면적으로는 강한 도그마가 세상을 짓누르고 있었겠지만서도 그 수면 아래에서는 변혁에 대한 꿈과 상상을 욕망하면서 위기를 잉태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500년 전에 발생했던 종교개혁은 여러 가지 긍정적. 부정적 평가가 있겠지만 어쨌든 중세천년의 교회전통에 대한 반동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카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엄청난 위기의 현상학이었다. 고중세가 지녔던 온갖 신화와 미신과 주술에서부터 탈출한 근대는 또한 종교적으로 볼 때 얼마나 위기의 시대였나? 막스 베버는 이런 근대를‘주술과 신화로부터 벗어난 시대’라 평했을 정도다.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종교는 이신론에 입각한 자연종교의 경향으로 흘렀고, 유럽의 사회가 사회계약설에 입각해 급격하게 시민사회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종교는 시민종교로 탈바꿈하게 된다. 종교적 권위와 신적인 주술로부터 탈피한 근대는 어쩌면 역사상에서 종교적 파국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자본주의의 등장은 새로운 유사종교의 등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자본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사물의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시키는 시스템이다. 즉 사물이 지녔던 그 자체로서의 가치가 시장성으로만 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인간 역시 그렇게 효용성의 원칙과 교환성의 원칙에 따라 서열화 되었다. 자본주의의 도래 전까지 인간을 지배했던 양식들, 예를 들어 우리의 전통, 관습, 역사, 윤리, 명예, 사랑, 대의, 양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까지도 자본주의는 화폐의 양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전환시키는 자본 특유의 마력 앞에서 각각이 지녔던 개별적 가치들은 화폐의 양에 따라 서열화 된 것이다. 모든 질적인 차이를 냉소하고 화폐의 양으로 등가시켜 버리는 자본주의 정신은 기존의 세상 법칙과 질서를 새롭게 바라보는 종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렇듯 매 시대마다 Post Religion을 둘러싼 논의는 존재했었고, 이는 당대의 종교 위기상황, 혹은 위기의 종교에 대한 대항 혹은 대응 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Post Religion 논의가 지금 막 등장한 Hot하고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이 종교생활을 시작하던 무렵부터 현재까지, 종교의 위기가 운운되는 당대의 삶과 질서 가운데 늘 가시처럼 존재했던 것이 Post Religion 논의였고, 당대가 지녔던 종교적 위기를 전제하면서 그 위기에 대한 답변과 대안을 상상하고 제안하고자 했던 것이 Post Religion 담론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 자본에 대한 전 지구적 재편이 완료된 상황속에서, 21세기 Post Human 논쟁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세계속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한 온갖 기괴한 내공들이 인간정신의 흐름과 마음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그것들에 대한 조작과 변형이 가능해진 세상속에서 인류는 현재 인간種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믿음이란 무엇일까?


믿음에 대한 커밍아웃(Coming Out)


    얼핏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21세기 믿음에 대한 물음은 이미 전 시대에 한 차례 홍역을 치룬바 있다. 니체가‘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던 충격적인 대목에서 우리는 이미 종교적 파국을 경험하였다. 21세기 믿음에 대한 문제로 본격적으로 접근하기 전에 잠시‘신의 죽음’이 선언되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보자. 흔히 정신분석학이나 문화인류학에서 대타자 아버지는 기존의 질서와 법과 가치에 대한 상징으로 묘사되곤 한다. 엄마로 부터 전적인 사랑을 받아왔던 아이는 생의 어느 한 지점이 지나면서부터 밀려오는 불쾌와 공포에 눈뜨게 되고 그것의 원인에 대해 알아가다가 마침내 엄마의 정부인 아버지와 대면한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상징세계(the Symbolic)와 맞닥뜨리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아이에게 있어 엄마가 당근이라면 아버지는 채찍이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아버지의 훈육을 먹고 자라면서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는데......이것이 정신분석학으로 풀어쓴 범박한 인류학이다.

    신은 서구인들의 집단무의식에서 아버지로 상징되는 법과 질서와 도덕의 원형과도 같은 존재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의 죽음에 대한 니체의 발언이 충격적인 것이다. 하지만, 니체가 진정 의도했던 것은‘신의 죽음’에 대한 선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는 모두가 성인(成人)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더 이상 신율(神律)이 작동되지 않는 허무의 상황속에서 인간 삶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묻고 싶었다. 신이 사라진 이곳에서 어떻게 우리는 다시 사회를 조직하고 공동체를 재건할 수 있을까. 그럴 경우 법은 무엇이고 그 법의 권위는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가. 대타자가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고 대타자의 균열을 감지한 자식이,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자녀들이 어떻게 다시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이라도 한 것일까. 이것이 바로 근대의 비극성이 확인되던 무렵 니체에 의해 제기된 ‘신 없는 세상 속에서의 믿음’을 둘러싼 문제제기다.

    대타자 신의 죽음이 선포되고, 틈이 없어 보이던 실재에 균열이 생기고 빗금이 그어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니체 이후 사람 인간들은 비록 커밍아웃은 안했지만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것 아닐까. 대타자로서의 역할을 하던 기독교의 神 대신에 서양에서는 힌두교, 불교, 도교에서 영향을 받은 명상, 힐링, 마음수련, 요가 같은 수행프로그램들이 확산되고 있고, 종교적 대상에 대한 숭배대신 스포츠, 연예인, 정치인에 대한 팬덤이 더 강력한 신도들을 거느린다.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드러났듯이 줄기세포 주사, 태반주사 등 온갖 첨단 의료기술을 이용한 성형과 생명연장의 욕망은 이제 우리시대 믿음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상들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은 어쩌면 우리시대 믿음의 문제는 무신론자들의 믿음, 무신론자들의 신앙으로 수렴되었다는 점이다. 오직 자본의 명령만이 유일한 정언명령이 되어버린 21세기 세상속에서 그 명법에 철저히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무신론자 아닌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Post Human을 꿈꾸는 우리는 유물론자라고 해야 맞지 않나. 이 보다 더 어떻게 무신론자일 수 있겠고, 이보다 더 어떻게 유물론자일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슬라보예 지젝의 지적은 날카롭다.

   지젝은“오늘날에는 오직 무신론자들만이 기도를 할 것” 이라고 말하면서 무신론자의 믿음을 논한다. 그리고 이들의 신앙패턴을 “믿음 없는 신앙(Faith Wihtout Belief)”이라 정의한다. 지젝의 이러한 발언은 어떤 의미에서는 타당하다.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들을 보라. 수백 수천억원대의 교회당을 지으며 신앙을 물적인 양으로 환산하여 드러내 보이는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유물론자들 아닐까. 오히려 신의 존재를 믿지않은 유물론자들이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신학적 논의들을 신학자들보다 더 밀도있게 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유물론자들이 세상에는 물질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무신론자들의 믿음은 무엇일까?


발터 벤야민, '유물론자의 신학'을 낳다.


    현대 좌파 철학자들 가운데 신학적 상상력으로부터 혁명의 기운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다. 자크 데리다, 알랑 바디우, 조르조 아감벤, 야곱 타베스, 슬라보예 지젝 등이 그런 인물들이라 할 수 있을텐데, 이들보다 앞서서 20세기 초반에 벌써 유물론적인 신학, 혹은 유물론자들의 신학을 언급한 섹시한 사상가가 있었다. 그가 바로 발터벤야민이다.

    벤야민이 활동하던 20세기 초반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그들의 광기로 자행된 세계대전이 창궐하던 때였다. 이러한 시기에 벤야민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공히 취급되는 메시아담론을 유물론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혁명을 위한 정치술로 제안하였다. 벤야민은 자신의 유명한 소논문 <역사철학테제>에서 신학과‘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의 결합을 동화와 같은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난쟁이 곱추로 그려진 숨어 있는 신은 메시아 혹은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으로 상징된다. 우리의 상상속에서 빛나는 메시아의 모습, 혹은 지난 역사에서 유토피아 건설을 가열차게 주장했던 혁명전사들의 늠늠한 모습에 비하면, 난쟁이 곱추로 묘사된 숨어 있는 신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이렇듯 벤야민이 말하는 메시아론은 기존 메시아론과는 다른 느낌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거기에는 벤야민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있다.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인류는 유토피아를 주장했던 많은 이들과 만나왔다. 그들은 본인들의 종교적 확신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에 빠져 자신을 불살랐던 강철과도 같은 이들었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몇몇 실험들이 디스토피아로 변했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우파 유토피아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나치일 것이고, 좌파 유토피아의 실패는 스탈린으로 상징되는 교조주의적인 공산주의가 아닐까 싶다. 기독교의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이 불러일으켰던 만행에 대해 이 자리에서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십자군전쟁, 종교개혁에 이은 각종 종교전쟁들, 서구 열강의 식민지 개척과정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진 만행들은 모두 유토피아를 내걸고 진행된 디스토피아 역사였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통해 다시한번 깨닫는 것은 유토피아는 말 그대로 ‘없는 세상’혹은 ‘도래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유토피아에는 ‘부재하나 있어야 한다’는 공리가 또한 공존한다.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과 기대, 그리고 욕망이 없었다면 어떻게 인류가 진보를 거듭해왔겠는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는 서로 짝패인 셈이다.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부재하면서 존재해야만 하는 운명속에서 우리는 메시아를 어떻게 이해해야하고, 유토피아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 것 일까? 벤야민은 <역사철학테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유물론자의 신학을 태동하게 만들었다.


유물론과 신학의 공명


    지난 시절에 만들어진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 혹은, 메시아의 도래를 둘러싼 믿음은 목적론적인 역사관에 영향을 받은바 적지 않다. 목적론적 역사관이 무엇인가. 제1원인과 제1목적이 있고 만물의 변화와 운동은 그들로부터 기획된 순서를 따라간다는 것 아닌가. 그 종착점이 유토피아이고, 유토피아로 견인하는 작자가 메시아이다. 최종 목표인 유토피아는 이미 정해져있고 메시아는 그런 믿음이 깨지지 않도록 현실 속 우리를 강제적으로 그 길로 견인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신성모독일까.

    벤야민은 일단 기존의 유토피아 이론과 메시아에 대한 믿음에 의심의 해석학을 들이댄다. 벤야민에게 있어 구원의 때는 미래의 어느 한 지점으로부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사후적으로 구성되어“지난 세대와 현 세대 사이에 비밀스런 협약이 있다. Our coming(구원을 상징?)이 지구상에서 기대되어 진다. 우리 앞을 살았던 모든 세대처럼, 우리에게도 희미한(약한) 메시아적 힘이 부여되었다. 과거는 그 힘을 요구할 수 있다.” 현재 시간을 충만케하는 시간[Jetztzeit]이다.“역사는 특정한 구조물의 대상인데, 그 구조물의 자리는 단일하고(동일하고) 비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Jetztzeit(the presence of the now)에 의해 충만한 시간이다. 그래서 로베스피에르에게 있어 고대 로마는 지금의 시간에 의해 충전된 과거였다... 프랑스 혁명은 스스로를 다시 태어난 로마로 간주하였다.” 벤야민이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이유는 이런 시간관 때문이다. 벤야민의 시간의식은 변증법적 시간관과 다르다. 본래 그것은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중단없이 이어지는 시간관이다. 기본적으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역사관이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지평속에서 미래를 향해 가슴을 열고 뛰쳐나가는 것이 변증법적 시간관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벤야민이 “희미한 메시아적 힘”과 “현재시간[Jetztzeit]”을 이야기하면서 기존의 변증법적 시간관에 대해서, 더 나아가 미래에서 기인하는 메시아의 도래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란 지나간 과거의 역사적 순간, 혹은 그것을 통해 현실의 비젼을 보게끔 하는 통로이겠지만, 그것은 기존의 메시아관 처럼 뚜렷한 목적론적 역사의식에 젖어있지는 않다. 그것을 벤야민은 “역사의 자유로운 하늘에로의 도약” Ibid., 261. 이라 표현하였다. 유물론자는 그런 비상을 꿈꾸는 자들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벤야민은 다시한번 논리를 비튼다. 지금까지 의심의 대상이 되어왔던 유토피아는 결코 폐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체스게임 판 앞에 터키풍의 의상을 입고 파이프를 물고 있는 인형이 앉아있다. 이 인형은 게임을 매번 승리로 이끈다. 좀 더 그림을 살펴보면 인형의 배후에는 게임의 명수인 난쟁이 곱추가 있고, 그 둘은 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벤야민은 인형을 사적 유물론으로, 체스의 명수인 곱추를 신학으로 비유한 후에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 신학과 사적 유물론이 제휴하면 “그 누구와도 한 판 싸움을 벌일 수 있다” 고 말이다.

    벤야민의 발언은 Post-Marxism이 걸어가야 할 바에 대한 아포리즘 같은 역할을 하였다. 혁명이 더 이상 번지지 않고 단절된 상황속에서 황망해하고 있는 맑시스트들에게 혁명이란 인간의 하부구조뿐 아니라 그동안 혁명의 요소에서 도외시 되어왔던 인간의 상부구조, 즉 정신, 신화, 무의식, 그리고 종교적 믿음으로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의 이런 상상은 이후에 등장하는 유물론자들의 신학을 견인하는데 중요한 모멘템이 되었다. 우리는 결코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도 없고, 그러므로 굳이 메시아의 도래를 손꼽아 기다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부재하면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유물론자들의 갖는 믿음에 대한 고백이라면. 어쩌면 우리는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점근선에 위치하는 존재일는지 모르겠다. 수학에서 목표를 향해 무수히 무한히 접근하지만 닿지 않는 상태의 운동을 점근선이라고 한다지. 유물론자들은 계속 해서 그 점근선을 그리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21세기 무신론 시대의 믿음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자본의 무한질주가 유일한 삶의 원칙이 되어버린 사회속에서 우리의 신은 맘몬이다. 조물주인 맘몬이 첨단의 테크놀로지를 동원하여 인간에 대한 리빌딩에 들어갔고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인류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는다는 기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나리오다. 미래를 소재로 한 공상과학영화(혹은 서적)들에서 단골로 등장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SF영화 속 장면들이 실현되고 있는 현실의 상황은 영화에서 봤던 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예민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종교적 감수성이 요구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데리다의 해체론을 신학적으로 풀어 설명하고 있는 존 카푸토(John D. Caputo)는 『종교에 대하여 On Religion』에서 지금 시대의 종교상황을 “Religion without Religion 종교없는 종교” 이라 표현하였다.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화된 종교와 독단적 진리를 해체하는 가운데 새로운 실천적 차원의 진리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것이 카푸토의 과제다. “...the name of God in may post-modern Itinerarium is the name of infinity questionability...나의 포스트모던 순례에서 신의 이름은 무한한 질문가능성이라는 이름이다 ... God is a how, not a what 신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이다.”-Ibid.,134- 135. Post Human 시대를 맞아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접근을 요청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당연히 변화된 인간상에 걸맞는 종교에 대한 새로운 상상, 즉 Post Religion에 대한 담론을 마련해야 한다. 카푸토‘Religion without religion’은 나름의 답변이라 할 수 있을텐데, 구체적으로 그것을 어떻게(How) 현실의 삶에서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런지는 또 다른 문제다.

   카푸토는 어떻게(how)와 관련하여 데리다의 ‘차연’개념을 적용하여 ‘사건으로서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차연(differance)은 차이(differ)와 지연(defer)의 합성어다. 차연으로서의 신은 세상과 차이가 나는 신이지만, 신의 임재와 도래는 무한히 지연된다. 신은 인간의 믿음, 행위, 고백, 이성적 판단 안으로 수렴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알고있는 이러한 가능성들과 대립하는 불가능한 형식으로 도래한다. 신으로부터 기인하는 사건이란 신의 현재화를 드러내는 표식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현재화 될 수 없는 잉여를 남기며 미끄러져 가는 무엇이다. 사건의 결과 신은 현재화 할 수 없는 절대 미래, 절대 타자의 자리로 내몰린다. 그것이 카푸토로 하여금 “Religion without Religion”을 발설하게 하였고, 그 사건의 이름을‘사랑’이라고 카푸토는 말하고 싶었던 같다. “신의 의미는 사랑의 다양한 움직임안에서 규정된다....사랑은 정의되어야 하는 의미가 아니라 행하고 만들어야할 무엇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각각의 삶의 공간과 조건과 현실속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사건 속으로 개입할 것을 요청받는다. 

    그런가하면 라깡의 욕망이론으로 바라본 사랑은 파괴적이다:“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불가해하게도, 나는 당신 안에 있는 당신 이상의 어떤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파괴합니다.” 이 경우 사랑은 주체의 대상을 향한 전유, 혹은 집착의 형태가 된다. 이 사랑은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옆에 있는 이웃을 살피거나 뒤쳐져 있는 타자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만족을 모르고 전방만 주시하는 리비도의 돌진 앞에서 인간은 온전한 향유의 대상에서도, 관심과 배려의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사물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카푸토가 말하는 사랑에 대한 서사는 다르다. 사랑과 욕망의 변증법 안에서는 ‘당신 안에 있는 당신 이상의 어떤 것’이 운동의 동력이 되지만, 사랑과 타자의 법칙성 안에서는 오히려 ‘당신 안에 있는 상처와 결핍’이 사랑의 원칙이 된다. 전자가 자기를 채워나가는 증산의 사랑이라면, 후자는 자신을 비워가는 감산의 사랑이라 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욕망이론 속 사랑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그대가 그립다’라고 선포한다면, 카푸토식 사랑은 ‘내 안에 너 있다’라고 속삭이며 그(녀)를 품는다.

    이는 마치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모자이크와 같다. 수많은 파편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형성하듯, 수많은 이들의 꿈과 기억, 그리고 사건의 조각들이 우리의 구원으로 들어올 것이다. 구원이란 언젠가 도래하리라 믿어지는 환상 속 메시아의 단 한번의 붓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뿌리박지 않은 미래로부터 도래하는 환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 투쟁하던(는)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속에 보존되어 있던 사건들이 어떤 시점과 계기에 재생되어 사후적으로 되살아나는 그것이다. 그 날은 분명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문제들을 갖고 이 땅에서 투쟁하던 각각의 인민들이 지니는 서사가 특별한 계기에 우발적으로 맞아 떨어진 그 날일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의 거리거리들에서는 사랑의 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노라고 누군가는 기록하겠지.


에필로그


    Post Human, Post Religion 시대의 믿음이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서 이 글은 시작되었다. 근대이후 전개되었던 ‘신의 죽음’, 2차 세계 대전 유대인 대학살의 현장에서 확인된 ‘신의 침묵’은 ‘신의 무능’서사로까지 번지면서 무신론은 공공연한 진리가 되어버렸고, ‘무신론자의 믿음’이라는 그럴듯한 테마를 낳았다. 이러한 문제들은 기존의 신관념에 대한 변화를 요청하였다. 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종교적 믿음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상상하게 한다.

    최종적으로 카푸토의 조언에 용기를 내어 최종적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무신론자의 믿음이란 대타자인 신의 음성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수동적 믿음일 수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우리를 지탱케했던 상징계의 법칙과 교리의 강제와 도그마의 환상을 버리게 한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복수적 타자들이 일으키는 변혁의 사건들을 지지하는 사랑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 자리란 모든 개별적 존재가 지니는 차이와 다양성을 자본이라는 등가의 원칙으로 서열화한 세상이고, 그 자리란 생명에 대한 존엄이 무너진 디스토피아 세상이다. 더 구체적으로 그곳은 성의 차이로 인한 혐오가, 계급의 차이로 인한 소외가, 종교의 차이로 인한 적대가 넘치는 그곳이고, 거기는 또한 새로운 인간種의 탄생으로 인한 파국 예상되는 이곳 지구다. 그 파국의 한가운데서 다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의 이름은 무신론자의 믿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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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불당




오종희

(본 연구소 회원, 한백교회 교인)



    며칠 전에 딸내미가 말 한대로 정말 아파트 현관 근처 화단에 

 불당이 차려져 있었다. 



    화단이라 하기엔 관심간 흔적, 손간 흔적 없는, 

그나마 평소엔 주차한 차량에 가려 눈에 띄지도 않는 

초라한 장소에 ‘떠어억!’  


    우리 식구 셋이 집에 들어가는 길에 짧은 토론이 시작됐다. 

“누가 갔다 놨을까?” “버린 거야? 차린 거야?” “노인이겠지?” 



    그러자 남편이 시니컬하게 정리한다. 

“집에 두자니 궁상맞고 버리자니 찜찜하고 그래서 택한 곳이 화단이지!”  


    자세히 보니 손바닥만 한 크기에 재질도 저렴이 수준이고 

 여기저기 깨져 있는 것이 바로 옆 역시 버려진 작은 화분과 정확히 닮은꼴이다. 

추측하자면 버리는 죄책감에 대한 면피용이 저 불상의 실존이다. 

버린 것도 아니고 안 버린 것도 아닌 어디쯤에 

 중생의 평온이 걸쳐있도록 하는 위치. 


    단지 옆에 있는 화분보다 불상이 화두가 되는 이유는 

종교적 아이콘이라는 형상이 

버리는 자에게도 지나가다 보는 자에게도 재질 너머의 무엇으로 보이게 하고 

자꾸만 의미를 생산하고 평온을 생산하고 불안을 생산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것이 어디 종교적 아이콘만의 것이랴! 

사람이 허구로 만드는 모든 것이, 아니 사람이 만드는 모든 것이 

이름 없던 욕망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아닐까! 

종교가 덧붙일 게 많은 것일 뿐. 



    어찌됐든 아파트 화단 미니 불상의 미소는 ... 

석굴암 본존불보다 쎄다! 

입고리가 셔어언 하게 올라갔다! 

미소 질듯 말듯이 아니라 확실한 미소다! 

그게 바로 고급 엘리트 예술과 다른 키치의 전형이라 해도 

확대해서 보니 아우라 있네! 

게다가 부처님 어깨너머 솟아오른 봉오리여! 

여름 한나절 만에 키 크는 힘이라니 

이거 우담바라보다 신비한 거 아니야!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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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취지_

20세기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코스모폴리터니즘 담론은 철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 문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코스모폴리터니즘이 현대에 다시 부상하게 배경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겠으나
특히 세계화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민족주의, 다문화주의, 이주문제, 정의, 인권 등 이전의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서 다루어야 할 복합적인 문제들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강연은 코즈모폴리턴 관점에서 종교의 존재의미와 그 과제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21세기 현대사회의 무수한 문제들과 씨름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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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민중신학 11

『촛불과 광장, 정치와 종교』

지은이_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엮음
펴낸곳_ 도서출판 동연
펴낸날_ 2009년 12월 16일
쪽수_ 240쪽
크기_ 신국판(153×224)
장르_ 인문, 정치, 종교
값_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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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가을 일반강좌>

전철의 [과학신학] - 21세기 과학시대를 대면하는 신앙

• 일자 : 2009년 10월 20일-11월 24일 (6강)
• 장소 : 서울 서대문 안병무홀
• 시간 : 오후 7시

강의일정/개요 (클릭하면 세부정보가 제공됩니다)

 | 10월 20일 1. 과학과 신학 - 자연학과 신학의 관계
 | 10월 27일 2. 근대적 과학정신의 거장 -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
 | 11월 03일 3. 물질에서 마음으로 - 베이트슨의 정신의 생태학
 | 11월 10일 4. 지식과 지혜의 두 전승 - 몰트만의 자연신학
 | 11월 17일 5. 물리학자에서 신학자로 - 폴킹혼의 과학신학
 | 11월 24일 6. 헤겔, 백두, 루만의 변증법 - 미하엘 벨커의 창발성신학
 |
 | 신학동네 참고자료

• 강의목적 : [과학신학] 강의는 21세기의 과학시대에 있어서 신학은 어떠한 방식으로 신학적 세계상을 구축하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특히 과학을 통해서 제시되는 자연학적 지식은 신학에 어떠한 의미를 미치는지를 여러 사상가들의 사유를 검토하면서 추적하는 것이 이 강의의 과제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강의는 화이트헤드, 베이트슨, 폴킹혼, 몰트만, 그리고 미하엘 벨커의 과학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그간의 성과들을 점검하려 한다.

이 강의는 우리의 중요한 논쟁거리인, 창조론과 진화론, 마음과 물질, 태초와 종말, 그리고 자연과학의 시대에서의 신앙과 신학의 근본적인 지위를 성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 저자소개
전 철 | 한신대학교 신학부와 대학원(Th.M)을 졸업하였다. 한신신학연구소, 한국신학연구소, 기장신학연구소를 거쳐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미하엘 벨커 교수의 지도하에 화이트헤드의 '창조성' 개념 연구로 신학박사 학위(Dr. theol.)를 받았다. 현재는 한신대 외래교수이며 신학동네(http://theology.kr) 운영자이다.

• 수강료_ 6강 6만원 (수강신청 ☎ 02-363-9190, yminjung@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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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토론회]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
 
- 개혁을 위한 종교인 네트워크 열린 포럼

2009년 2월 5일(목) 오후 3:00~6:00에 안병무홀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의 동영상입니다. 이 토론회는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가 주최하였습니다.(이 영상은 공동주최자인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촬영했으며, 다음카페 '우리신학 배움터 울림' http://cafe.daum.net/wooriwoolim에서 퍼온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종교를 넘어서
-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적대는 어떻게 생산되는가 -

발제1_홀로코스트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_임지현 | 한양대. 서양사
발제2_홀로코스트 신학과 홀로코스트 너머의 신학_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토론1_장석만 | 충간문화연구소 소장
토론2_박준영 | 아시아가톨릭뉴스 한국지국장
토론3_종명 스님 | 화계사 사회국장








*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는 (1) 사회 개혁 의제에 대해 종교계의 의견을 모아 밝히고 참여하며, (2) 각 교단 안 개혁 문제에 대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3) 종교 자유와 종교 간의 관용성 확대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취지로 2005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참여불교재가연대(불교), 우리신학연구소(천주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개신교)가 세 종단의 간사단체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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