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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퀴어] 태극기 노인의 나라에 나는 없을 것이다(유하림)

페미&퀴어

by 제3시대 2017. 6. 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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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노인의 나라에 나는 없을 것이다.



유하림*

 


    서울 시청 지하에 위치한 공정무역 카페에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한지 2년 째다. 가끔씩 큰 집회가 있을 때면 손목이 뻐근하도록 컵에 얼음을 퍼야하지만, 평상시에는 그리 바쁜 편이 아니다. 게다가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도 있고, 음료의 레시피도 간단하다. 흔히 말하는 꿀알바인 셈이다. 

   바야흐로 2016년 12월. 가끔씩 열리던 큰 집회가 매주 열리면서 ‘꿀알바’는 ‘쓴알바’로 바뀌었다. 시청 광장을 가득 채웠던 ‘태극기’가 카페마저 가득 채우게 된 것이다. 볼이 따갑게 세찬 바람이 부는데도, 어깨와 발등에 쌓이게 눈이 내려도 어떤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었다.

   태극기를 든 사람 중에는 노인이 많았다. 가만 보면 그들은 자못 진지해 보인다. 서로를 향해 당신이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어깨를 두드리고, ‘투사’라는 말로도 부족하다며 ‘투투사’ 라고 부르겠단다. 비록 당신들의 커피를 만드는 어린 여자 알바생에게는 “언니가 잘해주면 매일 카페에 와주겠다”고 말할지라도 탄핵반대집회에 나오는 것을 과업으로 여기는 듯 했다.

   계산하려고 꺼낸 지갑 안에 박정희 사진이 들어있기도 했고, 어디서 난건지 각종 뱃지를 단 군복을 입고 오기도 했다. 적당히 손님이 빠지면 카페 내부를 정리해야하는데 그 때마다 기괴한 것들을 발견한다. ‘계엄령을 선포하라’, ‘촛불은 종북, 태극기는 애국’이라고 뾰족뾰족한 글씨체로 적혀진 빨간색 종이,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 접착성 좋은 스티커, 커다란 성조기.  

   처음부터 태극기 노인들이 카페를 점령한 것은 아니었다. 최순실에 대한 비리가 밝혀지고 나서 한달 정도는 촛불을 든 사람들이 카페를 채웠다.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주문을 하려고 선 줄이 카페 바깥까지 이어져있어서 계속해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었다. 특대형 쓰레기 봉투를 자주 교체해야 했고, 영업시간이 끝나면 모아둔 쓰레기만 내 키를 훨씬 넘었다. 그치만 즐겁게 일했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문구가 적혀진 피켓을 정리하면서 몇장은 가방에 넣어 챙기기도 했고, 앞치마에는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연대의 의미를 전했다.

   김일성 만세의 자유 뿐 아니라 박근혜 만세의 자유도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내 탓일까. 태극기를 든 노인들은 유독 일을 힘들게 만들었다. 어린 여자 알바생으로서 나이 든 손님을 상대한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반말은 물론이고, 돈 던지기, 아무 말 안하고 서 있기, 소리 지르기, 본인 순서가 아님에도 불쑥 끼어들어 주문하기, 성희롱 하기 등 갖은 진상 짓을 마스터하여 우리를 곤란에 빠트린다. 거기에 태극기과 성조기를 나란히 든 모습이라니.

   특히 날이 갈 수록 유려해지는 성희롱 기술에 나는 더 이상 웃으며 주문을 받을 수 없었다. 조금만 미소를 보이고 친절하게 대하면 “예쁘다”, “너 때문에 내가 여기에 온다”며 불쾌한 말들을 남발했다. 스탭 중에 한 명을 지목한 뒤 쟤가 내 스타일이야 하지를 않나, 테이블 정리를 하고 있으면 노골적으로 위아래를 훑어 본다. 유일한 남자 스탭에게는 “꽃밭에서 일해서 좋겠다”며 나름의 ‘유머’를 건네고, 내게는 “커피가 네가 줘서 더 맛있다며” 나름의 ‘칭찬’도 잊지 않는다. 웃지 않는 건 선택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말이 두려워 웃을 수 없어졌을 뿐이다.

   나는 22살, 여자, 알바생.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표적이 되고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태극기 노인들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나를 부른다. 기분이 안좋으면 ‘야’하고 부르고, 기분이 좋으면 ‘아가씨’하고 부른다. 내 몸을 훑고 싶으면 언제든 그렇게 한다. 그러다 한마디 건네고 싶으면 그러면 된다. 내가 농담을 받아주지 않고, 웃지 않으면 ‘좀 잘해달라’며 내 탓을 하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들은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니까. 남자고, 나이 들었고, 그들에게 나는 어린 여자 알바생이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 어린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해본 적 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꿈꾸는 자유 대한민국에 내 자리는 없겠지. 그치만 나는 그들에게 여전히 커피를 팔아야겠지.

   태극기 노인들과 6개월은 마주한 것 같다. 나는 그들이 태극기를 드는 행위에서 오는 만족감을 마주했다. 그것은 대통령을 ‘수호’하며,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키려는 나라에 나는 없을 것이다.


* 필자소개 


페미니스트. 모든 차별에 반대하지만 차별을 찬성하는 사람은 기꺼이 차별합니다. 간간히 글을 쓰고 덜 구려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꿈은 나태하고 건강한 백수이고 소원은 세계평화.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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