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故人)을 추억하는 두가지 방식과 한가지 옳은 방식

박찬선
(본 연구소 회원)

죽은 자를 추모하는 방식이 따로 있을까. 슬프면 슬픈 대로,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담담하면 담담한 대로.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2009년 8월 23일. 김대중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던 날. 서울광장은 사람들의 발길로 빼곡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뒤 이곳에 도착할,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발걸음도 기다리는 발걸음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마음은 달라도 기다림의 대상은 모두 같았다. 초조한 눈빛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실은(어쩌면 태운) 운구차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영웅은 죽은 채로 도착하였다.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은 탄식했을 것이다. 미망인이 대신 인사를 건넸고 잠시 후 운구행렬은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콘서트장을 빠져나가는 관객처럼 사람들은 지하철로 향했다.

사회자는 벌써부터 울부짖고 있었다. 그는 잔뜩 고조된 목소리로 군중들은 촉구했고, 군중을 대신하여 고인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모인 사람들의 애도 감정을 극대화하라는 비밀 지령을 받은 사람인양 어쩔 줄을 몰라했다. 고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추억해보고자 마음을 모으고 있으면, 여지없이 더 크고 열광적인 감정으로 곧 도착할 영웅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다그쳤다. 나에게 고인은 고(故)인이었으나 그에겐 고인은 생(生)인이었다. 사회자의 감정몰이에, 그 자리에서 고인의 삶을 대면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고인은 특정인의 고인이 된 채 고도감정속에 함몰되어 버렸다.

지난 8월 30일. 한백교회 예배 중 삶의 고백 시간에 안 선생님은 또 다른 죽은 자를 추억하고 있었다. 공무상 만난 39살의 윤성환 씨인데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한강 다리 아래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안 선생님은 타인의(?) 죽음을 얘기하듯 담담하게 고인을 추억했다. 그를 위해 “낯선 이방을 떠도는 가엾은 나그네의 노래”라는 흑인 영가를 불러 바쳤다. 안 선생님이 어떻게 담담할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렇게 친하지 않았는지, 사람들 앞이기에 감정을 절제하였는지, 아니면 그 슬픔이 시간이 흘러 승화되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

만일 그가 눈물을 쏟으며 고인을 추억했더라면 어땠을까. 감정을 드러내며 한껏 슬퍼했다면. 이것 또한 고인을 향한 그의 마음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리라. 그럼에도 만일 그랬다면 글쎄...고인은 적어도 그의 고인으로만 남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나에게도 고인의 죽음이 불편하게 다가왔던 것을 보니 고인은 그에게서 매몰되지 않았나보다.

고인을 사람들 앞에서 추억할 때는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담담하게 얘기하는 것이 좋다라는 방법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서두에 밝힌 대로 특정한 방식이 어디 있으랴. 슬프면 슬픈 대로, 담담하면 담담한 대로, 그렇게 마음가는 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결론을 내려야겠다. 사회자는 마음가는 대로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에게 부여된 역할이 그의 감정이 흐르는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안 선생님은 담담한 마음 그대로 담담하게 고인을 추억했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된 자연스러움 속에 고인의 죽음에 우리 모두 연결될 수 있었다. 영웅의 추모식 사회는 맡지 않고 볼 일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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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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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첫 번째 이야기 - 풋내기 목사의 꿈

“하느님께 무엇인가 바치겠다고 너무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급하게 입을 열지도 말라.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름지기 말이 적어야 한다.” (공동번역성서, 전도서 5장 1절)

저는 목사안수를 받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풋내기 목사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목회에 관한 이러저러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에 덜컥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을 해 놓고는, ‘또 실수 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글 쓰는 것을 취소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무슨 말이든 쓰기로 했습니다.

저는 목회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해서 목회란 것을 하겠지만 그렇게 몇 십 년 목회를 한다고 해도 ‘목회란 이런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목사가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공간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대한, 특히 개신교에 대한 비종교인과 사회의 엄청난 불신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목사가 되어버린 한 인간의 나약한 삶을 그저 쓰고 싶습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저는 목사가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교인들조차도 목사 앞에서는 웃으며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도 속으로는 “으이구, 저런 게 목사라니~” 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의 삶에 있어서 교회와 목사는 이렇게까지 욕만 먹어야 할 곳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여섯 살 때부터 자그만 시골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는 저를 품어준 보금자리였고, 그 교회 목사님은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작은 시골교회에서 동네 사람들과 동고동락하셨고, 제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나이 지긋하신 인자한 할아버지셨지요. 그 목사님은 원래 음악교사셨는데, 아버님이 한국전쟁 중에 순교를 당하자 맏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 목사가 되셨고, 평생을 그 작은 시골교회에서 어렵고 힘든 삶을 감당하신 분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신나게 놀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얘기하고 웃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의 유년과 청소년, 청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그 교회에 가면 엄마의 품에서 쌔근쌔근 잠든 갓난아이처럼 포근하고 아늑함을 느낍니다. 제가 어쩌다가 목사가 되었는지 저도 사실은 잘 모르지만 20년 동안 저의 삶의 한 부분이었던 그 작은 교회의 아름다운 경험이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는 지금도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어느 누구도 제가 신학을 하고 목사까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실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땅에 뿌려진 씨가 저절로 자라듯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되었습니다(마가복음 4:26-29). 세상엔 온갖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 많지만 저는 한명의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신비를 믿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 인간은 땅에 있기에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문제 가득한 이 세상도 눈 크게 뜨고 보면, 잠잠히 입 닫고 고요히 있다 보면, 여기저기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하나님의 신비로 가슴 한켠에서 잔잔히 밀려오는 감동에 눈물 적시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생존의 욕구와 더불어 자아실현의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저도 욕망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지요. ‘돈’이 ‘하느님’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돈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내밉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욕망이 있다면 제가 그 어린 시절 작은 교회에서 느꼈던 그 행복하고 뿌듯하고 신났던 그 경험을 누군가의 삶 속에 일어나도록 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가 이런 저의 욕망에 대해 꾸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웃긴 놈아! 그러니까 목사 쓰레기라고 불리는 거야. 알았어!” 그래요.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사람은 원래 사람들하고 함께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사는 맛도 느끼는 것이니까, 교회라는 곳이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그 곳이 그런 곳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풋내기 목사로서 하느님께 뭔가 바치겠다는 성급한 생각을 할까봐 전도서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사실 제 주변에 가까운 분들은 제가 목회를 하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그렇고 제 아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라는 거창고등학교에 써 있다는 직업선택의 십계명의 뜻을 생각하면서 아마도 전 계속 목사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목사가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 개인에게는 단 한번 지내는 일생이겠지요. 목사로서의 제 삶을 반추하고 성찰하기 위해 몇 분들의 생각을 소개하고 첫 번째 글을 마칠까 합니다.

첫 글은 권정생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우리들의 하느님

한 20여년 전, 친구한테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내용은 내가 만약 교회를 세운다면, 뾰족탑에 십자가도 없애고 우리 정서에 맞는 오두막 같은 집을 짓겠다. 물론 집안 넓이는 사람이 쉰명에서 백명쯤 앉을 수 있는 크기는 되어야겠지. 정면에 보이는 강단 같은 거추장스런 것도 없이 그냥 맨마루바닥이면 되고, 여럿이 둘러앉아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는 예배면 된다. 00교회라는 간판도 안 붙이고 꼭 무슨 이름이 필요하다면 '까치네 집'이라든가 '심청이네 집'이라든가 '망이네 집' 같은 걸로 하면 되겠지. 함께 모여 세상살이 얘기도 하고, 성경책 얘기도 하고, 가끔씩은 가까운 절간의 스님을 모셔다가 부처님 말씀도 듣고, 점쟁이 할머니도 모셔와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마을 서당 훈장님 같은 분께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듣고, 단오날이나 풋굿 같은 날엔 돼지도 잡고 막걸리도 담그고 해서 함께 춤추고 놀기도 하고, 그래서 어려운 일, 궂은 일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그런 교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어때요? 좋지요. 저도 이런 교회를 갖고 싶답니다. 프랑스 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베 피에르 신부가 하는 공동체가 있는데 거기에 누군가 찾아 오면 세 가지를 물어본다고 합니다. 

“주무시겠습니까? 드시겠습니까? 씻으시겠습니까?”

이 공동체에서는 이렇게 누구나 환영하고 함께 사는 이들은 자신이 먹을 것보다 조금 더 많이 일을 한다고 합니다. 남을 살리기 위해 더 일하는 교회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에 사셨던 신앙의 아버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이시여!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한국의 그리스도교 제도 내에서 목사를 하면서 정말 신을 사랑할 때 꼭 해야 할 것들을 할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을 사랑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무슨 행동을 할까요? 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어떤 목회를 해야 할까요?”

두 손 모아 잠깐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성공회 주교였던 존 엘브리스 하인스가 설교를 시작할 때마다 했던 기도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느님, 우리가 당신께 아무런 뜻도 없는 일들을 습관처럼 행할 때, 우리를 용서하소서.”

ⓒ 웹진 <제3시대>

* 향린교회 http://www.hyangl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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