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빠 이야기’ 연구 동향 (3)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1. 구전되고 기억된 역사로서 복음서

영국의 신약학자 제임스 던(James D.G. Dunn)은 복음서의 형성 과정이 “과거를 다시 현존하게 함으로써(Vergegenwärtigung), 정확하게 과거와 현재의 지평을 융합하는 ‘기억함’의 과정이었”다고 말한다.[각주:1] “그렇다면 공관복음서의 최초 이야기들 속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처음 제자들의 기억들이다―즉, 예수 자신이 아니라 기억된 예수인 셈이다.”[각주:2] 복음서의 이야기들이 근본적으로 예수에 관한 지지자들의 기억의 산물이라는 관점을 취한다면, 우리는 이 이야기가 역사적 진실로서 입증되기 어렵다고 해서, 반드시 이 이야기의 ‘모든 것’들이 후대에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허구라고 간주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종래의 역사비평적 성서해석이 추구해온 역사적 진실은 역사적 재구성에 바탕을 둔 고고학적 진리, 즉 고고학자들이 유적발굴 작업에서 조각난 파편들을 긁어모아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것과 유사한 차원의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고고학적 진리 복원의 작업을 통해 성서학자들은 역사적으로 진실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날카롭게 구분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빠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진실이 아닌 것, 따라서 문학적으로 창조된 허구라고 간단하게 결론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복음서의 이야기 및 어록들이 애초부터 지지자들의 기억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면, 역사적 진실이 곧바로 고고학적 진실로 환원되고 고고학적 진실이 아닌 것은 문학적 허구로 간주되는 그 모든 작업의 절차들은 전면적으로 재고될 수밖에 없다.
 
복음서라고 하는 텍스트가 기억 속에서 구전된 서사라는 것을 상기할 때, 우리는 복음서가 말하는 역사적 예수의 그 ‘역사적’이라는 말을 새롭게 재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가 지지자들의 자발적/비자발적인 기억 행위, 특히 그 기억행위가 담겨 있는 구술연행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나아가 그것이 기억주체 혹은 전승주체의 서사적 정체성 수립을 가능하게끔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때, 우리는 기억 속의 예수 이야기들을 고고학적 차원의 역사적 진실과 문학적 차원의 허구로 단순 도식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기억이라고 하는 것이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기억이 현재의 욕망에 따라 하나의 창조적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복음서와 같이 언어로 기록된 기억, 그 서사적 구성에도 당연히 고고학적으로 완벽하게 복원 가능한 역사적 진실이 들어있진 않은 것이다. 오히려 기억에 기초한 복음서의 기록은 다른 차원의 역사적 진실에 속한다. 우리는 고고학적 차원에 속하진 않지만, 그 기억의 주체에게 있어서는 엄연한 사실로 존재하는 이와 같은 역사적 진실을 기억사적 진실 혹은 서사적 진실로 명명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필자는 빌라도가 이러한 유월절 사면을, 즉 나자렛 예수와 바라빠라고 하는 이름의 인물을 무리들의 요구에 따라 바꿔준 그러한 사건을 ‘실제로’ 수행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증하려는 데 두고 있지 않다.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관점을 따르자면, 무릇 과거는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시점의 상황과 서술자의 욕망에 따라 (재)구성되는 것이다. 서사 행위는 현재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의 ‘사후적’인 재구성 행위라는 이른바 ‘사후성의 원리’[각주:3]에 따르자면,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찾을 수 있는 과거는 '기억사적 진실‘인 동시에 ’서사적 진실‘이다. 욕망과 기억에 의해 구성되는 그러한 ‘서사적 진실’에서 ‘서사의 욕망’ 내지 ‘욕망의 서사’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된 과거가 이야기하는 당사자와 청자/독자의 현재의 상황 내지 욕망에 의해 재구성된 허구라고 보는 서사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역사도 현재의 상황과 필요에 따른 구성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진실성 역시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이 분명한 역사적 예수 자신에게 있(을 수도 혹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예수 사후부터 구전(口傳)되어 오던 예수운동의 이야기를, 66-74년에 이르는 유대전쟁의 시기 중에, 특히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가까운 전후(前後) 시기 어느 시점에서 수집하여 문서화한 후 그것을 다시 ‘새로운 기억 전승’과 결합시켜 구전으로 연행(連行)해 나갔을 마가공동체에 있다고 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밝혀내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마가공동체의 ‘기억의 삶의 자리’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기억 행위의 주체가 누구이며, 그들에게 이러한 기억의 서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며, 또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러한 기억의 서사를 창안해내도록 했냐는 것이다. 덧붙여 이 기억의 서사가 단순히 관념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모종의 행위를 동반한 적극적 실천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2. 트라우마적 기억의 서사로서 수난사화

마가복음 14-16장에 이르는 소위 ‘수난사화’(The Passion Narrative)에서는 무리들, 즉 오클로스(οχλος)뿐만이 아니라, 제자들, 그리고 여성 제자들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모든 예수의 지지자들이 예수를 배신하거나 예수를 따르는 데 끝내 실패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예수를 그 적대자들에게 팔아넘긴 존재가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이었고, 예수의 제자를 대표하는 베드로 역시 예수를 면전에서 부인했다. 더욱이 제자들과 무리들이 모두 예수를 배신하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고, 무덤에 안장되었을 때까지도 예수를 따랐다고 하는 여성 제자들(15:40-41, 47; 16:1-8) 역시 빈 무덤을 목격하고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접했을 때는 정작 “무덤에서 도망하였”고, “벌벌 떨며 넋을 잃었”고,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16:8). 그녀들은 예수가 부활할 것이라고 약속한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음에도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했다.[각주:4]
 
수난사화에서 보자면, 열 두 제자로부터 시작하여 여성을 포함한 보다 넓은 범주의 제자들, 그리고 무리들에게 이르기까지, 예수의 모든 지지자들은 예수를 끝까지 지지하고 따르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무리의 배신 혹은 적대적 태도로의 돌변이 마가복음의 전체적인 서사 구조에서 이탈한 것이라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세 차례에 걸친 수난예고와 동반되어 제시된 예수를 지지하고 따름에 요구되는 진정성과 성실성의 철저함(8:34b-37; 9:33-35; 10:42-45)을 확인시켜 주는 문학적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는 첫 번째 수난예고에서부터 세 번째 수난예고에 이르기까지 거듭 제자와 무리들을 포괄한 그의 지지자들에게 자신을 따르는 것은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예수와 함께 제국의 폭력과 종교적 타락에 대항하여 걷는 것이며,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는 것임을 주지시켰다.[각주: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를 따르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그러한 실패가 16장 8절의 여성 제자들에게서도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으로서, 마가복음의 청중 및 독자들에게도 예수를 따름에 있어 긴장과 결단을 유도하는 열린 결말의 구조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마가복음이다.[각주:6]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추종해온 무리들과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무리들의 모습을 종합해보건대, 이 무리를 예루살렘 주민이 배제된 갈릴리의 출신의 무리로만 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마가복음은 예수운동의 초창기부터 이미 예루살렘에서 온 예수 지지자로서 무리들을 언급하고 있다(3:8). 예루살렘의 주민들이 예수의 성전에 대한 태도 때문에 그를 배척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각주:7]은 마가복음의 어떠한 본문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마가복음 저자의 의도는 이들이 예루살렘의 무리인지 아니면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온 무리인지를 설명하는 데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후대의 바라빠 이야기가 첨가되면서, 빌라도의 재판 이야기에 등장하는 오클로스의 정체가 다소 모호해지긴 했지만, 예수의 모든 지지자들의 총체적인 실패와 배신을 강조하고 있는 수난사화 및 마가복음 전체의 문맥으로 보아―물론 이 오클로스가 14:43-50의 오클로스와는 구별되는 것이 분명하지만―기존에 계속 언급되어온 예수의 지지자로서 그 오클로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릭터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앞서 우리가 살펴본 바라빠 이야기가 만들어진 배경에 관한 많은 논의들이 이 이야기의 컨텍스트를 초기 그리스도교의 변증적 상황이라고 보고, 또한 이 이야기의 청중을 마가공동체 내부가 아닌 외부의 유대인 일반이라고 본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기존의 논의들은 유대인들에게 예수 죽음의 책임을 전가하고 대신에 로마인들의 책임은 면제해주려는 의도에서 바라빠 이야기가 창작되었다는 견해를 되풀이해왔다. 그럼으로써, 마가복음과 마가공동체를 반유대주의적(anti-Semitic) 텍스트 및 집단으로 규정해온 것이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오클로스에 관한 많은 연구들을 참조해보고, 또한 수난사화의 문맥 안에서 오클로스 및 예수의 지지자들 일반에 관한 진술을 살펴 보건대, 마가복음이 상정하고 있는 이 이야기의 ‘저자적 독자’(authorial audience)[각주:8] 혹은 ‘청중’은 공격의 대상으로서 그리스도교 외부의 유대 군중들이 아니라, 마가공동체 안에 남아 있는, 즉 이 이야기의 본래적 상황과 연관된 예수의 지지자였던 유대 군중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열 두 제자들과 다른 나머지 제자들, 즉 여성 제자들(막달라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을 포함한 일반 제자들 중 그 누구도 수난사화 안에서 명예를 복권시켜 놓고 있지 않다. 오히려 수난사화 이전의 본문에서 한 번도 예수의 지지자 중의 일원으로서 부각되지 않았던 이들, 예컨대 무명의 여인(14:3-9), 역시 무명의 백부장(15:39),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15:43-46) 정도만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마가복음은 예수운동의 초기부터 그를 지지하며 따랐던, 혹은 적어도 예루살렘 입성을 즈음하여 합류했던 그 많은 지지자들이 예수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데 실패했음을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도처에서 다양하게 시사하고 있다.

한데, 우리는 역사적으로 예수의 열 두 제자와 여성 제자들, 심지어 무리들이 이후에 예수의 부활을 체험하고 그를 다시 따랐다는 사실을 다른 복음서의 부활사화 및 사도행전(1:13-15a), 그리고 바울서신(고전 15:5-7)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예수가 죽은 이후에 전에 예수를 지지했던 오클로스의 후일담에 관해 마가복음에서는 직접적으로 어떠한 보도도 찾을 수 없지만, 마가복음보다 후대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누가복음은 뜻밖에 중요한 정보 하나를 제공하고 있다. 누가복음 23:44-49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서, 마가복음 15:33-41과 평행하는 본문이다. 시간과 장소가 일치하며, 예수의 운명 당시 정황이 유사하며, 백부장과 여성 제자들의 등장이 일치하는 두 본문에서 한 가지 대조되는 것은 누가가 48절에서 오클로스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는 오클로스가 예수가 죽는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보도하며, 더 나아가 이들 오클로스가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고 전하고 있다. 누가에 따른다면, 예수를 빌라도에게로 끌고 가서 그를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했다”고 고발했던 그 다수의 무리들 가운데 일부의 무리(눅 23:1, 4)가 나중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할 때 ‘그 무리들’(23:48, οἱ ὄχλοι)로 다시 등장한다. 브라운은 23:48절의 동사 τύ́πτοντες와 15:19의 ἔτυπτον의 원형이 같은 것(τυπτω)에 주목한다. 로마 군인들이 갈대로 예수의 머리를 치던 행동과 예수 처형을 지켜보던 무리가 스스로에게 한 행동이 같다는 것이다. 만일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을 참조했다는 복음서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여기서 누가는 오클로스에 대한 마가의 부정적 묘사를 최대한 완화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누가의 오클로스들은 자신들이 예수를 죽이는 데 가담했다는 그 충격적인 사실을 뒤늦게 인식하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 자신들이 지지하고 따랐으며, 자신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베풀었던 그 의로운 인물을 죽이는 데 동참했다는 사실은 오클로스에게 이제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미 예수가 체포될 당시부터 예수를 버리고 도망쳤던 열 두 남성 제자들(막 14:50), 그리고 예수의 마지막 현장을 지켜보고, 또한 그의 무덤까지 찾아갔지만, 끝내 부활을 믿지 못하고 도망쳤던 여성 제자들(16:8), 그리고 예수를 살리기 위해 빌라도를 찾아갔지만, 결국 대제사장들의 선동으로 인해 예수를 죽이는 동참한 무리들(15:6-15). 이 모든 예수의 지지자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예수의 죽음에 공범으로 동참했다는 사실은 ‘통탄스러운’, 혹은 ‘가슴을 칠 수’ 밖에 없는 슬픈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이 사건은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일부는 어떻게든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예수를 애도하고자 했다. 그의 죽음을 현실로 수용하고, 기존에 유지되던 모든 친밀한 인관관계 혹은 공동체를 그대로 놓아둔 채 그의 부재를 현실 안에 통합하려 했다. 예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예수의 지지자들은 그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부터 예수에게 ‘고인’이란 칭호를 붙여줄 것이고, 그 결과 그는 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지평 안에 안전하게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물론, 이때 자신들이 예수의 죽음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망각/은폐될 것이다. 예수의 여성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그의 무덤을 찾은 것은 바로 이러한 애도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을 때, 모든 애도는 중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제는 정말 잊고 싶은 자신들의 과거 소행을 상기시키는 ‘놀라움’과 ‘두려움’의 사건이었다. 여성들이 예수의 부활 소식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 그 놀라운 소식을 빨리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그 사실을 그녀들이 도저히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녀들은 예수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희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예수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자신들의 과거가 영원히 덮을 수 없는 악몽으로 남을 것이기에 그녀들은 부활의 소식 앞에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죽음 이면에 존재하는 예수 지지자들의 실패와 배신, 그리고 좌절을 결코 망각/은폐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사건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일종의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 트라우마란 개인이 대상(그것이 자신일 수도 있는데)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무너지는 충격적인 계기인 트라우마적 사건을 겪고 난 후 생기는 증상을 일컫는다. 다른 사건에 의해 본래의 트라우마적 사건 또는 원인적 사건에 관한 기억이 다시 살아날 때, 비로소 트라우마로 느끼게 된다. 이 원인적 사건(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는 “뒤늦은 계기” 혹은 “사후적 사건”이 트라우마를 발생시키는 것이다.[각주:9] 필자는 예수의 실패한 지지자로서 오클로스와 그에 연관된 예수의 남녀 제자들에게 예수 죽음의 트라우마가 반복적으로 경험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단순한 상처나 슬픔으로 남지 않고 트라우마적 기억으로 남은 이유는 예수의 죽음에 예수의 지지자들이, 특히 오클로스와 제자들이 깊이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즉 예수를 배신한 원인적 사건을 불러오는 사후의 사건이 반복적으로 그들을 찾아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에게 그렇게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트라우마의 귀환, 그 “억압된 것의 귀환”(the return of the repressed)으로서 어쩌면 바라빠 예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오클로스가 예수를 죽이는 데 가담한 근원적인 제1사건이 있었지만, 그것이 당시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 채, 단지 충격만 주고 그 후 제2, 제3의 예수 사건을 통해 사후에야 비로소 제1의 예수 죽음 사건의 의미가 드러났던 것이 아닐까? 바라빠 예수는 오클로스들의 예수 죽인 트라우마를 발생시키는 그런 예수의 부활, 혹은 억압된 것의 귀환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필자가 그리고 있는 가설은 이런 것이다: 마가공동체는 트라우마 쓰기 즉 ‘외상 후 쓰기’(post-traumatic writing)라고 하는 사후 작용을 경험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들 당대의 또 다른 예수들 혹은 예수 사건과의 조우를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적 사건을 개작(working over)하고, 심지어 어느 정도까지는 해제(working through)의 과정까지 나아가게 된다.[각주:10] 이러한 트라우마 다시 쓰기를 사후 작용에 의해 촉발시킨 계기가 바로 예수 사후부터 70년 유대전쟁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출현한 바라빠 예수와 같은 그런 인물들, 즉 테러리스트, 강도, 젤롯데 같은 이들과의 조우였던 것이다.[각주:11]  

3. 오클로스의 역사적 트라우마로서 ‘바라빠 이야기’

마커스 보그(Marcus J. Borg)와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기억된 역사로서 바라빠에 관한 이야기를 70년경 마가의 역사적 상황과 확고하게 연결시킨다. 그들은 먼저 이 이야기에 묘사된 무리들과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 혹은 마가공동체를 분리시켜 사고한다. 마가복음이 그리고 있는 무리는 예수 시대의 무리인 동시에 유대전쟁을 전후한 마가공동체 당시의 무리이기도 하다. 마가는 그 무리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창작해낸 것이며, 이때의 바라빠는 말 그대로 하나의 메타포일 뿐이다. 즉, 70년 전쟁 발발 전까지 유대 군중들이 나자렛 예수 대신에 선택해왔던 다른 많은 혁명적 지도자들을 상징하는 인물인 것이다. 보그와 크로산은 바라빠 예수와 그리스도 예수가 모두 혁명가들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두 사람 다 로마제국에 도전했지만, 바라빠 예수는 폭력에 호소했고, 나자렛 예수는 비폭력에 호소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적어도 66년까지 예루살렘 무리들은 (혹은 유대 땅에 살고 있는 많은 다른 사람들은) 예수의 방식이 아니라 바라빠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각주:12] 이들의 논의는 간략한 스케치에 그치고 있지만, 바라빠 이야기를 해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이 이야기의 컨텍스트를 66-70년의 유대전쟁과 결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크로산은 자신의 독자적인 연구에서 바라빠 사건, 즉 공개적이며 미리 예장된 유월절 특별사면은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마가의 창작임에 분명하다고 일단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한다. 빌라도이건 아니면 다른 어느 로마 총독이건 간에, 그런 축제일에 군중이 요구하는 죄술를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가의 서사 전략에서 이 특별사면은 매우 훌륭한 해결책이라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마가에게 있어서 그 특별사면이 상징적으로 그 이전 기간들의 사건을 요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백성들은 한 사람의 의적과 예수 가운데 선택받도록 ‘늘’ 요청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평화주의자 예수보다는 바라빠 예수와 같은 폭력적 혁명가를 선택하곤 했다. 마가가 보기에는 그래서 66년의 로마에 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각주:13] 크로산에 따르면, “바라빠 사건은 실제로 그 사건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과정으로서는 진실한 것이다.”[각주:14]
 
마가복음의 수난사화는 마가공동체의 트라우마가 재현되고 ‘반복’되는 이야기의 공간이자 그것을 그들이 어떻게 극복해나갔는가를 보여주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라빠 이야기가 결합된 빌라도의 재판 이야기이다. 마가복음의 저자가 빌라도의 재판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오클로스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그들에게 그 문제가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그 이야기 안에 현재적인 바라빠 이야기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치료를 위해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는 데 오클로스가 가담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즉 과거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과거의 자리에 그대로 위치시키고 현재와 미래를 과거로부터 구분하면서도, 그 이야기 안에 바라빠라고 하는 가공의 상징적 인물을 예수의 대조인물로(foil)로 만들어 넣고, 자신들이 지금 따라야 할 길이 누구의 길인지를 상기하고 있다. 그것은 분명 지난날의 실패의 고통을 반복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억압된 기억들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몸으로 겪어냄으로써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실천이기도 한 것이다. 실패를 반복함으로써, 실패를 극복하는 것. 그것이 마가공동체가 다시 쓰는 오클로스의 역사적 트라우마로서 ‘바라빠 이야기’인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1. 제임스 던/차정식 옮김,『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서울: 새물결플러스, 2010), 197-198[James D. G. Dunn, Jesus Remembered (Michigan: Wm. B. Eerdmans Publishing Co. 2003), 130]. [본문으로]
  2. 제임스 던, 앞의 책, 198. [본문으로]
  3. ‘사후 작용’(differed action) 혹은 ‘사후성’(differed)의 원리는 프로이트가 “심리적 시간, 인과성의 개념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한 용어”로서, “경험, 이상, 기억 흔적은 사후에 새로운 경험과 관련을 맺으면서 수정되어 다른 차원으로 발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후 작용에 의해 원초적 외상의 사건은 새로운 의미와 심리적 효과를 부여받는 것이다. 즉 외상의 흔적이 계속해서 잊혀 지지 않은 채로, 또 그 의미를 비밀에 부친 채로 연기되다가 후에 다른 사건을 계기로만 사후적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후성이란, 거꾸로 된 인과율을 내포하고 있다. [본문으로]
  4. 막 16:8에 묘사된 빈 무덤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부활 소식에 대한 두려움과 침묵을 제자도를 실천하는 데 실패했다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논의들로는 다음의 글들을 참조할 것: John Dominic Crossan, “Empty Tomb and Absent Lord (Mark 16:1-8),” in The Passion in Mark (ed. Werner H. Kelber; Philadelphia: Fortress, 1976) 135-52, 특히, 149; Malbon, “Fallible Followers Women and Men in the Gospel of Mark,” Semeia 28(1983), 29-48, 특히, 44-45; Andrew T. Lincoln, “The Promise and the Failure: Mark 16:7, 8”, JBL 108/2 (1989), 283-300, 특히, 293-295; Susan Miller, “‘They Said Nothing to Anyone: The Fear and Silence of the Women at the Empty Tomb (Mk 16.1-8),” Feminist Theology 13.1(2004), 77-90, 특히 88-90. [본문으로]
  5. 마르쿠스 보그(Marcus J. Borg) &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오희천 옮김,『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서울: 중심, 2007), 142-143. [본문으로]
  6. Malbon, “Disciples/Crowds/Whoever: A Markan Narrative Pattern,” 126. [본문으로]
  7. F. Belo, A Materialist Reading of the Gospel of Mark (New York: Orbis Books, 1981), 224-225; E. P. 샌더스(Sanders)/이정희 옮김,『예수운동과 하나님 나라: 유대교와의 갈등과 예수의 죽음』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7), 526. [본문으로]
  8. 김학철, “마태공동체 연구사에 관한 비판적 고찰과 전망,” 『신학논단』47(2007), 31-32. 김학철에 따르면, “저자적 독자란 저자가 글을 쓰면서 마음에 품고 있는 독자를 말한다. 저자는 이 청중이 본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지식과 해석적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저자적 독자'는 하나의 ‘이상적 독자’(ideal reader)이지 실제 독자(real reader)는 아니다. 저자적 독자와 실제 독자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다 저자적 독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특정한 사회/해석적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의미이다. 저자와 그가 기대하는 독자들이 서로 공유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하나의 특정한 방식으로 독서하도록 저자가 초청하는 그 초청을 받아들이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본문으로]
  9. Dominick LaCapra, Soundings in Critical Theory (Ithaca: Cornell Univ Pr, 1989), 34-35. [본문으로]
  10.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이덕하 옮김, “기억하기, 되풀이하기 그리고 훈습하기,”『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서울: 도서출판b, 2004), 104-121. [본문으로]
  11. 물론 프로이트는 트라우마적 기억의 계기를 제공하는 원초적 사건이 정말 사실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허구적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왜냐면 그것은 환자의 순수한 기억이었다기 보다는 분석가 프로이트가 여러 상황들을 바탕으로 하여 재구성한 일종의 가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트라우마적 기억 속에 간직된 원초적 장면이라는 ‘근원’은 ‘있었던’ 근원이 아닌 ‘부재’의 근원이 되어버리며, 담론 혹은 서사가 만들어 낸 허구적 산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신적 시간성과 인과성’에 있어서 기억이 ‘새로운 경험’에 맞추어 수정될 수 있다고 하는 사후성의 논리는 결국 전이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과거는 현재에 의해 다시 써지고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근원이 더 이상 근원이 아니고 실제가 더 이상 실제가 아니라는 말이며 역사적 진리를 전복시키는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트라우마적 기억을 적용하고 있는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마가공동체 안에 속한 집단이거나, 마가복음으로 편입된 수난전승 배후에 있으면서 오클로스로 지칭되는 예수의 지지자 집단이다. 개인적 기억에 있어서는 트라우마적 사건의 실제성 여부가 중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집단적 기억에 있어서는 그 기억의 ‘사회적 틀’, 즉 그러한 기억을 가능케 한 사회적 동인이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 [본문으로]
  12. 보그 & 크로산,『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서울: 중심, 2007), 205; Marcus J. Borg, Jesus: uncovering the life, teachings, and relevance of a religious revolutionary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2006), 265. [본문으로]
  13. 존 도미닉 크로산/김준우 옮김,『역사적 예수』(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619-20. [본문으로]
  14. 크로산,『역사적 예수』, 62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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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빠 이야기’ 연구 동향 (2)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1. 속죄제의에서 수난이야기로!

빌라도가 마음이 흔들려서 예수를 놓아주려 하다가 결국 예루살렘의 영향력 있는 엘리트층의 요구를 묵인하는 쪽으로 결정을 했다는 복음서의 묘사는 지속적으로 의문시되어 왔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묘사는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교를 친(親)로마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변증적 목적에서 생겨났다고 추정한다.[각주:1] 그리고 그런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빠의 이야기도 반(反)유대/친(親)로마적 정황에서 생성된 픽션으로 이해되어왔다.

지난 호의 글에서도 소개했듯이, 바라빠 이야기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를 제출한 학자들은 대체로 그 이야기가 만들어진 역사적인 삶의 자리를 초기 그리스도교의 변증적 상황에서 파악했다. 즉, 아람어 ‘압바의 아들’(아버지의 아들)의 음역인 ‘바라빠’(Barabbas)는 원래 나자렛 예수에 대한 또다른 별칭이었다는 것과, 우리가 갖고 있는 현재의 본문은 예수에 대해 별개의 혐의로 열린 두 개의 분리된 재판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라는 주장이다.[각주:2] 나자렛 예수로부터 분리된 가공의 인물인 바라빠 예수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와 바라빠 예수 사이에 뒤바뀐 운명을 극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예수의 사형에 대한 책임이 로마 권력자들보다는 전체 유대인들에게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 복음서의 의도라는 것이다.

물론 복음서 저자가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고대 세계에서 종종 있었던 특별한 죄수 사면의 예들을 참조사례로 활용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인정되었다. 예컨대 메리트에 따르면, 변증적인 동기를 갖고 있었던 복음서 저자는 예수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에 관해서까지 세부적인 이야기를 정교하게 만들어 내려 했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레꼬-로만 세계의 유사한 죄수 특별사면의 예들을 인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B.C.E 561년에 바빌론 왕이 여호야긴을 석방시킨 사건(렘 52:31; 왕하 25:27) 같은 것들이 결정적인 참조사례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스 역시 이러한 견해를 이어받아, 바라빠 이야기를 『에스더서』에 관한 일종의 미드라쉬, 즉 해설적 기술방법의 결과라고 주장한다.[각주:3]

그런데, 2007년에 제니퍼 맥클레인이 발표한 논문은 바라빠 이야기의 문학적 창작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창안된 삶의 자리를 전혀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각주:4] 그가 제안하는 비교 자료의 핵심은 바로 그레꼬-로만 세계에 편만했던 ‘치유 퇴출 의식’(Greco-Roman curative exit rites), 특히 그중에서도 그리스의 파르마코스(pharmakos; Φαρμακος) 의례와, 그것의 영향 하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되는 레위기 16장의 아사셀염소 의례이다. 그는 치유 퇴출 의식이라고 하는 그레꼬-로만 세계의 보편적 의례 문화의 맥락에서, 그리스의 파르마코스와 레위기의 아사셀 염소가 이른바 공동체의 정화를 위해 밖으로 추방되었던 속죄염소(scapegoat)의 이종변형(異種變形)이라고 보고 있다.

르네 지라르와 자크 데리다 등에 의해서 잘 알려진 용어인, 파르마코스는 ‘독’이면서 ‘약’이란 뜻을 지녔으며 그리스의 축제 때 뽑힌 인간 희생물을 의미한다. 보통 파르마코스는 그 공동체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서 주로 ‘근친상간’과 ‘아비살해’라는 금기를 어긴 자가 뽑혔다고 한다. 즉 그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질서를 파괴한 자를 희생제의로 제거하고 평화와 질서를 다시 찾으려고 하는 축제가 그리스의 ‘파르마코스 축제’인 것이다.[각주:5]

맥클레인에 따르면, 바로 이 파르마코스의 유대적 변종이 레위기 16장에 나타난 아사셀 염소이다. 레위기 16장은 레위기에서 청정법(淸淨法)과 성결법(聖潔法)을 잇는 본문으로서, 이 본문의 주제는 ‘속죄의 날’(Yom Kippur)이다. 속죄의 날에 아론은 자신과 그 집안을 위한 한 마리의 속죄제 숫소와 한 마리의 번제용 숫양, 또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두 마리의 속죄염소와 한 마리의 번제용 숫양을 준비해야 한다. 이때, 전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제의 예식에서 두 마리의 염소 중 하나는 야웨께 드려지고, 다른 하나는 백성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광야의 ‘아사셀’에게로 보내진다(레 16:9, 15-20a).

살아 있는 그 숫염소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이 저지른 온갖 악행과 온갖 반역 행위와 온갖 죄를 다 자백하고 나서, 그 모든 죄를 그 숫염소의 머리에 씌운다. 그런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손에 맡겨, 그 숫염소를 빈 들로 내보내야 한다. 그 숫염소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갖 죄를 짊어지고 황무지로 나간다. 이렇게 아론은 그 숫염소를 빈  들로 내보낸다.(레 16: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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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광야로 내보내는 예식(레 16:10, 20b-22)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현대의 일부 비평가들에 따르면, 아사셀염소 예식은 고대 근동의 예식을 차용한 것이며, 레위기 16장은 여러 차례의 개정과 편집과정을 거친 복합적 문학층을 가진 본문이라고 한다.[각주:6]

특히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아사셀의 이름이 정확한 무슨 뜻이냐는 것이다. 히브리성서 안에서도 아사셀이라는 단어는 오직 레위기의 이 본문 안에서만 사용된다. 속죄일에 관한 규정 역시 오경의 레위기와 민수기를 제외하고는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아사셀의 의미를 둘러싼 여러 가지 해석들이 존재하지만,[각주:7] 맥클레인은 아사셀이 광야에 거주하는 악마를 지칭하는 용어라는 해석을 지지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맥클레인도 인용하고 있듯이, 외경 에녹서(에녹 8:1; 9:6; 10:4-8; 13:1-2; 54:5)에서 아사셀은 깃털이 달린 악령의 존재로 나타난다. 더욱이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보내지는 장소가 일반적으로 악령들의 거주지로 인식되던 광야라는 점이나, 첫 번째 염소가 야웨를 위한 것으로서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바쳐진 것이라면, 나머지 한 염소가 그와 대비되는 또다른 초자연적 존재, 즉 악마를 위해 바쳐진 것으로 보는 것이 큰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구약학자들이 대체로 이 아사셀염소 의식의 기원을 히타이트나 메소포타미아와 같은 근동의 제의를 차용한 것으로 보는 데 반해, 맥클레인은 이를 근본적으로 그레꼬-로만 세계의 ‘치유 퇴출 의식’의 영향권 안에서 파악한다는 것이다.

맥클레인에 따르면, 아사셀염소 의식이 공동체의 위기에 대한 대응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예식의 과정을 통해 지위의 변형을 경험한 한 공동체의 구성원의 지명에 응하여 신성한 권력을 집중시키고 지시하는 의례적 행동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적을 향해 공동체로부터 지명된 사람의 퇴출을 수반하는 동시에, 그의 공동체로부터 멀리 떨어져나간 피지명자의 재난을 전환시키는 대리적 행동과 같은 요소들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인간 희생물 제의를 동물 희생 제의로 발전시킨 흔적을 보여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해석이 이미 초기 그리스교의 교부중 하나인 오리겐에 의해서 일찍부터 취해졌음을 주목한다. 오리겐에게, 그 속죄염소는 악마의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추방 징후는 악마의 운명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의 지지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오리겐은 속죄염소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악마에 대한 전형적 상징으로 이해한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라 할 수 있다.

한편, 맥클레인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와 바라빠 예수의 대조적인 운명에 관한 마가복음 15장의 기술이 레위기 16장의 아사셀염소의 의례를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치유 퇴출 의식이라는 맥락에서, 파르마코스-아사셀염소-바라빠는 모두 다 사악한 죄악의 전염이라는 공동체의 위험을 제거하면서 혹은 치유하면서, 사회 내부적 죄악들을 뒤집어쓰고 공동체 밖으로, 즉 광야로 퇴출당하는 의례의 희생제물을 표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자렛 예수도 아닌, 바라빠 예수가 파르마코스 혹은 아사셀염소로서 속죄제물(Scapegoat)이 될 수 있을까? 맥클레인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속죄제물과 희생제물에 대한 개념적 구분을 숙지해야 한다. 맥클레인은 복음서 수난이야기에서 나자렛 예수는 희생염소(Immolated goat)이지 속죄염소(Scapegoat)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레위기 16장의 두 염소의 경우처럼, 야웨께 바쳐진 한 염소는 성전과 성소의 정화를 위해 죽임당하는 희생양이 되었지만, 아사셀에게 바쳐진 다른 염소는 공동체의 죄 자체를 제거하기 위해 온갖 부정과 죄악을 대신 뒤집어쓰고 학대 끝에 공동체 밖으로 쫓겨난 것이다.

유대-로마 전쟁 이후 성전이 파괴되고, 성전에서 이루어지던 속죄의 날 의례도 당연히 폐지되었다. 바로 그러한 정황 가운데서 초기 그리스도교는 속죄제의를 문학화하여 예수의 수난이야기를 재구성했다는 것이 맥클레인의 주장이다. 성전에서의 속죄제의가 갑작스럽게 중단된 데서 찾아온 혼란을 겪고 있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속죄제의의 드라마틱한 역사적-신학적 종결의 서사가 필요했고, 바로 그것이 두 ‘예수’의 이야기로 표현된 것이라고 한다. 광야로 추방된 아사셀염소가 야웨께 드려진 희생염소와 동일하게 원래 아론에 의해 준비된 염소들 중 하나였던 것처럼, 바라빠 예수 역시 나자렛 예수 안에서 나온 또다른 예수였기 때문에, 둘은 나란히 속죄제의의 그리스도교적 번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바라빠 예수를 통해 초기 그리스도교는 속죄제의의 역사적-신학적재구성을 도모했다. 예수는 성전 혹은 이스라엘 민족을 정화하는 희생염소였고, 바라빠는 유대인들의 죄를 뒤집어쓰고 제거당한 부정한 속죄염소를 상징하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바라빠가 저지른 죄목을 민란, 즉 정치적 봉기로 묘사하고 있고, 그를 단순히 일반 범죄자가 아닌 일종의 무장 혁명세력(레스타이, λῃσταί)의 일원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 인물을 유대인들이 풀어달라고 했을 때, 빌라도가 순순히 풀어주는 것이나, 또 그것을 중간에서 부추긴 것이 로마와 결탁한 대제사장들이었다는 것 등, 바라빠 이야기 안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바로 그러한 해석상의 난맥을 맥클레인은 새로운 각도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예컨대, 빌라도에게 바라빠를 풀어달라고 한 대제사장들과 그에 매수된 군중들의 진의는 바라빠를 유대 사회로부터 상징적으로(혹은 의례적으로) 퇴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바라빠를 살리기 위해 석방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손으로 학대하고 추방하기 위해 빌라도를 압박한 것이다. 빌라도는 그런 유대군중들의 의중을 파악했기 때문에, 정치범인 바라빠를 순순히 풀어준 것이다. 마가복음 저자는 이렇게 바라빠 사면을 통해 유대군중들의 반(反)민족주의적이고 반(反)정치적인 측면을 한껏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예수를 자연스럽게 레위기 16장의 맥락에서 속죄제의의 희생염소로 의미부여할 수 있었다.

요컨대, 예수가 이스라엘의 정화를 위해 야웨께 바쳐진 희생제물이라는 신학적 언설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 예수 죽음의 상황을 속죄의 날의 맥락과 더욱 유사하게 재구성할 필요성이 있었고, 여기에 아사셀염소 역할을 맡을 누군가가 역시 필요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바라빠 예수라는 가공의 인물이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맥클레인의 논문은 바라빠 이야기가 완벽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문학적/신학적 창작이라는 기존 바라빠 연구자들의 논지를 보다 정교하게 강화하고 있다. 바라빠 이야기의 삶의 자리는 이제 단순한 반(反)유대주의를 넘어, 성전 파괴 이후의 시대에 속죄제의를 완벽히 대체하는 복음서의 수난이야기에서 찾아진 것이다. 맥클레인은 바라빠 이야기의 맥락을 초기 그리스도 내부의 문제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바라빠 연구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2. 바라빠에서 오클로스로?

물론 맥클레인의 논문을 통해서도 여전히 해명되지 않는 것이 남아 있다. 바라빠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들과 그 이야기 안에 등장하는 이들 간의 관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두 회에 걸쳐 살펴본 바라빠 연구자들의 견해는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그 사건, 곧 빌라도 법정에서 일어난 일들의 역사적 실제성을 철저히 제거하는 쪽으로 진행되어왔다.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는 오로지 예수가 빌라도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고 죽었다는 것뿐이다. 예수와 빌라도를 제외하고, 바라빠와 관련된 여타의 사건과 인물들은 그 창작의 동기와 맥락은 각각 다르게 설명될지라도, 어쨌거나 모두 문학적 상상의 산물이라는 해석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가 살펴본 여러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이러한 결론을 취하는 배경에는 바라빠라는 인물의 이름의 시대착오적 성격 및 그 이름의 진의를 탐구할수록 드러나는 그리스도 예수와의 긴밀한 연관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필경 이 연관성은 우연적인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절묘한 것이어서 모종의 신학적 의도가 반영된 문학적 장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의혹을 집요하게 밀어붙인 끝에 맥클레인은 이상과 같은 획기적인 해석을 제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들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바라빠 이야기가 포함된 빌라도 법정 이야기 안에는 예수와 빌라도, 바라빠, 대제사장들, 그리고 무리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는 그들 중 어느 누구로부터도 전승되지 않았고, 완벽한 시간적 공백을 둔 채, 후대의 복음서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리그부터 맥클레인에 이르는 모든 바라빠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지금까지 바라빠 이야기를 연구해온 모든 서구 학자들은 이 이야기의 역사적 진실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 오로지 바라빠라고 하는 인물에만 집중해왔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결코 바라빠가 아니다. 바라빠와 예수는 이 이야기 안에서 타인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수동적인 객체로 철저히 머물러 있다. 그리고 빌라도와 대제사장들은 주인공의 선택과 요구에 휘둘리는 혹은 그것을 충동질하는 부차적인 조연에 그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즉 주체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오히려 ‘오클로스’ 즉 ‘무리들’이라는 사실이다. 서구 학자들은 이 이야기의 일차적인 주인공인 오클로스를 통해 마가공동체에까지 이야기가 전승되었을 가능성에 관해서는 어떠한 추론도 해보지 않았다. 

사실 바라빠만을 주목하고 이 이야기를 접근한다면, 당연히 이 이야기는 허구적 성격이 다분하지만, 만일 오클로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허구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측면들이 분명 있다. 바라빠는 마가복음의 서사에서 뜬금없이 갑자기 등장하고 있지만, 오클로스는 그렇지 않을뿐더러, 공관복음이 그 자체로 예수가 무엇을 행하였고 말했는가보다는 예수의 처음 제자들이 그가 무엇을 행하거나 말한 것으로 ‘기억했는가’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의 입장[각주:8]을 따른다면, 이 이야기를 순전히 창작의 산물로서 허구라고 확정짓기 전에, 누구에 의해 이 이야기가 기억되고 전달될 수 있었는가를 더욱 치밀하게 물어 들어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음호 웹진에서는 바라빠 이야기를 오클로스의 기억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필자의 견해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 웹진 <제3시대>


  1. Craig A. Evans/김철 옮김,『마가복음 8:27-16:20: WBC 성경주석』(서울: 솔로몬, 2002) 728. [본문으로]
  2. Rigg, “Barabbas,” 417–456; Stevan L. Davies, “Who is Called Bar Abbas?,” <EM>NTS</EM> 27 (1980–81) 260–262; H. Z. Maccoby, “Jesus and Barabbas,” <EM>NTS</EM> 16 (1969/1970) 55–60. 이러한 학자들의 논의에 관한 보다 자세한 소개는, Brown, <FONT face=Arial><FONT color=#000000><SPAN style="FONT-STYLE: italic">The Death of the Messiah</SPAN> (Vol.1),</FONT> </FONT>811–814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3. Roger David Aus, “The Release of Barabbas (Mark 15:6–15 par.; John 18:39–40), and Judaic Traditions on the Book of Esther,” in <EM>Barabbas and Esther and Other Studies in the Judaic Illumination of Earliest Christianity</EM> (Atlanta: Scholars Press, 1992) 1–27. 이는 마치 마태복음이 예수의 유년설화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베들레헴에서 어린아이가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태복음 저자는 예수를 모세와 같이 위대한 인물, 즉 제2의 모세로 제시하고자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 중 히브리인 가정의 어린아이들이 파라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출 1:15)를 예수의 유년설화를 구성하는 데 전유한 것이다. 따라서 오스에게 있어, 바라빠의 사면 사건이 역사상에서 실제로 발생했는가 아닌가는 애초부터 복음서 이야기의 미드라쉬적 성격을 간과한 잘못된 물음인 것이다. [본문으로]
  4. Jennifer K. Berenson Maclean, “Barabbas, the Scapegoat Ritual, and the Development of the Passion Narrative,” <EM>HTR</EM> 100:3 (2007) 309–334. [본문으로]
  5. Rene Girard/김진식 · 박무호 옮김, 『폭력과 성스러움』(서울: 민음사, 1997) 144-150. [본문으로]
  6. 이상란 · 정중호, “대속죄일과 아사셀,” 『구약논단』3호(1997) 5-6. [본문으로]
  7. 아사셀의 의미에 관한 해석들에 대해서는 이충호, “대속죄일과 아사셀염소: 레위기 16장을 중심으로,” 감신대석사논문 (2009) 73-80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8. James D. G. Dunn/차정식 옮김,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서울: 새물결플러스, 2010) 19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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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빠 이야기’ 연구 동향 (1)


정용택
(본 연구소 상임연구원)

모두들 잘 알다시피, 예수가 사형을 선고받는 결정적인 현장에서 예수와 그 운명의 심판대에 잠시나마 함께 서 있었던 인물이 바로 바라빠이다. 오랫동안 교회의 설교 강단에서는 바라빠를 예수의 대속적 죽음의 첫 번째 수혜자이자, 모든 구원받은 죄인들의 실존을 상징하는 존재로 선언해왔다. 바라빠에 관한 최초의 주석이라 할 수 있을 베드로의 성전에서의 설교는 바라빠와 예수 그리스도 간의 아이러니한 운명의 역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분은 일찍이 그를 넘겨주었고, 빌라도가 그를 놓아 주기로 작정했을 때에도, 여러분은 빌라도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운 그를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증언하는 증인입니다”(행 3:13-15). 악테마이어에 따르면, 이렇게 불의가 버젓이 행해짐으로써 “예수에 대한 최상의 진리가 드러났다. 즉, 비록 죄가 없지만 죄인들이 살 수 있도록 예수는 바라빠와 같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은 것이다.”[각주:1]

그런데 정작 신약학자들, 특히 복음서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연구자들에게 바라빠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케리그마적 해석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매우 흥미를 끄는 주제였다. 그렇기에 바라빠에 관한 가장 이른 역사적 기록으로 간주되는 마가복음 15장 6-15절 본문은 총괄적인 “빌라도의 재판 이야기”(막 15:1-20) 안에서 구분되어 소위 “바라빠의 석방 이야기”로 불리면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이다. 이 글은 국내에 거의 소개된 바 없는 바라빠 이야기에 관한 서구 학자들의 연구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기 위한 목적에서 쓴 것이다. 부족한 글이나마 복음서의 바라빠 이야기가 갖고 있는 신학적 의미와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래본다. 이번 호의 글에서는 비평적 코멘트는 최대한 배제하고 일단은 정보를 소개하는 데 충실할 것이다. 서구 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결론적인 평가 및 필자의 “바라빠 이야기”론(論)은 다음 호 웹진에 실릴 글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될 것이다.

1. 바라빠, 범죄자인가 혁명가인가?

“바라빠라고 불리는 자”(막 15:7). 그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 이외에는 어떠한 자료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각주:2] 바라빠 이야기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는 주로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 왔다. 첫째는 그가 저지른 범죄의 성격과 관련하여 그의 정체를 규명하고. 나아가 이러한 정체에 기초하여 이 이야기의 역사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면서 그의 정체를 연구하고, 나아가 이 이야기의 역사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먼저 그가 저지른 범죄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살펴보자. 7절의 “동료 반도들과 함께(meta. tw/n stasiastw/n), 그리고 “반란 중에”(evn th/| sta,sei)라는 표현은 바라빠의 정체를 분명하게 시사한다. 먼저 등장하는 남성복수명사 ”쉬스타시아스테스“(sustasiasthv")는 긍정적으로는 혁명가, 부정적으로는 반역자 혹은 폭도의 일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바라빠가 그들 중의 일원으로서, 그 역시 혁명가 내지는 폭도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어 성서에서 ”민란“(개역한글, 개역개정), ”폭동“(표준새번역, 새번역), ”반란“(공동번역) 등으로 제 각기 뉘앙스가 조금씩 다르게 번역되고 있는 ”스타시스“(sta,sij)는 기본적으로는 ‘기립’(stand 혹은 standing)을 의미하고, 영어의 ‘stand’가 그러하듯이 유추적으로는 ‘위치’(‘존재’,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보다 함축적인 의미에서는 정치적인 입장, 특히 대중의 반란적 ‘봉기’, 즉 ‘민란’, ‘폭동’, ‘소요’(행 19:40) 등을 의미한다. 물론 다소 예외적이지만, 의견의 팽팽한 대립, 격렬한 논쟁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행 15:2).

한편, 마가는 바라빠의 명성에 관해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데 비해, 마태는 그를 당시에 잘 알려진 자로 묘사한다. 마태복음 27장 16절의 형용사 에피세모스(evpi,shmoj)는 긍정적으로는 ”유명한“ 혹은 ”괄목할만한“ 존재를 수식하는 표현이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의미에서 ”악명 높은“(notorious)의 뜻을 모두 갖고 있다. 마태는 마가가 소개하는 바라빠가 당시에 유명한 인물이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이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성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라빠가 민란 중에 구체적으로 누구를 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참여한 민란이 로마지배체제에 저항하는 정치적 성격의 집단행동이었으며, 살인이 동반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음은 분명하다.[각주:3]

많은 학자들이 이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성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와 같이 로마 지배체제에 무력으로 도전한 위험한 정치범을―아무리 명절과 관련한 특별한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군중들이 원한다고 해서 로마 총독이 쉽게 풀어 주었으리라고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상황은 또한 유대 문헌으로부터 추측되는 빌라도의 초상과도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오스(Roger David Aus)는 강력한 어조로 반대의 논거를 제시한다. ”빌라도는 군중의 변덕에 자신이 놀아나는 것을 허용할만한 인물이 아니었으며, 무엇보다도 거의 폭동에 달할 수 있는 제어 불가능한 반체제 인사를 쉽게 풀어줄 만큼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각주:4]

물론 바라빠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신뢰할만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예컨대, 마이어스는 비록 빌라도 시대보다 조금 후대이긴 하지만, 알비누스 총독 시절에 정치범이 사면된 예가 엄연히 있고, 어떤 위험한 인물의 처형에 대한 대중적 저항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그보다는 덜 위험하면서 동시에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다른 반체제 인사를 사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과열된 분위기의 맥락에서 상당히 있을 법한 일이라고 주장한다.[각주:5] 그러나 (대제사장들에게라면 몰라도) 빌라도에게 있어 예수가 바라빠 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었다는 주장은 복음서의 진술과 전혀 맞지 않다. 만일 마이어스의 주장대로라면, 바라빠가 그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듯이, 바라빠보다 더 위험한 예수와 그의 지지자들 역시 로마군대에 의해 함께 체포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빌라도는 자신을 찾아와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체포는커녕 그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줄 만큼 정치적 위험인물로서 예수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그에게는 예수를 반드시 죽일 이유도 그렇다고 반드시 살려줄 이유도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그러나 바라빠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만일 바라빠 이야기만 따로 떼서 놓고 본다면, 빌라도에게로 올라와서 그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은 바라빠의 동료 혹은 지지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빌라도가 그들을 전혀 문제 삼지 않고 협상했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믿기 어렵다.

2. 바라빠, 랍비의 아들인가, 압바의 아들인가?

한편, 바라빠라고 하는 인물의 이름에 주목한 연구들 역시 이 이야기의 역사성에 회의적인 쪽으로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그것은 바라빠라는 이름에서 발견되는 문학적 · 신학적 의미의 특이함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에 따르면, 바라빠라는 인물의 이름상의 독특성, 그리고 바라빠와 예수를 대조시키는 복음서의 문학적 기법 등으로 보건대, 이 이야기만큼은 원래의 역사적 전승(?)에 덧붙여진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각주:6] 왜 그런지 이유를 살펴보자.

지금까지 거의 정설화된 가설대로, 바라빠는 ‘성’이나 ‘개인이름’이 아닌 ‘부계적 이름’(patronymic), 즉 일종의 별칭으로서,[각주:7] 명백히 아람어인 Bar-Rabba(n) 혹은 Bar-abba에서 파생된 음역으로 인정된다.[각주:8] 먼저 ‘Barabbas'가 ’Bar-Rabba(n)'에서 파생된 음역이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랍비, 즉 선생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며, 결국 ‘저명한 선생의 아들’로서 단순히 ‘선생님’을 존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사람의 아들’이 ‘사람’을 의미하듯이, ‘선생의 아들’ 역시 ‘선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대 문헌들을 보면, 히브리어 ‘ben'과 같이, 아람어 ‘bar'는 ’선생‘으로 쉽게 동일시될 수 있었던 표현인 ’선생의 아들‘과 합성되어 다소 느슨하게 종종 사용되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이틀린(Solomon Zeitlin)이 주장하는 것처럼, ’랍비의 아들‘이라는 용어가 70년 성전의 파괴 이후에야 즉, 랍비(적) 유대교(Rabbinic Judaism)[각주:9]가 성립되기 시작한 후에나 비로소 유행했다는 것, 따라서 제2성전 시대 유대교에 속하는 예수 당대에 그런 직함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각주:10] 코헨(Shaye. J. D. Cohen)에 따르면, 랍비라는 말은 “나의 선생님”이란 뜻이며, 본래(프랑스어의 monsieur처럼) 경의를 표하는 호격의 형태였다. 기원후 1세기 전반에만 해도 이 칭호는 대개 학생이 자신의 선생을 개인적으로 부를 때 사용했다(요 1:38). 그러나 70년 전쟁 이후, 즉 제2성전 시대 유대교 체제의 붕괴 이후에는 이 단어의 의미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차 “선생님” 혹은 권위 있는 자리에 있는 지도자(master)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서서히 2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러 이스라엘과 바빌로니아에서 방대하고 독특한 문헌, 특히 미쉬나를 창조해낸 유대계 사회의 일원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로 정착했다. 바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저명한) 랍비의 아들”이라는 개인 이름 외에도 별도로 쓰이는 호칭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바라빠‘라는 별칭이 예수 시대에는 사용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진다. 설령 사용되었더라고 하더라도, 그 이름은 ’랍비의 아들‘이라는 의미 대신에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각주:11]

이와 관련해, 마태복음에서 그 배후의 마태공동체가 자신들의 시대에 아람어 ‘abba'의 번역어로서 ’랍비‘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어 사용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본문이 있어 주목된다. 바로 마태복음 23장 8-10절이 그것인데, 이 본문에서 예수는 이미 시대를 앞서(?) ‘랍비’라는 전문화된 칭호가 사용되는 상황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데이비스에 따르면, 이 본문에서 차례로 언급되고 있는 단어들, 즉 8절의 ‘랍비’(r`abbi,,,), '선생‘(dida,skaloj), 9절의 ‘아버지’(pathr), 10절의 ‘지도자’(kaqhghth"), 이 모든 단어가 사실은 아람어 ‘abba'와 그것의 번역어인 ’rabbi'의 대용어로서 예수는 결국 이 중의적인 단어를 통해 그 어떤 누구도 ‘아버지’나 ‘선생, ’지도자’라는 칭호를 얻지 못하도록 했다.

이 전승이 정말로 예수에게서 기원하는 말씀인지 아니면, 마태가 창작해낸 것인지는 규명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마태공동체는 ‘abba' 혹은 ’rabbi'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어 무분별하게 적용되는 것을 반대했고, ‘abba'라는 호칭의 특권적 사용을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돌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데이비스는 이 본문이 랍비적 유대교와 갈등하고 있는 마태공동체의 역사적 상황뿐만 아니라, 랍비적 유대교 성립 이전에 이미 예수가 자신의 시대에 ’bar abba'로 불렸음을 반향하고 있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예수는 하나님을 자신의 시대에 ‘abba'로 개념화했던 매우 독특한 인물이었고, 그래서 그에게는 어쩌면 ’바르 압바‘라고 하는 별명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대의 그리스도교에 의해 ’바르 압바‘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Son of God, Jesus)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데이비스는 주장한다.[각주:12] 다소 지나친 상상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바라빠”를 예수와 보다 긴밀히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데이비스의 논의는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잠시 여기서 ‘바라빠’의 정체를 탐구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참조점이 되는 마태복음 27장 16-17절을 살펴보자. 흥미롭게도 마태복음의 일부 초기 그리스어 사본과 초기의 번역문들에서 16절 바라빠 앞에 ‘예수’라는 단어가 추가되어 있다. 그는 마가복음에서처럼 단순히 ‘바라빠’가 아니라 ‘예수 바라빠’(VIhsou//n Barabba//n)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구절인 27:17에서도 역시 '예수 바라빠‘(VIhsou/n to.n Barabba/n)로 지칭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초기 교회의 변증가 오리겐(Origen)은 이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많은 사본들은 바라빠가 예수라고 불렸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어쩌면 이러한 생략은 옳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를 그는 성서 어디에서도 죄인을 가리켜 예수라는 고귀한 이름을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라는 이름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얼마나 흔한 이름이었는지를 전혀 몰랐던 것 같다. 그러나 고대의 사본을 필사했던 이들이 남겨 놓은 방주에 보면 “내가 마주친 다수의 고대 사본에서 바라빠는 ‘예수’라고도 불린다”는 표현이 발견된다. 이러한 표현들은 후대에 사본의 필사과정에서 점차 삭제되었을 것이 확실하다.[각주:13]

더욱이 사본학적 비평의 원리에 따른다면, ‘바라빠 예수’라고 적혀 있는 사본이 더 오래되었고 원본에 가까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사본학자들은 원문 복원을 위해서 여러 판단 기준들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방법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제1원칙은 “lectio difficilior potior”, 즉 더 어려운 독법(reading)이 우월하다는 판단 기준이다. 이 판단 기준은 사본 필사자들이 어려운 표현들을 쉽게 바꾸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것이다.[각주:14] 그러므로 마가복음의 본문 역시 어쩌면 초기에는 ‘바라빠라 하는 예수가 있었다’로 되어 있었을 것이나, 원시 그리스도인 필사자가 민란을 일으킨 살인자를 감히 예수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예수’라는 단어를 생략해 버렸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의 견해는 충분히 설득력 있다.[각주:15] 어쩌면 마가복음의 15:7의 원래 형태 역시 현재와 같은 “o` lego,menoj Barabba/j””(바라빠라고 불리는 자)가 아니라 “VIhsou/n lego,menoj Barabba/j”(바라빠라고 하는 예수)였을 것이다.

바라빠에 관해 선구적인 연구를 남긴 리그(H. A. Rigg)는 마태복음의 바라빠 예수와 그리스도 예수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있어 ‘lego,menoj’(legomenos)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리스어 원문에는 마태복음 27장 17절 하반절이 “ÎVIhsou/n to.nÐ Barabba/n h' VIhsou/n to.n lego,menon cristo,nÈ”“(바라빠 예수냐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냐?)로 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의 초기 사본 일부 가운데는 “바라빠라고 불리는 예수냐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냐?”(VIhsou/n to.n lego,menon Barabba/n h' VIhsou/n to.n lego,menon cristo,nÈ)로 되어 있는 사본이 있음을 발견했으며, 이를 통해 ”바라빠라고 불리는 예수“와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 간에 완벽한 대립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말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lego의 수동태 현재분사로서 “레고메노스”(불려지다, 말해지다)는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마 1:16 - VIhsou/j o` lego,menoj cristo,j)에서처럼 직함이나 별명 앞에 붙어 그것을 수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레고메노스가 주로 수식하는 것이 개인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수식하는 것은 이름 대신에 친숙한 비공식적 호칭 내지는 직함(title)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바라빠는 이 죄수의 본명이 아니라, 일종의 별명 혹은 직함 같은 것이었으며, 마태복음의 일부 사본들이 보여주듯이, 어쩌면 그의 본명은 정말 ‘예수’였을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나, ‘압바의 아들 예수’라는 이름은 마가복음이 묘사하는 나자렛 예수의 이미지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만일 우리가 마가복음 15장 6-15절의 본문을 알지 못했다면, ‘압바의 아들 예수’를 영락없이 나자렛 예수에 대한 칭호로 이해할 법도 하다. 랍비적 유대교 시대의 문헌에서 종종 발견되는 ‘랍비의 아들’로서 ‘바르 압바’라면 몰라도, 제2성전 시대 유대교 사회에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갖는 ‘바르 압바’라는 별칭을 찾아볼 수도 없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마가복음에, 그것도 그 별칭을 가진 자의 본명이 ‘예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바라빠의 정체에 관한 논란은 더욱 가중된다.

주지하다시피, ‘abba’(압바), 즉 헬라어로 ‘Αββα’라고 신약성서에 등장하고 있는 단어는 예수와 바울이 하느님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했던 말로써, 아람어 ‘אבא’의 음역이다. 마가복음에서 이미 예수는 그의 하느님을 “압바 아버지”로 부른 바 있다(막 14:36).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예수 당시에 이 단어를 주로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한 사실에 주목했다. 예컨대,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풀어 번역한 팔레스타인 탈굼(Palestinian Targums)의 창세기에 어린 이삭이 아브라함을 “압바”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22:6, 10). 예레미아스는 “압바”라는 아람어 단어가 유아들의 언어라고 주장하였다.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압바, 나한테 뭘 줄거야?” 하는 식으로 친밀한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와 같은 용어를 굳이 개인 이름으로 사용하고, 또 그런 이름을 가진 아버지를 따른 “Bar-abba”라는 부계적 이름 혹은 별칭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바르 압바 예수”는 대체 어디서 나온 인물인가?

3. 바라빠 예수 vs 그리스도 예수

리그(H. A. Rigg), 맥코비(H. Z. Maccoby), 윈터(Paul Winter), 데이비스(Stevan L. Davies), 메리트(Robert L. Merritt), 오스(Roger David Aus)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바라빠‘ 연구들은 마태복음의 일부 사본에서 발견되는 “예수”라는 그의 이름을 중요한 실마리로 삼아, 사복음서 수난사화에 모두 등장하는 바라빠 (예수)라는 인물이 예수의 무죄함과 결백함을 두드러지게 하는 문학적 장치, 즉 대조인물(foil)로 설정되었다는 주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왔다. 이 학자들은 비록 그들 각자의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유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즉, 기본적으로는 유월절 사면 관례 같은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바라빠 이야기는 고도의 신학적 의도를 갖고 생성된 문학적 장치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를 논증하기 위해 마태복음의 평행본문을 주목했다. 그 결과 권위를 인정받는 마태복음의 오래된 사본들과 마찬가지로, 마가복음의 원문 역시 단순히 바라빠를 바라빠로만 표기하지 않았고, “압바의 아들 예수”로 이해될 수 있는 “예수 바르 압바”로 표기되어 있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나아가, 역사적으로 확신하건대, 빌라도의 재판은 실제로 있었지만, 그 재판 중에 그가 두 죄수 중 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무리에게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예수의 재판 당시에 바라빠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별도의 인물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혹 어떤 반란자들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재판과 예수의 재판은 무관하며, 오히려 신약성서에서 ‘압바’라는 하나님에 대한 독특한 칭호의 용례를 보건대, 나자렛 예수가 그의 동시대 사람들에게 “예수 바르 압바”로 알려져 있었을 것이며, 결국 바라빠는 나자렛 예수의 정체성의 또 다른 일부로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와 바라빠로 불리는 예수는 동일인물이며, 초기 그리스도교는 일종의 예수의 ‘도플갱어’(Doppelganger)를 만들어내어 그럴듯한 역사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이 축적될수록 바라빠 이야기가 창작된 역사적 맥락에 관한 가설들도 훨씬 정교해져가고 있다.

바라빠 이야기를 문학적 창작이라고 보는 학자들에 따르면, 마가가 이러한 이야기를 만든 배경에는 로마제국과 유대교 사이에서 정치적 딜레마를 겪고 있던 초기 그리스도교의 삶의 자리가 존재한다. 그들은 로마제국이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것을 변호해주기 위해, 결국 유대인들을 희생양 삼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맥코비(H. Z. Maccoby)는 유월절 사면의 이야기가 상상력에 의한 허구에 불과하며 실제로 그런 일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던 리그와 윈터에 동의하면서, 기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예수와 원시그리스도교를 반(反)유대적인 동시에 친(親)로마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변증적 관심에 의해 채색되었다고 보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윈터가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이 변증적 이야기가 창작된 역사적 배경을 더욱 세련되게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맥코비는 우선 마가복음의 저자가 군중들을 향해 갖고 있는 모순적인 태도를 주목한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진작부터 예수를 없애 버리고자 했으나, 군중들이 두려워서 그것을 감히 실행하지 못했다. 군중들이 예수를 지지하고 보호했기 때문이다(막 11:18; 11:32; 12:12; 14:2). 그런데 15장 6-15절의 본문에서는 갑작스럽게 군중들의 태도가 돌변하여 예수를 처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맥코비는 이해하기 힘든 이러한 전환의 배후에는 유대인 전체를 정죄하고 저주해온 후대의 그리스도교적 사고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즉, 예수 사후의 시대에 그리스도교회는 예수 죽음의 책임을 유대인 지도자들에게만 돌렸을 뿐, 여전히 평범한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유대인들의 저항과 핍박이 거세지면서 점차 십자가 처형의 책임을 유대인 전체에게로 확대해나갔다는 것이다.

맥코비가 그리고 있는 빌라도 법정과 관련된 역사적 진실은 이런 것이다: 예수 당시의 빌라도 법정 바깥에서는 여전히 다수의 유대 군중들이 예수를 지지하고, 그의 사면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법정 안에서는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겨준 대제사장을 비롯한 권력자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를 지지했던 유대의 평범한 대중들이 예수 사후에는 예수를 잊고 다시 유대교 안으로 돌아가 버렸고,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리스도교회는 동시대의 유대인 전체를 정죄하는 한편, 과거 예수가 빌라도 법정에 섰을 당시 그의 사면을 요청했던 군중들의 역사적 행적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는 묘안을 짜냈는데, 그것이 바로 또 다른 예수, 즉 바라빠 예수라고 하는 가공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 가공의 인물인 바라빠 예수는 마치 그리스도 예수와 구별되는 별도의 인물 같아 보이지만, ‘바라빠’라는 직함(title)의 의미를 잘 풀어보면 결국 (그리스도라는 가장 중요한 직함을 가졌던) 예수와 동일인물인 ‘압바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그 예수라는 것이다. 결국 맥코비의 논의는 나자렛 예수로부터 분리된 가공의 인물인 바라빠 예수를 통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과거 예수에 대한 유대 군중들의 지지를 역사적으로 왜곡하고, 반(反)유대교적 성향을 더욱 가속화하던 역사적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맥코비의 견해는 메리트와 오스에게서도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관된 해석의 흐름에서 이탈하여 획기적인 견해를 제출한 이가 바로 맥클린(Jennifer Maclean)이다. 이전의 바라빠 이야기를 연구한 학자들이 주로 그 이야기의 삶의 자리를 초기 그리스도교의 변증적 상황에서 파악했던 반면에, 맥클린은 이를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기존의 성전 제의를 대체하는 속죄양/희생양 제의가 창안되던 맥락에서 해석하는 일대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맥클린의 연구에 관한 보다 상세한 소개와 평가는 다음 호의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 웹진 <제3시대>


  1. Paul J. Achtemeier, <EM>Invitation to Mark: 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Mark with Complete Text from the Jerusalem Bible</EM> (Garden City, New York: Image, 1978), 215. [본문으로]
  2. 막 15:7, 11, 15; 마 27:16, 17, 20, 21, 26; 눅 23:18, 19; 요 18:40. (cf. 행 3:14) [본문으로]
  3. Ben Witherington Ⅲ, <EM>The Gospel of Mark: A Socio-Rhetorical Commentary</EM> (Grand Rapids-Cambridge, UK: Eerdmans, 2001), 391. [본문으로]
  4. Roger David Aus, “The Release of Barabbas Revisited (Mark 15:6–15; Matt 27:15–26; Luke 23:18–25; John 18:39–40),” in <EM>Caught in the Act, Walking on the Sea and the Release of Barabbas Revisited</EM> (Atlanta: Scholars Press, 1998) 139. [본문으로]
  5. Ched Myers, <EM>Binding the Strong Man: A Political Reading of Mark’s Story of Jesus</EM> (Maryknoll, N.Y.: Orbis, 1988), 373-374, 380-382. [본문으로]
  6. 이러한 학자들의 상세한 명단에 관해서는 Brown, <EM>Death of the Messiah </EM>(Vol.1), 819; W. D. Davies and Dale C. Allison, Jr., <EM>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EM> (Vol.1) (London: T&amp;T Clark, 1997), 583을 참조하라. [본문으로]
  7. 동일한 방식의 이름 용례로는, 바돌로메(Batholomew, 막 3:18), 바디메오(Bartimeo, 막 10:46), 바요나(Bar-jonah, 마 16:17), 바나바(Barnabas, 행 4:36), 바예수(Bar-jesus, 행 13:6) 등이 신약성서에서 발견되며, 요세푸스의 저작에서 발견되는 시몬 바 기오라(Simon bar Giora) 역시 같은 용법의 이름이다. [본문으로]
  8. Adela Yarbro Collins, <EM>Mark: a commentary</EM> (Hermeneia: 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718. [본문으로]
  9. 랍비적 유대교란 명칭은 코헨(Shaye J. D. Cohen)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코헨은 유대교의 역사에서 “랍비 시대”를 70년 전쟁 이후 6세기까지의 유대교를 랍비적 유대교라 명명한다. 이 시대를 대변하는 ‘랍비’는 미쉬나 및 다른 많은 책들, 특히 팔레스틴 탈무드와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만들어낸 특별한 사회의 구성원을 지칭하는 전문 용어이다.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의 책을 참조할 것: 샤이 J. D. 코헨/황승일 옮김,『고대 유대교 역사』 (서울: 은성, 1994), 20-21, 315-316. [본문으로]
  10. Solomon Zeitlin, <EM>Studies in the early history of Judaism</EM> (New York: KTAV, 1974), 251. [본문으로]
  11. 브라운 역시 1세기에 ‘선생의 아들’로 해석될 수 있는 ‘바라빠’와 같은 부계의 이름이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아직까진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만일 Barabbas가 Bar-Rabba(n)에서 온 말로서, “랍비의 아들”이라는 뜻이 되려면, Bar와 Rabbas 사이에 ‘r'이 하나 더 있어야 개인 이름이 포함된 부계적 이름(patronymic)이 될 수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인다. Brown, <EM>The Death of the Messiah</EM> (Vol.1), 799. [본문으로]
  12. Stevan L. Davies, “Who is Called Bar Abbas?,” <EM>NTS</EM> 27 (1981), 261–262. [본문으로]
  13. 브루스 M. 매츠거(Bruce M. Metzger)/장동수 옮김, 『신약 그리스어 본문 주석 (제2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성경원문연구소, 2005), 54. [본문으로]
  14. 신현우,『사본학 이야기』(서울: 웨스트민스터출판부, 2003), 105. [본문으로]
  15. Cranfield, <EM>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rk</EM>, 450; Taylor, <EM>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rk</EM>, 450; Nineham, <EM>Gospel of Saint Mark</EM>, 416. [에반스, 『마가복음 8:27-16:20: WBC 성경주석』, 737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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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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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경실
    2010.06.21 16: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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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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