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묵시록 8 : 미국의 세대주의 신학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미국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정서에 작용하는 분열증 같은 것 때문이다. 서구의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보와 실용과 기술을 앞세워 나라를 발전시켰지만 아직도 가장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나라로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종교제도에 구애받지 않는 세속정치를 상상했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정치화된 종교와 종교화된 정치다. 종교의 정치가 뜻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등장한 억지가 도날드 트럼프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분열증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 갈등이 우리가 흔히 아는 과거에 집착하는 종교의 보수성과 실용적인 가치를 앞세우는 정치의 대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의 지배적인 종교성향은 실용을 앞세우는 정치와 마찬가지로 미래지향적이다. 청교도들의 시대 이후 미국은 미래, 아니 하나님의 미래를 준비하는 나라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었고, 그 내용을 이 글에선 묵시록이라 부르고 있다. 과거의 진리보다 미래의 예언에 의해 움직이는 정서적 성향은 미국의 정신을 특징짓는 요소다. 이를 증명하는 예는 청교도 신학과 독립의 선언, 개척시대의 논리 등에서 찾을 수 있고 최근에는 9.11 이후 미국의 사명을 재천명하는 과정에서도 볼 수 있다. 묵시록의 신학은 미국의 사명과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찾는 역사의 원동력이었다. 미국정서의 분열은 미국의 정치와 종교, 더 나아가 철학과 신학이 서로를 멀리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의 종교와 정치는 과거와의 단절을 덕목으로 인식해 왔다. 과거에 얽매이는 종교는 유럽으로 충분했고, 미국은 유럽과 세상의 미래가 되어야 하고 신학은 이를 예시해야 했다. 신학적으로 이 문제는 예언의 문제였고 구체적으로 천년왕국의 문제였다. 희랍시대 이후 서구사상의 본질이 있다면 그것은 중세의 신론도 근대의 인식론도 아닌 고대의 종말론이었다. 이것은 신학의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최근의 서구사상이 종말론을 되찾은 것은 막장으로 치닫는 정치에 대한 환멸이었는지 아니면 우연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종말론적인 사유가 미국의 역사에서 배양되고 있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사유는 언제나 종말의 시제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인식으로 시작한다. 천년왕국으로 환원되는 종말론은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긍정적인 면이 많은 현상이었지만, 그 미래는 환란과 전쟁과 심판을 수반하는 것으로 떨림과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예수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전후관계를 따져 구분되는 전천년설과 후천년설 또는 무천년설 등의 용어들은 19세기 미국 기독교를 통해 신학적인 역사이해로 발전했다. 특히 전천년설은 신학의 범위를 넘어 19세기 후반 이후 미국에서 통용되어 온 세상과 인간에 대한 그 어떤 이론보다 더 크고 실제적인 영향력이 있었다. 예수의 재림과 돌아온 구세주의 구조와 논리는 미국 묵시록의 원형이었고, 묵시록과 그 상상력은 미국적인 사상의 무의식을 형성했다. 역사적으론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19세기 말 미국이 주도한 세계 선교운동의 동기가 되었고, 20세기 미국의 근본주의 그리고 복음주의 신앙의 신학적 모태였고, 미국 대중문화와 산업의 가장 큰 동기의식으로 작용해왔다.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미국에 가장 많다는 사실은 그 결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원인인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성향의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의료보험과 같은 빈곤층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국가제도를 반대하고, 총기규제를 반대하며, 거대한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을 옹호하고 숭배하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지구의 온난화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본주의 속 인간의 삶이 그 원인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왜 이들은 보수주의 이념도 아니고 기독교 신앙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슈들로 뭉쳤을까?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예가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사회적 파장이 컸던 <All in the family>라는 TV 시트콤의 주인공 알치 벙커(Archie Bunker)가 바로 그런 보수주의자였다. 뉴욕의 부둣가 하역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던 벙커는 개신교 백인 외에는 모든 인종을 싫어하고, 당시 인기가 없던 닉슨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고,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딸과 사위에 대항해 억지 주장을 펼치면서 언제나 큰 웃음을 자아냈다. 왜 자신도 가난하게 살면서 부자들에게 더 세금부담을 지우는 걸 반대하냐고 사위가 물었을 때 그가 한 대답은 아직도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부자라서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면 부자가 되고 싶은 자신의 의지를 꺾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나도 부자가 되는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부자들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의외로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가난한 내가 이웃의 부자와 크게 다르지 않고 노력만 하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게 되기까지 미국의 자본주의가 벌여온 자본친화적인 의식개조 작업이 있었지만 여기서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자본주의가 곧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는 자유를 뜻하고 자유는 곧 미국이라는 입장으로 국민 의료보험 제도에 대한 반대나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나 총기규제 반대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 설명은 자신의 이익과는 상관이 없는 입장을 지지하게 만드는 종교적인 차원을 담아야 하고, 미국에서 그 설명은 종말론적인 세계관, 구체적으로 전천년설(Premillennialism)에 의거한 역사의식으로 가능하다. 


    전천년설을 다루기 전에 19세기 초반 미국의 상황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그 시대 미국은 이전 역사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기독교 교리의 해석과 새로운 종교운동과 실험의 공간이었다. 독립전쟁을 이기고 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영토 확장을 위해 서부로 눈을 돌렸다.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의 모든 땅이 미국에 주어진 운명이자 권리란 주장이 등장했고,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서부로 이주하는 행위를 개척의 정신 또는 미국 정신의 실천으로 보는 시각이 퍼졌다. 원주민들에게는 성스러운 조상의 땅이었지만 개척자들에겐 문명의 손길을 기다리는 황무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서부로 진출할수록 기존 교회나 교단의 영향력은 미치지 못했다. 교리를 지키는 교회가 없다는 것은 교리의 통제력도 상실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세기 초반 미국의 영토가 본격적으로 확장되면서 교회나 국가제도의 힘이 덜 미쳤던 지역에서 영적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것은 교리나 교회를 넘어선 성령운동이었고, 이 운동은 믿는 이들에게 영적인 거듭남을 요구하는 성령중심의 기독교를 등장시켰다. 영적인 부흥(Spiritual revival)이란 개념이 등장했고, 이를 도모하는 부흥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무엇으로부터 영혼을 부흥시킨다는 말일까? 황무지의 광활한 공간에서 부는 성령의 바람을 체험한 사람들에게 종교적 교리와 의식은 낡은 관습에 불과했다. 텐트 부흥회는 구원이 세례가 아니라 성령을 통한 중생의 체험만으로 확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원은 언제나 마지막 날의 문제였고 성령의 바람은 그 징표였다. 부흥집회는 마지막 날 중생과 구원을 위한 최후의 결단을 요구했다.


    성령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부흥운동이 일어나던 19세기 초반의 미국역사는 황무지에선 내가 내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 개인주의가 등장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19세기 후반 세계복음화의 열풍이 불었던 시기는 미국이 제국으로 발돋움 하던 바로 그 시기였다. 온 세상의 복음화가 드디어 가능하다는 믿음에는 제국주의 체제가 이를 가능케 한다는 암묵적인 믿음이 깔려있었다. 이제 미국이 나서서 세상을 무지와 낡은 역사에서 구원하겠다는 제국주의적 발상과 믿지 않는 세상을 그리스도와 문명의 빛으로 구원하겠다는 발상은 비슷한 세계관에서 출발했다. 미국이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인식은 미국역사의 보편적인 잠재의식이라 할 수 있고, 세상이 곧 심판의 날을 맞는다는 종말론은 청교도 시대에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 미국의 세계복음화 운동은 예수 재림과 천년왕국 사상으로 무장한 묵시록에 그 특징적 요소가 있다. 


    영적인 운동에서 종말에 관한 새로운 예언이 빠질 수 없다. 신의 새로운 예언을 받았다는 몰몬교가 등장했고, 몰몬교도들은 성경의 에덴동산이 미국에 있었다는 증언까지 하면서 새로운 낙원을 꿈꾸었다. 예언에 의거한 종말의 공동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 윌리엄 밀러는 예수 재림의 연도를 선언 하고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모아 종말운동을 펼쳤다. 뉴욕의 오나이다(Oneida)공동체는 마지막 시대에 결혼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성관계를 허용하는 파격적인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여호와의 증인과 안식일 교회와 같은 환란과 아마겟돈의 예수 재림설을 주장하는 종교공동체들이 등장했다. 전통적인 교리나 이를 수호하는 교회가 배제되고, 성령의 바람이 이끄는 부흥운동이 가져온 또 다른 변화는 여성들이 종교지도자들로 등장하기 시작한 일이다. 교리적 학습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만이 기준이 되었을 때, 쉐이커스(Shakers)와 안식일(Adventist)과 크리스천 사이언스 등의 공동체에서 여성 지도자들이 등장해 공동체를 이끌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와 같은 19세기 미국의 종교현상들에 대해 이런 평가를 할 수 있다. 개척지라는 상상 속의 빈 공간에서 미국인들은 성령을 만났고, 성령은 억압적인 교리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했고, 그 자유는 종말론이라는 교리의 종결자를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부흥운동은 세상의 마지막을 예비하고자 했던 청교도들의 종말론적 사명을 물려받았지만 중요한 신학적인 차이가 있다. 청교도들은 그 사명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에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다면, 부흥운동의 지도자들은 인간이 그 일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이 스스로를 돕는 선택과 결단과 회심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에만 초점이 맞춰진 청교도들의 칼빈주의는 신학적 소설에 불과했다. 19세기 초반 부흥운동의 신학적 기반을 닦은 피니(Charles Finney) 같은 이들은 청교도들과는 전혀 다른 신학과 인간이해를 갖고 있었지만 미국의 종말론적 사명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강력한 입장을 견지했다. 인간의 의지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 회심의 결단 이후 완벽한 성화의 길을 갈 수 있고, 세상을 선하게 변화시켜 종말을 준비할 수 있다는 후천년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미국 개신교의 지형을 바꾸고 세계 복음화의 신학으로 등장한 것은 영국의 존 달비(John Nelson Darby)가 체계화시키고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꽃을 피운 세대주의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이라 불리는 후천년설과 상반된 재림설이었다.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자 찰스 하지나 그 후 보수 장로교 신학을 대변했던 메이천 같은 이들도 비성서적이고 위험한 면이 있는 신학이라고 했을 정도로 비판도 많았지만,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미국 개신교의 종말론적 정서를 밑바닥에서부터 재정비했고, 묵시록이란 장르를 미국문화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만들었다. 이 묵시록을 미국의 신학으로 완성시킨 사람은 스코필드(Cyrus Scofield, 1843-1921) 목사였다. 그가 편집하고 해석을 단 관주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은 세대주의 신학을 20세기 세계선교의 현장에 전파하는데 공헌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판매되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성경책이다. 달비의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보급될 당시 미국의 개신교인들에게 예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예언은 새로운 이론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계에 의존하는 산업화 시대가 만드는 갈등과 신의 창조질서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다윈주의 그리고 성경의 비평론 등은 세상이 진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악의 세력이 지배하고 망해가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고 예수의 재림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이라는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만들었다. 달비는 믿는 사람들이 재림 전에 세상의 환란을 피해 공중으로 사라진다는 휴거설과 함께 적그리스도와 싸우는 최후의 전쟁과 환란과 심판의 날 그리고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세상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종말론의 정서가 깊은 미국에서도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정치에서 종교, 문학에서 문화까지 아우르는 묵시록의 상상력을 제공한 것이었다. 전천년설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제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를 경계하며 지켜봐야 했고, 모든 전쟁은 아마겟돈의 관점에서 지켜봐야 했다. 비대해진 국가권력은 악한 일을 꾀할 세력으로 견제해야 했고, 이스라엘은 예수의 재림이 올 때까지 존재해야 했다. 전천년설에 의해 설득된 미국의 교인들은 이런 마지막 날의 사명을 한 명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 믿었다. 19세기 후반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은 세계선교에 뛰어들었고, 한국에 미국의 개신교가 들어온 배경에는 이런 재림과 종말의 묵시록이 있었다. 


    한국에 온 1세대 선교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드와이트 무디의 영향을 받았고 전천년설을 믿었다. 무디가 주도한 세계 선교운동은 이전 피니(Charles Finney)가 주도했던 후천년설에 의거한 부흥운동과는 달리 세상의 복음화가 단기간에 끝나야 한다는 급박한 종말론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당시 무디가 활동하던 시카고에 초기 한국선교에 큰 공헌을 한 선교사들을 배출한 맥코믹 신학교가 있었다. 19세기 후반 맥코믹은 장로교 신학교였지만, 무디의 영향을 받고 전천년설과 부흥운동에 심취해 해외선교에 뛰어든 학생들이 많았다. 미국 교회사에서 무디와 맥코믹 신학교의 관계는 부각되기 힘든 것이지만 한국의 초기 개신교 역사에선 매우 중요한 신학적 연결고리가 된다. 무디의 영향을 받는 선교사들은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소개하는데 앞장섰다. 스코필드의 관주성경(Scofield Reference Bible)은 한국에서 언더우드와 게일 선교사에 의해 번역 되었다. 맥코믹 출신 소안론 (William Swallen) 선교사는 스코필드가 제작한 세대주의 역사이해를 정리한 도표 <Rightly dividing the word of truth>를 한글로 번역했고, 길선주 목사는 이를 변형시켜 <말세도>라는 이름으로 그의 부흥회에서 종말을 설명하는 자료로 삼았다. 소안론은 또 대표적인 전천년설의 이론가 R.A. Torrey의 <What the bible teaches>를 한국어로 번역을 하기도 했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피어선(Arthur Pierson) 선교사는 다수의 저작으로 세계선교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무디와 함께 19세기 부흥운동의 묵시록적인 전환을 이끌어냈다. 그가 사망한 후 한국의 미국선교사들은 힘을 합쳐 <피어선기념성서학원>을 한국에 세워 그의 정신을 따르고자 했다. 맥코믹 출신 선교사들은 평양신학교의 교육을 맡으면서 전천년설의 신학을 가르쳤다. 초대 학장이 된 마포삼열을 필두로 소안론, 방위량(William Newton Blair),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 등은 모두 전천년설을 신봉했던 맥코믹 신학교 출신이었고, 이들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것은 우연이라 할 수 없다. 언젠가 맥코믹 신학교 출신으로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들의 출신 지역을 살펴본 적이 있다. 대부분 시카고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의 서부로 불리던 그 지역에서 새롭게 부는 성령운동에 감화되어 회심하고, 마지막 날 최후의 순간까지 영혼을 구한다는 심정으로 선교에 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전천년설 신학이 지금은 정당한 비판을 받고 있어도, 그 어떤 자유주의 계열의 신학보다 영향력이 컸던 미국적인 신학이었고 아직도 미국의 정신문화에 그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20세기 미국의 근본주의 신앙으로 이어졌고 현재 미국 개신교의 주류라 할 수 있는 복음주의 신앙의 한 뿌리를 형성했다. 미국 묵시록의 20세기 판이라 불릴 수 있는 이 신학의 대중성은 1970년 할 린지(Hal Lindsey)의 책 <The late great planet earth>를 통해서 드러났다. 수천 만권이 팔린 그 책은 휴거와 환란과 적그리스도와 아마겟돈의 예언이 곧 이루어질 것이란 경고를 했고, 냉전시대에 걸맞게 이스라엘과 소련은 마지막 날 예언의 중심에 있었다. 놀랄만한 책의 판매부수는 새로운 종말론에 목말라하는 미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최근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린지가 아직도 마지막 날의 예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린지의 뒤를 이어 1990년대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Left behind>라는 책의 시리즈도 휴거와 환란을 주제로 삼아 경이로운 출판기록을 세웠다. 전천년 종말론의 시대적인 배경으로는 냉전이라는 정치체제가 존재했고, 그 시대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목사는 전천년설을 믿었고 19세기 부흥운동의 깃발을 이어받았던 빌리 그래함 목사였다. 


    세대주의 신학만큼 미국적인 신학은 없다. 산업화와 진화론이 의미하는 실용과 기술에 맛서 전근대적인 억지를 부리는 보수주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천년주의 사상을 근대적이고 기술적인 방식으로 해석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세대주의 신학에서는 근대학문의 분류법과 수치화된 계산법을 도입해서 성경을 이해하면서 역사를 ‘세대’로 나누고자 했고, 성경의 의미를 텍스트의 상호성이라고 할 만한 개념을 도입해 ‘관주성경’을 유행시켰다.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Dispensational modernism세대주의 모더니즘>이란 책은 세대주의 신학도 성서비평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만큼 그 시대의 일반적인 과학정신을 반영하는 신학적 사고를 하고자 했다고 전한다. 세대주의 신학은 성경이 일관되고 유기적인 통합성을 지닌 말씀이기 때문에 예컨대 성경 한 부분의 의미는 다른 곳에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부분을 참조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자유주의 신학이 그 의미를 역사적 배경과 맥락으로 제한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역사적 인식과 의미는 시대정신의 일부로 모두에게 중요했지만, 세대주의 신학이 성경의 예언을 통해 종말로 향하는 시대의 진리를 읽고자 했다면,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묵시록을 역사적 상황에 대한 기록이나 그 시대의 신학적 또는 신화적 상상력을 드러낸 것으로 보기 일쑤였다. 20세기 개신교의 시한부 종말론 사건들은 대게 미국의 세대주의 신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 사건들의 폐해는 여기서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고, 세대주의 신학 또한 충분한 비판을 받아왔다. 다만 그 신학이 미국에서 신앙운동으로, 독특한 세계관과 역사의식으로 발전되어 온 역사는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묵시록이란 관점에서 세대주의 신학은 미국의 종말론적 정서를 19세기 후반의 시대정신 속에서 개량하고 구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간에 시작이 있고 목적과 끝이 있다는 게 기독교 서구문화의 시간관이라면, 그 끝이 가까이 왔다는 종말론의 시간은 단순히 시간의 끝이 아니라 이루어진 시간을 말하고 이것은 다시 시간의 본질을 뜻한다. 기독교 신학에서 시간이 (하이데거에서처럼) 존재의 문제 또는 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존재가 아니라 신의 존재를 의미한다. 신의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는 시간이 종말론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이 시간의 문제는 메시아적 시간이라는 종말론의 시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 시간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메시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끝이 가까운 시간이 아니라 이미 끝난 시간 아니면 세상의 종말이 선고된 상태에서 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부활로 이미 시간의 시제가 혼탁해진 상태에서 회개와 중생과 같은 시간의 앞뒤 경계를 흐리는 개념을 도입하고 의인과 악인까지 한때 부활하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이 이미 대본이 나온 그 드라마의 전편(Prequel)이라면 시간의 경계만이 아니라 모든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 드라마가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일념으로 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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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하나님의 뜻 그리고 종말



 

민기욱
(GTU 조직신학 박사과정)


 


       아내와 차를 타고 가다가 잠깐 신학논쟁(?)이 벌어졌다.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디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있던가? 결혼을 결심할 때, 왜 나를 선택했느냐가 주제였다. 아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는 것이다. 서운했다. 내가 매력적이었다거나, 장래가 있어 보였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착해 보여서 나를 선택했다고 말하길 기대했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었단다. 가끔 교우들 중에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꼭 목사에게 “하나님의 뜻”일까 여부를 묻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말해 겉으론 진지하지만 속으론 웃을 때가 많다. “진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겁니까?” 

       하나님과 창조세계의 관계에 있어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두 가지의 양 극단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인형극장” 모델이다. 이 세상을 인형극장으로 생각해 창조주 하나님이 일일이 줄을 당겨서 오직 그 분이 하라는 대로 모든 창조계가 춤을 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운명을 점친다랄지, 팔자를 탓하는 것이 크게 보면 이런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이는 결정론적 사고 모델이다. 또 다른 하나는 “관객” 모델이다. 우주라는 무대가 잘 돌아가도록 준비해 놓고, 이제는 무심하게 내버려두는 관객이 되어버리는 그런 하나님이다. 지난 세기의 “이신론” 즉 “눈먼 시계공” 모델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가지 양 극단을 피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최초의 창조를 시작하고서 팔짱을 끼고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창조하고 계신다. 적어도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140억 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창조주이셨고 오늘의 창조주이시다.  

      또한 그 분의 연속적인 창조는 “피조물들의 자유”를 허락하신다. 덕분에 역사가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연”이 생겨났다. 그러나 스스로를 자각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줄 아는 존재들이 우주 역사의 과정에서 순전히 우연으로 생겨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목적이 있다. 물론 역사의 우발성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논리를 진행하다보면 궁극적으로 만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악과 고통”의 문제다. 어느 누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먼저 “도덕적 악”의 문제에 직면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범죄를 듣고 본다. 왜 하나님은 인간에게 악을 허용하셨는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잠시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라. 만약 우리에게 선 대신 악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 세상을 살 수 있었을까? 우리는 역사와 오늘의 현실을 통해 수없이 많은 전쟁과 인간의 잔악함을 본다. 우리의 선택을 통해 커다란 고통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을 기계로 대체할 수는 없다. 이렇게 악이 발생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인간의 자유라는 더 큰 선을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이며, 이를 “자유 의지 방어”라 부른다.  

       또 다른 하나는 “자연적 악”이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지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리스본 대지진을 아는가? 1755년 All Saints Day에 발생한 이 지진으로 교회가 무너져 5만 명이 죽었다. 과연 지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옥스퍼드의 신학자 오스틴 파러는 이렇게 답변했다. “신의 뜻은 지각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그 본성에 맞게 작용해야 한다”고. 이를 오늘날의 신학자들은 “자유 과정 방어”라 부른다. 하나님은 살인자의 행위와 병의 발생을 직접 의도하지는 않으신다. 다만 허용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약함”이거나 “간과함” 혹은 “냉담함” 때문이 아니다. 다만 불가피한 대가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고통의 미스테리나 “참담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버클리 지역도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잊을만하면 잠자고 있는 순간에, 수업을 하고 있는 교실에서, 예배를 마치고 주차장을 나서는 순간에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지진이 잘 나는 곳이었지!” 하고 자각하게 하며 땅은 흔들어대며 나를 깨운다. 매번 무섭다. 어느 날은 책장에서 “종말론”에 관한 자연과학자와 신학자들의 대화를 수록한 책을 다시 꺼내 보았다. 대충 훑어 파악될 내용은 아니었지만 십 수 년 전 이 책을 처음 대했을 때의 기억은 우리의 “종말”에 관해 과학자들은 한결같이 절망을 말하고, 신학자들은 “희망”을 말하더라는 것이다. 왜 그들은 절망을 말하고, 희망을 말하는 것일까? 또한 극과 극을 달리면서도 왜 그들은 서로 한 자리에 앉아 대화하려는 것일까? 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데도 말이다.  

       먼저 “절망”에 귀 기울여 보자. 너무 낙담하거나 인생을 포기하지는 마시라. 과학적인 사실일 뿐이다. 그들의 주장 속에 섞여 있는 환원주의적, 유물론적, 결정론적 “신념들”을 잘 파악하시고 새겨들으시기를 바란다. 1994년 7월을 기억하시는지. 나는 잊지 못한다. 7월 8일 토요일 북한의 김일성 주석 사망 소식을 듣던 나는 판문점 근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부대에서 군복무 중이었다. 정말 아찔했다. 일명 GP, GOP에서 군복무하는 자들의 심정을 아시는지. 한달 동안 음산한 장송곡을 듣는 심정을. 우울증 정도가 아니라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 후 7월 16일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 유명한 “슈메이커 레비 9”이라는 혜성의 파편 중 21개가 거의 일주일 동안 목성과 충돌했었다. 이 충돌로 목성에 상흔이 생겨나 까맣게 반점이 목격됐는데 그 크기가 지구의 크기보다 더 컸다. 겨우 직경 1.5-2km 정도의 작은 파편으로 지구보다 큰 상흔을 남겼다. 그렇다. 만약 그 파편들 중 하나라도 지구와 충돌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이미 과학적 정설로 자리 잡고 있는 6천 5백만 년 전의 대규모 충돌로 인한 공룡의 멸종은 혜성과 유성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유성과 혜성에 의한 충격 분화구가 지구상에 몇 개나 남아있을까? 현재 140-150여개가 발견됐으며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지구상의 흔적과 혜성을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자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우리는 또 얼마나 낙담하고 있는지.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언제든 “종말”에 이를 수 있다. 우리가 든든히 서 있는 이 땅도 지구 전체의 차원에서 볼 때는 마치 생계란의 얇은 껍질처럼 한없이 약한 지각껍질일 뿐이다. 지진이나 화산폭발에 의해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절망”이다. 그러나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과학이 말하는 섬뜩한 종말은 너무나 순식간에 찾아오기에 기다릴 여유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24시간이라는 하루도 우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정말 절망적이다. 그러나 희망을 위한 이유들을 한 번 찾아보자. 우선 독일 본 대학의 신학교수인 게르하르트 자우터(Gerhard Sauter)가 던지는 우스개 소리로 절망적인 현재를 잠시 잊어 보심이 어떨지.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신선한 우유 항아리에 두 마리의 개구리가 빠졌다. 한 개구리는 비관적, 다른 한 개구리는 낙관적이었다. 비관적인 개구리는 “이 항아리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 조만간 죽게 되겠지. 그렇다면 지금 바로 체념하고 모든 희망을 포기하자.” 그래서 곧 익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낙관적인 개구리는 희망을 결코 잃지 않았다.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몸부림을 칠뿐이었다. 밤이 새도록 발버둥 쳤다. 그러다 그 발버둥은 우유를 버터로 변형시켰고, 드디어 항아리 바깥세상으로 탈출했다. 정말 근사한 이야기다. 자 여러분은 어떤 개구리에 속하는가, 이렇게 질문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우터 교수는 비껴간다. 두 개구리가 어떤 기독교 교단에 속하는지 설명한다. 비관적 개구리는 개구리의 연약함을 걱정하며, 단지 하나님께 항아리 안으로 사다리를 넣어달라는 짧은 기도를 할 것이나 사다리는 보이지 않고 결국 불행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독일 루터교에 해당한다. 다른 개구리는 자신이 힘차게 투쟁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거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이는 미국 장로교 개구리였다고. 그러나 이 이야기는 너무 단순할 뿐이며, 교회에서 듣기에는 너무 경박한 일방적 성공담일 뿐이다. 어찌 낙관주의, 낙천주의, 심지어 긍정적 사고가 기독교가 말하는 “희망”과 혼동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밝은 생각, 적극적 사고가 우리 삶에 풍요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혹시 멋진 차, 근사한 집이 생길지도. 그러나 종말이라는 거대한 폭풍에 대처하려거든 단단히 준비하시라. 비닐우산 따위는 그만 접어두는 지혜가 필요할 터. 좀 더 진지하게 “희망”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희망의 이유, 희망의 뿌리를 찾아 나설 때가 되었단 말이다. 

       아이가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울지도 않고 엄마, 아빠가 있는 거실, 혹은 주방으로 걸어올 때가 간혹 있다. 다 컸구나! 그러나 내 경우는 달랐다. 심지어 십대 초반에도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 물론 울지는 않는다 – 부모님을 찾다가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방 저 방 두리번거리다가 집 안에 아무도 없을 때 그 놀람이란. 휴거라고 들어보셨는지. 어린 시절 “휴거”에 관련된 영화가 어찌 그리 각인이 되었던지 지금도 텅 빈 집 안을 보다가 놀랄 때가 있다. 멋쩍다.

       그러나 내가 믿던 기독교는 종말에 대해서 그렇게 가르쳐왔던 게 사실이다. 어느 날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 예수의 재림이 도래하고 그렇게 종말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종말의 끝은 온 우주의 끝과 “새 하늘 새 땅”의 도래가 될 것이다. 그 새 하늘 새 땅은 영원한 낙원이 된다. 어떤가. 그렇게 가르침을 받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종말론은 어디까지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 또한 우주의 역사는 6천년 내지 고작 1만 년이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다시 코페르니쿠스 이전으로 돌아가야 조화될 수 있는 종말론이다. 즉 온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어야 하고, 온갖 별들은 지구를 덮고 있는 저 천장에 촘촘히 매달려 있어야 한다. 또한 예수와 십자가 사건 또한 지구 중심적 구원의 관점에서만 이해되어 왔다. 허나 자연과학은 기독교 신앙인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혹은 그렇게 믿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오늘의 신학은 아니 “신학”은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학문의 활동과 대화를 통해 늘 새롭게 구성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게 상식이다. 즉 물리학, 천문학, 생물학 등 현대과학의 연구 결과에 대해 비판적으로, 신학적으로 수용하여 기존의 전통 교리를 새롭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종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가 현대 천문학의 견해에 따르면 몇 십억 년 후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연구 결과에 의해 기존의 “종말론”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까마득한 미래보다 훨씬 빨리 예수의 재림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즉 지구의 시간에만 하나님의 심판이 묶여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 인류 구원의 최종적 사건으로 이해되던 기존의 종말 역시 우주적 관점에서 새롭게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은 글을 통해 종말론 전체를 기대하지는 마시라.)

       내 어머니에게서 들은 종말론은 그야말로 현실적이며 무시무시했다. “아마겟돈” 전쟁으로 인해 핵무기가 사용되고, 구원받지 못한 수많은 인류와 생명체들은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 받아야 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휴거를 받아 아마겟돈 전쟁으로부터 안전하게 구출되어야 한다. 물론 더 자세하게, 그리고 매끄럽게 기술되어야 하나 이를 우리는 “세대적 종말론”이라 부른다. 그들이 말하는 종말은 그러나 지구상의 생명체의 멸절로 끝나는 단순한 “종말”일 뿐. 더 이상 현대 신앙인들에게 호소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입지가 너무나 좁다.

       오히려, 현대 과학이 말하는 150억 년 더 생존할 우주적 차원에서, 혹은 50억 년 남은 지구의 생존 확률 속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편 현재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 – 생태계 파괴, 인구 증가, 자원의 고갈 등 – 을 볼 때 스스로 자멸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또한 성서가 말하는 경고 – 인간의 어리석음 – 에 대해 조금 더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초래하는 종말에 대해 더 고민할 때 “희망”이 싹트지 않을까. 희망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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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묵시록 3 


- 청교도 종말론 그리고 사드(THAAD) 감상법

 




서보명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



    (이번 글에선 청교도 종말론이란 주제를 계속해서 앞부분에 다루고 후반엔 약간 우회하여 최근 논란이 되어온 사드배치에 대한 논쟁을 약간 다른 방식에서 읽어보고자 한다) 


코튼 매더


    17세기 미국의 제일 중요한 사상가라 앞서 소개한 코튼 매더의 책엔 유달리 ‘아메리카’란 단어가 제목으로 많이 등장한다. [Magnalia Christi Americana, 1702]이라는 책이 대표적이지만 [Biblia Americana]와 [Psalterium Americanum]이란 저술도 있다. 미국이라는 땅을 학문의 대상으로, 또 미국을 신의 섭리 속에서 이해한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시킨 건 매더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아메리카란 용어를 신대륙을 지칭하는 보편적인 용어로 만들어냈고 아메리카를 담론의 대상으로 창조해낸 사람도 매더였다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는 당시만 해도 주로 미국의 원주민들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매더는 자신을 ‘아메리칸’이라 부르기 주저하지 않았다. 그에게 아메리카는 유럽의 종교개혁을 완성시킬 뉴잉글랜드가 아니었고, 그 자체로 의미와 사명이 있는 용어였다. 그러나 그 의미와 사명을 청교도들이 권력을 차지하게 된 영국의 역사에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매더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메리카를 설명해줄 성경의 해석과 인류역사의 구원사적인 이해였고, 그는 오랜 시간 그 작업에 몰입해 자신의 ‘미국사상’을 만들어냈다. 그에게 미국은 성경의 예언이 실현될 예언의 땅이었고, 청교도들은 구원사적인 사명을 안고 미국에 온 선민들이었다. 미국의 종말론적인 이해와 선민사상은 매더가 17세기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 것이지만 현재까지도 세속화된 상태에서 미국의식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18세기 미국의 독립운동과 국가건립에서 19세기 서부개척론 그리고 미국의 부흥운동에서 최근의 미국 예외주의까지의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종말론적 선민사상과 같은 뿌리 깊은 개념을 배제하면 그 정신적 연결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매더는 예수의 재림과 종말의 사건들이 곧 일어날 것이란 확신이 있었고 이를 증거하는 걸 자신의 역할로 이해했다. 성경의 예언들이 자신의 시대에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고, 마지막 시대의 신학은 종말론일 수밖에 없었고, 모든 것이 죽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절박함을 안고 살았다. 그렇다고 매더가 세상을 등지고 말세만을 외치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17세기 미국의 청교도 사회의 시대적인 한계 속에서 과학과 진보적인 세상을 상상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청교도들이 미국의 집단무의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매더만큼 이를 잘 대변해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주술적 세계관에 근거한 종말의 상상력과 함께 자연의 과학적 이해를 동시에 추구했던 그의 모습에서 미국문화의 이중적인 모습의 한 원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더는 미국 청교도들의 종말론에 신학적 논리를 제공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세의 날에 대한 예언도 잊지 않았다. 두 번이나 번복했지만 나름대로의 계산을 통해 말세의 해를 예언했다. 근대의 역사에서 미래와 종말의 예언을 한 사람은 흔히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만이 아니었다. 17세기 이후 그런 말세에 대한 계산과 예언을 한 사람들의 이름만큼 과학과 주술과 역사와 예언의 구분이 근대초기에 명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건 없다. 뉴턴은 계산을 통해 종말의 해를 2060년이라고 내다봤으니 아직도 유효하다.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고, 예수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고, 마지막 날 최후의 심판이 있으리라는 믿음은 신학적 해석을 떠나 기독교 역사의 본질에 속한다. 종말의 사건이나 그 징조는 서구역사의 공통된 관심사였다. 그때가 언제인지를 파악하고자 성경을 찾았고 자연을 연구했다. 그에 대한 예언은 신과의 교감만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당대 학문이 제공하는 상상력에 기초한 계산과 판단의 산물인 경우가 많았다. 산술적인 계산이나 천문학의 관찰에 의거한 판단도 많았고, 최근에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환경과학이나 우주생성이론을 근거로 세속적이고 습관적인 종말의 진단을 하는 예도 있다. 몇 년 전 통계에 의하면 미국 기독교인들 중 41%는 예수의 재림이 2050년 이전에 있을 거라 믿고 있다. 복음주의 계통의 기독교인들만을 보면 그 비율이 58%로 훨씬 늘어난다. 19세기엔 종말의 예언이 유럽에서는 뜸해졌지만 미국에서는 황금기를 맞는다. 예수의 재림, 종말사건들의 시작, 휴거 등의 예언은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제7안식일 예수재림교 그리고 전천년주의를 따르던 개신교회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였다. 20세기 한국개신교의 역사도 길선주 목사로부터 시작되는 종말예언으로 점철되어 왔다. 앞으로 다룰 주제이지만, 20세기 세속화된 미국의 역사에선 그 종말의식이 종교만이 아닌 대중의 문화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네이팜과 사드


    네이팜에 관한 신문기사를 접한 건 오래 전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한국의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공포와 테러의 대상이었던 네이팜은 그 당시에도 잔혹한 살상의 무기라는 이유로 도덕적 논란을 일으켰다. 신문기사의 내용은 퇴출된 네이팜탄을 폐기처분하기 위해 기차를 통해 시카고를 거쳐 목적지인 인디애나까지 운송할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폭탄을 실은 기차가 인구밀집 지역을 통과하는 게 공공의 안녕에 위배되는 위험한 일이라며 이를 반대하고 나선 시카고 시의회 의원들과 지역 정치인들이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에 실어 운반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네이팜은 미국 (하버드 대학의 화학교수가 연구하고) 만들어 일본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수십만 (아니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분노와 공포의 무기가 아니었나. 뉴스기사는 어처구니없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했고, 네이팜의 잔혹한 역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1945년 일본에선 미국의 네이팜 폭격으로 하룻밤 사이 십만 명이 불에 타죽었다. 또 네이팜은 6.25 전쟁 당시 북한을 초토화시킨 ‘넘버 원’ 무기였다. 네이팜은 베트남 전쟁 때 가장 많이 사용됐고,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을 증언하는 반전운동의 상징이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사람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장면도 네이팜이 폭발해 치솟는 불덩어리의 모습이다. 


    네이팜과 사드의 연결점은 무기로서의 유사성이 아니라 슈퍼무기, 즉 적을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는 최후의 무기를 찾았던 미국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둘 다 미국에서 개발된 무기다. 미국의 한 시대를 상징했던 네이팜을 문화사 측면에서 다룬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 [Napalm, An American Biography]. 사실 무기는 단순히 사람을 해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의 산물만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한 시대의 문화와 가치와 정신을 대변하기도 한다. 네이팜, 핵무기, 핵잠수함, ICBM, 그리고 사드까지의 역사는 슈퍼무기를 찾았던 미국의 정신사의 일부로 읽을 수 있다. 이 역사를 미국역사의 묵시록으로도 읽을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핵무기보다 먼저 만들어졌어도 곧 핵무기가 개발되면서 슈퍼무기의 명성은 갖지 못했지만, 미국의 B-29 폭격기에서 떨어지는 네이팜탄은 아마겟돈 전쟁의 악몽을 연상케 했다. 1945년 봄 독일 드레스덴에 가해진 미군의 무자비한 공중폭격을 주제로 한 책의 제목은 [Apocalypse 1945]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고, 코폴라 감독의 [Apocalypse now>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폭격은 독일과 일본과 베트남 등의 나라에선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민족적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세기의 역사에서 최후의 무기 또는 종말의 무기는 당연히 핵무기였다. 냉전 이후 지구생명의 역사를 한 순간에 끝낼 핵전쟁이 어는 순간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 속에서 살아 왔다. 아마겟돈이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종교적인 개념을 믿지 않는 사람들 인간이 억제할 수 없는 최후의 전쟁이 곧 일어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핵무기는 종말의 상징이었고, 20세기의 묵시록 그 자체였다. 핵무기의 묵시록을 언급하는 이유는 20세기 중반 이후 문화와 학문의 발전은 핵전쟁의 종말이라는 매우 가까운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존주의에서 해체이론, 추상표현주의에서 비디오아트, 소비자주의에서 환경운동까지의 변화가 어떻게 종말의 담론을 수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지지만 이는 따로 알아볼 일이다. 당연히 기독교 신학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21세기엔 마치 테러라는 현실이 20세기 핵무기의 진부함을 대체한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테러리즘을 위험시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통제되지 않는 세력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가정이기 때문에 핵무기의 묵시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다만 최근의 문화적 상상력은 더 진보해, 이미 이루어진 묵시적 종말 이후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60년대의 영화가 핵폭발과 함께 모두 죽어가는 장면으로 끝났다면, 90년대 이후의 영화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얘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코맥 맥카시의 <로드>라는 책이 대표적인 예다. 


   슈퍼무기, 최후의 무기를 끊임없이 추구해 온 미국의 역사를 다룬 브루스 프랭클린의 [War stars]라는 책이 있다. 출간된 지 벌써 3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그 논지는 명확하고도 유효한 미국문화사의 고전적인 책이다. 그는 18세기 증기선 개발로 유명한 로버트 풀턴이 추구했던 평화를 이루고 자유를 지킬 슈퍼무기 잠수함 건설에 대한 얘기로 그 역사서술을 시작한다. 이후 미국이 만든 모든 슈퍼무기는 전쟁을 끝내고 영구적인 평화에 기여할 것이란 명분하에 만들어졌다. 폭격기가 그랬고 핵무기, 핵잠수함, ICBM, MD의 역사가 그랬다. 그 사이 순간의 계산착오만으로도 지구의 생명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체제가 구축되어 왔고, 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를 지키고 적의 무기를 무력화 시킬 슈퍼무기 경쟁은 첨예화 되었다. 선택받은 예외주의의 나라 미국은 그 경쟁에서 질 수 없었다. 아마겟돈 전쟁을 무릅쓰고라도 지켜내야 할 군사적 우위였다. 미국의 문화는 무기산업과 군사주의에 우호적으로 발전했다. 네이팜의 불덩어리보다 더 큰 시대의 아이콘은 핵폭발의 버섯구름이었다. 상징은 생각을 낳는다고도 하지만 또 현실을 견디게도 해준다. 종말의 상징인 핵폭발의 버섯구름은 예술가의 손을 통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 되었다. 어느 순간 미국적이라는 것과 군사적이라는 것은 유사한 것이 되었다. 그게 정당화되는 이유는 미국의 의도는 선하다는 인식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 의도는 자유를 지향하는 것이고 자유는 죽음과도 바꿀만한 가치다.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심판의 언어는 미국에 가장 가까운 언어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사회비평가 루이스 멈포드는 핵무기 경쟁을 합리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미국의 지도자들을 향해 ‘미쳤다’고 외쳤고, 이들의 행태가 용인되는 이유는 미국인 모두가 똑같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최근에는 그런 비판도 듣기 힘들다. 그 경쟁이 이미 일방적인 승부로 끝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모두가 자살머신에 갇혀 좌절과 절망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드(THAAD)로 돌아가 보자. 사드의 한국배치에 대한 두 관점은 이를 북한의 공격에 대한 대비책으로 보는 시각과 중국의 ICBM에 대한 미사일 방어체제의 일부라는 시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추가할 관전 포인트는 역사적인 것이다. 위에서 얘기한 미국의 슈퍼무기 개발의 역사라는 측면이다. 종말의 무기인 핵무기를 효과적으로 소유하려면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선제 핵공격을 하고도 핵보복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하면 상대의 선제 핵공격을 미리 막을 수 있는가이다. ICBM은 상대가 선제적 핵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보복용 무기로 알려져 있다. 보복을 당하지 않는 핵공격은 없다는 걸 증명하는 무기이기 때문에 선제적 공격을 막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양쪽 모두 핵무기가 있다는 전제 하에 성립되는 방정식이다. 만약 ICBM을 공중에서 무력화 시킬 수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 쪽에선 보복 당하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이고, 다른 쪽에선 적의 공격에 대응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MD라는 미사일 디펜스 시스템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사드가 MD 체제의 한 축이기 때문에 사드의 한반도 배치문제 문제가 남북만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 내가 잘 모르는 - ICBM이나 사드의 전략적 논리가 아니라 적의 첨단의 무기를 무력화 시키는 슈퍼무기를 찾아온 미국의 역사 속에서 사드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드가 ICBM을 공중에서 분해시키는 상황은 최후의 전쟁일 수밖에 없다. 최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는 전략을 묵시적인 아마겟돈 전쟁을 상상하지 않고 구상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 무기의 역사는 사회사 그리고 문화사의 일부다. 1940년대 핵무기 개발은 수없이 많은 각도에서 연구되어 왔다. 핵무기는 전쟁을 종식시킬 무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세상을 끝낼 수 있는 무기로 아직도 남아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핵무기가 묵시록의 환상을 일깨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냉전시대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들은 핵무기를 통한 지구의 종말과 예수의 재림을 다룬 것들이다. 냉전시대의 묵시록은 핵무기를 통해서 쓰였다. 특히 예루살렘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이 핵전쟁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한 파멸이 예수의 재림와 천년통치로 이어진다는 설정은 20세기 후반 가장 흔한 전천년주의 말세론의 기본적인 줄거리다.  



참고서적에 대하여


    브루스 프랭클린Bruce Franklin의 책의 원제목은 War Stars: The Superweapon and the American Imagination으로 1988년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에서 출판되었다. 멈포드Mufford에 대한 언급은 원래 1946년 그의 에세이 "Gentlemen: You Are Mad"에 출처가 있지만 프랭클린이 그의 책에서 인용하고 있다. 네이팜을 다룬 책 Napalm - An American Biography의 저자는 로버트 니어Robert M. Neer이고 비교적 최근 2013년 하버드 대학 출판부에서 출판했다. 두 책 모두 미국 군사무기의 문화사를 다룬다 할 수 있다. 한국어 번역본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매더가 쓴 책들 가운데 구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그중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Magnalia Christi Americana미국에서의 그리스도의 위대한 업적]은 하버드 대학에서 판이 있다. Post-Apocalyptic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코맥 맥카시의 <로드>는 책과 영화 모두 좋은 평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장르의 <설국열차>에 대해선 다음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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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가이드12]



바울과 종말론 IV 


- 존 크리스천 베커


 

한수현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박사 과정)




<존 크리스천 베커>


    몇년 전부터 범죄 형사류의 드라마 영화가 인기이다. 근대의 여명기에 소위 탐정소설 장르로 시작되어 그 형태와 스타일이 계속 변화해 오기는 하였지만 기본적인 틀은 이성적 추론에 의한 사건의 해결이다. 주인공인 탐정이나 형사는 “이건 불가능한 현상이야”와 같은 완전 범죄나 불가능할 정도로 우연의 연속인 사건들을 파헤쳐서 하나의 그럴듯한 추론을 완성해낸다. 그리고 용의자에게 말한다. “네가 어떻게 그 사람을 죽였는지 알아냈어!” 위의 사진이 요한 크리스쳔 베커이다. 마치 셜록홈즈와 같이 유능한 사립 탐정처럼 생기지 않았는가? 필자가 베커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 이사람은 마치 탐정과 같다. 바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때로 막히는 길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뚫어내고 가설과 추론을 동원하여 바울서신과 그 신학을 하나의 일목요연한, 기승전결이 살아있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던진다. “그랬었어.. 바울... 네가 원한건 바로 이거였어…” 

    이번 웹진에서 베커의 신학을 어떻게 소개할지 나름 많은 고민을 했다. 이 원고는 베커에 대한 새번째 원고다. 이전 원고에서는 어떻게 하면 그의 사상을 골고루 소개할지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지면의 한계가 있는 웹진의 원고로는 알맞지 않은 것 같았다. 바울의 이곳 저곳을 자유로이 거닐며 의미심장한 말들을 던지는 베커를 한달음에 정리하는 것은 그의 재기발랄한 글을 외려 지루하기 그지없는 말로 정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치 탐정이나 형사가 하나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글을 적어보려 한다. 이제부터 논하는 사건의 재구성은 바로 베커의 주저인 [사도 바울] 에서 논해지는 바울신학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사건의 재구성


    여기 고민하는 한 바리새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바울. 그는 최근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는 함구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었든지 그의 삶의 자세가 바뀐 것은 명확하다. 예수를 메시아로 따르는 자들을 체포하러 다니던 똑똑한 율법학자가 하루아침에 이방인들에게 예수 메시아에 대해 전하러 다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히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그가 이곳 저곳의 예수를 따르는 이방모임에 모낸 글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알고 지낸 예루살렘의 교회 지도자들이나 다른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에 대한 모순적 행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것 같은 사람. 보통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는 문제인데도 그것을 머리속에서 수십번 수백번을 되짚어서 그 안에 존재하는 모순을 밝혀내어 문제삼는 사람들. 적어도 바울은 그런 사람이었다. 바울을 괴롭히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지도자들은 예수 메시아를 믿고 난 다음에도 기본적인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삶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그것을 반대할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예수의 죽음이 율법과 충돌하는 지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대적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는 나무에 달린 저주받은 자이자 유대 전승과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는 메시야이다. 다른 이방 선교사들도 문제였다. 그들은 아예 율법은 저주 받았으며 버려져야 하는 것이라 떠들고 다녔다. (사도행전 스데반) 그들은 율법을 공격하는 것이 유대의 전승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듯 하다. 예수가 메시야임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메시야와 율법 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해놓지 않으면 결국 수많은 문제가 생기게 될 것이라 바울은 생각했다. 바울의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사이에 있었던 일을 재구성했다. 과연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오해를 푸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바울이 말한 사건의 재구성이다.

    “예수의 죽음이 율법의 저주라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저주받은 예수가 부활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가장 저주받은 인간을 사랑으로 부활하게 하신겁니다. 예수가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예수를 부활시킴으로 예수를 통해 율법을 심판하신 겁니다. 하지만 오해마세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것은 유대인이 미워서도 틀려서도 아닙니다. (행 2.23; 2; 15; 17) 율법을 하나님이 스스로 심판하신 것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거대한 계획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율법의 저주에 의해 죽는 그 순간에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갈 3:13)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율법의 효력이 끝나게 된 것입니다. (롬 10:4) 이해하기 어려우세요? 쉽게 말씀드릴께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갈 2:20) 그리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베커의 재구성


    베커가 묻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바울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놀라운 것은 바울이 저런 추론을 너무도 자신있게 마치 자신이 하나님에게 직접 들은 것 처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아는가? 바울 이전에는 십자가에 달린 메시야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순진한 변명같아 보이는 말이 많았다. 그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해 준다라거나… 그의 죽음은 바로 유대인이 틀렸다는 것은 반증하는 것이라는 (유대의 메시아와는 다른 메시아이므로…) 그런데 뻔뻔하게도 예수의 죽음은 율법의 마침이자 완성!과 같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말을 막해대는 것이다. 그래서 베커는 바울의 주위를 탐문수사하기 시작했다.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기록만으로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두가지를 알아내었는데,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다른 보통의 바리새인들이 그러하였듯이 묵시사상에 상당히 심취해 있었다는 것과 보통의 바리새인들에게는 겁없이 전통을 해석하여 나름대로 막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베커는 바울의 재구성을 거꾸로 탐색한다. 먼저 바울의 율법에 대한 해석은 묵시사상을 해석의 단초로 가지고 왔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베커의 생각이다. 묵시사상에서 율법-토라는 존재론적 위치를 가진다. 율법은 단순히 유대인이 품어야할 삶의 방식이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적 위치를 가진다. (에녹서) 율법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실패했다. 그 인간의 실패를 바꿀수 있는 방법은 바로 율법의 시대가 끝나야 가능하다. 곧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라는 바울의 확신은 묵시사상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율법의 시대가 끝나는 것으로 (율법의 마침) 세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죄 대신이라는 ‘랍비적’ 언어에 만족할 수 없었던 (유대적 시각) 바울은 부활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말해야 했다. 그저 죄를 사면받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바로 새로운 창조가 예수의 부활과 함께 가능하게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십자가는 고난의 신학이 아니다. 마가는 고난을 말하는 신학자이며 요한은 십자가가 영광의 길이지만 바울에게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약함의 시간이다. (고전 1:25; 고후 13:4) 바로 “약할 때 강함 주시는”신학이 바울의 십자가 신학이다. 바울 이외의 헬라-유대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의 죽음을 강조하여 그의 죽음이 속죄의 죽음이며 이를 고난당하는 의로운 자 (이사야)에 대한 전승과 동물희생제에 연결시켜 예수의 죽음을 희생적 속죄로 이해했다. 그러나 바울에게 예수의 죽음은 묵시적 심판과 갱신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죄, 율법, 육, 죽음의 세력들이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부활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태어난다.

모든 추론의 시작은 범죄의 동기


    바울을 무슨 범죄자처럼 보려는 것이 의도는 아니다. 어떤 범죄가 일어났을때 그 범죄를 해결하는 것은 그 범죄의 동기를 알아내는 것부터이다. 범죄 자체에서 그 동기는 숨어있다. 범죄의 현상은 누군가 죽었거나 어떤 물건이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범죄의 동기는 숨겨져있다. 범죄의 현상을 통해 그 동기를 밝혀내는 것이 탐정이나 형사가 하는 일이다. 베커와 같은 많은 신학자들이 바울의 서신의 내용이라는 현상을 정리하는 것으로 바울을 이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런 시도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바울은 여기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저기에서는 저렇게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그의 진술이 왔다 갔다한다. 때로는 율법을 씹어먹을 것 처럼 맹렬히 비판하다가 때로는 “아.. 율법? 그거 좋은거야…”라고 열심히 변호하기 시작한다. 그 말의 현상 자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바울의 진술이 통일성을 찾아내려 무진 애를 썼지만 많은 학자들이 낭패를 맛보았다. 아니 해결한 듯 보이지만 그 학자 (형사나 탐정)들의 보고서를 읽어보면 이해하기 무지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베커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우리는 포도를 먹을때 포도의 달콤한 껍질을 먹고 그 중심의 씨는 뱉어버린다. 마치 우리는 원래는 씨를 보호하고 자라게 하기 위한 과육을 즐기고 그 핵심은 버린다. 우리를 달콤하게 하고 즐기게 하는 바울의 율법과 복음의 관계, 믿음으로 얻는 의는 달콤한 과육이지만 그 안의 단단하여 씹을 수 없는 그 씨처럼 바울의 서신의 핵심은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없다. 더욱이 근대의 시대에 들어오면서 그 단단했던 씨는 근대의 생각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화적 시대의 세계관이란 이름으로,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메시아라는 이름으로 길바닥에 버려졌다. 그것은 묵시라는 세계의 마지막에 대한 꿈이었고 그 꿈의 끝자락의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이다. 바울이 처음 예수의 부활로 부터 발견한 것. 그가 처음 율법의 마침이자 완성인 예수 이후에 꿈꾸었던 최후의 승리. 바로 하나님의 정의가 승리하리라 믿는 세계관이 그 단단한 씨속에 숨겨져왔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베커의 독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묵시와 그리스도-사건: 바울의 일관된 형식


    베커는 바울의 일관된 주제를 이신칭의나 신비주의라는 개념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상징적인 구조로 보았는데, 그는 이를 “바울이 일관성은 그리스도-사건으로 표현한 언어와 묵시적 언어가 이루는 상징적인 구조이다. 그리스도-사건의 원초적 경험은 바울의 전통적인 묵시적 언어를 살찌우고, 강화하며 수정했다.”(35) 불트만에 비교하면 재미있는데, 불트만은 케리그마, 즉 말해진 복음의 핵심을 현대인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적-묵시적 세계관에서 본문을 벗겨내는 비신화화의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벗겨내야할 껍질이 베커에게는 지켜야할 바울의 일관성이 된다. 나는 이것은 바울서신에 대한 틀과 꼴의 해석학이라 이름붙이고 싶다. 성서해석학에서 오래도록 장르비평이라 불리운 비평학적 방법이 있었는데, 이는 일반 문학비평에서의 장르비평 (원래는 근대 소설의 태동에 대한 연구에서 비약적으로 발전)에서 유대되었으나, 성서비평에서는 문학비평에서만 조금 언급이 되었을뿐,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좀 더 깊게보면 맑스주의라는 것도 하나의 틀에 대한 비평인데, 맑스가 “존재가 사유를 결정한다.”고 하였을때 인간의 사상, 사유라는 체계가 인간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틀의 변화가 사상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베커의 바울 해석학은 이러한 틀과 꼴 (Form and Content)에 대한 이해를 탁월하게 전유하여 바울을 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여기에 관심이 있다면, 이러한 틀과 꼴의 비평학으로 민중신학에 비평적 시도를 보여준 이경재의 논문이 있다.)

    틀 (Form)이라는 것은 겨울에 자주찾는 붕어빵 판매소에 있는 붕어빵틀과 같다. 가게마다 파는 붕어빵의 맛이나 속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얼마나 굽느냐에 따라 맛도 다르다. 팥이 많이서 맞이 있는 붕어빵이 있는가하면 돈 주고 사먹은 것이 아까울 정도의 맛도 있다. 그러나 그 틀은 거의 비슷하다. 다양한 변화를 낼 수 있지만 그 변화는 하나의 외형에 구속받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붕어라는 모양을 가지고 있다. 왜 붕어모양일까? 두툼한 물고기 모양을 식감을 자극할까? 그저 우연히 그런 모습으로 만들기 시작했을까? 간식 하나의 틀에도 이런 질문이 생기는데, 하나의 문학 장르의 형태에는 수많은 의미들이 숨어있지 않을까? 붕어빵의 유비에 끼워맞춰 설명하자면, 붕어빵 틀은 묵시사상이고 붕어빵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그리스도-사건 (십자가와 부활)이며 여러 환경적인 요인 (불의 온도, 가격 경쟁, 날씨등)이 바울과 교회의 상황정도로 생각한 듯하다. 그렇다면 바울의 여러 서신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같은 사람이 만든 조금씩은 다른 붕어빵들이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환경이 너무도 달랐기에 붕어빵은 상당히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붕이빵의 맛이 다를만큼 바울은 급격한 변화와 각기 다른 교회의 질문들에 답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이런식의 방법으로 바울을 이해하는 것이 왜 필요할까? 서두에서 베커의 방법이 그 이전까지의 바울신학의 각기 다른 두개의 스타일을 종합하는데 이상적인 모델임을 설명하였지만, 무엇보다 바울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거창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일전에 유대의 묵시문학을 설명하면서 종말론과 묵시문학의 차이점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종말론이란 세상의 끝에 대한 담론이다. 묵시문학은 유대교에서 나타난 하나의 문학장르로서 묵시 (Revelation)이란 말이 의미하듯 신의 계시를 드러내는 이야기체의 문학으로서 그 뼈대를 형성하는 장치는 환상과 천상 여행이다. 다니엘서 7장을 보면 벨사살 왕이 꿈에 환상을 보고 다니엘이 그것을 해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꿈에 나타난 환상은 계시를 드러내는 장치이고 다니엘의 해석은 인간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묵시문학의 장치를 통한 해석은 세상의 종말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외도 있다. 묵시사상의 장치들이 등장하지만 세계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들이 있다. 특히 에녹 4서) 그러므로 묵시문학에 종말론을 나타내는 경우는 많지만 언제나 그러한 것은 아니며, 특히나 유대의 묵시문학은 각기 다른 종말을 말한다. 이러한 전체적 묵시문학이 가지는 사상을 묵시사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묵시사상은 종말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차이는 명확하게 세계말에 대한 관심을 가진 담론이기 보다는 묵시문학이 가지고 있는 사상적 특징을 모은 것 정도가 된다. 그래서 베커가 묵시사상이 바울 신학의 핵심적 틀이라고 하였을때, 이는 종말론이 바울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사건이 그 종말론의 핵심이 되는 만큼만 그러하다. 이 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논해보자.
    바울을 묵시문학의 틀이나 종말론적 틀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은 학자들은 나름 그들대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바울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하는 사람이지 종말을 외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바울의 중요 서신중 하나인 갈라디아서에는 종말을 의미하는 말이 거의 없다. 데살로니카 전서에서 조금 나오고 (4장) 고린도전서의 부활에 관한 설명에서 조금 (15장) 로마서에서 잠깐(8장)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압도적으로 바울에게는 예수의 믿음으로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 바울 신학이 중심이다. 베커는 이에 대해 바울이 묵시적 전통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의인화에 대한 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논지를 제시한다.
    바울에게는 없고 복음서에는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기록되었으되… 이루려 하심이라…’라는 표현이다. 복음서가 기록되기전 구전전승을 거치면서 예수에 대한 여러 기억들과 이야기들을 구약의 전승에 대치시켜 예수가 바로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들이 생겨났다. 이를 통해 예수가 구약의 예언을 충족시킨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의 권위를 기록된 성서의 말씀에 의존시킨다. 이 방법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예수의 죽음은 당시의 구약성서 전통에 비추어 보면 매우 황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희생제사의 개념은 구약이나 유대교에겐 오로지 동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구약에도 인신공양이 등장하지만 (이삭, 입다의 딸) 그것은 죄에 대한 구속과는 상관없는 예이다. 오로지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에 대한 본문으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합리화할 수 없다.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나무에 달려 죽은 자는 율법의 저주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성서에 대한 대화를 하다보면 “성서에 그렇게 기록되어있다.”라는 말로 모든 논의의 흐름을 단절해 버리는 경우를 보게된다. 성서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토달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를 구약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려 한 복음서의 전통은 유대교와의 첨예한 대립의 시대였기에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나,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는 끊임없는 해석의 역사이지, 문자에 기대어 스스로의 해석학적 전통을 말살시켜온 역사가 될 수 없다. “문자는 죽이지만 영은 살린다.”라는 바울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바로 여기에서 바울은 구약 전승의 문자에 권위를 부여하기 보다 전승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권위를 부여한다. 그리스도-사건이 바울에 의해 해석학적 혁명을 맞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승자체가 아니라 바울은 자신의 해석에 권위를 부여한다. 소명이 가지는 의미는 길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서 짠!하고 생겨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러 저러하기 복음을 재구성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갈 1,12) 바울의 전승에 대한 해석와 그리스도-사건에 대한 해석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 (베드로와 야고보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와 다를 수 밖에 없다. 바울의 해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Apocalypse (묵시, 계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인 바울은 유대식의 성서해석에 능할 수 밖에 없었는데, 구전 전승과 해석학적 적용이 모두 경전적 위치를 부여받는다. 바로 해석이 전승자체의 내용에 묶이지 않는다. 바울은 한번도 “성서는 사실이다!” 라든가 “성서는 믿어야 된다.”라고 전승자체에 권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바울은 자유롭게 구약의 내용을 인용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때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의 내용을 고치기까지 한다. (예를 들면 로마서 10장에서 믿음을 강조하여 30장 14절을 인용할때 실천에 대한 말이 있는 14절의 하반절을 생략해 버린다.)
    그러므로 베커는 단언하기를 “바울의 독창성은 그의 교리적 신학이 아니라 해석학이다.”고 한다. 그는 체계적인 조직신학자나 전통의 주창자가 아니라 바로 전통의 해석자임을 강조한다. 복음서가 예수를 유대의 전통을 혁파하고 죽음과 부활을 주인으로 그리는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바울은 안디옥교회에서 받은 교회의 전승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안에서 해석한다. 고린도전서 15장 1-11절에 나와 있듯이 바울이 전해 받은 전승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했다는 것이다. 베커는 바울이 전해받은 복음으로는 그의 독특한 율법의 마침이자 완성인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이나 율법의 완성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복음이 탄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을 말한다는 바울의 선언은 단순히 초대교회의 전승에서 끌어내기에는 부족한 것이라 본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을 통해 그의 복음의 정수를 만들어내었을까? 여기에 답이 바로 바울의 묵시문학적 사상이다.

바울의 묵시사상적 신학


    이전의 웹진에서 유대의 묵시문학에 대한 설명을 했었다. 묵시문학이란 특정한 시대에 유대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하나의 문학들이고 묵시사상이란 그 묵시문학들이 공유했던 하나의 생각의 틀을 말한다. 베커는 필립 빌하우어와 클라우스 코흐가 말한 묵시사상의 기본적 구성요소들을 다음과 같이 개괄한다.





    베커는 이 두개의 연구를 바탕으로 묵시사상의 큰 세가지 특징을 말하는데, 먼저 역사적 이원론이 등장한다. 역사적 이원론이란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두 힘의 갈등이라고 생각함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과는 다른데, 이원론이란 신의 세계 또한 선신과 악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대교의 역사적 이원론은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니 세계의 악을 허락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이후에 지리한 신정론의 원인이 된다.) 두번째 특징은 보편적이며 우주적 기대가 있다는 것인데, 이는 어떠한 변화가 전지구적으로 나타남을 뜻한다. 한 개인의 변화나 집단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임하는 변화는 온 지구를 뒤흔든다. 세번째는 종말이 곧 임한다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생각이 현재의 시한부 종말론처럼 그저 마지막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던 시대에 희망을 말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생각의 틀로써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유대의 묵시문학들은 종말의 시대를 기다리는 신앙의 자세를 강조하고 어떻게 하나님에 반대하는 시대의 사상에 맞설것인지를 말한다. 바로 삶에 정말 필요한 메시지를 담는 틀로써 존재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묵시사상은 묵시문학을 넘어서 당대의 여러 유대교 갱신운동의 사상적 틀이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베커는 라비닉 유대주의(바리새주의)는 묵시사상적틀을 바탕으로 토라(율법- 원래의 뜻은 ‘가르침’)를 새롭게 해석함으로 하나님의 계약의 갱신을 강조하였고, 젤롯당, 시카리당, 쿰란 공동체등이 동시대에 묵시사상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종교적 정치적 깨달음을 설파하였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유행처럼 존재했던 묵시사상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점으로 순화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후로 유대의 문헌에서 묵시사상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공통시대 이후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132년 바 코흐바의 혁명이후) 하지만 우리는 바울이 살았던 시대는 이 묵시사상이 최고조로 유행했던 70년 예루살렘 멸망이전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의 전통과 유행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음을 기억하자.
    바울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그렇다면 구약의 일부분과 신약의 대부분의 저술들의 틀이 되었던 묵시사상이 왜 지금은 다 사라져 버렸는지 먼저 이야기해보자. 베커는 크게 네 가지 현상에 의해 현대 기독교에서 묵시사상이 무시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신정통주의가 묵시사상적 종말론을 기독론으로 내파시켰다고 생각했다. 신정통주의는 '예수는 마지막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라는 질문을 '예수는 우리에게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었다. 둘째로 근대주의적 역사비평학은 결국 성서를 신화적 저술로 봄으로 묵시사상의 정신이 그저 신화적 저술로 평가절하되었다. 셋째로 결정적으로 불트만이 역사적 묵시를 인간학적 이해로 바꾸고 보편적 역사관을 한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현상으로 해석했다. 네번째로 신약학자 다드(C. H. Dodd)로 대표되는 학자들이 신약성서의 저술들이 임박한 종말론에서 지연된 종말론으로 더 나아가 실현된 종말론 (“지금 너희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라는 식)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말함으로 신약성서 안에서 종말론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다드의 해석은 바울에 관해서는 옳지 않는데, 바울의 서신들이 불과 5-6년안에 쓰였음에도 바울이 자신의 종말론을 그의 생각대로 변화시켰다고 보기에 적절지 않다. 결국 마지막 날이 오지 않았으므로 그랬었는지, 아니면 역사적 필요에 의해 그랬었는지 근대이후의 신학에서 묵시사상이 사라져왔음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시 바울로 돌아가보자. 위의 몇가지 이유를 들더라도 바울에게 묵시사상이 중심이었다는 생각은 학자들 사이에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바울 자신이 유대묵시문학이 자주 썼던 표현들을 쓰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묵시적 시간표나 천상의 나라에 대한 설명, 심판에 대한 표현이 명확하지 않고 다가올 시대와 현재의 시대가 대립하고 있지도 않다. 게다가 바울은 자신을 다가올 심판의 날을 기다리며 현재의 고난을 견디는 삶을 사는 것으로 표현하지도 않았다. 이전 웹진 글에도 말했지만 바울이 표현한 현재의 고난은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시대의 고난이 아니다. 자신의 사명을 이루기 위한 열망과 목표에 다다르지 못할 때의 어려움이라고 보아야 한다. 결론을 말하면 바울은 자신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팽배한 희망과 소망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바울의 낙관적 모습이 유대 묵시문학의 그것과는 매우 차이가 난다. 베커는 이러한 바울서신의 성격을 묵시문학과는 다른 어떤 것이라 보지 않는다. 오히려 바울이 묵시문학의 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창조적으로 해석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왔다갔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율법을 맹렬히 비판하다가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자 완성이라는 말로 율법을 대변하는 것을 말함)하는 것은 바울의 중심이 율법과 복음이 아니라 묵시사상의 틀에서 그리스도 사건을 해석하는 바울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새롭게 갱신한 묵시사상은 어떤 것일까?
    바울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를 이해하는 틀인 묵시사상을 새롭게 변화시킨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예수의 부활이었다. 예수의 부활은 마지막 날 재림의 승리를 약속하는 것이고 바울에게는 예수의 부활과 죽은자의 부활이 겹쳐지는 시대는 없다. 이것이 바울 신학이 묵시문학의 틀을 가지고 있는 이유라고 베커는 보았다. 언뜻보면 당연한 이야기아냐? 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바울서신의 해석사와 서신들을 살펴보면 왜 베커식의 틀과 꼴의 해석학이 필요한지 느낄 수 있다. 일단 먼저 서신들을 살펴보고 다음 바울의 해석사와 근대 신학의 흐름을 살펴보자. 갈라디아서를 보면 묵시적 암시도, 죽은자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갈라디아서에서 신자는 율법아래 살 것인가 그리스도안에 살것인가를 현실의 삶에서 양자택일해야한다. 중심은 율법을 벗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안의 삶으로 직결된다. (갈 1:19-21; 3:1, 13- 14; 4:5; 6:14) 이른바 슈바이쳐가 말했던 그리스도에 합일되는 신비적인 삶이 중점적으로 등장한다. 이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완전한 승리를 위해 신자는 다시올 새시대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미 종말은 실현되었다는,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실현된 종말론이 갈라디아서를 감싸고 돈다. 갈라디아서의 실현된 종말론은 고린도전서나 로마서를 두고 보아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베커는 이것이 바로 바울의 신학이 맥락적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즉,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을 반대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서신의 표면적 성격이나 신학으로 바울을 제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바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리스도 사건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로 가보자. 로마서에서 수많은 신학자들이 골몰한 문제는 과연 로마서 9장-11장에 나오는 유대인이 비록 현재는 하나님의 역사속에 부족한 모습이나 결국에는 회복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희망인가? 유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장난인가? 아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에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임박한 종말에 승리를 얻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정의의 서국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된 교회는 그것의 완전한 실현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공동체로서 나타난다. (롬 5:8) (150)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비교해보면 율법관, 종말론적 시각이 파이하게 다른데, 바로 이것이 바울의 해석이 어떤 하나의 신학적 서술에 달린 것이 아니라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한 그리스도 사건의 의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울 해석의 틀이 되는 묵시사상은 고린도전서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은 확실하나 그것은 현재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님을 분명하게 한다. 여기에서 바울의 대적자는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서 이해하는 그래서 육체의 삶은 지옥이라도 영적으로 구원의 삶을 사록 있다고 생각한 당시의 이원론적 영지주의가 될 것이다. 이러한 영지주의적 실현된 종말론에 대한 반대로 바울은 몸의 온전한 부활과 그리스도의 온전한 승리가 미래의 사건임을 말하고 있다. 결국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서는 각각 다른 종말론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왜 바울은 헬라적 세계관과도 아주 잘 조응하며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삶과 성례전이 이토록 잘 조화되는데, 이러한 헬라적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왜 예수의 죽음에 율법은 완성되고 모든 것이 예수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음에도 아직도 해방의 날은 오지 않았으며 그의 죽음은 단지 승리의 날을 상징하는 것이 지나지 않을 거라는 비약의 가능성을 남기면서 까지 부활의 때는 현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에 바울이 묵시사상이 그의 신학의 핵심적 틀로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위의 모든 질문들이 해결된다. 그러므로 바울의 핵심틀이 바로 그리스도 사건과 묵시사상이라고 베커는 주장한다.

묵시사상의 핵심 -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


    근대 성서신학의 주인공은 예수다. 구약신학과 신약신학등을 통틀어 연구의 목적과 의미는 예수로 시작하여 예수로 끝나왔다. 베커는 적어도 바울에게 역사를 이끌어가고 인간의 구원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다. 하나님이다. 신정통주의 신학이 예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예수를 마치 하나님의 살아있는 현신으로 강조하였다. 그에 대한 결과로 나온것이 실현된 종말론적 사상이다. 마치 나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한순간에 바뀌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듯한 생각은 교회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또는 지나치게 염세적으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베커는 바울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놓는 신비주의나 신적합일이 아니라 예수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믿음이라 보았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 확실히 질 것 같은 신앙인의 싸움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최후승리를 느낄 뿐이다. 그것은 예수를 통해 나타난 즉흥적인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이고 믿음이란 시시때때로 변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있는 힘이다. 베커에겐 바로 묵시적 시각이야말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이며 틀이며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 우리의 선배가 바로 바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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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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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수현
    2015.11.04 02:4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글을 쓴 한수현입니다. 각주정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보낸 원고가 각주가 안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본 글은 한국에 장상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되어 있는 [사도바울]이라는 베커의 저서의 페이지를 기본으로 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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