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독교인은 부도덕한 목회자를 지지하는가

유승태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얼마 전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나, 제목이 무척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 제목의 의미를 풀이해보면,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지지를 보낸다는 것이겠다. 이 질문을 살짝 바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도 던져보면 어떨까? 왜 기독교인들은 부도덕한 목회자를 지지하는가, 라고.

성폭력 혐의를 받고 삼일교회를 사직했던 전병욱 목사가 최근 홍대새교회를 개척했다. 사임한 지 17개월 만이다. 줄곧 목회만 해왔고 나름의 목회 ‘성공신화’를 갖고 있던 이였으니, 그가 목사로 교회에 복귀하는 것은 사실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를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전병욱 목사의 교회개척 소식이 아니라, 그 교회에 700여명의 신도가 모여들었으며, 새벽기도마다 200명가량의 청년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언론보도였다.

피해자들의 신빙성 있는 진술이 다수 공개됐고, 언론을 통해 사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난 상황에서 전병욱 목사를 여전히 추종하는 현상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진실하게 사죄한 적이 없는데도, 그가 번듯하게 목회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기독교인들의 행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전병욱 목사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목회자들의 부패・부도덕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다면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적어도 더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목회자의 위험성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없지 않을 텐데도, 지탄을 받아 마땅한 많은 목회자들이 여전히 교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목회를 하고 있다. 부도덕한 목회자나 지도자가 자신의 신앙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자기 교회의 목회자, 자신이 속한 기독교 단체의 지도자는 그런 사람일 리 없다고 믿거나, 너무 쉽게 그를 용서하고 있는 것이다.

전병욱 목사의 교회 개척 소식에 교계가 발칵 뒤집혀 있을 때, 한 방송사의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종교 집단에서 벌어지는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사례를 두 주 연속 보도했다. 한 여성은 미대를 졸업하고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기까지 했던 엘리트인데도 ‘선녀님’의 비상식적 명령을 거역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폭력을 감내하거나 폭력의 가해자가 됐다. 이 피해자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지 않았다. 또한 강압적 상황에 놓여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종교 지도자의 터무니없는 명령을 거역하기는커녕 그에게 한 올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이 방송은 이러한 행동의 심리적 기반을 분석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도 했는데, 이 실험의 모형이 된 것은 1963년 미국에서 스탠리 밀그램이라는 학자가 수행했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이다. 밀그램은 실험의 진짜 목적을 숨기고 ‘기억과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전문직 남녀 중 실험 참여자를 모집했다. 실험 참여자는 창문 너머에 있는 학습자(연기자)가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볼트씩 전압을 올리며 전기충격을 가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참여자가 상당히 높은 전압에서야 충격을 가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아예 최고 전압까지 올리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옆에 있는 과학자가 ‘치명적인 신경 손상은 없다, 실험을 계속하라’고 보증해주었기 때문이다. 권위자의 명령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초래하는 사회적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높은 전기충격을 가한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여자들이 누르는 단추의 최고 전압은 450볼트였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전압이다. 실험이 끝나고 실험의 배경을 설명한 후 최고 전압의 단추를 누른 사람들에게 왜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는지 물었을 때, 사회복지사는 “이런 교육법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전기충격으로 학습능력이 향상되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간호원은 “평소 의사에게 처방이 맞는지 세 번씩 물어보기 때문에(의사가 괜찮다고 하면 자신은 거스를 수 없으니까)”, 수질검사관은 “난 내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했을 뿐(내게 책임은 없다)”이라고 답했다. 정리하면, 권위자의 명령이 자신의 윤리적 신념과 어긋나더라도 그 행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책감을 감면해주는 나름의 설명체계를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는 ‘설명의 언어’가 권위자의 부당한 명령을 분석하고 고발하기보다는, 권위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아를 타인과 자기 자신의 윤리적 공격으로부터 방어해주는 역할을 하기 쉬움을 보여준다.

요약하면, ‘권위자의 존재감’이나 ‘죄책감을 덜어주는 설명체계’가 개인들이 비윤리적 결과를 초래하는 명령에 순응하게 만드는 강한 요인들이다. 그리고 이 두 요인의 부적절한 조합은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차원, 체제 차원의 ‘악’을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교회가 당연시하는 ‘목회자의 권위’는 교회 밖에서는 ‘몰상식’인 것들이 교회 안에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을 교인들이 거부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회개’를 개인의 고백적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신학은 어떠한 잘못도 하느님께 고하기만 하면 내가 피해를 준 타인과는 아무 관계없이 마술처럼 용서받게 된다고 믿게 만들고, 잘못된 교회 관행과 목회자의 부도덕함에 대해서도 눈감게 만들 수 있다. <밀양>에 나오는 살인범처럼, 전능한 하느님이 용서해주셨기 때문에 피해자(당사자)의 용서 없이도 자신은 죄 사함 받았다고 믿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믿는 것이 좋은 신앙이라고 보증해주는 교회의 ‘권위자’들이야말로 전병욱의 성폭력을 조장하고, 수많은 청년들이 그 사건에 대해 판단 능력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든 원인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권위자의 존재감’이나 ‘죄책감을 덜어주는 설명체계’만으로는 전병욱 목사 추종 현상이나 부도덕한 목회자를 지지하는 여러 사례들에서 발견되는 ‘신자들의 자발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마지못해 이들 목회자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자발적이고 열광적으로 그들을 지지하고 신뢰한다. 애초에 자신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기독교인들은 부도덕한 목회자를 지지하면서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죄책감을 경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도 없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이들 신자들의 자발성 안에는 일반적 상식에 따른 윤리적 판단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겠다. 이런 자발성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병욱 목사를 추종하며 교회에 몰려가는 청년들, 부도덕한 목회자를 지지하는 신자들은 밀그램의 실험에서처럼 도덕성이 의심받지 않는 강한 권위자를 갖고 있지는 않다. 밀그램의 실험 참가자들은 명령이 내려진 이후의 상황에서 윤리적 판단을 할 것인가(명령 거부), 아니면 윤리적 판단 자체를 중지할 것인가 선택해야 했다면, ‘부도덕한 목회자 추종’의 경우는 명령을 내리는 자의 권위 자체가 심하게 손상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병욱 목사나 부도덕한 목회자에게는 그들이 상실한 도덕적 권위를 충분히 보충해주고도 남는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마 그들 목회자들 중에는 상대를 쉽게 설득할 수 있는 언변과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 조성 능력 등 소위 ‘카리스마’라고 불리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카리스마의 진정한 의미는 상대의 ‘설득됨’이 있을 때만 획득될 수 있다. 목회자들의 어떤 뛰어난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동의하고 감동 받는 신자들의 내면에 있는 그 ‘무엇’ 역시 중요하다. 따라서 이들 목회자와 신자들이 어떻게 상호 결속을 이루고 ‘외부’의 윤리적 개입을 거부하게 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열쇠일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아이디어로 ‘하나 됨’을 추구하는 교회 안의 인간관계를 떠올려볼 수 있다. 한국의 특수한 인간관계 이해를 기반으로 한국적 심리치료 방법을 고민한 학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한국인들이 관계 형성의 목표로 ‘심정이 통하는 관계’를 설정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이때 심정이 통하는 관계란 자신과 상대가 정서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하나 됨’의 느낌을 갖는 관계를 말한다. 즉, 상대와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관계를 ‘진짜 관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대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며 ‘우리’ 관계를 재확인한다. 사실, 이 주장은 그다지 복잡한 주장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수행하는 관계맺기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흔히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진짜 관계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관계가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이러한 관계맺기 방식은 교회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촉매제로 작용해 매우 증폭된 형태로 나타난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 고민이나 상처도 교회 안에서는 그 대화 상대를 찾기 쉽다. 그리고 서로 기도제목을 공유하는 문화나 많은 신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통성으로 자신의 상처를 울부짖으며 고백하는 한국교회의 전통은, 개인에게 심정을 토로할 때만큼은 아닐지라도, 익명의 교회 구성원들이 자신과 심정을 공유하는 ‘우리’ 관계라는 느낌이 들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우리’라는 신앙적 관계가 ‘우리’의 윤리적 우위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우리’라는 관계를 지속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목적이 되며, 이 관계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목소리는 배제되기 쉽다. 그것이 아무리 옳은 소리여도 말이다. 때문에 ‘우리’에 대한 외부의 비판은 우리를 공격하는 목소리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이러한 관계가 낳는 또 다른 심각한 부작용 중의 하나는 ‘우리’의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 안에 다양한 발언기회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 누군가 다른 목소리를 낼 때 그가 더욱 힘내서 말할 수 있도록, 다른 구성원들의 목소리만큼 명확하게 들릴 수 있도록 그에게 물리적・심리적・제도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 ‘우리’는 결국 그 다른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혐의가 삼일교회에서 처음 불거졌을 때도 당회가 택했던 솜방망이 처벌은 전병욱 목사의 권위는 보전해줬을지 몰라도 피해자였던 공동체 구성원들의 울부짖음은 평가절하한 것이며, 결국 이들을 교회 안에서 침묵하는 익명으로만 남게 만든 것이다. 이는 하나가 된다는(또는 교회를 지킨다는) 미명 하에 공동체 안에 있는 타자 자체를 소멸시키고, 그래서 결국 타자와의 거리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 전형적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목회자의 권위, ‘회개’라는 신앙 양식, 그리고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문화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버려야 할 것은 없다. 다만 이 세 가지가 불의한 방식으로 조합을 이루고 있는 것을 끊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의 불의한 결합이 결국 외부의 비판에 대해 귀를 열지 않는 폐쇄적 신앙을 만든 것이라는 혐의가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성서에서 보여준 한 사례야말로 다소 진부하지만 그래도 가장 근본적인 대안을 우리가 상상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하고 싶다.

갈라디아서 5:18에서 바울은 ‘육체의 기회로서의 자유’와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종이 됨’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리고 서로에게 종노릇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진정 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말하는 사랑은 막연히 모두를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갈라디아서 전반부에서 나온 ‘유대주의자들’로 인한 교회의 위기 상황에 대해 구체적 대안으로 제시된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갈라디아서 전반부에는 율법과 할례를 강조하는 유대주의자들로 인해 초래된 분열과 위기에 대해 전하고 있다. 율법과 할례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갈라디아 교회를 압도하고 있을 때, 이들이 맞았던 위기는 단순히 신앙논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질성의 회당질서에서 벗어난 사람들, 유대적 정체성을 추종할 사회・경제적 자원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밀어내는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때문에 바울이 ‘사랑하라’고 했을 때 염두에 둔 것은 이들 경계 밖으로 밀려난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밀려나더라도 갈라디아 교회 자체는 남겠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곧 갈라디아 신앙 공동체가 ‘육체의 기회’를 따르지 않는 길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종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때 ‘서로’에는 유대 전통을 따를 수 없는 타자가 포함된다. 이로써 공동체 안의 각 주체는 자신과 상대의 ‘거리’를, 주체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이때 거리는 각자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리가 아니라 서로가 섬기는 관계로 묶여있음을 의미하는 거리가 된다.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라는 바울의 권면에서 우리는 서로의 거리를 삭제하지 않고도 공존하는 ‘우리’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 웹진 <제3시대>

* 이 글은 "왜 홍대새교회로 청년들이 몰리나?"라는 제목으로 <뉴스앤조이>에 실렸던 글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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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유대인이 아닌 이유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반나절의 여행이 주는 생각의 깊이는 많아야 반나절 정도입니다. 정보는 빈약하고 본 것에 대한 직관적 감정에 지배당하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선입관이 미치는 감정에 대한 지배력은 가히 위력적입니다. 내게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반나절이 그랬습니다.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한 철학도의 안내를 받아 시내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유대인 묘지에 방문한 것은 그의 안내 코스의 끝자락에서였지요. 그는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의 사택도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한데 흔적도 남지 않은 채 얘깃거리만 남은 회당터를 거쳐 당도한 꽤 큰 유대인 묘지 앞에서 급격하게 냉소적으로 돌변해버린 나의 눈치를 보던 일행은 그날 관광을 거기서 마치기로 했지요. 일행에게 미안했지만, 그 순간 치밀어 오르는 심통을 더는 감추지 못했습니다.
 
묘소라기보다는 그냥 담으로 둘러쳐 있는 큰 공터라고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흠집투성이의 묘석들이 담 안쪽으로 옮겨져 안치된 듯한 공간이고, 별다른 기념비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벽 바깥으로 같은 크기로 검은 대리석 비슷한 벽돌이 가로 다섯줄로 수도 없이 박혀 있었지요. 거기에는 죽임당한 이 도시 출신 유대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외에 그가 죽임당한 곳, 죽은 날짜 등의 정보도 있었고요.

한참을 그 돌들만 쳐다보았습니다. 수많은 이름들, 날짜들, 수용소들. 수백 개쯤 읽으니 점점 기계가 됩니다. 생각은 비워졌고 그냥 알파벳 발음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저 이름들이, 그저 이름만 읽을 수 있을 뿐이 그 이름들이, 어느 시간에 어느 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조차 없는 그 이름뿐인 것들이, 이젠 이름조차도 지워진 채 읽혀지고 있었습니다.

안네의 아버지처럼 은행가였을 수도 있고, 우리를 안내하는 철학도처럼 학생일 수도 있고, 노동자일지도 모르고, 공산주의자였을 수도 있고, 자유주의자였을 수도 있고, 나처럼 빵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키가 큰 사람일지도 모르고 뚱뚱한 사람일 수도 있는, ...., 모든 상상 앞에 열려 있는 그 이름들이, 어느 순간 내게는 아무런 상상도 허락하지 않고 오직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머리에 박혀버렸습니다.

비위가 뒤틀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내가 상상하는 대로 그 묘소가 조성되었을 거라고 단정하면서 하나의 음모론을 상상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고 그날 모두의 관광을 망쳐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오늘도 여러분과 나의 생트집잡기를 두고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그것이 누구의 음모는 아니겠지만 분명 우리를 환각에 사로잡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역사의 음모’라는 생각을 여전히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의 주인공들은 어느 날 나치에 의해 ‘유대인’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별’ 문양의 기호로 표상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들은 독일인이었겠지요. 폴란드에서 일거리를 찾아 온 이주한 사람일지도 모르고, 남편의 나라로 이주한 이태리 여성일지도 모릅니다. 또 그이는 부르주아였을 수도 있고, 노동자였을 수도 있고, 학생일 수도 있었겠지요. 그들은 모두 각각의 모습으로 각각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정부에 의해 유대인이 되었고, 수용소에 구금되어 죽임당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후 이스라엘 정부와 세계의 유대인 협의체들에 의해 숭고한 인종주의의 희생자들로 규정되었습니다. 하여 그들은 하나의 범주, 곧 유대인이 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을 하나의 부류로 묶어놓고 그들을 숭고한 희생자들로 규정하면, 그 숭고한 자들과 동일한 범주에 엮인 산 사람들도 그 숭고함을 덧입게 됩니다. 죽임당한 자들과 산자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 역사가 탄생하고 그 역사는 숭고함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 시오니즘이 그런 대표적 사례입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자신들의 희생을 특화시킵니다. 그것은 자기 역사에 대한 특권화이고 다른 역사에 대한 무시와 멸시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들이 국가를 세운 땅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2천년의 역사를 무시하고 그들을 학살할 수 있었던 심성의 배경인 것이지요.

이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한 토론회에서 바울에 관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날 발제자의 주장에 대해 내가 시비를 걸었던 소재는 ‘바울이 유대인이라는 주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바울 연구사에서 중요한 발견이었지요.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 바울이 아니라 유대인 바울이라는 것, 거기에서 바울에 관한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가 평소 주장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교를 창시한 이라는 낡은 주장은 현대 바울 학계에서는 폐기처분되어야 하는 낡은 관점이지요. 그런 점에서 바울이 수없이 말한 ‘교회’라는 표현은 후대에 그리스도교의 모임 혹은 장소를 지칭하는 용어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 개혁운동의 한 지도자였지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데 나는 오늘날 바울 역사학계에서 일반화된 이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울 당대에 지중해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를 유대교라고 지칭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중해 지역 도시들에서 이스라엘인들의 종교는 예루살렘 종교와 결코 동일한 범주에 묶였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들 대다수는 예루살렘 성전뿐 아니라 사마리아의 성전도 존경했고, 그 역사도 존중했습니다. 또한 지중해 지역의 회당들 각각 또한 매우 다양했습니다. 회당들은 어느 하나를 중심으로 정치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통합되어 있지 않았고,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공존했고, 단지 서로를 존중하며 야훼의 이름으로 네트워크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더욱이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의 층위로 가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대중의 벽화 같은 것을 보면, 지중해 지역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지역의 종교와 문화에 상당히 동화되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대중들은 결코 야훼 순결주의에 물들어 있지 않았고, 다분히 혼합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었습니다.

야훼신앙은 이렇게 다층적이었습니다. 바울이 접한 지중해 지역의 이스라엘인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가 골방에서 세상을 말하는 사변가가 아니라 사람들가 몸과 마음을 마주하며 활동한 목회자이자 예언자였다면, 그는 이런 다양한 이스라엘 인들의 경험과 신앙과 무관하게 말하고 활동하였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바울은 유대화된 이스라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늘 예루살렘과 자신의 연결고리를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대중의 눈높이와 함께 한 실천가였습니다. 더욱이 그의 대중은 주로 회당의 엘리트가 아니라 무지렁이 대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 바울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바울은 유대인이다’라는 명제가 알려주는 정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말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바울을 유대인이라는 범주로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현대 서양의 주류 학계가 빠져 있는 유대주의적 편견의 산물입니다. 나치의 범죄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그렇게 생각한 것이겠지요. 더구나 유대인 협의체들의 발명된 역사관과 이데올로기적 공모자의 자리에서 신학을 한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바울 자신의 말에 주목해봅니다. 그에게서 예수는 무엇일까요. 그는 분명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는 철저한 유대 순수주의자였습니다. 한데 예수를 알게 된 이후 자신의 순수주의를 포기합니다. 이때 그가 강조한 것은 ‘십자가’입니다. 알다시피 당시 십자가는 로마제국과 연관된 구체적인 표식입니다. 제국에 의해 처형당한 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필경 지중해의 이스라엘인들의 회당에서 십자가에 달린 자, 저 제국의 반대편에 서서 죽임당한 의인을 설파하는 이들이 있었고, 바울도 그런 이들로부터 예수에 관해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분을 받아들였고, 십자가를 자기 신앙의 중심적 가치로 이해했습니다. 한데 그의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러한 바울의 성찰을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그분에 관한 표식이 아니라 내면으로 들어온 그분의 표식이라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그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이 말은 유대인이라는 자의식, 유대인이라는 범주의식을 그가 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을 유대인이라는 범주로 묶어서 사고하는 것, 그 범주에서 어떤 삶과 역사를 특권화시키는 것을 포기했다는 애깁니다. 하여 그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제국만이 아니라, 제국에 의해 희생된, 멸망당한 식민 백성인 유대인을 특권화시키는 유대주의적 역사관과도 싸움을 벌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가르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르고,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주인과 종을 가르는 일체의 분리주의, 그 분리주의를 정당화하는 범주적 유대주의인 것입니다. 해서 그는 결코 유대인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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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난주
    2011.07.27 00:4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성경과 안네의 일기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세계에 가장 많이 번역되고 전파된 책이라는 점. 시오니즘의 욕구가 이미 들통났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책은 여전히 출판되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합리화는 당분간 지속되겠지요. 제 안에서 시도중인 합리화부터 성찰하고 고민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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