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이슈에 자극된 생각들 1] 그들이 ‘이단’인 이유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Interdiscipilinary Studies박사과정(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박사후보생,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인간 예수가 하느님이다”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부인할 수 없는 출발점이다. 그런데 그래서 더더욱 더 골치거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하느님인 인간 예수”가 있음으로 해서, 그리스도교는 같은 히브리 성서의 전통을 공유하는 유대교나 이슬람교와는 달리,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반드시 ‘삼위’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인간 예수 이전의 하느님, 하느님인 인간 예수, 인간 예수 이후의 하느님 이 3가지 현상을 반드시 함께 다뤄야 하니까. 한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3가지 현상을 관통하는 ‘한 가지’ 통일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 하긴 오히려 그래서, 이 ‘3과 1이라는 두 숫자의 관계’에 대해서 담론이 풍성해지는 측면도 없지 않긴 하겠지만.

   게다가 이 ‘하느님인 인간 예수’라는 현상 자체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할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하느님과 인간은 철저하게 구별된다는 사고가 기본에 깔려 있는 것이 그리스도교를 위시한 소위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들의 특색인데, 갑자기 한 인간이 동시에 하느님이기도 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말이다. 실제로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는 그리스도교 교회 중에서도, 사실은 ‘하느님인 인간 예수’가 아니라 인간성을 흡수하여 단일한 신성을 만든 ‘하느님인 예수’였다고 주장하는 교회들이 존재하니까.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서 현재 ‘정통적인 견해’는 이런 것이다. 예수는 “참 하느님이신 동시에 참 인간이다”라는 것. ‘하느님’과 ‘인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쨌든 모두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래야만 예수라는 존재를 온전히 해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담긴 견해라고 할 수 있겠고, 필자도 그러한 생각에 큰 이의는 없다.

   그러나, ‘참 하느님인 동시에 참 인간’이라고 말을 하게 되면, 다른 질문 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도대체 ‘참 하느님’과 ‘참 인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2. 

   어느새 성소수자 인권운동 지지 기독교인의 대표격이 되어 버린 섬돌향린교회의 임보라 목사에게 다른 교단에서 엉뚱하게도 무려 '이단 시비'를 걸었다. 그 이단 시비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과정에서 요런 소리가 나왔나 보다. 성소수자 이슈 관련 신학적 논의에서 예수를 성소수자라고 한대나. 그러니 이런 '이단 논의'를 소개하려는 목사가 '이단'이 아니면 뭐냐면서.

   글쎄. 먼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긴 한지부터가 확인이 되어야겠으나(뭐 필자도 예수와 요한복음의 '그가 사랑한 제자' 사이의 관계를 동성애적 상상으로 읽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먼저 드는 생각은, 앞에서 본 것처럼 “참 하나님이자 동시에 참 “인간”이라는, 그런 인간인 예수인데, 그 인간 삶의 중요한 측면 중에 하나인 '성'이라는 측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비어 있다시피 하다는 것이다(그래서 덕분에 '막달라 마리아'와 짝짓기하는 상상이 종종 나오기도 하지 않던가). 웃기는 것은 그렇게 비어 있는 와중에도 '남성'이란 건 꼭 붙들고 앉아, 예컨대 여성이 신부나 목사가 되면 절대 안 된다는 근거 중의 하나가 된다고 우긴다는 것이지만. 

  사실 '그가 사랑한 제자'니 막달라 마리아니 뭐니 그런 상상하지 말고, 그냥 기록에 남은 대로 성 관련 이야기는 아예 없었다, 즉 성 측면에선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라고 한다면, 농담 조금 심하게 섞으면 '고자'라 해도 할 말 없고, 조금 진지 모드를 섞어 보면, LGBT가 AIQ로 확장될 때 A(무성애자)라고 해 볼 만도 할 텐데, 그럼 예수를 성소수자라고 한다고 해서 굳이 틀린 말이 될 것도 없을 지도.

   물론 기록이 없는 것뿐인데 함부로 추측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방금까지의 이야기가 ‘함부로 추측’이라면, 예수가 음경을 갖고 있었다고 ‘이성애자 남성’이라고 단정하는 것 역시 ‘함부로 추측’이긴 마찬가지일 터.


   3.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라는데, 그래서 ‘참 하나님’은 무엇이고 ‘참 인간’은 무엇인가, 그래서 예수가 어떤 존재라는 것인가를 물으려니, 당장 ‘참’까지도 안 가고 ‘인간’부터 이렇게 그냥 넘어갈 수만은 없게 된다. 어쨌든, 예수가 ‘참’자를 달든 말았든 '신인 동시에 인간'이라면, 그건 1차적으로는 예수라는 존재, 더 나아가 그 예수라는 존재에 근거해서 신을 이야기해야 하는 그리스도교라는 지평을 깔고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할 때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예수에 근거해야 한다는 뜻일 것은 분명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나가 보면, 예수란 존재가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이어야 한다면, 그리고 그 예수라는 존재에 근거해서 ‘신’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과 ‘인간’을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신'이란 것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는 '인간'이란 것의 모든 구석구석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렇다면 반대로 '인간'이란 것을 이야기할 때도 언제나 '지금 이야기되지 않은 것'에서 나타날 지도 모르는 '신'에게 뒤통수 맞을 준비 항상 되어 있어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당장 바로 앞에서 보았듯이, ‘인간’의 한 종류인 성소수자 문제만을 고려해도, 상황이 꽤 달라지지 않던가. 

   인간의 모든 구석구석을 건드린다면, 그런 '신'은 우리에게 어떤 따라야 할 '모범'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방금 이야기했듯이 차라리 뒤통수 때리는 존재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나 아니 그래서, 그를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나를 소환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그래서, 필자는 "예수를 본받자"라는 이야기가 그다지 맘에 내키지 않는 편이다. 그건 이미 '예수'를 어떤 '모범', 즉 이미 현재의 세상에서 '모범'이라고 수긍이 되는 존재로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테니. 또한, 인간의 모든 구석구석을 건드림으로써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신’이라면, 그 ‘신’을 이야기하는 근거가 되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예수’는, 1세기 팔레스틴에 살았다는 기록을 남긴 존재로서의 ‘역사적 예수’와 동일하지만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모든 구석구석을 이야기하면서 '신'이란 것을 찾아야 한다면, 예수를 통해서 '신'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런 의미라면, 예수를 통해서 이야기되는 '신'이 성소수자라는 게 '이단'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에 이단이라고 거품을 물면서 ‘신’은 절대 성소수자가 될 수 없다고 하는, 바로 그들이 '이단'이지 않겠나. 인간의 모든 구석구석을 통해 이야기되어야 하는 ‘신’을, 감히 ‘성소수자 인간’은 빼고 이야기하자고 덤비는 ‘신성모독’자들일 테니까 말이다.

   뭐, 길게 이 소리 저 소리 늘어 놓았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 한 마디면 될 일이다. 

   "아따, 성소수자도 되지 못하는 신을 어따가 쓸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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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토핑에서 민중신학까지–신은 명사일까 동사일까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세탁소 일을 두어 달 정도 했던 적이 있다. 세탁소에 처음 일하러 갔던 날 이것저것 일을 배우다가 어색한 단어 하나를 들었다. ‘배깅’이란다. 대충 bagging쯤 되겠거니 하고 이해했고 세탁물 포장하란 이야기인 줄이야 알아듣긴 했는데, bagging이라니 bag이 동사라도 된단 말인가 싶은 느낌.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현상이 부지기수다. 피자 토핑(topping) 같은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익숙한 말일 터이고, 요즘 한국에서도 건설회사들이 하우징(housing)이란 말을 쓰기 시작한 모양이다. 교통 벌금이 두 배가 된다는 말을 doubled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럴 듯 하다. 작년 미국 대선 관련 기사를 읽다 보니 back이라는 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트럼프 지지자를 두고 those who back Trump 뭐 이렇게 쓰는 식이다.

   그래도 이런 단어들은 영어 사전을 뒤지면 동사로서 쓰는 경우가 있다고 나오긴 한다. 그런데, 식품점에 장을 보러 갔더니, 야채를 쌀알 비슷한 모양으로 잘라놓고 파는데, 포장에 Riced라고 써 있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싶은 느낌. 아마 한국어로 직역하면, ‘쌀한’ 혹은 ‘쌀된’쯤 되려나? 그러니까 대강 이런 이야기가 되겠다. 명사나 형용사가 그대로 동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언젠가 서울시가 I seoul you라는 홍보문구를 내밀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은 적이 있었는데, 위와 같은 상황을 깔고 보면 이해가 전혀 안 가지만도 않겠다. 물론, 그래서 저 문구에서 정작 ‘seoul’이 뭔 뜻인지가 아리송하다는 게 문제겠지만. 


  2. 

   Bag, house, rice 같은 말을 저렇게, 명사를 그냥 동사같이 쓸 수 있다니까, 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본다면, 이런 용례를 God이라는 단어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이렇게 물으려니 속에 뭔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은, God, 즉 신이라는 말은, 어쩐지 굳이 따져 본다면 명사를 동사같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동사를 명사같이 써야 하는 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 분들도 아마 이런 이야기에는 동의를 할 것이다. 인간이 신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물론 ‘성서’나 ‘교회의 전통’ 등을 통해 더 많이 파악을 할 수 있다고도 하겠으나, 그것을 감안해도 결국은 ‘불가능’이긴 마찬가지다. 그 말은 곧 신에 대한 이해를 ‘명사’적인 방법으로 할 경우 그 ‘명사’의 내용을 완벽히 채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되지 않겠는가. 필자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최근에 내신 책 제목마따나, 신은 ‘알 수 없는 분’인 것이다.

   그러나, 명사로서의 신이 ‘알 수 없는 분’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사건에 신이 관여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가능하고 실제로 많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아니, 종교와 신앙이란 것 자체가 바로 그 ‘어떤 사건을 두고 그 사건에 신이 관여되어 있다고 말하는 행위’의 집적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집적된 행위들을 성찰해 가면서, ‘신’이라는 ‘명사’의 내용을 완벽하게는 불가능해도 더 많이 채우게 되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신’이란 단어의 1차적 의미에 가까운 품사는 명사라기보다는 동사가 아닐까 싶은 것이고, 명사로서의 신은 그런 동사의 집적에서 명사의 요소를 뽑아내고자 할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3. 

   신이라는 단어가 동사를 명사같이 써야 하는 말이라면, 당장 직면하는 현실은 그 ‘동사’가 정말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즉 어떤 사건에 신이 관여되어 있다고 할 때, 그 ‘어떤 사건’이라는 것이 정말 제각각이고, 그 제각각의 내용이 쉽게 타협이나 조정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 제각각 중에서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가리려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가능한 한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가리려 하지 않는다. 물론 이 두 가지 태도가 공존하면서 어떤 국면에서는 전자가 나타나고 어떤 국면에서는 후자가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필자는 굳이 골라야 한다면 차라리 전자를 고르고 싶긴 하다).

   그런데 만약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가릴 수 있다면, 그 때 그 ‘맞는 것’이 되는 ‘동사’로서의 신은 인간에게 ‘모범’이 되는 그런 ‘동사’일까. 일단 이 글은 ‘그리스도교인’ 대상이니까 ‘그리스도교’ 안에서만 이야기해 본다면, 그 ‘그리스도교’에서, 신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실마리라는 ‘예수’는, 더도 덜도 아닌 정치범 사형수다. 게다가 그는 생전에는, 그 당시 신을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실마리라는 ‘율법’이나 ‘전통’을 두고, 그런 것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든 나는 이렇게 이야기할래 그게 맞어라고 뻗댔던 사람이다.

   그러니, 이런 ‘예수’를 두고 묻는 적절한 질문은, 흔히 생각하곤 하는 이런 질문이 아닐 수 있다. “예수가 신이라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닮을 것인가” 혹은 “예수가 신이라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오히려 그런 질문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런 질문 아닐는지. “예수가 신이라면, 정말 ‘저런’ 예수가 신이라면, 도대체 ‘신’이란 건 뭔가? 아니, ‘저런’ 예수를 신이라고 하는 세상이라면, 대체 그 세상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건가?” 즉, 예수를 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모범’이나 ‘절대자’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예수를 ‘신’이라고 밀어붙임으로써 세상을 당혹스럽게, 난감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당혹과 난감을 풀어내기 위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도록 강제하는 일이라는 뜻도 되겠다.

   이런 예수 이야기의 양상에서 ‘신’을 이야기하는 데 대한 지혜를 빌어온다면, ‘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해답’일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이고 ‘출발’일 것이다. 또한, ‘신’을 이야기한다고 어떤 ‘권위’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직 그 이야기하는 사람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게 자신의 삶에서의 ‘사건’에 다가가서, 자신의 출발점을 잡아내고 그것을 자신 스스로 얼마나 밀어붙일 수 있을까를 이야기할 수 있을 뿐. 그리고 ‘권위’나 ‘보장’이 없으니, 그 밀어붙임이 낳는 빛과 그늘에 솔직해야 할 뿐. 또한, 자신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닐 터이므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맞닥뜨리는 것을 감당해야 할 뿐.


   4. 

   민중신학 연구자 중 한 명인 필자의 사견은 방금 말한 것과 같은 방식의 신 이야기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신학 중 하나가 민중신학이라는 것이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두고,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한 사람은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강도 만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라면, 즉 ‘구원을 주는 존재’라면, 이 지점에서 나올 수 있는 적절한 반응은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기보다는 “아니 그런 게 구원이에요? 그럼 도대체 그런 구원을 왜 받아야 해요?”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구원이라고, 그런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다”라는 말의 뜻이리라. 나는 이 자본주의 혹은 이 민주주의 세상에서 잘 살고 있으니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따로 구원이 필요없겠다 싶은 사람들에게, ‘잘 산다’는 것이, 그래서 ‘구원이 필요없다’는 것이, 착각일 뿐이라고 밀어붙이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것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다”라는 말의 효과라는 것이다. 이 말을 출발점으로 하여 조금 더 나가 본다면, 그런 ‘잘 산다는 착각’이야말로, ‘사람’이 ‘강도’를 만나게 되는 세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지금은 어떤 종류의 ‘잘 산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을 일단 권력의 자리에서 막 떨구어 낸 시간이다. 아마도 6주 정도 지나면, 저런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를 차지할 것 같아 보인다. 이른바 ‘정권교체.’ 뭔가 ‘진보적’인 일들을 할 거라는 정권이 들어선다는 ‘정권교체.’ 그 ‘정권교체’가, 다른 종류의 ‘잘 산다는 착각’을 재생산하는 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민중신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권력을 잡든지 간에, ‘강도 만난 사람’ 앞에서 당혹해 하고, 그 당혹을 출발점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내라는 강제를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갈 때까지 가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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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사회적 분열과 "비시민"의 출현에 대한 고찰(4)


-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의 결합을 통하여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서론


    2.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라는 사회적 합의의 형성과 붕괴

     (1)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의 형성

     (2) 남한 국가의 형성과 근대화에 미친 미국의 영향 

     (3) 남한 사회의 사회적 균열의 시작 – ‘민중’의 출현

     (4) 남한 사회의 내부합의의 동요와 붕괴

     (5) 남한 민족주의의 분화와 분열


    3. 남한 사회에서의 ‘무능력자’와 ‘무자격자’ 형성의 구조

     (1) 민주화 시대 ‘시민’의 출현

     (2) 남한 경제구조의 신자유주의적 변화

     (3) ‘시민’ 내부의 사회적 배제와, ‘무능력자’와 ‘무자격자’의 낙인이 찍힌 ‘비시민’의 출현


   이승만/박정희 정부 때의 야당은 반공주의와 결합한 자유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고, 박정희 정부 때부터 등장한 민중운동은 반자본주의를 부분적으로 포용했던 반면에,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와 거래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인 자유주의적 ‘시민’은, 위에서 언급한 기존의 야당과 민중운동 양자 모두에 대해 거리감을 두었다. 이러한 ‘시민’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사회의 규칙으로 수용하고,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과도한 반공주의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기존의 사회운동, 특히 민중운동에도, 자신들에게 과도한 도덕적 부담을 강요한다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각주:1] 그리하여, 이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자신들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에 걸맞는 ‘상식’을 아는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표준의 담지자임을 자처했다.[각주:2] 이 ‘시민’들은, 정부가 자신들과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저항을 불순한 것으로 비난했을 때, 즉 자신들의 ‘상식’이 정부에게 거부당했을 때, 촛불 시위나 인터넷 청원 등의 사회적 의례를 개발하고 실행함으로써 자신들의 분노를 표현해 냈는데, 김진호는 이런 의례들을 ‘한국적 시민 종교’[각주:3]라고 칭했다. ‘시민’들의 인터넷 활용 능력은 이러한 ‘한국적 시민 종교’를 개발해 내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했다. 자유주의적 입장의 ‘시민’들에 의해 이러한 ‘시민 종교’가 개발된 이후, 보수주의적 입장의 시민들도 저런 ‘시민 종교’를 모방하여, 친미 시위를 개최하거나 카톡을 통해 루머를 퍼뜨리는 등의 의례를 개발해 내기도 했다.  


   1) '무자격자' 창출 현상


   그런데 이러한 ‘시민 종교’ 의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을 ‘무자격자’로 치부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광범위한 대중을 포괄하는 인터넷에서의 의례가 반복되는 중에, 이명박이나 박근혜 등의 보수주의적 대통령들을 일본식 이름으로 칭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이 자유주의적 시민들이 그 보수주의적 대통령들을 “외부인”, 즉 남한 사회 바깥의 인간으로서 남한 사회에 정당한 발언권을 가지지 못하는 인간으로 간주하려 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보수주의적 정당과 언론에 대한 자신들의 과거 조사를 통해 그들의 과거 식민권력에 대한 협력 사실을 찾아 내고 이에 근거해 그 정당과 언론들을 “친일파”로 칭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주의적 ‘시민’과 정당들은 상대편을 “친북주의자”로 칭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심지어는 성소수자 운동에 대해서까지 이러한 호칭을 쓰는 경우도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을 ‘적’으로 간주해 증오하는 보수주의자들이 ‘종북주의자’라고 욕하는 자유주의적 ‘시민’들 역시, 북한을 ‘이상한 타자’(식민주의적 뉘앙스까지 담긴)로 간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자유주의적/보수주의적 ‘시민’들 양쪽 모두 상대편을 ‘친일’/’친북’으로 딱지붙임으로써, 상대편을 ‘외부인’, 즉 한국에 살 자격이 없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한윤형은 남한의 사회구조가 “북한인과 일본인의 민주주의”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각주:4] 이는 남한의 ‘시민’들이 자유주의자/보수주의자 모두,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상대편을 ‘북한인’과 ‘일본인’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규정된 상대방과 자신을 비교하여 자신을 민주주의의 대변자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이런 ‘외부인’ 창출 현상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에서도 나타난다. 보수주의적 시민들이 이전부터 그런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면,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자유주의적 시민들에게도 그러한 적대감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런 적대감의 주된 명분은 그들이 ‘불법체류’를 한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국민’들만 받아야 하는 복지혜택을 일정하게 받는다(혹은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대감은 경우에 따라서 결혼 이주자들에게까지 확대되는데, 이자스민의 경우가 한 예이다.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자로 새누리당의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이자스민은 그의 당적과 전 국적으로 인해 비난받았다. 그가 이주노동자들의 ‘불법’체류 여부에 상관없이 그 자녀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거주권과 복지를 보장하고자 하는 법안을 발의했을 때,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이 법안이 ‘불법’ 이주노동자들이 합법 신분을 얻는 데 악용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보수주의적 시민들도, 그의 당적에 대한 비난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비난을 그에게 퍼부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적/보수주의적 ‘시민’들은, 그들의 상대편이나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 등을 남한 사회의 ‘합법적’ 주체로서의 ‘국민’과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혹은 가져서는 안 되는 ‘무자격자’로 간주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런 사실의 연장선상에서, 남한 사회의 내셔널리즘은 ‘무자격자’를 창출해 내는 기제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자격자’ 창출 현상은 젠더편향적이기도 한데, 이를 드러내는 현상으로는, 여성들이 특히 병역 문제로 인해 남성들(자유주의적/보수주의적 양쪽 모두)에게 동등한 시민으로 간주되지 못하는 현상이 있다. 


   2) '무능력자' 창출 현상


   남한 사회의 직업 안정성이 약화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노동시장의 경쟁이 극심해졌다. 그에 따라 남한 사람들은 자신이 좋은 직업을 가질 만한 자격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심대한 노력을 해야만 하게 되었고, 특히 생계 전선에 막 뛰어든 청년들에게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중해졌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안정된 직업을 얻기가 상당히 힘들지만, 그들은 안정된 직업을 얻기가 힘든 것은 자신들의 능력부족 때문이며 그러므로 자신들과 자신들의 능력을 푸대접하는 사회에 저항하기보다는 더 많은 능력을 갖추는 데 집착하도록 길들여져 왔다. 그리하여 남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직난을 자신들의 능력부족으로 돌리게 되면서,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특히 자신들이 불의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즉, 어떤 이들이 공정하고 평등한 고용이나 노동 조건 등을 요구할 때, 많은 남한 사람들은 그런 요구를 할 능력이나 자격도 안 되는 주제에 부당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해 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 조건 개선이나 정규직화 등을 요구할 때, 많은 청년들은 그들은 정규직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며, 만약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준다면, 정규직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공정한 처사가 될 것이라고 반응한다.[각주:5] 

   이런 분위기 아래에서, 장애인, 노숙자, 실업자, 노동빈곤자 등의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그들의 ‘능력 부족’을 명분삼아 정당화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능력 부족자’로 간주되는 이들과 소수자들의 사회적 상태는 점점 더 많이 중첩된다. 필자는 이러한 중첩을 “무능력자”의 창출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안정된 고용의 감소 현상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변화에 기인한 경제적 양극화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더 많은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안정된 직업을 얻기는 상당히 어려우므로, 그들이 “무능력자”라는 딱지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무능력자”들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효율성을 성취할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로 간주되므로, 자본주의 사회에 쓸모없는 “잉여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각주:6] 그러므로, 이러한 “무능력자”와 “잉여인간”의 딱지는, 흔한 생각대로 장애인이나 실업자 같은 소수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인 지구화 경제에 깊게 연루된 한국 사회의 누구에게라도 붙을 수 있는 딱지임을 알 수 있다. 


   3) "비시민"들의 공통점


   “무자격자”와 “무능력자”의 공통점은 둘 다 “시민”들에 의해 배제당하는 존재라는 점이며, 이 때 그 배제가 “외부인”이나 “능력 부족” 등의 그럴듯해 보이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두 범주를 “시민”에 의해 배제되는 “비시민”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합치고자 한다. 이 때, 앞에서 “무능력자”를 다루면서 언급했듯, “비시민” 현상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한정되지 않는 사회 전반적인 현상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무자격자”의 경우를 보더라도, 앞에서 언급한 “북한인과 일본인의 민주주의”라는 레토릭은, 누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는 “무자격자”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하겠다. 어떤 이가 “비시민”으로 간주될 때, 그가 어떤 일을 겪는지를 살펴 보는 데에는 소수자들의 고통이 어떻게 취급되는지를 살펴 보는 것이 참조가 될 수 있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대체로 아래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마련이다.[각주:7] 


  • 소수자의 고통은 사회적 문제로 인정된다. 

  • 그러나 그런 인정이 존재한다고 해서, 소수자들에 대한 불법적이고, 위험하며, 무능하다는 등의 이유로 인한 배제의 정당성이 의문에 붙여지는 것은 아니다. 

  • 심지어 민주화를 지지하는 사람들까지도 포함하여, 일부 시민들에게 그러한 배제의 정당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그러므로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시민” 역시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것을 확고하게 정당하고 있다. 

 


   4) 남한 사회와 민중신학에 대한 탈식민적 고찰의 실마리인 "비시민"


   한국 민중신학의 독특한 언명 중 하나는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서남동에 따르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이유는,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 등의 진면목이 그 강도 만난 사람의 고통 앞에서 폭로되며, 그럼으로써 그들이 구원받을 지 못 받을 지가 바로 그 고통 앞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각주:8] 서남동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구원이란 오직 고난받는 이들이 다른 이들의 걸림돌이 되어, 그 걸림돌에 걸린 사람들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에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에서 구원의 길을 탐색하는 핵심 통로는 고난받는 이들, ‘민중’의 현실을 증언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각주:9] 

   앞에서 논의했던 ‘비시민’은 민중신학이 증언하고자 하는 ‘강도 만난 사람’, 곧 ‘민중’의 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시민’으로 자기를 규정하는 이들이 ‘비시민’의 배제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광범위하게 공유한다는 점과, 누구든지 어떤 경우에는 ‘비시민’으로 규정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비시민’의 현실을 증언하는 것은 배제를 폭로하고 그 배제의 명분이 틀렸다고 선언하는 일이 되고, 거기에서부터 배제의 시스템이 깨지기 시작한다. 즉, 증언은 ‘비시민’을 배제하는 바탕 위에 서 있는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거부의 시작인 것이다. 엄기호의 표현을 빌리면, ‘시민’의 입장에서의 슬로건이 “사회를 보호하고 사람을 폭로하라”라면, ‘비시민’의 입장에서의 슬로건은 “사람을 보호하고 사회를 폭로하라”이다.[각주:10] 

   ‘비시민’의 배제에 동참하는 ‘시민’들은, 그 배제를 정당화하는 근거, 특히 내셔널리즘이나 자본주의 등등의 이데올로기를 광범위하게 공유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시민’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미국/일본이나 북한을 타자로 설정하고 있는 내셔널리즘은, ‘무자격자’를 창출하고 그들을 배제하는 주된 근거의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하위파트너로 세계화된 경제에 참여하려는 ‘제국의 눈’을 갖고 있는 ‘자유주의적’ 시민들이 내면화한 자본주의는 ‘무능력자’의 창출과 배제에 주된 근거가 된다. 따라서, 남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배제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배제 안에 뿌리박혀 있는 남한 사람들의 내셔널리즘과 제국주의적 욕망 양쪽을 모두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탈식민 사상과 운동은 탈식민, 탈냉전, 탈제국을 모두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각주:11] 천 꽝싱의 주장은 남한 사회의 현실을 분석, 비판하는 데 좋은 참조점이 된다. 특히, 천 꽝싱이 제안하는 ‘비판적 혼합’과 ‘타자 되기’의 방법론, 즉 식민화를 겪은 주체들끼리의 상호 동일시를 통해 연대를 구축하는 방법론은 민중신학에도 좋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각주:12]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비시민’은 남한 사회 내의 ‘강도 만난 사람’들, 즉 민중이며, 따라서 구원의 시금석이 된다. 따라서 남한 상황에서의 민중신학의 주 임무는 ‘비시민’의 현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남한 사회의 타자인 ‘비시민’의 배제의 현실을 증언함으로써 그 배제를 거부하고 그 타자와 연대를 시작하게 된다. 이는 ‘비판적 혼합’의 방법론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게 될 것이다.  


   4. 결론


   노암 촘스키의 한 강연에서 어느 MIT 학생이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고 한다. “교수님께서는 바람직한 발전의 모델을 이룬 나라가 현실 세계 중 어디라고 보십니까?” 촘스키의 대답은 이러했다고 한다.  

   “한국(South Korea)입니다. 한국 국민들은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딛고 일어나서, 다른 나라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동시에 독재 정권에 항거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해 냈습니다.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할 정도로 첨단 기술이 온 국민들에게 골고루 퍼졌고, 2002년에는 네티즌의 힘으로 개혁적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정도로 풀뿌리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각주:13] 

   이 에피소드에 촘스키의 반응이라고 소개된 내용에서는, 남한 사회의 자유주의적 ‘시민’의 관점인, 탈식민국가로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으려 소망하는 나라로 남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 드러난다. 이러한 소망은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적 비전 중 하나로 공식화되어 있기도 하다. 민주화 역사 속의 많은 사건들이 현재 공식적으로 기념되고 있으며, 동시에 “국민소득 4만 달러로의 성장을 위한 경제적 기반 구축”이 공식적인 경제적 비전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마리 토끼 쫓기는 필연적으로 그 과정에서 ‘비시민’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비시민’의 출현은, ‘비시민’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도 ‘두 마리 토끼 쫓기’가 가능한 것인가라는 비판적 의문의 실마리가 된다. ‘비시민’의 존재가, 그들의 배제에 근거하여 남한 사회의 식민 이후의 경제적/사회적 구조가 유지되는 주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한, ‘비시민’은 남한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적 실존의 가장 심층을 건드리는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다. 따라서 ‘비시민’에 대한 배제를 거부하는 것은 사회적 실존의 급진적 변화가 동반되어야 가능하며, 이런 의미에서 ‘비시민’은 신학적 주제가 된다. 민중신학이 타자로서의 ‘비시민’의 이슈에 신학적으로 응답한다면, 남한의 타자로서의 북한이라는 이슈와, ‘시민’에게 내면화된 제국주의적 욕망이라는 이슈와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따라서 민중신학의 ‘비시민’ 증언 작업은 필연적으로 탈식민, 탈냉전, 탈제국의 동시 추구라는 탈식민의 관점과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한윤형. 안티조선운동사(서울: 텍스트, 2010), 249~250 [본문으로]
  2. 위의 책, 247 [본문으로]
  3. 김진호. 시민 K, 교회를 나가다(서울: 현암사, 2012), 68 [본문으로]
  4. 한윤형 “종북과 극단적 민족주의의 차이는?”, 프레시안 2015년 3월 12일 게재,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4610 [본문으로]
  5.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고양: 개마고원, 2013). 19 [본문으로]
  6. 최태섭. 잉여사회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3), 82~84 [본문으로]
  7. 졸고,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이다”-민중신학적 관점의 주체성 탐구”, 김진호/김영석 편저, 21세기 민중신학-세계 신학자들, 안병무를 말하다(서울: 삼인, 2013). 387 [본문으로]
  8.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서울: 한길사, 1983), 107 [본문으로]
  9. Kim, Jin-Ho. "The Hermeneutics of Ahn Byung-Mu." In Reading Minjung Theology in the Twenty-First Century: Selected Writings by Ahn Byung-Mu and Modern Critical Responses, ed. Yung Suk Kim and Jin-Ho Kim. Eugene: Pickwick Publications, 2013, 22 [본문으로]
  10. 엄기호,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1). 192~193 [본문으로]
  11. 천꽝싱, "세계화와 탈제국,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이정훈, 박상수 편, 동아시아, 인식지평과 실천공간(서울: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2010), 89 [본문으로]
  12. ______, 제국의 눈(창비: 2003), 153 [본문으로]
  13. 이원재, 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보고서(서울: 원앤원북스, 2005), 177~17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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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사회적 분열과 "비시민"의 출현에 대한 고찰(3)


-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의 결합을 통하여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서론


    2.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라는 사회적 합의의 형성과 붕괴

     (1)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의 형성

     (2) 남한 국가의 형성과 근대화에 미친 미국의 영향 

     (3) 남한 사회의 사회적 균열의 시작 – ‘민중’의 출현

     (4) 남한 사회의 내부합의의 동요와 붕괴

     (5) 남한 민족주의의 분화와 분열


    3. 남한 사회에서의 ‘무능력자’와 ‘무자격자’ 형성의 구조

     (1) 민주화 시대 ‘시민’의 출현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성취되기 이전에는, 남한 사람들 대다수는 자신들을 ‘국민’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은 이따금 민주화운동을 정당화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했으나, 대체로 국가에 대한 복종의 함의를 갖고 있는 말이었다. 그 경우, 국민은 개인의 집합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단일한 실체로 이해되었다.  

   1987년 민주화 성공 이후에는 ‘시민’이란 용어가 출현하여 ‘국민’과 공존하게 되었다. ‘시민’의 출현은 민주화과정을 통해 시민사회의 제도적 기능이 정상화되었다는 한 증거이다. 김진호에 따르면, 그러한 정상화로 인하여, 남한 ‘시민’은 이제 각자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와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각주:1] 이 ‘시민’은 일반적으로 ‘국민’과는 다르게, 개인 각자의 혹은 개인들의 집합을 통해 형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민중’이 일반적으로 하층 계급 사람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사회운동의 지평에는 종종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담지하는 것으로 이해된 반면, ‘시민’은 국민국가 내부의 자유민주주의의 주체로 이해된다. 민주화의 진전과 사회주의 붕괴가 겹치면서, 남한 사회에서 ‘시민운동’은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류가 되었다. 

   남한 사회에서 ‘시민’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부터,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은 분리불가능한 상태로 사회적 정당성을 담지하는 명분이 되었다. 이 두 명분 중에 어느 쪽에 중점을 둘 지를 놓고 보수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 간에 심각한 논쟁이 있긴 하지만, 이 두 명분을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화 이후 남한 국가의 기본 합의 중 하나가 되었다. ‘한국병 치료’와 ‘문민정부’를 함께 내걸었던 김영삼 정부의 슬로건은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의 두 명분이 공존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의 슬로건을 앞세워 경제개혁을 시도했다가 심각한 실패를 겪었고, 민주주의를 추구하던 정책들이 경제정책에 의해 제어당하면서 시민사회의 저항을 불러와, 민주주의에 대한 헤게모니를 상실했다.[각주:2] 김영삼 정부가 IMF 구제금융과 함께 마감되면서, 그 이후 정부들의 목표는 경제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경제에 의해 민주주의가 제어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앞에서 논의한 대로, IMF 구제금융 이후 한국 경제의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가속화시킨 것은 자유주의적 입장을 가진 정부들이었다. 금융/산업/노동 영역의 구조조정의 결과로 상당수의 기업과 은행이 사라졌고, 정리해고와 파견 노동 등이 일반화되는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대우나 현대 등의 일부 재벌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LG 등의 대재벌, 특히 삼성은 IMF 이전보다 더 강력한 경제적/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은행이 산업 자본의 이해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실물 경제 바깥에서 자립하는 금융자본으로 자신을 재구축하게 되었다.[각주:3]  

   이런 모든 변화로 인해, 남한 사람들의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종신고용 시스템에 기반을 둔 라이프스타일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1990년 초부터 시작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화는 계속 가속화되어, 비정규직 노동이 고용의 주류가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대부분의 청년 노동자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청년빈곤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중년 노동자들은 상당수 정리해고되거나, 정리해고를 모면한 경우라도 그들의 고용주들이 과거와 같은 이윤이 나오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정리해고를 단행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게 되었다. 국가 경제 지표가 향상되고, 김대중 정부가 예상보다 일찍 IMF 구제금융을 상환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경제적 양극화 상황은 심화되고 노동계급의 삶은 더 불안정해졌다. 

   IMF 구제금융 이후의 남한의 자유주의 정부들은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초래된 대중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 복지 시스템과 경제 구조의 동시 개혁을 시도했다. 이 정부들의 사회복지 개혁의 노선은 ‘생산적 복지’였는데, 이는 복지 수혜자들이 구직활동에 적극적일 것을 요구하는 등의 ‘생산적 태도’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노선이었다. 한편, 이 정부들은 신자유주의적인 외부의 충격을 경제 구조 개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정책을 폈다. 

   외부 충격을 경제 구조 개혁의 지렛대로 활용한 예로 노무현 정부가 시도한 한미 FTA를 들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선진통상국가’가 되겠다는 기조 하에, 이를 동시다발적인 FTA 체결로 성취하려 했다.[각주:4] 한미 FTA는 중국의 빠른 산업화에 대응하여 경제 구조를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원래 계획되었던 시기보다 당겨서 추진되었다.[각주:5] 이 때 정부의 논리는, 가장 발달된 서비스 산업을 구축한 나라인 미국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그에 따른 외부 충격이 남한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가속화한다는 것이었다.[각주:6] 자신을 ‘실용적 진보주의’의 추구자라고 정의했던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가 담지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적용이라는 외부 충격을 활용하여 재벌과 노동계급의 저항을 극복하고 재벌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특권(물론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을 제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각주:7] 하지만 삼성과 같은 대재벌들 역시, 한미 FTA가 초래할 영미적 자본주의 노선으로의 격변 속에서 일어날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잡고자 하는 의도 속에 FTA 체결을 지지했으며, 심지어 삼성의 경우, 노무현 정부의 일부 관료들이 증언한 대로, 한미 FTA 체결을 앞장서 제안하기까지 했다.[각주:8] 

   한미 FTA에 대한 수많은 찬반 논란은 대체로 민족주의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졌다. 한미 FTA 반대 담론의 대부분은 협상 결과의 대부분이 미국의 이익을 확보하는 쪽으로 편향되었다는 주장을 근거로, 한미 FTA가 ‘미국의 경제 침략’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단정했는데, 이는 이 반대 담론들이 남한 사회운동의 전통적인 반미 경향 속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 준다. 반면, 한미 FTA 찬성 담론의 대부분은 한미 FTA가 “1조 7천억불 상당의 미국 시장”에 “한국의 경제 영토를 확장”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만들었던 한미 FTA 추진 관련 광고를 보면, 한국 기업을 상징하는 기마부대들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 영토를 행진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장면들은 한미 FTA를 추진하는 정부 지도자들의 민족주의적 욕망을 보여 줌과 동시에, 남한 대중들의 민족주의적 욕망을 한미 FTA 추진에 동원하려는 의도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렇게 동원된 민족주의적 욕망이 제국주의적 욕망으로까지 나아간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 때 그 욕망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제시되는 것은 한미FTA를 비롯한 갖가지 FTA를 통해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장면들은 미국에 대한 식민주의적 선망을 통해 내면화된 남한의 “제국의 눈”[각주:9]을 보여 주며, 이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협력하는 하나의 양상을 보여 준다. 이 지점에서, 이 한미 FTA를 추진한 노무현 정부가 사회운동 일각의 지지와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리버럴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자신을 위에서 언급한 대로 ‘실용적 진보주의’의 추구자로 정의했음을 짚어 본다면, 이는 민주화운동 지지의 입장에 선 리버럴들의 대다수도 제국주의적 욕망을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겠다. 

   2007년 보수주의 정부가 재집권하면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이끈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끈 10년 동안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부들은 이전 자유주의 정부들의 경제개혁 정책을 전면적으로 이어받지는 않았지만, 신자유주의적 경제 시스템 변화를 지속하고, 4대강 등의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내수 경제를 진작하려는 정책을 폈다. 하지만 이 정부들은 이전 자유주의 정부 이상의 경제 지표 향상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경제적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수립에 참여한 일부 보수주의적 지식인들이 ‘선진화’[각주:10] 등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리버럴들을 포섭하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2008년 촛불 시위 이후에는, 보수주의 정부는 반정부적 입장의 대중들에 대한 설득을 포기하고, 그들을 불순하다고, 더 심하게는 ‘종북’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서는 시민들과의 소통을 포기했다는 반대쪽의 비난이 뒤따랐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이러한 소통 불가능성과 경제적 양극화 등으로 인해, 지금의 남한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 웹진 <제3시대>



  1. 김진호, “시민, 민주화-시장화 사이에서 ‘자기분열’”, 2010년 4월 14일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16128.html. [본문으로]
  2. 그 한 가지 예로, 김영삼 정부는 1996년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노동법 개정을 시도했다가 노조의 총파업과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개정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김영삼 정부가 헤게모니를 상실하는 결정적 지점이 되었다. [본문으로]
  3.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서울: 책세상, 2011), 276 [본문으로]
  4. 앞의 책, 398 [본문으로]
  5. 앞의 책, 400 [본문으로]
  6. 앞의 책, 403 [본문으로]
  7. 앞의 책, 400 [본문으로]
  8. 앞의 책, 400 [본문으로]
  9. Chen, Kuan-Hsing, Asia as Method: Toward Deimperialization. Durham and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2010, 17 [본문으로]
  10. 박세일.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서울: 북21, 20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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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사회적 분열과 "비시민"의 출현에 대한 고찰(1)


-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의 결합을 통하여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서론



    왼쪽의 만화는 2012년 12월 10일, 그러니까 제 18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경향신문에 실린 시사만평이다. 이 만평은 현재 남한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분열 과정과 그 분열로 인해 현실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고도 심도 깊게 보여준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논리는 남한의 사회적 분열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양쪽 진영, 즉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서로 상대방과의 분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기제이다. 말하자면, 이승만, 박정희로 대표되는 보수정권을 지지하고 경제성장에 우선적 가치를 두는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산업화”의 논리가, 김대중,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민주정부를 지지하고 민주주의에 우선적 가치를 두는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민주화”의 논리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 두 가지 정당화 명분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성공의 기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들이건 자유주의자들이건, 예를 들어 현재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계속되는 양쪽 진영 사이의 갈등이 젊은이들의 고통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진영 사람들은 오히려 젊은이들이 자신들 주장의 정당성을 이해하거나 지지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비난한다. 

   그렇다면, 남한의 보수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 사이의 이러한 분열 과정을 촉진시킨 사회적 합의의 붕괴는 어떻게 일어난 것인가? 한국 전쟁 이후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와 군사독재가 남한의 정치를 지배했고, 반공주의의 물결과 군사독재적 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군사정부는 경제발전이라는 명분을 이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경제발전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제공한 것은 바로 민족주의다. 그리하여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 과정은 민족주의와 결합한 반공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적 합의를 창출해냈다. 

   그러나 1987년 이후의 민주화 과정은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흔들기 시작했고 1997년 외환 위기는 그것을 완전히 두 조각으로 붕괴시켰다. 그 결과, 외환 위기 이후 남한에는 더 이상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각자 자신들이 붙들고 있는 반 조각의 합의에 매몰되어 있다. 이를테면, 보수주의자들은 과거의 사회적 합의 중에서 반공주의라는 조각을,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은 민족주의라는 조각을 붙들고 있는데, 이는 현재 남한의 사회적 분열 상황을 대표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열의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다른 이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만한 가치나 자격이 없다고 여겨지는 “자격 없는 사람들,” 혹은 정상적인 사회적 주체가 될만한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무능력자”로 간주되는 사회적 고통이다. 


    2.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라는 사회적 합의의 형성과 붕괴 


     (1) 남한의 반공 민족주의의 형성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본의 식민지 침략에 대한 반응의 일환으로 형성되었지만,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직후 한국이 두 나라로 분열되면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분단 이후 민족의 분열과 민족주의라는 모순을 해결하고, 일제 식민지 기간에 형성된 민족주의를 유지하기 위하여, 남한과 북한 정권은 모두 서로를 “민족/국가의 적”으로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정권이 민족/국가의 진정한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반제국주의 투쟁을 선언하면서, 자신들이 민족/국가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지지하기 위해 이 투쟁을 이용하고 있는 반면,[각주:1] 남한 정권은 북한 정권이 소련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므로 민족/국가의 적이라고 라고 비난하면서,[각주:2]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자신들이 “유엔에 의해 승인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국가”[각주:3]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자기 정당화의 수단일 뿐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한반도의 분단은 더 고착화되고 심화되었다. 남한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 정권은 “동족상잔의 비극”의 원흉이고,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이 한국전쟁의 원흉이고 남한 정권은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직후에 이승만은 일민주의(一民主義)가 남한과 장차 통일될 국가의 민족 이데올로기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각주:4] 일민주의의 요점은 반공 이데올로기, 갈등에 대한 증오, 분리될 수 없는 국가 정체성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각주:5] 신기욱에 따르면, 일민주의는 혈통민족주의에서 보여지는 파시스트적 경향이 반공주의와 결합된 형태이다.[각주:6] 토지개혁이 시행되고 정부가 행정권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이 시기에, “한국 국민”이라는 정체성과 구분되는 “대한민국(남한)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각주:7]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의 물질적 기초는 박정희 정권 동안 더욱 강화되었다. 박정희는 국가를, 개개인을 위한 중재자가 따로 필요 없는 한국 국민의 자연적인 모임으로 이해했고,[각주:8] 이는 이승만의 일민주의 개념과도 공통점을 갖는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은 “조국 근대화”[각주:9]와 “민족중흥”[각주:10]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 슬로건들이 보여주듯이, 박정희 정권은 이승만 정권보다 더 능동적으로 개발주의를 활용하였고,[각주:11] 한국 “국민”이 국가 생산성 향상이라는 목적을 위해 단결해야 하며 모든 국민(國民)은 생산적인 사고방식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각주:12]

     그러므로, 일민주의가 그러했듯이, 박정희의 독재를 정당화하는 기반이 되었던[각주:13]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한국 국민들 사이의 갈등이나 분열을 증오했다.[각주:14] 한편, 박정희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한국적 독자성”을 강조했는데, 남한에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형성이나 자본의 축적 등과 같은 근대화의 조건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구식 근대화와는 다른 독자적인 방식의 근대화를 주창하였다.[각주:15] “한국적 근대화”라는 이 개념은 박정희가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한 또 다른 이념적 기반이었다. 박정희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중 개발주의는 남한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주적으로 여기는 북한을 남한 정권이 다루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이승만 정권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점령을 통한 북진통일을 내세운 반면, 박정희 정권은 한국전쟁과 같은 또 다른 미래의 전쟁 없이도 북한을 흡수하여 통일을 이룩한다는 흡수통일 논리를 내세웠다.[각주:16] 여기서 남한이 북한을 흡수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는 경제발전인데, 이 경제발전은 박정희가 제안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남한 국민들이 단결해야만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각주:17]

     박정희 독재 정권 시기 동안, 남한은 급속한 근대화와 경제 발전을 경험하였다. 이렇게 빠른 경제 발전 과정에서 북한을 향한 남한 국민들의 증오는 일정 부분 그들의 능동적인 사고방식으로 변환되기도 했는데, 독재정권은 이러한 변환을 경제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용하였다.[각주:18] 그리고 이러한 경제발전 과정의 결과로서 남한 국민들은 국가적 성취감을 얻기 시작했는데, 이 성취감은 그들의 개인적 성취감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박정희가 만들어낸 이러한 변화들이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남한 국민들은 박정희를 남한 근대화와 경제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지금까지도 남한 보수 진영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주된 기반으로 남아있다.


     (2) 남한 국가의 형성과 근대화에 미친 미국의 영향

     미국의 군사개입은 남한 정부가 수립되고 한국전쟁이라는 위기를 탈출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인의 하나였다. 그리하여, 많은 (보수적인) 한국인들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혈맹’이라 부른다.

     박명림의 ‘미국의 범위’[각주:19]라는 개념은 1945년 이후 미국의 남한 개입을 설명하는 데에 유용한 개념이다. 박명림에 따르면, 남한에서의 ‘미국의 범위’는 공산주의 혁명의 방지와 파시즘의 방지 사이이며 구체적인 미국의 정책은 이 범위 내에서 시계추처럼 진동한다.[각주:20] 그리하여, 이 진자운동의 범위 내에서, 미국은 어떤 때는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독재자를 지원하기도 하였다.[각주:21] 물론, 이러한 ‘미국의 범위’는 남한이 미국의 영향권 내에 머물러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므로, 이 범위 안에서는 기본적으로 보수적 편향이 작동하게 마련이다.

     한편, 남한 정부의 수립과 한국전쟁에서의 생존은 물론이고, 남한 사회의 근대화 과정 자체도 미국의 막대한 영향 아래서 이루어졌다. 일본에서의 해방과 한국 전쟁을 겪은 직후, 남한 사회에서 미국이 주력한 일은 근대적 교육 제도와 관료제의 수립과 언론의 발전을 지원함으로써, 이 제도들을 통해 미국의 이상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자본주의를 남한인들에게 이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각주:22] 또한, 미국은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군사영어학교를 세우고,[각주:23] 사관학교가 세워진 이후에도 여러 연수 과정을 통해 남한군의, 특히 장교단의 군사적 능력과 리더십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각주:24] 그 결과, 남한군 장교단은 군사적 능력뿐만 아니라 관료제 운영의 노하우와 지식도 갖추게 되면서, 자신들을 국가 안보뿐 아니라 경제 발전도 지도할 능력이 되는 집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고,[각주:25] 박정희의 5.16 쿠데타는 이러한 경향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것이기도 하다. 또한, 경제적 근대화에 대한 박정희의 열망은 미국이 5.16 쿠데타를 지지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각주:26]

     1950년대의 미국의 개입이 위에서 본 것처럼 근대 국민국가의 기본 시스템 – 교육, 관료제, 군대 등 – 을 확립하는 데 주력한 것이었다면, 1960년대에는 미국은 남한의 민족주의 세계관을 확립하는 데 주력 지원을 했다. 미국이 남한의 민족주의 세계관으로 제안한 것은 ‘근대화 이론’이었는데,[각주:27] 이 이론은 남한과 같은 ‘저발전’ 국가의 근대화는 오직 전통적 요소를 배격하고 미국과 같은 ‘발전된’ 서구 국가와 연계될 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각주:28] 이 이론에서, 근대화는 저발전 국가가 기술적 지식을 모방하고 흉내내어 익힌 뒤 그 기술적 지식을 사용함으로써 걷게 되는 발전의 보편적인 길로 이해되었다.[각주:29] 그리하여, 미국이 제안한 근대화 이론은 탈식민 국가들에게 공산주의적 발전경로에 대한 대안의 구실을 했다.[각주:30]

     남한의 지식인들은, 비록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적 요소의 적극적 역할을 더 많이 찾으려 하긴 했어도,[각주:31] 위에 서술된 바와 같은 근대화 이론을 널리 수용했고, 그로 인해 민족주의와 반공주의의 결합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경향은 더 심화되었다.[각주:32] 그 결과, 박정희 정부를 근대화의 리더로 인정하는 지식인 그룹도 형성되었다.[각주:33] 그러나, 근대화 이론을 수용한 다른 지식인들 중에는, 근대화 개념이 독재정치를 시작한 박정희 정부에 대한 저항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도 있었다.[각주:34] 짚어 볼 점은 근대화 이론에 대한 이 두 가지 반응이 앞에서 언급한 ‘미국의 범위’ 안에 이미 포함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미국이 근대화 이론을 제안한 의도 자체가 경제적 근대화 과정을 가속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에 대한 남한인들의 열망을 불러일으켜 박정희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각주:35] 요약하면, 미국은 남한 사회의 거의 모든 방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했으며, 특히 제도적, 지성적 측면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 웹진 <제3시대>


  1. Shin, Gi-Wook. Ethnic Nationalism in Korea: Genealogy, Politics, and Legacy.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6, 155 [본문으로]
  2. Ibid. [본문으로]
  3. 이기백, 한국사신론. 제2판 (서울: 일조각, 1976), 442 [본문으로]
  4. Shin, ibid., 101 [본문으로]
  5. Ibid. 102~103 [본문으로]
  6. Ibid. 78 [본문으로]
  7. 김보현, 박정희 정권기 경제개발 (서울: 갈무리, 2006), 83~88. [본문으로]
  8. Ibid., 122~123 [본문으로]
  9. Shin, ibid., 103~104 [본문으로]
  10. 김보현, ibid., 122 [본문으로]
  11. Shin, ibid., [본문으로]
  12. 김보현, ibid., 140~144 [본문으로]
  13. 김보현, ibid., 153 [본문으로]
  14. Shin, ibid., 107 [본문으로]
  15. Ibid [본문으로]
  16. Ibid. 160 [본문으로]
  17. Ibid. 162 [본문으로]
  18. 김진호, 시민 K, 교회를 나가다(서울: 현암사, 2012), 68 [본문으로]
  19.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제2권(서울: 나남, 1996), 523 [본문으로]
  20. Ibid. 523~524 [본문으로]
  21. Ibid. 524~526 [본문으로]
  22. Brazinsky, Gregg. 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 Koreans, Americans, and the Making of a Democracy.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7, 41 [본문으로]
  23. Ibid., 73 [본문으로]
  24. Ibid., 79 [본문으로]
  25. Ibid. 100 [본문으로]
  26. Ibid. 118 [본문으로]
  27. 정일준, "한국 사회과학 패러다임의 미국화" 원용진, 김덕호 엮음,아메리카나이제이션(서울: 푸른역사, 2008), 339~340. [본문으로]
  28. Ibid. 348~349 [본문으로]
  29. Ibid. 351~352 [본문으로]
  30. Ibid. 350 [본문으로]
  31. Brazinsky, ibid, 172 [본문으로]
  32. Ibid. 177 [본문으로]
  33. Ibid. 178 [본문으로]
  34. Ibid. 184 [본문으로]
  35. Ibid, 186~18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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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이 '신학'이며 '한국적'인가?




 황용연

(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과정,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객원연구원)



    1. 

    원래 이 글의 제목은 민중신학이 성립되던 초기에 나온 민중신학 비판 글의 제목이었다. 당연히 저런 질문을 던져 놓고 긍정적으로 답을 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 글의 내용이야 굳이 돌아볼 필요가 없다 치더라도 저 글의 제목에는 뜯어 볼 것이 조금은 있다. 비판 글을 쓰면서 제목을 저렇게 달았다는 것은 ‘신학’과 ‘한국적’이라는 요소가 민중신학의 핵심 요소라고 봐서 그것을 비판하기 위함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민중신학은 좋든 싫든 간에 ‘한국적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니, 저 비판 글을 쓴 사람이 헛다리 짚은 것만은 아니었을 수 있겠고. 

    그렇다면 저 질문에 대해서 적절한 답은 어떤 것일까. 과연 민중신학은 어떤 의미에서 ‘신학’인 것이고, 또 어떤 의미에서 ‘한국적’인 것일까.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나와 있는 답들이 있다. 민중의 고난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그것을 증언했기에 ‘신학’이며, 특히 한국 민중의 고난에 주목하고 그 고난의 흔적을 한국 특유의 개념(대표적인 예로 ‘한’)과 문화 유산 등에서 발견해 냈기에 ‘한국적’이라고. 이러한 답들이 물론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글에서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위의 질문들에 접근해 보려 한다. 


    2. 

    우선 민중신학이 ‘신학’인가라는 질문부터 뜯어 보기로 한다면, 이 질문에 따라올 수 있는 다른 질문이 있을 것이다. 과연 ‘신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길래 민중신학은 스스로를 ‘신학’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그냥 놔 두면 사방팔방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다할 수 있게 될 테니 일단 여기서는 ‘구원’이라는 한 가지 지점에 집중하기로 한다. 즉, 구원에 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민중신학은 구원에 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보통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민중메시아론’이라는 용어로 집약된다. 이 용어는 통속적으로는 “(예수와 동일한) 민중이 메시아다” 혹은 “(예수가 아니라) 민중이 메시아다”라고 이해되며, 그 때문에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민중신학이 과연 신학 맞냐는 보수적 비난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이런 비난에 대한 민중신학자들의 대답은 일반적으로는 ‘사건’이란 용어를 도입해 “민중메시아론은 민중사건이 메시아적 사건, 즉 구원사건이라는 뜻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민중이 메시아다”라고 말하건, “민중사건이 메시아적 사건”이라고 말하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말할 때 과연 ‘메시아’란, 즉, ‘구원’이란 무엇이냐고 말이다.

     민중신학의 태두 서남동 목사는 일찍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비유에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구겠냐고 말이다. 그리고 서남동 목사 자신은 그 대답을 ‘강도 만난 사람’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말을 민중신학의 다른 태두인 안병무 박사도 한 바 있다. 자신은 그리스도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가 아니라 비명을 지르는 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이럴 터이다. 민중신학이 말하는 ‘구원’은 ‘비명을 질러서 듣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비명을 질러서 듣게 하는 것’이 어떻게 해서 구원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말을 바꿔 본다면, ‘비명을 질러서 듣게 하는 것’이 구원이라면, 이 때 ‘구원’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서남동 목사의 말을 빌리면, ‘강도 만난 사람’은 ‘제사장’, ‘레위 사람’, ‘사마리아 사람’을 자신 앞에 불러 세운다. 그리고 그들의 인간됨을 발뺌할 수 없게 드러낸다. 함께 하느냐 외면하느냐. 그래서 각자의 인간성이 실현되느냐 아니면 질식되어 버리느냐.

     이렇게 본다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할 때, 구원이란 말은 어떤 ‘성취’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게 된다. 차라리 ‘폭로’와 ‘걸림돌’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와 ‘우리’, 그리고 그 ‘나’와 ‘우리’가 만드는 ‘사회’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폭로’함으로써, 지금까지 가던 길에 브레이크를 걸게 되는 ‘걸림돌’ 말이다.

     구원을 폭로와 걸림돌로 정의한다면 이러한 구원은 어떤 안정적인 예측과 파악이 가능하다기보다는 갑자기 일어나는 어떤 것이 된다. 그러니 이러한 구원은 앞에서 언급했던 ‘사건’이란 용어를 사용한다면 ‘구원사건’으로 파악될 것인데, ‘사건’으로 파악된다면 그 사건은 사건 참여자들의 속성에 의해 파악되기보다는 그 참여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난 것이 무엇이냐에 의해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민중신학은 그러한 ‘구원사건’을 두고 ‘민중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민중사건’을 ‘신이 현존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민중’이라는 말은 어떠한 ‘집단’으로 이해되고 민중신학 안에도 그러한 이해 경향이 꽤 강하게 있으나, 다른 한 편으로 ‘사건’이란 용어를 도입하게 되면 민중이라는 말을 이러한 사건들에 나타나는 어떤 ‘속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최근의 한 민중신학 글에서는 “민중이 누구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민중은 어떻게 출현하는가?”라고 질문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중신학이 주목하는/주목해 온 ‘속성으로서의 민중’은 어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대체로 합의할 수 있는 대답은 “사회 체제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하기/거부하기”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속성은 복음서에서는 “오클로스”라는 귀속성 상실의 현상으로 나타났고, 1970년에는 경제발전에 일로매진한다던 정부나 민주주의에 일로매진한다던 야당 어느 쪽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결국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던 ‘전태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은 “경제력”과 “능력”이라는 정당해 보이는 단어에 의해 ‘배제’라는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무능력자’로 나타나기도 하며, 또는 ‘세월호 사건’이 자신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해 사건의 영향력을 차단하려 하는 정부와 지배자들에 의해 ‘욕심많은 불순분자’로 취급당하는 ‘세월호 유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거부’라는 속성을 문제삼는 것은 곧 ‘거부’라는 현상을 낳은 ‘체제’를 문제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앞에서 지적했듯이 구원이 ‘폭로’와 ‘걸림돌’이 되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체제’를 문제삼는 것은 그 체제에 얽혀 있는 사람들을 문제삼는 것이기도 하다. ‘구원’이라는 것이 특히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죄’와 연관이 있는 것이고, ‘죄’라는 것이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질문이라면, ‘거부’와 ‘체제’와 ‘사람들’을 문제삼는 이 지점은 ‘죄’에 대한 물음이 가능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부’를 문제삼으면서 ‘죄’의 문제를 묻는다면, ‘거부’함으로써 ‘죄인’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상황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 질문은 ‘거부’당한 ‘죄인’과 ‘거부’하는 ‘죄인 아닌 사람’들의 자리를 바꾸어 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진술이 가능하다. 구원이란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죄가 없음을 알게 되고, 반대로 자신이 죄가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이러한 구원은 ‘거부당한’ 사람들이 어떤 문제 해결의 능력을 발휘해서 가능한 것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굳이 ‘능력’을 발휘했다면 차라리 ‘살아남는’ 능력을 발휘한 것일 터이다. 그래서 그들의 ‘살아남음’이 이 세상의 걸림돌이 됨으로써 구원이라는 것이 발생한다는 말일 터이다. 따라서 이렇게 볼 때 ‘민중메시아론’이란, ‘민중’이 예수 ‘대신’ 혹은 예수’와 함께’ 구원의 주체가 된다는 말이라기보다는, 민중이 이 세상의 걸림돌이 되는 방법 말고는 ‘구원’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즉 ‘구원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러한 ‘구원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에 뒤따르는 것은 민중신학에 의하면 ‘증언’이다. ‘증언’은 어떠한 일이 일어난 뒤에 나오는 ‘응답’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응답’을 하기로 했다는 것은 이미 그 ‘응답’을 하는 주체의 ‘변화’이기도 하다. 각 사람(그리고 어쩌면 ‘신’까지도)은 이러한 ‘구원사건’과 ‘증언’의 연쇄에 어떤 지점에서는 촉발자로, 어떤 지점에서는 증언자로, 어떤 지점에서는 그 증언을 듣는(그리고 다른 이에게 말하는) 자로 연루될 것이다.


     3.

     민중신학의 ‘신학’성이 이렇게 해명될 수 있다면, 다음으로 ‘한국적’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명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한국적 신학’이라고 할 때, ‘한국적’이란 말의 의미는 어떠한 ‘요소’로 이해되거나, 혹은 신학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한국적’이라고 이해되는 어떠한 (주로 문화적인) ‘요소’를 신학에 도입하거나, 혹은 한국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대응의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려 할 때 그것을 ‘한국적 신학’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물론 전자와 후자가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닐 터이다.

     방금 짚어 본 두 가지 의미에서의 ‘한국적 신학’이란 기준으로 민중신학을 살펴 본다면, 우선 후자의 차원, 즉 한국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대한 대응의 신학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민중신학이 ‘한국적 신학’이라는 것은 거의 자명한 수준에 가깝다. 전자의 ‘한국적 요소’에 관련된 차원에서 보더라도, 민중신학이 한국적인 사회 문화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신학에 도입해 온 신학이라는 점에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민중신학은 한국적 요소를 기존의 그리스도교적 요소로 ‘번역’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신학의 형성 요소로 삼아 기존의 그리스도교적 요소와 동등한 대당을 이루는 방식(‘두 이야기의 합류’) 혹은 그 둘이 형성하는 또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방식(‘화산맥’)으로 신학을 했다는 점과, ‘한국적 요소’를 찾으려 할 때에도 그 ‘한국적 요소’에서 ‘한국적’이라는 점만 찾아내려 한 것이 아니라 그 요소 안에 담겨 있는 사회적 갈등과 균열의 흔적을 찾아내려 했다는 점은 지적해 둘 가치가 있다.

     ‘한국적’에 대한 이러한 의미의 계보를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선 ‘한국적 요소’에 대해서 묻는다면, 지금 현재 ‘한국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예를 들어, 판소리와 소녀시대의 노래 중에서 지금 더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것이겠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어느 쪽이든 답을 고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의 변화와 그 변화의 결과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답을 고르든지 간에, ‘한국적’이란 말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한국적인 것’을 찾아내는 것으로 답을 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오히려 어떤 것을 ‘한국적인 것’이라고 선언한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어떤 맥락에서 ‘한국적’이며 어떤 효력을 발휘하는가를 해명해내는 것이 ‘한국적인 것’에 대한 답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점에서 앞에서 이야기했던 ‘한국적인 것’의 두 가지 차원, ‘한국적 요소’를 찾는다는 차원과 ‘한국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대한 대응’이라는 차원은 결국 하나로 만나게 된다.

     이 점을 전제한다면, 민중신학이 ‘한국적 신학’인가라는 물음은 이제 이런 물음으로 바뀔 수 있다. 민중신학의 ‘신학성’은 과연 한국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어떤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앞에서 살펴 본 민중신학의 신학성은 ‘성취’와 ‘회복’보다는 ‘폭로’와 ‘걸림돌’에서 구원의 현상을 읽어 내려는 경향에 있었다. 그리고 그 ‘폭로’와 ‘걸림돌’이 겨냥하는 것은 ‘거부’라는 현상을 낳는 체제였고, 그 체제에 연루되어 ‘거부’를 실제로 집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현재 한국 사회를 파악하는 방식에서, 한국 사회의 갈등에서 어느 편이 옳은 편인지를 식별하고 그 편을 든다는 방식보다는, 그 갈등까지도 ‘거부’를 낳는 한국 사회의 체제의 구성 메커니즘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거부당하는/거부하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탐색하는 방식 쪽이 민중신학의 신학성에 더 친화적이게 된다.

     이제 한국 사회의 문제를 파악하는 가장 흔한 용어 중의 하나가 된 ‘갑을관계’라는 말을 예로 들어 보자. 물론 갑을관계라는 말이 일상적/미시적 관계 안의 권력의 문제를 잘 드러내 주는 말이긴 하며 거시적 권력 관계와의 연관 관계를 드러내는 데에도 상당 부분 효용이 있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갑을관계’라는 말이 애당초 ‘계약관계’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말은 권력 관계의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을 “(부당하게 대우받아서는 안 되는) 개인”끼리의 관계로 묶어 두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 “(부당하게 대우받아서는 안 되는) 개인”이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주체성의 변화를 탐색하는 핵심 고리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는 점을 민중신학은 주목해 왔다. 민중신학적 시각에서는, 이 “개인”이 자신의 욕망을 다른 개인과 국가와 거래할 수 있고, 그 거래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민주화의 진전을 말할 수 있으나, 이 민주화가 자본주의의 심화와 동시에 진행됨에 따라 욕망의 거래 구조에 낄 자격이 있는 ‘개인’과 끼기를 거부당하는 사람들이 갈라지는 현상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거부당한’ 사람들에 대해서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불법체류자’,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 노동자의 경우(최근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서 전체 노동자의 경우로 확장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 등 – 이러한 거부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상당히 만연해 있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들 속에서 한국 사회의 사람들은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길로 “(부당하게 대우받아서는 안 되는) 개인”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을 찾기가 힘들다고 점점 더 굳게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무능력자’에 대해 성찰한다는 것은 이들을 거부하는 ‘합리적’ 이유 – 경우에 따라서는 그 거부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서 있는 ‘나’조차도 완전히 거부하지는 못하는 – 에 대한 성찰까지를 요구하게 된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이 ‘무능력자’들이 현실적으로 취급받는 방식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는 – 가령, ‘비정규직’과 ‘양극화’ 등의 언어 자체를 말도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 않은가 – 오히려 이들을 ‘사회적 문제’로 인지함으로써 “나도 그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라는 개인/체제의 자기정당화의 도구로 활용하는 – 가령, ‘서민’ 혹은 ‘민생문제’라는 단어가 한국 정치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상기해 보자 – 것임을 지적할 수 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노동개혁은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입니다”라는 슬로건은 이러한 방식의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지점에서 필요한 자세는 ‘무능력자’의 편을 든다기보다는 ‘무능력자’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말은 설령 ‘무능력자’의 편을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능력자의 편은 이렇게 드는 것이다’라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한 것인지 아닌지 아니면 앞에서 지적한 ‘구원사건’과 ‘증언’의 연쇄에 들어가 있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말도 된다. 이렇게 볼 때, 이 ‘무능력자’가 처한 위치가 ‘강도 만난 사람’이 처한 위치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한다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한다, 즉 그 사람을 직면한 사람들의 인간성을 드러낸다는 민중신학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지금까지 써 온 방식대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러한 효력에 공명이 일어난다면, 그 공명이 일어나는 만큼 민중신학은 ‘한국적 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민중신학이 ‘신학’이며 ‘한국적’이라는 의미가 이런 것이라면, 이런 신학에서 기대할 수 있는 ‘구원’이란 어쩌면 ‘버티기’에 가까울 것이다. 자신이 ‘강도 만난 사람’ 앞에서 죄인임을/죄인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서 만드는 체제도, 죄인이라고/죄인이 아니라고 바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아니, 사실 구원이란 것이 근원적으로 ‘약한 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면, 그러한 구원을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성취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말할 수 있는 것은 ‘버티기’를 시작한 이후의 삶이 그 이전의 삶과 결코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삶의 크기만큼, 그 삶이 다른 ‘버티는’ 삶과 연결되는 만큼, 다른 이들이 그 삶에 직면하여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구원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더라도, 구원의 시작이라고, 이 시작점을 거치지 않고는 구원이란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이고, 그렇게 구원을 얻는 ‘한국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한국적’이라는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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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학당 강좌

 

전환. 21세기 민중신학을 위하여

민중신학의 현재성 구축(혹은 해체)을 위한 몇 가지 발칙한 상상들!

 

강좌설명

이 강좌는 민중신학과 현대철학을 접맥시키려는 데 초점이 있다. 그것은 21세기 민중 문제에 다가가기 위해 현대 철학자들의 성찰들을 통해 민중신학이 미처 사유하지 못했던 것을 보충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주체와 타자, 그리고 차이에 대한 현대철학의 성찰적 인식에 도움을 받아 민중신학의 전환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강좌는 민중신학의 논지들과 일군의 포스트모던 학자들 간의 대화를 모색하려 한다.

 

강사

이상철은 시카고 신학대학원(CTS)에서 타자의 윤리를 주제로 Ph.D 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한신대에서 외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레비나스의 타자론과 데리다의 해체론을 방법론의 토대로 삼고 슬라보예 지젝을 참조하면서 우리사회의 대중문화와 사회현상 속에 패권적 질서로서 자리잡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해독하고, 이에 맞서는 신학적 윤리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논문으로 “The Turn To The Other: A Conversation with Levinasian Ethics and Minjung theology”(2014), 박근혜정부의 탄생과 신학적 성찰등이 있고, 저서로 탈경계의 신학(2012), 성서와 윤리(2003, 공저)가 있다.

 

강의 구성

1

2014. 05. 08

Intro. : 이 냉소의 시대에 신학은 무엇으로 사는가?

2

2014. 05. 15

Text : 안병무의 성서읽기” Vs Derrida 텍스트 해체

3

2014. 05. 22

Hermeneutic : 서남동의 두 이야기의 합류” Vs Gadamer지평융합

4

2014. 05. 29

Ethic : 현대윤리학의 지형 속에서 바라본 민중신학

5

2014. 06. 05

God : 강원돈의 의 신학” Vs Zizek유물론적 신학

6

2014. 06. 12

The Other : 김진호의 오클로스 민중” Vs Levinas“the third party”

 

참고 도서

김진호, 김영석 엮음, 『21세기 민중신학』 (삼인, 2013).

강원돈, 『물의 신학』 (한울, 1992).

서남동, 『민중신학 탐구』 (한길사, 1983).

안병무, 『민중신학 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1990).

이상철, 『탈경계의 신학』 (동연, 2012).

리차드 팔머 지음, 이한우 옮김,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문예출판사, 1988).

임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문성원 외 옮김, 『신, 죽음 그리고 시간』 (그린비, 2013).

임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김연숙 외 옮김, 『존재와 다르게 본질 저편에』 (인간사랑, 2010).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수련 옮김, 『이데올로기 숭고한 대상』 (인간사랑, 2002).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재영 옮김,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인간사랑, 2004).

자크 데리다 지음, 남수인 옮김, 『글쓰기와 차이』 (동문선, 2001).

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맑스의 유령』 (이제이북스, 2007).

조지아 원키 지음, 이한우 옮김, 『가다머: 해석학, 전통 그리고 이성』 (민음사, 1999).

Caputo, John D., Against Ethics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3).

Levinas, Emmanuel, tr. by Alphonso, Totality and Infinity: An Essay on Exteriority (Lingis, Pittsburgh, PA: Duquesne University Press, 1969).

Lyotard, J.F., tr. Geoffrey Bennington and Brian Massumi, The Postmodern Condition: A Report on Knowledge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4).

Taylor, Mark C., Alterity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기 간_ 2014. 05. 08 ~ 06. 12 (매주 목요일), 저녁 7:30~9:30

장 소_ 향린교회 향우실

수강료_ 회당 5천원

문 의_ 010 3078 8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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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철
    2013.10.24 20:2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지난한 작업이었을텐데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미국 신학교육의 장에서 민중신학에 대해 언급할때 다루는 text 가 CCA에서 30년도 훨씬 전에 출판된 minjung theology가 유일했었는데, 이번에 출판된 책 덕분에 약간 큰소리 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 미국에서 3rd world Perspective를 갖고 신학하는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어느 늙은 민중신학자의 편지(III)[각주:1]

: 민중신학이 윤리를 말할 때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1

형! 오늘은 <민중신학이 윤리를 말할 때…>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편지를 띄웁니다. 倫理의 한자를 풀이하면, 理는 ‘도리, 이치, 사리, 다스리다’를 뜻하고, 倫은 ‘차례, 순차, 나무결, 동류, 동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윤리란 사물의 이치를 마치 나무 결이 배열되어 있는 것처럼 차례로, 순차적으로 정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해진 이치를 차례대로 잘 다스리고 지키는 것이 윤리의 동양적 의미인 셈입니다.
서양 윤리학의 전통에서 보자면, 애초에 플라톤이 말했던 덕(arête)은 선함이 아니라 무엇보다 우수함이었고,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윤리학의 궁극적 관심이 포괄적인 의미의 좋음, 즉 행복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런 전통을 목적론적 윤리학이라고 하죠. 에피쿠르스, 영국의 경험주의, 공리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80년대 이후 미국을 지배하는 공동체주의가 크게 이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각주:2] 어찌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선함’과 ‘좋음’은 동류항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양자 사이에 별다른 구별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양인들은 칸트에 이르러 비로소 그것을 구분해냅니다. 즉, ‘어떤 목적을 위해 좋은 것’과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을 칸트는 갈라냈고, 후자를 윤리학의 새로운 영역으로 선언하였죠. 목적론적 윤리학과 더불어 서양윤리학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는 의무론적 윤리학은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하지만, 목적론적 윤리학이나 의무론적 윤리학이 각자가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할 지라도, 윤리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행위에 방점이 있는 학문인지라 나름 현실에서의 실천 강령을 필요로 하였는데, 그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 칸트는 ‘정언명법’이라 불렀습니다. 현실세계에서 살아갈 법도와 순서를 규정한 것입니다.
이렇듯 동.서양 전통에서 윤리란 공히 삶의 이치와 그에 따르는 법도를 세우는 것이었고, 그 원리와 룰을 잘 지키는 사람을 윤리적 인간, 혹은 도덕적 인간이라 불렀습니다. 흔히 어른들이 ‘상철이가 군대갔다 오더니 사람되었네!’ ‘희선이가 시집가서 애를 낳더니 사람되었네’라고 말할 때, 한국 사회에서 남자 인간은 군대를 다녀와야, 여자 인간은 시집가서 애를 낳아야 비로소 사람대접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사회는 남자 인간을 처음 만났을 때 ‘군대 갔다 왔어?’를 묻는 것이고, 여자 인간에게는 ‘애가 몇 이야?’를 묻습니다. 군대라는 전체주의를 통과한 그 인간, 가정이라는 가부장제를 통과한 그 인간이 비로소 사람대접 받는 그 나라, 그곳이 바로 대한민국인 셈이죠.

2

지난 52호 웹진에서 저는 ‘민중신학의 위기론에 부쳐’라는 글에서 부정성에 입각한 민중신학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제가 민중신학의 부정성을 언급했던 이유는 어떤 보편적 입법에 의해 소외되는 개별자(singularity)들의 차이와 다름이 존중되고 각광받는 사회를 향한 비평적 무기를 확보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거대서사의 논리에 입각한 민중신학의 내러티브가 오히려 시대착오적이지 않나? 라는 의심에서 기인합니다.
형, 솔직히 민중신학만큼 거대한 이야기가 어디 있나요? 지금도 민중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 나이에도 가슴이 짠하고 뭉클하면서 눈물이 고이는 이 숭고함을 어찌 설명해야 할런지? 원래 미학이론에서 말하는 숭고함이란 우리 앞에 펼쳐진 거대한 광경, 장면, 사건 앞에서 미적 주체가 느끼는 황홀경 일반을 지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적 대상의 거대함 앞에서 미적 주체는 한 없이 작아져 그 거대함을 어찌 표현할 줄 몰라, 결국에는 추상의 형태로 밖에는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위대함과 거대함 앞에서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충격과 전율을 그냥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 시대의 운동 논리였고, 그 원리는 상당기간 절대적 강령이었으며, 지금도 어느 정도 그것은 유효합니다.     
우리가 자유와 민주와 정의와 통일이라는 말 앞에서 느끼는 숭고함은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그것과 사실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 역시 그 나이에 조국 근대화, 반공, 잘 살아보세!, 경제강국이라는 거대함과 위대함 앞에서 눈물을 주루룩 흘립니다. 어쩌면 한국사회는 이 두 가지 포획되지 않는 숭고함의 에너르기가 공존하는 리비도의 각축장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형과 내가 공히 좋아했던 니체가 그랬던가요?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 될 것이다” 고 말입니다. 나는 이 문장을 접하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듯한 착각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치부를 들켜버린 부끄러움이랄까요. 민중신학 진영 역시 전선 저편의 그들처럼 진영의 논리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다 보니, 무언가를 받아 들이는 감각에 있어 더디고, 그 과정에서도 ‘의심의 해석함’에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것이 마치 우리의 미덕인양 자위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난 시절이 워낙 혹독하였던 지라 우리의 의식과 영혼 역시 그 잔혹함에 맞서 싸우느라 그들처럼 우리의 영혼도 차갑게 식어간것은 아닌지? 천재 시인 이상은 이런 우리의 현실을 그의 시 <거울>에서 짧지만 아주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꽤 닮았소

 

3

이런 까닭에 부정성을 인간 행위의 근거로 내세우는 새로운 윤리적 제안은 진영의 논리안에서 긍정의 윤리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들을 혼란과 불안가운데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한 꺼플 벗겨보면, 긍정의 윤리는 보편자(이치, 중용, 정언명법…)안으로 개별자를 일방적으로 줄 세우는 상징계의 원칙이고, 전체성의 논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본질과 토대를 상징하는 이데아를 상정한 후, 그 절대자의 음성에 따라 모든 개별자들에게 일사분란한 선택과 행위를 강요하는, 니체의 말대로라면 노예의 도덕인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웹진에서 언급한 부정성에 기반한 민중신학이 윤리와 만나게 되면 윤리 본연의 뜻은 역전됩니다. 오히려 개별자가 자기의 윤리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동시에 보편자가 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입증하고, 설득하고, 투쟁하고, 관철하는 이 모든 일련의 행위들이 새로운 윤리적 준칙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정해진 이치를 뒤집어 보는 것,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의심하는 것이 윤리적 태도의 첫 걸음이 되는 셈이죠. 푸코는 죽기 바로 직전 이를 가리켜 ‘자기에의 배려’(The Care of the Self)라 칭하였고, 그것이 <성의 역사III>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민중신학 역시 이제는 ‘거대서사의 윤리’가 아닌, ‘자기배려의 윤리’로의 전환을 이루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지워야 할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이 있죠. 진리와 정의를 동류함으로 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진리를 둘러싼 담론이 반드시 정의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정의란 차이와 다름으로 인한 충돌이 지속가능한 상태이고, 그 충돌이 소모적이라는 이유로, 국민 화합에 저해가 된다는 이유로, 국가기강을 해이하게 한다는 이유로, 북한의 개입이라는 이유로 진압이 되지 않는 상황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한국적 상황에서는 그렇습니다. 이 논의는 예전에 한동안 유행했던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둘러싼 논쟁의 화두이기도 했습니다.

 

4

일찍이 포스트모던 논쟁을 주도했던 리오타르가 거대서사의 붕괴, 작은 이야기들의 발굴을 이야기 하였고, 이에 대한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게 등장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90년대 초. 중반이 그랬죠. 당시 형이랑 불꽃 튀기며 ‘포스트모더니즘’을 놓고 갑론을박했던 날들이 기억나는 군요. 물론, 한국사회에서 그 논쟁들은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저는 지금도 리오타르의 의견에 여전히 심정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포스트모던 논쟁은 ‘이성의 합리성’과 ‘이성의 광기’를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과 해석의 차이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양자의 대결은 ‘세상에는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 있는가?’라는 말로 유명한 파르메니데스와 ‘만물은 변한다’라고 반박한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시작된 고대 그리스의 일자와 다자 논쟁, 중세의 실재론과 유명론 논쟁, 근대의 이성과 실존의 문제 등으로 이어져왔던 오랜 서구철학 논쟁사의 끝자락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이러한 논쟁이 신비화되고 탈역사화 되었을 경우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과 역사속에서 어떤 함의로 다가오는지 묻지 않는다면 울리는 징과 같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하버마스와 리오타르만을 따지고 보자면, 전자의 경우 인간은 사회적, 역사적 망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고, 그 규범성이 인간됨의 조건임을 전제합니다. 후자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구요. 즉, 하버마스에게 있어 규범은 인간의 삶의 조건인 반면, 리오타르는 그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이 인간 삶의 조건인 셈입니다.
자신들의 사상적 준거점을 확보하고 나서 양자는 서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격을 가합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규범은 자칫 악용되면 전 시대와 같은 전체주의로 변모될 수 있음이, 후자를 향해서는 허무주의로 변하여 비역사성 내지 비사회성을 초래할 수도 있음이 지적됩니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 역시 양자는 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마련하였답니다. 하버마스는 유명한 대화적 이성에 입각한 의사소통 행위를 내세웠고, 반대편에서도 비역사성, 비사회성에 대한 지적에 맞서 타자성을 내세웁니다. 데리다, 레비나스 등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런 계보학적인 흐름에서 볼 때, 하버마스가 내세우는 제안은 이성의 자기발전, 자기변명이라는 측면에서 도구적 이성의 질주를 제재할 만한 좋은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칫 이상적 의사소통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합리적 주체들만의 잔치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타자성을 테마로 내세우는 윤리적 전략이 요즘 주목을 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5

제가 기대하는 민중신학의 윤리적 함의 역시 이러한 타자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민중신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적당히 버무리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하여 저지르기 쉬운 대표적인 실수 중 하나가 포스트모니즘 일반을 범박한 타자성으로 덧칠해버리는 경우입니다.
<The Weakness of God>(2006)의 저자이자 미국학계에서 아주 충실한 데리다 전달자이자 해석자인 존 카푸토(John D. Caputo)는 포스트모던 논쟁이 한창이던 1993년에 <Against Ethics>(1993)이라는 책을 출판한 바 있습니다. 그 책에서 카푸토는 포스트모던 사상의 일반적 특징을 heterology라 명하였고, 더 조밀하게는 heteromorophism과 heteronomism으로 나눕니다.
전자는 니체로부터 기인하여 들뢰즈, 푸코로 이어지는 라인이고, 후자는 굳이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키에르케고르로부터 시작하여 레비나스와 데리다로 이어지는 진영입니다. 니체가 그랬듯이 전자가 디오니소스적인 축제를 찬양하고 자기에 대한 긍정과 삶에 대한 환희를 내세우는 유쾌한(?)한 세계관이라면, 후자에는 존재 일반이 지닌 무한성으로부터 비롯되는 불안, 공포, 책임, 신비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론할 때 니체로부터 이어지는 계보를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근래에는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별도로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더 조밀해지고 파편화 된 채 착취당하며 사라져가는 다양한 타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차원에서 레비나스와 데리다의 타자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민중신학과 관련하여 제가 관심하는 부분입니다.
민중신학은 이제 거대하고 묵직했던 실천이론보다는 작은 진실들, 즉 혁명의 시대를 살아내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던 소소한 일상의 것들을 제대로 응시할 수 있는 시선의 확보를 통해 ‘민중신학의 위기’를 관통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레비나스와 데리다불러들여 민중신학과의 비판적 우호적 대화를 통해 하나씩 풀어가려 합니다. 그 과정을 지나면서 민중신학의 과거에 대한 회고와 현재에 대한 진단,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가 다 아우러지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너무 큰 욕심을 내는 걸까요? 

형. 그동안 저의 넋두리를 듣느라 수고 했수다. 함께 있었더라면 저의 발언을 향해 예의 그 꼬장꼬장한 시선과 말투로 한바탕 퍼부었을텐데……형의 그 일성이 그립구려. 논문 쓰다가 답답한 부분, 풀리지 않는 매듭이 등장하면 다시 편지를 띄우겠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평안을…

ⓒ 웹진 <제3시대>

 

  1. 졸고는 현재 진행중인 필자의 학위 논문 [The Turn to the Other: Minjung Theology in a Dialogue with Levinasian Ethics and Derrida’s Deconstruction Ethics]중 서론의 일부를 번역 각색한 원고입니다. 글의 제목으로 사용된 ‘어느 늙은 민중신학자’는 특정인이 아니라, 논문을 웹진 원고로 번역 각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작중화자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졸고의 내용은 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입장과는 무관함을 아울러 명시합니다. [본문으로]
  2. 공동체주의: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마이클 샌델, 맥킨타이어, 찰슨테일러 등이 공동체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들이다. 서구 근대를 규정하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개인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그 개인을 이 전 시대 개인과 구분하여 자율적 개인이라 부르고, 그 개인은 막 형성되고 발전하기 시작한 자본주의 시대에서 그동안 억압되었던 이드를 마음껏 분출하기 시작한다. 이 욕망은 급기야 개인의 차원을 벗어나 공동체의 차원으로 확대되어 제국주의화 된다. 이러한 욕망의 파국이 바로 1.2차 대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후 세계는 나치즘과 파시즘 같은 극단적 공동체주의에 대한 경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냉전이 종식되고 전세계가 자본주의 시장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경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새로운 공동체주의가 등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현재 일고 있는 공동체주의에 대한 간략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자유주의가 지나치게 개인의 자율성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인간의 삶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공동체가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홀로 독립된 섬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안에서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비로소 자아를 완성하는 과정적 존재이다. 결국,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 표류하는 개인을 공동체 안으로 복귀시킴으로 사회전체의 행복의 총량에 관심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겠다. 공동체주의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은데, 이는 다음에 기회를 봐서 몇 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하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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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늙은 민중신학자의 편지[각주:1]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 과정)

 

I

형. <민중신학>이 출범한지 어언 40년 가까이 되어갑니다. 함께 했던 선배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저는 이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 젊은 신학자들이 내뿜는 패기와 열정에 놀라고, 우리 때와는 다른 그들의 재기 발랄함, 능숙하고 유려한 매체 적응력, 그리고 현란하고 아찔한 공감각적 감수성에 탄복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세상은 우리가 살았던 시절과는 많이 변했고, 이런 시대의 변화는 당연히 신학하는 우리들에게도 체질개선을 요구하였습니다. 포스트모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다문화….등등의 용어들을 풀이하면서 그 말들이 지닌 사회학적 의미에 대해 하나씩 이 자리에서 장황하게 늘어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와 한국신학은 발 빠르게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면서 수요자 중심의 교회, 그 수요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신학을 양산해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벌써 10년도 휠씬 지난 일이네요. 이제는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된 듯합니다.
세계화되고 다원화된 오늘날의 현실에는 그 다양성만큼의 편견과 억압과 폭력이 잠재해 있습니다. 전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세련된 방식으로 그것들은 교묘히 은폐된 채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고 있지요. 그것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영토화 된 것이든 탈 영토화 된 것이든,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이 제도에 의한 것이든 관습에 의한 것이든, 우리의 삶의 방식은 이제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종의 매트릭스 안에 갇힌 듯 합니다.
그 매트릭스 안에는 체제에 대한 냉소와 체제를 향한 분노를 분출할 수 있는 장치까지 다 마련되어 있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전과 같은 체제의 강제가 아닌 인민들의 자발적 동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 체제가 옛날 독재정권과 같은 막가파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아주 폼 나고 우아하게, 아주 부드럽고 나이스하게 체제는 인민들을 스스로 낭떠러지 끝으로 걸어가게 만듭니다.
뉴타운을 조성시켜 집값을 올려주겠다는 공약에 속아, 4대강 사업으로 땅값을 올리겠다는 공약에 넘어가 우리는 자발적으로 이명박을 찍었고, ‘잘 살아보세!’라는 박정희의 주문은 약발이 다한 그때의 추억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딸을 통하여 엄연한 현실의 질서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그것도 5.16을 연상시키는 51.6%라는 국민적 동의를 등에 업고 말입니다. 이를 어찌 해석 해야 할까요? 


II

이런 씁쓸한 현실 속에서 저는 지금 지난날 우리가 함께 일구어냈던 <민중신학>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민중신학을 전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난날 있었던 많은 사건들을 회고하게 되는데,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네요. 혁명의 시대를 건너오면서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함성과 환희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 핍박의 시대 골방에 갇혀 쓰고 또 쓰고 하면서 다듬어진 민중신학의 언어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는 분명 행복한 세대였습니다.
형도 기억하듯이, 우리가 <민중신학>이라는 새로운 신학을 선언할 즈음, 이미 우리 앞에는 유수한 신학적 전통과 권위들이 상존하고 있었습니다. 20세기 서구신학을 장식했던 거장들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그들이 이룩해 놓은 풍부한 신학적 토대 위에 많은 후학들이 신학적 담론들을 왕성히 토해내던 때가 바로 그 무렵이었죠. 과정신학, 세속화 신학, 희망의 신학, 신 죽음의 신학 등이 서구신학의 전통 내에서 발생한 자기갱신의 목소리였다면, 페미니즘 신학, 흑인신학, 해방신학은 서구신학의 방계전통에서 일구어낸 혁혁한 공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고수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그런 권위들에 주눅들지도 않았지만, 물론 살짝 엿보기는 했었겠지만서도, 그렇다고 그들을 밟고 뭐 기막힌 신학을 만들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의 방식대로,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상황 속에서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학에 시비를 걸고 싶었던 것 것뿐이죠. 그 결과 <민중신학>이라는 나름 엣지있는 신학적 영토를 구축했다고 저는 자부합니다.
하지만, 현재 민중신학은 더 이상 광장의 아우성도 아니고, 고독한 독방에서의 고투도 아닙니다. 피를 끓게했던 광장의 언어는 이제는 서늘히 식어버려 죽은 놈 뭐 만지는 식의 불임의 언어가 되어버렸고, 독방에서 만들어낸 영감의 언어는 더 이상 소통하지 못하는 밀폐의 언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민중신학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고 조건이라고 한다면 너무 큰 자학일까요.  
미국에서 10년 가까이 공부하면서 여러 차례 세계에서 온 친구들 앞에서 민중신학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이 놀라하고 무척 흥미롭게 민중신학에 대해 관심을 보이다가도 얼마 안 있어 금방 지루해하며 이렇게 묻더군요: we don’t want to know the past of minjung theology any more because we had heard enough of this. My question is that; “what is the influence of minjung theology on Korea and the Church today?” “How minjung theology can continue to be relevant and functioning in the present age called as global-capitalism, postmodernism?” “Please, tell me about the present and future of minjung theology”
저는 이런 질문들을 받으며 두 가지 점에서 놀랐습니다. 하나는 저의 미국친구들이 이미 민중신학에 대한 개론적 지식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그다지 민중신학의 현재 내지 미래에 대해 그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는 점입니다. 새삼 저의 민중신학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과 무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그 자극이 저의 논문 제목을 최종적으로 <The Turn to the Other: Minjung Theology in a Dialogue with Levinasian Ethics and Derrida’s Deconstruction Ethics>으로 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III

요즘 논문을 핑계 삼아 다시 기독교 2천년 역사를 읽으며 새삼 깨닫는 사실은 올곧은 신학이란 언제나 시대의 위기 속에서 비상을 꿈꾸다가 마침내 도약해서는 시대의 아픔을 부등켜안고 추락하고 마는, 마치 봄날 화려하게 피었다가 처연히 흩날리며 낙화하는 목련과 닮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개별적인 사건들과 현상들은 하나의 절대적 관념, 즉 신으로 복속될 것이라 주장하고, 서로 상이한 진리들이 언젠가는 더 큰 진리로 통합되고 그 안에서 극적인 화해를 이루게 될 것이라 믿는 전통적인 신학은 위에서 언급한 신학의 남루하고 초라한 위상을 부정하겠지만, 신학적 진리란 기존의 신학에서 말해왔던 것처럼 복음 안에서의 화해나 종합보다는, 복음을 들고 시대와의 부조화를 선언하고, 복음을 근거로 시대의 균열을 조장하며, 복음과 함께 시대를 가로지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번영을 담보로 차이의 소멸에 공조하는 신학이 아닌, 은폐된 차이와 모순을 드러내고, 시대의 위기를 발설하며, 그 모순과 위기를 향한 구체적 praxis속에서 발견되는 그 무엇, 그것이 바로 온갖 쭉정이 같은 신학들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교회와 세상을 지켜냈던 신학의 참 모습 이라 믿습니다.
저는 이러한 신학적 전통을 요즘 유행하는 지젝의 말을 인용하면서 ‘부정성과 함께 머무는 것!’ 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부정’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negative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不定(Infinite,정해지지 않음 혹은 한계없음)’의 의미입니다. infinite는 현실에서는 deferrable(연기할 수 있는) 혹은 difference(차이), 아니면 emptiness(비어있음)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지젝이 ‘부정성과 함께 머물기(Tarrying with the Negative)’라 했을 때, 얼핏 보면 전자의 ‘부정’을 사용하고 있는 듯 하나, 지젝 사상의 핵심인 실재(the Real)를 이해하려면 오히려 후자의 ‘부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참고로, 21세기 윤리학의 지형을 새로 짜고 있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학’, 데리다의 ‘해체의 윤리학’, 그리고 지젝으로 대변되는 슬로베니아학파의 ‘실재의 윤리학’이 서로 상이한 지적 전통에서 시작되었고, 그래서 각자가 노리는 바가 다르다 할지라도, 셋은 공히 부정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민중신학 안에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형태의 부정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부정성을 이론적 토대로 삼는 현대의 사상가들과 민중신학이 함께 공모할 수 있는 대목이라 여겨집니다. (이 부분이 논문의 핵심이 될 텐데, 아직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나름 정리가 되고 어느 정도 맥이 잡히면 그 과정과 성과에 대해서 다시 의견 나누겠습니다) 
하지만, 민중신학이 간직하고 있는 부정성에 대한 자각과 그 부정성의 계기들을 어떻게 발화시킬 수 있을지를 둘러싼 모색은 서로 다른 성질의 문제입니다. 즉 ‘부정의 방식으로 말을 건네는 어법을 민중신학이 산출할 수 있을지?’ 가 관건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말하고자 하는(타도의) 대상에만 관심이 있었지, 말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몰지각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민중신학은 말을 건네는 대상에 집중했던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의 개선을 통해 민중신학의 새로운 준거점을 확보해야 할 때입니다. 저는 그 실마리를 윤리에서 찾으려 합니다. <다음 웹진에 계속>

ⓒ 웹진 <제3시대>

 

  1. 졸고는 현재 진행중인 필자의 학위 논문 [The Turn to the Other: Minjung Theology in a Dialogue with Levinasian Ethics and Derrida’s Deconstruction Ethics]중 서론의 일부를 번역 각색한 원고입니다. 글의 제목으로 사용된 ‘어느 늙은 민중신학자’는 특정인이 아니라, 논문을 웹진 원고로 번역 각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작중화자임을 밝힙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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