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사탕과 똬리 1



이성엽

(한백교회 교인,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에서 공부 중)

 


비린내와 썩은내가 진동했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숨을 크게 들이쉬고 가능한한 오래 참아야 했다.


강제철거후 성남으로 가는 이주권을 받지 못한 우리 가족이 성미산을 떠난건 내가 국민학교 6학년때 였다. 우리는 가좌역에서 기차를 타고 경의선 출발지이자 종착역인 문산으로 갔다. 가좌-수색-화전-강매-능곡-곡산-백마-일산-운정-금촌-파주-문산. 종착역에서 기차는 멈추고 꼬리가 머리가 되어 다시 서울로 되돌아 가지만 철로는 북쪽으로 쭉 이어져 있다. 낮에 기차에서 내릴 때는 역사 출구에 서있는 역무원에게 차표를 내고 나가야 한다. 역사로 나가면 읍내 쪽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 시간이 더 걸렸다. 이른 아침이나 어두운 저녁에는 역무원들도 대충 허용을 해 주었기 때문에 차표를 보여 주지 않고도 기차를 뒤에 둔 채 그저 북쪽으로 철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기차길 양편으로 낮고 구멍이 숭숭난 회색 벽돌담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는 집들이 있었다. 그 지역의 지대는 문산역을 등지고 걸어갈 때 기차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이 높고 오른쪽이 낮았다. 왼쪽엔 큰 집도 있고 문산읍 중심과 연결되는 넓은 길도 있다. 오른쪽은 문산읍의 가장가리 끝으로 낡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집들의 가장 오른 쪽으로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면 하천이 넘쳐 동네로 들이친다. 부엌을 낮게 만든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장마철엔 하천에서 넘친 물로 부엌 바닥이 질척질척 했다. 하천물은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사는 그런 시냇물이 아니었다. 수세식 화장실도 없고 하수 처리시설이 없던 동네의 온갖 물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천바닥은 깊지 않고 폭도 넓지 않았다. 하천 안쪽 물이 흐르는 곳에는 시커먼 이끼가 끼고 억센 풀들이 제멋대로 자랐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시궁창 냄새가 방안까지 제대로 들어 왔다. 철도청이 철도부지와의 경계를 긋기 위해 쌓은 철로 쪽 벽돌담을 제외하고는 동네안에 담이라는게 따로 없었고 한 집의 방이나 부엌의 벽과 다른 집의 벽 사이가 길과 작은 골목을 만들었고 가로등은 없었다. 밤엔 창으로 느릿하게 기어나오는 촉수가 낮은 백열등 빛에 의존해 다녔다.


나는 선유리로 엄마를 따라 다녔다. 엄마는 주로 어스름한 저녁에 양키물건을 사러 갔고 돌아올 무렵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엔 어둠이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난 늘 그 골목의 어둠을 두려워했지만 선유리를 같이 다녀 오는 날은 엄마와 함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E동에 내다 팔 밑천이 생겨서 좋았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선유리도 단속을 받을 때가 있었고 그런 날은 사올 물건이 없어서 헛탕을 쳤다. E동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냄새는 많이 역겨웠지만 그건 참아야 했다. 어떤 때는 낮에도 양키물건 쇼핑을 하러 갔는데 엄마가 K씨 아줌마네서 물건 사러 온 동종업계 아줌마들과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동네 구석구석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를 하나 사귀게 되었다. 우리집은 문산 읍내였고 선유리는 버스로 이 삼십 여분 가야 하는 거리였는데도 자주 가다 보니 그 친구와 꽤 가까워졌고 가끔 집에도 놀러갔다. 중학교 2학년때쯤 이었는데 하루는 그 친구가 가슴골이 다 보일 듯 한 진분홍 티셔츠를 입은 채 어떤 백색피부 남자를 보며 ‘허니’라고 불렀다. 그 백색피부는 별 말없이 벌겋게 웃었다. 그 친구가 입은 아슬아슬한 옷과 ‘허니’라고 부를 때 나는 코맹맹이 소리 그리고 그 백색피부 남자는 모두 그 친구 언니의 것이었다. 난 그 애가 언니 흉내를 내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행동의 어느 부분이 잘못된 건지 정확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흉내내기의 대상, 원본이 된 언니의 본래 모습이 이상한 건지 흉내내기 장난이 나쁜 건지 혼란스러웠고, 그 백색피부 남자 앞에 서 있는 키가 작은 친구의 가슴이 보일락 말락 할 때 내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거북했다. 그 친구도 커서 공주가 되었는지 일찌감치 그 동네를 떠났는지 뒷소식은 듣지 못했다. 문산에 살던 또 다른 나의 친구 C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스무 살이 채 안되었을 때부터 미군부대 내의 스낵바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가끔 맛있는 걸 갖고 와서 나와 나눠 먹었다. C는 거기서 만난 백색피부 남자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 미국으로 떠가기 전에 C는 나에게 그 남자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되지도 않는 발음과 어색한 표정으로 나는 “미국사람을 미워하진 않아요. But 난 미국을 증오hate해요.” 라고 떠듬떠듬 영어로 말했다. C는 나중에 그 백색피부가 매우 당황했으며 C 자신도 기분이 나빴다고 말해 줬다. C가 미국으로 떠나고 난 뒤 한참이 되어서야 나는 그 날의 일을 후회했다. C에게 ‘네가 미국으로 가는게 싫었어’라는 말을 하지 못한 걸 후회했다. ‘널 미군부대로 보낸 너희 엄마가 원망스러웠어’라는 말을 하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네가 미국에 가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라는 말로 C를 안아주지 못한 것은 가장 오래 속을 아리게 했다. C를 기억할 때면 내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에 그 날의 저녁식사를 장면을 불러 온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일자리와 돈벌이,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럽고 흔한 일이었다. C는 미국으로 간 지 2년 만에 이혼을 했다.


K씨 아줌마네 대문은 늘 열려 있었다. 그곳은 일대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양키물건’들의 집하장이었고 초저녁부터는 물건을 사러 오는 아줌마들이 모여드는 도매상이었다. 선유리에는 그런 곳이 몇 집 있었는데 엄마는 주로 K씨 아줌마네로 갔다. 그 집은 컸고 대로 변에 있어서 언덕을 올라다녀야 하는 M씨네 보다 드나들기가 수월했다. K씨 아줌마는 양키물건과 양공주들을 관리하며 담배와 갈색 유리병에 든 중독성 있는 음료를 끼고 살았다. 니스가 반들반들하게 칠해진 크고 묵직한 나무 대문 양쪽으로는 작은 방이 두 개 있었고 거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양키물건을 실어 나르는 양공주들의 아지트이도 했다. 여공을 여공이라 부르고 양공주를 양공주로 부르던 시절 선유리에서 ‘양공주’는 직업이었다. 양키물건의 공급과 몸의 유통으로 벌어 들이는 수입의 크기와 그에 비례하는 상대적으로 높은 소비수준으로 인해 적어도 그 마을안에서는 손가락질보다는 부러움을 더 샀다. 그 몸에서 양키의 검은피가 섞인 ‘튀기’가 튀어나오기 전까지만 말이다. 아기 몸에서 시뻘건 핏물을 채 씻어 내기도 전에 드러나던 그 짙은 색은 마을에 괴물 같은 재앙처럼 드리웠다. 공식적인 결혼, 사실상 결혼, 장기 혹은 일시적 동거, 짧은 연애 등 사연은 다양했지만 양공주의 출산은 이제까지 기대하지 않았던 미래를 꿈꾸게 하거나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도 하는 등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좀 더 복잡한 것 하나. 그 안에서도 상대의 피부색에 따라 출산한 엄마와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서열이 매겨졌다.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K씨 아줌마네 살다시피 하는 토미였는지 지미였는지 하는 서너 살짜리 곱슬머리 남자애가 있었다. 영어이름과 까만 손 그리고 하얗고 슬픈 이빨사이 물려 있던 무지개 막대사탕이 그 아이 몸 위에 뭉툭뭉툭하게 얹혀져 있었다. 그 날도 엄마를 따라 선유리에 갔는데 K씨 아줌마네 문간방에서 한 여자가 괴이한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 여자의 울음이 잠깐 잠깐 잦아드는 사이, 주변에 아무렇게나 둘러앉아 있던 다른 양공주들의 넋두리가 위로인지 질책인지 신세타령인지 모를 의미들을 집어 삼켰고, 울던 여자가 내뿜는 담배연기에 섞여 다시 뱉어지고 있었다. 튀기는 양공주의 몸속에서 튀어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양공주의 손에서 튕겨져 나갈 때에도 재앙인 듯 했다. 몸에서 나올 때는 재앙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가올 재앙의 전주곡이었을 뿐. 나는 그날 토미인지 지미인지가 미국으로 갔다는 것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토미가 미국으로 갔다’고 하는게 아버지와 손을 잡고 ‘인종차별이 없는 자유의 나라’ 미국의 품에 안겼다는 말인지 순혈주의적 민족주의에 흠집이 생길까 두려워했던 애국자들의 손에 의해 순결한 조국 대한민국 땅에서 치워졌다는 말인지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선유리에서 사온 양키물건들은 다음날 새벽 남대문시장에 있는 ‘양키시장’으로 배달된다. 남대문 E동 지하상가는 수입자유화가 되기 전 서울 중상류층들이 외국식품이나 장식품들을 살 수 있었던 곳이었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양키물건의 매매 자체가 불법이었지만 남대문 시장에 버젓이 양키물건 시장이라는 이름의 상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정부의 단속이 그리 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단속자들의 배를 불리는 다른 유형의 단속 방법이 있었거나. 하지만 담배는 달랐다. 언젠가 전매청 직원들은 멀리서 담배연기만 봐도 그게 양담배인지 국산담배인지 알아볼 수 있다고, 귀신같다고 엄마가 알려 줬다. 언니와 나는 엄마의 시다였다. 언니 가방에는 주로 ‘양담배’가 그리고 내 가방에는 m&m 초콜릿이나 오색젤리, MJ커피, TANG오렌지쥬스용가루 등 가볍고 안전한 물건들이 담겼다. 우리에게 전매청 직원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지만 남대문 시장 근처에서 그들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경의선을 타고 와서 서울역에서 남대문시장까지 걸어갔다. E동 지하상가에 있는 가게들이나 그 가게 주인이 지정하는 어딘가로 물건들을 배달한 뒤 학교로 향했다. E동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D동과 E동 사이에 있었다. D동은 생선 도매시장이었는데 계단 내려가는 내내 숨을 참아야 했다. 언니와 나는 아침마다 거기 가는 게 싫었다. 엄마의 물건을 주로 사주던 단골 가게 주인들이 우리에게 알은 체를 하는게 싫었다. 이른 아침 그 시간에 교복을 입고 양키물건 가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애들은 우리 자매 뿐 이었다. 난 D동 지하의 생선 썩은내와 비린내가 역겨워서 견디기 힘들었다. 언니는 옷 수선집에 가서 교복 치마단을 줄이거나 허리 부분을 더 잘룩하게 만들고 싶어할 그런 나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엄마는 우리 식구의 먹을 거리를 사왔다. 오빠가 먹지않는 육류는 전부 빼고. 내가 어렵지 않게 간헐적으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건 이렇게 뛰어난 환경 탓이다. 오빠가 성인이 되어 닭고기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고 내 몸은 역사를 고스란히 추억하며 치맥을 아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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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증후군



이성엽

(한백교회 교인,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에서 공부 중)

 


그는 하루 중 해질녘이 제일 좋다고 했다.


영어회화 공부를 한답시고 데이트를 하면서 영어로 한 두 마디씩 떠들던 시절이 있었다. “이걸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그가 영어로 물었다. “Sunset?” “No, it’s twilight.”. 그리고 다시 물었다. “넌 하루 중 언제가 제일 좋아?” 나는 무심한 듯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암튼 난 twilight을 좋아하진 않아.” 아마도 그 때 나는 twilight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 날의 대화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남자친구 앞에서 그 단어를 모른다는 걸 애써 숨겨야 했던 알량한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 사방의 대기가 품어내는 그 애매한 분위기를 아름답다고 느낄 수 없었던 부끄러움이 너무 컸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웠다. 그랬다. 언제부터인지 난 저녁이 되는게 싫었다. 해가 뉘엊뉘엊 지고 날이 어두워 질 쯤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친구들 이름을 불러대며 저녁먹으러 오라고 재촉할 때, 날 부르는 엄마가 없어서 마지막 친구를 보내고 나서도 한동안 혼자 남아있을 때부터 였는지, 겨울이면 빨갛게 언 손으로 저녁밥을 짓고 있는 어린 언니를 상대로 사춘기 폭력성을 거침없이 발산하던 오빠를 피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는지 알 수 없다. 언니옆에 같이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보다 오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던 나는 그 시절의 저녁 날들을 생각하면 언니에 대한 미안함을 지울 수가 없다. 어른이 되어서 언니가 내게 오빠로부터 구타당한 얘기를 꺼냈을 때에도 난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언니의 목소리에서 배어나오는 공포감이 너무 생생했다. 방관자였던 나의 몸은 기억하지 않는 일들이 언니에게는 끔찍한 흉터로 남아 있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거나 뭘 해야하는지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는 것만으로는 마음의 빚을 덜어낼 수 없다. 언니 나이 예순을 바라본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그 때 일이 아무일도 아닌 것으로 끝나진 않을 것 같다. 오빠로부터 언니의 용서를 비는 말이 나오고 언니의 몸에서 흔적이 하나 지워지길 기다린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나이가 어렸고 그 학교에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자기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의 학생이 하루종일 교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도 아무말도 거들지 못했다. 난 쉬는 시간마다 담임 선생님의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렸다. 왜 거기에 그렇게 있느냐고, 뭘 잘못했길래 그런 벌을 받느냐고 물어봐 주길 바랬다. 담임 선생님은 내 옆을 지날 때마다 옆구리에 끼고 있는 까맣고 긴 출석부를 어색하게 만지막 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친절을 베풀었다. 중학교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서의 일이다. 나와 같은 국민학교를 졸업했고 우리 옆동네에 살던 학생이 가출을 했다. 그 애가 오래 결석을 하자 그 반의 담임선생님이 그 학생과 친한 애가 누구인지 찾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날 지목했다고 한다. 나는 그 애가 우리 동네에서 언덕을 하나 넘으면 있는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집에 가는 길에 몇 번 동행을 한 적은 있지만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 애가 사는 곳이 대충 어디쯤이라는 정도만 알았지 정확한 집의 위치도 몰랐고 가족이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 애의 담임 선생님은 날 교무실로 불렀다. 나에게 그 애가 지금 어디 있는지 대라고 했다. 난 모른다고 했고 그는 날 때렸다. 열 번을 물었고 열 번을 모른다 답하고 열 번을 맞았다. 수업시간 종이 치자 교무실에 무릎을 끓고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쉬는 시간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내 앞을 지나칠 때 마다 너무 창피했다. 내가 큰 잘못을 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일텐데 난 그 잘못을 어떻게 만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애가 어디 있는지 말하고 빨리 그 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애가 어디 있는지 알았다면 말이다. 난 중학교 1학년 학생이 가출을 했다는게 믿겨지지도 않았고 선생님이 뭘 잘못 알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만약 그 애가 진짜 가출을 했다면 어디로 갔을까 궁금하기도 했다가 슬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애의 담임선생님도 걱정이 너무 커서 날 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들이 하나 둘 짐을 싸서 퇴근을 할 때까지 난 하루 종일 교무실에 있었다. 그 애의 담임선생님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 테니 고백을 하라는 말투로 같은 질문을 했다. 난 그 날로 그 악몽을 끝내고 싶었다. 어떻게든 그 선생님의 마음을 돌려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H는 다시 집에 돌아올 거에요” 나는 맞았고 다음날 아침 학교에 오면 교실로 가지 말고 바로 교무실로 오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왔다. 그렇게 지낸 시간이 사흘이었는지 나흘이었는지 고맙게도 이제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일을 지우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운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덮어두는 거다. 살기 위해서. 그 기억을 그대로 갖고는 정상적으로는 살아낼 수 없어서. 내 몸의 전율과 그 선생님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과 증오는 희미해졌지만 그 일은 지워지지 않는다.


난 선생님이 H의 집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안다.


학생 기록부에 있는 우리집 주소는 마포구 성산동 산 11-1번지 였고 언덕 너머 H의 주소는 아마 산 20번지나 아니면 30번지 정도 였을거다. 그 주소라면 담임선생님이 학생을 찾아갈 필요가 없는 곳이다. 그 주소는 거기에 살고 있는 학생을 몇날 몇일 교무실에 꿇어 앉히거나 이유없이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한 실마리였을거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학생기록부에 뭐라고 적혀있든 간에 그 일이 있던 그 해 성산동 산 11-1번지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20번지나 30번지도 마찬가지다. 그 선생님이 H의 집을 찾아 갔었더라면 H가 가출해서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을 거다. H가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아느냐고 먼저 물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생님이 H의 집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H의 장기결석이 가출로 인한 것이라는 그의 추론도 틀렸을 수도 있다. H가 가출했다는 유일한 증거는 학생기록부에 나와있는 주소뿐이다. 성산동 산 20번지. 그 선생님에게 있어서 그 주소에 사는 아이들은 다른 주소에 사는 아이들처럼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결석을 할 수 없다. 그 주소의 아성이들은 가출을 하는 아이들이다. 뉴턴이 사과를 봤고 헤겔이 정신을 봤고 맑스가 구조를 봤다면 그는 주소를 봤다. 물리를 가르쳤던 그 선생님도 과학자로서 뭔가 하나쯤은 몸소 증명해 보이고 싶었나 보다. 주소가 존재를 결정한다고.


성산동 산 11번지


성미산자락에 더덕더덕 붙어있던 무허가 집들이 헐리면서 일부 동네 사람들은 보상을 받아 성남으로 이주를 했다. 내 친구 해진이네가 제일 먼저 동네를 떴다. 당뇨병으로 퉁퉁 부은 정강이를 꾸욱 눌렀다가 손을 떼면 살들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최씨 아저씨는 무슨 마술이라도 하듯이 그걸로 우릴 웃기곤 했다. 아저씨가 삼발이 용달차 짐칸에 앉아서 마지막 마술을 보여줬다. 나는 웃으려다가 갑자기 눈두덩이 뜨거워져서 눈을 비비느라고 차가 떠나는데도 아저씨한테 인사를 못했다. 그 날 이후 동네에는 우리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우리는 남의 집 옆의 자투리땅에 빠듯이 덧대어 만든 방 한 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보상 대상이 아니었고 성남으로도 갈 수가 없었다. 늦 여름 오후 햇볕이 부드럽게 등짝에 업혀 간지럽힐 때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철거요원들이 갑자기 들이 닥쳐서 우리집을 헐고 갔다. 난 해진이네 집터로 갔다. 그 집터에 있는 벽돌이며 남기고 간 잡동사니들을 말끔히 걷어내고 많지도 않은 우리집 세간살이를 부지런히 날라다 놓았다. 내가 제발 우리집을 헐지 말아 달라고 철거요원들에게 간절히 울며 애원했던거며, 해진이네 집터를 치울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등 무용담을 늘어놓을 때 엄마, 오빠, 언니는 허탈함과 좌절감을 보였지만 난 속으로 무척 뿌듯했다. 해진이네 집은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마루가 있고 방이 두 개나 되는 제대로 된 집이었고 나는 늘 거기 사는 해진이를 부러워했는데 이번에 해진이네 집터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엄마와 오빠가 급히 가서 천막을 구해왔고 그날 저녁 우리는 해진이네 마루 자리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며칠이 지나자 철거요원들이 또 나타나서 해진이네 집 구들장을 곡괭이로 다 부수고 갔다. 거기서는 누워 잘 수가 없다. 우린 해진이네 집 다음으로 큰 집으로 이사를 했고 다음날은 철거요원들이 와서 그 집의 방구들을 부순다.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구들장이 남아있는 집들 중 크기가 큰 순서대로 우리 천막을 옮겨 갔다. 그 가을 친구도 없는 동네에서 혼자하는 놀이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 때의 훈련덕에 나는 집에서 큰 가구를 옮길때나 회사에서 무거운 물통을 정수기에 올릴 때 주변의 남자를 부르지 않는다. 동네 모든 집터를 다 돌고 불을 땔만한 구들장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어느 덧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 사이 천막에서 우리 식구랑 동거하던 누렁이는 새끼를 여섯 마리 낳았다. 마지막에 나온 강아지는 태내 발육부진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 몸이 어찌나 작고 가벼웠는지 언니가 그 녀석을 ‘가뿐이’라고 불렀는데, 꼭 우리 식구의 모습 같았다. 내가 살던 산동네에도 길만 건너면 이층집 삼층집이며 ‘식모’ 언니와 검은 승용차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 소망의 크기는 그 길을 건너지 못했다. 너무 먼 세계였다. 내 기도는 ‘해진이네처럼 큰 집에 살게 해주세요’에서 ‘성남으로 가는 보상을 받게 해주세요’로 바뀌거나, ‘우리 집이 철거되지 않게 해주세요’에서 ‘한 집이라도 구들장이 남아있게 해주세요’ 로 바뀌는 정도였다. 철거는 도시 정화사업과 강제이주의 일환이었고 난 친구들과 동네에서의 놀이를 잃었다. 마포구 성산동 산 11-1번지와 20번지, 30번지의 집들과 사람들은 그렇게 없어졌다. H의 담임 선생님은 몰랐지만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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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거는 여자들



유하림*

 


열일곱 살에 나는 암묵적으로 혼후관계를 지향하고 있었다. 암묵적었던 이유는 학교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 술, 담배, 섹스 같은 종류의 것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쿨해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낙태는 살인이다’ 라는 슬로건에 동의하는 바였고, 페미니스트였던 학교 선생님께서 낙태와 관련한 여성인권에 대해 말씀 하실 때에 페미니즘은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기괴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시기에 가끔씩 만나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모르는 남성과 섹스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새로운 애인과 섹스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삼일을 넘기지 않았다. 지금이야 아무런 감정없이 그녀의 행동에 대해 서술할 수 있으나, 당시엔 쿨하다고 여김과 동시에 문란하고 저급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자가 스스로 지켜야 할 몇가지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몸 이기도, 정조 이기도, 순결이기도 했으니 그랬다.

나는 그녀와 그리 친하진 않았고 다만 그녀가 하는 이야기에 쿨하다는 감정만 내비치며 대화에 임했다. 어느 날인가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전화는 잘 하지 않던 사이였기에 내키지 않는 맘으로 전화를 받았다. “하림아 나 생리를 안해”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엔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내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지난번 애인과 섹스를 한 후로 몇 달째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나는 무조건 그녀의 뱃속에 있는 생명인지 세포 덩어리인지간에 그것을 없애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들기 전엔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그녀의 삶을 떠올렸다. 생리를 오래도록 하지 않았던 걸 알아채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내게 전화를 하던 그녀의 마음, 배부른 모습으로 지하철에 탄 그녀를 바라볼 사람들, 그녀가 안게될 아이가 아닌 부담감, 그리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육아에 대해 상상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 많은 생각들을 모조리 말 할 수는 없었고 임신테스트기를 해보자고만 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으로 테스트기의 가격을 알아보았다. 기계라고 하면 왠지 2만원은 훌쩍 넘을 것 같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오천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그녀에게 전달해주고 연락을 기다렸다. 연락을 기다리면서 낙태를 할 수 있는 병원에 대해 알아봤던 것 같다. 평소 즐겨 이용하던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도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한줄이래.” 

“한줄이 뭔데?” 

“임신 아닌거.”


그녀가 한줄이라고 말해주는 순간까지도 나는 마음이 쿵쾅거렸다. 그리곤 질문을 했던 거 같다. 

“앞으로 계속 섹스할거야?” … 

“아마”


그리곤 전화를 끊었고 몇번 쯤 친구들에 섞여 그녀를 만나다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나는 비슷한 전화를 무수히 받았다. 모두가 잠든 어둔 밤에,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이른 새벽에, 햇살이 직선으로 꽂히는 정오에, 여자들은 내게 전화를 했다. 내가 가장 무서웠던 건 생명인지 모를 것을 없애는 일보다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계획되지 않은 아이를 낳는 일이었으며 그것이 책임회피라고 하더라도 나는 지지할 수 밖에 없다.

내게 전화를 걸어온 여자들은 왜 그들의 상대에게 전화하지 못했을까. 하긴 했던걸까. 그러고도 여자들은 다시 그 상대를 만났을까. 헤어졌을까. 못 만났을까. 여자들에게 죄가 있다면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점일까. 그렇다면 여자들은 무엇을 지켰어야만 했을까. 순결을? 피임을? 침묵을? 그렇다면 왜 여자들만 지키지 못한걸까. 여자들이 아닌 존재는 아무것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걸까.

죄가 없다면 모두에게 없어야 한다. 죄가 있다고 해도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 죄의 유무는 본인만이 판단해야 한다. 그 누구도 타인의 신체와 선택에 대하여 단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이 불법이라면 국가는 출산과 육아를 최선으로 도와야만 한다. 상대 남성에게도 똑같이 처벌해야만 한다. 무엇도 보장되지 않은 채로 임신중절이 불법이라면 나는 가장 최전선에서 그것을 반대하겠다.


많은 여자들을 봤다. 그 여자들 속엔 나도 존재한다. 나는 더이상 나와 비슷한 여자들을 보고싶지가 않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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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유하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 할 낱말을 찾는 것은 항상 고민이다. 짧은 시간 내에 나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현재 나의 상태와 고민, 가치관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낱말은 ‘페미니스트’다. 그치만 자주 망설인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스트란 누군가에게는 반가울테지만 누군가에게는 선전포고일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분노를 돋구는 불쏘시개이기도 하다. 그러니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꺼내기에 망설일 수 밖에 없는 소갯말이다.

   페미니스트는 성차별에 반대하며 모든 성이 평등하다고 믿는, 나아가 성해방을 도모하는 사람들이다.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성평등을 지지해” 라는 문장 안에는 단순히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간이 숨어있다. 과연 성평등을 지지한다는 건 뭘까? 그건 ‘성평등’ 이라는게 내 입 안에만 머무는게 아니라 실제로 이뤄질 수 있으려면 어떤 일들을 거쳐야 하냐는 질문이다. 그러니 페미니스트란 성차별에 반대하며 모든 성이 평등하다고 믿는, 나아가 성해방을 도모한다는 문장의 비교적 구체적인 방향성이다.

   이를테면 ‘나는 동물을 사랑해’라는 문장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동물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동물원에 자주가는 걸 떠올릴테지만, 어떤 사람은 동물원에 대한 폭력성을 인지하고 그런 구조를 바꿔나가는 걸 궁리한다. ‘나는 자연을 사랑해’라는 문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에 꽃을 꺾어 간직하지만, 어떤 사람은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담는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우리는 한 문장 안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식들에 대해서 무엇이 정말로 그 문장에 가까운 일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세세하고 구체적인 방식은 더 많은 고민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당연하게 옳은 일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여태껏 합의된 방식이란 건 있기 마련이다. 페미니즘이라고 다를쏘냐.

   ‘성평등을 지지한다’는 문장은 이런거다. 적어도 임신중절에 찬성하며,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에 반대한다는 것. 여성에게 밤길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길 바라는 것.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당신이 당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아니하길 바라는 것. 그 때문에 페미니스트 선언은 성평등에 찬성하는 동시에 그것을 삶의 실천 방식으로 가져가겠다고 말하는 적극적 행위가 된다.  

   여태껏 합의된 방식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페미니스트로서 중요한 덕목이랄게 있다면 ‘나는 언제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에 대한 인지 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다.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가해자가 될 수있다. 이해하기 쉽게 일화로 예를 들겠다.

   필자는 여성이고, 22살이고, 휴학생이고, 페미니스트다. 길을 가다가 성희롱을 당하고, 앳된 얼굴 덕에 택시기사는 늘 반말이다. 그러나 서울에 살고 있으며, 비장애인이다. 서울 어디서 약속이 잡히든 삼십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는 한없이 약자의 정체성을 지니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누구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가 항상 같은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는 없는거다.

   알바할 때의 일화이다. 휠체어를 탄 중년 남성분이 카페에 왔다. 카운터에는 나와 신입 알바생이 있었는데, 신입 알바생의 용모는 긴 생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지니고 있던 39세 알통남이었다. 손님은 “사장님 이 과자 얼마에요?” 물었고, 나는 3000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손님은 “나는 사장님한테 물었는데~ 정확한 가격 맞아요?” 하고 되물었다. 그 순간 엄청나게 화가 났다. 정확한 가격이 맞다며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손님을 쏘아봤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나는 장애를 가진 중년 남성 손님에게 화를냈다. 화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비장애인으로서의 권력관계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 사람이 비장애인 중년 남성 손님이었다고 해도 화를 낼 수 있었을까? … …

   이 일화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위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위치일 수 없다.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의도였건, 내가 어디서 어떻게 약자의 위치성을 가지고 있던지간에 나는 충분히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위치성 또한 가지고 있다. 위치에 대한 유동성을 인지하는 것은 나의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나도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자는 얘기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함축적이지만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낱말이 아직까지는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생각한다’라고 밖에 쓸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은 다 각자의 페미니즘을 한다. 다양한 방식의 고민과 실천으로 페미니즘의 다양성을 넓혀간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보류다.

   얼마 전에 새롭게 만나게 된 분에게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니 어디까지를 성해방이라고 봐야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체 무엇이 성해방이냐는 질문이다. 무엇이 성해방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남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 성해방일 수도 있고,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이 사라지고 모두가 탈젠더화 된다면 그것이 성해방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부터가 성해방(혹은 성평등)의 시작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출발선은 존재한다는 점이다.

   내가 페미니스트 감별사가 되어서 페미 완장을 채워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래야 한다는 또 다른 페미 코르셋이 존재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해방을 위해 시작한 일들이 누군가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에게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 뿐이다. 꾸준히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 나의 빈약한 상상력에 아무도 다치지 않으려면 나를 확장시키는 수 밖에는 없다. 새해에도 나는 여전히 페미니스트이며, 나에게 페미니스트라는 소갯말은 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 가해자성을 인지하는 사람, 꾸준히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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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속 “말하는 서발턴”의 “복화술”[각주:1]



조은채*

 

※ 영화 <히든 피겨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2016)는 NASA(미항공우주국)의 랭글리 센터에서 ‘인간 컴퓨터(computer 혹은 계산원)’, 즉 백인 남성 과학자를 보조해서 계산하는 역할로 고용되었던 세 명의 흑인 여성의 이야기이다. 아직 인종 분리 정책을 실시하고 있던 버지니아 햄프턴에서 캐서린, 메리, 그리고 도로시는 ‘흑인’이자 ‘여성’이기 때문에 온갖 차별과 수모를 당하지만, 굴하지 않고 무려 NASA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다. 동쪽 전산실의 백인 여성은 ‘동쪽 컴퓨터(East Computers)’로, 서쪽 전산실의 흑인 여성은 ‘서쪽 컴퓨터(West Computers)’로 불리던 1961년, 계산 같은 단순 업무만 맡을 수 있었던 이 세 명의 ‘서쪽 컴퓨터(West Computers)’는 결국 관리자와 엔지니어, 그리고 수학자로서 러시와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자신의 새로운 몫을 톡톡히 해낸다. NASA가, 혹은 폭넓게 보자면 사회가 그들에게 부과한 한계와 고정된 역할을 능력과 열정으로 뛰어넘은 것이다. 영화 포스터에 적혀있는 그대로 “천재성에는 인종이 없고, 강인함에는 남녀가 없으며, 용기에는 한계가 없다.”


  영화 <히든 피겨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논픽션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엄연한 실화는 영화화의 ‘각색’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감동적이고 유쾌한, 즉 ‘영화적’인 구성을 갖추게 된다. <히든 피겨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모든 영화의 목표인, 현실과 가상을 적절히 섞은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기분 좋은 영화는 이 영화가 유쾌한 바로 그 만큼 어떤 위화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나 <히든 피겨스>의 가장 통쾌하면서도 감동적이어야 했을 한두 장면에서 그 위화감은 극에 달한다. 이 영화를 각색한 사람은 백인 여성이고 감독은 백인 남성이라는 점, 그리고 영화에 등장하는 몇몇 백인 캐릭터가 가상의 인물이었다는 점은 영화에 대한 모종의 의심을 더욱 부추긴다. 흑인 여성의 이야기는 흑인 여성에 의해서만 제대로 포착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스피박이 오래전 자신의 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서 했던 주장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히든 피겨스>가 사실 중심부의 입장에서 타자로서 캐서린과 도로시, 그리고 메리라는 식민 주체를 구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뒤를 잇는다. 사실 이 세 명의 서쪽 컴퓨터는 ‘서발턴(subaltern)’이고 <히든 피겨스>는 말할 수 없는 서발턴이라는 반복된 실패를 답습하지만 이를 매끄러운 완성도로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도 출신의 문학평론가이자 비교문학 교수, 그리고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인 가야트리 차크라보티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은 1988년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라는 글을 발표한다. 스피박은 ‘계급으로 환원되지 않는 위계에 종속적인 하층’을 의미하는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서발턴에 관한 정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녀는 서발턴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지 않고 재현체계의 바깥에 위치하는, 계층, 인종, 젠더를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자유로운 의미로 사용한다. 스피박은 1988년에 발표한 자신의 글을 1999년에 다소 수정해서 다시 발표하지만, 서발턴, 특히 여성으로서의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는 논지의 중추는 변하지 않았다. 글의 서두에서 스피박은 비서구지역의 서발턴이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푸코와 들뢰즈 같은 유럽 지식인이 말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는 서발턴이 실제로 말을 할 수 없다는 즉자적인 의미라기보다는, 과거 서구의 제국주의 혹은 현대의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그 재현체계로 편입되지 않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피박에 따르면, 푸코와 들뢰즈가 말하는 “기만당하지 않는” 피억압자는 사실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이 주장했던 “말하는 서발턴”은 “투명한” 지식인 주체에 의해 “복화술”이라는 방식으로 재현[대표]되고 있을 뿐이다. 스피박의 주장은 영화로 각색된 <히든 피겨스>에도 적용된다. <히든 피겨스>는 결국 중심부의 재현체계로 편입될 수 있는 목소리를 담고 있으며, 이 목소리는 결국 서발턴을 재현하면서 자신을 투명한 주체로 재현하고자 하는 백인 남성 감독의 것이 아닌가?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도 할 수 있을, ‘유색인종 화장실’이 그냥 ‘화장실’이 되는 순간이 철저하게 백인 남성 캐릭터의 손에 달려 있었다는 점은 이 의심을 부추긴다. 스피박은 힌두의 과부 희생 관습인 ‘사티(sati)’의 폐지가 영국의 식민지 제국주의적 해석에 의해 “황인종 남자에게서 황인종 여자를 구해 준 백인종 남자”의 사례가 되었으며, 이 담론 속에서 서발턴 여성은 재현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어쩌면 <히든 피겨스>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실화가 영화로 각색되면서 추가된 몇 가지 에피소드는 “흑인종 여자에게 관용을 베푼 백인종 남자”라는 레퍼토리를 반복한다. 엄격한 인종 분리 정책이 시행되던 버지니아주에서 백인 남성만을 주인공으로 하는 직장인 NASA의 ‘서발턴’이었던 캐서린과 메리, 그리고 도로시는 2016년에 이르러서도 대변될 뿐 제대로 재현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사티의 폐지가 영국의 미담이 되었던 것처럼, <히든 피겨스> 속의 유색인종 화장실 폐지는 백인 남성 상사의 선행이 되어버린다. 사티 폐지에 관한 중심부 주체의 메커니즘이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히든 피겨스>에도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 임무 그룹(Space Task Group)의 본부장이자, 캐서린을 처음으로 인정해준 상사인 알 해리슨은 놀랍게도 가상의 인물이다. 영화에서 세 명의 주인공 다음으로 거의 가장 많이 등장하는 데다가, 꽤나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주지만 실존했던 모델조차 없다고 한다. 알 해리슨은 가상의 인물인 동시에 ‘백인’에다 ‘남성’이지만, 세 명의 흑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히든 피겨스>에서 과다한 역할을 부여받으며, “흑인종 여자에게 관용을 베푼 백인종 남자” 혹은 “흑인종 여자를 구해준 백인종 남자”의 견본이 된다. 해리슨은 캐서린이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게 하는 유일한 열쇠이자, 때로는 그 장애물을 직접 허물어주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색인종 화장실’이 철폐되는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에서는 돌연 주인공이 되어버리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황인종 남자에게서 황인종 여자를 구해준 백인종 남자”의 <히든 피겨스> 판이다.


  NASA에서 일하는 여성은 ‘무릎을 덮는 치마, 블라우스보다는 스웨터, 진주 목걸이를 제외한 장식구 착용 금지’라는 복장 규정을 따라야 한다. NASA의 모든 남자 직원이 마치 교복 같은 차림으로 편안하게 업무를 볼 때, 여자 직원은 흑인이든 백인이든 관계없이 반드시 나름대로 ‘모양을 내야만’ 했던 것이다. 복장 규정에 따라 구두를 신은 캐서린이 휘청이며 화장실에 뛰어가거나, 구두가 바닥에 끼어 고생하는 메리, 늘 완벽하게 세팅된 모습으로 우주 임무 그룹을 지키는 백인 여성 콜먼 부인은 NASA가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꾸밈 노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여성인 동시에 흑인인 캐서린이 처한 이중적인 억압의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시는 바로 ‘유색인종 여자 화장실’이다. 캐서린이 ‘서쪽 컴퓨터’였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화장실은, 그녀가 자신에게 허용되었던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몹시 어려운 문제로 돌변하게 된다. 우주 임무 그룹이 속한 건물에는 그녀가 갈 수 있는 화장실, 즉 유색인종 화장실이 없다. 이는 우주 임무 그룹에 ‘인간 컴퓨터(계산원)’이라는 임시직으로 잠깐 동안만 출입이 허용된 캐서린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캐서린은 매일 800m나 떨어진 유색인종 여자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고, 하루에 족히 40분은 화장실에 가는 데 써야만 한다. 캐서린이 무심코 사용한 이후로 갑자기 ‘유색인종용’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새 커피포트가 생겨난 것처럼, 캐서린은 같은 부서에 속해 있으면서도, 다른 백인 남성 혹은 여성과 같은 동일한 공간을 할당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실존 인물 ‘캐서린 존슨’은 딱히 NASA에서 흑인이기 때문에 차별을 당했던 적은 없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영화 속의 캐서린처럼 화장실 문제를 겪었던 적도 없고, 유색인종 화장실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했다. 실제로 그녀는 백인으로 종종 오해받곤 하던 외모였기 때문에 백인종 화장실을 사용해도 별 탈이 없었던 것이다. 도리어 유색인종 화장실 때문에 문제를 겪었던 쪽은 메리 잭슨이었다. 하지만 메리 잭슨에게는 자신을 위해 대신 싸워주는 영화 속의 해리슨 같은 “흑인 여성을 구해주는 백인 남성”은 없었고, 그저 부서를 옮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영화 <히든 피겨스>는 백인 남성인 해리슨이 커피포트에 붙은 ‘유색인종’이라는 꼬리표를 떼거나 화장실에 붙어 있는 ‘유색인종 화장실’이라는 팻말을 망치로 때려 부수게 만든다. 유색인종 화장실과 백인 화장실의 구분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구분을 애초에 만들었던 백인, 그것도 백인 남성의 손으로 철폐되는 것이다. 해리슨은 백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많은 흑인 여성이 보는 앞에서 “나사에서 모든 사람의 오줌 색깔은 같다(Here at NASA we all pee the same color)”라는 명대사를 읊기까지 한다. 그는 유색인종 여자 화장실이라는 팻말을 부수며 그동안의 암묵적 동조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흑인 여성의 구원자가 되어버린다. 여성인 동시에 흑인이었기 때문에 캐서린에게 부당하게 부과되었던 800m라는 장애물은 해리슨이 선사하는 클라이맥스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동시에 화장실 인종 구분의 폐지는 당연히 철폐되어야 했을 악습이 아니라, 캐서린의 능력을 높이 산 해리슨에 의해 하사된 포상이 되어버린다.


  <히든 피겨스>의 마지막 부분에서 캐서린과 도로시, 그리고 메리는 불가능하다고만 여겨졌던 각자의 꿈을 NASA 안에서 현실로 만드는 것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 매끈하고 완벽한 성공담에 어떤 위화감을 느꼈던 것은 ‘알 해리슨’이라는 캐릭터에 중심부 주체의 “투명한 주체로 자신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공인 캐서린은 1초에 24,000개의 숫자를 처리하는 ‘괴물’ IBM보다 소수점에서 더 정확한 계산을 하는, 즉 중심부의 재현체계가 가진 기준을 완벽하게 능가하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스피박은 부바네스와리 바두리라는 열일곱살 가량의 소녀의 죽음이 오해되는 방식 때문에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바두리가 부유한 계층에 속했던 것과는 관 없이 스피박에게 서발턴이었던 것처럼, 캐서린에게도 주류의 담론으로는 포착될 수 없었던 ‘말’이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히든 피겨스>에서 캐서린의 ‘서발터니티’는 해리슨으로 대변되는 중심부의 재현체계 속에서 말끔하게 소거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억압의 구조를 파헤치기보다는 차라리 복무해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을 택하기 때문이다. <히든 피겨스>는 여전히 장점이 더 많은 소위 ‘잘 만든’ 영화이지만, 백인 남성에 의한 한 편의 거대하고 성공적인 복화술이라는 의심이 쉽게 해소되지는 않는다.


* 필자소개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조형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현상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동일 전공으로 석사에 진학하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관심 분야는 페미니즘,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이다.




ⓒ 웹진 <제3시대>

  1.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외), 태혜숙(역),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그린비, 2013, pp.42-139.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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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된 불쾌함: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킹스맨: 골든 서클>



조은채*

 

※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킹스맨: 골든 서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이하 <시크릿 에이전트>)의 속편인 <킹스맨: 골든 서클>(이하 <골든 서클>)은 개봉을 앞두고 불거졌던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예상되었던 대로 흥행하고 있다. 전작인 <시크릿 에이전트>가 그랬듯이, <골든 서클> 역시 여러 모로 준수한 오락영화이다. 무엇보다도 141분의 상영시간이 큰 지루함 없이 흘러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시크릿 에이전트>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인 ‘신선함’은 <골든 서클>에서는 더는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그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는 베테랑 요원인 해리 하트(콜린 퍼스)의 신조 아래, 동네 ‘양아치’였던 주인공 에그시(태런 에저튼)는 세계를 구한 국제 비밀정보기구 요원이자 최고의 ‘젠틀맨’으로 거듭난다. 교육과 훈련을 바탕으로 습득한 에그시의 ‘매너’는 열두시가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요정의 마법 따위가 아니기 때문에, 에그시는 유리구두보다 단단하고 안정적인 옥스포드화를 신고 새로운 세계에 성공적으로 입성한다. 관객의 예상을 조금씩 비틀어 전개되는 스토리, 기발하면서도 현란한 액션, 매력적이지만 구구절절하지 않은 다양한 캐릭터는 영화의 신선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하지만 <시크릿 에이전트>의 마지막 몇 분은 산뜻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에그시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돌연 불쾌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썩 나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던 <시크릿 에이전트>의 여성관에 대한 평가는 갑자기 곤두박질 친다. 틸디 공주는 에그시에게 “세상을 구하면 뒤(asshole)로” 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이후 정말로 세상을 구한 에그시는 약속을 이행 받기 위해 달려간다. 영화는 에그시가 틸디라는 전리품을 차지하는 과정의 바로 그 직전까지를 보여준다. 카메라가 누워있는 틸디 공주의 몸을 ‘전형적인’ 구도로 훑고, 종래에는 그녀의 벗은 엉덩이만이 스크린을 꽉 채우던 순간의 당혹과 불쾌함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처럼 <시크릿 에이전트>의 불쾌함은 마지막 몇 분에 응축되어 있었다. 영화관을 나선 뒤에야 불편했어야만 했을 장면과 설정이 머릿속에서 플래시백처럼 재생되었다. 하지만 영화가 지닌 신선함이라는 마법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중에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조금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다.


  <골든 서클>은 <시크릿 에이전트>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한다. 이미 한번 시작한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지만, 여전히 새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시크릿 에이전트>에는 뒷골목 양아치에서 영국 최고의 젠틀맨이 되는 에그시의 신데렐라 서사가 있었다. 그 시작과 끝이 대단히 분명한 이 고전적인 이야기는 분명 전형적이지만 그래서 더 효과적이고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에그시가 젠틀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 서사를 재활용할 수 없게 된 <골든 서클>은 전작이 구축해둔 세계관을 철저하게 부수는 것부터 시작한다. 메인 빌런 포피(줄리언 무어)를 통해 킹스맨 본부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인원을 몰살시키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전작의 신데렐라 서사만큼이나 효과적인 메인 스토리를 찾지 못한 탓인지, <골든 서클>은 <시크릿 에이전트>보다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방향을 헤맨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그나마 마지막 장면에 응축되어 있었던 눈살 찌푸려지는 여성관은 <골든 서클>에서는 그 범위가 영화 전체로 확장되고, 때로는 지나치게 반복된다. 여성 캐릭터의 등장도 활약도 대폭 줄어든 <골든 서클>에서 가장 중책을 맡고 화면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것은 악당 포피이다. 거대 마약상인 포피는 마약을 합법화라는 조건으로 세계 정부와 거래를 한다. 포피가 쥐고 있는 것은 한 번이라도 마약을 했던 모든 사람의 목숨이다. 전 세계의 마약에는 이미 포피가 고의로 넣은 바이러스가 포함되어 있고, 해독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포피 뿐이기 때문이다. 포피는 환상 속의 놀이공원 같은 ‘포피랜드’에서 신입 부하에게 상냥한 표정과 다정한 말씨로 동료를 갈아 인육으로 만들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포피는 참 독특하고도 대단한 악당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에 다다를수록, 진정한 흑막은 포피를 역이용하고자 했던 미국의 ‘남성’ 대통령이나 알고 보니 스파이였던 스테이츠맨의 ‘남성’ 요원 ‘위스키’에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포피는 100여분이 넘게 열심히 최고의 악당을 연기하지만, 결국 임팩트 없는 죽음과 함께 퇴장 당한다. 포피는 <골든 서클>의 메인 빌런이라고 소개되지만, <골든 서클>의 클라이맥스는 포피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스토리 상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은 상당 부분 남성 캐릭터들에게만 할당되어 있기 때문이다. 포피에게는 메인 빌런이라는 타이틀과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적절히 활용되지 못하는 설정이라는 껍데기만이 주어진다. 아름다운 ‘포피랜드’가 포피 외에는 아무런 정서적 상호작용 없이, 포피와 로봇만으로 굴러가는 껍데기 같은 허상인 것처럼 말이다.


  포피랜드가 포피에 대한 거대한 메타포라고 해석하고 끝낼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예고되었던 것보다 심심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포피만의 캐릭터성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골든 서클>에 나오는 모든 여성 캐릭터가 ‘포피랜드’ 같았다는 사실이다. 겉보기에는 매력적인 설정을 부여받았지만 실속 있는 역할이나 장면은 주어지지 않았고, 그저 껍데기뿐이었다. 더 나아가, 포피랜드에 구현되어 있던 ‘여성성’이 구시대적이고 보수적이었던 것처럼, <골든 서클>이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피를 제외한 <골든 서클>의 주요 여성 캐릭터는 오로지 두 가지 유형으로만 등장한다. 여성이라는 점이 강조되는 캐릭터(틸디 공주, 클라라)는 남성 캐릭터의 ‘여자’친구라는 점만이 두드러졌고,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성적 대상화의 대상으로만 소비된다. 반면, 여성성이 강조되지 않는 캐릭터(진저, 록시)는 아무런 활약도 존재감도 없이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렸다. 예를 들어, 비록 마지막에 성적 대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교본이 될 만한 장면을 남기기는 했지만, 악당 발렌타인에게 당당하게 맞서다가 감옥에 갇혔던 <시크릿 에이전트>의 틸디 공주는, <골든 서클>에서는 에그시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댔다가 구출 당하는 여자친구로만 남을 뿐이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에그시보다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그리고 아마 최초의 여성 킹스맨 요원일 록시는 영화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죽으면서 영화의 서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찰리의 애인이었던 ‘클라라’이다. 찰리는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유력한 킹스맨 후보였지만 탈락한다. 평민 에그시에 밀려 떨어진 것이 참을 수 없었던 ‘귀족’ 찰리는, 포피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그의 부하가 된다. 클라라는 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심지어 포피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놀랄 만큼 메인 스토리에서 비켜나 있다. 클라라에게는 그저 찰리’의’ 전 ’여자’친구라는 정체성만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라라는 문제의 ‘추적기 장면’에서 완전히 도구화된다. 찰리를 통해 포피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서, 에그시는 찰리와 연락을 주고받는 클라라에게 추적기를 달아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쳐있다. 하지만 이 추적기는 대단히 특이하게도 콧구멍이나 질과 같은 점막이 있는 곳에 삽입되어야만 작동할 수 있다. 에그시는 클라라의 콧구멍에 추적기를 넣을 길이 요원해 보였는지 그녀의 성기에 이 추적기를 넣기로 한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발렌타인이 와인 안에 추적 물질을 넣어 상대에게 건넸던 것과 비교하면 일종의 기술 퇴행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척이나 미심쩍은 이 추적기가 겨냥하고 있는 대상의 성별 역시 무척 제한적이다. 남성에게는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걸까? 그때는 무리해서라도 콧구멍이나 항문? 아니, 애초에 남성이 대상이었다면 이런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추적기가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추적기의 존재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기 위한 아주 질이 나쁜 농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클라라는 이 불쾌한 장면을 구현해내기 위해 만들어낸 캐릭터처럼 보인다. 불필요할 정도로 포르노와 유사한 방식으로 클라라의 몸을 훑는 카메라보다도 더 끔찍했던 것은, 추적기가 들어간 클라라의 질 안의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스크린이 틸디 공주의 엉덩이만으로 채워졌던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한 발 더 나가, <골든 서클>은 여성의 질 내벽으로 스크린을 꽉 채운다. 클라라의 몸뿐만 아니라 클라라라는 인물 자체는 완벽하게 ‘객체’가 된다. 그리고 이 불쾌한 장면을 위해 꽤 긴 시간이 할애되어 있다.


  <시크릿 에이전트>의 개봉 이후, 많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는 이 영화의 마지막 몇 분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감독인 매튜 본은 이들을 블러디 페미니스트로 일축하고 전혀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그래도 그나마 마지막 몇 분으로 응축되어 있었던 불쾌함이 <골든 서클>에서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오히려 강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이로써 <골든 서클>은 나쁘지 않다고 말할 때조차 가책을 느끼게 되는 꺼림칙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 필자소개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조형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현상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동일 전공으로 석사에 진학하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관심 분야는 페미니즘,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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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포비아, 그 오역과 치욕의 역사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 / 본지 편집인)

 


동성애 광풍이 한국교회를 뒤덮다


    올 여름 한국개신교계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지난 6월 15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 이단대책위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에게 ‘이단사상 조사연구에 대한 자료요청의 건’이라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그리고 7월 20일 한국교회 8개 교단 이단대책위원장 연석회의는 ‘퀴어신학'을 내세우며 동성애를 감싸는 임보라 목사가 이단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해 8월8일 기장 ‘교회와 사회위원회’에서 반박성명을 발표하면서 퀴어신학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중세시대나 있을 법한 보수개신교단들의 임보라 목사에 대한 여론 몰이식 ‘마녀사냥’이 21세기 한국땅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지난 주간에 열렸던 대부분의 교단 총회에서 동성애 이슈는 예상한 대로 가장 센세이션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국 최대교단인 장로교를 양분하는 예장통합과 예장합동의 목소리는 동일했다. 분열되었던 장로교가 동성애 문제로 다시 하나로 뭉칠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예장통합의 결정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은 교역자는 물론 교회 중직(장로, 집사)자가 될 수 없을뿐 아니라, 신학생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진보적인 교단인 기장은 총회 마지막날(9월 22일) ‘성소수자인 목회를 위한 연구위원회 구성과 활동 헌의’의 건이 올라왔다. 이 안건은 찬성 159와 반대 90표로 기각이 결의되었으나, 총대 총수가 682명이며 과반수는 341명이다. 그러므로 찬성표 159는 341명의 과반수를 충족하지 못하고 미달인 것이다. 성소수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거나 세례를 주거나 교인으로 정식으로 인정하자는 헌의안도 아니었다. 교단차원에서 성소수자인 목회를 위해 공부를 해보자는 모임도 만들 수 없는 분위기인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이라 자부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자들 조차 동성애 문제를 피해가려는 경향이 역력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남한 땅에서 개신교의 권위와 종교성이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지는 오래된 사실이다. 특별히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고, 다름을 배제와 제거의 메커니즘으로 삼는 능력에 있어서 한국의 극우적 개신교도가 보이는 강도와 민첩성은 강하고도 빠르다. 빨갱이 혐오, 외국인 혐오, 여성 혐오, 이슬람 혐오, 그리고 동성애 혐오까지. 한국 사회를 휩쓰는 온갖 종류의 혐오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한국의 대형 극우 보수개신교회들이 있다. 사랑의 종교였던 그리스도교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한반도에서는 혐오와 적대의 종교가 되었나?


아니, 그들은 원래 그랬다


   해방 후 한국개신교는 빨갱이 혐오의 메카였다. 서북청년단을 중심으로 한 월남한 개신교도들이 자신들과 정치적 입장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에 앞장섰던 기억을 우리는 간직하고 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개신교는 나름의 체제정비와 내부 결속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외부의 적을 상정하면서 자신들의 균열과 부조리를 감추고, 희생양을 선정해 제거함으로 내부의 문제를 일단락짓는 극우적인 한국 개신교의 문법은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 남북한 사이 이데올로기 대결과 군사정부의 개발독재와 맞물리면서 개인구원과 축복일변도의 신앙으로 고착화되었다.

    지난 20세기에 자행되었던 빨갱이 혐오와 종북 몰이가 한국개신교의 정체성의 정치를 위한 토대였다면, 동성애 혐오는 가히 21세기 한국형 종교재판, 혹은 마녀사냥이라 부를만하다. 중세교회가 위기에 빠질 때 정점에 달했던 마녀사냥의 열풍이 한국교회의 위기가 선언되는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나타났던 고전적 방식의 체제유지법, 혹은 위기타개법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의 한국개신교는 자신들의 부도덕과 부패로 자초된 교회의 위기를 타파하고자 동성애 혐오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그 동력으로 이탈하고 있는 신도들을 다시 결집시키고자 한다. 마치 십자군 원정의 패배와 페스트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가 전 유럽을 휩쓸 무렵, 흔들리는 교회의 권위와 위상을 회복시키고자 마녀사냥을 통해 체제의 위기를 수습하려 했던 중세교회의 발악처럼 말이다.‘마녀사냥’식 동성애혐오는 쇠락하는 한국 보수 개신교의 위기감와 초조감이 드러난 성급하고 서투른 결정이라 볼 수 있다.


성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성서는 정말 그들의 주장처럼 동성애를 혐오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아니다. 만약 성서의 일부 구절들이 동성애 혐오를 위한 각주로 쓰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성서를 모독하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이고, 성서의 하나님이 동성애를 벌하는 신이라고 설교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들의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성서는 동성애를 혐오하기 위해 쓰여진 책도 아니고, 일부 보수적 개신교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동성애자를 벌하시는 하나님도 아니다.

    크리스챤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예수가 걸어갔던 삶을 기억하면서 예수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크리스챤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은 항상 본인에게 다가오는 실존에서의 선택과 갈등, 그리고 행위의 순간마다‘예수라면 어떻게 하였을까?’를 물어야한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일부 한국의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에게 나는 이 질문을 되돌려 들려주고 싶다: “예수라면 과연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동성애를 저주하는데 동원되는 성서의 구절은 대략 손으로 꼽는다. 창세기 19장(소돔과 고모라), 레위기 18:22, 레위기 20:13, 로마서 1:27, 고린도전서 6:9~10, 디모데전서 1:10, 히브리서 13:4 등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성애 혐오를 주장하는 데 끌고 들어오는 성서구절 중 예수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한 구절도 없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하는 사실은 성서에는 게이에 대한 언급은 등장하나 레즈비언, 양성애자, 무성애자, 트랜스젠더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는 성서가 쓰여지고 편집되던 시대가 가부장제적인 시절이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서무오설, 즉 문자적으로 쓰여진 성서의 기록만을 맹신하는 사람이 범하는 논리적 오류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성서에는 레즈비언, 양성애자, 무성애자, 트랜스젠더는 적혀 있지 않으니 그것은 괜찮은 것 아닌가, 라고 묻는다면 문자적으로 성서를 믿는 그들은 뭐라 답을 할까.

    텍스트를 근거로 어떤 대상을 논하고 반박할 때 텍스트에 적혀있는 문자와 내용에 대한 공부는 필수적이다. 그 다음 텍스트가 구성되고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와 해석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텍스트 안에 있는 다양한 결을 살피고 성찰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텍스트를 대면하는 자세이고 원칙이다. 텍스트는 학과의 교재일 수 있고,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나 시집일 수 있고, 내가 만나고 있는 애인일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일 수 있다. 성서는 인류의 소중한 텍스트이다. 텍스트인 성서에 적혀있다는 동성애 관련 구절 몇 개를 끌어와 일방적으로 교회의 동성애 혐오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보수적 그리스도교인들의 행태는 텍스트 읽기와 해석의 원칙조차 모르는 천박하고 후진 한국교회이 민낯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고, 성서에 기록된 동성애 관련 구절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동성애를 둘러싼 성서의 정황들


   앞서도 언급했듯이 동성애를 반대할 때 인용되는 성서의 구절은 여섯 곳이다(창19:1-11; 레18:22, 20:13; 롬1;18-32; 고전6:9, 딤전1:8-11). 구약에 세 곳, 신약에 세 곳이 나온다. 1) 창세기 19장은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이야기이고, 2) 레위기 18장은 성관계에 대한 규례가 적혀있는 장인데, 그중에서 18:22절에 “너는 여자와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안 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라고 적혀있다. 3) 레위기 20장은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들의 항목이 나열되는데 그 중 20:13에 “남자가 같은 남자와 동침하면 ... 사형에 처한다”라고 쓰여있다.

    남성 동성애와 비슷한 급들의 죄의 항목들이 레위기에는 적혀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우상을 섬기는 것(지금으로 따지면 자본을 섬기는 것), 근친상간을 하는 것, 불륜을 저지르는 것,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것, 혼백을 불러내는 사람이나 마법을 쓰는 사람(레20:27)도 이 항목에 들어간다. 즉 남성끼리 동침하는 것에 특별한 강조가 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구약성서에서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에 마음을 쏟는 것(우상을 섬기는 것), 정의가 실현되고 있지 않는 현실을 외면하는 자들에 대한 저주와 형벌이 더 자주 빈번하게 강조되면서 등장한다.

    이러한 경향은 신약성서도 마찬가지다. 예수는 동성애에 대한 발언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신약성서에서 동성애를 둘러싼 발언은 바울서신에 딱 세 번 나온다. 신약성서의 동성애 발언 역시 구약성서와 같은 맥락이다. 동성애가 그 수많은 죄악들 중에 one of them이라는 것이다. 4) 롬1;18-32 사람이 짓는 갖가지 죄들 중에 하나로 동성애가 나온다. 그 죄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한 사람,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한 사람,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 불손한 사람, 오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꾸미는 묘략꾼,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신의가 없는자, 무정한 자, 부자비한 자 ... 그리고 욕정에 불타는 자인데, 그 욕정에 불타는 자에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하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5) 고전6:9 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는 구절이다. 음행을 하는 사람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 간음을 하는 사람들, 도둑질을 하는 사람, 탐욕을 부리는 사람, 술 취하는 사람, 남을 중상하는 사람,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과 더불어 동성애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는 사람들로 등장한다. 6) 딤전1:8-11 율법을 어기는 사람을 분류하는 장면인데,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 경건하지 않는 자, 죄인과 거룩하지 않을 자, 속된 자와, 아비를 살해하는 자와 어미를 살해하는 자와 살인자와, 간음하는 자와, 유괴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같은 라인에 남색하는 자를 두고 있다.

   당신이 성서에 근거해서 동성애자를 비난한다면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 돈과 명예와 권력을 탐하는 인간들을 마찬가지로 비난해야 한다. 당신이 성서에 근거해서 동성애자를 비난한다면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탐욕을 부리고, 술 취하고, 남을 중상하고, 거짓말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맹렬하게 비난해야 한다. 당신이 성서에 근거해서 동성애자를 비난한다면 오만하고, 비겁하고, 신의 없고, 시기와 분쟁과 미움으로 가득 찬 인간들 모두를 똑같이 비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우리는 동성애만을 부각시켜 모든 악행의 끝판왕 인양 거품을 물고 짖어대는 것일까? 한국의 모든 수구적 근본주의 세력들이 자기들의 허물과 죄악을 다 털어 동성애 포비아에 덮어씌워 번제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호모포비아의 자리


    동성애자들에 대한 혐오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기독교 역사에서 정당화되어 왔다. 첫째, 동성애자는 ‘창조의 법칙’을 거스르는 ‘비정상적’인 존재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정상 Vs.비정상’이란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며, 고정불변의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절대적이라고 여겨지는 ‘정상 Vs.비정상’의 범주들은 많은 경우 한 사회에서 ‘권력’을 지닌 주류 집단들에 의하여 결정되곤 한다. 만약 불변의 ‘정상-비정상’있다면 그것은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와 존중이이야말로 ‘절대적 정상’이며, 반대로 그들에 대한 ‘혐오’야 말로 ‘절대적 비정상’ 아닐런지?

    둘째, 도덕적 순결에 대한 유지와 강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동성애 혐오는 요청되어 졌다. 역사적으로 ‘순결주의’ 논리는 인종학살의 도구로 심심치 않게 사용되었다. 나치의 유대인과 동성애자들에 대한 말살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내내 지속되었던 종교재판과 마녀사냥도 마찬가지다. 나치가 동성애자들에 대한 말살정책을 펼 때 등장한 것이 ‘도덕적 순결성’과 ‘기독교정신’이었고, 그 구호 아래 동성애자들로 의심되는 독일남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하여 사살하거나 가스실에서 죽였다. 표면적으로는 ‘도덕적 순결성’강화가 동성애 혐오의 근거였으나, 실질적으로 동성애 혐오는 ‘인종적 번식’의 측면에서 다루어진 측면이 강하다. 독일인 게이들을 향해서는 독일의‘출산 잠재성’을 감소시키는 ‘인종적 위험’으로 간주한 반면, 레즈비언들이나 비독일인 게이들은 박해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말이다.

    기독교 근본주의 전통에서 작동하는 창조보존의 법칙과 순결주의는 어처구니 없는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어딘가 오리지널한 원본과 원형이 있으며 그것들은 훼손되지 않게 잘 보존되어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incarnation) 했다는 것 자체가 순수하고 완전하고 흠이 없는 신의 원형에 불순물을 주입하고, 흠집을 내고, 틈과 균열을 조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은 오히려 당신의 완정성과 순수성과 순결성을 세상에 내어주고 훼손함으로써 당신의 신성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증언하는 정직한 신에 대한 고백 아닐까?

    나는 성서에 나오는 정결한 것, 부정한 것이라는 말 대신 다수자, 소수자라는 말로 그것들을 대체하고 싶다. 성서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인권과 평등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꿈꾼다. 도덕적 순결성, 관습과 전통, 또는 종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다수에 의한 소수를 향한 혐오와 폭력은 그래서 성서적으로 죄이다. 성서가 지니는 해방적 전통이 작동되는 지점은 차이가 차별이 되어 왜곡과 폭력과 불평등이 정당화 되는 그곳이다. 성의 차이, 인종차이, 계급의 차이, 종교의 차이, 부의 차이, 학력의 차이, 지역의 차이...등 온갖 차이와 다름으로 인한 적대와 차별이 이루어지는 그곳을 향해 변혁적인 그리스도교는 지금까지 달려왔다. 동성애혐오에 대한 저항은 이러한 성서가 지닌 해방적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맨끝, 즉 화살촉과 같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을 둘러싼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Are You 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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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7.09.28 09: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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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한신학보 547호(2017년 9월 1일), 548호(9월 25일)에 게재된 <소통관에서 온 편지> “너희가 그들을 아느냐? : 한국보수개신교의 성소수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독설”을 웹진에 맞게 수정했음을 밝힙니다.
  2. 주안
    2017.10.05 09: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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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내용들을 꼭 집어 주어서 고맙습니다. 특히 <동성애를 둘러싼 성서의 정황들>은 성서를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이라면 부인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본인들의 "허물과 죄악을 다 털어 동성애 포비아에 덮어 씌워 번제를 드리고 있는" 현상은 한국 밖의 기독교 세계에서도 보여집니다.
    주위의 기독교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평소에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들도 동성애가 "창조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대를 하더군요. 창조의 법칙에 가장 근본이 된다는 '남녀간의 결혼'을 통한 '가정'이란 것이 깨진다는 두려움이지요. 이 문제에 대한 응답을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에 민소매 입기



유하림*

 


    올 여름은 정말 더웠다. 에어컨을 발명해 낸 사람에게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수준이었다. 바깥에서 10분만 서 있어도 땀이 주륵주륵 흘렀고, 습도는 높아 숨이 막혔다. 이런 몇 주간의 무더위 속에서도 내가 차마 도전하지 못한 것이 민소매다. 민소매를 입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깨를 가리는 한 뼘만한 천때기의 있고 없음이 생각보다 쾌적함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작년 여름에 여행으로 베트남에 갔다. 첫 해외여행이었으므로 큰 맘 먹고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다. 겨드랑이 사이로 바람을 맞이 한 것은 초등시절 이후로는 처음이었는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매가 없다 뿐이었지만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오는 날 다시 반팔 티를 입었고, 허무함을 느꼈다. 나에게 민소매란 남의 눈을 피해서만 입을 수 있는 것이니까.

   페미니즘 열기가 한창 뜨거운 이 때에 노브라도, 겨털 기르기도 아니고 민소매 입기 따위가 무슨 글감이냐고 스스로에게도 질문했지만 내게 민소매란 그런 것이다. 삐져나오는 겨드랑이 살과 통통한 팔뚝에 대한 좌절과 증오를 뚫고 용기를 내야만 하는 것.

   아직 십대가 되기도 이전, 0-9세 사이로 분류되던 때에 한의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엄마는 태양인 태음인 등의 체질 분류에 꽂혀있었고, 나의 체질 또한 가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생년월일 등을 묻고, 내 손목에 맥을 짚어보기도 했다. 그리곤 드러난 내 팔뚝을 보더니 “너 치킨 좋아하지 ?” 하는 것이다. 그렇게 덧붙였던 이야기. “살을 빼려면 치킨을 먹지 말아야해. 치킨 먹으니까 팔뚝에 살 찌는거야.”

   그 뒤로 몇 해간 꾸준히 할머니와 엄마는 치킨을 먹을 때 마다 내가 가진 팔뚝 살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면 치킨이 아니라 팔뚝 살을 집어먹고 있는 것 같았고,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팔뚝 살은 안 좋은 것. 팔뚝 살을 만드는 것은 치킨. 치킨을 먹으면 안돼. 그런데 나는 치킨이 먹고 싶어. 그럼 치킨을 먹어야지. 그치만 치킨을 먹으면 팔뚝 살이 찌는데. 팔뚝 살은 안좋은 것. 이라는 생각의 회로가 나를 괴롭혔다. 팔뚝과 치킨, 치킨과 팔뚝. 이 사이에 실제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렸을 적 한의원에서부터 거슬러온 내 팔뚝 살에 대한 증오는 꽤나 긴 것이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났다. 한 여름이지만 반팔에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자신은 몸이 너무 왜소하고 말라서 그것을 가리기 위해 여름에도 긴 옷을 입는다고 했다.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통통한 팔뚝 살과 삐져나온 겨드랑이 살에 대한 눈초리를 이길 수 없어 몸을 가리는데, 나와는 달리 마른 체형의 그녀 또한 몸에 대한 눈초리를 이길 수 없어 몸을 가린단다. 우리는 다른 몸을 가졌지만, 같은 이유로 민소매를 입지 못한다..

   이러나 저러나 눈초리가 신경 쓰인다면 그냥 한번 입어볼까 싶어 칠 천원을 주고 민소매를 하나 샀다. 집에 돌아와 입어보니 삐져나온 겨드랑이 살과 통통하고 하얀 팔뚝이 밉지만은 않았다. 밖에도 입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고 기온이 33도를 찍던 날, 민소매를 꺼내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가기 직전, 현관 앞 거울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춰보다 결국 다른 옷을 입고 나갔다. 괜찮아보이다가도 막상 마주하면 무너지는 게 나의 몸이다.

   이제는 타인의 몸 (특히나 살이 찐 사람)에 대한 왈가왈부가 경솔한 일이라는 게 상식이다. 내가 민소매를 입고 나간다고 해서 대놓고 수군댈 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오랜 기간 이어져 온 팔뚝 살에 대한 증오가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란거다.

   팔뚝 살에 대한 미움은 주위 사람들의 온갖 협조를 통해 만들어졌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야만 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게 어디 팔뚝 살 뿐이랴. 통통한 허벅지도, 뱃살도, 다리 털도, 겨드랑이 털도, 얼굴에 난 여드름도, 까무잡잡한 피부도.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용기를 내야만 하는 종류의 것이다. 그러니 민소매를 입는 것 하나도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외모에 대한 기준이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잣대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많은 다이어트 제품이, 피부 미백제가, 제모 용품이, 여드름 패치가 여성을 타겟팅 해 광고를 만든다. 티비를 켜면 비교적 다양한 체형의 남성이 나오지만 (사실 티비 예능에선 여성을 찾는 것이 어렵다.) 여성은 말랐거나, 뚱뚱해서 놀림 받을 뿐이다. 그렇게 티비에 나오는 여성들의 피부와 다리는 어찌나 매끄러운지, 손가락을 올려보면 미끄러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민소매를 입었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간 건 용기를 내지 못한 내 탓이 아니다. 민소매를 입는데에 무려 ‘용기’까지 필요하게 되는 것, 그러나 차마 그 용기도 낼 수 없었다 것. 이 세계의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는 증명이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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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 성별화된 세뇌(1)





조은채*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가스등(Gaslight)>(1944)은 『가스등 이펙트』의 저자 로빈 스턴(Robin Stern)에 의해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고 명명된 정서적 학대의 양상을 면면이 보여준다. 스턴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가해자(gaslighter)”와 “상대방이 자신의 현실감을 좌우하도록 허용하는 피해자(gaslightee)” 사이에서 발생한다. 가해자의 반복된 상황 조작과 거짓말에 노출된 피해자는 자기 자신의 현실감각, 판단력, 기억력에 의심을 품게 된다. 피해자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약해질수록 가해자의 영향력은 강화되며, 종국에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권까지 내어주게 된다. <가스등>의 주인공인 폴라(잉그리드 버그만)가 남편에게 결혼 생활 내내 당하는 것이 바로 이 가스라이팅이다.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던 이모가 살해된 후 모든 유산을 상속받은 폴라(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어느 날 그레고리라는 남자가 접근한다. 그레고리를 잘 모르면서도 깊이 사랑하게 된 폴라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물려받은 런던의 이모 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그레고리가 폴라를 정신병자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는 폴라가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 듣는다고 주장한다. 폴라가 병에 걸려 건강하지 못한 데다가 거의 매번 소지품을 잃어버린다는 이유로 외출을 금지하기도 한다. 폴라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남편인 그레고리와 그가 고용한 하녀 두 명뿐인데, 그 두 명 역시 폴라에게는 적절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없다. 한 명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일상적인 대화조차 어렵고, 다른 한 명은 폴라에게 정신병이 있다는 그레고리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녀를 환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폴라는 그레고리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환경 속에서 그의 걱정을 빙자한 교묘한 거짓말과 속임수에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당신은 잘 잃어버리잖아."

"제가요. 몰랐는데요.” 


“건망증에 의심까지 생겨?” 

 “그럴 리가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정말로?” 

 “모르겠어요.” 


 “당신이 아프거나 환각을 보면 슬퍼.” 

 “………”


   폴라는 그레고리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 어렵지만, 마땅한 증거도 증인도 없다. 처음에는 그의 말에 반문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지만 점차 폴라는 자신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그레고리의 가스라이팅이 점점 그 강도와 빈도가 높아질수록, 폴라는 “갑자기 내 기억력이 의심스러워져요.”, “나도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거나 혹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레고리가 의도했던 것처럼 자신의 판단력과 기억력을 믿을 수 없게 된 폴라는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된다. 점차 폴라는 그레고리 없이는 살 수 없는, 그레고리의 기준과 명령이 있어야만 안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레고리의 “정서적 학대”, 즉 가스라이팅이 성공한 것이다.

   폴라의 두려움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되는 것은 매일 밤 일어나는, 그녀 혼자만 듣고 보는 어떤 사건 때문이다. 매일 밤 그레고리가 일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고 나면, 갑자기 천장에서 정체 모를 발소리가 들려온다. 방 안의 가스등도 돌연 희미해진다. 그러나 폴라 말고는 누구도 목격하지 못한다. 둘 뿐인 하녀 중 하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다른 하나는 늘 외출하기 때문이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목격담이 완전한 허구, 즉 폴라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상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레고리에 의해서 폴라의 경험은 그녀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징후이자 증거가 되어버린다.

   영화는 두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그레고리가 얼마나 교묘하고 치밀하게 폴라를 조종하고자 하는지 면밀하게 보여준다. 어렴풋하게 암시만 되었던 그레고리의 동기가 명확하게 밝혀지는 것은 이미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들고나서이다. 그레고리가 폴라에게 접근한 것은 폴라의 이모가 생전에 소유했던 “외국 왕실의 보석” 때문이다. 폴라가 매일 밤 들었던 천장 위의 발소리와 희미해지던 가스등의 불빛은 폴라의 망상이 아니었다. 그레고리가 다락방의 불을 환히 밝힌 채로 폴라 이모의 유품을 하나 하나 샅샅이 뒤졌기 때문이다. 그는 속편히 보석을 차지하기 위해서 방해가 될 뿐인 폴라를 정신병원으로 보낼 계획까지 세워둔 상태였다. 그가 결혼 생활 동안 폴라에게 저질렀던 수많은 정신적 학대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기 위한 과정이었다. 전부터 그들 부부, 정확히 말하면 그레고리를 의심스럽게 보고 있던 런던 경시청 소속의 어떤 경위의 도움과 증언으로 폴라는 그레고리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 경시청에 그레고리를 넘긴 폴라는 자신이 조금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벗어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스라이팅은 현실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자행된다. 그레고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스스로 불신하게 만드는 갖가지 방법을 영화 내내 직접 시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레고리에게 “외국 왕실의 보석”을 훔치겠다는 비교적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스턴은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면서도 가스라이팅을 하는 가해자들도 있다고 말한다. 특별한 이유나 의도 없이도 상대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이들도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계에서 이 가스라이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위계이다. 스턴이 예시로 드는 상사와 부하 사이의 혹은 부모와 어린 자식 사이의 가스라이팅은 이 위계를 비교적 뚜렷하게 보여준다. 상사와 부하 사이에 존재하는 직급, 경험, 숙련도 등의 차이와 부모와 어린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연령, 경제력 등의 차이. 이 차이를 기준으로 권력의 위계 구조가 형성되고, 한쪽이 다른 쪽의 영향력 행사에 필연적으로 취약해진다.

   스턴은 가스라이팅이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관계”, 즉 연인, 친구, 가족, 상사와 부하, 동료들과의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20년간 심리치료사로 활동한 그의 경험에 따르면 “가해자”는 남성인 경우가 많은 반면 “피해자”는 여성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가 가장 빈번했기 때문인지, 스턴의 저서 『가스등 이펙트』는 “남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스라이팅 사례로 빼곡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예시는 여성에게는 피해자, 그리고 남성에게는 가해자라는 역할이 처음부터 성별에 따라 정해져 있었다는 증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턴은 왜 대부분의 가스라이팅이 남성에 의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형태로 나타나는지에 대해 정면으로 맞부딪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대신에 스턴은 가스라이팅을 “신종 전염병”이라고 명명하는 장에서 부분적인 해명을 시도한다. 사회의 변화에 따른 결과인 세 가지 요인이 이 새로운 질병을 창궐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성 역할의 근본적인 변화와 그에 대한 반발”, “개인주의 만연과 개인의 고립”, “사회의 압력과 세뇌”을 그 원인으로 제시한다. 스턴에 따르면, 1940년대부터 시작된 “성 역할의 변화”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일종의 “위협”이었다. 이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특정 남성”들은 “강하고 똑똑한 여성”을 “통제”하려고 했고, “특정 여성”들은 “자신의 정체성”까지 남성들에게 “의지”함으로써 “자발적으로” 그들의 통제에 “동조”했다. 스턴은 남성에 의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가스라이팅이 사회의 변화에 역행하는 “특정”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합작인 것처럼 진단한다. 이 특정한 남성과 여성을 “새로운 세대”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 내의 “신종 전염병”이라는 말은 가스라이팅을 “특정”한 남성과 “특정”한 여성, 즉 “특정”집단 내의 문제로 축소해버린다. 아득히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여성과 남성 사이의 권력 차이, 그리고 그 차이에서 비롯된 착취와 폭력은 담론의 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스턴은 여성에게 가해져 왔던 폭력과 착취를 가스라이팅과 연결짓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는 젠더의 위계에서 오는 차이가 가스라이팅을 성별화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셈이다. 성 역할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시점에서도 가스라이팅이 드물지 않게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가스등>의 폴라 역시 전통적인 성 역할을 벗어나기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으며, 그레고리의 가부장적 남성성에 조금의 위협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고 있던 젠더의 위계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지배 혹은 영향력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레고리가 폴라에게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이 지닌 권력 차이 때문이고, 그 권력의 차이는 결국 그들의 성별에서 기인한다.

   가스라이팅이 애초에 성별화-즉 남성에게는 가해로, 그러나 여성에게는 피해로-되었던 것은 유구하게 존재해왔던 여성혐오(misogyny) 덕분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해왔던 위계는 한 성별(주로 남성)이 다른 성별(주로 여성)을 멸시하고, 혐오하며, 성애화하고, 이 혐오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것까지를 가능하게 했다. 여성을 그저 사유재산의 일부로 여기거나, 마녀로 몰아가 불에 태웠던 시대가 존재했던 것처럼, 이 혐오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는 대단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까지 했다.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대상을 내 뜻대로 조종하기 위해 상황을 조작하거나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쉬운 일이다. 성별화된 가스라이팅은 ‘신종’ 전염병이 아니다. 한쪽 성별이 다른 성별을 아주 용이하게 통제할 수 있는 무기로써, 젠더의 위계에 의해 생겨난 아주 오래된 발명품이다. 동시에 수많은 형태와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여성혐오의 양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만약에 이 성별화된 가스라이팅이 전염병이라면, 마을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는 것으로는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는 아직도 철폐되지 않은 젠더의 위계, 그 간격 속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혐오라는 이름으로 배양되고 있기 때문이다.


* 필자소개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조형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현상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동일 전공으로 석사에 진학하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관심 분야는 페미니즘,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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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갈 것이냐





 김정원*

   

    오늘도 ‘우는 여자’는 어김이 없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가워 울다가, 곧 자신의 처지에 아파하며 다시 울었다. 그녀를 마주한 이들, 그러니까 그녀의 친구들은 그 눈물에 무뎌질 때도 됐건마는, 오늘도 그 눈물과 함께 아파한다. ‘우는 여자’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불확실성으로 떨고 있었다. 그녀가 쏟아 낸 눈물처럼 자신도 쏟아져버릴까 봐, 그렇게 흘러내릴까 봐 그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디오니소스적인 삶을 작정한 것처럼 보였던 그녀였지만, 자명한 불확실성이 덮치자 마치 격정과 예술성을 포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자신의 욕동에 충실할 것을 다짐한다. 그녀의 다짐은 마치 선언과 같았기에, 그녀 앞에 둘러 앉아 있는 근심 어린 얼굴들은 그녀의 다짐에 균열을 낼 수 없음을 직감한다. “죽음과 욕망의 과잉만이 진실에 가닿게 한다”고 말하던 바타유가 그녀 속에 들어 앉았나 보다. 그녀는 그 ‘진실’ 그러니까 그녀의 언어로는 ‘나’를 찾아 떠나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 죽일 놈의 ‘나’ 찾기. 그거 좋게 말하면 ‘자기 완성’이겠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팔자 사나운 년 되는 거 아니겠냐.”


    쓴 소리를 자주 하는 그녀의 한 친구는 이번에도 쓴 소리를 날린다.


    “너를 좀 붙들어 매. 꼭 그렇게 불안전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겠어? 뭘 그리 고생을 사서해. 얼마나 또 쳐 울려고, 꼭 그 지랄을 해야 존재가 완성이 된다니…… 너 얼마나 대단한년 될 건데! 안정성이란 안정성은 죄 쌈 싸먹고 얼마나 잘 되려구!”


    ‘쓴 소리 여자’의 쓴 소리에 ‘우는 여자’는 역시나 죽죽 울며 대답한다.


    “나는 내가 팔자가 사나운 것이 좋아. 나는 자꾸 묻고, 고민하고 자빠지고 하는 내 삶이 좋아. 아프지만 후회가 적으니까. 무섭고 불안하지만, 나는 성숙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 그 고통의 시간이 반가워. 이러다 죽겠구나- 하다 보면 그것은 이미 지나있어. 그리고 나는 ‘나’에 조금 다가와 있지.”


    그녀는 쾌락을 향유하는 만큼 고통스러워했었고, 자유를 누리는 만큼 망가졌었다. 그 시간을 지나온 그녀는 다시 그 시간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분명 담담한 면이 있었고 그 시간 속에 다시 자신을 던질 준비 역시 돼 있었다. 이제 올 시간은 친구도 없고,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집도 없고, 친숙한 언어도 없기에 보다 더 아플 것이 명증했다. 없고, 또 없을 시간. 열 개가 없는 줄 알았는데, 스무 개가 없을 그 시간. 있는 것이라고는 희미한 꿈과 더 희미할 가능성, 그리고 쾌감과 정념과 눈물과 고통 즉, 끝없을 쥬이상스…… 담보 되지 않은 상황으로 나아가는 그녀는 환희와 불안, 그 어중간한 위치에서 떨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유독 행복에 집착했었다. 강산은 변했지만,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오늘 그녀가 눈물과 함께 떨구는 행복은 ‘나’, 혹은 ‘고통을 감각하고자 하는 나’인가 보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힘이 필요하다. 시로서 구원받고자 했던 김수영의 언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모든 진리는 평범하다 

요는 죽음을 가슴에 새기고라도 

아름다움을 보아야 한다 

항상 외국에 온 사람 모양으로 내 나라에 살고 

외국어를 하듯이 내 나라말을 하고 

여자들을 모두 외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움 사이에서도 자유를 잊지 말고 

슬픔 속에서도 환희를 잊지 말고

 … 

가슴 속에 깊은 자유가 파묻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밀의 용기가 필요하다. 

앵무새의 발언 같은 허위를 태워 버리고 

발코니 위에 나서면 밤이 슬프지 않으냐

 … 

수많은 수인이 해방된 아침같이 

밤하늘에 떠도는 보랏빛 안개 

거리여 기립이여 설운 기립이여 

나는 완전히 너를 결별한 사람


- 김수영, 미제, 유고시(1958)


    ‘우는 여자’는 자기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었다. 가슴에 박혀있는 자유를 파내고 있었고, 반복되는 언어를 태우고자 했고, 밤을 온전히 갖고자 했다. 그녀는 실로 이방인의 삶을 선택했다. 외국에 온 모양새로 사는 것이 아닌, 실제로 외국에서 제 나라와, 제 말과, 제 벗을 잊어 먹은 여자처럼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두려움 사이에서도 자유를 잊지 말고, 슬픔 속에서도 환희를 잊지 말고 살기를 김수영만큼이나 원한다니, 이제 더는 ‘쓴 소리’로 다그칠 수가 없다.


    ‘그래, 가라. 밥이나 잘 챙겨 먹고-’


    그렇지만 사실 ‘쓴 소리 여자’는 ‘우는 여자’가 흠모하는 그 강렬한 욕구가 미화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혹 그 욕구는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을 파괴할 수 있는 악마적인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의미만으로도 이미 몹시 아름다워 그저 고결할 것만 같은 그것, 자기 완성! 내뱉기만 해도 내뱉는 그 순간으로부터 곧장 심장을 파고드는 그 숭고한 이름, 자유! 오, 자기 완성이여! 오, 자유여!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과대평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 스피노자까지를 들먹이며, “과대평가란 어떤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정당한 것 이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에티카).”라고 그녀의 귀에 때려 박고 싶었다. 스피노자가 다른 이를 사랑할 때 상대에게 과한 점수를 주는 행위를 문제 삼았다면, ‘쓴 소리 여자’는 ‘우는 여자’가 상대방도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에게 너무 과한 점수를 준 것이 아닌지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 자신을 향한 사랑, 즉 지극히 나르시시즘적이어서 결국엔 빈곤 터지는 ‘나’ 사랑에 불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제기였다. 나아가, 그녀가 사랑하는 ‘자기 완성’과 ‘자유’ 역시 과대평가 된 것은 아닌지 또한 따져 묻고 싶었다. 그것들의 아름다움과 고결함에 취해 그것들을 향한 그녀의 과대평가를 정당한 것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점검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적어도 ‘쓴 소리 여자’보다는 ‘우는 여자’는 삶에의 권태로움에 늘 민감했다는 것을 감안했기 때문이었다.


    ‘쓴 소리 여자’는 권태로움에 후려쳐지는 것이 두려웠기에 끝내는 권태를 부정하며 살았었다. 백날 카뮈를 읽어도 의식이 죽어 있으니, 삶에의 부조리는 부정되기 일쑤였다. 가끔 고개를 쳐드는 의식은 잘 달래어 저-기 멀찍이에 두어야만 했다. 부조리를 향한 적극적 반항은, 구조의 부조리는 물론 자신의 비겁함 역시 폭로되는 것이기에, 그녀는 권태로운 자기 존재를 들춰보기를 주저해왔었다. 삶의 의미를 누구보다 열심히 찾는 척했지만, ‘쓴 소리 그녀’의 가슴은 내리 차가웠고, 사회적 질서와 관습 속에서 아늑함을 성취하고자 했다. 그에 비해 ‘우는 여자’는 날 것으로 깨어 있었다. 즉, 삶의 의미 없음에 반항하고자 하는 그녀의 ‘의식 있음’ 앞에서 ‘쓴 소리 여자’는 따져 묻기를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약간 니체의 초인 같기도, 약간 시시포스 같기도, 혹은 김수영 같기도 한 그녀를 그 측면에서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 가라. 밤 길은 좀 조심하고-‘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등장하는 세 여자들의 사연은 그야말로 골치가 아프다. 한 여자는 아이를 잃고 이혼을 하고, 한 여자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고, 나머지 한 여자는 의사인 남편의 잦은 외도로 분노한다. 그 여성들이 자신들이 의존하던 것들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불교경전, <숫타니파타>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그 내용 중 일부이다. 그런데, 팔자 센 그녀들이 종국에 선택한 것은 정말 무소의 뿔 같은 치열함이었을까? 그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던 그녀들은 결국 온전한 자기를 불안정성 속에서 건져내 왔을까?


    여전히 ‘쓴 소리 여자’에게 자유, 즉 불안정성은 불가능으로만 주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주는 위로로 글은 마쳐져야만 할 것이다. 비록 그 위로가 가히 무겁더라도 떠나는 그녀와, 곧 떠날 ‘그대’와, 더불어 그 욕망과, 그 불안과, 그 불가능을 지지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었으므로.


“현실주의는 내게 오류의 느낌을 준다. 오직 폭력만이 그런 현실주의적 체험의 빈곤감을 떨쳐버린다. 숨통을 막고, 끊는 힘은 오로지 욕망과 죽음에만 있다. 죽음과 욕망의 과잉만이 진실에 가닿도록 해준다. … 인간 앞에 펼쳐진 두 가지 전망이 있다. 한쪽은 격렬한 쾌감, 공포, 죽음 – 정확히 시의 전망-, 그 정반대 쪽은 과학 혹은 유용성의 현실 세계, 유용한 것, 현실적인 것만이 신뢰할 만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것을 외면하고 유혹을 택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 진실이 우리에게 권한을 행사하고, 심지어 전권을 휘두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은 아니되, 그 모든 권력을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에 응답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전권을 휘두르는 진실을 지움으로써, 소멸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가닿을 수 있는 저 불가능에 대하여.” – 조르주 바타유, 불가능




* 필자소개

   "한신에서 기독교교육을 공부하고,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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