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경계의 신학』
   - 시카고에서 띄우는 신학 노트

▷ 지은이 : 이상철
▷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 2012년 2월 14일 발행 | 값 12,000원 | 314쪽
▷ 분   류 : 기독교 > 목회/신학 > 신학일반

    

목차

추천의 글_
신학을 다시 재미있는 학문으로 _채수일
신학이 인문학의 핵식부로 다시 등장하길‥_서보명

머리말
왜, 탈경계의 신학인가 ?

ㅣ제Ⅰ부ㅣ 단편들 :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서
01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서
02 나의 한국 방문 답사기 : 거리의 몰락, 기억의 종말 그리고 MB
03 현대 기술문명을 둘러싼 타락과 상승의 변증법
04 악의 평범성 Banality에 대한 보고서
05 난민 難民, Refugee

ㅣ제Ⅱ부ㅣ 타자 論: 타자와 욕망의 서사학
01 중세 교회의 타자 포비아 Phobia
02 칸트와 다른 헤겔 속 숭어 있는 2인치
03 프로이트 , "내 안에 나 있다 !"
04 라깡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05 한국 땅에서 라깡적으로 윤리하기

ㅣ제Ⅲ부ㅣ 자기의 윤리 : 니체를 넘고 푸코를 지나
01 영화 <박쥐>를 통해 바라본 근대와 탈근대의 지정학
02 니체, 서구 기독교 윤리에 대한 전복
03 포스트모더니즘 日: " 주체여, 안녕히! "
04 푸코 日: "주체여 , 다시 한번 !"

ㅣ제Ⅳ부ㅣ타자의 윤리 : 레비나스를 중심으로
01 레비나스 , 서구 신학을 쏘다
02 '타자의 얼굴'에는 무엇이 있나 ?
03 본회퍼와 레비나스 : 타자를 향한 서로 다른 포물선
04 다시 쓰는 기독교 윤리: 타자에서 타자들로

ㅣ제Ⅴ부ㅣ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01 죽음의 고고학 考古學
02 중세 , 죽음이 편재했던 시기
03 하이데거를 위하여 -87년 6월 , 그 개시 開示의 기억
04 레비나스 , 하이데거를 넘어서
05 자살공화국 , " 아 ~ 대한민국! "

ㅣ제Ⅵ부ㅣ신학, 해체론과 만나다
01 '데리다로 신학하기' 를 위한 말걸기
02 자크 데리다 특별 기고 :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해체론적 독법
03 지젝으로 천안함 읽기 : 천안함 침몰과 이라크 침공. 그 기묘한 상동성
04 해체론적 성서 읽기는 가능한가 ?

에필로그
_신학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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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유
    2012.02.17 03:2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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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고 갑니다.
    이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인가요? 아님 단체가 운영하는 곳인가요?
  2. 김진호
    2012.02.17 17:0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운영하는 웹진입니다. 여기서는 한국사회와 한국의 진보적 신학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신학은 어떤 문제의식으로 우리 시대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에 관한 여러 고민들이 있습니다.


 

 


『예수가 사랑한 남자 - 신약성서의 동성애 이야기』

▷ 원서 : The Man Jesus Loved - homoerotic narratives from the new testament
▷ 지은이 : 테오도르 W. 제닝스 지음 / 옮긴이 : 박성훈
▷ 장르 및 쪽수 : 신학 / 456쪽
▷ 판형 및 제본 : 신국판 / 무선제본
▷ 가격 : 16,000원
▷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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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세계적인 퀴어 신학자가 파헤친 신약성서의 동성애 이야기

1990년대 초 퀴어신학은 미국의 대학가를 중심으로 등장하였고 테오도르 제닝스는 그 개척자의 한 사람이다. 그가 저술한 이 책은 퀴어신학에 관한 그의 주요 저서 가운데 하나로, 동성애혐오적/이성애중심적 성서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고, 신약성서, 특히 복음서들에 수록된 예수 전승 속에서 예수를 동성애자로서 해석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는 동성애자였다

이 책은 요한복음에 중심을 두고 논의를 편다. 고대 사회의 동성애적 관습을 참조한다면 요한복음이 재현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동성애적 행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퀴어신학의 관점에서 그 텍스트와 성서 안팎의 관련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는 일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예수가 사랑한 남자에 관한 텍스트들이 그렇다. 예수의 제자 중 한 명이 예수의 품에 기대고 누워 있던 장면을 검토하고, 예수 제자 집단 내에서 가진 그의 지위/역할/정체를 살피며, 예수 전승 내에서 그가 갖는 의미를 주목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이때 신약성서 내/외부의 자료들을 해석에 동원하면 예수의 동성애적 행위가 추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분명 여러 예수 전승을 살펴볼 때 예수가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가 “동성애자였다” “동성애자가 아니었다”라는 단순한 대답을 이 책에서는 기피한다. 이 책은 기존의 성서 해석 방식을 뒤집는 학문적 접근을 통해 우리 사고의 큰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 과정을 좇다 보면 “예수가 동성애자였다, 아니었다”는 물음은 자연스레 그 의문이 풀린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교회는 게이와 레즈비언 그리고 양성애자를 희생양 삼아 성(性)을 죄악시해왔다. 그것은 교회가 창안해낸 한 편의 신화다. 이 신화를 통해 교회는 가족의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질문할 여지를 차단해왔다. 다시 말해 게이, 레즈비언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 취급을 받았고, 그들을 그들 자신의 성적 취향 그대로 가족의 일원으로 삼는 것을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하여 괴로움 속에서 그들은 정체성에 혼동을 일으키며 급기야 자살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성서를 다시 읽고, 그 속에 새겨져 있는 교회의 성적 신화의 껍데기를 벗겨내어 해석할 여지를 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교회의 동성애혐오의 또 다른 희생자는 성서 그 자체다. 교회는 오랫동안 노예제와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자들의 완전한 성적 평등을 부인하기 위해 성서를 이용했다. 다시 말해 인류가 현재 일구어 온 보편타당한 상식의 진리 속에는 교회의 성서 오독과 악용이 덧칠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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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몰락』

지은이 : 서보명
펴낸날 : 2011년 1월 31일
분  야 : 인문 / 교육
판  형 : 신국판 변형
페이지 : 264쪽
정  가 : 12,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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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대학,
어디에 존재하는가?

‘경계에 선 지식인’인 재미교포(1.5세대) 교수가 쓴 대학의 ‘철학사’이며, 자본에 함몰된 대학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이다. 최근 지식의 위기와 대학의 몰락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 위기의 요체는 ‘대학의 자본화’에 있다. 대학이 자본과 지식의 중개자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신학자이자 철학자이고 한국인이자 미국인으로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경계에 선 지식인인 저자는 한국의 대학에서 방문교수 체험을 한 뒤에 이 시대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반향 없는 물음들이 솟아나왔고, 그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대학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현대의 대학들이 ‘경계선 위의 지식’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본에 함몰되어 몰락을 향해 질주하는 미친 마차와 같다고 느낀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육공학의 전문적인 지식을 풀어내는 것도 아니고 교육학의 이론을 펼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원론으로 돌아가 자본에 함몰된 대학을 목도하고 우리 시대에 대학은 어디에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대학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묻는다. 저자는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런 물음은 우리 사회가 경쟁과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경쟁 사회에서 사용될 수 있는 물건 같은 ‘생산성 높은 학생’들을 만들어내면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질문이라고 치부한 것들이다. 고갱이가 빠져나간 대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들추는 물음이기에, 이 시대가 외면하는 질문이기에, 저자 자신 또한 현실성 없는 물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본에, 체제에 종속된 대학의 자화상을 다시 원점에서 그리지 않으면, 대학의 역사가 현실과 대학의 미래가 없다는 저자의 진단은 ‘미래의 대학’을 꿈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한 철학자의 아픈 반성이며, 시대가 함께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대학의 현실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비판하고, 협곡의 단층을 보여주듯 대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기술하며,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에 매몰되어 잃어버린 대학의 위상을 다시 찾는다.

취직도 어려운 마당에
구태의연한 고민을 해야 하나?

“대학이 현실, 그것도 체제를 섬기는 하부조직으로 전락했을 때, 대학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 대학이 체제와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주장하는 자율을 밥그릇 싸움 그 이상이라 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이상의 가치를 이념으로 생각하지 않는 대학을 대학이라 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이상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대학이 현재 가능하기는 할 것인가? 그런 가능성이 없을 때, 대학은 어디에 존재해야 하는가?”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지는 이런 물음들은 시대에 이미 뒤떨어진 물음들이 됐다. 대학이 취업을 위해 이력서 한 줄 메울 수 있게 하는 곳으로 변질하고, 공부는 토플, 토익 점수를 높이거나 공무원 시험 예상문제 풀이하는 것으로 전락한 실정이기에. 그렇게 우리 시대는 대학의 존재 가치에 대한 물음을 예전에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드디어 대학 붕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졌다. ‘김예슬 선언’이라 불리는 한 대학생의 <대학자퇴서>가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한편 그 붕괴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고 대학은 내부에서 자본화가 완결된 상태였다. 그것이 곪아 터진 것일 뿐,  과거에 시대와, 체제와 거리를 유지하며 찾았던 대학의 정체성이 완전히 소멸한 상황. 저자는 대학과 공부의 고갱이가 다 빠져나가는 위기 상황을 진단한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이렇다.
“대학은 신학과 철학이 부여하는 이상에 의해 유지되어왔으며, 대학의 이상향으로 삼은 것은 한 시대, 그 문화권의 선을 추구하는 세계관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의 체제는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생산과 소비와 경쟁이라는 이념을 따라 대학이 움직이기를 요구한다. 학문의 이상은 인간에게 초월적인 숭고함이나 이타적인 삶을 추구하도록 하지만, 자본주의 이념은 철저하게 물신주의의 이윤과 소비의 행위만 앞세우게 한다. 이와 같은 시대성에 함몰된 대학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대학의 학문과 제도를 기업자본주의의 생산과 판매의 모델로 이해하는 것은, 오래된 대학의 자의식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잃어버렸을 때는 그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필수이다. 철학 교수인 저자는 대학을 개혁할 프로그램이나 이념을 앞세우기 이전에, 과거의 대학이란 어떤 곳이었고, 현재의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질문을 과거에는 대학의 본질과 사명이라는 차원에서 논의했다면, 과연 이 시대에 적합하고 수용 가능한 본질과 사명은 무엇인지 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가 바로 이 시대가 잃어버린 대학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낡은 질문으로 보이지만 황량한 몰락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비상구이기에 절체절명의 물음인 것이다.

쓸데없는 공부, 큰 배움으로서의 대학은
꿈일 수밖에 없는가?

현재의 실상을 떠난 대학의 미래는 없다. 현재의 모습이 대학이 몰락하는 과정이라면, 대학의 미래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아도 암울하다. 소위 경쟁력이 있다고 하는 대학들은 앞으로도 기업자본주의의 한 축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백화점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대학이 성찰과 비판의 공간으로, 지식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의 덕목으로 인간을 형성하는 사명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명을 더 이상 수행할 의지가 없는 대학을 ‘대학’이라 부를 수 있을까? 큰 배움으로서의 대학, 시대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이상을 잃지 않은 대학, 비현실적인 대학이다. 이 시대에 그런 대학을 생각한다는 것조차 “꿈꾸고 있네!”로 치부된다. 그 ‘꿈꾸고 있네’의 대학은 이렇다. 기업 정신을 멀리하는 대학, 건물 건축을 성장이라고 여기지 않는 대학,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을 대학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대학, 학생들의 지적인 성장과 인격 형성을 제일 중요하게 치는 대학, 수치와 소문을 통계 내어 대학 줄 세우기(서열화) 행태를 거부하는 대학, 사실과 가치만을 말하지 않고 진리도 생각하려는 의지가 있는 대학. 즉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시대의 이단이 될 의지가 있는 대학이다. 아마 그런 대학은 없다. 하지만 없기에 더욱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큰 배움으로서의 대학의 이상에 대해 시장이 된 대학 밖의 대학을 꿈꾸며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을 맺는다.
“〈인간이나 이상이나 진리와 같은 한가한 주제들〉이 중요하다고 인식되려면, 자본과 시장과 경쟁이라는 이 시대 대학의 우상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 따라서 이 시대에 대학의 이상이 지켜나갈 대학이 있다면 그것은 대학 밖의 대학일지도 모른다(260쪽).” “배움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시대를 직시하고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은 시장이 아닌 소크라테스의 ‘아고라’일 것이며, ‘큰 배움’으로서의 대학이 존재하는 곳이리라(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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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1.02.26 07:1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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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소에서 기획한 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얼마전 시카고로 배달된 책을 교수님으로부터 한 권 받아 읽었습니다. 오래간만에 한국말 책을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읽으니 좋네요. 서보명 교수의 신간 <대학의 몰락>은 신자유주의 체제속에서 대학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직업연수원(혹은 직업소개소)로 전락해가는 대학의 현주소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서구사회에서 발전되어 왔던 대학의 역사를 마치 나무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듯 생생히 전해줌과 동시에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전개되는 미국대학의 변천과 한국대학의 타락을 맞물려 보여주면서 신자유주의가 지닌 파괴적 본성을 폭로합니다. 서교수는 이 책에서 단순히 대학이 몰락했다고 선언하지도 또 그것에 대해 탄식하지도 않습니다. 그 보다는 마치 협곡을 지나듯 서구 대학의 역사를 굽이쳐 가면서 오늘의 대학을 진단하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혹은 대항하며) 올바른 대학을 구현하려 했던 사람들의 음성을 통해 앞으로의 대학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현재의 대학이 지닌 문제들을 다시 새롬게 발견할 수 있고, 아울러 '대학의 몰락'을, 아니 신자유주의 체제속에서 전개되는 삶의 몰락을 처방할 해법을 조심스레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후 붕괴 시대, 아주 불편한 진실 조금 불편한 삶』

엮은이 : 한국교회환경연구소
펴낸날 : 2010년 12월 13일
분  야 : 인문 / 종교
판  형 : 신국판
페이지 : 440쪽
정  가 : 16,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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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기후 붕괴 시대 원년을 사는 청지기들의 대안

이제 기후 변화 시대를 지나 기후 붕괴 원년을 맞은 우리.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후 재앙은 강 건너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오늘의 뉴스’로 보며 그 폐해를 몸으로 느끼는 절박한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 지구적인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매우 미온적이고, 때로 그에 대한 대비도 사실 막막하기만 하다. 너무 커다란 변화에 대해서 ‘서서히 끓어오르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그저 무감각해지는 것으로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넘길 뿐이다. 허나 우유부단하고 임시변통적이며 뒤로 미루기가 통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럴 때 지구 위기의 진실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시대의 징조를’ 읽고 ‘세상을 관리하고 보전하는 것’이 청지기들의 역할임을 깨달은 사람들이 예언자의 목소리를 높여 시대의 징조를 말한다.

이 책은 기후 붕괴 시대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실질적 대안을 함께 엮었다. 한국교회환경연구소는 지난 몇 년 동안 기후 변화 문제를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신앙적 이슈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성찰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단지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의 교회들로 하여금 그 문제를 인식하고 실천하기를 위한 구체적인 묵상, 성경공부, 설교 등의 실천적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 즉 이 땅의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나와 우리의 사회가 일상생활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와 먹을거리 그리고 상품 소비 등이 어떻게 기후 변화와 직결되어 있는지를 깨닫고 온실가스를 줄이는 생태적 삶을 살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기후 변화는 신학적 문제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늘도 여전히 날씨 변화에만 관심을 쏟을 뿐, 그 안에 담긴 시대의 징조를 읽고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는 성장 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 그리고 무한 탐욕주의 사회체계를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솔직히 상황은 절망스럽다.

여성생태신학자 샐리 맥페이그의 말을 빌리면 “기후 변화는 신학적 문제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이 공통의 관심사인 기후 붕괴를 이야기하면서 기독교 신학적인 성찰을 다룬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간 중심주의에 길들여진 기독교의 폐해를 본질에서 파헤친다. 하나님이 창조 시에 널리 번성하라고 하신 말의 뜻을, 인간 종種만이 지구를 자기 소유인 양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돌보는 청지기 역할을 맡기신 것이다. 허나 이즈음까지의 그리스도인들은 청지기가 아니라, 성장 지상과 물질 만능이라는 사회구조를 더욱 가속했다는 점에서 자기반성의 가슴 찢는 회개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근세사를 비견하면 근대화가 산업화의 동일어로 여겨지듯이 서구화와 기독교화 또한 동일어로 여길 수 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물질 만능과 인간 중심의 사상의 책임을 회개해야 한다. 여기가 기후 붕괴 시대와 그리스도교 신학적 성찰이 만나는 지점이다.

기후 붕괴의 문제를 결국 인간의 문제이며 지식과 기술의 문제를 넘어 인간의 인식과 태도 그리고 실천의 문제이다.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접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총체적 위기의 시대에는 우리 모두의 의식을 전환해서 신생대에서 ‘생태대Ecozico’로 넘어서지 않으면, 이 시대에 희망이 없다는 시대의 사명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노아의 방주를 만들 듯이, 각자의 삶에서 구체적인 몸실천이 없다면 기후 붕괴 시대를 넘길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금 불편한 삶으로 온 생명과 더불어 살기

과연 우리에게 희망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어떤 희망일까? 만약 그것이 진정한 희망이라면 거기로 가는 구체적인 길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성경은 말한다.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요엘 2:12-13)

이 책은 세상을 관리하고 보전하는 청지기 책임을 맡은 우리가 화석연료에 기댄 문명에 서 있는데, 이 문명이 과연 축복인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 성장만이 살 길이라며, 모든 것을 경제적 효율성으로 평가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돌이켜야만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파괴하고 착취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품고 있는 우리의 친구요 형제자매로 느끼며, 우리 모두가 생명의 끈으로 엮여 있음을 깨닫고 생명을 살리는 삶으로 전화하는 것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마음을 찢는 회개라고 한다.

눈앞에 다가오는 지구적 규모의 근본적인 기후 변화를 겪으면서 인류는 생존의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고 한다. 앞으로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이 닥쳐온다면 재난이 초래하는 위협 그 자체보다 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인간의 이기적 태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새로운 인간성을 획득한다면 기후 변화가 몰고올 고통스러운 시험을 통과하고 한 단계 도약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만일 재난을 겪고 있는 인류 공동체가 서로 돕고 나누며 극복하려 한다면 비록 많은 손실은 있겠지만 인류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노아의 홍수 뒤에 보여준 무지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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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건너, 요단강 넘어』
- 서용문 목사 순교 60주년 추모문집

지은이 : 서광선 서인선 서철선 서만선 홍경만
펴낸날 : 2010년 10월 23일
분  야 : 에세이
판  형 : 신국판
페이지 : 248쪽
정  가 : 12,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ISBN : 978-89-6447-127-2 03200


주요검색어 : 순교자/아버지/박해와 순교/추모 에세이/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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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요단강을 넘어 가나안 복지, 통일한국을 염원하며

올해는 6・25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순교 당한 기독교인들의 순교 60주년이기도 하다. 고 서용문 목사는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탄압을 견디다 못해 만주로 건너갔고, 그후 해방을 맞아 고향인 평양으로 돌아가 북한공산당에 맞서 기독교 복음을 전하다가 남한과 UN군의 평양 수복 때 후퇴하는 북한군에 의해 총살로 순교당한 장로교 목사이다.

아버님의 순교 60주년을 맞아 슬하의 5남매 중 남한에 피난 온 4남매가 추모문집을 엮었다. 유족을 대표한 맏아들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아버지의 순교 60주년을 추모하면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기도합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 되고 평화롭게 통일을 이루는 날을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 전쟁을 치룬 세대는 평화통일의 날을 맞이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대동강을 넘어 한강에 와서 60년의 세월을 살았지만, 우리는 아직도 평화통일의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세가 건너지 못한 요단강 강가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 책 제목을 [대동강 건너, 요단강을 바라보며]라고 붙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즉, 이 책은 반공 목사인 아버지의 죽음을 다음세대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펴 낸 것이다. 그래서 서광선 박사는 머리말에 “이 책을 요단강 넘어 가나안 복지, 통일 한국을 바라보며 이를 위해서 노심초사 통일 운동과 평화 운동에 헌신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라는 헌사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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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두 진리』
- 과학적 자연주의와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종합

지은이 : 데이비드 레이 그리핀
옮긴이 : 김희헌
펴낸날 : 2010년 12월 9일
분  야 : 인문
판  형 : 신국판
페이지 : 264쪽
정  가 : 12,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ISBN : 978-89-6447-128-9 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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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아직도 기독교 신앙과 과학적 자연주의와의 화해는 요원하다. 이 책은 과정사상가이며, 화이트헤드의 뒤를 이어 과정신학의 계보를 잇는 존 캅의 제자이고 <과정사상연구소>를 함께 운영했던 지은이의 책이다.

근대 이후 그 골은 더욱 깊어져, 과학은 신의 존재를 부정할 만큼 ‘과학적’(논리적)이 됐으며, 그에 반하여 기독교 신앙은 더욱 근본주의로 치닫고 있다. 데이비드 레이 그리핀 박사는 과학과 종교 간의 논쟁에 대해,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을 끌어들여서 때때로 전적으로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두 세계관의 근본적인 종합을 제안한다. 그는 ‘과학적 자연주의’와 ‘기독교 신앙’이란 이름으로 명명되어 온 두 전통 모두가 위대한 진리 즉, 보편적 정당성과 중요성을 지닌 진리를 구현하고 있지만, 양자 모두 왜곡되어 왔으며, 또한 과학 공동체와 기독교 공동체가 지닌 비전 사이에 갈등을 부추겨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리핀은 과학 또는 그것이 정당하게 전제해 온 형태의 자연주의와 기독교 복음이 지닌 본래적인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이해되어 온 기독교 신앙 이 둘 사이에 본래적인 갈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정사상으로 모색한 과학적 자연주의와 기독교 신앙과의 화해

기독교의 본래적인 믿음과 가르침을 유신론적 자연주의로 복원시켜낼 수 있는가? 그리핀이 던진 이 질문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인뿐만 아니라, 이 시대 대부분의 지성인에게도 매우 낯선 것이다. 근대 후기(19세기 중반 이후)에 접어들면서 ‘자연주의’라는 개념은 매우 한정된 세계관 즉, 감각주의적 인식론과 유물론적 존재론의 조합으로 구성된 세계관의 대명사가 되었고, 이에 맞서 교회는 과학이나 철학과의 대화에서 반지성주의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초자연주의적인 세계관을 고집하며 기독교 신앙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유신론과 과학적 자연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이 적대적인 관계는 불가피한 것인가? 이 책에서 그리핀은 서구 지성사에서 벌어진 기독교 신앙과 과학/철학과의 관계를 살펴 양자의 애증관계를 먼저 해명한다. 이로써 현대 기독교의 초자연주의적 관념 체계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반지성주의를 극복함과 동시에, 무신론으로 귀착된 근대의 과학적 자연주의의 한계와 모순을 밝히려 한다. 그리핀은 양자의 대립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힐 뿐만 아니라, 양자의 관심과 해명을 종합하려는 데까지 나가면서 자신의 구성주의적 포스트모던 신학constructive postmodern theology을 전개한다. 탁월한 과정사상가인 그리핀에게 이 작업은 “경험의 모든 요소를 해석해낼 수 있는 일반적 사유체계”를 구성하고자 하는 과정철학의 핵심적 이상을 구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신)전통주의적 신학에 익숙한 기독교 신앙인은 그리핀의 통합적 방법론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근대 기독교 신학의 역사에 한 가지 뼈아픈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역사를 간추려보면 이렇다. 과학적 신념과 종교적 신앙이 조화로운 관계를 누렸던 17세기가 지나고, 기독교 신학이 이신론deism으로 굳어져 가던 18세기에 과학과 종교는 갈등과 균열을 경험하게 된다. 이 시기에 기독교 신학은 과학적 자연주의와 계몽주의 철학의 파고를 넘기 위해 이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이 대화를 시도한 “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신학이 오늘날 우리에게 그다지 믿음을 주지 못하는 까닭은 그 신학 방법론이 열정의 진실함에서는 의심할 바 없지만 해명의 깊이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물론 만일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유럽의 기독교 교회는 19세기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은 19세기의 신학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리핀에 따르면, 그 이유는 자유주의 신학이 결코 종교적 세계관을 담을 수 없는 왜곡된 자연주의(Naturalismsam)를 자신의 도구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몰락 이후 기독교 교회가 선택한 방식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평화로웠던 (17, 18세기적) 과거의 기억(이신론)으로 회귀하여 안전(무신론으로부터의 문단속)을 도모했던 유아론적 시대 역행이다. 이 시대착오적 흐름은 교회의 안전에 대한 열망이 진실했기 때문에 신앙인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지만, 새로운 시대에 재등장한 옛 정신으로서 자기 시대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투밖에 없었다. 이 전투적인 정신이 근본주의 신학이란 이름으로 19세기 말에 등장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나 근본주의 신학이 교회 안에서 승리할수록, 교회는 시대정신과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기 시대를 이탈한 정신은 결코 안전할 수도 없다는 뚜렷한 가르침만 남겼다. 다른 하나는 소위 신정통주의 신학이다. 이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의 지성을 흡수했지만, 그 방법론(과학적 자연주의의 활용)을 활용하지는 않았다. 대신 기독교 신학의 성격과 과제를 “독립”시켜, 기독교 신학의 독자성을 얻으려 했다. 어쩌면 이것은 밀려오는 시대사조에 대한 소심한 대응이요, ‘진정한 진리는 서로 대립될 수 없다’는 직관을 언어에 담으려고 했던 기독교 신학의 이상에서 이탈한 현상학적 차이에 대한 호소라고 하겠다.

이안 바버가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라는 책에서 “갈등”도 “독립”도 “대화”도 오늘날의 기독교 신학의 모델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통합” 모델을 제시했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기엔 갈등의 독선으로, 독립의 순수만으로, 대화의 열정만으로 오늘날 기독교 신학이 위치한 포스트모던 시대를 헤쳐 갈 수 없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리핀처럼 이안 바버 역시 과정철학의 세례를 받고 있다는 점을 눈치 챈 사람들은 그 주장의 진정성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특히 “일반적 사유체계로의 통합”이라는 사상적 목표에 대해서 포스트모던의 해체주의 정신은 정당한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핀이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을 따라가며 배우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특히 기독교 신학이 (초)자연주의와 맺어 온 다채로운 관계를 훑어가다 보면 초자연주의에 경도된 오늘날 기독교 교회의 사고방식이 지닌 편향을 보게 될 것이고, 과학적 자연주의가 근대 초기에서 후기로 이행하는 동안 겪게 된 변화를 이해할 때 자유주의 신학의 사상사적 가치와 한계를 알게 될 것이며, 유신론적 자연주의 세계관의 가능성을 발견할 때 교리주의적 집착을 끊을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보다 풍요로운 기독교 신학의 전통을 경험하고 보다 창조적인 기독교 신학의 미래를 꿈꾸게 될 것이다.

실로 기독교 신학의 전통은 오늘 신봉하는 교리보다 훨씬 크다. 책임 있는 기독교 신학은 교리를 단순히 “희화화해서 전복”시키려하지 않고, 교리의 잘못된 기제를 무력화할 수 있는 “창조적인 긍정”을 통해서 전통의 참된 의미를 오늘에 되살려 갈 것이다. 그리핀의 신학은 기독교의 “본래적 가르침primary doctrine”을 창조적으로 긍정하는 방식을 취해 온 과정신학의 이 전통에 충실하다.

이 책은 그리핀 박사가 은퇴할 무렵에 출판된 것(2004년)으로, 그의 사상적 원숙미가 잘 드러나 있다. 다른 저술에 비해 비교적 작은 분량으로 한정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리핀의 과정신학적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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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 세계신학과 대화하다』

엮은이 : 이정용
지은이 : 로버트 맥카피 브라운, 존 캅, 조지 오글, 레티 러셀,
            디오티스 로버츠, 하비 콕스, 송천성, 고수케 고야마,
            호세 미구에즈 보니노, 크웨시 딕슨, 헤르빅 바그너,
            안병무 이정용
옮긴이 : 연규홍

펴낸날 : 2010년 6월 15일
분  야 : 종교/기독교/민중신학
판  형 : 신국판
페이지 : 304쪽
정  가 : 15,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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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이 책은 드루 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96년 타개한 한국인 이정용 박사가 1988년 미국에서 영문으로 출간한 “An Emerging Theology in World Perspective: Commentary on Korean Minjung Theology”(Lee Jung Yong, New London, Twenty Third Pubns)를 번역한 책이다.

“역(易)의 신학자로 알려진 이정용 박사는 1935년 한국에서 태어나 6‧25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강의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민중신학을 연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노스 다코다 주 그랜드 포크스라는 시에 있는 미군 공군 기지의 작은 “민중” 교회를 맡아 미군들과 결혼한 가난하고, 약하고, 억압받는 한인여성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그의 목회에 “민중신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의도하는 것은 그가 과거에 받은 신학 교육보다 그가 현재 시점에서 하고 있는 목회와 더 연관이 있다고 술회한다.

이 책의 목적은 민중신학과 이 시대의 중요한 신학적 사상들이 대화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서유럽,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 세계 여러 지역과 다양한 신학적 관점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먼저 편저자 이정용 박사는 아시아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nference of Asia, CCA) 신학위원회가 편집한 “Minjung Theology”(Maryknoll, London, Singapore: Orbis Books, Zed, CCA, 1983)와 그 밖의 민중신학에 대한 영문 자료들을 저자들에게 보낸 후, 그들 고유의 관점에서 민중신학을 읽고 그에 대해 평가해 주기를 부탁했다. 민중신학이 지속적인 발전 과정에 있음을 깨닫고 있던 모든 저자들은 이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주제 의식과 관점, 그리고 방법론으로 글을 써 보내주었다. 이 글들을 이정용 박사가 재구성하고 서문에 민중신학에 대한 개관적 글을 덧붙여 이 책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시카고 신학대학의 서보명 교수와 함께 이 책으로 2006년 가을학기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민중신학 세미나를 함께 진행하였던 한신대 연규홍 교수가 번역하여 펴내게 되었다.

세계화가 만들어 놓은 지구촌의 심각한 국가 분쟁, 종교 갈등, 계급 모순을
민중 해방적 관점에서 새롭게 비판하며 대안적 방안을 모색하는 민중신학

오늘 한국 교회에 신학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신학이 있고, 그 신학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으로서의 신학은, 오늘 한국 교회가 무엇을 믿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뜻과 그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를 말해 주어야 한다.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는 금과 은은 없을지라도 나사렛 예수가 있었고, 그에 대한 신앙 고백이 있었다. 그러나 곳곳마다 웅장한 교회 건물을 짓고 십자가를 높이 매단 한국 교회는 금과 은은 풍족할지라도 예수의 복음이 없고 신앙 고백이 없는 교회이다.

민중신학은 1970년대 한국 민중 현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그에 대해 신앙 고백을 한 증언의 신학이며 행동의 신학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눈먼 자 편에 서서 그들의 자유와 정의 그리고 해방을 위해 함께 고난 받으시는 분이시다. 그분을 증언하고 그분을 따라 고난받는 민중과 연대하는 것이 민중신학의 과제이며 사명이었다. 그렇다면 20세기를 지나 새로운 천 년의 첫 세기를 여는 지금 민중신학의 과제와 사명은 무엇인가.

동서 냉전 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주도하의 세계 단일 체제 상황에서, 아직도 지구상의 주요 관심사는 여전히 국가 간의 분쟁과 종교 갈등, 그리고 계급 모순의 문제들이다. 민중신학은 한국이란 공간적 상황과 1970년대라는 시간적 한계를 넘어 오늘 지구화 시대에 고난 받는 세계 민중의 삶의 자유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40년 전과는 달리 세계 선진국 대열에 선 한국 사회가 오늘 겪고 있는 남북 간의 분쟁과 종교 간의 갈등, 그리고 심화되는 계급과 계층 모순들은 세계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것은 오늘 자본주의적 제국화를 뒷받침하는 신자유주의 현실에서 채무국으로 전락한 세계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민중의 고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세계화가 만들어 놓은 지구촌의 심각한 국가 분쟁, 종교 갈등, 계급 모순을 민중 해방적 관점에서 새롭게 비판하며 대안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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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중신학이다』

지은이 : 강원돈 강응섭 권진관 김영철 김은규 김종길
            김희헌 류장현 박일준 이병학 최형묵 홍주민
펴낸날 : 2010년 6월 5일
분  야 : 종교/기독교/민중신학
판  형 : 신국판
페이지 : 440쪽
정  가 : 15,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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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왜 다시 민중신학인가?

세계화의 먹구름이 짙게 깔린 현 세계를 한국의 신학은 어떻게 진단하고 해석하는가? 빈곤과 부채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현실을 사는 수많은 민중에게 교회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민중신학을 70, 80년대에 한때 유행하던 기독교 사회운동의 전투적 이론으로서, 그저 흘러간 옛 노래나 빛바랜 그제 신문쯤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가?

외국에 신학을 공부하러 가면 그곳의 지도교수에게서 듣는 처음 질문이 “기독교가 전래된 지 200년이 넘는 당신네 한국의 신학이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라 한다. 한국에 있을 때 민중신학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공부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 질문으로 인해 민중신학과 토착화신학을 다시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민중신학은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으로서 독창적인 체계를 갖춘 제3세계 신학으로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한국민중신학회(회장: 권진관 성공회대 교수)가 지난 2년 동안의 월례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들을 엮어 한권의 책으로 펴내었다. 매월 정기적으로 모여 토론하는 주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계화와 성서신학적 재해석, 그리고 오늘의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웃 종교, 타 학문과의 연계성 등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민중신학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 이 책은 민중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 위한 모색이라 할 수 있다.

민중신학은 오늘의 세계를 어떻게 담지하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 한국의 대중적 문화와 정신을 들어다보면 더욱 우려할 것들이 보인다. 한국이 갑작스레 잘살게 되며 많은 사람들이 ‘돈맛’을 알게 되어 각박한 세상으로 바뀌었다. 돈과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있고, 성공도 돈으로 환산되고 있다. 성공하지 못하면 낙오된 자라는 강박에 매여 있다. 한국민의 정신은 불구가 되고 말았다. 한국의 개신교회를 들어다보면 더욱 불구가 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돈(맘몬)을 중시하고, 재물의 축적과 재산의 확장이 신앙의 축복이라고 확신하는 신앙관이 개신교인들 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으며, 교회 안에서는 그러한 유형의 신앙관만이 소통되고 있다. 이러한 백성과 이러한 교회가 어떻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일을 제대로 감당해낼 수 있을까?   

민중신학은 한반도에서 새로이 일어나는 정신적인 각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한반도의 죽어 가는 생명의 입장에서 생명과 평화 그리고 정의를 외쳐야 하며, 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희생당한 자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선포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하고 귀중한 일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신학적인 흐름이 한국에 별로 없다는 것을 볼 때, 민중신학의 앞으로의 성과와 공헌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민중신학의 유산과 전통을 새롭게 이어가는 것은 귀중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는다.

민중신학은 닫힌 이론 체계가 아니라, 열려서 살아 있는 민중의 성서적 지혜를 추구함으로써 오늘의 현실을 설명해내고, 대안적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예언자적인 신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리하여 한국 교회와 사회를 향해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한국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는 일에 제대로 공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새로운 민중신학은 계속 모색되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민중신학은 언제나 우리를 둘러싼 상황, 특히 민중의 상황에 조응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충실하게 신학적으로 응답하는 것이라야 한다. 민중신학은 시대마다 시대적인 화두를 발견하고 그 화두를 사회를 향해 던져야 한다. 우리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뿌리에서 그 근원을 찾아내고, 그것을 화두로 혹은 담론으로 이 사회와 교회를 향해 던져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그 뿌리와 깊이에서 분석하고 그것에 대해 신학적인 대답을 감행해야 한다.

이 책은 오늘의 상황에 대한 민중신학적인 응답이다. 이 책을 검토해 보면 오늘날 소장 민중신학자들의 관심과 고민이 무엇인지, 그들의 현실인식이 어떠한지를 살필 수 있다.

-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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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의 신학』

지은이 : 김영혜 김창주 박경철 유연희 유윤종 이영미 이영재 천사무엘 한동구
펴낸날 : 2010년 5월 27일
분  야 : 종교/기독교/구약학
판  형 : 신국판
페이지 : 342쪽
정  가 : 16,000원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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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토라의 신학』은
모압 광야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토라를 다시 들려주던 모세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6:4)고 명령하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화할 것을 권고합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가르치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이지만 동시에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에(딤후 3:15-17) 더욱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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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한국교회』

지은이 : 이원규
출간일 : 2009년 12월 29일
펴낸곳 : 도서출판 동연
판형 : 신국판
쪽수 : 280쪽(본문 2도)
값 : 12,000원
분야 : 종교,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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