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의 『시간과 자유의지』에서 과학과 그 너머




안호성

(종교심리학 박사과정 수료)


 

   베르그송의 첫 저작인 『시간과 자유의지』를 읽을 마음이 생겼다. 몇 년 전에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대한 시론』으로 한글로 새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영어번역본인 Time and Free Will 에는 “An Essay on the Immediate Data of Consciousness”가 부제로 달렸다. 영어번역본은 베르그송이 한창 활동하고 있던 1910년에 나왔다. 원저는 1888년에 출판되었으니 상당히 빨리 번역된 셈이다. 윌리엄 제임스 등의 영향이 클 것이다.  

   베르그송의 테제는 ‘의식의 흐름이 구체적인 경험이라면, 시간을 양화(量化)하는 당대의 철학은 그것을 적절하게 파악할 수 없다’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것 같다. 만약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이 없다면, 근대 과학에 구현된 연장(extension)의 방법으로 현상을 해명하는 일로 충분할지 모른다. 근대 과학은 상식과 동조하여 의식의 현상들을 마치 연장인 것처럼 다룬다. 시간은 공간으로 환원된다. 그래서 베르그송의 작업은 다음 물음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간은 공간인가? 그의 답을 거칠게 요약하면, 의식 현상들에 적합한 시간은 공간이 아니라 지속이다.  

   베르그송의 당대에 사상계에 나타난 가장 큰 충격의 하나는 『종의 기원』의 출간이었다. 더 광범한 맥락에서 본다면, 19세기 중반에 과학의 심대한 위기가 발생하였다. 근대 과학이 19세기까지 300년 동안 독보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하였다는 화이트헤드 등의 통찰이 맞는다면,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이 헤게모니는 다방면에서 흔들렸다. 위기의 시대에 헤게모니를 장악한 패러다임은 현저하게 교조적인 특성을 갖는다. 차이를 용납하지 못한다. 패러다임의 내부에 있는 사람들마저도 심대한 불안에 시달린다. 불안은 단순히 과학 내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과학의 위기와 전체 사회의 위기는 한꺼번에 나타난다. 그동안 삶을 고정하던 상징 세계의 위기는 합리적인 해결을 향하지 않고서 파국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베르그송은 19세기 중반에 공부하면서 당시 주도적인 방법에 천착했음은 당연하다. 그는 H. 스펜서의 사유에서 당대의 주도적인 방법의 현신을 보았다. 이 방법은 보통 “실증주의”로 불린다. 실증주의는 근대과학의 독단적인 표현이다. 콩트와 스펜서의 실증주의와 페히너의 심리물리학과 경험론에 터하는 연상주의(associationism) 등은 가족유사성을 갖는다. 보통 소박한 경험론으로 한데 묶인다. 경험론에 대한 비판은 20세기 철학의 중요한 관심의 하나이다. 이미 칸트는 강력한 경험론의 비판을 제시한다. 많은 면에서 칸트는 이후 철학을 지배한다. 베르그송이 칸트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자신의 철학을 제시하는 일은 당연할 것이다. 공간과 시간에 대한 그의 사유는 칸트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데 누구의 철학을 비판한다면 기준이 필요하다. 무엇에 기대어, 누구의 사유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논리적인 모순과 비약에 초점을 맞출 수 있지만 부차적이다. 경험과 현상을 우선 다루어야 한다. 그런데 ‘순수’ 경험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면? 경험을 신뢰할 수 있는가? 과학의 방법과 이론이란 무엇인가? 베르그송은 직관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직관을 통한 순수 경험의 획득이 가능하다면, 이 경험은 현존하는 과학 이론에 대해 일종의 비판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포퍼 등의 진화론적인 인식론은 이 가능성에 정초된다. 그가 경험을 철저하게 분석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아무튼 경험이 이미 있다고 하자. 이 경험은 방법의 참과 거짓을 선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이 경험의 풍부함이라는 착상을 생각해 보자. 풍부하다면, 어떤 방법이 이 풍부함을 제대로 포착하는가? 

    이 책에서 베르그송이 집중하는 것은 의식 현상들이다. 의식 현상들의 학은 가능한가? 베르그송은 프로이트와 같은 주제를 천착한다. 19세기에 정신 현상 내지는 감정들 등등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시도는 이미 로크와 흄에 의하여 일종의 완성을 이룬 것은 아니었을까? 라캉은 어떤 곳에서 근대 학의 승리는 측정(measure)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정확한 측정이라는 이상. 이 방법의 특징은 모든 주관성의 요소를 지우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근대과학 이전에도 공간의 측정이 있었고 시간의 측정이 있었다. 농경사회에서 시간의 측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18세기에 서학이 동양에 전래될 때 그 형이상학은 거부되곤 했지만 달력은 매우 진지하게 검토되고 수용되었다. 그런데 달력은 베르그송이 말하는 지속의 측면이 아니라 공간으로 환원된 양화된 시간의 측면에서 추구되는 것이다.

   이 기술의 특징은 무엇인가? 베르그송은 잠시 소설을 언급한다. 물론 자기를 기술하는 새로운 방법이 반드시 반(反)-과학일 필요는 없다. 그래도 베르그송의 철학에 깊이 기대면, 우리는 기술 자체가 갖는 한계를 검토해야만 한다. 그런데 모든 기술은 언어를 통해서 나타난다. 이것은 큰 문제를 제기한다. 베르그송은 내적 통찰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심층을 조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내면성이라고 하자. 그런데 이 내면성을 다른 사람과 교통하기 위하여 우리는 말 내지는 이미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 사용은 곧 내면 상태를 공간화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학에 종사하는 또는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언어의 가능성과 한계가 문제된다.

   한국에서 스펙이라는 단어가 인기를 끈다. 스펙이라는 단어는 원래 공산품의 특징을 기술하는 용어가 아닌가? 이 스펙이라는 단어는 자본주의라는 시장에서 매력 있는 상품으로 사람이 전화되는 극단을 표현한다. 그 단어에 대해 구토를 느끼는 대신에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에서 자본주의의 승리를 확인한다. 베르그송이 제시하는 사유를 통하여 이를 해석한다면, 사람으로-있음의 자본주의적인 양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양화의 도착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베르그송의 사유를 예수의 언명과 관련하여 고찰할 수도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 물론 말씀이 환기되는 순간 베르그송은 말할 것이다. 말씀마저도 양화의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그런데 말 또는 언어는 절대적인 지평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말없이 사는 존재를 관찰할 수 있다.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같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무튼 말이야말로 사람으로-있음의 가장 현저한 특징이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말은 이미 획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으로-있음에서 변모하는 것이라고. 베르그송이 책의 한 대목에서 소설을 다루면서 표현하는 난점들을 기억한다. 내적 상태를 양화하지 않고서 기술하는 가능성으로서의 시. 또는 그림과 음악.

   1888년에 베르그송은 이 책을 출판했다. 그는 1859년생이니 서른이 되던 때였다. 그의 나이에 견주면 나는 십 수 년을 더 살았다. 세상에 내어 놓은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공인된’ 자리 하나 잡지 못한 채 늘 막연한 고민에 시달리는 처지이다. 나는 이 세계적인 철학자 앞에서 부끄럽다.

   그런데 문득 이 부끄러움은 베르그송이 주장하는 참된 자기(self)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아(ego)와 관련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 사람에게 있다면 그것은 양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고유한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를 사회적이고 과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아(ego)와 관련하여 사람은 비교된다. 비교된다는 말은 측정된다는 말이다.

   누구나 일정한 키를 가진다고 하자. 만약 키가 사람으로-있음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한다면, 문득 키를 아주 세밀하게 측정할 것이다. 키에 따라서 차등하게 자원을 분배하는 세계를 생각해 보자. 이 세계는 분명 당혹스럽다. 그렇지만 베르그송의 한 사유의 입장에서 사람으로-있음의 값을 매기는 모든 일은 궁극에 있어서 키에 따라 사람을 일렬로 배열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베르그송의 사유에 따르면, 이것은 현실로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사람으로-있음은 그렇게 양화할 수 없는 차원을 갖는다. 양화할 수 없는 차원에서 본다면 모든 사람들은 지극히 평등하다. 양화할 수 없는 것을 배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관점에서 현대의 문제는 양화할 수 없는 것을 양화하는 매우 섬세한 방법을 개발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양화할 수 없는 수준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는 사유는 매우 심대한 종교적이고 실존적인 차원을 갖는다. 다시 나의 부끄러움으로 되돌아가면, 나의 자아 또는 사회가 나에게 강요한 양화를 극복하고서 참 나(self)와 ‘더불어’ 자족하는 경지를 획득할 수 있다. 베르그송은 이 경지를 자유라고 부른다. 그 자족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하고 묻는 일은 다시 자기를 양화의 세계로 이끈다. 정말로 그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에 머무는 것으로 충분하다. 머물면 무슨 유익이? 나는 그렇게 묻는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양화하는 어떤 정신의 강고함을 느낀다.

   요컨대 베르그송의 자기는 지속으로 파악되는 세계이다. 그러면 지속을 긍정적으로 정의하는 일이 가능한가? 지속은 오직 부정적으로 포착되는 것이지 않을까? 정말로 긍정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앞서 예술을 거론하였다. 과학은 양화의 기술로 남아야 한다. 이 점에서 과학과 예술의 화합이라는 면이 거론될 수 있다. 과학이 문제되는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의 독단 때문이다. 과학이 만능이라고 착각할 때, 베르그송이 지속이라고 부르는 삶의 영역은 축소되고 왜곡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삶의 완전한 지속에 대한 헌신 같은 것도 가능하지 않다. 삶은 어떤 면에서도 불완전하다. 다만, 몇 가지 다른 영역들을 완전히 한쪽으로 환원하지 않고서 어떤 중도를 발견하는 ‘지혜’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과학이 지속을 적절하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 시간과 우연과 확률 같은 용어들이 엄밀 과학에 소개된 지도 오래 되었다. 이 새로운 변화는 베르그송의 지속을 참조하는 과학이 될 것인가? 나는 현대 과학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없어서 답할 수 없다. 나는 내가 전공하고 있는 또는 깊이 관심을 갖는 측면에서 사람으로-있음의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베르그송이 자기와 자아를 구별하는 것에 대해 첨언한다. 자기는 지속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자아는 자기가 공간화 또는 양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양화된 것은 측정될 수 있으며, 이 영역이 심대하게 양화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현대 사회는 자아의 양화를 매개로 한 착취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과학만이 아니라 모든 학이 베르그송의 용어를 빌면 양화되고, 양화는 총체성(totality)을 지향한다. 만약 철학이 이 양화를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학이 양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학 내지 지식은 언제나 양화의 문제일 것이다. 더 섬세하고 말랑말랑한 양화가 있겠다. 그래서 학에 맞서는 것으로 비(非)-학이 있겠는데 현재로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문학과 예술이다. 문학과 예술은 사람으로-있음의 복잡한 지속의 상태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타락과 위축은 베르그송적인 시각에서 현대가 직면한 큰 문제가 될 수 있겠다.

   베르그송의 사유에 있어서 흥미로운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루는 방식이다. 특히 과거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나중에 그가 기억에 관한 책을 쓴 일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기억이란 무엇인가? 사람으로-있음은 언제나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현상이다. 미래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현재의 순간을 산다고 하자. 그런데 비유한다면 사람은 한 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열린 공간이랄 수 없지만, 공간의 비유를 빌 수밖에는 덩어리로 산다고 해야 할까?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사람과 사람을 구별하는 주체성은 출생 이전에 주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또는 유전자의 형태로 주어졌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다시 많은 의문이 든다.

   나는 주체성이 출현한다고 보는 편이다. 주체성은 경험적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환경은 같을 수 없고, 유전자도 같을 수 없다. 이 미세한 차이에서 삶은 출발한다. 유전자가 동일한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없다. 그것은 온갖 가능성들의 집합이고, 환경은 온갖 우연의 집합이다. 이 둘의 결합과 더불어 삶은 시작된다. 불현듯 시작된다. 우리는 말 이전에 정말로 무엇이 이루어지는가를 연구할 방도가 없다. 동물에게 의식이 있는가 하는 점이 아직 우리에게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듯이. 이것은 말을 통하지 않고서 소통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점에서.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 또한 오직 말을 통해서이다. 그렇다면, 말할 수 없이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들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무(無)라는 말인가? 무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소통되기 위해서는 말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람에게 아직 말이 없는 시절에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말의 너머에 존재하는 그 세계를 아이의 세계라고 가정할 수도 있겠지만, 그 말 너머의 세계마저도 말이 있고나서야 존재하지 않을까?

   이 글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와서는 일기장에 그에 대한 나의 인상을 적은 것에 비할 수 있다. 그런데 지속에 대한 베르그송의 사유에 따르면, 그와의 만남은 나를 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할 것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그와의 만남은 두 가지 방식을 가질 수 있다. 한편으로, 그 만남은 나라는 기존의 사람으로-있음에 오직 피상적인 흔적만 남길 것이다. 자유의 실현이 없는 반복과 리듬이 부각된다. 극도로 미세한 관찰에 의하면, 여기에도 변화와 창조가 있기는 하다. 다른 한편으로, 이 만남은 과거-현재의 연속체와는 매우 다른 자기, 즉 사람으로-있음을 창조하거나 구성하기도 한다. 이런 자기창조의 가능성 때문에, 사람으로-있음의 해명은 과학 내지는 지식의 방법을 초월하는 면이 있다.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내적인 의식 현상들을 양화하는 일은 사회생활을 위해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사람으로-있음을 온전히 해명했다고 여길 수는 없다. 베르그송은 과학과 과학의 너머를 지시한다. 너머에서. 물론 과학이 자신의 너머를 안으로 끌어들일 방법이 반드시 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베르그송의 첫 저작에서 그가 가리키고 있는 지점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과학에 맞서는 또는 나란히 존재하는 지속의 세계를 강조한다. 베르그송의 책을 읽고서 사람으로-있음, 너머와 자유, 창조에 대해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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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과학' 그리고 '종교'


이상현

(GTU 조직신학 박사과정)


 

   14세기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창궐했고, 수 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각 도시를 관할하던 통제기구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사회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거리에는 전염병으로 죽어간 시신들이 나뒹굴었지만, 많은 가족들이 해체되었기 때문에, 죽은 자들을 위한 장례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사회 안전망은 붕괴되었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 나머지 비이성적인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1923년, 일본 간토(関東)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진은 수 십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간토지방은 생필품의 공급마저 끊어져 하루하루의 생존조차 불분명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분노를 표출합니다.

   재앙이 사회 전체를 강타할 때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감정 중 하나는 분노입니다. 이 분노는 처음엔 자신들의 평온한 일상을 앗아간 외부 재앙을 향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이 구체적인 누군가로 바뀌게 됩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여전히 진행중인 생존의 위협 속에서 사람들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곧 분노를 표출할 누군가를 찾아내려 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분노가 향하는 대상은 항상 그 사회 안에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번졌을 때 사람들이 발견한 분노의 대상은 소수인종이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성적으로 볼 때, 전염병과 유대인은 그 연결고리가 희박합니다. 하지만 분노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유럽인들은 손쉽게 이 연결고리를 만들어 냅니다. 바로 ‘유대인들이 식수에 독을 풀었다’는 루머였습니다. 이 잘못된 루머로 인해 200여 개의 마을에서 수천 명의 죄없는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간토 대지진에서도 아주 유사한 결과가 이어졌습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를 일삼는다’는 루머가 퍼졌고, 역시 수천 명의 재일교포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전염병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와 같이 사회가 통제기능을 상실하고 혼란에 빠지게 되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정상적이지 않은 그 상황에 대해 분노합니다. 하지만 그 분노의 방향은 그 상황을 야기한 재앙 자체나 그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시스템을 향하기보다는, 그들이 함부로 분노해도 괜찮은 사회적 약자를 향하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왜 사회적 약자가 분노의 대상이 되는지는 이 글의 말미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가 혼란해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에, 사회적 약자는 가장 먼저 분노받는 대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예는 유럽의 흑사병이나 간토 대지진 외에도 우리의 역사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서기 64년 로마에 대화재가 났을 때, 네로황제와 로마인들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함으로써 재난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였습니다. 9.11 테러를 당했을 때 미국인들은 이슬람인들을 향해 그들의 분노를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이 분노에 대해 이슬람인들은 다시 유대인들과 미국을 향해 더 큰 분노로 되갚아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연재해나 테러를 통한 재난상황이 아니어도 사회가 불안정해지면,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적개심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됩니다. 이때의 감정은 분노보다는 ‘혐오’라 불립니다. 가령, 1차 대전 이후, 독일이 경제공황에 빠졌을 때 그 분노는 유대인들을 향했고, 그들에 대한 혐오와 탄압은 히틀러를 통해 극대화됩니다. 그리스 경제위기로 유럽의 경제가 동반하락하자 그들의 분노는 이슬람 이민자들을 향합니다. 또한 16-17세기에 벌어졌던 마녀사냥은 지역사회의 갈등과 빈곤의 문제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문제는 당시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했던 미망인들을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최근 한국사회도 비슷한 일이 발생합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실업이 증가하고 빈부격차가 커지자, 한국인들의 분노와 혐오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일자리와 관련지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그 분노가 표출되었고, 곧 이 분노는 특정지역이나, 특정외모, 노인, 장애인, 그리고 여성들에 대한 혐오로 이어집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 혐오에 관한 문제는 커다란 사회갈등으로 진행 중입니다. 사회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은 보호를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혐오의 감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 혐오는 가시적인 분노로 표출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불안정하고 경제적인 위기가 닥치면, 이 혐오감정은 구체화되어 테러와 폭력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혐오와 분노는 불안정한 사회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 사회에 속한 구성원들은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비정상적인 사회 안에서 어떻게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또 다른 키워드가 바로 ‘과학’입니다. 과학은 경험성과 동일성, 합리성을 바탕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사회적 구성원들 다수의 신념과 배치되더라도 그 이성적 논리를 근거로 올바른 판단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실제로 과학의 역사는 이러한 과학적 판단의 우월성을 여러 번 증명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을 때,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와 같은 과학자들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고, 후에 그들의 주장이 옳았음이 입증되었습니다. 기상학자였던 베게너(Alfred Lothar Wegener)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동쪽 해안선과 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선이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현재의 대륙들은 오래 전에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Pangaea)에서 갈라진 것이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로 인해 당시엔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베게너의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유전학의 멘델, 면역학의 제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 등, 과학적 판단이 당시 다수의 편견을 깬 예는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과학은 비정상적인 사회 안에서도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도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을 통해 우리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요? 아무리 대중들이 과학의 합리성을 인정한다하더라도, 과학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푸는 만능열쇠로 인정되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플라톤의 ‘철인(哲人)정치’나, 베이컨의 ‘뉴아틀란티스’는 차치하더라도, 과학적 사고가 다수의 대중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입니다. 하지만 20세기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비이성적인 사회 안에서 혐오와 분노가 사회적 약자를 향하고 있는 현상을 여전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우리 사회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주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과학적 사고 대신에 혐오와 분노의 감정을 약자에게 표출하는 비합리성을 보여줍니다.

   물론 오늘날의 과학은 과거의 잘못된 지식이나 비합리적인 행동들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가령, 과거 유럽에 흑사병이 퍼졌을 때, 유럽인들의 대처는 오늘날의 눈으로는 비합리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흑사병이 오염된 공기로 인해 일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에, 허브잎을 태워 향기로 공기를 정화시키려고 했습니다. 또한 잘못된 의학적 지식 아래, 에머랄드 가루를 갈아서 먹기도 했으며, 감염되지 않은 사람의 소변이나 대변을 몸에 바르고 먹기도 하는 치료법이 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의학지식은 이러한 기행(奇行)적인 대처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식수에 독을 넣었다’는 루머조차도 오늘날에는 과학적 조사로 밝혀낼 문제이지, 아무런 증거없이 그 누군가를 학살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과학이 우리사회에 기여한 최고의 공헌은 ‘미신(迷信)’에 대한 타파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미신을 없애듯’ 제거할 수는 없는 걸까요? 사회가 불안정할 때 나타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와 혐오는 사실 설명하기 어려운 심리학적인 감정입니다. 저는 이 약자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생존을 위한 잘못된 미신’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춘추시대 오(吳)나라의 오자서(伍子胥)는 원수인 초(楚)나라 평왕(平王)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고, 마침내 초나라를 정복하고,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채찍으로 300번 내리치며 복수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복수를 마친 후에 밀려오는 그 허무함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는 오나라의 적국이었던 월(越)나라를 미워하는 것으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오자서에게 적개심 자체는 자신의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었던 겁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감정과, 오자서가 삶의 의미를 갖기 위해 품었던 적개심이 다른 감정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약자에 대한 혐오 감정은, 불안정한 사회 안에서 스스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는 ‘미신’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확인하고 그들의 고통을 관전함으로써, 불안정한 자신을 애써 안정된 것처럼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학적 방어기제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종교’라는 마지막 키워드가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종교는 ‘특정한 믿음을 공유하는 신앙공동체’를 뜻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종교는,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기존의 신앙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의 신념을 공유하는 ‘미신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이 미신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약자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심지어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며 약자의 고통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혐오가 정당하다는 포교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과학의 대화는 단순히 양쪽의 세계관을 조율하고 공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혐오라는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과학은 19세기 이후 ‘과학만능주의’라는 오만함을 드러내며,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낙관했지만, 실제로 20세기 이후 약자에 대한 비이성적인 혐오와 분노가 사회전반을 지배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도 혐오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기득권은 이러한 혐오 감정을 이용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조차 혐오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기독교도 우리사회의 혐오의 미신에서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여전히 많은 교회들은 동성애자나 장애인, 여성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미신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몇몇 대형교회들은 우리사회의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종북’이나 ‘좌파’와 같은 낙인을 찍으며 혐오감정을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와 과학의 대화는 약자에 대한 혐오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혐오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와 과학의 대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회 문제에도 폭넓게 관여할 방법을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결국 혐오를 숭배하는 미신종교를 극복하는 것은, 과학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 안에서 혐오를 극복하는 사랑의 메시지가 교회를 통해 선포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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