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주체 2]

푸코는 주체를 부정하는가?



 

허석헌

(미국 샌프란시스코 GTU 박사과정, 조직신학)


 

          미셀 푸코가 1984년에 사망하기 직전 남긴 가장 마지막 글은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단편 에세이였다. 이 에세이는 같은 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UC 버클리에서 개최된 ‘근대와 계몽’이라는 세미나에 보내졌는데, 이 세미나에는 하버마스, 찰스 테일러, 리차디 로티, 허버트 드레이푸스 그리고 폴 라비노우와 같은 세계적 석학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세미나는 푸코의 죽음으로 돌연 취소가 되었고 푸코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푸코의 이 마지막 에세이는 푸코가 계몽과 근대의 시대를 향해 남긴 일종의 유언장이 되고 말았다.[각주:1] 물론 이 에세이는 그가 죽음을 맞이한 병상에서 쓴 것이 아니라, 6년전에 발표한 강의의 글을 다시 구성한 것이기에 그의 최후의 유고작이라는 지나친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럼에도, 계몽에 대한 물음과 그의 답변은 푸코 자신의 철학의 근본적인 물음, 철학의 방법, 철학적 구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저작임에는 틀림없다.  

          1784년에 칸트가 받았던 질문을 스스로 자신에게 다시 던져놓고, 계몽과 근대를 향해 푸코가 하고 싶었던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는, 근대를 낳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로부터 2세기가 지난 즈음, 또한 포스트모던 혹은 탈근대라는 용어가 이미 시대를 풍미하는 시점에서 굳이 지난 유행어를 꺼내 든 것일까? 다소 의아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자문자답 안에는 어떤 의도가 배어 있는 것일까? 그는 칸트가 말한 계몽, 즉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 그러나 사적이지 않고 공적인 사용이라는 한계에서만 가능해지는 계몽의 의미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성의 비판적인 사용이라는 점에서만큼은 푸코가 의미부여하려 했던 계몽의 해석을 위한 출발점으로는 충분한 것으로 보았다. 푸코에게, 계몽은 시간의 차이로 구분되는 고전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사이의 단순한 시차적 경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오늘의 역사안에 서있는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서, ‘계몽이란 현재에 대한 비판적 태도 혹은 혹은 철학적 에토스(Philosophical ethos)’라는 것이다. 푸코는 이렇게 계몽이라는 개념을 역사적 시대의 특정한 구획점으로 사용하지 않고, 인간이 구체적인 역사적 실재와 관계하는 역사 존재론적 그리고 역사 실천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를 탈근대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면, 포스모더니즘은 계몽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계몽을 푸코식대로 시대의 변화 안에서 영속하는 에피스테메를 발견하는 비판적 태도라고 본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반계몽적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계몽의 시대의 또다른 패러다임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푸코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는 전통적 권위를 타파하고 이성의 주체를 세울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확신이 이성을 합리주의적 세계로 향하는 목적을 완성시키려는 전체주의적인 도구로 절대화시켜버린 오류로 좌절되었던 경험으로부터 경계를 긋고 이로부터 벗어나 또다른 새로운 가치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와는 거리가 멀다. 계몽의 시대 이후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 사고방식, 문화, 세계관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오늘의 실재의 체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또다시 등장하게 된다면 이것은 가장 위험한 전통의 회귀만을 낳았던 과거의 경험을 반복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푸코가 계몽주의에서 발견해 내려고 했던 것은, 전근대와 근대, 근대와 탈근대를 특정짓는 사실적인 기준 같은 것이 아니며, 또한 그러한 시도는 전혀 무의미한 노력이다. 다만, 구체적인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통해 주체를 구성하는 방식, 또는 우리가 역사적 실재와의 관계를 맺는 방식의 변화를 발견하고 이 변화안에 내재하는 철학적 에토스를 주체를 창조하는 원리로서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느냐가 철학이 관심가져야 할 물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몽에 대한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푸코는 결국 자신의 철학적 연구가 세가지 영역과 두개의 방법론을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려는 듯 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푸코는 세가지 영역으로서, 지식, 권력, 그리고 윤리를 구분하는데, 지식은 사물에 대한 지배관계들을 파악하기 위한 영역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지식의 주체들로서 구성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답하기 위한 범주이다. 권력은 우리가 어떻게 권력 관계들을 행사하고 또 그것에 복종하는 주체들로서 구성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서, 타인들에 대한 행위의 관계를 다루는 영역을 말한다. 끝으로 윤리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들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즉, 우리는 어떻게 우리 행위의 도덕적 주체로서 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답하기 위한 연구의 최종단계이다. 이들 세 영역의 철학적 연구의 범주들은 두가지의 방법론을 통해 검토된다. 하나는 고고학이며 다른 하나는 계보학이다. 모든 지식, 혹은 모든 가능한 도덕적 행동의 보편적 구조를 밝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행위를 설명해 주는 역사적 사건들이 드러내는 담론의 사례를 다룬다는 점에서 고고학적이어야 하며, 현재의 우리의 존재형식이 과거로부터 변형되어온 것 처럼, 앞으로의 변화를 현재로부터 구분해 내어야 한다는 점에서 계보학적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들 세 영역과 두 방법이 서로 완전히 독립되어 있거나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푸코의 구분에 따라 그의 철학적 방법론은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이라는 세 가지의 영역으로 최종 구분된다.

         이와 같은 푸코의 철학적 물음과 방법, 구조에 관한 포괄적인 진술은 그의 철학적 단절점들에 대한 그의 해명임과 동시에, 그의 철학적 노정을 일관된 틀안에 재정렬하려는 포괄적인 의도라고 보여진다. 다시 말해, 계몽 혹은 근대성이 이성을 통해 인간의 자유를 확장시켜온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주체성이 상실되어온 역사라는 그의 초기의 입장이 함축하는 인간의 자율성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태도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어떤 희망의 여지를 남겨보려는 변화된 의도가 감지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성의 역사 2권 ‘쾌락의 사용’과 , 3권 ‘자기의 배려’가 그의 마지막 해인 1984년에 출간되었을 때에, 그는 1권 ‘지식의 의지’에서 보여준 주체에 대한 회의적 태도로부터 물러나, 윤리적 주체로서의 삶의 가능한 방식을 개진하였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성의 역사 1권에서 성을 억압해온 역사라고 믿어왔던 억압적 권력의 실체가 허구임을 보여주며, 성에 관한 지식과 담론의 확대가 효과적으로 인간을 통제하는 권력의 방식이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던 푸코에게서 인간의 주체적 삶의 방식에 회의적인 태도는 역력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성의 역사 1권인 앎의 의지를 1976년에 출판한 후 8년 뒤 펴낸, 2, 3권 사이의 긴 공백은 푸코에게 전환의 시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푸코는 1권이 주체를 담론이나 권력의 효과로 간주함으로서 주체를 객체화 했다면, 2, 3권은 개인이 스스로를 성의 주체로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한마디로 말해 1권과 2,3권 사이에는 푸코 철학 내부의 일대 단절이라 일컬어지는 사색의 전환 즉, ‘앎, 권력, 담론’의 주제로부터 ‘자기와 윤리’의 주제로의 급전환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제 1권 ‘앎의 의지’와 2권 ‘쾌락의 활용’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1권에서 푸코는 성의 문제를 억압적인 패러다임으로 이해하는 ‘억압가설’에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 우선, 푸코는 성의 역사를 억압 증대의 역사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가설에 정면 도전한다. 대신, 성에 대한 담론은 권력 자체가 행사되는 장에서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17세기 부르주아 사회는 성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고 검열, 통제하였던 시대였음은 분명하지만, 담론과 담론의 질서라는 차원에서는 성에 관한 담론, 형식과 대상에 따라 서로 다른 특수한 담론들이 끊임없이 확산되었음을 밝혀낸다. 푸코는 이러한 성의 담론의 확산의 진원지를 기독교 정신 및 고백의 교리 안에서 찾으려 했다. 기독교의 고해성사는 육체적 성행위에 대해 절제된 언어로 숨김없이 말하도록 강제함으로서 성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성의 담론이 중세에는 육신과 고해성사의 실천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단일한 담론의 형식을 띠었다면, 최근의 여러 세기 동안에는 정신분석학을 비롯한 인구통계학, 생물학, 의학, 심리학, 윤리학, 교육학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성에 관한 담론이 생산되고, 담론의 형태가 다양화되며, 담론 연결망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의 역사 1권은 성생활에 관해 말함으로써 유발된 권력효과는 무엇이고, 이러한 담론, 권력효과들에 의해 둘러싸인 쾌락 사이의 관계, 거기로부터 발생된 지식이 무엇인지를 묻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푸코의 연구는 성에 관한 전반적 담론현상과 담론화를 고찰하는 것, 담론을 따라 발생하는 권력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의 다형적 기술, 그리고 담론의 생산에서 매체와 동시에 수단의 구실을 하는 지식의 의지를 도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르네상스 이후 금세기까지 서구인의 섹슈얼리티는 개인의 쾌락이나 자기 발견과는 무관한 권력기제로 작용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연구에서 푸코가 전제한 것은 주체가 자기에 관한 진실을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권력-지식의 치밀한 관계망을 통해 구축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근대의 주체는 개인의 신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통치체제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푸코의 관점은 인간의 주체는 지식과 담론, 권력에 의해 예속된 무기력한 존재라는 비관적인 결론으로 이끌고 가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푸코의 이러한 관점은 2권으로 이어지는 그의 책에서 윤리적 주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인간 주체에 대한 회의로부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성의 역사 2권에서 푸코는 1권과는 다른 논조로 성에 관해 접근한다. 그는 2권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변화된 관점을 진술한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서구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스스로를 ‘성’의 주체로 인식하게 되는 이러한 경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관점은 연구의 과제를 설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1권에서 권력-지식-쾌락체제의 작동과 존재이유를 결정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라면, 2권은 성과 관계된 지식의 형성, 그것의 실천을 규제하는 권력체계, 그리고 개인이 그 안에서 스스로를 이 성의 주체로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해야만 하는 형태들 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변화된 것이다. 처음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이미 1권과 동일한 연장선에 있지만, ‘개인이 성의 주체로 인식’하게 된 방식을 계보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새롭게 추가된 것은 푸코의 변화된 관점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는 욕망과 욕망하는 주체에 관한 역사적, 비평적 작업을 통해 개인들이 욕망의 주체로 되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해왔는지를 분석하려 했고, 이 같은 실천을 통해 개인들은 자신들 사이에 어떤 관계를 작동시킴으로써 그들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을 해독하고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욕망의 주체라 고백하게 되었음을 밝히려 했다. 즉, 개인은 자기와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주체로 세우고 주체로 인식하게 되는데, 이같은 자기와의 관계가 어떤 형태와 양태들을 취하는지 탐구해야 했던 것이다.

         푸코는 이 같은 그의 문제설정이 우리 사회에서 분명 대단한 중요성을 지녔던 실천들의 총체, 존재의 기술이라 불릴 수 있을 그런 실천들의 총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이 존재의 기술, 자아의 기법이 기독교의 사목적 권력행사에 통합되면서, 그리고 나중에는 교육적, 의학적, 혹은 심리학적 유형의 실천들에 통합되면서 그 중요성과 자율성을 어느 정도 상실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의 사목권력을 성에대한 담론의 확산 주체로 보았던 1권과는 다른 입장이다. 1권의 입장에서 개인은 기독교, 정신분석학, 의학, 교육학 과 같은 많은 담론형성의 주체에 의해 예속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았던 반면, 2권은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온 개인의 존재의 미학과 자아의 기법의 자율성과 중요성이 역사 속에서 어떤 변화를 거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둠으로써 개인이 ‘존재의 미학’의 기준을 작동시키면서, 자기의 실천을 통해 어떻게 주체화되어 왔는지에 역점을 두고 있다.이제 푸코에게 성은 담론. 권력의 통제를 받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개인이 쾌락을 도덕적으로 활용하는 매개체이자, 스스로의 도덕규범을 만들고 지키는 능동적 주체라고 그의 입장을 전환한다. 푸코에 따르면, 주체의 형성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푸코는 그것을 '자기의 테크놀로지' 혹은'자기의 배려'라고 부른다.

         이렇게 푸코가 제 1권과 제 2.3권 사이에 전개시킨 논리의 변화를 모순 혹은 단절로 보아야 할것인가? 푸코 그 자신이 자본주의적인 억압적 질서안에서 무저항적 태도를 부추기는 투항주의라는 비난을 의식했던 하지 않았던 간에, 그 안에서 벌어진 틈새를 메워야 할 필요가 있었음은 추측 가능하다. 결국, 계몽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합리주의적 전통에 남아있거나, 계몽을 비판하고 합리성의 원리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양자택일적인 부정적 입장을 모두 배격하고 실천적인 비판으로 돌아서려는 긍정적인 이해를 통해 ‘자기의 배려’라는 인간의 자율적인 주체의 가능성으로 그의 결론은 다다르게 된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그를 향한 의심어린 시선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푸코의 윤리적 주체란 자기에로의 테크놀로지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만큼 사회적 권력과 담론으로부터 서있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개인의 높은 수준의 능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언론과 정치적 눈속임에 쉽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다수에게 푸코의 주장은 엘리트주의적인 것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자기의 배려, 자기의 테크놀로지는 주체의 가능성을 결국 개인의 내부적 문제로 축소환원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그가 받아야할 비판중 하나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비판은 전통적인 저항의 형태를 전제할 때만 타당하다. 푸코는 전통적인 주체로서의 고정적인 실체를 거부하고 새로운 형태의 저항의 주체를 생산해야 할 시점이라는 데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와 권력’에서 다음과 같은 푸코의 진술은 이러한 그의 입장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 “오늘날 아마도 주요한 목표는 우리들이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현재의 존재방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개별화함과 동시에 전체화하는 근대적 권력구조의 이런 종류의 ‘이중적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우리들이 누구일 수 있을까를 상상하고 구축할 필요가 있다. 결론으로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정치적, 윤리적, 사회적, 철학적 과제는 국가나 제도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에 결부되어 있는 개별화 방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푸코에게, 저항의 대상은 억압적인 시스템을 콘트롤하는 외부적 실체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저항의 대상은 부재하며, 설령 존재하는 저항의 대상이 제거되는 것으로 인간의 억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저항의 거점이다. 저항의 거점으로서 자아는 자신에게 관련된 권력관계를 능동적으로 맺어나가 는 주체의 존재 방식 혹은 자아의 형성기술을 통해 마침내 윤리적 주체로서 저항의 실천적 삶으로 진입하게 된다는 뜻이다. 자신에 대한 타인의 지배 테크놀로지에서 자신이 자신 스스로에게 행사하는 지배 테크놀로지로 우리의 시선이 옮겨질 때에,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목표에 다가설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주체에 대한 푸코의 진술이 여전히 자율적인 주체가 실재와 관계하는 방식의 변화를 선언적으로 요구하는데서 멈춰버린 듯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 웹진 <제3시대>

  1. 이 에세이는 1978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한 강연회에서 있었던 푸코의 ‘비판이란 무엇인가? :비판과 계몽”이라는 강연에서 먼저 발표된 것이었고, 그 후 1983년에 ‘계몽에 관한 칸트의 에세이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칸트의 태도에 관한 비평’이라는프랑스 칼리지에서의 오프닝 강의로 다시 발표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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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윤리(II) – “주체여, 다시 한번!”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프롤로그: 한국땅에서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울화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도덕과 윤리는 늘 재미가 없었다. 회상해보라, <바른생활 (초등학교) -도덕(중학교) -국민윤리(고등학교)>로 이름을 달리하여 불렸던 그 과목들이 얼마나 지루했었나를! 그것은 한국이라는 집단병영(?) 시스템 속에서 독재자들의 통치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새마을 운동(박정희)’정의사회 구현(전두환)’으로 대표되는 윤리적 슬로건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왔다.  잘 살아보세!’로 대변되는 유신정권의 국면전환용 구호와 오랜 윤리적 주제였던 정의를 자신들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끌어들여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정언명령으로 각색한 제5공화국의 그것은 서구윤리 사상의 양대축이라 할 수 있는 목적론적 윤리와 의무론적 윤리를 떠올리게 한다. 전자는 에피쿠르스학파-영국의 경험론-공리주의로 계승되었고, 후자는 스토아학파-대륙의 합리론-칸트로 이어지면서 윤리적 논쟁을 벌여왔음을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에 있었던 서구 윤리사상의 발전이라는 장에서 우리는 이미 배웠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전혀 섞일 수 없는 이 두 가지 윤리적 전략을 아우르는 절대적인 음성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분단이다. 한국의 분단체제, 반공이데올로기는 수 천 년간 이어져왔던 서로 다른 윤리적 행위의 원칙을 간단히 하나로 화해시켰다. 그리하여 적어도 남한 땅에서 국민윤리란(북한도 마찬가지겠지만) 북과 맞서는 거대한 상징의 체계,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며 엄하게 타이르던 아버지의 권위,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말라는 금기의 영역으로 등극한다. 어쩌면 한국은 이러한 틀 속에서 집단과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의한 의식의 세례가 거의 무방비적으로 이루어지는, 얼마 전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의 표현대로 야만의 사회이고, 반면 그 이데올로기가 지닌 음모가 놀라우리만큼 약발이 받지 않는 문명화된(?) 사회이기도 하다.

만일, 의식과 집단(체제), 의식과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천착했던 푸코가 이렇듯 기이한 한국땅에서 활동했다면 뭐라 말했을까? 이제서야 겨우 본론으로 넘어간다.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

 


드디어, 푸코와 만나다

 

푸코는 1984 5 25, 그의 나이 57세가 되던 해에 에이즈로 사망했다. 현대 프랑스 철학의 전개과정에서 발생했던 몇몇 뭉클한 장면이 있는데, 하나는 1995년 레비나스가 죽었을 때 데리다가 레비나스의 영전에서 행한 아듀, 레비나스라는 추모사이다. 그다지 관계가 좋지 않았던 둘이었지만 점점 본인 사상의 후반으로 갈수록 레비나스에 다가갔던 데리다였기에 그의 슬픔은 더했다. 레비나스가 죽기 10년 전 푸코가 죽었고, 레비나스를 데리다가 추모하듯, 푸코에 대한 추모는 그의 절친했던 친구인 들뢰즈의 몫이었다. 들뢰즈는 별다른 말없이 푸코가 병상에서 최후로 완성한 성의 역사2권인 <쾌락의 활용>, 3 <자기배려>의 서문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 내려간다.   

 

데카르트가 보편적이면서도 무역사적인 코기토적인 주체를 말하고, 칸트가 경험에 주어진 한계를 이성을 통해 묶음으로 선험적 주체의 탄생을 기획했다면, 푸코는 성의 역사 3, <자기 배려>에서 이런 근대적 주체와는 구분된, 그 자신의 독특한 성과이자 사상사의 전개 과정에서 주체논의의 새로운 물꼬를 틀었다고 평가받는 자기 soi/self’ 개념을 기존의 주체 subject’ 대신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후 푸코의 자기개념은 지난 호 웹진에서 살펴보았던 주체의 죽음이 운운되는 시대속에서 다시금 주체에 대한 새로운 생기를 부여하였다.[각주:1]

 

그래도, 주체는 계속된다!

우리가 말하는 근대, 즉 인식주체의 인식대상을 향한 포섭과 간섭에 강한 능력과 권한이 부여되었던 그 시대! 인식주체가 기획한 구성아래 세계 축조의 가능성이 조심스레 예감되던 그 시절! 근대적 인간이란 루카치의 표현대로라면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나는 소설속 주인공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무협지의 단골 내용으로 등장하는, 어렸을 때 원수로부터 부모를 여의고 하인 (어김없이 하인은 도망 중 장렬히 사망하고 숨이 넘어가려는 순간에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을 약간 흘린다) 등에 업혀 산사로 피신한 주인공(인식주체)과 같다. 그는 산에서 우연히(아니, 필연적으로) 신의 음성을 지닌 스승을 만나고 각고의 노력 끝에 어느 경지에 이른 후 터미네이터가 되어 하산한다. 그 후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들(인식대상)을 찾아 하나씩 제거하는 내용이 무협지 후반에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삽입되어야 하는 것이 인정투쟁이다. 원수는 성장하여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주인공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그 당시 어렸던 네가…! 그때 내가 너를 죽였어야 할 것을분하다!!”, 주인공은 이를 받아 내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네가 아느냐? 내 칼을 받아라!” 노예의 복종(내지 패배)과 주인의 선포(내지 승리)가 만방에 알려지는 순간이다.   

 

위의 무협지 플롯은 근대적 인식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화이다. (인식)주체가 (인식)대상을 잠식해가는 과정이 진보이고 획득이며 발전이라는 근대적 패러다임하에서 객체는 무릎꿇어 인식주체를 향해 패배와 복종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 객체는 자연일 수 있고, 식민지 국가일 수 있으며, 당시에는 세상속에 섞여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았으나 지금은 사라진 정신병자, 부랑아, 동성애자, 히피들그 밖에 인식주체와는 다른 무리들, 즉 타자라 할 수 있다. 근대는 체제에 의해 타자를 향한 인정투쟁의 거대한 망이 만들어지던 시대였다. 그 망을 통과한 자만이 체제안으로 편입되고 망에 걸린 무리들은 버려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푸코의 근대비판은 시작되는데

 

말과 사물, 광기의 역사 등으로 대표되는 푸코 초기 계보학적 연구들이 역사적으로 힘과 지식의 역학속에 구성된 주체의 허위를 폭로했던 작업이라면, 성의 역사로 대변되는 푸코의 후기 작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허물이 벗겨져 탈영토화된 주체를 어떤식으로 재영토화 시키는가의 문제, 즉 자기가 자기를 형성하는 방식에 관한 몰두로 그 관심이 바뀌었다. 이를 윤리적 화두로 전환하면, 근대 주체 철학 위에 서있었던 도덕이 보편에 개별을 맞추는 입법의 차원이었고, 그러한 도식속에서 윤리란 그 명법을 내 것으로 끌어당겨서 (자발적, 의식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보편을 향해 투항하게 만드는 그런 주체를 위한 윤리였다. 반면, 푸코의 후기사상에 나타나는 윤리적 판단의 근거는 보편보다는 개별에 포커스가 있다는 점에서, 칸트류의 의무론적 윤리나 니체가 비판했던 노예의 도덕과는 사고의 지점도 다르고 전개양상도 판이하다.

 

푸코는 근대 프로젝트 안에 펴져있던 총체적 난맥의 첫 단추를 주체규명에서부터 찾았고, 이런 이유에서 주체대신 자기를 제안한다. ‘자기라는 말은 기존의 철학에서 말해왔던 주체개념과는 다른, 자기의 욕망(혹은 본색)이 더 충실히 반영된, 즉 체제가 선사하는 이데올로기로부터 기름이 빠진 주체라 할 수 있다.[각주:2] 비록 근대적 주체는 사망했지만, ‘자기라는 이름이 부여된 새로운 주체가 등장한 셈이다. 이는 데카르트이래 등장한 근대적 주체가 절대적 주체로 등극한 이래 한차례도 흔들리지 않았던 서구 주체중심의 철학에 대한 의식적이고도 악의(?)적인 반동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고대 그리스로!

 

서구 현대 사상가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이 당면한 문제의 해법을 찾아 많은 경우 고대 그리스를 향해 회귀한다는 점이다. 마치 교회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를 외치는 듯 말이다. 대표적으로 하이데거가 그랬다. 서구 형이상학에 대해 평하면서 존재망각의 역사였다고 비판하던 하이데거가 내세운 전략이 바로 고대 그리스로의 귀환이었다. 이는 근원적 존재체험과 기원에 대한에 여전한 미련과 애착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하이데거 안에 깃들어있는 사상적 혹은 미적 보수성을 엿볼 수 있다.[각주:3]

 

푸코 역시 자기의식의 단초를 고대 그리스로부터 끌어온다. 하지만 근대적 주체에 대한 문제제기 후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고대그리스의 존재체험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던 하이데거와는 달리, 푸코는 근대적 주체가 해체되어야 하는 이유를 오히려 고대그리스의 존재 체험에 기대어 전개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양자는 확연히 구분된다.[각주:4]

 

고대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선함이란 착함보다는 좋음이었다. 즉 내게 쾌를 선사하는 것이 선한 것이고, 내게 불쾌를 선사하는 것은 악한것이다. 물론 그것은 감각적인 쾌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정신적인 영역까지를 포함한 쾌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윤리학에서 인생의 목표를 행복이라 했을 때 이는 전적으로 좋음을 의식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푸코가 의도했던 것은 그리스적인 좋음을 다시 현대의 윤리적 테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진정 원했던 것은 어떤 보편과 규범에 의해 개인이 함몰되지 않고, 자기가 자발적으로 자기를 구성하는 테크놀로지의 추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푸코에게 있어 윤리란 미학적 성격을 띤다.[각주:5] 전통적 의미에서 미적 판단력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영향을 받아 예술작품 안에 스며있는 이데아의 순도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방(복사)의 정도가 정교할수록 진품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현대 미학에서는 미적 주체와 미적 대상간의 일치라는 전통적인 미에 대한 의식을 거부한다. 오히려 이데아가 지닌 아우라의 파괴를 통한 새로운 감동, 새로운 가치 창출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푸코는 이러한 현대 미학의 패러다임을 그의 윤리학으로 초대한다.

 

에필로그: 결국, 자기의 윤리란?

 

윤리학은 자고로 본질주의와 토대주의에 입각해 이데아를 상정한 후 윤리적으로 그 본질에 따라 사는 삶을 안내하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윤리학은 이 세계를 근본적으로 생성으로 보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 시간의 경과속에서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 그리고 동일성안으로 들어온 창조와 변화를 수렴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생성과 창조의 과정속에서 동일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즉 자기가 자기의 도덕을 어느 누군가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기의 윤리를 보편성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설득과 대화와 연대의 과정 모두가 윤리학의 범주가 된다. 종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윤리학이 등장한 셈이고, 이에 대한 발전과 도전과 응전은 지금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 웹진 <제3시대>


  1. “자기에 대한 실천에 있어 그 실천의 주된 목표는 자기와의 관계속에서, 바로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로의) 전환은 우리 자신의 관점의 이동을 뜻한다.”- Michel. Foucault, 『The Care of the Self - Vol 3 of The History of Sexuality』, Translate by Robert Hurly. (New York: Pantheon Books, 1986), 64-65. [본문으로]
  2. “자기체험은 단순히 통제된 힘이나 언제나 반항할 준비가 된 힘에 대한 지배력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자신에 대해 느끼는 일종의 기쁨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접근할 수 있는 자는 자신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자신의 현 모습에 만족할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이다.”- Michel. Foucault, 『The Care of the Self - Vol 3 of The History of Sexuality』, Translate by Robert Hurly. (New York: Pantheon Books, 1986), 66. [본문으로]
  3. 하이데거가 걸어갔던 그리스전통에로의 복귀에 대한 부분은 2009년 9월 25일 웹진에 게재되었던 졸고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3)”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119)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4. 『성의 역사』 2권과 3권은 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성도덕을 다루면서 윤리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시도하는데, 특별히 자기이해와 고대 그리스와의 연관에 주목하려면 아래 부분에 주목하기를: Michel. Foucault, 『The Care of the Self - Vol 3 of The History of Sexuality』, Translate by Robert Hurly. (New York: Pantheon Books, 1986), 57이하. [본문으로]
  5. “왜 우리의 삶은 예술작품이 될 수 없는가? 사물은 예술의 대상이 되는데 우리의 삶은 왜 그렇지 못하는가?” - Michel. Foucault, ‘On the Genealogy of Ethics: An Overview of Work in Progress’ in 『The Foucault Reader』, Edited by Paul Rabinow. (New York: Pantheon Books, 1984), 35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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