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우파'와 대형교회, 세 번째[각주:1]


'주권교인'의 탄생

 

김진호

(본 연구소 연구실장)


카리스마적 리더십


    여의도순복음교회 부설 교회성장연구소 소장이던 홍영기의 책 《한국 초대형 교회와 카리스마 리더십》은 한국의 대형교회에 대한 기념비적 연구서다. 이 책은 한국의 초대형교회(Giga-Church, 일요일 대예배에 출석한 성인교인이 1만 명 이상인 교회) 13개를 분석한 것인데, 이 책의 핵심 논지는 담임목사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교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데 있다. 저자는 초대형교회로 한정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난 연재글에서 보았듯이, 나는 한국의 모든 교회들이 대형교회(일요일 대예배에 출석한 성인교인이 2천명 이상인 교회), 나아가 초대형교회로 성장하게 되는 데 있어 이 요소는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다음 글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데 있어 카리스마적 리더십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요소를 언급할 수 있다. 그것은 교회 건축과 관련된다.)

    한편, 저자의 호교론적 설명과는 다르지만,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내 식으로 이야기하면, 교회의 가용자원에 대한 독점적 지배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을 성장에 집중 투여함으로써 성공한 교회들이 (초)대형교회들이었다는 얘기다. (물론 지난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카리스마적 리더로서 자원의 독점에 성공한 이들은 중・소형 교회에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장기간’ 유지되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대형교회들에선 담임목사는 20~40년간 교회의 절대적 권력자였고, 그 이후에도 은퇴목사로서 사실상의 지배력을 사망 때까지 유지했다.

    이와 같이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가 성장을 위해 가용자원을 장기간 집중 투여함으로써 성공을 실현해낸다는 것은 교회뿐 아니라 국가, 그리고 기업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특히 1960~1990년 사이에 성장지상주의와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결합은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주권교인'의 탄생


    한데 1990년 어간 이전까지 대형교회의 등장은 개신교 교세의 증가와 더불어 나타났다. 반면 그 어간 이후부터 교세의 증가 추세는 급격히 쇠락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마이너스 성장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시기에도 (초)대형교회로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1990년 어간 이후에는 교인들의 ‘수평이동’이 여러 (초)대형교회를 탄생시키는 주된 요소였다는 사실이다. 즉 다른 교회에서 이동한 이들이 대대적으로 유입됨으로써 (초)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들이 많다는 것이다.

   1992년의 《기독교대연감》에는 1991년의 한국개신교 인구가 일천이백만 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나온다. 또 2013년 한국목회자협의회가 전문기관에 의뢰하여 조사한 바에 따르면 22.5%가 개신교도다. 이는 대략 113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데 2005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전수조사된 개신교 인구는 18.3%, 860여만 명에 불과하다. 거의 3~4백만 명이나 되는 통계상의 차이는 주로 중복교적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수평이동이 많다는 얘기다.

    타종교인 또는 비종교인에서 개신교 신자가 되는 이는 대개 교회를 잘 모르는 자이기 때문에 교회의 훈육 대상이 된다. 하여 이런 신자들이 많던 1990년 어간 이전에는 새신자 양육 프로그램이 많은 교회들로부터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1990년 어간 이후에는 가정회복 프로그램이나 자기계발 프로그램 같은 가족과 사회생활을 위한 신앙적 주체형성 프로그램이 더 활발하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게재될 글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새신자보다 수평이동한 교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교회들이 더 많이 활용한 결과다.

   이러한 수평이동 현상이 더 중요해졌다는 사실은 선교 상황의 변화를 의미한다. 도시의 인구집중이 많지 않고 사람들이 넓은 곳에 산개하여 살고 있으며 교통수단이 덜 발전하여 신속한 이동이 여의치 않은 사회는 교구 개념이 발전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회에서 수평이동 현상은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서울처럼 인구가 과잉 집중된 사회, 그리고 교통수단이 대단히 발달한 사회에서 교회는 일종의 종교시장의 상품처럼 선택되고 소비된다. 이때 디지털화된 콘텐츠가 무한 유통되는 정보사회의 매스미디어가 충분히 발달하면 선택될 상품의 가치는 더 다양화되고 더 세밀화되어 전시된다. 그러므로 수평이동 교인들은 교회들에 대해 더 많고 깊은 정보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판단하여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주목할 것은 이러한 정보능력은 사회적 지식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비례한다. 즉 사회적 엘리트일수록 수평교인일 가능성이 많다. 

    이런 교인들을 더 많이 끌어들임으로써 여러 (초)대형교회들이 탄생했다. 물론 이 교회들에서도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가 모든 가용자원을 독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이의 성장전략이 성공하려면 수동적인 새신자를 훈육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더 주체적인 신자들을 위한 선택지를 확대하여야 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 시기에 (초)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들만의 현상은 아니다. 교인들의 유출을 막아야 하는 교회들, 그리고 다른 수평이동 교인들을 유치하려는 교회들도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성장전략을 강구해야 했다. 하여 이러한 상황은 교인들의 주권이 한결 강화되는 상황과 겹쳐서 전개된다. 나는 이를 ‘주권교인의 탄생’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 된다. 아직 교회제도는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신학도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더욱이 대형교회들의 경우는 그 1인의 위상이 여전히 훨씬 더 중요하다. 요컨대 ‘주권교인’은 제도에 있어서는 그 맹아적 형태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표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권교인들의 교회에서의 활동 영역은 제도가 보증하고 있지 않음에도 점점 확장되고 있고, 때로는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재에서 계속 이야기할 ‘웰빙-우파’의 등장은 바로 이 주권교인의 등장과 상당부분 겹친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글들에서 주권교인에 등장의 현상과 의미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루어질 것이다.


'주의 종'들의 천민화


    선교 초기부터 개신교는 많은 학교들을 만들었다. 여기선 신분과 성별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가운데 근대적 교육이 수행되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미국계 장로교의 성공과 더불어 미국 유학생들 가운데 신학교육을 받은 이들의 비중이 대단히 높게 되었다. 1945년 이후 교회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은 자원을 가진 사회세력이 되었고, 교회의 엘리트가 된다는 것은 그 자원들에 대한 통제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1950~1980년대, 그러니까 대학생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 목사들은 교회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유력한 엘리트의 하나였다.  

    하지만 1980년대 어간에 개신교 교세가 초고속으로 성장하던 때에 많은 교단들은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 국가로부터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신학교와 신학생들을 양산했다. 이들은 교단 내에서 심학 차별대우를 받았기에, 성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 성장을 추구하곤 했다. 그런 이들 중 일부가 중・대형교회를 만들어냈다.

    물론 높은 학력을 인정받는 신학대학 졸업자들의 경우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성장만을 위해 올인하던 많은 목회자들은 그만큼의 지성을 갖출 여유가 없었다. 한데 교회가 커갈수록 교인들 가운데 높은 학력을 보유한 이들이 많아졌고, 이는 ‘학력위조’에 대한 필요를 증가시켰다. 요컨대 1980년대를 전후로 하는 시기에 많은 목회자들의 성장지상주의적 전략들은 목회자들에 대한 사회적 위상을 격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여 1990년대에 이르면 신학교의 위상은 급락한다. 성장이 둔화되면서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교권세력이 신학교에 대한 지원을 과거만큼 크게 확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교육에 대한 통제를 본격화했다. 이것은 신학자들로 하여금 근대적 학문의 공론장에서 스스로를 유폐시키게 했다. 신학생들도, 교회 성장세의 급격한 둔화로 인해 취업시장이 얼어붙게 되자, 성장지상주의적 기능성 신학에 몰두했다. 그것은 인문학으로서의 신학이 외면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기에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역할이 크게 둔화되면서 기독교의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와해되자 신학대학은 근본주의 일색의 교회에 완벽히 포위되어 버렸다.

    교회 사역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소형교회의 많은 엘리트 교인들이 수평이동하여 몇몇 대형교회로 속속 옮겨가고 있었고, 새로운 신자의 유입은 거의 멈춰버렸다. 또 적잖은 이들이 다른 종교로 옮겨가거나 비종교인이 되었다. 교회성장의 새로운 비법으로 유행하는 각종 프로그램들은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최소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중・소형교회들에선 효용성이 매우 낮았다. 하여 매년 1천 개 이상의 교회들이 사라져갔고, 생존하고 있는 교회들도 점점 상황은 악화되거나 현상유지에 급급할 뿐이었다. 더구나 파행화된 신학교육으로 인해 신학적 소양이 매우 낮은 이들이 교회로 유입되었다. 악화된 선교환경을 해석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이들에 의해 운영되는 교회들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도시교회에서, 특히 서울의 교회들에서 목회자나 신학생은 가장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에 속한다. 교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고, 이것은 목사들의 주요사역의 하나인 설교를 경청하지 않게 했다. 이것은 목사에 대한 존경심의 붕괴를 의미했다. 하여 ‘주의 종’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던 목사들은 실제로 천민적 존재로 추락했다.


'증오의 정치'와 주권교인의 이반


    최근 대외적으로 선교의 위기가 심화되고 대내적으로 존경심의 붕괴로 인한 지도력의 위기에 놓인 많은 목회자들을 결속시키는 교계의 기획들이 등장했다. 그중 하나가 ‘증오의 정치’의 활성화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위기를 직시하기보다는 다른 것에 투사하여 그것을 증오하고 공격적 행위를 조직해내고 수행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자, 이단, 성소수자 등이 오늘날 교회에 의해 적으로 지목된 주요 표적들이다.

    목사 등, 교회사역자들이 적을 향한 증오를 위해 극우주의 정당을 만들었다. 또 교회의 설교의 자리에서 무수한 증오의 말들을 쏟아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정당을 만들 만한, 그리고 엘리트교인들을 설득할 만한 논리를 갖추지 못했다. 더욱이 약한 논리를 포장할, 존경의 위상도 거의 무너졌다. 하여 엘리트 교인들은 교회를 이탈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남아 있더라도 목사들의 정치에 동조하기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차차 독자적인 행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진보적 행동주의 단체에 동조하는 활동을 개시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은 ‘다른 보수적 행동’을 시작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주간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는 '김진호의 웰빙-우파와 대형교회'의 첫번째 글로, [주간경향]에는 <대형교회는 강력한 웰빙 문화공간이다>(1183호. 2016. 07. 05)로 게재되었습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6271603271&code=1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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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목사의 좌충우돌 실수투성 목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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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향린교회 부목사)

첫 번째 이야기 - 풋내기 목사의 꿈

“하느님께 무엇인가 바치겠다고 너무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급하게 입을 열지도 말라.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름지기 말이 적어야 한다.” (공동번역성서, 전도서 5장 1절)

저는 목사안수를 받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풋내기 목사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목회에 관한 이러저러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에 덜컥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을 해 놓고는, ‘또 실수 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글 쓰는 것을 취소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무슨 말이든 쓰기로 했습니다.

저는 목회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해서 목회란 것을 하겠지만 그렇게 몇 십 년 목회를 한다고 해도 ‘목회란 이런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목사가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 공간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대한, 특히 개신교에 대한 비종교인과 사회의 엄청난 불신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목사가 되어버린 한 인간의 나약한 삶을 그저 쓰고 싶습니다.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저는 목사가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교인들조차도 목사 앞에서는 웃으며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도 속으로는 “으이구, 저런 게 목사라니~” 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의 삶에 있어서 교회와 목사는 이렇게까지 욕만 먹어야 할 곳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여섯 살 때부터 자그만 시골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는 저를 품어준 보금자리였고, 그 교회 목사님은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작은 시골교회에서 동네 사람들과 동고동락하셨고, 제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나이 지긋하신 인자한 할아버지셨지요. 그 목사님은 원래 음악교사셨는데, 아버님이 한국전쟁 중에 순교를 당하자 맏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 목사가 되셨고, 평생을 그 작은 시골교회에서 어렵고 힘든 삶을 감당하신 분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신나게 놀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인간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사람들과 함께 모여 얘기하고 웃음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의 유년과 청소년, 청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그 교회에 가면 엄마의 품에서 쌔근쌔근 잠든 갓난아이처럼 포근하고 아늑함을 느낍니다. 제가 어쩌다가 목사가 되었는지 저도 사실은 잘 모르지만 20년 동안 저의 삶의 한 부분이었던 그 작은 교회의 아름다운 경험이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는 지금도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어느 누구도 제가 신학을 하고 목사까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실 저 자신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땅에 뿌려진 씨가 저절로 자라듯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되었습니다(마가복음 4:26-29). 세상엔 온갖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 많지만 저는 한명의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신비를 믿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 인간은 땅에 있기에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문제 가득한 이 세상도 눈 크게 뜨고 보면, 잠잠히 입 닫고 고요히 있다 보면, 여기저기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하나님의 신비로 가슴 한켠에서 잔잔히 밀려오는 감동에 눈물 적시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생존의 욕구와 더불어 자아실현의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저도 욕망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지요. ‘돈’이 ‘하느님’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돈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내밉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욕망이 있다면 제가 그 어린 시절 작은 교회에서 느꼈던 그 행복하고 뿌듯하고 신났던 그 경험을 누군가의 삶 속에 일어나도록 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가 이런 저의 욕망에 대해 꾸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웃긴 놈아! 그러니까 목사 쓰레기라고 불리는 거야. 알았어!” 그래요.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사람은 원래 사람들하고 함께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사는 맛도 느끼는 것이니까, 교회라는 곳이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그 곳이 그런 곳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풋내기 목사로서 하느님께 뭔가 바치겠다는 성급한 생각을 할까봐 전도서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사실 제 주변에 가까운 분들은 제가 목회를 하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도 그렇고 제 아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라는 거창고등학교에 써 있다는 직업선택의 십계명의 뜻을 생각하면서 아마도 전 계속 목사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목사가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 개인에게는 단 한번 지내는 일생이겠지요. 목사로서의 제 삶을 반추하고 성찰하기 위해 몇 분들의 생각을 소개하고 첫 번째 글을 마칠까 합니다.

첫 글은 권정생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우리들의 하느님

한 20여년 전, 친구한테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내용은 내가 만약 교회를 세운다면, 뾰족탑에 십자가도 없애고 우리 정서에 맞는 오두막 같은 집을 짓겠다. 물론 집안 넓이는 사람이 쉰명에서 백명쯤 앉을 수 있는 크기는 되어야겠지. 정면에 보이는 강단 같은 거추장스런 것도 없이 그냥 맨마루바닥이면 되고, 여럿이 둘러앉아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는 예배면 된다. 00교회라는 간판도 안 붙이고 꼭 무슨 이름이 필요하다면 '까치네 집'이라든가 '심청이네 집'이라든가 '망이네 집' 같은 걸로 하면 되겠지. 함께 모여 세상살이 얘기도 하고, 성경책 얘기도 하고, 가끔씩은 가까운 절간의 스님을 모셔다가 부처님 말씀도 듣고, 점쟁이 할머니도 모셔와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마을 서당 훈장님 같은 분께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듣고, 단오날이나 풋굿 같은 날엔 돼지도 잡고 막걸리도 담그고 해서 함께 춤추고 놀기도 하고, 그래서 어려운 일, 궂은 일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그런 교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어때요? 좋지요. 저도 이런 교회를 갖고 싶답니다. 프랑스 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베 피에르 신부가 하는 공동체가 있는데 거기에 누군가 찾아 오면 세 가지를 물어본다고 합니다. 

“주무시겠습니까? 드시겠습니까? 씻으시겠습니까?”

이 공동체에서는 이렇게 누구나 환영하고 함께 사는 이들은 자신이 먹을 것보다 조금 더 많이 일을 한다고 합니다. 남을 살리기 위해 더 일하는 교회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에 사셨던 신앙의 아버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이시여!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한국의 그리스도교 제도 내에서 목사를 하면서 정말 신을 사랑할 때 꼭 해야 할 것들을 할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신을 사랑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무슨 행동을 할까요? 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어떤 목회를 해야 할까요?”

두 손 모아 잠깐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성공회 주교였던 존 엘브리스 하인스가 설교를 시작할 때마다 했던 기도입니다.

“은혜로우신 하느님, 우리가 당신께 아무런 뜻도 없는 일들을 습관처럼 행할 때, 우리를 용서하소서.”

ⓒ 웹진 <제3시대>

* 향린교회 http://www.hyangl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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