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4]



가치가 이끄는 삶


 

 

최규창[각주:1]

 


 

목적이 이끄는 삶


       제1세계의 유명한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이미 대단한 양적 성공을 거둔 교회였기 때문에 그들이 그 성공의 동력으로 제시한 이론은 어떤 것이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다. 근대적 합리성에 근거한 신앙성장 논리와 이를 따르는 교인들의 헌신, 그리고 현대 경영학적 전략과 전술을 잘 버무린 릭 워렌의 연작들은 계속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급기야 <목적이 이끄는 삶>에 와서는 마치 그 모든 성공의 비밀이 밝혀진 것처럼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거룩한 목적’, 이것만큼 사람들의 욕망과 신앙을 불편하지 않게 조화시킨 말이 있을까. 우리의 삶을 주님이 원하시는 하나의 목적으로 방향지우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삶의 우선순위, 일상의 계획, 경제적 삶의 유지, 시간사용, 재정관리, 사람들과의 만남 등 그 모든 기저에는 ‘목적’이라는 엔진이 항상 구동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은 우리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지구는 둥글다’는 말처럼 의심되지 않는 명제였다.  

       그러나 목적은 항상 권력을 생산한다는 점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향해 ‘전진'해야하고, 그러자면 의사결정 권한을 지닌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계급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데, 그것은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그들간의 계약이 이미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반드시 욕망에 의해 충동된 탈목적적 권력이 생겨나고 그 부산물들이 계급간의 억압을 생산해 내기 마련이다. 목적에 의해 도구적 권력이 정당화되는 대표적인 집단이 군대인데, 여기서는 합목적적 권력체계도 문제지만, 목적에서 벗어난 권력 남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권력의 작동이 억압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이 목적을 벗어난 지배가 생산되는 지점이다. 억압과 차별은 필수적으로 피억압자의 분노, 슬픔, 한, 울분을 낳게 되는데 그 대부분은 적정한 방법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자기멸시와 자기파괴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목적이 이끄는 사회에서는 억압되는 소수가 필수적으로 양산되고, 그들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속한 사회나 공동체 중에서 목적을 가지지 않는 것이 있을까. 국가나 기업은 명확한 목표를 가진다. 국민의 보호, 시민의 정상적 삶의 영위,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것이 국가의 목표라면, 기업은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만들어내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기업 내에서의 억압과 차별을 웬만하면 참아낸다. 회사가 존립하고 이윤을 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교회나 가정 같은 공동체는 (‘존재’가 아닌 ‘소유’의 의미에서) 목적을 갖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 공동체들은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주어야 하는 곳이다. 만약 이런 공동체들이 목적을 가지게 되면 위에서 언급한 권력과 계급의 생산이 다시 벌어지고 구성원들은 참된 안식의 공간을 잃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의 양적 성장=복음전도=하나님의 명령=우리의 삶의 이유'이라는 등식이 목표로 주어지면서, 총동원체제를 통한 권력구조의 공고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라는 것은 마치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의미상 모순이다. 가정도 ‘자녀의 사회적 성공’, ‘경제적 풍요’라는 목적이 부여되면, 아버지의 경제자본과 어머니의 정보자본이 권력으로 작동하면서 가부장제가 공고히 자리잡을 수 밖에 없고, 자녀는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한 채 목적을 위해 훈련되는 기계로 전락한다.


공간확장과 장소의미화


      역사적으로 남성성은 '공간의 확장'이라는 ‘목표'를 한시도 포기한 적이 없다. 이윤의 극대화, 무한 증식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남성성의 산물이다.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총과 칼을 들고 가든, 상품을 들고 가든) 다른 사회, 국가를 침범하고, 그 경계에서 분쟁과 충돌을 일으켰다. 경계의 충돌은 항상 전쟁의 양상을 띄게 되는데, 그 결과 '삶은 곧 전쟁'이 되고, 경계 내부의 사회는 ‘생존’이라는 분명한 목적의 지배를 받게 된다. 다른 사회와의 충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전체주의, 가부장제, 소수에 대한 억압이 정당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의 언어체계가 상징계를 장악하고, 젠더의 모순이 일상의 기저에 편재하게 된 것은 다분히 사회진화론 또는 구조결정론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가정에서 남녀의 가사 분담을 주장하는 여성들도 남편이 다니는 직장에서 여성이 동등한 기회를 얻는 것은 반대한다. 기업에서 여성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은, 남편을 그 회사로 보내는 전업주부들에게는 위험요인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내부의 체제는 구조의 영향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데 그 구조라는 것이 바로 끊임없이 공간을 확장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욕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남성들은 역사적으로 항상 ‘협박범’이 된다.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미 이렇게 되어 있으므로’, ‘모두가 살아 남기 위해' 젠더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된다. 이런 거대한 구조에 대한 반성은 전지구적 혁명과 같은 변혁을 겪지 않고는 일어나기 어렵다. 결국 유럽은 두 번의 큰 전쟁을 겪고 나서야 다른 관점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다른 관점이란 바로 공간확장과 권력체계에 대한 의존성에 회의를 품는 것이었다. 서구에서 젠더의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부터다. 외부의 커다란 위협이 최소화되는 시점에서는 국가 전체를 지켜야 하는 목표가 보다 작은 단위로 분절되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논리적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남성성의 특징과 달리, 여성성은 제한된 '장소의 의미화'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1971)은, 아내가 없는 아파트에 덩그러니 남겨진 한 사내가 자신의 집과 어떻게 불화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내가 없이는 밥을 할줄도, 세탁기를 돌릴 줄도,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남성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정'이라는 ‘장소'에서는 소외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책상이 움직이고, 시계가 말을 걸고, 우호적이지 않은 사물이 자신을 공격하는 환상을 경험한다. 목적이 지배하는 외부 영역에서는 끊임없이 공간을 확장해가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이를 잘 수행하는 이들이, 가정이나 교회 같이 뚜렷한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는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에 대한 반발로 가정이나 교회도 목적이 지배하는 남성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가 ‘자녀에 대한 과잉 기대’, ‘사교육 시장’, ‘전도열풍’, ‘교회 건물짓기’ 등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남성은 목적이 없는 공간에서 소외를 느끼고, 자신이 역차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탈냉전시대에 냉전론자들이 느끼는 소외감도 이와 같을 것이다. 공공의 적이 불확실하고, 공간확장성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을 견디는 것, 자신의 삶을 ‘존재’의 가치로 들여다보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이런 면에서 ‘장소의 의미화’를 추구하는 여성적 운동성이(그것이 비록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닐지라도), 폭력시위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새롭게 정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건대, 남성적 시위는 공간의 확장성, 다시 말해 차벽과 경찰벽을 뚫고 나가 청와대라는 '목표'를 향해 진격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들에게는 진격의 대상만이 전부다. 그런데 촛불시위는 ‘시청 광장’, ‘광화문 광장’이라는 장소를 우리에게 각인시켰다. 그 곳에 촛불을 들고 앉아 몇 시간씩 구호를 외치고, 노래와 연설을 듣고 해산하는 것은 '장소의 시위’이지 진격의 시위는 아닌 것이다. 장소는 쉬는 곳이고, 대화하는 곳이지 달성해야 할 목표를 갖는 곳이 아니다. 진격은 점령하고 부수어야 할 대상을 목표로 하지만, 장소는 그 대상의 소멸과 동시에 그 너머의 '존재의 양식'을 바라 본다. 촛불시위대가 바라는 것은 대통령의 퇴진이 아니라(이것이 최종 목표라면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민주적인 국가일 것이다. 그러자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리더라도 의미화 과정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공동체의 일곱가지 가치

 

       공동체에 대한 연재글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장소의 의미화’, ‘탈목적적 공동체’라는 가치를 몇 가지로 정리하고자 한다. 한국사회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글들을 보면 대부분 현상적인 측면에 대한 분석에 집중되어 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 관철을 목표로 한다. 예컨데, 교회 내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위해 장로로 구성된 당회보다는 다양한 성도들의 그룹을 대변하는 운영위원회를 둔다거나, 교회의 회계장부를 일반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게 한다거나, 목사의 전횡을 막기 위해 최고 의결기구인 공동의회의 의장은 목사에게 맡기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러나 예로 든 이런 제도적 개혁의 더 본질적인 이유는 ‘돈’과 ‘권력’에 대한 이 공동체의 가치관을 세우는 일이다. 그 가치(value)가 제대로 자리잡지 않으면 제도는 다른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 지난 14년의 공동체생활과 두 번의 공동체 세우기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어떤 가치가 우리속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치는 어떤 리더가 ‘이렇게 하자’고 선언하거나, 모두 모여 ‘우리는 이런 공동체가 됩시다’라고 결정한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과정을 겪어 만들어진 공동체라면 이미 어떤 가치가 그 속에 만들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형식적이든 암묵적이든 이미 그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여곡절을 거쳐 그 공동체에 남아 있는 것이고, 다시 모이게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수 십년 된 교회나 공동체의 개혁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가치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올 해 아홉 가정으로 다시 시작되는 공동체에서 우리는 대략 일곱 가지로 부를 만한 가치가 내부에 심겨져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가치들을 간략히 설명하면서 우리 공동체의 존재양식을 드러내고자 한다.   


       단순성은 자연의 원리다. 생떽쥐베리가 말했듯이 완벽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정도로 단순해진 상태’를 말한다. 교회, 공동체, 조직이 너무 많은 것을 갖추려고 하면(이것은 대부분 소수의 욕망이다), 자체 유지 자체가 큰 목적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구성원에서 무의미하고 무리한 헌신을 강요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한국교회에서 일요일에 시행되는 행사, 노동, 프로그램의 70%는 없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의 억압은 특히 ‘죄책’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고질적이다. 현재 우리 공동체는 일요일에는 예배와 먹기, 수다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일요일에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제안되고 모두가 동의해야 가능하다. 공동체의 첫번째 필요는 안식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을 포기하고 많은 일을 계획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현명하지 않다. 이것은 일요일에 모든 사역의 역량을 쏟도록 훈련받은 사역자들과의 오랜 협의와 화해가 필요한 과정이다. 안식의 날짜와 패턴이 일반 성도들과 다르게 세팅된 모순이 일요일의 과도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역은 평일로 옮겨져야 한다. 따라서 평일은 더 거룩해져야 하고, 일요일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두번째 가치는 ‘구조’에 대한 것이다. 공동체의 사이즈, 의사결정 구조, 건물의 크기, 목회자의 위상, 재산 등은 공동체의 정체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사이즈가 큰 교회에서 사회적 영성과 도덕적 민감성을 기대하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이즈, 밀도가 구성원 개인의 도덕성, 영성과 정확히 반비례한다는 점은 심리학, 사회학에서 이미 오래전에 연구가 마무리된 사실이다. 그 구조 안에 있으면(짐바르도의 표현대로 ‘사과 상자가 썩어 있으면’),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직장의 전문인들, 상식적인 중산층, 평균 이상의 양심을 가진 성도들로 구성된 강남의 대형교회가 교회 살림(작정헌금 포함)의 5배에 달하는 빚을 지고 초대형 건물을 짓는 의사결정 투표를 무기명으로 했는데도 95% 이상이 찬성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정 구조 안에 있으면 누구라도 자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결정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시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공동체는 물리적으로 적정한 규모를 넘지 않아야 하고,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고 평등하게 결정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 현재 우리 공동체는 아홉 가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가 원하는 구조를 유지하면서 예배를 같이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결국 두 교회로 나눠서 교제하기로 결정하였다. 작은 규모로 나누고 다른 방식으로 연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적정한 구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아무리 많은 공동체라도 적정한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다.  

       ‘통합’은 단순성과 구조의 가치를 실현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우리의 삶은 주로 가정, 생업(직장), 교회와 그 주변부로 구성된다. 이 공간들이 모두 분열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현대인은 이 공간들을 왕래하는데만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고, 모든 영역을 효과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생의 시기별로 '선택과 집중’의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30대에는 직장의 안정화, 40대에는 자녀의 학업을 중심으로 한 가정경제의 유지, 50대에는 사회적 관계를 공고하게 하는 관계망의 구성(교회, 취미동호회)이 중요해진다. 그러나 문제는 각 시기마다 포기하고 잃게 되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이를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주거가 통합되면 자연스럽게 교회공동체가 그 안에서 생겨난다. 기존의 교회에서는 주거까지 통합하면서 구성원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라이프스타일이 구현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50대 이후 직장에서 은퇴하고 생업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면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함께 계획할 수 있는데, 이것이 생업의 통합이다. 극단적으로는 함께 귀농하거나 농촌 노동공동체를 계획할 수도 있지만 도시에서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함께 거주하는 가운데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실제적인 준비를 해 나갈 필요가 있다. 도시는 삶을 점차 세분화시키고 분절시키는 양식을 가지는데, 이를 다시 단순화하고 통합해 가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고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다. 현재 우리 주거 공동체는 가정과 교회를 통합한 형태다. 그 정도만 가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매우 많아진다. 통합이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는 없으므로, 경험상 돌아보건대, 30대에는 주거의 통합, 40대에는 교회의 통합, 50대 이후에는 생업의 통합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연재글에서 설명했듯이, 공동체가 항상 시대성, 역사성을 가지고 새롭게 구성된다는 말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간에도 공동체의 이해와 실천이 상이할 수 있음을 내포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할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하물며 한 세대가 지나가면 그 사이에 수 많은 용어가 생성되고 유행이 지나가며 사건과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조직과 조직간의 관계와 역동 역시 달라지기 마련이고, 정치적 상황과 시대정신도 새롭게 변화한다. 공동체는 자기 시대의 문제에 직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성격과 형태, 존재 방식이 계속 '진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특별히 한 공동체가 한 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단(單)세대 교회론'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자녀를 자녀의 공동체로 떠나 보내고, 부모는 부모의 공동체에 머물게 하면서, 공동체가 공동체를 돌보는 형태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두 번째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기존과 달리 새로운 멤버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새로운 진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 진화는 우리가 나이들어가면서 직면하는 이슈와 관심사가 달라진다는 측면과, 새로운 멤버들의 참여로 공동체의 특징과 성격이 달라진다는 점을 모두 포함한다.

       일상의 삶을 중심에 놓는 것 역시 공동체의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 모든 훈련 프로그램을 하루에 몰아 넣고, 일요일+교회건물+목사 중심으로 삶과 신앙을 이분화시키는 형태로 유지되어온 한국 기독교는, 일상의 삶에서 복음이 드러나지 않는 상황을 별다른 고민없이 수용해 왔다. 그 결과, 특정하게 구별된 날, 절기, 사람, 장소만을 거룩하게 만들고, 나머지는 세속적 영역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일상이 가지는 다양한 측면들(유동성, 추상성, 가변성, 운동성, 실존성)을 인식할 수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일생을 통해, 한 사회의 발전과정을 통해 꾸준히 진화해가는 것이다. ‘사회’나 ‘국가’의 개념도 확실하지 않던 종교개혁 시대의 신학이 오늘날에도 절대 진리, 문자적 진리로 자리잡으면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생략한 채 변경불가능한 고정된 진리로 탈바꿈되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해온 현실은 사실 삶의 이원화 외에는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신학이 일상을 붙잡고 지탱해야 한다는 말과 초역사적 신학의 견고함은 양립하기 어려운 말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다시 마르크스주의가 유행하는 것은 자본의 견고한 지배 하에 일상의 위대함을 잃어버리고 매일 반복되는 비참함과 지루함을 인생이라 여기고 살게 된 현실에서, 그나마 진정한 삶의 돌파구를 꿈꾸는 시도들이 그 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보편적 기준이나 진리는 관념적일 수 밖에 없는데 반해, 피지배되는 대상 즉 우리의 일상은 실재하며 물질성과 관계성을 지닌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관념으로서의 진리는 이전 시대를 대표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했으며 우리가 아닌 이전 타인들의 일상을 표상한다. 우리 시대의 보편적 관념은 몸과 물질성을 지닌 우리의 일상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공통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다(네그리, 하트, 아감벤, 블랑쇼, 바디우, 르페브르). 공동체는 일상과 비일상이 만나는 곳이고, 일상이 다시 복구되고 의미를 회복하는 공간이다. 그러기 위해서 공동체는 일상의 한 가운데 있어야하며, 먼곳에서 일상을 내려다보고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일상의 사건들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해석을 개입시켜 일상을 비일상화(신성화)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비일상은 일상이 그 한계에 이를 때 그저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와 같은 것이다. 목사도 한 명의 시민이며, 교회도 사회의 한 기관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주거와 가정의 통합을 통해 공동체 역시 우리 삶의 한 가운데 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르페브르는 우리가 일상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보고, 그 지배가 시작된 시점을 19세기 경쟁자본주의의 태동부터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이 때부터는 대량생산된 상품의 세계가 열리게 되며, 개인과 공동체의 고유한 양식(style)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작품'이 없어지고, 축제가 사라지고, 저항이나 주체적 혁명 역시 드물어졌다. 공중의 권세(엡2:2)는 일상을 장악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예수의 인생은 결국 그러한 일상의 비루함에 비일상적 권위를 가져와 잔치를 벌이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일상에 임하는 것이다(눅11:20). 일상의 비참함 속에서 이익을 취하는 교회는 결국 시대의 지배적 권력 아래서 '유기적 지식인'(그람시)으로 생존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세상에서 벌여야 할 잔치는 무엇일까. 비일상적 경험을 통해 일상을 지탱하고 변화시키기는 커녕 일상을 탈(脫)일상화시키는 일부터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거창한 수식어들을 동원해 스스로를 구별하고 타자를 배제하면서 세상을 대상화하는 방식을 다시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교회는 분명 사명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목표 보다는 과정으로, 절대성 보다는 상대성으로, 외재적이기 보다는 내재적으로, 대립적이기(세상은 악, 교회는 선) 보다는 변증법적으로, 양보다는 깊이로, 사람 중심이기 보다는 모든 피조 세계 중심으로, 단일하기 보다는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여섯번째로) '해석'이다. 한국 기독교는 성서 해석의 권한을 안수받은 소수의 설교자와 신학자들에게만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해석과 삶의 결합인 설교 역시 이들이 몫으로만 남아 있다. 목사의 설교에 대해 우리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기껏해야 약간의 인상비평 수준을 넘지 못하며, 다른 해석은 금지된다. 해석이 금지된 공동체는 각 주체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 없고, 다시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해석'의 차이로 수 많은 종교 전쟁과 종교 학살이 자행되었던 것을 알고 있다. 해석은 군중(성도)를 결집시킬 수 있었고, 그 군중을 배경으로 종교권력은 국가권력을 압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폴 비릴리오의 말대로, 국가가 종교와 분리되고 지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무기의 발달로 소수의 군대가 군중을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막강한 절대국가가 탄생한 근대에 들어와서였다. 이 시기에 와서야 해석의 차이는 학살을 면하는 수준으로 변화된다. 그러나 오늘날도 '경전'으로 취급되는 성서의 해석독점은 교회 내에서 수많은 폐단을 낳고 있다. 나는 예전에 출석했던 몇 교회에서 지속적으로 설교자들의 다양화를 주장했으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을 주장하는 나에게는 몇 번의 설교 기회가 주어졌으나 그것은 내가 바라던 해석의 보편적 자유가 아니었다. 토론이 아닌 일방향식 설교가 보편화된 오늘날 예배 형식에서 교단 신학교를 졸업한 사역자가 아닌 사람이 설교하는 것은 여전히 교회 내의 큰 위협으로 간주된다. 현재 우리 거주 공동체 교회에서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설교를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그대신 설교를 마치고 그에 대해 설교시간의 두 배 가량의 시간을 할애하여 함께 해석하고 토론한다. 그러다보면 다양한 관점을 만날 수 있고, 성서의 텍스트가 수용자 중심으로 다시 쓰여지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으면서도 일상의 삶에 적용하기에 무리 없는 범주로 해석이 모아지는것을 느낀다. 신기한 것은 예전의 일방향식 예배에서는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들던 사람들이 세 시간 가까이 되는 예배시간을 별다른 무리없이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도 점점 대화에 대등하게 참여하게 되었고, 심지어 부모가 아이의 고민을 공동 예배시간에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자기의 해석이 공유되고 피드백 되는 경험은 연령을 초월하여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우정은 공동체의 중요한 존재양식이다. 한나 아렌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인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각각의 사람은 오직 기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적, 그리고 심지어 죄인조차도... 사랑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실제로 사랑받는 사람은 이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 그 자체이다" 모든 인류, 원수까지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은 정작 한 사람을 사랑하는데는 소질이 없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아가페보다도 필레오(우정)가 더욱 어려운 사랑의 형태가 된다. 리젠트 칼리지의 설립자인 제임스 휴스턴은 기도를 '하나님과의 우정'이라고 정의했다. 증여나 환대가 여전히 증여자와 수혜자라는 계급성, 부채의식을 제거할 수 없다는 부르디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정의 가치야말로 현대사회가 회복해야할 가장 의미있는 돌파구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김현정의 말대로 우정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대하셨고, 우리 역시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수많은 타자들 앞에 서 있다. 전혀 불편함이 없는 동질집단 내에서 발현되는 것은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 자기확인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은 그것을 위협하는 경계를 만날 때 흔들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우정을 통해 다시 진화한다. 놀랍게도 나의 경험으로는 이런 방식의 우정이 생존하기 힘든 가장 어려운 환경이 바로 교회다. 교회는 사회보다 더 많은 가면과 위장을 갖추어야 하는 공간이고, 자신을 드러내기 힘든 장소다. 특히 목사와 교사들(리더들)이 가지는 소외감과 외로움은 아무도 감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설교와 교육의 방식을 통해 종교담론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을 열어보임으로써 다름을 드러내고 인정하면서 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대부분 배제된다. 나는 은퇴한 후 적정한 우정의 자리를 찾지 못해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노년을 외롭게 보내는 목사들을 자주 보았다. 그들에게는 '제자들', '양떼'라고 부르는 이들은 많이 있으나 우정을 나누는 친구는 희귀해진 것이다. 공동체를 인생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제자'도 좋고 '성직'도 좋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친구'일 것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셨다(요한복음15:14). 친구란 계급관계가 상정되지 않는 유일한 관계다. 스승-제자, 상사-부하, 부모-자식, 선배-후배 관계 조차도 서열과 계급의 지배를 받는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도 함부로 말을 하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친구는 언제 만나도 친구고 동등하다.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목표가 없다는 말이다. 그 관계는 그저 서로의 존재로 만족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소중하다. 부모도 가정에서 목적을 제거하고 자식의 친구로 존재해야 한다.

 

인과론과 목적론을 넘어선 일상

 

       이러한 일곱가지의 가치(단순, 구조, 통합, 진화, 일상, 해석, 우정)는 우리 공동체가 오랜 기간동안 교회, 가정, 사회생활을 통해 갈구하던 삶의 양식들을 언어화한 것이다. 가치가 구현되면 현상적인 것은 그 가치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사실 여러 교회를 다녀본 나로서도 이 중 두 가지 이상을 지닌 교회를 아직 보지 못했다. 그래서 차라리 공동체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가정-교회-생업-활동(사역)을 통합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럴 경우 전체 비용은 감소하고 효과와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는 가정과 교회를 통합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 생업의 통합과, 우리와 유사한 공동체와의 연계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뚜렷한 목적이나 권력관계가 상정되지 않는 작은 공동체들의 연대가 앞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가올 것이다.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마이클 무어는 13명의 사망자를 낸 충격적인 고교생 총기난사사건의 원인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서, 그 중 핵심적인 것이 바로 총기를 쉽게 소유할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을 설득하는 '군산복합체'의 음모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는 원인과 주범들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고 관객들 역시 이에 설득당한다. 동일한 사건을 묘사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는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영화 내내 아무 목적도, 일관성도 없이 희생된 12명 학생과 1명 교사의 사고당일 일상이 지루하게 묘사된다. 그런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당혹스러운 무작위 총기 발사 장면이 갑자기 등장한다. 산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죽음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외에, 그들의 잘못은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감독은 그 날 희생자들이 친구들과 대화하고, 아름다운 풍경사진을 찍고, 다른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 평범한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 일체의 인과론적 설명을 거부한다.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제의 원인이 분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파생되는 권력의 부산물과 그것의 재생산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반드시 다른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공동체는 부유하게 된다. 사회는 목적을 가지더라도 내부의 공동체들은 탈목적론적인 가치를 보유해야 한다. 우리가 벗어나기 힘든 인과론은 결국 목적론과 연결된다. 목적을 향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 인과성으로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가치들은 우리의 일상이 인과론도, 목적론도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제 두 번째 스테이지에 선 이 공동체는, 아마도 긴 매너리즘을 거쳐 다시 새로운 목적에 사로잡히고, 서로 분열되기 시작할 때, 다시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이 공동체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50대에 접어들 것이고, 이 시대, 이 장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와 직면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삶을 온통 기존 교회에 바치느라 분주한 우리 선배들의 무관심 탓에, 우리에게는 '가보지 않은 길'이겠지만, 우리 후배들에게는 하나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품고 있다. 목적없는 공동체가 가능할까. 리더 없는 리더십이 가능할까. 리더십 없는 공동체가 가능할까. 우리의 실험은 계속된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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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3]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최규창[각주:1]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집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승민(엄태웅)이 유학을 가기 전, 달동네 집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연민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짜증을 내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 아파트 같은 깨끗한 집으로 이사 좀 가! 이런 구질구질한 집이 지겹지도 않아?” 그러자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검은 비닐에 싸인 반찬통을 꺼내면서 무심히 대답한다. “얘는... 집이 지겨운게 어딨니. 집은 그냥 집이지...” 마지막 남은 가족인 아들마저 외국으로 떠나는 상황에 처한 어머니에게 가족이 생활하고 자랐던 집이라는 ‘장소성'은 마치 몸의 일부처럼 작동하고, 말을 걸어오고,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공기와도 같은 자연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현대적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가인 아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가난의 표상 같은 달동네 집의 의미가 아련한 추억 이상의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에게는 그 집이 곧 자기자신의 삶 자체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성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을 그 마을과 시장 사람들은 모두 그 집을 중심으로 네크워킹 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해진 공간으로부터의 탈주는 꽤 큰 용기와 분명한 목적의식을 필요로 한다.  

       13년간 마포구 서교동의 작은 골목에서 빌라를 짓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온 우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 주택이라는 공간 자체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간과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인데, 먼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공간이 협소해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우리들 스스로가 협소함 외에도 공간 자체에 제약되어 자신의 내면의 개혁과 미래에 대한 상상, 계획, 그리고 그 실행이 매우 힘들어졌다는 점에서 였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는데는 많은 민감성이 필요했다. 사실 주거공간은 하나의 생존 조건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사유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거 공간을 거주보다는 자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비싸고 넓은 집을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스스로를 공간에 맞춰가는 삶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넓은 집을 소유해도 정작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심한 부조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공간이 없으면 시간도 의미가 없어진다. 시공간의 여유가 생겨도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마치 마비증상이 있는 것처럼 생산성 없이 그것을 소모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삶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자신이 처한 공간을 비판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찾아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는 하루 중 어떤 자투리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나름의 생존 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결국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가 자신의 공간 좌표를 정확히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공간의 한계


      근대의 공간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그리 많은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근대적 삶은 지난 수 백 년간 과학이라는 신을 영접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공간을 측정 가능한 단위로 분절시키고 운동과 에너지의 공식을 만들어 냈다. 최근 백 여 년간은 효율성이라는 목표 하에 철저하게 ‘구획화’된 시공간 속에 인간을 투입했고, 우리의 삶을 그 속에 안착시켰다. 갈릴레오는 자연에 존재하는 중력, 가속도 등의 개념을 인지하고 말로 서술하였지만, 뉴튼은 구체적인 시간(t)의 단위를 상정하여 이를 공식화했다. 그의 공로는 모든 운동을 시간으로 환원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시간’이 우주 공간의 중심에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데, 이 확신 속에 이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은 리듬이 제거된 채 동질화되어 버렸다. (이 동질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작업이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 분석>이다) 이와 같이 과학은 측정단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출발조차 할 수 없다. 과학은 결국 '자연의 수학화’가 아니던가. 이런 점에서 신학자 월터 윙크의 표현대로 뉴튼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발명한’ 것이다. 누군가가 시간과 공간에 기준을 세우고 나머지를 재배열하는 식으로 과학을 시작했고, 그것으로 우리의 시공간을 분절시켜 삶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 공간을 대수적인 수로 환원시킨 기하학이 오래 전부터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밀접하게 대입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와서다. 앙리 베르그손의 말대로, 우리가 지각하는 시간의 관념은 (이미 어떤 측정 단위로 양화(量化)되어 버렸기 때문에) 사실 시간이 아니라, (시계바늘의 거리처럼) 공간적 속성으로 치환된 시간에 불과하다(여기서 베르그손은 자신의 고유한 사유인 ‘지속’ 개념을 주장한다). 우리는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 오전 9시에 출근하고, 오후 6시가 지나야 퇴근할 수 있다. 동일한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와 식사를 하고, 다시 시계에 의해 통제되는 오후 근무시간으로 투입된다. 집에서 아무리 달래도 밥을 먹지 않는 아이도 학교에 가면 얌전히 급식대에서 밥을 받아 시간 내에 식사를 잘 마친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이 애초에 왜 정해졌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은채 말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공간 어딘가에 좌표로 존재하는 대상일 뿐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근대적 주체를 발명한 데카르트가 바로 수학적 좌표를 생각해낸 사람이 아니던가) 그리고 시공간은 기계화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의 한 명인 르 코르뷔제는 ‘집이란 그 속에 들어가 사는 기계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20세기 초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근대란 인간의 삶을 효율성이 지배하는 거대한 기계로 환원시키는 작업이었고, 건축물이란 그 연장선상에서 공간을 구획시키는 기계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와 가타리 역시 근대의 모든 산물은 ‘기계와 기계의 이항접속’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한다. 예컨데 밥을 먹는 일은 수저-기계와 입-기계의 접속이고, 자동차 역시 사람들의 흐름을 절단하고 채취하는 기계인 셈이다. 인간은 가정, 회사, 거리, 술집, 교회을 전전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탈영토화’하고 ‘재영토화’ 한다. 이러한 배치가 안정화되면 그 사회는 다시 커다란 기계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공간적 신체’(르페브르)이며, 공간의 생산물이 된다. 선생/학생, 의사/환자, 목사/성도는 학교, 병원, 교회라는 거대한 기계적 공간에 부합하는 신체로 가공되고 변형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계는 그 본질상 불가사리처럼 계속 커지고 비슷한 기능을 가진 주변의 사물들을 통합해 가게 되는 것이다. 한국 대형교회의 탄생은 결국 효율성과 시스템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어두움에 거하라"


       사실 시간과 공간의 구획화가 불완전했던 전근대 시대에는 자기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국가와 민족의 개념도 선명하지 않았다. 근대는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집에 가서 쉬던’ 시대에서, ‘분, 초 단위까지 관리되며 노동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르 코르뷔제의 말대로 집이 거대한 기계라면, 인간의 의식 역시 기계화, 시스템화 되어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의 개념은 이와 달라야 한다. 집은 인간이 안식하는 곳이고, 기계의 전원을 꺼야 하는 곳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기독교는 ‘빛에 거하라’는 말을, 어둠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 억압을 정당화하는 목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리고 근대는 그 ‘빛'을 기계, 과학, 효율성으로 재해석했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끈 어둠 속에서서만 쉴 수 있다. 효율성과 이유를 떠나, 우리는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존재를 필요로 하고(그래서 신이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다), 불을 끄고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인간 내면에 학문적인(위상학) 공간성을 최초로 부여한 프로이트가 전기충격요법이나 최면을 거부하고, ‘자유연상법’(조명을 줄이고 편하게 누워 이야기하게 하는 것)을 정신분석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도입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가정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효율성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원형에 사로잡혀 자신의 의식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계산 가능성’을 신봉하는 근대의 기획은 인간의 상상력이나 직관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형이상학이나 종교는 그것들과 함께 외부로 내몰려 버렸다. 그러나 인간은 이와 같은 기계의 시대를 얼마나 견딜 수 있었는가. 극단적 방식(자살)의 탈주가 급증하고 있고, 기계의 부속으로 자녀를 대하던 부모에 대한 반발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센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근대적 공간이 형성한 근대적 ‘의식’은 이제 그 이면의 무의식의 반발과 그로 인한 부조화로 자신의 좌표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근대적 주체가 실재가 아니라, 담론의 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구조주의자들의 분석 이면에는, 그 주체를 존재하게 하는 의식의 불완전성과 편파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의식은 다분히 공간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직선이 아닌 공간(삐뚤어진 액자, 굽어진 방)을 견디지 못하는 근대 인간의 의식은 분명 기하학적 산물 그 이상으로 평가받기는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가정, 그리고 그 집합인 주거 공동체 공간의 의미는 이와 같은 반(反)기계적 성향을 지닐 수 밖에 없다. 미셸 세르토는 공간의 감시로부터 탈주하여 도시를 가로질러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공간은 직선으로 이루어진 동선을 만들고 우리의 일상을 그 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훈육한다. 공간은 우리의 움직임을 이미 파악하고 있고, 매 단계마다 이항접속을 실행한다. 이 동선으로부터의 탈주는 용기를 필요로 하며, 전혀 예측되지 않은 방향으로의 전개가 요구된다. 공간의 질서와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화하는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르며(그래서 천재들은 어쨌거나 우리의 언어 체계 안에 존재한다), 공간에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고, 가로지르고, 사각지대를 찾고, 허를 찌르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전혀 새로운 경로, 허를 찌르는 상상력, 어떤 무조건적이 것, 효율적이지 않은 것, 외부로부터의 은혜, 어두움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시간의 구획화를 무시한 채 출퇴근 시간, 휴가 일정을 자유롭게 하고, 오후 일과 중 몇 시간을 사무실 불을 소등하고 자유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외국의 일부 기업들의 생산성이 우리보다 훨씬 높고, 아이디어 개발과 특허 출원이 급증하는 것은 무의식으로부터 이런 직관의 힘을 꺼내는 방식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이런 ‘어두움’의 관점에서 다시 조명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우리의 구원은 이 영역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구현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가정, 그리고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와 공동체를 허용하신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두움 속의 안식’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성품을 담는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간 생산의 시급성


       이런 의미에서, 두 번째 건축을 시도하면서 우리 공동체가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바로 설계였다. 13년 전에는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었다. 우리가 경험했던 공간은 아파트 형태(넓은 거실, 방3, 화장실2, 베란다)의 구조뿐이었고, 그 이상을 상상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인의 59%가 살고 있는(비슷한 구조의 빌라를 포함하면 80%) 아파트는 사실 가장 전체주의적이며 가부장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에서는 개인의 삶은 보장받기 어려우며, 불을 끌 수 있는 어둠의 자유 역시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안식할 수 없는 공간에서 우리의 무의식은 더 깊이 억압되고, 그로 인해 외부의 기계적 삶에 억압된 의식은 가정에서조차 안식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더구나 아파트는 동일한 형태의 가옥 구조 속에서 늘 집 값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공동체가 아닌가. 그 허위적 소속감과 만족감, 자괴감이 안식을 줄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서로를 위로하는 대화, 자기를 성찰하는 기도,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내면을 정돈하는 독서가 가정 내의 어떤 공간에서 가능한가. 가정이 어렵다면 공동체 내의 어떤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는가. 우리의 ‘정신승리’로는 가능하지 않은 더 큰 원인이 존재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겠는가. 해가 거듭될 수록 우리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그래서 2015년 봄에 우리는 다시 서울을 벗어난 외곽에서 땅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소가 정해지자 6개월에 가까운 기간동안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필요를 쏟아 놓고 설계에 집중하였다.   

       르페브르는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라는 칸트, 뉴튼의 생각을 거부하고, 공간이 바로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생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 생산의 방향을 몇 가지로 설정하였다. 우선 구성원 각자의 사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가족이라해도 서로 방해할 수 없는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우선 가정 내에서 전시용으로 불필요하게 확장된 큰 거실을 포기할 필요가 있었다. 큰 거실은 대형 TV를 멀리서 보는 즐거움과, 외부 손님들이 가정의 경제력과 화목함을 느끼게 할 미장센을 연출하는 용도 외에는 실제적인 목적이 없는 장소로, 주로 가부장적 존재가 TV리모콘을 들고 혼자 소파에 누워있기 일수인, 그리고 가족들이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을 한없이 지연시키는 죽은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 외에는 전체 집의 면적 대비 이렇게 거실이 큰 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두 번째는 이와 반대로 공유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가정 바깥에 존재해야 하는데, 이것은 첫 번째 방향(사적 공간의 확보)과 상충되지 않기 위해서다. 공유공간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이며, 외부에 개방하고 타인을 환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적공간에서 일어나기 힘든 환대가 공적 공간에서는 가능해진다. 이것은 공적 영역이 사라져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투쟁의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물의 지하에 넓게 땅을 파고 다용도 공간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것이 근린생활시설로 신고가 되어 준공허가를 받는데 많은 고생을 하기는 했고, 생각보다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지만, 이 공간이 공동체와 마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얻는 것이 훨씬 많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탈주 과정


       각 가정의 설계에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가정마다 모든 공간의 타일, 벽지, 가구, 부엌, 전기등, 블라인드, 바닥재, 소품을 직접 선택했고, 외부에서 조달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고, 우리는 그들의 의사를 가능하면 존중해 주기로 했다. 특히 사적 공간의 확보와 가정 간의 선호 공간점유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를 수 차례 변경하면서 결국 우리는 2층~5층까지 한 가정이 사용하는 ‘땅콩집’ 형태의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복층의 답답함을 없애기 위해 반(半)층씩 공간을 조성하는 스킵플로어(skip floor)방식을 도입해서 독특한 공간을 만들었다. 오르내리기 힘든 점도 있지만, 모두가 방해받지 않는 각자의 안정된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이 더욱 중요했다. 이웃과의 층간 소음 갈등을 걱정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특히 설계하는 과정에서 각자에게 필요한 공간의 필요성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공간설계 아이디어들이 쏟아졌고, 우리 집에서는 전혀 필요없다고 느꼈지만 다른 집에서는 반드시 만들기를 원하는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건물을 같이 세우는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점과 성향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는 소득도 있었다. 이것은 앞의 글에서 강조한 공동체의 ‘임의적 특이성’ 또는 ‘다중성’을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정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는 획일화, 전체주의화 되어서는 안된다. 구성원들의 개성과 요구가 살아 있고, 그것을 서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정이란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핵심을 리더십, 규약, 목표의식, 비전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를 수용하는 성숙함이다. 우정은 자선이나 환대를 넘어서는 가장 성숙한 사랑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차이에 대한 인식은 향후 공동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공동체는 '원래 그래야만 하는’ 형식이나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구성원들의 개별적 차이가 융합되어 형성된다. 그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공동체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각자의 삶의 방식을 수용하는 다중의 공동체였다.

       이제 다음 글에서는 새로 만들어진 공동체 공간에서의 삶과,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숙제인 교회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묶어주고 지평융합을 이루는 힘은 바로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에 있다. 이것은, 역사성에 매몰되어 어떤 지속적이고 일관된 의미도 생성해 내기 어려웠던 철학적 해석학에 반(反)하여 움베르토 에코가 주장했던 ‘의미론적 동위체(isotophy)’와도 같은 것이다. 시대마다 용어와 해석이 달라지더라도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항상 의미를 찾고자 하며, 시대적 언어를 초월해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공동체의 좌표는 동시대적 관계와 역사적 연계 속에 생성된다. 따라서 ‘공유된 가치’는 반드시 공동체 스스로의 노력으로 시대마다 다른 언어로 정의되어야 한다. 이것은 해석의 과제임과 동시에 실천적 책임이기도 하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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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2]


공동체의 해석적 순환



 

최규창[각주:1]


공간, 장소, 거처


       많은 사람들은 보편적 ‘공간'에 의미가 부여되면 ‘장소’, 즉 ‘관계공간’이나 ‘역사공간’으로 변화된다는 점을 인식했다. 괴테는 '들판과 숲과 바위와 정원은 언제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가 그곳들을 장소로 만든다.’고 노래했다. 물건이나 사물에 의미와 목적이 부여되면 ‘도구’가 되듯이, 인간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성의 좌표 속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실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존재론을 공간적으로 모두 설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유에 실천이 첨가되지 않으면 어떤 한계를 넘어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속도’의 관점으로 근대성을 사유한 폴 빌릴리오도 오늘날과 같은 초고속 이동수단들과 광속 인터넷, 그리고 개인의 사생활까지 가속화시키는 스마트폰의 시대는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도 자체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정교하고 흥미로운 분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무지막지한 속도의 중독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예언하지 못했다. 원리조차도 새로운 맥락을 만나면 시효가 소멸되는데, 그 결과 그것은 원리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정리에 불과한 것이 된다. 공간이 장소로, 물건이 도구로, 존재가 실존으로 전환되는데는 사유나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여기에는 경험으로 대변되는 일종의 시간성이 필요한데, 그로 인해 공간과 장소는 어떤 변증법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결국 우리에게는 인생의 의미를 담지하는 ‘중요한' 장소, 즉 ‘거처'가 필요한 것이다.  

       수 년 전, 도시의 삶에 적응하기 힘든 경제적 여건에 처한 몇 젊은 부부들이 거주할 장소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중, 울산 도심에서 떨어진 한 외진 지역에 지어진 조그마한 미분양 아파트 단지를 발견했다. 분양이 되지 않고 방치된 곳이어서 시행사에서도 그들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에 장기 임대를 해 주었고, 심지어 몇 백 만원의 보증금과 휴대폰 사용요금과 비슷한 수준의 월세만 내면 십 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계약도 체결해 주었다. 일단 거주가 해결되자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미 가지고 있던 목공기술, 도배기술, 커피 만들기, 운전면허 등을 활용해서 닥치는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생업도 안정되어 갔다. 비록 도심까지 진입하는데 다소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거처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이 모든 불편함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장점이었다. 현재 이 공동체에는 열 가정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단단한 가정 교회가 형성되었고, 경제적 부담없이 부모를 모시는 집이 생겨났고, 외부 손님을 수용할 게스트하우스도 마련되어 있다. 이 공동체의 특징은 소득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버는 돈을 한 군데로 모으고 개인당 일정 금액의 용돈을 매 달 받는다. 공동으로 모인 소득으로 모두에게 의료비, 교육비, 주거비 등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있다. 점점 이 공동체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고, 사람들의 일거리와 가용한 생업 아이템들도 증가하고 있어서, 요즘은 일을 줄이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어딘가에 취업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자금을 고려하더라도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더 버는 것 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공동체를 더 단단하게 이루는 쪽으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단 거처가 안정되자, 젊은 부부들은 아기를 낳기 시작했고, 아이를 입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소유가 더 늘어난 것도 아니고,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도 아닌데, 불편한 위치에 있는 저렴한 주택에 함께 모여 삶을 공유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심 속의 가정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삶의 요소들인 가정꾸리기, 교회 유지하기, 생업에서 살아남기 등이 자연스럽게 한꺼번에 해결되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포기한 것은 단지 번듯한 직장에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삶 뿐이었다.   


환원근대 속에 상실된 공간


      앤소니 퀸이 주연한 <산체스의 아이들>이라는 영화의 OST 메인 타이틀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희망과 긍지에 대한 꿈이 없다면 사람은 죽을 것이다. 그의 몸은 움직일지라도 그의 마음은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땅이 없다면 사람은 꿈꿀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존엄성을 가지고 살 장소가 필요하다.”  


       안식할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다. 거처가 없는 인간은 노마드 상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의미를 가지는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인생의 터를 세우는 ‘거처'를 의미한다. 아마도 1960년대 이후 압축근대 시대에, 대대로 살아오던 거처를 떠나 도시로 밀려들어와 도시 빈민이 된 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유사 거처’(pseudo-dwelling place)의 역할을 제공했던 곳은 바로 ‘교회’였을 것이다. 새벽마다 하늘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울부짖지 않으면 하루도 견디기 힘든 시절이었다. 자연스럽게 교회당은 ‘성전’이 되었고, 집보다 더 깨끗하고 거룩하게 관리해야 할 ‘거처'가 되었다. ‘70~'80년대에 종종 들리던 뉴스처럼, 자신의 장기를 팔아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일부 교회와 신도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믿음이라고까지 해석했다. 1960년대 이후 50여년간 한국 사회는 ‘2년 단위 전세’와 ‘아파트 중심의 주택공급’,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선분양제’, ‘아파트 가격 폭등’ 등에 힘입은 빈번한 주거지 이동전략을 통한 서민 재산 증식으로 나라를 유지해 왔다. 2년 단위의 잦은 이사는 우리의 의식에서 거처를 소거시켰고, 동일한 구조로 설계된 아파트의 평수를 늘려가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거처가 되어야 할 집은 중산층 진입과 국가의 복지 의무, 자녀 학자금, 교회 헌금을 모두 떠받치는 재원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전 국민의 59%가 아파트에 살고 있고, 85%가 동일하게 설계된 모양의 주택에서 살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는 결국 주거공간의 획일화를 통한 전체주의를 이루어냈고, 잦은 이주를 통한 상실의 정치를 구현했다. 한국의 교회 성장 역시 이 지점에서 동일한 혜택을 입었고 그에 따른 책임을 안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기반인 거처를 (늘 옮겨 다니는) 집에서 찾지 못하고 교회나 다른 동질집단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가 ‘상대적 공간’ 개념을 통해 제시하듯이, 공간 속에서 생성되는 의미는 관찰자의 관점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김덕영은 <환원근대>에서,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모든 가치와 전통을 ‘돈이 되는’ 것과 맞바꿈으로써 철저하게 자본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대상/영역의 측면에서는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주체/담지자의 측면에서는 국가와 재벌로 환원되는 이중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근대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지표인 분화와 개인화는 억압되고 저지되었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세계는 결국 '공간의 획일화'와 '거처의 상실'을 수반하게 된다. 개인이 존엄성을 가지고 꿈을 꾸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존엄성과 꿈은 가치의 다양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은 다시 말해, 거처의 해체를 통한 전체주의를 도모하는 힘과 그에 저항하는 힘 간의 ‘공간충돌' 또는 ‘공간투쟁'을 상정한다. 우리는 외양으로는 끊임없이 돈을 추구하지만, 내면으로는 계속 거처를 찾는 분열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거처 탐색의 실패는 ‘헬조선’과 ‘세계 최고의 자살율’로 나타나고 있다. 절대적 빈곤 시대에도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 모두가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는 현대에 와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고통 : 가치관의 충돌


       이제 여기에 덧붙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거처를 이루는 것은 공간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분명히 사람들이기도 하다. 특정한 공간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관계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처가 된다. 그것은 실재적으로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개인이 온전한 참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참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은 ‘의식’(意識)과 ‘이성’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내면의 ‘무의식'과 영적인 에너지의 발현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반드시 어떤 형태의 고통과 불편함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반드시 앞 세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삶의 지혜와 충돌을 야기한다. 인간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든 불편함과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한 시대가 낳은 지혜란 그 경로를 압축적으로 구성한 일정한 구조와 패턴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우리가 건축을 통한 주거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결심했을 때, 구성원들 전부가 양가 부모님들에게서 받았던 압박과 우려는 모두 여기서 기인했다. 한국전쟁을 겪고, 모든 것이 부족했던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그 분들에게 있어 돈을 함께 투자해서 벌이는 ‘경제적 융합 행위’는 실패가 자명한 매우 위험한 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돈을 거래하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게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돈이 속이지 사람이 속이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속이는 사람은 계속 속인다.’, ‘실패한 사람은 계속 실패한다.’, ‘돈의 유혹을 이길 장사는 없다.’는 것을 삶의 지혜로 터득한 이들에게, 전재산을 걸고 공동체를 건설하기로 한 자식들의 결심은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행위로 비춰졌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심지어 토지 구매잔금을 주기 전날 우리 집에 오셔서, ‘토지 계약금을 포기하고 공사를 하지 마라’고 강하게 충고하셨다. 당신 스스로도 평생 교인들 빚보증을 서주고, 수 많은 사기를 당해 오면서도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셨지만, 자식 마저 그런 상처와 배신 속에 인생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답답했다고 하셨다. 나는 ‘저와 우리 친구들을 믿어달라'고 부탁드렸지만, 교회 내에서도 이런 사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평생 보지 못했던 아버지는 설득을 포기한 채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셨다. 과연 ‘한 번 실패한 사람은 계속 실패한다’는 말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그냥 부모의 삶의 지혜가 농축된 격언들을 따라 살면 인생에 큰 문제가 없이 편안해질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의식’과 ‘이성’이 지배하는 격언들이 우리에게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우리의 선택은 자명했다.   

       그러나 이후의 과정은 우리에게 기성세대의 격언들이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해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였다. 먼저 건축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격언은 단순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가는 수 많은 이해관계와 구조적인 악으로 가득하다. 애초의 계획과 설계대로 진행되는 것은 거의 없었고, 건축이라는 과정을 진행하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낭패를 거의 모두 경험해야 했다. 목적에 맞는 땅을 찾는데도 반 년이 걸렸지만, 세 필지를 사서 병합하고자 했던 계획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땅을 중개한 부동산컨설팅사는 애초에 필지병합을 간단한 과정으로 설명했지만, 현실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었다. 결국 구매한 토지의 일부를 포기하고 땅을 설계해야 했고, 그 때문에 막대한 재정적, 시간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토지경계가 잘못 측정되어서 공사가 몇 달 중단되기도 했고, 결국 설계사, 시공사, 감리사도 교체되었다. 제대로 시공하고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교대로 휴가를 내고 현장에 상주해야 했고, 구청 공무원, 시공사 소장과의 말다툼은 일상이 되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각자의 재정압박이 심해져서 서로 돈을 융통하면서 버텨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건축이 완료되었지만, 주택 세 채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다시 큰 재정손해와 2년이 넘는 지루한 법정싸움이 이어졌다. 건축 과정에서, 모든 것을 잃고 길거리에 나가 앉을 뻔한 위기가 몇 번 있었고, 우리는 퇴근 후 밤마다 모여 기도회와 대책회의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때의 적막함이란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참담했다. 이런 과정들이 반드시 수반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부모님들은 우리를 막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런 류의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시작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자기 시대의 아포리즘으로 형성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이 터널을 지나왔고,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한 번도 포기하거나 서로를 원망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 이것이 부모님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점이고, 우리 세대에 새롭게 형성된 삶의 해석방식이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14년 반을 함께 거처를 이루었다. 물론 경험이 쌓이고 나서의 공정은 이와 같이 않을 것이다. 실재로 현재 진행중인 2차 공사는 마무리를 한 달 앞두고 있는 현재시점까지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경험이 전무했던 우리들은 모든 과정마다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부모님 세대의 아포리즘이 현실적이라는 깨달음을 준 두 번째 계기는 우리의 공동체 생활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갈등과 어려움이었다. 공동체는 공유된 가치(shared values)에 동의한 사람들이 형성하는 일종의 배타적 멤버쉽 개념을 포함하지만,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한편으로는 서로의 개성과 ‘임의적 특이성’이 살아 있는 충돌과 투쟁의 장(場)이기도 하다. 결혼이 개인의 결합이나, 양가 집안의 결합을 넘어, 수 십년간 따로 형성된 두 공간의 결합이듯이, 공동체 역시 교집합과 합집합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형성되어가는 하나의 지평융합의 완성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갈등에 의해 해체되든지, 아니며 공존할 수 있는 나름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주거 공동체는 달리 다른 곳으로 도망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후자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비교의식이다. 다섯 가정이 서로에 대해 깊이 알게 될수록 각 방면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들(best practice)에 집중하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가정과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배우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졌고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자녀들을 비교하면서 생기게 되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웃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기 자녀에 대한 주관적 낙관주의로 육아와 교육의 스트레스를 이겨 왔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 아이들의 특징과 개성, 차이는 숨길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시까지도 다양성의 가치를 삶으로 배우지 못했던 우리들은 여전히 세속적 기준으로 아이들과 우리의 삶을 재단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우리들은 이런 어려움들이 일종의 지평융합을 통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하비가 ‘상대적 공간’ 개념을 통해 제시하듯이, 공간 속에서 생성되는 의미는 관찰자의 관점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김덕영은 <환원근대>에서,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모든 가치와 전통을 ‘돈이 되는’ 것과 맞바꿈으로써 철저하게 자본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대상/영역의 측면에서는 경제성장으로 환원되고, 주체/담지자의 측면에서는 국가와 재벌로 환원되는 이중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근대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지표인 분화와 개인화는 억압되고 저지되었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세계는 결국 '공간의 획일화'와 '거처의 상실'을 수반하게 된다. 개인이 존엄성을 가지고 꿈을 꾸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존엄성과 꿈은 가치의 다양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은 다시 말해, 거처의 해체를 통한 전체주의를 도모하는 힘과 그에 저항하는 힘 간의 ‘공간충돌' 또는 ‘공간투쟁'을 상정한다. 우리는 외양으로는 끊임없이 돈을 추구하지만, 내면으로는 계속 거처를 찾는 분열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거처 탐색의 실패는 ‘헬조선’과 ‘세계 최고의 자살율’로 나타나고 있다. 절대적 빈곤 시대에도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 모두가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는 현대에 와서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순환과 융합 : 과정으로서의 공동체


       함께 하는 시간과 나눔을 통해 우리는 솔직해 지는 법을 배웠다. 그러자 서로에게 잘 보이거나, 가면을 써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자신의 인격과 자기 가정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모임 중에 부부싸움이 빈번히 일어나고, 부부간에 둘이서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전체 모임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자기를 발견하는 경험이었다. 성장은 이성과 의식만이 아닌, 무질서와 무의식에 의해서 촉발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내면이 질서정연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혼돈과 무질서가 함께 공유되어야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주인공 타일러 더든은 ‘남자는 싸워봐야 진정한 친구가 된다’고 주장한다. 싸움은 무질서의 본능이 올라오는 경험이자, 광기의 행위다. 예수가 우리에게 평화가 아닌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신 것처럼(마태복음10:34) 가정 내의 다툼, 공동체 내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오지만, 결국은 서로를 더욱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힘이 된다. 주거 공동체는 달리 도피할 곳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든 갈등과 고통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형태의 융합과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이성적인 대화로 갈등을 설명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는 차원이 아니라, 여전히 갈등과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은 채 섭섭함과 분노가 남아 있지만, 서로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고, 더 깊은 정과 신뢰로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체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근대적 주체로 형성된 근대적, 시스템적 공동체에서 경험하기 힘든 새로운 공동체 이해일 수 있다. 우리는 그냥 그런 과정 안에 머물기로 했다. (공동체 내의 무의식의 융합에 대해서는 3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공동체는 이제 우리에게 맞는 형태로 어떤 룰과 구조를 가지게 된다. 미로슬라브 볼프가 <배제와 포용>에서 말하듯, 서로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도 힘들고, 멀어져도 어려워지는 것이 공동체의 속성이다. 흔히 '매우 가까운 관계'에 대한 환상을 갖고 공동체에 접근하지만 그것은 상처를 불러올 수도 있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면 자신과 상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사이에 타자를 수용할 공간을 갖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 타자가 바로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외부의 타자일 수도 있고, 공동체 자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공동체에서는 항상 부분과 전체의 해석적 순환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공동체에서 생겨나는 구조와 룰은 공동체나 구조 자체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항상 구성원들이 참된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가변적이고 과정중심적이다.  

       하이데거나 가다머가 주장하듯이 인간은 자기 시대의 역사성을 벗어날 수 없고, 무전제적인 해석을 할 수 없다. 우리들 자체가 세계를 객체화할 수 없고, 세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경적 공동체’라는 것은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한 우리가 스스로 포함된 공동체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완벽한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다만 자기 시대를 참인간으로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대적 공동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역사적 예수'를 우리의 기준이자 '의미론적 동위체'(움베르토 에코)로 삼는 한계적 순환 속에서 탄생한 어떤 구조나 패턴, 룰이 공동체 안에 존재할 뿐이다. 이것 또한 구성원들에 따라 계속 변화될 것이므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강요하는 순간 우리는 해석을 멈추게 되고, 시대적 아포리즘에 사로잡혀 버리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울산 외곽의 공동체 역시 자기들에게 맞는 임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 방식들은 일반화되거나 다른 공동체에 강요될 수 없다. 공동체 내의 갈등이 해결되고 무의식적 차원의 공유가 일어나는 것으로 멈춘다면 우리는 계속 진화하는 공동체의 영속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떤 룰과 구조를 만들지만, 그 구조들이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계속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해 가는 것이 공동체의 속성이다. 사람은 공동체를 만들지만, 공동체 역시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돈을 벌거나, 외부에 내세울만한 자랑거리를 만들거나, 성공을 추구하지 않으며, 오직 예수의 삶을 쫓아가는 참된 인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홀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이 세상을 객체로 만드는 주객논리로는 모순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공동체에 속해야 하고, 그러한 해석적 순환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4년의 첫번째 스테이지는 우리와 공동체가 그런 방식으로 함께 영향을 주고 받는 남다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박하고 필수불가결한 변화의 요청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새로운 주거 공간을 설계하고 건축하면서 이제 공동체의 목적과 동력을 새롭게 점검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공동체 14년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다음 단계의 공동체를 어떻게 구상하고 세웠는지에 대한 새로운 사례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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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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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1]


경로를 벗어나기

: 소모적 공간으로부터의 탈출




 

최규창[각주:1]


 


       20여년전 내가 계획했던 학업을 모두 마치면서 나는 먼저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의 수 많은 겁박에 시달려야 했다. 편하고 자유로운 학교를 떠나 정글과 같은 직장생활에 들어서면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전쟁과 같은 상황에 시달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자신들은 그래서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그들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다만 내가 직면해야 했던 것은 과도한 업무나 피곤함이 아니라 무의미의 전쟁이었을 뿐이다. 기억해보면 매일이 고민의 연속이었던 20대의 삶이 나에게는 더욱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IMF 구제금융 시기를 통과했던 나의 직장생활은 업무가 과도하기는 했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항상 답이 나오는 일이었고, 나름 성취감도 있었기 때문에 선배들의 말처럼 이곳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메를로-퐁티의 말대로 우리의 의식과 세계는 일종의 '순환적 인과성'을 가지는데, 이는 인간의 의식이 세계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체는 존재하기 위해 다른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하지만, 현상학적으로 우리의 의식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기 때문에 자기의존성이나 독립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의식과 세계의 관계는 우리의 경험의 지평에서 거시적, 미시적으로 항상 포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런 역동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점점 무뎌져 가는 것을 느꼈다. 말하자면 내가 보기에 주식회사 또는 자영업을 기반으로 소비를 촉진하는 형태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구성원의 의식과 세계의 인과성 경험을 극히 일부의 시스템 내로 제한하고 그것을 반복시키는 체계였다.  

       인생의 과제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오늘날 대다수가 살아가는 삶의 패턴은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다. 마치 젊은 시절에는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희생하고, 늙어서는 건강을 일부나마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써야 한다는 우스개소리처럼, 생업이 결부된 일상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의식의 지향성이란 기껏해야 조직이 지시한 과업의 종착점, 또는 보상이나 대가에 대한 기대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지향성이 미시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때 우리가 기술적 질서가 지배하는 이 지독한 '무의미의 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한은 그리 길지 않다. 결국 우리는 항상 다른 것, 본질적인 것을 지향하게 되고 그것은 곧 다른 공간에 대한 욕구와 이어진다. 결국 나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기로 했다. 그 후 한동안의 방황은 마치 경로를 잘못 들어섰을 때 계속 경고를 날리는 네비게이션 ‘미쓰 김’의 다급한 목소리같은 수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어린 아들을 키우는 아내가 쌀독에서 쌀이 떨어져간다고 슬쩍 내비치는 목소리에 의해 증폭되어, 나에게 더욱 많은 혼란과 고통을 야기시켰다. 그 때 내가 가장 집중했던 것은 무모하게 목표를 높게 설정한 법인사업과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 세우기 작업이었다.   

      일상의 틈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상은 존재양식이 굳건하고, 경로가 분명하며, 시간과 공간에 의한 자기 분열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상은 의식의 지향성을 제한함으로써 순환적 인과성의 균형을 허물뿐 아니라, 반대로 의식에 의해 포착되는 것도 거부함으로써 어떠한 의미도 명확히 생성되지 못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인간은 늘 인생의 의미를 생각만 하면서 인생을 다 보내게 된다. 경로를 이탈하지 않으면 틈이 만들어지지 않고, 틈이 없으면 의미도 파악되지 않는다. 그리고 틈이 만들어지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공간은 다시 하나의 ‘전체’로 인식되어 의미를 소거해 나간다. 대략 우리는 10년 단위로 인생이 화살처럼 지나가는 것을 인식한다. 승진, 이직 같은 사회적 역할수행이 대략 그 주기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로 이탈도 일어나지 않는 그 10년은 사실 '하나의 공간'처럼 인식되고, 반복학습되는 습성 외에는 전후좌우의 구분도 의미가 없어진다.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더 이상 동일하지 않은 사건, 나에게 공동체는 그렇게 인식되어야만 했다.   

       보통 기독교인이 일상의 균열을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노력들은 정기적 모임이나 기독교 외부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나 역시 매 주 두 세 군데의 성경공부 모임과 종교/시민사회 영역의 모임, 교회 활동 등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모임’ 수준의 활동은 삶의 변화를 가져올만한 충분한 밀도를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모임 자체의 유지를 위한 에너지가 너무 과다하여 쉽게 지치고 오래 지속되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구성원들의 삶을 죄어오는 삶의 이슈들은 모두가 나누고 공유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이 밀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주거를 함께 하는 공동체였다.

       처음에 우리는 같은 동네에 모여사는 공동체를 생각했다. 하지만 가정간의 물리적 거리는 공동체의 목적 달성과 반비례한다는 점을 금방 인식할 수 있었다. 서로 길 건너편에 사는 가정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우리가 계획한 방식이 아니었다. 먼길을 가기 위해서는 천천히 가야 하는 법이다. 결국 우리는 목적의 경중을 떠나 서로 밀접하게 얼굴을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선택했고, 급기야 땅을 사서 함께 들어가 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아무런 경험도 없고 모두 각자의 직장 일로 정신없이 바쁜 이들이 추진하는 일이 순조롭게 될리도 없었거니와, 건축주가 종일 감독을 해도 스트레스로 10년 늙는다는 집짓기를 우리 여섯 가정이 기한 내에 해 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대가로 우리는 매우 혹독한 시련을 맞았고, 꽤 큰 재정적, 시간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수 차례 공사가 중단되고, 모두가 전재산을 날릴뻔한 위기를 여러 번 맞이했다. 하지만 이 경험은 반대로 서로 굳건한 연대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합리적 대안이 도저히 만들어지지 않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집단적 무의식 속에 어떤 공통적인 경험을 가지게 된다. 일종의 체념이나 비움의 경험인데, 이것을 함께 겪는 사람들이 가지는 연대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 절정에 있었던 것이 바로 분양 사기를 당한 일이었다. 공동체 구성원 여섯 가정이 살 집을 제외한 나머지를 분양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들마저도 속일 수 있는 고도의 심리술을 가진 이들에게 주택을 몇 채 넘겨줘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진정한 사기는 언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황과 맥락을 이용하여 신뢰의 공간을 만들고 입체적으로 대상을 공략하는 기술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말은 맥락과 증거로 분석할 수 있지만, 입체적인 공간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번 만들어진 신뢰의 공간은 말에 의해 허물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기는 여지없이 성공하게 된다. 결국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리는 이 사건을 복구하기 위해 2년간 기나긴 법정 싸움을 하게 된다. 결국 공동체는 '시작이 미약했던’ 수준이 아니라 마이너스 상태로 출발하게 되었다. 나중이 ‘창대하게’ 되리라는 보장 역시 전혀 없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당시에도 너무나 흔했던 공동체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공동체 자체가 하나의 공간이지만, 공동체란 구성원들이 각자의 공간을 점유하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거기서 인간으로서 인정을 획득한다.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안에서 이루어지면 그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괴테의 유명한 싯구처럼 우리에게는 '들판과 숲과 바위와 정원이 언제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가 그곳들을 장소로 만든다.’ 각자가 가진 자기 몫의 ‘공간'은 공동체를 통해 ‘장소'로 전환된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선호하던 급진적 형태의 경제 공동체를 지양하고,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고 공통점을 찾아가는 작업을 거치기로 결정했다. 보통의 기독교 공동체가 가지는 정언적 질서와 분명한 목적의식을 일단 소거하는데는 많은 고통과 불안이 뒤따랐다. 우리는 경로를 벗어나 다른 길을 만들어보기로 한 이상 이 작업을 '언젠가는 다시 큰 도로와 합류할’ 성격의 안전망 안에 두는 것도 포기하기로 하였다. 각자의 공간과 삶의 여정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정체성에도 귀속되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임의적 특이성’(아감벤)을 불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굳이 윤리적이거나 신학적, 정치적이지 않아도 각자에게 주어진 길로 ‘참 인간됨’을 성취해 갈 수 있는 기반으로서 공통의 장소를 제공하는 (루소의 이상과 같은) 유기체적 소시민 사회로서의 공동체를 생각했던 것이다. 분명 우리 개개인은 각자에게 주어진 윤리적 명령에 나름 충실했다고 생각하지만, 공동체의 목표가 명확하게 ‘선교’를 향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다. 정말 벤야민이나 아감벤이 말한대로 ‘세속화’(적극적으로 교리적 삶을 노정하지 않는다는 면에서)와 메시야적인 것이 긴밀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면, 각자가 자기의 존재방식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담아낼 수 있다면, 이것이 공동체의 새로운 경로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생각이 반드시 정당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기존의 공동체들이 지속적인 모델로 남지 못하는 한계는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서로를 존중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규칙이나 강령이 없이 공동체를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존재방식을 존중하면서도 모두 공유하고 있는 교집합 지점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세워가야했기 때문에, 결코 큰 규모를 지향할 수 없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연결하는 느슨하고 질긴 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어쨌든 공동체는 우리가 모두 사람이라는 점 외에, ‘공동’하는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운동의 중요한 요소인 구현 가능성, 지속 가능성, 재현 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공동체 기획은 ‘연대’를 통한 가능성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흔히 기독교인의 중요한 정체성의 하나를 세상과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라고 가정하지만, 이것은 사실 가능하지 않은 이상이다. 보통 환대를 사적 공간의 포기와 연결짓기 때문에 이러한 의지에는 한계가 명확히 설정된다. 김현경(<사람, 장소, 환대>)이 말하듯, '사적 공간의 개방'과 '공공성의 창출'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공공성의 창출은 오히려 사적 공간을 보호하고 확장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이나 한 가정은 진정한 환대와 용서를 하나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공동체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마치 기독교 신앙이 현실과 무관한 ‘종말'을 현재의 실존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도록 하듯이, 무조건적 환대의 불가능성도 공동체라는 구조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며, 원칙론적 규범에서 실천 가능한 규범으로의 전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임의적 특이성’을 추구하는 나의 공동체에서, 나는 실재로 한 가정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심리적,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 공동체가 구현해 내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생활세계가 쳇바퀴로 고정되어 있는 거대한 체계 속에서, 일종이 균열과 새로운 가능성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일종의 플렛폼으로서의 공동체 개념이다. 마치 컴퓨터의 운영체계(OS)나, 휴대폰에 내장되는 미들웨어처럼, 일단 구동되면 어떤 기능이든 어플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그런 상황과 비슷하다.   

       이렇게 우리는 주거공동체를 짓고 13년을 넘게 살았다. 사실 삶은 이론보다 훨씬 강력하고 실증적이다. 심지어 삶에서 귀납적으로 구축된 이론 역시 (칼포퍼가 논리실증주의를 비판하듯이) 앞으로의 상황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복잡한 이론들도 대부분 단순한 사례에서 비롯되고, 그것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갔다. 프로이트도 (이후 많은 수정을 거쳤지만) 몇 명의 아이들을 분석한 자료로 그 유명한 '유아의 성욕에 관한 이론들'을 만들어 냈다. 나는 공동체에 대한 현대 맑스주의자들의 이론들이 복잡한 체험에서 나왔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참고하거나 용어를 빌릴 수 있을 뿐, 반드시 실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이유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구체성의 체험이지 이론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공동체가 지속되어 온 과정을 중심으로 내가 경험한 공동체의 동력과 삶의 이야기를 담아 보려고 한다.  


ⓒ 웹진 <제3시대>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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