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사탕과 똬리 1



이성엽

(한백교회 교인,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에서 공부 중)

 


비린내와 썩은내가 진동했다.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숨을 크게 들이쉬고 가능한한 오래 참아야 했다.


강제철거후 성남으로 가는 이주권을 받지 못한 우리 가족이 성미산을 떠난건 내가 국민학교 6학년때 였다. 우리는 가좌역에서 기차를 타고 경의선 출발지이자 종착역인 문산으로 갔다. 가좌-수색-화전-강매-능곡-곡산-백마-일산-운정-금촌-파주-문산. 종착역에서 기차는 멈추고 꼬리가 머리가 되어 다시 서울로 되돌아 가지만 철로는 북쪽으로 쭉 이어져 있다. 낮에 기차에서 내릴 때는 역사 출구에 서있는 역무원에게 차표를 내고 나가야 한다. 역사로 나가면 읍내 쪽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 시간이 더 걸렸다. 이른 아침이나 어두운 저녁에는 역무원들도 대충 허용을 해 주었기 때문에 차표를 보여 주지 않고도 기차를 뒤에 둔 채 그저 북쪽으로 철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 기차길 양편으로 낮고 구멍이 숭숭난 회색 벽돌담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는 집들이 있었다. 그 지역의 지대는 문산역을 등지고 걸어갈 때 기차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이 높고 오른쪽이 낮았다. 왼쪽엔 큰 집도 있고 문산읍 중심과 연결되는 넓은 길도 있다. 오른쪽은 문산읍의 가장가리 끝으로 낡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집들의 가장 오른 쪽으로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면 하천이 넘쳐 동네로 들이친다. 부엌을 낮게 만든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장마철엔 하천에서 넘친 물로 부엌 바닥이 질척질척 했다. 하천물은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사는 그런 시냇물이 아니었다. 수세식 화장실도 없고 하수 처리시설이 없던 동네의 온갖 물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천바닥은 깊지 않고 폭도 넓지 않았다. 하천 안쪽 물이 흐르는 곳에는 시커먼 이끼가 끼고 억센 풀들이 제멋대로 자랐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시궁창 냄새가 방안까지 제대로 들어 왔다. 철도청이 철도부지와의 경계를 긋기 위해 쌓은 철로 쪽 벽돌담을 제외하고는 동네안에 담이라는게 따로 없었고 한 집의 방이나 부엌의 벽과 다른 집의 벽 사이가 길과 작은 골목을 만들었고 가로등은 없었다. 밤엔 창으로 느릿하게 기어나오는 촉수가 낮은 백열등 빛에 의존해 다녔다.


나는 선유리로 엄마를 따라 다녔다. 엄마는 주로 어스름한 저녁에 양키물건을 사러 갔고 돌아올 무렵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엔 어둠이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난 늘 그 골목의 어둠을 두려워했지만 선유리를 같이 다녀 오는 날은 엄마와 함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E동에 내다 팔 밑천이 생겨서 좋았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선유리도 단속을 받을 때가 있었고 그런 날은 사올 물건이 없어서 헛탕을 쳤다. E동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냄새는 많이 역겨웠지만 그건 참아야 했다. 어떤 때는 낮에도 양키물건 쇼핑을 하러 갔는데 엄마가 K씨 아줌마네서 물건 사러 온 동종업계 아줌마들과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동네 구석구석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를 하나 사귀게 되었다. 우리집은 문산 읍내였고 선유리는 버스로 이 삼십 여분 가야 하는 거리였는데도 자주 가다 보니 그 친구와 꽤 가까워졌고 가끔 집에도 놀러갔다. 중학교 2학년때쯤 이었는데 하루는 그 친구가 가슴골이 다 보일 듯 한 진분홍 티셔츠를 입은 채 어떤 백색피부 남자를 보며 ‘허니’라고 불렀다. 그 백색피부는 별 말없이 벌겋게 웃었다. 그 친구가 입은 아슬아슬한 옷과 ‘허니’라고 부를 때 나는 코맹맹이 소리 그리고 그 백색피부 남자는 모두 그 친구 언니의 것이었다. 난 그 애가 언니 흉내를 내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행동의 어느 부분이 잘못된 건지 정확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흉내내기의 대상, 원본이 된 언니의 본래 모습이 이상한 건지 흉내내기 장난이 나쁜 건지 혼란스러웠고, 그 백색피부 남자 앞에 서 있는 키가 작은 친구의 가슴이 보일락 말락 할 때 내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거북했다. 그 친구도 커서 공주가 되었는지 일찌감치 그 동네를 떠났는지 뒷소식은 듣지 못했다. 문산에 살던 또 다른 나의 친구 C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스무 살이 채 안되었을 때부터 미군부대 내의 스낵바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가끔 맛있는 걸 갖고 와서 나와 나눠 먹었다. C는 거기서 만난 백색피부 남자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 미국으로 떠가기 전에 C는 나에게 그 남자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되지도 않는 발음과 어색한 표정으로 나는 “미국사람을 미워하진 않아요. But 난 미국을 증오hate해요.” 라고 떠듬떠듬 영어로 말했다. C는 나중에 그 백색피부가 매우 당황했으며 C 자신도 기분이 나빴다고 말해 줬다. C가 미국으로 떠나고 난 뒤 한참이 되어서야 나는 그 날의 일을 후회했다. C에게 ‘네가 미국으로 가는게 싫었어’라는 말을 하지 못한 걸 후회했다. ‘널 미군부대로 보낸 너희 엄마가 원망스러웠어’라는 말을 하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네가 미국에 가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라는 말로 C를 안아주지 못한 것은 가장 오래 속을 아리게 했다. C를 기억할 때면 내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에 그 날의 저녁식사를 장면을 불러 온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일자리와 돈벌이,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럽고 흔한 일이었다. C는 미국으로 간 지 2년 만에 이혼을 했다.


K씨 아줌마네 대문은 늘 열려 있었다. 그곳은 일대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양키물건’들의 집하장이었고 초저녁부터는 물건을 사러 오는 아줌마들이 모여드는 도매상이었다. 선유리에는 그런 곳이 몇 집 있었는데 엄마는 주로 K씨 아줌마네로 갔다. 그 집은 컸고 대로 변에 있어서 언덕을 올라다녀야 하는 M씨네 보다 드나들기가 수월했다. K씨 아줌마는 양키물건과 양공주들을 관리하며 담배와 갈색 유리병에 든 중독성 있는 음료를 끼고 살았다. 니스가 반들반들하게 칠해진 크고 묵직한 나무 대문 양쪽으로는 작은 방이 두 개 있었고 거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양키물건을 실어 나르는 양공주들의 아지트이도 했다. 여공을 여공이라 부르고 양공주를 양공주로 부르던 시절 선유리에서 ‘양공주’는 직업이었다. 양키물건의 공급과 몸의 유통으로 벌어 들이는 수입의 크기와 그에 비례하는 상대적으로 높은 소비수준으로 인해 적어도 그 마을안에서는 손가락질보다는 부러움을 더 샀다. 그 몸에서 양키의 검은피가 섞인 ‘튀기’가 튀어나오기 전까지만 말이다. 아기 몸에서 시뻘건 핏물을 채 씻어 내기도 전에 드러나던 그 짙은 색은 마을에 괴물 같은 재앙처럼 드리웠다. 공식적인 결혼, 사실상 결혼, 장기 혹은 일시적 동거, 짧은 연애 등 사연은 다양했지만 양공주의 출산은 이제까지 기대하지 않았던 미래를 꿈꾸게 하거나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도 하는 등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좀 더 복잡한 것 하나. 그 안에서도 상대의 피부색에 따라 출산한 엄마와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서열이 매겨졌다.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K씨 아줌마네 살다시피 하는 토미였는지 지미였는지 하는 서너 살짜리 곱슬머리 남자애가 있었다. 영어이름과 까만 손 그리고 하얗고 슬픈 이빨사이 물려 있던 무지개 막대사탕이 그 아이 몸 위에 뭉툭뭉툭하게 얹혀져 있었다. 그 날도 엄마를 따라 선유리에 갔는데 K씨 아줌마네 문간방에서 한 여자가 괴이한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 여자의 울음이 잠깐 잠깐 잦아드는 사이, 주변에 아무렇게나 둘러앉아 있던 다른 양공주들의 넋두리가 위로인지 질책인지 신세타령인지 모를 의미들을 집어 삼켰고, 울던 여자가 내뿜는 담배연기에 섞여 다시 뱉어지고 있었다. 튀기는 양공주의 몸속에서 튀어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양공주의 손에서 튕겨져 나갈 때에도 재앙인 듯 했다. 몸에서 나올 때는 재앙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가올 재앙의 전주곡이었을 뿐. 나는 그날 토미인지 지미인지가 미국으로 갔다는 것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토미가 미국으로 갔다’고 하는게 아버지와 손을 잡고 ‘인종차별이 없는 자유의 나라’ 미국의 품에 안겼다는 말인지 순혈주의적 민족주의에 흠집이 생길까 두려워했던 애국자들의 손에 의해 순결한 조국 대한민국 땅에서 치워졌다는 말인지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선유리에서 사온 양키물건들은 다음날 새벽 남대문시장에 있는 ‘양키시장’으로 배달된다. 남대문 E동 지하상가는 수입자유화가 되기 전 서울 중상류층들이 외국식품이나 장식품들을 살 수 있었던 곳이었다.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양키물건의 매매 자체가 불법이었지만 남대문 시장에 버젓이 양키물건 시장이라는 이름의 상가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정부의 단속이 그리 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단속자들의 배를 불리는 다른 유형의 단속 방법이 있었거나. 하지만 담배는 달랐다. 언젠가 전매청 직원들은 멀리서 담배연기만 봐도 그게 양담배인지 국산담배인지 알아볼 수 있다고, 귀신같다고 엄마가 알려 줬다. 언니와 나는 엄마의 시다였다. 언니 가방에는 주로 ‘양담배’가 그리고 내 가방에는 m&m 초콜릿이나 오색젤리, MJ커피, TANG오렌지쥬스용가루 등 가볍고 안전한 물건들이 담겼다. 우리에게 전매청 직원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지만 남대문 시장 근처에서 그들을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경의선을 타고 와서 서울역에서 남대문시장까지 걸어갔다. E동 지하상가에 있는 가게들이나 그 가게 주인이 지정하는 어딘가로 물건들을 배달한 뒤 학교로 향했다. E동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D동과 E동 사이에 있었다. D동은 생선 도매시장이었는데 계단 내려가는 내내 숨을 참아야 했다. 언니와 나는 아침마다 거기 가는 게 싫었다. 엄마의 물건을 주로 사주던 단골 가게 주인들이 우리에게 알은 체를 하는게 싫었다. 이른 아침 그 시간에 교복을 입고 양키물건 가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애들은 우리 자매 뿐 이었다. 난 D동 지하의 생선 썩은내와 비린내가 역겨워서 견디기 힘들었다. 언니는 옷 수선집에 가서 교복 치마단을 줄이거나 허리 부분을 더 잘룩하게 만들고 싶어할 그런 나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엄마는 우리 식구의 먹을 거리를 사왔다. 오빠가 먹지않는 육류는 전부 빼고. 내가 어렵지 않게 간헐적으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건 이렇게 뛰어난 환경 탓이다. 오빠가 성인이 되어 닭고기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고 내 몸은 역사를 고스란히 추억하며 치맥을 아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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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영화의 윤리: <레이디 버드>(2018)



조은채*

 

※ 영화 <레이디 버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이디 버드>는 “내가 새크라멘토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해?”라는 주인공 크리스틴의 보이스오버(V.O.)와 함께 시작된다. 가톨릭 교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보수적이고 조용한 새크라멘토에서 나고 자란, 하지만 도저히 자신을 그 마을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열일곱 살의 소녀. <레이디 버드>의 감독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은 원래 이름인 크리스틴 대신에 ‘레이디 버드’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이 소녀를 설명하기 위해 내레이션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소녀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나열한 일기장이나 편지를 읽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성장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론이 바로 내레이션이겠지만, <레이디 버드>는 처음 이후 단 한 순간도 라디오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잘 안다고 넘겨짚는 십 대 시절이 쉽게 언어로 가지런히 정리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내레이션은 주인공인 레이디 버드가 어떤 소녀인지, 그리고 영화가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를 단번에 예감하게 한다.


   <레이디 버드>가 ‘윤리적인’ 성장영화로 보이는 것은 이 영화가 이 소녀를 알고 있다고 함부로 단정짓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겪었던 일 혹은 지나온 시기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과신한다. 그 순간을 겪고 있는 당사자, 흔히 나이가 어린 이가 말하지 않는 속마음이나 사정도 뻔히 다 안다고 착각한다. 다른 성장영화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자주 헛발질을 하곤 한다. 인물에게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세심한 설계가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어떤 성장영화들은 굳이 고심하지 않아도 그 시절을 너무 잘 기억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종종 일을 그르친다. 그 영화의 주인공들 역시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다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실체 없이 부풀려진 채 설명적으로 연출되기도 한다. 그 누군가는 대체로 감독이고, 그가 자신이 아직도 얼마나 소년 같은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과시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굳이 덧붙이도 않아도 될 것 같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과시욕에서 비롯된 연출이 청소년기의 인물을 대상화해서 흥밋거리로 착취하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 감독 그레타 거윅은 이 보편적이지만 다소 비윤리적인 성장영화들과 달리 <레이디 버드>에 넘겨짚은 추측이나 주제넘은 단정이 자리할 빈틈을 남겨두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항상 도덕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만 다룰 수는 없고, 연출력을 뽐내며 인물의 감정을 과하게 극대화해서 담아내는 장면도 필요할 수 있다. 카메라는 근본적으로 대상의 불안 또는 기쁨에 이입하지 않고 그저 관찰하고 수록하는 중립적인 매체이다. 하지만 대상을 ‘어떻게’ 담아내는지는 필연적으로 감독의 가치판단을 수반한다. 이때 감독의 시선과 태도는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고통을 다루는 영화라고 해서 타인의 고통을 그저 전시하고 때로는 미학화라는 명목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데다가 때로는 게으르기까지 하다. 반면, <레이디 버드>는 이미 성장한 자가 그 시기를 겪는 자를 관찰하는 데서 오는 불가피한 비윤리성을 인식하고 그 경계선을 넘지 않기 위해 매진한다.


  ‘철길 건너 구린 동네(the wrong side of the tracks)’에 사는 레이디 버드에게 새크라멘토는 녹록하지만은 않다. 엄마는 매번 야근을 반복하지만 아빠의 실직은 쉽게 메꿔지지 않고, 부자 친구들과 비교되는 집안 사정에 자주 위축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레이디 버드에게 새크라멘토는 얼마간 관대한 보금자리이다. 레이디 버드는 학교 선생님의 채점표를 몰래 버려버리지만, 선생님은 범인을 색출하는 대신에 양심에 맡게 본인이 받은 점수를 적어내라고 한다. 다시 떠올리기도 창피한 거짓말을 친구에게 들켰지만, 레이디 버드는 동네방네 거짓말쟁이로 소문이 나서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수적인 미션 스쿨의 성교육 시간에 임신 중단을 무조건 부도덕한 일이라고 서슴지 않는 강사의 말에 반론을 제기했다가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정학을 당하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는 아무도 하지 않는 생각을 혼자 품고 사는(혹은 그렇다고 스스로 믿는) 소녀에게는 새크라멘토는 마냥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간절하게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엄마는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의 학비까지는 지원해줄 수 없다고 못 박은 상태라서 떠날 가능성도 희박하게만 보인다. 레이디 버드에게는 엄마인 매리언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사건건 트집 잡고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지 않아서 자주 부딪친다. 누구보다도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때로는 그냥 조금 멀리 떨어져 있고 싶기도 하다.


  <레이디 버드>는 흔히 가장 자의식이 과잉된 시기라고 여겨지는 십 대의 소녀를 다루고 있지만, 그 연출은 과잉된 감정이나 자의식을 극대화하는 대신 도리어 절제하면서 효과적으로 배가한다. 배우의 얼굴과 표정을 클로즈업해서 민망함이나 비참함, 슬픔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스크린 가득 전시하는 법도 없다. 그런 욕망이 들 법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도, 가상의 인물인 데다가 나이도 어린 이 주인공과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윤리적인 연출을 선택한다. 알고 보니 게이였던, 그래서 결국은 레이디 버드를 속인 것이 된 첫 번째 남자친구 대니와의 신(scene) 역시 그렇다. 레이디 버드는 대니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분노하지만, 자신의 비밀이 들킬까 봐 무서웠다는 그를 이해하고 결국 함께 울어준다. 영화는 자신의 속마음을 가감없이 표출하며 우는 두 소년∙소녀의 얼굴을 과시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들이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둘 사이에 새롭게 싹튼 신뢰와 우정을 암시한다. 레이디 버드는 카일과 엉망인 첫 섹스를 마친 후, 자신을 데리러 온 엄마의 얼굴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는 비참함, 죄책감, 후회, 민망함, 서운함 같은 것들이 북받쳐 올라왔을 레이디 버드의 얼굴을 포착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아마 미세하게 떨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레이디 버드의 다리를 내보이지도 않고, 서러움 울음소리를 배경음악이나 효과음으로 삼지도 않는다. 대신 일요일에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레이디 버드를 달래는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사지도 않을 집을 함께 보러 다니는 모녀의 즐거운 일요일로 화면이 금방 전환된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특별하지만 평범한 레이디 버드, 혹은 모든 이의 소녀 시절을 조금이라도 더 윤리적으로 그리고자 한 고민의 연장 선상이다.


  알고 보면 레이디 버드와 엄마 매리언은 서로 무척 닮았다. 둘이 서로 닮았다는 사실은 대사로 직접 주어지기도 하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를 잇는 연출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사과하러 왔던 대니는 당황했기 때문인지 되려 레이디 버드에게 그녀의 엄마가 무섭다고 험담한다. 레이디 버드는 발끈해서 엄마는 따뜻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항변한다. 대니는 그녀의 엄마가 무서우면서도 따뜻한 사람이라고 결론지어버리고, 레이디 버드는 무서운 동시에 따뜻할 수는 없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레이디 버드는 대니를 몰아세우다가도 이내 그를 용서하고 위로해주기까지 한다. 곧바로 레이디 버드의 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신부님이 간호사인 레이디 버드의 엄마에게 자신이 우울증을 털어놓는 장면이 이어진다. 엄마는 신부님에게 비밀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그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연민한다. 영화는 ‘무섭지만 따뜻하다’는 얼핏 상반되어 보이는 말이 진실일 수도 있음을 레이디 버드와 엄마의 모습을 통해 증명한다. 레이디 버드와 그녀의 엄마는 때로는 신경질적이지만 강하고 따뜻한 사람, 즉 닮은 사람이다.


  졸업을 앞둔 레이디 버드는 학교 수녀님에게 그녀의 대학 지원 에세이에 새크라멘토에 관한 애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말을 듣는다. 레이디 버드는 그럴 리 없다고, 그저 관심을 가진 것뿐이라고 부정하지만, 수녀님은 관심과 사랑이 같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녀는 대답하지 못한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레이디버드는 프롬 드레스를 함께 고르던 엄마의 지적에 크게 상처받는다. 엄마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한다는 레이디 버드에게 엄마는 당연히 사랑한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레이디 버드는 자신을 좋아하냐고 되묻는다. 엄마는 쉽게 답변하지 못하고 네가 언제 어디서든 최고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어쩔 거냐는 레이디 버드의 말에, 수녀님 앞에서의 레이디 버드처럼 엄마의 말문도 막힌다. 닮은 두 사람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대면하자 똑같이 침묵에 잠긴다. 레이디 버드는 고향이 지긋지긋하기만 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깊이 사랑했고, 엄마는 레이디 버드를 몹시 사랑하지만 소녀의 지금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둘은 일견 반대되는 깨달음은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둘이 누구보다도 닮고 서로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에는 맞물리는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심과 애정, 사랑함과 좋아함 사이의 미묘한 차이 속에서 그들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관계는 앙금을 남긴 채로 멈춰버린다.


  엄마 몰래 지원했던 뉴욕의 대학에 결국 합격하면서 모녀 사이의 관계는 더 틀어진다. 자신이 반대하던 일을 슬쩍 저질러버린 레이디 버드에게 엄마가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레이디 버드와 대화를 내내 거부하고, 그녀가 뉴욕으로 떠나는 공항에 데려다줄 때도 게이트까지 배웅해주지도 않는다. 엄마가 뒤늦게 후회하고 울며 달려왔다는 사실을 레이디 버드가 알 길은 없다. 엄마가 자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언제나 가장 많이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까지도 좋아하는지를 확신할 수 없는 채로 레이디 버드는 뉴욕에 도착한다. 이때 레이디 버드가 수녀님에게 자기도 몰랐던 새크라멘토에 대한 애정을 들키게 한 대학 에세이처럼, 아빠가 엄마 모르게 가방에 넣어둔 엄마의 부치지 않은 편지가 등장한다. 엄마의 내레이션으로 이 편지가 읽히고 레이디 버드가 펑펑 눈물을 흘리는 식의 효과적이겠지만 진부한 장면 대신, 그저 엄마가 편지에 쓴 문장 몇 개가 화면을 언뜻언뜻 스쳐 지나간다. 마지 못해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주기는 했지만 늘 못마땅해하고 심지어 비웃기까지 하던 엄마가 쓴 “레이디 버드라는 네 예명 참 예뻐.”라는 문장은 그 절제된 연출 속에서도 스크린 밖까지 잔상을 남긴다.


  뉴욕에 도착하고 엄마의 편지를 읽은 후에야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이름인 ‘크리스틴’이 꽤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주어진 것은 고향이든 심지어 이름이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열일곱 살 소녀에게도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거리’가 드디어 주어진 것이다. 떨어져야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는 법이듯이, 이제 레이디 버드에게는 고향과 엄마 모두를 사랑하는 동시에 좋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레이디 버드는 고향 집의 자동응답기를 통해 엄마에게 크리스틴이 참 좋은 이름인 것 같고, 사랑하고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아직 영화상에서는 엄마에게 도착하지 못한 이 메시지는 둘 사이의 관계 역시 성장하리라고 암시한다. 미숙해서 혹은 너무 사랑해서 서로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으며, 서로를 좋아하는 일이 가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하지만 누구보다도 서로를 좋아하고 싶어서 매번 삐걱대다가 멈춰버린 둘 사이의 관계도 비록 영화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내 움직이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새크라멘토에서도 “보기에 추한 것이 꼭 부도덕한 것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소녀는 뉴욕에서는 아마 더 자주 세상과 부딪칠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앞으로 성장할 엄마와의 관계가, 그리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무엇이든 성장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소녀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 <레이디 버드>의 결말은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으로부터의 졸업, 또는 ‘크리스틴’과 ‘레이디 버드’ 사이의 화해와 같은 쉬운 말로는 봉합되지 않는다. 성장이 결코 완료된 후 닫히는 개념이 아니라고 믿는 감독 그레타 거윅은 엄마에게 소녀의 메시지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시점에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누군가의 소녀 시절을 전지적인 위치에서 하나의 분명한 결말로 종결하는 대신,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고 끝마치는 것이 더 옳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까지 <레이디 버드>가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성장영화의 윤리이다.



* 필자소개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조형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현상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같은 전공으로 석사에 진학하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관심 분야는 페미니즘,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이다. 블로그(http://eunchaecho.tistory.com)를 드문드문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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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증후군



이성엽

(한백교회 교인,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에서 공부 중)

 


그는 하루 중 해질녘이 제일 좋다고 했다.


영어회화 공부를 한답시고 데이트를 하면서 영어로 한 두 마디씩 떠들던 시절이 있었다. “이걸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그가 영어로 물었다. “Sunset?” “No, it’s twilight.”. 그리고 다시 물었다. “넌 하루 중 언제가 제일 좋아?” 나는 무심한 듯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암튼 난 twilight을 좋아하진 않아.” 아마도 그 때 나는 twilight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 날의 대화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남자친구 앞에서 그 단어를 모른다는 걸 애써 숨겨야 했던 알량한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때 사방의 대기가 품어내는 그 애매한 분위기를 아름답다고 느낄 수 없었던 부끄러움이 너무 컸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웠다. 그랬다. 언제부터인지 난 저녁이 되는게 싫었다. 해가 뉘엊뉘엊 지고 날이 어두워 질 쯤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친구들 이름을 불러대며 저녁먹으러 오라고 재촉할 때, 날 부르는 엄마가 없어서 마지막 친구를 보내고 나서도 한동안 혼자 남아있을 때부터 였는지, 겨울이면 빨갛게 언 손으로 저녁밥을 짓고 있는 어린 언니를 상대로 사춘기 폭력성을 거침없이 발산하던 오빠를 피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는지 알 수 없다. 언니옆에 같이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보다 오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던 나는 그 시절의 저녁 날들을 생각하면 언니에 대한 미안함을 지울 수가 없다. 어른이 되어서 언니가 내게 오빠로부터 구타당한 얘기를 꺼냈을 때에도 난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언니의 목소리에서 배어나오는 공포감이 너무 생생했다. 방관자였던 나의 몸은 기억하지 않는 일들이 언니에게는 끔찍한 흉터로 남아 있었다.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거나 뭘 해야하는지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는 것만으로는 마음의 빚을 덜어낼 수 없다. 언니 나이 예순을 바라본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그 때 일이 아무일도 아닌 것으로 끝나진 않을 것 같다. 오빠로부터 언니의 용서를 비는 말이 나오고 언니의 몸에서 흔적이 하나 지워지길 기다린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나이가 어렸고 그 학교에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자기가 담임을 맡고 있는 학급의 학생이 하루종일 교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도 아무말도 거들지 못했다. 난 쉬는 시간마다 담임 선생님의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렸다. 왜 거기에 그렇게 있느냐고, 뭘 잘못했길래 그런 벌을 받느냐고 물어봐 주길 바랬다. 담임 선생님은 내 옆을 지날 때마다 옆구리에 끼고 있는 까맣고 긴 출석부를 어색하게 만지막 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친절을 베풀었다. 중학교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서의 일이다. 나와 같은 국민학교를 졸업했고 우리 옆동네에 살던 학생이 가출을 했다. 그 애가 오래 결석을 하자 그 반의 담임선생님이 그 학생과 친한 애가 누구인지 찾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날 지목했다고 한다. 나는 그 애가 우리 동네에서 언덕을 하나 넘으면 있는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집에 가는 길에 몇 번 동행을 한 적은 있지만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 애가 사는 곳이 대충 어디쯤이라는 정도만 알았지 정확한 집의 위치도 몰랐고 가족이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 애의 담임 선생님은 날 교무실로 불렀다. 나에게 그 애가 지금 어디 있는지 대라고 했다. 난 모른다고 했고 그는 날 때렸다. 열 번을 물었고 열 번을 모른다 답하고 열 번을 맞았다. 수업시간 종이 치자 교무실에 무릎을 끓고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쉬는 시간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내 앞을 지나칠 때 마다 너무 창피했다. 내가 큰 잘못을 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일텐데 난 그 잘못을 어떻게 만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애가 어디 있는지 말하고 빨리 그 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애가 어디 있는지 알았다면 말이다. 난 중학교 1학년 학생이 가출을 했다는게 믿겨지지도 않았고 선생님이 뭘 잘못 알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만약 그 애가 진짜 가출을 했다면 어디로 갔을까 궁금하기도 했다가 슬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애의 담임선생님도 걱정이 너무 커서 날 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들이 하나 둘 짐을 싸서 퇴근을 할 때까지 난 하루 종일 교무실에 있었다. 그 애의 담임선생님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 테니 고백을 하라는 말투로 같은 질문을 했다. 난 그 날로 그 악몽을 끝내고 싶었다. 어떻게든 그 선생님의 마음을 돌려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H는 다시 집에 돌아올 거에요” 나는 맞았고 다음날 아침 학교에 오면 교실로 가지 말고 바로 교무실로 오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왔다. 그렇게 지낸 시간이 사흘이었는지 나흘이었는지 고맙게도 이제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일을 지우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운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덮어두는 거다. 살기 위해서. 그 기억을 그대로 갖고는 정상적으로는 살아낼 수 없어서. 내 몸의 전율과 그 선생님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과 증오는 희미해졌지만 그 일은 지워지지 않는다.


난 선생님이 H의 집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안다.


학생 기록부에 있는 우리집 주소는 마포구 성산동 산 11-1번지 였고 언덕 너머 H의 주소는 아마 산 20번지나 아니면 30번지 정도 였을거다. 그 주소라면 담임선생님이 학생을 찾아갈 필요가 없는 곳이다. 그 주소는 거기에 살고 있는 학생을 몇날 몇일 교무실에 꿇어 앉히거나 이유없이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한 실마리였을거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학생기록부에 뭐라고 적혀있든 간에 그 일이 있던 그 해 성산동 산 11-1번지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20번지나 30번지도 마찬가지다. 그 선생님이 H의 집을 찾아 갔었더라면 H가 가출해서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을 거다. H가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아느냐고 먼저 물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생님이 H의 집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H의 장기결석이 가출로 인한 것이라는 그의 추론도 틀렸을 수도 있다. H가 가출했다는 유일한 증거는 학생기록부에 나와있는 주소뿐이다. 성산동 산 20번지. 그 선생님에게 있어서 그 주소에 사는 아이들은 다른 주소에 사는 아이들처럼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결석을 할 수 없다. 그 주소의 아성이들은 가출을 하는 아이들이다. 뉴턴이 사과를 봤고 헤겔이 정신을 봤고 맑스가 구조를 봤다면 그는 주소를 봤다. 물리를 가르쳤던 그 선생님도 과학자로서 뭔가 하나쯤은 몸소 증명해 보이고 싶었나 보다. 주소가 존재를 결정한다고.


성산동 산 11번지


성미산자락에 더덕더덕 붙어있던 무허가 집들이 헐리면서 일부 동네 사람들은 보상을 받아 성남으로 이주를 했다. 내 친구 해진이네가 제일 먼저 동네를 떴다. 당뇨병으로 퉁퉁 부은 정강이를 꾸욱 눌렀다가 손을 떼면 살들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최씨 아저씨는 무슨 마술이라도 하듯이 그걸로 우릴 웃기곤 했다. 아저씨가 삼발이 용달차 짐칸에 앉아서 마지막 마술을 보여줬다. 나는 웃으려다가 갑자기 눈두덩이 뜨거워져서 눈을 비비느라고 차가 떠나는데도 아저씨한테 인사를 못했다. 그 날 이후 동네에는 우리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우리는 남의 집 옆의 자투리땅에 빠듯이 덧대어 만든 방 한 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보상 대상이 아니었고 성남으로도 갈 수가 없었다. 늦 여름 오후 햇볕이 부드럽게 등짝에 업혀 간지럽힐 때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철거요원들이 갑자기 들이 닥쳐서 우리집을 헐고 갔다. 난 해진이네 집터로 갔다. 그 집터에 있는 벽돌이며 남기고 간 잡동사니들을 말끔히 걷어내고 많지도 않은 우리집 세간살이를 부지런히 날라다 놓았다. 내가 제발 우리집을 헐지 말아 달라고 철거요원들에게 간절히 울며 애원했던거며, 해진이네 집터를 치울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등 무용담을 늘어놓을 때 엄마, 오빠, 언니는 허탈함과 좌절감을 보였지만 난 속으로 무척 뿌듯했다. 해진이네 집은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마루가 있고 방이 두 개나 되는 제대로 된 집이었고 나는 늘 거기 사는 해진이를 부러워했는데 이번에 해진이네 집터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엄마와 오빠가 급히 가서 천막을 구해왔고 그날 저녁 우리는 해진이네 마루 자리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며칠이 지나자 철거요원들이 또 나타나서 해진이네 집 구들장을 곡괭이로 다 부수고 갔다. 거기서는 누워 잘 수가 없다. 우린 해진이네 집 다음으로 큰 집으로 이사를 했고 다음날은 철거요원들이 와서 그 집의 방구들을 부순다.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구들장이 남아있는 집들 중 크기가 큰 순서대로 우리 천막을 옮겨 갔다. 그 가을 친구도 없는 동네에서 혼자하는 놀이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 때의 훈련덕에 나는 집에서 큰 가구를 옮길때나 회사에서 무거운 물통을 정수기에 올릴 때 주변의 남자를 부르지 않는다. 동네 모든 집터를 다 돌고 불을 땔만한 구들장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어느 덧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 사이 천막에서 우리 식구랑 동거하던 누렁이는 새끼를 여섯 마리 낳았다. 마지막에 나온 강아지는 태내 발육부진으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 몸이 어찌나 작고 가벼웠는지 언니가 그 녀석을 ‘가뿐이’라고 불렀는데, 꼭 우리 식구의 모습 같았다. 내가 살던 산동네에도 길만 건너면 이층집 삼층집이며 ‘식모’ 언니와 검은 승용차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 소망의 크기는 그 길을 건너지 못했다. 너무 먼 세계였다. 내 기도는 ‘해진이네처럼 큰 집에 살게 해주세요’에서 ‘성남으로 가는 보상을 받게 해주세요’로 바뀌거나, ‘우리 집이 철거되지 않게 해주세요’에서 ‘한 집이라도 구들장이 남아있게 해주세요’ 로 바뀌는 정도였다. 철거는 도시 정화사업과 강제이주의 일환이었고 난 친구들과 동네에서의 놀이를 잃었다. 마포구 성산동 산 11-1번지와 20번지, 30번지의 집들과 사람들은 그렇게 없어졌다. H의 담임 선생님은 몰랐지만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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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미투(#MeToo) 운동과 ‘빌리 그래함 룰’(The Billy Graham Rule)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요즘 뉴스 미디어에서 ‘마이크 펜스 룰’ (The Mike Pence Rule)[각주:1] 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복음주의 개신교인으로 알려진 미국의 현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2002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자신의 부인이 아닌 여성과는 단둘이서 식사를 하지 않고, 자신의 부인이 동석하지 않은 모임에서는 술도 마시지 않는다고 한 것에서부터 그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미 미국의 많은 여성들이 ‘마이크 펜스 룰’ (이하 펜스 룰)이 성차별을 더욱 심화시키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막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미투(#MeToo) 운동이 사회 여러 분야로 퍼져 나가는 이 때에 행여나 성희롱, 성추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거나 성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 펜스 룰을 적용하는 직장내 남성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 보도가 나오고 있다. 즉, 여성 직원들과는 일대일의 업무상 대화도 자제하고, 회식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채용조차 꺼려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배제가 직장내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대치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원래 ‘펜스 룰’은 미국의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 중 한명으로 알려졌고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의 확산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빌리 그래함 목사의 이름을 딴 ‘빌리 그래함 룰’ (The Billy Graham Rule)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에서 복음주의가 한창 퍼져나가던 때인 1948년에 당시 목사들이 돈과, 권력, 거짓말, 성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보고 이를 경계하고 막기 위해서 그래함 목사가 몇몇의 동료 목사들과 함께 선포한 ‘모데스토 선언’ (Modesto Manifesto)이 ‘빌리 그래함 룰’ (이하 그래함 룰)로 불려져왔다. 얼마전 타계한 빌리 그래함 목사는 모데스토 선언이후 자신의 부인이 아닌 여성과는 단둘이 만나지도 않고, 식사를 하지도 않고, 출장도 가지 않음으로서 구설수에 오른적이 없는 도덕적으로 ’위엄’ (integrity)을 지킨 목사로 칭송받았다.


최근 한국에서 미투운동 동참자들의 증언이 보여주듯이 여러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희롱, 성추행도 다반사이고, 피해자가 가해자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성폭행도 셀 수가 없는 듯 하다. 그런데, 개신교를 비롯한 종교계에서 일어난 성폭력의 사례들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경우가 많다. 영역의 특성상 종교지도자들이 공적이고 개방된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일삼기 보다는 밀폐된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을 저지른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혹시 ‘펜스 룰’이나 ‘그래함 룰’이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러할까?‘그래함 룰’이나 약간 수정된 형태의 룰을 지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남성목사들을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 아래와 같이 말하는 남성목사들의 ‘(성)도덕성’을 칭찬하는 교인들을 접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자 성도님과 같이 차에 탈 일이 있으면 그 분은 차 뒷좌석에 앉게 해요. 괜히 옆좌석에 타고 같이 가다가 구설수에 오를 수 있어서요…”  

“여자 전도사님들이나 여자 목사님들은 같이 사역하기가 불편해요. 심방을 같이 다니기도 불편하고… 그래서 남자 전도사들이 편합니다.” 

“심방갈 때는 와이프와 꼭 같이 갑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를 존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함 룰’은 성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을 보호하지도 않고 애초에 그럴 의도도 없이 만들어진 룰이다. 오히려 이 룰은 이미 2010년에 시작된 한국교회내 미투운동이 왜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는가를 보여주는 한 단서이다. 이 룰과 개신교 전반에 깔려있는 여성혐오적 사상을 한국기독교가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뿌리 뽑지 않는다면 김진호 목사가 최근 시평[각주:2]에서 전망한 것 처럼 지금의 미투운동이 개신교내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래함 룰’이 왜 해결책이 아닌 문제가 되는 것일까?


첫째, ‘그래함 룰’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개신교 (백인)남성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평판에 흠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고 따르려고 했던 룰이다. 이 룰에 담긴 기본적인 전제는 여성이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성을 ‘성적 유혹’을 도발하는 존재로 보는 여성혐오적, 남성주의 시각의 전형적인 경우이다. 물론, 여성을 죄의 근원으로 보는 여성혐오적, 남성주의적 시각의 성서해석과 신학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바람직한’ 규칙으로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거룩한 종’인 ‘영적’ 지도자들을 여성들의 유혹으로 부터 지켜낼 수 있게 해주는 룰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시각 – 여성들이 ‘영적’ 지도자들을 타락으로 이끈다 — 이 교회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 동참을 망설이게 하거나, 미투 참여후에도 ‘2차 피해’를 교회와 주위 교인들로 부터 지속적으로 당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거룩한 종’을 타락시키는 것은 ‘사탄’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 룰은 미국의 백인 중산층, 이성애 핵가족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이 모델에서 (백인)남성은 가족의 ‘머리’이고, 남성과 여성의 성은 결혼 안에서만 허용이 된다. 또한 가족의 ‘순결’을 지키는 것은 여성의 책무이다. 이런 룰이 빌리 그래함으로 대표되는 복음주의 백인남성 목사들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룰은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중산층, 개신교, 이성애자 백인여성들을 ‘이상적’ 여성상으로 여겼던 19세기 ‘백인 레이디’ (the White Lady) 담론과 ‘가정예찬/숭배’ (the Cult of Domesticity) 담론 –(백인)여성들이 있어야 하는 공간은 머리되는 남편을 섬기고 자녀들을 도덕적으로 성장하도록 양육하는 사적인 공간이다 – 을 바탕으로 한 젠더화된 신학에 근거하고 있다.[각주:3] 이 두 담론들에는 성서에도 깊이 새겨져 있는 여성을 ‘성녀’와 창녀’ (the ‘virgin/whore’ dichotomy)로 나누는 이분법이 전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는 미국의 역사적 상황에서 ‘순결한’ 백인여성들과 대조되어온 ‘지나치게 성적’(hypersexual)이고, ‘저속’하고, 남성들을 유혹하는 사악한 ‘이세벨’ (Jezebel)로 여겨진 흑인여성들이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지속적으로 흑인여성들의 여성성은 다양한 형태의 성적인 존재로 타자화되고, 폄하되고, 대상화 되어지고 있다.[각주:4] 물론 (백인)여성 목회자들 (설사 모든 모임에 배우자를 동행시킬수 있는 여성목회자라 할지라도)이나 퀴어목회자들은 이 룰을 지키는 사람들의 상상에서조차 존재할 수가 없다.


셋째, ‘그래함 룰’ 또는 ‘펜스 룰’은 남성지도자의 ‘성적 타락’을 막거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미리 방지하는 방안이 자신의 부인을 벽으로 삼는 성분리 (sex segregation)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남성지도자가 행여나 ‘성적 타락’을 했거나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 그 모든 책임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부인이나 자신을 ‘타락의 길로 이끈’ 여성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남성지도자들의 (성)도덕적 위엄과 품격을 지키는 길은 여성을 피하거나 여성을 원망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빌리 그래함 룰’은 교회내의 성폭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성애가부장적인 교회 구조와 여성혐오가 만연한 문화를 견고히 하는 한 축이 되어 왔다고 볼수 있다. 성폭력이 권력(power)과 폭력의 문제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성폭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고 지속시키는 구조를 들여다 보고 구조적 차원에서 원인 분석과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기에 여성혐오적이고 이성애가부장적인 교회의 구조를 견고히 하는데 동조한 ‘그래함 룰’을 해체하고 그 룰의 신학적 전제들을 교회에서 뿌리 뽑는 것이 교회내의 미투행진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데 절실하게 요청된다.[각주:5]





ⓒ 웹진 <제3시대>



  1. ‘The Mike Pence Rule’ 이나 ‘The Billy Graham Rule’의 ‘rule’은 ‘규칙’ 또는 ‘법칙’으로 번역될수 있으나 이 글에서는 미디어에서 쓰는 ‘룰’로 쓰고 있다. [본문으로]
  2.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935 김진호 목사의 지난 웹진 시평 '왜 개신교에선 '미투' 운동이 이어지지 않는가' [본문으로]
  3. 참고. Kathy Rudy, Sex and the Church: Gender, Homosexuality, and the Transformation of Christian Ethics (Boston, Mass: Beacon Press, 1997). [본문으로]
  4. 10년전 미국에서 미투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흑인여성 타라나 벌크(Tarana Burke) 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 –특히 여러 소외 계층의 여성들–이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장벽들 때문에 미투운동에 동참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인지하고 어떻게 미투운동을 넓혀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5. 자신들의 (성)도덕적 위엄과 좋은 평판을 지키기 위해서 ‘그래함 룰’을 따르는데 주력한 (남성)목사들과 지도자들도 자신들이 성폭력 가해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쉴 것이 아니라 ‘그래함 룰’을 하루 빨리 파기하고,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정의로운 해결과 회복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고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보다 근본적인 책임을 지게 하는 교회내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정착시키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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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거는 여자들



유하림*

 


열일곱 살에 나는 암묵적으로 혼후관계를 지향하고 있었다. 암묵적었던 이유는 학교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 술, 담배, 섹스 같은 종류의 것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쿨해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낙태는 살인이다’ 라는 슬로건에 동의하는 바였고, 페미니스트였던 학교 선생님께서 낙태와 관련한 여성인권에 대해 말씀 하실 때에 페미니즘은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기괴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시기에 가끔씩 만나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모르는 남성과 섹스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새로운 애인과 섹스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삼일을 넘기지 않았다. 지금이야 아무런 감정없이 그녀의 행동에 대해 서술할 수 있으나, 당시엔 쿨하다고 여김과 동시에 문란하고 저급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자가 스스로 지켜야 할 몇가지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몸 이기도, 정조 이기도, 순결이기도 했으니 그랬다.

나는 그녀와 그리 친하진 않았고 다만 그녀가 하는 이야기에 쿨하다는 감정만 내비치며 대화에 임했다. 어느 날인가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전화는 잘 하지 않던 사이였기에 내키지 않는 맘으로 전화를 받았다. “하림아 나 생리를 안해”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엔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내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지난번 애인과 섹스를 한 후로 몇 달째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나는 무조건 그녀의 뱃속에 있는 생명인지 세포 덩어리인지간에 그것을 없애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들기 전엔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그녀의 삶을 떠올렸다. 생리를 오래도록 하지 않았던 걸 알아채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내게 전화를 하던 그녀의 마음, 배부른 모습으로 지하철에 탄 그녀를 바라볼 사람들, 그녀가 안게될 아이가 아닌 부담감, 그리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육아에 대해 상상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 많은 생각들을 모조리 말 할 수는 없었고 임신테스트기를 해보자고만 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으로 테스트기의 가격을 알아보았다. 기계라고 하면 왠지 2만원은 훌쩍 넘을 것 같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오천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그녀에게 전달해주고 연락을 기다렸다. 연락을 기다리면서 낙태를 할 수 있는 병원에 대해 알아봤던 것 같다. 평소 즐겨 이용하던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도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한줄이래.” 

“한줄이 뭔데?” 

“임신 아닌거.”


그녀가 한줄이라고 말해주는 순간까지도 나는 마음이 쿵쾅거렸다. 그리곤 질문을 했던 거 같다. 

“앞으로 계속 섹스할거야?” … 

“아마”


그리곤 전화를 끊었고 몇번 쯤 친구들에 섞여 그녀를 만나다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나는 비슷한 전화를 무수히 받았다. 모두가 잠든 어둔 밤에,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이른 새벽에, 햇살이 직선으로 꽂히는 정오에, 여자들은 내게 전화를 했다. 내가 가장 무서웠던 건 생명인지 모를 것을 없애는 일보다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계획되지 않은 아이를 낳는 일이었으며 그것이 책임회피라고 하더라도 나는 지지할 수 밖에 없다.

내게 전화를 걸어온 여자들은 왜 그들의 상대에게 전화하지 못했을까. 하긴 했던걸까. 그러고도 여자들은 다시 그 상대를 만났을까. 헤어졌을까. 못 만났을까. 여자들에게 죄가 있다면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점일까. 그렇다면 여자들은 무엇을 지켰어야만 했을까. 순결을? 피임을? 침묵을? 그렇다면 왜 여자들만 지키지 못한걸까. 여자들이 아닌 존재는 아무것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걸까.

죄가 없다면 모두에게 없어야 한다. 죄가 있다고 해도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 죄의 유무는 본인만이 판단해야 한다. 그 누구도 타인의 신체와 선택에 대하여 단죄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이 불법이라면 국가는 출산과 육아를 최선으로 도와야만 한다. 상대 남성에게도 똑같이 처벌해야만 한다. 무엇도 보장되지 않은 채로 임신중절이 불법이라면 나는 가장 최전선에서 그것을 반대하겠다.


많은 여자들을 봤다. 그 여자들 속엔 나도 존재한다. 나는 더이상 나와 비슷한 여자들을 보고싶지가 않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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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유하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 할 낱말을 찾는 것은 항상 고민이다. 짧은 시간 내에 나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현재 나의 상태와 고민, 가치관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낱말은 ‘페미니스트’다. 그치만 자주 망설인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스트란 누군가에게는 반가울테지만 누군가에게는 선전포고일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분노를 돋구는 불쏘시개이기도 하다. 그러니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꺼내기에 망설일 수 밖에 없는 소갯말이다.

   페미니스트는 성차별에 반대하며 모든 성이 평등하다고 믿는, 나아가 성해방을 도모하는 사람들이다.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성평등을 지지해” 라는 문장 안에는 단순히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간이 숨어있다. 과연 성평등을 지지한다는 건 뭘까? 그건 ‘성평등’ 이라는게 내 입 안에만 머무는게 아니라 실제로 이뤄질 수 있으려면 어떤 일들을 거쳐야 하냐는 질문이다. 그러니 페미니스트란 성차별에 반대하며 모든 성이 평등하다고 믿는, 나아가 성해방을 도모한다는 문장의 비교적 구체적인 방향성이다.

   이를테면 ‘나는 동물을 사랑해’라는 문장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동물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동물원에 자주가는 걸 떠올릴테지만, 어떤 사람은 동물원에 대한 폭력성을 인지하고 그런 구조를 바꿔나가는 걸 궁리한다. ‘나는 자연을 사랑해’라는 문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에 꽃을 꺾어 간직하지만, 어떤 사람은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담는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우리는 한 문장 안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식들에 대해서 무엇이 정말로 그 문장에 가까운 일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세세하고 구체적인 방식은 더 많은 고민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당연하게 옳은 일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여태껏 합의된 방식이란 건 있기 마련이다. 페미니즘이라고 다를쏘냐.

   ‘성평등을 지지한다’는 문장은 이런거다. 적어도 임신중절에 찬성하며,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에 반대한다는 것. 여성에게 밤길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길 바라는 것.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당신이 당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아니하길 바라는 것. 그 때문에 페미니스트 선언은 성평등에 찬성하는 동시에 그것을 삶의 실천 방식으로 가져가겠다고 말하는 적극적 행위가 된다.  

   여태껏 합의된 방식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페미니스트로서 중요한 덕목이랄게 있다면 ‘나는 언제나 가해자가 될 수 있음’에 대한 인지 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다.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가해자가 될 수있다. 이해하기 쉽게 일화로 예를 들겠다.

   필자는 여성이고, 22살이고, 휴학생이고, 페미니스트다. 길을 가다가 성희롱을 당하고, 앳된 얼굴 덕에 택시기사는 늘 반말이다. 그러나 서울에 살고 있으며, 비장애인이다. 서울 어디서 약속이 잡히든 삼십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는 한없이 약자의 정체성을 지니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누구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내가 항상 같은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는 없는거다.

   알바할 때의 일화이다. 휠체어를 탄 중년 남성분이 카페에 왔다. 카운터에는 나와 신입 알바생이 있었는데, 신입 알바생의 용모는 긴 생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지니고 있던 39세 알통남이었다. 손님은 “사장님 이 과자 얼마에요?” 물었고, 나는 3000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손님은 “나는 사장님한테 물었는데~ 정확한 가격 맞아요?” 하고 되물었다. 그 순간 엄청나게 화가 났다. 정확한 가격이 맞다며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손님을 쏘아봤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고민했다. 나는 장애를 가진 중년 남성 손님에게 화를냈다. 화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비장애인으로서의 권력관계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 사람이 비장애인 중년 남성 손님이었다고 해도 화를 낼 수 있었을까? … …

   이 일화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위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위치일 수 없다.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의도였건, 내가 어디서 어떻게 약자의 위치성을 가지고 있던지간에 나는 충분히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위치성 또한 가지고 있다. 위치에 대한 유동성을 인지하는 것은 나의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나도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자는 얘기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함축적이지만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낱말이 아직까지는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생각한다’라고 밖에 쓸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은 다 각자의 페미니즘을 한다. 다양한 방식의 고민과 실천으로 페미니즘의 다양성을 넓혀간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보류다.

   얼마 전에 새롭게 만나게 된 분에게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니 어디까지를 성해방이라고 봐야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체 무엇이 성해방이냐는 질문이다. 무엇이 성해방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남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 성해방일 수도 있고,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이 사라지고 모두가 탈젠더화 된다면 그것이 성해방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부터가 성해방(혹은 성평등)의 시작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출발선은 존재한다는 점이다.

   내가 페미니스트 감별사가 되어서 페미 완장을 채워주겠다는 뜻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래야 한다는 또 다른 페미 코르셋이 존재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해방을 위해 시작한 일들이 누군가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에게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 뿐이다. 꾸준히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 나의 빈약한 상상력에 아무도 다치지 않으려면 나를 확장시키는 수 밖에는 없다. 새해에도 나는 여전히 페미니스트이며, 나에게 페미니스트라는 소갯말은 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 가해자성을 인지하는 사람, 꾸준히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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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된 불쾌함: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킹스맨: 골든 서클>



조은채*

 

※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와 <킹스맨: 골든 서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이하 <시크릿 에이전트>)의 속편인 <킹스맨: 골든 서클>(이하 <골든 서클>)은 개봉을 앞두고 불거졌던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예상되었던 대로 흥행하고 있다. 전작인 <시크릿 에이전트>가 그랬듯이, <골든 서클> 역시 여러 모로 준수한 오락영화이다. 무엇보다도 141분의 상영시간이 큰 지루함 없이 흘러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시크릿 에이전트>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인 ‘신선함’은 <골든 서클>에서는 더는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그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는 베테랑 요원인 해리 하트(콜린 퍼스)의 신조 아래, 동네 ‘양아치’였던 주인공 에그시(태런 에저튼)는 세계를 구한 국제 비밀정보기구 요원이자 최고의 ‘젠틀맨’으로 거듭난다. 교육과 훈련을 바탕으로 습득한 에그시의 ‘매너’는 열두시가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요정의 마법 따위가 아니기 때문에, 에그시는 유리구두보다 단단하고 안정적인 옥스포드화를 신고 새로운 세계에 성공적으로 입성한다. 관객의 예상을 조금씩 비틀어 전개되는 스토리, 기발하면서도 현란한 액션, 매력적이지만 구구절절하지 않은 다양한 캐릭터는 영화의 신선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하지만 <시크릿 에이전트>의 마지막 몇 분은 산뜻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에그시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돌연 불쾌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썩 나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던 <시크릿 에이전트>의 여성관에 대한 평가는 갑자기 곤두박질 친다. 틸디 공주는 에그시에게 “세상을 구하면 뒤(asshole)로” 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이후 정말로 세상을 구한 에그시는 약속을 이행 받기 위해 달려간다. 영화는 에그시가 틸디라는 전리품을 차지하는 과정의 바로 그 직전까지를 보여준다. 카메라가 누워있는 틸디 공주의 몸을 ‘전형적인’ 구도로 훑고, 종래에는 그녀의 벗은 엉덩이만이 스크린을 꽉 채우던 순간의 당혹과 불쾌함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처럼 <시크릿 에이전트>의 불쾌함은 마지막 몇 분에 응축되어 있었다. 영화관을 나선 뒤에야 불편했어야만 했을 장면과 설정이 머릿속에서 플래시백처럼 재생되었다. 하지만 영화가 지닌 신선함이라는 마법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중에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조금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다.


  <골든 서클>은 <시크릿 에이전트>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한다. 이미 한번 시작한 이야기를 반복해야 하지만, 여전히 새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시크릿 에이전트>에는 뒷골목 양아치에서 영국 최고의 젠틀맨이 되는 에그시의 신데렐라 서사가 있었다. 그 시작과 끝이 대단히 분명한 이 고전적인 이야기는 분명 전형적이지만 그래서 더 효과적이고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에그시가 젠틀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 서사를 재활용할 수 없게 된 <골든 서클>은 전작이 구축해둔 세계관을 철저하게 부수는 것부터 시작한다. 메인 빌런 포피(줄리언 무어)를 통해 킹스맨 본부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인원을 몰살시키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전작의 신데렐라 서사만큼이나 효과적인 메인 스토리를 찾지 못한 탓인지, <골든 서클>은 <시크릿 에이전트>보다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방향을 헤맨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그나마 마지막 장면에 응축되어 있었던 눈살 찌푸려지는 여성관은 <골든 서클>에서는 그 범위가 영화 전체로 확장되고, 때로는 지나치게 반복된다. 여성 캐릭터의 등장도 활약도 대폭 줄어든 <골든 서클>에서 가장 중책을 맡고 화면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것은 악당 포피이다. 거대 마약상인 포피는 마약을 합법화라는 조건으로 세계 정부와 거래를 한다. 포피가 쥐고 있는 것은 한 번이라도 마약을 했던 모든 사람의 목숨이다. 전 세계의 마약에는 이미 포피가 고의로 넣은 바이러스가 포함되어 있고, 해독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포피 뿐이기 때문이다. 포피는 환상 속의 놀이공원 같은 ‘포피랜드’에서 신입 부하에게 상냥한 표정과 다정한 말씨로 동료를 갈아 인육으로 만들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포피는 참 독특하고도 대단한 악당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에 다다를수록, 진정한 흑막은 포피를 역이용하고자 했던 미국의 ‘남성’ 대통령이나 알고 보니 스파이였던 스테이츠맨의 ‘남성’ 요원 ‘위스키’에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포피는 100여분이 넘게 열심히 최고의 악당을 연기하지만, 결국 임팩트 없는 죽음과 함께 퇴장 당한다. 포피는 <골든 서클>의 메인 빌런이라고 소개되지만, <골든 서클>의 클라이맥스는 포피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스토리 상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은 상당 부분 남성 캐릭터들에게만 할당되어 있기 때문이다. 포피에게는 메인 빌런이라는 타이틀과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적절히 활용되지 못하는 설정이라는 껍데기만이 주어진다. 아름다운 ‘포피랜드’가 포피 외에는 아무런 정서적 상호작용 없이, 포피와 로봇만으로 굴러가는 껍데기 같은 허상인 것처럼 말이다.


  포피랜드가 포피에 대한 거대한 메타포라고 해석하고 끝낼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예고되었던 것보다 심심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포피만의 캐릭터성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골든 서클>에 나오는 모든 여성 캐릭터가 ‘포피랜드’ 같았다는 사실이다. 겉보기에는 매력적인 설정을 부여받았지만 실속 있는 역할이나 장면은 주어지지 않았고, 그저 껍데기뿐이었다. 더 나아가, 포피랜드에 구현되어 있던 ‘여성성’이 구시대적이고 보수적이었던 것처럼, <골든 서클>이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피를 제외한 <골든 서클>의 주요 여성 캐릭터는 오로지 두 가지 유형으로만 등장한다. 여성이라는 점이 강조되는 캐릭터(틸디 공주, 클라라)는 남성 캐릭터의 ‘여자’친구라는 점만이 두드러졌고,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성적 대상화의 대상으로만 소비된다. 반면, 여성성이 강조되지 않는 캐릭터(진저, 록시)는 아무런 활약도 존재감도 없이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렸다. 예를 들어, 비록 마지막에 성적 대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교본이 될 만한 장면을 남기기는 했지만, 악당 발렌타인에게 당당하게 맞서다가 감옥에 갇혔던 <시크릿 에이전트>의 틸디 공주는, <골든 서클>에서는 에그시 때문에 마약에 손을 댔다가 구출 당하는 여자친구로만 남을 뿐이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에그시보다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그리고 아마 최초의 여성 킹스맨 요원일 록시는 영화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죽으면서 영화의 서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찰리의 애인이었던 ‘클라라’이다. 찰리는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유력한 킹스맨 후보였지만 탈락한다. 평민 에그시에 밀려 떨어진 것이 참을 수 없었던 ‘귀족’ 찰리는, 포피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그의 부하가 된다. 클라라는 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심지어 포피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놀랄 만큼 메인 스토리에서 비켜나 있다. 클라라에게는 그저 찰리’의’ 전 ’여자’친구라는 정체성만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라라는 문제의 ‘추적기 장면’에서 완전히 도구화된다. 찰리를 통해 포피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서, 에그시는 찰리와 연락을 주고받는 클라라에게 추적기를 달아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쳐있다. 하지만 이 추적기는 대단히 특이하게도 콧구멍이나 질과 같은 점막이 있는 곳에 삽입되어야만 작동할 수 있다. 에그시는 클라라의 콧구멍에 추적기를 넣을 길이 요원해 보였는지 그녀의 성기에 이 추적기를 넣기로 한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발렌타인이 와인 안에 추적 물질을 넣어 상대에게 건넸던 것과 비교하면 일종의 기술 퇴행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척이나 미심쩍은 이 추적기가 겨냥하고 있는 대상의 성별 역시 무척 제한적이다. 남성에게는 어떻게 사용하겠다는 걸까? 그때는 무리해서라도 콧구멍이나 항문? 아니, 애초에 남성이 대상이었다면 이런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추적기가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추적기의 존재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기 위한 아주 질이 나쁜 농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클라라는 이 불쾌한 장면을 구현해내기 위해 만들어낸 캐릭터처럼 보인다. 불필요할 정도로 포르노와 유사한 방식으로 클라라의 몸을 훑는 카메라보다도 더 끔찍했던 것은, 추적기가 들어간 클라라의 질 안의 모습까지도 적나라하게 연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스크린이 틸디 공주의 엉덩이만으로 채워졌던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한 발 더 나가, <골든 서클>은 여성의 질 내벽으로 스크린을 꽉 채운다. 클라라의 몸뿐만 아니라 클라라라는 인물 자체는 완벽하게 ‘객체’가 된다. 그리고 이 불쾌한 장면을 위해 꽤 긴 시간이 할애되어 있다.


  <시크릿 에이전트>의 개봉 이후, 많은 페미니스트 비평가는 이 영화의 마지막 몇 분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감독인 매튜 본은 이들을 블러디 페미니스트로 일축하고 전혀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그래도 그나마 마지막 몇 분으로 응축되어 있었던 불쾌함이 <골든 서클>에서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늘어났으며, 오히려 강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이로써 <골든 서클>은 나쁘지 않다고 말할 때조차 가책을 느끼게 되는 꺼림칙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 필자소개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조형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현상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동일 전공으로 석사에 진학하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관심 분야는 페미니즘,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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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민소매 입기



유하림*

 


    올 여름은 정말 더웠다. 에어컨을 발명해 낸 사람에게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수준이었다. 바깥에서 10분만 서 있어도 땀이 주륵주륵 흘렀고, 습도는 높아 숨이 막혔다. 이런 몇 주간의 무더위 속에서도 내가 차마 도전하지 못한 것이 민소매다. 민소매를 입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깨를 가리는 한 뼘만한 천때기의 있고 없음이 생각보다 쾌적함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작년 여름에 여행으로 베트남에 갔다. 첫 해외여행이었으므로 큰 맘 먹고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다. 겨드랑이 사이로 바람을 맞이 한 것은 초등시절 이후로는 처음이었는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매가 없다 뿐이었지만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오는 날 다시 반팔 티를 입었고, 허무함을 느꼈다. 나에게 민소매란 남의 눈을 피해서만 입을 수 있는 것이니까.

   페미니즘 열기가 한창 뜨거운 이 때에 노브라도, 겨털 기르기도 아니고 민소매 입기 따위가 무슨 글감이냐고 스스로에게도 질문했지만 내게 민소매란 그런 것이다. 삐져나오는 겨드랑이 살과 통통한 팔뚝에 대한 좌절과 증오를 뚫고 용기를 내야만 하는 것.

   아직 십대가 되기도 이전, 0-9세 사이로 분류되던 때에 한의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 엄마는 태양인 태음인 등의 체질 분류에 꽂혀있었고, 나의 체질 또한 가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생년월일 등을 묻고, 내 손목에 맥을 짚어보기도 했다. 그리곤 드러난 내 팔뚝을 보더니 “너 치킨 좋아하지 ?” 하는 것이다. 그렇게 덧붙였던 이야기. “살을 빼려면 치킨을 먹지 말아야해. 치킨 먹으니까 팔뚝에 살 찌는거야.”

   그 뒤로 몇 해간 꾸준히 할머니와 엄마는 치킨을 먹을 때 마다 내가 가진 팔뚝 살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러면 치킨이 아니라 팔뚝 살을 집어먹고 있는 것 같았고,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팔뚝 살은 안 좋은 것. 팔뚝 살을 만드는 것은 치킨. 치킨을 먹으면 안돼. 그런데 나는 치킨이 먹고 싶어. 그럼 치킨을 먹어야지. 그치만 치킨을 먹으면 팔뚝 살이 찌는데. 팔뚝 살은 안좋은 것. 이라는 생각의 회로가 나를 괴롭혔다. 팔뚝과 치킨, 치킨과 팔뚝. 이 사이에 실제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렸을 적 한의원에서부터 거슬러온 내 팔뚝 살에 대한 증오는 꽤나 긴 것이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났다. 한 여름이지만 반팔에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자신은 몸이 너무 왜소하고 말라서 그것을 가리기 위해 여름에도 긴 옷을 입는다고 했다. 무언가 이상했다. 나는 통통한 팔뚝 살과 삐져나온 겨드랑이 살에 대한 눈초리를 이길 수 없어 몸을 가리는데, 나와는 달리 마른 체형의 그녀 또한 몸에 대한 눈초리를 이길 수 없어 몸을 가린단다. 우리는 다른 몸을 가졌지만, 같은 이유로 민소매를 입지 못한다..

   이러나 저러나 눈초리가 신경 쓰인다면 그냥 한번 입어볼까 싶어 칠 천원을 주고 민소매를 하나 샀다. 집에 돌아와 입어보니 삐져나온 겨드랑이 살과 통통하고 하얀 팔뚝이 밉지만은 않았다. 밖에도 입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최고 기온이 33도를 찍던 날, 민소매를 꺼내 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가기 직전, 현관 앞 거울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춰보다 결국 다른 옷을 입고 나갔다. 괜찮아보이다가도 막상 마주하면 무너지는 게 나의 몸이다.

   이제는 타인의 몸 (특히나 살이 찐 사람)에 대한 왈가왈부가 경솔한 일이라는 게 상식이다. 내가 민소매를 입고 나간다고 해서 대놓고 수군댈 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오랜 기간 이어져 온 팔뚝 살에 대한 증오가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란거다.

   팔뚝 살에 대한 미움은 주위 사람들의 온갖 협조를 통해 만들어졌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야만 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게 어디 팔뚝 살 뿐이랴. 통통한 허벅지도, 뱃살도, 다리 털도, 겨드랑이 털도, 얼굴에 난 여드름도, 까무잡잡한 피부도.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용기를 내야만 하는 종류의 것이다. 그러니 민소매를 입는 것 하나도 내게는 어려운 일이다.

   외모에 대한 기준이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잣대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많은 다이어트 제품이, 피부 미백제가, 제모 용품이, 여드름 패치가 여성을 타겟팅 해 광고를 만든다. 티비를 켜면 비교적 다양한 체형의 남성이 나오지만 (사실 티비 예능에선 여성을 찾는 것이 어렵다.) 여성은 말랐거나, 뚱뚱해서 놀림 받을 뿐이다. 그렇게 티비에 나오는 여성들의 피부와 다리는 어찌나 매끄러운지, 손가락을 올려보면 미끄러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민소매를 입었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간 건 용기를 내지 못한 내 탓이 아니다. 민소매를 입는데에 무려 ‘용기’까지 필요하게 되는 것, 그러나 차마 그 용기도 낼 수 없었다 것. 이 세계의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는 증명이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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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 성별화된 세뇌(1)





조은채*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가스등(Gaslight)>(1944)은 『가스등 이펙트』의 저자 로빈 스턴(Robin Stern)에 의해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고 명명된 정서적 학대의 양상을 면면이 보여준다. 스턴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가해자(gaslighter)”와 “상대방이 자신의 현실감을 좌우하도록 허용하는 피해자(gaslightee)” 사이에서 발생한다. 가해자의 반복된 상황 조작과 거짓말에 노출된 피해자는 자기 자신의 현실감각, 판단력, 기억력에 의심을 품게 된다. 피해자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약해질수록 가해자의 영향력은 강화되며, 종국에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권까지 내어주게 된다. <가스등>의 주인공인 폴라(잉그리드 버그만)가 남편에게 결혼 생활 내내 당하는 것이 바로 이 가스라이팅이다.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던 이모가 살해된 후 모든 유산을 상속받은 폴라(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어느 날 그레고리라는 남자가 접근한다. 그레고리를 잘 모르면서도 깊이 사랑하게 된 폴라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물려받은 런던의 이모 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그레고리가 폴라를 정신병자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는 폴라가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 듣는다고 주장한다. 폴라가 병에 걸려 건강하지 못한 데다가 거의 매번 소지품을 잃어버린다는 이유로 외출을 금지하기도 한다. 폴라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남편인 그레고리와 그가 고용한 하녀 두 명뿐인데, 그 두 명 역시 폴라에게는 적절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없다. 한 명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일상적인 대화조차 어렵고, 다른 한 명은 폴라에게 정신병이 있다는 그레고리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녀를 환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폴라는 그레고리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환경 속에서 그의 걱정을 빙자한 교묘한 거짓말과 속임수에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당신은 잘 잃어버리잖아."

"제가요. 몰랐는데요.” 


“건망증에 의심까지 생겨?” 

 “그럴 리가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정말로?” 

 “모르겠어요.” 


 “당신이 아프거나 환각을 보면 슬퍼.” 

 “………”


   폴라는 그레고리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 어렵지만, 마땅한 증거도 증인도 없다. 처음에는 그의 말에 반문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지만 점차 폴라는 자신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그레고리의 가스라이팅이 점점 그 강도와 빈도가 높아질수록, 폴라는 “갑자기 내 기억력이 의심스러워져요.”, “나도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거나 혹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레고리가 의도했던 것처럼 자신의 판단력과 기억력을 믿을 수 없게 된 폴라는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된다. 점차 폴라는 그레고리 없이는 살 수 없는, 그레고리의 기준과 명령이 있어야만 안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레고리의 “정서적 학대”, 즉 가스라이팅이 성공한 것이다.

   폴라의 두려움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되는 것은 매일 밤 일어나는, 그녀 혼자만 듣고 보는 어떤 사건 때문이다. 매일 밤 그레고리가 일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고 나면, 갑자기 천장에서 정체 모를 발소리가 들려온다. 방 안의 가스등도 돌연 희미해진다. 그러나 폴라 말고는 누구도 목격하지 못한다. 둘 뿐인 하녀 중 하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다른 하나는 늘 외출하기 때문이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목격담이 완전한 허구, 즉 폴라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상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레고리에 의해서 폴라의 경험은 그녀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징후이자 증거가 되어버린다.

   영화는 두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그레고리가 얼마나 교묘하고 치밀하게 폴라를 조종하고자 하는지 면밀하게 보여준다. 어렴풋하게 암시만 되었던 그레고리의 동기가 명확하게 밝혀지는 것은 이미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들고나서이다. 그레고리가 폴라에게 접근한 것은 폴라의 이모가 생전에 소유했던 “외국 왕실의 보석” 때문이다. 폴라가 매일 밤 들었던 천장 위의 발소리와 희미해지던 가스등의 불빛은 폴라의 망상이 아니었다. 그레고리가 다락방의 불을 환히 밝힌 채로 폴라 이모의 유품을 하나 하나 샅샅이 뒤졌기 때문이다. 그는 속편히 보석을 차지하기 위해서 방해가 될 뿐인 폴라를 정신병원으로 보낼 계획까지 세워둔 상태였다. 그가 결혼 생활 동안 폴라에게 저질렀던 수많은 정신적 학대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기 위한 과정이었다. 전부터 그들 부부, 정확히 말하면 그레고리를 의심스럽게 보고 있던 런던 경시청 소속의 어떤 경위의 도움과 증언으로 폴라는 그레고리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다. 경시청에 그레고리를 넘긴 폴라는 자신이 조금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벗어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스라이팅은 현실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자행된다. 그레고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스스로 불신하게 만드는 갖가지 방법을 영화 내내 직접 시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레고리에게 “외국 왕실의 보석”을 훔치겠다는 비교적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스턴은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면서도 가스라이팅을 하는 가해자들도 있다고 말한다. 특별한 이유나 의도 없이도 상대에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이들도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계에서 이 가스라이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위계이다. 스턴이 예시로 드는 상사와 부하 사이의 혹은 부모와 어린 자식 사이의 가스라이팅은 이 위계를 비교적 뚜렷하게 보여준다. 상사와 부하 사이에 존재하는 직급, 경험, 숙련도 등의 차이와 부모와 어린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연령, 경제력 등의 차이. 이 차이를 기준으로 권력의 위계 구조가 형성되고, 한쪽이 다른 쪽의 영향력 행사에 필연적으로 취약해진다.

   스턴은 가스라이팅이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관계”, 즉 연인, 친구, 가족, 상사와 부하, 동료들과의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20년간 심리치료사로 활동한 그의 경험에 따르면 “가해자”는 남성인 경우가 많은 반면 “피해자”는 여성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가 가장 빈번했기 때문인지, 스턴의 저서 『가스등 이펙트』는 “남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가스라이팅 사례로 빼곡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예시는 여성에게는 피해자, 그리고 남성에게는 가해자라는 역할이 처음부터 성별에 따라 정해져 있었다는 증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턴은 왜 대부분의 가스라이팅이 남성에 의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형태로 나타나는지에 대해 정면으로 맞부딪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대신에 스턴은 가스라이팅을 “신종 전염병”이라고 명명하는 장에서 부분적인 해명을 시도한다. 사회의 변화에 따른 결과인 세 가지 요인이 이 새로운 질병을 창궐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성 역할의 근본적인 변화와 그에 대한 반발”, “개인주의 만연과 개인의 고립”, “사회의 압력과 세뇌”을 그 원인으로 제시한다. 스턴에 따르면, 1940년대부터 시작된 “성 역할의 변화”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일종의 “위협”이었다. 이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특정 남성”들은 “강하고 똑똑한 여성”을 “통제”하려고 했고, “특정 여성”들은 “자신의 정체성”까지 남성들에게 “의지”함으로써 “자발적으로” 그들의 통제에 “동조”했다. 스턴은 남성에 의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가스라이팅이 사회의 변화에 역행하는 “특정”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합작인 것처럼 진단한다. 이 특정한 남성과 여성을 “새로운 세대”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 내의 “신종 전염병”이라는 말은 가스라이팅을 “특정”한 남성과 “특정”한 여성, 즉 “특정”집단 내의 문제로 축소해버린다. 아득히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여성과 남성 사이의 권력 차이, 그리고 그 차이에서 비롯된 착취와 폭력은 담론의 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스턴은 여성에게 가해져 왔던 폭력과 착취를 가스라이팅과 연결짓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는 젠더의 위계에서 오는 차이가 가스라이팅을 성별화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셈이다. 성 역할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시점에서도 가스라이팅이 드물지 않게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가스등>의 폴라 역시 전통적인 성 역할을 벗어나기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으며, 그레고리의 가부장적 남성성에 조금의 위협을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고 있던 젠더의 위계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지배 혹은 영향력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레고리가 폴라에게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이 지닌 권력 차이 때문이고, 그 권력의 차이는 결국 그들의 성별에서 기인한다.

   가스라이팅이 애초에 성별화-즉 남성에게는 가해로, 그러나 여성에게는 피해로-되었던 것은 유구하게 존재해왔던 여성혐오(misogyny) 덕분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존재해왔던 위계는 한 성별(주로 남성)이 다른 성별(주로 여성)을 멸시하고, 혐오하며, 성애화하고, 이 혐오를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하는 것까지를 가능하게 했다. 여성을 그저 사유재산의 일부로 여기거나, 마녀로 몰아가 불에 태웠던 시대가 존재했던 것처럼, 이 혐오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는 대단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까지 했다.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대상을 내 뜻대로 조종하기 위해 상황을 조작하거나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아주 쉬운 일이다. 성별화된 가스라이팅은 ‘신종’ 전염병이 아니다. 한쪽 성별이 다른 성별을 아주 용이하게 통제할 수 있는 무기로써, 젠더의 위계에 의해 생겨난 아주 오래된 발명품이다. 동시에 수많은 형태와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여성혐오의 양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만약에 이 성별화된 가스라이팅이 전염병이라면, 마을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는 것으로는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는 아직도 철폐되지 않은 젠더의 위계, 그 간격 속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혐오라는 이름으로 배양되고 있기 때문이다.


* 필자소개

      학부에서 예술학을 전공하면서, 조형예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현상을 감상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동일 전공으로 석사에 진학하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관심 분야는 페미니즘,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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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노인의 나라에 나는 없을 것이다.



유하림*

 


    서울 시청 지하에 위치한 공정무역 카페에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한지 2년 째다. 가끔씩 큰 집회가 있을 때면 손목이 뻐근하도록 컵에 얼음을 퍼야하지만, 평상시에는 그리 바쁜 편이 아니다. 게다가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도 있고, 음료의 레시피도 간단하다. 흔히 말하는 꿀알바인 셈이다. 

   바야흐로 2016년 12월. 가끔씩 열리던 큰 집회가 매주 열리면서 ‘꿀알바’는 ‘쓴알바’로 바뀌었다. 시청 광장을 가득 채웠던 ‘태극기’가 카페마저 가득 채우게 된 것이다. 볼이 따갑게 세찬 바람이 부는데도, 어깨와 발등에 쌓이게 눈이 내려도 어떤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었다.

   태극기를 든 사람 중에는 노인이 많았다. 가만 보면 그들은 자못 진지해 보인다. 서로를 향해 당신이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어깨를 두드리고, ‘투사’라는 말로도 부족하다며 ‘투투사’ 라고 부르겠단다. 비록 당신들의 커피를 만드는 어린 여자 알바생에게는 “언니가 잘해주면 매일 카페에 와주겠다”고 말할지라도 탄핵반대집회에 나오는 것을 과업으로 여기는 듯 했다.

   계산하려고 꺼낸 지갑 안에 박정희 사진이 들어있기도 했고, 어디서 난건지 각종 뱃지를 단 군복을 입고 오기도 했다. 적당히 손님이 빠지면 카페 내부를 정리해야하는데 그 때마다 기괴한 것들을 발견한다. ‘계엄령을 선포하라’, ‘촛불은 종북, 태극기는 애국’이라고 뾰족뾰족한 글씨체로 적혀진 빨간색 종이,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접착성 좋은 스티커, 커다란 성조기.  

   처음부터 태극기 노인들이 카페를 점령한 것은 아니었다. 최순실에 대한 비리가 밝혀지고 나서 한달 정도는 촛불을 든 사람들이 카페를 채웠다.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주문을 하려고 선 줄이 카페 바깥까지 이어져있어서 계속해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었다. 특대형 쓰레기 봉투를 자주 교체해야 했고, 영업시간이 끝나면 모아둔 쓰레기만 내 키를 훨씬 넘었다. 그치만 즐겁게 일했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문구가 적혀진 피켓을 정리하면서 몇장은 가방에 넣어 챙기기도 했고, 앞치마에는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연대의 의미를 전했다.

   김일성 만세의 자유 뿐 아니라 박근혜 만세의 자유도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내 탓일까. 태극기를 든 노인들은 유독 일을 힘들게 만들었다. 어린 여자 알바생으로서 나이 든 손님을 상대한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반말은 물론이고, 돈 던지기, 아무 말 안하고 서 있기, 소리 지르기, 본인 순서가 아님에도 불쑥 끼어들어 주문하기, 성희롱 하기 등 갖은 진상 짓을 마스터하여 우리를 곤란에 빠트린다. 거기에 태극기과 성조기를 나란히 든 모습이라니.

   특히 날이 갈 수록 유려해지는 성희롱 기술에 나는 더 이상 웃으며 주문을 받을 수 없었다. 조금만 미소를 보이고 친절하게 대하면 “예쁘다”, “너 때문에 내가 여기에 온다”며 불쾌한 말들을 남발했다. 스탭 중에 한 명을 지목한 뒤 쟤가 내 스타일이야 하지를 않나, 테이블 정리를 하고 있으면 노골적으로 위아래를 훑어 본다. 유일한 남자 스탭에게는 “꽃밭에서 일해서 좋겠다”며 나름의 ‘유머’를 건네고, 내게는 “커피가 네가 줘서 더 맛있다며” 나름의 ‘칭찬’도 잊지 않는다. 웃지 않는 건 선택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말이 두려워 웃을 수 없어졌을 뿐이다.

   나는 22살, 여자, 알바생.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표적이 되고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태극기 노인들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나를 부른다. 기분이 안좋으면 ‘야’하고 부르고, 기분이 좋으면 ‘아가씨’하고 부른다. 내 몸을 훑고 싶으면 언제든 그렇게 한다. 그러다 한마디 건네고 싶으면 그러면 된다. 내가 농담을 받아주지 않고, 웃지 않으면 ‘좀 잘해달라’며 내 탓을 하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들은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니까. 남자고, 나이 들었고, 그들에게 나는 어린 여자 알바생이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 어린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해본 적 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꿈꾸는 자유 대한민국에 내 자리는 없겠지. 그치만 나는 그들에게 여전히 커피를 팔아야겠지.

   태극기 노인들과 6개월은 마주한 것 같다. 나는 그들이 태극기를 드는 행위에서 오는 만족감을 마주했다. 그것은 대통령을 ‘수호’하며,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키려는 나라에 나는 없을 것이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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